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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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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31일 23시 46분 등록
 

북리뷰21-동방견문록


1. 저자에 대하여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1.8)는 누구인가?


중국 원나라 때에는 상업이 발달해 다른 나라와 교역이 많았다. 따라서 많은 외국인이 중국을 방문했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사람이 마르코 폴로였다. 그는 1275~1291년에 중국에 17년 동안 머물렀다. 이 기간은 쿠빌라이가 중국을 다스리던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의 중요한 사신으로서 중국 전역을 다녔고 대도시를 다스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했다,

1254년에 마르코 폴로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명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전에 아버지 니콜로 폴로와 숙부 마패오 폴로는 동방무역을 위해 베네치아를 떠났기 때문에 그들은 마르코 폴로의 출생을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여행 중에 쿠빌라이를 만나 그의 특명을 받고 로마의 교황을 만나기 위해 지중해 연안의 아크레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교황이 사망해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기를 기다려야했는데, 교황 선출이 늦어지자 1269년에 두 형제는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그때 처음 니콜로는 아내는 죽고 자신에게 열다섯 살의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르코 폴로가 성장한 15년의 가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부모가 없는 처지에 거의 고아처럼 어렵게 생활했으며, 정규교육을 받기 어려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도 직접 쓰지 않고 제3자에게 구술해 받아쓴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폴로 형제는 베네치아에서 2년 정도 머물다 여전히 새 교황이 선출되지 않자, 1271년에 혼자 남겨진 마르코 폴로와 함께 동방으로 갔다. 도중에 그레고리 10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크레로 돌아와 교황을 만났다, 그리고 교황의 사절인 기독교 현자들과 다시 길을 떠났다. 이들은 리이아스를 출발해 페르시아만 입구에 위치한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사막을 지나 발라샨 지방에 도착했다. 마르코 폴로는 오랜 여행으로 병이 들었으나 1년여 동안 이곳 발라샨에 머물면서 맑은 공기를 쐬면서 요양했다. 그후 계속 여행해 마르코 폴로 일행은 쿠빌라이의 여름 수도인 산두에 도착하는데 베네치아에서 이곳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쿠빌라이의 영역에 도착한 마르코 폴로는 빠른 시간 동안 타타르의 언어를 익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그는 쿠빌라이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6개월이 넘는 꽤 먼 곳까지 사신으로 나갔는데, 사신으로서의 임무뿐만 아니라 새로운 곳의 문화와 풍습,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을 전해주어 쿠빌라이의 신임은 더욱 커졌다.

17년 동안 중국에서 지내면서 폴로 일행은 여러 차례 귀국의사를 밝혔지만 쿠빌라이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일 칸국의 군주 아르곤 왕이 죽은 왕비를 대신할 같은 혈통의 왕녀를 보내달라면서 세명의 사신을 보냈다. 쿠빌라이는 코카틴이라는 여인을 찾아주어 데리고 떠나도록 했는데, 주변지역이 전쟁중이라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때 인도에서 돌아온 폴로 일행을 보고 이들이 쿠빌라이에게 폴로 일행과 함께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간청했다. 쿠빌라이는 이를 허락했고, 폴로 일행에게는 기독교권의 다른 국왕들에 대한 사절로서의 임무도 맡겼다. 이때가 1291년이다,

1294년에 3년여의 항해를 마치고 목적지에 도착한 후 폴로 일행은 쿠빌라이가 죽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돌아갈 이유가 없어졌다고 생각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1295년에 고향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25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그동안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았고 너무 초라한 모습이어서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마르코폴로가 그동안 경험한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어도 허풍쟁이라고 부르면서 놀려댔다. 그래서 마르코 폴로가 연회를 열고 여행에서 가지고 온 보석들을 쏟아내자 그때서야 사람들이 믿었다.

마르코 폴로가 베네치아에 돌아온 지 1년쯤 지나 베네치아와 제노바가 지중해 해상권을 두고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베네치아의 해군으로  참전했는데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곳에서 피사의 작가 루스티켈로를 운명적으로 만났고, 25년여 간의 여정과 자신의 경험을 그에게 받아쓰게 했다. 1299년에 ‘동방견문록’이 완성되었고, 그해에 마르코 폴로는 감옥에서 풀려났다. 감옥에서 풀려난 뒤 그에 대한 자료는 남어있지 않지만 1323년 1월 9일에 남긴 그의 유언장을 보면, 마르코 폴로는 결혼해 딸을 세명 두었으며, 생활은 풍족한 편이었다.

1324년 1월 8일에 마르코 폴로는 세상을 떠났으며, 사망 당시 옷, 덮개, 비단, 금패, 염주, 벨트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무덤은 베네치아 시내의 로렌조 교회에 있던 부친의 무덤 옆인 것으로 추측되지만, 나중에 교회가 개축되면서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사망하기 직전, 친구들은 책에서 거짓으로 서술한 부분을 말하고 잘못을 뉘우치기를 바랐으나, 마르코폴로는 "나는 내가 보고 들은 것의 반도 이야기하지 못했네“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 여행 당시 배경>


 징기즈 칸(1대)

주치

바투 

차가타이

 

우구데이 칸(2대)

구육 칸(3대)

 툴루이

·몽케 칸(4대)

쿠빌라이 칸(5대)

 아리크부카

         


원나라(1271~1368)

중국 역사상 최초로 소수민족인 몽골족이 통치한 통일국가로, 13세기 중반부터 14세기 중반까지 증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전역을 지배했다. 칭기스칸 때부터 시작된 정복사업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고 오늘날 중국 국토 면적의 대부분을 확정지었다.

칭기즈 칸이 몽골 제국을 건국할 당시에 몽골 유목민은 북방 초원지대를 기반으로 남방 대륙의 농경지대를 그 속령으로 삼아 경제적 수탈과 약탈로 자신들의 터전을 마련해갔다. 그러나 지배층인 몽골 유목민의 약탈은 피지배층인 농경님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 일으켜 끊임없이 소요가 일어났다, 이에 패권을 다투던 여러 부족장  가운데 부족연합의 수장으로 칭기즈 칸이 추대되었고 결국 그는 혼란스런 주변상황을 정리하고 통일제국을 건국했다. 칭기즈 칸이 몽골 제국을 건국한 후 여러 아들들에게 나누어 다스리게 했다.

몽골제국은 15명의 황제가 163년 동안 통치했으며, 쿠빌라이가 국호를 원이라 부른 이후 11명의 황제가 제위해 98년 동안 다스렸다. 원나라에는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포교를 위해 왔었으며, 대외무역이 발달해 많은 상인과 외국인이 드나들었다. 특히 페르시아인과 아라비아인 가운데는 높은 관직에 올라간 사람도 있었다.

원나라는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고 중앙집권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 역참제도를 정비했으며 이에 따라 동 서양 간의 문물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후에 원나라는 권력 다툼과 라마교 숭배로 인한 재정 낭비 지배층인 몽골인과 색목인, 피지배층인 한인과 남송인의 반발로 국력이 약해졌으며, 결국 명나라에 수도를 빼앗기고 몽골 본토로 쫓겨나게 되었다. 


