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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4일 11시 1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The only thing most American know about socialism is they don't like it. They have been led to believe that socialism is something to be either ridiculed as impractical, or feared as an instrument of the devil.”
(대부분 미국인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맨 처음 알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악마의 도구로서의 두렵거나 또는 현실과 동떨어진 놀림감으로 믿음을 가져왔다.)

이글은 Dana Williams가 쓴 미국인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단상(American Impression of "Socialism")에서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전한 미국에서 사회주의자와 마르크스를 신봉하면서 산다는 것은 유럽에서 에릭 홈스봄이 공산주의자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본다. 그것도 194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불어 닥친 광란의 빨갱이 잡기란 매카시즘이 활개를 치던 시절에 말이다.

1949년부터 미국의 경제학자인 폴 M 스위지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보 잡지인 를 공동으로 창간해 죽을 때까지 편집자로 일했다.1952년에는 의회의 비미국인 활동 청문회(Un 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에 소환되어 사상검증을 받기도 하였다. 매카시즘이 한참 극에 달하던 1950년대에는 MR은 겉 주소에 MR 글자가 보이지 않게 발송해야 했고, 기고자들도 어느 대학의 사회과학 교수라는 식으로 익명의 방식을 통하여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좌파내지 진보적인 지식인이라는 것이 알려질 경우에 가해질 사회적 매장에 대한 지극한 공포가 지배하고 있던 시절에 등장한 MR은 실로 대단한 용기를 지닌 것이었으며, 미국의 좌파운동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

휴버만은 스물 아홉 살에 We, The People이라는 미국의 민중사를 출간했으며, 4년뒤인 1936년에는 대중들을 위한 자본주의 경제사인 인간의 재화(Man's Wordly Good)를 출간하였다. 이러한 책으로는 당시 경이적인 수치인 5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였다. 당연히 이러한 미국의 민중사와 진보적 지식인이 지은 책이 우리나라에서 판매가 금지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의 조사를 하던중 1983년에 “역사와 민중”으로 출간되었다가 2001년에 다시 가자 아메리카로 번역본으로 재출간 되었다. 2001년에 발간된 가자 아메리카로 번역되어 미국 이민서와 같은 지침서같이 보였으나 속에는 야물차고 재밌는 미국의 역사가 들어있었다.

18살의 나이에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되어 교사생활을 하다가 10여년의 기간이 궁금해졌다. 10여년의 교육과 대학에서의 공부로 이러한 민중사를 29살에 썼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는 인생을 사회주의자로, 노동자들의 교육가로 충실하면서도 일관된 인생을 살았다.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우리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정직하고 분명하게 말하자. 우리의 신념을 선언하고 가르치자. 어디에서든지.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든지, 소수의 사람 앞에서든지. 우리의 운동 규모가 적다고 걱정하지 말고, 운동의 질을 더 생각하자. 연구하자. 열심히 노력하자. 복음을 널리 전하는 투쟁을 벌이자. 황금의 법칙을 만들어 그를 위해 투쟁하는 세력을 이해할 자질을 젊은 세대들이 갖출 수 있도록... (MR1956년 1월호)

저서로는 <우리 민중과 미국의 드라마 We, the People Drama of America>(국역: <역사와 민중>, 비봉, 1983), <쿠바 혁명의 해부 Cuba Anatomy of Revolution>(폴 스위지와 공저), <베트남: 끝없는 전쟁 Vietnam: the Endless War>, <사회주의에 관한 진실 The Truth about Socialism>(국역: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동녘, 1986), <노동조합에 관한 진실 The Truth about Unions>이 있다.

