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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5일 23시 0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하워드 가드너는 펜실베이니아 태생으로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보스턴 의과대학의 신경학 교수이기도 한 저자는 그 유명한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이론의 창시자이다. 교육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개념을 바꾼 역작 <마음의 틀>을 통해 다중지능 이론을 처음 제기하면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는, 다중지능 이론 발표 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그의 이론을 받아들여 기존의 교육 체계를 가드너 식으로 바꾸었으며, 그의 이론에 관한 수많은 연구소와 단체가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 동안 지능은 언어적, 논리적 측면에 의존하는 표준화된 지능검사로 측정되었으며, 지능의 개념도 그 사람이 속한 학교와 사회에서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학습능력에 의한 성공가능성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교의 하워드 가드너 박사는 이처럼 지능을 일반적인 능력으로 보는 단순한 개념을 탈피하여 인간이 가진 훨씬 더 광범위한 지능의 개념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개념의 다중지능이론을 제안하였다.

가드너 박사는 지능이란 인간이 직면하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고 유효한 산물을 창조하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문제를 발견하고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창의성을 지능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또한 그는 지능을 단일 지능이 아닌 복수의 지능 또는 다중지능으로 간주하였는데, 다시 말해서 다중지능이란 7개의 지능 요인이 자율적 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평소 재능이라 여겼던 인간의 수많은 능력들까지도 지능이라 부를 수 있으며,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다양한 능력들을 본인의 소질과 재능에 맞게 발달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중지능이론에 따라 가드너 박사는 지능을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공간지능,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대인관계지능, 개인이해지능의 7개 요인으로 구분하였다. 인간은 다중지능 이론에서 소개하고 있는 7가지 지능을 모두 다 가지고 있기는 하나 특정 지능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정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글 재주가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들기나 그리기와 같은 예술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기도 하고, 노래 부르기를 잘하거나 음악을 창조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볼 수 있기도 하다.

현재 하버드 대학의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 연구소의 책임자이자 운영위원장인 가드너는 줄곧 인간의 정신능력 발달과 교육에 관한 일관된 연구를 진행해 왔다. 프로젝트 제로는 인간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발달 과정을 근본적으로 파헤치는 인간개발에 관한 야심찬 연구기관이다. 가드너는 25년이 넘게 이 연구소를 이끌어오면서 지능과 창조성, 교육방법론, 두뇌개발에 관한 획기적인 연구 성과들을 통해 인간의 창조적 기질에 관한 기본 틀을 제시하였다.

하워드 가드너가 인간의 지능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하버드 대학의 의과대학에서 수학하던 중 두뇌 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인지 기능을 연구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인간의 인지 발달에 대한 피아제(Jean Piaget)의 이론을 고찰한 후, 보다 광범위한 잠재 능력을 설명하기 위하여 적어도 일곱 가지의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지능이 있음을 주장하게 된다. 그는 1983년 “Frames of Mind: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라는 저서를 통해 그 아홉 가지 지능을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했다. 존 듀이(John Dewey)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학 이론가로 평가 받고 있는 하워드 가드너는 지능이나 천재성, 창조성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음으로써 현대 교육학 이론의 새로운 도약을 가능하게 하였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현재 미국 CEO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위에 이가 하워드 가드너다. 앞으로 그의 연구와 행보를 관심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 내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

감역자의 글 – 문용린

이 책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창조성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창조자의 배출을 가능하게 한 현대사회라는 시대적 특성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먼저 그 첫 번째인 ‘창조성이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에서, 가드너는 이 질문을 ‘창조성이란 어디에 있는가?’로 전환시켜 대답하고자 한다. 그는 <개인(Individual)-일(The work)-타인(Other person)>이라는 창조적 소재 모형을 제시한다.

