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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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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0일 09시 21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이 책을 쓴 이유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입문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 세계 역사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 세계 역사를 말해줄 수 있는 한권의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계화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주요문제들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사피엔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 내가 배웠던 그런 역사가 아니였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주의 높은 공간에서 정찰위성을 띄워 놓고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체계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었다. 역사를 어떤 개별적인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생물학, 사회학적으로 풀어냈다.

 

생애

 

유대인인 하라리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모님은 레바논계 유대인이다. 그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중세 역사 및 군 문화를 전공했으며 이후 2002년 옥스퍼드 대학교 지저스 칼리지에서 스티븐 J 건 교수 (Steven J. Gunn) 지도 하에 2002년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야드 하나디브 연구원으로서 역사학관련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후 그는 기사도 시대의 특수작전, 극한의 경험: 전장을 알리며, 근대 전쟁문화의 조성하며, 세계사에서의 결정적인 전투의 개념, 안락의자, 커피, 그리고 권위: 전쟁에 관한 생생한 경험등과 같은 다양한 저서와 논평을 작성하였다.

 

그는 현재 세계사 및 거시적 역사과정을 전문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의 연구는 주로 거시적인 관점으로 역사에 관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며 관련 주제로는 "역사와 생물학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역사엔 정의가 존재하는가? 역사는 방향성을 지니는가? 역사의 대중화 이후 인간은 행복해졌는가?" 등이 있다.

 

그가 가장 최근에 출간한 책은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이다. (원본은 인류에 관한 간소한 역사라는 제목과 함께 히브리어로 출간되었고 추후 약 30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사피엔스는 석기시대부터 정치적, 기술적 혁명을 거쳐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진화를 거듭하여 호모 사피엔스가 된 인간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현재 히브리어로 출간된 원본은 대중과 학계 사이에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이스라엘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진입했으며 덕분에 하라리는 일약 스타로 도약하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그가 히브리어로 세계사에 관해 가르치는강의 영상은 이스라엘인들 사이 수만번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인류에 관한 간략한 역사라는 주제로 영어로 무료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전세계 약 10만명에 다다르는 사람들이 이 강의를 수강했다.

 

하라리는 창의성과 독창성을 기리는 상인 폴론스키 상(Polonsky Prize)2009년과 2012년 두 번이나 수상하였다. 또한 군 역사에 관해 작성한 뛰어난 논평을 인정받아 몬카도 상(Moncado Award)을 수상하였다. 2015년에는 페이스북의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가 운영하는 온라인 도서클럽에 사피엔스가 채택되기도 하였다. 주커버그는 그의 팔로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인간 문명에 관한 위대한 역사적 서술이라고 묘사하였다.

 

하라리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이며 그가 저서에 농업혁명에 관한 평을 언급한 이후 가축과 같은 동물들의 비참한 처지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다.

* 하라리는 커밍아웃한 게이이며 남편과 함께 산다. 남편은 하라리의 일정과 대외 업무를 관리하는 매니저이기도 하다.

특이한건 그가 남편이 아니라 부인이라는 것. 외모에서 풍기는 여성적 이미지와 겹쳐보인다.(개인적 생각)

 

저자에게 영향을 미친 책들

 

1. 프란스 드 발, <침팬지 폴리틱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3년에 걸쳐 침팬지 무리 안에서 일어난 진짜 정치적인 투쟁을 이야기합니다. 침팬지와 호모 사피엔스 둘 다에 대한 저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읽은 과학 책 중에 가장 재미있는 책일 겁니다. '모든 종의 정치인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2. 재러드 다이아몬드, <, , >

빅 퀘스천과 답을 담은 책입니다. 저를 중세 전쟁을 연구하던 학자에서 인류학도로 바꿔놓은 책입니다.

<사피엔스>를 보면서 <, , >가 생각이 났는데 역시 저자에게 영향을 미친 책이었다.

 

3. 찰스 테일러, <자아의 원천들>

서구 문명에 관해서 읽은 책들 중에 가장 통찰력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인들이 자신과 세계를 보는 방법에 관해 썼습니다. 유의할 점은 대단히 밀도가 높은 책이라는 겁니다.

 

4.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21세기를 가장 잘 예언한 책입니다. 히틀러와 스탈린 시대에 쓰였는데도 소비주의와 생명공학기술이 지배하는 미래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렸습니다. 이 세계에서 지배적인 가치는 행복입니다. 오늘날 다수는 이것을 쉽게 유토피아로 착각합니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한국의 독자들에게

 

6. 우리 종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인간은 역사상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따라 지구에 있는 생명체들의 진로는 전면적으로 바뀔 것이다.

영화같은 세상이 하나씩 구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인간복제, 생명연장을 비롯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매트릭스같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정말 중대한 결정의 시기이다.

 

6. 이제 인간은 과학을 통해 자연선택을 지적설계로 대체하고, 유기체가 아닌 생명을 만들기 시작할지 모른다. 과학은 자연선택으로 빚어진 유기적 생명의 시대를 지적설계에 의해 빚어진 비유기적 생명의 시대로 대체하는 중이다. 특히 오늘날의 과학은 우리에게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재설계할 수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7. 역사과정 동안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이 존재했지만 인간 그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하지만 앞으로 사회와 경제뿐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도 유전공학, 나노기술, 뇌기계 인터페이스에 의해 완전히 바뀔 것이다. 몸과 마음은 21세기 경제의 주요한 생산물이 될 것이다.

 

7. 심지어 죽음조차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역사과정을 통틀어 죽음은 언제나 형이상학적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신이, 우주가, 대자연이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혹시라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재림 같은 모종의 거대한 형이상학적 몸짓뿐이라고 사람들은 믿게 외었다.

 

7. 하지만 최근 우리는 죽음이 기술적인 문제라고 재정의하였다......과학은 모든 기술적 문제에 모종의 기술적 해결책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예수나 부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전통적으로 죽음은 사제와 신학자의 전공이었지만 오늘날 이 분야를 공학자들이 넘겨받았고, 실험실의 괴짜 두 명이 이를 해결해낼 수도 있다. 2년전 구글은 캘리코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는데, 그 회사의 목표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캘리코는 건강과 웰빙 분야, 특히 노화와 관련 질병에 대처하는 방법을 연구한다고 한다. 구글 대표는 "노화와 질병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문제"라며 "(캘리코 사업이) 장기 투자이긴 하지만 적절한 목표와 적절한 사람들이 있다면 합리적인(지나치게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상당한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한다. ‘노화정말 불편한 진실이다. 늙지 않고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젊다고만 하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늙고 죽음이 자연이 정한 이치인데 이것을 거스른다는 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렵다.

 

8. 이런 기술적 혁신은 거대하고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위험을 낳을 수도 있다. 이를 낙관하거나 비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현실주의자가 되어,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8. 나는 이 책이 독자 스스로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또한 이 같은 이해 덕분에 생명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수 있기를 소망한다.

 

9. 나는 이 책이 성공한 이유를 진정한 필요에 답을 주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글로벌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책과 학교는 여전히 특정 문화나 국가의 국지적인 역사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10. 한국은 행복도 대한 조사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태국 등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나라보다 뒤쳐져 있다. 이는 가장 널리 통용되는 역사 법칙의 어두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10. 한국이 가르쳐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기술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고, 마침내 사람들이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말처럼 똑같은 아니 오히려 북한이 더 기술적으로 우위였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고 사회가 어떠냐에 따른 차이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11. 유전공학, 인공지능 그리고 나노기술을 이용해 천국을 건설할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그 혜택은 무한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할지의 여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인지하기 전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감 없는 존재였다.

 

18. 7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화가 출현 한 것이다. 그 후 인류문화가 발전해온 과정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19.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7만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아렸다.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도구의 사용, 불의 발견, 농사의 발견, 산업혁명 등이 익히 알고 있는 것인데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으로 새롭게 분류했다. 농업혁명이야 곡식의 씨앗을 발견하고 정착하게 된 계기일 것이고, 과학혁명은 산업혁명과 같이 기계를 이용하고 과학기술을 이용한 그동안의 무지를 밝혀내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재창조하는 것도 역시 저자의 능력일 것이다.

 

21. 말과 당나귀는 최근에 같은 조상에서 갈라졌고 신체적 특질에 공통점이 많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성적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굳이 교배를 유도할 수는 있으나 그 후손인 노새는 불임이다.

오늘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당나귀-노새. 생물시간 같다. 노새는 생물학적 종이 아니다. 생식이 가능하지 않으므로. 진돗개와 풍산개는 동일종이라 한다. 교배가 가능하고 후손도 생식이 가능하므로 동일종이라고 한다.

 

21. 같은 과에 속하는 모든 동물은 동일한 선조의 후손이다. 예컨대 모든 고양이과 동물은 약 2,500만년 전에 살았던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작은 집고양이에서 무서운 사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고양이과라고 명명했을까. 고양이가 먼저라서. 사자과라고 해야하지 않나. 진부한 생각.

 

22. 우리는 거대 영장류라는 크고 유달리 시끄러운 과의 한 일원이다. 현생종들 중 우리와 가까운 친척으로는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이 있고, 가장 가까운 것은 침팬지다. 불과 6백만년 전 단 한 마리의 암컷 유인원이 딸 둘을 낳았다. 이 중 한 마리는 침팬지의 조상이, 다른 한 마리는 우리 종의 할머니가 되었다.

 

인류가 스스로 숨겨온 비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유일한 종이라고(나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지만) 생각해왔지만 사실 예전에 인간은 여러 종이 있었다. 단순히 피부색깔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종()자체를 얘기하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솔로엔시스 등 많은 종이 있었다. 그 중에 호모사피엔스가 유일하게 남은 이유가 뭘까?

 

22. 인류 집단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여러 종들이 생겨났고, 과학자들은 여기에 거창한 라틴어 이름을 붙였다. 유럽과 서부아시아 인류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아시아의 좀 더 동쪽 지역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 이들 똑바로 선 사람은 그 지역에서 2백만년 가까이 살아남아, 가장 오래 지속된 인간 종이 되었다.

 

25.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스스로에게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란 이름을 붙였다.

 

25.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이들 종을 단일계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에르가스터가 에렉투스를 낳고 에렉투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낳고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해 우리종이 되었다는 식이다. 이런 직선 모델은 오해를 일으킨다. 어느 시기를 보든 당시 지구에 살고 있던 인류는 한 종밖에 없었으며, 모든 오래된 종들은 우리의 오래된 선조들이라는 오해 말이다.

 

25. 사실은 이렇다. 2백만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는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26. 몇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의 비용

먹이사슬 최하위 단계에서 단숨에 최상위로 올라선 인간. 생각할 수 있는 존재. 그 생각으로부터 불을 발견하고 도구를 제작하고 불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났고 나타나기 시작하고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 나타날 것이다.

 

26. 우리는 자신의 높은 지능에 현혹된 나머지 지적인 능력은 크면 클수록 좋다고 가정한다.....실상을 말하자면 커다란 뇌는 자원을 고갈시키는 밑 빠진 독이다. 무엇보다 갖고 다니기 어렵다. 커다란 두개골 안에 들어 있으면 더 그렇다. 심지어 연료도 많이 소모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몸무게의 2~3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신체가 휴식 상태일때 전체의 25%나 된다.

 

27. 인간의 또다른 이례적 특징은 직립보행이다.....도구의 제작과 사용은 고고학자들이 고인류를 인정하는 기준이다.....인간은 높은 시야와 부지런한 손을 얻은 대가로 오늘날 허리가 아프고 목이 뻣뻣해졌다.

 

28. 그 결과 자연선택은 이른 출산을 선호했다. 사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많은 시스템이 덜 발달된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갓 태어난 망아지는 곧 걸을 줄 알고, 고양이는 생후 몇 주만 지나면 어미 품을 떠나 혼자 힘으로 사냥에 나선다. 그에 비해 인간의 아기는 무력하여, 여러 해 동안 어른들이 부양하고 지키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난 아직도 궁금하다. 그 옛날 사나운 동물들로부터 인간은 숨어지내야 하는데 갓 태어난 아기는 시도때도 없이 운다. 그렇게 울면 바로 위치가 탄로나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생명을 유지한채 살아갈수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리고 날 것을 먹지 못하는 아기가 불도 없고 제대로 된 음식이 없는데 자랄 수 있다는게 이해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우리 인간도 10개월이 아닌 송아지나 말처럼 태어나자마자 걸어다닐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긴 했는데....

 

30. 주로 식물을 채취하고 벌레를 주워 담고 작은 동물에게 몰래 접근하며, 다른 힘센 육식동물이 남긴 썩은 고기를 먹었다. 초기 석기의 가장 흔한 용도는 뼈를 쪼개 골수를 빼내는 일이었다....최초의 인류는 뼈에서 골수를 꺼내는데 특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감자탕을 좋아하나. 고대에는 육식동물들로 인해 골수를 먹었고 지금은 돈으로 인해 골수를 먹는다. 육식동물은 더 이상 위협이 아니며 이젠 살아있지 않은 종이쪼가리가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30. 왜 하필 골수였을까? ...사자가 남긴것은 하이에나와 자칼의 몫이다. 당신은 감히 거기 끼어들지 못한다. 당신과 당신의 무리는 이들의 식사가 끝난 다음에야 좌우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다가가서 남아 있는 잔해 중에 먹을 수 있는 조직을 찾아 열심히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30.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른 것은 불과 1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였다. 중간에서 꼭대기로 단숨에 도약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31. 그래서 생태계는 사자나 상어가 지나친 파괴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사자의 포식 능력이 커지자 가젤은 더 빨리 달리는 쪽으로 진화했고, 하이에나는 협동을 더 잘하도록 진화했으며, 코뿔소는 더욱 사나워지도록 진화했다.

 

31.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치명적인 전쟁에서 생태계 파괴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참사 중 많은 수가 이처럼 너무 빠른 도약에서 유래했다.

