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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3일 11시 49분 등록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박병규 옮김/민음사


1. 저자에 대하여

“고통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262]

네루다 자서전의 부제는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이다. 그는 평생을 사랑하며 살았고, 그 사랑과 아픔을 시를 통해 노래했으며, 자신이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공산당원으로서 또 독재에 항거하는 투사로서 투쟁하는 삶을 살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저자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말한다. 네루다에게는 시가 삶의 전부였다. 시가 무엇인지도 모를 10살 나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암에 걸려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죽기 바로 전까지 구술로 시를 썼던, 천복으로 타고난 시인이었다.

무엇이 그를 끊임없이 노래하게 만들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네루다의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은 “대자연”이었다고 말한다.
네루다 자신도 이렇게 고백한다.“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고... 초기에 자유분방한 사랑과 자연을 노래했던 네루다의 시작(詩作)은 1936년 스페인 내전을 계기로 사회와 인간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그 이후 네루다는 한평생 사회적 약자들, 버려진 영혼들,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노래하고 투쟁했다.

네루다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갖고 있었고, 젊은 시절 보헤미안적 생활을 영위했다. 그가 외교관이 된 건 어쩌면 그의 성격에 가장 맞는 직업으로 그가 외교관 생활에 만족했기 때문일 것이고, 직업으로서의 외교관은 그의 시작에도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자유분방하게 이성과 교제 했고, 평생 세 번 결혼했다.

< 개인사 >
1904년 칠레 출생. 아버지는 철도원이었고 어머니는 네루다가 태어난 직후 돌아가셨다. 열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시인이 되기를 꿈꾸면 가명으로 시작을 발표했음. 한 동네에 살고 있던 시인 가브리엘 미스트랄의 서재에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탐독하면서 문학적 소양을 넓혀감.
1921년(18세) 산티아고 데 칠레 사범대학(프랑스어 교사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산티아고로 상경한 후 매일 두 편이상의 시를 쓰며 문학에 파묻혀 살았음.
1923년 처녀작 『황혼일기』를 출간하여 칠레 문학계에 이름을 알리고, 1924년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됨.
1936년 시인 로르카의 죽음과 스페인 내전을 겪으며 민중에 대한 애정과 사회의식으로 충전된 개성적 시를 쓰기 시작함.
1943년 스무살 연상의 델리아 델 카릴과 재혼하였으며, 1945년 노동자들의 지지로 사원의원에 당선되고 곧 이어 공산당에 가입함.
독재자 곤잘레스 비델라의 탄압으로 망명길에 오르고, 이때 위대한 서사시 『모두의 노래』를 탈고.
1953년 마틸데 우루티아와 세 번째 결혼하고, 다음해에 스탈린 평화상을 수상함.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 1973년 아옌데 정권이 군사 구테타로 무너진 10여일 후 영면.



2.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이 책에 수록된 회고랄까 추억은 듬성듬성하다. 간혹 잊어버린 일도 있다. 바로 그런 게 인생이다. 우리는 듬성듬성 꿈을 꾸기 때문에 힘든 삶을 견뎌 낸다. 그런데 기억해 내는 순간 희미해지고 먼지처럼 흩날리는 추억이 너무 많다. 마치 산산조각 나 버린 유리 같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의 회상과 시인의 회상은 다르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은 치열한 삶보다는 생생한 삶을 그리려 하기 때문에 지난 일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반면 시인은 자기 시대의 불꽃과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환영들을 보여준다.
나는 어쩌면 내 자신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 지면에 남긴 내 글에서(가을철 수목이나 수확기의 포도처럼) 죽음을 맞는 노란 낙엽이 떨어질 것이고 신성한 포도주로 새 생명을 얻는 포도가 떨어질 것이다.
내 인생은 시인의 여러 경험으로 이루어진 삶이다.[13]

굵직한 선 두 가닥이 가무잡잡한 얼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나는 수직으로 그어진 칼자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평으로 그어진 새하얀 웃음이었다.[20]

이성적인 사람은 시인이 되기가 무척 어렵듯이 시인 또한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가 무척 어렵다. 물론 이성이 우위를 점해야 하며 정의의 근간인 이성이 세계를 다스려야 한다.[66]

첫 시집! “작가의 작업은, 적어도 시인의 작업은, 신비하거나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작업, 대중을 위한 작업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해왔다. 시와 가장 유사한 것은 빵이요 질그릇이요 서투른 솜씨로나마 정성껏 깍은 목각품이다.”[77]

< 말 >
뭐든지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노래하는 것은 말(言)입니다. 음정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도 말입니다. 나는 말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나는 말을 사랑하고 말에 집착하고 말을 추적하고 말을 물어뜯고 말을 용해시킵니다. 그토록 말을 사랑합니다.

예기치 못한 말을 사랑합니다. 사랑스러운 말은 색 돌처럼 빛납니다. 은빛 물고기처럼 뛰어오릅니다. 말은 거품이고 실이고 금속이고 이슬입니다.

