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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4일 05시 55분 등록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조셉 캠벨 글/이윤기 옮김/민음사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 조셉 캠벨(1904∼1987)

언어와 문화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여기 외국어를 잘하는 2명의 사람이 있다. 한사람은 국내파이고 한사람은 소위 유학파이다. 두 사람 모두 자유자재의 외국어 소통 실력을 보이고 있다. 이 두 사람이 각각 비즈니스 관련 업무로 외국을 나가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3일 일정의 출장이었는데 마지막 날에 중요한 계약서에 계약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하루, 이틀 그리고 마지막 3일째. 자, 그럼 누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까?

정답은 영업을 잘하는 자이다. 당황스러운가? 키 큰 사람과 뚱뚱한 사람이 싸웠을 때 이기는 사람은 ‘힘센 자’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영업을 잘하는 사람의 전제조건으로 그 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가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계약을 성사시킨 사람은 유학파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문화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어학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체험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하면 더 명확해진다. 문화에 대한 이해는 언어를 잘 알 때 만이 더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조셉 캠벨이 그랬다. 그가 일생을 살면서 배운 언어는 알려진 것만 로망스어, 중세프랑스어, 프로방스어, 라틴어, 산스크리스트, 인도-유럽어족의 언어, 러시아어 그리고 한문일 것이다. 물론 영국어야 당연할 것이고. 왜 그는 이렇게 많은 언어를 공부했을까? 바로 위에서 언급한데로 문화를 알기 위함이었다. 문화를 알아야 그 나라의 신화며, 전설, 동화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그의 비교신화학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쫓아가지 못할 수준이었다.

언어 뿐 아니라 그는 실제로 학문에 대한 욕심도 많아 다양한 학문을 배웠다. 다트리머 칼리지에서는 생물학과 수학을 전공하였으며, 콜롬비아 대학에서는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배웠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아서왕 전설을 연구하여 문학석사학위를 받았고 그 후 프랑스로 유학가서는 로망스어, 중세프랑스어, 프로방스어, 라틴어를 전공하는 한편 뮌헨 대학에서는 다시 산스크리스트,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를 공부하였다. 또한 그곳에서 괴테와 토마스만의 문학과 프로이트와 융의 사상을 섭취했으며 크리슈나무르티의 영향으로 불교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

한마디로 조셉 캠벨은 호기심의 대가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 수많은 학문과 언어 외에 육상과 재즈밴드의 섹스폰까지!! 그의 다재다능함은 끝이 없었다. 아마도 이런 궁극적 초필살 호기심이 없었더라면 그 만의 독특한 비교신화학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선구자의 길은 고난의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셉 캠벨은 그 길을 즐겁고 기쁜 맘으로 걸은 듯 하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특히, 이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는 내내 그의 허밍이 책 사방에서 은은히 울려오는 듯 했다.


- 조셉 캠벨의 저서
≪신의 가면(The Masks of God)≫(전4권) / ≪신화와 함께 살기≫ /
≪신화의 세계≫ / ≪세계의 영웅신화≫ / ≪야생 수거위의 비행≫ /
≪신화 이미지≫ / ≪네가 바로 그것이다≫ /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신화의 힘≫ / ≪신화와 함께 하는 삶≫ / ≪현대인을 위한 신화≫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프롤로그

원질신화

1 신화와 꿈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14P)

신화의 상징은 영혼의 부단한 생산물인데, 이 하나하나의 상징 속에는 그 바탕의 근원적 힘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14P)

제대로 된 일반 신화학은 없어도, 사사롭고 드러내어 인정받지 못한 미성숙단계에 있다 뿐이지, 그래도 우리의 내부에는 속으로 알찬 꿈의 판테온[萬神殿]이 있다. 최신형 오이디포스의 화신, 미녀와 야수의 속편이 오늘 오후에도 뉴욕의 42번가와 50번가 모퉁이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15P)

우리는 이러한 제의의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적 삶의 패턴은 물론, 무의식적 삶의 패턴까지 변화를 요구하는 변형의 문턱을 넘게 하려는 데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22P)

통과 제의(rites of passage : 출생, 명명, 성인, 결혼, 장례 의식 등)는 이런 단계의 마음가짐이나, 애착이나, 생활 패턴으로부터 심적으로 단절된다는 의미에서 형식상으로 특이하고 극히 가혹한 단절의 체험이 되는 경우가 보통이다.(22P)

신화와 제의의 주요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내부에 있는 타락의 길을 버리고 영험적인 정신의 도움을 따르게 하는 우리 내부의 고차원적인 신경증인지도 모르겠다.(23P)

이 비의적 이미지는 우리 심성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ㅣ 때문에, 만일 이 이미지들이 신화와 제의를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지 않으면, 꿈을 통해 내부에 나타나게 된다. 그래야 우리의 에너지가 심해의 바닥이나 진부하고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유아의 놀이방의 동화책에서 풀려날 수 있는 것이다.(24P)

우리의 상징이 인생의 오후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는 반대되는 것으로 전화(轉化)한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시기에 도전해 오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기 때문이다.(25P)

우리는 자궁이라는 이름의 무덤에서 무덤이라는 이름의 자궁까지 완전한 순환 주기를 산다. 그것은, 꿈의 본질처럼 눈앞에서 곧 녹아버릴, 견고한 물질의 세계를 향한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흐름이다.(25P)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29P)

오직 탄생(낡은 것의 새로운 태어남이 아닌, 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죽음의 끈질긴 재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내부에, 사회적인 무리의 내부에 끊임없는 <탄생의 재현 palingenesia>(우리가 이 땅에서 오래 잔존하게 되어 있다면)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갱생하지 않는다면 응보 천벌 여신 Nemesis의 복수 만이 우리가 얻게 되는 승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화는 올가미다. 전쟁은 올가미다. 변화도 올가미이며, 항구 불변성이라는 것도 올가미다.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오면 죽음이 다가 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뿐, 갈가리 해체되었다가 재생하는 길뿐이다.(29P)

