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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일 13시 14분 등록
1.저자에 대하여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삼미(三眉)·여유당(與猶堂)·사암(俟菴)·자하도인(紫霞道人)·탁옹(籜翁)·태수(苔叟)·문암일인(門巖逸人)·철마산초(鐵馬山樵). 가톨릭 세례명 안드레아. 시호 문도(文度). 광주(廣州) 출생이다.

1776년(정조 즉위) 남인 시파가 등용될 때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상경, 이듬해 이가환(李家煥) 및 이승훈(李昇薰)을 통해 이익(李瀷)의 유고를 얻어 보고 그 학문에 감동되었다. 17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經義進土)가 되어 어전에서 《중용》을 강의하고, 1784년 이벽(李蘗)에게서 서학(西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자를 본 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假注書)를 거쳐 검열(檢閱)이 되었으나, 가톨릭교인이라 하여 같은 남인인 공서파(功西派)의 탄핵을 받고 해미(海美)에 유배되었다.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持平)으로 등용되고 17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水原城) 수축에 기여하였다.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徐龍輔)를 파직시키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이듬해 병조참의로 있을 때 주문모(周文謨)사건에 둘째 형 약전(若銓)과 함께 연루되어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으로 좌천되었다가 규장각의 부사직(副司直)을 맡고 97년 승지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자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사의를 표명하였다. 그 후 곡산부사(谷山府使)로 있으면서 치적을 올렸고, 1799년 다시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다시 모함을 받아 사직하였다. 그를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순조 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장기(長鬐)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에 연루되어 강진(康津)으로 이배되었다.

그 곳 다산(茶山) 기슭에 있는 윤박(尹博)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학문체계는 유형원(柳馨遠)과 이익을 잇는 실학의 중농주의적 학풍을 계승한 것이며, 또한 박지원(朴趾源)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北學派)의 기술도입론을 받아들여 실학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에 뛰어나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1910년(융희 4) 규장각제학(提學)에 추증되었고, 1959년 정다산기념사업회에 의해 마현(馬峴) 묘전(墓前)에 비가 건립되었다. 저서에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가 있고, 그 속에《목민심서(牧民心書)》《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마과회통(麻科會通)》《모시강의(毛詩講義)《매씨서평(梅氏書平)》 《상서고훈(尙書古訓)》《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상례사전(喪禮四箋)》《사례가식(四禮家式)》《악서고존(樂書孤存)》《주역심전(周易心箋)》《역학제언(易學諸言)》《춘추고징(春秋考徵)》《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맹자요의(孟子要義)》 등이 실려 있다.



2. 내 마음 속에 들어온 글귀 및 감상

기記
취몽재기醉夢齋記
병이 위독한 사람은 병든 것을 그 스스로 알지 모사고, 병이 들었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병이 심한 것이 아니다. 미친 사람은 미친 것을 그 스스로 알지 못하고, 미쳤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진짜 미친 것이 아니다. 간사함ㆍ음탕함ㆍ게으름에 빠진 사람은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잘못을 고칠 수 있다.
굴원屈原은 취한 사람이다. 그는 성질이 강직하고 곧으면 몸을 망치고, 재능이 뛰어나면 끝내 화를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비록 취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 사람은 크게 취한 자이다. p14

장자莊子는 이미 깬 사람이다. 그러므로 아주 장수한 사람과 어린 나이에 죽는 것을 한가지로 여겨 오래 사는 것과 짧게 사는 것을 같은 차원에서 보았으니, 이는 환하게 깨어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꿈속에서 또 꿈을 꾼다.”고 말한 것이다. 대체로 몸소 본 것을 또다시 돌이켜 살피면서 말하기를, ‘깨었다惺惺’, ‘각覺했다’. ‘오悟했다’고 하는 것은 깊이 휘하고 잠들었다는 증거이므로 스스로 재齋에 취몽醉夢이라고 이름을 붙인 자가 있다면, 이는 혹 술과 잠에서 깰 기미가 있는 사람이다. p15

위기지학爲)己之學 : 자신을 위한 학문이라는 뜻
위인지학爲人之學 : 과거공부 등 출세를 위해서 하는 학문

어근버근: 서로 마음이 맞지 아니하여 사이가 꽤 벌어지는 모양

득월당기得月當記
다만 달이 예로부터 하늘에 있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얻었음으로, 본체만체하며 버려두고 돌아보지도 않는 것이다. 슬프다. 내가 참으로 그것을 갖는다면 이는 내가 얻은 것이다. 그 예로부터 존재하여 모든 사람이 얻었던 것이야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오로지 사사로운 욕심과 혼자만이 차지하려는 마음을 애써 버려야 할 것이다. p23

여유당기與猶堂記
노자老子의 말을 보건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與,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猶).”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마음에 크게 두려움이 있어서이므로, 마음에 크게 두려움이 있는 것은 또한 그만둔다.

모든 마음에서 일어나고 뜻에서 싹트는 것은 매우 부득이한 것이 아니면 그만두며, 매우 부득이한 것일지라도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그만둔다. p25

鄭孝子傳
부절符節 :[명사]예전에, 돌이나 대나무·옥 따위로 만들어 신표로 삼던 물건. 주로 사신들이 가지고 다녔으며 둘로 갈라서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다니면서 신분의 증거로 사용하였다. ≒부계
“네가 한 번 죽음으로써 나는 세 가지를 잃었다. 아들을 잃고 친구를 잃고 스승을 잃었다.”

써니: 자식은 오롯이 자식의 역할만이 본분이 아니다. 그 아비나 어미로 하여 자녀이고 친구이며 스승인 것이다. 그러하니 그 슬픔이야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더군다나 정효자와 같다면야 이루 말해 무엇하리. 이를 백범일지에서 백범과 그의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자식은 성장시에는 근심의 애물단지이면서, 자라면서는 누구보다 속내를 이해할 수 있는 가까운 친구이며, 늙어서는 오히려 부모가 공들인 만큼의 스승이라. 살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의 어여쁘다가, 인생을 함께 논하는 다정한 벗이었다가, 늙어서는 자신의 등불과도 같은 현자로서, 항상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믿고 깨닫게 하는 인생의 스승을 넘어 절대적 사랑의 실제적 신앙이요, 기도의 은혜/성불인 것이리라.

첫 번째 투옥, 인천으로 이감
강화도를 지날 때쯤, 순검들이 마음 놓고 잠든 사이에 어머님이 조용히 입안엣 말씀으로, “네가 이제 왜놈 손에 죽을 터이니, 차라리 맑고 맑은 이 물에 나와 같이 죽어서 귀신이라도 함께 다니자.” 고 하시며 내 손을 끌고 뱃전으로 나가셨다. “어머님은 자식이 이번에 죽을 줄 아십니까? 결코 죽지 않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죽였으니 하늘이 도우실 테지요. 분명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그저 위안하는 말로 들으시고 다시 내 손을 잡아 끄셨다. 자식의 말을 왜 안 믿으시냐고 한 번 더 간곡하게 말씀드리자 그제야 투신할 결심을 버리고 말씀하셨다.
“너의 아버님과도 약속하였다. 네가 죽는 날이면 우리 둘도 같이 죽자고.”
어머님은 그때부터 내가 죽지 않을 거라 한 말을 어느 정도 믿으셨던 모양이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비비시면서 알아듣지 못할 낮은 음성으로 축원을 하셨다. (백범일지 p76)

신지식을 접하고 교수형을 면하다
감옥에 있는 동안 나는 무엇보다 책 읽기에 힘썼다. 아버님이『대학』大學 한 질을 사 넣어 주셨으므로 매일 그것을 읽고 외웠고, 또한 신서적新書籍도 많이 읽었다. (백범일지 p85)

어머님은 상해 안고은 군의 집에 하룻밤 묵으시고, 가흥 엄항섭군의 집으로 오셨다. 남경에서 이 소식을 듣고 나는 가흥으로 가서 어머님을 다시 뵙게 되었다. 9년 만에 다시 만나서 어머님이 하신 첫 말씀은, “나는 지금부터 ‘너’라는 말을 고쳐 ‘자네’라 하고,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말로만 꾸짖고 회초리를 쓰지 않겠네. 듣건대 자네가 군관학교를 하면서 많은 청년을 거느리고 남의 사표師表가 된 모양이니, 나도 체면을 세워 주자는 것일세.”였다. 이로써 나는 나이 육십에 어머님이 내리시는 큰 은혜를 입었다. (백범일지 p261)

어머님은 조금도 흔들리는 기색 없이 이 말씀뿐이셨다.
“자네의 생명은 상제上帝께서 보호하시는 줄 아네. 사악한 것이 옳은 것을 범하지 못하지. 허나 참으로 유감스럽네. 정탐꾼 이운환도 한인이니, 한인의 총을 맞고 산 것은 일인의 총에 죽든 것보다 못하네.” (백범일지 p268)

가훈家誡(가계)
학연에게 보여주는 가훈 示學淵家誡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행하는 일은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로써 근본을 삼아야 하니, 이 점에 자기의 본분을 다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비록 학식이 뛰어나고 문장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이는 바로 흙담에다 색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 몸을 이미 엄정하게 닦았다면 그 벗을 사귀는 것도 자연히 단정한 사람일 것이다. 서로를 알아주는 지기는 서로 모이게 되는 것이므로 결코 특별한 힘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p61

무릇 천륜에 야박한 사람은 가까이해서도 안 되고 믿어서도 안 되며, 비록 충후忠厚하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온 정성을 다해 나를 섬기더라도,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끝내는 은혜를 배반하고 의리를 망각하여 아침에는 따뜻하게 대하다가 저녁에는 냉정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을 알아보려면 먼저 가정에서의 행실을 살펴야 한다. p62

임금을 섬기는 방법이란 임금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임금에게 신임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침저녁으로 가까이 모시고 있는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지 않으며, 사부詞賦를 잘 읊는 사람도 임금이 좋아하지 않으며, 임금의 얼굴 표정을 살피며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지 않으며, 거듭 관직을 버리고 가는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지 않으며, 위의威儀가 장엄하지 않은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지 않으며, 측근 신하의 세력에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지 않는다.

