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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7일 18시 48분 등록

고전 번역가 김원중 - 사성(史聖)의 대작을 한글로 복원하다

 

중국 3천 여 년의 역사를 다룬 <사기>는 쓴 사람도 대단하지만, 읽는 사람도 대단하다고 할 만큼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따라서 이를 번역하여 소개한 사람의 노고야말로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사기를 완역한 김원중(金元中) 교수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그러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충남 보은에서 태어난 김원중 교수는 어린 시절 조부로부터 한자를 배웠다고 한다. 어려서부터<논어>를 즐겨 읽었다고 하니 한자 공부는 그에게 부담이 아닌 즐거움이었던 모양이다. 재능과 관심은 그대로 이어져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그는 32세 무렵인 1995년 ‘사기’ 번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99년 ‘사기 열전’을 시작으로 2005년 ‘사기 본기’, 2010년 ‘사기 세가’ 등에 이어 201148세에 ‘사기 서’와 ‘사기 표’를 동시에 출간했다고 하니 무려 16년을 사기에 매달린 셈이다.  

 

김원중 교수는 사기만 번역한 것이 아니라 논어, 삼국유사 등 100여 종의 고전을 번역해왔다. 이러한 번역을 위한 그의 일상은 어땠을까. 그는 16년 동안 매일 밤 10시에 잠들고 새벽 2~3시에 일어나 번역을 하고 주말과 방학, 명절 때에도 오후에는 연구실로 출근했다고 한다. 또한 번역 과정에서 중국 백화문으로 쓰여진 책은 참고하지 않아 스스로 쉬운 길을 포기했다. 백화문은 구어체로 쉽게 쓰여진 글이라 참고할 경우 작업은 용이할지 몰라도 고전원문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그 내용이 동 떨어질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이러한 그의 우직한 노력 덕에 우리는 원전과 밀착된 제대로 된 고전 번역서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는 학창시절 유명한 문학평론가들의 글을 수백 편씩 읽어가면서 되도록 쉽고 뜻이 잘 전달되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고전을 번역하되 문학적 표현구사에 있어서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까닭은 이러한 독서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춘신군 열전

 

437 진나라는 끊임없이 인재를 모으면서 능력 있는 자에게는 벼슬을 주고 어질지 못한 자는 내침으로써 서쪽 변방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 나라는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듯이 사람은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의 태생적 한계는 무엇이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정리해 볼 것.

  • 어질지 못한 자는 내친다는 말이 마음에 새겨진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전국시기, ‘어질지 못한 자를 내친다는 것이 뜬금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상 진나라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 은 유능한 인재들을 계속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편의 주인공인 춘신군 황헐은 사공자 중 한 사람으로 변설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말을 잘하는 재능. 조선의 경우는 글을 잘 쓰는 것이었나. 사기열전을 읽어보니, 유세하는 자, 변설에 능한 자에 대한 언급이 많다.

 

438 춘신군은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헐이고 성은 황이다.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배워서 보고 들은 것이 넓었으며 초나라 경양왕을 섬겼다. 경양왕은 그가 변론에 뛰어남을 알고 진나라에 사자로 보냈다.

 

진나라 소왕은 백기에게 한나라와 위나라를 치도록 하여 그들을 화양에서 깨뜨리고 위나라 장군 망묘를 사로잡으니 한나라와 위나라는 항복하고 진나라를 섬겼다.

위나라 장군 망묘를 사로잡으니, 망묘가 달아나니 등의 글귀를 내가 몇 번 읽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다 안타깝다.

 

441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뒤에 올 재난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442 날뛰는 교활한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면 잡힌다. 다른 사람이 무언가 마음에 두고 있으면 내 마음으로 그걸 헤아릴 수 있다.

 

442 대체로 한나라와 위나라의 아버지와 아들과 형과 동생이 진나라와의 잇달은 싸움에서 죽은 지가 거의 10대에 이르렀습니다.

 

442 아버지와 아들, 늙은이와 어린이가 목과 손이 묶인 채 진나라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길 위에 널부러져 있습니다. 귀신은 홀로 슬퍼하고 제사를 지내 줄 핏줄조차 없습니다. 백성은 삶을 꾸릴 수 없고 일가친적들은 뿔뿔이 흩어져 떠돌다가 노예나 첩이 된 자가 천하에 가득합니다.

그 당시의 사회상을 상상하자니 끔찍하다.

 

447 춘신군이 재상이 되어 초나라에 있을 때 제나라에는 맹상군이 있고, 조나라에는 평원군이 있으며,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있었다. (이들은) 선비들을 겸허하게 맞이하고 빈객을 불러 모으는 일에 서로 힘껏 다투었다. (이들은 선비들의 힘을 빌려) 나라를 돕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이들을 전국 4공자라 한다는데 춘신군이 제일 안된 거 같다. 대체로 초나라 사람들이 안됐다. 굴원도 그렇고.

 

452 세상에는 생각지도 않던 복이 찾아올 수도 있고, 생각지도 않은 재앙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생각지도 못한 행복과 재앙이 찾아오는 세상에 살고 있고, 기대를 걸 수 없는 군주를 섬기고 계십니다. 어찌 재앙을 막아 낼 수 있는 뜻밖의 인사를 구해 두지 않으십니까?

말 진짜 잘하네. 생각지도 못한 행복과 재앙이 찾아오는 세상에서 뜻밖의 인사라.

 

453 곧이어 관리를 보내 춘신군의 집안사람을 모조리 죽였다.

 

454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초나라에 가서 춘신군의 옛 성과 궁실을 보니 웅장하구나! 처음에 춘신군이 진나라 소왕을 설득하고 몸을 던져 초나라 태자를 돌아오게 한 것은 얼마나 밝은 지혜였던가! (그런데) 마지막에 이원에게 당한 일은 늙어서 사리 판단에 어두워진 탓이리라. 세인의 말에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혼란을 겪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한 말일까?”

當斷不斷 喪命滅族(당단부단 상명멸족).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목숨 잃고 멸족한다.

 

리아가 본 춘신군: 세상을 두루 경험하고 말도 잘하고 자기 몸을 던져 초나라 태자도 데려왔거늘. 이런 사람들의 인생에 이원처럼 등장하는 인간관계의 암세포는 어찌 해야 하나. 죽이라고 했는데 죽이지 않아서 멸족까지 당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암세포인지 어찌 알았겠냐고. 그저 안타까울 뿐이고 그래서 전국 4공자 중 춘신군을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라 하는 모양이다.

 

범저, 채택 열전

 

범저는 위나라 사람이고 채택은 연나라 사람이다. 이들은 고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다가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되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다.

꼭 한국의 인재들 말하는 것 같네. 한국에서는 인정 받지 못하고 외국에서 인정 받으면 그제서야 다시 한국에서 인정 받게 되는.