우리는 더 높이 솟아야 한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세대, 나아가서는 우리의 문명 시대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얼마간이라도 건져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저 위대한 천품(天品)의 시혜자(施惠者), 시대의 문화영웅(한 나라뿐만이 아닌 세계 역사상의 귀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30P)

꿈은 인격화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 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뚜렷이 제시되는 데 견주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다라 내용이 달라진다.(33P)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그런 사람의 상상력과 이상과 영감은 태고적부터 인간의 생명과 사상의 원천에서 비롯된다.(33P)

대속자들에 의해 아득한 옛날, 인류에게 주어져 수천 년간 계승되어 온, 사회의 상징적 도움이라는 미덕, 통과 제의, 은총으로 입은 성사(聖事)를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다.(37P)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39P)

2 비극과 희극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레오 톨스토이 백작-(39P)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40P)

하늘의 신화가 삶의 발자국을 뒤로 남기고 밤의 문턱에 설 준비가 된 노인의 것이듯, 동화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나라의 것이며, 현실로부터 보호받고 있기는 하나 조만간에 거덜날 운명에 놓여 있다.(42P)

동화, 신화, 그리고 영혼의 신곡에 나오는 해피엔딩은 모순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비극의 초절성(超絶性)으로 읽혀야 한다.(42P)

비극이란 형체의 파편이며 형체에 대한 우리의 애착이다. 희극은, 정복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거칠고, 방만하고, 꺼질 줄 모르는 환희다. 따라서 이 양자는 양자를 서로 보듬고 서로를 엮는, 단일한 신화적 주제와 경험을 나누는 용어다. 비극과 희극은, 삶을 계시하는 전체성을 본질로 공유하며 죄악(신의 의지에 대한 거역)과 죽음(필멸의 형태에의 동화)의 오염으로부터 정화(katharsis, purgatorio)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사랑해야 하는 하강과 상승인 것이다.(43P)

신화와 동화 고유의 사명은, 비극에서 희극에 이르는 어두운 뒤안길에 깔린 특수한 위험과 그 길을 지나는 기술을 드러내는 일이다.(43P)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地上的)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 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44P)

3 영웅과 신

영웅이 치르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궤도는 통과 제의에 나타난 양식, 즉 <분리>, <입문>, <회귀>의 확대판이다. 이 양식은 원질신화 monomyth 의 핵심 nuclear unit라고 할 수 있다. 즉,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45P)

제의, 신화, 그리고 형이상학은 초월적인 조명 가까이까지 인도받는 것은 가능하나 거기에 접근하는 마지막 단계는 개인의 조용한 체험으로써만 가능하다.(48P)

홍수 설화의 영웅은, 대제앙과 죄악이 창궐하는 가운데서도 살아 남는 인간의 근원적 생명력의 상징이다.(52P)

대개 동화 속의 영웅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소우주적 승리를 거두고, 신화의 영웅은 세계사적, 대우주적 승리를 거두는 게 보통이다.(52-53P)

돌이켜보면, 모험적인 여행은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성취하기 위한 노력,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듯하다.(54P)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肉化)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54P)

4 세계의 배꼽

영웅의 성공적인 모험의 의미는, 생명의 흐름을 풀어 다시 한번 세계의 몸 속으로 흘러들게 하는 데 있다. 이 흐름의 기적은 물리적으로 음식물의 순환, 역학적으로는 에너지의 흐름, 영적으로는 은총의 현현(顯現)을 나타내는 듯하다.(55P)

이 분류(奔流)는 보이진 않는 원천, 우주라는 상징적 원의 중심인 입구, 불교에서 말하는 부동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데, 세계는 이곳을 중심으로 순환한다고 일컬어진다. 이 자리 밑에는, 심연의 물을 상징하는 용, 즉 우주적인 뱀의 머리가 있는데, 심연은 물은 생명을 창조하는 신적인 에너지이며, 불멸하는 존재의 세계 형성자인 데미우로고스(造物主)다. 생명나무, 즉 우주 자체는 바로 이곳에서 자라난다.(58P)

신의 화신으로서의 영웅은, 영원의 에너지가 시간성 안으로 흘러드는 배꼽, 즉 세계의 배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의 배꼽은 연속적인 창조의 상징, 모든 사물 안에서 약동하는 소생의 연속적인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세계 보존의 신비인 것이다.(58P)

태양은 희생 제물로 풍성한, 끊임없이 새 음식으로 가득 차는 신의 쟁반이고, 신의 살은 고기며, 신의 피는 마실 것이다. 동시에 신은 인간에 대한 자양의 공급자다.(60P)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60P)

한 문화가 신화 안에서 인간 존재의 면면이나 그 문화의 면면을 키워나갈 때, 그 문화는 상징적인 암시와 함께 싱싱하게 살아난다.(60P)

닮지 않은 것이 상합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 생겨난다. -헤라클레이토스- (62P)


● 제1부 영웅의 모험

1 출발 Departure

1 영웅에의 소명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부지 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이 주름의 골은 매우 깊다. 영혼 그 자체만큼이나 깊다.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71P)

크든 작든, 삶의 단계나 정도가 어디에 이르러 있든, 이러한 소명은 언제나 변용의 신비 mystery of transfiguration, 완성되면 곧 죽음과 탄생에 이르는, 정신적 통과 의례 혹은 순간을 개막한다. 지금까지의 삶의 지평은 이제 너무 웃자라, 낡은 개념과 정서 패턴은 몸에 맞지 않는다. 바야흐로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72P)

