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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8일 11시 11분 등록
백범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를 읽고
도진순 주해/돌베개


Ⅰ. 백범일지를 읽고

1. 김구에 대한 개인적 단편들과 오해들
백범일지 표지에는 백범 김구의 웃는 모습이 있다. 두루마기를 입고, 둥그런 얼굴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쓰고, 윗니를 드러내고 웃고있다. 이 책을 읽기 전 김구에 대해 아는 것은 몇가지 안된다.
그의 이런 표지에 나온 이런 외모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기억에 하나 남았고,
동학 접주를 했다는 것과
관상이 좋지 않아 마음공부 하겠다 했던 것과,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일관되게 하나만 답을 하는 것,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일을 했다는 것과,
독립된 나라의 문지기를 자청했다는 것,
그리고 노년의 누구나 원하는 편안한 죽음이 아닌, 그 누구의 총을 맞고 죽었다는 것 정도이다.

그에 대한 나의 오해는 또 이러하다.
그의 이름이 김창수가 아닌 원래부터 김구였었을 거라는 사소한 오해에서,
그가 동학을 접했다는 기억 하나만으로 그는 여러가지 종교에서 말하는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라는 그의 생각과 포용성에 대한 오해,
그의 호 백범이 그의 행동과 외모로 미루어 백범이 ‘흰 호랑이’란 뜻일 거라는 오해. 그의 호가 말하는, 인생이 말하는 메시지에 대한 오해이다.

백범일지는 이러한 내 희미한 기억을 바로 잡고, 잘못된 오해를 바로 잡고, 그리고 또 김구의 생각을 지금의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백범의 출간사에서 밝혔듯이 백범일지가 자신의 어린 두 아들에게 유서를 대신해서 쓴 것이라면 그가 그들에게 남기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미주와 하와이에 있는 동포를 염두에 두고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것을 기록했다면 이것 역시 거기서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을 들어야 했다. 이것들은 나중에 보태어진 ‘나의 소원’ 부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 부분은 읽는 구절마다 밑줄을 그었다.

2. 다시 기억하는 김구

백범일지에 수많은 밑줄을 그으면서 김구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에 대한 탐색도 병행했다. 나는 김구에 대한 오해를 만들어 내는 샘물이기도 하지만, 그의 받아 들이는 밭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언급되었듯이, 백범일지에 기록된 사건들 중에 기억할만한 중요한 사실을 골라내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평가자가 되어버리기도 하니까.

김구는 어린시절 배움에 목말라했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힘껏 배웠다. 감옥 안에서도 열심히 책을 보았고, 심지어는 떼도적의 우두머리 격인 사람에게도 조직에 대해서 배웠다. 그가 배움의 폭이 넓었던 데는 그의 포용성 덕분인 듯 하다. 병서를 즐겨 읽고, 동학의 평등사상을 배우고, 그 후에는 유학자에게서 배웠고, 그리고, 감옥에서는 서양문물을 배우고, 우연히 따라나선 마곡사에서는 머리를 깍았고, 그리고는 또 걸시승이 되었다가 환속을 하고는, 예수교와 함께 교육운동에 앞장을 섰다. 어느 한가지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던 것이다.

김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진다. 그래서 치하포에서 왜인를 죽인 사건에대해서나 혹은 남들이 말리는 선택을 한 경우에도, 그리고 임시정부 활동중에 선택한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떳떳히 밝힐 만한 근거가 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은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실천하는 힘으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나의 소원’에서 김구가 바라는 민족상의 건설은 더욱 호소력이 있다.

김구는 그의 인생을 ‘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며, 죽으려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p.298)라고 요약해서 말하지만, 그는 그의 살아지는 대로 산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이 선 위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를 생각하며 거기서 얻은 답대로 힘껏 살았다.

‘잘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못난 사람이지만 민족의 한 분자로 살아간 기록’을 보고 한순간 이나마 마음에 요동치는 바가 있다면, ‘하층민 백정과 평민인 범부를 의미하는 백범’이라는 호를 이해한다면, 그가 소원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에 동참하는 것을 ‘대한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3. 남은 질문
백범일지는 김구의 자서전이다. 그의 일생과 그가 일생 품었던 생각을 풀어낸 글이다.

