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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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 대하여 >
저자 스티브 윌킨스(STEVE WILKENS)는 풀러 신학교에서 신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아주사퍼시픽 대학교의 신학ㆍ윤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주사퍼시픽 대학교의 중요 프로젝트인 ‘위대한 작품 선정 프로그램’(GREAT WORKS OPTION PROGRAM)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하이 시에라에 위치한 인문학 아카데미에서 외부강사로 초빙을 받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GOOD IDEAS FROM QUESTIONABLE CHRISTIANS AND OUTRIGHT PAGANS, CHRISTIANITY & WESTERN THOUGHT VOL. II, III(ALAN PADGETT 공저), BEYOND BUMPER STICKER ETHICS 등이 있다.
저자 마크 L. 샌포드(MARK L. SANFORD)는 나자렛 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석사를 마치고 아주사퍼시픽 대학교에서 실천신학 강사와 제자도 그룹 책임자로서 학생들의 경건 훈련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이스턴 나자렛 대학과 패사네나의 나자렛 교회, 나자렛제일교회에서 담당 목사와 사역자로서 다양한 목회 경험을 쌓았다.
<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
1. 커피 안에 녹아있는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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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세계관은 문화에서 비롯된다. 그런 세계관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지만 문화 속에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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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소비주의, 국가주의, 도덕적 상대주의, 과학적 자연주의, 뉴에이지 포스트모던 부족주의, 종교가 된 심리치료의 8가지 신념체계는 일상생활의 세계관에 해당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세계관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 우리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그것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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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은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고 혐오해야 하는지 무엇이 소중하고 그렇지 않은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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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직하다면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말은 대부분 ‘그 일이 나의 우선순위가 아니라서 하지 않았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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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입술로만 고백하는 신념과 확신하는 신념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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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흔히 올바른 신조를 인용하고 타당한 교리를 인정하며 그럴듯한 말을 하면서도 그 속에 내표된 원칙대로 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을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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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관들은 기독교 이야기를 왜곡하는 힘을 갖고 있으며 그런 힘에 대한 우리의 인식 부족에 비례하여 성장한다. 바울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따르는 위험 곧 더 깊고 널리 퍼져 있는 위험을 피하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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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세계관은 은밀한 요소에 의해 더럽혀져 희석되고 오염될 것이다.
2. 나는 우주의 중심이다: 개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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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자아실현은 표현적 개인주의의 중심주제다.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나는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 사회제도를 개인의 자유를 막는 장애물로 여긴다. 그리스도인에게 개인주의는 상당한 유혹으로 다가온다. 각 개인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신념이 개인주의의 중심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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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를 적절히 이해한다면 ‘내가 도덕적 책임을 갖고 있는가’ 가 아니라 ‘내게 도덕적 책임을 부여하는 권위는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개인주의는 내가 자신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권위의 원천임을 보여준다.
자유가 덕목의 위계질서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할 경우, 가치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전통사상은 신중, 용기, 절제, 정의라는 네가지 핵심적인 덕목에 따라 살 때 자유로워진다고 보았다. 즉 자유에 대한 제약을 내적 도덕적 장애물로 여기고 이런 미덕을 개발하고 내면화함으로써 이런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개인주의는 나를 우주의 중심에 놓기 때문에 타인을 동일한 존재로 고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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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치가 성과로 평가된다는 사고는 우리의 영웅 사상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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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건전한 개인주의는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나의 고유한 목적이 내 삶에 의미를 제공한다면 나는 궁극적으로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한다. 개인주의는 큰 꿈을 꾸고 위험을 감수하고 현재 상태를 뛰어넘는 어떤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권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탁월함을 추구하는 일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만의 영웅을 발견하려는 우리의 깊은 욕구에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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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한 개인에 비해 얼마나 광대한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아는 성인에게는 먼지알갱이가 자신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것은 한심한 생각일 뿐이다. 또한 우주의 실재에 대해 잠시만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통제권이 있고 외부의 힘에 대해 독립적이라는 생각은 금세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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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강력한 원천이지만 나는 내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지는 결코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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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는 우주의 중심에 개인을 놓음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위치에 놓으려고 한다.
기독교는 우리의 가치가 우주의 진정한 중심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개인주의와 충돌한다.