또 연회에서 주고받는 말이 온화하고, 형편에 알맞을 때에 비밀스레 부탁하며 마음과 몸을 의탁하고, 보좌 역할을 다 맡기면서, 서찰이 연이어지고 하사품이 아무리 잦아도 모두가 임금의 은총이라고만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뭇사람들이 시기하여 재해가 몸에 미칠 뿐만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한 품계나 반 등급도 더 보탬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임금도 역시 혐의를 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첩처럼 기르고 종처럼 일을 시켜 수고로운 일만 도맡아 할 뿐 재상으로 올려 쓰이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무릇 사군자士君子로서 초야에서 갓 벼슬길에 나온 자가 가장 좋은데, 이때에는 임금이 어떤 인품인지를 알지 못하므로 문자를 올려 바칠 때 논책論策 등에서 성실하고 강직하고 적절하게 하여도 해가 없는 것이다. 아름다운 말과 글귀로 문장이나 꾸미는 조그마한 기교는 비록 한 시대에 회자된다 하더라도 배우가 무대에 올라 우스갯짓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p64

지위가 낮은 벼슬에 있을 때는 온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공무에 힘을 써야 하고 언관言官의 지위에 있을 때는 모름지기 날마다 격언과 곧은 의론을 올려서 위로는 임금의 과실을 비판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 혹 사악한 관리를 공격하여 제거하되 모름지기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해야 하며,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은 탐욕스럽고 비루하며 음탕하고 사치스러운 것만을 지적해야지, 의리에만 치우쳐서 자기와 뜻이 같은 사람이면 편을 들고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이면 공격해서 함정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벼슬에서 해임되면 그날로 고향에 돌아가야 하고, 아무리 친한 벗이나 동지가 간절히 만류하더라도 듣지 말아야 한다. p65

써니: 이 부분은 왜 그러한 걸까? 체통에 손상만 가져올 뿐 결국에는 이로울 것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인데... 하기는 무리배들이 도모를 청해오는 수도 있고 하니 오로지 몸을 단정히 할 때라 이르는 것이거늘 근신하며 알맞은 때를 기다리라 이름일 것이다.

두 아들에게 보여주는 가훈 示二子家誡
대체로 저술하는 법은 우선 경적經籍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고 그 다음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학문이어야 하며, 국경을 지키고 성을 쌓는 기구의 제도로 외침을 막아낼 수 있는 분야의 것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질구레한 이야기들로 구차하게 한때의 괴상한 웃음이나 자아내게 하는 책이라든지, 진부하고 새롭지 못한 이야기나 지루하고 쓸데없는 논의와 같은 것들은 다만 종이와 먹만 허비할 뿐이니, 좋은 과일나무를 심고 좋은 채소를 가꾸어 생전의 살 도리나 넉넉하게 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p71

생각해보건대 재난이 앞에 닫쳐올 때는 이렇게 활달한 기상을 지닐 수 없었으나 재난을 당하고 난 이후로는 아마도 재난에 대한 걱정은 없지 않았겠는가. 선배의 말을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러나 전적으로 기상의 화려함만 취하여 시를 짓는다면 시의 풍격을 이룰 수 없다.
무릇 시에는 정신과 기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쓸쓸하여 산만하기만 하여 결속과 단속의 묘미가 없는 시는 그 사람의 빈궁과 영달은 고사하고 수명도 길지 못하니, 이 점은 내가 여러 차례 시험한 것들이다.
『시경』3백 편은 모드 성현들이 뜻을 잃고 시대를 근심한 작품들이다. 그러므로 시에는 반드시 마음에 깊이 느낀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절대로 미묘하고 완곡하게 표현을 해야지 얄팍하게 드러나도록 해서는 안 된다. p72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는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 p73

이러한 때에, 만약 어떤 도량이 넓은 남자가 아리땁고 지혜로운 부인을 감동시켜 숲 같은 도량을 넓혀주고 태양처럼 밝은 마음을 갖게 하여 여자의 도리를 지켜 어린아이처럼, 창자 없는 것처럼, 뼈 없는 벌레처럼, 갈천씨葛天氏의 백성처럼, 마음을 가라앉히고 선정선정에 들어간 승려처럼 하여 저쪽에서 돌을 던지면 이쪽에서는 옥돌로 보답하고, 저쪽에서 칼을 가지고 나오면 이쪽에서는 단술로 대접해주지 않는다면, 서로 눈을 흘겨보며 내고 다투다가 죽이기까지 하는 등 결국 집안을 고야 말 것이다. p75

선을 행하는 것이 복을 받는 도가 되므로 군자는 부지런히 선을 행할 뿐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p76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하루아침의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가버리는 사람은 천한 무지렁이로 끝나고 말 뿐이다. p77

군자는 책을 지어 세상에 전하려는 것은 오직 한 사람이 알아주기만 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 것이다. p77

군자는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눈동자를 바로하고 입을 다물고 단정히 앉았기를 진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엄숙한 자세를 하고 말은 성실하고도 인정이 두텁게 하고 엄정해야 한다. 그 처신이 이와 같은 다음에야 일반 사람들이 무서워서 복종할 것이며 명성도 퍼져 오래도록 전해질 것이다.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은 많고 이치를 터득한 사람은 적은데, 어느 누가 보기 쉬운 위의를 버리고 알기 어려운 의리를 별스럽게 구하려고 하겠느냐? 고상하고 정묘한 학문은 알아주는 사람이 더욱 적어서 비록 주공周公과 공자를 계승할 도를 찾아내고 양웅楊雄이나 유향의 문장을 뛰어넘는다 하더라도 알아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 점을 알아서 학문을 깊이 연구하는 노력은 조금 늦추더라도 먼저 올바른 몸가짐의 공부에 힘써 육중한 산처럼 우뚝 솟은 모습으로 고요히 앉아 있는 자세를 익혀야 한다.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하는 데도 먼저 기상을 점검해서 자기 본령을 세울 줄 안 다음에 점차로 저술에 마음을 기울여여만이 한마디 말, 한 구절의 글이 모두 남들이 아끼고 애호하는 바가 될 것이다. 만약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경시하여 땅에 버려진 흙같이 한다면 이는 정말 끝나버리는 일일 뿐이다. p79

형체가 있는 것은 파괴되기 쉽지만 형체가 없는 것은 없애기가 어려운 것이다. 자기가 자기기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형체로 사용하는 것이요, 제 재물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은 정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된다. 물질로써 물질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지는 낭패를 당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으로는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도둑에게 빼앗길 염려도 없다. 불에 타버릴 걱정도 없고, 소나 말이 운반해야 할 수고로움도 없이 자기가 죽은 뒤까지 지나고 가서 천년토록 꽃다운 명성을 전할 수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있겠느냐? 재물은 더욱 단단히 잡으려 하면 더욱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것이니 재화야 말로 미꾸라지 같은 것이다. p80

아아! 천하에 이 어린아이처럼 울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저 벼슬을 잃고 세력을 잃은 자나 재물을 손해보고 돈을 잃은 자나 아들을 잃고 애통해하다 죽음에 이르게 된 자는 모두 달관達觀한 사람의 안목으로 본다면 모두 한 톨의 밤과 같은 유인 것이다. p 81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습관을 고치지 않는다면 아무리 기름진 곳에 살더라도 배고픔과 추위를 면하지 못할 것이니 옛 터전을 굳게 지켜야 할 것이다. p81

“우주宇宙 사이의 일이란 바로 자기 분수 안의 일이요, 자기 분수 안의 일은 바로 우주 사이의 일이다.”

