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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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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6일 11시 50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박지원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글을 썼지만 대표적인 사람은 두명이다. 고미숙 작가와 얼마 전 읽은 <한시미학 산책>의 정민 작가이다. 그들을 통해 바라본 박지원을 저자연구로 살펴보고자 한다.

 

. 고미숙이 바라본 박지원

 

연암 박지원은 호방한 인물이었다. 연암의 웃음소리를 듣고 귀신도 놀라 도망 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10년 전 연암을 만나고 삶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고미숙. 그녀와 함께 열하일기를 읽어보았다.

 

연암, 그리고 다산

 

연암 박지원하면 실학 사상이 떠오른다. 실학 사상하면 자연스럽게 다산 정약용도 연상된다. 흔히는 연암과 다산을 유사하게 엮어서 생각한다. 하지만 그 둘은 여러모로 달랐다. 연암은 노론 명망가에서 태어나 뛰어난 문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포기하고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반면 다산은 남인출신으로 과거를 공부해 관료의 길을 걸었다. 때마침 정조가 탕평책을 피던 시기와 맞물려 중용될 수 있었다. 고미숙은 이를 보고 연암은 원심력을 가지고 권력에서 멀어지려 했고, 다산은 구심력을 가지고 권력을 향해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연암이 처음부터 과거를 포기했던 건 아니었다. 당시의 과거제도는 많은 부분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양반의 숫자가 급증하던 시기로 과거를 보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니 과거를 치를 때마다 응시자가 수만 명이나 되어 아수라장이 열리곤 했다. 격식과 규격을 싫어하던 연암에게 과거 제도는 고문이었다.

 

연암, 우울증을 앓다

 

연암은 청년 시절 우울증을 앓았다. 거식증과 불면증을 동반한 우울증이었다. 고미숙은 우울증이란 자기와의 소외에서 발병하는 자본주의 이후에 탄생한 병이라 진단했다. 과거에는 설령 굶주려는 죽어도 자기에게 소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 하에서 부자체의 욕망에 치우치며 자기 소외가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대 사람이 아니었던 연암이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연암은 어떤 방식으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노론 명망가의 자재였던 만큼 좋은 약을 구해 먹고 좋아진 건 아니었을까? 연암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저자거리로 나섰다. 그곳에서 연암은 분뇨장수, 이야기꾼, 도사, 건달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요즘의 철학적 용어로 설명하면 타자와의 접속을 시도한 셈이다. 연암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병을 치료함은 물론이고, 방경각외전이란 소설집을 써서 명성을 획득했다.

 

연암, 백탑파를 만들다

 

연암은 과거를 포기했다. 특정한 직업도 없었다. 30대의 연암은 백탑파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연암은 친구들과 함께 책 읽고 토론하고 사색했다. 중국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부도 명예도 없었지만, 벗이 있었기에 연암의 30대는 행복했다.

우리는 블리븐. 그들이 있고, 책이 있어 30대는 아니지만 40대의 나는 행복하다.

 

하지만 이 행복도 오래가진 못했다. 당시의 권력자였던 홍국영은 연암을 곱게 보지 않았다. 결국 연암은 홍국영의 위험을 피해서 서울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홍국영이 실각하고 연암은 서울로 돌아왔지만, 백탑파는 이미 해산한 이후였다. 죽은 이도 있었고, 생계가 어려워 시골로 내려간 이도 있었다.

 

하지만 연암에게 새로운 행운이 찾아왔다. 팔촌형 박명원이 건륭제의 만수절 (70세 생일) 축하 사절로 임명된 것이다. 덕분에 연암은 박명원의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사신단 일행에 합류할 수 있었다. 이 여행에서 나온 글이 바로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고미숙은 열하일기야말로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명한 여행기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별거 없습니다 서양인이 중국에서 와서 신기한 걸 본 정도에 그칩니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도 별거 없습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이븐 바투타라는 여행기가 하나 있습니다. 중세 이슬람 인명 사전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문체가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는 여행기는 열하일기뿐입니다. 열하일기에는 문명론부터 시작해서 천하의 형세를 꿰뚫을 뿐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탐구까지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고미숙은 열하일기를 대학을 다 졸업하고야 만났다. 제도권 교육에서는 열하일기를 통째로 읽지 않는다. 국어 국문과에서는 소설을 발췌해서 읽고, 철학과에서는 연암의 명문장을 발췌해서 읽는다. 전체가 아니라 부분만을 읽고 있는 셈이다. 고미숙은 열하일기가 제대로 읽히지 않고 있는 현실에 아쉬움을 표하며, 문장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열하일기를 읽으라고 조언했다.

 

체력, 열하일기의 원동력

 

사신단 일행은 압록강을 건너 황제가 있는 연경에 도착했다. 하지만 황제는 연경에 없었다. 열하의 피서산장에 있었다. 황제는 조선 사신단을 열하로 불러 들였다. 연암은 사신단 내부에서 특정한 업무를 맡지 않은 프리랜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꼭 열하를 갈 필요는 없었다. 한가하게 연경 유람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박명원이 열하에 가면 기이한 걸 볼 수 있다며 연암을 꼬득였다. 결국 연암은 열하로 가는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

 

열하로 향하는 길은 고난 그 자체였다. 우선 시간이 촉박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말을 계속 달리게 하고 그 위에서 잠을 자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밥도 먹을 수 없었다. 비가 많이 와서 불을 피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길이 평탄한 것도 아니었다. 하룻밤 동안 강을 아홉 개나 건너야 하는 험난한 지형이었다. 그렇게 700리를 달렸다. 하지만 연암은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글을 썼다. 그것도 그냥 글이 아니라 열하일기의 백미이자, 조선 최고의 한문 문장인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를 썼다. 연암의 가공할 만한 체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인 사람이 무박 나흘을 여행한다면 며칠은 죽은 듯이 잠만 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열하에 도착한 연암은 몇 시간만 눈을 붙이고 체력을 회복했다. 그러고는 열하에 있는 사람들과 밤새 필담을 나누며 우정을 쌓았다.

 

현대인은 편한 여행을 한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지는 못한다. 많은 경우 여행에서 돌아와서 기억을 재구성한 글을 쓰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감상적인 글만 남긴다. 고미숙은 어떤 상황에서도 글을 쓸 수 있었던 연암의 신체를 부러워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제주도에서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좀더 일찍 열하일기를 만났다면 <탐라일기>가 나올수도 있었을텐데

 

유머, 열하일기를 읽는 이유

우리는 고전을 엄숙하고 진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고미숙은 사람을 무겁게 만들면 진리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심오하고 깊은걸 진리라고 여기는 생각은 서양 철학에서 유래되었다고 진단한다. 고미숙은 고전은 무겁게 여기는 통념을 깨고 싶었다. 그리하여 연암의 유머와 해악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러나 학계에서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연암을 지나치게 희화화했다는 이유였다.

 

고미숙은 열하일기를 읽는 가장 큰 이유가 유머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용후생이나 문명론도 뛰어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연암 못지 않은 학자들도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웃을까? 고미숙은 웃음은 통념을 깰 때 발생한다고 이야기한다. 소위 말하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웃게 된다. 하지만 웃으면서도 새로운 발견을 하고 우리의 삶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고미숙은 연암의 색다른 시각을 볼 수 있는 대목으로 호곡장(好哭場)을 꼽았다. 연암은 광활한 요동 벌판을 보고 울기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울음이란 희로애락이 사무칠 때 가능한 것임을 깨닫는다. “산모롱이에 가려 아직 백탑은 보이지 않는다. 재빨리 말을 채찍질했다. 수십 걸음도 못 가서 겨우 모롱이를 막 벗어났을 때, 눈빛이 아른거리면서 갑자기 검은 공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 오호! 눈앞에 하늘과 땅만이 우주를 가르는 아득한 공간이 펼쳐졌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다.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다.

 

멋진 울음터로구나. 크네 한 번 울어볼 만 하도다!”

 

(중략)

 

사람들은 다만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 수 있다는 건 모르지. 기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슬픔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미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왠 줄 아는가?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기 때문이야.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열하일기, 호곡장

 

기본적으로 연암은 웃음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연암은 옥전현이라는 마을에 들렀는데, 마을 점포에서 너무나도 재미있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동행한 정진사를 불러다가 열심히 베꼈다. 하지만 연암이 베낀 부분과 정진사가 베낀 부분이 앞뒤가 맞지 않았고, 결국 연암은 조금 손을 봐서 열하일기에 싣는다. 그 유명한 호질의 탄생 비화다.

 

연암이 하도 열심히 글을 베끼자 점포 주인은 궁금해서 물었다. “선생은 이걸 베껴 대체 무얼 하시려오?” 그러자 연암은 답했다. “돌아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서 모두들 허리를 잡고 한바탕 웃게 하려는 거요. 아마 이걸 읽는다면 입안에 든 밥알이 벌처럼 날아갈 것이며, 튼튼한 갓끈이라도 썩은 새끼처럼 끊어질 것이외다.” , 남을 웃기기 위해서 그 고생을 한 셈이다.

 

하지만 연암의 글은 재미있어서 문제였다. 정조는 고문의 위엄을 흔들리게 만든다는 이유로 연암의 글을 싫어했다. 웃음을 막으려고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 가지는 공통된 특성인 모양이다

 

연암의 삶에서 21세기의 길을 찾다

 

연암은 어느 한 곳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디든지 떠돌아다니고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글을 생산해냈다. 고미숙은 이런 연암의 삶에서 21세기의 사유의 비전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연암에게 있어서 여행은 곧 길이고, 길은 곧 삶이며, 삶은 곧 글이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지성도 길 위에서 삶의 비전을 찾아내서 글로써 생산될 수 있다면, 모두가 자기 자신의 주체이자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연암이 열하일기에서 보여준 여행과 사유가 21세기적 삶의 비전이 될 수 있습니다.”