이 모형에 따르면 개인은 내부에 어떤 분야의 대가(大家: master)가 될 만한 소질을 싹으로서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것만으로는 창조성이 발휘되는 성인으로 성장해 가지 못하고, 우선 그런 소질을 심화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일의 체험기회(교육, 훈련 등)를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며, 이러한 체험의 과정에서 타인(가족, 친구, 경쟁자, 후원자 등)으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7~8p

가드너가 보기에 한 개인 속에 잠재한 창조성의 본질은 지능적 요소와 기질적 요소의 특이한 조합이었다. 8p ‘10년 주기론’은 그 중의 하나이다. 창조적 대가를 연구한 결과 그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대체로 10년간의 준비를 거쳐 창조성이 성숙하고, 10년간 창조성을 발휘하며, 다음 10년간 그 창조성을 다시 다른 분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9p

감사의 글

들어가는 글
창조적 거장들의 삶을 지배한 실험정신
제 1 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우연한 만남

이 책의 목표
일곱 명의 ‘현대의 거장들’에 관해 글을 쓰면서 나는 세 가지 중요한 목표를 염두에 두었다.
첫째, 나는 대체로 1885년에서 1935년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이들 각자가 살았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다. 36p 둘째, 창조적인 행위(기획)의 본질에 관해 대략적으로나마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36p 내가 ‘현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관해서도 내 나름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37p

구성적 주제

1. 아동과 대가의 관계 : 개인의 발달을 연구하는 데 있어, 재능은 있지만 아직 미완의 대가인 아동의 세계와 자기 세계에 확신이 있는 성인 대가의 영역 간에 존재하는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살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혁신적인 인물이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섬세하게 간파하는 것도 창조성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2. 개인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 : 모든 사람은 하나 이상의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현재 통용되는 상징체계를 활용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상징체계를 고안한다. 이 책에서 나는 창조적인 인물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을 터득하고 그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궁극적으로 그 분야의 성격을 쇄신하는 저마다의 고유한 방식에 주목할 것이다.

3.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 : 흔히 창조적인 인물들은 홀로 고립되어 작업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성장하는 기간 내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이 연구에서 나는 성장기에 가족과 교사가 행하는 역할과,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는 시기에 중요한 도움을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역할을 탐구하는 것이다. 39p

나는 이와 같은 시대정신(Zeitgeist), 즉 특정한 개인들이 우연히 그것을 일깨우고 결과적으로(어쩌면 의도와 상관없이) 그것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시대정신이 존재한다는 견해를 신봉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역사를 우연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미리 앞서서 미래에 생길 일을 규정하는 정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가장 극적인 역사적 변동을 일으키는 요인은 빗나간 총탄이라든가 화산 폭발과 같은 우연적인 사건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49p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어느 분야의 전문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있는 도약을 이룰 수가 없다. 79p

이때가 바로 창조자의 용기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다. 관습적인 상징체계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치 않다. 창조자는 이제 혼자서라도 복잡한 사정을 모두 감안하여 핵심 쟁점이나 성과물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상징 형식을 마련해야 한다. 처음의 노력은 대개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며,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믿을 만한 길잡이도 없다. 창조자는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하고, 아무 보상도 없는 반복적인 실패에도 꿋꿋이 버텨야 한다. 82p

이제 일곱가지 사례 분석에서 반복해서 드러나는 발달상의 특징을 요약하겠다. (1) 세상의 일반적인 원리와 특별한 문제에 대한 유년 시절의 관심 (2) 처음 흥미를 느낀 문제를 탐구하다가 이 흥미를 이어받아 특정 분야를 마스터하겠다고 결심 (3) 선택한 분야에 정통한 후에 모순적인 요소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요소를 창조, (4) 창조자가 신기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단계적(program)으로 탐구해가는 방식 (5) 고립의 시기에 주변 사람들이 행하는 격려와 지지 역할 혹은 방해 역할 (6) 서서히 새로운 상징체계와 언어 혹은 표현 방식을 만들어가는 모습 (7) 관련 비평가들의 첫반응과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반응이 변화하는 모습 (8) 보통은 중년의 시기에 이뤄내는 좀더 포괄적인 성격의 두 번째 혁신 82p

3. 지그문트 프로이드 Sigmund Freud, 1921 - 세상에 홀로 맞선 사람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은 프로이트가 재능이 매우 뛰어난 아이였고, 주변 사람들이 그런 재능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실상 프로이트는 이 책에서 다루는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 중에서 학교성적이 가장 뛰어났다. 107p

“어떤 원인이나 증상을 출발점으로 삼든, 종국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성적 체험이다.” 121p