나는 몇몇 말을 뒤쫓고 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내 시에 모두 다 집어넣고 싶습니다. 나는 윙 하고 날아가는 말을 붙잡습니다. 말을 생포해서 잘 씻고 껍질을 벗겨 접시에 담아 내놓습니다.

내 느낌에, 이런 말은 수정 같고 공명판 같고 상아 같고 청초한 식물 같고 매끄러운 기름 같습니다. 파일처럼 해초처럼 마노(瑪瑙)처럼 올리브처럼 보입니다. 그런 말을 휘젓고 뒤흔들어 마십니다. 꿀꺽꿀꺽 삼킵니다. 말을 분쇄합니다. 말을 치장합니다. 말을 해방시킵니다. 말을 종유석처럼, 곱게 손질한 나무 조각처럼, 석탄처럼, 파도에 밀려오는 난파선의 잔해처럼 시에 놓아둡니다.

모든 것이 말에 달렸습니다. 어떤 생각은 통째로 바뀌기도 합니다. 말이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든지, 아니면 어떤 문장에 기대하지 않은 말이 느닷없이 끼어들더니만 이내 여왕 행세를 하면서 문장을 복종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은 그림자, 투명함, 무게, 깃털, 머리카락 등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것과 강물에서 떠내려 오는 동안, 혹은 이 나라 저 나라로 돌아다니는 동안 들러붙은 것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말도 있고 최신식 말도 있습니다. 숨겨 놓은 관(棺)에 거처를 마련한 말도 있고 막 터지려는 꽃봉오리에 거처를 마련한 말도 있습니다.

우리말이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 흉포한 정복자들에게 물려받은 이 언어가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 정복자들은 세상에 다시없을 게걸스러운 식성으로 감자, 소시지, 콩, 담배, 금, 옥수수, 달걀 프라이를 찾아 험준한 산맥을, 거친 아메리카 대륙을 성큼 성큼 돌아다녔습니다. 정복자들은 종교, 피라미드, 종족, 그리고 그들이 보따리에 담아 온 것과 다를 바 없는 우상을 모두 집어삼켰습니다. 가는 곳마다 땅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러나 말은 이 야만적인 정복자들의 장화 밑바닥에 박혀 있던 조약돌처럼 수염에서, 투구에서, 편자에서 떨어졌습니다. 지금 그 빛나는 말이 여기 남아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패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승자였습니다. 저들은 황금을 가져가기도 했지만 황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갔지만 모든 것을 남겨두고 갔습니다. 우리들에게 말을 남겨 놓은 것입니다.[84, 85]

산동네에서는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91]

저 위 산동네에서는 빈곤이 만발했다. 역청도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덩달아 기쁨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동네였다. 해안을 뒤덮고 있는 기중기, 선창, 부두 노동은 덧없이 지나간 행복한 시절에 그려 놓은 마스카라 같았다.[94]

< 알바로 >
나는 꾸준히 성실하게 많은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들을 알고 있지만 알바로만큼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출판한 책이 없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알바로는 아침이면 침대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안경을 콧잔등 위로 밀어 올리며 부지런히 타자기를 두들겼었다. 종이라는 종이는 다 잡아먹으면서..... 알바로의 순발력, 비판력, 오렌지, 정기적인 연락, 뉴욕의 아지트, 너무나 명쾌하게 보이는 혼란스러운 글, 너무나 혼란스럽게 보이는 명쾌한 글..... 그런데 고대하던 작품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어쩌면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어쩌면 작품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항상 너무 바쁘고 항상 너무 한가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알바로는 모르는 게 없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꿰뚫어 보는 당돌한 푸른 눈, 섬세한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고 있으니.....[119]

실제 동양에 가 보면 흔히 말하는 동양의 신비주의란 서구인이 직면한 불안, 노이로제, 혼란, 기회주의의 부산물임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발생한 부산물인 것이다.[131]

