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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8일 11시 15분 등록

11기 연구원 장성한

사피엔스_2

유발 하라리 지음 / 조현욱 옮김

김영사

 

 

1. 저자에 대하여

 

[사피엔스]가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발 하라리라는 이스라엘의 한 역사학자(중세 역사와 군 문화를 전공했으며, 역사관련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했기에 지칭함)가 이 한권의 책으로 일약 세계적 석학의 반열에 오른 까닭은 왜 일까?

 

가장 큰 이유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접근방식이 기존의 역사서와는 확연히 다르다. 어떤 부분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모두 인정하고 수용할 만한 내용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독창성이 비판 요소들을 짙은 화장처럼 감춰 버린다.

 

제국주의의 어두운 면을 옹호할 때면 제정신인가 싶다가도, 전체 맥락에서 보았을 때 틀렸다고 떼 쓸 수도 없게 만들어 놨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모든 근거를 과학에서 끌어 들였다.

 

그래도 인간이 살아가는 건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좋지 않을까?’ 혹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변수들이 많아 그래서 정확하게 규정지을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나를 포함한 독자들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틀렸어, 잘못생각하고 있는 거야. 명백한 과학적 근거가 있어!’ 라고 할 말 없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감정이 없다. 물론 모든 장마다 과제를 던져주는 방식을 택한다. 독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해 보라는 것도 기만이다. ‘세상이 이렇게 흐른 것은 과학적 근거에 의해 나온 결론이야. 반박해봐 과학적 근거로. 그러니 생각해봐 내 말이 맞을 걸?’ 이런 식이다.

 

독자 나아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은 저자가 예측한 바와 같이 흘러갈 것이다.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아니다. 일부 엘리트(과학자와 과학자와 손 잡은 집단, 부를 축척한 집단)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위선적으로 보인다.

 

저자에 대한 이런 심한 비판은 사실 겁이 나서다. 저자가 말한대로 세상이 흘러간다면 우리 다음, 혹은 그 다음 세대의 후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어쩌면 새로운 노예제도가 탄생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200년을 사는 집단과 100년을 사는 집단이 나뉠 것이고, 단명하는 집단의 유전자보다 장명하는 집단의 유전자가 우월한 위치에 놓일 것이지 않는가. 종속관계가 고착되고, 인종의 차별이 당연시 될 것이다.

 

신이 되는 집단과 인간으로 남는 집단이 함께 사는 세상이 현실화 되지를 않기를 희망하면서 정말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나에게 던져본다. 인간이 가축을 우리에 가두고 길들인 것처럼 과학이 인류를 가축처럼 길들이는 조짐이 보이는 이 시점에서 정말로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걸까?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

 

P351. 인구는 열네 배로 늘었는데 생산은 240, 에너지 소비는 115배 늘었다.

엄청난 양의 생산물과 에너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최빈국의 사람들은 굶어 죽고,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멀리서 찾을 것도 없는 것 같다. 일단 나 자신이 그들에게 돌아갈 생산물과 에너지를 몇 배나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행복을 나도 모르게 뺏앗기만 하는 구나.

 

P352. 오늘날에는 중산층 정도의 수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 48시간 만에 쉽고 편안하게 지구를 일주할 수 있다.

중산층의 기준은? 중산층의 수입으로 48시간 안에 지구를 돌 수 있다고? 이런 부분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감정이 배제된 주장이면서,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라 저자에게 왠지 모를 서운한 감정이 든다.

 

우리는 모른다

 

P356.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근대 이전의 전통 지식이었던 이슬람, 기독교, 불교, 유교는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할 중요한 모든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고 단언했다. 위대한 신들, 혹은 전능한 유일신, 혹은 과거의 현자들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가 있었고, 그것을 문자와 구전 전통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지혜를 알려주었지, 진리를 알려준 것은 아니지 않나?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 들이냐의 문제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진리를 준 것 같지는 않다. 옛 성인들도 어리석음이 최고의 경지고 모름을 인정하는 것이 앎의 시작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사실 그들을 전능하게 만든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기록하는 자들의 입장 아닐까?

 

과학의 도그마

 

P361. 오늘날 무게중심은 옛 전통을 연구하기보다는 새로운 관찰과 실험을 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현대의 관찰이 과거의 전통과 배치되는 경우, 우리는 관찰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물론 먼 은하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물리학자, 청동기 시대의 도시 유물을 분석하는 고고학자, 자본주의의 출현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는 전통을 무시하지 않는다. 이들은 과거의 현자들이 말하고 쓴 것을 공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하지만 물리학자, 고고학자, 정치학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자신의 임무는 아인슈타인, 하인리히 슐리만, 막스 베버가 알았던 것을 뛰어넘는 데 있다고 배운다.