3. 나의 소유물이 곧 나다 --소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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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 정신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성공적인 판매전술이다. 또한 이것은 성취감을 구매할 수 있거나 적어도 적절한 상품이 있어야만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우리 문화의 더 큰 확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광고의 행간에 숨은 의미는 물건이 더 비쌀수록, 당신이 상대방을 더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비상품과 사랑을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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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는 임금수준과 그 임금으로 구입 가능한 것을 기준으로 다양한 직업과 그 직업 종사자들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를 표시한다.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사용하는지 살펴본다면 우리가 물품을 잃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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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세계죄고의 부자였던 존D 록펠러에게 얼마나 많은 돈이면 만족할 것인지 묻자 그는 이런 태고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조금만 더요.
소비주의가 우리에게 ‘조금만 더’ 를 추구하라고 주장할 때 무엇을 조금만 더 추구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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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모두 소비주의 게임을 할 수 있다. 힘, 지위, 안정, 경제적 자산 등을 얼마나 축적했는지에 상관없이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소비주의는 사람을 소비 대상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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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정이나 결혼을 고유한 가치를 가진 관계로 생각하지 않고 필요를 채우는 수단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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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욕구 중 일부는 경제적인 수단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주의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욕구가 발생할 때 심각한 문제에 부딪힌다. 그래서 소비주의는 대체물을 만든다. 미덕은 살 수 없는 것이므로 소비주의는 많은 돈 덕분에 우리가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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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재를 통해서라도 사랑, 우정, 진정한 존경과 영적 활력을 얻으려고 애쓰지만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는다. 실제적인 욕구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소비주의가 끊임없이 ‘조금만 더’ 를 요구하는 것이다. 소비주의는 우리가 더 많이 가지면 인생의 구멍이 채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돈은 지적 성장, 도덕적 미덕, 사랑, 진정한 존경, 하나님을 향한 정당한 욕구를 결코 채워주지 못한다. ‘조금만 더’가 우리의 욕구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모조품은 진품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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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소비주의에 빠지지 않고 경제를 돌보는 책임과 소비 욕구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우리는 어느 부분에서 하나님의 자원에 대한 적절한 관리와 폭력적인 교만 사이의 경계선을 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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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우리를 소비주의로 끌어당기는 영향력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심각한 위험에 빠지고 만다.
4.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나라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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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자들은 국가의 탁월함에 대한 신념에 기초하여 하나님이 자기 나라에 특별한 사명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을 향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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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가 득세하면 정치원리는 도그마가 되고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게 된다. 요점은 주요 국가문서와 사상을 존중하면서도 그 속에 들어 있는 불완전함과 시간의 제약을 받은 사상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겸손이 없다면 우리는 국가주의자의 길로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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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자동판매기로 만들 위험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적절하게 행동한다면 하나님이 국가에 국방, 지위, 행복을 제공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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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는 항상 지난 세월의 부정적인 쓰레기들을 모두 걸러내기 때문에 신화적인 색체를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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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아보다 더 큰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려는 의지는 자연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시민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이타심과 관련된 자기 절제를 배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삶이 불안하며 연약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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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옳고 좋고 적절한 태도라고 믿는 것 중 많은 부분이 의식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동화된 것이다. 우리가 행하고 믿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이 문화적 관습에 의해 전해진 것임을 인정하라. 그렇다면 우리가 단순하게 진리로 받아들인 것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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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개선의 기회가 아니라 진리와 선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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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한때 특정 국가/민족 집단이었지만 바울이 갈라디아서 6장 16절에서 언급한 새로운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무엇보다도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린 교회를 가리킨다. 종교적 국가주의의 오류는 기독교를 특정 국가의 경계 안으로 다시 끌어들이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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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는 폭력적인 세계관이며 이 세계관의 파괴적인 힘은 자신이 하나님의 선과 진리를 대변한다는 주장에 의해 뒷받침된다. 국가주의적 사업을 강하게 뒷받침하려고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해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국가와 같이 도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불완전한 존재가 절대적 진리와 결합하게 되면 참극이 벌어진다.
19세기 흑인 노예들은 미국을 새로운 이스라엘이 아니라 새로운 애굽이라고 불렀다.
비극적이게도 자신의 국가를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원했던 다른 그리스도인을 노예로 삼았다.
힘은 우리의 도덕적 결함을 보기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역사적 결함도 보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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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하나님은 국가의 종이 아니라 국가의 심판자다. 하나님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 분을 이용하는 것을 거절하신다. 더 놀라운 것은 최강대국들이 특히 하나님의 심문과 판단을 받아야 함을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한다는 것이다. 사실 국가주의는 교만이라는 죄가 집단 조직의 형태로 드러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국가주의란 궁극적으로 모든 각 국가가 하나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다.