2. 나에게 다가온 책

가. 관점이 다른 역사

나는 줄곧 역사는 강자와 약자 중에 강자의 역사임을, 승자와 패자 중에 승자의 역사라는 틀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 개인적인 386세대 후반에 관제교육의 폐해로 그리 다양한 관점과 역사관을 가지지 못하였다. 미국도 이와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자본부의가 가장 잘 발달된 나라, 다민족을 통합한 합리적인 사회구조를 가지고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는 이상국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성이 깨진 것은 1980년대에 미국에 흑인들의 정착역사를 다른 뿌리(Roots)를 보면서 미국인들의 실상을 보면서 서서히 깨지기 시작을 했고, 결정적인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 불어 닥친 통상압력의 실체를 느끼면서이다. 또한 실생활에서 가장 근접하게 본 모습은 서울 종로구청 옆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비자를 받기 위하여 길게 줄을 늘어서고 있는 모습이다. 비가 오거나 추운 겨울에도 변변한 통로없이 그냥 길바닥에 줄을 서서 미국행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모든 사람을 자유롭개 반기는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역사 시간은 무엇이 일어났는가 보다는 왜 그것이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로 대부분의 시간이 채워졌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의 주제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가자 아메리카에서는 무엇이 일어났다는 사건이 아닌 그 사건의 경위와 원인을 알려주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 어렵게 읽었던 Carr의 역사에 대한 단상과 역사가에 대한 부분이 다시 떠오른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부단한 대화라는 것과 역사를 알기 전에 역사가를 알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사회주의 입장에서 미국은 어떠한 모습인가? 이주해오는 시점부터 1940년대까지 미국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서부개척의 시대부터 서서히 독립주권국가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아메리카의 꿈.


“미국은 약속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최근까지도 오직 정상의 사람들에게만 실현되었다. 그 약속이 우리 모두에게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아메리카의 꿈은 분명 현실이 될 수 있다. 그것을 하루 빨리 실현시키기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왜 휴버만은 사회주의를 고집했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중간 중간에 그의 사상을 보면 미국이라는 사회가 자본주의의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향한 비전으로 세워졌음을 중요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미 대륙으로 이주하던 1700년 초기부터 대평원으로의 이동이 계속되다가 대서양과 태평양이 각 주로 채워져 연결이 되던 1890년까지 약 200여년이 미국에서 이러한 꿈을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인고의 세월이었다. 아마 이렇게 미국이 아무런 저항이나 고난없이 자본주의의 길을 걸었다고 하면 완전한 유토피아가 되었을 것이다. 변경이 사라진지 불과 30여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미국은 가장 큰 경제대란을 맞게 된다. 이러한 대공황의 원인을 휴버만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주창한 잉여와 생산체계, 그리고 분배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1929년의 공황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원인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생산제도였다. (중략) 그것은 최고도로 발전한 최첨단의 자본주의였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부국이었다. 미국의 은행과 기업은 세계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대기업이 그만큼 견고하게 뿌리박은 곳은 없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만큼 거대한 재산이 축적된 곳은 없었다. 그리고 부자의 문전에는 거지 나사로가 함께 살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부국은 구세계의 최악의 빈민굴과 견줄만한 빈민굴들을 가지고 있었다.


200여년간 힘들게 이룩한 그들의 거대한 나라가 어이없는 일격에 무너지고 만다. 다른 나라에 정착을 하면서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고, 서부의 광활한 대지에서 인디언과 풍토병과 싸우면서 얻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미국적 사고방식은 변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럽에서도 이러한 사상이 논의된 바 있었으나, 처음으로 실천에 옮겨진 곳은 미국이었다. 그것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매우 중대한 사상이었다. (67)


이러한 평등사상이 개척과 남북전쟁 등 수많은 난관을 이기고 이루어지는 순간에 다시 등장한 것은 자본에 의한 불평등 주의였다. 아마 휴버만은 이런 자본주의의 문제 때문에 마르크스를 다시 찾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자체로는 한계가 있다. 책의 마지막에서 “그들은 그들의 투쟁을 통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일자리와 평화는 이윤만을 위한 생산제도가 아닌, 사용을 위한 생산제도 하에서 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다. 다민족이 어울리는 샐러드 문화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다민족의 사회통합을 이루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좁은 땅덩이에서 아직도 지역주의라는 문제가 선거 때마다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36년간이나 통치를 받고도 아직 한일간 영토분쟁에서 교과서 왜곡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일본과 경쟁 아닌 경쟁을 하고 있다. 만일 우리나라와 일본간의 관계를 미국과 흑인간의 관계에 대입해본다면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구본형 선생님의 코리아니티 경영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미국인들은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기보다는 개개인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회적 전통 속에서 살아간다. 미국의 개인주의는 외적 조건이 아니라 자신에 의한 성공이란 내부 지향적 개인주의를 특성으로 한다.“