         

. 정민이 바라본 박지원

우리나라 고전 작가 중에 단 한 사람의 문호를 꼽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연암 박지원을 택하겠다. 그는 중국 역대 대가의 반열에 놓아도 당당한 경쟁력을 지닌다. 현대에 내놓아도 전혀 기죽을 일이 없다. 그의 사유가 보여주는 힘은 읽는 이를 항상 압도한다. 한다하는 학자들도 그의 글 앞에서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젓는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이 읽어도 너무 쉽고 재미있다. 따져 읽자면 한정 없이 어렵고, 가볍게 읽자면 너무나 경쾌하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 치고, <양반전><허생전>을 모르는 이가 없다. <열하일기>를 모른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란 말과 같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는 사람은 만나기가 어렵다. 박지원의 시문과 열하일기를 한꺼번에 4책으로 펴냈다.열하일기는 상중하 3책으로 면수만 무려 1,938면이다. 박지원의 시문을 따로 엮은 것은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란 제목으로 546면의 분량이다. 열하일기1959년 북한 문예출판사에서 이상호의 번역으로 나온 것을 새롭게 펴냈고,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는 홍명희의 아들로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지낸 홍기문의 번역이다.

처음 책을 받아들고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했다. 축복이 벼락처럼 쏟아진 느낌이랄까. 박지원의 문집은 합쳐 봐야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의 문집은 지금까지 완역되지 않았다.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만큼 행간이 깊고 문맥을 잡기가 어렵다.

열하일기만은 진작부터 부분 번역되어 읽혔고, 1966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완역한 국역본도 있다.

하지만 빛깔 바랜 누런 갱지에 인쇄된 낡은 판본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딱딱한 한자말투는 읽기를 방해한다. 그의 산문 선집도 간혹 출판되었지만, 껄껄 선생을 능가하는 분량은 지금껏 나온 적이 없다. 우아하게 편집된 새 책을 보고, “먹다 남은 장도 그릇을 바꾸어 담으면 새로운 입맛이 난다고 한 연암의 말뜻을 실감했다. 예전 북한에서 간행된 것은 나도 진작에 복제본을 지녔던 터, 새 책을 펼치니 이 책이 과연 같은 책인가 싶다. 이번열하일기3책과껄껄선생의 간행으로 대중과 공유하는 연암학은 첫 물꼬를 튼 셈이다.

북학의 번역은 우선 읽기에 쉽다. 우리의 옛 글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훨씬 틀스러워 보였다.’

한꺼번에 맞춰 불러 모둠힘을 쓰는 바람에.’ ‘살림이 제일 푼더분해 보였다.’ ‘날이 희읍스름할 때’, ‘창자가 맞통하다시피 되었다. ’ ‘입에 침이 없이 탄복을 했다. ’ 잠깐만 들춰봐도, 도처에서 귀에 익되 이제는 낯설어진 우리식 표현들과 만난다. 정경도 눈앞에 그린 듯이 생생하다. 글자에 얽매이지 않고 핵심을 찔러 우리말의 결로 옮겼다. 각주를 주렁주렁 달아야 겨우 이해될 대목도 그냥 간결하게 압축해서 전달의 효용성에 치중했다. 그러다 보니 학술적으로는 다소 문제될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연암의 본뜻을 헤아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열하일기를 찬찬히 읽다 보면, 마치 영화 필름이 눈앞에서 돌아가는 것만 같다. 18세기 후반 청나라 변경과 북경의 풍경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책 속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미묘한 담론을 만들어낸다. 섬세한 묘사와 절묘한 비유에 얹혀 전해지는 지성의 힘에 독자들은 자꾸 위축된다. 문장의 묘미는 또 어떤가? 치고 빠지는 특유의 너스레와 층층이 포개진 행간을 헤아리는 일은 무척 즐겁고 매우 괴롭다.

몇 해 전 나는 연암의 길을 따라 북경에서 열하를 찾았었다. 고북구 장성을 지날 때, 연암이 글씨를 썼다던 장성 벽에다 연암을 흉내 내서, ‘연암 후 220년 한국의 아무개 이곳을 지나다라고 먹글씨를 남겼다. 위대한 문장의 현장에 선 느낌이 자못 장엄했다. 그의 자취가 담긴 곳곳을 지나면서 한 위대한 정신이 과거를 어떻게 현재화 하는지 절감했다. 연암은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살아있고 힘 있다. 나는 그 앞에서 늘 맥을 출 수가 없다. 열하에서 코끼리를 본 소감을 쓴 코끼리 이야기를 읽을 때는 움베르또 에코의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낙타 이야기가 겹쳐졌다. 에코에게 200년 전 연암의 이 글을 읽히면 그가 얼마나 놀라 자빠질까? 계속 이 생각만 했다. <요술 구경을 읽고는 그 꼼꼼한 묘사력과 절묘한 비유에 압도되었다. <하루 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는 인식론의 깊은 본질을 꿰뚫었다. 그의 사유는 현대적이고 기호학적이다. 그가 보고 느낀 사물의 세계, 인간의 질서는 지금도 하나 변한 것이 없다. 그의 글이 갖는 파괴력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그는 얽매임 없이 툭 터진 지성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연암과 만나서 크게 변했다. 생각도 달라졌고, 글쓰기도 변했다. 그의 글을 꼼꼼히 읽어본 독자라면 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줄을 잘 알 것이다. 들으니, 북한에서 국가적 사업으로 간행된 고전문학선집 100책이 앞으로도 겨레고전문학선집이란 이름으로 속속 간행되리라고 한다. 고전에는 남북이 없다. 이념도 없다. 고전을 통해 남북이 만나고, 시대를 넘어 옛 정신과 만나, 우리의 내면 또한 나날이 풍요로워 질 것을 믿는다.

 

. 박지원의 문장들

 

"학문하는 길에는 따로 방법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잡아서 묻는 것이 옳고, 또한 종이라고 하더라도 나보다 하나라도 많이 알면 반드시 배워야만 한다. "

 

" 벗을 사귐에 있어서는 서로를 알아주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은 없고, 서로를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것은 없다. "

 

" 부자이면서도 인색하지 않으니 의로운 일이요, 남의 어려움을 도와주니 어진 일이요, 비천한 것을 싫어하고 존귀한 것을 사모하니 정녕 지혜로운 일이로다.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양반이로구나. "

 

" 잇속으로 사귀면 지속되기 어렵고, 아첨으로 사귀면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일세. "

 

" 흰 두루미만 본 자는 처음 까마귀를 보면서 비웃고, 오리만을 본 자는 처음 학의 자태를 보고 위태롭게 여긴다. 무릇 사물은 스스로 아무런 괴이함이 없건만 인간 스스로 흠을 잡고 자기가 본 것과 다른 것이 있으면 만물을 다 부정한다. "

 

"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기를 꺼린다면, 이는 죽을 때까지 편협하고 무식한 틀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과 같다. "

 

" 간을 토할 듯 쓸개를 녹일 듯 서로 손을 잡고, 속 마음까지 드러내 보이는 것이 믿을 만한 친구이다."

 

" 마음이 깊고 넓은 사람은 보고 듣는 것에 따라 마음이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

 

" 일찍 출세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재주와 학문이 넉넉하지 않은데 복잡한 세상 일에 나아가면 자신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법이다. "

 

" 세상에는 깨끗하다면서 깨끗하지 못한 자도 있고, 더럽다면서 더럽지 않은 자도 있는 법이다. "

 

" 옛것을 본받는 사람은 자취에 얽매이는 것이 문제고, 새것을 만드는 사람은 근본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

 

" 이 세상의 모든 잘못은 낡은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눈 앞의 편안함만 쫕으면서 적당히 임시변통으로 땜질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보고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보지도 못한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다.”

 

벽돌이란 꿈이다. 스스로를 잘 알고 그에 따라 하고 싶은 일을 간직하는 것이 사람에게는 곧 벽돌 만드는 일 아니겠느냐.”

 

말의 말을 듣고 말에게 말을 걸려면 먼저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시간 속에 쌓인 사람의 말을 들으려면 글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나리가 창대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우리 고전 읽기의 즐거움

 

4. 문학 작품은 사회와 삶과 가치관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는 문화의 창고이다.

 

4. (고전문학 작품은) 인간 삶의 본질을 꿰뚫는 근본적인 가치가 담겨 있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퇴색되거나 민족이 다르다고 하여 외면될 수 있는 일시적이고 지역적인 것이 아니다. 시대와 민족의 벽을 넘어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것이다.

 

4. 우리 고전은 당연히 우리 민족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담고 있다. ....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공동체 의식, 선비 문화 속에 녹아 있던 자연 친화의식, 강자에게 비굴하지 않고 고난에 굴복하지 않는 당당하고 끈질긴 생명력, 고달픈 삶을 해학으로 풀어내며 서러운 약자에게는 아름다운 결말을 만들어 주는 넉넉함

 

5.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가치관은 생활 속에 그대로 녹아서 문학 작품에 표현되었다.

 

5. 그것은 분명 우리 것이되 우리에게 낯설다. ....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아는 것이 아니라 잊었던 것을 되찾는 신선함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읽었던 <삼국유사>, <한시미학산책>, <열하일기>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준 보물같은 책이다. 외국의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보다 우리 것을 먼저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았다.

 

5. 거기에는 일상을 벗어났으되 나의 뿌리를 이탈하지 않았다는 안도감까지 함께 있다. 그것은 남의 나라 고전이 아닌 우리 고전에서만 받을수 있는 선물이다. ... 고전 읽기를 통해서 내가 한국인임을 자각하고, 한국인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게 하는 문화의 힘을 느낄 수 있다.

 

5. 지금의 언어로 고쳐 쓰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6. 우리가 쉽게 접하는 세계의 고전 작품도 그 나라 사람들이 시대마다 새롭게 고쳐 쓰는 작업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 이제라도 우리 고전을 새롭게 고쳐 쓰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문화 역량이 여기에 이르렀다는 방증이다. 현재 우리가 겪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를 극복할 해결의 실마리를 고전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우리 고전을 지금의 언어로 고쳐 쓰는 작업을 시작한다.

 

6. 우리 고전은 우리의 독자적 상상력의 원천으로서, 요즘 시대의 화두가 된 문화 콘텐츠의 발판이 되어 새로운 형식, 새로운 작품으로 끝없이 재생산되리라고 믿는다.

 

7. 마지막으로 시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내용에 맞는 그림을 곁들였다. 그림만으로도 전체 작품의 흐름을 알수 있도록 화가와 필자가 협의하여 그림내용을 구성했으며, 색다른 그림 구성을 위해 순수화가와 사진가를 영입하였다.