4 칸국
칭기즈칸은 세아들들에게 북외 몽골과 그 서부를 주어 다스리게 하고, 막내아들 툴루이는 곁에 두었는데, 이것이 발단이 되어 몽골제국이 분열을 가져왔다, 칭기즈칸의 큰 아들 주치가 이르티슈 강 서부의 영지를 분할 받아 곧 죽자, 그 아들 바투가 러시아 남부 지역에 킴차크 칸 국을 세웠으며, 둘째 차가타이는 중앙 아시아에 차가타이 칸국을 세웠다. 우루데이는 외몽골, 내몽골과 북중국을 점령했다. 그러나 막내 아들 툴루이는 영토를 받지 못했다.

우루데이 칸이 통치하던 시절, 몽골제국은 러시아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했으며, 여기에 칭기즈 칸의 손자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바투와 사촌 차가타이 가(家), 우구데이 가(家)의 관계에 분쟁이 생겼다. 마침 우구데이가 죽고 그 뒤를 이은 구육이 일찍 죽자 바투는 칭기즈칸의 넷째 아들  툴루이 가(家)의 몽케가 대칸이 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와 같은 내부의 분열과 대립은 마침내 몽골제국의 쇠락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4대 칸에 오른 몽케 칸은 새 영토를 확정하기 위해 동생 알라우를 페르시아에 파견해 일 칸국을 세우게 하고 자신은 동생 쿠빌라이와 함께 남송을 정복하러 갔다. 그런데 정복 도중에 몽케 칸이 사망하자 쿠빌라이는 대칸 승계 경쟁자인 동생 아리크부카를 죽이고 임시 쿠빌라이를 열어 1206년에 대칸에 즉위했다. 그리고 쿠빌라이는 몽골제국의 대칸으로서 서방의 칸국들을 지배하려고 했다. 그러자 이에 반대하던 킴차크 칸국, 차가타이 칸국, 우구데이 칸국, 일 칸국이 독립을 선언했다.


우구데이 칸국(1218~1310)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 우구데이를 시조로 하는 몽골 왕조로 가장 몽골적인 나라이다, 칭기즈 칸은 중앙아시아 원정을 떠나기 전에 우구데이에게 서북 몽골 지방을 주었다. 우구데이와 그의 아들 구육은 몽골제국의 칸이 되어 수도 카라코룸으로 옮겨갔으나, 남은 일족은 원래의 영토에 남았다. 구육의 뒤를 이어 툴루이가의 몽케와 그 자손이 대칸의 자리를 차지하자 우구데이가는 이에 불반이 쌓였다. 그래서 우구데이의 손자 카이두는 쿠빌라이가 대칸이 되자 제위를 다투다가 실패한 아리크부카와 함께, 차가타이 칸국과 킵자크 칸국의 왕들을 설득해 반 쿠빌라이 동맹을 만들어 원나라와 대치했다. 쿠빌라이가 죽은 뒤에도 그 뒤를 이은 계승자 테무르와 항쟁을 계속하다 1301년 전쟁에서 중상을 입어 죽었다. 결국 카이투가 죽자 그의 아들 차바르는 차가타이 칸국에 영토를 잃고 1303년에 원나라에 귀순했다.   

              

차가타이 칸국(1227~1360)

칭기즈 칸의 둘째 아들 차가타이가 아버지에게 4천명의 군대를 얻어 중앙아시아에 건립한 몽골왕조로, 몽골제국에서 그다지 큰 위상을 차지하지 못했다. 차가타이 칸국은 처음에는 우구데이 칸, 몽케 칸 등 대칸의 통치와 지배에 순순히 따랐으나, 쿠빌라이 칸이 세운 원나라에는 반기를 들고 독립을 원했다. 그래서 쿠빌라이 칸의 숙적 우구데이 칸국의 카이두를 도와 원나라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1301년 카이두가 죽자 차가타이 칸국의 두와 칸은 원나라와 화해를 했다. 그리고 우구데이 칸국과 함께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고, 영토를 투르키스탄과 인도에까지 확장했다, 그러나 두와 칸의 아들들이 권력 투쟁을 벌인 끝에 쇠퇴의 길을 가다 결국 14세기 중엽에는 동서로 분열되었다. 이후 차가타이 칸국은 차가타이의 8세손 귀족 출신 티무르가 왕권을 잡아 계승해 티무르 제국을 세웠다. 그 이후 무갈 초대 황제인 동시에 티무르 제국 마지막 칸인 바부르가 뒤를 이었다, 이처럼 차가타이 칸국은 몽골제국의 명맥을 끝까지 이은 나라였다.



킵자크 칸국(1243~1502)

칭기즈 칸의 큰 아들 주치의 아들인 바투가 러시아 남부 지역 킵자크 초원에 세운 몽골 왕조이다. 킵자크 칸국은 원나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쪽의 불가르, 서쪽의 슬라브 및 동로마, 동남의 이슬람권과의 사이에 중계무역을 활발하게 했고, 그 영향으로 점차 이슬람 문화에 동화되어갔다. 바투의 동생인 2대 칸 바르카가 죽은 후 그 조카인 노가이가 칸위에 오르면서 동로마 제국을 압박하는 등 막강한 세력으로서 명실 상부한 위치를 다지며 정성기를 누렸다. 그후 14세기 말 티무르의 군대에게 침략당하고 카잔, 크림, 아스트라 칸의 3칸국으로 분열되어 서로 항쟁하다가 러시아에 의해 멸망되었다.


일 칸국(1256~1353)

칭기즈 칸의 손자이며, 쿠빌라이 칸의 친동생인 알라우가 페르시아 지역에 세운 몽골왕조이다. 그는 훌라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알라우는 1253년 형 몽케 칸의 명령으로 페르시아로 원정을 떠나 아바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시리아를 정복했다. 그 사이에 몽케 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대칸 승계를 놓고 형 쿠빌라이와 동생 아리크부카가 대립하는 것을 알고 1259년 타브리즈를 수도로 일 칸국을 세웠다.

일칸이란 ‘나라의 왕’이라는 의미로서 몽골 제국의 종가인 ‘대원-울루스(부족)에 속하는 국왕’ 이란 뜻이다. 그래서 다른 칸국과는 달리 쿠빌라이를 대원의 칸으로 인정하고 우호 관계를 맺었으나, 킵자크 칸국과 우구데이 칸국, 차가타이 칸국과의 영토 문제로 자주 전쟁을 했다. 알라우는 수도 타브리즈 한 곳에만 머물지 않고, 유목민의 관습을 따라 여름과 겨울의 영지를 마련해 놓고 이동하며 생활했다. 그는 페르시아의 소아시아를 기반으로 로마 교황과 프랑스와 외교관계를 맺어 기독교도들을 우대하고 이슬람 지식인들을 등용해 정부를 구성했다.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 전쟁을 했으며, 그후 1411년 서투르키스탄에서 일어난 티무르 왕조에 의해 멸망되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P. 11] 폴로 일가의 여행은 1260년 베니스를 출발하여 1295년 귀향함으로써 막을 내렸는데 그것은 바로 쿠빌라이의 치세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으니. [동방견문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르코 폴로의 놀라운 기록은 바로 쿠빌라이 치세의 몽골 제국과 그 주변 세계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자 이 위대한 시대가 남긴 지워지지 않는 기념물인 것이다.

이처럼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바로 쿠빌라이가 살던 13세기 후반의 그 시대의 모습이 배어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글을 읽는 누구나 전편에 드리워진 몽골제국의 그림자가 얼마나 큰지 느끼게 될 것이다. 

