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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7일 09시 35분 등록

북리뷰 68.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 한국 죽음학회

      책: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한국 죽음학회 지음. 2010.


*** 저자에 대하여

한국 죽음학회 홈페이지입니다. http:// www.kathana.or.kr


***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머리글

나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8. 이러한 물음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가장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인 대부분은 죽음을 애써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때론 혐오하는 태도마저 보이곤 합니다. 그 때문에 한국인은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현실’로서의 ‘죽음’을 끝까지 미루다 갑자기 자신이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평소 아무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하면 자신이나 가족이 불필요한 고통과 재정 낭비를 겪게 됩니다. 특히 임종자는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생을 마칠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기에 더없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11. 이에 한국 죽음학회는 인간의 “죽음과 죽어감”의 과정을 단계별로 구분해 임종자와 그족, 의료진들이 취해야 할 기본적인 태도와 알아야 할 지식을 정리해 많은 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소책자로 묶어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모쪼록 이 소책자가 그동안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임종자는 물론, 뜻하지 않게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개인, 그리고 이들을 의료상으로 보살피는 의료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 인간의 존엄한 마지막 삶인 ‘죽음’을 더 값지게 받아들이고 준비하는데 이 소책자가 귀하게 쓰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죽음학회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회

죽음의 준비, 병의 말기 진단 전에 해야 할 일

유언장 작성

14.가능한 한 건강할 때 평소의 생활 감각으로 쓰는 게 좋습니다. 아울러 주기적으로 유언장의 내용을 점검하고 필요할 때 보충하거나 바꾸는 것도 중요합니다.

통장은 가족에게 물질을 남기지만 유언장은 가족에게 마음을 남깁니다. 유언장은 가족에게 남기는 실질적이고 감정적인 배려입니다.

유언장을 작성할 때 가장 유의할 점은 유언장의 법적 효력입니다. 개인의 유언장은 자필로 쓰면 별도의 공증 절차없이 법적인 효력을 갖습니다. 그러나 회사와 같은 공적인 단체에 관한 유언을 남기려면 반드시 유언장을 공증해야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19. 우리는 누구나 병이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가 됐을 때, 어떤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가를 미리 지정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문서로 작성해놓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가 시행되어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임종시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존엄성이 손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향서는 본인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습니다.

말기 질환 사실을 알리는 바람직한 방법

24. 환자가 말기 질환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양상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폐쇄형, 의심형, 외면형

27. 가족이 환자에게 말기 질환이라는 사실을 알리려 할 때 여러 가지 걱정과 주저함이 있겠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환자가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어 합니다.

환자와 가족에게 말기 질환을 알릴 때 도움이 되는 글

31. 의료진은 가장 먼저 환자를 안정시켜야 합니다.

32. 의료진은 환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설명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33. 의료진은 환자나 가족이 보이는 격렬한 반응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당사자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34. 의료진은 환자 스스로 낙담하고 자책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해야 합니다.

35. 의료진은 환자의 남은 수명(시간)을 성급하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36. 의료진은 환자와 가족에게 호스피스 병동이나 임종간호를 권할 수 있습니다.

37. 의료진은 가족 없이 홀로 말기 질환 선고를 듣게 되는 환자를 충분히 배려해야 합니다.

말기 질환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글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사람은 태어나 평생 성장합니다. 죽음은 그 마지막 성장의 기회입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 섰을 때 비로소 평상시 외면했던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49. 나는 누구인가?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 있는가? 신은 정말 있는가? 있다면 어떤 분인가? 등의 질문을 쏟아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신의 삶과 죽음을 깊게 성찰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육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간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환자는 삶의 양이 아니라 삶의 질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마음 갖기

51.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 조용히 떠올려 봅니다.

자신이 떠난 다음 남은 가족에게 누가 안 되도록 주변을 잘 정리합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마무리가 안 된 인간관계가 있다면 그 사람과 화해합니다. 당사 자를 만날 수 없다면 자신의 마음속에서라도 그 사람과 맺힌 마음을 풀고 털어냅니다.

53. 아직 남은 능력으로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실천에 옮겨봅니 다.l

가족이나 의료진을 비롯한 주위 사람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말기 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글

살아온 삶의 의미와 가치 나누기

56. 환자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우선 환자와 더불어 온 가족이 함께 기뻐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환자가 임종한 후에도 항상 고인을 생각하고 사랑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아울러 환자의 삶에서 의미있고 가치있던 일들을 서로 확인하면서 환자가 헛된 삶을 산것이 아니었음을 되새겨 봅니다.

