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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0일 19시 25분 등록
 

화실일기 - 20081009


아, 답답하지. 왜 안그러겠어. 쉬었다 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잖아? 번지는 것 할 때, 물기가 마르기 전에 해야 한다는 거. 그런데 이미 다 말라버렸잖아.

그래서 말인데 아마도 오늘 연습한 것은 번지기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색을 찾고 그리고 명암을 찾아가는 것. 그게 아니었을까.


20081009-2.JPG 

<2008.10.09 연습을 마친 후에, 미완성>

 

20081008-3.JPG

#1.
어제는 반쯤 그렸다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오늘은 조금만 손보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 막상 한 군데를 진하게 하고 나면 거기에 맞춰서 옆에도 역시 진하게 해야하니까 자꾸 손봐야 할 데는 늘어가는 거 있지. 빨리 안 끝나겠다 싶었어.

어제는 말이야 선생님께서 내가 그린 화병 색이 책하고 다르다고 하셨는데, 물이 금방 마르니까 어쩌구저쩌구 할 새가 없더라구. 의도하고 실제 만들어내는 거하고 일치 못 시키는 게 초보잖냐. 나는 벽만 초록으로 넣으려고 했지, 화병까지 초록이 될 줄을 몰랐다. 자기가 그 물감쓰면서 그게 될 줄 몰라다고 하면 우습겠지. 그래 맞아. 우스워. 그런데 어쩌겠어. 아주 조금만 살짝 넣으려다가 옆을 고려한다고 붓질을 하니 그게 온통 전체 색이 되버리는 걸. 그래서 속으로 ‘흥, 벽이 초록이면 그 빛이 화병에 비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 초록색이 보이는게 더 좋지.’그랬었어. 어제는 그랬다고 쳐도 그건 완전히 내 마음대로니까 연습이 안될 거 같아서 오늘은 그 초록의 화병을 다시 푸른 기운이 돌게 바꾸었지. 어때? 이제 초록보다는 좀 더 푸르러 보이냐?


이게 사실 백자잖아. 그런데, 왜 푸른색이어야 하는지 답답하더라. 수채화에서 흰색 쓰면 탁해진다고 안쓰는 데 그런 거 그냥 확 없애버렸으면 했어. 요기 앞에 재떨이도 그래. 앞쪽은 살짝 푸르고, 왼편은 살짝 밤색이 돌고, 위쪽은 배 색깔이 살짝 돌잖아. 에구 복잡해. 그냥 흰색에다가 섞어서 하면 얼마나 좋아. 헤헤헤.

20081009-3.JPG 


음. 배 그리다가 그릇 그리다가 그리고 또 반다지 그리다가 다시 그릇 그리고 다시 배 그리고 다시 반다지, 또 화병, 반다지, 그리고 다시 반다지, 자꾸 왔다갔다 했어. 어제 발라둔 밑색이란 거 반다지에서는 하나도 소용없었어. 나중에 칠해지는 색이 워낙 진하니까 처음에 칠한 게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거야. 반다지 색은 한 세 번, 네 번 칠했나. 진한 갈색, 고동색이 안나오고 그냥 고운 밤색만 되고 해서 자꾸 그 위에 또 칠하고 또 칠했지. 그러다가 그림자를 그렸는데, 그 그림자 있는 부분이 엄청 어두운거야. 그거 살리려다가 옆에 바닥이 안 어두우니까 또 옆하고 맞춘다고 칠하곤 했지. 선생님의 말씀도 한몫 했어. 반다지가 윗면하고 앞면하고 그리고 그 아래 요렇게 셋으로 되어있잖니, 요것들이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거야. “여기는 여기만큼 어두워요.”라는 말을 듣고 뚝 잘린 것처럼 명암차이가 나는 것을 서로 맞췄지. 위쪽을 진하게 하면 그에 맞춰서 앞쪽을 진하게 하고, 그리고는 그 아래를 또 더 어둡게 했지. 반다지 위에 있는 그림자 고것도 여러차례 손보게 하는 것을 한몫 거들었어. 그림자를 그리고 나면 그 옆을 안돌아 보게 될 수 없잖아.


선생님은 한번 휙 둘러보시고 ‘여기 조금 더 진하게 하세요’하시는데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해보죠.’라고 했지. 선생님 눈에는 그릇에서 어두운 부분이 눈에 확 띄나봐. 나는 그림자 지는 부분을 진하게 색을 넣는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밝게 하고 있고.  어두운 것에 소심하게 접근했나봐.


‘배는 노랗다는 편견을 버려.’

나한테 이런 말을 해 줄 수밖에 없었지. ‘더 진하다’라는 말을 듣고 보면 정말 더 진하니까. 진한 부분을 보면 노란 색은 아니잖아. 백자가 흰색이 아니듯이 말이야. 그릇 하나에서 왼쪽은 희고, 오른쪽은 아주 진한 색이고. 화병도 아래는 거의 반다지와 같은 색이라구. 그림을 그릴 때 난 머리 속에서 먼저 색을 정했었나봐. 그러니까 ‘더 진하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어도 여전히 그림에서는 그 진한 것을 못 맞추지.


20081009-5.JPG 


그리고 중간쯤 했을 때, 경계에서 희게 보이는 부분들이 눈에 띄어서 그 틈새 메꾸느라 작은 붓으로 살살 거렸어. 옆으로 안 넘어가게 하려던 게 사이가 떠 버려서 희게 보이더라구. 새로 색을 혼합해야 되는데, 같은 색을 2번 만들기기 되냐? 비슷한 색으로 자꾸 여러 번 칠해 보는 거지.