 

P366. 스코틀랜드의 두 목사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확률 계산은 연금과 보험산업의 핵심이 되는 보험통계학뿐 아니라 인구통계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인구통계학은 결국 찰스 다윈이 세운 진화론의 초석이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

 

P368. 1620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신기관>이라는 과학 선언문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주장했다. ‘지식의 진정한 시금석은 그것이 진리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느냐의 여부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1백 퍼센트 정확한 이론은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 결과, 진리인가의 여부는 지식인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검사법으로서는 부족한 것이 되었다. 진정한 시금석은 유용성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이론이 지식이다.

실용주의적인 측면을 강조한 서양, 특히 유럽이 세계를 제패하지 않았다면?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 동양의 어느 국가가 세계의 패권을 잡았다면 저자가 말하는 세계의 모습과 과학이 발달했을까? 그런데 결국 똑 같은 모습으로 흘러 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진보라는 이상

 

P374.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인류문화는 진보를 믿지 않았다. 황금시대는 과거에 있었고, 세상은 퇴화하지는 않더라도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지혜를 엄격히 추종한다면 좋았던 옛 시절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고 인간의 창의성으로 일상생활의 이런저런 측면을 개선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지식으로 세상의 근본 문제를 극복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P375. 상황이 바뀐 것은 근대에 들어서였다. 근대 문화는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중요한 것들이 많다고 인정했다. 그런 무지의 인정이, 과학적 발견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줄 수 있다는 생각과 결합하자, 사람들은 결국 진정한 진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학이 풀기 힘들었던 문제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하자, 인류는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얻고 적용함으로써 어떤 문제든 다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가난, 질병, 노화, 죽음은 인류의 피치못할 운명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의 무지가 낳은 결과였다.

 

P376. 역사를 통틀어 사회를 고통스럽게 했던 가난은 두 종류였다. 남들은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나는 이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가난 그리고 식량과 집이 없어서 개인의 삶을 위험에 빠뜨리는 생물학적 가난이었다. 사회적 가난은 아마도 결코 근절되지 못할 것이다.

사회적 가난이 나타나게 된 배경이 자본주의 아닌가? 자본주의가 현재까지 가장 성공한 이데올로기이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미래는 모르는 일이지만) 허나 생물학적 가난 역시 사회적 가난이 있는 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아닌가? 우리가 경제성장을 한다고 아프리카의 최빈국의 굶어죽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본주의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그리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굉장히 훌륭한 경제시스템이 출현하지 않는 이상 사회적 가난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가난 역시 근절되지 못할 것 같다.

 

길가메시 프로젝트

 

P378.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인류의 모든 문제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고 흥미롭고 중요한 것은 늘 죽음의 문제였다. 죽음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근대 후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이를 당연시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신앙은 죽음을 삶에 의미를 주는 원천으로 바꿔 놓았다. 죽음이 없는 세상의 이슬람, 기독교, 고대 이집트 종교를 상상해보라. 이들 종교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며 내세에 희망을 두어야 한다고 가르쳤지, 죽음을 극복하고 이곳 지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추구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죽음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기에 바빴다.

 

과학을 보살피는 다정한 아빠

 

P386. 정부와 기업의 금고에서 수십억 달러가 실험실과 대학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중략) 대부분의 과학연구에 자금이 지원되는 이유는 그 연구가 모종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누군가 믿기 때문이다.

 

P387. 슬러그혼 교수는 우유 생산량을 10퍼센트 감소시키는 암소의 유선감염질환을 연구하고 싶어 한다. 스프라우트 교수는 암소가 송아지와 떨어지게 되었을 때 정신적 고통을 받는지를 연구하고 싶어 한다. 돈의 액수는 제한되어 있으며 두 연구 모두에 보조금을 지원할 수는 없다고 가정할 때, 어느 쪽이 지원을 받아야 할까?

 

이 문제에 과학적 해답은 없다. 오로지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해답이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슬러그혼이 돈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유선병이 소의 정신상태보다 과학적으로 더 중요해서가 아니다. 그저 그 연구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낙농업계의 영향력이 동물권리운동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면서 단점;;

 

P388. 사회는 우유의 상업적 잠재력을 중시하며 암소의 기분보다 인간 시민의 건강을 더 중하게 여긴다.

일반 시민 역시 전혀 관심이 없다. 소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어떤 것을 먹는지 일반 시민들이 궁금해 한다고? 100프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 다르다. 그것은 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 내가 먹는 우유가 깨끗한 지, 영양가가 좋은 지, 그래서 내가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소의 처우? 소의 생활 환경?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먹는 우유를 위함이다.

 

P389. 한마디로,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어째서 유럽인가

 

P399.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 할 수 없었다. 프랑스와 미국이 재빨리 영국의 발자국을 뒤따랐던 것은 가장 중요한 신화와 사회구조를 이미 영국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은 사회에 대한 생각과 사회의 조직 방식이 달랐던 탓에 그렇게 빨리 따라잡을 수 없었다.

