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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0일 10시 14분 등록
오늘은 화장실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그렇다고 지저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쩌면 그 안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이 더 적절할 듯 싶습니다.

저희 회사 건물에는 매 층마다 남녀 화장실이 각각 하나씩 있습니다. 그리고 각 층을 담당하시는 청소 아주머니가 한 분씩 계시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입니다. 건물을 관리하는 용역업체를 통해서 고용되신 분들이고 보면, 가슴 아픈 일이지만 계약직으로 적은 급여를 받는 분들입니다. 게다가 계약직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규정 탓인지 조금 낯이 익고 인사를 나눌만하면 새로운 얼굴로 바뀌곤 합니다. 그 덕분에 대부분의 동료들은 이 분들과 인사도 잘 나누지 않습니다.

제가 이 건물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로 대략 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근무한 덕에 여러 아주머니들이 거쳐가신 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분들을 잘 기억하는 데는 제가 가지고 있는 《Woo/매력》 테마가 큰 몫을 해주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짧게 건넨 인사가 때론 그 분들의 마음을 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번 마음이 열리면 그 사이로 이런저런 사연들이 쏟아집니다. 이렇게 흘러 나온 그 분들의 가족 이야기, 고향 이야기 그리고 사는 이야기는 그 분들을 그저 우리 층을 담당하는 아주머니 이상으로 만들고 저로 하여금 그 분들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지난 5년 동안 저는 여섯 분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화장실을 항상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말 그대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입니다. 아무리 깨끗이 쓸고, 거울처럼 닦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질어지곤 합니다. 한 아주머니는 그럴 때마다 맥이 빠진다며 하소연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특히 남자 화장실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신문을 들고 볼 일을 보는 사람들의 흔적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곤 합니다. 여기저기 바닥에 털어놓은 담뱃재와 침 뱉은 자국, 거기에 더해 버려진 신문지 뭉치들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 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까지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 있다면 낯을 붉히는 한이 있더라도 이야기를 해볼 텐데, 닫혀진 화장실 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Communication/의사소통》 테마를 발휘해서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자'는 취지의 호소력 있는 문구를 써 붙여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화장실을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직원들을 향해 불만을 터트렸고, 직원들은 또 직원들대로 화장실을 깨끗이 관리하지 못하는 아주머니들께 불평을 늘어놓곤 했습니다. 화장실을 보면 그 회사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 층의 화장실은 그렇게 부끄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별수 없다며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지난 몇 년 동안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화장실에 수북하게 쌓이곤 했던 신문지 뭉치가 사라졌습니다. 바닥을 얼룩지게 만들었던 담뱃재와 침 뱉은 자국도 말끔히 없어졌습니다. 종종 빈 속을 드러내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던 화장지도 항상 부족하지 않게 채워졌습니다. 화장실은 깨끗해졌고, 더불어 서로를 탓하던 소음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지난 몇 년 동안 변하지 않았고, 끝내는 변하기를 포기해야 했던 화장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변화의 열쇠는 바로 새로 오신 아주머니께 있었습니다. 김덕희 여사님께서 우리 층에 배정받아 오시면서부터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수줍은 듯 눈조차 잘 마주치지 못하시는 이 아주머니의 일하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더럽혀지면 바로 치우는 것입니다. 비우면 바로 채우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방식은 놀랍도록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아주머니는 하루 종일 화장실에서 멀리 떠나지 않으셨고, 집요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냈습니다. 화장실이 먼저 변했고,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변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 감사와 감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덕분에 예전 같으면 1년마다 담당자가 바뀌었을 저희 층을 벌써 2년이 다되도록 지키고 계십니다.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의 저자 마커스 버킹엄은 MCNews와의 리더십 관련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호텔의 청소부에게, CEO에게 지불하는 것만큼 많은 보수를 지불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청소부의 서비스가 너무도 훌륭해서 손님이 그가 담당하는 구역에 머물고 싶어한다면 어떨까요? 만약 그의 서비스가 고객에게 극적으로 영향을 미칠 만큼 훌륭하다면 그는 청소계의 '마이클 조던'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눈부시게 빛나고, 대단히 값어치 있는 것입니다. - 마커스 버킹엄, Interview with MCNews