 

7. 경험은 지혜로운 스승이다. 지난 시간 속에는 수많은 경험이 농축된 거대한 지혜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고전은 그 바다에 떠 있는 배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서문

 

17. 글을 써서 교훈을 남기되, 신명의 경지를 통하고 사물의 자연법칙을 꿰뚫은 것으로는, <주역><춘추>보다 나은 것이 없다. <주역>은 미묘하고 <춘추>는 드러낸다. 미묘란 주로 진리를 말하는 방법인데, 그것이 나아가면 말이나 글에서 실제가 아닌 뜻을 의탁하는 우언이 된다. 드러냄이란 주로 사건을 기록하는 글쓰기 수법인데, 그것이 변하면 정사에 실리지 않는 외전이 된다. 책을 짓는 데는 이러한 두갈래의 방법이 있을 뿐이다.

열하일기에 대한 박지원의 글쓰기에 대한 자세를 말하고 있다. 우언은 이야기를 꾸며 비유하는 글쓰기 방식으로, 여기에는 이야기 줄거리가 있고, 비유에 기탁하여 갑을 말하면서 그 뜻을 을에 두는 이야기 방식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이야기는 비유체이고, 본체는 우의이다. 외전은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다. 즉 춘추와 같이 아무런 주관적 표현을 섞지 않고 시간단위(, , )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쓰는 방식이다.

 

18. 남이 반박하면 나는 굳게 지켜 지금까지 논쟁이 그치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이는 드러난 곳에서부터 미묘한 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니, 외전을 쓰는 이가 이러한 방법을 이용했다.

 

18. 외전이라면 참과 거짓이 서로 섞여 있겠고, 우언이라 하더라도 미묘함과 드러냄이 쉴 새 없이 변하여, 사람으로는 그 원인을 측량할 수 없으므로 이를 궤변이라고 한다.

 

19.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장자>의 외전에는 참도 있고 거짓도 있지만, 연암 씨의 외전에는 참은 있으나 거짓은 없음을 알았다.

<열하일기>를 쓰면서 연암이 추구하는 글쓰기의 핵심이다. 참된 사실만을 적는다는 것.

 

19. 풍속이란 관습이 치란에 관계되고, 성곽이나 건물, 농경과 목축, 그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 일체의 이용후생 방법이 모두 그 가운데 들어있어야만, 비로소 글을 써서 교훈을 남기려는 뜻에 맞을 것이다.

 

들어가기

 

23. 숭정을 바로 쓰지 않았을까? 장차 압록강을 건너려고 하므로 이를 잠깐 피한 것이다. 왜 이를 피하는 것일까? 압록강을 건너면 청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천하가 모두 청나라의 연호를 쓰므로 감히 숭정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에서는 어째서 숭정이라는 연호를 그대로 쓰고 있을까? 명나라는 중화인데, 우리 조선을 처음에 승인해 준 나라이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다. 이런 것들도 역사 교과서에 실어서 알려야 한다. 다시는 이런 사대주의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23. 명나라가 망한 지 벌써 130여 년이 지났는데, 어째서 지금까지도 숭정이라는 연호를 쓰고 있을까? 청나라가 들어와 중국을 차지한 뒤에 선왕의 제도가 변해서 오랑캐가 되었지만, 우리 동쪽 나라 수천 리는 두 강을 경계로 나라를 이루어 홀로 명나라 왕들의 제도를 지켰다. 우리의 힘이 비록 저 오랑캐를 쳐서 몰아내고 중원을 깨끗케 하여 선왕의 역사를 다시 빛내지는 못할지라도, 사람마다 모두 숭정의 연호라도 높여서 중국을 보존하였던 것이다.

왜 우리는 명나라와 여진사이를 이용하지 못했을까. 여진이 중국을 통일할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 편에 서서 명나라를 통일할 때 요동의 땅덩어리라도 받는 것이 더 효과적이건만. 그놈의 중화가 뭐길래. 임진왜란시 도와주었단 이유만으로 명나를 배신할수 없었나. 유교에서는. 그러나 우리가 도와준다고 멸망은 어쩔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므로 이를 알고 이용할 수 있는 임금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도강록

 

25. 아직까지도 흙탕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압록강의 발원지가 멀기 때문이다. <당서>를 살펴보면 고려의 마자수는 말갈의 백산에서 나오는데, 그 물빛이 마치 오리 머리 같이 푸르기 때문에 압록강이라고 불렀다.

지명은 그냥 나오는 경우가 없다. 형상, 전설 등에 의해 붙여진다. 압록강은 오리의 머리이다.

 

25. 백산은 바로 장백산을 말한다. <산해경>에는 불함산이라 했고, 우리나라에선 백두산이라 했다. 백두산은 모든 강이 발원되는 곳인데, 서남쪽에 흐르는 것이 바로 압록강이다.

 

25. <황여고>에는 천하에 큰 물이 셋 있으니, 황하와 장강과 압록강이다.”

 

26. 회수 이북의 물줄기는 북조라고 하는데, 모든 물이 황하로 모여들어 강이란 이름 붙인 곳이 없다. 다만 북쪽 고려에 있는 강만 압록강이라 부른다.

 

27. 거의 열흘동안이나 객관에 묵어 모두들 지루하다가 그 말을 들으니, 훌쩍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10일 동안 거기서 무엇을 했을까? 정말 지루했을 듯

 

27. 자줏빛 말은 정수리가 희고, 정강이가 날씬한데다 발굽이 높았다. 머리는 날카롭고 허리는 짧았으며, 두 귀가 쫑긋한 품이 참으로 만 리를 달릴 듯 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연암의 관찰

 

29. 짐 보따리를 뒤지지 않으면 나쁜 짓을 막을 수 없고, 뒤지면 이같이 체모에 어긋난다.

 

명나라 장수 강세작이 조선에 귀화한 이야기

 

33. 날이 저물어 총수에 이르렀다. 여기는 우리나라 평산의 총수와 비슷하다. 이걸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름을 짓는 방법이 짐작된다.

 

청나라 첫 고을 책문의 모습

 

34. 길에서 되놈 대여섯 명을 만났는데....... 우리나라는 염려할 것이 없지만, 중국의 국경 수비는 너무 허술하다고 느꼈다.

 

35. 아까 한 일은 부질없는 짓이니, 앞으로는 괜히 장난으로 말썽이나 일으키지 마라.

 

35. 내가 일찍이 우리나라 서울의 도봉산이나 삼각산이 금강산보다 낫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금강산은 일만 이천 봉 가운데 어느 것 하나 기이하고 높고 웅장하고 깊지 않은 곳이 없어서, 짐승이 끄는 듯, 새가 나는 듯, 신선이 공중에 오르는 듯, 부처가 도사리고 앉은 듯, 음랭하고 그윽한 모습이 마치 귀신 굴속에 들어간 것 같기 때문이다.

 

36. 우리 서울은 참으로 억만 년을 누릴, 용이 서리고 범이 걸터앉은 형세이다.

 

37. 정관에게 출장비를 주지 않고 인삼을 몇 근씩 주어 중국에서 팔아 쓰게 했는데, 이 짐 보따리를 팔포라고 한다.

 

40. 이는 하나의 시기하는 마음이다. 내 본래 성미가 맑아 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는데, 이제 한 번 다른 나라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아직 만 분의 일도 못 보고 벌써 이런 나쁜 마음이 생기니 어찌 된 까닭일까. 아마도 보고 들은 것이 좁은 탓일 게다. 만일 밝은 눈으로 세계를 두루 살핀다면, 어느 것 하나 평등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평등하다면, 시기와 부러움도 저절로 사라 질 것이다.

우리나라를 강하게 만들면 될 것 아닌가. 이런 시기심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것마저 자책하다니

 

벽돌과 기와

 

42. 청나라 사람들은 대개 집을 지을 때에 벽돌만 쓴다.

여진족인데 어떻게 벽돌을 구워서 집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42. 그 쌓는 법은 이렇다. 한 개는 세로, 한 개는 가로로 놓으면, 저절로 감괘와 이괘 모양이 된다.

건축용어로는 1.0B쌓기와 0.5B쌓기이다. 연암의 묘사가 더 아름답다.

 

벽돌에 대한 설명은 설명대로 하고 그림을 그려서 표현했으면 더 사실적으로 와 닿을텐데 전반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안시성과 요동 땅의 평양성

 

45. 고구려의 방언에 큰 새를 안시라고 하였다.

 

46. 그러나 우리 본토에서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실을 단 한마디도 감히 쓰지 못했으니, 그 사실이 믿을 만한건 아니건 간에 다 빠뜨리고 말았다.

 

47. 후세 선비들이 이러한 경계를 밝히지 않고 함부로 한사군을 모두 압록강 이쪽에 몰아넣어서, 사실을 억지로 이끌어다 제멋대로 분배하였다. 그러고는 다시 패수를 그 속에서 찾았는데, 어떤 사람은 청천강을 패수라 하였으며, 또 어떤 사람은 압록강을 패수라 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의 강토는 전쟁도 없이 저절로 줄어들었다.

 

50. 어느 쪽이 옳은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대동강을 패수라 하는 이들은 자기 강토를 줄여서 말하는 것이다.

생각이 없는 것이겠지. 어떻게든 더 넓게 차지하려는 생각이 있었다면 패수를 압록강 이상까지 생각했을 텐데

 

50. 고려는 안으로 삼국을 통일했다고는 하지만, 그 강토와 무력이 고씨의 강성함에 결코 미치지 못했다. ... “이곳이 패수요, 이곳이 평양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어긋난다. 그러니 이 성이 안시성인지, 봉황성인지 어떻게 분간하겠는가?

 

중국의 구들과 조선의 온돌

 

51. 나는 구들이 어떻게 놓였는지 대략 엿보았다. 먼저 높이 한 자 남짓하게 구들바닥을 쌓아서 편평하게 반든 뒤, 부서뜨린 벽돌을 바둑돌 놓듯 굄돌을 놓고, 그 위에 벽돌을 깔았을 뿐이다.... 굴뚝의 깊이는 한 길이 넘는다.

1= 30.3cm, 1= 3.03cm, 1= 10, 1=1.8~2m ,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에서 한 길은 사람 키 높이를 얘기함

 

51. 이것은 우리나라 말로 개자리이다. 불꽃이 항상 재를 몰아다가 고래 속에 가득 떨어뜨리므로, 3년에 한번 씩 고래 목을 열고 재를 치워야 한다.