 

사실 진나라가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사람을 비롯한 인재들 덕분이다. 사마천은 범저와 채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뜻을 잃지 않았고 공을 이룬 뒤에는 물러나 어진 사람을 따랐기 때문에 특별히 이들에 관한 열전을 만든 것이다.

진나라와 인재의 관계에 대해 계속 언급하네. 개인적으로도 주변에 잘나고 어진 사람 많은 게 좋은 거 같다. 1단계에서는 어려운 가운데 뜻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2단계에서는 정점에서 내려와 어진 사람을 따랐다는 것에 밑줄 긋게 된다. 물러나고 어진 사람을 따른다는 말을 새기자.

 

458 위나라에는 나와 함께 서쪽 진나라로 유세하러 갈 만한 어진 사람이 있소?

어진 사람의 정의는 무얼까? 사전적 정의 외에 함축된 다른 뜻이 있을까? 피투성이 전국시대에 마냥 순수하게 어진 사람을 찾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459 당신은 제후의 식객 따위는 데려오지 않았을 테지요. (그런 자들은) 쓸모도 없으며 남의 나라를 어지럽힐 뿐이오.

전국시대를 영화로 만든다면 장면이 바뀔 때마다 국경을 넘는 무수한 수레바퀴 자국이 나올 거 같다. 유세하는 자들의 이동. 대개는 남의 나라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많았을 듯.

 

460 위나라에 장록 선생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천하의 유세가입니다. 그가 진나라 왕의 나라는 달걀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지만 내 의견을 들으면 무사할 수 있는데 내 의견을 글로 전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기에 신이 일부러 그를 수레에 태워 데리고 왔습니다.

 

범저가 진나라 왕의 분부만을 기다린 지 1년 남짓 세월이 지나갔다. / 진나라는 삼진에게 여러 차례 시달린 일이 있어서 천하의 유세가들을 싫어하고 믿지 않았다.

 

461 그러므로 능력이 없는 자는 감히 관직을 감당하지 못하고, 능력이 있는 자 또한 (스스로) 재능을 감출 수 없다/ 그러면 왕의 다스림에 이로움이 더해질 것입니다.

 

464 은나라 말부터 주나라 초기 사람으로 본래 성은 강인데, 그 선친이 여에 봉해졌기 때문에 여를 성으로 삼았다. 강상이라고도 하며 호는 태공망이다. 주나라 문왕이 위수 가에서 곧은 낚시로 고기를 낚고 있는 그를 만나 스승으로 삼았으며, 뒤에 태공망은 무왕을 도와 은나라 주왕을 쳐서 멸망시켜 주나라를 세우고 그 공으로 제나라의 제후가 되었다. 그는 낚시를 매우 즐겼으므로 오늘날 낚시를 즐기는 사람을 흔히 강태공이라 한다. <제 태공 세가>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나라 문왕과 강태공의 첫만남은 언제 들어도 낭만적.

 

465 오자서는 (초나라를 탈출할 때) 자루 속에 숨어 소관을 빠져나와 밤에 길을 가고 낮에는 숨어 지내며 능수에 이르렀습니다. 그 입에 풀칠도 못하게 되자 무릎으로 기어다니고 머리를 조아리고 옷을 벗은 채 배를 두드리며 피리를 불면서 오나라 시장에서 구걸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마침내 오나라를 일으켜 합려를 천하의 우두머리로 만들었습니다.

시장 바닥에서 구걸했을 때에도 마음은 바닥에 있지 않고 미래의 참요를 노래 부르고 있었을 것.

 

466 ( 4)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에 기자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공자는 일찍이 은나라에 어진 이가 셋 있다고 했는데 이는 기자, 미자, 비간을 가리킨다. 비간도 주왕의 바르지 못한 행실을 간언했다가,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구멍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주왕에 의해 살해되어 심장이 꺼내졌다.

은나라 주왕이 어지간히 인간 말종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인간을 치러 가는 무왕에게 효니 인이니 등을 들먹이며  말렸던 백이와 숙제를 나는 이해 못하겠다.

 

467 이곳은 왕업을 이룰 만한 땅입니다./ 이들은 왕업을 이룰 만한 백성입니다.

왕업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이 되고 그 안에 사는 인물들도 왕업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이라니. 개인도 이런 시공간과 주변인이 갖춰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이야기처럼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겠다.

 

468 그것이 땅을 얻기 싫어서였겠습니까? 형세가 땅을 차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469 그러므로 제나라가 싸움에서 크게 진 까닭은 초나라를 쳐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살찌운 데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식량을 주는 꼴입니다. 왕께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 교류하고 가까운 나라를 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한 치의 땅을 얻어도 왕의 것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얻더라도 왕의 것이 됩니다. 지금 이런 계책을 버리고 멀리 있는 나라를 친다는 것은 역시 잘못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472 최저와 요치는 제나라 국정을 맡았는데 (최저는 장공의) 넓적다리를 쏘았고, (요치는 민왕의) 힘줄을 뽑아 종묘의 대들보에 매달아 오래지 않아 죽게 했습니다. 이태는 조나라 국정을 맡았는데 주부를 사구에 가두어 100일만에 굶어 죽게 했습니다.

너무 잔인해서 진짜인가 싶다.

 

473 정권을 맡은 신하가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를 시기하여 아랫사람을 누르고 윗사람을 가리며 사사로운 욕심만 채워 군주를 위한 계책을 꾀하지 않건만 군주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므로 나라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만대 뒤에 진나라를 다스릴 사람이 왕의 자손이 아닐 것 같다는 점입니다.

 

477 그러나 오늘 그대가 죽음을 당하지 않는 이유는 두꺼운 명주 솜옷을 주면서 옛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대를 풀어 주겠다.  

 

479 옛날에 주나라 문왕은 여상을 얻어 태공이라고 하였고, 제나라 환공은 관이오를 얻어 중부로 삼았소.

 

480 그는 남의 곤궁함을 긴급하게 여겨 공자를 의지하러 온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어떤 인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사람이란 본래 알기가 힘들지니 남을 아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481 (그러나) 위제는 신릉군이 처음에 만나기를 주저했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스스로 목을 잘라 죽었다. 조나라 왕은 이 소식을 듣고 그 머리를 얻어 마침내 진나라에 주었다. 그러자 진나라 소왕도 평원군을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할 말이 없다. 걸핏하면 죽이고 쓸데없이 죽는다. 목숨이 여러 개라 생각한 걸까. 이 시대의 종교관은 어떤 거였을까.  

 

481 진나라 법에 따르면 사람을 추천한 경우 추천받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추천한 사람도 그와 같은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중매 잘못 서면 뺨이 석대라는데 이건 강도가 더 세다. 무서워 추천하겠나.

 

483 성인의 관상은 보아도 모른다고 들었는데 선생 같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합니다.

 

484 대체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은 차례로 할 일을 다하면 물러갑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신체가 건강하고 팔다리가 성하고 눈과 귀가 밝고 마음이 지혜로운 것이 선비의 바람 아니겠습니까?

나아가려 하지 말고 물러날 것.