 

P399. 근대 초기에 유럽은 어떤 잠재력을 개발했기에 근대 후반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는 서로 보완적인 두 가지 답이 존재하는데, 바로 현대 과학과 자본주의다. 유럽인은 기술적인 우위를 누리기 전부터도 과학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가 기술의 노다지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유럽인들은 다른 누구보다 그것을 잘 부릴 수 있었다. 따라서 과학과 자본주의가 유럽 제국주의가 21세기 유럽 이후 세상에 남긴 가장 중대한 유산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럽과 유럽인은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하지 않지만, 과학과 자본의 힘은 나날이 강력해지고 있다.

 

정복의 사고방식

비어 있는 지도

 

P408.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과학혁명의 기초가 되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유럽인에게 과거의 전통보다 지금의 관찰 결과를 더 선호하라고 가르쳐주었다. 그 뿐 아니라 아메리카를 정복하겠다는 욕망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지식을 맹렬한 속도로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

 

외계로부터의 침공

희귀 거미와 잊힌 문자

 

P425. 과학이 제국에게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근대 유럽인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은 언제나 선이라고 믿게 되었다. 제국에서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덕분에, 제국에는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사업이란 이미지가 붙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지리학, 고고학, 식물학 같은 과학의 역사는 적어도 간접적으로라도 유럽 제국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식물학의 역사에는 호주 원주민의 고통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지만 제임스 쿡이나 조지프 뱅크스에 대한 호의적인 말은 몇 마디 있는 게 보통이다.

이런 식의 논리전개가 이 책의 중간중간을 불편하게 만든다. 영국이 인도의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논리는 일본이 조선사람을 학살하고 핍박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증기기관 등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냐? 이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화가 나는 주장이다.

 

P425. 게다가 제국에 의해 축적된 새로운 지식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피지배 민족을 이롭게 하고 이들에게 진보의 혜택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의료와 교육을 제공하고, 철로와 운하를 건설하며, 정의와 번영을 보장할 수 있었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의 제국이 거대한 착취 사업이 아니라 비유럽 인종을 위해 시행된 이타적 프로젝트라고 주장했다.

바로 뒤에 나오는 구나. ‘이론적으로는이라는 말로 제3자적 입장을 취하는 태도. 그래서 당신은 어떻다는 건데? 정당하다는 거야 아니야?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지 그것을 아예 무시하는 것은 아니야. 그런데 그 말도 사실은 사실이잖아~” 라는 식으로 계속 반복할 겁니까?

 

P428. 이런 인종차별 이론은 수십 년간 명성과 존경을 얻었지만, 이제는 과학자와 정치인 모두에게 극단적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요즘도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상대로 영웅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전장이 이미 옮겨졌다는 사실을 모른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인종주의가 차지하던 자리는 이제 문화주의가 차지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문화주의란 말은 없지만, 이제 만들어낼 때가 되었다. 오늘날 엘리트들은 다양한 인간집단이 서로 대조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때 이것을 문화 간의 역사적 차이라고 말하지, 인종 간의 생물학적 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이 타고난 속성이야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건 그들의 문화 탓이야라고 말한다.

 

16. 자본주의의 교리

 

커지는 파이

 

P442.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단순한 와 구별한다. 자본이란 생산에 투자되는 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한다. 반면에 부는 땅에 묻혀 있거나 비생산적 활동에 낭비된다. 비생산적인 피라미드에 자원을 쏟아 붓는 파라오는 자본주의자가 아니다.

 

P443. 근대에 이르러 귀족은 자본주의 신조를 믿는 새로운 엘리트에게 추월 당했다. 새로운 자본주의자 엘리트는 공작이나 후작부인이 아니라 회장, 주식 거래인, 기업경영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유력자는 중세 귀족보다 훨씬 부유하지만 사치성 소비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덜하다. 수입에서 비생산적 활동에 쓰는 돈이 차지하는 비중도 훨씬 적다. 중세 귀족은 금실과 비단으로 짠 화려한 복장을 하고 연회와 축제와 멋진 마상 시합에 참석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반면에 현대의 CEO들은 까마귀 떼 정도의 스타일을 허락하는 수트라고 불리는 지루한 유니폼을 입고, 축제를 즐길 시간이 거의 없다. 전형적인 벤처 투자자는 회의에서 회의로 뛰어다니며 자본을 어디에 투자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자신이 보유한 유가증권의 등락을 계속 추적한다.

 

P444. 자본주의자에게 짐바브웨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 정의와 정치적 자유를 도입할 방법을 물어보라. 경제적 풍요와 번영하는 중산층이 안정적 민주제도에 얼마나 핵심적인지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가니스탄 부족민들에게 자유 기업과 검약과 자립의 가치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듣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종교는 현대 과학의 발달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과학 연구자금은 정부나 민간기업에서 조달하는 것이 보통인데, 자본주의 정부와 기업이 특정 과학 프르젝트에 대한 투자를 고려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보통 이 프로젝트는 우리의 생산량과 수익을 늘려줄 것인가? 경제성장을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이 장애물을 못 넘는 프로젝트는 후원자를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근대 과학의 역사에서 자본주의를 관련시키지 않을 길은 없다.