프로이트가 친밀한 우정과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몹시도 갈망하던 이 중년 초기는 상당히 어려운 시기였다. 프로이트는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자신의 엄청난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왔다고 느꼈다. 만약 마흔살인 지금 명성을 얻지 못하면, 영영 그럴 기회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인간적인 한계가 왔다는 신호를 뚜렷하게 느꼈고, 경제적인 형편 역시 어려웠는데 환자들이 거의 오지 않는 시기도 있었다. 자랑거리가 될 만한 교수직도 점점 멀어져갔다. 1895년에 여섯 아이 중 막내가 태어났고, 이후에는 뭔가 결심한 듯 성관계를 그만두었다. 당시 그는 몸과 마음이 심하게 불안했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우울증, 니코팅 중독, 만성적인 위장 장애에 시달렸다. 125p

1913년 프로이트 왈. “당시 나는 고독의 극에 도달해 있었다. 옛친구는 모두 잃었고 새 친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오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꿈의 해석] 집필을 막 시작한 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기를 살아내고 견뎌내서 나는 긍지와 행복감을 느꼈다.” 127p

핵심개념은 억압(repression)이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Vorstellung)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과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개념의 중요성을 확언한 바 있다.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 억압 개념은 프로이트적 세계관의 핵심이다. 129p

만약 억압이 프로이트 이론 체계의 중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꿈은 억압 과정을 이해하고 그 밖의 정신 생활(psychic life)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프로이트는 꿈의 힘을 발견한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30p

창조적인 인물들은 근본적인 비약을 이루기 직전에, 자신이 새로 만들어낸 언어를 믿을만한 친구에게 시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자기가 아주 미친 것이 아니며, 정말 중요하고 새로운 경지에 이루렀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심정 때문일 것이다. 소통에 대한 이런 욕망은 인지적인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 창조적인 인물들은 학문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정서상으로도 무조건적인 격려와 지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통에 대한 이런 필사적인 노력은 엄마와 아이 사이에 맺어진 최초의 소통관계와 어린 시절의 친구관계를 회복하려는 심정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136p

프로이트는 모든 꿈에는 모종의 소원이나 환상이 담겨 있다고 믿게 되었다.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되는 과정이며, 예전의 결심이나 근심 혹은 욕망을 마음 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며,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소원이 위장되지 않고 명백하게 드러나며, 어른의 경우에는 대개 더욱 복잡하고 위장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138p

“나에게 가장 중요한 환자는 바로 나 자신이라네.” 아마도 이 무렵에 프로이트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는 ‘공감적인 청자’의 역할을 자기 내부에서 스스로 창조한 정신분석가에게 맡겼던 것이다. 139p

“나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과학이나 수학에는 아무 재능이 없다. 양적인 것에는 아무 소질이 없다.” 145p

[꿈의 해석] 초판본은 처음 2년 동안 겨우 351권이 팔렸을 뿐이며, 곧 절판되었다. 148p

“[꿈의 해석]이 무언가 의미있는 책이라는 걸 인정하는 글은 한 줄도 보이지 않아. 책의 평판은 그저 그렇고 기껏해야 다들 침묵하는 바람에, 겨우 싹트기 시작한 나와 주위의 환경과의 관계가 다시 한 번 파괴되었네.” 148p

프로이트의 집에서 모임을 가진 수요 심리학회는 여러 면에서 실효성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는 분명 프로이트가 지도자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된 점이었다. 그는 이 집단의 의심할 바 없는 지도자였다. 자신의 집안 뿐만 아니라 한 학파의 권위자가 된 것이다. 153p

결국 프로이트는 인간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충성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불만을 품은 추종자들은 정신분석학 운동에서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아들러나 융 등의 제자들과는 분열이 비교적 일찍 찾아왔고 서로 간에 불편한 감정이 가득했다. 랑크와 페렌치 등은 오랫동안 학파의 일원으로 남았지만 결국 고통스럽게 헤어졌다. 정신분석학 운동은 카리스마적이지만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그 창시자 곁에 끝까지 남은 추종자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156p

처음 이탈자가 생긴 무렵에 쓴 [토템과 터부](1912~1913)에서 프로이트는 금기시되는 인물이나 물건을 에워싸고 있는 특별한 힘, 원초적인 군거집단 내부에 팽배해지는 부친 살해 충동, 살아남은 형제들 간에 지배권과 권력을 놓고 벌어지는 투쟁에 관해 논의했다. 외부인들에게는 우화(偶話)로 보일지 모르지만, 프로이트 학파 내에서 보면 그것은 자전적인 이야기였다. 157p