 

익혀먹는 종족

불의 힘!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발견이 아닐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인 부싯돌을 부딪치면 불을 붙이면 된다는 사실. 그러나 예전 사람은 어떻게 알았을까?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우연에서 발견했다지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 때 주었다는 신화가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31. 먹이사슬의 최정점으로 올라서는 핵심단계는 불을 길들인 것이다. 이제 인간은 빛과 온기의 믿을 만한 원천이자 배회하는 사자에 대항할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를 가졌다.

 

32. 하지만 무엇보다도 불이 하는 최고의 역할은 음식을 익히는 일이다. 조리 덕분에, 인간이 자연 상태 그대로는 소화할 수 없는 밀, , 감자 등이 인간의 주식이 되었다.

 

32. 침팬지는 날것을 씹어 먹느라 하루 다섯 시간을 소모하지만 사람은 익힌 음식을 먹는 데 한 시간이면 족하다.

 

32. 일부 학자는 익혀 먹는 화식의 등장, 인간의 창자가 짧아진 것, 뇌가 커진 것 사이에 직접적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다란 창자와 커다란 뇌를 함께 유지하기는 어렵다......의도치 않은 이런 변화 덕분에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는 커다란 뇌를 가질 수 있었다.

 

33. 불은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 처음으로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냈다. 동물의 힘은 대개 신체에서 나온다........인간은 불을 길들임으로써 무한한 잠재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독수리와 달리 인간은 불을 일으키는 장소와 시기를 선택할 수 있었으며, 수많은 용도로 불을 이용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불의 힘이 신체의 형태나 구조, 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이었다.

 

호모 사피엔스-형제 살해범

 

35. 호모 사피엔스가 아라비아 반도에 상륙했을 당시 대부분의 유라시아 지역에는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이미 정책해 있었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두 가지 상충하는 이론이 존재한다. ‘교배이론은 그들이 서로 끌려 성관계를 하고 뒤섞였다는 설이다.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가면서 다른 인간 집단들과 교배했고 오늘날의 인류는 그 이종교배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36. 그렇다면 중국인과 한국인은 사피엔스와 에렉투스의 혼합이다

 

36. 이와 대립되는 견해는 교체이론이다. 그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반감을 보였으며 심지어 인종학살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36. 만일 교체이론이 맞다면,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은 대체로 같은 유전자들을 지니고 있으며 이 들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무시해도 좋은 정도다. 하지만 교배이론이 맞다면,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시아인 사이에는 수십만 년의 연원을 둔 유전적 차이가 있을수도 있다.

 

37. 오늘날 중동과 유럽에 거주하는 인구집단이 지닌 인간 고유의 DNA 1~4퍼센트가 네안데르탈인 DNA로 밝혀졌던 것이다.

너무 작은 것 아닌가. 이걸로 결론이 날수 있는 문제인가.

 

37. 이런 결과가 유효하다면 최소한 교배이론에 뭔가 근거가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교체이론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오늘날 우리의 게놈에 아주 작은 양만 기여했기 때문에, 사피엔스와 다른 인간 종의 합병을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하다.

 

38. 그러면 우리는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의 생물학적 연관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생물학적 실체는 흑과 백이 아니다. 회색 지대들도 중요하다.

 

38.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은 약 5만년 전 이런 경계선에 섰던 것 같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종은 아니지만 대체로 별개의 종이었다......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은 유전부호나 신체 특징만 달랐던 것이 아니라 인지능력, 사회적 능력에서도 차이가 났다.

 

39.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사피엔스에 합병된 것이 아니라면 이들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의 가능성은 사피엔스가 이들을 멸종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39. 사피엔스는 기술과 사회적 기능이 우수한 덕분에 사냥과 채취에 더 능숙했다. 이들은 번식하고 퍼져나갔다. 이들보다 재주가 떨어지는 네안데르탈인은 먹고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집단의 크기는 줄어들고 서서히 모두 죽어갔다. 이웃의 사피엔스 집단에 합류한 한 두명의 예외를 제외하면 말이다.

 

40. 만일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나란히 살아남았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여러 인간 종들이 공존하는 세계에서는 어떤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가 출현했을까?

 

40. 지난 1만년간 호모 사피엔스는 유일한 인간 종이었다....만일 네안데르탈인이 살아남았다면,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종과 동떨어진 존재라고 인식할까?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전멸시킨 이유가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그들이 우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친숙하고 관용하기에는 너무 달랐다는 것.

 

40. 사피엔스의 탓이든 아니든, 사피엔스가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의 토착 인류가 멸종했다는 사실이다. ..... 사피엔스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생태적으로 전혀 다른 오지의 서식지에 그처럼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다른 인간 종들을 망각 속으로 밀어넣었을까? 튼튼하고 머리가 좋으며 추위에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은 어째서 우리의 맹공격을 버텨내지 못했을까?....그리고 가장 그럴싸한 해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다.

그 비밀이 무기나 다른 종류의 것이 아니라 언어였다니. 한편으로는 놀랍고 언어의 힘이 느껴진다.

 

2. 지식의 나무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을 통해 지구에서 우뚝 솟아올랐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 정보전달. 믿을수 없는 뒷담화 이론’. 사피엔스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 중에는 이 뒷담화 이론을 무시할수 없다. 마치 경주에 살고 있는 기상이라는 사람은 능력이 대단하대. 잘생겼지, 돈 많지, 체력좋지, 머리 좋지, 부족들 잘 먹여살리지. 최고라는데.... 우리 거기 가지 않을래이런 식일 것이다. 신화를 창조하듯이 그렇게 언어는 무서운 것이면서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43. 종교와 상업, 사회의 계층화가 일어났다는 최초의 명백한 증거 역시 이 시기의 것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런 전례 없는 업적이 사피엔스의 인지능력에 혁명이 일어난 결과라고 믿는다.

 

44.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44. 우리는 이것을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왜 하필 그 돌연변이가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사피엔스의 DNA에 등장했을까? 우리가 아는 한 그것은 순수한 우연의 산물이었다.

 

46.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우리의 언어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제한된 개수의 소리와 기호를 연결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무한한 개수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주위 세계에 대한 막대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며 소통할 수 있다.

 

46. 두 번째 이론 또한 우리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세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수단으로서였다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전달할 가장 중요한 정보가 사자나 들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47.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모든 유인원은 이런 사회적 정보에 예리한 관시을 나타내지만, 이들에게는 효율적으로 소문을 공유할 수단이 부족하다. 네안데르탈인과 원시 호모 사피엔스 역시 소문을 공유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47.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48. 아마도 뒷담화이론과 강변에 사자가 있다이론은 둘 다 유효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뿐이다.

 

48. 전설, 신화, , 종교는 인지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침을 먹기 전에 불가능한 일을 여섯 가지나 믿어버릴 수 있다는 데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이다.

 

49. 허구는 위험한 오해를 부르거나 주의를 흩뜨릴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49. 사피엔스는 수없이 많은 이방인들과 매우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다. 개미는 우리가 남긴 것이나 먹고 침팬지는 동물원이나 실험실에 갇혀 있는 데 비해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푸조라는 신화

 

50. 동맹 구성원 간의 결속은 매일 이뤄지는 친밀한 접촉에 기반을 둔다.......알파 수컷이 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보통 육체적으로 더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크고 안정된 동맹을 이끌기 때문이다.

 

51. 인간은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본능 덕분에 친분을 맺고 위계질서를 형성하며 사냥이나 싸움을 함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이들 원시 인류의 사회성은 서로 친밀한 소규모 집단에만 적용되었다.

 

52. 인지혁명에 뒤이어 뒷담화이론이 등장한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더 크고 안정된 무리를 형성할 수 있었다. .... 과학적 연구 결과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규모는 약 150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뒷담화 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이 있다니.

 

52. 이 임계치 아래에서는 공동체, 사업체, 사회적 네트워크, 군대 등 모든 조직이 친밀한 관계와 소문 퍼뜨리기를 주된 기반으로 삼아서 유지될 수 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식 서열, 직함, 법전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53.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해서 이 결정적 임계치를 넘어 마침내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아마도 허구의 등장에 있었을 것이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며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모두가 공통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58. 어떻게 한 사람이 수백만 명에게 신이나 국가에 대한 특정한 이야기, 혹은 유한회사를 믿게 만드는가? 그러나 일단 성공하면, 사피엔스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서로 모르는 사람 수백만 명이 힘을 모아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강이나 나무, 사자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랬다면 국가나 교회, 법체계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60.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게놈 우회하기

 

60. 단어를 통해 가상의 실재를 창조하는 능력은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신화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로 신화를 바꾸면 인간의 협력방식도 바뀔 수 있다. 1789년 프랑스인들은 왕권의 신성함이라는 신화를 믿다가 거의 하룻밤 새 국민의 주권이라는 신화로 돌아섰다.

 

60. 인지혁명 이후 호모 사피엔스는 필요의 변화에 발맞춰 행동을 신속하게 바꿀 수 있었다. 이것은 유전적 혁명이라는 교통체증을 우회하는 고속도로, 문화혁명의 길을 열었다. 이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주행하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협력하는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인간 및 동물종을 크게 앞질렀다.

 

61. 사회적 형태의 심각한 변화는 일반적으로 유전적 돌연변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61. 원시인류는 어떤 혁명도 시도하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한, 사회 패턴의 변화, 새로운 기술의 발명, 새로운 주거지에의 정착은 문화가 개시한 일이라기보다는 유전자 돌연변이와 환경의 압력에 따른 결과였다. 인류가 이런 단계를 거치는 데 수십만 년이 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61. 2백만년 전,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 호모 에렉투스라는 새로운 인간 종이 등장했다. ..... 이 종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히는 새로운 석기 제작기술이 발달했다. 호모 에렉투스에게 또 다른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동안, 이들의 석기도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62. 대조적으로, 사피엔스는 인지 혁명 이래 행태를 신속하게 바꾸고 새로운 행태를 유전자나 환경의 변화가 없이도 미래 세대에 전달할 수 있었다.

 

62. 카톨릭 교회가 10여 세기 동안 살아남은 것은 교황에서 교황으로 독신주의 유전자를 물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약과 가톨릭 교회법의 이야기들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63. 그녀는 매우 다른 다섯 가지(빌헬름 2,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제 3제국, 공산주의 동독, 통일된 민주주의 독일)사회 정치 체제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DNS는 계속 똑같았는 데도 말이다. 이것이 사피엔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요인이다. 일대일 결투라면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를 이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백 명이 맞붙는다면 네안데르탈인에게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사자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유할 수 있었지만, 픽션을 창작할 능력이 없어 대규모의 협력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없었다. 급속하게 바뀌는 외부의 도전에 맞게 자신들의 사회적 행태를 바꿔 적응할 수도 없었다.

 

64. 사실 사피엔스 외에는 교역을 하는 동물이 없고, 우리가 상세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사피엔스의 교역망은 모두 픽션에 근거를 둔다. 교역은 신뢰 없이 존재할 수 없는데, 모르는 사람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64. 이들은 정보를 주고받는 교역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으로써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여타 원시인류가 활용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밀도 있고 폭넓은 지식망을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65. 전통적이고 정적인 패턴으로 협력하는 50명의 네안데르탈인은 융통성이 많고 창의적인 사피엔스 5백 명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설사 사피엔스가 1회전에서 패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다음번에는 이길수 있는 전략을 재빨리 찾아냈다.

전쟁에서 승리를 위한 전제조건이 충분한 정보 수집이다.

 

역사와 생물학

 

66.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 패턴의 다양성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인지혁명 이전에 모든 인간 종의 행위는 생물학의 영역에 속했다.

 

66. 인지혁명 이후에는 생물학 이론이 아니라 역사적 서사가 호모 사피엔스의 발달을 설명하는 일차적 수단이 되었다.

 

67. 우리와 침팬지의 진정한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에 있다. 이 접착제는 인간을 창조의 대가로 만들었다. ..... 수많은 사람들과 협력하는 능력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도구 제작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 많은 수의 낯선 사람들과 협력하는 우리의 능력은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68. 인지혁명 이후 생물학과 역사의 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생물학은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과 능력의 기본 한계를 결정한다. 모든 역사는 이런 생물학적

영역의 구속 내에서 일어난다.

2. 하지만 이 영역은 극도로 넓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픽션을 창조하는 능력 덕분에 점점 더 복잡한 게임을 만들었고, 이 게임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더욱 발전하고 정교해진다.

3. 결과적으로, 사피엔스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들의 행동이 역사적으로 진화해온 경로를 서술해야 한다. 우리가 생물학적 속박만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면서 선수 들이 무엇을 하고 잇는지를 설명하기보다는 운동장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는 라디오 아나운서와 다를바 없다.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지금 우리와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문화에서 살았던 사피엔스, 부부관계, 가정생활 등 그들이 살았던 환경이 지금 우리 환경보다 나쁘다고 말할수 있을까? 기술 등 생활수준의 향상이 그 옛날과 비교할수 없는 수준인 지금. 이런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행복하십니까?”

 

70. 오늘날 번성하는 진화심리학 따르면, 현대인의 사회적심리적 특성 중 많은 부분이 이처럼 농경을 시작하기 전의 기나긴 시대에 형성되었다. ..... 이런 환경 덕분에 우리는 이전의 어떤 세대와 비교하더라도 물적 자원이 풍부해지고 수명도 길어졌지만, 이 환경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소외되고 우울하고 압박받는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그 이유를 알려면 우리를 형성했던 수렵채집 세계를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는 아직도 그 속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71. 고칼로리 식품을 탐하는 본능은 우리의 유전에 새겨져 있다. ... 그래서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발견하면 한 숟가락 푸욱 떠서 먹고 점보 콜라로 입가심까지 하는 것이다. 게걸스러운 유전자이론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가 배가 나오는 이유가 우리 조상들 때문이었네.