 

콜럼버스가 투자자를 찾는다

자본의 이름으로

 

P463. 오늘날 한 나라의 신용등급이 천연자원보다 경제적 복지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용등급은 그 나라가 부채를 갚을 가능성을 가리킨다. 순수한 경제적 데이터 외에도 정치, 사회, 심지어 문화적 요인을 고려해서 매겨진다. 석유가 풍부한 나라라도 독재 정부에 전쟁이 만연하고 사법제도가 부패해 있다면 등급이 낮은 것이 보통이다. 그 결과 이 나라는 상대적 빈곤국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석유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천연자원이 없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며, 사법제도가 공정하고, 자유정부를 가진 나라는 신용등급을 높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나라는 싼 대가로 많은 자본을 모아 좋은 교육제도를 지원하고 하이테크 산업을 육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은 생각보다 높게 매겨진거네?

 

자유시장에 대한 집단적 숭배

자본주의자의 지옥

 

P468. 이것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옥에 티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그렇기는 커녕, 이윤과 생산량을 늘리려는 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성장이 최고의 선이 되고 다른 윤리적 고려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을 때, 그 성장은 쉽사리 파국으로 치닫는다.

 

P470. 1908년 이후, 특히 1945년 이후 자본주의의 탐욕에는 어느 정도 고삐가 죄어졌는데, 여기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불평등은 여전히 만연했다. 2014년의 경제적 파이는 1500년보다 크지만, 분배는 너무나 불공평해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아프리카의 농부와 인도네시아의 노동자가 집에 가져오는 식량은 5백 년 전보다 더 적다. 농업혁명과 마찬가지로, 현대 경제의 성장은 거대한 사기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인류와 세계 경제는 성장을 거듭했을지라도 기아와 궁핍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더욱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빈곤만이 근절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 생물학적 가난 역시 근절되지 못한다.

 

17. 산업의 바퀴

 

부엌의 비밀

에너지의 바다

 

P480.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산업혁명은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무지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불과 몇십 년 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계속 늘었다. 그런데도 에너지 고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 가능한 화석연료가 고갈되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세상에는 에너지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에너지를 찾아내 그것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전화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의 삶

 

P486. 대서양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인을 향한 증오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처럼, 현대의 동물산업도 악의를 기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 연료는 무관심이다. 달걀과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짬을 내어 자기가 살이나 그 산물을 먹고 있는 닭과 암소, 돼지를 생각하는 일이 드물다.

아프리카인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한 것이 아닌 동물로 생각했기에 과거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 과연 이것이 무지일까? 그저 이기주의 아닌가? 잔인함 아닌가? 동물에게 저지르는 행동도 무지가 아니고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 아닌가?

 

P487. 진화심리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본 교훈은, 야생에서 형성된 욕구는 설사 더 이상 생존과 번식에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할지라도 계속 주관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P490. 오늘날 미국에서 농업으로 먹고사는 인구는 2퍼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2퍼센트가 미국 인구 전체를 먹이고 남은 것은 수출할 만큼 생산하고 있다. 농업의 산업화가 없었더라면 도시의 산업혁명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쇼핑의 시대

 

P492. 이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소비자다. 우리는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상품들을 무수히 사들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것들을 말이다. 제조업자들은 일부러 수명이 짧은 상품들을 고안하고, 이미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제품을 불필요하게 갱신하는 새 모델을 발명한다. 이것은 유행을 따르려면 반드시 사야 하는 물건이다.

 

P493. 미국 사람들이 해마다 다이어트를 위해 소비하는 돈은 나머지 세상의 배고픈 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액수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이기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욕심이라고 밖에 여길 수 없다. 기준치 보다 많이 먹으면 살이찌는 것을 모른다고? 무지라고 변명할 것인가? 아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아니다. 절대 무지가 아니다. 욕심이다. 남으면 버리면 되지란 사고는 무지가 아닌 욕심이고 이기적인 것이다.

 

P494.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소비지상주의 이념을 성공적으로 준수하며 살아간다. 새로운 윤리가 천국을 약속하는 대신 내놓은 조건은 부자는 계속 탐욕스러움을 유지한 채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시간을 소비할 것, 그리고 대중은 갈망과 열정의 고삐를 풀어놓고 점점 더 많은 것을 구매할 것이다.

이것은 그 신자들이 요청받은 그대로를 실제로 행하는 역사상 최초의 종교다.

 

18. 끝없는 혁명

 

P496. 생태계 파괴는 자원 희소성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자원의 희소성을 말하는 종말론적 예언가들이 아마도 헛짚은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이와 반대로 생태계 파괴에 대한 두려움은 근거가 너무 확실하다. 미래의 사피엔스는 온갖 새로운 원자재와 에너지원의 보고를 손에 넣되 이와 함께 겨우 남아 있는 자연 서식지를 파괴하고 대부분의 종을 멸종시킬지 모른다.