 

484 인을 바탕으로 하여 의를 지키며 도를 시행하여 덕을 베푼다면 천하에 자기 뜻을 이루는 것이고, 천하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흠모하여 군주로 받들고자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변설이 뛰어나고 지혜로운 선비가 기대하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485 천수를 다 누리고 요절하지 않으며, 천하 사람들이 그 전통을 물려받아 그의 사업을 지켜 영원토록 전해지게 하고, 이름과 실제 모습이 참되어 그 은택이 1000리까지 미치며, 대대로 이를 칭송해서 끊이지 않게 하여 천지와 함께 시작과 끝을 같이 한다면 이야말로 도덕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성인이 말하듯 상서롭고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487 이처럼 모두 충신이고 효자이지만 나라가 망하고 집이 어지러워진 까닭은 무엇입니까? 명민한 군주와 현명한 아버지가 없어서 충신과 효자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90 지금 당신은 원한을 이미 다 갚았고 은혜도 이미 갚았습니다. 마음속으로 하고 싶던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세상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그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와 진짜 말 잘하네. 나는 세상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나.

 

490 그런데도 (잡혀) 죽는 까닭은 미끼에 현혹되기 때문입니다./ 성인은 예의를 만들어 욕심을 절제하고,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데도 한도를 두었고, 백성을 부리는 데도 (농사철이 아닌) 때를 골라 일을 시키는 등 제한을 두었습니다.

미끼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는 제한이 시련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날 수 있다. 좋아 보이는 것이 미끼일 수 있고 나빠 보이는 것이 미끼에서 건져주는 감사한 브레이크 일수도 있다.

 

491 이는 모두 지극한 성함에 이르렀을 때 (본연의) 도리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지 않으며 절제할 줄 모른 데서 생긴 재앙입니다.

이번 사기열전 읽으면서 내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겸양의 괘. 지극한 성함에 이르렀다면 겸손하고 절제하자.

 

491 또 백성에게 농사일을 권장하여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고 한 집에서 두 가지 생업을 못하게 하며, 농업에 힘써서 식량을 비축하도록 하고 군사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공적은 이루어졌으나 마침내 (상군은) 거열형을 받았습니다.

 

492 백기는 몸소 70여 성을 항복시켰습니다. 그러나 공적이 이루어지자 마침내 검을 받아 두우에서 죽었습니다.

 

492 오기는/ 그러나 공적이 이루어진 뒤에는 결국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493 이 네 사람은 공을 이루고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재앙을 입었습니다. 이른바 펼 줄만 알고 굽힐 줄 모르며, 앞으로 갈 줄만 알고 돌아올 줄 모르는 사람이지요. 범려는 이러한 이치를 알아 초연하게 세상을 떠나 도 주공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진나라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고 당신의 공로는 극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진나라는 조금씩 공을 나누고자 할 때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상군, 백기, 대부 문종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길흉을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 또 옛 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상군, 백기, 대부 문종의 예를 들어 공로가 극에 달했으니 이제 물러나라는 말을 지혜롭게 하고 있다. 사람을 거울 삼아 길흉을 점칠 수 있다는 말이 좋다.

 

494 <>높이 올라간 용에게는 뉘우칠 날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495 채택은 진나라에 10여 년 동안 머물면서 소왕, 효문왕, 장양왕을 섬기고 나중에는 시황제까지 섬겼다. 그는 연나라에 사신을 갔다가 3년 뒤에 태자 단을 진나라에 볼모로 들어오게 했다.

 

496 이 두 사람이 두루 돌아다닌 끝에 진나라로 들어가자 잇달아 경상이 되고 공을 천하에 떨친 것은 참으로 진나라와 다른 여러 나라의 강하고 약한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선비에게는 역시 우연히 때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 두 사람 못지않은 재능을 가지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두 사람도 어려운 때가 없었다면 어찌 (명성을) 떨칠 수 있었겠는가?

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리아가 본 범저: 위나라 출신의 범저가 억울하게 매질을 당하고 남이 자신에게 오줌을 누는 모욕까지 견디며 끝내 진나라의 재상이 된 것은 정말이지 영화같다. 진나라의 천하통일을 위해 장의는 연횡책을 이야기 했다면, 범저는 원교근공책을 이야기 한다. 진나라 소왕과 범저의 관계도 보기 좋았다. 공이 정점에 달했을 때 물러나는 것이 좋음을 이야기 하는 채택과 그것을 받아들여 병을 핑계로 재상의 자리를 채택에게 물려주는 모습. 덕분에 비극으로 가득한 사기열전에서 범저는 이상적인 말년을 누렸다고 하겠다.

 

리아가 본 채택: 지혜로운 사람이다. 범저에게 물러남을 설득하여 그 자리에 자기가 올라가는 과정도, 이후 자신을 헐뜯는 자가 있어 살해될까 두려워 재상의 인수를 돌려주는 모습도 모두 지혜롭다. 연나라 태자단이 진나라에 인질로 오도록 한 장본인

 

악의 열전

 

촉나라 제갈량의 <출사표>와 비슷한 점이 매우 많은 것을 보면 이것이 <출사표>의 기초가 된 듯하다.

 

염파, 인상여 열전

 

전국시대의 수많은 전쟁은 대부분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513 ( 1) 초나라의 변화라는 사람이 발견한 보옥이다. 변화는 처음 이 옥을 발견하자 초나라 여왕에게 바쳤는데,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 돌이라고 하자 왕은 변화의 왼발을 잘랐다. 뒤에 다시 무왕에게 바쳤지만 역시 감정 결과 돌로 밝혀졌으므로 무왕은 그의 오른발을 잘랐다. 문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초산 아래에서 사흘 밤낮을 통곡하였다. 문왕은 그 옥을 가져다가 다듬어 천하의 보옥 화씨벽을 얻었다. <한비자> <화씨> 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514 그러니 당신께서는 웃옷을 벗어 어깨를 드러내고 부질(죄인을 죽이는 데 쓰는 도끼와 모탕)에 엎드려 처벌을 바라는 편이 낫습니다.

 

525 조나라 군사 허력이 군사에 관해서 간할 말이 있다고 하자 조사가 말했다.

그를 들여보내시오.”

군사에 관해 간하면 죽인다더니 허력에 대해서는 왜 허했을까. 일단 듣고나 보자라는 심정이었나.

 

526 신에게 부질형-도끼로 허리를 베는 형벌-을 내려 주십시오.

대사들이 하나같이 무섭다. 자기를 삶아 죽이라는 둥, 도끼로 허리 베라는 둥.

 

528 왕께서 내려 주신 돈과 비단을 가지고 돌아와 자기 집에 감추어 두고 날마다 이익이 될 만한 땅이나 집을 둘러보았다가 그것들을 사들입니다.

