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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3일 09시 52분 등록
가자, 아메리카로!

(원제 We, the people:The Dream of America)

박정원 역 / 비봉출판사



1. 저자 소개

Leo Huberman (1903~1968)

미국의 노동 운동가

뉴저지주 뉴욕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1926년 고학으로 뉴욕대학을 나왔고 1933~1934년 영국 런던경제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공부했으며 1937년 뉴욕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콜롬비아대학 사범대에 설치된 실험적 학과인 뉴칼리지의 사회과학과장을 1938-1939년 지냈고 1940-1941년에는 자유주의 신문 <피엠(PM)>의 노동 담당 편집자였다. 1941-1942년에는 <유에스 위크(U.S. Week)>의 칼럼니스트였으며, 1942-1945년에는 전국해운노조의 대외관계 및 교육국장이었다. 또 1945-1946년에는 레이널 앤드 히치콕(Reynal and Hitchcock) 출판사의 실험적 팜플렛 담당 편집자를 맡았다. 1947년 CIO(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계(系) 전국회원조합의 교육선전부장으로서 노동운동에 전념했다. 1949년 P.M.스위지 등과 함께 사회주의 평론잡지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를 발행하였다.

저자는 대공황이 깊어갈 때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나치가 독일에서 권력을 잡은 직후였다. 먼슬리 리뷰의 발간인이며 대중활동가이며 정치평론가의 역할을 한 저자는, 1968년 사망하기 전까지 그의 모든 에너지를 먼슬리 리뷰에 쏟았다. 공동 발간인인 스위지와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기 직전 만나 뜻을 같이 하였다. 전쟁동안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은 새로운 종류의 사회주의자 잡지에 골몰하여 먼슬리 리뷰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먼슬리 리뷰는 1949년, 매카시즘의 기승으로 좌파가 곤두박질치듯 위축되고 위협받으며 빠르게 해체되던 때에 창간됐다. 이 시기에는 사회주의 잡지를 구독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르크수주의의 좌파 독자층은 꾸준히 있어왔다. 먼슬리 리뷰의 독자는 처음 450명에서 1950년 2,500명으로, 1954년 6,000명으로 늘어났다.

저서를 살펴보자. <가자, 아메리카로(We, the People)>(1932) 이 책은 그가 29살 때 출판된 대중적인 미국 역사책이다. <사람의 세속적인 재화(Man's Worldly Goods)>(1936)는 50만권 이상 팔린 일반 경제사 책이다. <노동 스파이의 부정한 거래(The Labor Spy Racket)>(1937)와 <위대한 버스 파업(The Great Bus Strike)>(1941)등도 그의 저서이다.


2. 가슴으로 들어오는 문구

제1장 가자, 아메리카로!

23~24p,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오랜 시간 동안 심사숙고하는 법이다.

제2장 새출발

49p, 비옥한 토질, 더운 기후 ...... 전원(田園), 플랜테이션 ...... 초기에는 계약 노예노동자, 후에는 흑인 노예 ...... 공업 제품을 수입하고 쌀과 잎담배 등의 유일작물을 수출 ...... 무사안일의 부드러운 매너에 느린 말투와 귀족적인 태도의 느린 움직임, 토지 안에서 안정을 누리고 여유를 즐기는 농장주들 ...... 이것이 1760년의 남부였다. 남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지리적 여건이었다.

57~58p 1760년까지의 뉴잉글랜드의 생활 양식: 많은 작업을 요하는 돌 많은 토양 ...... 다양한 작물을 산출해내고 주인과 그의 아들들이 일하는 작은 농장 ...... 여러 개의 작은 마을들과 몇 개의 연안도시들 ...... 손짓해 부르는 바다 ...... 생선 비린내 ...... 조선소의 망치 소리 ...... 기능 근로자-제화공 ․ 목수 ․ 로프 제조공 ․ 대장장이 ․ 벽돌공 ․ 직공(織工) ...... 가내공업 ...... 럼주 양조장 ...... 상업적인 베틀집과 대장간, 일부 계약 노예노동자와 몇 안 되는 흑인 노예, 그러나 주로 자유로운 백인 인력 ...... 별로 풍요하지 않으며 정착민들로 하여금 힘들여 일하도록 강요하는 자연 ...... 능숙한 선원들이 운항하는, 국내에서 만든 견고한 선박 ...... “재주꾼”들 ...... 세계 시장을 낚는 사냥꾼들 ...... 빈틈없고 진취적인 장사꾼들.