[P. 12] 마르코 폴로에게 몽골 제국은 단순히 하나의 제국이 아니라 ‘세계’그 자체였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를 가르켜 “우리의 최초 조상인 아담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나타난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박성과 지역과 재화를 소유한 가장 막강한 사람”이라고 부른 것도 그 특유의 과장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P. 14] 지금 우리가 마르코 폴로의 글을 읽을 때 그 속에 황당한 일화나 터무니 없는 과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동시에 다른 여러 역사자료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가 얼마나 정확하고 세밀한 자기 시대의 기록자였는가 하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의 글의 내용을 ‘진실’과 ‘허구’로 가려내는 것은 우리의 관점일 뿐, 바르코 폴로 자신이 의식적으로 어떤 부분은 일부러 허구적인 내용을 쓰고 다른 부분에서는 사실대로 기록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진실’과 ‘허구’로 구분하는 그 모든 것이 뭉뚱그려진 전체를 하나의  ‘실상’으로 인식했음이 분명하다.

오히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유럽인들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조차 도저히 믿을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유럽이외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지식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마르코 폴로가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새로운 것들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좁은 세계에 머물러 있던 그들에게 마르코 폴로가 묘사한 ‘대카안의 제국’이 비록 ‘허상의 카멜롯’처럼 보였을지는 몰라도, 그러한 이미지는 오랫동안 유럽인들의 상상을 자극하는 원천이 되었고, 나아가 그것을 ‘허구’가 아니라 ‘진실’이라고 믿으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탐구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콜럼버스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유럽은 근대로의 일보를 내딛게 된 원동력을 얻게 된 것이다.

[P. 15] 그가 정규적인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라틴어와 같은 교양어를 익혔으리라고는 더욱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그가 오랫동안의 해외 생활 끝에 베니스로 돌아온 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길 때 직접 집필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구술해서 만든 까닭도 아마 자기의 생각을 적절한 문어체의 문장으로 표현할 만큼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볼수 있다. 그러나 “대카안의 궁정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여러 언어와 네가지 문자와 서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총기있는 젊은이였음은 짐작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동방견문록]의 내용 자체는 그가 세밀한 관찰력과 기억력의 소유자였음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P. 17] 그는 자신이 ‘현명함’을 인정받아 ‘마르코 폴로님(Master)’이라 칭해졌고 쿠빌라이로부터 ‘중요한 암무와 먼 곳으로의 임무’를 부여받아 사신이나 사절로 활약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인지 아니면 한 학자의 추측처럼 당시의 몽골인들이 귀족이나 수령을 부를때 사용하던  ‘노얀(noyan)’이라는 칭호를 옮긴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는 대카안의 궁정 안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신분상으로도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P. 18] 양주의 지방관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고 속단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오히려 양주나 그 부근의 강남 지방에 관한 그의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중국측 자료에 보이는 것과 잘 부합하고 잇어 실제로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썼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P. 23] 사망시 그가 소지했던 물품의 목록을 기록한 1366년의 한 사본이 현재까지 남아있는데 이에 의하면 상당량의 의복, 덮개, 금실로 짠 비단, 귀중품 등이 있어 자신이 여러차례 책에서 기록한 것을 연상케 하며-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사실은-그가 떠날 때 쿠빌라이가 주었다는 ‘금패’가 이 목록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P. 24] 이 책의 원제목은 ‘Divisament dou Monde’ 즉 세계의 서술로서 그의 글 어디에도 ‘동방견문록’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P. 25] '견문록'이라고 하면 통상 어느 지역을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서 기술한 일종의 ‘여행기’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데, 이 책을 여행기라고 부르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

[P. 25] 이 책에는 ‘여행기’나 ‘견문록’류에는 보이는 개인의 감상이나 홍취가 극도로 억제되어 있다. ...그가 과연 이 책을 쓴 것이냐 하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돌아보거나 직접 가보지 못한 세계 여러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서술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세계의 서술’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고 따라서 각 지역마다 그가 누구와 만나서 무엇을 했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하는 개인적인 소화를 피력하지 않은 것이다.

[P. 33] 그는 각 지방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동식물과 광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빼놓지 않았다. ...........알렉산더 대왕이 타고 다녔다는 뿔이 하나 달린 말 부케팔로(bucefalo), 후일 그의 이름을 따 ‘Ovis poli’ 라는 학명이 붙어진 파미르 산지의 긴뿔의 양. 북극 근체에 사는 작은새인 바게를락(bagherlac), 자고새의 일종인 카토르(cator), 사향노루의 일종인 굿데리(gudderi), 베야미니(beyamini)라는 이름의 들소 여우와 비슷하게 생겨 여행객들의 물건을 훔쳐달아나는 파피오네(papione), 도마뱀의 일종으로 집안에 들어와 사람을 무는 타란툴라(tarantula), 코끼리를 들어올리는 거대한 새 루크(ruc),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성성이의 일종인 메르카트(mercat)등을 열거할 수 있다. 또한 희귀한 식물로는 감송, 방동사니, 새까만색의 나무 보누스(bonus 즉 ebony), 육두구(nutmeg), 쿠베브(cubeb), 소방목(brazil), 정향목(clove), 파라오 호두(pharaoh nut), 코일로민 소방목(coilomin brazil)등이 나오고, 광물로는 안다니크(andanique), 투티(tutty), 스포디움(spodium), 청금석(azure)등이 보인다.

[P. 35]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풍습을 세세하게 기록한 마르코 폴로의 글안에서 다른 문화와 관습에 대한 경멸심, 후일 그의 후손들이 비서구사회를 보고 곧잘 느꼈던 서구문명에 대한 무한한 저부심과 우월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자기 문화의 잣대로 다른 문화의 이모 저모를 저울질 하고 재단하려는 태도보다는 신기하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놀라움과 호기심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P. 37] 도대체 감옥에 갇힌 사람이 기억을 더듬어서 이렇게 상세하고 치밀한 기록을 남길수 있을까? 누구나 여행을 다녀온 뒤 느끼는 일이지만 현장에서 그토록 선명하게 가졌던 인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엷어지고 세월이 더 흐르면 결국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몇몇 정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P. 45]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많은 필사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내용에 조금씩의 가감이 가해졌을 것이고, 현존하는 많은 사본들(심지어 F본도 포함해서) 속에는 폴로 자신이 말한 부분이 아닌 것도 필사자들에 의해 첨가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여러 자료들이나 동방견문록 저체의 내용은 적어도 그것을 완전히 뒤집을 만한 새로운 결정적인 반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글의 원작자가 마르코 폴로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게 한다.  

[P. 46] 현존하는 사본의 숫자는 거의 120종에 가깜지만 그 어느 하나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P. 47] 여러 사본들 가운데 내용과 형식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F본,  R본, Z본이라고 할수 있으며..... F본은 14세기 전반 이탈리아에서 필사된 것이며, R본은 라무지오의 인쇄본이다,

[P. 48] Z본은 라틴어 번역본으로 젤라다(Zelada)본이라고 불리는데, 그 존재는 베네테토 교수가 밀라노의 한 도서관에서 Z본에서 필사된 사본을 발견하면서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P. 51] 본 역서는 모울-펠리오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그 까닭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마르코 폴로의 ‘원본’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F본을 토대로 중요한 사본들을 집철시켜 만든 것으로 학계에서 가장 탁월한 텍스트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편 (1장~19장)

1장 여기서  세계의 서술이라는 이 책의 서편이 시작된다,

[P. 73] 우리는 이 책이 아무런 거짓이 없는 올바르고 참된 것이 될 수 있도록 본 것은 보았다고, 또 들은 것은 들었다고 밝힐 것이다,

이 책을 읽거나 듣는 사람은 누구나 믿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주 하느님께서 그의 손으로 우리의 최초의 조상인 아담을 빚어낸 이후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도든 이교도든 혹은 타타르든 인도인이든, 아니 어떤 종족에 속한 인간이든 간에, 이 마르코님이 찾아다니고 알고 있는 만큼 세상의 여러 곳과 정말로 놀라운 것들에 대해 알거나 탐구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2장. 어떻게 니콜로님과 마페오님이 콘스탄티노플을 출발해 세상을 찾아나섰는가?