위대한 지도자들은 때로 이러한 단계적 임무를 떠맡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후원하기도 한다. 모세는 형인 아론의 도움을 받았고, 다윈은 진화론을 주창하는 운동을 생물학자인 토머스 헉슬리에게 맡겼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대개의 경우 장군과 중위 임무를 모두 수행했다. 160p

내 논의에서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를테면,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절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창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런 다음에 프로이트는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 자신을 적대하는 세상에게 자기 이론의 진실성을 납득시켰다. 처음엔 세상에 매료되었고, 다음엔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처지가 되어 비밀스런 탐구작업을 계속했으며, 결국 다시 세상에 돌아와 다양한 집단의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프로이트는 창조성의 이원적 성격을 새삼 환기시킨다. 특정 분야에서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어냈고, 덕분에 그 분야는 마침내 다양한 인간 사회의 관심과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65p

4. 알레르트 아니슈타인 Albert Einstein, 1942 – 영원한 아이

어린 이인슈타인의 특징 중 별로 언급된 바가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나는 이것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많은 해방된 유대인 가족들처럼, 아인슈타인 가족도 유대교 의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사상가’를 자처했다. 하지만 어린 아인슈타인은 종교를 받아들였고, 꽤 진지한 마음으로 신을 믿고 종교적 가르침을 지켰다. 종교에 대해 이와 같은 태도를 보임으로써, 아인슈타인은 그 자신의 가족이나 그가 다니던 가톨릭 학교 학생들에게 반발한 셈이었다. 급우들은 아인슈타인의 경건한 태도를 이상하게 여겼던 것 같다. 이처럼 어린 아인슈타인에게 종교적 성향이 강했다는 점은, 그가 영혼의 진한 갈증을 느꼈으며, 궁극적인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관습적인 지혜에 반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73p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둘 다 자신들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라도 그들이 가는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93p

“나는 시골에서 고독하게 살았으며, 단조롭고 조용한 삶이야말로 창조적인 정신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3p

분명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 프로이트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 두 사람 모두 포부가 크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담한 용기를 지녔고 기꺼이 홀로 일어서고자 했으며 논쟁을 반기기까지 했다. 199p

아인슈타인이 어떤 업적을 이룰지 알 도리가 없던 당대인들은 당연하게도 그를 실패한 사람으로 여겼다. 김나지움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지 못했고, 처음에는 취리히 공대 입학에 실패했으며, 영향력 있는 스승이나 후원자도 없었다. 교수직을 확보하지도 못했고 박사 논문을 완성하지도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특허국의 이름 없는 관리로 남게 될 가능성이 가장 컸던 것이다. 202p

아인슈타인은 그의 작업이 다른 많은 동료들의 작업과 점점 더 분리되는 상황에 틀림없이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상대성 이론의 시대에는 그의 업적에 낯간지러운 찬사가 쏟아진 반면, 양자 역학의 시대에는 고통스러운 침묵만을 대면해야 했던 대조적인 경험을 받아들이기도 조금은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도 그는 홀로였지만 결국 자신이 옳았다는 사실과, 모종의 장대한 설계도가 존재해야 한다는 거의 종교에 가까운 믿음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231p

“나는 신이 어떻게 우주를 창조했는지 알고 싶다. 이런저런 현상이나 이런저런 요소에 대한 각양각색의 견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신의 생각이다.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이다.”236p

“나는 사회 정의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열정적일 만큼 관심이 많은데 비해, 이와는 이상하리 만치 대조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직접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협동 작업에는 익숙치 않고 혼자서 일하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고립은 때로 쓰라린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얻지 못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보상이 있었는데, 나는 관습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와 같은 변덕스런 토대에 내 정신을 의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240p

5.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947 – 신동과 천재

신동이라고 해서 꼭 다른 학습 영역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란 법은 없지만, 피카소의 경우는 그러했다. 그는 학교를 혐오했고, 용감하게도 출석을 자주 빼먹었으며, 이따금 수업에 들어가서도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것을 어려워했고, 특히 숫자를 익히는 데 큰 곤란을 겪었다. 25 6p

피카소는 특히 세 살 무렵에 지진이 발생해서 화재를 피하기 위해 한밤중에 집에서 피신해야 했던 일을 충격적으로 경험했다. 반세기가 지난 후에 그는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공포에 질린 어머니의 표정과 망토를 어깨에 걸치고 가족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한다. 두 번째 사건은 그가 열네 살 되던 해에 어린 누이 콘치타가 죽은 일이다. 콘치타는 디프테리아에 걸려 수 주일 동안 서서히 숨이 막히며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누이의 죽어가는 모습은 시각적으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어린 파블로는 이 일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을 뿐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기가 누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생각했고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하고 싶어했다. 당시 피카소는 콘치타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겠다고 신에게 약속까지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와 같은 ‘신과의 거래’는 우리가 다루는 일곱 명의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260~261p