이러한 내용을 서부 개척시대의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정계급도 없었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똑같은 기회를 갖고 있었다. 황야를 지배하게 된 지금 어떠한 상류계급의 명령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부분이 민족을 떠나서 같이 공존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흑인에 대한 문제도 그렇다. 끝내 평등한 인간의 권리를 찾게 된다. 1700년부터 강제로 끌려와 노예노동을 주로 하던 1863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해방선언으로 자유를 되찾은 듯 하였다. 결국은 흑인들은 결국 마틴 루터킹이나 말콤X나 같은 흑인 사회운동가들의 헌신으로 개선되었고 변화되었다. 1950년에 평등한 권리와 인권을 찾게 되었다. 미국에 정착한지 400여년이 지난 후에야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

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

일전에 모 선생님으로부터 한국과 미국의 교육환경에 대한 일화를 들었다. 보통 대입 수석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보면 한국학생들은 학교수업에 충실하면서 교과서를 통한 예습과 복습 그리고 과외는 받지 않았다는 소감을 말한다. 몇몇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다 상투적인 말만 한다고 한다. 반면 미국의 수석합격자들은 자기만의 성공비결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그것을 공유한다고 한다. 개인적인 성공에 대하여 사회적 찬사를 보내준다고 한다. 내가 친미주의자는 아니지만, 향후 우리 사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면 좋은 제도를 배워오는 것은 좋다고 본다. 어느 특정한 주의나 제도를 고집하고 고수하기에는 현재의 사회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마지막에는 미국으로의 유학이 반드시 영어를 배울 목적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 교육여건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향해야할 점이 바로 이러한 개방성과 문제해결에의 끊임없는 노력이 아닌가 한다. 미국의 역사를 우리나라의 역사와 단순비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역사속의 사실과 전통은 현재를 말해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버리고 신대륙으로 왔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정착이 아닌 도전적인 삶을 지향한 미국의 단단한 역사를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p25)


3. 내마음에 들어온 글귀

<역자 서문>

<5>
그의 역사시간은 무엇이 일어났는가 보다는 왜 그것이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로 대부분의 시간이 채워졌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의 주제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했다.


<개정판 서문>

<10>
“미국은 약속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최근까지도 오직 정상의 사람들에게만 실현되었다. 그 약속이 우리 모두에게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아메리카의 꿈은 분명 현실이 될 수 있다. 그것을 하루 빨리 실현시키기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1장 가자 아메리카로>

<25>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오랜 시간 동안 심사숙고하는 법이다.

<29> 이곳에서는 누구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자유가 있다. 읽고 싶은 것을 읽을 수 있고,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아무도 체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자, 아메리카로!

<31>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 초기 시절, 영국은 ‘달갑지 않은’ 수백명의 빈민과 죄수들을 배에 실려 미국으로 보내졌다. ... 어쨌던 영국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시민들’이 아니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들을 딴 곳으로 치워버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으랴. 그렇다면 보내버리자, 아메리카로! 그들이 가고 싶어 하든 말든.


<제2장 새출발>

<41>
점점 더 많은 정착단기가 들어서고 더 많은 이민들이 도착하면서 그들은 황야로부터 한 나라를 조각해 내고 있었다. 그들은 신세계에 새로운 출발을 걸고 조국 땅을 떠난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모험의 인생으로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굳은 의지와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45>
잎담배! 그것은 마술을 지닌 말이었다. 모든 것이 그것의 생산을 위주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남부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49>
농장주들의 생활은 매우 호화스러웠고, 대부분 빚을 지고 있었다. 남부의 생활은 전부가 잎 담배의 잎사귀에 의해 좌우되었다.


<56> 뉴잉글랜드인들이 흑인 노예의 사용을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흑인 노예가 필요 없었을 뿐이었다. 북부에서는 반대로 그것이 어느 면에서는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리적 환경이 서로 상반되는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61>
신세계를 향해 어려운 여행을 감행했던 많은 사람들이 신세계를 보기도 전에 죽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와서 보았다. 그리고 죽었다.