5. 나의 판단은 너의 판단과 다르다 : 도덕적 상대주의
100
루터는 제도권 교회 대신 각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할 능력과 책임을 갖는다는 만인 제사장 사상을 확립했다. 이것은 진리에 이르는 길을 근본적으로 민주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데카르트는 진리를 모든 외부적 원천을 통해 해석되고 알려진 것으로 직접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상을 거부했다. 대신에 그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상을 발견할 때까지 모든 것을 의심하기로 결심했다.
104
도덕성을 견해의 문제라고 보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도덕 문제가 관찰과 계량화와 관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은 직접적으로 고찰하거나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방법은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어’ 라는 우리의 문화적 성향과 잘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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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들인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은 만일 하나님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도스토옙스키의 주장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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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결론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자기 자신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프로타고라스가 제시한 진리의 최종적인 판단기준은 개인의 지각이었다. 이 견해는 ‘나는 지각한다’와 ‘나는 안다’ 사이의 경계를 과감하게 제거한다.
무신론적 경향, 강한 확신에 관한 어려움, 개인의 지각 중 어느 것을 근거로 삼아 상대주의를 주장하든지 결론은 비슷하다.
110
진리의 보편적인 기준 없이 판단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진리를 강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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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상대주의는 어떤 도덕적 특성을 강조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잘못을 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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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참되거나 선한지를 불문하고 어떤 도덕적 규칙도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비극적 상황에 놓인 인간의 신체적 안전이나 영적 안녕이 아니라 규칙이 우리의 최우선 관심사가 될 때 우리는 율법주의자가 된다. 상처 입은 사람들보다 규칙을 더 우선시하는 것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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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상대주의 역시 자신의 견해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많은 상대주의자들이 도덕적 진리뿐 아니라 모든 일반적인 진리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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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생각하는 것도 어렵지만 상대주의 세계관의 근본적인 원칙 안에서 일관성 있게 살아가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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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상대주의를 받아들였던 고대 철학자들은 이 세계관이 초래할 혼란을 인정했다. 이 때 우리의 과제는 우리 개인의 이익에 따라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진리가 없을 경우 평화롭게 함께 살 방법을 서로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타협적인 사회규칙을 진리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이 규칙들은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합의한 것에 불과하다.
119
도덕적 상대주의는 공정과 정의의 원칙을 약화시킨다.
120
도덕적 상대주의는 도덕의 공통분모를 가장 낮춘다.
도덕적 상대주의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지침을 제공할 뿐 마땅히 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도덕적 상대주의는 관용을 요구하지만 단순히 타인을 용납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사이의 도덕적 거리를 엄청나게 멀다.
122
도덕적 상대주의에 대한 대응책 1. 우리가 하나님이 아님을 인정한다.
3. 윤리적 문제에 대해 좀더 겸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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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겸손은 충분한 지식을 갖추라고 요구하며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도 도덕적 동기를 갖고 가지 견해를 내세우고 하나님이 아닌 우리는 틀릴 수도 있으므로 반대자의 의견을 신중하게 경청해야 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택할 능력을 주셨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는 사실은 관용이 하나님의 한 속성임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한 세상의 도덕적 혼란상황을 헤쳐 나가는데 필요한 도덕적 속성들.
6. 오직 물질만이 중요하다 : 과학적 자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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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하나님을 제거한다면 우주를 근본적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 비물질적인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격적인 창조자 혹은 비인격적인 힘이 존재할 가능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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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인본주의자 선언이란 세계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며 인간과 자연은 완전히 동일하고, 현대 과학이 하나님을 대신해야 하며 ,전통적인 종교적 사상보다는 이성에 의존해야 한다는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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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가 갖는 긍정적인 측면
1. 과학적 자연주의는 과학의 가치를 인정한다.- 과학 연구들이 일상생활에 늘 영향을 미친다
2. 과학적 자연주의는 이성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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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들이 인정하기 고통스럽겠지만 종교는 역사에서 가장 분열적이고 파괴적인 수많은 투쟁을 정당화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자연주의는 이런 역사를 보면서 종교가 과연 모든 인간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지를 강하게 의심한다.
