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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4일 15시 4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리오 휴버만은 미국의 노동 운동가이자 사회주의 교사였다. 언론인이자 학자였으며, 진보적 지식인이며 작가였다. 그는 1903년 10월 17일, 미국 뉴저지의 뉴워크(Newark)에서 태어나 1968년 11월 9일 사망했다. 여기서 잠시 그가 1949년 MR(Monthly Review)를 창간한 뒤, 자신에 대해 소개한 글을 통해 그의 삶을 살펴보자.

‘나는 1903년 10월 17일, 뉴저지의 뉴워크에서 열 한명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 중 6명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나의 부모님은 중산층의 노동자 지식인이었다. 나는 고향에서 공립 학교를 다녔으며 열 여덟 살에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여름 방학 때 내겐 풍부한 산업 현장 경험의 기회가 주어졌다. 열 한 살 때 나는 셀룰로이드 공장의 야간조로 저녁 6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일했다. 나는 월스트리트 중개소의 심부름꾼이었으며, 네딕(오렌지 음료) 사의 판매원이었고, 유리 공장의 비숙련공이자, 전기 기술자의 보조였으며, 우체국의 점원이었으며, 전보회사의 야간 검사원이었다.

이 모든 일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경험했다. 뉴워크 주립 일반 학교에서 교사 자격증을 따고, 열 여덟 살에 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1925년에 나는 고등학교 친구이자, 학교 선생님이었던 커트루드 헬러(Gertrude Heller)와 결혼했고, 신혼 여행으로 캘리포니아에서 뉴저지까지 히치하이크로 돌아 다녔다.

교사 초기의 나의 일정의 다소 빡빡했다. 나는 오후 3시 15분까지 뉴워크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쳤고, 버스와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와 뉴욕 대학에서 오후 수업을 들은 뒤, 다시 버스와 기차로 뉴워크로 돌아와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나는 1926년 뉴욕 대학에서 이학사(B.S.) 학위를 받았고, 그 해 뉴욕으로 이사해서, 사립 실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학교 ‘the City and Country School’은 뉴욕의 그린위치 빌리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20세기 초에 등장한 급진적 진보 교육 운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존 듀이, 캐롤린 프랫, 엘리자베스 어윈 등과 같은 개혁자들은 어린이들에게 단지 지식 만이 아닌, 이해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는 능력과 자신의 삶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를 원했고, 이 학교는 바로 그 첫 번째 교육 실험 중의 하나였다. 이는 오늘날의 일반 상식에서도 매우 급진적이고 불온적인 생각이었지만, 휴버만은 이런 진보적인 대안 교육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열정적인 교사였다.

*민중의 미국사 ‘가자 아메리카로’

‘리오 휴버만에게는 역사란 날짜라든가 전쟁 또는 “영웅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최초의 저서 ‘가자, 아메리카로! (We, the People)’를 출판하던 당시 스물 아홉 살의 교사였던 ‘그는 학생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그런 고물들을 주입시킬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역사시간은 무엇이 일어났는가 보다는 왜 그것이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로 대부분의 시간이 채워졌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의 주제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진보적인 역사 교수법과 그의 색다른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이 책은 1932년에 처음 출판되자마자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비평가들과 독자들은 어린이를 위한 역사책 이상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미국 도서출판인협회’는 백악관의 상설문고에 비치하기 위한 기증도서 200권의 책 중 하나로 이 책을 선택했으며, <라이프> 잡지의 편집자는 미국의 과거에 대해 쓰여진 6권의 뛰어난 책 중 하나로 이 책을 추천했다.

비평가들은 이 책이 새로운 유형의 역사 서술의 시도임을 인정했으며 한 비평가는, “이것은 영웅인 동시에 희생자인 민중에 대해서 쓴 참된 의미의 미국민의 역사”라고 평하기도 했다. ‘가자, 아메리카로! (We, the People)’는 1940년에 그 해까지의 역사를 추가한 성인용 개정판으로 영국에서 다시 출판되었고, 1947년에 그 해까지를 추가 저술, 미국에서 다시 출판되었으며, 지금까지 세계 29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우리가 살펴볼 책은 바로 이 1947년도 판본을 번역한 것이다.

*MR(Monthly Review) 편집장

그의 삶에서 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Monthly Review라는 잡지이다. 그는 1949년에는 폴 스위지(Paul Sweezy)와 함께 힘을 합쳐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보 사회주의 잡지인 MR을 창간해 약 20년 동안을 편집자로 일했다.

MR의 첫번째 사무실은 바로(Barrow) 가에 위치한 리오와 커트루드의 아파트였으며, 그곳에서 리오 휴버만과 폴 스위지는 잡지의 전체적인 방향과 시각, 이슈와 컨텐츠 등을 구상하고 다듬어 나갔다. 이는 냉전과 마녀 사냥이 위력을 떨치는 그 시대에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가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 찾으려고 했던 사회주의의 이상은 과연 무엇일까? 그의 저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the Truth of Socialism)에 그가 믿었던 사회주의의 진실이 담겨있다.

‘사회주의는 자유의 시작이다. 사회주의는 인류를 괴롭히는 가장 심한 해악― 임금노예, 빈곤, 사회적 불평등, 불안, 인종차별,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는 국제적 운동이다. 그 강령― 야만적인 경쟁제도를 문명적인 공동사회로 바꾸고, 개인의 복지가 만인의 복지 속에서 실현되는 우애의 사회를 만드는 것 ―은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일치한다. 사회주의는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 그것은 사회가 진화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진보의 한 걸음인 것이다.’

그의 저서로는 ‘가자, 아메리카로!’ 외에도 폴 스위지와 공저한 ‘쿠바 혁명의 해부’ (Cuba: Anatomy of Revolution), ‘베트남: 끝없는 전쟁’ (Vietnam: the Endless War),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The Truth about Socialism), ‘노동조합에 관한 진실’ (The Truth about Unions) 등이 있다.

‘가자, 아메리카로!’에서 만난 그는 따뜻한 휴머니스트였으며, 더 나은 미래를 믿는 진보적 사회주의자였으며, 민중의 시각에서 바라 본 미국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닫힌 생각을 깨뜨리고,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열어주려고 노력하는 열정적인 교사였다. 그럼 이제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2. 내 가슴에 들어온 글귀

역자 서문

(5) 이 책은 우리들이 흔히 보아온 역사책과는 다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대부분의 역사책 속에서 볼 수 있는 소위 “위인들”은 결코 아니다. 갖가지 어려움에 고통 받고, 여러 종류의 전쟁에서 싸우고, 피와 땀과 눈물로 미국을 건설한 보통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어린이들, 즉 민중이다. 이 책은 그들 민중의 이야기다.

