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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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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9일 22시 13분 등록
I. 저자에 대하여
오쇼 라즈니쉬

그에 대해서라면 ‘삶의 길 흰구름의 길’이라는 책을 통해 잠깐 만나본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좋은 말들로 이루어진 책이나 너무나 졸음이 쏟아지는 바람에 앞장에서 그만 손을 놓아버린 인연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자서전을 통해 만나 본 그는 책에서 받았던 인상과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더욱 흥미롭고 악동같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가 주는 이야기들은 공감이 가기도 하고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와 욕구를 내게 주기도 했다.

컬트 교주, 사기꾼, 프리섹스 주의자??
그는 사기꾼으로 평가 받기도 하고 섹스구루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새로 들어온 여성 신자들에게 차크라 상태를 확인해 본다며 알몸이 되기를 요구하기도 하고, 수 많은 여성 신도와 성관계를 맺기도 했다. 사람에 대한 소유욕을 갖지 말라는 공공연한 본인의 가르침에 반하여 자신의 프랑스 연인인 비베크와는 신성불가침의 것이라 여기가 유지시켜 나갔다는 그.. 그는 또한 총 93대나 되는 롤스로이스 자가용, 비행기, 궁전 같은 저택등을 향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음의 안정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많은 환각제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들려 주는 이야기 자체는 나를 알며 나의 근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이슈를 던지는 것에서는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그는 비록 자서전을 통해서이지만 그 스스로도 자주 이야기했던 촉발자로서의 스승의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그는 깊이 살고자 하며 넓게 살고자 했던 평소의 어렴풋한 소망들에 다가서는데 조금 더 의욕과 동기를 부여해 준다. 종교에 대해 회의적인 나에게 그가 설명하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와 한계점등은 공감 100%이고 자신을 알도록 노력할 것이며 자신에게서 진리가 나온다는 말은 이미 붓다의 시대에 나온 개념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명상의 방법론들과 엮여지면서 업그레이드 된 실천적인 모습이 신선하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제자들이 꽤 있다. 유명 예술가 중에서는 홍신자, 류시화 시인등이 대표적인인데, 홍신자의 경우 1976년 인도 방랑길에 만난 오쇼를 만나고 “춤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라"는 말을 듣고 사명감을 가지고 '명상무용'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고도 한다. 또 시인 류시화는 ‘삶의 길 흰구름의 길’이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그는 오쇼를 공공연하게 정신적 스승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사실 개인에 대한 긍정적이고 매력적인 부분들만을 한껏 담은 자서전 한 권을 읽고, 한편으로는 그의 반대파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듣고선 그를 판단하기에는 내가 아직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하다. 설사 사기꾼이나 민감한 단어인 프리섹스 주의자등으로 불린다 할지라도 그가 제시하는 개념들이 나에게 유용하고 나를 아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는 분명 나에겐 훌륭한 현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그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판단하기에 앞서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볼 만한 개념,화두,방법들을 던져준 사람으로서 만족해야 하지 않을 까 싶다.

<약력>
- 본명 : 라즈니쉬 찬드라 모한 자인 (힌디어: रजनीश चन्द्र मोहन जैन)
- 출생지 : 인도
- 직업 : 신비가, 구루, 철학자
- 1931년 12월 11일 : 출생
- 1953년 3월 21일 : 깨달음
- 1957~1970년 : 대학 교수, 대중 연설가 시절
- 1970년대 : 제자를 받으며 정신 지도자로서의 삶을 시작
- 1990년 1월 19일 : 사망
- 주요 저서 : 삶의 길 흰구름의 길 / 노래하고 춤추는 신 크리슈나 / 신심명 / 뱀에게 신발 신기기 / 틈 / 아이를 더 크게 사랑하는 법 / 명상의 길 / 과녁 / 탄트라 / 지금 여기에 살아라 / 자유로운 여성 / 신 탄트라 - 성에서 초의식까지 / 또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 1 / 지혜는 어리석음을 먹고 자란다 /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 / 나를 찾으려 애쓰지 말라 / 사랑의 흐름은 아직 인간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다등 총 600권
- 관련 사이트 : http://www.osho.com/index.cfm


II.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편집자 서문
9p 그는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신문기사 모음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진리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10p 오쇼가 시대를 앞서 온 사람이라는 것은 아직도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시대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독특한 선견과 통찰력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그를 따라왔다는 것이다.

13p 그는 자신이 어떤 전통의 일부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가 가고난 뒤에 그의 주위에 어떤 전통도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력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두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13p 결국 오쇼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때에만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그 도전을 건네면서, 그는 우리가 그의 삶으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배우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지점까지만 그것이 의미 있음을 깨달으라고 한다.


서문
14p 역사학은 진실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진실은 물질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아직 의식의 사건들을 다루기에 충분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 인간은 시간 너머에서, 공간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에, 다른 말로 하면 마음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고 그만큼 통찰력을 갖추지 못했다.

15p 미래의 새로운 역사학은 고타마 붓다가 깨달았을 때 그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심을 둘 것이며, 깨달음 후 그가 42년 간 육체 안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에 관심을 둘 것이다. / 이 이야기는 내적인 사건들의 기록이다.