< 아편 >
어떻게든 이 메스꺼움을 이겨 내야만 했다. 아편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아편을 경험하고 그 맛을 알 필요가 있었다. 나는 수없이 아편을 피워 댔고, 마침내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아편은 몽환도 환영도 발작도 일으키지 않았다. 은근하게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끝없이 부드러운 음이 허공에 지속되는 듯했다. 몸속이 텅 비고 온몸이 나른해졌다. 어떤 움직임이나 소리도(이를테면, 팔꿈치나 목을 움직인다든지 멀리서 들려오는 마차 소리, 경적 소리, 길거리 사람들의 목소리라든지) 한데 어우러져 느긋한 쾌감을 안겨 주었다. 플랜테이션의 품삯 노동자들, 막노동을 나가는 사람들, 하루 종일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이 왜 그곳을 찾아와서 몽롱한 정신으로 죽은 듯이 누워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편은 뜬소문처럼 이국 취향에 함몰된 사람들이 향유하는 천국이 아니었다. 착취 당하는 사람들의 도피처였던 것이다. 아편굴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참한 사람들이었다. 그곳에는 수를 놓은 방석과 같은 부유한 티가 나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반짝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편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의 반쯤 감긴 눈에서도 반짝이는 빛은 없었다. 그 사람들은 쉬고 있는 것일까, 자고 있는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가구도 없고 양탄자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기름때가 묻어 반질거리는 낡은 평상 위에 목침 몇 개가 눈에 띄고, 야릇하게 역겹고 강력한 아편 향과 정적만이 떠다닐 뿐이었다. 아편굴은 파탄으로 가는 지름길이 확실했다. 거부와 식민지 지배자들의 아편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결국 신민지 피지배자들이었다. 아편을 피우러 들어오는 사람들은 입구에서 흡연 허가증을 맡겼다. 침묵과 무기력이 어두컴컴한 실내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른하게 누워 잠시나마 불행을 잊고 피곤을 떨쳐 버리려는 것이다. 몽롱한 침묵은 아편굴이라는 물웅덩이에 가라앉은 부서진 꿈의 침전물이다. 눈을 반쯤 감고 섬세하고 감미로운 휴식을 즐기고 있는 그 사람들은 바다 밑에서 한 시간 동안 지내는 꿈을 꾸거나 언덕 위에서 하룻밤 지내는 몽환에 젖어 있었다.
그 이후 다시는 아편굴을 찾지 않았다. 이제 아편이 뭔지 알았으니까, 나는 연기 속에서 아른거리는 그 무엇을, 손에 쥘 수 없는 그 무엇을 만져 보았다.[137, 138]

나는 그때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기억한다. 마치 어마어마하게 밝은 번갯불이 창문 밖에 머물면서 내 운명의 안팎을 속속들이 비춰 주는 것 같았다..... 밤이 되면 바다의 음악은 더욱 커졌다. 아침이면 방금 세수하고 나타난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압도했다.[139]

로렌스는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다른 위대한 영국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를 훈계하려 들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로렌스는 우리가 삶과 사랑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성교육 강좌를 개설한 것이다. 나는 로렌스가 지겹게 느껴졌다. 그러나 성의 신비에 대한 고통스러운 탐구, 쓸모없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이러한 탐구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145]

반제르는 대영제국의 탁월한 산물이었다. 즉, 우아한 철면피였다.[147]

그 노랫소리는 피 속에 흐르고 있었고, 흙냄새 물씬한 야생적인 시 속에 흐르고 있었다. 왕성한 젊음의 향기와 풍요가 배어 있고, 동부 스페인의 색깔, 향기, 소리가 무성하게 뒤엉켜 있는 시 속에 아직도 그 노랫소리가 살아 있다.
에르난데스의 얼굴은 스페인의 얼굴이었다. 햇빛에 깎이고, 씨를 뿌려놓은 밭처럼 고랑이 파인 얼굴은 빵이나 지구처럼 둥글둥글한 데가 있었다. 바람에 그을려 까칠까칠해진 얼굴에서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두 눈은 강인함과 온유함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180]

스페인은 건조하고 바위가 많은 나라다. 수직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들판에서 불꽃을 일으키고 먼지 자욱한 빛의 성곽을 만들어 낸다. 스페인의 진정한 강은 시인들이다. 케베도의 시는 깊은 초록색 물과 거품이며, 칼데론의 시는 강물처럼 노래하는 음절이며, 아르헨솔라 형제의 시는 수정처럼 맑은 물이며, 공고라의 시는 루비 강이다.[181]

마치 자기가 쓴 책갈피 속에 납작하게 눌려 있다가 누런 종이 물이 든 채로 걸어 나온 사람 같았다.[182]

로르카는 진정한 시인이었다. 우아한 기품과 천재성, 뜨거운 가슴과 맑은 폭포수가 그렇게 완벽하게 결합된 시인은 아직까지 보니 못했다. 로르카는 사방에 빛을 뿌리는 요정이었다. 가슴에 모아 둔 기쁨을 주변에 퍼뜨리며 행성처럼 삶의 행복을 반사하는 사람이었다. 순진하고 재미있고 세계적이고 지방적이고 독특한 음악가이고 명석하고 겁이 많고 미신적이고 명랑하고 고상한 로르카는 스페인 역사에서 개화한 민중 문화를 한눈에 보여 준 시인었다. 또한 아랍-안달루시아 전통을 계승한 시인으로, 자유로운 스페인이라는 저 무대에서(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재스민 나무처럼 빛을 발하고 향기를 내뿜었다..... 연극에서나 시에서나 군중 속에서나 사교 모임에서나 미를 증폭시키는 사람이었다. 그토록 마술적인 손재주를 지닌 사람을 본 적이 없으며 그토록 명랑한 친구를 만난 적도 없다. 로르카는 언제나 웃었고 노래했고 악기를 연주했고 팔딱팔딱 뛰었고 창조했고 번뜩이는 재치를 발휘했다. 온갖 재능을 타고났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시를 모으는 수벌처럼 부지런히 일했다.[187]