(7) 생각해보면, 우리의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역사”는 실로 연도와 날짜와 사건이 대부분이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으며, 앞 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서 그런 사건들이 터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일찍부터 배웠다면, 아마 우리는 좀 더 일찍 미래에 대한 안목과, 인생을 바라보는 혜안을 키울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제1부

제1장 가자, 아메리카로!

(17) 미국은 그 시초부터 지상의 모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석이었다. 사람들은 지상의 모든 곳으로부터 미국의 해안가로 끌려 들어왔다.

(20) 오랜 항해 끝에 배가 필라델피아에 닿은 후에도 뱃삯을 지불한 사람과 적당한 저당물을 잡힌 사람 외에는 배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뱃삯을 지불할 수도 적당한 저당물을 잡힐 수도 없었던 사람들은 누군가가 그들을 사 줄 때까지 배에 남아 있어야 했다.
… 만약 그들도 뱃삯을 지불한 능력이 있어서 배가 도착한 즉시 하선할 수만 있었다면 그 중 많은 사람들은 회복될 수도 있었을 텐데…

(21) 미국에 오기를 원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뱃삯을 지불한 만한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타고 온 배의 선장에게, 그들의 뱃삯을 대신 갚아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지 몇 년의 기간 동안 하인으로 팔리는 데 동의했던 것이다.

(23) “이 12일 동안 나는 3등 선실 속의 무질서와 일체의 감각을 해치는 환경 속에서 보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만이 구역질나는 악취를 덜어줄 뿐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눈을 가리고 싶게 만들었다. 모든 것들이 불결하고 끈끈하고 몸에 닿는 것조차 불쾌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역겨웠다.”

웬만한 이유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위에 묘사된 모든 고난들을 겪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친척들, 친구들, 그리고 고향 집의 모든 즐거움과 위안과 안락으로부터 이별하는 슬픔을 크게 보상하고도 남을 만한 약속된 미래가 여행의 끝에 있어야만 했다.

(24-31)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오랜 시간 동안 심사 숙고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멀고 먼 낯선 땅에 정착하기를 꿈꾸게 했을까?

이민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굶주렸기 때문에, 보다 많은 빵, 보다 나은 빵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에 왔다. 미국은 그들에게 그것을 줄 수 있었다. 유럽은 늙었고 미국은 젊었다. 유럽의 토양은 오랜 세월 동안 갈아먹은 것이었지만, 미국의 땅은 아직 사람의 손이 닿아 본적이 없는 그야말로 처녀지였다. … 이 땅은 넓을 뿐만 아니라 토질도 좋았다. 이곳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농지가 있었다. … 이 모든 풍요한 자연의 자원을 가지려고만 한다면 돈 한 푼 안들이고도 가질 수 있었다. 가자 아메리카로! (…)

미국은 일손이 필요했다. 유럽과 다른 지역에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나라에서는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자, 아메리카로! (…)

한 편에는 미국에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려주는 편지들, 다른 한 편에는 점점 귀해져 가는 식량. 결론은 이민이었다.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가자, 아메리카로! (…)

직장을 얻기가 어려울 수도 있었고, 조롱당할 때도 있었고, 심지어는 돌멩이 세례를 받을 수도 있었다. 또는 살해될 위험마저 있었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런데 미국에서는 종교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곳에선 무슨 교리를 믿건 자유이다. 그곳은 카톨릭 신자도, 프로테스탄트 교도도, 유태인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자, 아메리카로! (…)

“마이클, 이곳은 참으로 멋진 나라다. 이곳에서는 누구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자유가 있다. 읽고 싶은 것을 읽을 수 있고,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아무도 체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자, 아메리카로! (…)

이민을 가야 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다가,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모든 절차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필요한 모든 세부 사항에 이르기까지 협력해 주며, 때로는 여권까지 갖추어 주고, 끝으로 적절한 배까지 안내해 준다면 – 그렇다면, 가자, 아메리카로! (…)

어쨌던 영국의 입장에선 ‘훌륭한 시민들’이 아니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들을 딴 곳으로 치워버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으랴. 그렇다면, 보내버리자, 아메리카로! 그들이 가고 싶어하든 말든. (…)

그렇게 그들은 왔다. 자의로 오는 사람들이나 타의로 보내지는 사람들이나, 이민은 1600년대 초에 몇 안 되는 사람들로 시작되어 몇 백으로, 이어서 몇 천으로, 그러다가 300년이 지난 후에는 단위를 10만으로 해서 그 숫자를 파악해야만 했다. … “시계가 밤낮으로 매 시간을 알릴 때마다(10년 전체의 평균을 낸다면)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한 여타 지역에서 출생한 외국인들이 100명씩 미합중국의 해안가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 도착한 뒤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제2장 새출발

(41-42) 불결한 물, 부패한 음식, 부족한 식량, 극도의 더위, 극도의 추위, 인디언들에 의한 학살, 이것이 초기 정착민들이 흔히 처해 있던 환경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버텼다. 그리고 다른 정착민들이 들어왔다. 점점 더 많은 정착 단지가 들어서고 더 많은 이민들이 도착하면서 그들은 황야로부터 한 나라를 조각해 내고 있었다. 그들은 ‘신세계’에 새로운 출발을 걸고 조국땅을 떠난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모험의 인생으로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굳은 의지와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48) 그렇게 되어 대규모의 플랜테이션 농장은 소규모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삼켜 버렸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신분은 두 개의 극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백인과 흑인 – 주인과 노예였다.

(55-56) 세계에서 제일가는 뱃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빈틈없고 민첩한 양키들은 그들의 배를 알고 있었고, 바다를 알고 있었으며, 어떻게 시장을 개척하는가도 알고 있었다.

배의 선원들은 바다가 주는 매력에 끌려 모험을 원하는 나이 어린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똑같이 반복되는 매일매일의 농장생활보다는 바다에 끌렸다. 바깥 세상을 구경하고, 높은 급료를 받고, 잘 하면 고급 선원이 될 수도 있었다. 유럽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 그러나 뉴잉글랜드의 배에서는 잡부직에서부터 올라가는 것이었으므로 젊은 선원이라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었다. … 그들 10대 또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바다에서의 긴박감 넘치는 일을 사랑했고, 그들처럼 젊은 나이에 시작했던 나이든 선원들 밑에서 모든 비밀을 배웠고, 열심히 항해의 묘기를 익혀 나갔다. 그리고 배와 바다에 관해서라면 눈을 감고도 훤히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선장 또는 항해사가 되었다.

제3장 모든 인간은 평범한가?

(56-57) 뉴잉글랜드인들이 흑인 노예의 사용을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흑인 노예가 필요 없었을 뿐이었다. 후에 흑인 노예의 수입이 금지되었을 때 남부에서는 피부색이 검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북부에서는 반대로 그것이 어느 면에서는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리적 환경이 서로 상반되는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61) 유럽인들은 어느 정도 그들이 익숙해져 있던 형상대로 이 땅을 조각했다. 그러나 이 땅의 자연이 그 모습을 결정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 땅에 무언가를 행하고 있는 동안, 이 땅도 그들에게 무언가를 행하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새로운 민족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었다 – 미국인으로!