개자리.jpg


52. 돌 덮개를 덮어서 봉당 바닥과 가지런하게 한다. 그 빈 데서 바람이 일어나 불길을 불목으로 몰아 넣으므로, 연기가 조금도 새지 않는다. 또 큰 항아리만큼 땅을 파고 벽돌을 탑처럼 쌓아 올려서 굴뚝을 지붕과 가지런하게 만들었으므로, 연기가 그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서로 잡아당기듯 빠져나간다. 이 법이 아주 묘하다.

연암은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묘사하는 수준이 이리도 높은지 이해가 절로 간다.

 

52. 우리나라 온돌은 항상 불을 내뿜고 방이 골고루 데워지지 않으니, 그 잘못이 모두 굴뚝에 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이 가난해도 글 읽기를 좋아해 겨울이 되면 수백 명의 형제 코끝에는 항상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니, 이 방법을 배워 가서 삼동의 고생을 덜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온돌 분석까지. 직접 봤다는 말이고 작동원리까지 이해했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선비가 구들에 대해 이리 잘알다니 실학파 중의 북학파가 맞긴 맞나보다. 북학파라 해도 그냥 이름만 붙였을거라 생각했는데.

 

52. 우리나라 온돌 제도에 여섯 가지 흠이 있으니 아무도 이를 말하는 사람이 없다네. .... 돌의 크고 작음과 두껍고 얇음이 애초부터 고르지 못하다네. 그래서 조약돌로 네모를 괴어서 층하가 나지 않게 하려고 했으나, 돌이 타고 흙이 마르면 곧잘 허물어지는게 첫째 흠일세, 돌이 울룩불룩하여 옴폭한 데는 흙으로 메워져 평평하게 하나, 불을 때도 고루 덥히지 못하는 게 둘째 흠일세. 불고래가 덩실 높아서 불길이 서로 맞물리지 못하는게 셋째 흠일세. 벽이 성기고 얇아서 곧잘 틈이 생기므로, 바람이 새고 불이 내쳐서 연기가 방 안에 가득하게 되는 게 넷째 흠일세. 불목이 목구멍처럼 되어 있지 않으므로, 불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땔나무 끝에서만 남실거리는 게 다섯째 흠일세. 또 방을 말리려면 적어도 땔나무가 100단 정도나 들고, 10일 안으로 입주하지 못하는 게 여섯째 흠일세.

온돌에 대해 논문을 써도 될 수준이다. 공학을 전공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53. 나 혼자 담배를 피워 물고 정신이 몽롱한데.

연암도 담배를 피우는 구나.

 

54. 오랑캐를 되놈이라고 하니, ‘는 바로 도이島夷의 줄임말이요. 노음老音은 낮고 천하 이를 가리키는 말이오. ‘이오伊吾란 높은 어른에게 여쭈는 말이다.

왜 되놈이라 하는지 이젠 알겠다. 이런 유래가 있었구나.

 

꿈속에 고향집을 찾아

 

55. 하인 서른 명이 알몸으로 가마를 메고 가다가, 강 한가운데쯤 물살이 센 곳에 이르러 별안간 왼쪽으로 기울어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

여기서는 좀 이해가 안되네. 연암이 내려서 혼자 가면 될 것을 꼭 이렇게 30명을 힘들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네. 그 시대에 살았으니까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일수 있다.

 

55. 이날에는 60리를 걸었다.

24km를 걸었다는 얘기다.

 

57. “아까부터 가위에 눌린 지 오랠세일어나 앉아서 이를 부딪치고 머리를 두드리며 정신을 가다듬으니, 그제서야 제법 상쾌해졌다.

 

말꼬리를 붙들고 강물을 건너

 

59. 관제묘가 있었는데, 매우 영험이 있다고 하여 역부와 마부들이 서로 다투어 탁자 앞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리며, 참외를 사서 바치기도 하였다.

 

한바탕 울어 볼 만한 요동 벌판

 

60. 내 오늘에야 처음으로, 인생이란 본시 아무에게도 의탁함이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60. “, 참 좋은 울음 터로다. 가히 한번 울 만하구나.”

이렇게 천지간의 큰 시야를 만나 별안간 울고 싶다니, 웬 말씀이오.”

 

60. 천고의 영웅이 잘 울었으며, 미인도 눈물이 많다 하오. 그러나 그들은 소리 없는 눈물을 몇 줄 흘렸을 뿐이니,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금이나 돌에서 나오는 듯한 울음은 듣지 못했소. 사람이 다만 칠정

중에서 슬플 때에만 우는 줄로 알고, 칠정 모두가 울 수 있음을 모르는 모양이오. 기쁨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사랑이 사무치면 울게 된다오.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오. 불평과 억울함을 풀어 버릴 때에 소리보다 더 빠른 것이 없으니,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이라오. 정에 이르러 우러나오면 저절로 이치에 맞으니 울음이 웃음과 무엇이 다르겠소. 인생의 보통 감정은 오히려 이러한 극치를 겪지 못하고, 교묘한 칠정을 늘어놓되 슬픔에다 울음을 배치했으니, 이로 인해 상을 당했을 때 억지로 애고’, ‘어이따위의 소리를 부르짖는 거라오, 참된 칠정에서 우러나온 지극하고도 참된 소리는 참고 눌러서 저 천지 사이에 서리고 엉기어 감히 나타내지 못한다오. 참다못해 별안간 선실을 향하여 한마디 길게 울부지었소. 그러니 듣는 사람들이 어찌 놀라고 해괴히 여기지 않았겠소.

칠정 : 희노애락애오욕, 울음에 대한 정의가 남다르다.

 

61. 저 갓난아이에게 물어보시오. 그가 처음 날 때 느낀 것이 무슨 정일까. 그는 먼저 해와 달을 보고, 다음에는 부모와 친척들이 앞에 가득한 것을 보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았겠소. 이러한 기쁨이 늙도록 변함없다면 본래 슬퍼하여 노여워할 리가 없으며, 마땅히 즐겁고 웃어야 할 정이 있어야지요. 그런데도 자주 울기만 하고 분한 마음이 가슴에 사무친 것같이 한답니다. 인생이란 신성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마침내는 죽어야만 하고, 태어나고 죽어 가는 중에도 모든 근심 걱정을 골고루 겪어야 하기 때문에, 그 아기가 태어난 것을 후회하며 저절로 울음보를 터뜨려 자신을 위로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갓난 아기의 본심이 결코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그가 어머니 뱃 속에 있을 때 캄캄하게 막히고 걸려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넓고 훤한 곳에 터져 나와 손과 발을 펴자 그 마음이 시원해졌으니, 어찌 한마디 참된 소리를 내어 제멋대로 외치고 싶지 않았겠소? 그러나 우리도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 비로봉 산마루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며 한바탕 울 만하고, 황해도 장연 바닷가 금모래밭을 거닐며 한바탕 울 만하지 않겠소. 이제 요동 벌판에 와서 보니 여기에서 산해관까지 1,200리 사방에 한 점의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았구려.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퀘맨 듯 고금에 오가는 비구름만 창창하니, 이 역시 한바탕울 만한 곳이 아니겠소.

 

구요동

 

63. 정필이 적군이 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 성을 헐었다. 청나라 군대가 이를 보고 의심하여 감히 가까이 이르지 못하다가, .....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높은 성을 새로 쌓았다.

 

63. 승리의 날쌘 군사를 시켰는데도 열흘 동안 다 헐지 못했다.

 

65. 명나라 장군 원웅태는 성 북쪽 진원루에 올라 싸움을 격려하다가 성이 함락되는 것을 보고 누각에 뷸울 놓아 타죽었다. 장구 하정괴는 처자를 거느리고 우물에 빠져 죽고, 장군 최유수는 목매어 죽었다.

 

66. 아아! 슬프다. 명나라가 망할 때가 되어 인재를 쓰고 버리는 것이 거꾸로 되었고, 공과 죄가 밝지 못했다. 웅정필과 원숭환의 죽음을 보면 조정 스스로 만리장성을 허물었다고 하겠으니, 어찌 후세의 놀림을 받지 않겠는가.

 

67. 서문을 나와서 백탑을 구경했다. 만든 품이 공교롭고 화려하며, 요동 넓은 벌판에 어울리게 웅장했다.

 

관제묘

 

69. 읽는 부분을 보니 바로 화소와관사의 문단인데, 외는 것은 뜻밖에 <서상기>였다. 까막눈이건만 익숙하게 외워서 입이 매끄럽게 내려갔다. 꼭 우리나라 네거리에서 국문소설 <임장군전>을 외는 것 같았다. 읽는 자가 잠깐 멈추자, 두사람은 비파를, 한사람은 징을 울렸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으며 그 읽는 방법 또한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서 읽었나를 짐작할수 있는 대목

 

성경잡지

 

75. 사방을 둘러보니 널따란 벌판에 거칠 것이 하나도 없다. ..... 요양도 이곳이 편안하면 천한의 풍진이 자고, 이곳이 한번 시끄러워지면 천하의 싸움 북이 소란스레 울린다.

그랜드 캐넌을 한번 본적이 있다. 요양을 가보진 않았으나 이런 느낌일 것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장관에 그저 넋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80. 다스리는 법이 아무리 간단하다지만, 따귀 때리는 형벌은 옛날부터 들어 본 적이 없다. .... 여러 사람을 데리고 예속재에 갔다.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일신수필

 

들어가기

 

83. 남이 말한 것을 들은 것만으로는 말하는 자들과는 서로 학문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평생 동안 생각지 못한 것에 대해서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

남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자기 입으로 나오는 것은 앵무새가 아닌 한번 소화를 거쳐 토해내야 할 것이다. 자기 생각이 들어가야 한다.

 

83. 아아! 슬프다. 성인공자가 240년간의 역사를 정리하여 이름을 <춘추>라고 하였지만, 240년 동안 옥백과 병거의 모든 일은 곧 한 가지에서 꽃피고 잎 지는 순식간의 광경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르다고 하지만 사람에게서 일어나고 사람에게서 사라지는 그런 모습을 얘기하는 걸까.