그런 자서전을 읽으면서 나에게는 이런 질문이 남는다.
‘너는 누구를 본받으려 하느냐?’(나는 아직 뚜렷한 롤 모델이 없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
'네가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민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
'너의 아들 딸 들에게 너의 한평생을 말한다면 나중에 뭐라고 말하겠느냐?'

아직 답이 없다. 그가 자문자답하면서 행동에 이르는 결론에 도달하였듯이 질문을 해보아야 겠다.

Ⅱ. 내가 저자라면
얼마 후면 다시 Me Story를 50페이지로 늘려서 쓸 것이다. 백범일지에서의 보게된 몇 가지를 적용해서 쓰게 될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그 형식이 묻어 날 것이기에.

우선은 적용해 보고 싶은 것을 기록한다면....

1) 나는 거기에 그것을 왜 쓰는지를 적어야 겠다.
'인, 신 두 아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Me Story는 '미래의 나에게'라는 제목이 걸맞을 듯 하다.

2)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지게 적는다. 그리고, 몇가지 내게 영향을 준 특이할 만한 것은 별도로 묶는다. 상권 하권의 구성 괜찮다.
이야기 구성이 아닌 것은 하권으로 해서 더욱 상세히 기술해도 좋을 듯 하다.

3) 몇개의 카테고리로 묶는다.
나는 과거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내 생각으로 윤색되어버린 과거에 대해서 편안하게 덤덤하게 쓸지는 의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울어야 할 것이 많다. 그것들을 모두 뒤섞어서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 것이 어려운 것이겠지만, 묶을 것은 묶고 떼어낼 것은 떼어내야 겠다.

4) 각각의 과거의 사건들에 소제목을 단다.
내 느낌으로 다는 것이 아니라, 지명 혹은 인명, 혹은 사건 이름으로 단다.
이번 Me Story를 쓰는 중에는 감정이라는 창을 좀 닫아 두자.

5) 명칭을 정확히 하자.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로 만나게 되었는지, 사건의 경유는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 심경의 변화는 어떠하였는지 기술하자.

6) '나의 소원'을 따라 써보자.
내가 쓰게 될 것은 내가 바라는 '나의 10대 풍광'이 될 것이다.

Ⅲ. 책 속의 한 구절(인용)

[15] 나라는 내 나라요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 삼천만이 저마다 이치를 깨달아 행한다면, 우리 나라가 완전 독립이 아니 될 수도 없고, 또 좋은 나라 큰 나라로 길이 보전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나 김구가 평생 생각하고 행한 일이 다 이러한 것이다.

[15] 나는 내가 못난 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사실을 믿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쉬지 않고 해온 것이다. 이것이 내 생애요, 내 생애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15] 그러므로 내가 이 책을 발행하는 데 동의한 것은, 잘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못난 사람이지만 민족의 한 분자로 살아간 기록이기 때문이다. 하층민 백정과 평민인 범부를 의미하는 백범이라는 내 호가 이것을 의미한다. 내가 만일 민족의 독립운동에 조금이라도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만한 것은 대한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19]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너희 또한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니, 동서고급의 위인 중 가장 숭배할 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배우고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 롤모델을 제대로 찾아야겠다. 아직 뚜렷한 롤모델을 정하지 않았는 데…… 왜 그랬지?

[27] 아버님이 사람을 잘 때리셨던 것은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고 순전히 불평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버님은 마치 [수호지]에 나오는 영웅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능멸하는 것을 보면 친하고 친하지 않음에 관계없이 참지 못하는 불 같은 성격이셨다.

[29] 어머님은 나에게
“너의 집의 허다한 풍파가 모두 술로 해서 생기니 너마저 술을 먹는다면, 나는 단연코 자살하더라도 그 꼴을 안보겠다.”
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겼다.