돈이랑 비단을 잘 굴렸구나. 이재에 밝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529 진나라는 이들을 모두 땅에 묻어 죽였다. 조나라가 이 싸움을 전후로 잃은 군사는 45만 명이나 되었다. 이듬해에 진나라 군대는 드디어 한단을 포위하였고, 한단은 1년 남짓 포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조나라는 초나라와 위나라 제후들의 도움으로 겨우 한단의 포위망을 뚫었다. 조나라 왕은 조괄의 어머니가 앞서 한 말 때문에 결국 그녀를 죽이지는 않았다.

아이고, 장평대전 비극을 초래한 장본인이 조괄이었구나. 진나라 백기만 미워했더니만. 당신때문에 45만명의 젊은 남자가 죽었고 240명의 어린 아이들이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했다. 무엇이든 현장경험이 중요하거늘 책으로만 익힌 병법의 폐해. 남편에게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왕에게 간했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이 안타깝다. 동시에 조괄의 부모님은 훌륭한 분들이었는데.

 

530 !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도 판단이 더딥니까? 대체로 천하 사람들은 시장에서 이익을 좇는 것처럼 사귑니다. 당신에게 권세가 있으면 따르고 권세가 없어지면 떠나갑니다. 이것은 진실로 당연한 이치인데 무엇을 원망하십니까?

나한테 하는 말같다. 그러게 사람들한테 뭘 바라니. 다들 나름의 계산을 갖고 인간관계가 맺어지는 것인데 순수한 관계를 기대하는 경향이 나에겐 있다. 그래서 실망도 크고.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음을 이 일화가 말해주고 있다. 염파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만 현실적으로는 빈객의 조언을 따라야 한다. 

 

531 “나는 조나라 군사로서 싸우고 싶다.” 염파는 결국 수춘에서 죽었다.

 

534 인상여가 화씨벽을 돌려받고 기둥을 노려볼 때라든지 진나라 왕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꾸짖을 때 그 형세는 기껏해야 죽음뿐이었다./ 인상여는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리아가 본 염파와 인상여: 둘 다 조나라 사람이고 염파는 무신, 인상여는 문신이라 하겠다. 문신과 무신 중 누가 더 공을 세웠느냐를 따지는 것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 인상여는 입만 놀리는 것 같은데 더 인정받는 것이 짜증나는 염파, 그렇게 자신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는 염파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인상여. 개인적으로 지혜롭고 용기도 있는 인상여에게 마음이 간다. 나는 염파에 가까운 인간이고.

 

전단 열전

 

전단은 제나라의 여러 전씨 일족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전단은 민왕 때 임치의 시연(시장을 감독하는 관리)이었으나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541 제나라 사람들은 도망가는 적을 뒤쫓았는데, 그들이 지나가는 성과 고을마다 모두 연나라에 반기를 들고 전단에게로 귀순하였다.

 

노중련, 추양 열전

 

전국 시대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는데, 소진이나 장의같이 권세를 끼고 이익을 좇은 자와 노중련이나 추양처럼 권력과 부를 경시하고 명예를 높이 여긴 자이다.

전국 시대만이 아니라 사람 사는 모든 시대에서 그러한 듯.

 

547 노중련은 제나라 사람으로 기이하고도 탁월한 계책을 잘 쓰는 인물이었지만, 벼슬에 나갈 마음이 없어 고상한 절개를 지키며 살았다. 조나라에서 유세한 적도 있었다. 

 

549 ( 1) 춘추 시대에 세상을 떠나 숨어 살던 선비로서 현실에 불만이 있어 나무를 끌어안고 굶어 죽었다고 한다. 노중련은 포초를 인용하여 자신이 위험에 빠진 성에 있는 것은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비유하고 있다.

 

551 내가 진나라 왕에게 위나라 왕을 삶아 소금에 절이도록 하겠습니다.

사기열전에 이런 표현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사마천이 과장하며 쓴 표현은 아닐 터. 언어는 시대상을 담고 있음을 생각하면 전국시대는 정말이지 난세였나보다. 인권, 생명 이런 말을 들으면 코웃음 쳤겠지. , 어질다는 말이 그 와중에 등장하는 게 신기하다.

 

확실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옛날 구후, 악후, (주나라) 문왕은 (은나라) 주왕의 삼공이었습니다. 구후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어 주왕에게 바쳤는데, 주왕은 그녀가 못생겼다면서 구후를 소금에 절였습니다. 악후가 이를 강력하게 간언하여 거세게 두둔하자 악후를 포를 떠 죽였습니다. 문왕이 이 소식을 듣고는 탄식하자 유리에 있는 창고에 100일이나 가두었다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위나라 왕과 진나라 왕은 같은 지위인데) 어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를) 왕이라고 일컬어 포를 뜨고 소금에 절여지는 처지가 되려고 하십니까?

주왕이 폭군 중에 폭군이었던 거 같다. 이 정도면 사람 죽이는 게 취미였던 듯. 딸이 못생겨서 그 아버지를 소금에 절이다니. 죽이는 것도 죽이는 것이지만 소금에 절인다, 포를 뜬다는 것에서 의도하는 시신훼손과 모욕을 생각하면 생명경시가 아주 극에 달한 것 같다.

 

558 이와 같은 두 사람은 작은 부끄러움과 작은 절개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이 아니고, 자신이 죽고 후손을 끊어 공과 이름을 세우지 못하는 것을 지혜로운 행동이 아니라고 여겼소. 그러므로 잠시 울분과 원한을 버리고 영원히 빛날 수 있는 이름을 세웠으며, 원망스러운 절개를 버리고 대대손손의 공을 세운 것이오. 이로써 그들의 공적은 삼왕과 우열을 다툴 수 있고, 그 이름은 (영원히 남아) 천지와 함께 영원히 스러지게 된 것이오. 원컨대 당신은 이 가운데 하나를 골라 행동하십시오.

잠시의 울분과 원한, 영원히 빛나는 이름. 뒤를 보고 눈 앞의 짜증나는 상황은 눈 감아야 할 터.

 

559 노중련은 달아나 어느 바닷가에 숨어 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여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망정 세상을 가볍게 보고 내 뜻대로 하겠노라!”

남에게 얽매이지 않으면서 돈도 벌고 그 와중에 어느 정도 내 뜻대로 세상도 살아갈 수 있어요.

 

561 옛날 번오기가 진나라에서 연나라로 달아났는데, 형가에게 (자신의) 머리를 베어 주어 (연나라) 태자 단의 거사를 받들도록 하였습니다.

아니, 무슨 옷 하나 벗어주는 식으로 머리를 베어주냐.

 

564 (주나라 무왕은) 충신 비간의 후손을 봉하고, (주왕에게 배를 갈려 죽은) 임산부의 무덤을 손질해줌으로써 그의 공적을 또다시 천하에 떨쳤습니다.

아이고, 주왕은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시비를 걸어 임산부의 배를 갈랐을까. 그래도 이후에 무왕으로부터 위안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요새 문재인 대통령을 보는 거 같다. 5.18 4.3 그리고 세월호까지 지난 세월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안아준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잊지 않고 위로해주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는 치유가 될 수 있다.