(67) 식민지에서는 유럽에서보다 더 빨리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오를 수 있었다. 실상 그러한 차이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도 최상위의 계급으로 오리기 전에는 항상 위로부터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법을 만든 사람들은 부유한 상류계급이었다. 왜 그 같은 법들이 부유층에게 유리하게 돼 있었는지는 쉽사리 알 수 있는 일이다.

(67) 부자들의 지배권에 대해 도전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 투표권을 갖고 있던 소농들이 이따금씩 도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 도전은 변경(邊境)에서 왔다. 변경 개척자들은 정책 결정에 대한 발언권을 요구했다. 그들은 법을 만드는 데 그들 자신이 참여할 권리를 요구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미국적 사고 방식은 변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럽에서도 이러한 사상이 논의된 바는 있었으나 처음으로 실천에 옮겨진 것은 미국이었다. 그것은 후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매우 중대한 사상이었다.

(67-68) 최후의 정착이 끝난 곳에는 황야가 시작됐다. 문명의 끝과 미개의 시작이 만나는 곳, 이곳이 변경이었다. … 바로 문턱까지 황야가 닿아 있던 이곳에서는 인생을 처음부터 재출발할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변경으로 왔다. 살고 있던 곳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계약 노예노동자들, 모험을 사랑하는 사람들, 구 정착지에서는 발전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야심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

미국이 이동하고 있었다. 한 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방랑의 기질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온 가족을 이끌고 서쪽의 변경지대로 갔다. 그곳은 억눌리고 짓밟혀 온 가난한 사람들의 ‘약속의 땅’이었다. 땅 – 그것은 독립과 부(富)를 향한 열쇠였다. 그들은 땅에 굶주려 있었다.

(69-70) 변경의 생활은 위험하고도 고달팠다. 문명의 부드러운 손길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 고된 일뿐인 개척생활로 그들은, 정확히 말해서 그들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강인해졌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았다. 이곳에서는 특정 계급의 지배라는 것이 있을 수 없었다. –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보다 더 훌륭하지 않았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똑 같은 기회를 갖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부친이나 조부가 누구였던가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서 성공할 수 있었다. 개척자들은 늘 힘든 일에 부딪혔다. 그들은 도처에서 어려운 장애물과 맞붙어 싸워야 했고 이겨야 했다. 그들은 이겼다. 그들은 머리를 높이 쳐들고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독자적으로 되어 갔다. 개척자는 “바보라 하더라도 현인이 옷을 입혀주는 것보다 혼자서 더 잘 입는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70-71) 모든 분쟁에서 서로 대립된 양극은 실상 어느 곳에서나 같았다. 즉, 동부의 비교적 오래된 연안지역 정착지의 상류 계급과, 날로 성장하고 있던 서부지역의 변방 개척민들 간의 투쟁이었다. … 부자 상인들과 지주들은 그들의 소수 상류계급 지배라는 구세계 사상이 인간의 평등이라는 신세계 사상을 부르짖는 미국 변경 개척민들에 의해 도전 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장기간의 어렵고 치열한 싸움이었다. 오늘날까지도 그 싸움은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제4장 당밀과 차

(76) 시장이 있어야 했다. 식민지, 식민지를, 더 많은 식민지를 확보해야 했다. 모국을 제국(帝國)의 중심으로 하고 식민지들을 모국상품의 소비시장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 그렇게 되면 타국에 아무것도 의존할 필요가 없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제국이 되는 것이다. … 한가지 명쾌한 목적 – 모국을 부자로 만드는 – 을 위한 매우 짜임새 있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쉽사리 알 수 있듯이, 이 모든 것은 그 식민지의 무역이 모국의 통제하에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79) “아메리카 무역에 관한 대영 제국의 두 가지 큰 목표는 (1) 아메리카의 신민(臣民)들로 하여금 제국이 공급할 수 있는 일체의 공업제품과 상품을 오직 제국으로부터만 수입할 수 있게 하는 것과, (2) 아메리카의 외국 무역을 통제하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은 제국으로 돌리거나 또는 제국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장미빛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단, 모국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그러나 불행하게도 식민지 주민들은 식민지가 단순히 모국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을 만큼 헌신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식민지가 그들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 그들이 이곳으로 온 것은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에서, 자기 자신이 잘 되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82) 제국의 법을 지켜서 잘 살 수 있다면, 그런 법은 지켰다. 그러나 잘 살기 위해서 법을 어겨야 한다면, 그런 법은 지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돈지갑에 구멍이 뚫리느니보다는 영국의 법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 나았다.

(85) 주민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었던 셈이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하는 버릇에 습관이 돼버렸다. 영제국 정부를 대표하고 있던 총독들과의 그러한 논쟁은 식민지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떳떳이 실행하고 주장하는 연습을 시켜 주었다.

… 식민지 주민들은 확장을 원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영제국의 통제에 부딪쳤다. 통제의 목적은 모국 또는 제국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영국으로부터 3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기 위해 유럽의 관습이나 법을 피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일단 이곳으로 와서는 제국 총독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 그 모든 이유들로 인해 식민지 주민들은 날마다 독자적으로 되어 갔다. 영국은 영국을 위해 식민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반면, 식민지는 식민지를 위해 식민지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87) 몹시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때야말로 서부로 이주해 가서 처음부터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시기였다. 그런데 선언법이, 그 가증스러운 영국 법이 돌연 발표된 것이었다. 물론 법적으로 금하고 있었음에도 간 사람들은 많이 있었다. 그것은 워낙 거센 시대적 움직임이었으므로 어떤 법으로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었다.

(89) 1763년 선언법. 1764년 사탕조례. 1765년 인지 조례. 식민지 내의 불경기. 무대는 이미 마련되어 있었으므로 회오리의 시작은 멀지 않았다.

(99) 그들은 다만 그 법의 철회를 원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자 주민들을 선동했다. 그러나 민중 – 폭도 – 들은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법을 무시하는 것과 집을 부수고 배를 불태우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부자들은 폭도들의 파괴적 행위에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금할 수 없었다. ‘인간의 권리’를 누구보다도 소리 높여 외치고 그 권리를 위해 누구보다도 힘껏 싸우고 있던 소농, 기술자, 투표권도 땅도 갖지 못한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실상 자신들 정부의 운영에 관해서 누구보다도 적은 참여권이 주어진 사람들이 아닌가? 상인들에게는 의회의 법보다 폭도들이 세력을 더해 가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한 것이었다.

(101) 애초에 공이 굴러가도록 만든 것은 그들이었으나, 공이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손을 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민중과 합세해서 영국과 투쟁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 두 집단은 분리되어 가고 있었다.