60p, 1760년까지의 중부 식민지: 모피 교역의 번창 ...... 비옥한 토양 ...... 각종 직물, 특히 밀을 생산하는 잘 손질된 작은 농장들 ...... 작은 도시들과 연안의 큰 항구 도시들 ...... 소수의 흑인 노예와 많은 계약 노예노동자 ...... 가내공업, 상품 제조업의 시작, 그러나 아직도 제조업품을 수입하는 단계 ...... 배와 교역 ...... 사략선 ...... 네덜란드인, 스웨덴인,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독일인, 영국인.

61p, 신세계를 향해 어려운 여행을 감행했던 많은 사람들이 신세계를 보기도 전에 죽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와서 보았다. 그리고 죽었다.

제3장 모든 인간은 평등한가?

67p,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미국적 사고방식은 변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67~68p, 문명의 끝과 미개의 시작이 만나는 곳, 이곳이 변경이었다. 문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이곳의 개간지에서는 땅이 거저이거나 값이 아주 쌌다. 바로 문턱까지 황야가 닿아 있던 이곳에서는 인생을 처음부터 재출발할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변경으로 왔다. 살고 있던 곳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계약노예노동자들, 모험을 사랑하는 사람들, 구 정착지에서는 발전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야심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제4장 당밀과 차(茶)

82p, 식민지 주민들은 무엇이 대영 제국의 발전을 돕는 것이며, 무엇이 서인도 제도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을 부자로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그들 자신이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제국의 법을 지켜서 잘 살 수 있다면, 그런 법은 지켰다. 그러나 잘 살기 위해서 법을 어겨야 한다면 그런 법은 지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돈지갑에 구멍이 뚫리느니보다는 영국의 법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 나았다.

91p, 서민층은 그들의 주된 분쟁의 상대가 유산(有産)계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유산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도록 선동되었다. 참으로 오랜 전통적 수법이었다.

제5장 더 완전한 연방을 이루기 위하여

112p, 혁명은 확고한 신념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주저하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사물을 그들의 방식대로 보게끔 설득했다.

116p, 전쟁은 1783년 끝났지만 혁명은 계속되었다. 전쟁은 미합중국 국민들의 정부의 변화를 의미한 것이었지만, 혁명은 국민들간의 공존(共存)하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했다.

117p, 혁명은 미국을 영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켰지만,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을 상류계급의 지배라는 구세계적 사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120p, 혁명이란 말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 중의 하나는 ‘변화’이다.

제6장 총 하나, 도끼 하나

143~144p, 들소와 사슴들이 동물의 놀라운 본능에 의해 물을 찾아 산 사이를 누벼 가장 가까운 길을 밟고 간다. 그 뒤를 인디언들이 따른다. 다음에는 백인 상인들이 인디언들의 발길을 따른다. 그 길을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찾아 밟고 간다. 사냥꾼 뒤를 개척농민이 간다. 그는 그의 땅을 개간하고 통나무집을 짓고 들판에는 가축을 놓아기른다. 오래지 않아 또 하나의 이주민의 물결이 도착한다. 개척농민은 땅과 집을 새로 온 이주민에게 팔아버리고 더 서쪽으로 이동해서 다른 곳을 개척하러 떠난다. 새로운 이주민은 그가 산 통나무집을 개량하고, 벽돌로 굴뚝을 쌓고, 창문에 유리를 달고, 좀 더 많은 땅을 개간한다. 이곳으로 또 다른 이주민들이 도착한다. 이미 손이 많이 간 땅은 값이 올라 있고, 땅의 임자는 모든 것을 팔고 몇 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다시 똑같은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변경지대였던 곳이 이제는 넓은 공장과 잘 지어진 집과, 훌륭한 도로와 학교 ․ 공장들이 늘어선 도시-문명지대-가 된다. 그 동안 서부에는 새로운 변경선이 창조된다.