환자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가족이 해야 할 일

57. 환자가 편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죽음을 준비하면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환자 옆에 끝까지 함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환지가 자괴감이나 수치감, 죄의식을 갖지 않게끔 세심하게 주의합니다.

58. 환자의 작음 바람도 간과하지 말고 성의있게 들어줍니다.

임종 직전, 죽음이 가까웠을 때의 증상

삶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준비하기

임종이 가까웠을 때 나타나는 변화들

63. 음료나 음식 섭취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보통 먹고 마시는데 흥미가 없어집니다. 이때는 음식을 억지로 먹여서는 안됩니다.

65. 잠자는 시간이 많아지거나 의식을 자주 잃게 됩니다.

임종을 준비하는 환자에게는 무엇을 해주는 것보다 함께 있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의식이 없는 환자라도 주변의 이야기는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청각은 가장 오랫동안 남아 있는 감각이기에 환자가 의식불명 상태라도 외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늘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환자의 옆에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67. 불안한 행동을 반복해서 보이게 됩니다.

69. 허공에 대고 혼자말을 하기도 합니다.

70. 소변의 양이 줄고 색이 진해집니다.

71. 호흡이 가빠지고 불규칙해집니다.

72. 가래끓는 소리가 잦아지고 커집니다.

73. 피부가 검거나 파랗게 변합니다.

떠나는 것 받아 들이기와 작별인사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작별하기

76. 마지막 순간이 임박해오면 임종자의 호흡과 심장박동이 약해집니다. 이 과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의학적 응급상황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사람은 가족 걱정으로 임종기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가족들은 임종자에게 “이제 우리 걱정은 마시고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떠나셔도 됩니다”하고 안심시켜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편안하게 보내기

임종자가 임종을 맞이하려 호흡을 모을 때에는 옆에서 큰 소리로 울거나 몸을 흔들면서 부르는 등, 시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은 임종자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삼가야 합니다.

충분한 작별의 시간 갖기

79. 우리가 돌보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의료상으로 응급 상황은 아닙니다. 만일 집에서 임종을 맞이한다면 경찰 혹은 119에 전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임종한 후에는 도와줄 수 있는 사람에게 전화하거나 자신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임종 직후에 유족이 해야할 일

80. 청결 유지.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히기. 머리를 빗기고 턱받이를 해준다.

81. 몸이 뒤틀리지 않게 바르게 해준다.

마지막 인사, 혹은 추억을 갖는 시간을 갖거나 종교의례를 행한다.

망자 보내기, 장례

84. 장례란 무엇인가

85. 장례장소의 결정

86. 장법의 결정

88. 장례 상담

89. 장례 절차, 3일장을 중심으로

사망당일: 사망 후 장례식장으로 가기 전에 병원에 사망진단서 또는 사체검안서 발급을 신청합니다. 이때는 5~7통 정도 넉넉하게 신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고사나 사인 미상인 때는 관할 경찰서에서 발급한 검사필증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장례식장에 연락해 이용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운구 차량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유족이 동행하여 장례식장에 운구한 다음, 고인을 안치실에 모십니다.

장례식장에서 빈소를 결정하고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빈소에 미리 준비한 고인의 영정사진을 모셔놓고 제단에는 꽃 장식등을 합니다.

장례절차를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호상을 정하는 등 역할을 분담하고 초상이 났음을 알리는 부고를 냅니다.

둘째 날: 염습과 입관

91. 염습은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절차인데 이때 유족들은 장례식장에 있는 염습실에서 장례지도사가 하는 염습과정을 참관합니다. 염습이 끝난 시신은 입관하여 다시 안치실에 안치됩니다.

92. 성복: 입관 의식 후 유가족들은 상복을 갈아입고 상주는 완장을 착용합니다. 성복제는 빈소에서 갖습니다.

셋째 날: 발인

93. 빈소에서 장지로 떠나는 것을 발인이라 하는데, 발인 전에 장지 등에서 사용할 물품을 준비하고 장의 차량을 확인하며 운구할 사람을 결정해 둡니다. 운구는 대개 친지들이나 직계 자녀들이 하게 됩니다.

장례 후에 할 일

95. 장례가 끝나면 삼우제를 지내고 탈상일 등을 정합니다.

매장 신고서는 매장 후 30일 이내에 매장지를 관할하는 시장, 군수, 구청장 등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사망 후 1개월 이내에 사망 증명서류, 고인의 주민 등록증, 신고자 도장을 준비해 주민센터 등에 사망신고를 합니다.