 

568 태사공은 말한다. “노중련은 지향하는 뜻이 대의에 맞지는 않았지만 벼슬도 지위도 없는 처지에서 자신의 뜻을 거리낌없이 말하고 실천하며 제후들에게 굽히는 일이 없었으며, 당대에 담론과 유세를 펼치며 공경과 재상들의 권력을 꺾었다. 추양은 말하는 태도가 공손하지는 않았지만 사물을 비유해 가며 그 실례를 하나하나 든 점에서 비장함이 있었고, 또 절개를 굽히지 않고 강직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이 열전에 덧붙였다.”

 

★리아가 본 노중련과 추양: 둘 다 제나라 사람. 다른 사람의 근심을 덜어주고 재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천하의 선비에 대해 이야기 한 노중련. 다소 고지식하고 갑갑하게도 느껴지지만 전국시대라는 탁류에 이러한 맑은 흐름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 벼슬이나 돈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있음이 자유롭고 용감하다. 추양이 옥에 갇혀 쓴 글은 적절한 예와 함께 고개를 끄덕거리게 한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처럼 옥이 되었건 법정이 되었건 명문은 어디에서건 태어날 수 있다. ★

 

굴원, 가생 열전

 

뒷부분은 굴원 자신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꿈속에서 천지를 돌아다닌 내용이다.

 

571 보고 들은 것이 많아 기억력이 뛰어나며 잘 다스려질 때와 혼란스러울 때의 일에 밝고 글을 쓰는 능력이 탁월했다.

 

572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이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굴원이 <이소>를 지은 것은 이처럼 분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분노는 나의 힘이라 하지. 대개의 훌륭한 글은 글쓴이 개인의 분노, 원통함, 슬픔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 3) 국이란 제후들의 나라를 말하고, 풍은 가요 또는 민요를 뜻한다. <국풍>에는 주남으로부터 빈에 이르는 열다섯 나라의 민요를 중심으로 한 노래들이 실려 있다. <국풍> <시경>의 앞머리를 차지한 것은 <> <>보다 일반 백성의 마음을 더욱 진솔하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577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시인의 외로움. 모두 잠들어 있는데 혼자 깨어 있는 고독감.

 

579 봉황은 새장 속에 갇혀 있고

닭과 꿩은 하늘을 나네.

옥과 돌을 뒤섞어

하나로 헤아리니,

저들은 더러운 마음뿐이라

내 좋은 점을 알 수가 없지!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장면이다. 시의 자유로움 덕에 가능한 표현이며 예언이다.

 

580 예로부터 (어진 신하와 현명한 군주는 때를) 같이하지 못하니

어찌 그 까닭을 알리오?

탕임금과 우임금 아득히 먼 분이라

막막하여 사모할 수도 없네.

시대가 다른 인연. 그러나 스승과 제자의 경우 사숙으로 가능하다. 책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으로 비록 어긋난 시대이지만 초월적 공간에서 인연을 맺을 수 있다.

 

582 굴원이 이미 죽은 뒤 초나라에는 송옥, 당륵, 경차 같은 무리가 모두 글짓기를 좋아하였으며 부를 잘 지어 세상에서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굴원의 모습을 본뜰 뿐 끝내 감히 직접 간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뒤 초나라는 날로 쇠약해지더니 수십 년 뒤에는 결국 진나라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굴원이 멱라강에 몸을 던진 지 100여 년이 지나 한나라에 가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장사왕의 태부가 되어 상수를 지나다가 글을 지어 강물에 던져 굴원을 애도하였다.

 

( 8) 상강의 지류이다. 굴원은 농력 5 5일에 죽었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날을 기념하여 단오절을 만들었다.

 

585 , 슬프다!

좋지 못한 때를 만남이여!

 

586 밝은 빛 마다하고 숨어 지낼 뿐

어찌 개미, 거머리, 지렁이와 놀랴?

 

어지러운 세상에서 머뭇거리다 재앙 받은 것,

또한 선생의 허물이로다!

천하를 두루 둘러보고 어진 임금 돕지 않고

어찌 이 나라만 고집했는가?

아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왜 초나라만 고집하냐고. 그런 세상에서 왜 머뭇거려.

VOICE OR EXIT

 

589 만물은 변하며

정녕 쉼이 없구나,

돌아 흘러서 옮겨 가고

또는 밀어서 돌아간다.

형체와 기운이 끊임없이 도니

변하고 진화하는 것 매미와 같네.

 

재앙이란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이란 재앙이 숨어 있는 곳이라.

근심과 기쁨은 같은 문으로 모이고

길함과 흉함은 한곳에 있네.

이번에 사기열전 읽으면서 계속 겸양의 괘가 떠오른다. 화복과 길흉이 모양을 달리하며 변하는 가운데 그나마 길의 기운, 화의 기운을 지속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겸양이다.

 

591 우연히 사람 되었어도

어찌 삶에 연연하리!

귀신이 된다 하여

또 어찌 슬퍼하리!

 

평범한 사람은 삶에만 매달리지.

이익에 유혹되고 가난에 쫓기는 무리는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니네.

성인은 사물에 굽히지 않고

수많은 변화를 만나도 한결같다네.

바쁘게 사는 사람을 보면 좀 숨이 막힌달까 그런 감정이 있는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반대말이 악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바쁜 사마리아인이라는 말이 있다. 바쁘면 무언가 소중한 가치를 놓치고 누군가가 던진 유혹에 낚이기 쉽기도 하다. 그러면서 가난에 쫓기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592 덕 있는 사람은 얽매임이 없고

천명을 알아 근심이 없으니

하찮은 가시덤불이야

어찌 걱정이나 하겠는가!

시련을 대하는 자세. 하찮은 가시덤불.

 

593 그중 가가는 학문을 아주 좋아하여 가업을 이었는데 나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

! 사마천과 가생의 손자 가가가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594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이소, 천문, 초혼, 애영을 읽어 보며 그 생각을 슬퍼했다. 장사에 가서 굴원이 스스로 빠져 죽은 연못을 바라보고 일찍이 눈물을 떨구며 그의 사람 됨됨이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가생이 굴원을 조문한 작품-조굴원부-을 읽어 보니 굴원이 그만한 재능을 가지고 다른 제후에게 유세하였더라면 어느 나라인들 받아들이지 않았으랴마는 그 스스로 이렇게 생을 마쳤구나. 그러나 <복조부>를 읽으니 그는 삶과 죽음을 한가지로 보고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가볍게 여겼으니, 나는 (마음에 깨달은 바 있어) 상쾌해지며 스스로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리아가 본 굴원과 가생: 애국시인이라 불리우는 굴원. 사마천 말대로 그만한 재능을 가지고 왜 초나라만 고집했을까 싶지마는 지금의 한국을 생각할 때, 여기가 싫어서 이민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우리가 사는 나라를 개선시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초나라를 고집한 굴원의 번뇌를 알 수도 있을 거 같다. 굴원의 이소는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출력은 해놨는데 아직 착수를 못했다. 그 시를 짓게 되기까지의 배경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조만간 꼭 착수하고자 한다. 가생이 죽었을 때 고작 33. 시인은 자신의 수명도 예측할 수 있는걸까. 미래에 대한 예민한 촉수가 시인들에게는 있는 모양이다. ★

 

여불위 열전

 

그는 본래 한나라의 큰 상인으로 여러 제후국을 주유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인재를 알아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진나라의 상국이 되어 진나라 통일 사업에 큰 공을 세웠으며, 불후의 명작 <여씨춘추>를 짓기도 했다.