사대부의 마음은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이 털긑만큼도 가린 곳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에 부끄럽고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을 전혀 범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가 생기는 것이다. 만일 포목 몇 자, 동전 몇 닢 때문에 잠깐이라도 양심을 져버리는 이이 있으면 그 즉시 호연지기가 없어지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람이 되느냐 귀신이 되느냐 하는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p82

다음으로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가 모두 완전하더라도 구멍 하나가 새면 이는 바로 깨진 옹기그릇일 뿐이요, 백 마디가 모두 신뢰할 만하더라도 한마디의 거짓이 있다면 이건 바로 도깨비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너희들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 말을 과장하여 떠벌리는 사람은 일반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법이니 가난하고 천한 사람일수록 더욱 말을 참아야 한다. p83

나는 논밭과 동산을 너희에게 남겨줄 수 있을 만한 벼슬은 하지 않았다만 오직 두 글자의 신비로운 부적이 있어서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할 수 있기에 이제 너희들에게 주노니 너희는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근勤’이요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전답이나 비옥한 토지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필요한 곳에 쓴다 해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p83

음식이란 생명만 연장하면 된다. 모든 맛있는 횟감이나 생선도 입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버리므로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전에 사람들은 더럽다고 침을 뱉을 것이다. p84

오직 하나 속일 게 있으니 바로 자기의 입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식물이 속이더라도 잠깐 그때를 지나면 되니 이는 괜찮은 방법이다. 금년 여름에 내가 다산에 있을 때 상추로 쌈을 싸서 먹으니 손님이 물었다.
“쌈을 싸서 먹는 게 절여서 먹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건 나의 입을 속이는 법일세.”

써니: 요즘은 남녀불문 젊은 사람들이 집을 나와 활동을 많이 하는 관계로 식문화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중요해 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많이 먹을 필요는 없지만 간편하고 맛있게 다이어트와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전략적 식생활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어지고 있다. 그래서 먹거리가 점점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리라고 본다. 이는 예전의 보리 고개 등의 궁핍하고 척박한 식생활을 벗어나 21세기형 양질의 새로운 먹거리 문화가 대두되어 진다고 하겠다.
향인은 대표적 싱글족 커리어우먼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녀의 먹거리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써니: 향인님은 식생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생각하나요?

향인: 나야 뭐, 우리 돌쇠하고 단 둘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역시 먹는 것은 신경에 쓰이지. 요즘에는 연구원생활까지 겹치는 통에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지. 먹는 다는 것이 그래요, 혼자 있으면 그다지 신경을 안 쓰게 되지요. 물론 간식거리야 늘 떨어지지 않지만 나 혼자 먹겠다고 끓이고, 삼고, 지지고, 볶고 하는 일은 별로 안 하게 되지.

자산: 누나는 말야, 살림 잘 할 것 같아. 시집가면 아마 굉장히 잘 할 거야. 눈치가 100단 이거든. 기업에서 그 자리까지 올라갈 때는 알아봐야해. 남편 비위도 잘 맞출 걸. 껄껄~껄. 근데 좀 첫인상이 까칠해서...

향인: 그래, 맞아. 나 살림 잘해. 근데 인간들이 다 어디가고 나를 외롭게 하는 거야. 써니야, 난 이게 뭐니. 가보지도 못했잖아? 까칠하긴? 니들이 나를 몰라서 그래. 알려면 좀 제대로 알아라. 야, 인간들이 얼마나 답답한 줄 알아? 내가 아주 미쳐요,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낑낑 대질 않나, 꼴에 우기기는 또... 내가 속 뒤집어질 때가 하루에도 열두 번이야, 생각하면 열이 뻗친다, 뻗쳐.

써니: 그러니까 좀 벗어, 벗으라니깐. 그걸 하나 못 잡아채나? 내가 하나 주서다 줘?
김치찌개는 엄청 좋아해요, 김치는 어떻게 하는데? 어머니가 해주시나 백화점 가서 사다가 드시나? 그만 좀 재고 눈높이만 좀 낮춰. 그냥 말 잘 듣는 순박한 ㄴㅗㅁ으로 다가 가르치며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향인: 그나저나 써니야, 김치 좀 어떻게 해봐라. 김치 때문에 내가...

현수: 누나, 누나는 그대로가 멋져요, 나는 우리 누나들이 40대라는 게 전혀 안 믿어져요.

이 대목에서 어찌 웃지 않으랴, 먹거리고 뭐고 현수의 잽싼 아부성(?) 발언에 마지막 뒤풀이는 오늘도 역시 향인 몫이 되었다. 깔깔깔. 호호호. 히히히...
오늘은 어째 자산이 취하질 않는다. 그에게 CEO를 향한 고민이 있으려나...
우리들의 이야기엔 아직도 먹는 여유보다는 살아가는 일이 바쁜 것 같다.

그래도 다산 선생의 말씀처럼 음식이란 것이 생명 연장하는 수단에서는 좀 벗어났지 싶다.
모두가 바쁘고 할 일도 많은 세상인데 식생활도 변혁이 일어나야할 듯싶다. 좀 더 간편하고 빠르게 온 가족이 참여해서 시작부터 끝까지 공동의 즐거운 먹는 시간이 되고 배설도 좀 줄일 수 있었음 싶다. 솔직히 너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 감이 없지 않다. 두어 시간 만들어 20~30분가량 먹고 또 치우는데 1시간이라니. 그래서 요즘엔 많이들 간편하게 들 하고는 있다지만 그래도 한국식은 여전히 상다리가 휘어져야 맛이 나니 원...

학유가 떠날 때 노자 삼아 준 가훈
용勇이란 지智ㆍ인仁과 함께 삼덕三德 가운데 하나다. 성인이 개물성무開物成務하고 천지를 두루 다스림은 모두 용으로 하는 것이다. p94

도량의 근본은 용서함에 있다. 용서만 할 수 있다면 좀도둑과 세상을 어지럽히는 무리라 할지라도 아무 말 없이 보아 넘길 수 있을 것인데 하물며 그 밖의 일이야 말할 게 있겠느냐? p95

집안을 거느리는 법은, 위로는 바깥주인과 안주인으로부터 남자ㆍ여자ㆍ어른ㆍ아이ㆍ형제ㆍ동서들과 아래로 노비들의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다섯 살 이상만 되면 각자에게 할 일을 나누어 주어 한 시각이라도 놀지 않게 하면 가난하고 군색함을 걱정하지 않게 된다.

솥의 밥을 먹는 사람이면 모두 맡은 직책이 있게 하였으니, 이는 본받을 만한 일이다.
사람 집에서 바깥노인은 칡으로 노를 꼬고, 안노인은 늘 실바구니를 들고 꾸리를 감으며 비록 이웃에 가더라도 일손을 놓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집안은 반드시 여분의 식량이 있어 가난을 걱정하지 않게 된다. p96

써니: 요즘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가 노인인구가 많아져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 중에 하나가 되고 있다. 당장 우리의 현실만 보아도 대학원까지 공부하고 나오면 어언 30세, 입사해서 결혼하고 10여 년 남짓 근무하다보면 명퇴니 뭐니 하여 평생직장이 힘들어지는 상황에 있고 보면 가히 끔찍한 일이 될법하다. 10년 남짓 돈 벌어봤자 부모의 도움 없으면 전세방 얻어 자식에게 한창 돈 들어가기 시작하는 그 무렵에 직장에서 퇴사하게 되면, 이렇다하게 준비해 놓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그때부터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략난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도 어떡하던지 간에 60세까지는 가장이 버텨줘야 그나마 겨우 남들 다 가르치는 학업 고작 마치게 할뿐, 노후도 변변히 마련하기 힘든 상황이 아니던가. 그러니 요즘 젊은이들의 추세처럼 웬만하면 처음부터 맞벌이 해가며 둘이 경제적인 대책을 세워가며 생활패턴을 상세히 맞추어 가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다. 물론 그 또한 그리 쉬운 상황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주변에 60세 이후에 너무나 일찍 일을 놓고 자녀들에게 기대어 사는 어른이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되겠는데, 그분들이 자녀들에게 손을 벌려 사시는 지가 어언 20여 년이 다 되어 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60세 정년퇴직하면 더 일을 하지 않고 집안일이나 돕다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80세도 정정하다. 너무 일찍 일을 놓아 자신들도 주도적 노후생활을 펴지 못하고, 더군다나 요즘 같은 상황에 부모님의 생활비를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어서 이러한 점들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하고, 노후생활에 대한 인식도 이전과 달리 능동적으로 보완되어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히 노후를 허송세월하면 피차 힘들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여러 자식들까지 함께 삶이 곤궁해 지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 자식들이 힘에 부쳐서 힘들어 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생명이 있는 한 젊어서 아무리 열심히 살았더라도 경제적 관념과 건강 등을 함께 균형감 있게 유지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이다.