프로이트는, 불안한 순간은 어머니로부터 분리될 때의 고통(탄생하는 순간의 숨이 막히고, 피가 응어리지는 등의)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거꾸로 말하면, 분리와 탄생의 순간은 불안을 야기시킨다.(73P)

이 신화적 여행의 첫 단계(우리는 이를 <모험에의 소명>으로 불렀다)는, 운명이 영웅을 불렀고, 영웅의 영적 중심이 그가 속한 사회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졌음을 암시하고 있다.(80P)

2 소명의 거부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타성이나, 힘에 겨운 일, 혹은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 심장한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이다.(81P)

개인이 자기 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하면 신의 의지, 즉 자신의 자기 중심적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신 자신은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82P)

실제로 고의적인 내향성은 창조적인 정신의 고전적인 방편 중의 하나이고, 이를 효율적인 장치로 응용할 수도 있다. 이 방편은 심적 에너지를 심층으로 몰아 무의식적 유아기의 이미지 및 원형적 심상이라는 잃어버린 대륙을 활성화시킨다.(87P)

인격이 이 새로운 힘을 흡수하고 통합할 수 있으면 당사자는 자기 의식의 초인간적인 단계 및 완전한 통제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인도 요가 수련의 기본적인 원리다.(87P)

3 초자연적인 조력

영웅이 빠져드는 환각은 곧 안식처이며, 낙원의 평화에 대한 약속이다. 모태 안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이 낙원의 평화에 대한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 약속은 현재를 지탱케 하고 과거와 미래까지 주관한다(따라서 알파이자 오메가다).(96P)

모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인다.(96P)

4 첫 관문의 통과

태양 문을 통하여 번제의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120P)

5 고래의 배

마법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곧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관념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래의 배라는 자궁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120P)

여기서는 영웅이 외부로의 관문, 즉 가시적 세계의 한계를 넘는 대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이 들어감은 신도가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일치한다. 신도는 이 신전 안에서, 자신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티끌에 불과하다는 자기 정체를 깨닫게 된다.(123P)

신전으로 들어가는 것과, 고래의 입을 향한 영웅의 돌진은 같은 모험인 셈이다. 즉 회화적 언어로 말하면 둘 다 생의 구심화 행위, 거듭나는 행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123P)

아난다 쿠마라스와미 박사는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체든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수 없다>고 썼다.(124P)

자아에의 집착을 끊은 영웅은 왕이 자기 궁궐에서 방방을 드나들 듯이, 삶의 지평을 넘나들거나 용의 뱃속을 드나들 수 있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124P)


2 입문 Initiation

1 시련의 길

일단 관문을 통과한 영웅은 기묘할 정도로 유동적이고, 모호한 형태로 이루어진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웅은 이곳에서 거듭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지 않으면 안된다. 신화와 모험에서 가장 흥미롭게 다루는 부분도 바로 이 국면이다. 이 국면은, 기적적인 시험과 시련을 다룬 세계의 문학을 창출해 왔다.(128P)

<주술사>란, 이러한 유아적 놀이를 주도하고, 공통의 근심거리를 밝혀내는 지도자인 것이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방에서 성공하고 현실적인 어려움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잡귀와 대리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133P)

신이든 여신이든, 남자든 여자든, 신화의 등장인물이든 꿈을 꾸는 사람이든 영웅은 적대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써 이 적대자(뜻밖에도 그 자신의 자아)를 동화시킨다. 하나씩 하나씩 장애는 차례로 사라진다.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143P)

시련은 첫 관문의 문제를 심화시키고 질문은 여전히 미제로 남는다. 자아가 스스로를 죽음에 내어맡길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왜 그런가 하면, 주위에 있는 것은 머리가 많은 휘드라(水蛇)이기 때문이다.(143P)

2 여신과의 만남

잠자는 여성은 미인의 본보기 중의 본보기이며, 모든 욕망에 대한 응답, 모든 영웅의 지상적, 비지상적 모험의 은혜로운 최종 목표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며, 누이며, 애인이며, 신부이기도 하다. 세상에 유혹하는 것, 기쁨을 약속해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잠자는 여성이 지향하는 존재의 예조(豫兆)에 해당한다.(145P)

그녀의 존재가 바로 완전성이라는 약속의 화신이며, 조직화된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오랜 방황을 끝낸 영혼의 안식이며, 한때 인류가 맛보았다가 언젠가 다시 맛볼 은혜이기 때문이며, 위안과 자양, 그리고 우리가 아득한 옛날에 그 사랑을 받던 <좋은>어머니(젊고 아름다운)이기 때문이다. 세월은 우리와 그녀의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그녀는 영원한 잠에 빠져든 미녀처럼, 아직 우리의 속 영원의 바다 밑바닥에 거하고 있는 것이다.(148P)

만유의 어머니의 신화적 표상은 우주에 대해, 그 우주의 존재를 윤택하게 하고 지켜주는 최초의 여성적 속성을 부여한다. 환상이란 원래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에 대한 어린아이, 주위의 물질 세계에 대한 성인의 자세에는 밀접하고도 노골적인 상응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150P)

여신은 자궁이며, 무덤이며, 제 새끼를 먹는 돼지다. 이렇게 해서 여신은, 개인적인 어머니는 물론 우주적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두 유형을 드러내면서 <선>과 <악>을 통합한다. 연신의 숭배자는 이 두 유형의 어머니를 똑같이 조용히 묵상해야 한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숭배자의 정신은 유치하고, 어울리지 않는 감상과 증오로부터 스스로를 정화하고, 유치한 인간이 자신의 행, 불행에 연결지어 멋대로 가른 <선>과 <악> 따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본성의 법(法)과 상(像)으로 존재하는 불가해한 실재를 향해 그 마음을 열게 된다.(152P)