PART ONE. 평범한 인간 - 전설 뒤의 숨은 역사
19p 영성은 결코 군중 속에 있지 않으며 언제나 홀로 있다.dhosigkaus 군중은 결코 어떤 진리도 발견했던 적이 없기 떄문이다. 진리는 오직 홀로 있음 속에서만 발견되어 왔다.

20p 나에게 있어 영성은 단지 자신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25p 그 어린 시절 동안 나는 너무나 외로웠고 그래서 나는 그 외로움을 즐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28p “이 아이가 우리에게 영향 받지 않도록 해요. 우리가 이 아이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겠어요?기껏해야 우리처럼 만들 수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아이에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해요.


30p “.. 7년 동안 만큼은, 아이는 단지 자신의 타고난 자아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우리는 끼어들지 않을 거예요”

36p 명상은 마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명상은 마음을 넘어서 있는데 반해서 종교는 오직 마음뿐이다.

40p 스승은 그 스스로 알았고 자신이 안 것을 나누어준다. 선생은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을 고스란히 세상에 전해준다. 그러나 그 자신은 아직 알지 못한다.

40p 만트라는 말한다. '나는 자신을 안 모든 사람들의 발밑에 절합니다.' 내가 아는 한 이것은 절대적으로 비종파적인 유일한 만트라이다.

42p 그녀는 말했다. “ 나 자신도 종교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만트라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 만트라가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전부이구나. 이것이 전통적인 자이나교 만트라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아름다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수없이 암송했고 MEOAKEK 한없는 평화를 발견했다. 진리를 안 모든 사람들의 발 밑에 절하는 그 느낌 속에서 한없는 평화를 발견했다. 나는 네게 이 만트라를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43p 그 아이들에게 그대의 이른바 지식을 물려주지 말라. 그대 자신이 먼저 순진무구해져야 하고, 거짓 없이 진실해져야 한다.

46p 마르셀은 말한다. ‘자살만이 단 하나의 진정한 철학적 질문이다’

51p 지식은 그대를 매우 교활하게 만든다. 나는 교활하지 않았다. / 나는 교육받지 않은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물을 수 있는 질문을 했을 뿐이었다. 교육은 인간이 불쌍한 어린아이들에게 저지른 가장 큰 범죄이다.

53p 타고난 말썽꾸러기가 아니고서는 붓다가 될 수 없다.

54p 사실 나는 동양과 서양, 높은 것과 낮은 것, 남자와 여자, 선과 악,신과 악마를 나누지 않는다. 그렇다 몇 번을 물어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나누지 않는다. 나는 이제까지 나누어졌던 모든 것을 다시 합친다. 그것이 나의 일이다. / 나는 모든 종류의 자기 학대에 대해서 알레르기가 있다. 나는 모든 인간이 한껏 살기를 바란다. 최소한은 나의 길이 아니다. 최대한도로 살아라. 만약 최대한도마저 넘어갈 수 있다면 더 환상적이다. 가라! 기다리지 마라!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55p 어떤 의미에서 그 날은 나의 모든 향기, 나의 모든 삶을 결정 지은 날이었다.

56p 언제나 자신에게 진실한 나니는 말했다. "바꾸기에 너무 늦는 법은 없어요. 당신의 선택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바꾸세요. 사실 당신은 늙어가고 있으니까 더 빨리 바꿔야 해요. 늙었으니까 바꿀 수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젊은 사람은 바꾸지 않을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늙은 사람은 그럴 수 없어요. 그리고 당신은 이미 충분히 늙었어요."

62p 그녀는 말했다. "네 질문은 틀렸다. 사랑에 빠지는 데는 '왜'가 없다. 나는 그저 그를 보았고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의 눈을 보았고 내 안에서 신뢰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신뢰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63p 나의 비전 속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가 그녀를 통해서 온다. 그녀는 지금의 내가 있도록 모든 방법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64p 할머니는 말했다. “ 걱정 마라, 얘야. 대학에 가거라. 가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라. 내가 멀쩡히 살아 있으니 너 자신이 되는 것을 돕기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지 팔 것이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는 묻지 않겠다.”

67p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나는 오직 한 가지 놀이만을 사랑했다. / 나의 관심은 언제나 똑같았다. 궁극적인 진리가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인지,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69p 사랑 없이는, 죽음은 그대에게 존재로 가는 열쇠를 주지 않는다. 사랑이 있을 때, 죽음은 그대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통하는 열쇠를 건네준다.

71p 첫 7년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대는 결코 다시는 그처럼 큰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

76p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랑자가 되기를 선택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겠어요. 능력이 있으면서도 말이에요. 그렇다면 방랑자라고 해도 존경받을 만해요. 존경은 직업과는 아무 관계도 없으니까요. 존경은 그 사람의 행동이 힘과 명료함, 지성으로부터 나오고 있느냐와 관계가 있어요.

85p 나는 나의 지성을 예민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기회를 나의 지성과 개성을 가다듬는데 이용했다.

93p "교육 따위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어요. 하지만 저의 자유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어요. 아무도 이유 없이 저를 괴롭힐 수 없어요. 저에게 교육법전을 보여주세요. 저는 읽을 수가 없으니까 모든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데요 창 밖을 내다보는 게 법에 어긋나는지 알려주세요."