[32] 나무 하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그 동네 큰 서당에서 밤낮 책 읽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38] “너 그러면 풍수공부나 관상공부를 해보아라. 풍수에 능해 명당에 조상을 모시면 자손이 복록을 누리게 되고, 관상을 잘 보면 선한 사람과 군자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이체에 맞는 말이라 생각되어
“그것을 공부하여 보겠습니다. 서적을 얻어주십시오.”
* 김구는 참 긍정적이다.

[39]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相 好 不 如 身 好)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身 好 不 如 心 好)
- 마의상서
이것을 보고 나는 상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41] “천만의 말씀이오, 나는 다른 사람과 달리 동학 도인이기 때문에 선생의 교훈을 받들어 빈부 귀천에 차별 대우가 없습니다. 조금도 미안해 마시고 찾아오신 뜻이나 말씀하시오.”
나는 이 말만 들어도 별세계에 온 것 같았다.

[43] “그대가 동학을 해보니 무슨 조화가 생기더냐?고 물으면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선한 일 하게 되는 것이 동학의 조화이다.”라고 정식하게 대답하였다.

[47] 팔봉접주 김창수를 선봉으로 임명하였다. 나를 선봉으로 임명한 것은 비록 나이 어리지만 평소에 병법을 연구하였고, 또한 나의 접이 산포수로 잘 무장되어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의 이면에는 자신들이 총알받이가 되기 싫다는 이유도 있었다.
나는 최고회의 결정을 승락하였다.
* 김구는 삶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대해서 참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100% 받아들인다.

[52] 최고회의는 기회를 보아 나에게 동학 접주의 감투를 벗기기로 결정하였는데, 이것은 나에게서 병권을 박탈하자는 것이 아니요, 나의 몸을 보전케 하려는 방책이었다.
* 음……

[53] 나는 이용선의 머리를 껴안고 통곡하다 저고리를 벗어 이용선의 머리를 감싸고 동네사람들을 지휘하여 정성껏 묻어주게 했다. 그 저고리는 어머님이 내가 동학 접주로 지도자 노릇 한다고 처음으로 지어 보내신 명주저고리였다. 내가 눈 속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호곡하는 것을 본 이웃사람들이 의복을 갖다 주었다.

[61] 당시 나의 심리 상태는 매우 절박하였다. ……. 장래를 생각하면 과연 어떤 곳에다 발을 디뎌야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였던 참이었다.

[62] “사람이 자기를 알기도 쉽지 않거든 하물며 남을 어찌 밝히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현을 목표로 하여 발자취를 밟아가도록 하게. 예로부터 성현의 지위까지 도달한 자도 있고, 좀 모자란 자도 있고, 성현이 되는 길이 너무 높고 멀다 하여 중도에 달아나거나 자포자기하여 금수만도 못한 자리에 몰려 있는 자도 있다네. 자네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몇번 길을 잘못 들어서서 실패나 곤란을 경험하였더라도, 그 마음 볕이 말고 끊임없이 고치고 나아가게.(후략)
* 고능선 선생님의 말씀

[63] 고선생이 나를 겪어보시고 가장 결점으로 생각한 점은 과단력이 부족한 점인 듯하였다. 항상 무슨 일이나 밝히 보고 잘 판단하여 놓고도 실행의 첫 출발점이 되는 과단성이 없으면 다 쓸데 없다는 말을 하시면서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를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은 것은 가히 장부로다’
라는 구절을 힘있게 설명하였다.

[66] “저같이 무지하고 지각 없는 어린 것이 간들 무슨 효과를 얻겠습니까?”
“자네만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동지들이 많으면 청나라의 정계, 학계, 상계 각 방면으로 들어가서 활동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지금은 누가 그런 뜻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 자네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하겠다 싶으면 그대로 실행하여 보는 것뿐이지.”

[78] 통탄할 바, 저 왜적은 나와 함께 같은 세상을 살 수 없는 원수이다.