[P. 75] 그들은 많은 보석을 구입한 뒤 콘스탄티노플에서 배를 타고 떠나 솔다니아로 갔다.

[P. 78] 그들은 사막을 지난 뒤 부카라라고 불리는 도시에 이르렀는데,..... 그 도시는 페르시아 전역에서 가장 빼어났다. 이 도시에 도착한 두 형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고 그래서 그곳에 3년 동안 머물렀다. 

[P. 81] 대군주는 교황에게 보내는 두 형제와 신하를 비롯한 보든 사절단에게 임무를 부여할 때 금으로 된 패자를 하나주었는데, 거기에는 세 사람의 사신이 어디를 가든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숙소는 물론,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그들을 데리고 가는 사람과 말도 지급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P. 81] 그들은 어디를 가나 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지급받았고 봉사와 접대를 잘 받았다.

[P. 90] 마르코님은 대카안과 함께 무려 17년을 지냈고, 그동안 그는 끊임없이 임무를 부여받아 다녀오곤 했다. 왜냐하면 대카안은 마르코님이 여러 곳의 소식을 자기에게 그처럼 잘 전해주고 또 부여받은 임무를 매우 훌륭하게 수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데, 바로 그런 이유로 중요한 임무와 먼 곳으로의 임무는 모두 마르코임에게 맡겼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임무를 매우 잘 수행해냈고, 또한 수 많은 신기하고 이상한 것들에 관해 어떻게 이야기해줄지를 잘 알고 있었다,

[P. 90] 마르코님의 행동이 대카안을 얼마나 흡족시켰는지 그는 마르코님에게 축복을 내렸고, 그를 소중히 여겨 항상 자기 근처에 두고자 했으니 다른 신하들이 몹시 속상해할 정도였다.  바로 이런 까닭으로 마르코님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그 나라의 일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 태어난 어떤 사람보다도 그 이상한 지역들을 두루 찾아다녔고, 또 그것에 대해 알려고 깊은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1편 서아시아(20장~43장)

[P. 101] 소아르메니아에는 나라를 공평하게 잘 다스리는 왕이 있고, 그는 타타르 사람들에게 복속하고 있다. 거기에는 많은 읍과 촌락들이 있고 모든 것이 끝도 없이 풍부하다. 또한 멋진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무엇보다도 짐승과 새를 사냥하기에 좋다.

[P. 102] 투르코마니아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마호메트를 숭배하고 그의 종교를 신봉하는 투르코맨들이 있는데, 그들은 무지할 뿐만 아니라 언어도 야만스럽다. 그들은 산간이나 초원에서 지내는데, 가축을 기르며 생활하기 때문에 그곳 어디에 좋은 목지가 있는지 잘 알고 있다.

[P. 104] 대아르메니아의 높은 산위에 노아의 방주가 있다. <사실 그것은 네모난 모양의 매우 크고 높은 산으로, 그 위에 노아의 방주가 놀여 있다고 하며, 이 때문에 노아의 방주의 산이라고 불린다, 그 산은 얼마나 길고 큰지 이틀에 다 둘수 없고, 산꼭대기에는 항상 엄청난 양의 눈이 쌓여있어 아무도 그 꼭대기로 올라갈 수 없으며, 눈이 전부 녹아내리는 법이 없다.>

[P. 106-108] 성 리오나르도라고 불리는 수도원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여러분은 성 리오나르드 교회 근처의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이루어진 커다란 호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산에서 내려온 물에는 고기라고는 크든 작든 1년 내내 보이지 않지만, 오로지 사순절 첫날에 고기들이 내려오기 시작해서 성 토요일, 즉 파스크가 되기 전날까지는 사순절 동안 매일 내려온다, 그리고 이 기간에는 내내 많은 고기가 보이지만 다른 기간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P. 117-118] 칼리프는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하나의 선택을 제시하겠노라. 너희 기독교도들이 그렇게 많으니 너희들 가운데 한사람 정도는 그렇게 작은 신앙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리라” 고 말하고는, 가까이에 있는 산을 가리키면서 “그래서 내가 말하노니 저기 보이는 저 산을 너희가 말하는 하나님의 힘으로 옮겨놓아라. 그렇지 않으며 나는 너희 모두를 진혹한 죽음으로 처벌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가 그것을 옮겨놓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희에게 아무런 신앙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모두 처형하든가, 아니면 너희는 우리의 예언자 마호메트가 주신 좋은 율법으로 귀의하여 신앙을 갖고 구원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너희에게 지금부터 열흘동안이 유예기간을 주겠노라. 만약 그때까지 너희가 이 일을 해놓지 못하면 너희 모두를 처형시키겠노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칼리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독교도들을 물러가게 했다.

[P. 120] 정해진 날짜가 되었을 때 기독교도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교회로 가 성스러운 찬송가를 불렀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고 우리주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을 모두 마친 뒤, 구세주의 십자가를 앞세우고 모두 함께 그 산이 있는 평원으로 나아갔다. 10만명은 족히 될 기독교도들은 평원으로 나와 우리 주님의 십자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칼리프도 정말 놀랄 만큼 많은 사라센들이 함께 그곳에 있었는데, 그들은 산이 움직이리라는 것을 전혀 믿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도들을 죽이러 온 것이다, 

[P. 120-121] 기독교도와 사라센, 이모든 사람들이 평원에 모였을때 구두쟁이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벌린뒤 구세주께 저 산을 움직여 그곳에 있는 수 많은 기독교도들이 잔혹한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저산은 거기서 움직여 성령의 힘으로 저족으로 가도록 명령하노라! ” 하는 큰소리로> 기도를 마치자, 산은 한순간의 지체도 없이 흔들리며<칼리프가 명렬한 평원으로 1마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를 본 칼리프와 사라센들은 크게 경탄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도가 되었다.

[P. 125] 페르시아가 매우 커다란 지방이며 여덟 개의 왕국이 있음을 알아야 할것이다. 우선 첫 번째 왕국은 카스빈(Casvin) 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남쪽에 있는 두 번째는 쿠르디스탄(Curdistan)이라 불리고, 세 번째는 로르(Lor), 북쪽에 있는 네 번째는 시엘스탄(Cielstan), 다섯 번째는 이스파안(Ispaan), 여섯 번째는 치라크(Cirac), 일곱 번째는 손카라(Soncara), 그리고 페르시아로부터 빠져나가는 곳에 있는 여덟 번째는 투노카인(Tunocain)이다. 