“이봐.” 로르카는 내 팔을 붙잡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저 창문 보이지? “초르파텔리코’하지 않아?“
“초르파텔리코가 무슨 뜻인데?”
“나도 몰라. 하지만 초르파텔리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쯤은 알아야지. 그런 것도 모르면 안 되지. 저 개 좀 봐. 정말 초르파텔리코하군.”[187]

지성사에서 스페인 내전만큼 시인들에게 풍부한 소재를 제공한 사건도 없다. 스페인 사람들이 흘린 피는 한 시대의 시를 요동치게 만든 자기장 같았다.[195]

그러나 시는 죽지 않았다. 시는 동요에 등장하는 고양이처럼 목숨이 일곱 개나 되는 불사신이다. 시를 괴롭히고 길거리로 끌고 다니고 침을 뱉고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 졸라 죽이려 들고 추방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총알을 난사해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갓 씻은 해맑은 얼굴을 보이고 갓 찧은 쌀알 같은 웃음을 짓는다.[210]

순수한 시의 혈통을 이어받은 알베르티는 세계적인 위기의 순간에 시는 유용한 공공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이 점에서 마야코프스키와 유사하다. 유용한 공공재로서 시는 힘, 애정, 기쁨, 진정한 본질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갖지 못한 시는 소리야 나겠지만 노래하지는 못한다. 알베르티 시는 항상 노래한다.[212]

시가 우리 인간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을까? 시가 인류의 투쟁에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껏 사는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영역을 실컷 걸어 왔다.이제는 걸음을 멈추고 휴머니즘의 길을 찾아야 한다. 비록 휴머니즘이 현대 문학에서 추방되었다고는 하나 인간 준재의 염원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214]

암울한 그 시절 나는 혁명과 같은 지각 변동은 두려워하면서도 전쟁이라는 치명적인 독소가 숨쉬는 공기와 먹는 빵에 스며들어도 수수방관하는 유럽인들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익숙해졌다[227]

< 긴 여행 >
최초의 탄환이 스페인 기타를 관통하고 거기서 음악 대신에 피가 솟구쳐 나오자 내 시는 인간의 절망이 널브러진 길 한가운데 유령처럼 서성거렸고, 시에서는 무수한 뿌리가 생겨나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것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
그러자 세상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영원해졌다. 이제 우리는 대지 위에 당당히 발을 딛고 서 있다.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무한정 소유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 어떤 신비도 찾지 않는다. 우리들이 바로 신비이기 때문이다. 내 시는 끝없이 광활한 세상의 일부가 되고, 바다 속과 지하 세계의 일부가 되고, 놀라운 식물 세계로 들어가고, 대낮에도 유령과 대화를 나누고, 땅속 깊은 곳에 숨겨진 광물을 탐색하고, 가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맺어 주고 있다. 대기가 어두워진다. 가끔씩 인광과 공포로 충전된 번갯불이 환하게 빛난다. 명확한 언어, 진부한 언어와 전혀 무관한 새로운 구조물이 공중에 모습을 드러낸다. 내 시에서 가장 신비로운 재료로 만든 새로운 대륙이 솟아나고 있다. 나는 이 대륙에 정착하고, 이 대륙에 이름을 붙이고, 신비한 해안선을 만져 보고, 파도를 잠재우고, 동물들이 사는 땅을 둘러보고, 지형을 측량하는 데 어둡고 고독하고 아득한 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228, 229]

그곳 여자들은 나비처럼 옷을 입었고, 공기 속에는 꿀과 설탕의 향기가 그윽했다.[240]

역사는 정복자들이나 정복을 향유하는 자들이 쓴다.[251]

나는 돌로 만든 세계의 배꼽, 당당하게 치솟은 세계의 배꼽, 이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세계의 배꼽,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나 자신도 속해 있는 세계의 배꼽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나는 칠레인이자 페루인이고 아메리카인이라고 느꼈다. 저 험준한 봉우리에서 영욕의 세월을 거친 유적을 돌아보며 나는 추후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시집 『마추픽추 산정』은 이렇게 태어났다.[256]

강가에 펼쳐진 숲속에 들어가면 주변 풍경이 말을 걸어온다. 그러나 사막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나는 사막의 언어, 다시 말해서 침묵을 이해할 수 없었다.[259]