144~145p, 개척자에게는 도구가 필요했다. 그에게는 총 하나, 도끼 하나, 그리고 옥수수 한 자루가 있었다.

151p, 개척민들은 그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옛 생활방식을 바꾸는 어려운 작업을 해야 했다. 변경선은 미개와 문명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개척농민은 그의 문명생활을 포기하고 한동안은 실제로 미개인이 되어야 했다. ... 그들의 모든 행동들은 그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황야가 그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다. 그러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들은 조금씩 조금씩 황야를 변형시켜 갔다. 그러나 그 사이에 그들 자신도 변형되어 갔다. 그들은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우리가 미국인의 전형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변경생활의 결과라 할 수 있다.

151~152p, 황야와의 그러한 투쟁이 개척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투쟁은 그들에게 자립을 가르쳐 주었다. 자신의 두 손으로, 오로지 자신의 힘에만 의존해서 낯선 상황과 맞섰고 그리고 정복했다. ...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었다.
황야와의 투쟁은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 끝까지 살아남아 성공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었다. ... 그는 자신을 믿었고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믿었다. ... 개척자는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가 누구인가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배웠다. ... 서부에서 그들은 평등했다. ... 누구든 자기 일에 성공한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과도 평등할 수 있었다.

152p,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발명가가 된다. 동시에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153p, 개척자의 생활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그는 화려한 것을 혐오했다. 그는 꾸밈을 싫어했으며, 그의 태도는 직선적이었다. 그는 평등과 자유를 믿고 있었다. 그는 자주적이고, 강한 자존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고, 두려움을 몰랐으며, 지칠 줄 모르는 부지런함과 성공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갖고 있었다. 황야에서의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174p, 1770년에 시작된 개척민 가족들의 행렬은 선구자들의 길잡이 표지를 따라 산을 넘고 그 너머 땅으로 갔다. 그들이 처음 그곳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그곳은 황야였다. 땅에 굶주린 사람들의 무리가 그들의 뒤를 이었다. 총 하나, 도끼 하나, 그리고 옥수수 한 자루로 그들은 냉혹하고 어려운 싸움에 도전했다.

제7장 이상하고 다채로운 변경- 그 마지막

198p, 1868년 철조망의 발명과 1874년에 시작된 목축지대 전역에 걸친 철조망의 판매는 들판을 쪼개어 개인 소유의 목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199p, 철조망의 발명은 160에이커의 자작농장을 가능하게 했다.

제8장 공업의 북부

206p, 남아돌아가는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문제는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항상 절박한 문제가 된다.

218p, 1860년까지 동북부 지방은 미국의 공업 중심지로서의 토대를 굳혔다. 해운업과 농업은 옛날과 변함없이 영위되고 있었지만, 공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 지방은 공업에 이상적인 곳이었다. 이곳에는 수력(水力) ․ 목재 ․ 석탄 ․ 철 및 기타 필요한 금속들이 있었다. 이곳에는 투자될 자본이 있었다. 이곳에는 이민의 물결로 끊임없이 확장되어가는 시장이 있었다. 이곳에는 수송업에 숙련된 상선(商船)의 대부대가 있었다. 이곳에는 유럽에 흔히 있었던 ‘금지 명령’도 없었다. 불친절한 정부의 제약도 없었다. 누구든지 어떠한 견습 기간이나 허가나 인가를 거치지 않고서도 언제나 어디서나 어떠한 사업에든 뛰어들 수 있었다. 이곳에는 대규모의 사업을 할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있었다.