[P. 139] 케르만을 떠나면 매우 험난한 길을 이레 동안 기행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떠한지 여러분에게 말해주겠다. 사흘거리 동안은 강리ㅏ곤 아예 없거나 거의 없는 <사막을 지나간다.> 다만 물맛이 짜고 색깔이 목장의 풀처럼 푸른 것이 있는데, 너무나 써서 아무도 마실수 없다, 만약 그것을 한 모금이라도 마신다면 열 번 이상은 설사를 하게 되며, 또한 그 물에서 추출한 소금을 조금만 먹어도 마찬가지로 굉장한 설사를 하게 된다. 따라서 그길로 가는 사람은 마실 것을 갖고 가야 하는데, 동물들은 지독한 갈증대문에 할 수 없이 그 물을 마시게 되고 그러면 그로 인해 말할 수 없이 심한 설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흘거리 내내 거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사막과 혹심한 가뭄이 있을 뿐이다. 먹을 만한 것을 아무것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동물도 있을 수 없다,

[P. 140] [네 번째 날에는 신선한 물이 땅밑으로 흐르는 강에 도달하게 되는데, 어떤 곳에서는 강줄기를 따라 구멍들이 패여 있어 그곳을 통해 물이 지나가는 것이 보이지만 곧 땅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렇지만 충분한 물을 먹을 수 있어 사막을 지나며 고통으로 지친 여행자들이 이 부근에서 휴식을 취하고 동물들과 함께 생기를 회복한다.] 사흘 거리가 끝나면 또 다시 메마른 사막과 쓰디쓴 물, 그리고 나무도 없고 동물이라고는 나귀 밖에 없는 나흘 거리가 이어지는 또 다른 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나흘 거리의 마지막에 비로소 케르만 왕국이 끝나고 코비난시가 나온다,


2편 중앙아시아(44장~74장)

[P. 156] 이고장의 다른 산에서는 청금석을 만드는 돌이 나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좋은 청금석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이다,

[P. 156] 부케팔로(bucefalo)라는 말의 혈통을 이어받은 말들이 있었는데, 모두 부케팔로처럼 앞머리에 뿔을 하나씩 갖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것은 암말들이 나로 그렇게 생긴 수말의 새끼를 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종자는 후일 모두 멸절되었다.

[P. 165] 그 돌을 돌려주기로 한날 아침이 되었을 때, 그 돌 위에 있던 기둥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의해 돌로부터 적어도 세뼘이나 올라가 마치 그 아래에 돌이 놓여 있는 것처럼 그대로 떠 있었다. 그 날이후 그 기둥은 그렇게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런 상태로 있다, 이것은 세상에서 일어난 크나큰 기적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P. 170] [사람들이 단언해 말하는데 그 사막에는 수 많은 정령들이 살고 있어서 여행자들에게 놀랍고도 엄청난 환상을 불러일으켜 결국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다는 것이다.] 밤에 이 사막을 거쳐 행진할 때 만약 누구든 잠을 자기 위해서든 혹은 다른 이유에서든 동료들로부터 떨어져 있다가 다시 동료들과 합류하기 위해 가려고 하면, 정령들이 마치 동료인 것처럼 말을 걸고 어떤 때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 길에서 벗어나 다시는 동료들을 찾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심지어 낮에도 정령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여러 악기, 특히 북소리[와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때문에 그들은 매우 엄격하게 무리를 지어 다니는 데 익숙해져 있고, 잠이 들기 전에 자기들이 여행해야 한 방향으로 표시를 해둔다.] 이 사막은 여러분이 들은 것처럼 이러한 방법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면서 건넌다. 

[P. 186] 칭기스칸은 온 세상을 뒤 덮을 정도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으자 세상 대부분의 지역을 정복하고 싶어 했다.

[P. 186] 그는 프레스터 요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칭기스칸이 자기 딸을 아내로 달라는 말을 전해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프레스터 요한은 그를 크게 꾸짖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칭기스칸은 내 딸을 아내로 요구할 정도로 그렇게 뻔뻔스럽단 말인가?” 그는 자기가 내 부하이자 노예라는 사실을 모른다 말인가? 돌아가 그에게 전해라. 내 딸을 그에게 아내로 주느니 차라리 그녀를 태워버리겠노라고!

[P. 191] 다른 다섯을 다 합해놓아도 이 쿠블라이만큼 강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지상의 어떤 황제나 기독교도와 사라센의 어떤 왕들도 이 쿠블라이 대카안처럼 그렇게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그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P. 207-208] 학에는 다섯 종류가 있는데 이제 내가 그것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설명해주겠다. 첫 번째 종류는 까마귀처럼 온통 까만 것으로 몸집이 매우 크다. 두 번째 종류는 온통 하얗고 날개가 매우 아름다우며, 깃털들은 마치 공작새처럼 어디에나 동그란 눈모양 무늬오 가득하고, 색깔은 황금빛으로 너무도 찬란하다, 머리는 붉고 검으며 목은 하얗고, 다른 어느 것 들보다 몸집이 크다. 세 번째 종류는 우리의 것과 비슷하다. 네 번째 종ㄹ휴는 몸집이 작고 귀가 길며, 붉고 검은 깃털이 매우 아름답다. 다섯 번째 종류는 온통 회색이고 머리는 붉고 검으며, 매우 잘생겼고 굉장히 크다.


3편 대카안의 수도(75장~104장)

[P. 224-225] 대카안은 나안이 잡혔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를 처형하라고 명령했는데, 그는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려는 그런 방식으로 처형되었다. 그를 카펫에 말아 넣은 뒤 여기저기로 거칠게 끌고 다녀서 죽였던 것이다, 그를 이런 방식으로 죽이는 까닭은 황제 일족의 피가 땅에 흐르지 않기를 그래서 태양도 공기도 그것을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P. 233] 사흘 낮과 밤이 끝나면 두 번째 여섯 명의 여인들이 들어온다, 이렇게 사흘 낮과 밤마다 여섯 명씩의 여인들이 1년 내내 바뀌는 것이다. 

[P. 245] 마침내 이 지역의 주민들, 즉 카타이 사람들은 아크마트가 그들과 자신의 부인들에게 저지른 끝없는 해악과 말못할 범죄를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그를 암살하고 그 도시의 지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들 가운데 1000명을 거느린 첸쿠(Cenchu)라는 이름의 카타이인이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와 딸과 부인은 모두 아크마트에게 겁탈당했다. 그는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만인대의 수령이던 또 다른 카타이 사람 반쿠(Vanchu)와 함께 이 사람을 파멸시키고자 이야기했다.   

[P. 255] 각각의 선물은 9의 9배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만약 어떤 지방에서 말을 상납하려고 하면 아홉 마리의 9배, 즉 81마리를 바쳐야 한다. 만약 금을 바친다면 아홉 조각의 9배를 해야 하고, 의복이라면 아홉 벌의 9배를 해야 하는데,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 이낟. 이런 까닭으로 어떨 때 그는 10만 마리의 말을 갖게 되는 것이다.

[P. 258] 여러분에게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을 말해주려고 하는데, 이 책에서 그것을 묘사하는 것이 비교적 적절해 보인다. 대 군주 앞으로 끌려나온 한 마리의 커다란 사자가 그를 보자마자 앞에 엎드려 마치 그가 자신의 군주임을 알기라도 하는 듯 극도로 공손한 태도를 취한다, 사자가 사슬에 채워지지도 않은 채 그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정말로 경탄해 마지않을 일이다.