 

아울러 사마천은 천지, 만물, 고금의 일에 관한 모든 것이 <여씨춘추>에 갖추어져 있다고 볼 정도로 여불위의 저술 작업을 높이 평가하였다.

 

597 자초는 진나라의 많은 서얼 중 한 사람으로서 제후 나라의 볼모이므로 수레와 말과 재물이 넉넉하지 않고 생활이 어려워 실의에 빠져 있었다. 여불위가 한단에서 장사하다가 그를 보고 불쌍하게 여겨 말했다.

 

599 영화를 누릴 때 터전을 닦아 놓아야지 아름다운 얼굴이 스러지고 사랑이 식은 뒤에는 비록 한마디 말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

 

602 이 책을 함양의 시장 문 앞에 펼쳐 놓고 거기에 1000금을 걸어 제후국의 유사나 빈객 중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이에게 그 돈을 주겠다고 했다.

 

603 시황제는 관리를 보내 사실을 상세히 밝히고, 상국 여불위도 이 일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9월에 노애의 삼족을 멸하고 태후가 낳은 두 아들을 죽였으며, 마침내 태후를 옹 땅으로 내쫓았다. 시황제는 상국도 죽이려고 하였으나 선왕을 섬긴 공로가 크고, 그의 빈객과 변사들 중에 그를 위하여 변호하는 자가 많아 차마 법대로 처벌할 수 없었다.

 

605 ( 3) 이 말은 논어 안연 편의 소문聞이란 겉으로는 인을 취하면서도 행동은 (인에) 어긋나는 것인데도, 스스로는 인하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나라 안에서 반드시 소문이 있고 집에서도 소문이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나온다. 이 말은 마융이 말한 바와 같이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을 뜻한다.

 

★리아가 본 여불위: 본래 한나라의 큰 상인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 다니며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는 점에서는 부러운 인간이다. 진나라의 천하통일 역시 여러 인간 역학을 파악하여 통일 사업으로 접근하는 등 여러 모로 탁월할 면이 많은 인간. 다만 여불위의 첩도 그렇고 노애도 그렇고 인간을 수단으로 야심을 꾀하여 몰락을 자초하였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 되야 할 터. 예전에는 상인 마인드, 경영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명박과 트럼프를 보면 그게 아니다. 여불위도 그러하고. 가치의 중심이 인간이 아닌 돈, 이익에 있기 때문에 그럴까. ★

 

자객 열전

 

특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 처한 유형이 비슷한 인물들의 활동을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사마천 특유의 집필 태도를 잘 드러낸 글이다.

이게 뿌리를 캐내는 작업과 비슷한 것이다. 나의 유전자가 다른 시대에서는 어떤 삶을 펼쳤는지가 나는 궁금하다.

 

612 그로부터 167년이 지났을 때 오나라에 전제의 사적이 있었다./ 615 그로부터 70여 년 뒤에 진나라에 예양의 사적이 있었다.

 

615 게다가 조양자는 지백에 대한 원망이 너무 큰 나머지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큰 술잔으로 썼다.

사랑의 감정이건 원망의 감정이건 파도처럼 압도하는 거대한 감정은 그 대상자는 물론이거니와 당사자도 괴롭다.

 

615 양자가 변소에 가는데 어쩐지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신기하네 거. 온 몸에 자기보호센서가 있나. 아니면 예양의 분노전파가 너무 거센 탓이었을까.

 

617 양자가 다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말이 놀라니 그가 말했다.

예양의 분노전파가 센 거야.

 

618 오늘 일로 신은 죽어 마땅하나 모쪼록 당신의 옷을 얻어 그것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도록 해 주신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이것은 신이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은 것뿐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원수를 갚겠다는 예양의 의지는 애잔하고 그걸 들어준 양자는 너그럽게 여겨진다.

 

그로부터 40여 년 뒤 지 땅에 섭정의 사적이 있었다.

 

620 제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여 시장 바닥에서 백정 노릇을 하는 까닭은 다만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께서 살아 계신 동안에는 제 몸을 다른 사람에게 감히 바칠 수 없습니다.

효에 관한 한 옛 사람들의 마음을 따를 수 없다.

 

622 그런 뒤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고 죽었다.

아이고 참 가지가지 한다. 과장이라 하더라도 그만큼 스스로를 훼손했다는 것일 터.

 

623 섭정은 제가 살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훼손시켜 이 일에 연루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제게 닥칠 죽음이 두려워 어진 동생의 이름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그로부터 220여 년 뒤 진나라에 형가의 사적이 있었다.

 

625 형가가 한단에서 돌아다닐 때 노구천이란 자가 형가와 박 놀이를 했는데,

얼마 전 고모할머니 뵈었을 때 옛 이야기를 하며 골패를 언급하셨다. 놀이에서 시대가 느껴진다.

 

626 어찌 업신여김을 당했다는 원한 때문에 진왕의 역린을 건드리려 하십니까?

 

628 ( 3) 옛사람들의 예의범절에 따르면 원래 앉는 자리에서 떠나 가르침을 청함으로써 매우 존경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상징적인 영웅여정이라 할까. 가르침은 일단 떠남에서 오는 것.

 

634 장인을 시켜 (칼날에) 독약을 묻혀 사람을 찔러 보니 피 한 방울만 흘려도 그 자리에서 죽지 않는 이가 없었다.

 

635 열세 살 때 사람을 죽여 감히 그를 쳐다보는 이가 없었다.

가생은 열 여덟 살에 시를 지었다는데. 누구는 열세 살에 사람을 죽이는구나.

 

636 슬픈 소리이다. 고대의 기본 음은 궁, , , , 우의 다섯 음으로 이루어졌고 변궁과 변치 두 음이 더 있었다. 변치는 각과 치 사이에 있어 오늘날의 F조에 해당한다.

 

637 형가가 진왕을 쫓아가자 진왕은 기둥을 돌며 달아났다.

뭔가 좀 웃긴데.

 

640 고점리는 오랫동안 숨어 두려움과 가난 속에서 살아 보아야 끝이 없겠다고 생각하여 자리에서 물러나 보따리에서 축과 좋은 옷을 꺼내 차림새를 고치고 앞에 나타났다.

 

640 진시황은 그가 축을 뛰어나게 잘 타는 솜씨를 아까워하여 용서하는 대신 눈을 멀게 했다.