99p 나는 밤의 어둠 속에서 별들과 함께 강을 보며, 대양을 향해 흐르는 강물과 함께 춤을 추었다. 나는 이른 아침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강을 보았다. 나는 보름달 속에서 가을 보았다. 나는 일몰과 함께 강을 보았다. 나는 강기슭에 홀로 앉아, 혹은 친구들과 함께, 혹은 피리를 불며, 혹은 강기슭에서 춤을 추며, 혹은 강기슭에서 명상을 하며, 혹은 그 안에서 배를 저으며 혹은 강을 가로질러 수영을 하며 그 강을 보았다. 빗 속에서도, 겨울에도, 여름에도,…..

100p 그대라 흐르는 것들, 움직이는 것들과 사랑에 빠지게 될 때, 그대는 삶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다. 현대인은 아스팔트길, 시멘트와 콘크리트 건물들과 함께 산다. 이러한 것들은 명사들이다. 기억하라. 이러한 것들은 동사들이 아니다.

101p 나는 언제나 모든 것이 나의 소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105p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결과가 어찌되든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옳든 그르든 나는 나 자신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설사 내가 결국 지옥으로 가고 만다고 해도 적어도 나만의 삶의 길을 따랐다는 만족감만은 가지게 될 것이다.

115p 몇 번쯤 넘어지고, 다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은 좋다. 몇 번쯤 길을 잃는 것은 좋다. 해가 될 것은 없다. 그대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돌아오라. 삶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

119p "제발 선생님의 갈 길만 가주세요. 선생님의 과목이 아니면 어떠한 조언도 제에게 하지 말아주세요. 그래야 저 자신의 방법으로 저의 삶을 탐험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저는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거예요. 저는 기꺼이 실수와 잘못을 저리를 거예요. 그것만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125p "저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요. 잘 아시잖아요. 저는 단지 볼 뿐이에요. 그리고 선택의 문제는 없어요. 저는 제가 뭘 공부하게 될지 알아요. 그것은 어떤 직업이 더 유리할지 저울질해볼 문제가 아니에요. 거지가 될지라도 해도 저는 철학을 공부할 거예요."

127p 나는 말했다. "괜찮아요. 왜냐하면 저는 그 모든 조언들을 결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저는 결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제가 하려는 일이 무엇이었든지, 저는 누가 뭐래도 그것을 했을 거예요. 그러니 죄의식을 느끼지 마세요. 저는 결코 여러분들의 조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본 적이 없어요. 그 말들을 듣고 있기는 했지만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저는 제 속에 하나의 결정을,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140p 만약 그대가 죽음을 받아들였다면 두려움은 없다. 만약 그대가 삶에 집착한다면 그때는 모든 두려움이 거기 있다.

141p 내가 파리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기로 결정한 순간, 짜증은 사라졌다. 파리들은 여전히 몸 위에 있었지만 나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파리들이 마치 다른 누군가의 몸 위를 움직이고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즉시 하나의 거리가 생겼다.

146p "온 집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구나. 시장에 가서 야채를 좀 사올 사람이 필요한데." 나는 어머니 바로 앞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다. "혹시 누군가를 보게 되면 이야기할게요."

147p 나는 그들이 나를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준 것이 한없이 행복했다.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자유를 주었다. 아무도 나에게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대에게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을 때, 그대는 침묵에 빠진다. 세상이 그대를 그대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제 그대 쪽에서도 아무런 기대가 없다.

149p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나는 깨달음의 문을 찾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생의 어린 시절 중에서 깨달음을 찾고 있지 않았던 날은 단 하루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150p 나는 내가 무(無)가, 아무도 아닌 자가, 하나의 부재(不在)가 된 것이 기뻤다. / 나의 모든 관심은 나 자신 속으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153p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것은 내가 미쳤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았기 때문이다. 일년 동안 그것은 계속되었다. / 끊임없이 나는 잊어버리곤 했다. 내가 다시 초점을 되찾는 데는, 다시 시각을 찾게 되는 데는 일년이 걸렸다.

159p 나는 여러 생을 통해서 깨달음을 위해 몸부림 쳐 왔다. / 그러나 언제나 실패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대의 본성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얻어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야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마음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돈을 원하고, 권력을 원하고, 명성을 원한다. 그리고 마침내 외적인 일들에 질리게 되면 마음은 깨달음을, 해탈을, 니르바나를, 신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똑같은 욕망이 돌아온 것뿐이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160p ‘내가 깨달음을 얻은 날’이라는 말은 단순히 성취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날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 신은 어떤 것도 불완전하게 창조하지 않는다. / 신은 결코 불완전 한 것을 창조하지 않는다.

164p 노력은 필요하다.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노력만 가지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68p 희망 없음, 그러나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의 희망 없음이었다. 희망이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절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양쪽 모두가 사라졌다. 그 희망 없음은 절대적이고 전체적이었다. 희망이 사라졌고 그와 함께 그 짝인 절망 또한 사라졌다. 희망 없이 존재하는 것, 그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것은 부정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말로는 그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은 부정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상태였다. 그것은 단순히 부재가 아니었다. 현존이 느껴졌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나를 덮치고 있었다.