 

83. 아아! 슬프다. 글을 빨리 쓰다가 생각해 보니, 먹 한 점 찍는 사이는 하나의 순과 식에 지나지 않건만, 눈 한 번 감고 숨 한번 쉬는 사이에도 벌써 짧은 옛날과 짧은 지금이 이룩된다. 그러면 하나의 이나 지금도 대순과 대식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84. 설산에서 고행하던 이가 만일 공씨의 집안에 대해 공자, 백어, 자사 3대가 아내를 내쫓았다느니, 공자의 아들 백어가 일찍 죽었다느니, 공자가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봉변을 당했느니 하면서 조금 더 넓게 보지 못한다면, 이는 참으로 땅, , 바람, 불 등이 별안간에 모두 없어진다는 셈이니, 정말 한심한 일일 것이다.

문제가 되는 한 부분을 부각시키거나 보지 말고 전체를 바라보는 그런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85.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벌써 지나간 경지이다. 그 경지가 지나고 지나서도 쉬지 않는다면, 옛사람 가운데 이를 빙자하여 학문을 하는 사람 역시 무엇으로도 고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억지로 글을 지어 남들이 이를 반드시 믿도록 한다.

옳고 그름, 잘쓰고 못쓰고는 그 다음 문제다. 기록하고 메모해라. 이것만이 남는 것이다.

 

중국의 큰 볼거리

 

86. 우리나라 선비들이 북경에서 돌아온 이를 처음 만나면 반드시 이렇게 말한다.

자네 이번 여행에서 제일 볼만한 것이 무엇이든가. 가장 볼만한 것을 골라서 말해주게.”

그러면 그들은 자기가 본 것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다. “요동 1,000리의 넓디넓은 들판이 장관이지요.” “구요동 백탑이 장관이지요.” “그 길가의 시가와 점포가 장관이더군요.” “계문의 안개 낀 수풀이 장관이지요.” “노구교가 장관이지요.” “산해관이 장관이더군요.” “각산사가 장관이지요.” “망해정이 장관이지요.” “조가패루가 장관이지요.” “우리창이 장관이지요.” “통주의 배들이 장관이더군요.” “금주위의 목축이 장관이지요.” “서산의 누각이 장관이지요.” “사천주당이 장관이더군요.” “호랑이 우리가 장관이지요.” “코끼리 우리가 장관이지요.” “남해자가 장관이지요.” “동악묘가 장관이더군요.” “북진묘가 장관이지요.” 저마다 제멋대로 대답해서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고상한 선비는 섭섭한 표정으로 얼굴빛을 바꾸면서 말한다. “도무지 볼것이 없더군요.” “어째서 볼 것이 없었는가?” “황제가 머리를 깎았소, 장군, 재상, 대신들과 모든 관원이 머리를 깍았으며, 선비와 서민까지 모두 그러하다오. 아무리 공덕이 은나라나 주나라 같고, 진나라와 한나라보다 더 부강하다지만, 천지가 시작된 뒤로 여태껏 머리를 깎은 천자는 없었지요. .... 한번 머리를 깎으면 되놈이지요. 되놈이면 곧 짐승이니, 우리가 그들 짐승에게 무엇을 볼게 있단 말입니까?”....중간쯤 가는 선비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성곽은 만리장성의 옛 제도를 물려받은 것이요. 건물은 아방궁의 법을 본뜬 것입니다. 선비나 서민은 위나라나 진나라의 부화를 숭배하고, 수나라 대업시대나 당나라 천보시대의 사치한 풍속 그대로입니다. 중국땅이 더렵혀져서, 산천이 피비랜내 나는 고장으롭 변했습니다. 성인들이 남긴 자취가 묻히자 언어조차 야만의 것을 따르게 되었으니, 무엇 하나 볼만한게 있겠습니까? 참으로 10만 군사를 얻을 수만 있다면, 당장 산해관에 쳐들어가서 중원 땅을 소탕하겠습니다. 그런 뒤에라야 비로소 장관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이는 <춘추>를 잘 읽은 사람의 말이다. <춘추>는 중화를 높이고 이족을 낮추어 보는 사상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글이다.

그놈의 중화사상에 사로잡혀 청나라의 받아들여야 하는 점은 보지 못하는 것아 아쉽다. 능력도 안되면서 북벌론을 거들먹거리는 사대부들의 말들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89. 마지막 황제가 자살하고 명나라가 망하자, 백성이 머리를 깎아서 모두 되놈이 되었다. 비록 우리나라만은 이런 치욕을 면했지만, 중국을 위해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으려는 마음이야 어찌 하룬들 잊을 수 있었으랴.

나는 차라리 이때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그 상투가 사라지고 좀더 현실적이 되지 않았을까? 새로운 문명을 더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89. 그러나 존주사상은 주나라를 높이는 데에만 국한하여야 한다. 이적의 문제도 이적에 한해서만 써야 한다. ..... 청나라 왕실이 이적이긴 하지만, 중국 문화가 자기에게 이로워서 길이 누리기에 넉넉함을 알았다. 그래서 마치 자기가 본래부터 지녔던 것처럼 이를 빼앗아 차지하고 있다.

 

90. 참으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천하를 위해 일하는 자는 그 법이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이를 거두어 본받으려고 한다.

 

90. 물론 성인 공자가 <춘추>를 지을 때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내쳤지만, 그렇다고 오랑캐가 중화를 어지럽힌 것을 분하게 여겨 중화의 숭배할 만한 진실까지 내쳤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나라 사람이 진실로 오랑캐를 물리치고자 한다면 중화가 끼친 법을 모두 배워서 우리나라의 유치한 문화부터 먼저 열어야 한다. 밭 갈기, 누에치기, 그릇 굽기, 풀무질 등으로부터 공업이나 상업에 이르기까지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남이 열을 하면 우리는 백을 하여, 먼저 우리 백성에게 이롭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회초리를 마련해 두었다가 저들의 굳은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매질할 수 있도록 한 뒤에야 중국에는 볼만한게 하나도 없더라.”하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90. 그러나 나같이 미천한 선비도 한마디 할 수 있다면 그들의 장관은 기와조각에 있고, 똥 부스러기에도 있다.”고 하겠다.

 

90.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에 버리는 물건이다. ..... 이를 둘씩 포개어서 물결무늬를 만든다든지, 넷을 모아서 둥근 고리처럼 만든다는지, 넷을 등지어서 옛 동전의 모습을 만들 수 있다. ..... 깨진 기와 쪽을 버리지 않으면 천하의 무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91. 똥은 아주 더럽지만 이것을 밭에 내가기 위해 황금처럼 아끼니 길가에 내버린 똥이 없다. 말똥을 줍는 자가 삼태기를 들고 말 뒤를 따라다닌다. 말똥을 주워 모을 때에도 네모반듯하게 쌓고, 혹은 여덟 모로 혹은 여섯 모로 하고, 또는 누각이나 언덕 모양으로 만든다. .....“저 기와 조각이나 똥 무더기가 모두 장관이다. 반드시 성곽, 궁실, 누각, 시장, 절간, 목축이라든지, 또는 저 광막한 들판이나 안개어린 나무가 기이하게 바뀌는 모습만 장관은 아니다.”

그냥 장관인 모습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 도입할수 있는 것들을 보는 것이 더 좋은 법.

 

수레 제도

 

95. <주례>에서 임금의 재산에 대해 물었을 때 수레가 많은지 적은지로 대답했으니, 수레가 물건을 싣고 사람을 태우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수레 중에도 전쟁에 쓰이는 융차, 일할 때 쓰는 역차, 물을 나르는 수차, 대포를 쏘는 포차 등 수백 가지의 제도가 있으므로, 짧은 시간에 이루 다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타는 수레와 싣는 수레는 백성에게 가장 중요하니 시급히 연구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연암도 귀국후에 우리나라에 수레를 어떻게 개발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시간이 부족해서였을까 벼슬을 하지 못해서 그랬을까. 실전에 적용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해본다.

 

95. 천하의 수레가 같은 궤도로 달린다.는 뜻의 거동궤라는 말이 바로 이걸세.

마치 오늘날의 기차처럼 그런 것을 얘기하는 것이겠지.

 

95. 그러므로 애쓰지 않고도 같이 되는 것을 일철이라 하고, 뒤에서 앞을 가리켜 전철이라 한다. ... 우리나라에도 전혀 수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바퀴가 온전히 둥글지 못하고 바퀴 자국이 틀에 맞지 않으니, 이는 수레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들이 늘 우리나라는 길이 험하여 수레를 쓸 수 없다.”고 하니, 이게 무슨말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쓰지 않으니까 길이 닦이지 않을뿐이다. 만일 수레가 다니게 된다면 길은 저절로 닦일 테니, 어찌하여 길거리가 좁고 산길이 험하다고 걱정하랴.

 

96. (중용)에 이르기를, “배와 수레가 이르는 곳,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이라 하였으니, 이는 아주 먼 곳이라도 수레가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96. 그러므로 중국의 재산이 풍족할 뿐만 아니라, 한곳에 쌓이지 않고 골고루 유통되는 것이 모두 수레를 사용할 때 생기는 이익이다.

 

96. 그래서 영남 어린이들은 새우젓을 모르고, 관동 백성은 산사나무를 절여서 장 대신 쓰며, 서북 사람들은 감과 감자(감귤)의 맛을 분간하지 못한다. 바닷가 사람들은 새우나 정어리를 거름으로 밭에 내건만 서울에서는 한 줌에 한 푼이나 하니, 이렇게 귀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97. 이곳에서 천한 물건이 저곳에서는 귀할뿐더러 그 이름은 들었지만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은 어찌 된 까닭일까. 이는 멀리 보낼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사방이 겨우 몇 천리 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백성의 살림살이가 이다지 가난한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암은 우리나라의 유통을 꿰뚫어 보고 있다. 만약 그가 돈을 벌고자 했다면 허생처럼 나라의 돈은 다 끌어모으고도 남음이리라.

 

97. “그러면 수레가 왜 다니지 못하는 거요?” “이는 사대부들의 잘못입니다.” 주례는 성인이 지으신 글이야 하며 윤인, 여인, 거인, 주인과 같이 수레를 맡았던 벼슬 이름은 외웠지만 수레를 만드는 기술이 어떠하며 움직이는 방법이 어떠한지는 도무지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갓 글만 읽을뿐이었으니, 참된 학문에 무슨 유익이 있으랴.