138
과학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도구를 제공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마땅히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자연주의는 우주의 힘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 힘을 선하게 사용할 것이라는 확신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는 지식의 진보에 대응하여 자비, 정의, 친절이 비슷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자연주의의 전제를 입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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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적 자연주의는 인간의 위상을 축소시킨다. - 자연주의는 인간을 기술로써 환경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진 우주의 중심이라고 간주한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일까?
142
자연주의는 하나님과 영혼을 제거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143
인간이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 때문에 우리는 즉각 한 가지 질문에 봉착한다. 예로 단순히 물질적인 존재가 도덕적 특징을 가질 수 있을까? 비도덕적인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들이 어떻게 도덕적 목적을 바라는가?
144
유신론자가 직면한 문제는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 왜 그렇게 많은 악이 존재하는지 - 이른바 악의 문제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145
자연주의자들은 유신론자와 달리 이른바 선의 문제에 직면한다. 그들은 비인격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고 도덕과 상관없는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선(그리고 악)의 기원을 설명해야 한다.
만일 태양계가 우연한 충돌에 의해 생겨났다면 이 지구 유기체의 출현 역시 우연한 사건이며 모든 인간의 진호도 우연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모든 생각도 우연에 불과하다. 그들의 생각이 단지 우연한 부산물이라면 왜 그들의 생각이 옳다고 믿어야 하나? 이것은 우유 잔에서 엎질러진 우유가 만든 우연한 형태가 우유 잔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그 잔이 엎질러졌는지를 올바르게 설명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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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변화할 수 있지만 변화가 좋은 것인지 혹은 나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목적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연주의는 왜 건강이 질병보다 나은지, 혹은 왜 평화가 전쟁보다 바람직한지 그 이유를 말해줄 수 없다. 모든 상태는 단지 원자들의 특정한 배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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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경세포는 인간, 그것도 유일하게 인간만이 자신이 최초에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방식으로 반응할까?
7. 우리도 신이 될 수 있다- 뉴 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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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양의 미국의 개인주의와 약간의 동양적 신비주의에 소비주의와 전통과 계몽주의적 합리주의에 대한 반감을 조금 더한다면 무엇이 될까? 뉴 에이지는 요가, 샤머니즘, 최면, 전생퇴행, 수정 요법, 피라미드 요법, 색체요법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다. 뉴 에이지는 인터넷과 비슷하다. 뉴 에이지는 어디에도 없으면서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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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에이지는 자연의 모든 부분이 곧 하나님이다, 신의 어떤 부분도 우주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주 전체와 같다, 만물 안에는 신성이 스며들어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 운동은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는 신성한 능력을 해방시킬 수 있는 열쇠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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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에이지 운동은 계몽주의 시대가 옹호했던 좌뇌적이고 직선적인 형태의 논리인 이성에 의존하는 대신 영지를 추구한다. 영지는 신비적이고 직관적인 지식 형태를 일컫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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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에이지는 마약 복용, 낙태, 부부의 신의, 자살 등과 같은 도덕적 문제에 대해 어떤 법적 도덕적 제한을 가하는 것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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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현대 기독교에 가장 광범위하게 미친 세 가지 뉴 에이지 영향은 개인주의/주관주의, 반지성주의, 물질 영역의 경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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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에이지 사상의 긍정적인 측면
1. 영적 차원은 인정하고 우선권을 부여한다.
2. 뉴 에이지는 제도 종교의 일반적인 문제점들을 일깨워준다.
170
기독교와 뉴 에이지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우리는 신이다’ 라는 그들의 확신이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라는 기독교 신앙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많은 세계관들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구원을 추구한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인가, 구주는 누구인가, 구원의 목적이 무엇인가는 기독교의 구원이해와는 상당히 다르다.
171
기독교의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우리의 죄는 환상이 아니라 우리가 의존하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실제적이고 의도적인 반역이다. 우리의 존재는 죄로 물들었기 때문에 구원의 가능성이 우리 속에 내재해 있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기독교는 구주의 필요성을 고백한다는 점에서 뉴 에이지와 다르다. 뉴 에이지는 우리가 신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후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을 단순히 우리 안에 존재하는 비인격적인 힘, 지성, 에너지, 정신으로 여긴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힘의 원천에 지나지 않게 된다.
174
실재를 바라보는 뉴 에이지의 관점은 악을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거나 신을 악의 원인이자 구현자로 만들어버린다.