(104) 동인도 회사 차가 상륙하게 되면 상인들이 잃게 될 돈에 대한 말은 별로 없었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 라든가, ‘해방’과 ‘자유’에 대한 말은 많았다. 차는 절대로 상륙하지 못한다!

(108) “미국의 조국은 영국이 아니고 유럽이다. …… 올바른 또는 합리적인 모든 것이 분리를 요구한다. 학살된 이들의 피가, 자연의 흐느낌 소리가 외치고 있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라고. …… 우리가 자신의 정부를 갖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다. ……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우리가 망설일 이유가 무엇인가? 제국으로부터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파멸뿐이다. …… 우리의 문제를 가장 신속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개적이고 확고부동한 독립의 선언이다.”

제5장 더 완전한 연방을 이루기 위하여

(112) 혁명은 확고한 신념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주저하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사물을 그들의 방식대로 보게끔 설득했다.

(116-117) 미국 혁명은 영국과의 전쟁 이상의 것이었다.
전쟁은 1783년 끝났지만 혁명은 계속되었다. 전쟁은 미 합중국 국민들의 정부의 변화를 의마한 것이었지만, 혁명은 국민들간의 공존하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서민층이 쟁취하고자 했던 것 중 일부가 혁명 기간 동안에 이루어졌다. 곳곳에서 미국인들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와 평등, 인간의 권리 등에 관해서 말하고 있었다. 독립선언문은 이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음을 자명의 진리로 받아들인다.” 문서에서뿐만 아니라 실생활에 있어서도 그 진리를 받들기 위한 법들이 제정되었다.

(117) 혁명은 미국을 영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켰지만,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을 상류계급의 지배라는 구세계적 사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120) 혁명이란 말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 중의 하나는 ‘변화’이다. 미국 혁명은 미국인들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는 구 시대의 유럽 국가들에게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오지 않았던 것이며, 또한 미국으로 하여금 “자유국가”라는 평판을 갖게 한 것이다.

(127) 그는 그들이 “…… 미국의 재산을 …… 제국으로부터 보호한 것은 모든 사람들의 힘든 노력의 결과이므로, 그 재산은 당연히 모든 사람들에 의해 공유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고 적었다.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등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듯 오싹해지는 일이었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129) 그러나 한 가지 사실에 관해서만은 실제적으로 대표 전원이 일치된 의견이었다. –민중이, 말하자면 재산이 별로 없거나 전혀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힘을 갖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130-131) “우리 미 합중국 국민은(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더 완전한 연방을 이루기 위하여(in order to form a more perfect union)” 헌법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등장시켰다. 그 정부 안에서 13개의 서로 분리되어 싸우고 있던 주들은 하나로 합쳐질 것이다. 만일 이 헌법이 국민에 의해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미국 연방은 이름뿐만이 아닌 진정한 ‘미 합중국’이 될 수 있었다.

제6장 총 하나, 도끼 하나

(133-134) “그들은 한 장소에 전혀 집착하지 않는다. 방랑벽이 그들의 천성 안에 뿌리 박혀 있는 것 같다. …… 그들은 …… 더 먼 곳으로 가면 그들이 이미 정착한 곳보다 더 나은 땅이 있을 것이라고 늘 상상하고 있다.”

(134) ‘뭔가 일어나기를’ 고대하는 활력과 패기에 넘치는 젊은이들이 모든 것들이 그저 그대로이고 아무런 흥미거리도, 아무런 변화도 없는 고향 마을의 생활과는 대조적인, 인디언과 야생동물과 총 싸움이, 위험과 모험이 있는 변경의 생활을 알았을 때, 떠난다는 것에 대해 재고해 볼 겨를조차 없었을 것이다.

(135) 땅을 찾는 사람들의 무리들이 홍수를 이루다시피 하며 미시시피 계곡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혼자 짐을 꾸려 떠나는 사람. 가족끼리 짐을 꾸려 떠나는 사람. 때로는 마을 전체가 짐을 꾸려 떠나기도 했다. 미국 전체가 움직이고 있었다.

(142) 그렇게 그들은 이동하다가 정착하고, 나중에 온 사람에게 땅을 팔고, 그리고는 다시 이동했다. 이동한다는 것은 그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천성이었다.

(144) 개척자에게는 도구가 필요했다. 그에게는 총 하나, 도끼 하나, 그리고 옥수수 한 자루가 있었다.

(151) 변경선은 미개와 문명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개척 농민은 그의 문명생활을 포기하고 한동안은 실제로 미개인이 되어야 했다.

(151-152) 그는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얻기 위해 출발했던 것이다. 그는 어떠한 간섭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스스로 독립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었다.

(152-153) 서부의 한 집회에서 어떤 정부 관리들이 연단을 오리기 위해 군중 사이을 비집고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외쳤다. “길을 비켜 주십시오. 우리는 국민의 대표들입니다.” “당신들이 비켜가시오.” 군중은 재빨리 응수했다. “우리는 국민이오.”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는 배짱을 가졌던 사람들은 사람은 자신의 힘을 믿고 있었고 어느 누구에게도 머리를 굽리려 들지 않았다.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발명가가 된다. 동시에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개척자는 다방면의 기술자가 되었다. 그가 적응해야 했던 상황은 보통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 적응했고, 따라서 이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153) 개척자의 생활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그는 화려한 것을 혐오했다. 그는 꾸밈을 싫어했으며, 그의 태도는 직선적이었다. …… 황야에서의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157-158) 정부가 최초로 건설한 대규모의 고속도로, 즉 ‘국도’는 서부로 가는 유료 도로였다. … 운하는 어느쪽으로 흐르고 있었을까? 서부로 흐르고 있었다. … 철도는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을까? 서부로 향하고 있었다.

(168-169) 그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증기선들 간에는 서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속력경쟁이 자주 있곤 했다. 일단 다른 배와 속력 경쟁에 말려들게 되면 기관실 안은 완전히 극도의 흥분상태가 된다. 빨리, 더 빨리! 장작에 기름을 부어라, 안전 밸브를 눌러라! – 보일러의 열을 올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았다. 경주에서는 이겨야 했다!

(174) 서부는 공동의 관심사를 가진 농민들로 이루어졌다. …… 선거가 다가왔을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의 아들과 같은 사람에게, 그들의 문제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쏠렸다. 그들은 서부인을, 한때 그들과 같이 가난했던 사람을, 변경에서 성장하고 생활했던 사람을 선출했다. …… 배운 것이 없어 무지하고, 용맹스럽고, 과격한 기질과, 두 주먹의 무사. 그들처럼 살고, 그들처럼 생각하고,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옳다고 믿는, 그들과 동류의 인물.
서부인들은 그들의 위력을 증명해 보였다.

1828년 앤드류 잭슨의 승리는 서부인들의 위대한 승리였다.