고인을 보낸 이의 슬픔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

99. 고인의 죽음으로 겪는 슬픔과 고통은 어두운 터널을 여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겪고 싶지 않아도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이 여정은 그 내용과 정도가 고인이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 다르고 고인과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사별 초기 단계: 충격과 좌절 단계

100. 사별 초기단계는 보통 몇 주에서 1~2개월 정도 이어집니다. 이 기간에는 큰 충격을 받아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는 멍한 상태로 있게 됩니다. 이때 유족은 종종 고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유족은 고인을 생각하며 “그때 그렇게 할걸” 혹은 “하지 말걸”하는 식으로 강하게 자책하기도 합니다.

또한 현실 망각이나 집중력 저하, 무감각, 멍한 상태, 무기력증과 같은 증상들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우선 현실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고인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때는 단순하게 몸이 시키는 대로 맡기면 됩니다. 즉 피곤하면 자고, 울고 싶으면 울고, 먹고 싶으면 먹는 것이 좋습니다.

사별 중간 단계: 고독과 우울 단계

102. 첫 번째 단계가 지나면 고독과 우울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같이 있어도 고독을 느끼고 하염없는 슬픔에 휩싸입니다. 크게 실망한 나머지 자실을 생각할 정도로 절망 속에 빠지거나 무력해져 새로운 일을 계획하거나 시작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무기력한 상태는 다른 단계보다도 가장 오래 갑니다.

103. 이런 슬픔이 길어지면 면역력이 약해져 감기나 위장병, 두통, 불면, 설사, 고혈압 등 다양한 질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는 어느 정도 지속할 수 있지만 1년이 넘어서까지 계속된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사별 극복 단계: 수용과 적용 단계

105. 사별은 슬픈 일이지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별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서 “삶과 죽음의 궁극적인 의미”, “자신과 타인의 관계”, “참 자신 혹은 신은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사별의 체험은 인격 성숙과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사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

106. 슬픔은 나약함의 표출이 아닙니다. 애도의 과정에서 충분하게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울고 싶을 만큼 우는 것이 더 빨리 회복하고 강해지는 길입니다. 언제까지 슬퍼해야 할지는 내 마음과 몸만이 알고 있으니 재촉하지 말고 스스로 너그럽게 대하시기 바랍니다.

107. 고인을 떠나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고통스럽습니다. 그 큰 고통을 잊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절망감, 그리움,낙심 등의 감정이 생기는 것을 인정하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109. 슬퍼하는 일에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 힘을 얻으려면 규칙적인 운동이나 균형있는 식사 등 단순하고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해야 합니다. 가능한 한 그동안 해오던 과다한 일을 줄이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건강을 관리하도록 합니다.

110. 고인과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에너지로 새로운 생활에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유언장 사례모음


*** 내가 만일 저자라면

  오늘은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매우 추운 날이었다. 한강도 꽁꽁 얼었다. 나는 셋째 주에 늘 가던 모임을 생략하고 성심여고 교정에 있는 원효로 성당엘 갔다. 이곳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신학교가 세워졌던 옛 용산 신학교 자리였다. 그곳에서 오늘 내 마음의 스승 한 분이 세례를 받게 되어 있었다. 언젠가 한번 유적지 답사를 위해  다녀왔을 뿐 평소에는 발길이 잘 닿지않는 곳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부지런히 물어가며 닿았는데...적막강산이다. 바빠서 교문을 그냥 지나쳤는데,,,다시 되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학교내 성당은 이곳뿐이라신다. 그 아름다운 성당을 밖에서 한참 맴돌았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큰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구고... 그래도 찬란하기만 하다. 사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예습을 해둔 곳이었다. 브라질의 리오에 있는 유명한 예수상처럼 두 팔을 가득 펴서 사람을 마주 안는 동상만이 나를 반긴다.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적막함 속에 잠시 배회하다 다시 교문으로 가서 경비실로 들어가 춥다고 호호 거리며 따스한 차를 한잔 청해 마셨다. 그제서야 겨우 문제해결 방법이 생각났다. 문자를 보내고 문자를 받고 바뀐 장소로 다시 찾아갔다.

아이나비 택시를 골라 탔지만 기사님도 낯선 곳이라신다. 전화로 다시 확인하고 겨우겨우 찾아 가까운 곳 어딘가에서 내렸다. 길을 다시 물어가며 수녀원으로 향하는데 그 추위속에 수녀님께서 나와 계신다. 이미 많이 늦었는데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는데 수녀님께서 굳이 성당으로 안내해 주신다. 곧이어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 두 남자가 제대 앞에 서서 지금껏 지녀왔던 세속의 삶과 결별하고 새사람이 되는 의례를 진행하고 있었다.