173p 두 개의 극이 완전히 포개지는 듯, 마치 내가 양극 모두인 듯, 긍정과 부정이 만나고 잠과 각성이 만나고 죽음과 삶이 만나고 있는 듯 했다. 그것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만남’이라고 할 만한 순간이었다.

179p 그리고 그날 밤 이래로 나는 결코 육체 안에 있었던 적이 없다. 나는 육체의 주위를 떠돌고 있다. 나는 엄청나게 강해졌고 동시에 매우 연약해 졌다. 나는 매우 강해졌지만 그 힘은 무하마드 알리의 힘이 아니다. 그 힘은 바위의 힘이 아니다. 그 힘은 장미꽃의 힘이다. 강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연약하고, 너무나 민감하고, 너무나 섬세하다.

187p 깨달음은 다름 아닌 깨어남이다. 깨달은 사람에게 있어 우리의 모든 삶은 단지 꿈들이다.

188p 단지 그것이 하나의 꿈이었다는 것을 앎으로써 그것은 무의미해진다. 그대는 깨어난다. 그 꿈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189p 모든 종교가 이런 식으로 창조되었다. 모든 개인들의 유일함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개인이 전 인류에게 자신의 경험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199p .. 깊이 사는 법, 전체적으로 사는 법…

202p 아마 너는 평범한 마음에 일어날 수 있는 관점들은 모두 버리고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관점만을 선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8p 저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만을 질문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질문입니까?

213p “너는 오직 명상가만이 발견할 수 있는 그 정확한 지점들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비명상가로서는 그것들을 발견할 방법이 없다.” 그리하여 나의 전 생애는 맨 처음부터 두 가지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어떤 우둔한 일도 나에게 강요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 결과가 어찌되든 모든 종류의 어리석음에 대항해서 싸우고, 끝까지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남아 있는 것, 이것이 그 한가지 측면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접촉하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이런 태도로 대했다. 그리고 두 째 것은 완전히 개인적인 것,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점점 더 깨어 있게 되는 것, 그래서 단지 지적인 사람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었다.

234p 존경은 선생의 자질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제자나 학생들에게 요구되지 않았다. 존경심은 그저 일어났다.

240p 나는 모든 독서를 통해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독서는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었고 그 목적은 나의 메시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하는 것, 지역적인 한계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었다.

241p 나는 어떠한 형용사도 없는 단지 나 자신이 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통합과 개인성, 진정함, 그리고 충족감에서 오는 엄청난 지복을 주었다.

249p 나는 종교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언제나 싫어했다. 그러나 나는 종교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다.

273p 깨달음 전에 그들은 위대한 선생이었고 이제 깨달음 때문에 그들은 스승이 된다. 이제 그들은 선생에서 스승으로 바뀐다. 그리고 분명 그것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274p 나의 강의는 정말로 명상의 위해 내가 고안한 장치의 하나이다. 말하기가 이런 식으로 이용된 적은 결코 예전엔 없었다. 나는 그대에게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 마음의 기능을 정지시키기 위해 이야기한다.

276p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침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명상의 맛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내가 말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였다.

278p 나의 성공은 그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성공은 그대에게 진정한 명상의 맛을 주는 것, 그래서 그대가 명상이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무심의 상태가 단지 철학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존재계는 종교가 그대에게 가르쳐온 것만큼 그렇게 인색하지 않다.

279p 존재는 도덕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존재는 도덕과는 관계가 없다. 존재에 있어서는 옳은 일도 없고, 그른 일도 없다. 오직 한가지만이 옳다. 그대의 각성과 자각이다. 그때 그대는 지복이 넘친다. 어떤 종교도 지복을 느끼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혹은 지복을 느끼는 것이 ‘선’이라고 정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280p 왜 내가 고타마 붓다나 보디다르마, 예수 그리스도에 의존해야 하는가?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이해와 통찰에 따라 그들의 삶을 살았다. 나는 나의 이해와 나의 통찰에 따라 나의 삶을 산다.

281p 깨달음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이며 유일한 경험이다.

283p 나 자신의 경험으로는, 만약 그대가 침묵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대가 마음을 초월할 수 있고 그대의 의식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때 그대가 무슨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대의 행동들은 전혀 중요시되지 않는다. 오직 그대의 의식만이 중요할 뿐이다.


PART TWO. 빈 거울에 비친 그림자들 -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여러 얼굴
293p 만약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나와 똑같이 절대적으로 비어 있어야 한다.

297p 사람이 생각을 넘어선 영원한 침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어떤 문, 어떤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적인 오르가슴이다.

300p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대의 아내이기 때문에 한 여자를 사랑해야 하게 되는 그 순간, 그것은 매춘이다. / 만약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한다면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한 함께 살 수 있다. 사랑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은 감사하며 헤어져야 한다.

303p 나는 종교성을 하나의 특질로 본다. 그것은 조직의 회원권이 아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내적인 경험이다.

306p 그 모든 일은 그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나는 구세주이니 나만 따르라, 내가 너를 구원하리라.’ 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다. 그대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대를 구원할 수 없다./ 나는 단순히 나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그 경험으로부터 그들은 그들 자신의 규율을 발견해야 한다.