이 여신은 다름아닌, 절대 절멸의 공포와, 비인격적이지만 모성적인 평화를 하나로 조화시키는 우주적인 권능, 우주의 전체성, 대립물의 조화였다. 시간의 강이 사람의 흐름으로 바뀌면 여신은 순식간에 창조하고, 보존하고, 파괴한다. 이 여신의 이름은 <검은 존재 the Black One>, 즉 칼리 Kali다. 별명은, <존재의 바다를 건네주는 나룻배>다.(152P)

신화학의 심상 언어에서 여자는, 알려질 수 있는 것들의 전체성으로 표상된다. 알게 되는 존재가 곧 영웅이다. 영웅이 삶의 다른 형태인 입문의 과정을 진행함에 따라 여신의 형상은 그에게 일련의 변형과정을 체험하게 한다. (153P)

여성은 감각적인 모험의 정점으로 영웅을 인도하는 안내자다.(153P)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에서가 아닌, 여신이 바라는 친절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그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화신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154P)

왕도란 싸움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지 않고는 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왕의 그릇은, 무슨 일이 있든지 이를 이기고 왕도를 가는 것입니다(156P)

여신(모든 여성에게 현현되는)과의 만남은 사랑의 은혜(자비, 즉 운명에의 사랑)를 얻기 위해 영웅이 맞는 마지막 재능의 시험 단계다. 이 사랑의 은혜는 바로 우리 삶이 누리는 영원성의 그릇과 같은 것이다.(157P)

3 유혹자로서의 여성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삶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 즉 여성이 곧 삶인데, 영웅은 이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웅의 궁극적인 체험과 행위의 예비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의 시련은, 자각의 위기를 상징한다. 이 자각의 위기를 통해 영웅의 의식은 증폭되고, 어머니 상의 파괴자, 즉 천생연분의 신부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시련을 받는 당사자는 자기와 아버지가 동일하다는 사실과, 자기가 곧 아버지의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159P)

우리는 이 일반적인 유형과의 비교에서 우리 자신의 입장을 밝혀내야 하고 이것을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는 제약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데 필요한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 도깨비란 대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도깨비들이란, 자기 인간성의 미해결 수수께끼가 투영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상(理想)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개인이 자기 삶을 파악하는 징후인 것이다.(160P)

우리는, 마귀의 무대이며 마귀의 목표이기도 한 이 땅, 시온을 향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귀가 도둑 무리와 은거하고 있는 이 땅의 초라한 나그네다.(166P)

4 아버지와의 화해

창조와 파괴의 역동성은, 팔의 흔들림과 천천히 구르는 오른 발꿈치의 리듬으로 상징된다. 이것은, 모든 사상(事象)의 중심은 항상 고요하다는 것을 뜻한다.(169P)

삶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배우고, 은둔의 명상을 통해 깨친 실체는, 보편적이고 비이원적(非二元的)인 존재-의식-행복이라는 동일한 실체의 두 가지 측면이기 때문이다.(169P)

아버지의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피해자의 에고가 투영된 것이다. 즉 지난날 존재했던 예민한 유아기의 장면이 전면으로 투사됨으로써 나타난 것이다.(170P)


<화해 atonment>, 즉 <하나되기 at-one-ment>란 스스로 만들어낸 두 마리의 괴물(신(초자아)으로 보이는 용과 죄악(억압된 이드))으로 보이는 용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자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이게 예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사자는 아버지가 자비로우며, 이 자비를 믿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믿음의 중심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신의 족쇄바깥으로 이동하고, 믿음의 중심이 이동하면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사라진다.(171P)

자식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이 부모의 이야기는, 입문이 잘못되었을 때 입문자의 삶에는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다.(177P)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서 미래 세계의 상징이요, 딸에게 있어서는 미래 남편의 상징이다. 알든 모르든, 그리고 사회의 지위가 어떻든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더 넓은 세계로 나갈 때 마땅히 거쳐가는 입문식의 사제다.(177P)

아들은 세계를 섭렵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삼고 딸은 섭렵된 세계 자체가 되는데 있어서 어머니를 경쟁자로 삼는 것이다.(178P)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입문의 영광을 입는 자는, 자기 인간성을 모두 박탈당하고, 비개인적인 우주적 힘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 그는 이제 거듭난 자이며, 그 자신이 곧 아버지다. 그는 끊임없이 삶의 싸움판에 나서야 하고 입문의 사제, 안내자, 태양을 향한 문 노릇을 해야 한다. 요컨대, 선악에 대한 유아기 환상을 떨치고, 희망과 공포에서 놓여나 평화롭게 존재의 계시를 이해하고 우주 법칙을 엄숙하게 경험하는 세계로 들어 갈 수 있도록 입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178P)

이런 식으로 그들은 위대한 아버지 뱀의 몸 <안에서> 어머니를 잃는 대신에 그 보상으로 얻게 될 새로운 세상을 소개받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 상상의 중심(즉 세계의 축)에다 젖가슴 이미지 대신 남근을 세운다. 이 기나긴 일련의 의식에서 절정을 이루는 것은 할례 집도자의 무시무시하고 고통스러운 공격을 통하여 남근을 그 포피로부터 해방시키는 대목이다.(180P)

우리 문화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소위 <원시 문화> 중 자생적(自生的)인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원시 문화란, 전혀 다른 지역에서, 대개는 그리 단순하지 않은 풍토 그리고 다른 종족에 의해 발전한 풍습이 어느 지역에서 채용, 변질, 형식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184P)

창조의 역설, 영원으로부터의 시간이라는 양식의 도래는 아버지가 지니는 근원적인 비밀이다. 이것은 설명될 수가 없다. 따라서 모든 신학 체계에는 배꼽, 즉 어머니인 생명의 손가락이 닿았던, 끝내 아무도 알 수 없는 아킬레우스 건이 있는 법이다. 영웅이란, 정확하게 그곳을 뚫고 들어가, 그의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192P)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엄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약점)을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192P)