[94]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 일은 불가능한 일다.’
이런 생각을 하나 가슴이 심하게 울렁거렸다.
(중략)
나는 곧 자문자답해보았다.
문, ‘네가 보기에 저 왜인을 죽여 설욕하는 것이 옳다고 확신하는가?’
답, ‘그렇다.’
문, ‘너는 어릴 때부터 ’마음 좋은 사람‘되기가 소원이 아니었더냐?’
답,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원수 왜놈을 죽이려다가 성공하지 못하여 도리어 죽임을 당하면 한낱 도적의 시체로 남겨질까 미리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은 다 거짓이고, 사실은 ‘몸에 이롭고 이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는 소원만 가졌던 것이 아닌가’
자문자답 끝에 비로소 죽을 작정을 하고 나니, 가슴 속에서 일렁이던 파도는 어느덧 잔잔해지고 백 가지 계책이 줄지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103] 나의 뒤를 따라 허둥지둥 따라다니시느라 넋이 다 빠져서 내 옆에 앉아 하염없이 한숨만 짓고 계시는 어머님을 차마 뵐 수가 없었다. 이창매가 무덤 속에서 다시 살아 나와 나를 보고, 너는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는 구절을 읽지 못하였느냐고 책망하는 듯싶었다. 일어나서 출발할 때, 이창매의 무덤을 다시금 돌아보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절을 하였다.

[115]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하는 격으로 내 죽을 날이 당할 때까지 글이나 실컷 보리라 하고 손에서 책 놓을 사이 없이 열심히 글을 읽었다.

[126] 조롱을 박차가 나가야 진실로 좋은 새이며
그물을 떨치고 나가야 예사스런 물고기가 아니리.
충은 반드시 효에서 비롯되니
그대여, 자식 기다리는 어머니를 생각하소서.

[128] 나를 죽이려 애쓰는 놈은 왜구들뿐인데, 내가 그놈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옥에서 죽는다는 것은 무아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심사숙고하다가 탈옥하기로 결심하였다.
* 김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언제나 떳떳하다. 이 사건 뿐만이 아니라, 치하포에서 왜구를 죽인 것 뿐만이 아니라, 임시정부에서 경무국장 일을 할 때도 그리하였다.

[131] 사람이 현인군자에게 죄인이 되어도 하늘을 이고 땅을 밝고 부끄러운 마음 견디기 어렵거든, 하물며 저와 같이 더러운 죄인의 죄인이 되고서야 죽을 때까지 그 부끄러움을 어찌 견디랴?

[151] 하루종일 걸어서 마곡사 남쪽 산꼭대기에 오르니,
해는 황혼인데 온 산에 단풍잎은 누룻누릇 불긋불긋하다.
가을 바람에 나그네의 마음은 슬프기만 한데,
저녁 안개가 산밑에 마곡사는 마치 자물쇠를 채운듯이 둘러싸여 있다.
나같이 온갖 풍진 속 오락가락 하는 자의 더러운 발은 싫다고 거절하는 듯 하다.

[152]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혼탁한 세계에서 청량한 세계로,
지옥에서 극락으로,
세간에서 걸음을 옮겨 출세간의 길을 간다.

[153] 하룻밤 사이 청정법계에서 만가지 생각이 다 재로 돌아가버린 듯한 터였다. 나는 중이 되기로 승낙하였다. 얼마 뒤에 사제 호덕삼이 머리털을 깍는 칼을 가지고 왔다. 냇가로 나가 ‘삭발진언’을 쏭알쏭알 하더니 내 상투가 모래 위로 툭 떨어졌다. 이미 결심은 하였지만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파란만장. 동학 접주에서 이제는 중이 되었다.

[155] 나는 깜짝 놀랐다. 망명객이 되어 사방을 떠돌아다니던 때에도 내게는 영웅심과 공명심이 있었다. 평생의 한이던 상놈의 껍질을 벗고, 평등하기보다는 월등한 양반이 되어 평범한 양반에게 당해온 오랜 원한을 갚고자 하는 생각이 가슴 속에 가득하였다. 그런데 중놈이 되고 보니, 이상과 같은 생각은 허영과 야욕에 불과한 것이었다.
(중략)
‘하도 많이 돌아다녔더니 나중에는 별세계 생활을 다 하겠다.’
이런 생각에 혼자서 웃다가 탄식하다가 하였지만 순종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161] 처음에는 주점 주인이 주는 대로 소면을 먹다가 나주에는 육면을 그대로 먹었다. 불가에서 소위 말하는 “손에는 돼지머리를 들고, 입으로는 거룩하게 경전을 왼다.”는 구절과 가깝게 되었으니, 평양성에서는 시쳇말로 걸시승 이라 하였다.
* 김구는 포용성이 대단히 크다. 그냥 순하게 받아들인다.