제9장 농업의 남부

221p, 왜 남부는 북부와 같이 공업으로 향하지 않았을까?
남부인들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작물을 경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원인의 일부였다. 일반적으로 농부에게는 가장 큰 걱정거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경작물을 경작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경작한 농작물을 파는 일이다. 남부에게 면화를 경작하는 농부에게는 그런 걱정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남부인들은 실제로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미국에서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사업에 투자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의복을 만들어내는 기계들에 공급할 면화를 재배하는 일이었다. 1860년까지 면화는 남부의 왕이었다. ... 지구상의 어느 곳도 면화를 재배하는 데 남부의 기후만큼 알맞은 곳은 없었다. ... 완전무결한 기후, 비옥한 토양, 적절한 시기의 풍부한 강우량, 그 모든 것이 이상적이었다.

222p, 북부의 제조업자가 부녀자들, 어린이들, 농한기의 남자들, 노동을 절약하는 기계들, 이주민들의 도움으로 노동력 문제를 해결했던 반면, 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는 흑인 노예들로 눈을 돌렸다.

224p, 남부인들은 유일작물 재배와 흑인노예 노동력의 결합이라는 그들의 특수한 조건에 플랜테이션 제도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그것을 채용했다.

227p, 어떤 감독들은 노예들을 일요일 뿐 아니라 토요일 오후까지도 쉬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나머지 날들에 그들로부터 더 많은, 더 나은 작업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어떤 감독들은 토요일 오후의 휴식이 결코 더 많은 면화의 생산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감독들은 친절한 대우와 근면에 대한 포상, 또는 때때로 지급되는 음식 외에 여분의 음식을 제공하는 일, 이따금씩 잎담배를 분배해 주는 일 따위가 면화 생산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발견했고, 어떤 감독들은 노예를 엄하게 다루고 감시를 철저히 하고 지급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금지’ 사항들을 강요하는 것이 면화 생산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예들에 대한 대우는 감독에 따라, 그리고 어떤 방법이 면화 생산에 가장 유익한지 그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달랐다.

241p, 1853년 5월 13일자 ‘리치몬드 데일리 뉴스’지에는 고급 여름 휴양지에 위치한 호텔에서 일할 흑인 노예들을 구하는 광고가 실렸다.
온천장 종업원 50명 구함.
식당 담당, 침실 담당 및 기타.
위와 같이 임대하실 분 즉시 연락 바람.
- 톨러 ․ 쿠크 호텔 -

241p, 아래의 광고문을 보면 백인들의 눈에 비친 흑인들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알 수 있다.
보안관 세일.
페어필드 재판소에서 판매합니다.
흑인 2명, 말 2필, 조랑말 1필, 수레바퀴 1벌, 침대 1점, 말 안장 1점.
- 보안관 사무실. 1852년, 월요일 19일.

제10장 땅 주인과 돈 주인의 싸움

247p, 분쟁은 불가피했다. ... 북부와 남부는 일과 사고방식, 생활이 서로 달랐다. 북부에서는 소규모의 농업, 해운업, 발전하는 공업이 있었고, 그 모두를 백인 자유노동에 의존하고 있었다. 남부에서는 흑인 노예노동에 의한 유일작물의 농업이 있었다. 두 지역은 생활의 모든 면이 달랐으므로 서로 분리될 수 없었다. ... 그 분쟁은 60년 이상 게속되었고, 종국에는 ‘남북전쟁(the Civil War)’으로 끝을 내렸다.
양 지역 간의 분쟁은 공업의 북부와 농업의 남부 간의 상반된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공업의 북부에 유리한 것은 농업의 남부에 불리했고, 마찬가지로 농업의 남부에 유리한 것은 공업의 북부에 불리하였다.