315p 신은 없다. 그러나 모든 꽃 속에, 모든 나무 속에, 모든 돌 속에 신성이라고 밖에는 부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그대는 오직 그대 자신 안에서 그것을 보았을 때에만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그 언어를 모른다.

329p 부유한 자가 종교적이지 않다면 그는 어리석은 것이다. 가난한 자가 종교적이라면 그는 엄청나게 총명한 것이다.

343p 그대가 정말로 웃을 때, 그 한 순간 동안 그대는 깊은 명상적 상태 속에 있다. 생각이 멈춘다. 웃으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둘은 정반대이다. / 그대가 정말로 웃을 때, 문득 마음은 사라진다. 선의 모든 방법론은 어떻게 무심 속으로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웃음은 무심으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문의 하나이다. 내가 아는 한, 춤과 웃음은 가장 자연스럽고 쉽게 무심으로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문이다.

346p 모든 물질적 욕구들이 충족되었을 때, 이제 그대는 무엇을 할 것인가? 명상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만이 아직도 열려 있는 채로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이다. 다른 모든 문들은 그대가 이미 두드려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오직 하나의 문만이 그대를 초대하며 아직 열려 있다.

358p 그들은 그대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진리를 불러낼 수 있다. 그들은 그대를 흔들 수 있고 깨울 수 있다.

360p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것을 역사적인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361p 스승의 역할은 그대를 부르는 것이다. "나자로야, 동굴에서 나오너라! 너의 무덤에서 나오너라! 너의 죽음에서 나오너라!"

365p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배추벌레와 나비의 관계이다. 배추벌레와 나비의 우정이다. 나비는, 배추벌레가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논리적인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나비는 배추벌레 안에 하나의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366p 종교와 철학이 실패한 점은 그것이 모두가 진정한 경험에 대한 대응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을 경계하라!

368p "지금의 내가 무엇이든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선택이다. 그것은 이 순간의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것을 바꾸고 싶다면 그것을 바꾸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자유이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어떤 사회적 강요도, 어떤 국가도, 어떤 역사도, 어떤 경제도, 어떤 무의식도 나를 막을 수 없다. 만약 내가 그것을 바꾸기로 결심했다면 나는 그것을 바꿀 수 있다."

376p 진리는, 살아 있는 진리는 각각의 개인 그 자신에 의해 발견되어야 한다. 아무도 그대에게 그것을 줄 수 없다. 그렇다. 그것을 성취한 누군가가 그대 안의 갈증을, 그것을 향한 엄청난 열망을 자극할 수는 있다. 나는 그대에게 진리를 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대에게 진리를 향한 열망을 줄 수 있다. / 부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착하지 말라.


PART THREE. 유산
382p 그대는 하나의 사는 방법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전파할 수 있는 교리를 찾을 수는 없다. 흡수되어질 수 있는 하나의 반역적인 자질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조직화 될 수 있는 혁명의 주제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384p 진정한 종교는 이름이 없다. 결코 어떤 이름도 가질 수 없다.

386p 과학은 객관적 세계 안에서의 진리에 대한 탐구이며 종교는 주관적인 세계 안에서의 진리에 대한 탐구이다.

386p 물질의 차원 안에서의 앎을 그대는 객관적인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그대의 내면성의, 그대의 내면의 존재의, 그대의 의식의 차원 안에서의 앎, 그것을 그대는 주관적인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종교라는 말은 필요치 않다.

387p 믿지 말라. 물어라. 그대가 믿는 그 순간 질문은 멈춘다. 그대의 마음을 열어두라. 믿지도 말고 믿지 말지도 말라. 단지 깨어 있는 채로 모든 것을 탐구하고 의심하라, 그대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그것이 진리이다.

391p 명상은 붓다의 기여이다. 중요한 것은 몸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더 고요해지고, 더 이완되며, 더 평화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의식의 중심에 도달하기 위한 내면으로의 여행이며 자기 자신의 의식의 중심은 전 존재의 중심이다.

407p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은 단순하게 생각들을 넘어 움직일 수 있다. 믿는 사람은 생각에 집착한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이 바로 생각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마음의 부분이다.

412p 매일 하루 60분 동안만 세상에 대해 잊어라. 세상이 그대에게서 사라지게 하라. 그리고 그대도 세상으로부터 사라져라. 방향을 180도 돌려 단지 안을 보아라. 처음에는 구름들만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그 구름들은 그대의 억압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대는 분노와 미움, 탐욕, 온갖 종류의 블랙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거들을 억압했다. 때문에 그것들이 거기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소위 종교들은 그런 것들을 억압하라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그것들은 상처처럼 거기 있는 것이다. 그대는 그것들을 숨겨왔다.

413p 그대는 알고 있다. 그대가 눈을 감고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대는 무엇을 만나는가? 그대는 붓다가 이야기하는 극락정토를 만나지 않는다. 그대는 그곳에서 억압된 채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지옥들과 고뇌들을 만난다.

416p 모든 사람들의 100도가 각각 다르다. 사람 또한 100도에서만 수증기로 변하지만 모든 사람의 100도는 서로 다른 것이다.