[165] “형님 내외분은 창수놈 글공부시킨 죄로 온갖 고생을 하셨으면서도 아직 깨닫지 못하시오?”
작은 아버지의 관찰이 사실은 바로 본 것이었다. 만일 글을 몰랐다면 동학 두령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인천 사건도 업었을 것이다. 텃골의 순진한 한 농군으로 땅 갈아먹고 우물 파 마시며 살았을 것이다. 세상을 요란케 할 일은 없었을 것이 명백하다.
* 어느날 귀자는 내게 말했다. 마음이 가는 것을 막지 말라고. 그말을 듣고 내게 다가 오는 일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171] “군자는 알고도 속아 줄 수 있다. (君子 可 欺 以 方)” – 맹자

[179] 설사 머리를 천 길이나 길러서 매우 크고 훌륭한 상투를 위에 얹었다 손 치더라도 왜놈이나 양놈이 그 상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어찌하겠습니까? 또 녹의복건을 아무리 훌륭하게 입었다 하여도 왜인이나 양인들이 우러러 절하지도 않을 것이고 무릎 꿇지도 않을 것입니다.

[179] 우리는 세계 문명 각국의 교육제도를 본받아서 학교를 세우고 이 나라 백성의 자녀들을 교육하여 그들을 건전한 2세들로 양성해야 합니다. 또한 애국지사들을 규합하여 이 나라 국민으로 하여금 나라 잃은 고통이 어떤 것인지, 나라가 발전하는 복락이 어떤 것인지를 알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망하는 것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길이라 제자는 생각합니다.
* 교육 부분에 눈길이 많이 가서 줄을 자꾸 치게 된다.

[183] “자네의 뜻에 맞는 처녀란 어떤 처녀인가?”
“첫째 재산을 따지지 않는다. 둘째 처녀는 학식이 있어야 한다. 셋째 직접 상면하여 서로의 마음이 맞으면 결혼한다. 이렇습니다.”
“조건이 또 있어? 들어보세.”
“다른것이 아니구요. 지금 약혼을 한다 하여도 내가 탈상한 후 결혼할 것이니, 그 동안 낭자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한문 공부를 정성껏 한다는 조건입니다.”
“여보게, 혼인하여 데려다가 공부를 시키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네 마음대로 하면 될 것 아닌가.”
“거의 1년 동안의 세월을 허송할 필요가 있습니까?”

[201] 나는 자기 자손과 동년배요, 학식으로나 인품으로나 선생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지팡이를 짚고 며칠에 한 번씩 반드시 문전에 와서,
“선생님 평안하시오?”
라로 말씀을 하고 가시는 것이었다. 그것은 “죽은 말뼈를 오백 금으로 사는 것”만은 아니고, 제2세 국민을 가르치는 업무를 존대하는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이리라. 나에게뿐 아니라 애국자라면 누구에게든 뜨거운 동정을 가지시는 것을 보았다.
* 해주 서촌 강경희씨의 이야기

[204] 환등기구를 가지고 고향에 갔을 때, 나는 인근 양반 상놈을 다 모아놓고, 환등회 석상에서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221] 세 놈이 마주 들어다가 유치장에 눕힐 때는 이미 동창이 밝았다. 내가 신문실에 끌려가던 때는 어제 해진 후였다. 처음에 성명부터 신문을 시작하던 놈이 불을 밝히고 밤을 새우는 것과 그놈들이 온 힘을 다해 사무에 충실한 것을 생각할 때에 자괴심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평소에 무슨 일이든지 성심껏 보거니 하는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나라를 남에게 먹히지 않게 구원하겠다는 내가, 남의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 되씹는 저 왜구와 같이 밤을 새워 일한 적이 몇 번이었던가? 스스로 물어보니 온몸이 바늘방석에 누운듯이 고통스런 와중에도 내가 과연 망국노의 근성이 있지 않은가 하여 부끄러운 눈물이 눈시울에 가득 찼다.