 

72. 오늘날 결혼 생활을 특징짓는 잦은 불륜, 높은 이혼율, 나아가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겪는 갖가지 심리적 콤플렉스들은 어디에 연원을 두고 있을까. ‘고대 공동체이론의 지지자들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생물학적 소프트웨어와 맞지 않는 핵가족과 일부일처제로 살도록 강제한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럴듯한 이론이네. 한 여자와 한 남자에 만족못하는 사람들. 심리적으로 다 이유가 있는거라 생각한다.

 

75. 수렵채집인들은 매달 매주, 심지어 매일 집을 옮겼다. 가진 것을 모두 등에 짊어지고 말이다. 이삿짐센터도 짐마차도 짐을 운반할 가축도 없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만 가지고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정신적, 종교적, 감정적 삶의 태반은 인공물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뤄졌다고 가정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76. 고대 수렵채집인들 사이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도 이와 마찬가지로 상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농업혁명 전에 지구에 살고 있던 5백만~8백만 명의 수렵채집인은 수천 개의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수천 개의 개별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78. 인지혁명 이래 사피엔스에게는 단 하나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가능성 가운데 어떤 것을 문화적으로 선택하느냐라는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79. 역사가 15,000년에 이르는 유대관계를 통해서 인간과 개는 다른 동물의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친밀한 관계인데 난 개가 너무 싫다. 딱히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싫다.

 

83. 인간 공동체의 지식은 고대 인간 무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지만,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사피엔스의 평균 뇌 용적은 수렵채집 시대 이래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증거가 일부 존재한다. 그 시대에 생존하려면 누구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녀야 했다. 하지만 농업과 산업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게 되었고, ‘바보들을 위한 생태적 지위가 새롭게 생겨났다. ..... 수렵채집인들은 주변의 동물, 식물, 물건뿐 아니라 자기 신체와 감각이라는 내부세계에 대해서도 완벽히 터득했다.

 

84. 이에 더해 이들에게는 가사노동의 부담이 적었다. 접시를 씻고 진공청소기로 카펫을 밀고 마루를 닦고 기저귀를 갈고 청구서를 납부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그때가 더 편하네. 주부가 되보니 느껴진다. 끝이 없은 가사일.. 지금은 가전기구들이 좋아져서 그나마 다행이지 그 옛날은 생각만 해도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우리 어머니들의 위대함.

 

84. 수렵채집 경제는 노업이나 산업 시대보다 사람들에게 더욱 흥미로운 삶을 제공했다.

 

86. 이처럼 다양한 식품은 고대 수렵채집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확실히 섭취하게 해주었다. 게다가 단 한가지 식량에만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식량의 공급이 끊어져도 문제가 덜했다.

 

86. 고대 수렵채집인은 전염병의 영향도 덜 받았다. 농경 및 산업사회를 휩쓴 대부분의 전염병은 가축이 된 동물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것이 사람에게 전파된 것은 농업혁명 이후부터다.

 

86. 게다가 농업 및 산업사회 사람들은 인구가 밀집한 비위생적인 거주지에 영구적으로 살았는데, 이는 질병이 퍼지기 이상적이 온상이었다. 수렵채집인들은 떠돌며 생활했는데, 무리도 소규모여서 전염병이 널리 퍼질 수 없었다.

 

87.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주당 일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으며, 전염병도 드물었으니,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는 농경 이전 수렵채집 사회를 최초의 풍요사회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대인의 삶을 이상적인 것으로 그리면 실수일 수도 있다.

고대냐 지금이냐를 택하라면 그대도 난 지금을 택하고 싶다. 내가 그리는 대로 뭔가 해볼수 있는 기회라도 있지. 미래가 안 그려지는 수렵채집사회는 풍요롭다하더라도 선택하기 어렵다.

 

말하는 유령

 

89. 고대 수렵채집인의 정신적·영적 삶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90. 고대 수렵채집인 사이에서 에니미즘 신앙이 일반적이었다는 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의한다. 애니미즘이란 모든 장소 동물, 식물, 자연현상이 의식과 감정을 지지니고 있으며 인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90. 애니미즘의 세계에서는 사물과 생물만 정령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형의 실체도 존재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 오늘날 우리가 악마, 요정, 천사라고 부르는 사악하거나 우호적인 존재가 모두 그런 예다.

 

91. 애니미즘은 특정한 종교가 아니다. 수천 종이 넘는 종교와 사교와 신앙의 포괄적 이름이다..

 

전쟁이냐 평화냐

 

97.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산업혁명 이전의 전쟁에서 사망자의 90퍼센트 이상은 무기가 아니라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 때문에 죽었다는 점이다.

 

99. 다음 중 어느 쪽이 고대 수렵채집인의 세계를 더 잘 대변할까? 이스라엘과 포르투갈의 평화로운 유골, 아니면 자블 사하바와 오프넷의 도살장? 어느쪽도 아니다. 수렵채집인들의 종교와 사회구조가 매우 다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폭력 사용률역시 매우 다양하게 분포했을 가능성이 크다.

 

침묵의 커튼

 

99. 고대 수렵채집인들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전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어려운 수준이라면, 특정한 사건을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수준이다.

 

100. 이런 침묵의 커튼은 수만 년에 걸친 역사를 감추고 있다. ..... 침묵의 커튼은 너무 두꺼워서, 이런 사건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4절 대홍수

 

103. 인지혁명의 결과 사피엔스는 기술과 조직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으며, 그 덕분에 아프로아시아를 벗어나 외부세계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전망까지도 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초의 업적은 약 45,000년 전에 호주에 정착한 것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사피엔스는 굳이 육지를 떠나 호주로 향했던 것일까요? 그냥 육지에 있으면 되는데 굳이 모험을 찾아 호주로 간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인간의 지적호기심과 모험심, 아니면 죄를 짓고 도망가다가...

 

103. 45,000년 전에 인도네시아 제도에서 살던 사피엔스가 최초의 항해사회를 발전시켰다. 이들은 대양을 항해는 배를 건조하고 움직이는 법을 습득해서 장거리 어부, 교역자, 탐험가가 되었다. 이는 인류의 능력과 생활방식에 전대미문의 변화를 초래했을 것이다.

 

104. 최초의 수렵채집인이 호주 해안에 발을 들인 순간은 호모 사피엔스가 특정 대륙에서 먹이사슬의 최상층부로 올라가고 이후 지구라는 행성의 연대기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 된 순간이었다.

 

104. 호주 정착민들, 보다 정확하게는 정복자들은 현지 생태계에 적응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생태계를 알아 볼수 없을 정도로 바꿔버렸다.

 

105. 몇 천년이 지나지 않아, 대형동물은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몸무게 50킬로그램이 넘는 호주의 동물 24종 중 23종이 멸종했다..... 호주 전체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붕괴되고 재조정되었다. 이것은 지난 수백만 년 이래 호주 생태계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였다. 이 모든 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탓이었을까?

 

기소 내용대로 유죄

 

107. 사피엔스가 유죄라는 것을 반박하기가 불가능하다. 예컨대 약 45,000년 전의 소위 기후변화에 조금의 타격도 입지 않았던 뉴질랜드의 대형동물군은 인류가 그곳에 발을 들이자마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107. 매머드는 지난 수백만년 간 북반구 대부분 지역에서 번성했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에는 유라시아로 다음에는 북미로 퍼져나가자 매머드들은 계속 후퇴했다. 1만 년 전이 되자 랭겔 섬을 비롯한 북극해의 외딴 섬 몇 곳을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매머드를 단 한 마리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랭겔 섬의 매머드는 몇천 년간 더 번성하다가 약 4천년 전 갑자기 사라졌다. 인간이 섬에 도착한 바로 그 시기에 말이다.

 

109. 두 번째 설명은 사피엔스가 호주에 도착했을 때 이들이 이미 불을 질러 농경지를 만드는 화전법에 통달한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는 한 증거는 식물 화석이다. 45,000년 전 호주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드물었다...... 이 나무는 화재에 특히 강하기 때문에 다른 나무들이 사라지는 동안 멀리까지 퍼져나갈 수 잇었다. 이런 식생의 변화는 식물을 먹는 동물뿐 아니라 그 동물들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오직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 코알라는 행복하게 잎을 씹으며 새로운 서식지로 퍼져나갔다.

 

110. 세 번째 설명은 사냥과 화전 농업이 멸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긴 하지만 기후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나무늘보의 종말

 

111. 보온복과 사냥기술이 개선되자 사피엔스는 얼어붙은 지역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이들이 북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의복, 사냥기술을 비롯한 생존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했다. 그런데 왜 이런 수고를 무릅썻을까? 도대체 왜 스스로 시베리아로 유배를 갔을까? 일부 무리는 전쟁, 인구 증가의 압박, 자연재해 때문에 북쪽으로 내몰렸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예컨대 동물성 단백질 같은 긍정적 이유로 북쪽에서 이끌린 집단도 있었을지 모른다. 북극 땅은 순록이나 매머드처럼 군침이 도는 대형동물이 풍부했다. 매머드는 한 마리만 잡아도 엄청난 양의 고기와 맛있는 지방, 따뜻한 모피, 귀중한 상아를 제공하였다.

내가 궁금한 이유이다. 육지에서 육지로의 이동은 이해를 하겠다. 그러나 아직 나는 섬으로의 이동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 옛날에도 멀리 떨어져 있던 호주에 사피엔스가 어떻게 도착했느냐 보다는 왜 거기에 갔을까이다.

 

113. 기원전 10000년이 되자 인류는 미 대륙 최남단의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에까지 정착했다. 인류의 이런 진격전은 호모 사피엔스의 뛰어난 창의력과 적응력을 증언한다. 다른 동물들은 이토록 극단적으로 다양한 서식지들에 사실상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상태로 그토록 빨리 이주한 예가 전혀 없다. 사피엔스의 미 대륙 정착 과정은 평화롭지 않았다. 사피엔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희생자들의 흔적이 길게 남았다.

 

113. 사피엔스가 도착한 지 2천 년이 지나지 않아 이들 유일무이한 종 대부분이 사라졌다. 오늘날의 추정에 따르면, 그 짧은 기간 동안 북미에서 대형동물 47속 중 34속이 사라졌다.

 

노아의 방주

 

115. 사피엔스의 첫 번째 이주의 물결은 동물계에 닥친 가장 크고 신속한 생태적 재앙이었다는 결론을 도저히 피할수 없다. .... 인지혁명이 일어날 즈음 지구에는 몸무게 45킬로그램이 넘는 대형동물 약 2백속이 살고 있었다. 농업혁명이 일어날 즈음 이들 중 남은 것은 약 1백 속에 지나지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바퀴, 문자, 금속도구를 발명하기 한참 전부터 지구 대형동물의 절반가량을 멸종으로 몰아갔다.

 

115. 이런 생태적 재앙은 농헙혁명 이후에도 규모만 작아졌을 뿐 수없이 재연되었다. 우리가 조사해본 섬마다 고고학적 기록은 늘 똑같은 슬픈 이야기를 전한다. 비극은 풍부하고 다양한 대형동물 집단들을 보여주면서 막을 연다. 인간의 흔적은 전혀 없다. 2장에서는 사피엔스가 등장한다. 인간의 뼈, 창촉, 도자기 파편 같은 것이 증거다. 3장이 서둘러 이어진다. 인간 남녀가 무대 중앙을 차지하고 대부분의 대형동물은 좀 더 작은 수많은 동물과 함께 무대에서 사라진다.

 

117. 수렵채집인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1의 물결 다음에는 농부들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2물결이 왔고, 이 사실은 오늘날 산업활동이 일으키고 있는 멸종의 제 3의 물결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 조상들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았다는 급진적 환경보호운동가의 말은 믿지 마라. 산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생물들을 아울러 가장 많은 동물과 식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 만일 우리가 이미 얼마나 많은 종을 절멸시켰는지 안다면, 아직 살아남은 종들을 보호하려는 의욕이 좀 더 생길 것이다.

우리가 재미로 한건 아니지 않는가. 먹고 살기 위해 그런 것인데 그것은 운명적인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제는 사냥이 아니더라도 먹고살만 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할수 있는 것이다.

 

118. 세상의 대형돌물 중 인간이 초래한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직 인간 자신과 노아의 방주에서 노예선의 노잡이들로 노동하는 가축들 뿐일 것이다.

 

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저자는 얘기하고 있다. 먹을 것을 찾아 거주지를 옮겨 다녀야 했던 수렵채집인의 삶에서 한 곳에 정착하고 풍요롭다고 생각했던 농업혁명이 실상은 인간에게 더 많은 노동과 자유를 빼앗아 갔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를수록 힘들게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부인데 아무것도 안하는 왕과 엘리트 층은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그들의 식량을 가져간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생활여건이 나아지지 않은 이 계속되는 빈곤의 상황은 농업혁명으로 인해 생긴 것이고 이것은 사기이다. 그리고 사피엔스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다른 동물입자에서도 생각해보자. 가축화된 소, , 돼지 등이 과연 행복한가? 그들에게 우리는 잔인한 짓을 하고 있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선,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준다.

 

120. 인간이 250만 년간 먹고살기 위해 사냥했던 동물과 채집했던 식물은 스스로 자라고 번식한 것들이었다. 거기에 인간의 개입은 없었다.

 

120. 현재의 방식으로 잘 먹고 살 수 있으며 풍성한 사회구조, 종교적 믿음, 정치적 역학의 세계를 잘 지탱할 수 있는데 굳이 왜 다른 것을 시도하겠는가? 이 모든 상황은 대략 1만년 전 달라졌다. 이때부터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동물과 식물 종의 삶을 조작하는 데 바치기 시작했다.

 

121.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의 혁명, 즉 농업혁명이었다. 인류가 농업으로 이행한 것은 기원전 9500~8500년 경 터키 남동부, 서부 이란, 에게 해 동부 지방에서였다. 시작은 느렸고 지리적으로 제한된 지역만을 대상으로 했다. 밀을 재배하고 염소를 가축화한 것은 기원전 9000년경이었다.