8. 나의 부족이 곧 나의 세계관이다: 포스트모던 부족주의
180
다문화주의, 소수집단 우대정책, 포스트모더니즘, 해방신학, 문화 상대주의, 후기 제국주의,
노인차별, 메타내러티브, 소국분활화, 정체성 정치학, 해체주의, 문화 전쟁과 같은 용어, 여성학, 퀴어 이론 관련 코너, 히스패닉계 동아리, 흑인 학생회---이런 것들이 포스트모던 부족주의 사례다.
182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고 싶은 충동, 달리 표현하면 이것은 많은 사람이 시민 사회로 이미 대체되어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는 부족 사회 구조와 비슷하다. 생존을 위해서는 집단이 필수적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
185
포스트모더니즘의 메시지는 모든 사회 구조는 기본적으로 그 속성상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것의 핵심은 힘’이라는 주장이다.
189
우리는 두 집단이 (백인이고 그리스도인인 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같은 성경 이야기를 읽고 그 안에서 노예와 자유라는 같은 주제를 찾아내지만 이 주제의 의미가 문화적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191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본적인 문제를 정의하고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메타내러티브로서의 기독교를 거부한다.
194
미국이 북미 전체를 지배할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주장인 명백한 사명설 때문에 미국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비인간적으로 학대당했다. 미국 역사의 수많은 어두운 장면에서 진실하고 선하며 총명한 그리스도인들이 억압을 지지하는 제도에 참여했다.
제도적 악이 발생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악한 동기가 아니라 사회제도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197
많은 것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항상 문화라는 필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신념은 포스트모던 부족주의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198
포스트모던 부족주의는 부족들을 상대화시키는 반면 내 부족을 절대화시킨다.
200
포스트모던 부족주의는 진리가 다양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문화를 하나님 자리에 놓는 것이다. 현실, 도덕성, 구원, 기원과 목적에 대한 개인의전체적 개념은 초월적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부족의 전통에 의존하게 된다. 또한 영원한 진리를 자기 부족이 주창하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은 외부인에 대한 존경이나 관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문화를 절대화하는 것은 존경의 토대를 제공하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신념을 무시하는 것이다.
또 다른 권력싸움으로 변질되기 쉽다.
201
그렇다면 포스트모던 부족주의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힘에 의존하는 것은 몇 가지 불행한 의미를 내포한다.
202
부족한 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피해의식에 호소한다면 부족이 억압을 극복해야 할 동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부패했다고 여긴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힘을 가진 사람들은 억압자가 된다.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던 부족주의는 피해 정도를 과장한다.
204
어떤 문화적 요소도 우리에게 궁극적 권위가 될 수 없다.
9.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 종교가 된 심리치료
207
우리 문화에 속한 많은 사람이 어째서 심리 치료를 받으면 삶이 더 나아길 젓이라고 기대하는가이다. 왜 심리치료사인가?
211
종교가 된 심리 치료는 영적 차원을 완전히 거부한다.
212
20세기 초에 심리학이 대학의 독립적인 학문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철학과 신학의 하위 부분으로 존재했다. (지금도 존재한다)
217
프로이트는 하나님을 유아기의 아버지 경험에서 유래한 환상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종교는 정신건강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좀 더 완전한 삶으로 돌아가는 길은 하나님 환상을 없애버리고 개인문제와 사회문제에 정신분석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221
로저스의 접근방식의 핵심에는 현실의 본질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는 것은 무익한 도전이라는 신념이 있다. 반면에 스키너는 자유와 도덕적 선함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자유는 환상이고 윤리적 행동은 자유로운 선택을 요구하기 때문에 결정론적 행동들은 윤리적 측면에서 설명할 수 없다.
225
시스템 사고는 같은 환자라도 완전히 다른 사회조직에서 산다면 전혀 다른 관념과 경험, 아마도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가질 것임을 인정한다. 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조직은 거의 대부분 가족이다.
227
심리학은 우리가 과거나 인간관계에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기독교와 심리학은 치유와 건강을 추구한다.
229
기독교는 온전함이 일종의 명령이며 손상되고 불완전한 모든 부분을 건강하게 회복하는 것이 구원이라는 신념을 공유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치유받기 원하는 것은 죄다. 기독교와 심리학은 인간이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 사랑, 수용,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230
우리의 요점은 사랑과 수용의 필요성에 대한 심리학의 통찰이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는 우리의 존재라는 직물에 이런 필요를 함께 짜 넣으셨다.