[225] 나는 평소 우리 한인 정탐을 몹시 미워해서 여지없이 공격하곤 했는데, 나에게 공격을 받은 정탐배까지도 자기가 잘 아는 그 사실만은 밀고하지 않고 비밀을 지켜준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나의 제자로서 형사가 된 김홍식과, 같은 학교 직원으로 있던 원인상 등부터 밀고하지 않은 것이니, 그러고 보면 각처 한인 형사와 고등정탐까지도 그 양심에 애국심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사회에서 나를 이같이 동정해 주었으니 나로서는 최후의 한 숨까지 동지를 위하여 분투하고 원수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 치하포 사건과 감옥을 도주한 것 사실을 아무도 밀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구는 그 사실에 감탄하고 있다.

[228] 그런 때 다른 사람이 문전에서 사식을 먹으면, 고깃국과 김치 냄새가 코에 들어와서 미칠 듯이 먹고 싶어진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음식 냄새가 코에 들어올 때마다, 나도 남에게 해가 될 말이라도 하고서 가져오는 밥이나 다 받아 먹을까, 또한 아내가 나이 젊으니 몸이라도 팔아서 좋은 음식이나 늘 하여다 주면 좋겠다 하는 더러운 생각이 났다.

[232] 하인에게 쌀을 한짐을 지우고 와서 문 안에 들여놓고, 너무 기뻐하며 말의 순서도 차리지 못했다.
“우리 두환이 놈이 어제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와 내게 공대하고, 저의 모친에게는 전과 같이 ‘해라’를 하더니 깜짝 놀라 ‘에고 잘못했습니다.’하고 말을 고치며 ‘선생님 교훈’이라고 합디다. 선생님, 진지 많이 잡수시고 그놈 잘 교육하여 주십시오, 밥맛 좋은 쌀이 들어왔기로 좀 가져왔습니다.”
나도 마음이 기뻐서 웃었다.

[238] 나의 심리 상태가 체포된 이전과 이후에 큰 변동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나의 변화는 경무총감부에서 심문받을 때 와타나베 놈이, 다시 마주앉은 오늘의 김구가 17년 전 김창수인 것도 모르고, 대담하게 자기 가슴에는 X광선을 붙이고 있어 출생 이후 지금껏 나의 일체 행동을 투시하고 있으니 터럭만큼이라도 숨기면 당장 쳐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던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태산처럼 크게 보이던 왜놈이 그때부터 겨자씨와 같이 작아 보였다.

[261] 그 자격자란 것은,
첫째, 눈빛이 굳세고 맑을 것,
둘째, 눈 아래가 맑고,
셋째, 담력이 강실할 것,
넷째, 성품이 침착할 것.
[264] 내가 국사를 위하여 원대한 계획을 품고 비밀결사로 일어난 신민회 회원의 한 사람이지만, 저 강도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의 조직과 훈련이 아주 유치한 것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 떼도적이 자신의 조직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었다. 김구는 이 사람에게 배운 방법을 나중에 임시정부 활동할 때 몇가지를 써먹는다.

[267] 연하를 백범으로 고친 것은 감옥에서 여러 해 연구에 의해 우리나라 하등사화, 곧 백정(白丁) 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267] 복역중에 뜰을 쓸 때나 유리창을 닦고 할 때는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우리도 어느 때 독립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는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 달라’고.

[274] “내가 평일 음주하는 것을 군들이 보았는가? 먹을 줄 모르는 술을 어찌 마시는가?”
* 이 양반을 술자리에 불러내기는 어렵겠군. 하하하. 어떻게 인터뷰를 한다?
어머니가 술 먹지 말라고 한 것은 결국 안깨셨나?