사람 집안의 둘째 아들 중에는 살림을 나가지 않았을 때에 과수원이나 채소밭의 일을 보살피려 하지 않는 자가 있는데, 그들의 마음은 제 살림을 나서 제 소유의 토지를 얻으면 성의껏 경영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 사람의 성벽에서 나오는 것으로, 자기 형의 과수원을 보살피지 못하는 사람은 제 과수원도 보살피지 못한다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너는 내가 다산에다가 연못을 파고 대를 싹ㅎ고 남새밭의 일에 힘과 마음을 다하던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앞으로 내 것으로 만들어 자손들에게 전해 주려는 뜻에서 그러한 것이겠느냐? 참으로 성벽에 좋아하는 것이라면 내 땅 네 땅의 구분이 없는 것이다. p97

써니: 얼마 전 모처럼 만에 동창회에 나갔다. 동기가 동창회장을 맡고 있었고 선배를 어언 25년 만에 만났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열심히 참여하던 선배였고 세월의 흐름에도 그 바탕이 하나도 변함이 없이 아름다웠다. 외모도 외모려니와 그의 마음 씀에 감동되어 오래 간직하려 한다. 운동회를 같이 하며 젊은 새내기들과도 함께 하는 자리였는데, 물론 그는 진작부터 그러한 활동들을 부지기 다반수로 해왔던 사람인지라 거들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을 만치 신물이 났을 법한데도, 동창의 행사주관을 뒤에서 묵묵히 코치하며 때때로 그 역할에 힘을 실어주고는 나중에 다 파할 무렵에는 그를 따로 불러 노고를 찬사하며 미리 준비한 약간의 금일봉의 봉투를 안겨 주는 것이었다. 물론 얼마든지 의례적으로 있는 일이고 당연지사로 보아왔다.

그런데 그 장면이 왜 그리 감격스러웠느냐는 점이다. 선배는 우리보다 늦게 입학을 해서 한 학년 차이임에도 댓살 정도가 많았다. 도리어 우리들의 기수가 소위 말해 더 잘나가고 있다. 동창회장 녀석도 맞벌이에 직장도 아주 만족스러울 만큼 탄탄하고 사는 것도 선배보다 훨씬 여러 모로 더 나았다. 그런데 그 선배는 그것을 따지지 않았다. 되fp 자기가 오히려 후배보다 생활면이나 여러 면에 더 못하지만, 그는 선배의 몫 자신의 역할과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의 낡은 차를 같이 타고 오면서 그의 따스한 인정에 마음이 훈훈했다. 어찌 후배가 선배를 맞볼 수 있으며,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월의 흔적으로 그의 살가죽은 늘어졌을지언정 그의 마음은 우리들의 처음처럼, 20대 5월의 눈부시게 푸른 신록 그대로였다. 그는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 그 일이 좋아서 그리하고 있음을 마음 가득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자기 일과 남의 일의 경계가 없었던 것이고 그 수고로움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돌보는 것이리라.

한차례 배가 부르면 살찔 듯이 여기고 한차례 주리면 마를 듯이 여기는 것은 천한 짐승들이나 하는 것이다. 시야가 짧은 사람은 오늘 자신의 뜻과 같지 않은 일이 있으면 당장에 눈물을 줄줄 흘리고, 다음날에 뜻에 맞는 일이 있으면 벙긋거리며 낯빛을 펴곤 하여, 일체의 근심ㆍ유쾌함ㆍ슬픔ㆍ기쁨ㆍ감격ㆍ분노ㆍ애정ㆍ미움 등의 감정이 대부분 아침저녁으로 변한다. 그러나 달관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보면 비웃지 않겠느냐? 그렇지만 소동파는 말하기를, “속된 눈은 너무 낮고 하늘을 통한 눈은 너무 높다”라고 하여 장수하고 단명함이 가지런하고 죽고 사는 것을 일반인의 것처럼 여겼으니, 그의 병폐도 너무 넓은 데 있었다. 요컨대 알아야 할 점은 아침에 햇빛을 먼저 받은 곳은 저녁때 그늘이 빨리 들고, 일찍 피는 꽃은 그 시듦도 빠르다는 진리인 것이다. 운명은 돌고 돌아 한 시각도 멈추지 않는 것이니 이 세상에 뜻이 있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 때문에 마침내 청운이 뜻까지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는 기상을 지니고 천지가 눈 안에 들고 우주가 손바닥 안에 있듯이 생각하고 있어야 옳다. p97

써니: 참, 시원한 가르침이다.

맘이 알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행위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남이 듣지 못하도록 하고 싶으면 말을 하지 않는 것 만한 것이 없다. 이 두 구절의 말을 평생 동안 몸에 지니고 왼다면 위로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집안을 보존할 수 있다. 천하의 재화와 우환이나 천지를 흔들며 몸을 죽이고 가문을 뒤엎는 죄악은 모두 비밀리에 하는 일에서 빚어지는 것이니, 일을 할 때는 부디 깊이 성찰해야 한다. p98

편지 한 장을 쓸 때마다 모름지기 두 번 세 번 읽어보면서 기원하기를 “이 편지가 사거리의 번화가에 떨어져 있어 원수진 사람이 열어보더라도 나에게 죄가 없을 것인가?”라고 한 뒤에 봉함해야 하니, 이것이 군자가 행동을 삼가는 태도이다. p99

사대부의 집에서 한번 관작과 봉록의 계통을 잃으면 집안이 탕잔蕩殘되어 정처 없이 떠돌거나 빌어먹게 되면 천한 무리에 섞이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그 이유의 하나는 자포자기하여 경전과 사서를 포기하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놀며 입고 먹으며 규모를 고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근본과 근원이 없는 학문이 어떻게 크게 떨칠 수 있으랴. p100

또 의식의 근원으로 오직 뽕나무와 삼을 심고 채소와 과일을 심는 것이며 부녀자가 부지런히 실을 잣는 것이 조금 할 만한 일인 것이다. p100

써니: 이는 오늘에 와서는 꼭 그러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러나 너무 욕심내는 것을 경계하고 돈을 벌어 생활함에 있어서도 삿됨과 천박하리만치 이해타산에 집착하지 말라는 당부임에 명심할 일이다. 자칫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겠다.’며 막무가내로 욕심을 채우고 함부로 허세를 부리는 수작일랑 천박하기 그지없으니 마음의 중심을 가지고 책임 있는 취사선택을 하라는 것이리라.

또 권세 있는 요직의 사람들에게 파고들어가 인연을 맺고 재판하는 일을 청탁하여 그 더러운 찌꺼기나 빨아먹고 무뢰한들과 결탁하여 시골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여서 뇌물이나 훔쳐 먹는 것은 모두 제일 간사한 도둑이다. p100

써니: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공공의 정책 가운데도 많이 있다. 법을 모르면 당하고야 말게 파놓은 함정도 정부가 결국 선한 국민들로 하여금 등쳐먹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는 없다.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각계각층에 상존하는 부조리를 제거하지 않고, 눈치만 살피다가 어물어물 넘어가는 수작이란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노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정보를 나눈답시고 한데 얽혀 저마다 한 탕씩 해쳐먹고 나자빠지면 그만 일뿐, 그 속내를 그리 드러내고도 태연자약 시침만 뚝 때는 모습이란. 그러니 손해 입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결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하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서민이다. 깨끗하고 맑음 때문에, 정직한 노동으로 인해 허리가 휘고 마는, 결국에는 피만 보는 것이 이 땅의 서민이 아니던가. 언제나 그놈의 잘난 민주주의는 ‘억울하면 출세하라’ 각자의 탓으로 돌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니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따로 놀면서 저마다의 이익 챙기기에 정신이 없다. 안 그러면 먹고살 길이 없는 걸 어떻게 하나. 어쩌면 서민은 모두 넘버3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다른가?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가서 며칠을 머물러 있어도 아무 총각이 아무의 아들임을 분별할 수 없이 지낸다면 이는 형제간에 서로 화목하고 품행이 있는 집안이리라. p101

써니: 오늘날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이는 서로가 예의와 그 바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함부로 베풀 수도 없는 경우도 많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빈대근성이 많아 오히려 탈인 듯싶다. 고마운 줄을 모르고 그저 너무 빨리 쉽게 잊어버리고, 그 고마움을 되갚아야 하는 일에는 등한시 하는 모습이 아쉽다. 오죽하면 절에 가도 교회에 가도 문을 꼭꼭 닫아버리고 말겠는가. 섭섭하고 아니꼬운 것은 더 느끼면서도 그만큼 염체를 모른다.
버리고 반드시 새로이 형성시켜 나가야하는 COREANITY라고 생각된다.

함부로 이잣돈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가산을 망치는 법이다. p101

써니: 나도 카드쓰기를 좀 절제해야 한다. 요즘에 들어 너무 익숙하게 그어버리는 것이다.