심리학이 기독교 이야기라는 우산 속으로 이런 통찰을 가지고 들어올 때 심리학은 하나님을 쫒아가면서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리는 것이 된다. 심리학은 하나님이 설계한 현실을 이해하는 수단이 된다. 스키너는 동물 실험을 통해 인간 심리학에 관한 대부분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231
여기서 기독교적 견해는 중요한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232
우리가 주장하는 요점은 간단하다. 인간 본성에 관한 프로이트, 로저스, 스키너의 가정에 따르면 영적으로 공허하고 도덕적으로 파산한 사람이 심리학적으로는 건강하고 온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33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을 인간의 근본문제로 본다. 심리학적 차원은 이런 문제를 직접적으로 극복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 타인과의 관계, 우리 자신과의 관계를 망가뜨린다.
종교가 된 심리 치료가 주장하는 가치중립적 심리학이라는 가정은 신화일 뿐이다.
234
스키너는 사회공학자들이 삶의 틀을 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누가 혹은 무엇이 개인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프로이트와 스키너는 전혀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토대 위에 자신들의 세계관을 세운다.
235
심리학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과 완전함의 기준을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제공할 수 없다. 심리학은 우리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삶으로 인도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
10. 기독교 세계관 이야기
237
하나님의 이야기로부터 올바른 사상을 얻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은 아니다. 하나님의 이야기의 일차적인 의도는 하나님에 관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목적은 근본적인 변화, 곧 정체성, 확신, 윤리, 행동의 변화다.
239
보시기에 좋았더라 는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창조세계는 선하며 하나님은 창조세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신다.
어떤 세계관도 이런 종류의 창조를 기본적 사상으로 삼지 않는다. 소비주의 같은 일부 세계관은 만물의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240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이런 통치는 창조세계를 착취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242
도덕적 상대주의는 우리의 자유와 의지를 절대화하려고 한다. 포스트모던 부족주의는 사람이 문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개인의 도덕적 책임을 약화시킨다. 과학적 자연주의는 지적 영역과 하나님이 양립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 삶의 영적인 부분을 제거한다.
심리적 건강, 재정적 책임, 생산성, 국가에 대한 충성, 문화적 자부심, 적극적인 기도생활은 우리 존재의 구성요소이며 우리의 구원을 향한 노력 안에 포함된다.
243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이 만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과 그 이외의 피조물을 비롯한 모든 창조세계가 가치 있고 소중하며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다양한 형태의 자연주의는 인간이 어떻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지 왜 타인을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부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신념은 외부인들은 위험한 요소로 본다.
인간은 하나님의 세계 안에 자신의 위치를 가지며 하나님이 그것을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그 위치는 중요하다.
244
그러나 인간의 위치는 하나님의 위치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의무와 함께 한계가 주어진다.
오래 지속되는 이야기의 공통적인 특징은 비극이다.
그들은 경계를 넘어가서 그들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취하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했고 그 결과는 대 재앙이었다. 이것은 교만이 초래한 비극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힘, 책임, 자유에 대해 마땅히 감사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 했다.
246
하나님과의 왜곡된 관계는 부부, 가족, 사회를 차례로 손상을 입혀 분열시킨다.
타락이후 전개되는 이야기의 모든 내용에는 불순종의 부패한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퍼져있다. 모든 철학자와 종교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무언가 깊이 잘못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원죄 교리는 기독교 신앙 중 유일하게 경험적으로 입증 가능한 교리다
-라인홀드 니버
247
죄는 삶의 모든 측면에 스며든다. 죄는 어디서나 나타난다.
소비주의는 더 많은 돈과 재화를 축적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종교가 된 심리치료는 심리 치료사를 하나님의 위치에 놓는다. 뉴에이지와 개인주의는 각 개인을 우주의 가장 중요한 실재로 만든다. 국가주의와 포스트 모던 부족주의는 정치적, 사회적 조직을 궁극적인 권위로 높인다.
248
하나님을 떠나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비롯된 타락의 해결책을 찾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역설이다. 이것은 우스운 일이면서 한편으로는 엄청난 비극이다.
252
타락은 모든 것을 오염시켜서 창조세계와 하나님의 평화로운 일치를 기억할 수도 없게 한다.
253
하나님은 성육신을 통해 예수님이 되심으로써 인간성 내부로부터 우리를 아신다.