 

현대의 시간

 

P499. 산업혁명은 시간표와 조립 라인을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틀로 변화시켰다. 공장이 자신의 시간표를 인간들의 행동에 강요한 직후부터 학교 역시 정확한 시간표를 채택했으며, 병원과 정부기관, 식품점이 그 뒤를 따랐다. 심지어 조립 라인과 기계가 없는 장소에서도 시간표가 왕이 되었다. 공장의 교대 근무시간이 오후 5시에 끝난다면 동네 술집은 5 2분에 문을 여는 것이 나았다.

 

가족과 공동체의 붕괴

 

P507. 국가와 시장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그들은 말했다. “개인이 되어라. 누가 되었든 네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라. 부모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네게 맞는 직업을 택하라. 그 때문에 공동체의 연장자가 눈살을 찌푸리더라도. 어디가 되었든 네가 원하는 곳에서 살아라. 그 때문에 가족 만찬에 매주 참석할 수 없게 되더라도. 당신은 더 이상 가족이나 공동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리, 즉 국가와 시장이 당신을 돌볼 것이다. 식량과 주거, 교육과 의료, 복지와 직업을 제공할 것이다. 연금과 보험을 제공하고 당신을 보호해줄 것이다.”

 

P510. 시장이 사람들의 연애 및 성생활 방식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가족이 중매쟁이의 역할을 맡았지만, 오늘날 연애와 성적 선호를 조종하고, 그것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은 시장이다.

 

P510. 국가 역시 가족관계를 예전보다 더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는데,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주목한다. 부모에게는 아이들을 정부의 학교에 보내 교육받게 할 의무가 있다. 특별히 아이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는 국가의 저지를 당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 국가는 심지어 부모를 감옥에 보내고 아이들을 다른 가정에 위탁할 수도 있다.

 

상상의 공동체

끝없는 운동

 

P515. 지난 2세기 동안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고, 그런 나머지 사회질서는 동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로 존재한다. 현대의 혁명이라고 하면 우리는 1789(프랑스혁명), 1848(유럽의 연쇄적 민주화 혁명), 혹은 1917(러시아혁명)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은 모든 해가 혁명적이다. 요즘은 심지어 30세 밖에 되지 않은 사람도 십대를 향해 내가 어렸을 때는 세상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어라고 말할 수 있다.

 

P516. 현대사회의 속성을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카멜레온의 색을 규정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속성은 끊임없는 변화다. 우리는 여기에 익숙해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질서를 바뀔 수 있는 무엇, 우리가 마음대로 가공하고 개선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이전 지배자들의 주된 약속은 전통적 질서를 수호하겠다거나 심지어 잃어버린 모종의 황금시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지만, 지난 2세기 동안 정치에서는 구세계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더 나은 것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가장 보수적인 정당조차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만 약속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사회 개혁, 교육 개혁, 경제 개혁을 약속하고, 어떤 때는 공약을 실천하기도 한다.

 

우리 시대의 평화

제국의 은퇴

팍스 아토미카

 

P525. 오늘날 인류는 이런 정글의 법칙을 무너뜨렸다. 드디어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진정한 평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체들에게는 1년 내로 서로 전쟁에 돌입할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내년에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까? 중국과 일본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P526.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순진함 자체가 더없이 매혹적이다. 평화가 너무나 널리 퍼져 있어서 사람들이 전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대는 과거에는 달리 없었다.

이처럼 행복한 진전을 설명하기 위해서, 학자들은 우리가 결코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책과 논문을 써서 이 현상에 기여하는 요인을 몇 가지 확인했다.

 

첫 번째이자 다른 무엇보다, 전쟁의 대가가 극적으로 커졌다.

둘째, 전쟁의 비용이 치솟은 반면 그 이익은 작아졌다.

전쟁이 한 번 발발하면 몇 십년 과거로 돌아가는 비극이 일어난다. 그리고 평화를 유지하는 비용과 이익이 더 크다. 첨단무기를 개발하고 그것을 팔아 남기는 이윤이 전쟁을 해서 얻는 것보다 더 클 것이다. 전쟁을 하면 무엇이 남는가? 역시 군사적으로 강하다라는 이미지? 오히려 평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쪽이 이윤을 남기기에 더 효과적이다.

 

P527. 전쟁의 이익이 전만 못해진 데 비해, 평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익성이 좋아졌다.

 

P527. 현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대외 교역과 투자는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므로 평화는 훌륭한 배당이익을 낳는다. 중국과 미국이 평화를 유지하는 한, 중국인들은 미국에 제품을 팔고 월스트리트에서 거래하며 미국의 투자를 받아서 번영할 수 있다.