제7장 이상하고 다채로운 변경 – 그 마지막

(182-183) 그들은 길을 찾아내는 사람들이었고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거칠고 위험했으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워 알고 있었다. 그들은 힘들고 외로운 생활을 사랑할 줄 알았다. 문명이 제공하는 생활방식을 내던지고 인디언의 차림새와 관습과 태도를 닮으려 했다. 말과 짐 싣는 가축 두 마리, 총과 탄약, 덫과 칼, 커피 포트, 프라이팬, 담요, 알코올과 잎담배, 이것만 있으면 강인한 덫 사냥꾼들은 산에서 1년간 생활할 수 있었다.

(189) 죽느냐, 아니면 살기 위해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먹을 것이냐, 천천히 마지 못해서 후자를 선택했다.

(193) 이 짐승은 초원의 인디언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식량 공급원일 분 아니라 그들의 오두막 지붕을 덮는 데 쓰이며, 그들의 옷은 대부분 그 가죽으로 만들어진다. 또한 그들의 침구, 로프, 고기를 넣는 주머니 등이 들소 가죽으로 만들어지며, 그 힘줄은 활줄, 그리고 정강이받이, 신발 등을 꿰 메는 데 쓰인다.” 인디언의 생활은 들소로 싸여 있었다.


(201) “모든 방향으로 끝없이 뻗어나간 넓은 공간은 마치 바다와 흡사하게 보였다. 어둠이 내리고 있는 지금은 특히나 더했다. 그녀는 그런 풍경에서 강하게 바다를 연상했다. 그러나 바다와는 매우 달랐다. 이 형체 없는 초원은 고동치는 가슴도 노래하는 파도도 갖고 있지 않았고, 만져질 수 있거나 마음을 줄 수 있는 영혼을 갖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누가 이런 곳을 견딜 수 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어째서 사람이 몸을 숨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201) 변경의 종말이 온 것이다.

제8장 공업의 북부

(204) 사람의 주머니 안에 든 설계도가 국외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어도 사람의 머리 속에 든 설계도가 국외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04) 그러나 사람이란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는 큰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 기분에 맞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면 항상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

제9장 농업의 남부

(234) “매릴랜드, 버지니아, 노드캐롤라이나, 켄터키, 테네시, 미주리주에서는 흑인 노예의 번식과 성장에 대해 말이나 노생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관심이 기울여집니다. 더 남부로 가면 가정용과 시장용의 두 가지 목적으로 흑인노예들이 사육됩니다……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 노예는 그렇지 않은 여자 노예보다 1/6에서 1/4까지 값이 더 나갑니다.”

(236) 이 8,000명도 되지 않는 노예 소유자들은 숫자에 있어서는 비록 적었으나 세력에 있어서는 막강했다. 그들이 남부의 부유한 귀족들이었다.

(236) 그들은 지배 계급이었고, 항상 그렇듯이 그들 계급에 유리한 사고방식을 가능한 한 멀리까지 퍼뜨리는 데에 그들의 세력을 이용했다.

(242) 침대, 수레바퀴, 말 안장, 흑인 –이들 모두가 한꺼번에 취급되었다. 모두 그저 값으로 환산되는 재산일 뿐이었다.

(246) 1860년의 미국 …… 나라는 하나, 그러나 두 조각 …… 거의 모든 점에서 서로 다른 북부와 남부.

제10장 땅 주인과 돈 주인의 싸움

(250) 그들은 수적으로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었지만 적은 숫자에 비해 엄청난 힘을 작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무섭게 진지했고, 스스로 옳다고 확신했으며, 목적을 위해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하고 쓰고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60) 북부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에 의해서였다. 지도를 보라.

(262) ‘부자들의 전쟁에 빈자들의 싸움’

(263-264) 상인들, 제조업자들, 은행가들은 그들의 장애물이었던 지주들과 싸워 이김으로써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바를 뚜렷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제11장 자원, 인력, 기계, 돈

(265) 일찍이 1902년에 ‘미 합중국 공업위원회’는 “1865년 이후 이루어진 변화와 진보는 여러 면에서 그 이전의 인류 역사의 전 과정에 걸쳐서 있었던 모든 것보다 크다”고 언명했다.

(283) 1890년도는 변경의 종말을 기록한 해였다. 변경의 종말은 무상의 토지에 종말을 고했다.

(286) 산업 경영자에게는 타인을 착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으로 해서 오는 모든 이점이 있었다. 농민에게는 타인에 의해 착취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으로 해서 오는 모든 불리한 점들이 있었다.

(288) “ 월 가는 미국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다. 미국은 월 가의, 월 가에 의한, 월 가를 위한 정부가 되었다. 이 나라의 위대한 국민들은 노예가 되었고, 독점기업이 주인이 되었다. 서부와 남부는 공업의 동부에 묶여 무릎을 꿇었다. 돈이 지배한다. …… 국민들은 그들의 주인들을 살찌우기 위해 착취당하고 있다. ……. 대중은 막다른 길에 몰렸다. 사악한 돈의 개떼들아! 대중을 이토록 궁지에 몰아세운 대가를 기대하고 있으라!”

(289) 후에 역사가 증명한 바로는, 사유재산에 대한 공격을 대심원이 승인한 예는 극히 드물었다. 지배계급은 공격을 막아 줄 든든한 보루를 확보한 것이다.

(292) 정부의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부유층이 잘 살도록 법을 만들어 놓으면 그들의 번영이 넘쳐 아래 사람들에게로 흘러내려 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주당이 갖고 있는 정부의 개념은 대중을 잘 살게 함으로써 그것을 발판으로 그들의 번영이 위로 모든 계층에 골고루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93-294) “ 브라이언의 패배는
서부 은의 패배
밀의 패배.
서류철의 승리
부자들의 승리.
주머니가 불룩한 외투
다이아몬드 시계 줄이 늘여진 조끼
윤나는 구두.
관리자들의 승리
플리머드 록의 승리
그리고 지주 가문을 번성케 한
모든 것의 승리
가진 자들의 승리.”

제12장 더 많은 자원, 인력, 기계, 돈

(311) 부정이란 결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314) 그들은 독점기업가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 가고 있는 막대한 이윤에 대해서 읽었으며, 그들이 사고 있는 공업제품의 가격이 어처구니 없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316) 의회는 셔먼 법을 트러스트에 대한 국민의 무기로 제정했다. 그러나 법원은 셔먼 법을 흔히 노동조합에 대한 고용주의 무기로 해석했다.

제13장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318) 재산이 1위였고 인간이 생명은 2위였다. 그것이 마찰의 한 원인이었다.

(324) 기사단은 노동 내에서의 어떤 특정한 집단을 돕기 위해 구성된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의 단결을 가져 오기 위한 것이었다.
어떠한 목적으로?
‘고귀한 노동기사단’은 그런 명칭을 갖고 있는 조직으로부터 기대될 수 있는 종류의 사업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 조직의 지도자들은, 조직과 교육 및 협동을 통한 전체 노동계급의 향상이라는 이상주의적인 목표를 선언했다.