 

122. 기원전 3500년이 되자 가축화와 재배작물화의 주된 파도는 지나갔다. 온갖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인류를 먹여 살리는 칼로리의 90퍼센트 이상이 밀, , 옥수수, 감자, 수수, 보리처럼 우리 선조들이 기원전 9500년에서 3500년 사이에 작물화했던 한줌의 식물들에서 온다.

 

122.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수렵채집인 시대의 것이라면,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122.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중동 농부들이 자신들의 혁명을 수출한게 아니라 농업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완전히 독자적으로 생겨났다는 생각에 합의하고 있다.

 

123. 중동, 중국, 중미에서 일어난 농업혁명이 호주, 알래스카, 남아프리카에서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식물과 동물 종은 작물화나 가축화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잡거나 채취했던 수천 종의 동물과 식물 중에 농업과 목축업에 맞는 후보는 몇 되지 않았다. 이들 종은 특정 장소에 살았고, 그 장소들이 바로 농업혁명이 일어난 지역이다.

 

123. 한때 학자들은 농업혁명이 인간성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두뇌의 힘을 연료로 하는 진보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진화는 점점 더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만들어냈고, 결국 사람들은 너무 똑똑해져서 자연의 비밀을 파악하고 양을 길들이며 밀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게 가능해지자마자 지겹고 위험하고 종종 스파르타처럼 가혹했던 수렵채집인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농부의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을 즐기기 위해 정착했다는 것이다.

 

124.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 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들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사기일수 있겠지만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피할수 있었을까? 지금의 시대도 별로 변하게 없다. 죽도록 일만 해도 먹고 살기 힘들다. 그래도 이 제도가 이 질서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닐까. 수렵채집인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건 주관적인 생각이다. 수렵시대의 생태계가 균형을 이룰수 있을까? 농경사회가 왔기 때문에 이만큼 생태계가 유지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진작에 이 땅에 동식물은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124.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왕이나 사제, 상인은 아니었다.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게 아니었다.

모든 동식물은 자손들을 번식시키는 것이 제 1의 목표다. 저자가 얘기하는 것 처럼 식물이 우리 인간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를 그를 보호하고 지금까지 번식시켜준 것으로 충분히 볼수 있다.

 

125.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기본적 기준에 따르면 밀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식물이 되었다.

 

125. 어떻게 이 잡초는 그저그런 식물에서 출발해 어디서나 자라는 존재가 되었을까? 밀은 호모 사피엔스를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작함으로써 그렇게 해낼 수 있었다. 1만년 전까지 이 유인원은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상당히 편안하게 살고 있었으나, 이후 밀을 재배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2천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많은 지역의 인간은 동이 틀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밀을 돌보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었다.

 

126. 사피엔스의 신체는 이런 과업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사과나무에 기어오르고 가젤을 뛰어서 뒤쫓는 데 적응했지, 바위를 제거하고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 데 적합한 몸이 아니었다.

 

126. 고대 유골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 새로운 농업노동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 우리가 말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126. 밀은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로 하여금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삶을 더 비참한 생활과 교환하도록 설득했을까 무엇을 보상으로 제시했을까? 더 나은 식사를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명심하자. 인류는 아주 다양한 음식을 먹고사는 잡식성 유인원이다. 농업혁명 이전 식사에서 곡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었다.

 

127. 수렵채집인 무리는 강력한 라이벌에게 몰리면 보통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었다. 힘들고 위험하지만 실행할 수는 있었다. 농촌 마을이 강력한 적의 위협을 당할 경우, 후퇴는 곧 목초지와 집, 곡물창고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많은 경우 이런 피난민들은 굶어죽었다.그러므로 농부들은 그 자리에서 버티면서 최후까지 싸우는 경향이 있었다. 많은 인류학적, 고고학적 연구는 부족이나 종족을 넘어서는 정치적 틀이 없는 단순 농경사회에서 사망의 15퍼센트가 인간의 폭력 탓임을 시사한다.

 

128. 그렇다면 밀은 영양실조에 걸린 중국 소녀를 비롯한 농업종사자들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사람들 개개인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는 무엇을 주었다. 밀 경작은 단위 토지당 식량생산을 크게 늘렸고, 그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129.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사치라는 덫

 

132. 곡물 경작에 더 많은 노력이 집중되면서 야생 동식물을 사냥하고 채집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수렵채집인은 농부가 되었다.

 

132. 영구 정착촌에 살면서 식량공급이 증가하자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방랑하는 삶을 포기하자 여성은 매년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기는 젖을 일찍 뗐다.

 

133. 역설적이게도 일련의 개선이 합쳐져서 농부들의 어깨에 더 무거운 짐으로 얹혔다. 각각의 개선은 삶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134.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추가로 생산된 밀은 숫자가 늘어난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초기 농부들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 또 있었다. 아이들에게 모유를 덜 먹이고 죽을 더 많이 먹이면 면역력이 약해져 영구 정착촌이 전염병의 온상이 되리란 사실이었다. 그들은 또한 단일 식량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가뭄에 더욱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또한 풍년에 넘쳐나는 창고는 도둑과 적을 유혹할 것이며 이를 방비하려면 성벽을 쌓고 보초를 서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견하지 못했다.

 

134. 그렇다면 왜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때문에 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렸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 덫에 딱 걸리고 말았다.

 

134.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 더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었고, 이것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중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어 35세에 은퇴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회사들에 들어가 힘들게 한다. 하지만 막상 그나이가 되면 거액의 주택융자, 학교에 다니는 자녀,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는 교외의 집, 정말 좋은 와인과 멋진 해외 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들이 뭘 어떻게 할까? 뿌리채소나 캐는 삶으로 돌아갈까? 이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같은 노동을 계속한다.

나도 얼마 전까지 이랬다.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주는 밥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농업혁명으로 길들여진 호모 사피엔스가 수렵채집의 시대로 못 돌아가듯이 우리 또한 자기가 가는 길이 분명 노예와 같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더 열심히 할 뿐이다.

 

135.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 이들 기계는(세탁기, 진공청소기, 전화, 휴대폰 등) 삶을 더 여유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슬프게도 그렇지 못하다.

 

136. 인류가 좀 더 편한 생활을 추구한 결과 막강한 변화의 힘이 생겼고 이것이 아무도 예상하거나 희망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신성한 개입

 

137. 농업혁명은 오산이다. 이것은 매우 그럴듯한 이야기다. 역사는 이것보다 훨씬 더 바보 같은 오산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편안한 삶을 추구하다 보니 전환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피엔스에게 다른 열망이 있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의식적을 삶을 힘들게 만들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보통 역사적 발전의 원인을 차가운 경제적 인구학적 요인에 돌리려 한다.

 

139. 스톤헨지는 기원전 2500년의 발달된 농경사회 사람들이 건설한 것이다. 이에 비해 괴베클리 테페의 구조물들은 연개가 기원전 95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모든 증거가 가리키는 바, 이 구조물은 수렵채집인들이 세운 것이었다. ...... 고대 수렵채집인의 능력과 문화적 복잡성은 우리가 이전에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났던 것 같다. 수렵채집 사회 사람들은 왜 이런 구조물을 세웠을까? .....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었든간에 수렵채집인들은 거기에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테페를 건설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 무리와 부족에 속한 수천 명의 수렵채집인을 오랫동안 협력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런 노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세련된 종교나 이데올로기 시스템밖에 없다.

 

140. 어쩌면 수렵채집인들이 야생 밀 채취에서 집약적인 밀 경작으로 전환한 목적은 정상적인 식량공급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원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혁명의 희생자들

 

142. 지구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대형 포유류를 순서대로 꼽으면 사람이 첫째이고, 2, 3, 4위가 가축화된 소, 돼지, 양이다. 불행하게도 진화적 관점은 성공의 척도로서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뿐,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143.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아마도 진화적 성공의 사례이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동물의 가축화는 일련의 야만적 관행을 기반으로 이뤄졌고, 관행은 수백 수천 년이 흐르면서 더욱 잔인해졌다.

 

146. 이 송아지가 처음으로 걷고 근육을 뻗으며 다른 송아지들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도살장으로 가는 길에서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소는 가장 성공한 종 가운데 하나다. 이와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동물 가운데 하나다.

 

147. 역사를 통틀어 양치기와 농부는 자신의 동물에게 애정을 보였으며 매우 잘 돌보았다. 마치 많은 노예 소유주가 자신의 노예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많은 왕과 예언자가 스스로를 목자라고 부르며 자신이나 신이 백성을 돌보는 것을 양치기가 자신의 양 떼를 돌보는 것에 비유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47.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 소나 양, 사피엔스처럼 각자 복잡한 기분과 감정을 지닌 동물의 경우, 진화적 성공이란 것이 개체의 경험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종이 집단적으로 힘을 키우고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

 

6. 피라미드 건설하기

인간은 상상속의 질서속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고대 이집트의 엘리트처럼, 대부분의 문화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피라미드 건설에 삶을 바쳤다. 문화에 따라 피라미드의 이름과 형태와 크기가 달라질 뿐이다. 애초에 우리로 하여금 그 피라미드를 욕망하도록 만든 신화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제 우리는 피라미드를 깨뜨릴수는 없는 시점까지 왔다. 그것이 정말로 상상속의 질서라면 설사 개인으로 끝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인식하고 거기서 빠져나올수 있는 통찰이 필요하다. 나에게 상상속의 질서란 무엇일까?

 

148. 농업혁명은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사건 중 하나다. 일부에서는 그 덕분에 인류가 번영과 진보의 길에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파멸을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일대 전환점이었다는 것이다.

 

미래의 도래

 

153. 농사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대규모 정치사회체제의 토대였다.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슬프게도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왕궁과 성채, 기념물과 사원을 지었다. .....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상상 속의 질서

임팩트가 강하다. 내가 지금 지키고 있는 법과 규정, 제도 등이 상상속의 질서라고 하는 저자의 설명. 소름이 끼친다. 어떻게 보면 당연시하고 있는 나의 매트릭스를 깨주는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154. 역사상 전쟁과 혁명 대부분은 식량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의 선봉에 선 것은 굷주린 농부가 아니라 부유한 법률가들이었다.

 

154. 이런 재난들의 근원에 깔린 문제점은 인류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불과 수십 명으로 구성된 작은 무리에서 진화해왔다는 사실이다. 농업혁명이 일어난 뒤 도시와 왕국과 제국이 출현하는 데는 불과 몇 천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규모로 협력하는 본능이 진화하기에는 너무나 짦은 시간이었다.

 

155. 생물학적 협력본능이 부족함에도 수렵채집기에 서로 모르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었던 것은 공통의 신화 덕분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협력은 느슨하고 제한적이었다.

 

155. 하지만 알고보니 그것을 틀린 생각이었다. 신화는 상상할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들, 조상의 땅, 주식회사 등등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꼭 필요한 사회적 결속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본능이 늘 그렇듯 달팽이처럼 서서히 진화하고 있는 동안, 인간의 상상력은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갔다.

 

156. 우리는 이집트 파라오 제국이나 중국의 진 제국에서 운영했던 대량 협력망에 대해 장밋빛 환상을 품어서는 안된다. ‘협력이란 말은 매우 이타적으로 들리지만 항상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평등주의적인 경우는 드물었다. 인간의 협력망은 대부분 압제와 착취에 적합하도록 맞춰져 있었다.

 

157. 이들을 지탱해주는 사회적 규범은 타고난 본능이나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공통의 신화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신화는 어떻게 해서 제국 전체를 지탱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미 그런 사례를 하나 검토했다. 푸조 사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화 두 개를 살펴보자. 하나는 함무라비 법전이고 또 하나는 미국의 독립선언문이다.

 

163. 사실 모두가 틀렸다. 함무라비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두 평등이나 위계질서 같은 보편적이고 변치않는 정의의 원리가 지배하는 현실을 상상했지만, 그런 보편적 원리가 존재하는 장소는 오직 한 곳, 사피엔스의 풍부한 상상력과 그들이 지어내어 서로 들려주는 신화 속 뿐이다. 이런 원리들에 객관적 타당성은 없다.

 

163. 어떤 의미에서 모든 인간이 서로 평등하다는 것인가? 인간의 상상력을 벗어나 어딘가에 우리가 진정으로 평등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가 있단 말인가?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평등한가? 미국 독립선언문의 가장 유명한 구절을 생물학 용어로 한번 번역해보자

 

164. 진화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에 기반을 둔다. 모든 사람은 얼마간 차이 나는 유전부호를 가지고 있으며, 날 때부터 각기 다른 환경과 영향에 노출된다. 그래서 각기 다른 특질을 발달시키게 되며, 그에 따라 생존 가능성에 차이가 난다. 따라서 평등한 창조란 말은 각기 다르도록 진화했다는 표현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165. ‘자유?’ 생물학에 그런 것은 없다. 평등이나 권리, 유한회사와 마찬가지로 자유란 사람들이 발명한 무엇이고,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165.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본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르게 진화했으며, 이들은 변이가 가능한 모종의 특질을 지니고 태어났고 여기에는 생명과 쾌락의 추구가 포함된다.

 

진정한 신자들

 

167.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일부 있어야 한다.

 

169. 만일 그 주창자 대다수가 인()과 예()와 효()를 신봉하지 않았다면, 유교는 2천년 넘게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과 의원 대다수가 인권을 신봉하지 않았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250년간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투자자와 은행가 대다수가 자본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면, 현대 경제 시스템은 단 하루도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교도소의 담장

 

169.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는 위대한 신이나 자연법에 의해 창조된 객관적 실재라고 늘 주장해야 한다. ..... 사람이 평등한 것은 토머스 제퍼슨이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신이 그렇게 창조했기 때문이다.