내 시와 삶은 아메리카 대륙의 강처럼 흘러갔다. 남반구의 깊은 산속에서 발원하여 쉼 없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칠레의 거친 물살처럼. 내 시는 그 물살에 떠내려가는 어느 것 하나도 배척하지 않았다. 열정을 흡수하고 신비한 세계를 천착하며 민중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주었다.
고통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빵도 맛보고 피도 맛보았다. 시인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시를 위해 살아왔고, 시는 내 투쟁의 밑거름이었다.[262]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혹독한 겨울 추위와 거센 눈보라에 덜미를 잡혀 죽었는지 모를 일이었다.[278]

문득 머릿속에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논쟁이 떠올랐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는 복잡하고도 터무니없는 논쟁에 끼어든 마크 트웨인은 이런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그 희곡을 쓴 사람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다른 영국인입니다. 다만 우연히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나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죽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 이름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였습니다.”[286]

작가의 작업도 저 얼음 낚시꾼의 작업과 공통점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강을 찾아야 한다. 만일 강이 얼어붙었다면 끌로 구멍을 파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한 비판을 견뎌 내고 조소를 이겨 내야 한다. 또한 깊은 강물을 찾아 적절한 낚시바늘을 던지고 끝없는 노력을 경주한 다음에 아주 조그마한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낚시를 던지고 추위와 고통을 견뎌 내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300]

세관에서 문제가 발생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302]

중국인은 세상에서 가장 잘 웃는 사람들이다. 혹독한 식민 시대와 혁명, 기아와 학살을 겪었으나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잘 웃는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인구가 수확한 가장 귀중한 쌀은 어린아이의 웃음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웃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노란색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농부들과 대다수 민중들이 이런 웃음을 짓는다. 다른 하나는 코 밑에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웃음이다. 이는 관료들의 웃음이다.[314]

이 시집 때문에 그 무렵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델리아 델 카릴이 상처를 받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델리아 델 카릴은 격동의 시기에 꿀처럼 달콤하고 강철처럼 강인한 실로 내 손을 묶어 놓은 상냥한 반려자였다. 지난 18년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동반자였다. 그러나 느닷없는 정열로 불타오르는 이 시집은 유순한 그녀가 보면 돌팔매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익명을 고집했던 근본적이고, 개인적이고, 존경할 만한 단 하나의 이유이다.[325]

둘(소년과 양)은 혼연일체였다. 대지의 탯줄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336]

도덕적 분위기는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의 대기처럼 맑고 투명했다.[353]

칠레 남부의 높고 푸른 산을 가로지르는 그 철교는 코이푸이 지방의 바람이 연주하는 강철 바이올린 같았다.[354]

< 시 >
시는 이미 독자와 관계가 끊어졌다. 이 관계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 인간의 가슴을 만나고, 여인의 눈을 만나고, 길거리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노을을 쳐다보거나 한밤중에 별을 바라보며 시 한 구절을 읊조리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이렇게 문득 찾아든 시는 우리 시인들이 그동안 읽고 배우느라 투여한 갖은 고생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보람 있는 일이다. 우리 시인들은 낯선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해변에서, 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386]

언어와 한평생 같이 살다 보면 친근감이 몸에 배어 언어를 잡아당겨 보고, 탐구해 보고, 머리카락과 배를 뒤져 보게 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스페인어를 다루었다. 구어도 색다른 맛이 있으나 문어 또한 예상 외로 맛깔스러운 면이 있다. 작가의 개성은 언어를 옷이나 피부처럼 사용함으로써, 소매나 기운 자국이나 땀이나 핏자국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것이 문체이다.[387]

합리와 비합리라는 양극단은 시 내부에서 부단히 다투고 있으며 한번은 이쪽이 승리하고 다음번에는 저쪽이 승리한다. 하지만 시 자체는 결코 패하는 법이 없다.[394]

시란 인간의 심오한 감성에서 우러나온다. 바로 이런 감성에서 예배와 찬송이 우러나왔고, 나아가서 종교가 탄생했다. 시인은 갖가지 자연 현상과 대담하게 맞섰고, 원시 시대에는 사제라는 이름으로 직책을 유지했다. 근대에 이르러는 자신의 시를 방어하기 위해 일반 대중이 부여한 자격을 등에 업었다. 오늘날 시민사회에서도 시인은 여전히 고대의 사제 행세를 하고 있다. 옛날에는 어둠과 결탁했다면, 이제는 빛과 함께해야 한다.[395]

나는 독창성을 믿지 않는다. 독창성이란 급속도로 몰락해 가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미신에 불과하다. 나는 개성을 믿는다. 예술 창조에서 어떤 언어와 형식을 사용하든, 또 예술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개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독창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관념은 근대의 발명품이자 속임수의 산물이다.... 위대한 창의력이 발현되는 순간에 창작한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외적인 압력이나 이전의 독서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얼마간은 타인의 것이다.[395, 396]

술을 마시면 빈곤마저도 다음 날 아침까지는 황금처럼 눈부시게 빛났다.[397]