425p 명상은 무엇에 '대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중심 밖에서의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다. 한점의 흔들림도 없을 만큼 전적으로 그대 자신이 될 뿐이다. 내면의 불꽃은 움직임이 없다. 타인은 사라졌다. 오직 그대만이 있다. 단 하나의 생각도 거기 없다. 온 세상이 사라졌다. 마음은 더 이상 거기 없다. 그대의 절대적인 순수 속에 오직 그대만이 있다.

428p 심리학은 사람들이 불행을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심리학은 이것이 삶이 그대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며 따라서 더 이상을 요구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사람들의 내적인 성장에 있어 위험하다. 왜냐하면 내적인 성장은 오직 신성에 대한 불만족이 있을 때에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429p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 마음의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마음 그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음은 그대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 붓다의 심리학은 마음 안에서 작업하지 않는다. 붓다의 심리학은 분석이나 종합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단순히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그래서 바깥으로부터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바로 그 바라봄이 곧 변형이다.

432p “.. 이제 저는 시냇가에 앉아 있듯이 저의 마음 옆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앉아서 그 모든 더러움과 골칫덩이, 오래된 나뭇잎들,상처와 고통, 기억,욕망들을 함께 볼 것입니다. 무심하게 강둑에 앉아 모든 것이 깨끗해 지는 순간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저절로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대가 그대 마음의 강둑에 앉는 순간 그대는 더 이상 마음에 에너지를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짜 명상이다. 명상은 초월의 기술이다.

433p 그대의 마음을 더 자각하라. 그러면 마음을 자각하는 가운데 그대는 그대가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혁명의 시작이다.

434p 우리는 심리치료요법으로는 치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심리치료요법은
그대가 그대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울지는 모른다. 그러나 치유할 수는 없다. 치유는 그대가 더 이상 마음에 붙잡혀 있지 않을 때 찾아온다.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분리될 때, 비 동일시될 때, 완전히 벗어날 때, 속박이 끝날 때, 그때 치유가 일어난다.

443p 서양 사람들은 사회로 달아난다. 동양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달아난다. 그것이 바로 동양에 개인적인 방편들이 존재해왔던 이유이다. 그룹 방편들은 서양에 존재한다. / 머지않아 동양도 서양도 없어질 것이다. 하나의 세계만이 있을 것이다.

448p 그대의 인생의 3분의 1은 잠을 자는데 들어가고 또 3분의 1은 교육에, 배우는데 들어간다. 뭐가 남는가? 그중 많은 부분은 밥벌이에 들어간다. 만약 그대가 모든 것을 계산해본다면 그대는 놀랄 것이다. 70년 가운데 그대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7년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급할 수밖에 없다. 미친 듯이 달려갈 수밖에 없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미쳐서 달려갈 수밖에 없다. 그대가 염두해 두는 것은 그대가 빨리 가고 있느냐는 것뿐이다. 수단이 목적이 된다.

459p 나의 노력은 동양과 서양 사이의 간격을 없애려는 것이다. 이 지구는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463p 외적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더 이상 인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유는 있다. 그러나 주인은 사라졌다. 커다란 불균형이 일어났다. 부는 있지만 사람들은 전혀 부유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가난함을, 커다란 빈곤함을 느끼고 있다.
이 모순을 생각해보라. 그대가 외적으로 부유할 때, 그때에만 그대는 그 대비를 통해 그대의 내적 가난을 깨닫게 된다. 그대가 외적으로 가난할 때, 대비될 것이 없기 때문에 그대는 결코 그대의 내적 가난함을 깨닫지 못한다.

465p 그것은 진정한 만족감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내적인 가난함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인도인들은 생각한다. '서양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저 불안과 고뇌, 긴장을 보라.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내적인 만족감이 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만족한 것이 아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봐왔다. 그들은 만족해 있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틀림없는 사실은, 그들은 불만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466p 외부에 빛이 있다. 따라서 그 빛이 그대 내면의 어둠을 보여준다. 흰 셔츠 위에 묻은 작은 진흙, 그것은 눈에 띈다.

472p 동양은 명상을 할 수 없다. 동양은 거의 일종의 무의식 상태에서 살고 있다. 동양은 명상을 하기에는 너무나 배가 고프고, 기도를 하기에는 너무나 가난하다. 동양의 유일한 관심은 의식주뿐이다.

474p 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인류, 그리고 궁극적으로 양쪽 모두를 다루는 하나의 과학을, 종교와 과학의 만남을 지지한다. 내면과 외면 모두를 다루는 하나의 과학을 지지한다.

486p 나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그러나 그것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불가능하면 불가능할수록 그것은 더 해볼만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때는 적절하다. 왜냐하면 종교가 실패했고 과학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때는 적절하다. 왜냐하면 동양이 실패했고 서양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뭔가 더 높은 통합체가 필요하다. 동양과 서양이 만날 수 있고, 종교와 과학이 만날 수 있는 통합체가 필요하다.

