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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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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3일 15시 56분 등록
1.저자소개
나는 조셉캠벨입니다. 나는 사실 1987년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평생을 바쳐 연구해온 신화속의 많은 영웅들이 신화속에 살아있는 것처럼 오늘은 나도 부활해 여러분에게 나를 소개하고 싶군요.
나는 1904년에 뉴욕의 카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신화를 설명하는데 있어 기독교의 유일신을 강조하므로 가져오는 배타성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내 스스로 기독교인이 아님을 밝힌바 있지만 카톨릭 가정에서의 삶은 나를 신화에 관심 갖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즉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탄생하고, 가르치고, 십자가에 매달리고, 부활하고, 하늘로 돌아가는 이 순환적 주기를 알게 되면서 신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버팔로빌이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와서 <와일드 웨스트 쇼> 공연을 벌였는데, 그걸 보고 그만 인디언에 푹 빠지게 되었지요. 인디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지요. 그래서 인디언의 책을 보고 인디언의 신화를 읽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 인디언의 신화와 성서를 통해 들은 것과 똑 같은 모티브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전 세계의 신화, 전설, 민담등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전세계의 신화들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공부에 평생을 바쳤지요.

그런데 제가 왜 그렇게 신화에 몰입했는지 궁금하시죠?
신화에는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요.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는 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우리의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하지요.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있음에 황홀을 느끼게 되는데 신화에는 그게 살아있어요. 그래서 신화는 우리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이며 길잡이가 되어주죠.
또 신화는 우리를 우리 내부 깊숙히 탐험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신들의 근원을 잘 들여다 보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어요. 즉 신들을 낳는 근원은 바로 우리 자신이지요. 이 신들은 우리 자신의 에너지를 상징화한 것이예요. 그렇기에 우리 내부의 불을 찾아 나서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신화는 상징으로 되어 있어요. 마치 시처럼 말이예요. 그래서 신화를 해석할 때는 상징에 포함되어 있는 속뜻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 속뜻은 언제나 정신적인 것이예요. 순례라 함은 물리적인 행동으로서의 순례가 아니예요. 그것은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중심을 찾아가는 순례, 즉 참된 자신의 내면을 향한 순례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마침내 ‘황무지’에 생명을 불어 넣게 되는 겁니다. 즉 진실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내가 아닌 규범에 따라서 행동하는 삶으로 부터의 해방이며 진정한 자유입니다.
이 모든것에 신화는 영향을 미칩니다 .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 이데올로기 뿐입니다. 신화는 개인을 이끌어 가는 길을 제시합니다. 신화는 살아있는 인간을 그의 생활주기와 조화시키고 그가 살고 있는 환경과 조화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신화를 볼 때 그 신화가 전하는 신비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잘 살펴보길 바래요. 신화가 무엇이냐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의 기능이 중요하지요. 과거에 인간에게 어떻게 기능해 왔고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를 갖느냐를 검토하고 나에게 적용시켜보기를 권합니다.

나는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물론 공부도 참 많이 했어요.
나는 스스로의 깨달음을 얻기 위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방에 앉아 읽어라. 또 읽고 읽어라.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라. 읽는 행위를 통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는데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 삶에서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한다”고 가르칩니다.
저 역시 그랬지요.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는 거예요. 그 작가만 물고 늘어지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지요. 이렇게 하다보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이 획득한 관점에 다라 세상은 열리게 되지요.
여러분도 꼭 그렇게 해보세요.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시야를 확 트이게 해줄 것이고, 여러분의 천복을 알게 되고 삶을 바꿀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 뿐이니까요.

현대사회에서, 신화라고 하는 꿈의 집은 이제 무너지고 없는 것 같아요. 깨어 있는 의식에만 열려있지요. 현대인은 나비가 고치에서 나왔지만 고치를 잊어버리듯 고대의 무지로부터 빠져나온듯 해요. 그것은 결국 내면으로 이끄는 한 통로의 단절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까워요. 오늘날에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영웅의 업적은 갈릴레오 세기에 이루어졌던 업적이 아니예요. 그때는 암흑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광명의 시대지요. 이제 사회를 지키고 구현해야 할 사람, 바로 창조적인 영웅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개개인 모두가 자신의 영웅을 끄집어 내어 스스로 영웅으로서의 삶을 살길 바래요.