(326) 발전의 원동력은 지도자들의 이상주의적이고 센티멘탈한 사회향상 계획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합원 대중이 호전적이었다는 사실에서 발전의 원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다.

(327) “우리는 어떠한 궁극적인 목적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전진할 뿐입니다. 우리는 당면한 목표들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수년 안으로 실현될 수 있는 목표를 말입니다.

(329) 그들은 자본주의제도 자체를 전복시킬 계획이 아니었다. …… 그들의 모토는 ‘공정한 노동에 공정한 임금을!’이었다.

(331) 노동계급은 고용계급과 어떠한 공통의 이해도 갖고 있지 않다.

(333) 미국의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투쟁들 – 막대한 재산을 파괴했고 많은 생명을 앗아간 – 중의 일부는, 최종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고용계급이 노동조합을 부인하고 조합과의 단체교섭을 거절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334) (유명한 자본가 제이 굴트가 “나는 노동계급의 반을 고용해서 나머지 반을 죽이도록 할 수 있다’고 호언할 수 있었던 것은 동료 근로자들과 싸울 근로자들을 구할 수 있었던 이 같은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338)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트러스트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법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339) 그들은 아직 법원의 해석이 남아 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법원의 해석이 남아 있는 한,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었다.

(340) 트러스트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던 법이 법정의 해석에 의해서 노동조합의 성장을 막기 위해 사용되고 있음이 점차적으로 명백해졌다.

(341)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길고 격렬한 투쟁에서 미국 법원은 가진 자의 편이었다.

제14장 무일푼에서 백만장자로

(343) 수정 조항 제14조는 흑인을 법 앞에서 다른 모든 시민들과 평등한 미국의 시민으로 만들었다.

(344) “정당한 절차” 항목에서 ‘자’라는 말을 ‘기업’ 이라는 말로 바꾸어 놓으면 이 수수께끼가 풀린다. 대심원은 바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348) 각 부문을 지배하는 거대한 주식회사의 소유주와 이 주식회사들을 지배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손으로 머지않아 국가의 대부분의 권력과 부가 집중되리라는 놀라운 사실은 이미 명백한 것이었다. 국가의 부의 지배에서 정부의 지배로 이르는 것은 단 한 걸음에 불과한 것이었다.

(350) 미국은 항상 자유와 해방을 신봉해 온 나라였다. 그 자신 모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나라였다. 그런데 스스로 모국이 되려 하다니, 미 제국이 되려 하다니,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역겨웠다.

(358) 나의 직무란 대기업, 월 스트리트 및 은행가들을 위한 고급 폭력단원으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자본주의의 깡패였던 셈이다.

제2부

제15장 백만장자에서 무일푼으로

(372) 미국의 경제제도는 노령에 접어들어 있었다. 미국의 경제제도는 일찍이 생산력의 해방과 개발을 전례 없는 정도까지 끌어올리는 위대한 과업을 수행했었다. –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373) 미국이 앓고 있던 질병은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그것은 최고도로 발전한 최첨단의 자본주의였다.

(377) 이러한 고도로 발달된 최첨단의 자본주의가 미국 국민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몇몇 사람들이 경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378) 그것은 공업이, 기업의 생산적 측면보다는 돈벌이 측면에 몰두한 사람들의 원격조정에 의해 운영됨을 의미한다. 그 결과, 투기적인 측면으로 향하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그런 투기는 저변의 경제적 현실과는 점점 연관성이 희박해지는 것이다.

(379) 이윤이 줄어들수록, 근로자를 혹사하고 노동을 절약하는 기계를 더 많이 사용하게 하는 압력은 더욱 커진다. …… “불황은 효율 전문가의 구실을 했다.”

(383) 그러나 그것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었다. 확장은 그 자체로 축소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확장이 커질수록 그에 따르는 축소도 커진다.

(384) 근본적인 요인은, 자본주의 체제가 그 존속을 무한한 확장, 생산력의 무한한 해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미 무한한 확장에의 벽을 자동적으로 쌓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장이 불가능할 때는 수축한다.

제16장 아무도 굶주리게 할 수는 없다

(386) 기업가의 자유방임, “우리에게 간섭 말라”는 교리는 물러갔다. 대신 그 자리에 “도와 달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망한다”는, 정부 개입의 관념이 들어섰다.

(390) “나는 세 가지의 서로 관련된 단계를 줄곧 인식해 왔습니다. 그 첫번째 단계는 구호입니다. 민주주의의 인도적 이상이 지배하는 어떠한 정부도 그 첫번째 관심사는 광대한 자원을 가진 영토에서 ‘어느 누구도 굶주리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구호는 과거에도 우리의 제일의 관심사였으며 앞으로 계속 그럴 것입니다.”

(393) 선택은 두 갈래의 길에 놓여 있었다. 한 쪽에는 국가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보탬이 되기는 하나 고소득층의 연방 세금의 부담을 크게 하는 인도적이고 계몽적인 취업구호사업. 그리고 다른 한 쪽에는 심각한 경제적 단층을 초래하고 국민 다수의 고통을 초래할 것이기는 하나 고액의 세금을 지불할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세금부담을 경감시키는 비인도적이고 비계몽적인 직접구호사업. 취업진흥국의 비난자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들은 전자를 무너뜨리고 후자를 세우기를 원하고 있었다.

(398) 사회보장법은 올바른 방향으로의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보에 지나지 않았다. 이 법은 기획 면에서 많은 결함이 있었고, 일부는 시행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보호를 필요로 하는 수백만의 인구가 외면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점은, 불안의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의도로 제정되었던 이 법이 실은 전혀 그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낮은 생활수준을 보장했던 ‘보장’제도였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뉴딜 정책은 관념적인 혁명이었다. 그것은 경제적 혁명이 아니었다.

제17장 다시 일자리를 주기 위해

(408) 기업가들은 답을 갖고 있었다. …… 항상 그렇듯이, 극심한 불황 속에서 ‘공정한’ 경쟁은 ‘부정한’ 경쟁이 되어 있었다.

(408) 근로자도 답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근로자를 도와야 한다고 했다.

(414)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 그러나 부자들은 볼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정부의 지출이 나라를 파멸로 이끄는 것이었다.

(418) 뉴딜 관계자들은 실업을 비상사태로 파악했다. 따라서 그들은 공공지출계획을 비상계획으로 간주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이윤제도의 붕괴는 많은 미국인들이 영구 실업상태에 있게 될 운명임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진실로 요구되었던 것은 거대한 규모의 영구적인 공공지출계획에 즉각적으로 착수하는 것이었다. 국가의 인적 및 물적 자원을 완전히 이용하게 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윤제도의 폐지를 위한 영구적인 계획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뉴딜 정책이 했던 것은 실업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향으로 불완전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경제적인 혁명이 아니었다.

제18장 판매자도 주의하라

(425) 우리가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잇는가?