487p 서양은 지나친 과학으로 고통 받고 있다. 동양은 지나친 종교로 고통 받아왔다. 이제 우리는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인간 안의 두 가지 측면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새로운 인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다리는 예술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신인간은 신비가이며, 시인이며, 과학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PART FOUR. 오쇼의 일생과 그 주요 사건들
490p 나는 태풍의 중심이다. 따라서 나의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490p 외부상황은 변할지 몰라도 그대의 의식은 한 치의 변화도 없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나의 가르침의 전부이다.

493p ‘삶의 각성 운동’

495p
첫 번째 금언은 현재에 살라는 것이다. / 두 번째 금언은 자연스럽게 살라는 것이다. / 세 번째 금언은 홀로 살라는 것이다.

505p 그대 안에 하나의 혁명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마음을 넘어 의식의 세계 속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어떤 것도 종교적이지 않다.

508p 부디 내가 그대에게 말해왔던 것들에 집착하지 말라. 오히려 내가 그대에게 행하도록 설득했던 것들에 집착하라. 그것을 하라. 그러면 언젠가 그대는 내가 말했던 것들이 모두가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내가 말했던 것들에만 계속 집착한다면, 그것은 그대에게 지식을 줄지는 모르지만, 그대를 더 박식하게 만들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그대는 앎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말했던 모든 것은 심지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510p 나는, 이제 나의 깨달음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사람들을 모았다고 판단될 때에 그것을 선언했다. 이제 나만의 작은 세상을 창조할 수 있고 더 이상 군중과 대중과 어리석은 폭도들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에야 그것을 선언했다.

511p 그대 자신을 풀어 놓아라. 사회가 그대에게 강요해온 것들, 상황이 그대에게 강요해온 것들을 모두 끄집어내라. 그것들을 끄집어내라. 그대 자신을 그러한 것들로부터 풀어놓아라.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라.

514p 나의 모든 가르침은 단순히 이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대가 무엇이든지, 그대의 상태 그대로 전체적으로 받아들여 달성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흰 구름이 될 것이다.

518p 그대는 그대 자신을 길을 찾아야 한다. 각자가 그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대 앞에 모든 길들을 펼쳐놓아 그대가 보고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올바른 길이 나타날 때면 그대는 즉시 그대 안에 커다란 기쁨이 일어나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이 신호이다. 그것이 그대의 때가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그대가 기다려온 때라는 것을, 이것이 그대의 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520p 나는 그대를 들여다보고, 그대를 느끼고, 그대가 볼 수 없는 그대 자신의 가슴을 보고, 그리고 그 가슴이 결정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기껏해야 그대의 가슴을 그대 자신에게 해석해 주는 것뿐이다. 나는 산파이다.

521p 그대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난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좋은 기회이며, 도전이며,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 순간을 창조적으로 이용하라. 수단과 방법을 찾아내라. 조용히 그대 자신의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의 확신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좋다.

523p 나누라. 그러나 강요하지 말라. 나눔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나눔은 타인을 매우 존중하는 것이다. 나눔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강요는 폭력적이다.

543p 세상 속에 있어라. 그러나 세상의 것이 되지 말라. 세상 속에 살아라. 그러나 세상이 그대 속에 살도록 허락하지 말라. 그것이 나의 메시지이다. / 전체적으로 살아라. 야망 없이, 욕망 없이 살아라. 왜냐하면 모든 욕망은 그대를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모든 야망은 그대의 현재를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탐욕스러워지지 말라. 왜냐하면 탐욕은 그대를 미래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소유욕에 사로잡히지 말라. 왜냐하면 소유욕은 그대를 과거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 속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탐욕과 소유욕, 야망, 욕망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562p 이제 나의 방식으로 살아라. 스스로 책임을 져라. 그래서 다른 누가 그대에게 명령할 필요가 없게 하라.

586p 나는 그대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대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대에게 충족을 줄 수 있는 것은 거기 바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기 안에 있다. 그것은 어떤 다른 시간 속에도 있지 않으며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정지할 때의 느낌, 완전한 정지의 느낌은 다름 아닌 '지금 여기'의 경험과 같다.

593p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종교만이 있으며 그것은 사랑이라는 종교이다.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신만이 있으며 그것은 축하라는, 삶이라는, 기쁨이라는 신이다. 이 모든 지구는 하나이며 모든 인류는 하나이다. 우리가 모두가 서로의 일부분이다.

608p 고타마 붓다는 어떤 후계자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와 같았다.”나의 조상을 만들지 말라. 나의 말들을 모으지 말라. 나는 숭배되어야 하는 상징이 되고 싶지 않다.나의 가장 깊은 열망은 그대들이 모방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대는 불교도가 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대 자신의 잠재력은 붓다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622p 나는 나의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에 따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그들 자신을 알기를 바란다.

III. 내가 저자라면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다.
단지 1931년 부터 1990년 사이에
이 행성, 지구를 방문하다. <오쇼>

오쇼 라즈니쉬의 자서전은 총 네 파트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자서전이라고는 하지만 그 스스로가 그의 이야기를 작성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그의 일대기가 대략 정리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첫 번째 파트는 그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부터 대략의 그의 일생을 정리한 장이다.
두 번째는 그에게 주어진 다양한 관점들을 8개 단어로 표현하고 그가 다양한 인터뷰등을 통해 밝힌 그의 생각과 의견들을 가지고 대답으로 구성해 놓고 있다.
세 번째는 그가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들의 핵심을 네 가지로 구성해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네 번째 파트는 그의 일생의 주요 사건들을 일대기로 정리해 놓고 있다. 설명자적인 관점으로 앞 단을 설명하고 오쇼의 생각들을 뒤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그의 일대기들을 자세히 정리하고 있다.