천하의 일이란 미리 정해놓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내가 이제 그 점을 말해주마. 옛날 예법에 난리통에 잘못 죽은 사람은 조상의 선산에다 묻지 못한다 했으니 제 몸을 삼가지 않았다고 해서다. 순자는 따로 죄인들에게 사용하는 상례를 두어 욕됨을 보여 경계하도록 했다. p103

써니: 삶은 항상 죽음과 일체하였던가. 살아도 다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다 죽은 것이 아니었던가. 삶과 죽음은 항상 이렇게 연결되어 산자의 본보기가 되고 죽어서도 복을 빌어주는 혹은 죽어서까지 뉘우침을 하는 영원불멸의 존재였던가. 그렇다면 이곳에 우리의 정신에 바로 모든 철학과 종교가 일체되고 있었다. 이보다 더 깊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있을까? 하여 종교는 그 지역, 그 나라의 삶의 근본에 들어가 모두가 이해되고 통합되어야 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꼭 어느 어느 교회당에 다녀 천국의 티켓을 누구로부터 보장 받는 다는 말인가? 어느 어느 절간에 가야만 진신사리가 나올까? 살아생전에 한 치의 양보도 어울림도 못하고 왕생극락이라.... 왜 그들의 신들은 항상 외출 중일까?

“옛사람이 아욱을 채취할 때는 반드시 이슬이 마른 때를 기다렸으므로 다른 이름을 노규露葵라 한다.”
시인이 사물을 읊을 때마다 어떻게 다 물으랴
노포가 조금 꺼리는 것은 바로 노규라네
詩人詠物何得聞 老圃小忌且露葵

라고 하였으니, 이는 아욱을 아름답게 부른 명칭이요 이슬에 젖은 아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침에 꺾는다고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뜯는다는 것은 줄기를 절단함이다. 한낮에 부추를 자르면 칼날이 닿은 곳이 마르고 이슬이 있을 때 아욱을 뜯으면 자른 곳에 습기가 배어드니, 모두가 생리에 해로우므로 밭을 가꾸는 사람이 꺼릴 따름이지 먹는 사람에게 해가 있어서는 아니다. 가사협賈思勰이 말하였다.

“가을 채소를 뜯을 때는 반드시 대여섯 잎을 남겨두어야 한다. 잎을 따지 않으면 줄기가 약해지고 잎을 많이 남겨두면 구멍이 커진다. 무릇 아욱을 뜯는 데는 반드시 이슬이 마른 뒤를 기다려야 한다.” p106

서書
두 아들에게 부침
이별할 때의 회포는 말할 거시 없거니와, 어니 날에 너희 어머니를 모시고 동쪽으로 돌아갈 것이냐? 될 수 있으면 즉시 돌아가서 조용히 있기를 바란다. ....... 너희 어머니의 안색을 보면 위험하니,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기운을 돋우고 약을 써서 다스리도록 유의하여라. p107

너희 어머니에게 병이 발생했을 것은 나도 짐작하고 있었거니와, 큰며느리도 이질을 앓고 난 뒤라서 모습이 더욱 초췌해졌을 것이니, 생각하면 견디기 어렵구나. p108

형수씨의 사정 또한 측은하니 너는 어머니 섬기듯이 해야 할 것이며 육가六哥(學進으로 개명)도 친형제처럼 대하여 마음을 다해 불쌍히 여기어 위로하고 물질적으로 도와주도록 하여라. 내가 밤낮으로 축원하는 바가 오직 문아文兒가 독서하는 것뿐이다. (9월 3일)

써니: 이순신과 달리 다산의 수평적 사랑을 엿본다. 다산은 충효를 말하면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다. 이순신이 일방적 수직적인 충효를 말하였다고 하면, 다산은 수평적인 충효사상까지 그야말로 동학의 인내천사상과 경천애인을 주장하고 일상화하여 지표로 삼았다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면면이 충과 효와 그의 주장들이 그대로 하나로 집결되고 맥락이 흩어짐이 없이 하나의 줄기로 모아진다.

이순신에서는 갈등과 번민이 어찌 보면 약간의 편협성을 띠었다고도 생각되었는데, 다산은 내면적 성찰과 그의 웅지가 깊은 맛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일가친척을 돕는 과정에 있어서도 인사치레나 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실사구시 이용후생의 실학사상이 생활의 전반에 일상화 되도록 가르치고 있다. 하여 이념이나 사상적 교육이 아닌 일생의 바탕과 근간이 되는 생활철학으로서 자리할 수 있도록 이르고 또 이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잔소리에 가까울 정도로 되 내이고 또 되 내이는 것이다. 믿지 못함이 아니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달라붙어 딱지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리라.

써니: 이순신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아내에 대해 그리 언급이 없던 것이었습니까? 별로 정분이 좋은 관계가 아니었는지요? 아니면 성품이 그러하신 것인지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이순신장군: 일지日誌라는 것이 그렇지요. 처음에는 그저 업무차 적었던 것이고, 오랜 세월 객지에서 일상들을 적어가다가 보니 나도 점점 구체적으로 적게는 되었지만, 무관 생활이라는 것이 더욱 그러하기도 하려니와 자고 나면 임금을 생각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하면 시내버스운전 기사들이 ‘오늘도 무사히’ 라는 표어와 함께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소녀의 사진을 걸고 다니듯,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고 어머니의 안부와 염려가 곧 내가 오늘 전쟁에서 살아나가는 기도가 되는 것이지요. 언제 어떻게 죽을 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 속에 놓여 살다보면 본능적으로 뿌리에 대한 절박감이라고 해야 할까 뭐 그런 나를 대신할 내 분신에 대한 존재감을 살피게 되는 것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써니: 네, 그러하시군요. 그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그 순간에 이성 즉 내 갈비뼈의 하나인 아내에 대한 생각은 또 한 치 건너이던가요?
이순신장군: 껄껄껄. 질문이 다소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는 자의식에 눌림이 많은 사람이었든가 싶어요. 내가 나라를 지키는 것이 마땅하듯이, 아내도 아내의 자리를 마땅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모든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기에.... 쑥스럽습니다. 그려.

써니: 혹시 부인께 마치 부하나 다루듯이 너무나 일방적 의무만을 강요하고, 보살피고 격려해야 하는 대목은 지나치게 간과하셨다고 생각되지는 않으십니까? 그리고 계집종 여진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언급이 된 적이 있는데, 그녀에 대하여 일지에 적어 놓은 이유라도...

이순신장군: 조강지처가 아닙니까. 삼종지도가 있는 것이니 출가를 하여서는 의당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자식을 따라 사는 것이 여인네 아닙니까. 가볍게 일희일비하여 꼭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 테지요. 집안에 있는 사람이야 무에 그리 근심될 일이 있겠습니까. 그저 자식들이나 잘 살피고 어른- 어머니봉양이나 잘 해드리면 그것이 일상일 터이니. 하지만 남자들의 경우에는 다르지요. 늘 긴장감 속에서 살아야 해요.

더군다나 문관이 아닌 우리 같은 무관들은 일촉즉발의 풍전등화와도 같은 불안과 긴장을 수없이 넘나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집안에만 있는 여인네가 남정네가 밖에서 하는 일을 알아서 무엇 할 것이며, 내가 집안일을 속속들이 알 길도 없고 하니, 그저 잘 하고 있겠거니 믿는 것이지요. 그리고 전쟁의 긴장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다시피 하다보면 요즘말로 스트래스 정말 엄청나지요. 솔직히 말한다면 여진은 아리따운 여인이었지요. 깨고 싶지 않은 꿈처럼,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내의 자리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한들 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언제 죽을 지도 모르고 가족과 떨어져있다 보니 더욱 그러한 것이겠지요. 우리 남자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아요. 마음에 남아있는 정분이야 어절 수 없는 노릇일 테고.

써니: 혹시 이순신장군께는 서얼이나 그런 자식은 없다는 것입니까? 그토록 전장에 오래 나가 있고 하다보면 발생할 일 같기도 한데요?

이순신장군: 그렇다면 그것은 써니가 찾아 볼만한 일이겠구려.

써니: 어머머. 교묘히 회피하시는 건가요?

이순신장군: ^^

써니: 그러면 이번에는 다산선생께 여쭙겠습니다. 귀양살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산선생처럼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께서는 지루하거나 자포자기해 버릴 수 있는 역경을 누구보다 슬기롭게 대처하사 마치 후대(후생/영생)를 위해 현재는 한바탕의 꿈을 꾸고 있는 것과도 같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 모습으로 느껴지며, 마치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선생의 글이 귀한 역사적 자료와 귀감이 될 것을 확신하셨고 그를 선견으로 자제분들께 당부하였으며, 당시에도 일상적 취향을 누리시고 즐기며 마치 영생을 구가하는 듯한 모습이 느껴집니다. 천주교 신앙 때문이었을까요?