 

170.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조직화하는 질서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은 세가지이다.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2.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사람들이 가장 개인적 욕망이라고 여기는 것들조차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이다. 예컨대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흔한 욕망을 보자. 이런 욕망은 전혀 자연스럽지도, 당연하지도 않다. ....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진정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새로운 경험이 어떻게 나의 시야를 넓히고 내 인생을 바꾸었는가.“하는 낭만주의적 신화를 되풀이해서 듣는다. 고대 이집트의 엘리트처럼, 대부분의 문화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피라미드 건설에 삶을 바쳤다. 문화에 따라 피라미드의 이름과 형태와 크기가 달라질 뿐이다. ....애초에 우리로 하여금 그 피라미드를 욕망하도록 만든 신화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3.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상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수백만 명의 낯선 사람에게 나와 협력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상상의 질서는 내 상상력 속에만 존재하는 주관적 질서가 아니라 수억 명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상상속에 존재하는 상호 주관적 질서이기 때문이다. 상호주관이란 많은 개인의 주관적 의식을 연결하는 의소통망 내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단 한 명의 개인이 신념을 바꾸거나 죽는다 해도 그에 따른 영향은 없지만, 그물망 속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신념을 바꾼다면 상호 주관적 현상은 변형되거나 사라진다.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인 중 다수가 상호 주관적이다. , , , 국가가 모두 그런 예다.

 

177. 이런 상상속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며, 이를 변화시키려면 수십억 명의 의식을 동시에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대규모 변화가 일어나려면 정당이나 이념운동, 혹은 종교적 광신집단 같은 복잡한 기구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복잡한 기구를 만들자면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을 협력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런 일은 오로지 그들이 뭔가 신화를 공유하고 있을때만 일어난다. 그러니 현존하는 가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그 대안이 되는 가상의 질서를 먼저 믿어야 하는 것이다.

 

177.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일 뿐이다.

 

7. 메모리 과부하

 

179. 인간은 단순히 자기 DNA를 복사하고 이를 후손에 전해주는 것만으로는 사회운영에 필요한 핵심정보를 보존할 수 없다. 사피엔스의 사회질서는 가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법과 관습, 절차와 예절을 지탱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질서는 빠르게 무너질 것이다.

 

180. 불행히도 인간의 뇌는 제국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저장하는 장치로서는 훌륭하지 않은데, 주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용량이 부족하다. 둘째, 인간이 죽으면 뇌도 같이 죽는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인데, 인간의 뇌는 특정한 유형의 정보만을 저장하고 처리하도록 적응했다.

 

181. 농업혁명에 뒤이어 유달리 복잡한 사회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정보가 중요해졌다. 바로 숫자다.

 

182. 이 정신적 한계은 인간 집단의 크기와 복잡성도 심각하게 제한했다. 정 사회의 구성원과 재산의 양이 특정한 임계치를 넘어서면 대량의 수학적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할 필요가 생겼다. 인간의 뇌는 그 일을 할수 없었기 때문에, 시스템은 무너졌다. 농업혁명이래 수천 년간 인간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상대적으로 작고 단순한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182. 문제를 처음 극복한 것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살던 고대 수메르인이었다......익명의 수메르 천재들이 뇌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을 발명했다. .... 덕분에 수메르인들은 인간의 뇌에서 비롯되는 사회질서의 제약에서 벗어나 도시, 왕국, 제국의 출현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수메르인이 발명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쓰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쿠심이 서명했다.

 

183. 쓰기는 유형의 기호를 통해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이다. ... 두 유형의 기호(숫자와 형상을 나타내는 기호)를 결합함으로써 수메르인들은 많은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었다. 어떤 한 인간의 뇌가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어떤 한 DNA 사슬이 부호화할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었다.

 

187. 대륙의 새 지배자들은 이 때문에 자신들의 지위가 약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현지인 키푸 전문가들이 주인을 오도하거나 속이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페인의 지배가 좀 더 굳건하게 정착되자 키푸는 단계적으로 폐지되었으며, 새 제국의 기록은 순전히 라틴 문자와 숫자로만 쓰였다.

 

관료주의의 불가사의

 

187. 마침내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단조로운 수학 데이터이외의 것을 쓰고 싶어졌다. ... 오늘날 쐐기문자라고 불리는 완전한 문자체계로 점차 바뀌었다. .... 대략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인들은 상형문자라 불리는 별개의 완전한 문자체계를 개발했다.

 

188. 그래도 쓰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여전히 대량의 수학적 데이터를 저장하는데 있었고, 이 임무는 불완전한 문자체계의 면면한 특권이었다.

 

188. 히브리 성경, 그리스의 일리아스, 힌두교의 마하바라타, 불교의 팔리어 경전은 모두 구전 작품으로 시작했다. 이들 작품은 입에서 입으로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전수되었으며, 설사 문자가 발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191. 수메르와 파라오의 이집트, 고대 중국, 잉카 제국이 달랐던 점은 이런 문화들이 문자기록을 보관하고 목록을 만들고 검색하는 뛰어난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193. 문자체계가 인간의 역사에 가한 가장 중요한 충격은 정확히 이것, 인간이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이 점차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자유연상과 전체론적 사고는 칸막이와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너무 흑백논리 아닌가. 장점도 있고 단점도 분명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몰고가는 건

 

숫자라는 언어

 

193. 여러 세기가 흐르면서 자료를 처리하는 관료주의적 방식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고에서 더욱더 멀어졌고, 더욱더 중요해졌다. 결정적 단계는 9세기 이전의 어느 시점에 왓다. 수학적 데이터를 전에 없이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불완전한 문자체계 하나가 새로 발명된 것이다. ... 이 쓰기 체계는 여전히 불완전한 문자체계이지만, 세계의 지배언어가 되었다.

 

194. 수학적 문자체계로 번역할 수 있는 모든 정보는 엄청난 속도와 효율로 저장되고 펼지고 처리된다. 정부나 기구, 회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사람은 숫자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195. 쓰기는 인간의 의식을 돕는 하인으로 탄생했지만, 점점 더 우리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이 쓰기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 책을 읽고 있는거잖아.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는법. 우리가 하인이 아니라 진정한 주인임을 책을 통해 이렇게 독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196. 농업혁명 이후 수천 년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인류는 어떻게 자신들을 대규모 협력망으로 엮었는가? ..... 그것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체계를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발명품을 통해서 생물학적으로 물려받은 것에 의해 생겨난 틈을 메웠다.

 

198. 하지만 모든 상상의 질서는 스스로가 허구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고 자연적이고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 역사의 철칙이다.

 

199. 하지만, 우리가 아는 한, 이런 위계질서는 모두 상상의 산물이다. 정말로 브라만과 수드라가 원시적 존재의 각기 다른 신체부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두 계급 사이의 차별은 약 3천 년 전 인도 북부에서 발명한 법과 규범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달리, 노예와 자유민 사이에 생물학적 본성의 차이가 밝혀진 바는 없다. 인간의 법과 규범이 어떤 사람은 노예로 어떤 사람은 주인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199. 많은 미국인과 유럽인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이외의 위계질서는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건 비단 미국과 유럽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가 공통으로 겪는 문제이다.

 

200. 하지만 대부분의 부자가 부유한 이유는 그저 부잣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이 평생 가난하게 사는 것은 그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201. 물론 사회적 차별이 형성되는 데는 타고난 능력의 차이도 한 몫하지만, 능력과 성격의 다양성은 보통 상상의 질서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재능에는 육성과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그것을 키우고 갈고 닦고 훈련할 환경이 되지 않으면 재능은 잠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든 사람이 능력을 배양하고 가다듬을 기회를 동등하게 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회를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는 그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상상의 위계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달려 있다.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것이 부자이든 무엇이든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교육에서만큼은 누구나 동등해야 되는데 우리나라를 보면 이 교육에도 부가 적용된다. 돈 있는 사람이 사교육을 하는게 무엇이 문제겠냐만은 정말 말로만이 아니라 공교육만 받아도 대학을 가는데 문제만 없다면 사교육의 필요성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제도가 뒷받침되어야만 하는데 이미 차이는 벌어질만큼 벌어졌고 과연 개선될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202. 둘째, 다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의 정확히 같은 능력을 개발했더라도 이들이 똑같이 성공할 가능성은 적다. 게임에 적용되는 규칙이 각기 차이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 경제라는 게임은 법적인 제약과 비공식적인 유리천장으로 조작되게 마련이다.

 

악순환

 

202. 모든 사회는 상상의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그 위계질서가 반드시 동일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왜 인도의 전통 사회는 카스트에 따라, 오토만 사회는 종교에 따라, 믹국 사회는 인종에 따라 사람의 등급을 나눌까? 대부분의 경우 각각의 위계질서는 일련의 우연한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여러 집단들이 저마다 이해관계를 갖게 됨에 따라 영속성을 얻고 세련되어졌다.

 

203. 지배자들은 카스트 제도가 우연한 역사적 발전이 아니라 영원한 우주적 실재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결과 불결의 개념은 힌두교의 핵심요소로서, 사회적 피라미드를 지탱하는 데 이용되었다.

 

203. 역사를 통틀어 거의 모든 사회에서 오염과 청결 개념은 사회 정치적 구분을 강제하는 데 주된 역할을 했으며, 수많은 지배계급이 특권을 유지하는데 이를 활용했다.

 

204. 힌두교의 계급제도와 여기에 수반되는 청결의 법칙은 인도 문화에 깊이 새겨졌다. 인도아리아인의 침략이 잊힌 지 오랜 뒤에도 인도 사람들은 카스트 제도를 계속 믿었고, 카스트를 뒤섞는 데서 오는 오염을 혐오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양반제도와 비슷할 것이다. 지금도 은연중에 양반집안이야 쌍놈집안이냐를 따지는데 완전히 사라지기는 힘들다. 인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약해지기는 하겠지만 없어지는 것 오히려 불가능할수도 있을 것이다. 힌두교라는 종교가 없어지지 않으면 몰라도.

 

미국에서의 청결문제

 

 

206. 이들은 스스로를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일 뿐 아니라 신앙심이 깊고 정의로우며 객관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했다. ... 생물학자들은 흑인들은 불결한 상태로 살며 병을 퍼뜨린다고, 다시 말해 오염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신화들은 미국 문화와 서구 문화 전반에 잘 공명했다. 그래서 노예제를 만들어낸 조건들이 사라진 지 오랜 뒤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19세기 초 대영제국은 노예제를 불법화하고 대서양의 노예무역을 중단했으며, 이후 몇십 년에 걸쳐 노예제는 미 대륙에서도 점차 불법화되었다. 이것은 노예를 소유한 사회가 자발적으로 노예를 추방한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였다.

 

211.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각기 다른 집단이 지니는 생물학적 차이는 사실상 무시할 만한 수준이므로, 생물학으로는 인도 사회의 곡절이나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를 설명할수 없다. 우리는 상상의 산물을 잔인하고 매우 현실적인 사회구조로 바꿔놓은 사건들, 조건들, 권력관계들을 연구해야만 비로소 그런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와 그녀

 

212. 각기 다른 사회가 채택한 상상의 질서는 서로 다르다. 인종은 현대 미국인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중세 무슬림에게는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았다. 중세 인도에서 카스트는 생과 사의 문제였지만 현대 유럽에서 계급제도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려진 모든 인간사회에서 최고로 중요한 위계질서가 하나 존재한다. 바로 성별이다.

 

216.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단지 사람들이 생물학적 신화를 통해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양자를 구분하기 좋은 경험법칙이 있는데,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는 기준이다. 생물학은 매우 폭넓은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람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강제하고 다른 가능성을 금지하는 장본인은 바로 문화다. 생물학은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는 능력을 주었고, 일부 문화는 여성들에게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의무로 지웠다. 생물학은 남자들끼리 성관계를 즐길 수 있게 했고, 일부 문화는 그런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금지했다.

 

216. 문화는 자신이 오로지 부자연스러운 것만 금지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부자연스러운 것이란 없다. ... 진실을 말하자면, ‘자연스러움부자연스러움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생물학이 아니 기독교 신학에서 온 것이다.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

 

218. 여성의 자연스러운 기능은 애를 낳는 것이라는 주장, 동성애는 부자연스럽다는 주장에는 그다지 타당성이 없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하는 법과 규범, 권리와 의무는 대부분 생물학적 실체보다 인간의 상상력을 더 많이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219. 그가 속한 문화의 신화들은 그에게 특정한 사내다운 역할(예컨대 정치참여), 권리(투표권), 의무(군복무)를 부과한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여자란 두 개의 X 염색체와 하나의 자궁, 많은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지닌 사피엔스를 말하는게 아니라 어떤 상상의 인간 질서에 속하는 여성 구성원을 말한다. 그녀가 속한 사회의 신화들은 그녀에게 독특한 여성다운 역할(아기를 키운다), 권리(폭력으로부터 보호), 의무(남편에게 복족)를 부과한다. 생물학이 아니라 신화가 남녀의 역할, 권리, 의무를 규정하기 때문에, ‘남성성여성성의 의미는 사회에 따라 크게 달랐다.

 

220. (남성과 여성)은 애들 장난이지만, 젠더(남자와 여자)는 심각한 비즈니스다. 남성의 일원이 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일 중 하나다. X, Y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나기만 하면 된다. 여성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쉽다. X 염색체 한 쌍이면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자나 여자가 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요구사항이 많은 프로젝트다. 남성적 특질이나 여성적 특질은 대부분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회도 남성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남자로 쳐주지 않고 여성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여자로 쳐주지도 않는다. .... 남성은 자신의 남성성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끊임없는 의례와 퍼포먼스를 통해서 증명해야 한다. .... 역사를 통틀어 남성들은 오로지 남들에게서 그는 진짜 남자야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기꺼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거나 심지어 목숨을 바쳐왔다.

 

남자가 뭐가 그렇게 좋을까?

 

224. 가부장제는 거의 모든 농경 및 산업 사회에서 표준이었다. 가부장제는 정치적 격변에도, 사회적 혁명, 경제적 대변화에도 끈기 있게 버텨냈다.

