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연구원

연구원들이

  • 한정화
  • 조회 수 297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8년 7월 31일 17시 27분 등록
그림으로 나를 읽는다
===========================================

모네의 그림을 연습하고 있다.
지난번에 그리다 만 것을 덮어 두고 간 것을 찾아 이젤에 얻는다. 파스텔이 다른 것들과 겹쳐져서 뭉개지지는 않아쓸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림은 말짱하다. 그런데 약간은 실망스럽다. 몹시 초라해 보인다. 다 그렸을 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을 보면서도 초라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다른 사람들이 그림 그릴 때 옆에서 지켜볼 때도 그렇다. 초기에는 별거 아니게 보이고 때로는 초라해 보인다. 처음에는 어떤 형태인지 잘 드러나지도 않고 강조하는 부분도 멋진 이벤트로 없어보이는 밋밋함에서 뭔가를 하나씩 추가해서 나중에는 볼만한 것이 만들어진다. )



지난 주에 아트 선생님께 들었던 공기 원근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반대편 강둑의 나무들을 전보다 더 어두운 청색으로 바꾸었다. 나무들의 형태를 잡고는 물결을 그렸다. 물에 흰석과 검정색 선이 약간씩 보여서 잔물결이 보이는데, 내가 실제로 그릴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무 그림자를 물결에 따라가며 넣어야 하는데 어두운색과 흰색을 번갈아 가며 교차되게 그림자 모양으로 넣을 수 있을까. 지난번에 모네의 그림을 들여다 볼 때는 물결의 색이 어둡다고 느꼈는데, 다시 보니 물결에 밝은 색이 많다. 나도 한껏 밝은 색 물결은 만든다. 그리고 나서 모네의 그림과 비교하니, 모네의 그림 속 물결은 어두운 부분이 많다. 몇 번의 선을 더 넣어서 어둡게 하고 밝게 하고 나면 여지없이 밝아보이고 어두워보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룩말의 얼룩이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인가, 검은 바탕에 흰줄무늬인가처럼 이랫다저랫다 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물이다. 물. 물은 그리기 어렵다 하지 않던가. 물에 비친 그림자로 물을 드러낸다고. 또 동양화에서는 물은 그리지 않고 그 속에서 노는 물고기를 그려서 물을 그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모네의 그림 속에서 강에 잔 물결이 일어서 물에 비친 나무를 흐리게 한다.






다음으로 몰두 했던 것은 앞쪽에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풀 무리들이다. 형태를 알 수 없는 키가 큰 풀들이 무더기로 모여있다. 작은 나무이기도 하고, 흰점들로 잎사귀의 반짝임을 표현하기도 한 그 풀무더기. 둘째 큰아버지 돌아가셨을 적에 따라나선 장지에 무덤가에 핀 풍년초들처럼 보인다. 무리진 것도 아니고 무리가 지지 않은 것도 아닌, 정말 모호한 형태이다.

어두운 부분은 어둡게 하고 모네의 붓 터치가 세로로 보이는 곳은 나도 세로로 선을 넣었다. 바닥 종이의 색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게 치밀하게 한다고 하는데도 바닥은 드러난다. 칠하고 문지르는 것은 되도록 하지 않았다. 문지르는 중에 뭉개진 색들이 혼합이 되어버려서 색점들이 살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초록색 계열에 있는 색연필들을 모두 사용하고, 일부에는 넓게 배경으로 해두고 해도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그림을 지도해 주시는 마크 선생님께서는 보시고는 나와 인상파 그림이 잘 맞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무슨 말인지는 짐작이 간다. 그리고 싶은 그림을 선택할 때도 인상파 그림을 선호하고, 실제로 그릴 때도 섬세하고 매끄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마냥 그려 놓으니까 그런가 보다 한다.



이만하면 됐다 싶어서 노란색과 흰색을 얹어서 꽃처럼 보이는 그 무엇인지, 혹은 잎사귀의 반짝임처럼 보이는 그 무엇인가를 표현했다. ‘물을 좀더 진하게 했더라면 노란색이 더 살아날텐데... 잎사귀를 좀 더 어둡게 했더라면 작은 꽃처럼 보이는 것이 더 화사하게 보일 텐데..’하면서 계속해 나갔다. 마크 선생님께서 보시고는 ‘앞쪽에 더 어두워야 해요. 그래야 노랑이 살아요.’ 하신다. 잠시 물러서 보니 내가 해 놓은 것은 어둡지 않다.
‘미리서 포기했었구나. 또 그랬구나!’
“저는 어두운 색을 쓰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 나는 어두운 색을 쓰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번 수채화 색 배합을 연습할 때도 그랬다고 말씀드렸더니, 수채화 할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다고 한다. 밝은 색에서 시작해서 점점 더 진하고 어두운 색을 써가가는 것이라서, 그림을 버릴까봐 어두운 색을 잘 못쓴다고 하셨다. 단지 색을 만들어는 내는 연습에서도 나는 진하고 어두운 색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2~3가지 색을 섞어서 같은 색 계열을 밝은 색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진하고 더 어둡게 만들어가는 작업을 하는 데 매번 검정색 가까운 색을 만들지 못했었다. 좀더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가면 소묘를 할 때도 그랬었다.