언제나 책을 읽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어느 수준에 이르는 거장(?)들에게서는 공통점들이 엿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조셉캠벨이 많이 생각났다. 캠벨이 주장한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과 민족,종교로 나뉘는 분열된 사고가 아닌 지구라는 곳에 사는 지구인으로서의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오쇼의 그것과 통한다.

오쇼는 분명 난 놈이다.
먼저 어린 시절의 교육환경 또한 남달랐다.
외조부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 동안 그가 받았던 인도의 다른 가정집 아이들과는 달랐던 가르침과 경험들은 훗날 그가 그 스스로가 되는데 훌륭한 밑바탕이 된다. 특히 그의 외할머니는 오쇼가 오쇼 스스로가 되도록 하는 교육관을 가지고 그를 돌보았다.
“ 이 아이가 우리에게 영향 받지 않도록 해요. 우리가 이 아이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겠어요?기껏해야 우리처럼 만들 수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아이에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해요. (28p) “

그는 타고난 말썽 꾸러기였다. 그는 스스로도 “타고난 말썽꾸러기가 아니고서는 붓다가 될 수 없다. (53p)”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다른 말썽꾸러기 아이와 다른 점은 그는 어린 시절의 다양한 경험을 본인이 의도하고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의 잘못된 행동에 그를 혼내는 지리 선생님에게
“제발 선생님의 갈 길만 가주세요. 선생님의 과목이 아니면 어떠한 조언도 제에게 하지 말아주세요. 그래야 저 자신의 방법으로 저의 삶을 탐험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저는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거예요. 저는 기꺼이 실수와 잘못을 저리를 거예요. 그것만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119p)" 라는 말을 할 정도로 어린아이의 사고라고 보기엔 그는 이미 선을 넘어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가 내 뱉은 말들을 하나하나 보면 다 맞는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타고난 궤변론자 같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한가지에 집중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나는 오직 한 가지 놀이만을 사랑했다. .. 나의 관심은 언제나 똑같았다. 궁극적인 진리가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인지,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67p)”
일찍부터 그는 진리가 과연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스스로를 탐구하는데 이는 과연 어느 정도 타고난 피와 끼가 숨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즉, 오쇼에게 깨달음이란 교육이나 어떤 동기를 통한 인내와 의지,노력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본능적인 욕망, 타고남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는 확실히 일반인과는 달랐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그 모든 일은 그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나는 구세주이니 나만 따르라, 내가 너를 구원하리라.’ 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다. 그대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대를 구원할 수 없다…. 나는 단순히 나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그 경험으로부터 그들은 그들 자신의 규율을 발견해야 한다. (306p) “
“ 진리는, 살아 있는 진리는 각각의 개인 그 자신에 의해 발견되어야 한다. 아무도 그대에게 그것을 줄 수 없다. 그렇다. 그것을 성취한 누군가가 그대 안의 갈증을, 그것을 향한 엄청난 열망을 자극할 수는 있다. 나는 그대에게 진리를 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대에게 진리를 향한 열망을 줄 수 있다. (376p) “
“ 나의 모든 가르침은 단순히 이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대가 무엇이든지, 그대의 상태 그대로 전체적으로 받아들여 달성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흰 구름이 될 것이다. (514p) “
“ 나는 나의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에 따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그들 자신을 알기를 바란다. (622p) “
“ 스승은 그대에게 진리를 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불러낼 수 있다. 그는 그대 안의 무언가를 휘저을 수 있다. (361P)”

즉 모든 답은 그대 스스로에서 나오며 그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이야기의 요지이다. 다만 그는 개인이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그의 마음을 휘저을 수 있는 촉발자일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그는 그 스스로를 섬기지 말도록 요구한다.

물론 책 속 그의 주장 중에 “부유해지면 부유해질수록 그들은 더 영적인 될 것이다. (468p)“ 라는 의견 (가질수록 더욱 탐욕스러워지는 사람들은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과 자국민인 인도인들이 가난하지만 어떤 나라보다 행복해하고 만족감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것들을 함부로 진정한 만족은 아니라고 재단해 버리는 그의 주장에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쇼의 반대파들이 꼬집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넘어선 과도함을 자랑하는 그의 행태비판들에 대한 반론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바리케이트성 주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책만으로 보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많은 이야기들에 공감을 했다. 또한 그가 말하는 깨달음이 어떤 것일까라는 기대감과 궁금함에 실제로 명상을 시작해볼까 생각 중이기도 하다.
‘ 깊고 넓게 살고자 하는 것. 자연스럽게 사는 것. 나는 완벽하며 내 안의 답을 찾을 필요성이 있다’는 그의 주장들은 다시금 나에게 ‘나를 찾기’를 하는데 있어 게으름 부리지 말고 시작하라고 채찍질 하는 것 같아 기분 좋은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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