5 신격화 Apotheosis

부처 자신처럼, 이 신과 같은 존재는 인간적인 영웅이 마지막 무지의 공포를 초월하고 획득하는 신적인 상태의 한 본보기다. <의식의 외피가 벗겨져 나가, 모든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고 변화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 상태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해 있는 해탈의 상태이며, 영웅들이 됨으로써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상태다. 즉, <만물에는 불성(佛性)이 있으니>, <일체의 존재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196-197P)

보살은, 불성의 경계에 든 귀인이다. 소승 불교의 견해에 따르면, 환생하면 부처가 될 대성(大聖)이고, 대승 불교의 견해에 따르면, 우주적인 대자 대비의 원리를 표상하는 일종의 구세주다. 산스크리트어의 <보살 bodhisattva>은 <존재의 본질이 정각에 이른 자>란 뜻이다.(196P)

관음은 범인(凡人)과 현자에게 두루 신성한 존재다. 왜냐하면 관음이 세운 맹세에는, 세상을 구제하고 세상을 버티는 심오한 직관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198P)

어머니와 누리던 유아기라는 아이의 낙원에 침입한 아버지는 원형적인 것이다. 이때부터 아이에게 있어서 평생토록 모든 적은 아버지(에 대한 무으이식)를 상징한다. 그래서 <살해당한 것은 모든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204P)

<증오는 증오로 해소되지 않는다. 증오는 사랑으로 해소되는데 이는 고대의 진리다.>(205P)

전문 성직자들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구세주의 십자가는 한 국가의 깃발이라기보다는 민주적인 상징이다.(208P)

<신은 각기 다른 신도, 시대, 국가에 맞추느라고 서로 다른 종교를 만들었다. 그 교리에는 여러 가지의 길이 있다. 그러나 길은 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심 전력으로 어느 길이든 따라가면 누구든 신에 이를 수 있다> -라마크리슈나-(208P)

무한한 사랑이며, 전능한 보살인 관세음이 지각 있는 모든 존재를 포용하고, 굽어보고, 또 그 존재 안에 거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마음 안에는 평화가 있다.(210P)

우리는 모두 보살 이미지의 그림자다. 우리 내부의 고통은 바로 저 신적인 존재다. 우리와 저 보호자인 아버지는 한몸이다. 이것은 구원의 통찰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우리 보호자인 아버지다. 도깨비는 우리 기를 꺽지만, 유능한 후보자인 영웅은 <사나이답게> 입문한다. 보라, 그 도깨비가 바로 아버지였다. 우리는 그의 안에 있고, 그는 우리 안에 있다.(211P)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새 생명, 새로운 탄생, 새로운 존재의 지식이(따라서 우리는 이 몸만으로 사는게 아니고, 보살처럼 모든 몸, 세상의 모든 육신으로 산다) 우리에게 주어졌다. 저 아버지가 바로 어머니, 즉 재생의 자궁이었던 것이다.(211P)

<30년간 위대한 신은 나의 거울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내 거울이다. 말하자면 예전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고 위대한 신은 그 자신의 거울이다. 요컨대 나는 나 자신의 거울이다. 신이 내 입으로 말하고 나는 사라졌기 때문이다.>(211P)

보살에 대한 첫 번째 경이로움은 바로 이것, 즉 보살이라는 존재의 양성구유적 성격이다. 이 보살과 만남으로써 분명히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 서로 만난다.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란 여신과의 만남,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다.(213P)

보살 신화에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경이로움은, 보살이 삶과, 삶으로부터 해탈의 차이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보살이 열반 Nivrvana을 단념한다는 사실로 상징되고 있다. 열반이란 말은,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이라는 세 겹의 불(三毒)을 끈다>는 뜻이다.(213P)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적으로 빗나간 욕망과 적의 때문에 비현실적인 공포와 애증의 이중 감정에 시달리는 환자를 치료해 주는 기술이다.(214P)

종교적인 가르침의 목적은 개인을 일반적인 미망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 아니라 그 미망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다. 종교는 욕망, <에로스 Eros>와 적의, 즉 <죽음 Thanatos>를 바로잡는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저 유명한 불교의 팔정도(八正道)의 가르침에 따라 충동을 뿌리째 <꺼버리는> 방법을 통해서 그 목적을 달성한다.(215P)

<형상(色)은 빈 것(空)이며, 빈 것은 즉 형상이다. 빈 것은 형상과 다르지 않고 형상은 빈 것과 다르지 않다. 형상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빈 것이며, 빈 것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형상이다. 관념, 이름, 개념 그리고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216P)

세상으로부터의 출발은 오류가 아니라 여행의 첫 출발이다. 이 먼 여로에서, 우주 순환의 심오한 적멸을 깨치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217P)

절대의 마음으로 만유 안에 있는 나를 우러러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속의 삶이 어떠하든 신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217P)

영원한 생명이 그들 안에 깃들여 있음을 알 뿐만 아니라 그들과 만물이 사실은 영원한 생명임을 아는 사람은 소원을 성취시키는 나무 숲에 거하며 불사의 영주(靈酒)를 마시고, 들리지 않는 도처의 영원한 화음을 듣는다. 이들을 일러 신선 Immortality이라고 한다.(218P)

신적인 차원의 언어로 일컬을 때 시간의 세계란 곧 위대한 어머니의 자궁이다. 아버지에 의해 끼쳐진 생명은 그 안에서 어머니의 어둠과 아버지의 빛으로 합성된다.(223P)

현명한 자는 그 자궁 속에서도,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와서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있음을 안다. 그보다 더 현명한 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의 본체 안에 있다는 것까지 안다.(223P)

어쩌면 남성상은 입문의 원리와 방법의 상징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경우 여성상은 입문 의식의 목적이 된다.(223P)