다산: 천주교 신앙은 우리 집안의 중요한 삶의 원천과 가치가 되었지요. 하지만 그러한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있지만 모두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마다의 사상과 체계를 세워 가풍과 지식과 덕망이 어울려서 신앙을 이끌어 간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회를 받아들인 가문의 한 사람으로서 이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연결하여 나가느냐는 그래서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하느님께서 혹은 부처가 성인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접하는 일반 대중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서 알게 되고 배우고 익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전달하는 사람이 자칫 삿되어 올바르지 않은 편협한 소견을 가르치거나 주장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야 말로 대략난감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저의 수신에 정진하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저가 개인적으로 그러한 습성을 길렀다기보다 선대 어르신들과 집안의 가풍을 가꾸어 오신 우리 가문의 가르침이겠지요. 저는 어쩌면 그러한 미흡하나마 가풍의 수혜자이기도 했고, 또한 나름의 혜택을 입었으니 사회에, 당시 조선의 한 사람으로서 처해진 본분에 충실하려 애썼던 것일 뿐입니다.

내게 주어진 현실이 어떻든지 간에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그래서 더욱 많았을 겁니다. 다른 형제들은 일찍이 그 목숨을 보존하기 조차 어려웠고, 갖은 수모와 고통을 받으며 비명에 횡사하듯 죽어갔습니다. 그것을 지켜본 나인데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삶이 허락하는 한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오직 나의 소임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절대로 자살은 옳지 않다고 저는 생각했고, 그러한 난관을 알았기에 나의 남은 가족과 가문을 위해 이 나라의 운명을 위해 더욱 꼿꼿이 살아내었습니다.
써니: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러한 다산이 있었기에 남은 가족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삶을 버티어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선생의 그러한 정신력은 혼자의 몸을 지키신 것이 아니라 작게는 가족을 구원하였고, 나아가 이 나라, 온 세계에 그 크신 이의 사랑을 전하는 말없는 수호자가 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계속하시지요.

다산: 별말씀을요, 아까의 말을 이어 계속하자면, 우리의 역사와 전통에 서양의 좋은 점을 받아드리면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은 정말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분단의 현실에 있는 대한민국이 안타깝기 한량없으나 곧 좋은 날이 올 테지요. 저는 삶과 죽음이 별반 다르다고 생각지 않아요. 살아서는 그대로 내게 주어진 할 일들을 다하고 죽어서는 살아서 관계 맺은 것들에 대하여 영감을 통해 또 나름의 역할이 있는 것이겠지요. 지금 내가 시공을 초월한 이야기를 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 나라에 대해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이 책이 몇몇 의식 있는 분들이나 민족문화추진회 등의 단체에 의해서나 고작 읽혀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여러분들은 나의 책을 읽고, 더 나은 삶과 세상을 펼치기에 나의 책을 재료로 삼고 업그래이드시켜서(하늘나라에도 광통신망 다 연결되어 있어요. 어차피 지구촌 모두가 유목민인의 생활이 멀지 않았는데 또 하나의 다른 유목민이라고 생각하면 무엇이 다를까요. 거리감도 줄어들고 오히려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은 아닐지.^^ 하하하.) 더 한층 발전하는 자료로 삼아야 하는 것이지요. 모름지기 그것이 학문하는 사람을 이롭게 하며 그의 정신을 기리고 의미를 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변.경.연의 구선생께서는 제자라 함은 모름지기 스승을 뛰어넘어 그를 영구히 빛내게 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바람직하다고 하질 않습니까.

써니: 좋은 생각과 말씀입니다. 말씀을 나누다보니 저도 인터뷰가 좀 지체되더라도 이 자리에 백범선생을 모셔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들 괜찮으시지요?

백범: 나는 또 왜 부르려 하시오? 내가 이조시대 사람도 아니고.... 나도 아내사랑에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이라서 어째 불러주심이 멋쩍고 걱정이 됩니다만......

써니: 호호호. 선생께서 그러실 때가 다 있으십니까. 사실 그래서 선생을 모시고자 합니다만. 그리고 또 위에서 다산선생의 말씀 가운데 소임이라는 말이 언급이 되면서 선생을 예상보다 일찍 모시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선생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6월 변.경.연 연구원 주제 ‘그들은 누구인가’의 초대에서 만나 뵙게 된 여러 선대 선생님들을 통해 물론 정신과 신념에 대한 감동도 많이 받았지만, 현재의 제가 생각하기에 납득이 덜되고 아쉬운 점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아직 미흡하와 선생들의 깊고 높은 뜻을 헤아리지는 못하고 어설프게 되지 않은 논쟁을 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어찌 되었든지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고야 말았으니 끝은 맺어야 되겠지요.

그럼 백범선생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생께서는 뜻한바 있어 많은 사람들을 품었으며 그 희생 또한 누구 못지않게 사서하는, 정말이지 남다르며 못 말리는 고생을 하였습니다. 위의 두 분과는 달리, 즉 자발적 빈곤과 자처한 고초를 능동적으로 겪으셨지요. 선생께서 생각하는 가족 사랑과 나라사랑 즉 소임에 대해 한 말씀 듣고자 합니다만.

백범: 허참, 가족사랑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위로 부모님께 너무나 송구한 자식이었고, 아래로 자식들에게 천하에 둘도 없는 불한당 같은 아비였습니다. 내가 정치에 뜻을 두어 그렇지 가정적으로는 여러 사람 괴롭힐 것 없이, 스님이나 되는 것이 딱 어울릴 팔자라고 생각되지만 아닌 게 아니라 내가 교회도 나가보고 절에도 머물러 보았지만, 나란 사람의 운명은 어떤 일인지 그러한 것도 나하고는 맞질 않았고 만족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 백범이 살다간 생애 그것만이 내 운명이요 나라는 사람의 성품이었던 게지요. 나는 가정적으로는 아주 빵점짜리 남편에 아비였다고 할 수 있지요.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어떡하겠습니까?
내 나 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출한 것도 감독한 것도 아닌 내 인생의 주연이 되어버린 내 삶을.......

다만, 나 역시도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내 머리를 치고 가슴을 두들기는 그것을 위해 살 수밖에는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가족에게는 미안하기보다 차라리 내 운명이 원망스러웠다고 하면 가증스러우시겠습니까? 나는 참으로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순신장군과 같은 성품이었다면 누군가를 원망하며 배알을 꼴려하며 어머니에게나 하소연하듯 꿈에나 의지하듯 그래도 어쨌든 참고 전장에 나가 적을 까부술 때 미친 듯 쳐부쉈을 테지만, 나는 그런 전쟁을 할 수도 없는 사람이어서 참기가 더욱 고단했습니다. 물론 독립운동하며 전쟁을 치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치의 최고 우두머리란, 그 모든 것에 앞서 최우선의 빛나는 사표가 되는 것이어야 했기에, 내 성품으로 그 모든 이중적 시선과 균형감을 갖추고 나아가기에 쉽지가 않았지요.

내가 누구였습니까, 천민 출신의 백정의 아들이 아니었습니까. 나는 내 인생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성실히 간절하게 나를 세우고 나라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내게 부족함이 있어, 이 나라 이 조국을 두 동강낸 채 숨을 거두었지만, 나는 이미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우리의 통일을 염원하기에 그날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정말이지 여러분들은 이 나라 국민들은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안다면 행하여야 합니다. 이 나라의 완전한 독립은 대한민국의 통일인 것을요.

나의 신념은 오직 대한조선의 독립이었고, 그렇게 간결하고 단순하게 중요한 것을 최상으로 올려놓으니, 그 외의 것들은 비록 피붙이요 가족이라 해도 다 뛰어넘을 수 있는 말하자면 대한독립 사랑이나 가족 사랑이나 그게 다를 것이 없고 한가지로 마찬가지였다면 핑계일 런지요, 혹여 이해가 되시겠습니까?

써니: (끄덕끄덕하고 있다.) 그러시겠지요. 나라사랑이 곧 가족 사랑이라. 이 나라 정치인 들이 선생의 이러한 뜻을 입으로만 외치거나 선거 당첨 시에만 입에 담지 않고, 통치 내내 선생처럼 한 순간도 잊어버리지 않는 다면 우리의 소원 통일이나 이 나라 살림살이와 정치가 무에 그리 난관이 많겠습니까?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않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려고만 하니, 청년 실업이고 뭐고, 모두가 뒷전이고 서로 잘났다고 아귀다툼하며 논쟁만을 일삼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대통령을 마치면 누구나 이라크 전쟁에 지원하라고 해볼까요?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각고의 시간을 보내봐야 하지, 퇴임 후에는 별장이다 해외여행이다 골프채나 휘두르며 다니고 있거나 원로랍시고 젊은이들과 어울려 야합이나 벌이려고 해서는 원...