(학생들은 자신이 교사보다 유능하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이런 추측이 사실로 판명날 때에는 학교에 남기가 힘들다) 264p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이 부러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도약하지 않는 것 뿐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287p

다른 창조적인 인물 역시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나 불행에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피카소와 관련된 사람들이 비참한 운명에 처한 경우는 그 정도가 심했다. 특히 여인들이 그러했다. 피카소는 점점 더 자신을 미노타우로스와 동일시해서 여인들이 몸과 영혼을 모두 희생하기를 요구했다. 328p

피카소 작품의 풍요로운 성과를 보증하기 위해서는 그의 파괴적인 성격쯤은 참아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일종의 변명을 늘어놓을 생각도 없다. 우리가 다루는 현대의 창조자들 누구도 성인(聖人)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을 오만하게 무시하는 면에서는 피카소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 없는 듯 하다. 330p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1951 – 음악가이자 정치가

잘하든 못하든, 열의가 있든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든, 창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는 일에 만만찮은 정력을 쏟아야 한다. 정치적 행위에 나섰다고 해서 성공을 보장받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행위를 도외시하면 아무리 포부가 큰 예술가라도 영원히 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37p

“아직 막을 올리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는 관현악단에게 이런 마음을 토로했지요. 앞으로 자신의 잠재력이 무한히 펼쳐질 무대를 앞두고 있는 민감한 영혼이라면 누구나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게 된고 말이죠.” 369p

“창조적인 음악가로서 나는 매일매일 짐을 풀 듯이 내 마음 속의 아이디어를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나는 작곡가라는 운명을 타고났고 다른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곡을 했다.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 “뜻밖의 참신한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메모를 해두고 적절할 때에 활용한다.” 388p

생존한 세 자식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해서, 운명이 가까워질수록 소유권 문제로 법률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자식들은 스트라빈스키의 오랜 연인이자 두 번재 부인인 베라 드 바세트를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루는 다른 창조자들도 대개 그렇듯이, 스트라빈스키 역시 전세계의 인정을 받는 대신 평온하고 애정어린 가족관계를 잃어야 했던 것이다. 399p

7. T. S. 엘리엇, 1914 – 경계선에 위치한 거장

<황무지>
이 작품의 정조는 무모하고 헛된 전쟁에 오랫동안 시달렸던 유럽인의 정서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젊은이와 지식인들 사이에는 전쟁은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고, 문명의 힘찬 진보란 아무 가망 없는 가냘픈 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종교는 힘을 잃었고,부도덕한 방종과 타락이 넘쳐 났으며, 한때 활력에 넘쳤던 도시들이 이제는 노쇠하고 붕괴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황폐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예술작품을 대망하고 있었다. [황무지]가 이런 기대에 가장 훌륭하게 부응했고, 그리하여 거트루드 스타인의 ‘잃어버린 세대’, 상실감에 사로잡힌 모든 세대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 되었다. 436p

엘리엇은 20대 초반에 [프루프록]을 썼고, 30대 초반에 [황무지]를 썼다. 이번에도 앞서 말한 10년 규칙이 적용됨을 볼 수 있다. 대략 10년을 사이에 두고 엘리엇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436p

소설가 마샤 데이븐포트는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 437p

그는 개념이나 관념의 논리에 못지 않게 그 나름의 독특한 위력을 지닌 ‘상상력의 논리’에 관해서도 서술한다. 나아가 시를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논리가 개입하면 방해가 될 수 있는 정서적인 체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했다. 즉, 무의식의 리듬에 기반해서 창조되고, 그 리듬에 부합하는 시를 가장 좋은 시라고 생각한 것이다. 444p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기를 요구한다. 가족도 버리고 오직 예술만을 좇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술은 인간이 어느 가족이나 계급, 당 혹은 동인의 일원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일 뿐이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456p