나는 집에다가 크고 작은 장난감을 많이 모아두었다. 모두 내가 애지중지 여기는 수집품이다. 놀지 않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지 않는 어른은 자신 속에 살고 있는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리며, 끝내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집도 장난감처럼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다.[399]

겉모습은 건강하고 지구의처럼 통통했으나 안색이 안 좋았다.[408]

스웨덴 한림원 회원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하고 있는 논의에 대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기자들은 억지를 부려서라도 마른 장작에서 수액을 짜내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444]

남아메리카 대륙의 9월은 꽃이 활짝 피어나는 시기이며 깃발로 뒤덮이는 때다.
19세기 초, 그러니까 1810년 9월에 남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는 스페인 식민 통치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거나 계획했다.
이 9월에 우리 남아메리카인들은 해방을 기념하고, 독립 영웅들을 기리며, 마젤란 해협을 넘어 남부 파타고니아와 케이프 혼까지 펼쳐지는 봄을 즐긴다.....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이르기까지 연쇄적으로 발생한 독립운동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459]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인들은 선택해야 했다. 그 선택은 “장미꽃 침대”가 아니었다. 잔혹하고 부당한 전쟁, 지속적인 억압, 자본의 침투와 같은 불의가 갈수록 분명하게 드러난다. 쇠망기에 접어든 자본주의는 조건부 자유, 성, 폭력, 할부 판매를 미끼로 유혹한다.[473]

체 게바라에게 내 시집 『모두의 노래』에 얽힌 얘기를 듣고 기분이 우쭐해졌다.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밤마다 내 시를 게릴라들에게 읽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체가 죽는 순간까지도 내 시집을 갖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볼리비아 산 속에서 활동하던 체는 마지막 순간까지 책 두 권을 배낭에 넣고 다녔다. 한 권은 수학책이고, 또 한 권은 『모두의 노래』였다.[478]

< 공산주의자들 >

당에 입당하고 나서 십수 년이 흘렀는데, 지금도 만족스럽다. 공산주의자들은 가족처럼 지낸다. 풍파에 시달려 피부는 거칠어졌어도 마음만은 따뜻한 사람들이다..... 어딜 가나 공산주의자들은 매를 맞는다. 오로지 공산주의자들만 얻어맞는다. 정신주의자들 만세, 왕정주의자들 만세, 일탈자들 만세, 온갖 종류의 범죄자들 만세, 알맹이 없이 냄새만 피우는 철학 만세, 짖어대고 물어뜯는 개들 만세, 엉큼한 점성술사 만세, 포르노그래피 만세, 냉소주의 만세, 배신자 만세, 모든 사람들 만세, 단 공산주의자는 제외하고..... 정조대 만세, 500년 동안 이념의 발바닥을 씻지 않은 보수주의자들 만세, 빈민가에 득실거리는 이 만세, 집단 매장 만세, 무정부적 자본주의 만세, 릴케 만세, 『코리돈』(동성애를 다룬 소설)을 발표한 앙드레 지드 만세, 온갖 종류의 신비주의 만세, 무엇이든지 다 좋고, 모두 다 영웅이다. 무슨 신문이든지 다 발행해야 한다. 누구든지 출판할 수 있다. 단, 공산주의자는 예외다..... 모든 정치인은 자유롭게 산토 도밍고(도미니카 공화국의수도)에 들어올 수 있다. 모두들 흡혈귀 같은 트루히요(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의 죽음을 축하할 수 있다. 그러나 트루히요에게 맞서 처절하게 투쟁한 사람들은 제외하고..... 카니발 만세, 한창 달아오른 카니발 만세, 누구든지 변장할 수 있다. 기독교 이상주의자 변장, 급진 좌파 변장, 자선 단체 사모님 변장, 구호 단체 여걸 변장도 좋다. 그러나 공산주의자가 입장하지 못하게 주의하라. 문단속 잘하고, 실수하지 않도록.... 공산주의자들은 아무런 권리도 없다. 우리는 주관적인 것, 인간의 본질, 본질의 본질을 걱정하자. 그러면 우리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누린다. 자유란 얼마나 위대한가! 공산주의자는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우리는 본질을, 본질을 걱정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
......
한편, 태양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이 낡은 체제를 제외한 모든 것이 변화하려고 몸부림친다. 이 낡은 체제는 중세의 거대한 거미줄에서 태어났다. 쇠보다 단단한 거미줄에서, 그러나 변화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를 쟁취하고, 변화를 꽃피운 사람들이 있다..... 제기랄! 속절없이 봄이 와 버렸네![492, 492]

나는 시가 무언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쓰고 있었다. 시에 대한 정의라든가 시 경향에 관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학에 관한 논의는 죽기보다 싫다. 미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문학 작품의 탄생 경위 파악이나 사후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낀다. 월트 휘트먼은 “외부적인 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기 바란다.” 라고 말했다. 부가적인 요소도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나 벌거벗은 창조 행위를 대신할 수는 없다.[495]