이순신장군은, 백범선생은, 다산선생은 뭐하고 계십니까? 이들 통치자들에게 나타나 나라위해 헌신하고 국민위해 희생할 수 있는 가족 사랑이 나라 사랑이요, 나라사랑이 곧 가족 사랑인 것을 수직과 수평이 고루 균형감을 이루는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할 사랑을 좀 깨우쳐 주지 않으시고요. 그 소임까지 다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백범, 다산, 이순신장군: 써니, 자네 또 열 받는군. 이 사람아, 다 때가 있는 것이네. 조금만 기다려 봄세. 5천만의 꿈 벗이 꿈 꽃을 피우는 그날이 오고 있지 않겠는가. 제 때에 과제나 꼬박꼬박 잘 해내시게. 자네는 늘 미루는 것이 병일세. 어째 그래도 여태는 아슬아슬 잘도 넘어가는구먼. 자네야 말로 힘껏 글쓰기에 정진해 보게나. 자신을 낮춰보지 말고 오직 정진에 힘을 쓰시게. 초아선생님 말씀과 같이 조금만 더 열심히 노력해 보구려.

부지깽이님의 말씀도 명심하시고. 여자라 하여 무엇을 못하겠는가. 이제 그만 울음을 그치시게. 글쓰기야 말로 가장 평등하고 자유로운 직업이 아니겠는가. 10년 전 자네가 외쳤던 ‘경험을 두려워말고 자유와 진실을 향해 나아가자’ 하였던 그 목매임과 절규를 잊지 않았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진취적으로 능동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이네. 그것만이 자네가 백정의 아들 나 백범을, 몰락한 양반으로 박해를 받았던 다산을, 평범한 징징거림으로 왜놈에게서 나라를 되찾은 이순신을 읽은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도 나아지는 것이 없이 고작 리뷰만 덜렁 올린다면 그것이 무에 소용이 있겠는가. 그 시간에 그토록 좋아하는 돈을 버는 일보다 무엇의 이득이 있고, 안락한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켠 채 흥얼거리기보다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일세. 우리들의 이야기를 명심하여 주시게.

가지를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마저 놓는다면 가히 대장부/사람(이)로다. (맥범일지 p48)

“발전은 생명의 법칙이다. 사람은 아직 사람이 아니다.” -로버트 브라우닝

써니: 네... 어제보다 더 좋은 삶을 찾아 살기에 게으르고, 더 나은 정성과 기도 없이 살아간다면 내가 책을 읽고 쓰는 것이 무엇에 보탬이 되랴. 한시각도 헛되이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는 것이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마냥 주검을 향해 가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근본을 두터이 배양하고 소소한 공채 따위는 드러내지 말기를 지극히 바란다. p109

두 아들에게 답함
아비가 큰 죄를 지어 그 자식이 벼슬을 할 수 없는 폐족廢族으로서 글을 배우지 않고 예의가 없다면 어찌하겠느냐? 모름지기 보통사람들보다 백배의 공력을 더하여야 겨우 사람 축에 들게 될 것이다. p110

써니: 이 부분 그 누구보다 공감하는 부분이다. 내가 선택한 삶을 뒤 없고 홀로서기를 할 때 그리하여 다시 그나마 한 버팀목을 마련하기까지 내가 나를 변혁시켜야만 했던 무수히 많은 생각들과 현실의 벽, 석 달 열흘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것이다. 바로 내가 폐족이 아니고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마침내 자포자기적 현실에서 발을 떼고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몸부림치는 것이란.

폐족 중에 종종 뛰어난 인재들이 많은데, 이는 다름이 아니라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니, 절대로 과거에 응시할 수 없다하여 스스로 좌절하지 말고 경전에 힘과 마음을 써서 책 읽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를 간절히 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지난해 10월 1일에 입은 것이니, 어찌 견딜 수 있겠느냐. (2월 17일) p111
밤낮을 가리지 말고 부지런히 글을 읽어서 이 애쓰는 마음을 저버리지 말라. 팔이 저려서 이만 줄인다. (9월 3일) p109

써니: 다산은 자신의 곤궁함을 들어내려 이 편지를 답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상황을 생생히 알리고 자신의 뜻을 정확히 관철시키고자 함이다. 함께 이 고난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자는 강한 신념과 의지가 굳건하게 나타나 있다.

비로소 곤궁한 뒤에야 저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드시 매우 총명한 선비가 지극히 곤궁한 지경을 만나서 사람들과 수레의 시끄러운 소리가 없는 곳에서 종일토록 외롭게 있은 뒤에야 경례經禮의 정밀하고 자세한 뜻을 비로소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천하에 이처럼 공교로움이 있겠느냐. 옛 경전을 고찰하여 정현과 가규의 학설을 비교하여 보건대 거의 조목조목이 잘못되었으니, 독서의 어려움이 이와 같은 것이다. p112

책을 가려 뽑는 방법은, 나의 학문이 먼저 주관이 있어 확립된 뒤에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저울이 마음속에 있어서 취하고 버리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는 것이다. p112

부자간에 스승과 제자가 되는 것 또한 즐겁지 않겠느냐? p113

천지 만물에는 자연적으로 완전하고 좋은 것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기이하다고 할 것이 못 되며, 오직 무너지고 훼손되었거나 깨지고 찢어진 것들을 잘 보수하고 다스려서 완전하고 좋게 하여야 만이 그 공덕을 찬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을병을 치료한 자를 양의라 부르고, 위태로운 성을 구출한 자를 명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 공경公卿의 훌륭한 집안 자제들이 벼슬을 하고 가문의 명성을 계속 잇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는 지금 폐족인데 만일 그 폐족의 처지를 잘 대처해서 본래의 가문보다 더 완전하고 좋게 한다면, 또한 기특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느냐? p114

써니: 내가 나의 실패를 딛고 본래의 나보다 나은 그릇이 되어 깨달음과 지혜를 얻고 뭇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감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하여 나의 마음의 1/100이라도 위안이 되고 나아가 발전적인 한 획을 그을 수 있을까?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나는 노력을 요할 것이다. 처음 어리버리하게 보낸 지난 10년과는 달라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오늘날 공부할 기회를 준 것이라면 이제 바위를 뚫을 노력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내가,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내가,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가. 아니라면 해야 한다. 죽어 무엇을 남기랴. 살아 무슨 영화를 볼 것인가.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이왕 쓰는 것이라면 제대로 해내야 한다. 한 번도 재미있게 공부하지 못했다. 언제나 슬슬 대강대강 살았다. 정말 인생을 다시 바꿔보고 싶었을 때, 깡그리 지우고 새로이 쓰고 싶었을 때 나는 열심히 공부했었다. 숙대 음악치료대학원에서 음악치료개론과 음악심리학을 공부할 때 정말 열심히 했다. 나는 다시 살고 싶었다. 내 인생을 새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는 좌절되었다. 지금은 할 수 있다. 그때보다도 더 절실하다. 왜? 그건 10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세월이다. 나의 물리적, 육체적, 유형무형의 모든 쇠하고 낡고 소멸해 가는 퇴화이다. 살아있는 것은 오직 신념, 오직 바램, 오직 꿈뿐인 것이다. 육신은 시들어가고 내 꿈은 멀리 있다. 나의 원은 무엇인가. 내 운명은 무엇을 마련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간다. 가야한다. 길을 따라, 내 영혼과 육신의 길을 나서 한걸음, 한 발작, 또박또박 떼면서 가야만 한다. 달리다 굼! 달리자 꿈!! 달려라 써니!!!

그 폐족의 처지를 잘 대처한다 함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그것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뿐이다. 이 독서야말로 인간의 제일가는 깨끗한 일로서, 호사스런 부호가의 자제는 그 맛을 알 수 없고 또한 궁벽한 시골의 수재들도 그 오묘한 이치를 알 수 없다. 오직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가 있고 중년에 재난을 만나 너희들 처지와 같은 자라야 비로소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저들이 독서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뜻도 모르고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은 독서라고 일컬을 수 없기 때문이다. p115

써니: 말로만으로 본다면 이 구절은 나를 들으라는 소리와도 같으나, 과연 내가 제대로 글을 쓸 수 있을 지를 생각하면 부족함이 앞을 가려 두려움이 일고 만다. 나의 한....... 내 부모 형제와 ........
모든 삶의 단절을 나는 이제 다시 시작하고 있다. 대강 살기 위함이 아니다. 죽기 위함도 아니다. 나는 어제보다 나아야 한다. 나는 이대로 죽을 수가 없다. 나는 살아야 한다. 죽은 시체를 끌고 썩은 창자를 들쑤시며 감긴 눈과 막힌 귀와 닫힌 숨구멍을 뚫어야 한다. 내 골수를 끄집어 말갛게 씻어야 한다. 내 피를 다시 선홍색으로 바꾸고 내 신경을 약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 흩어진 맥을 가지런히 잡아 주어야 한다.