사람들이 나를 두고
“민담과 해골에 생명을 불어넣은 조셉캠벨”
“평생동안 자신의 천북을 좇아 산 행복한 사람 조셉캠벨” 이라고 얘기하더군요.
난 이 말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 조셉캠벨이 여러분에게 몇가지 당부하고 싶어요.
인류 자신과 함께 성장해온 신화의 상상력과 초월적 힘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신화는 인류의 삶의 뿌리입니다. 그 뿌리에서 자란 것이 인류의 역사이지요
자기 민족의 신화체계와 자기 문명권의 종교만을 주장함으로써 다른 민족과 문명권의 것들을 파괴하고 배척하는 비 도덕적 인류역사를 만들지 말기를 당부합니다.


2.내마음을 무찔러 들어온 글귀
원질신화 – 변화 무쌍한 듯하지만 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이야기의 일정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 도전적이리만치 끈질긴 암시를 던진다 …결코 끝나는 법이 없다는 암시이다.13

인간의 신화에는 끊임없이 살이 붙어왔고 신화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살아있는 영감을 불어넣었다.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자니친 말이 아니다. 14

놀라운것은 심원한 창조적 중심을 촉발하고 고무하는 특진적인 효과가 아이들의 동화책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14

무의식은 꿈을 통해서, 혹은 벌건 대낮에, 아니면 정신착란을 이용하여 갖가지 부질없는 몽상과 기이한 상념과 공포와 정신을 어지럽히는 허상을 마음으로 올려보낸다 . 인간이라는 왕국에서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비교적 깔끔하고 비좁은 처소의 바닥 밑으로는 뜻밖에도 알라딘의 동굴이 뚫려있다. 19

자기의 발견이란, 소망스럽고 무서운 모험의 영역을 여는 열쇠를 가져다 준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다…보다 대담하고, 깨끗하고, 보다 푸짐한 인간적인 삶으로의 재건, 이것이 바로 우리 속에 내재하는 신화적 영역에서 오는 이 심란한 밤손님의 유혹이며, 약속이며, 공포인 것이다. 21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23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수수께끼이며, 영웅의 바탕되는 미덕과 역사적 행위가 풀어야 하는 문제다. ,,,오직 탄생 (낡은 것의 새로운 태어남이 아닌, 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죽음의 끈질긴 재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내부에, 사회적인 무리의 내부에 끊임없는 탄생의 재현이 있어야 한다.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오면 죽음이 다가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뿐, 갈가리 해체되었다가 재생하는 길뿐이다. 29

해탈 혹은 물러섬withdrawal과정은, 외적인 세계에서 내적인 세계로,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그 중심을 옮김으로써, 황무지의 절정에서 내부에 존재하는 영원의 평화로운 영역으로 물러섬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영역이 바로 유아기의 무의식이가. 우리가 잠잘 때 들어가는 곳이 바로 이영역이다. 우리는 이 영역을 평생 내부에 간직한다. 우리 유아기의 도깨비들과 은밀한 협력자들 어린시절의 마법이 모두 모두 여기에 있다. 뿐인가, 보다 중요한 것은 어른이 되어도 의식할 수 없는 삶의 잠재력, 우리들 자신의 또 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 이 황금의 씨앗은 마르는 법이 없다. 우리가 상실해버린 이 정체성의 일부라도 나날의 현실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우리의 능력은 놀라운 수준까지 신장될 것이며, 아울러 생기넘치는 재생의 순간을 체험하는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더 높이 솟아야 한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세대, 나아가서는 우리의 문명시대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얼마간이라도 건져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저 위대한 천품의 시혜자, 시대의 문화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웅의 첫단계에서 하는 일은 하찮은 세상이라는 무대로부터 진정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심성의 인과가 시작되는 곳으로 물러앉는 일이다. 그리고 영웅은 난관을 헤쳐나가되 자기 의식으로 그 난관의 뿌리를 뽑고(자기가 속한 문화권의 유아기 악마에게 싸움을 걸고) 한달음에 쳐들어가 원형심상과의 동화 작용을 시도한다. 30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그런 사람의 상상력과 이상과 영감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생명과 사상의 원천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영웅은 현재의 붕괴되어 가는 사회나 정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회재생의 심원한 원리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영웅은 현대인으로 죽었지만 영원한 인간(완전하게 되되 특이하지 않은 우주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따라서 두번째 엄숙한 과업과 행위는 우리에게 다가와 재생의 삶에 대해 그가 배운 바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33