 

224. 가부장제는 너무나 보편적이기 때문에, 우연한 사건에 의해 촉발된 모종의 악순화의 결과일 수가 없다. 심지어 1492년 콜럼버스의 미 대륙 상륙 이전에도 미 대륙과 아프로아시아의 대부분이 가부장제 사회였다. .... 아즈텍과 잉카는 왜 가부장제란 말인가?

 

224. ‘남자여자의 정확한 정의가 문화마다 다를지라도, 거의 모든 문화가 여성성보다 남성성을 가치 있게 여기는 데는 모종의 보편적인 생물학적 이유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모른다.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설득력이 있는 것은 없다.

 

근력

 

225. 이처럼 근력을 강조하는 데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다는 진술은 평균적으로만, 그리고 특정한 종류의 힘에 대해서만 옳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굶주림, 질병, 피로에 대한 저항력이 남자보다 크다. 또한 남자보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는 여자도 많다.

에이~ 이건 억지다. 그런 여자들은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 저자가 얘기하는 남자보다 더 빨리 달리고 더 무거운 것을 여자는 분명 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빠르고 무거운 것을 드는 남자는 많다는 사실

 

225. 게다가 이 이론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를 통틀어 여자는 육체적 노력이 거의 필요 없는 직업(사제, 법률가, 정치인)에서 배제되어 왔으면서도 들일이나 수공예, 가사노동처럼 힘든 육체노동에 종사했다는 점이다. 만일 사회적 권력의 분할에 육체적 힘이나 지구력이 직접 관련되었다면 여자는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이것도 억지다. 내가 만일 힘으로 여자를 정복했는데 그 좋은 사제, 법률가, 정치인을 왜 여자를 시키나. 나는 이 근력이론이 어느정도 맞다고 생각한다.

 

226. 심지어 침팬지 사회에서도 알파 수컷은 다른 수컷 및 암컷과 안정적인 동맹을 맺음으로써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아무 생각 없는 폭력을 통해서가 아니다. 사실 역사를 보면 신체적 기량과 사회적 권력 사이에 반비례 관계가 성립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육체노동은 하층계급이 맡는다. 이것은 어쩌면 먹이사슬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차지하는 지위를 반영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226. 만일 적나라한 신체적 능력만 중요했다면, 사피엔스는 먹이 사다리의 중간쯤에 존재했을 것이다. 우리가 최상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사회적 기량덕분이다. 따라서 우리 종 내의 권력 사다리도 폭력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남자가 신체적 힘으로 여자를 강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안정적인 사회적 위계질서의 토대라고 믿기는 어렵다.

 

사회의 쓰레기

 

226. 또다른 이론은 남성의 지배가 힘이 아니라 공격성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 결과, 남자는 여자보다 폭력성을 훨씬 더 많이 갖게 되었다.

 

229. 흔히 고정관념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보다 남을 조종하고 유화책을 쓰는 능력이 우월하다고 한다.

.... 이런 고정관념에 진실이 조금이라도 포함되어 있다면, 여자들은 뛰어난 정치가나 제국 건설자가 되었어야 한다. ..... 대중적인 신화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확실하지 않다.

 

가부장적 유전자

 

229. 세 번째 유형의 생물학적 설명은 완력이나 폭력성은 덜 중요하게 보고, 대신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남녀가 각기 다른 생존 및 번식 전략을 발전시켰다고 설명한다.

 

230. 자신과 자년의 생존을 보장하려면, 남자가 내세운 조건은 뭐든 받아들일는 수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30. 하지만 이런 접근법 역시 경험적 증거를 통해 거짓임이 드러났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여자가 외부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여자들이 아니라 남자에게 의존하게 되었다는 가정, 그리고 남자의 경쟁성이 남성의 사회적 우세를 낳았다는 가정이다.

 

231. 사피엔스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동물이고, 그 장점은 대규모로 협력하는 능력에 있다. 만일 그렇다면, 여자들이 비록 남자에게 의존한다 할지라도 협력이라는 우월한 사회적 기술을 이용해 공격적이고 자율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남자들의 허를 찌르고 조종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협력 덕분에 성공한 종에서 협력성이 더 떨어진다는 개체들이 협력성이 더 뛰어나다는 개체들을 통제하는 일이 어떻게 벌어진 걸까? 현재로서는 명확한 답이 없다.

 

232. 젠더의 격차는 아직도 상당하지만, 변화는 굉장한 속도로 진행되어 왔다. 20세기 초만 해도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언어도단으로 받아들여졌다. ..... 한편 동성애은 극도고 금기시되는 주제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21세기 초에 여성의 참정권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그리고 2013년에 미국 연방대법관 다섯 명은, 그 중 셋은 여성이었는데, 동성 결혼 법제화를 선호하는 판결을 내렸다.

 

232. 바로 이런 극적인 변화들 때문에 젠더의 역사가 그토록 혼란스러운 것이다. 만일 오늘날 분명하게 밝혀지고 있듯이 가부장제가 생물학적 사실보다 근거 없는 신화들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이 제도가 이토록 보편적이고 안정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

 

234.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그동안 그런 사회질서를 지탱하는 상상의 건축물 역시 더욱 정교해졌다.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거의 출생 직후부터 길들여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런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

 

235. 오늘날 문화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진실은 그 반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모든 문화는 나름의 전형적인 신념, 규범,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환경의 변화나 이웃 문화와의 접촉에 반응해 스스로 모습을 끊임없이 바꾼다. 스스로의 내부적 역동성으로 인해 변이를 겪기도 한다. 안정된 생태계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존재하는 문화조차 변화를 피할 수 없다. ..... 인간이 만든 모든 질서는 내적 모순을 지닌다. 문화는 이런 모순을 중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이런 과정이 변화에 불을 지핀다.

 

236. 모순은 결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의 귀족, 성직자, 평민이 그것을 붙잡고 씨름하는 동안, 문화는 변화했다. 십자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십자군 전쟁에서 기사들은 자신의 군사적 역량과 종교적 헌신을 단칼에 보여줄 수 있었다.

 

237. 또 다른 예는 현대의 정치질서다. 프랑스 혁명 이래 세계 모든 곳의 사람들은 점차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근본적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가치는 서로 모순된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 이외에 없다. 모든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면 필연적으로 평등에 금이 간다. 1789년 이래 세계 정치사는 이 모순을 화해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로 볼수 있다.

 

237. 중세 문화가 기사도와 기독교를 어떻게든 조화시키는 데 실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는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 모순은 모든 인간 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것은 문화의 엔진으로서, 우리 종의 창의성과 활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237. 우리의 생각과 아이디어와 가치의 불협화음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고, 재평가하고, 비판하게 만든다. 일관성은 따분한 사고의 놀이터다.

 

237. 예컨대 기독교인인 당신이 근처 모스크에 참배하러 가는 무슬림을 정말로 이해하고 싶다면, 모든 무슬림이 소중하게 여기는 순수한 가치들이 무엇인지 찾아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무슬림 문화에서 가장 극심한 딜레마의 현장을 찾아봐야 한다. 규칙이 서로 충돌하고 규범이 서로 난투를 벌이는 지점 말이다. 무슬림들이 두가지 지상명제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지점이야말로 당신이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할수 있는 지점이다.

 

정찰위성

 

239. 인간의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변화는 완전히 무작위적일까, 아니면 뭔가 전체적인 패턴이 있을까? 다시 말해 역사에는 방향성이 있을까? 대답은 있다이다. 수천수만 년에 걸쳐, 작고 단순한 문화들이 점차 뭉쳐서 더 크고 복잡한 문명으로 변했다. 그래서 세계의 메가문화의 개수는 점점 적어지는 동시에 각각은 점점 더 크고 복잡해졌다. 물론 이것은 매우 단순한 일반화로, 거시적 수준에서만 맞는 이야기다. 미시 수준에서 보면 다르다. 서로 합쳐져서 하나의 메가문화를 이루는 문화집단들이 있듯이, 조각조각 분열되는 메가문화도 존재하게 마련이다. 몽골제국은 한껏 팽창해서 아시아의 광활한 지역과 유럽의 일부분까지 지배했지만 결국 여러 조각으로 쪼개졌다. 기독교는 한꺼번에 수억 명씩 개종시켰지만 결국 수없이 많은 분파로 갈라졌다.

 

240. 역사를 조감도처럼 보면, 즉 역사발전을 수십 년이나 수백 년이라는 단위로 검토하면, 역사가 통일의 방향으로 향하는지 다양성의 방향으로 향하는지 판정하기 어렵다. 장기적 과정을 이해하기에는 조감도는 너무 근시안적이다. 그보다는 우주에 떠 있는 정찰위성의 시점을, 즉 수백 년이 아니라 수천 년이라는 단위를 스캔하는 시점을 취하는게 낫다. 이 시각에서 보면 역사가 통일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240. 역사의 전반적인 방향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한 순간에 지구라는 행성 위에 각기 분리된 채 공존했던 인간 세상들의 개수를 세는 것이다.

 

241. 지구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 세상들이 공존했을까? 기원전 10000년경 우리 행성이 이 숫자는 수천 개였다. 기원전 2000년이 되자 숫자는 수백 개, 많아야 2~3천개 정도로 줄었다. 기원후 1450년이 되자 그 숫자는 그보다 더 극적으로 줄었다.

 

241. 나머지 10분의 1에 해당하는 인류는 상당한 규모와 복잡성을 지닌 네 개의 세계로 분리되어 있었다. 중미 대부분과 북미 일부를 아우르는 메소아메리카 세계 남미 서부의 대부분을 아우르는 안데스 세계 호주 대륙을 아우르는 호주 세계 하와이에서 뉴질랜드에 이르는 남서 태평양의 섬 대부분을 아우르는 대양 세계

 

242. 오늘날 거의 모든 인류는 동일한 지정학 체계(행성 전체가 국제적으로 승인된 국가들로 나뉘어 있다.), 동일한 경제 체계(자본주의 시장의 힘은 지구의 가장 구석진 곳까지 미친다.), 동일한 법 체계(인권과 국제법은 세계 모든 곳에서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효력이 있다.), 동일한 과학체계를 공유하고 있다.

 

243. 진정한 문명의 충돌은 청각 장애인들이 말로 나누는 대화와 같다. 누구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244. 우리는 여전히 고유문화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만일 그 고유성이란 것이 독자적으로 발달한 무엇,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대의 지역전통으로 구성된 것을 뜻한다면, 오늘날 지구상에는 고유문화가 하나도 없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모든 문화는 홍수처럼 범람한 지구적 영향들에 의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지구적 비전

 

245. 바로 보편적 질서라는 개념이 뿌리를 내린 시점이었다. 그 이전 수천 년 동안에도 역사는 이미 지구적 통일의 방향으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보편적 질서라는 관념은 아직 낯설었다.

 

245. 호모 사피엔스는 사람을 우리와 그들오 나눠서 생각하도록 진화했다. ‘우리란 누구든 내 바로 주위에 있는 집단을 말했다. ‘그들이란 그 외의 모든 사람이었다. 사실 어떤 사회적 동물도 자신이 속한 종 전체의 이익에 이끌려 행동하지는 않는다.

 

246. 기원전 첫 밀레니엄 동안, 보편적 질서가 될 잠재력이 있는 후보 세가지가 출현했다. 세 후보 중 하나를 믿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계 전체와 인류 전체를 하나의 법 체계로 통치되는 하나의 단위로 상상할 수 있었다.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모두가 우리였다.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247. ‘우리 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진화적 구분을 처음으로 어찌어찌 초월했고 인류의 잠재적 통일을 내다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상인, 정복자, 예언자 들이었다. 상인들에게는 세계 전체가 단일시장이었으며 모든 인간은 잠재적 고객이었다. 이들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경제질서를 세우고 싶어 했다. 정복자들에게는 세계 전체가 단일 제국이었고 모든 인간은 잠재적 신민이었다. 예언자들에게는 온 세계에 진리는 하나뿐이었으며 모든 인간은 잠재적 신자였다. 이들 역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질서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247. 이야기의 시작은 역사상 최대의 정복자, 극도의 관용과 융통성을 지녔으며 사람들을 열렬한 사도로 만들었던 정복자에 대한 것이다. 이 정복자는 바로 돈이다. 같은 신을 믿거나 같은 왕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도 기꺼이 같은 돈을 사용하려 한다.

 

10. 돈의 향기

 

가격이 얼마인가요?

 

250. 주로 호혜와 의무로 유지되고 간혹 외부인과 물물교환을 하는 방식이었다. .... 도시의 왕국이 등장하고 수송 하부구조가 개선되자 전문화라는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251.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협력하려 할 때는 호의와 의무의 경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여동생이나 이웃사람에게 무료로 도움을 주는 것과 내게 결코 답례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을 돌봐주는 것은 전혀 다르다. 이때 물물교환에 의지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물물교환은 제한된 범위의 물품을 서로 교환할 때만 효과적이다. 복잡한 경제의 토대가 될 수는 없다.

 

253. 일부 사회에서는 중앙집중적 물물교환 시스템을 만들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전문 재배자와 제작자에게서 물품을 다 받아둔 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런 실험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것은 옛 소련에서 시행되었지만, 비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원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던 것이 현실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일하고 가능한 한 최대로 받아낸다.”로 바뀌었다.

 

253.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는 많은 수의 전문가를 연결시키는 좀 더 쉬운 방법을 찾아냈다. 돈을 개발한 것이다.

 

조가비와 담배

 

253. 이것은 순수한 정신적 혁명이었다. 여기에 얽혀 있는 것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새로운 상호 주관적 실체였다.

 

254. 화폐는 주화와 지폐가 아니다. 화폐는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사람들이 기꺼이 사용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 목적은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는 데 있다.

 

254.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한 사람은 수용소에서 사용된 담배 화폐를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화폐가 있었고 누구도 그 가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담배였다.”

 

256. 사람들이 항상 돈을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항상 돈을 원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 당신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모든 것과 돈을 교환할수 있다는 말이다. .... 돈은 거의 모든 것을 다른 거의 모든 것으로 바꿀 수 있게 해주는 보편적인 교환수단이다.