왜? 나니까. 여태 살아냈으니까.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치를 떨었으니까. 부딪혀 봤으니까. 경험했고 참아왔으니까. 살날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터럭만큼도 인생의 아쉬움 남기고 싶지 않으니까. 후회하며 눈을 감을 수 없으니까. 패잔병이 되어 남고 싶지 않으니까. 고칠 수 있으니까. 아직, 아직 초아선생님보다 젊으니까.......(ㅋㅋ) 머리가 부족하니까 노력해야지. 꿈을 꿔야지. 죽도록 살아봐야지....... 부지깽이님의 감언이설을 믿어야지. 궁둥살만은 자신 있으니까. 그거라도 해보자.(ㅎㅎ) 써니는 초아선생님보다 젊다. 궁둥살만은 자신 있다. 그리고 줄곧 읽고 쓰자.

너는 진정 독서할 기회를 만난 것이다. p117

독서에는 반드시 먼저 근기根基를 세워야 한다. 무엇을 근기라 하는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니 학문에 뜻을 둔다면 반드시 먼저 근기를 세워야 한다. 무엇을 근기라 하는가? 효孝ㆍ제悌가 그것이다. 모름지기 먼저 효ㆍ제를 힘써 근기를 세운다면 학문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학문이 몸에 배게 되면 독서는 그 충절忠節을 논할 것이 없다. p117



3. 내가 저자라면

다산은 참으로 자상한 아버지요, 한 나라의 빈틈없이 맑고 숭고한 정신의 건실한 재상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어이하여 이다지도 박복하게 무려 18년간이나 귀양살이에 처하게 하고 형제들과 일가친척들을 죄다 죽게 만들었던가.
정녕 운명의 신의 나약한 저주를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가 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다산은 이미 살아서도 살지 않았고 죽어서도 죽지 않았다. 그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운명에 순응하듯 하느님께 순명하듯 살아냈다. 하여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그 시대상황과 처한 임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누가 역사를 강한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역사는 강한자의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 후세에 전하고 지키는 자의 것이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모두가 죽어갈 때 살아남은 것이 도리어 원망스럽고 한스러울 때, 사는 것이 차라리 죽는 것만 하지 못하였을 때, 남은 가족을 생각하면서 절대로 굴하지 않으며, 역사의 소용돌이에 빗겨 서지 않으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게 피어나는 순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산은 유교의 가르침과 중용의 덕과 천주교 교리의 자비로운 사랑과 검소한 실용주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며 관직에 머무를 때나 폐가하여 멸문지화를 당한 상황 하에서 조차 그 바른 정신을 놓지 않고, 자신의 학문에 확고한 신념과 믿음으로 초지일관 유종의 미를 거두며 끝까지 불굴의 정신으로 뜻을 접지 않으며, 또한 삶을 두려워하거나 불의에 지쳐 적당히 야합하지 않고, 오직 바른 것을 취하고 선을 사랑하며 인내와 실천으로서 한평생을 살았다. 장하고도 장하다. 곧은 성품이여, 바른 충정이여, 진실한 효성이여.

나는 개인적으로 부모를 섬기는 효심과 자식사랑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이분하여 생각하는 것이 도리어 편중된 이기적 사랑으로 만들고, 집착하는 어리석은 사랑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어버이를 생각하며 어찌 자식을 돌보지 않을 수 있나, 자식을 생각하면서 어찌 부모를 외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가.

나는 한 때 정말 딜레마에 빠져 오랜 시간을 낭비한 것은 아닐지라도 가슴 아프게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제금 어떤 사랑이 현명한 사랑인지 이제라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조금씩 깨달아 간다. 옛말에 서울에 가본 사람과 가보지 않은 사람이 싸우면 가보지 않은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막무가내 무대보로 작정하여 몰아붙이면 약자가 질 수밖에는 없다. 그럴 때 바른 가치와 신념, 확고한 의지와 지식과 덕과 흔들리지 않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내겐 그것이 부족했고 나는 다시 정진한다.

우리의 삶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장할 수 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고 내일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전진도상에 우리 자신을 올려놓으며 길을 가자. 역사를 통해 선인들은 말해 주노니,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고 우리의 신념은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우리가 노력하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만큼의 우리의 미래는 밝게 솟아오른다. 찬란하고 영롱한 빛으로.......

이 책 다산 문선은 쉽고도 간결하며 누구든지 읽기만 하면 그 뜻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도록 자세하고 무난하게 쓰여 진 글이다. 때로는 편지글로 때로는 수필로 더러는 일기처럼 솔직하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진솔한 글이어서 더욱 아름답다. 수직적 충효만 강조된 것이 아니라 원초적 사랑으로 수평적 사랑까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확대된 모습은 저자의 성품뿐만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모든 일상생활에서 체화되고 녹아들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와 바른 지침을 주기에 조금의 손색도 없다. 더군다나 귀양 18년의 기간에 흐트러지거나 삿됨이 없이 오직 학문의 정진과 수양의 기회로 삼으며 사랑을 전하고, 그 와중에도 실학과 중농사상과 노동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는 점은 참으로 깨어있는 우리 민족의 선구자적 사상가라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세편의 글 난중일기, 백범일지, 다산문선을 통해 글쓰기를 어렵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사상과 느낌을 진솔하게 담아가는 치유와 함께 새로운 글쓰기를 생각해 본다. 누구나가 자기 인생의 개인사에 대하여 작가로 자기의 사상과 생각들을 글로 혹은 책으로 쓸 수 있겠다는 좀 더 가까운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이들 세 역사적 인물들 역시 처음에는 치유로서의 글쓰기 접근과도 같이 일지로, 일기로, 편지로, 수필로 시작하였던 것이다. 물론 후세에 가필이 되고 수정 보완이 된 점이 없지 않겠지만 뼈대와 기틀은 저자의 사상으로 근간이 이루어 진 것이 아니겠는가. 세 위인의 업적에 이어 또한 글쓰기 방법까지 생각해보는 일거양득의 시간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배움도 많고 재미있어 좋다.

다만 이 책 다산문선은 뒤로 가면서는 글의 배경을 잘 몰라 그런지 재미가 덜하였다. 그러니 글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더 상기하게 되는 셈이다.





IP *.70.7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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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7.06.25 06:46:00 *.132.188.244
"일상의 사상과 느낌을 진솔하게 담아가는 치유와 함께 새로운 글쓰기"의 길을 한발짝씩 가는 써니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써니는 이제 쓰니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글을 잘) 쓰(는) 이 : 글을 잘 쓰는 사람-> 줄여서 '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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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2007.06.25 08:35:28 *.114.56.245
역시 써니님이시군요. 생각해보니 써니님의 기나긴 고통이 다산의인고의 세월과 수많은 저서와 연결되군요. 기대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조급하게는 생각하지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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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6.25 09:55:49 *.99.120.184
벌써부터 써니님의 독특한 향기가 정제되어 나오네요.
많은 생각과 고민들 속에서 조금씩 변화가 느껴집니다.
책의 느낌에 맞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전 따라가기 바쁜데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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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귀
2007.06.25 11:45:45 *.244.221.3
놀랍습니다. 다시한번 더 먼발치에서 보게 되네요.
위인들에 대한 추상적인 동경을 실질적이고, 인간적으로 다가설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님의 글을 읽다보면, 저는 책읽는 방법부터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버스/지하철에서의 시간 떼우기식의 독서에서 벗어나야겠네요. ^^
써니님의 앞으로 나올 책이 기대되네요~. 필독서가 될듯.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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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26 13:07:27 *.75.15.205
양수님! 써니의 치료를 관찰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언은 언제나 열려있답니다.

우제온니! 저의 성정을 간파 하셨군요. 서두르고 덤비는 못난 버릇을...

여해님! 늘 생각만 많고 정리하지 못하여 반쪽 과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대에게서 많이 배우려하나 게걸음입니다. 황새가 되고 싶은데...

귀귀님! 저는 소설 책도 지하철에서 잘 못 읽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숲 그늘을 찾아 새와 바람과 나비가 있는 게다가 꽃향기 폴폴나는 벤취에 앉아 늦도록 책과 함께합니다. 장수는 얼마 못 넘기나 즐거움이 있더이다. 꿈을 꾸게 되면은 사람이 소녀가 되기도 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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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6.26 23:02:18 *.48.41.28
참 많이도 썼다. 손가락은 건강하시구?ㅎㅎ
북리뷰에 웬 까칠녀가 출현을 다 하시고..
암튼 웃김.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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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27 09:28:04 *.75.15.205
치... 일찍 귀가 하시더니만 늦은 밤 공부라... 흥!
사실은 요거이 속 알맹이 빼먹어서 더 채워 넣어야 하는데 술(?)케쥴 땀시 못 채우고 있다우. 잊어버리기 전에 보충 해야는데 ㅋㅋ( 비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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