 

97. 게다가 부국강병을 내세웠던 상앙이나 이사같은 이들 덕분에 제도가 통일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저 현관들의 학술에 비해 몇 백 배나 낫다. 그들의 연구가 정미하고 행하기도 간편한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랴. 이는 참으로 민생의 살람에 이익이 되고, 나라의 큰 그릇이 되지 않겠는가. 이제 날마다 내 눈에 놀랍고 반가운 것이 나타나는데, 수레의 제도로 미루어 모든 일을 짐작할 수 있겠다. 어렴풋하게나마 몇 천년 동안 모든 성인이 고심한 것도 이해할 수 있겠다.

나는 박지원이 과거를 고사하고 음서에 의해 벼슬을 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열하일기의 이런 애국사상이면 과거를 통해 벼슬로 나아가 이러한 제도를 수립하고 나라를 부국강병하게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당쟁이 싫어서 죽음이 싫어서 그랬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98. 이제 내가 보았던 불 끄는 수레의 제도를 대략적이어서, 우리나라에 돌아가 이를 전하고자 한다.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서 사용할수 있게 해주어야지

 

101. 나는 그들에게 여름을 나면서 고치에 벌레가 일지 않는 방법을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해주었다.

약간 볶으면 나방이 나지 않는다. 더운 구들에 말리면 나방도 나지 않고 벌레도 먹지 않으므로, 겨울에도 켤 수 있다.”

 

102. 중국의 모든 일이 간편함을 위주로 하여 하나도 헛됨이 없는데, 이 상여만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본받을 것이 못 된다.

 

관내정사

 

728일 일기

 

107. “돌아가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서 모두 허리를 잡고 한바탕 웃게 하려는 거지요. 아마 이걸 읽으려면 입 안에 든 밥알이 벌처럼 날아가고, 튼튼한 갓끈도 썩은 새끼줄처럼 끊어질 거요.”

지인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연암의 작은 노력. 진짜 인지 아니면 호질을 직접 지었다고 하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이를 차단하기 위한 것인지.

 

호질

 

109. 의원이라고 합니다. 그는 입에 다 온갖 풀을 머금어서 살이 향기롭습니다....이름은 무당이라고 합니다. 그는 온갖 귀신에게 아양 부리느라고 날마다 목욕재계하기 때문에 고기가 깨끗합니다. 이중에서 골라 잡수시지요.

 

109. (의원)은 의(의심스러움)이다. 자기도 의심스러운 처방으로 여러 사람에게 시험해서,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자가 몇 만이나 된다. (무당) (속임)이다. 귀신을 속이고 인민을 미혹시켜,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자가 몇 만이나 된다. 그래서 뭇사람의 노여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금잠으로 화하였으니, 독이 있어서 먹을 수가 없다.

 

110. 일음 일양을 도라고 하는데 그 유가 이를 꿰뚫었습니다. 오행이 서로 낳고 육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데, 그 유가 이를 이끌어줍니다. 그러니 먹는 것 가운데 이것보다 더 맛있는 것은 없습니다.

 

110. 음양이라는 것은 한 기운이 죽고 사는 것인데, 그들이 둘로 나뉘었으니 그 고기가 잡될 것이야. 오행도 제 바탕이 있어서 애당초 서로 낳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 그들을 구태여 자, 모로 가르고 심지어는 짜고 신맛까지 들여서 분해했으니, 그 맛이 순하지 못할 거야...... 그런 고기를 먹다가는 너무 딱딱해서 체하거나 구역질이 나지 않겠느냐?“

 

111. ‘동리과부지려라고 하였다. 동리자는 이렇게 수절 잘하는 과부였지만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저마다 다른 성을 지녔다.

 

113. 범님의 덕이야말로 참으로 지극하십니다. 대인은 변화를 본받고, 제왕은 걸음을 배웁니다.

 

113. ‘(선비)는 유(아첨)이다하던데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 천하의 나쁜 이름을 모두 모아서 망령되게도 내게 덧붙이더니 이제 다급하니까 낯간지럽게 아첨하는구나. 그 말을 누가 곧이듣겠느냐? 대개 천하의 이치가 한가지이니, 범의 성품이 악하다면 사람의 성품도 악할 것이요. 사람의 성품이 선하다면 범의 성품도 선할 것이다.

 

114. 범이나 노루나 사슴을 먹으면 너희가 범을 미워하지 않다가도, 범이 말이나 소를 먹으면 원수라고 떠들어 대더구나. 아마도 노루와 사슴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지 않지만, 말이나 소는 너희에게 공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도 너희는 말이나 소가 태워주고 일해 주는 공로도 다 저버리고, 사랑하고 충성하는 생각까지 다 잊어버리며, 날마다 푸줏간이 미어지록 이들을 죽이고, 심지어는 그 뿔과 갈기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더구나. 게다가 우리의 노루와 사슴까지도 토색질하여 산에서 우리 먹을 것을 없애고 들에서 끼니를 굶게 하였다. 그러니 하늘이 공평하게 처리한다면, 너를 먹어야 하겠느냐? 아니면 놓아주어야 하겠느냐?

 

115. 범이 아직도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까닭은 차마 제 겨레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범이 노루와 사슴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노루와 사슴 먹는 것만큼 많지는 않고, 범이 말이나 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말이나 소 먹는 것 만큼 많지는 않을것이며, 범이 사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림이 저희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만큼 많지는 않을 것이다.

 

115.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는 어찌 저 춘추시대같은 적이 있었겠느냐? 춘추시대에 은덕 세운다는 싸움이 열일곱먼이요, 원수 갚는다는 싸움이 서른 번이었다. 그들의 피가 천 리에 흘렀고, 엎어진 시체가 백 만이나 되었다. ...... 원수와 은혜를 모두 잊고 살므로 다른 생물에게 미움을 받지 않느다.

 

116. 보드라운 털을 빨아서 아교를 녹여 붙여 칼날을 만들되, 끝이 대추 씨처럼 뾰족하고 길이는 한 치도 못 되게 하여, 오징어 거품에 담갔다가 꺼낸다. 종횡무진 멋대로 치고 찌르되 세모창처럼 굽고 작은 칼처럼 날카로우며, 긴 칼처럼 예리하고 가지창처럼 갈라졌으며, 살처럼 곧고 활처럼 팽팽해서 이 병장기가 한번 번뜩이면 모든 귀신이 밤중에 곡할 지경이다. 그러니 너희보다도 가혹하게 서로 잡아먹는 자가 있겠느냐.

 

호질 뒤에 쓴다.

 

118. 청나라가 주인이 된 지 이제 겨우 4대째인대. 그들은 모두 문무를 아울러 갖추었으며, 장수를 누렸다. 태평성대를 노래한 지 100년동안 온 누리가 고요하니, 이는 한나라 당나라 때에 보지 못했던 일이나, 이처럼 편안히 터를 닦고 건설하는 뜻을 볼 때에도 하늘이 배치한 명리 즉 천자가 아닐 수 없겠다.

 

119. 저 오랑캐의 제도로 중국의 것을 뜯어고친다는 것은 천하의 커다란 모욕인 만큼 인민들의 원통함이 어떠하며, 향기로운 제물과 비린내 나는 제물은 각기 그들이 닦은 덕에 따른 것이니 백신은 어떤 냄새를 응감할 것인가.?“ 사람이 보면 중화나 오랑캐의 구별이 뚜렷하겠지만, 하늘이 본다면 은나라의 우관이나 주나라의 면류관도 제각기 때를 따라 변했으니, 어찌 반드시 청나라 사람들의 홍모만을 의심하랴.

 

119. “사람의 숫자가 많으면 하늘도 막아 낼 수 없고, 하늘이 정해 놓은 것은 사람이 어쩔수 없다.“는 설이 그 사이 유행하고, 사람과하늘의 조화되는 이는 도리어 한 걸음 물러서서 기의 명령을 받게 되었다. ... ”이건 천지의 기수가 이렇기 때문이야.“한다. 아아, 슬프다. 이것을 어찌 참으로 기수의 소치라고 이르고 말 것인가.

 

119. 아아, 슬프다. 명나라 왕택이 끊어진 지 벌써 오래되어서 중원의 선비들이 머리 모양을 고친지도 100년이나 되는 요원한 세월이 흘렀지만, 자나 깨나 가슴을 치며 명나라 왕실을 생각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중국을 차마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120. 그들은 전대 오랑캐 출신의 마지막 임금들이 항상 중화의 풍속과 제도를 본받다가 쇠망했음을 징계하여, 철비를 새겨서 파수대에 묻었다..... 언제나 자기의 옷과 벙거지를 부끄러워하건만, 오히려 강약의 형세에만 다시 마음을 두니 어찌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는가.

 

120. 잠깐 너희는 수치를 참고 우리를 따라 강하게 되라.

 

120. 어리석은 인민들이 한 번 일어나서 그들이 씌워 주었던 벙거지를 벗어 땅에 팽개쳐진다면, 청나라 황제는 자리에 앉은 채로 천하를 잃어버릴 것이다. 예전에 이를 믿고서 스스로 강하다고 뽐내던 것이 도리어 망하는 실마리가 되지 않겠는가.

 

혹정 필담

 

들어가기

 

125. 이야기 자리가 벌어질 때마다 늘 해가 짧은 게 걱정이니, 내일은 일찍 가겠소.

말도 통하지 않고 필담으로 하는데 뭐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 더군다나 남자끼리.

 

125. 밥을 먹으며 필담을 나누는 사이에 종이 수십 장을 썼다. 그러고 보니 인시에서 유시까지 무려 8시간이나 필담한 셈이다.

8시간이 아니라 16시간이라 하니

 

달에서 이 지구를 바라보면

 

128. 만일 지구에서 빛이 있다고 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지구는 햇빛을 받아서 빛이 생기는 겁니까, 아니면 그 자체에서 저절로 빛이 생기는 것입니까.

이 시대에 이것을 궁금해 했다는 발상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128. 마치 무엇이 탯덩이처럼 가슴속에 뭉쳐 있고 오래도록 소화되지 않아 겨울이나 여름이 되면 더욱 괴로워집니다. 선생도 이런 증세가 나타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129. “빨리 월왕을 불러오시오하고는 무심코 웃었다. “무슨 말씀이오?” 학지정이 나더러 물었다.