이렇듯 엘리엇은 앞에서 다룬 현대의 거장들 모두에게 내재한 성향을 집약하고 있다. 경계인이라는 느낌과 인생 전부를 걸고 경계성을 탐구하는 능력이 그에겐 있었다. 게대가 엘리엇은 저절로 경계인이 될 수 없는 처지였기에, 생산적인 비동시성의 수준에 이르기 위해 스스로 경계인이 되기로 선택한 인물이었다. 경계인이란 오직 공동체를 전제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창조적인 인물의 생애에서는 경계인이라는 느낌을 갖는 순간과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을 갖는 순간이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이를 달리말하면, 창조성이 매우 뛰어난 인물들은 어느 정도는 세계 전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만 홀로 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을 오가는 모습이야말로 창조자의 생애에 긍정적인 비동시성과 부정적인 비동시성을 동시에 가능케 한 요인일 것이다. 457p

8. 마사 그레이엄 Martha Graham 1935 – 무용계에 혁명을 몰고 온 여자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누구도 아무것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나 홀로 그 길을 갈 것이다.” 475p

“신들을 모방하고자 했을 때 우리는 신들의 춤을 추었다. 그런 후에 우리는 바람과 꽃과 나무 등 자연의 힘을 재현함으로써 자연의 일부가 되고자 했다. 춤은 더 이상 의사소통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 현대 무용은 고집스럽게 추함만을 극화하는 것도 아니고 신성한 전통에 타격을 가하려는 것도 아니다. 표현주의적인 무용의 장식적인 형식에 대한 반역이 일어난 것이다. 대단히 엄격한 간소함의 시대가 온 것이다.” 481p

그레이엄은 쉴 새 없이 모든 일에 관여해야 했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활동 분야는 간디의 활동 분야와 가장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간디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공연’을 했어야 했거니와, 게대가 후속적으로 생기는 일에 관해서는 그레이엄보다 통제력을 더 가질 수 없는 처지였다. 분명히 그레이엄은 모든 현장에 참여하고자 했다. 그녀에게 있어 공연이란 삶 자체였고, 자신의 페르소나를 완전히 실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형식의 삶이 요구하는 긴장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509p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을 갖추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니진스키는 단 한 번의 탁월한 도약을 위해 수천 번이나 도약 연습을 했다.”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차이점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에 있지 않다. 비밀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을 객관화하고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521p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등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들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받고 물려줘야 할 유산으로 여긴다.” 523p

“나는 무용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용가로 선택된 것이다.” 524p

“여러분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활기찬 인생을 사는 길이 하나뿐이라면, 그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없습니다. 나의 삶, 그리고 작품활동은 필연입니다. 마치 동물처럼 다른 생각 하나 없이 오직 이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선택은 없습니다. 동물이 일체의 속임수나 야망 없이 마시고 새끼를 치는 것처럼 말이죠.” 524p

9. 마하트마 간디 Mahatma Gandhi, 1939 – 신념을 실천한 정치 지도자

“나는 보통 이하의 능력 밖에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괘념치 않는다. 지성의 발달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성장에는 그런 한계가 없다.” 544p

종교와 사회 및 정치 지도자가 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검열이 무척 심한 편이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초자아가 강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잊어버리거나 사소하게 여기는 문제가 이들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로 여겨진다. 이런 별종의 인간들은 어린 시절에 저지른 사소한 잘못까지도 오랫동안 마음 속에 담아두고 반추했으며, 심지어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그 잘못을 보상하려고 했다. 546p

1905년 경에 그는 약간 다른 성향의 저작을 읽기 시작했는데, 특히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 영국의 사회 이론가 존 러스킨(John Ruskin)과 러시아의 소설가 레오 톨스토이의 저서와 미국의 사회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시민 불복종에 관한 글을 읽어나갔다. 곧이어 간디는 적극적 실천가답게 자신의 사상과 종교를 직접적으로 실행할 길을 찾아나섰다. 556p

그는 오직 작은 공동체에서만 실행이 가능한 단순한 삶, 전통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금욕적인 삶을 요청했다. “진정한 치유는 영국이 이기심과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 아무런 목적도 없고 헛되기만 할 뿐인, 그리고 기독교의 정신을 부정하는 그런 현대 문명을 버리는 것에 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558p

“간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편에 독서와 저작과 성찰이 있고 다른 한편에 몸소 용기 있는 모범을 보이는 지도력이 있는 두 가지 활동의 항구적이고도 생산적인 변증법적 관계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573p