제11장 자원 ․ 인력 ․ 기계 ․ 돈

279p,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대공업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대농업국으로도 성장했다. 사실상 미국이 세계적인 공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을 가히 세계의 곡창으로 만들었던 미국 농업의 대대적인 확장이 그 주된 원인이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은 해외로 수출되어 미국이 필요로 하는 수입품-물품과 돈 모두-을 수입하는 데 지불될 수 있었다.

제12장 더 많은 자원 ․ 인력 ․ 기계 ․ 돈

296p, 공업 부문에서 1860년 세계 4위에 머물렀던 미국은 1894년에는 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 1859년에서 1899년까지 40년의 기간 동안 공장의 수는 3배, 임금 노동자의 수는 4배, 공업생산품 가액은 7배, 투자액은 9배 증가했다.

303~304p, 세계 면적의 5.7%, 인구의 6.1%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도표에 열거된 중요 생산물의 생산에서 다른 모든 나라를 앞지르고 있었다. 자원 ․ 인력 ․ 기계 ․ 돈의 결합이 놀라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307p, 주식회사의 유리한 또 다른 점은 회사가 가지는 영구적인 생명이었다. ... 법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즉 법인(法人)은 회사를 구성하는 구성인들과는 분리된 존재이다. 그러므로 구성인들이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 있게 된다.

제13장 가진 자와 못가진 자

317~318p, 노동자 계급은 그들의 노동조합을 통해서 자본가와 싸웠다. ... 양쪽 모두에 살상이 행해졌다. 그것은 무서운 투쟁이었다.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은 이러한 투쟁의 원인 하나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천하고 기계는 귀하다고. 많은 감독자들이 예민한 기계에 무리한 작업을 시켰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있습니다만, 과로한 노동자에게 무리한 작업을 시켰다는 이유로 해고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쓰던 사람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쓸 수는 있습니다. 언제든지 그 자리에 들어설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큰 돈을 들이지 않고는 쓰던 기계를 버리고 새 기계를 들여 놓을 수 없습니다. ...... 재산과 인간을 비교할 때, 이제 재산은 결코 1위가 아닌 2위로 물러나야할 때입니다.”
재산이 1위였고 인간의 생명은 2위였다. 그것이 마찰의 원인이었다.

318p, 산업혁명은 노동자의 운명을 자본가의 손에 맡기도록 만들었다.

제14장 무일푼에서 백만장자로

357~358p, 몇 년 전 스메들리 D. 버틀러(Smedley D. Butler) 해병 소장은 미국 대기업의 이익 수호자로서의 자신의 직무를 생생한 어투로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나는 33년 4개월 동안을 우리나라의 최정예 군대, 해병대의 현역군으로서 보냈다. 중위에서 소장까지 이르는 모든 장교 계급을 거치면서 복무하는 동안의 나의 직무란 대기업, 윌 스트리트 및 은행가들을 위한 고급 폭력단원으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자본주의의 깡패였던 셈이다. ...
그런 식으로 나는 미국 석유업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1914년 멕시코, 특히 그 중에서 탐피코의 확보에 주력했다. 나는 하이티와 쿠바를 내셔널 시티 뱅크 사람들이 세금을 징수해 들이기에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조력했다. ... 나는 1909년에서 1912년까지 브라운 브라더즈의 국제은행을 위해서 니카라과를 소탕하는 데 조력했다. 나는 미국 제당업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1916년 도미니카 공화국에의 선도역(先導役)을 맡았다. 나는 1903년 미국의 과일 회사들을 위해 혼두라스를 “바로 잡는 데” 조력했다. 1927년에는 중국에서 스탠다드 석유 회사가 방해를 받지 않고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협조했다.
나의 복무 기간 동안, 나는 내게 뒷줄을 대고 있는 녀석들의 말처럼, 멋진 해병대원이었다. 내게는 포상과 훈장, 그리고 진급이 돌아왔다. 지난 날을 다시 돌이켜 볼 때, 나는 내가 알 카포네에게 몇 가지 면에서 선생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의 폭력 무대는 기껏해야 도시의 세 구역 정도였지만, 우리 해병대의 무대는 세 대륙이었다.”