 

P528. 점점 치밀해지는 국제적 연결망은 국가들의 독립성을 서서히 약화시켜, 어느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줄인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더 이상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이제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P529. 우리는 지구 제국의 형성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이전의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제국 역시 그 국경 내에서 평화를 강제한다. 그리고 그 국경이 지구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에, 세계 제국은 세계 평화를 효과적으로 강제한다.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P531. 역사학자들은 우루크와 바빌론의 시민이 자신들의 수렵채집인 선조보다 행복했을까, 이슬람교가 등장해서 이집트인들의 삶이 더욱 만족스러워졌을까, 아프리카에서 유럽 제국이 붕괴한 것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묻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역사를 향해 물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이다.

 

P533. 하지만 이처럼 모든 발명의 뒤에서 어두운 그림자만을 보려는 낭만적 고집은 진보가 필연이라는 믿음에 못지 않게 교조적이다. 우리는 우리 내면의 수렵채집인과 접촉이 끊겼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지난 2세기 동안 발전한 현대의학 덕분에 어린이 사망률은 33퍼센트에서 5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이 사실이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더라면 사망했을 어린이 본인뿐 아니라 그 가족과 친구들의 행복에 엄청나게 기여했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행복 계산하기

 

P535. 지금껏 우리는 행복이 주로 건강이나 식사, 부와 같은 물질적 요인의 산물인 것처럼 이야기해왔다. 사람들이 더 부유하고 건강해지면 더 행복할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잠깐, 그게 정말 그렇게 명백한 일일까? 철학자, 사제, 시인 들이 행복의 본질을 수천 년간 곰곰이 생각해온 결과, 그들은 우리의 사회적, 윤리적, 정신적 요인들도 물질적 조건만큼이나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결론지었다. 어쩌면 현대의 풍요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번영에도 불구하고 소외와 무의미 때문에 크게 고통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P536. 과제의 첫 단계는 무엇을 측정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행복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의는 주관적 안녕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행복은 자신 속에서 스스로 느끼는 무엇이다. 다시 말해 내 삶이 진행되는 방식에 대해 느끼는 즉각적인 기쁜 감정이나 장기적인 만족감이다. 그것이 내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라면, 어떻게 외부에서 측정할 수 있을까?

 

P539. 가족과 공동체는 우리의 행복에 돈과 건강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간에 유대감이 강하고 구성원을 잘 돕는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즉 가족이 제 구실을 못하거나 소속될 공동체를 찾지 못한 이들에 비해서 훨씬 행복하다. 결혼은 특히 중요하다. 좋은 결혼은 행복과, 나쁜 결혼은 불행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각종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조건은 물론이거니와 신체적 조건과도 상관없다. 무일푼의 병자라도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행복감이 높다. 다만 병자의 가난이 너무 심하지 않고, 그 병이 퇴행성이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P540.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행복이 부나 건강, 심지어 공동체 같은 객관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P540. 이런 사실을 알기 위해 심리학자의 숱한 설문지가 필요하진 않다. 예언자, 시인, 철학자 들은 수천 년 전부터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P541. 현대인에게는 사용할 수 있는 안정제와 진통제가 얼마든지 있지만, 안락함과 즐거움은 더 크게 기대하면서 불편함과 불쾌함은 더 참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가 선조들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는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다.

 

P541. 이런 생각의 노선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문제는 우리의 정신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추론의 오류에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현재 얼마나 행복한지, 혹은 과거의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추측하고 상상하려 할 때 우리 자신을 그들의 상황에 대입해본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정확하지 않다. 우리의 기대를 타인의 물질적 조건에 끼워 넣기 때문이다.

 

P543. 역사를 통틀어 가난하고 압박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안해온 것은 적어도 죽음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믿음이었다. 부자가 권력자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은 죽어야 하는데 부자는 영원히 젊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부자가 오래 살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 사실이다. 고급 의료 혜택에 주기적인 관리, 진료 및 수술에 대한 비용적 걱정이 없으니 말이다. 비단 의료 뿐 아니다. 첨단 운동 프로그램, 음식, 다양한 문화생활 등 이런 모든 것들이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

 

화학적 행복

 

P544.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세계와 감정세계는 수백만 년의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생화학적 체제의 지배를 받는다. 다른 모든 정신적 상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복도 월급이나 사회관계, 정치적 권리 같은 외부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신경, 뉴런, 시냅스 그리고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의 다양한 생화학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집을 사거나 승진하거나 심지어 진정한 사랑을 찾거나 하는 일로 행복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신체 내부의 쾌락적인 감각이다. 방금 복권에 당첨되거나 새로운 연인을 찾아서 기뻐 날뛰는 사람은 실제로 돈이나 연인에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혈관 속을 요동치며 흐르는 다양한 호르몬과 뇌의 여러 부위에서 오가는 전기신호의 폭풍에 반응하는 것이다.