여러 차례 신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간디는 몇 가지 기본적인 생각을 밝힌 바 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강조되는 진리와 도덕성, 그리고 영적인 갱생에 대한 추구가 자기 존재의 근본이라는 것이었다. 간디는 개인적으로 훌륭한 삶을 추구하는 것과 공동체에 봉사하면서 모범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을 별개로 취급할 수 없었다. 개인적인 자유는 사회에 봉사하는 장유가 되어야 했고, 개인적인 비폭력은 보다 넓은 갈등의 무대에서도 실현되는 비폭력이 되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진리와 지식과 지혜는 공동체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 마땅했다. 5 75p

“내가 이루고 싶은 것, 지난 30년 동안이나 내가 애타게 갈망했던 것은 자기 실현, 신과 대면하는 것, 다시 말해 모크샤(Moksha;신과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었다. 577p

“나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 가운데 인도는 비폭력 저항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한 나라이며. 만약 이 실험이 지금 성공한다면, 압제자들에 대한 아무런 적대감도 없이 자진해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수 천명의 남녀가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다.” 581p

아나수야 사라바이는 이렇게 말했다. “바푸지(Bapuji, ji는 힌두어로 존경과 친밀함을 뜻함)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우리 대부분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다 다르다. 바푸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믿는 것을 말했고, 말한 것을 실천에 옮겼다. 그의 정신과 영혼과 몸은 일치했다.” 589 p
긴디와 가족들의 관계, 특히 자식들과의 관계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간디는 오랫동안 아내와 갈등을 빚었다. 589p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간디는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과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이상할 정도로 어려워했다. 590p
가장 친밀한 인간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다는 점은 어쩌면 대중을 상대하는 일에 위대한 재능을 가진 자의 어쩔 수 없는 부수물이 아닐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게다가 간디에게 영향을 미친 스승이 존재했다고 해도 그들은 톨스토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이며 예수나 부처, 마호메트와 같은 보편 종교의 창시자들이었다. 간디가 나누었던 가장 중요한 대화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신과의 대화였다. 591p

제 3 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이들이 보여준 지적인 강점이 서로 다른 것처럼,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시기와 양상 역시 상당히 달랐다. 프로이트는 어릴 때부터 학문적인 문제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참다운 소명을 발견했다. 그레이엄은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이런저런 일에 종사했다. 스트라빈스키는 20대에 접어들고서야 진지하게 작곡에 임했다. 아인슈타인과 엘리엇은 어릴 때부터 중요한 작업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둘 다 해당 분야에서 신동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사실 이들 일곱 명 중에 오직 피카소만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신동, 즉 어린 시절부터 거장 수준의 솜씨를 발휘하는 인물을 뜻하는 신동에 가깝다. 다른 창조자들은 이단 어느 분야에 전념한 후로 무척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유별난 인물이었다. 627p

강점 약점
프로이트 언어, 인성 공간, 음악
아인슈타인 논리-공간 인성
피카소 공간, 인성, 신체 학문
스타라빈스키 음악, 기타 예술
엘리엇 언어, 학문 음악, 신체
그레이엄 신체, 언어 논리-수학
간디 인성, 언어 예술

E.C(Exemplary Creator; 전형적인 창조자) 유형의 인물들은 실제로 자신감과 기민함,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근면함, 일에 대한 집중력 등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 사교 생활이나 취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껏해야 일에 몰두하다가 한숨 돌리는 정도의 주변적인 의미밖에 없다. 628p

타인무시 대인 관게의 어려움 노골적인 가학
아인슈타인 간디 피카소
엘리엇 스트라빈스키
그레이엄
프로이트

창조성의 현저한 특징은 아이다운 천진성과 어른의 원숙함의 결합에 있다. 이런 결합은 성격만이 아니라 사고방식(관념)에서도 나타난다. 아이다운 특성이 순진함과 참신함으로 나타나면 긍정적인 색채를 띠게 되지만, 반대로 이기심과 보복심리로 나타나면 부정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629p

E.C들은 두 가지 패턴이 있다. 첫째,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던 시기에서 극도의 고립 속에서 중대한 발견을 이루는 시기를 거쳐 결국 나이가 들면 다시 더 크고 더 표용적인 세계로 회귀했다. 둘째, 극도의 고립을 겪는 시기에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그에게서 필요한 도움과 격려를 얻었다는 점이다. 636p