[283] “독립은 만세를 불러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장래 일을 계획 진행하여야 할 터인즉 나의 참, 불참이 문제가 아니니, 자네들을 어서 만세를 부르라.”
* 무장독립투쟁을 결심한 사람들은 3.1만세운동에 대해서 이러한 태도였던 것 같다.

[288] 대개 사람이 귀하면 궁함이 없겠고, 궁하면 귀함이 없을 것이나,
나는 귀해도 궁하고, 궁해도 궁한 일생을 지냈다.

[298] 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며, 죽으려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

[317] 그림자 하나 짝하여 홀로 외롭게 살면서, 잠은 정처에서 자고 밥은 직업 있는 동포들 집에서 얻어먹으며 지내니, 나는 거지 중의 상거지였다.

[353] 정주의 방귀를 ‘향기롭다’고 하던 자들을 비웃던 그 입과 혀로 레닌의 방귀는 ‘달다’하니, 청년들이여 정신을 좀 차릴지어다.

[357] “통일하자는 대원칙은 같으나, 그 내용이 같은 이불 밑에서 다른 꿈을 꾸는 것으로 간파되니, 군의 소견은 어떻소?”

[367] “나는 지금부터 시작하여 ‘너’라는 말을 고쳐 ‘자네’라 하고, 잘못하는 일이라도 말로 꾸짖고 회초리를 쓰지 않겠네. 듣건대 자네가 군관학교를 하면서 다수 청년을 거느리고 남의 사표가 된 모양이니, 나도 체면을 세워주자는 것일세.”
이로 인해 나는 나이 육십에 어머님이 주시는 큰 은전을 입었다.

[371] “자네 생명은 상제께서 보호하시는 줄 아네. 사악한 것이 옳은 것을 범하지 못하지. 하나 유감스러운 것은 이운환 정탐꾼도 한인인즉 한인의 총을 맞고 산 것은 일인의 총에 죽는 것보다 못하네.”
* 이 말은 나중에 또 총을 맞았을 때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한인의 손에 두번 총을 맞은 사람.

[378] “통일은 찬성하나, 김약산은 공산주의자요, 선생이 공산당과 합작하여 통일 하는 날, 우리 미국 교포와는 인연이 끊어지는 줄 알고 통일운동을 하시오.”
* 사상문제 때문에 독립운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398] “왜적이 항복한답니다.”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 그런데, 그러한 계획을 한번 실시해 보지도 못하고 왜적이 항복하였으니,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

[409] 착륙 즉시 눈앞에 보이는 두 가지 감격이 있으니, 기쁨이 그 하나요, 슬픔도 그 하나이다. 책보를 메고 길에 줄지어 돌아가는 학생의 활발 명랑한 기상을 보니 우리 민족 장래가 유망되었다. 이것이 기쁨의 하나이다. 반면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동포들의 사는 가옥을 보니, 빈틈없이 이어져 집이 땅같이 낮게 붙어 있었다. 동포들의 생활 수준이 저만치 저열하다는 것을 짐작한 것이 유감의 하나였다.

[420] 눈 짐작으로 어머님이 앉으셨던 자리를 찾아보았다. 묘와 산천은 옛모습 그대로 나를 환영하였고, 좌우 추종하는 경관들도 그때 나를 구속해가던 그 경관들과 흡사하였다. 그러나 문득 뒤돌아보니 그 옛날 나를 따라 오시던 어머님 얼굴만은 뵈올 길이 없으니, 앞이 캄캄하여 쏟아지는 옛추억의 눈물을 금할 길 없었다. 중경에서 운명하실 때,
“나의 원통한 생각을 어찌하면 좋으냐.”
하시던 어머님의 최후의 말씀을 생각하니, 그것이 이날 이 자리에 모자가 같이 옛이야기를 하지 못할 줄 예측하시고 하신 말씀 같아 슬픈 마음을 진정하키 어려웠다.

[423]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423]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나라에 가장 비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424]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지만,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 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424]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서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425] 일찍이 어느 민족 안에서나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두 파 세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지만, 그것도 바람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426]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절제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하는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을 뿐더러, 우리 민족의 정신력을 자유로 발휘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426]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길래 우리자 하자는 것이다.