(436) 그러나 이들 고용주들의 말과 행동은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들의 말은 항상 “자본과 노동의 상호협조”를 들먹이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은 미국 노동성의 통계에 반영되어 있었다. 통계에 의하면, 1934년에서 1937년까지 미국에서 일어났던 파업 중 대부분의 경우 주요 쟁점이 되었던 것은 임금과 근로시간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조직과 승인에 관한 문제였다.

(452)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단순히 자본주의가 제대로 운행되게 하는 것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대다수의 국민에게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운행되기를 원했다.

(453) “우리는 겨우 싸우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제19장 세계적인 무법상태의 전염병이 번지고 있다

(458) 우리는 합리적으로 선택해야 할 두 갈래 길에 놓여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세계의 문제로부터 손을 떼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침략자를 불리하게 하고, 우리가 할 수 잇는 한 ‘피침략자’를 유리하게 한다는 공공연한 목적으로 세계의 문제에 의식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길이었다.
우리는 그 중 아무 길도 택하지 않았다.

(460) 가까이에서 본다면, 그것은 영락없는 햄릿의 모습이었다. 그가 당면한 엄청나고 중대한 과제를 의식하고, 그 과제를 수행할 방법을 의식하고는 있으나, 그의 의지력과 행동력이 그의 이해력과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그런 햄릿이었다.

(484) 1933년 3월4일,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는 미국의 3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12년 후 그가 서거할 때까지 대통령직에 머물렀다. (1936년, 1940년 그리고 1944년에 압도적 다수의 지지로 재선되었다.)

(485) 뉴딜은 미국민의 교육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단계였다. 그것은 관념적인 혁명이었다.

제20장 일자리와 평화

(486) 1929년의 대공황 이후, 전 세계의 독점자본은 두 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즉, 전시 체제를 이용하거나 또는 공공사업, 구호, 농업원조 등에 대한 재정지출에 의해 존속했다. 어느 경우에도 환자를 당분간 생존케 했던 것은 정부의 경제활동이었다.

(486) 전자의 치료법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서 시도되었다. 그것은 군수품에 대한 정부의 막대한 주문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487) 후자의 치료법은 거대 기업으로 흘러 들어 가는 이윤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당면한 사회적, 경제적 폐해의 일부를 제거하는 성격을 지닌 재정지출이었다.

(489) “문제는 기업가들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악하거나’ ‘탐욕스럽거나’ 또는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을 옭아매고 잇는,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다이나믹한 제도가 집단적, 민주주의적 목적에 맞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 진정 요구되는 것은, 민주적으로 규정된 대중의 이해관계에 의해 지배되는 광범하고 일관된 정책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아직까지 달성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489) 미국민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었다. 반대로,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였다.

(490) 사실을 말한다면, 사기업은 이미 오래 전에 자유기업으로서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492) 문제는 우리가 ‘자유기업’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경제가 독점자본의 사적인 목적을 위해 독점자본에 의해 지배될 것인가, 아니면 국민 자신의 복지를 위해 국민에 의해 지배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민중은 뉴딜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그들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뉴딜이 급속히 한낱 과거의 기억으로 퇴색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그들은 그 교훈을 기어해야 한다. 그들의 경제적, 정치적 활동은 배가되어야 한다. 그들은 일자리와 평화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투쟁을 통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일자리와 평화는 이윤(利潤)만을 위한 생산제도가 아닌, 사용(使用)을 위한 생산제도 하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3. 내가 저자라면

개정판 서문에 있는 리오 휴버만의 말을 빌려 책의 내용을 다시 정리해본다.

(9) 구(舊)시대는 실로 1932년이 아니라 공황이 시작되었던 1929년에 끝났다. 이민 초부터 1929년까지, 미국은 젖과 꿀만이 아니라 강철과 석유가 흐른 ‘약속된 땅’이었다. 그곳은 유럽의 가난한 이들이 부(富)를 위해 찾아온 풍요의 땅이었으며, 억압과 압박을 받던 이들의 피난처이자 자유의 땅이었다.

이 책에서 나는 그 약속이 어느 정도까지 실현되었는가 – 그리고 실현되지 않았는가 – 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9-10) 제1장에서 14장까지의 제1부는 초기 개척시대로부터 경제가 활기를 띠게 된 1929년까지의 비교적 긴 시기가 된다. 그것은 갖가지 역경 속에서 용감한 남자들과 부녀자들, 그리고 어린이들의 노력으로 한 나라가 형성되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것은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경제적 대확장(大擴張)의 역사이다. 그것은 대기업의 낙원인 미국에 있어서의 대기업의 전설이다. 그것은 점점 강력해지는 독점자본의 힘에 관한 이야기다.

그 힘이 도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저항은 농민들과 공업 노동자들로부터 왔다. 그 저항의 역사도 수록되었다. 19세기 말경 미국을 세계적인 강국으로 만들었던 미국 대기업의 해외진출에 관한 이야기도 역시 수록되었다.

(10) 제15장에서 20장까지의 제2부는 새로운 내용이다. 그것은 파산과 공포와 비탄의, 그리고 스러져간 빛을 되찾기 위한 절망적인 몸부림의 이야기다. 그것은 1929년의 경제공항으로부터 시작해서, 파손된 부분을 수리하여 수레바퀴를 다시 돌리려고 노력했던 뉴딜의 시도를 대부분 다루고 있다. 그러나 1929년의 필연적인 경제적 붕괴는 제도 내의 위기가 아니라 제도 자체의 위기였으므로, 뉴딜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뉴딜 및 구호, 회복, 개혁을 향한 뉴딜의 필사적인 노력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왜냐하면, 뉴딜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전반에 걸친 가능성과 결함을 가르쳐주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뉴딜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선의(善意)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진정 요구되었던 것은 새로운 손길이 아니라 새로운 정책적 대안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10) “미국은 약속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최근까지도 오직 정상(頂上)의 사람들에 게만 실현되었다. 그 약속이 우리 모두에게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아메리카의 꿈은 분명 현실이 될 수 있다. 그것을 하루 빨리 실현시키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자, 아메리카로!’는 크게 1부와 2부의 내용으로 나눠져 있고, 1부는 1929년까지 대공황 이전의 시기, 아메리카가 끊임없이 확장되어나가는 시기를, 2부는 대공황의 혼란에서부터 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는 시기까지를 ‘뉴딜 정책’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고 고정된 것을 무너뜨리는 변화의 힘과 그원동력에 대해서,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와 원대한 꿈을 꾸었던 민중들의 삶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권력 투쟁의 역사’라는 마르크스의 핵심 명제를 미국 역사를 통해 재확인해볼 수 있다.