마크 선생님께서 그 부분 처리 방법 알려주셨어. 다음번에 할 때는 어두 운 색으로 밝은 부분을 경계를 넘어가서 살짝 물듯이 칠하라고 일러주시더라구. 틈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건가봐.


자꾸 어둡게, 어둡게, 진하게, 진하게 하다보니 오늘은 파레트가 깨끗하더라. 박현만 아저씨께서 파레트가 왜 이리 깨끗하냐고 물었을 때, 내가 사용한 색이 모두 고만고만한 색이라는 것을 알았지 뭐냐.

어두운 곳 표현한다는 게 오지게 힘들더라. 내가 쓰는 색들이 충분히 어둡지 않다는 거, 진하고 어두운 색을 잘 못 쓴다는 거 몇 번이나 느꼈다. 내가 진도가 반쯤왔다고 생각하는 것도 반이 아니구.

#2. 그라데이션 방향과 붓질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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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고 사진 찍고 얼른 올라고 하는데, 마크 선생님이 사진 찍으시다 중요한 거 또 알려주셨다. 바로 요기 배와 화병의 붓자국 말이야. 옆에 하고 전혀 안 섞였잖냐. 나는 화구들 거의 가방에 넣어서 박현만 아저씨 자리가서 알려주셨지. 테스트로 쓰고 있는 종이에다가 직접 그리면서 설명해주셨어. 그라데이션 할 때는 방향을 주의해야 한다고. 배하고 화병봐봐. 대부분이 위에서 아래로 빛이 가니까 아래쪽이 어두운 것은 당연하지. 그런데, 붓을 쥐고 칠하는 순서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칠하면 안된다는 거야. 종이의 위에서 아래쪽으로 끌어 내리거나 왼편 위에서 오른편 아래로 끌어내리면서(오른손 잡이 경우) 칠해야 된다는 거지. 만일 이 방향이 되지 않으면 화판을 돌려가며 칠하라고 하시더라구.

집에 오는 길에 그게 뭔가 생각해봤어. 왜 이쪽 방향으로는 안되고 이쪽 방향으로는 되는 건데 하고. 손의 자연스런 움직임은 글쎄 약간 일리는 있어. 아래에서 위로 긋는 것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게 자연스럽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칠해나가는 게 자연스럽지. 끝에 묻은 물감의 양 때문이라면 그것도 타당성 있구. 오른 손 쓰니 손에 별 힘 주지 않는 한  붓끝이 왼쪽 위로 가고 끝에 물감이 더 많이 묻는 거구.


20081009-4.JPG 


화실을 나와서 얼마 안있어서 갑자기 어제 그린 복숭아 생각이 확 나더라구. 3개의 복숭아 있잖아. 첫 번째 그린 것과 두 번째 그린 것은 그런대로 노랑과 주황 빨강이 자연스럽게 번지면서 겹쳤는데 세 번째에서는 3층으로 나뉘었잖아. 난 먼저 노랑 칠했고, 그 다음 주황 칠하고, 그 다음 빨강 칠했지. 아마도 세 번째에서 빨강 칠하고, 주황 칠하고, 그리고 노랑 칠했으면 자연스럽게 이어졌을지도. 진한 색부터 시작해서 연한 색으로 해도 되니까. 나 종이를 과신했어. 수채화 용지라고 물기 잘 머금고 있다고. 

밑에 있는 물기를 빨아서 중력을 거슬러서 위로 올리는데 얼마나 힘들겠니, 그럴러면 얼마나 많은 시간 걸리는데. 번지기 전에 칠한 물감이 먼저 말랐겠지. 두 번째 것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거나 왼편에서 시작에서 오른편으로 가잖아. 서로가 겹치는 부분도 많으니까 잘 섞이겠지만 이 녀석은 반대로잖아. 물감이 가장 선명할 때는 흰 종이 부분에 칠하고 나중에 점차로 노랑에 섞고, 빨강 할 때도 위쪽 경계에다 듬뿍 칠하고 나중에 주황에서 톡톡 찍으면서 섞고, 전체는 아래에서 위로 가지만 개별 색을 칠할 때는 위에서 아래로 했잖아.


아무튼 다음번에 화실가면 붓자국 안나게 번지거나 자연스럽게 끌어가다가 없애는 거 해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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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10.13 17:31:04 *.244.220.253
이번 글은 재미있다~
자신에게 던지던, 독자에게 던지던 대화하듯 써내려가는 진행이 흥미롭다.
유명한 작품을 네가 그려 나가며 설명해주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무리한 부탁인가?............좀 그렇지~ ㅜ.ㅜ)

p.s :  네가 올리는 글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잘 못읽어봤는데.........오늘 재미있게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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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10.13 20:43:46 *.247.80.52
고맙다 거암.

응원해주어서 고맙다. 그런데...괜찮다. 혼자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하여간 나는 그 길을 통과하고 있는 거니까.. 결국을 가게 될 거다.  그러니, 응원 안해줘도 괜찮다.

고맙다.
너도 네 글 열심히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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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2008.10.13 23:33:44 *.244.220.253
예전에 호스피스 활동을 할 때, 존경하는 수녀님께서 조용히 내게 와서 이렇게 이야기하더라.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 있어도,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는 홀로 걸어가야 합니다."(문맥상 맞지는 않지만........)

그래~ 우리의 사부님께서도 그렇셨지. 작가는 사무쳐 오는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고...........
암튼 힘들때 전화해라~ 맑은 술 한잔 사마~ (아~ 너 술 못하지..........아니면 스타벅스 커피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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