 

P547. 즐거운 생화학 시스템을 지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행복하며, 삶의 만족도도 크다. 그런 사람들은 배우자로서 더욱 매력적이며, 결과적으로 결혼할 가능성이 더 많고, 이혼할 가능성은 더 적다. 우울하고 불만스러워하는 배우자보다 행복하고 만족해하는 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이 훨씬 더 쉽지 않은가. 결혼한 사람들이 독신인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행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생화학적으로 우울한 경향이 있는 여성은 남편과 함께 지낸다고 해서 반드시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삶의 의미

 

P552.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행복에는 중요한 인지적, 윤리적 요소가 존재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아기 독재자의 비참한 노예로 볼 수도 있고, ‘사랑을 다해 새 생명을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 큰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체계다.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찍한 시련이다.

 

P553. 그러므로 행복의 관건은 의미에 대한 개인의 환상을 폭넓게 퍼진 집단적 환상에 맞추는 데 있을지 모른다. 내 개인적 내러티브가 주변 사람들의 내러티브와 일치하는 한 나는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며, 그 확신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꽤 우울한 결론이다. 행복은 정말로 자기기만에 달려 있는 것일까?

 

너 자신을 알라

 

P557. 불교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즐거운 감정과, 고통을 불쾌한 감정과 동일시 한다. 그래서 자신의 느낌을 매우 중요시하며, 점점 더 많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한편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P557. 문제는 우리의 감정이 바다의 파도처럼 매 순간 변화하는 순간적 요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5분 전에 나는 즐겁고 결의에 차 있었지만, 지금 나는 슬프고 낙담해 있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즐거운 감정을 경험하고 싶다면, 불쾌한 감정을 몰아내면서 즐거운 감정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설령 한 번 그러는 데 성공했다 해도 곧바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상은 전혀 없다.

 

P557. 불교에서 번뇌의 근원은 고통이나 슬픔에 있지 않다. 심지어 덧없음에 있는 것도 아니다. 번뇌의 진정한 근원은 이처럼 순간적인 감정을 무의미하게 끝없이 추구하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긴장하고, 동요하고,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놓인다. 이런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기쁨을 느낄 때조차 만족스럽지 않다. 기쁜 감정이 금방 사라져버릴 것이 두렵고, 이 감정이 이어져 더 강해지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P558.  

 

P558. 일단 당신이 특정한 감정에 대한 추구를 멈추면 어떤 감정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공상하는 대신에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 결과 완전한 평정을 얻게 된다. 평생 미친 듯이 쾌락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평정이다.

 

P559. 행복이 외적 조건에 달려 있지 않다고 하는 점에서 부처의 생각은 현대 생물학이나 뉴에이지 운동과 궤를 같이 하지만, 부처의 가장 심원하고 중요한 통찰은 따로 있다. 진정한 행복은 주관적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우리는 더 많이 집착하게 되고, 괴로움도 더욱 심해진다. 부처가 권하는 것은 우리가 외적 성취의 추구뿐 아니라 내 내면의 느낌에 대한 추구 역시 중단하는 것이다.

 

P559. 행복을 얻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자신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를-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감정, 생각, 호불호를 자신과 동일시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들은 분노를 느끼면 나는 화가 났다. 이것은 나의 분노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감정을 피하고 또 다른 감정을 추구하느라 일생을 보낸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의 감정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P561. 하지만 21세기에 이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하는 중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

 

생쥐와 인간

네안데르탈인의 귀환

 

P570. 일각에서는 윤리적 명분도 제기한다. 만일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이 호모 사피엔스의 책임이라면 이들을 되살리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는 것이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들이 주위에 있으면 쓸모가 많을 수도 있다. 많은 제조업자가 사피엔스 두 배 몫의 육체 노동력을 지닌 네안데르탈인에게 기꺼이 돈을 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에서 그칠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느님의 제도판으로 돌아가서 보다 나은 사피엔스를 설계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으가?

윤리적 명분 때문에 네안데르탈인을 되살린다고? 그럼 그 뒤에 쓸모라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역시 윤리적 명분인가? 새로운 가축을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고? 접근하는 사고 자체가 틀려먹은 것 아닌가?

 

생체공학적 생명체

또 다른 삶

특이점

 

P580. 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이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상류계급은 자신들이 하류계급보다 똑똑하고 강건하며 전반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속였다. 사실 가난한 농부에게서 태어난 아기의 지능은 황태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의학적 능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상류계층의 허세가 머지않아 객관적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프랑켄슈타인의 예언

 

후 기 : 신이 된 동물

 

P587.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고통의 총량을 줄였을까? 인간의 역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복지를 개선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다른 동물들에게는 큰 불행을 야기하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P588. 더구나 인간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불만족스러워 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구성에 대하여

 

솔직한 의견으로 이 책의 목차와 구성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아쉬웠던 부분이 모두 채워져 있다. 용어를 통해 페이지를 찾을 수 있게 구성했으며, 주장에 근거가 되는 도서와 논문이 잘 정리되어 있다.