월왕의 생김새가 목이 썩 길고 입부리가 까마귀처럼 길었답니다.” 내가 대답하였더니, 지정이 웃느라 혹정의 손목을 잡고 입안에 들었던 밥을 내뿜으며 재채기를 수없이 하였다. 지정이 이내 물었다.

재치있는 연암의 대화

 

130. 그런데도 중국에 들어와선 숟가락을 구경하지 못했으니.

숟가락이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이구나. 당연히 중국이나 이쪽에서 전래되어 온 것으로 알았는데

 

지전설

 

137. 저는 하늘이 만든 것 중 모난 물건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기다리, 누에 궁둥이, 빗방울, 눈물, 침 같은 것가지 둥글지 않은게 없지요...... 지구가 둥근 것은 의심할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만일 태공으로 하여금 이 땅덩어리를 편안히 한곳에 정착시켜 놓고 움직이지도 못하며 구르지도 못한 채 공중에 매달려 있게만 한다면, 이는 썩은 물이나 죽은 흙과 마찬가지입니다. 잠깐 사이에 지구가 썩어 버릴 것입니다. 어찌 저토록 오랫동안 한 곳에 멈춰 허다한 물건을 지고 싣고 있으며, 황하나 한수처럼 큰 물을 담고서도 물샐 틈이 없겠습니까.

이런 놀라운 생각을 그 당시에 했다는 것에 연암의 박식함이 놀랍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138. 그런데 서양 사람들이 벌써 땅덩어리를 구로 인정하면서도 지구가 구르는데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으니, 땅덩어리가 둥근 줄 알면서 둥근 것이 반드시 구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땅덩어리가 한번 구르면 하루가 되고, 달이 한번 땅 덩어리를 돌면 한 달이 되며, 해가 한번 땅덩어리를 돌면 한 해가 되고...... 게다가 저 고양이 눈동자를 보고서도 지전을 증험할수 있겠습니다. 고양이의 눈동자가 열두 시간마다 변하니, 한번 변하는 순간에 땅덩어리는 벌써 7,000여 리나 달리는 것입니다.

 

야소교

 

141. 야소는 성심껏 하느님을 공경하여 팔방에 교리를 세웠으나 30세에 처형당했으므로, 그 나라 사람디 몹시 사랑하여 야소회를 설립하고, 그의 신을 높여서 천주라고 했답니다. .... 천주는 어릴때부터 네가지를 서약했는데 첫째 색념을 끊을 것, 둘째 벼슬 생각을 버릴 것, 셋째 사방을 돌아다니며 선교하되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지 말 것, 넷째 헛된 이름을 꿈꾸지 말 것이었지요.

 

143. 불교는 참 교묘하기 짝이 없지 않습니까. 다만 불교에는 비유가 많아서 어디에도 돌아갈 곳이 없다가, 겨우 깨달아 봤자 결국은 환이라는 글자 한 자만 남는게 결점이지요.

 

제왕과 신하

 

144. 일이란 당했을 때와 말했을 때가 서로 같지 않은 법이고, 바둑은 옆에서 구경하는 것이 직접 두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145.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바둑을 두는 것과 같아서 임금은 바둑을 두는 당국자요, 신하들은 옆에 앉은 구경꾼입니다. ‘옆에서 구경하는 것이 당국자보다 낫다.“는 선생의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둑을 두는 자가 잘 판단하지 못할 때에 어찌 구경꾼의 훈수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지전설을 받아들인 혹정

 

149. 나는 본래 학식이 없으니, 이번에 중국에 들어가서 만일 큰 선비를 만난다면 무엇을 질문하여 그를 애먹여 볼까. 생각하다가, 마침 옛날에 들은 지식 중에서 지전설이라든가 월세계이야기를 찾아내었다. 말고삐를 잡고 안장 위에 앉은 채 졸면서도 수십만 마디의 말을 준비해 보았다. 가슴속에 글자 아닌 글을 쓰고 하늘에 소리 없는 글을 읽어가면서, 하루에 몇권의 책을 꾸몄다.

일부러 준비한 것이었구나. 어쨌든 짧은 시간에 그것을 정리하여 써먹었다니 대단할 뿐이다.

 

환희기

 

들어가기

 

154. 중국 땅이 커서 넉넉하고 끝이 없어 이런 것도 길러 내므로, 정치에 병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만일 천자가 소심하게 이런 것을 자로 재고 깊이 추궁한다면, 도리어 깊숙한 곳에 숨어살다가 때때로 나와서 세상을 흐려 놓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천하의 근심이 더 커질 겁니다. 날마다 사람들이 장난삼아 구경하게 하면, 아낙네나 어린이까지도 이것을 요술로 알게 되어 마음과 눈이 놀라지 않을 테니 이게 바로 임금 된 자가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이 아니겠소

 

스무가지 요술 이야기

 

166. 본래 세상의 몽환이 이와 같고, 거울 속의 염량 변천도 현저히 다르다. 인간 세상의 가지가지 일이 아침에 무성하다가 저녁에 시들고, 어제 부자가 오늘은 가난하다. 잠깐 젊었다가 갑자기 늙는 것이 꿈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슬쩍 죽었다가 바야흐로 산다.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으며,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모를 일이다.

 

산장잡기

 

밤에 고북구를 나서면서

 

170. 곧 붓과 벼루를 꺼내고 술을 부어 먹을 간 뒤에, 성벽을 어루만지면서 글을 썼다. “건륭 45년인 경자년(1780) 87일 밤 삼경에 조선 박지원이 이곳을 지나다.” 그런 뒤에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서생으로 머리가 희어져서야 장성 밖을 한번 나가 보는구나.”

벽에 낙서하는 어린애 같은 행동이나. 얼마나 좋으면 이런 행동을 할까. 따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밤에 고북구를 나서면서에 붙여쓰다

 

172. 우리나라 선비는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조국 강토를 떠나지 못했지만, 근세에 오직 노가재 김창업과 내 친구 담헌 홍대용만이 중원의 한 모퉁이를 밟았다...... 지금 내가 이번 열하 여행을 더욱 다행스럽게 생각한 것은 장성을 나와서 사막 북쪽까지 이르렀던 선배가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한다. 근데 자랑할만 한다. 장성을 넘어서 열하까지.

172. 나는 어려서부터 배짱이 없고 겁이 많아서, 어쩌다 낮에 빈 방에 들어가거나 밤에 조그만 등불을 보더라도 머리털이 움직이고 핏줄이 뛰었다. 올해 내 나이 마흔넷이 되었건만, 무서움을 타는 성질은 어릴 때나 마찬가지다. 한밤중에 홀로 만리장성 밑에 서 보니, 달은 떨어지고 강물은 울며 흘렀다. 바람은 처량하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녀서, 부딪치는 모든 경치가 놀랍고 두려우며 기이하고 이상했다.

나랑 비슷한대. 겁이 너무 많다.

 

173. 부견이 팔공산에서 풀까지도 군사로 보고, 이광은 북평의 바위를 범으로 보고 활을 쏘았지만, 그런 것도 나를 놀라게 하지 못하니 다행이었다. 다만 붓이 가늘고 먹이 말라서 글자를 서까래만큼 크게 쓰지 못하고, 또 만리장성의 옛일을 시로 쓰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본국으로 돌아가는 날, 동네사람들이 다투어 술 한병으로 위로하며 열하의 여정을 물을 테니, 이 기록을 내보여서 머리를 모아 한번 읽고 책상을 치면서 기이하다고 떠들어 보리라.

얼마나 쓰고 싶었으면 저렇게 한스러웠을까. 연암 선생님 그 한을 저에게 투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룻밤에 한 강물을 아홉 번이나 건너면서

 

176. 낮에는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은 위험함을 보는 데만 쏠린다. 벌벌 떨면서 도리어 눈 가진 것을 걱정해야 할 판에 무엇이 들리겠는가. 지금은 밤중에 강물을 건너기 때문에, 눈으로 위험한 상황을 보지 못한다. 위험한 생각이 오로지 귀로만 쏠려, 귀가 벌벌 떨면서 두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176.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자는 귀나 눈에 얽매이지 않고, 귀나 눈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할수록 더욱 병이 되는 법이다.

강을 건너다가 도를 깨친 연암. 무릇 도는 닦고자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돈오처럼 한순간이다.

 

176. 말에서 한 번 떨어지면 강물 속이다. 그렇게 되면 강물로 땅을 삼고, 강물로 옷을 삼으며, 강물로 몸을 삼고 강물로 성정을 삼으리라. 이처럼 한번 떨어질 것을 마음속으로 각오했더니,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홉 번이나 강물을 건너는 동안 조금도 걱정이 없었다. 마치 자리 위에 앉거나 누우며 활동하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을 안다. 바다에서 전투수영을 할 때 수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가르쳐줘도 공포심과 발이 닿지 않는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수영이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할 때 물과 내가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서 수영이 되었다.

 

176. 소리와 빛은 사람의 바깥에 있는 사물이다. 그런데 사람의 바깥에 있는 사물이 항상 이목에 누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제대로 보거나 듣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인생을 살아 나가려면 강물보다 더 험하고 위태로운 곳이 있지 않던가? 보고 듣는 것들이 자주 병통이 되지 않던가? 나는 조선으로 돌아가는 즉시 내가 살던 산속으로 가서 다시 그 시냇물 소리를 들어 보면서 시험하겠다. 그래서 교묘하게 처신하며 스스로 그 총명함을 믿는 자들에게 경고하리라.

 

코끼리

 

178. 코끼리 두 마리를 열하의 행궁 서쪽에서 다시 보았는데, 온몸을 꿈틀대며 걸어 다니는 폼이 마치 비바람이라도 치는 듯했다.

 

179. 코끼리의 눈은 아주 가늘어서 마치 간사한 사람이 아양 부릴 때에 웃음 치는 것과도 같지만, 코끼리의 어진 성품은 바로 눈에 있다.

겉모습으로 모든 걸 판단하면 안되는 법

 

180. 국숫집에서 밀을 갈면 가는 가루와 굵은 가루, 고운 가루와 거친 가루가 뒤섞여 바닥에 흩어진다. 대개 맷돌의 기능은 돌아가는 것뿐이다. 처음부터 가루가 곱게 되거나 거칠게 되는 것까지야 생각했으랴?