 

257. 이상적인 형태의 돈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게 해줄 뿐 아니라 부를 축적 할 수 있게도 해준다.

 

257. 돈은 부의 전환과 저장, 이동을 쉽고 값싸게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복잡한 상거래망과 역동적 시장이 출현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만일 돈이 없었더라면 상거래망과 시장의 규모와 복잡성, 역동성은 매우 제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돈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258. 사람들은 기꺼이 그런 일을 하려 드는 것은 자신들의 집단적 상상의 산물을 믿기 때문이다. 신뢰는 온갖 유형의 돈을 주조한데 쓰이는 원자재다. .... 따라서 화폐란 상호신뢰 시스템의 일종이지만, 그저 그건 상호신뢰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한 것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신뢰 시스템이다. 이런 신뢰를 창조한 것은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의 매우 복잡하고 장기적인 네트워크다.

 

258. 나는 왜 금화나 달러화를 신뢰할까? 내 이웃들이 그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이웃들이 그것을 신뢰하는 이유는 내가 그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그것을 믿는 이유는 우리의 왕이 그것을 믿고 그것을 세금으로 받기 때문이며, 우리의 사제가 역시 그것을 신뢰하며 십일조로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260. 화폐의 역사에서 진정한 돌파구가 생긴 것은 그 자체로는 내재적 가치가 없는 돈, 그렇지만 저장과 운반이 쉬운 돈을 사람들이 신뢰하게 되었을 때다. 그런 화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현했다. 은으로 된 세겔이었다.

 

262. 주화는 표식이 없는 금속덩어리에 비해 두 가지 중요한 장점을 지녔다. 첫째, 금속덩어리는 거래할때마다 무게를 재야만 했다. 둘째, 무게를 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금이라는 복음

 

263. 기원후 1세기 로마 주화는 인도 시장에서 교환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가장 가까운 로마 땅이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인도 사람들은 데나리우스와 거기 새겨진 황제의 얼굴을 너무나 신뢰하여, 현지 지배자들은 자신의 주화를 만들 때 데나리우스를 흡사하게 모방했다.

 

264. 리디아 스타일의 주화 제조법이 지중해에서 인도양까지 퍼져나가고 있을 때, 중국은 이와 조금 다른 화폐 시스템을 개발했다. 청동 동전과 표식이 없는 은괴와 금괴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었다. 그렇지만 두 시스템은 공통점이 아주 많아서, 중국과 리디아 사이에는 금전적, 상업적 관계가 밀접하게 구축되었다. 무슬림 상인과 유럽 상인 그리고 정복자들은 리디아 시스템과 금이라는 복음을 지구의 매우 구석진 곳에까지 퍼뜨렸다. 근대 말에 이르자 전 세계가 단일 화폐권역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금과 은을 기반으로, 나중에는 영국 파운드나 미국 달러처럼 신뢰받는 소수의 통화를 기반으로 하게 되었다.

 

264. 국경과 문화를 초월하는 단일 화폐권역의 등장은 아프로아시의 통일을 위한 기초, 결국에는 지구 전체를 단일 경제정치권역으로 통합하는 기초를 놓았다.

 

266. 서로의 신앙에 동의할 수 없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돈에 대한 믿음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종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으라고 요구하는 반면에, 돈을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믿는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266.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교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 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돈의 대가

 

267. 돈은 두가지 보편적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1. 보편적 전환성 : 돈이 있으면 당신은 마치 연금술사처럼 땅을 충성심으로, 사법을 건강으로, 폭력을 지식으로 변환할 수 있다.

2. 보편적 신뢰 : 돈을 매개로 삼으면 임의의 두 사람은 어떤 프로젝트에도 협력할 수 있다.

이런 원리 덕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무역과 산업에서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롭지 않아 보이는 이 원리에도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 돈은 지역 전통, 친밀한 관계, 인간의 가치를 부식시키고 이를 수요와 공급의 냉정한 법칙으로 대체한다.

 

268. 돈이 서로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편적인 신뢰를 쌓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신뢰는 인간이나 공동체, 혹은 신성한 가치가 아니라 돈 그 자체 그리고 돈을 뒷받침하는 비인간적 시스템에 투자된다. .... 돈이 공동체, 신앙, 국가라는 댐을 무너뜨리면, 세상은 하나의 크고 비정한 시장이 될 위험이 있다.

 

269. 인류의 통합을 순수하게 경제적인 과정으로만 보아서는 결코 이해할수 없다. 어떻게 수천 개의 고립된 문화가 세월이 가면서 점차 합쳐져서 오늘날의 지구촌을 형성했는지를 이해하려면, 물론 금과 은의 역할을 고려해야 하지만 강철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11. 제국의 비전

 

271. 하지만 이들이 누만시아 사람들을 찬양하는 언어는 스페인어다. 스키피오가 썼던 라틴어의 후손인 로망스어 중 하나다. 누만시아 사람들은 켈트어를 사용했지만, 이 언어는 오늘날 사어가 되어 잊혔다.

자존심 있던 누만시아 사람들도 로마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72. 스페인 정치는 로마인들이 놓은 기초위에 세워졌으며, 그 요리법과 건축은 이베리아 반도의 켈트족 보다는 로마의 유산에 훨씬 큰 몫을 빚지고 있다. 누만시아인들이 실제로 남긴 것은 폐허밖에 없다. 심지어 오늘날 그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도 오로지 로마인 역사가들 덕분이다.

 

272. 이런 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스토리가 아니다. 우리는 약자가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역사에 정의란 없다.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 대부분은 늦든 이르든 어떤 무자비한 제국의 군대에 희생되었고, 제국은 이들 문화를 망각 속에 밀어 넣었다. 제국도 마침내 무너지지만, 대체로 풍성하고 지속적인 유산을 남긴다. 21세기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은 어디가 되었든 제국의 후예이다.

정의로운 역사는 없다. 그 역사도 승리자에 의해 기록되어진다. 오로지 힘의 논리에 의해 강자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제국이란 무엇인가?

 

273. 제국이란 정치질서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첫째, 그런 명칭으로 불리려면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민을 지배해야 한다. 둘째, 제국의 특징은 탄력적인 국경과 잠재적으로 무한한 식욕이다. 제국은 자신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갈수록 더 많은 국가와 영토를 집어삼키고 소화할 수 있다.

 

273. 문화의 다양성과 영토의 탄력성은 제국의 독특한 특징일 뿐 아니라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두가지 특징 덕분에 제국은 다양한 소수민족과 생태적 지역들을 하나의 정치적 체제하에 묶어낼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인류와 지구에서 점점 더 큰 부분을 하나로 융합했다. 강조할 점은, 제국이 그 기원이라든가 정부형태, 영토의 범위, 인구의 크기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문화적 다양성과 국경의 탄력성으로만 정의된다는 것이다. 제국이 반드시 군사적 정복으로 등장할 필요도 없다.

 

사악한 제국?

 

275. 오늘날 제국주의자라는 말은 거의 최고의 정치적 욕설이다. 제국에 대한 현대의 비판은 대개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1. 제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많은 피정복 민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

2.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실행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제국은 파괴와 착취의 사악한 엔진이기 때문이다. 모든 민족은 자결권이 있고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275.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대개 외부의 침공이나 내분에 따른 지배 엘리트의 분열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복당한 민족이 제국의 지배자로부터 스스로 해방시킨 기록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은 수백 년에 걸쳐 복속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들은 제국에 서서히 소화되어 고유의 문화가 흐지부지되는 게 보통이다.

 

277.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려면 수많은 사람을 악랄하게 살해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억압할 필요가 있었다. 전쟁, 노예, 국외추방, 대량 학살은 제국의 일반적 수단으로 꼽힌다.

 

278. 제국의 엘리트들은 정복에 따른 이익을 군대와 성채에만 쓰지 않았다. 철학, 예술, 사법제도, 자선에도 썼다. 아직 남아 있는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 상당한 몫은 제국이 피정복민을 착취한 덕분에 생겨 날 수 있었다. ....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이 인도 신민을 착취해서 축적한 부가 없었다면 건설될 수 없었다.

착취에서 나온 예술이 정당하다고 할수 있나? 왕비를 위해 지은 호화로운 궁을 그냥 대단하다고 볼것만은 아니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이야

 

280. 페르시아인들은 우리가 너희를 정복하는 것은 너희를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280. 사피엔스는 인간을 본능적으로 우리그들의 두 부류로 나눈다. 우리란 너와 나, 언어와 종교와 관습이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

 

281. 이런 인종적 배타성과 대조적으로, 키루스 이래 제국의 이데롤로기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인종적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는 일이 흔히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제국은 온 세상이 기본적으로 하나라는 것, 모든 장소와 시대에 적용되는 일군의 원칙들이 있다는 것, 모든 인간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었다.

 

282. 현대의 서구적 시각에서 공정한 세계는 서로 독립된 국민국가들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중국에서 정치적 분열의 시대는 혼란과 불공정으로 얼룩진 암흑시대로 비쳤다. 이런 인식은 중국 역사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하나의 제국이 붕괴하면, 지배적인 정치 이론은 언제나 권력자들에 하찮은 독립군주에 안주하지 말고 중국의 재통일을 시도해야 한다고 들들 볶았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이르든 늦든 늘 성공했다.

 

그들우리가 될때

 

283. 제국은 수많은 작은 문화를 융합해 몇 개의 큰 문화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제국 내에서는 아이디어와 사람, 재화와 기술이 정치적으로 분열된 지역에서보다 더욱 쉽게 퍼져나갔다.

 

283. 하나의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편하기 위해서였다. 하나의 제국 내에 있는 작은 관할 구역들이 저마다 별개의 법과 서식과 언어와 화폐를 지니고 있으면 지배하기가 힘들다. 표준화는 황제에게 대단히 유용했다. ...... 두 번째 이유는 정통성을 얻기 위해서였다. ..... 우월한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정당화했다. 자기네 문화는 정복자보다 피정복자에게 더 큰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284. 로마인들도 유사한 주장을 폈다. 자신들이 야만인들에게 평화와 정의와 교양을 전해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미개한 게르만족과 얼굴에 물감을 칠한 갈리아족은 천하고 무지하게 살다가 로마인 덕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로마인들이 그들을 법으로 길들이고 공공욕장에서 깨끗이 씻게 하고 철학을 통해 나아지게 해주었다고 한다.

 

285. 제국관은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제국의 엘리트들은 하나의 편협한 전통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대신 어디서 발견한 것이든 좋은 아이디어, 규범, 전통을 쉽게 채택할 수 있었다. ... 대체로 제국은 자신들이 복속시킨 민족에게서 많은 것을 흡수하여 혼성문명이 되었다. 로마제국의 문화는 로마적인 만큼이나 그리스적이었다.

 

285. 이런 문화의 용광로가 패자의 문화적 동화 과정을 쉽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제국주의 문명이 다양한 피정복민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것을 흡수할지언정, 그런 혼성의 결과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낯설었다. 동화의 과정은 고통스럽고 큰 정신적 충격을 동반하는 일이 많았다.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고 채택하는 것이 힘들고 스트레스인 것처럼, 자신이 사랑하고 친숙한 지역 전통을 포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역사상의 선인과 악당

 

291. 어쨌든 거의 모든 제국은 유혈사태 위에 세워졌고, 압제와 전쟁으로 권력을 유지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오늘날의 문화 대부분은 제국의 유산을 기초로 하고 있다. 제국이 정의상 나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291. 인류의 모든 문화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제국과 제국주의 문명의 유산이며, 어떤 학술적, 정치적 외과수술을 한다 해도 환자를 죽이지 않고 제국의 유산만을 도려낼 수는 없다.

 

293.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해 인도 문화가 불구가 되었다고 분개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굴 제국의 유산과 그들의 델리 점령을 신성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외래 무슬림 제국의 영향에서 진정한 인도 문화를 구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누구나 굽타 제국, 쿠샨 제국, 마우리아 제국의 유산을 신성시하는 셈이다. 만일 어떤 극단적 힌두 민족주의자가 있어서 뭄바이 기차역을 비롯해 영국 정복자가 남긴 모든 건물을 파괴한다면, 인도의 무슬림 정복자들이 남긴 타지마할 같은 구조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294. 과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선인과 악당으로 나누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새로운 지구제국

 

295. 기원전 200년 경 이래로 인간은 대부분 제국에 속해 살았다. 미래에도 대부분 하나의 제국 안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번 제국은 진정으로 세계적일 것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라는 환상이 실현될지 모른다. 21세기가 전개되면서 민족주의는 급속하게 입지을 잃고 있다.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종교나 이념이 달라서 쉽게는 될 것 같지 않다. 중동과 미국, 유럽이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될거라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295. 극지방의 얼음이 녹는 문제처럼 본질적으로 세계적인 문제가 등장하면서, 독립된 국민국가에 남아 있던 정당성은 그게 무엇이든 조금씩 깎여나가고 있다. 어떤 주권 국가도 혼자서는 지구 온난화를 극복할 수 없다.

 

295.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조각나 있지만, 국가들은 빠른 속도로 독립성을 잃고 있다. 어느 국가도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실행하거나 마음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수행할 실질적 능력이 없다.

 

12. 종교의 법칙

 

298.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99. 여기에는 두가지 서로 다른 기준이 있다.

1. 종교는 인간의 변덕이나 계약의 산물이 아닌 초인적 질서가 있다고 여긴다.

2. 이런 초인적 질서를 기반으로, 종교는 스스로 구속력이 있다고 여기는 규범과 가치를 설정한다.

 

299. 서로 다른 인간 집단들이 사는 광대한 영역을 자신의 가호 아래 묶어두려면, 종교에는 두가지 추가적인 속성이 필요하다. 첫재, 언제 어디서나 진리인 보편적이고 초인적인 질서를 설파해야 한다. 둘째, 이 믿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달리 말해, 종교는 보편적이면서 선교적이어야 한다.