영웅의모험은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 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으로 이루어진다.50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54

영웅의 성공적인 모험의 의미는, 생명의 흐름을 풀어 다시 한번 세계의 몸속으로 흘러들게 하는 데 있다. 이 흐름의 기적은 물리적으로 음식물의 순환, 역학적으로는 에너지의 흐름, 영적으로는 은총의 현현을 나타내는듯 하다. 55

부지중에 저지른 실수는 극히 드문 것이긴 하지만 뜻밖의 세계를 드러내고,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력과의 관계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부지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이 주름의 골은 매우 갚다. 영혼 그 자체만큼이나 깊다.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 71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타성이나 힘에 겨운 일, 혹은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 심장한 긍정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이다. 모험의 주체가 누리던 화려한 세께는 메마른 돌멩이가 구를 뿐인 황무지가 되고 그의 삶은 무의미해진다. 81

개인이 자기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하면 신의 의지, 즉 자심의 자기 중심적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자신은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82

초자연적인 외부 조력자는 영웅에게 필요한 액막이를 주거나 충고를 해주는 것은 숲속의 난장이,마법사,은자, 목동, 혹은 대장장이인 것이 보통이다. 고급 신화에서는 이 역할을 맡은 조력자는 스승, 나룻배사공, 영혼을 내세로 안내하는 안내자로 발전한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헤르메스와 메르쿠리우스이고, 에집트에서는 토트심이며, 기독교문화권에서는 성령이다. 97

태양문을 통하여 번제의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길을 가는 것이다. 120

마법의 문을 넘는다는 것이 곧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관념은, 그 관문을 지키는 세력을 정복하거나 그 세력과 화해하는 대신, 그 미지의 힘에 빨려들어, 겉보기엔 죽은 것으로 나타나고는 한다. 121

자아에의 집착을 끊고 영웅은 자기 궁궐에서 방방을 드나들듯이 삶의 지평을 넘나들거나 용의 뱃속을 드나들 수 있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 그의 죽음과 회귀는 모든 현상계의 대립물이 창조되지 않은 불멸의 존재임을 드러내는데 여기에 두려움이 있을리 없다. 124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된다. 신화와 모험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루는 면도 바로 이 국면이다. 이 국면은, 기적적인 시험과 시련을 다룬 세계의 문학을 창출해 왔다. 영웅은 거듭나는데 필요한 충고와 호부, 그리고 이 영역에 이르기 전에 만났던 초자연적인 밀사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어쩌면 모험 당사자가 자심의 초인간적 여행 도정의 도처에 자비로운 권능이 있어서 자기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바로 이 시기인지도 모른다. 129

영웅은 적대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써 이 적대자를 동화시킨다. 영웅은 자심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143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삶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즉 여성이 곧 삶인데 영웅은 이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영웅의 궁극적인 체험과 행위의 예비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의 시련은 각자의 위기를 상징한다. 159