잠시 또 다른 세계, 카톨릭 신앙에 대한 개인적인 묵상이 필요한 것 같다.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담겠다는 약속으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고대하던 구세주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두 사건이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내려오심과,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말씀이 들려온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바로 이 순간이 예수님의 첫 순간이고, 메시아로서, 온 인류의 구세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강렬한 체험을 한 순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삶.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협조자가 당신과 함께 하고 계심을 체험하심으로써 당신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베드로 사도는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험난한 길을 걸으실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주셨기 때문이고,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첫 순간은 바로 세례를 받는 순간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자유롭게 되고, 성령 안에서 참된 생명을 나누게 되었으며,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너무 심각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어른이 되고나서 스스로 결정하여 세례를 받기로 한 것은 또 하나의 커다란 혁명이다.  피로 이루어진 혁명이 아니고 물로 이루어진 혁명이기에 더 심오한 뜻이 있는 것 같다. 내 마음의 스승은 그렇게 조용히 혁명을 선택했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답을 하셨다. “활시위를 당기듯 그렇게 저를 힘껏 당겨 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죽음에 이르기까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모두 다 쓰고 가겠습니다. 더 힘껏 저를 끌어 당겨 주십시오.”

죽음을 미리 공부하는 것은 삶을 배워나가는데 매우 유익하다. 나는 죽음 전문 작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엔 황무지에서 홀로 손가락으로 언 땅을 파헤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해 갖추어진 지식이 너무나 빈약했다. 그러나 눈먼 운명의 인도를 받아 하나씩 죽음을 배워나가며 나의 삶은 수많은 삶의 모습들을 감싸안을 수 있었다. 아마 긴 얘기는 머지않아 책 속에 다 담기겠지만 오늘은 왜 죽음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해야 하는지 한 가지만 나누고 싶다.

우리가 상가에 가면 상을 당한 사람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고 위로를 전한다. 그러나 막상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가끔씩 매우 자발적으로 개입해서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꼭 있다. 아마 나를 돌보는 천사가 가장 어려운 때에 벗이 되어주려고 찾아온 것이 아닐까?  모든 일이 지나간 다음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오늘 이 책을 리뷰해 두는 것은 곧 명절이 찾아오고 온 가족이 대가족 단위로 만나게 될 것이다. 우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유언장을 한번 써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부모님이 젊으시면 젊으실수록 이 책을 알려드리면 좋을 것 같다. 분명히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할 것이다. 결코 손해 보는 일 없이 효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처음 나오고 설명회를 할 때 , 신문기사를 보고 서울대 병원 소아병동으로 찾아갔었다. 죽음을 사람들이 두려워서 다 피해 다녔을까? 그날 그 자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물론 환자복을 입은 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은  중장년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던 질문들. 사람들은 이런 책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죽음학회는 세상에 좋은 일을 하기위해 편견을 뚫고 나온 용기있는 사람들의 역할을 해냈다. 아니,. 이제야 겨우  내게도 그 인연이 닿았던 것이겠지.....

이 책은 두꺼운 양장본 표지에 매우 간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기본 골격을 다 갖추고 있다. 그리고 실제 유언장을 써 넣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카톨릭 사제들은 유언서를 작성해 두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해가 바뀌면 다시 쓰신다. 그리고 피정이니 깊은 묵상 프로그램에서는 실제 관 속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해 보던지, 아니면 유언장을 써 보내는 순서가 있다. 실제 일상의 분주다사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혼을 위한 고요한 시간을 가져보면 매순간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흘러나올 것이다. 선 경험자들의 체험 발표이니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이 나의 체험이 되어보면 좋을 것이다. 나의 죽음을 미리 체험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스승의 세례를 기뻐하며 마음을 다해 축하드린 것은 익숙한 삶을 버리고 새 세계로 들어가는 새 마음으로 그분이 다시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도 앞서서 잘 걸어오셨지만 오늘 이 사건으로 그분은 더 가볍게 춤추듯 당신 앞의 생을 기쁘게 걸어가실 것이다, 지켜보는 우리들은 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스승의 그 복이 부럽기도 했다. 삶과 죽음이 한 몸의 두 얼굴인 우리들 인생에서 그 끝에 이르기까지 오늘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항상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삶은 분명 복을 많이 받으신 분의 삶일 것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며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자는 약속이다.

며칠 전부터 몇 개의 북리뷰를 한꺼번에 하고 있었다. 오늘 거의 마무리된 이 책은 오늘의 묵상과 함께 이렇게 씌여진다. 비공개로 가고 싶은 망설임도 있었지만 올해는 죽음 전문 작가로 세상으로 나가야 할 나의 운명이다. 용기를 내서 기록해 두는 것이니 그 속에서 마음에 드는 생각과 말만을 골라서 받아들이시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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