*책의 장단점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일의 발견’과 ‘미완의 시대’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그리고 ‘역사란 무엇인가’ 보다 먼저 출판되었음에도 E. H. 카의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인간에 대한 사랑과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이 책은 한 손에는 카의 “역시는 무엇인가’를, 또 다른 한 손에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들고서 글을 써 내려간 느낌이었다. 자신의 역사 인식과 이데올로기를 역사와 삶의 현장 속에서 직접 발견하고, 실천하고, 담아낸 듯한 현실의 힘이 느껴졌다.

‘가자, 아메리카로!’에는 민중의 역사와 삶, 그리고 인간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 좋았다. 진보에 대한 믿음, 자본주의의 대안과 사회주의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희망이 담겨있어 가슴을 움직였고, 가끔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구절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단지 열정만이 아닌, 구체적인 데이터의 활용과 분석을 통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 또한 이 책의 힘을 배가시키는 장점 중 하나이다.

아마 이 책의 단점은 이러한 책의 장점들에 기인하는 것일 게다. ‘가자, 아메리카로!’에 담겨 있는 역사는 휴머니스트이자 사회주의자이며 진보주의자인 리오 휴버만의 시선으로 담아낸 미국의 역사이다. ‘계급 사이의 투쟁’의 역사, 한 두 사람의 영웅이 아닌 묵묵히 역사를 움직이는 ‘민중의 역사’,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진보의 역사에 대한 믿음’ 속에 역설적으로 이 책의 한계 또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모더니즘의 태생적 한계를 구체적인 현실의 힘을 통해 묵묵히 넘어선다.

*책의 재구성

책장을 덮고 나니, 1947년 이후의 미국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과연 미국은 그가 이 책을 출판한 그 때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었을까? 미국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넘어 제 3의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자유를 찾아서 미지의 땅으로 이동한 사람들, 스스로의 힘을 믿었고 그 누구의 간섭도 받기 싫어서 영국 제국주의의 틀을 거부한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이 또 하나의 제국을 건설했다. 플랜테이션 농업을 통해 땅을 힘을 빨고, 자본주의를 이용해 노동의 힘을 빨고, 자유주의란 이름으로 힘없는 나라들의 약점을 이용했던 미국은 과연 그 때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스무 살 이후의 헬렌 켈러는 사회주의적 이상을 꿈꾸었다고 한다. 피나는 의지로 자신의 장애를 극복해낸 그녀는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아메리카를 희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그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FBI의 감시와 언론의 통제를 통해 이런 그녀의 활동이 알려지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다. 한 행사에서 사회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미국이 당신의 이상에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그녀는 답했다. ‘대답하기 어렵군요. KKK단이 물고문이라도 할까봐….’

미국의 역사는 이처럼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내부는 썩어 있었다. 겉으로는 자유를 외쳤지만, 또 한편으로는 탐욕의 손길을 전세계로 내뻗었다. 그 자본주의의 악순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 계급 간의 차별이란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그 힘은 새로운 곳, 즉 ‘문명과 미개가 만나는’ 변경에서 나온다. 땅, 기계, 자본으로,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변화해나간 힘의 원천은 이제 우리의 마음 속으로 이동해가고 있다. 그 무형의 힘을 깨달은 자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정신적 혁명이 곧 세상을 움직이는 물질적 혁명이 될 것이다.

그 힘은 변화에서 나온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들이 언제나 고정되어 있는 것들을 무너뜨린다고 역사는 말해준다. 개인 창업가와 네트워크의 힘이 연결되어 새로운 변화를 주도해나갈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Let’s be pirate’과 구글의 ‘Don’t be Evil’속에 우리의 희망의 씨앗이 있다.

무엇보다 그 힘은 믿음에서 나온다. 고정된 것은 없다는, 한계는 없다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또한 또 하나의 관념일 뿐이라는 새로운 생각에서 나온다. 우리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모자란 생각에서, 땅의 힘을 파괴하고, 노동의 힘을 파괴하는, 쓰고 버리면 그만이라는 힘의 원천을 스스로 파괴하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모두를 위한 세상을 꿈꾸는 따뜻하고 현명한 믿음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더 나은 세상의 씨앗은 바로 그 곳에 있다. 더 나은 아메리카는 바로 우리의 마음 속에서 있다. 남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는 마음 속의 변경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자, 지금 이순간, 각자의 눈부신 빛의 역사를 새로 써라. 혁명은 바로 당신의 가슴 속에 있다. 마음 속에 있다. 일어나라. 깨어나라! 자, 가자, 우리의 아메리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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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5.14 11:15:16 *.227.22.57
책의 재구성 부분에 얘기한 헬렌 켈러의 이야기, 구글의 구호 그리고 깔끔한 마무리까지... 잘 읽었네. 난 정말 이번주는 겨우 숙제를 제출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듯... 수고했어. 이따 저녁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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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14 11:23:04 *.249.167.156
주말에 고향을 다녀왔더니, 역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네요^^ 눈에는 다리끼까지.. (^ .-) 덕분에 사진 한 장 없는 담백한(부족한) 리뷰가 되었습니다. 저녁 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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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4 17:07:07 *.99.241.60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궁금증을 많이 풀어줘서 고마우이..
사실 역사의 발전이라는 것이 구성원 전체를 끌고 가는 것은 아닌데
과연 그 기준이 어디일까, 10분위로 나누어서 그냥 중간만 데리고 가야하나..아님 전체를 다 데리고 가야하나.
정책을 집행할때에도 이러한 구분이 정말 어려운 것 같더라구.
어떤 사람들은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무조건 반대를 하는 입장에 있게 되면
과연 발전이 무엇인가 자조할 때도 있고..

그래도 미국이 많은 우월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사회와 국가를 위한다는 기본개념만은
확실하게 있는 것이 부럽더라고..
남을 존중해주고 성공한 사람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을 인정해주는 것들이
개척정신의 경험에서 오는 것 같고,

좋은 점은 우리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

잘 읽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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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14 23:38:52 *.72.153.12
이사람 나 잠 못자게 하네. 이렇게 선동적으로 써도 되는거여?
하하하. 잘 읽고 갑니다. 공산당 선언 재미나게 읽으셨나벼?

진짜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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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15 12:37:14 *.249.167.156
정화 누나, 잠을 잘 주무셨나요? 공산당 선언을 읽어서 그런가보네^^ 나도 모르게 글이 선동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영훈 형님, 역사의 교훈이 그렇듯 배울 것은 배우고, 바꿀 것은 바꿔야 겠죠. 모든 사건은 좋든 나쁘던, 자기 나름대로의 의미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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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신
2007.05.20 23:50:51 *.27.82.178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정신이 없어서 홈페이지에도 자주 들르지도 못하구.. 완전 게을러졌어요ㅋㅋ^^;;

셤 얼른 끝내구.. 차근차근 읽어봐야 겠어요!!!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는 건 잊지마세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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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21 09:16:56 *.249.167.156
효신님, 바쁘신 중에도 격려 감사합니다^^

중요한 시험 잘 치르세요~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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