신화는 창조의 신비를 상징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보여준다. 즉 영원성이 시간성으로 발전하고, 하나가 둘에 이어 다수로 분열하며, 둘의 재결합으로 새 생명의 세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이미지는, 우주 발생적 순화의 시작에 해당하는데, 영웅의 모험이 막바지에 도달하여 낙원의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신의 형상은 다시 나타나고 지혜는 다시 원상으로 회복된다. 200

죽음은 끝이 아니다. 새 생명, 새로운 탄생, 새로운 존재의 지식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저 아버지가 바로 어머니, 즉 재생의 자궁이었던 것이다. 211

보살 신화에서 주목해야할 두번째 경이로움은, 보살이 삶과, 삶으로부터 해탈의 차이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보살이 열반을 단념한다는 사실로 상징되고 있다. 열반이란 말은,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이라는 세 겹의 불을 근다는 것이다. 213

개인적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화,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영웅이 갈망하는 신의 모습은 점점커져, 이윽고 우주 전체에 가득차게 된다. 영웅의 마음은 마침내 우주의 벽을 깨뜨리고 모든 형상 (모든 상징, 신성의 경험을 초월하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변의 공(空)에 대한 자각이다. 249

신화영역에서 일상 현실로 귀환하는 영웅의, 역설적이고 험난한 관문 통과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다. 이부로부터 구조를 받든, 내적 충동에 따라 살아나든, 신들의 안내를 받든, 영웅에게는 오래 잊고있던 곳으로 애써 얻은 전리품(홍익)을 가지고 돌아가야 할 단계가 남는다. 뿐만 아니라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재생의 영약을 가지고 돌아가 원래 속해 있던 사회와 맞서면서 그들의 까다로운 신문과 서릿발 같은 증오와 맞서야 한다. 뭐가 뭔지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까지 설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280

영웅의 귀환은 저승에서의 귀환을 말한다.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 기꺼이 이 일을 맡든, 어쩔수 없어서 맡게 되든, 우리가 영웅의 행위를 이해하자면 이 잊혀진 부분의 탐험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281

상징이란 의미 소통의 수레에 불과하다. 상징은 그 언급하는 바의 궁극적인 의미, 즉 <진로>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또 인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상징이란 이해를 돕기 위한 편의적이고 또 인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상징이란 이해를 돕기 위한 편의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신화학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징을 투명하게 닦아 우리에게 오는 진리의 빛이 이에 가리지 않게 하는 일이다. 305

영웅이 지난 전장은 모든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의 희생으로 삶을 영위하는 삶의 현장을 상징한다.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 시킴으로서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데 있다. 307

영웅은 생성된 것의 투사(鬪士)가 아니라, 생성되는 것의 투사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 간속의 엄연한 불변성을, 존재의 영속성으로 오해하지 않는다. 변화가 영속성을 파괴할 때도, 다음 순간 (혹은 다른 사물)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온 우주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라. 오직 변화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생될 뿐인 것이다. 313

신화적인 영역의 바닥에 다다르면, 영웅은 절대한 시험을 당하고, 그 시험을 이긴 보상을 받는다. …원래 이 승리는 자기 의식의 확장이며, 존재의 합일이다. 마지막 단계는 귀환이다. 영웅이 그 권능의 축복을 받는 경우 전리품은 영웅을 보호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영웅은 도망치고, 부정적인 세력의 추격을 받는다. 귀환의 관문에서 초월적인 권능의 소유자는 뒤에 남아야 한다. 영웅은 혼자서 그 무서운 왕국에서 귀환한다. 그가 가져온 전리품(홍익)은 세상을 구원한다. 317

신화는 이 순환 속에 머문다. 그러나 신화는 이 순환을 침묵에 둘러싸인 형태, 순환과 침묵이 서로 삼투하는 형태로 드러낸다. 신화는 존재하는 원자 안팎에 충만해 있는 침묵의 계시록이다. 신화는 고도로 세련된 형식의 작업을 통해 마음과 가슴을, 모든 존재를 채우고 둘러싸고 있는 궁극적인 신비로 향하게 하는 풍향계이다. 339