6 홍익

<천상적인 것이 도(道)다. 도는 영원이다. 여기에 이르면 육체가 썩는 것도 두려워할 바 아니다.>(248P)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249P)


3 귀환 Return

1 귀환의 거부

원질신하의 규준인 완전한 순환 체계는 영웅에게 지혜의 시문, 황금 양털, 혹은 잠자는 미녀를 인간의 왕국으로 데려오는 또 한번의 수고를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 이 은혜가 사회, 국가, 그 천체, 아니면 일만 세계를 재생시키는 데 환원될 것이기 때문이다.(253P)

2 불가사의한 탈출

두 세계의 상호 관계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사소한 실수, 즉 인간의 약점이라는, 사소하나 치명적인 증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소한 일만 피하면,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갈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269P)

3 외부로부터의 구조

신은 만물에 내재하기 때문에, 부엌의 냄비나 접시에서 천황에 이르기까지 만상은 신으로 여겨져야 마땅하다는 것, 이것이 신도(神道), 곧 <신의 길>이다.(276P)

4 귀환 관문의 통과

영웅의 귀환은, 그 저승에서의 귀환을 말한다.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281P)

5 두 세계의 스승

신화는, 이미 변모한 신비의 형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굳혀 내보이지는 않는다. 이 경우 변모의 순간은, 마땅히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고구되어야 할 귀중한 상징인 것이다.(297P)

상징이란 의미 소통의 <수레>에 불과하다. 상징은, 그 언급하는 바의 궁극적인 의미, 즉 <진로>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305P)

<베다(經典)를 공부한다 하더라도, 무서운 고행을 한다 하더라도, 보시(布施)를 행한다 하더라도, 또 의식을 행한다 하더라도 네가 본 나의 이 최고의 모습은 볼 수 없느니라. 그러나 오직 믿는 마음이면 나를 알 수 있고 참답게 볼 수 있으며 내게 들어와 하나가 될 수 있느니라.>(305-506P)

예수는 똑같은 것을 훨씬 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나를 위해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다.>(306P)

<때로는 바보로, 때로는 현자로, 때로는 왕관에 미친 자로, 때로는 방랑자로, 때로는 예언자처럼 부동(不動)하는 존재로, 때로는 자비로운 얼굴로, 때로는 귀인(貴人)으로, 때로는 폐덕자로, 때로는 무명인으로…… 깨달은 자는 이런 상태에서도 지복의 극락을 산다. 무대 의상을 입고 있든, 벗고 있든 배우는 배우 이전의 그 자신이듯이, 불멸의 지혜를 깨친 자는 늘 그 불멸의 경지 안에 거한다.(307P)

6 삶의 자유

영웅이 지닌 전장은, 도믄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의 희생으로 삶을 영위하는 삶의 현장을 상징한다. 자기 삶을 영위하려면 죄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구역질 나는 것이다.(307P)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混在)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207-308P)

영원의 원리 안에서 집착하지 않는 이승 세계의 인간이 만일 자기 행위의 결과에 초연해하고, 이를 살아 있는 신의 무릎에다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는 이 제물에 의해 죽음의 고해에서 풀려날 수 있다.(308P)

영웅은 생성죈 것의 투사(鬪士)가 아니라, 생성되는 것의 투사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 존재하기 때문이다.(313P)

<원래의 형태를 보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위대한 재생의 손길인 자연은 부단하게 형상에서 형상을 만들어나간다. 온 우주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라. 오직 변화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생될 뿐인 것이다.>(313P)


4 열쇠 The keys

이러한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리려면, 이를 현대의 문제에 적용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살아 숨쉬던 과거의 형태로부터 암시를 읽어내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만이 빈사 상태에 빠진 성화(聖畵)는 그 영원히 인간적인 의미를 다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320P)



● 제2부 우주 발생적 순환

1 유출 Emanations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신화 체계란, 전기나 역사, 그리고 우주론으로 오독(誤讀)되어온 심리학이다.(326P)

우리에게 전승된 신화학적 표상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우리는 이러한 표상들이 무의식의 징후(사실은 모든 인간의 생각과 행동)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정신적 원리의 통제되고 의도된 진술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적 원리는 인간의 육체의 형태 및 신경 구조처럼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인류에 유전된 것이다. 간단하게 공식화된 이 보편적인 교리는, 이 세계의 가시적인 모든 구성물(사물과 존재)은 편재하는 힘에 의한 결과라고 가르친다. 즉 이 힘은 모든 구성물의 생성 원리이고, 그들이 이 세상에 현현해 있을 동안 그들을 지탱하고, 그들을 채우며, 궁극적으로 그들이 돌아갈 귀소(歸巢)라는 것이다.(327P)

신화는 부수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현상계 저쪽 세계(공(空), 혹은 범주를 초월한 존재)로 들어가 적멸에 드는 것이다.(330P)

말하자면 신들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을 깨우며, 우리 마음을 겨냥할 상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331P)

구원은 초의식으로의 귀환과, 이에 따른 세상의 소멸에 있다. 이것은 우주 발생적 순환, 세계 현현의 신화적 이미지, 그리고 비현현 상태로의 회귀를 나타내는 중요한 테마 및 공식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탄생, 삶, 죽음은 무의식으로의 하강 및 회귀로 볼 수 있다. 영웅은, 살아 있을 동안에, 창조 과정 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 자다.(331P)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낸다. 이 순간은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 있는 죽음의 어두운 벽 너머의 빛의 길을 발견하고, 이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332P)

신은 인간의 삶을 떠맡고, 인간은, <대립물이 합일하는> 순간, 즉 신과 인간이 서로의 먹이로 각각 하강하고 상승하는 길목으로서의 태양의 문턱에서 만나는 순간에, 제 내부에 있는 신을 방면한다.(332P)

2 우주의 순환

신이란, 이 흐름을 통제하는 법칙의 상징적 구현체(具現體)다.