제15장 백만장자에서 무일푼으로

366p, 1930~32년의 무서운 불황의 시기에, 세계 최대의 부국은 ‘병든 나라’였다.
미국의 어디에서나 빈곤을 읽을 수 있었다. ...
은행은 연이어 문을 닫았다. 장래를 위해서 절약하고 저축해 왔던 수백만 인구의 희망과 꿈도 닫혔다. 1932년 불황이 극도에 달했을 때 은행은 하루에 40군데 꼴로 쓰러지고 있었다.

371p, 1929년경 절정에 달했던 경제활동의 수준은, 1929년에서 1932년까지 전례없는 속도로, 전례없는 한계까지 추락했다.

371~372p, 미국의 근로자들에게 어떤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생산능력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왕성했으며, 계속 증대하고 있었다. 국내의 생산시설과 천연자원은 옛날과 변함없이 이용될 수 있었다. 생활의 안락을 제공해 주는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 역시 더 컸으면 컸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런데 기계는 유휴상태였고 원료는 사용되지 않고 썩고 있는 동안, 한편에서는 물자의 부족으로 사람들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돈은 아무리 굴려도 이윤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몇 사람의 손 안에서 하릴없이 놀고 있었다. 그리고 천 4백만의 근로자들은 있지도 않은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372p, 1929년의 공황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원인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생산제도였다. ... 미국이 앓고 있던 질병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최고도로 발전한 최첨단의 자본주의였다.

373~374p, 1929년 미국에는 금융회사 외에 30만의 주식회사가 있었다. ... 30만 중에는 200의 자이안트가 있었는데, 이 자이언트들은 어찌나 컸던지 나머지 299,800의 회사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컸다.
1929년, 금융회사 외의 총 30만 개의 회사들 중 200개 회사가,
이자의 56.8%를 지불했다.
현금배당의 55.4%를 지불했다.
순이익의 56.8%를 벌었다.
저축의 69.3%를 저축했다.

383p, 확장은 그 자체로 축소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확장이 커질수록 그에 따르는 축소도 커진다. 1932년의 폭락을 설명하는 것은 1929년의 공황이었고, 1929년의 공황을 설명하는 것은 그 이전의 붐이었다.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축적,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축적 ......의 연쇄사슬은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분명 끊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사슬은 끊어졌다. 가장 약한 고리의 역할을 한 것은 주식시장의 투기 소송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근본적인 요인은, 자본주의 체제가 그 존속을 무한한 확장, 생산력의 무한한 해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미 무한한 확장에의 벽을 자동적으로 쌓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장이 불가능할 때는 수축한다.

제16장 아무도 굶주리게 할 수는 없다

385p,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 정책”은 하나의 혁명이라 불렸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혁명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혁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념적으로 혁명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혁명이 아니었다.

제17장 다시 일자리를 주기 위해

415p, 정부의 지출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정부의 지출은 사람들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었다. 정부의 지출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소비의 회복”을 가져 왔다. 정부의 지출이 감소되었을 때는 회복세도 감소되었다.


제18장 판매자도 주의하라

452p, 임금 ․ 시간법과 와그너 법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2차에 걸친 재임기간 동안 민중이 그를 지지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 중의 일부였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단순히 자본주의가 제대로 운행되게 하는 것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대다수의 국민에게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운행되기를 원했다. 부자들은 첫 번째 목표에서는 그를 지지했으나 두 번째 목표에서는 그와 싸웠다. 빈민들은 두 가지 모두에서 그를 지지했다. 대기업들은 재산의 가치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 뉴딜법(예를 들어, 산업부흥법)은 지지했으나,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 뉴딜법(예를 들어, 사회보장법)은 공격했다.