뭐 하나라도 곱게 처리하진 않는구나.

 

641 본래 공손계공과 동중서는 하무저와 교분이 있어 이 일을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두 사람은) 나에게 이 자객 열전처럼 (똑같이) 말해주었다.

사마천이 동중서에게 배웠다고 했나. 가생의 손자 가가와 편지를 주고 받고 약주머니 던진 하무저와 알고 지낸 공손계공, 동중서에게 이야기를 들어 사기열전에 깨알같이 적어 넣은 사마천. 그런데 하무저는 무용담 이야기 하듯 그 때 내가 약주머니를 던졌지!’했으려나. 뭔가 더 신뢰가 안가는데.

 

★리아가 본 자객열전: 나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일을 하는 건 좋은데 몸을 던지는 건 잘 모르겠다. 그것도 일종의 광기, 광신같다. 핏줄을 위한 원수갚음은 그나마 이해가 가는데 자객열전에 소개된 이야기는 대의와 명분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특히 섭정의 죽음은 이해불가. 그저 각자의 정의를 위한 것이었을까. ★

 

이사 열전

 

이사는 훗날 진시황을 도와 제국의 완성과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으며 그 유명한 분서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사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는 진나라에 큰 공을 세웠을지언정 자신은 오형을 받아 죽었고, 집안사람들까지 목숨을 보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모습은 동정을 받을 수 없다. 그의 개인적인 비극보다 역사적 비극이 더 참혹했기 때문이다.

 

그와 조고의 음모를 비롯하여 이세황제를 도와 가혹한 정책을 펼치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을 적어 꾸짖음으로써 부정적 평가도 곁들였다.

 

647 이사는 초나라 상채 사람이다.

 

저는 때를 얻으면 게으르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는 지위나 관직이 없는 선비가 능력을 펼칠 때이며 유세가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648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고소왕 강용석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 사람 보니까 돈에 관해 어떤 콤플렉스가 있는 거 같더라.

 

648 그러나 진나라 효공 이래 주나라 왕실이 쇠약해져서 제후들이 힘을 합쳐 관동은 여섯 나라(, , , , , )로 줄어들었습니다. 진나라가 상승세를 타고 제후들을 눌러 온 지 벌써 여섯 대(효공, 혜문왕, 무왕, 소왕, 효문왕, 장양왕)나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후들이 진나라에 복종하여 마치 진나라의 군이나 현 같습니다.

 

649 정국은 진나라의 침략을 미리 막기 위해 진나라로 위장해 들어와 운하 건설을 강력히 건의했다. 운하 건설로 대규모의 인력과 비용을 소모시켜 동쪽 정벌을 포기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정국의 이러한 계략은 결국 탄로났지만 운하의 이로움을 역설하여 사면되었고, 진나라는 이 공사를 10여 년 동안 계속하였다. 이때 건설된 운하는 서쪽의 경수에서 동쪽의 낙수에 이르기까지 300리나 되었고, 그 이름을 정국거라고 불렀다.

 

651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의 (이름난) 옥을 손에 넣고, 수씨와 화씨의 보물(수후주와 화씨벽)을 가졌으며, 명월주를 차고 태아검을 지니고, 섬리마를 타며, 취봉기를 세우고 영타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보물은 하나도 진나라에서 나지 않는데 폐하께서 그것들을 좋아하시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진짜 말 잘하네. 다른 건 수입산 좋아하는데 인재는 왜 국내산만 고집하냐며.

 

656 청컨대 모든 문학과 시, , 제자백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이것을 없애도록 하고 이 금지령을 내린 지 30일이 지나도 없애지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하여 성단(4년동안 새벽부터 일어나 성 쌓는 일을 하는 죄수)으로 삼으십시오.

성단이라는 게 있었구나. 진시황 시절의 부역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시황제는 그 제안을 옳다고 여겨 시, , 제자백가의 책을 몰수하고 모든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 천하에 그 누구도 옛것을 끌어들여 지금 세상을 비판하지 못하게 했다.

 

657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하거늘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구나.

 

663 제가 듣건대 성인은 변하여 정해진 태도가 없으며, 변화에 따르고 시대에 호응하며, 끝을 보고 근본을 알며, 지향하는 바를 보고 귀착되는 바를 안다고 합니다. 사물이란 본래 이런 것입니다. 어찌 변하지 않는 고정된 법칙이 있겠습니까?

 

663 밖에서 안을 제어하는 것을 惑이라 하고, 아래에서 위를 제어하는 것을 이라 합니다.

                             

667 공자 열두 명을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죽이고, 공주 열 명을 두에서 찢어 죽였으며,

668 호해는 그 글을 허가하고 10만 전을 내려 매장해 주었다.

가족들이 모두 죽을까봐 도망가지도 못하고 죽음을 자청한 공자 高. 문화혁명 시절에 가족들이 걱정되어 자살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죽음을 자청하고 이를 허락 받다니.

 

668 직도는 진시황 35년 몽염에게 명하여 운양에서 구원군까지 직선으로 뚫은 길로 1800리에 달한다. 치도는 넓디넓은 도로라는 뜻으로 너비가 30장이며 지면보다 높게 닦아 길 양쪽에 소나무를 심었다. 전국의 각 요충지에 도달할 수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연나라와 제나라까지 미치고 남쪽으로는 오나라와 초나라까지 닿았다. 오늘날에도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형태로 남아 있다.

 

673 이렇게 한 뒤에야 인의의 주장을 없애고, 이론을 따지는 자의 입을 막으며, 열사의 행동을 눌러서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도 마음속으로 혼자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는 인의가 있는 사람과 열사의 행동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고, 안으로는 간언하며 다투는 변설에도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군주는 초연하게 혼자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감히 거스르는 자가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된 뒤라야 신자와 한비자의 학술을 밝히고 상군의 법을 실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674 길에 다니는 사람 중 절반은 형벌을 받은 자였고, 형벌을 받아 죽은 자가 날마다 시장 바닥에 쌓여 갔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죽인 관리를 충신이라고 했다.

 

674 : 이 말은 본래 兆朕, 즉 아직 사물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전의 상태를 가리켰다. 秦나라 이전에는 주로 1인칭 대명사로 쓰이다가 시황제 때부터 천자의 자칭으로 사용되었다.

 

679 내가 간언하지 않은게 아니라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이것이 神의 대사라면? 신이 여러 차례 간언을 했거늘 그 간언을 알아듣지 못하는 인생.

 

684 패공은 자영을 관리에게 넘겼으나 항왕이 와서 목을 베었다. (진나라는) 마침내 천하를 잃었다.