우주 발생적 순환은 우주 자체의 반복, 즉 끝없는 세계로 표상된다. 각 순환의 주기 안에는 소멸의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333P)

우주 발생적 순환은, 비현현의 숙면 영역에서 비롯, 꿈을 통하여 깨어나 있는 대낮, 그리고 다시 꿈을 통하여 시간을 초월한 어둠에 이르는 보편적 의식의 통로로 이해되어야 한다.(339P)

신화는, 존재하는 원자 안팎에 충만해 있는 침묵의 계시록이다. 신화는, 고도로 세련된 형상화 작업을 통하여 마음과 가슴을, 모든 존재를 채우고 둘러싸고 있는 궁극적 신비로 향하게 하는 풍향계다.(340P)

3 허공에서 --- 공간

<우주의 끝을 헤어리고, 그 끝이 곧 시작임을 아는 자라야 현자라고 불릴 만하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342P)

모든 신화 체계의 기본 원리는, 끝과 시작이 함께 한다는 바로 이 원리다. 창조 신화는,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모태가 된 불멸의 존재와 닿아 있음을 상기시키는 파멸 의식과 함께 고루 퍼져 있다.(342P)

4 공간의 내부에서 --- 생명

우주 발생적 유출 Emanations의 첫 번째 결과는 이승적 단계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고, 두 번째 결과는 이 틀 속에서 생명이 지어졌다는 것이다. 즉 생명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원적 형태 아래 자가 생산을 위해 양극화했다는 것이다.(348P)

<공간은 넓게 펼쳐진 것이 아닌, 오목한 형상으로 끝이 없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무한 위로 떠 있는 껍질이다.>(353P)

남녀간의 사랑의 신비에 따르면, 애정의 궁극적인 경험은 곧 이원성이라는 환상의 배후에 <둘은 곧 하나>라는 등식의 깨달음이 있다. 이 자각은, 우주의 만상(인간, 동물, 식물, 심지어는 광물까지도)은 하나라는 자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애정의 체험은 우주적 체험으로 확산되고, 이 자각에 이르게 한 애인은 창조의 거울로 확대된다.(357P)


2 처녀 잉태 The virgin birth

1 어머니 우주

다소 추상적으로 이해하자면, 이 세계의 어머니는 세계의 경계를 이루는 틀, 즉 우주적 알의 껍질인 <공간, 시간, 그리고 인과>다. 조금 더 추상적으로 말하면, 그녀는 자가번식하는 절대자를 움직여 창조의 행위를 유발하는 유혹자인 것이다.(374P)


3 영웅의 변모 Transformations of the Hero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영웅은 점차 우화적인 성격을 일탈하다가 다양한 지방적 전승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마침내 전설은, 기록되는 시대라는 빛의 세례를 받게 된다.(397P)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방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내재적인 신성(神性)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400P)

3 전사로서의 영웅

영웅의 행적은 순간의 결정화에 대한 끊임없는 파괴 행위다. 이야기는 순환한다. 신화의 초점은 발전하는 단계에 모인다. 변모, 유동성, 일정하지 않는 무게는, 살아 있는 신의 특징이다. 한 시대의 위대한 형상은 부서지고, 토막나고, 이윽고 흩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요컨대 도깨비-폭군은 불길한 사상(事象)의 옹호자이며, 영웅은 창조적인 삶의 옹호자다.(422P)

4 애인으로서의 영웅

영웅이 세계의 군주라며, 처녀는 세계이며, 영웅이 전사라면 처녀는 명예다. 처녀는, 영웅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영웅 자신의 운명의 이미지다.(428P)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행동하는 영웅은 우주 순화의 주체이며 처음으로 이 세계를 움직였던 추진력을 생생한 사건을 우리에게 들려준다.(432P)

최고의 영웅이란 우주 발생적 순환의 원동력을 추진시키는 영웅이 아니라, 눈을 다시 뜨고서 오고 가며 기쁨과 고뇌가 교차되는 세계의 파노라마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깨치는 영웅이다.(432P)

6 구세주로서의 영웅

「모두들 슬퍼하지 말아요. 죽지 않고 영생하는 인간은 있을 수 없어요.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부터가 틀린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생과 사의 끝없는 순환일 뿐입니다」(440P)

영웅이 변화를 가져오듯이, 무섭고 잔인한 폭군은 한 가지 편견에 고착된 인간을 표상한다.(441P)

영웅의 임무는, 아버지(용, 시험자, 무섭고 잔인한 왕)의 부정적인 측면을 살해하고, 우주의 자양이 될 생명의 에너지를 그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441P)

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를 십자가에 달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된다.(442P)


7 성자로서의 영웅
8 영웅의 죽음

죽음에 겁을 먹는다면 그 영웅은 영웅이 아니다.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445P)


4 소멸 Dissolutions

1 소우주의 끝

놀랄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거울에 비추어볼 수 잇는 육체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에 내재하는 왕으로서다.(458P)

2 대우주의 끝

그러나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만이 아신다……(473P)


●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1 변신 자재자

신화 체계의 정의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 -프레이저-

후세에 오인되고 있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 -뮐러-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 -뒤르켐-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 -융-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 -쿠마라스와미-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 -교회-

2 신화, 제의(祭儀), 명상의 기능

출생, 세례, 결혼, 장례, 취임 등의 종족적인 제의는, 개인의 삶의 위기 및 행위를 표준적이고 비개인적 형식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479P)

사회라는 단위에서 볼 때 그 단위에서 단절된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쓰레기다. 남자든 여자든,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성직자든, 매춘부든, 여왕이든, 노예든)에 충실했다고 고백할 수 잇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동사를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480P)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 추방은, 탐색 모험의 첫 단계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이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길은 자기 내부에서 탐색되고 또 발견되어야 한다.(481P)