[427] 자유와 자유가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 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개인, 도는 일계급에서 온다.

[427]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독재 중에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 독재다. 군주나 기타 개인 독재자의 독재는 그 개인만 제거되면 그만이거니와 다수의 개인으로 조직된 한 계급이 독재의 주체일 때에는 이것을 제거하기는 심히 어려운 것이니, 이러한 독재는 그보다도 큰 조직의 힘이거나 국제적 압력이 아니고는 깨뜨리기 어려운 것이다.

[427] 모든 계급 독재 중에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다.
(중략) 왜 그런고 하면 국민의 머리 속에 아무리 좋은 사상과 경륜이 생기더라도 그가 집권 계급의 사람이 아닌 이상, 또 그것이 사문난적이라는 범주 밖에 나지 않는 이상 세상에 발표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싹이 트려다가 눌려 국은 새 사상, 싹도 트지 못하고 밟혀버린 경륜이 얼마나 많았을까.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통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오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는 것이다.

[428] 어느 한 학설을 표준으로 하여서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은 어느 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여서 국민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아니한 일이다.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아니한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에는 유교도 성하고, 불교도, 예수교도 자유로 발달하고, 또 철학을 보더라도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다 들어와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해야 할 것이니, 이러하고야만 비로소 자유의 나라라 할 것이요, 이러한 자유의 나라에서만 인류의 가장 크고 가장 놓은 문화가 발생할 것이다.

[429] 대개 사람이란 전지전능할 수가 없고 학설이란 완전무결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한 사람의 생각, 한 학설의 원리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일시 속한 진보를 보이는 듯하더라도 필경은 병통이 생겨서 그야말로 변증법적인 폭력의 혁명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430] 백성들의 작은 의견은 이해 관계로 결정되거니와, 큰 의견은 그 국민성과 신앙 및 철학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이 생긴다. 국민성을 보존하는 것이나 수정하고 향상하는 것이 문화와 교육의 힘이요, 산업의 방향도 문화와 교육으로 결정됨이 큰 까닭이다. 교육이란 결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 어떠한 철학의 기초 위에, 어떠한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곧 국민교육이다. 그러므로 좋은 민주주의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다.

[430] 일부 당파나 한 계급의 철학으로 다른 다수를 강제함이 없고, 또 현재 우리들의 이론으로 우리 자손의 사상과 신앙의 자유를 속박함이 없는 나라, 천지와 같이 넓고 자유로운 나라, 그러면서도 사랑의 덕과 법의 질서가 우주 자연의 법칙과 같이 준수되는 우리나라를 건설하자고.

[431]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시픈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432] 우리의 용모는 화기에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이 태탕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 각자가 한번 마음을 고쳐먹음으로써 되고, 그러한 정신의 교육으로 영속될 것이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 원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다.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 사부님은 혹시 김구가 롤모델이지 않을까? 코리아니티가 생각난다.

[433] 우리 민족을 인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433] 내 나이 이제70이 넘었으니, 직접 국민교육에 종사할 시일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할 수 없다.
IP *.72.1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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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6.18 12:47:11 *.99.241.60
문득 백범 선생님 책을 보면서 앞으로의 책이 정말로 재미있을 것이라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전에 보았던 책들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고,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마음으로 읽는 책이 정말 좋아요.
나의 소원과 10대 풍광의 연결도 상당히 의미가 있네요.
나도 따라 해봐야지...

일기에 크고 많은 숙제를 잔뜩 내준것 같아서 힘들기도 하지만,
좋은 모델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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斗海
2007.06.18 18:21:26 *.244.221.2
[15] 나는 내가 못난 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사실을 믿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쉬지 않고 해온 것이다. 이것이 내 생애요, 내 생애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다른 말도 다 좋지만 이 말이 가장 가슴에 박히네여..
아무리 못 났더라도 국민의 하나라는 말.. 반대로 생각하면 촌 구석의
촌로도 다 같은 국민이고 존중해줘야 할 인간이라는 뜻이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남을 도와 줄 수 있는 사람...
진정성이 담보된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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