굳이 유명한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주머니가 보여주신 헌신은 보는 이의 가슴을 흔들 만큼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의 작지만 놀라운 변화는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지난 며칠 간 스트렝스파인더를 통해 강점을 탐험하는 작업은 대단히 즐겁고 유쾌했습니다. 아직까지 잘 모르던 스스로의 재능을 찾아내고는, 그 가능성에 환호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Maximizer/최상주의자》 테마를 놓고 그 동안 주어진 평범한 일상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저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었습니다. 또 《Learner/학습자》 테마를 보면서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기보단 새로운 일을 벌이기만 좋아했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또 다른 이름의 도구 뒤에 숨어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비겁함을 다독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강점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또 중요함과는 상관없이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즐길만한 여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유용한 도구가 그 동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을 찾는데 이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강점 혁명'의 앞에는 언제나 '노력'과 '헌신'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저의 마지막 테마, 《Focus/초점》이 제 역할을 다 하도록 무대를 마련해 보아야겠습니다. 어쩌면 김덕희 여사님께서 깨끗하게 만들어낸 작품 속에서 다섯 가지 테마를 조화롭게 펼쳐낼 묘안이 쏟아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IP *.227.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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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세공사
2007.07.09 11:30:13 *.140.145.80
이야기의 힘을 다시한번 실감.. 스트렝스파인더를 접하면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감지하고 표현하는 능력.. 개인적인 직관으로 판단할 때 그대의 재능 중 '의사소통'이 가장 강점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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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7.09 13:55:10 *.253.249.69
향산!
난 연구원의 덧글을 자제해야 겠다고 맹약하고 난후에 처음쓰는 글이라네. 자네는 천부적인 글쟁이이다. 몇달 공부하지 아니했는데 벌써 수준에 올랐다. 정말 감탄할 일이다.
향산!
모두들 디지털로 갈 때, 자넨 복고풍으로 갔으면 하는것이 나의 바램이 였다. 그리고 고전을 바탕으로 현재의 글을 만들어 보았으면 한다. 이것이 나의 욕심일까? 사실 자네는 이제 공부할 시간이 6개월 정도이다. 이후에는 작가로써 활동해야지.
내가 자네의 글에 반했는데 어느독자가 사랑하지 않겠는가....
조~오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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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09 14:23:56 *.72.153.12
종윤, 요즘 뭔일 있어?
유쾌(재미)에서 감동으로 전환되었네. 그대가 가진 모습의 일부야? 아니면 변화를 맞고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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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7.10 08:21:25 *.249.167.156
이야기가 갈수록 깊어지네요^^ 재미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있고..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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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7.10 14:09:44 *.227.22.57
기찬형~ '의사소통' 테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께요. 재능세공의뢰도 오프에서만 되요? 재능상담 해주세요~

정화~ 뭔일은 무슨... 그냥 이런 주도 있고, 저런 주도 있고 그런거지. 칼럼을 너무 급하게 써서 마음이 불편하네. 좀더 차분히 써야 할까봐.

도윤아~ 솔직히 깊어지는지는 잘 모르겠고, 칼럼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좀 줄었네. 혹시 쏟던 마음도 같이 줄은건 아닌가 걱정이야. 근데 축하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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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7.10 14:14:06 *.227.22.57
초아선생님~ 선생님 댓글이 없어서 한동안 궁금~했습니다.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했음에도 연락 한번 제대로 못드렸네요. 올려주시는 글 보며 짐작만 하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선생님 칭찬 들으니까 참 좋네요. 근데 제가 글쟁이 소질이 있는지는 좀더 두고봐야겠습니다. 나아질거라고 믿긴 하지만 진도가 잘 느껴지지 않네요.'무엇'을 잡아 '어떻게' 써야 할 지도 아직 막막하기만 합니다. 아마도 마음이 조급했나봅니다. 계속 고민하고 노력해서 조금씩 찾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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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11 00:15:42 *.70.72.121
나 같으면 '강점이 똥통에 빠진 날' 이라고 했을 텐데... 근데 언제 빠졌어? 안 빠졌잖아. 강점이 화장실과 연애했구만. 향산~ 구린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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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7.11 11:03:03 *.227.22.57
써니 누나~ 그르게. 생각해보니 '강점'이 화장실에 빠지진 않았네. 그냥 내 생각이 화장실에 퐁당했지. ㅎㅎ 그나저나 화장실에 비데 새로 설치해서 사람들은 좋아졌는데, 우리의 김덕희 여사님은 일거리만 늘게 된거 아닌가 몰러. ㅎㅎ 요즘 화장실이 얼마나 깨끗한데~ 구린내는 무신! 주말에 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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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
2007.07.11 23:33:19 *.102.143.55
재밌다, 재밌어.
강점이고 뭐고, 종윤님은 글이 살아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제 생각에도 강점이 화장실에 '빠지진' 않은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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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7.12 09:00:21 *.227.22.57
다인님~ 새로 시작한 인턴 생활은 어때요? 힘들지는 않은지? 생각했던 것과 달라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네요. 물론 잘!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난 좀 지루할 듯 싶었는데, 재밌다니 다행이네요. 글이 살아있다는 칭찬, 듣기 좋은데요. 한 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아직도 내가 정재엽 선배랑 비슷한거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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