목표는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즉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482P)

3 오늘날의 영웅

신화라고 하는 꿈의 집은 이제 무너지고 없다. 마음은 깨어 있는 의식 쪽으로만 열려 있다. 현대인은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 새벽의 태양이 어머니 밤의 자궁을 빠져 나오듯이, 현대인은 고대의 무지로부터 빠져 나왔다.(484P)

세속적인 국가의 보편적인 승리는 모든 종교 조직을 부수적인, 필경은 무익한 위치로 끌어내려, 오늘날에는 종교적 무언극이 일요일 아침에 벌이는, 경건한 체하는 종교 놀음에서 더도 덜도 아니게 되고 말았다.(485P)

니체는 <그날이 도래한 듯이 살라>고 하고 있다.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있을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488P)



3. ‘내가 저자라면’

이번이 조셉 캠벨의 3번째 책이다. 3월초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 4월초 「신화의 세계(Transformations of Myth Through Time)」에 이은 3번째 책이었다. 앞선 2권의 책이 대담과 강연을 묶은 기획도서라 한다면 이 책이야말로 비로소 조셉 캠벨 자신이 스스로 집필한 책이라는 점에서 다른 점이라 하겠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앞에서 느꼈던 조셉 캠벨의 이미지가 다소 바뀌어 졌는데, 그 중 가장 큰 부분이 바로 ‘불친절한’ 이미지에서 ‘친절한’ 이미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친절한 몇가지를 뽑아 보았다.

첫째, 깔끔한 목차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머리말
프롤로그 원질신화
1,2,3,4

제1부 영웅의 모험
제1장 출발
1,2,3,4,5
제2장 입문
1,2,3,4,5,6
제3장 귀환
1,2,3,4,5,6
제4장 열쇠

제2부 우주 발생적 순환
제1장 유출
1,2,3,4,5,6
제2장 처녀의 잉태
1,2,3,4
제3장 영웅의 변모
1,2,3,4,5,6,7,8
제4장 소멸
1,2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1,2,3

역자후기
찾아보기


전체적인 구성상 흐름이 상당히 균형잡혀 있을뿐더러 알차게 되어 있다. 고로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을 때 방향을 잡고 읽어 나갈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또한 영웅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배경이 되는 우주의 순환과 사회내에서의 영웅의 위치까지, 등 긁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먼저 가려운 곳부터 시작하여 등 전체로 확산시켜 시원하게 긁어주는 그런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책 중간에 다시한번 천천히 목차와 간단한 내용에 대하여 길잡이를 해주고 있다. 친절함엔 지나침이 없다. 단, 인쇄상 오자(誤字)이긴 하겠지만 목차에서 제2부의 제목인 ‘우주 발생적 순환‘을 ‘영웅의 모험’으로 잘못 집어 넣은 것은 애교수준이라 하겠다.

둘째, 구성의 깔끔함도 모자라 중간에 도표를 삽입하여 「영웅의 모험도」를 친히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불친절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는데 이 도표는 그 이미지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시원한 쐐기 홈런이었다.

셋째, 중간중간의 신화, 동화, 민화, 전설, 학술서, 역사서 등 수많은 이야기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의 내용은 분명 인문철학, 심리학 방면에 어느 정도의 상식이 있지 않는 한 다소 어렵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원천은 세계 각국, 각 시대별, 문화별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의 예제 덕분이라 하겠다. 특히 동화까지 예로써 활용한 것은 그의 사고가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게다가 긴 이야기의 경우 목차의 주제에 맞추어 재편집한 정성은 나를 감동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페이지의 아래쪽에 자리잡은 해설은 참고문헌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라 별도의 추가해설을 달아놓아 본문과는 다른 별도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정리해 놓았다. 이를 통해 좀 더 넓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새로운 관점으로 본문을 고려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다른 책보다 좀 더 자세하게 정리된 해설은 조셉 캠벨이 이 책을 쓰는 데 있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 지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상과 같은 점만 보아도 조셉 캠벨이 얼마나 친절한 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친절한 캠벨형아’로 불러도 될 듯 싶다. 무덤에서 허락만 하신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정도 아쉬움이 있다. 신화, 동화, 전설, 민화 등 갖가지 이야기들이 본문과 함께 계속 같은 글자체로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 본문과 이야기의 구별이 안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였다. 또한 나중에 그 이야기를 찾는데 있어(물론 찾아보기가 뒤에 있긴 하지만) 약간의 애로점이 있었다. 개선을 위하여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다른 글자체를 집어넣어 구별이 용이하게 했으면 하고, 추후 찾아보기의 용이함을 위해서는 이야기마다 위 또는 아래부분에 간단한 제목을 넣었으면 좋겠다. 가령 예를 들자면 [여신 이난나 이야기](수메르신화) 처럼 말이다.

캠벨은 머리말에서 이 책의 목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세계 각국의 영웅과 관련된 모든 신화, 동화, 옛 이야기, 꿈, 전설, 민화 등을 통해 인간의 집단이 그려낸 영웅신화, 특히 공통적, 근원적이 되는 하나의 영웅을 찾고 있다. 이 책은 그것에 대한 결과물이고 수많은 실험과 탐험을 통해 이루어낸 성과물이다. 1949년에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세계에서 읽혀지고 있고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캠벨의 책이 종교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근원적 진리를 추구하는데 어느정도 성공했다 할 수 있겠다. 학문적 열정과 끝없는 호기심으로 이런 대작을 만들어 낸 캠벨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IP *.178.3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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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14 09:21:32 *.244.220.254
'친절한 캠벨 형아'의 모습을 보이다가, 다른 면에서는 시련을 주는 캠벨 괴물의 원형을 봅니다. 책 꼼꼼하게 읽으신 것 같습니다. 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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