나는 군중에게 인생을 배웠다. 시인의 타고난 수줍음으로, 수줍은 사람의 두려움으로 군중에게 다가가지만, 그 품에 안기는 순간 나는 본질적인 다수의 한 부분으로, 거대한 인간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으로 변모한다..... 나는 군중이라는 거대한 물결에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정한 눈길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모든 시인이 이런 경험을 할 수는 없으나, 한번 경험한 사람은 이를 가슴에 간직하고, 작품으로 풀어 놓을 것이다. 단 1분이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으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뭉클한 경험이다.[496]

아옌데는 칠레의 또 다른 지하 자원인 구리를 국유화했다는 이유로 암살당했다. 두 경우 모두 과두지배 세력이 피비린내 나는 정변을 일으켰으며, 두 경우 모두 군이 사냥개 역할을 했다. 발마세다의 경우에는 영국 기업이, 아옌데의 경우에는 미국 기업이 이 같은 군부의 만행을 조장하고 후원했다.
두 경우 모두 대통령 관저는 저명한 ‘귀족들’ 명령으로 파괴되었다. 발마세다 관저는 도끼로 부셔 버렸고, 아옌데 관저는,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용감한 우리 공군이 폭격했다.[515]

옮긴이의 말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다.
- 파블로 네루다

네루다에게 시는 삶의 전부였다. 시가 뭔지도 모를 때부터 시를 노래했고, 암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시를 구술했다.
이처럼 네루다를 끊임없이 노래하게 만든 영감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거의 모든 비평가가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듯이, 대자연이다. 산과 숲, 벌판과 꽃, 식물과 동물, 하늘과 땅, 비와 바람이다. 여인의 육체를 탐닉하는 시에서는 물론이고, 끈끈한 고독이 묻어나는 시, 분노와 함성이 메아리치는 시, 그리고 일상적인 사물의 소박한 정취를 노래한 시에서도 항상 텁텁한 흙냄새가 나고 신선한 초목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렇기에 네루다 또한 이렇게 고백한다. “아마도 사랑과 자연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시의 근원이었던 것 같다.”[534]

이 회고록에서 네루다가 특별히 강조하는 사랑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민중에 대한 사랑이다. 계기는 1936년에 시작된 스페인 내전.... 네루다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때부터 내 길은 다른 사람들의 길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고독이라는 남쪽에서 민중이라는 북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내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내 보잘것없는 시는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어, 무거운 고통으로 흘린 땀을 닦아 주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다.” 이렇게 사회와 인간에 눈을 뜬 네루다는 한평생 사회적 약자들, 버려진 영혼들,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노래하고 투쟁했다.[535]

히틀러와 프랑코로 상징되는, 전 방위적이고 무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인 폭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저항 세력이 공산주의였던 것이다. 그리고 엘뤼아르와 마찬가지로 네루다에게도 공산주의는 권력이 아니었다. “시와 삶을 통해 인간의 가치와 인본주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536]



3. 내가 저자라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시인 또는“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불리워 지는 네루다 자서전은 책 한권 전체가 시라고 할 만큼 시적인 향취로 가득하다.

네루다는 서두에 자기 자서전의 성격과 기술 방법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 책에 수록된 회고랄까 추억은 듬성듬성하다. 간혹 잊어버린 일도 있다. 바로 그런 게 인생이다. 우리는 듬성듬성 꿈을 꾸기 때문에 힘든 삶을 견뎌 낸다. 그런데 기억해 내는 순간 희미해지고 먼지처럼 흩날리는 추억이 너무 많다. 마치 산산조각 나 버린 유리 같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의 회상과 시인의 회상은 다르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은 치열한 삶보다는 생생한 삶을 그리려 하기 때문에 지난 일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반면 시인은 자기 시대의 불꽃과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환영들을 보여준다.
나는 어쩌면 내 자신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 지면에 남긴 내 글에서(가을철 수목이나 수확기의 포도처럼) 죽음을 맞는 노란 낙엽이 떨어질 것이고 신성한 포도주로 새 생명을 얻는 포도가 떨어질 것이다.
내 인생은 시인의 여러 경험으로 이루어진 삶이다.“[13]

이 책을 읽으면서 도입 부분 4, 50페이지를 읽는 동안 잘 읽히지 않아 답답했다. 시를 쓰는 듯한 수많은 은유와 화려한 수식이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잘 와 닿지 않았다. 칼의 노래를 처음 읽을 때도 그랬다. 내가 시를 많이 읽어보지 않았고, 시적(은유적) 표현에 익숙하지 못한 때문이리라. 칼의 노래에서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이 책에서 느낌의 강도가 훨씬 심했다. 하지만 조금씩 진도가 나가면서 작가의 문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은유를 읽으면서 음미할 마음의 준비가 갖춰지고 나자, 책을 읽는 느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 이후에는 아름다운 문장이 눈에 들어오고, 책 속에 빠져 들어가는 느낌을 갖을 수 있었다. 책의 성격에 따라, 표현 방법에 따라 독자가 받아들이는 데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구나... 하는 점을 실감했다.