인생패턴 : 창조성의 10년 규칙. 정당한 근거 없이 숫자의 마술을 부릴 생각이 없었음에도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창조성의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10년간의 견습 기간을 거쳐야 중대한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637p

기원 10년 20년 30년 이후
프로이트 샤르코 프로젝트, 꿈의 해석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사회학적 저술
아인슈타인 광선, 사고실험 특수 상대성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 철학적 저술
피카소 바르셀로나 모임 아비뇽의 처녀들
입체주의 신고전주의양식 게르니카
스트라빈스키 림스키 코르샤코프의 영향을 받음 봄의 제전 결혼 후기양식
엘리엇 프루프록 초기 습작품 황무지 4개의 사중주 극작가/비평가
그레이엄 세인트 데니스 무용단 첫번째 독무회 프론티어 애팔래치아의 봄
간디 나탈 남아프리카 체류 사티아그라하 구상 아메다바드 소금 행진

* 옮긴이의 글

바쁜 일상과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 속에 자칫 삶을 적극적으로 살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차이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어릴 때 품었던 꿈을 이제는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아스라이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가드너는 창조성이란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평생 동안 지닐 수 있었기에 이 책에서 다루는 거장들은 그토록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인 것 같다. 693p

가장 공감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창조성은 단지 한 개인의 탁월한 재능만으로 실현되거나 발휘될 수는 없고, “오직 재능이 갖춰진 아이와 그 분야에 우호적인 문화, 그리고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694p

프루스트는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소처럼 그때그때의 먹을 풀을 위하여 살아간다”고 말했다. 모두가 거장이 될 수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어린 시절의 꿈을 잃어서야 되겠는가? 695p


4. 내가 저자라면

“E.C들은 두 가지 패턴이 있다. 첫째,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던 시기에서 극도의 고립 속에서 중대한 발견을 이루는 시기를 거쳐 결국 나이가 들면 다시 더 크고 더 표용적인 세계로 회귀했다. 둘째, 극도의 고립을 겪는 시기에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그에게서 필요한 도움과 격려를 얻었다는 점이다.” 636p

이 책의 소개된 7명의 창조적 영웅들은 과거 조셉 캠벨의 영웅들이 경험하게 되는 순환구조의 일정패턴을 경험하고 있다. 새로운 모험을 떠난 후 만나게 되는 시련들(극도의 고립감, 비인정, 소외감)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들을 일정 시간 동안 경험하게 되고, 우연치 않게 조력자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기존과는 질적으로 다른 연구성과 또는 세간의 평가와 인정을 받게 된다.

“어느 분야의 전문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도약을 이룰 수가 없다.” 79p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성장과 발전 패턴에서 10년이라는 마법의 숫자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정당한 근거 없이 제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음을 미리 밝혔지만, 우연히도 창조적 영웅들의 궤적을 정리하면서 나온 마법의 숫자는 ‘10년’이다. 10년의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없이는 혁신적 도약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조급성’이라는 단어를 치유하는 데, 이 10년이라는 규칙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저자는 새로운 창조적 발상과 성장을 위해서는 “아이와 같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함을 여러 영웅들을 통해 전하고 있다. 이 문구는 문득 “현자(賢者)는 무릇 어린 아이와 같다”는 불가의 가르침을 연상케 한다. 물론 불가의 가르침은 과거에 구속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어린 아이와 같이 현재(現在)에 집중하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의미 해석은 다를 수 있겠지만, 창조적 영웅들의 어린 아이와 같은 시각 또한 제반의 규칙, 관습,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세상을 꿈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나는 도둑이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플라톤, 피카소, 베르트람로스 등 누구라도 최고의 인물들에게서 생각을 훔친다. 나는 도둑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내가 훔친 것의 진가를 잘 알고 있고,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 물론 나만의 재산이 아니라 내가 물려받고 물려줘야 할 유산으로 여긴다.” 523p

마사 그레이엄의 솔직함이 좋다. 우리 모두는 학문적이든, 예술적이든, 영적이든 모두 ‘도둑’들이다. 지금까지 영웅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창조적 성과들과 배움들을 손쉽고 편안하게 취득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내가 만들어낸 창조적 성과물이 진정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지금 나만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른 사람들의 창작물을 그럴싸하게 섞어 놓은 ‘비빔밥’은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그래도 열정이 다하는 순간까지 한번 비벼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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