[P. 261] 대군주가 사냥을 갈 때면  이들 형제 가운데 한사람은 1만명의 부하들과 거의 5000마리의 개와 함께 그의 한쪽옆으로 가고, 또 다른 한사람은 그가 이끄는 1만 명과 개들과 함께 다른족으로 옆에서 간다. 그들은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같이 가는데 그거은 하루 거리 이상이 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포회되지 않은 짐승은 하나도 없게 된다,

[P. 262] 1만명이나 되는 매꾼들과 5000마리나 되는 해동청과 페레그린 매와 송골매를 데리고 가며, 또한 강가에서 새를 잡는데 쓸 많은 수의 사냥용 매도 데리고 간다. 그러나 이들을 모두 한곳에 넣어서 기른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바란다. 그는 이들을 여기저기에 100마리 혹은 200마리 혹은 그 이상으로 나누어놓는다.  이 사냥용 새들이 잡은 새들은 대부분 대군주에게 바쳐진다.

[P. 264] 대 군주는 매사냥을 갈 때 일부지역에서는 길이 좁기 때문에 한 마리 혹은 두 마리의 코끼리를 타고 가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항상 네 마리의 코끼리를 타고 간다.

[P. 268] 돈 때문에 남자를 위해 봉사하는 여자들의 숫자는 2만명은 족히 될 것이다.

[P. 271] 대 군주는 세상의 모든 제물들의 값을 지불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지폐를 보유하고 있다.

[P. 273] 지상의 모든 군주들의 재화는 이 대군주 혼자 갖고 있는 재화만도 못하다. 

[P. 283] 주요 도로의 변두리에 2보 간격마다 나무를 한그루씩 심도록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나무들은 멀리에서도 잘 보일 정도로 상당히 크다, 대카안이 이렇게 한까닭은 사람들이 도로를 잘 식별하여 길을 잃지 않게 하려 함이다. 외딴 길가에 있는 이런 나무들은 상인이나 행인들에게 매우 커다란 위안이 된다,

[P. 288] 자연의 운행과 이치에 따라 일이 생겨날 수밖에 없지만 신이 거기에 약간의 변화를 중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해 각달에 일어날 모든 것들을 적은 조그만 책자를 많이 만드는데 그 책자를 타쿠이니라고 부른다. 그들은 그해에 무슨일이 생기는지 알고자 이 책자를 사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1그로트를 받고 판다.


4편 중국의 북부와 서남부(105장~130장)

[P. 302] 이 성채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20마일 정도 가면 카라모란이라 불리는 강을 만나게 되는데 다리로는 건널 수 없을 정도이다. 그 강은 매우 넓고 깊으며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P. 303-304] 이 도시는 매우 크고 아름다우며 옛날에는 당당하고 부유하고 또 강력한 켄잔푸 왕국의 도읍으로서 용맹하고 명망있는 군주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군주의 아들인 망갈라이라는 사람이 그곳의 군주이자 왕이다.

[P. 311] 남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처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법이 없다, 그들은 만약 여자가 많은 남자들에게 길들여지고 익숙해 있지 않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P. 314] 이방인이나 다른 남자가 자기의 아내나 딸이나 누이, 혹은 집안의 어떤 여자와 동침한다고 해도 그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과 동침하는 것을 좋아하면서 말하기를, 그런 행위로 말미암아 신과 우상들이 자기들에게 혜택을 주고 세속적인 물건들을 무수히 가져다 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방인에게 자기 아내들을 마음대로 하게 그냥 내버려둔다,

[P. 315] 이방인들에게 이 같은 쾌락과 편의를 선사해주기 때문에 신들이 그것을 가상히여겨 그들에게 세속의 물건들을 많이 준다는 것이다, 대카인이 이 풍습을 금지시켰지만 이 같은 이유 때문에 그들은 계속해서 똑같은 행동을 하고있다.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행할뿐아니라 아무도 다른 사람의 그런 행동을 욕하지 않는다. 

[P. 319] 그곳에는 소금을 채취하는 소금우물이 있어 그 지방의 모든 사람들은 이 소금으로 살아간다. 국왕은 바로 이 소금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또한 그들이 남이 자기 아내를 건드리더라도 그것이 여자의 희망에 의한 것이라면 상관하지 않는다.

[P. 336-337] 그들은 바늘을 이용해서 사자나 용이나 새 혹은 그와 비슷한 것들의 그림을 자기 몸 전체에 새겨 넣는다, 바늘로 새겨넣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얼굴과 목과 배꼽 손과 발등 전신에 새기는데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한다. 먼저 wrl가 원하는 문양을 검은 색으로 전신에 그려넣는다. 이것이 끝나면 그의 손과 발울 묶고 두사람 혹은 그 이상이 그를 붙잡는다, 그리고 전문가가 다섯 개의 침을 갖고 와서 네게는 사각형의 모양으로 다섯 번재는 그 가운데에 위치시킨다, 그는 이 침들을 이용하여 그려놓은 문양에 따라 전신을 찔러 나간다. ..> 문신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 뛰어나고 멋있는 것으로 여긴다.


5편 중국의 동남부(131장~157장)

[P. 364-365] 니콜로님과 그의 형제와 아들은 식솔들 가운데 그 같은 일에 능통한 장인인 게르만 사람과 한 네스트리우스파 기독교도에게 300파운드 짜리 돌들을 투척할 수 있는 투석기를 두세개쯤, 만들라고 이야기했다. 이 두사람은 [며칠 만에] 세 개를 만ㄴ들었는데, 대 군주는 그것을 사얀푸시를 포위하고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던 군대에게 전해주었다. 투석기가 군대에 도착하자 그것을 설치했는데, 타타르들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물건처럼 보였다.

설치한 투석기를 당겼다가 돌을 시내로 투척하니, 돌이 가옥을 치면서 그것을 부수고 온통 폐허로 만들어버렸고, 커다란 소음과 혼란을 일으켰다,

[P. 376] [주요 운하와 주요 도로 위에 세워진 다리들의 아치가 얼마나 높고 또 얼마나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졌는지 그 아래로 배가 돛대를 접지 않고도 지날 수 있고, 그러면서 그 위로도 수레와 발들이 다닐 수 있으며, 거리의 높이도 다리의 높이에 맞추어져 있을 정도로 잘 지어져있다.]

[P. 381] 호수 가운데는 두 개의 섬이 있고 그 각각에 아주 멋있는 누각이 서있다. 어찌나 잘 지어지고 장식이 잘되어 있는지 마치 황제의 궁전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누군가 결혼식이나 연회를 할 생각이 있으면 이 누각에 그런 것들을 개최한다,

[P. 386] 여러분에게 또 하나 이야기해줄 것은 이도시안에 무려 3,000개의 욕탕, 즉 증기탕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목욕을 매우 즐기는데 한 달에 여러 차례 그곳으로 간다. 그들은 몸을 아주 정결하게 유지한다, 여러분에게 말해두지만 그 욕탕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지고 큰 것 들이다. 얼마나 큰지 100명의 남자 혹은 여자가 동시에 목욕할 수 있을 정도이다. 