 

각 장의 시작은 앞 장의 정리와 그 장에서 하고 싶은 주제를 요약했으며, 장의 끝은 전체 내용을 정리하고 다음 장을 위해 질문을 던진다. 구성자체가 상당히 뛰어나다. 이런 구성이 이 책을 쉽게 읽히게 한다.

 

단지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 책의 다음을 구성해 보았다. 이미 호모 데우스라는 책이 출판되어 목차구성을 살펴보았지만 물음표만 남는다. 사피엔스의 내용을 바탕으로 각 산업 영역별로 신이 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인류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피엔스를 1권으로 봤을 때, 드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의료는? 국방은? 생물학은? 역사학자는 어떻게 대응하는데? 물리학자는? 심리학자는? 경제학자는?’

 

영역별이 아니더라도 예상가능한 혹은 곧 닥칠 미래의 시나리오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면 굉장히 흥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장점

 

지구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던지는 위대한 질문

 

과학기술의 발전을 인위적으로 멈출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과학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윤리적 측면을 아예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가? 과학은 양날의 검이다.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역사상 유래 없는 평화의 원인은 핵무기를 포함한 첨단 군사무기 덕분이다. 단 몇 분 안에 한 국가가 초토화 된다는 것은 이제 어린아이도 안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공상과학소설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이제 공상이라는 단어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이제 우리가 공상으로만 여기던 모든 것들이 상식적인 과학이 되었다. 로봇과 사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인간의 일자리 역시 로봇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과학은 우리의 친구인가? 인류를 위한 조력자인가? (아무 생각없이 조력라는 말이 나온다) 과학에는 휴머니즘이 존재하는가? 저자는 과학이 발전한 이래로 인류에게 던지지 않았던 쉽지만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그저 흥미로운 책으로만 그칠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독창과 창의를 넘어선 파격

 

인류에게 던진 위대한 질문 속에는 독창과 창의를 넘어선 파격이 있다. 사피엔스의 잔인함과 무지, 자연선택이 아닌 지적설계, 나아가 새로운 종의 탄생과 인류의 종말. 현재와 같은 과학발전의 속도라면 정말로 틀린 말이 아니다. 어쩌면 이미 준비가 되어 있어 어느 순간 마술처럼 짠 하고 나타날지 모른다.

 

심지어 종교의 문제로 다뤘던 죽음까지도 기계를 제작하는 것과 같이 조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섭게도 이 말은 사실일지 모른다. 이미 게놈 편집기술이 세상에 선보여졌다. 유전병을 유발하는 DNA를 연구하기 위해 탄생한 이 기술은 인간을 진정한 불사조로 만들 수 있다. 불로장생의 약초가 과학이었다. 앞으로의 삶이 유토피아가 될 지 디스토피아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확신이 든다.

 

책은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어쩌면 이 시대에 맞는 책 쓰기가 아닐까 싶다. ‘자극’, ‘파격’, ‘과학적 근거이 세가지 요소를 가지고 책을 쓴다면 어떤 주제든 왠지 읽히는 책이 될 것 같다는 확신. 역설적으로 감성적이고 따뜻한 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읽히는 책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보완점 / 저자의 눈으로

 

저자에 대하여를 작성하며 생각한 내용이다. 과학적 근거로 모든 이슈를 설명하고 전개하는 방식에서 인간의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반박하고 싶지만 증명되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우리 살지 않았던 그 시대의 역사를 논하는 것에 있어서 오롯이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해석한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단정 짓고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영화 타이타닉초반의 한 장면이 머리를 스치며 사피엔스를 마친다.

 

(과학적으로 재현한 타이타닉의 침몰과정을 화면으로 보여주며)

탐사대원 : 빠른 속도로 질주하던 배의 우측면과 빙하가 충돌을 합니다. ‘’. 앞쪽부터 물이 차오르면서 기울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물이 차오르던 배의 앞쪽이 물에 잠깁니다. 그리고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배가 두동강이가 나죠. 부서진 배의 앞쪽은 60~80 노트로 800m 수면 아래로 침몰합니다. 몇 분간 배의 뒤쪽은 코르크 처럼 수직으로 둥둥 떠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그리고 완전히 바다 속으로 사라집니다. 엄청 나죠 (It’s cool)

 

할머니(여자주인공의 나이든 역) : 이렇게 설명하니 알 것 같군요. 하지만 겪고 보지 않으면 몰라요. 끔찍했죠!

 

*기억에 의해 재연한 대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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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8 13:12:40 *.18.218.234

독창성이라는 짙은 화장이라 ㅎㅎ

행복 파트에서는 성한씨가 줄 그으며 읽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저자라면에서는 음성지원되네 ㅋ

정성스러운 저자라면(신라면 아님, 아 미안...ㅡㅜ ) 잘 봤어요.

나는 진짜 잘 안쓰여지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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