고등학교 때 연필 소묘 시간이었었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 중 몇 명을 선택하시고는 자신의 그림을 들고 앞으로 나와서 서라고 하셨다.
“거기 앞에 앉은 애, 이 그림은 어떠냐?”
“잘 그렸어요.”
“저기 맨 뒤에 앉은 학생 애 그림은 어떠냐?”
“안보여요.”
그렇다. 내 그림은 그랬다. 자신을 손을 보고 그린 그림, 참 잘 그렸는데 희미하게 그려서 몇 발짝 떨어지면 안보이는 것이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는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그리라고 하셨었다.

과거의 그 사건이 순식간에 머리 속을 스치면서... 밝은 색을 썼던 것을 어두운 색으로 죽이는 작업을 한다. 그러다보니 원하지 않게 또 색이 섞인다. 대조라는 개념을 배웠고, 실제로 내 눈으로 보았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은색은 안쓰는 거란 그리는 중에 은근히 발동했나 보다. 나는 검은색을 조금만 섰는데... 다시 보니 검은 부분이 아주 많아 보인다. 의도적으로 검정색을 들고 그리다가는 다른 색을 또 짚어들곤 한다. 검은 색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게 실제로 그려보니 아님을 알았다. 서예를 하면서 먹물을 보았기 때문에 검은 것은 얼마나 검은지 아니까 난 어두운 것도 표현할 수 있을거라고 나를 오해하고 있었다. 그림 속에서는 그림을 그린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 누가 말했더라, 초상화 속에는 2명의 인물이 드러난다고. 초상화의 모델과 그것을 그린 사람 화가가 드러난다고. 화가가 그림에 집중하면 집중할 수록, 그 속에는 모델 뿐 아니라 화가 자신도 담기게 된다고. 풍경화를 그릴 때도 나의 상태가 들어가 버렸다. 나의 오해, 나의 기호.......

어쩌면 내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될 것이다. 갈고 닦아야겠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은 나를 반영할 것이기에, 무의식 중에 드러나는 것까지도.... 부끄럽지 않으려면.



==========================================================

<아트 선생님의 그림>



아트 선생님은 밤과 비와 물을 주로 그리신다. 물에 비친 밤의 조명.
지금 모네 그림의 물에 비친 그림자를 그리다 보니 물결을 어떻게 그리는 지 관찰하게된다.



<파스텔로 작업하는 아저씨의 그림>



영화 배우를 그린 건데.. 아주 부드럽다. 부럽다. 비례도 아주 잘 맞추었다. 여인의 얼굴과 어깨에 밝고 어두운 것이 아주 잘 드러났다. 부럽다. 이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는 어떻게 나올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형태는 잘 드러나지 않고, 밑선도 안보이고 뭐가 뭔지 모를 그림이었는데.... 원래 같은 것을 보고 그려도 결과는 그리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짐작하기란 어렵다.

얼굴이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표현하다니, 놀랍다. 초반에 뭐가 뭔지 모르겠다하는 부분에서는 과감히 칠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는 지우개를 써서 중간톤을 만들고 나중에 흰색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이 아저씨는 마무리 작업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로 흰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검은색으로만 명암의 대부분을 표현하고 나서 나중에 흰색으로 밝은 것을 넣었다. 나와는 다른 작업 순서다.



이 아저씨는 차분한 성격인가 보다. 나는 마구 서둘러 가는데,.... 부럽다.

차분함과 부드러움이 모두 부럽다. 비례를 잘 맞추는 것도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몇 번 하지도 않았으면서... 이렇게 잘하다니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IP *.247.80.52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8 [화실일기] 언제? / 어떻게? [2] 校瀞 한정화 2008.06.23 2934
427 [화실일기] 자두- 색혼합에 대해서 [2] 교정 한정화 2008.06.30 3942
426 [화실일기] 관찰하다, 느끼다 [4] 校瀞 한정화 2008.06.30 2330
425 [화실일기]보이는 것과 그리는 것의 차이 [4] 교정 한정화 2008.07.06 2964
424 사부님의 방귀 file [6] 2008.07.11 3008
423 [화실일기] 용기가 필요해 [2] 교정 한정화 2008.07.11 2415
422 홍현웅 커리큘럼_8월 이후(안) [5] 현웅 2008.07.15 3507
421 [화실일기] 벚꽃 그림과 벚꽃 사진 [1] 교정 한정화 2008.07.18 4011
420 [화실일기] 마음에 드는 그림들 한정화 2008.07.31 2772
» [화실일기] 그림으로 나를 읽는다 한정화 2008.07.31 2977
418 이번 하계 연수에 대해 점검할 사항 없을까요? [2] 써니 2008.08.05 2645
417 [화실일기] 보이지 않는 것을 그대로 둔다 교정 한정화 2008.08.07 2763
416 낯선 공간에서 들뜸 흥분 [3] 교정 한정화 2008.08.07 2637
415 껄쩍지근 4기 [7] 현정 2008.08.10 3460
414 4기 연수 [2] 2008.08.14 3025
413 [화실일기] 만화 베껴 그리다가..... 한정화 2008.08.14 3352
412 책속의 메모에서 - 다양성 [1] 한정화 2008.08.26 2297
411 [화실일기]-전쟁장면 그리기 연습 [1] 한정화 2008.08.29 3018
410 혼자였다면 그 여행이 행복했을까? [5] 우주정복 2008.08.30 3481
409 [화실일기] 그리기 전에 이미지를 마음으로 먼저 보기 한정화 2008.09.01 2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