문제의 숙명적인 아기는 기나긴 암흑의 기간을 견디어야 했다. 이 기간은 극히 위험하고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며, 치욕을 당하는 기간이다. 그는 내부로 깊이, 혹은 미지의 세계인 외부로 던져졌다. 409

영웅이 탄생하는 곳, 혹은 영웅이 도피 또는 추방당했다가 보통 인간들 사이에서 성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오는 머나먼 땅은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배꼽이다. 물결이 물밑의 바닥에 번져나오듯, 우주의 형상도 이 근원에서 둥글게 퍼져나간다. 419

영웅의 행적은 순간의 결정화에 대한 끊임없는 파괴행위다. 이야기는 순환한다. 신화의 초점은 발전하는 단계에 모인다. 변모, 유동성,일치하지 않는 무게는, 살아있는 신의 특징이다. 422

신부의 침대에 드는 전제 조건으로 제시되는 어려운 임무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영웅 신화에도 등장하는 모티브이다. 이러한 패턴의 이야기에서 처녀의 부모는 영웅을 구속하는 족쇄 역할로 등장한다. 431

영웅 모험의 목표가 미지의 아버지를 찾는 것일 때, 여기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상징체계는 시험 및 정체 고백의 상징체계다. 434

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를 십자가에 달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된다 442

신화가 무엇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과거에 어떻게 인간에 봉사해 왔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검토해보면,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관념과 요구에 대해 부응하듯이 신화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478

출생, 세례, 결혼, 취임등의 종족적인 제의는, 개인의 삶의 위기 및 행위를 표준적이고 비개인적 형식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제의는 개인의 정체를 그 자신에게 보여준다. 인격체로서의 개개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사로서, 신부로서, 과부로서, 성직자로서, 추장으로서 개인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제의를 통하여 개인이 속하는 사회는 원형적 무대에서 현인의 가르침을 시현할 수 있다. 479

겨울이 오는 것을 막겠다는 부족적 의식이 전해진 적이 있던가? 오히려 모든 의식은, 자연의 휴식과 더불어 오는 이 혹한의 계절을 견디어낼 수 있도록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준비를 촉구한다. 480

자기 내부에서 탐색되고 또 발견되어야 한다. 성별, 연령별, 직업별 차이는, 우리 인간의 특질상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어느 단계에서 우리가 한동안 입고 있는 옷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부에 있는 인간의 이미지는 의상과 아무 상관도 없다. 481

사회적 참여가 결국에는 개인의 내부에 있는 전체를 깨닫게 하듯이 추방으로 인한 유랑이 영웅을 전체에 내재하는 자아에 이르게 한다. 481

자기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개인의 민주적이상,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계의 발명, 저 유서깊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상징의 우주는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신화라고 하는 꿈의 집은 이제 무너지고 없다. 마음은 깨어 있는 의식 쪽으로만 열려있다. 현대인은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이 현대인은 고대의 무지로부터 빠져 나왔다. 483

오늘날 집단 속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계도 그렇다. 모든 것은 개인에 귀착된다. 그러나 여기서 의미란 완전히 무의식적이다. 인간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은 어떤 동인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의 심성의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의 교류 통로는 단절되고 우리는 둘로 찢기고 말았다. 484

의식은 오늘날 밤의 꿈을 통제할 수도 예언할 수도 없을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상징을 발명할수도, 예언할 수도 없다. 486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할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영웅이다. 488


