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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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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15일 17시 01분 등록
평생고용 그리고 노사의 상생 모델

95년 이전까지만 해도 심각한 노사분규와 경쟁력 저하에 시달리던 유한킴벌리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대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사람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 덕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회사와 직원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상호간의 신뢰를 위해 먼저 신뢰를 쌓는 노력을 보여야 하는 쪽은 회사와 경영진이라는 점을 유한킴벌리의 성공사례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유한킴벌리 직원들의 기업에 대한 신뢰는 대단하다. 그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 한 회사가 자신의 인격을 존중해 주고, 끝까지 자신을 책임질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유한킴벌리가 이토록 직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약속한 평생고용의 원칙 덕분이다. 직원들에게 월급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직장이 제공하는 안정감과 성취감이다. 유한킴벌리는 평생고용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즉, 직원들에게 최선의 노력을 끌어낼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직원들을 거리로 내모는 다른 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사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직원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기업에 대한 신뢰를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고용불안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노사간의 신뢰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입사 11년차인 김범섭 씨는 정리해고 문제로 인해 걱정을 해 본 적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저는 유한킴벌리에서 정년을 맞을 생각입니다. 정리해고의 위협이요? 뉴스나 신문지상에서는 그런 기사를 많이 접하는데, 우리 회사 내에서는 그런 불안감을 전혀 느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개인사업을 하지 않는 이상, 회사를 나가겠다고 생각하는 동료들은 없습니다. 회사가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와 만족감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직원들은 업계 최고라는 회사의 명성에 걸맞는 제품과 품질, 최고 회사의 직원으로서의 사고방식을 갖추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직원들이 회사를 자신의 삶의 터전이라 생각하고, 회사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주인의식과 맞물려 있다. 바로 이런 애사심이 뒷받침되어야만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다.
정규석 강원대 교수는 이런 모습을 기업경쟁력과 경영성과와 연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신입직원들 중에서도 내가 이 회사에서 과연 언제까지 몸담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연마하기보다는 나중에 다른 곳으로 옮길 준비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죠. 예를 들어, 업무에 필요한 지식보다는 영어 공부를 해야 나중에 이직하기 쉽지 않겠냐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때문에 최선을 다해 일을 하려는 생각을 안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기업에서 취득한 기술이나 노하우를 경쟁사에 넘겨서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으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직원들이 신명나게 자기 회사를 위해 일하게 하려면, 기업이 직원을 존중해 주고, 열심히 일하면 보답이 돌아올 것이라는 신뢰감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업의 경쟁력과 경영성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직원들의 입장에서도 회사의 평생고용 보장이라는 약속만 믿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 회사가 평생고용 보장을 지키고 직원들을 최대한 책임질 수 있도록 직원들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일해야 한다. 기업에서 공약처럼 정년퇴직을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그 공약은 경기가 좋고 가동률이 받쳐 줘야 가능한 일이지 기업의 경영자 혼자만의 의지로 되는 일은 아니다.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 직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생산파트에서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내어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영업파트나 R&D파트에서는 시장을 선도할 제품개발에 힘써야 하는 등 회사와 직원들이 한 배를 탔으므로 서로를 위해 뛰어야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런 부분에서도 유한킴벌리 직원들은 자신과 회사가 운명공동체로 묶여 있기 때문에 회사의 성공이 곧 자신의 삶과 직결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것은 회사에 대한 만족도로 이어진다. 직원들의 만족도, 직원들의 경영진에 대한 신뢰도, 회사의 사회 공헌도, 평생학습에 대한 동기부여, 비전공유 등이 회사에 대해 만족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유가 된다.

유한킴벌리에서는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노조의 말을 들어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유한킴벌리 노동조합에서는 노조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가 조합원들이 노조보다 회사를 더 신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합원들이 집행부보다 회사를 더 신뢰하니까 우리로서는 좀 힘들죠. 우리 회사는 임금에 대한 불만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 노조가 임금 얘기를 하지 않고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임금 문제는 회사에 일임하고, 후생복지 쪽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예요. 왜냐하면 임금 문제는 노조에서 요구하기 전에 회사에서 먼저 제시를 하니까요. 임금협상을 할 때 노조 측에서 성과급을 요구하지 않아도 회사에서 먼저 성과에 따라 이익을 나눠 지급하거든요. 그래서 임금보다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사회복지 활동을 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노조 위원장은 회사가 직원에게 먼저 베풀 때 상호간의 신뢰가 쌓일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노조가 회사를 신뢰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점이기 때문이란다. “노조는 회사가 경영에 대한 투명성, 성과에 대한 분배만 제대로 보장해 준다면 회사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직무 교육시간 등을 통해 매달 경영성과를 직원들에게 공개합니다. 그리고 노조의 요구가 있기 전에 먼저 경영실적에 따라 성과를 배분합니다. 조합원들이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회사를 신뢰할 수 있는 것이죠. 현실적으로 가진 자가 먼저 베풀 때 즉, 회사가 조합원들에게 베풀 때 노사 간의 신뢰는 당연히 쌓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한킴벌리는 한 달에 한 번씩 노사협의회를 가진다. 이 자리를 통해 최고경영자가 직접 노조 대표들에게 회사의 경영실적을 공개한다. 공개되는 경영실적에는 매달 어떤 품목을 얼마나 팔았고 얼마나 이익이 남았는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최고경영자가 회사의 경영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노조의 신뢰와 협조를 더욱 적극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근로자들의 입장에서는 회사경영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는 것이다. 유한킴벌리의 노사 간의 의사소통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위에 선 관계가 아니라 서로 자유로운 의견교환 속에서 수평적이고 쌍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회사의 경영정보는 노조 간부들에게만 공개되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회사의 경영상황을 잘 알 수 있도록 2개월마다 한 번씩 비디오 사보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각 항목별로 자세하게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전사적 자원 관리 시스템인 ERP를 통해서도 매출, 순이익, 일자별 실적 대비, 월별 트렌드, 현재의 판매 현황등 상세한 경영지표들을 볼 수 있다. 이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은 직원 누구에게나 있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재 회사가 거두고 있는 경영실적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직원들에게 모두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신뢰가 뒷받침되어야만 직원들이 신명나게 기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고, 노사 간의 신뢰는 기업의 경쟁력과 경영성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극명하게 나타내 주는 한국 기업의 보기 드문 그래서 한국 기업의 노사경영모델의 모범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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