[P. 399] 이야기할 것이 또 하나 있다. 주민들은 온갖 더러운 것들을 먹는데, 만약 자연사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의 고기까지 아주 기꺼이 먹는다. 칼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경우를 매우 좋은 고기로 여겨 모조리 먹어치운다. 군대에 가서 무장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변해버린다, 그들은 머리를 깍고 얼굴 한가운데에  남색으로 칼날과 같은 모양을 그려 넣는다. 대장을 빼놓고는 모두 도보로 행군하는데, 창과 칼을 들고 다니며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들이다. 여러분에게 말해두지만 그들은 하루 종일 사람을 죽이고 그 피를 마시고 또 그 고기를 먹는다. 그들은 언제나 기회만 있으면 사람을 죽여서 그 피를 마시고 고기를 먹고 싶어한다,   

[P. 401-402] <이 고장에는 사자가 많은데 그들은 덫을 놓아서 잡는다. 적당한 장소에 두 개의 갚은 구덩이를 나란히 파놓는데, 두 구덩이 사이로 1완척 정도의 땅을 남겨둔다. 그리고 그 구덩이 옆으로 높은 담을 쌓되 구덩이가 있는 쪽에는 그대로 놓아둔다. 이 구덩이를 판 사람은 밤에 작은 개를 그 중간의 당에 믂어 놓은 뒤 가버린다. 그러면 묶인 채 주인에게 버려진 이 개는 계속해서 짖을 것이다. 이때 이개는 흰색이어야 한다. 사자는 어디에 있든간에 이 개짖는 소리를 듣고는 개에게로 무섭게 달려온다, 개의 몸이 희뿌옇게 빛나는 것을 보고는 잡으려고 성급하게 달려들다가 구덩이 속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아침이 되면 구덩이를 판 사람이 와서 구덩이 속의 사자를 죽이고는 맛있는 고기는 먹고 가죽은 비싸기 때문에 팔아버린다, 만약 그 녀석을 산채로 잡고자 한다면 도르래에 매달아 끌어 올린다. >


6편 인도양(158장~197장)

[P. 416] 치핑구는 욱지에서 동쪽으로 해상 150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다, 매우 큰 섬이고 주민들은 피부가 희고 깨끗하게 잘 생겼다.

[P. 416]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이 섬 군주의 궁궐이다, 그는 온통 순금으로 뒤 덮인 멋진 궁전을 갖고 있는데, 우리가 집이나 교회를 납판으로 덮듯이 금으로 씌워 놓았다. 

[P. 422] 이 성들에 사는 우상숭배자들은 자기 친구가 아닌 어떤 사람을 붙잡은 후 그로부터 몸값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으면 친척과 친구를 모두 불러 모은다.  그리고는 “여러분은 우리집에서 나와 같이 식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그가 잡은 사람을 죽여서 친척들과 함께 먹는다, 여러분이 알아두어야 할 것은 사람을 잡아서 요리한다는 것인데, 그들은 사람고기를 자기들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으로 여기고 있다.

[P. 435] 그들은 자기 고장 출신이 아닌 사람을 붙잡아 몸값을 받아내지 못하면 그를 곧바로 죽여서 먹어치울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사악하고 못된 관습이다.

[P. 447] 이 왕국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관습에 대해서 말해주겠다. 죄를 지은 어떤 사람이 처형을 받게 되어 군주가 그를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죽음을 당하는 사람은 어떠어떠한 우상에 대한 사랑과 숭배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자신의 희망을 말한다. 왕이 그에게 그렇게 해도 좋다는 허락을 내리면, 자살하는 그 사람의 모든 친척과 친구들은 그를 의자에 앉히고 그에게 12개의 칼을 준 뒤, 시내 온 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 용감한 사람이 이러이러한 우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고 외친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시내 곳곳으로 그를 데리고 다니다가 형이 집행될 장소에 도착한다. 그러면 죽어야 할 사람은 칼을 빼들고 “나는 이러이러한 우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을 끊노라!” 고 큰소리로 외친다, 이 말을 하고 나서 칼 하나로 팔 가운데를 찌르고 다른 칼로 단른 팔을 찌른다, 그리고 또 다른 칼을 집어 들어 배꼽 한가운데를 찌른다.

[P. 458] 이 왕국에서는 다이아몬드가 산출되는데 그것에 대해서 마야기해주겠다. 이나라에는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는 산들이 많은데, 비가 오면 이산들 사이로 물이 흘러내리면서 계곡이나 동굴을 거쳐가며 큰 피해를 입힌다.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고 나면 사람들은 물이 지나갔던 계곡을 뒤져서 많은 다이아몬드를 찾아낸다,

[P. 458] 여러분에게 그들이 다이아몬드를 캐내는 또 다른 방법에 대해 말해주겠다. 그 계곡들은 어찌나 깊고 가파르고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는지 아무도 내려갈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ㄷ, 그들은 고기 몇 조각을 잘라서 갚은 계곡 아래로 던지는데, 다이아몬드가 무척 많은 곳에 던지기 때문에 그것들이 고기에 박히게 된다, 그산지에는 뱀들을 잡아먹으려는 흰색 독수리가 많이 살고 있는데,  그 독수리들이 계곡 깊은 고에 떨어진 고기를 보고는 날아가 그 고기를 낚아채 다른 장소로 갖고 간다, 독수리가 가는 곳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사람들은 독수리가 멈추어서 고기를 먹고 있는 것을 보는 즉시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간다. 독수리는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을 보고는 겁을 먹고 고기를 놓아둔 채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은 고기를 빼앗아 거기에 박한 여러개의 다이아몬드를 차지하는 것이다.

[P. 459] 또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다이아몬드를 채취하기도 한다, 독수리들이 내가 말한 그 고기들을 먹게 되면 다이아몬드도 몇 개 삼키게 된다, 밤이 되어 독수리가 둥지로 돌아와서는 삼켰던 다이아몬드를 똥과 함께 배설하면 사람들은 그곳으로 가서 독수리의 똥을 갖고 와 거기서 다이아몬드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P. 464-465] 브라아만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신뢰할 만한 상인들이다, 그들은 무슨일이 있어도 절대 거짓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한다, <만약 어떤 상인이 장사를 하러 이 고장에 왔는데 그곳의 예절과 관습을 잘 모르면 이런 브라아만 상인 한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돈과 상품을 맡기고, 자신은 관습을 잘 몰라 속을지도 모르니 자기를 대신해서 모든 장사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외국 상인의 상품을 위탁받아 브라아만 상인은 사고 파는 데에 있어 모두 적법하게 처리하며, 외국 사람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보다 더 세심하면서도 훌륭하게 일을 처리한다, 그리고 외국인이 스스로 고마움의 표시로 무엇인가를 주기 전에는 절대 자기가 일한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

[P. 465] 그들은 고기를  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그들은 고유한 관습에 따라 매우성실하게 살아가며, 자기 부인이 아닌 다른 여자와의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지도 않고 동물도 죽이지 않으며 죄라고 생각되는 짓은 결코 하는 법이 없다.

[P. 477]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모욕하고 비난하거나 욕을 하고 싶을 때에는, 길가에서 그를 만나 씹고 있던 그것을 꺼내 그의 얼굴에 내던지면서, “너는 이보다도 못한 놈이야”라는 말을 내갈긴다, 그러면 그는 아것을 엄청난 피해요 모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즉시 왕에게로 달려가서 자신을 비난하고 모욕을 가했다고 불평하면서 자신에게 복수를 허락해줄 것을 요청한다.