3.내가 저자라면…

신화학자 조셉캠벨이 신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유사성이다. 문화나 지역, 시대와 환경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신화, 종교는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신화속에서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이고 있다.
내용을 간단히 검토해보면, 모든 영웅신화들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데 영웅은 문화나 시대 지역에 따라 옷이나 얼굴은 달라도 “출발-입문-시련-귀환”에 과정을 거친다.
그에 따르면 영웅은 일상세계 속에 소개되어, 모험의 소명을 받고, 처음에는 결단 내리지 놋한 채 주저하거나 소명을 거부한다. 그러나 정신적 스승의 격려와 도움을 받아 첫 관문을 통과하고 특별한 세계로 진입한다. 그곳에서 영웅은 시험에 들고 협력자와 적대자를 만난다. 그 후 영웅은 동굴 가장 깊은 곳으로 접근하여 두번째 과문을 넘어 시련을 이겨낸다. 영웅은 그 대가로 보상을 받고 일상세계로 귀환하는 길에 오른다. 귀환 중 영웅은 세번째 관문을 건너 부활을 경험하고 그 결과 인격적으로 변모하고 결국 영웅은 일상세계에 널리 이로움을 줄 은혜로운 혜택과 보물인 영약을 가지고 귀환한다.
캠벨은 이 모든 과정을 다양한 신화들을 소개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 신화 속에서의 공통점을 찾도록 안내하고 있다.
결국 캠벨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신화속에서의 영웅들처럼 “우리 자신도 내 속의 영웅을 찾아내기 위한, 즉 나의 본질과, 핵을 찾아내기 위한 탐험을 하고 그 탐험과정에서 겪게되는 시련에 맞서 싸워 마침내 자신만의 영웅을 끄집어 내라”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캠벨은 도와주고 싶었던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화의 내용을 좀더 축약적으로 선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신화를 공부하는 신화학자라면, 그들에게 이 책 한권으로 다양한 신화들을 만나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에게 꽤 유용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나 자신을 비롯 많은 독자들이 신화연구가가 아니고 신화를 통한 자기발견을 꿈꾸조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종횡무진으로 소개된 신화의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오히려 주제를 놓칠 우려가 있어 보인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는 신화, 민담, 전설, 종교에 이르기까지 왜 이렇게 많이 소개했을까?
그것은 혹시 설득력을 높이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ㄱ,렇다면 설득에 합리적인 방식을 택해야 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영웅의 이야기가 허구인지 실재인지 문제삼지 않고 펼쳐 보인다.
물론 신화나 전설이란 것이 논리적이거나 과학적인 것이 아니며 비 이성적인것에 가깝고 의식 보다는 무의식에 가까운 것이어서 설득을 목적으로 쓰이는 소재는 아닐 것이다.
다만 저자의 의도대로 다양한 예를 소개함으로써 이 책의 각 장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었겠지만 독자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하는 의구심과 무엇으로 증명되어질것인가?하는 질문을 꼭 붙잡고 있게 만든다.

물론 이 책이 수많은 신화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우리에게는 하나의 좋은 자료창고가 되어주고 있고 일종의 메뉴역할도 하기 때문에 자기 취향에 맞는 신화를 선택해 더 깊이 들어 갈 있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저자라면 방대하게 펼쳐진 다양한 예들을 조금 줄이고 중복되는 부분은 과감히 줄임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바로 전달 시키겠다. 그래서 독자가 주제를 잃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는 고통을 주여주겠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독자들 스스로 영웅이 되도록 이끄는데 더욱 집중하겠다.

번역본으로서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의 흐름이나 오해의 소지들에 대해서는 여러 번 거론되는 것이기도 하고 이 책이 우리나라에 나온지 벌써 19년이 흘렀음을 감안할 때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내게 이책이 재미를 더한 것은 현대사회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캠벨의 목소리다. 그의 목소리는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는 현대사회에 신화라는 꿈의 집은 이제 무너지고 현대인은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 새벽의 태양이 어마니 밤의 자궁에서 빠져 나오듯 고대의 무지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한다..
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를 십자가에 달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의 균형을 잃지 말고 자신의 내부, 본질 , 핵에 집중하므로 사회를 구현하는 창조적영웅이 필요하며, 그 영웅은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되고 싶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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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14 09:09:36 *.244.220.254
"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를 십자가에 달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된다" 442 멋진 말이 있었군요~ 영혼의 균형이라는 말에 공감!
지난 프리북페어에서 늦게까지 자리 함께하시느라 고생많으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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