제20장 일자리와 평화

489~490p, 1938년 4월 29일,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의회에 보내는 교서에서 미국민에게, 그들의 자유와 정체(政體)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에 주목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민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었다. 반대로,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였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적(私的)인 힘의 집중이 증가되고 있습니다. ...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은, 우리가 자유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주장이 현실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만일 그러한 위험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민주적인 정부를 지배하고자 그토록 안간힘을 쓰고 있는 집중된 사적인 경제력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
집중된 금융 및 관리(管理) 지배의 무거운 손길은 미국 산업의 광대한 전략지점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소기업가의 독립적인 위치는 미국 생활에서 점점 더 작은 것으로 위축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기업은 자유기업으로서의 본질을 점점 잃어가고 있으며 사적인 집단주의 단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형 자유기업제도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은 유럽형의 위장된 카르텔 조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
어떤 국민도, 특히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전통을 가진 우리 국민은 더구나, 불과 몇몇 사람의 지배 하에서 압박해 오는 무력감을, 일반 대중의 기회 균등을 서서히 잠식해 가는 현상을-그러한 현상은 지금 우리의 전 경제에 만연되어 있습니다-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490~491p, 1888년 12월 3일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집중된 자본의 위업을 살펴 볼 때 우리는 트러스트, 기업 결합 및 독점의 존재를 발견합니다. 한편, 시민은 멀리 뒷전에서 고전하고 있거나 철(鐵)의 발굽 아래에서 짓밟혀 죽어 가고 있습니다. 법에 의해서 면밀하게 억제된 존재이어야 할, 그리고 국민의 종복이어야 할 기업은, 급속히 국민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492p, 민중은 뉴딜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그들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뉴딜이 급속히 한낱 과거의 기억으로 퇴색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 그들은 그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경제적 ․ 정치적 활동은 배가되어야 한다. 그들은 일자리와 평화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투쟁을 통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일자리와 평화는 이윤(利潤)만을 위한 생산제도가 아닌, 사용(使用)을 위한 생산제도 하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3. 내가 저자라면

‘역사’라면 멀게만 느껴졌던 나에게는 미국사 역시 그런 것이었다. 아니, 특히나 더 생소했다. 학창 시절의 세계사 교과서 속에서는 미국사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긴, 그들의 역사는 이민자의 이주를 최초로 보면 400년 남짓하다. 수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이나 아시아에 비하면 너무나 짧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는 특이하다. 그들의 역사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주로 시작된 이민자들의 역사이다. 유럽인 뿐 아니라 흑인,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인들이 건너가서 만든 다인종의 역사이다. 또 그들의 국명 'United States of America'에서 알 수 있듯 주(州)가 합쳐져 이루어진 개념의 나라이다.

하나의 원류에서 단일 민족으로 유구히 흐른 우리 나라의 역사적 배경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이렇게 이곳 저곳에서 이런 저런 나라 사람들이 여러 인종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라, 마치 조각조각 이어 만든 퀼트 작품이 연상되는 이런 나라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서 지금 정치 외교 경제 면에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 앞에서 항상 이것이 궁금하였다.

미국은 이민자들이 미국의 동부 연안에 상륙하여 서부로 개척해 나간 역사를 갖고 있다. 그들은 완전 미개척의 땅을 일구어야 했다. 생전 처음 맞닥뜨리는 인디언과 싸워야했다. 그리고 생활해나가야 했다. 그러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들은 조금씩 조금씩 황야를 변형시켜 갔다.

개척자의 생활은 그들에게 자립을 가르쳐 주었다. 자신의 두 손으로, 오로지 자신의 힘에만 의존해서 낯선 상황과 맞섰고 그리고 정복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었다. 끝까지 살아남아 성공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믿었고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믿었다. 개척자는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가 누구인가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배웠다. 서부에서 그들은 평등했다. 누구든 자기 일에 성공한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과도 평등했다.

미국인들의 개인생활에서 외교에서까지 실리주의와 개인주의가 깔려 있다는 것. 미래의 가능성보다 현재 얻을 수 있는 것을 중시하는 분위기, ‘기회의 땅’이라고 일컬어지는 인식. 이러한 것들은 아마 이민과 개척이라는 특이한 역사에서 연유할 것이다.