 

181. 그들의 머리로 생각하는 범위가 소나 말, 닭이나 개 정도에서 머물고, 용이나 봉, 거북이나 기린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코끼리를 눈으로 보면서도 이처럼 이치를 알 수가 없다. 하물며 코끼리보다 만 배나 더 큰 천하의 사물에 대해서는 어떠하랴. 성인이 <주역>을 지을 때에 코끼리 상자를 따서 지은 까닭도 코끼리 같은 형상으로 만물이 변하는 이치를 궁구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던가.

 

구외이문

 

조선진주

 

186. 우리가 그대 나라의 진주를 보배롭게 여기는 까닭은 조개 기운이 없어 천연적으로 보배로운 빛깔이 나기 때문이지요.

화려한 색깔이 아니라 은은하면서 깊이 있는 그런 색깔을 얘기하는거겠지.

 

조조의 물속 무덤

 

187. 천고 신인의 분통을 씻어 준 통쾌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조조가 자신의 무덤이 도굴당할까봐 거짓 무덤을 70개나 만든 사실을 통쾌하게 깨쳐 준 일이기도 하다.

죽어서까지 이런 해괴한 짓을 해야하다니 조조도 얼마나 불안했으면 이렇게 했을까. 죽은 시신을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할까만은

 

양귀비의 사당

 

188. 이같이 음란한 사당을 헐어버리지 않은 까닭은 뒷사람들을 경계하려는 뜻이 아니겠는가

 

고린내와 뚱이

 

190. 냄새가 몹시 나쁜 것을 고린내高麗臭(고려취)라고 한다. 고려 사람들이 목욕을 하지 않으므로 발에서 나는 땀냄가 몹시 나쁘기 때문이다. 물건을 잃어버리고는 뚱이東夷라고 한다. 동이가 훔쳐갔다는 말이다. ()의 음은 이(), 동의 토우떵頭登(두등)의 절음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나쁜 냄새가 나면 아이고, 고린내.”하고,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쳤다고 생각되면 아무개가 뚱이야.”한다. 그래서 뚱이가 바로 물건을 훔친 자의 별명처럼 되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랴.

고린내는 아직까지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유래가 있었다니. 뚱이는 이제 사용하지 않나보다. 처음 들어본 말이다.

 

젊다고 늙은이를 업신여기다니

 

191. 사람이 젊을 때에는 앞길이 매우 멀어서, 마치 자기에게는 늙을 날이 없을 것처럼 생각한다.

 

192. 이렇듯 늙은이라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린아이라고 업신여기지 않았다. 중국의 예의가 빛난다는 말은 예전에도 들었지만, 변방의 풍속까지도 이처럼 순박하니 더욱 볼만한 일이다.

 

옥갑야화

 

허생

 

203. 당신이 밤낮으로 글을 읽었다더니 겨우 어찌할 수 있겠소?’라는 말만 배웠구려. 글쟁이 노릇도 못하고 장사치 노릇도 못한다면, 도둑질은 왜 못하시나요?

 

203. 아아! 안타깝구나. 내가 처음 글을 읽기 시작할 때에 10년을 채우려고 했었는데 이제 겨우 7년 읽었구나.

캠벨의 5년보다 더한 사람이 있었네. 무릇 독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임에는 틀림이 없다.

 

204. 대개 남에게 부탁할 것이 있는 자는 자기 계획을 과장하여 먼저 신의를 나타내는 법이야. 그러면서도 얼굴빛은 부끄럽고도 비겁하며, 말은 중복되곤 하지. 그런데 이 손님은 비록 옷과 신이 다 떨어졌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매가 오만해.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는 물질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리기 전에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이야. 그가 시험해 보겠다는 것도 작은 일이 아니겠지만, 나도 그에게 시험해 볼 일이 있는 거지. 주지않는다면 모르거니와, 이미 만냥을 주었으면 이름을 물어서 무엇하겠냐?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거짓으로는 보일 수 없다. 내면이 채워져야 보이는 법이다.

 

205. 겨우 만 냥을 가지고 온 나라의 경제를 기울였으니, 이 나라 경제의 깊이를 알 수 있구나

 

209. 재물 때문에 얼굴빛이 윤택해지는 것은 그대들이나 하는 일이지. 만 냥이 어찌 도를 살찌게 하겠는가? 내가 한때의 굶주림을 참지 못해 글 읽기를 마치지 못했으니, 그대에게 빌린 만 냥이 부끄러울 뿐일세

 

211. 요즘 사대부들이 지난번 남한산성의 치욕을 씻으려고 하니, 지금이야말로 슬기로운 선비들이 팔뚝을 걷어붙이고 지혜를 펼칠 때이지요. 그런데 그대 같은 재주를 지니고도 어찌 괴롭게 어둠 속에 잠긴 채로 이 세상을 마치려고 하시오

 

214. 나라안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서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 지식층은 가서 빈공과에 응시하고 서민들을 멀리 강남에 장사치로 스며들게 하시오. 그들의 허실을 엿보고 그 나라 호걸과 교제를 맺어야 천하의 일을 도모할 수 있고 나라의 부끄러움을 씻을 수가 있소.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214. 소위 사대부란 게 도대체 어떤 놈들이오. , 맥의 땅에서 태어나서 제멋대로 사대부라고 뽐내니, 어찌 앙큼하지 않겠소? 바지저고리를 온통 하얗게만 입으니 이는 참으로 상복이고, 머리털을 한데 묶어서 송곳처럼 만드니 이것도 남쪽 오랑캐의 방망이 상투에 불과하오. 어찌 예법이라고 뽐낼 게 있겠소? 옛날 번오기는 자기 원수를 갚기 위해서 머리를 자르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았고, 무령왕은 자기 나라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오랑캐 옷을 입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명나라의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면서, 그까짓 상투 하나를 아낀단 말인가? 앞으로 말 달리기, 칼 치기, 창 찌르기, 활 당기기, 돌팔매질 등을 익혀야 하는데도 그 넓은 소매를 고치지 않고 제 딴에는 이게 예법이라고 한단 말인가? 내가 평생 처음으로 세가지 계책을 가르쳤지만 당신은 그 중 어느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자칭 신임받는 신하라고 하니, 소위 신임받는 신하가 겨우 이렇단 말인가? 이런 놈은 베어버려야 겠다.“

정조가 문체반정을 한 이유를 알겠다. 이 글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으리라. 그가 속한 노론이 아니라 소론이었다면 연암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황도기략

 

천주당

 

227. 음악 소리가 뚝 그치고는 여섯 짝 문이 저절로 닫혔다. 이 풍금은 서양 사신 서일승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229. 그러나 뜻을 세우는 것이 너무 고답적이고 이론이 교묘한 데만 쏠려서, 도리어 하늘을 빙자하여 사람을 속이는 죄를 범하였다. 제 자신이 저절로 의리를 배반하고 윤리를 해치는 구렁으로 빠지고 있음을 모르는 것이다.

 

서양화

 

231. 그림을 그리는 자가 겉만 그릴 뿐 속은 그릴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천주당 가운데에 있는 바람벽과 천장이 그려져 있는 구름과 인물들은 보통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었고, 보통 언어나 문자로는 형용할 수도 없었다. 내눈으로 이것을 보려고 하자, 번개처럼 번쩍이면서 내 눈을 뽑는 것 같은 무엇이 있었다. 나는 그림 속에 있는 그 인물들이 내 가슴속을 꿰뚫고 들여다 보는 것이 싫었다. 내 귀로 무엇을 들으려고 하자, 굽어보고 쳐다보고 돌아보는 그들이 먼저 내 귀에 무엇인가 속삭였다. 나는 그들이 내가 숨긴 것을 꿰뚫고 맞힐가봐 부끄러웠다.

기독교를 그린 그림은 웬지 모를 이런 힘이 있다. 나도 마주보기가 어렵다.

 

알성퇴술

 

학사

 

241. 그러나 여기서도 오히려 본받을 일이 없지는 않다. 이곳의 서재와 학사들이 텅텅 비어 있다면 응당 먼지에 파묻히고 잡풀이 돋아났을 터인데, 어디든지 씻고 닦아 맑게 정돈했으며 탁자들이 가지런했다. 창호도 비록 종이를 바른 지는 오래되었지만 밝았으며, 찢어지거나 떨어진 곳이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비록 한 가지 조그만 일이지만, 중국 법도를 짐작할 수가 있겠다.

   

3. 내가 저자라면

 

보완이 필요한점

벽돌, 기와, 수레 등에 대한 중국 문물을 쉽게 잘 설명해주었으나 연암은 그림에도 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부분을 보다 상세하게 그림으로 보여줬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열하일기의 순방 코스를 과거 이름으로 지도에 나열했다. 오늘날의 도시이름으로 같이 곁들인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열하는 오늘날의 하북성 북부와 내몽고 동부, 요령성 서부에 해당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 책의 장점

우선 조선시대에 선비가 중국 여행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오늘날에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만큼 흥미롭게 기술해주었다. 사대주의와 당파싸움으로 얼룩진 시대에 이렇게 올바르고 백성들을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 시대에 지전설이라니. 더욱 놀랍다.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역자 줄임이 너무 많아 원문을 많이 줄인 느낌이 든다. 김원중의 <논어><사기>처럼 철저하게 원문을 위주로 해석을 하되 저자가 얘기한 것처럼 오늘날의 시대상을 반영할수 있도록 했으면 좋을 것 같다. 벽돌, 구들, 기와, 수레 등에 대한 서술을 서술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부록이나 해당 페이지에 그림으로 삽입하였다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돈이 많이 들겠지만 똑같은 코스를 다니면서 배경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오늘날의 박지원이 되어 원본과 내가 다시쓰는 열하일기를 수록하면 괜찮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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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4:35:58 *.129.240.30

저자연구를 한참을 읽었네 이렇게 잘 분석하다니 놀라울 따름. 그리고 구들장? 우리 온돌방 그림은 어디서 구한거야? ㅎ 아 열하일기에 나온 내용이 한번에 이해가 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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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14:38:08 *.18.187.152

기상씨 북리뷰는 나중에 후배들 생기면 '북리뷰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의 예로 아주 좋겠어요.

이건 뭐 열하일기 주석가네. 고래(?) 그림까지 넣어주고, 건축용어 풀이해주고.

고미숙과 정민이 본 박지원 소개도 잘 읽었어요.

난중일기 북리뷰 진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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