[P. 484-485] <상인들은 상숧ㄴ 해적이 돌아다니는 해역을 지나가려 할 때 만약 진주나 보석을 갖고 있으면 해적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것을 삼켜버린다. 만약 해적들에게 붙잡히면 얼마간의 물건은 잃어버려도 보석은 이런 식으로 간직할 수 있다. 해적들은 상인을 붙잡아 무엇이든 찾아내면 즉시 돌려보내준다. 그러나 요즈음 해적들은 더 악날해졌다.> 이 악날한 해적들은 상인을 붙잡으면 타마린드<라는 일종의 약> 을 바닷물에 타서 마시라고 한다. 그러면 상인들은 엄청나게 설사를 하여 뱃속에 있는 것을 모두 배설해낸다. 해적들은 상인들이 설사한 것들을 모두 모아서 그 안에 진주나 보석이 있는지 수색시킨다, 해적들은 상인들이 붙잡히면 진주나 보석을 빼앗기자 않으려고 그것을 삼켜버린다는 것을 알고 이 못된 해적들은 내가 말한 그 나쁜 악을 마시라고 주는 것이다,

[P. 495-496] 사람들 말에 의하면 그쪽으로 해류가 흐르기 때문에 배들이 가지 않으려고 하는 매우 남쪽에 위치한 다른 섬들에는 그리폰(grifon) 새가 있는데 그 새는 1년중 특정한 계절에만 그곳에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는 그것이 반은 새이고 반은 사자라고 하지만, 그것을 직접 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반은 새이고 반은 사자 모습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꼭 독수리처럼 생겼는데, 다만 그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다

[P. 496] 여러분에게 그것을 직접 본 사람들과 또 나 자신이 본것들을 이야기해주겠다. 그들 말에 따르면 그것은 얼마나 크고 힘이 섽, 코끼리를 집어서 하늘 높이로 날아올랐다가 땅에 떨어뜨려 코끼리를 박살낸 다음 그것을 배불리 뜯어먹는다고 한다. 그것을 본 사람들의 얘기에 의하면 날개를 펴면 30보, 깃털의 길이는 12보나 되고 두께도 그 길이에 걸맞을 정도라고 한다. 

[P. 500] 이 지방 기독교도들의 얼굴에는 세 개의 낙인이 있는데, 하나는 이마에서 코 중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양뺨에 각각 하나씩 있다. 이 낙인은 뜨거운 쇠로 지져서 만든 것으로 그들의 세례이다, 즉 그들은 물로 세례를 받은 뒤에 다시 내가 설명한 그런 낙인을 받는다. 그것은 고귀함의 표시이자 동시에 세례의 완결을 의미한다,

그곳에는 우대인도 있는데 그들의 얼굴 양뺨에 하나씩 두 개의 낙인이 찍혀있다, 사라센들에게는 하나의 낙인만 잇는데 그것은 아마에서 코 중앙에 이르는 부분에 있다.


7편 대초원(198장~232장)

[P. 531] 화살을 시위에 매기고는 여기저기 쏘아대는 마치 비가 오듯 하늘은 화살로 뒤엎여버렸다. 그들은 잔인하고 끔찍한 전투를 시작했다. 기병들은 쓰러져 땅바닥에 뒹굴었고, 짱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함과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화살을 모두 써버리자 이번에는 칼과 몽둥이를 손에 들고 상대방을 향해 격렬하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칼로 사정없이 베어버렸다. 그러자 손과 팔과 어깨와 머리가 잘려나갔다.

[P. 562] <더구나 이 전투에서 톡타이 왕은 자신이 모을 수 있었던 군대를 모두 집결시키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노가이가 자기보다 1/4이 적은 군대를 끌고 싸우러 왔기에 자신이 모은 군사만으로도 노가이를 패배시킬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들었듯이노가이의 군대는 특타이 군대에 비해 더 용맹했고,무기도 더 sd란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톡타이 왕은 전투에서 패배하고 굴복하게 된것이다, 그래서 그 후 톡타이 왕은 휘하의 전군을 집결시켜 노가이 왕과 남자답게 맞서 그를 죽였고, 대단히 용맹하고 노련한 그의 네아들도 죽였다. 이렇게 해서 툴로부가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이루어지게 된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동방견문록’은 1299년 이탈리아인 마르코 폴로가 저술한 것으로, 유럽 각국에서 ‘세계의 서술’, ‘백만의 책’,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등 여러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일본에 ‘동방견문록’으로 전해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의 원제목은 ‘Divisament dou Monde’ 즉 세계의 서술로서 그의 글 어디에도 ‘동방견문록’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책은 마르코 폴로가 제노바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자신이 중국과 주변지역을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구술하면 작가 루스티켈로가 받아 기록한 것이다. 정식 명칭은 ‘세계의 서술’로 알려져 있는데, 마르코 폴로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은 최대한 절제하면서 세계 각 지역에서의 경험을 객관적, 체계적으로 서술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은 마르코 폴로가 살아 있을 때에는 사람들로부터 허황한 이야기라고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르코 폴로가 사망한 후 내용의 정확성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14~15세기에는 성경 다음으로 인기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으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거나 믿기 힘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났다. 이렇게 거짓말같은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었으나 당시 유럽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중앙아시아와 중동 등 동양에 대한 여러 가지 지리적 사실을 정확하게 알린 점에서 의미있는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진위와는 무관하게 역사적 의의가 큰 책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내용이 상당 부분 정확하여 당시 유럽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한다.  '동방견문록'은 23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출판된 책들은 대부분 서장과 7장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232장을 정확하게 번역한 책으로 서편으로 시작하여 1편에서 7편으로 편성되어있다.

1편은 대. 소아르메니아와 투르코마니아에서 출발해 아라크와 페르시아 지역을 경유하는 서아시아 지역, 2편은 아프카니스탄에서 파미르 고원을 넘어 타림 분지를 통과하는 중앙아시아, 3편은 쿠빌라이의 수도인 산두와 타이투, 그리고 쿠빌라이의 통치모습, 4편은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체류하면서 돌아보았던 카타이 지방과 중국의 북부즈빙, 5편은 만지라고 불리던 중국의 동남부지방, 남송영역, 6편은 니콜로와 마패오, 마르코 폴로 일행이 중국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오는 갈에 본 인도양 각 지역, 7편은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을 중심으로 러시아와 북극지방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동방 견문록에 소개된 지역은 중국 일대의 동아시아 지역만이 아니라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북극지방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동방견문록에 소개된 지역은 중국 일대의 동아시아 지역만이 아니라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북극 지방 남쪽으로는 인도와 아프리카 대륙의 일부, 동쪽으로는 치팡구(현재 일본), 서쪽으로는 서남아시아 지역까지 포한된 것이다. 그러나 역시 중국 지역에 대한 부분이 많으며, 그가 중국에 머문 시기가 쿠빌라이가 다스리던 시기와 일치해 원나라에 대한 설명이 많다.

자신이 직접 본 지역 가운데 특히 중국에서 쿠빌라이가 머물던 산두, 타이투와 상업이 발달한 킨자이 등지의 도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각 지역에 대해 자신의 고향인 베네치아와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도시의 주민이 믿는 종교와 독특한 생활모습, 특산물, 물가, 화폐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했으며 도시간의 위치와 거리를 정확하게 서술했다. 특히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상대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보았으며, 유럽 문화에 대한 우월의식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동방견문록은
루스티켈로가 쓴 원본이 없어지면서 필사본이 수십종 나왔는데, 인쇄술이 발명된 후부터는 더 많은 판본이 나와 거의 140여종에 달한다. 그 가운데 원본에 가장 충실한 것으로는 <프랑스 지리학회>에서 옮긴 F본, 이탈리아 라무지오의 R 본, 젤라다가 라틴어로 옮긴 Z본이 있다.

유럽인들이 이 책의 내용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신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욕을 자극 받았으며, 실제로 콜럼버스나 바스코 다 가마는 행동에 옮기기도 했다. 이들이 신대륙을 개척한 후에 새로운 근대 유럽문화가 탄생되었으므로, 이 책은 지리상의 대 발견을 이루어내는 밑거름인 동시에 근대 유럽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동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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