 

300. 우리가 아는한 보편적이고 선교적인 종교는 기원전 1000년에 와서야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출현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의 하나였고, 보편적 제국과 보편적 화폐의 등장과 매우 비슷하게 인류의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양들을 침묵시키기

 

301. 농업혁명은 종교혁명을 동반한 것으로 보인다. .... 농업혁명이 미친 최초의 종교적 효과는 동식물을 영혼의 원탁에 앉은 동등한 존재에서 소유물로 끌어내린 것이다.

 

303. 하지만 위대한 신들의 등장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는 양이나 악마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지위였다. 애니미즘은 인간을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존재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우상숭배의 이점

 

303. 서구인들은 2천 년 동안 일신교의 세뇌를 받은 탓에 다신교를 무지하고 유치한 우상숭배로 보게 되었다. 이것은 부당한 고정관념이다. 다신교의 내부 논리를 이해하려면, 수많은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지탱하는 중심사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304. 일신교와 구별되는 다신교의 근본적 통찰에 따르면, 세상을 지배하는 최고 권력은 관심이나 편견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인간의 평범한 욕망이나 근심 걱정에 개의치 않는다. 이 권력에게 전쟁의 승리나 건강, 비를 요청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위치에서 보면, 특정 왕국의 승리나 패배, 특정 도시의 번영이나 쇠퇴, 특정인의 회복이나 사망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304. 우주 최고 권력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이유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다 끌어안고 패배나 가난, 질병, 죽음까지도 끌어안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므로 힌두교에서 성자나 고생자로 알려진 일부 신자는 자신의 삶을 아트만과의 합일을 위해 바치며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 한다. 이들은 그런 근본원리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애쓰며, 영원한 관점에서 볼 때 평범한 모든 욕망과 두려움은 무의미하며 덧없는 현상임을 인식하려 애쓴다.

 

305. 다신교의 통찰은 폭넓은 종교적 관용을 낳기 쉽다. 다신교도들은 한편으로는 하나의 최고권력, 완벽하게 무심한 권력을 믿고 다른 한편으로는 편견을 지닌 수많은 권력을 믿기 때문에, 하나의 신에 헌신하는 사람이라도 다른 신들의 존재와 효험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없다. 다신교는 본질적으로 마음이 열려 있으면 이단이나 이교도를 처형하는 일이 드물다. 다신교는 심지어 거대한 제국을 정복했을 때도 피정복민을 개종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306. 로마인들이 오랫동안 관용을 거부했던 유일한 신은 일신교적이고 개종을 요구하는 기독교의 신이었다. ....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지 3백 년만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개종할 때까지, 다신교를 믿는 로마황제가 기독교인을 박해한 사건은 네 차례를 넘지 않았다. .... 3세기에 걸친 모든 박해의 희생자를 다 합친다 해도,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몇 천 명을 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후 1,500년간 기독교인은 사랑과 관용의 종교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기독교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신은 하나다

 

308. 시간이 흐르면서 다신교의 신을 믿는 신자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수호신을 몹시 좋아한 나머지 다신교의 기본 통찰에서 멀어졌다. 그들은 자신의 신이 유일신이며, 그분이 우주 최고의 권력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분이 여전히 사심과 편견을 지닌 것으로 보았고, 우리가 그분과 거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해서 일신교가 태어났다.

 

309. 다신교는 여기저기서 다양한 일신교를 잉태했으나, 이런 종교들은 주변부에 남아있었다. 스스로 보편적 메시지를 소화하지 못한 탓이 적지 않았다. .... 비약적 돌파구는 기독교와 함께 왔다. 기독교 신앙은 나자렛 예수가 그들이 오래 기다리던 구세주라는 것을 유대인에게 확산시키려 했던 비전의 유대교 분파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분파의 첫 리더 중 하나였던 타르수스의 바울은 만일 우주의 최고 권력이 관심과 편견을 지니고 있으며 수고롭게도 피와 살을 가진 존재로 화신하셔서 인류를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면 이것은 유대인에게뿐 아니라 만민에게 전파되어야 할 이야기이므로, 예수에 대한 좋은 말씀을 전 세계로 전파할 필요가 있다고 추론했다.

 

309. 기독교의 성공은 7세기 아라비아 반도에서 출현한 또 다른 일산교의 모델이 되었다. 이슬람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구석진 곳의 작은 분파로 시작했지만, 기독교보다 더 이상하고도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다. 아라비아 사막을 벗어나 대서양에서 인도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제국을 정복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신교 사상은 세계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310. 일신론자들은 다신론자들에 비해 훨씬 더 광신적이었고, 전도에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 .... 일신론자들은 자신들이 단 한 분 밖에 없는 신의 모든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종교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지난 2천년 간 일신론자들은 모든 경쟁상대를 폭력으로 말살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되풀이했다.

 

선과 악의 싸움

 

313. 다신교는 일신교만 낳은 것이 아니라 이신교도 낳았다. 이신교는 서로 반대되는 두 힘의 존재를, 즉 선과 악을 믿는다. 일신교와 달리 이신교에서 악은 독립적인 힘이다. 선한 신에 의해 창조된 것도 그 신에 종속된 것도 아니다. 이신교는 온 세상을 이들 두 힘의 전쟁터로 본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싸움의 일부라는 것이다.

 

313. 이신교는 이른바 악의 문제에 간명한 해답을 주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인 세계관이다. 이 유명한 문제는 인간의 사상에서 가장 근본적 관심사 중 하나다.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할까? 왜 고통이 존재할까?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 일신론자들은 이런 물음에 대답하려면 지적인 곡예를 부려야만 했다. 널리 알려진 하나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는 신의 방식이라고 했다. 악이 없다면 인간은 신과 악 사이에 선택할 필요가 없으므로 자유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직관에 반하는 답으로서, 즉각 수없이 많은 새로운 의문을 낳는다.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악을 선택하도록 허락한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악을 택하며, 일신교의 정통적 설명에 따르면 이런 선택은 반드시 신의 벌을 부른다. 그러나 만일 그 인물이 자유의지로써 악을 선택하고 그 결과로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신이 미리 알았다면, 신은 왜 그를 창조했을까?

 

314. 이신론자들에게 악을 설명하기가 쉽다.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세상이 전지전능하고 완벽하게 선한 신에 의해서만 통치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독립된 악의 힘이 돌아다니고, 악의 힘은 나쁜 일을 저지른다. 이신론자의 견해에는 나름의 단점이 있다. 악의 문제를 풀어주기는 하지만, 질서의 문제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만일 세상을 유일신이 창조했다면, 세상이 이토록 질서가 잘 잡히고 모든 것이 동일한 법칙을 따르는 현실이 분명하게 설명이 된다. 그러나 만일 세상에 두 대립되는 힘인 선과 악이 있다면, 둘 사이의 싸울 수 잇는 것은 둘 다똑같은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314.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절서 앞에서 당황한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논리적 방법이 하나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이 있는데 그 신이 악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앙을 가질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역사상 아무도 업었다.

 

315. 그렇지만 일신교의 물결이 정말로 이신교를 싹 쓸어낸 것은 아니었다. 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이신교에서 수많은 신앙과 관례를 흡수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일신교라고 부르는 것의 가장 기본적 사상 일부는 사실 그 기원이나 정신이 이신교적이다. 수없이 많은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교인이 강력한 악의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이 악마로 부르는 것이 그런 존재다.

 

316. 일신론자들은 악의 문제를 다루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 이신론자들의 이분법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 대립은 기독교와 무슬림 사상의 초석이 되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믿음 역시 그 기원은 이신론에 있었다.

 

317. 보통 기독교인은 일신론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신론적 악마, 다신론적 성자, 애니미즘적 유령을 모두 믿는다. 종교학자들은 이처럼 서로 다르고 심지어 상충하는 사상을 동시에 인정하는 행위와 각기 다른 원천에서 가져온 의례롸 관례를 혼합하는 행위에 대한 명칭으로 제설혼합주의를 썼다. 실제로 제설혼합주의야말로 단 하나의 위대한 세계종교일지 모른다.

 

자연의 법칙

 

317. 지금껏 우리가 논의한 모든 종교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모두가 신을 비롯한 초자연적 실체에 대한 믿음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318. 세상을 지배하는 초인적 질서는 신의 의지와 변덕이 아니라 자연법칙의 소산이다. 이런 자연법칙 종교들 중 일부는 여전히 신의 존재를 믿었지만, 그 신들도 인간이나 동식물 못지않게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고 보았다.

 

320. 고타마는 다음과 같이 통찰했다. 마음은 무엇을 경험하든 대개 집착으로 반응하고 집착은 항상 불만을 낳는다. 마음은 뭔가 불쾌한 것을 겪으면 그것을 제거하려고 집착하고, 뭔가 즐거운 것을 경험하면 그 즐거움을 지속하고 배가하려고 집착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늘 불만스럽고 평안에 들지 못한다. 이 사실은 우리가 고통 같은 불쾌한 경험을 할 때 매우 분명해진다. 고통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불만스럽고, 고통을 피하기 위해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

 

320. 고타마는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일 즐거운 일이나 불쾌한 일을 경험했을 때 마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고통이 없다. 당신이 슬픔을 경험하되 그것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집착을 품지 않는다면, 당신은 계속 슬픔을 느끼겠지만 그로부터 고통을 당하지는 않느다. 실제로 슬픔 속에 풍요로움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되 그것이 계속 유지되며 더 커지기를 집착하자 않는다면 당신은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계속 기쁨을 느낄수 있다.

 

322. 그는 부처로 알려졌다.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부처는 모든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 여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발견을 전하는 데 바쳤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한 가지 법칙으로 요약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외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데 있다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322. 일신론적 종교의 제일 원리는 신은 존재한다. 그분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인 반면 불교의 제일 원리는 번뇌는 존재한다. 나는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이다.

 

인간숭배

 

323. 지난 3백년은 흔히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가 점차 중요성을 잃어가며 세속화가 진행된 시기로 묘사된다. 유신론적 종교에 대해서라면 대체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자연법칙 종교를 고려한다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 수많은 자연법칙 종교가 근대에 새로이 등장했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가 그런 예다. 이들은 종교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이데올로기가로 칭한다.

 

325. 우리는 세상의 신념들을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신 없는 이데올로기의 두 종류로 나눌수 있다.

 

327. 유신론적 종교는 신에 대한 숭배에 초점을 맞춘다. 인본주의적 종교는 인간, 좀 더 정확하게는 호모 사피엔스를 숭배한다. 인본주의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특유의 신성한 성질이 있고 이 성질은 다른 모든 동물이나 다른 모든 현상의 성질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믿음이다.

 

327. 오늘날 가장 중요한 인본주의 분파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다. 이 사상은 인간성은 개별 인간의 속성이며 개인의 자유는 더할 나위 없이 신성하다고 믿는다.

 

328.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인간을 신성시하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사실 일신론적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개인의 자유롭고 신성한 본성에 대한 믿음은 자유롭고 영원한 개인의 영혼을 믿었던 전통 기독교에서 직접 물려받은 유산이다.

 

329. 자유주의적 인본주의가 개개인의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하는데 반해,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추구한다. 사회주의자에 따르면 불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최악의 모독이다.

 

332. 나치는 인간을 혐오하지 않았다. 나치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인권, 공산주의와 싸운 것은 그들이 오히려 인간을 찬양하며 인류의 위대한 잠재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따라 자연선택이 작동하게 내버려두어서 능력없는 자들을 도태시키고 가장 우수한 자들만 생존하고 번식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이런 주장을 듣고 동조한다는게 믿기질 않능다. 대중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잘 이용하는 나치인가.

 

13. 성공의 비결

 

336. 상업, 제국 그리고 보편적 종교는 모든 대륙의 사실상 모든 사피엔스를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촌 세상으로 끌어들였다. ..... 큰 그림을 보면 다수의 작은 문화에서 몇 개의 큰 문화로, 마지막에는 하나의 전 지구적 사회로 이행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사 역학에 따른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사후 깨달음의 오류

 

337. 4세기가 시작할 무렵 로마 제국 앞에는 다양한 종교적 선택의 가능성이 펼쳐져 있었다. 제국은 전통적인 다채로운 다신교를 고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내란으로 갈기갈기 찢겼던 지난 세기를 돌아보면서 분명한 교리를 지닌 단일 종교를 믿으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제국을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340.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은 너무 복잡하므로, 힘의 크기나 상호작용 방식이 극히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에는 막대한 차이가 생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역사는 이른바 ‘2단계카오스계다. 카오스케에는 두종류가 있다.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다. ....점점 더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다. ...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 그러므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342.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녀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역사의 여신은 장님

 

343. 우리는 역사가 하는 선택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선택에 대해 매우 중요한 발견을 할 수는 있다. 역사의 선택은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343. 역사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런 이익을 측정할 객관적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344. 문화적 아이디어는 인간의 마음속에 산다. .... 기독교의 천상의 천국이나 공산주의자의 지상낙원에 대한 믿음 같은 문화적 아이디어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의 전파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고서 헌신하게 만든다. 해당 인간은 죽지만, 아이디어는 퍼져나간다. ...... 성공적인 문화란 그 숙주가 되는 인간의 희생이나 혜택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밈을 증식시키는 데 뛰어난 문화다.

 

346. 역사의 역학은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개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346. 역사는 교차로에서 교차로로, 뭔가 알수 없는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이 경로를 택했다가 다음에는 저 경로로 진입했다가 하면서 나아간다. 1500년경 역사는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다. 인류의 운명뿐 아니라 아마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까지도 바꿀 선택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혁명은 서유럽에서, 아프로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커다란 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던 지역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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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0 15:55:14 *.18.218.234

뒷담화 이론의 응용에서 빵 터짐. 완전몰입하셨어. 신화창조까지. ㅋ

그나저나 나중에 신세 질 일 있으면 감자탕 사줘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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