이 나라의 태생이 어떠했던 지간에, 미국은 광대한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삼림이 우거진 곳이 있었는가 하면, 비옥한 농토, 광대한 목초지도 있었고 사막도 있었다. 그리고 그 땅에는 천연자원도 많았다. 연료로 쓸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었다. 그런데다 미개척지였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미국은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농업, 목축업, 해운업 등을 발전시켰다. 물론 각종 이권 개입에 대한 다툼이나 남북 전쟁 등 분쟁으로 인한 시련의 기간이 있었다. 아무튼 미국의 공업화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자체적으로 충족되는 수요와 공급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미국은 단기간에 세계 최대의 공업 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이 언제까지나 성장을 의미할 수는 없었다. 잉여생산과 잉여자본이 큰 짐이 되기에 이르렀다. 1929년 대공황 상태에 빠져든다. 대량생산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소비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당시의 미국은 수요가 생산을 도저히 쫓아가지 못하였다

기업과 자본가들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였고, 실업자는 넘쳐났다. 휴버만은 미국 대공황의 원인은 '생산제도'에 있다 하였다. 그것은 '최고도로 발전한 최첨단의 자본주의'의 결과였다. 미국은 자본 제일주의였고, 그 돈은 소수의 기업에 집중되어 있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New Deal)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미국을 수렁에서 건져 올리려 하였다. 그는 뉴딜 정책의 핵심을 구호(Relief), 회복(Recovery), 개혁(Reform)에 두었다. 노년층과 실업자들에 대한 구제책으로 사회보장법을 발효하였다. 공공부문에 대한 지출을 확대하여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소비는 어느 정도 회복됐다. 휴버만은 뉴딜 정책에 대해 상당 부분의 지면을 할애하여 자세히 설명한다.

이 책의 초판년도는 1932년이다. 이후 1947년에 재판되면서 약간의 내용이 부가된다. 여기서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그럼 그 이후의 미국 사회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그 세세한 줄거리들을 지금 여기에 적을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공업 대국으로 성장한 후 강대국의 위치를 한 번도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원동력이라는 것, 광대한 영토, 막대한 자본, 실리주의 외교, 전 세계의 미국화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 등이라 해두면 좋을까. 또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그 강대국의 위치는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의아한 점이 있다면 제목 번역을 왜 ‘가자, 아메리카로!’라고 했을까라는 것이다. 원제인 'We, the people'에 맞추어 ‘우리, 미국인들’ 정도로 하였으면 좀 더 저자의 뜻에 충실한 제목이 되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노동문제가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저자는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자세하게 기술하며, 이는 관념적인 혁명이었지, 경제적인 혁명은 아니었다는 점, 즉 근본적인 개혁은 아니었음을 수차례 강조하였다. 저자가 좌파 운동가가 아닌지 짐작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쉬운 점은 뉴딜정책에 관한 부분이 이토록 많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발행 연도가 1932년도인 점을 감안하면 뉴딜 정책이 큰 이슈였음을 짐작할 수 있으나, 미국사를 다룬 책의 한 부분으로서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미국이 직접적인 전장이 되지 않았더라도 세계 1,2차 대전이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을진대, 이 부분이 더 보충되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나는 1940년대 이후부터 주욱 이어지는 또 다른 미국의 이야기들이 이 책의 뒤에 붙어 있는 상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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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4 16:05:17 *.99.241.60
뉴딜정책에 대한 부분은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쉬움이라고나 할까, 결과적으로 정부지출을 확대하여
고용을 늘린 임시방편적이 아닌
경제구조나, 분배구조를 바꾸었으면 하는 것이
숨겨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2판 개정판 이후에 더 쓰지 않은 것 같구요.

도전정신만은 인정해주고 싶습니다.
글이 갈수록 잘 읽히네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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