254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때 우리의 의지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여전히 불순종을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의 타락 때문에 하나님과 계속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255
하나님의 이야기는 우리의 정체성, 확신, 가치관, 행동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우리 개인의 이야기를 다시 쓰라고 요구한다.
257
기독교의 구원은 많은 측면에서 창조 때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구주가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는 것이 미친 짓이라는 것을 이제 이해한다는 뜻이다.
258
교만은 배은망덕, 오만, 불건전한 자기애와 같은 추한 친척들을 끌어 모은다.
하나님을 외면했을 때조차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259
삶은 논리적으로 연결된 개념들을 질서정연하게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삶을 비롯하여 모든 삶은 혼란스럽다. 우리에 대한 죄의 영향력은 파괴되었지만 타락의 영향은 아직도 우리 삶에 깊숙이 퍼져 있다.
265
기독교는 구원을 향한 인간의 순수한 노력이 실패했음을 인정한다. 기독교는 우리가 구원을 원한다면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 구원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구원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11. 기독교 세계관 개발하기
270
비기독교적 관점들도 진리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정도에 다라서 기독교 세계관에 정당하게 포함되어야 할 사상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272
진리의 일차적이고 중요한 기준은 성경이다. 즉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을 정립할 때 살펴보고 의지할 수 있는 첫 번째 자료이자 최 우위 권위다.
274
읽기와 이해는 이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읽고 들을 때 더불어 해석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이성의 기능이다. 진리의 두 번째 기준인 이성은 성경의 메시지를 적절히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필수요소다.
275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성을 무오한 권위로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또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276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진실한 기독교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성장을 자극하고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에게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책임지기 위해 규칙적으로 모이라는 권고를 받았다.
279
기독교 세계관의 목적은 하나님이 주신 이런 모든 능력을 통합하여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280
세계관은 현실에 관한 믿음, 악에 대응하는 방식, 노동이나 여가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식,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 우리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방식, 돈을 사용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겸손, 사랑, 감사가 기독교 세계관의 목표이자 발전 지표
281
그리스도인들은 올바른 대답을 알고 있지만 그대로 살지 않는다. 이런 고백하는 신념은 이런 미덕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진실한 확신이 결코 아니다.
282
우리의 고백적 신뢰며, 확신, 도덕, 가치관, 정체성, 행동이 하나님의 이야기와 일치하는 매끄러운 이야기로 정교하게 결합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의 세계관을 하나님의 이상과 더 가까이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올바른 생각을 갖는 것 이상의 문제다.
< 내가 저자라면 >
‘여러 명의 과학자들이 하나님 앞에 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생명을 창조할 정도로 과학의 힘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이 말에 흥미를 느끼신 하나님이 한번 해 보라고 말씀하셨다. 한 과학자가 사람을 만들기 위해 몸을 굽혀 한 줌의 흙을 집어 들었다. 이 때 하나님이 그를 제지하며 말씀하셨다. 네 흙으로 해야지“
'당대 세계죄고의 부자였던 존D 록펠러에게 얼마나 많은 돈이면 만족할 것인지 묻자 그는 이런 태고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조금만 더요'.
소비주의가 우리에게 ‘조금만 더’ 를 추구하라고 주장할 때 무엇을 조금만 더 추구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이 현명하다.
역시 유머가 책 쓰기에 중요한 요소임을 느낀다. 자기 얘기만 딱딱하게 하는 것 보다 예화를 잘 드는 것도 중요하다
제목과 부제가 다소 딱딱하게 느껴져도 이런 촌철살인으로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어서 읽고 느끼기에 부담이 없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채택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다양한 세계관의 환원주의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를 잘못 진단하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세계관은 사람들의 삶에 은밀하게 스며들어 우리의 사상과 생활방식의 일부가 된 나머지 개인과 사회를 어지럽힌다고 보았다.
그래서 삶이 중요하다면 참된 세계관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중심적인 과제라는 것이다.
즉 창조 때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을 촉구하며 인간의 이성으로 만들어낸 온갖 세계관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부제는 우리를 조종하는 8가지 이야기다.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사는 것 같지만 실제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들에게 은밀하게 스며든 시대사조를 따라가는 것이고 기독교인들조차도 그런 사조에 흔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간파한 책이다.
그냥 스쳐지나가고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말씀으로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책도 글이 야단스럽지 않고 읽기에 흥미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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