이 책은 저자가 모두에 밝혔듯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 사건, 사랑, 시, 창작과 비평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에세이식으로, 단편적으로 기술함으로써 네루다의 인생 전체를 조감해 볼 수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흔히 자서전이 그렇듯이 연대순으로 작성된 것 같지만 꼭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쓴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11장 “시는 직업이다”에서는 시에 대한 네루다의 전반적인 견해와 비평가에 대한 반론 등을 통해 자신의 시에 대한 사상적 기반을 보여주기도 한다.

연구원 과제를 하면서 시인이 쓴 책을 처음 읽었다. 난 시를 잘 알지도 못하고, 시를 읽으면서 좋다는 느낌을 갖은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 책에서 나타나는 시적 표현들은 참으로 놀랄만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굵직한 선 두 가닥이 가무잡잡한 얼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나는 수직으로 그어진 칼자국이었고 다른 하나는 수평으로 그어진 새하얀 웃음이었다.[20]

산동네에서는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91]
저 위 산동네에서는 빈곤이 만발했다. 역청도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덩달아 기쁨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동네였다. 해안을 뒤덮고 있는 기중기, 선창, 부두 노동은 덧없이 지나간 행복한 시절에 그려 놓은 마스카라 같았다.[94]

나는 그때를 가장 빛나던 시기로 기억한다. 마치 어마어마하게 밝은 번갯불이 창문 밖에 머물면서 내 운명의 안팎을 속속들이 비춰 주는 것 같았다..... 밤이 되면 바다의 음악은 더욱 커졌다. 아침이면 방금 세수하고 나타난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압도했다.[139]

반제르는 대영제국의 탁월한 산물이었다. 즉, 우아한 철면피였다.[147]

마치 자기가 쓴 책갈피 속에 납작하게 눌려 있다가 누런 종이 물이 든 채로 걸어 나온 사람 같았다.[182]

그러나 시는 죽지 않았다. 시는 동요에 등장하는 고양이처럼 목숨이 일곱 개나 되는 불사신이다. 시를 괴롭히고 길거리로 끌고 다니고 침을 뱉고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 졸라 죽이려 들고 추방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총알을 난사해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갓 씻은 해맑은 얼굴을 보이고 갓 찧은 쌀알 같은 웃음을 짓는다.[210]

그곳 여자들은 나비처럼 옷을 입었고, 공기 속에는 꿀과 설탕의 향기가 그윽했다.[240]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혹독한 겨울 추위와 거센 눈보라에 덜미를 잡혀 죽었는지 모를 일이었다.[278]

중국인의 웃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노란색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농부들과 대다수 민중들이 이런 웃음을 짓는다. 다른 하나는 코 밑에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웃음이다. 이는 관료들의 웃음이다.[314]

둘(소년과 양)은 혼연일체였다. 대지의 탯줄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336]
도덕적 분위기는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의 대기처럼 맑고 투명했다.[353]
칠레 남부의 높고 푸른 산을 가로지르는 그 철교는 코이푸이 지방의 바람이 연주하는 강철 바이올린 같았다.[354]

언어와 한평생 같이 살다 보면 친근감이 몸에 배어 언어를 잡아당겨 보고, 탐구해 보고, 머리카락과 배를 뒤져 보게 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스페인어를 다루었다. 구어도 색다른 맛이 있으나 문어 또한 예상 외로 맛깔스러운 면이 있다. 작가의 개성은 언어를 옷이나 피부처럼 사용함으로써, 소매나 기운 자국이나 땀이나 핏자국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것이 문체이다.[387]

술을 마시면 빈곤마저도 다음 날 아침까지는 황금처럼 눈부시게 빛났다.[397]

네루다의 은유는 인간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을 주로 자연 현상으로 표현하는 은유이다.
가난을 폭포수로, 빈곤이 (꽃 처럼) 만발하고, 빈곤이 눈부시게 빛나는 등... 은유는 참 재미난 표현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은유적 표현을 연습해 봐야겠다.


페이지 수가 두꺼운 책을 읽을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 책도 500페이지를 넘어가다 보니 책 후반부에 들어 지루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가, 작가 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라틴아메리카 역사나 남미의 정치가, 공산주의자,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지 못한 본인 입장에서 보면, 그 내용들이 복잡하고 쓸데없는 장광설로 느껴질 뿐이었다. 다만, 저자의 화려한 수식과 표현을 들춰보는 재미를 제외하면 말이다.

칠레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지 못하지만, 책 후반부에 나오는 군사 구테타에 관한 내용을 보면서, 칠레는 정치가 뒤죽박죽인 형편없는 나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노벨 문학상 작가가 나올 수 있었는지... 우리나라에서도 빨리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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