 

★리아가 본 이사: 변소의 쥐와 창고의 쥐를 보며 인간이 처한 환경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진나라로 간 것은 좋은데 애초에 세상의 부귀와 영리를 탐하는 마음이 너무 컸다. 보통 초심은 그래도 거룩하던데. 이사보다 더한 조고를 만나 말년이 비참했으나 사마천이 말한대로 개인의 비극보다 이사로 인한 역사적 비극이 더욱 커서 뭐라 할 말이 없다. ★

 

몽염 열전

 

진나라가 통일된 뒤, 몽염은 흉노를 압박하고 10여 년간 북방을 지키면서 만리장성을 쌓아 진시황에게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690 조고는 조나라 왕족 조씨의 먼 친족이다. 조고의 형제 가운데 몇 명은 태어나자마자 모두 거세되어 환관이 되었으며, 그들의 어머니도 형벌을 받았으므로 대대로 비천한 신분이었다.

 

696 내 죄는 정녕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요동까지 장성을 만여 리나 쌓았으니, 이 공사 도중에 어찌 지맥을 끊어 놓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바로 내 죄로구나.

그 많은 사람들을 비참하게 하고서는 뉘우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죽음을 앞에 두고도 지맥 운운 하다니. 백기의 마지막이 생각난다. 진정 사람은 자신의 죄를 모르는 걸까.

 

장이, 진여 열전

 

701 진나라가 대량을 멸망시켰을 때 장이의 집은 외항에 있었다. 고조가 평민일 때 자주 장이를 따라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몇 달 동안 그의 빈객으로도 있었다.

 

702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문을 지키고) 있는데 마을의 벼슬아치가 진여에게 잘못이 있다고 매질을 했다. 진여가 일어나 대들려고 하자 장이가 진여의 발을 밟아 그대로 매를 맞게 했다./ 지금 하찮은 치욕 때문에 일개 벼슬아치의 손에 죽으려고 하시오?

 

진나라는 조서를 내려 돈을 걸고 이 두 사람을 찾았는데, 두 사람은 오히려 문지기 신분으로 마을 안에 조서를 전하였다.

서로 마주보며 문을 지킬 때 눈도 자주 마주치고 미소도 지었을 건데. 자기네들 찾는 조서를 전하면서 서로 키득대기도 했을 거고. 어쩌다 나중에 인연이 그리 갈렸을까.

 

706 가만히 듣건대 당신이 곧 죽을 것이라기에 조문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 괴통을 얻어 살 수 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712 조나라 사람 중에는 장이와 진여를 위해 눈과 귀가 되어 주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탈출할 수 있었다.

 

723 그러고는 고개를 들고 목의 혈관을 끊어 결국 죽었다. 이 일로 하여 그 이름이 온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회음후 열전

 

759 회음후 한신은 회음 사람이다. 처음 평민일 때에는 가난한데다 방종했으므로 추천을 받아 관리도 될 수 없고, 또 장사를 해서 살아갈 능력도 없어 늘 남을 따라다니며 먹고 살아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싫어했다.

 

780 귀하게 되느냐 천하게 되느냐는 골법에 달려 있고, 근심이 생기느냐 기쁨이 생기느냐는 얼굴 모양과 빛깔에 달려 있으며, 성공과 실패는 결단력에 달려 있습니다.

 

783 당신께서는 스스로 한왕과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 업적을 세우려고 하십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잘못된 것입니다.

 

786 그러나 한신은 망설이면서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 못했다. 또 자신이 공이 많으니 한나라가 끝내 제나라를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괴통의 제안을 거절했다. 괴통은 한신이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자, 얼마 안가서 미친 척하고 무당이 되었다.

 

793 내가 회음에 갔을 때 회음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한신은 평민일 때에도 그 뜻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고 한다. 그 어머니가 죽었을 때 가난해서 장례를 치를 수 없었지만 (결국) 높고 넓은 땅에 무덤을 만들어 그 주위에 집이 일만 호나 들어설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내가 그 어머니의 무덤을 보니 정말로 그러했다.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 소공, 태공망 등에 비할 수 있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니 온 집안이 멸망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리아가 본 한신: 한신은 배수지진, 과하지욕, 토사구팽, 일반천금 등의 주인공이다. 4가지 고사성어가 그의 생애를 말해준다. 천하고 무능력하다고 무시되었던 그가 항우를 버리고 유방을 도우면서 한소삼걸중 한 인물이 되며 인생이 핀다. 그가 초왕이 되어 고향에 돌아갔을 때 자신이 배고팠던 시절 밥을 먹여 준 표시 여인에게 천금을 내려 일반천금이라는 말이 생겼다. 게다가 과하지욕의 주인공이었던, 자신을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게 했던 사람은 중위로 임명한다. 이렇게 염치를 알고 너그러운 일면이 보이는 그가 유방에게 토사구팽 당하는 처지가 되며 멸족이 되는 상황은 많이 안타깝다. 한신은 어리석고 순진한 사람이었던 거 같다. 괴통의 말에 귀기울여 결단을 했다면, 사마천의 말대로 겸양을 갖추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 분석)

<사기열전> 70개의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대별이라기보다는(編年體) 인물과 사건별로 정리가 되어 있다. 이걸 기전체(紀傳體)’라고 한다는데 이러한 방식은 <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 인물의 삶에는 그 시대가 담겨져 있으므로 이렇듯 인물 위주의 전개방식은 인물을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역사라 하면 시간의 흐름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선입견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단선적 흐름이 아닌 입체적 흐름으로 역사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따라서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또한 목차에서 저자 사마천의 관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백이숙제가 맨 처음에 위치하고, 서문에 위치할 법한 태사공자서가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등).

 

2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 이런 내용은 아쉬웠.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3천 여 년의 중국 역사와 그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각 장이 시작되기 전에 간략한 시대배경과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이 지도에 표시되면 좋겠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의 기본 어휘가 정리되어 있다면 좋겠다.

 

3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1) <사기열전>은 왕에 대한 기록만이 아니라 귀족이나 개인에 대한 역사 또한 다루고 있으며, 단지 역사적 사실의 나열만이 아니어서 좋았다. 특정한 시대 하에 특정 인물유형이 그 삶을 전개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면서 지금 이 시대, ‘라는 인간유형은 어떤 삶의 방향과 행동원리를 지녀야 할 지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2)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김원중씨의 요약이 앞서고, 마지막에는 사마천의 코멘트가 들어가 그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3) 소제목은 이야기의 요약과 교훈을 담고 있어 좋았고 제목의 표현이 문학적이라 원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회음후열전에 나오는 토사구팽처럼). ‘대륙의 딸도 이런 소제목이 달려 있었는데 역시 <사기>에서 비롯된 방식일까?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1) ‘보완이 필요한 점에서 언급했듯이 시대가 길고 공간이 광대하며 나오는 인물들이 매우 많다. 각 장 앞에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공간과 시대를 요약하면 파악과 이해에 도움이 될 것 이다.

2)  춘추전국 시대에 쓰였던 용어를 정리해놓을 것이다.

3) 소제목의 경우 괄호 안에 원문을 삽입할 것이다(: 인생은 흰 망아지가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짧다. (人生一世閒 如白駒過隙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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