<제3장 모든 인간은 평등한가?>

<63>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과 같은 방식으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좋은 자리가, 어느 정도의 돈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다음으로 좋은 자리에, 그리고 돈이 조금밖에 없거나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가장 나쁜 자리가 주어졌다. 때로는 가장 좋은 자리는 손으로 짠 단정한 난간으로 다른 자리와 분리되기도 했다. 천박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67>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미국적 사고방식은 변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럽에서도 이러한 사상이 논의된 바 있었으나, 처음으로 실천에 옮겨진 곳은 미국이었다. 그것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매우 중대한 사상이었다.

<68>
문명의 끝과 미개의 시작이 만나는 곳, 이곳이 변경이었다. 문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이곳의 개간지에서는 땅이 거저이거나 값이 아주 쌌다. 바로 문턱까지 황야가 닿아 있던 이곳에서는 인생을 처음부터 재출발할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변경으로 왔다. 살고 있던 곳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계약노예노동자들, 모험을 사랑하는 사람들, 구 정착지에서는 발전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야심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69>
강자만이 살아남았다. 이곳에서는 특정 계급의 지배라는 것이 있을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보다 더 훌륭하지 않았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똑같은 기회를 갖고 있었다. (중략) 황야를 지배하게 된 지금 어떠한 상류계급의 명령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71>
서부로의 행진은 계속되었다. 땅에 대한 갈망이 새로운 이민들을 불러들였고, 더 나은 땅에 대한 욕망이 구 정착민들을 불러들였다. 1750년 영국인들은 애팔래치아 산맥에 이르기까지 진출해 있었다.


<제4장 당밀과 차>

<79>
모국 영국을 살찌우기 위해 의회가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매사추세츠 총독 프란시스버나드경은 이 모든 계획을 명료하게 요약했다. “아메리카 무역에 대영제국의 두 가지 큰 목표는 (1) 아메리카 신민들로 하여금 제국이 공급할 수 있는 일체의 공업제품과 상품을 오직 제국으로부터만 수입할 수 있게 하는 것과 (2) 아메리카의 외국 무역을 통제하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은 제국으로 돌리거나 또는 제국의 발전을 위햇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80>
오늘날의 미국인들도 그들의 식민지 시대 조상들을 닮고 있다. 그들은 그들에게 유익하지 않은 법등은 아직도 계속 무시해 버리고 있다. 그것은 미국의 전통적인 관습이다.

<82>
식민지 주민들은 무엇이 대영 제국의 발전을 돕는 것이며, 무엇이 서인도 제도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을 부자로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그들 자신이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제국의 법을 지켜서 잘 살 수 있다면, 그런 법은 지켰다. 그러나 잘 살기 위해서 법을 어겨야 한다면 그런 법은 지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돈지갑에 구멍이 뚫리느니보다는 영국의 법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 나았다.

<85>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하는 버릇에 습관이 돼버렸다. 영제국 정부를 대표하고 있던 총독들과의 그러한 논쟁은 식민지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떳떳이 실행하고 주장하는 연습을 시켜주었다. 영국은 영국을 위하여 식민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반면, 식민지는 식민지를 위해 식민지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91>
서민층은 그들의 주된 분쟁의 상대가 유산(有産)계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산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도록 선동되었다. 참으로 오랜 전통적 수법이었다.

<109>
그는 문안을 작성해서 의회에 제출했다. 약간의 수정이 가해진 뒤 1776년 7월 4일 의회는독립 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언문의 일부에서는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이들 연합된 식민지들은 자유롭고 독립된 주(州)이며, 또한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들과 대영제국과의 정치적 연결은 전면적으로 해지되었으며, 또한 당연히 해지되어야 한다. 식민지는 제국을 떠났다.” “미합중국”이 탄생한 것이다.

<제5장 더 완전한 연방을 이루기 위하여>

<113>
전시에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다. 미국인 워싱턴은 미국 땅인 펜실베니아에서 영국인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워싱턴의 병사들은 포지 계곡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떨고 있는 동안, 영국 병사들은 필라델피아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하우가 아니라 워싱턴이 적국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117>
혁명은 미국을 영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켰지만,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을 상류계급의 지배라는 구세계적사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장자와 다른 아들 - 후에는 딸들까지도 - 은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했다. 소수의 손에 언제까지나 묶여있는 거대한 토지가 아니라, 자신의 밭에서 일하는 농부가 소유하는 작은 땅이 새 시대 미국의 제도가 되어야 했다.

<120>
혁명이란 말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 중의 하나는 ‘변화’이다. 미국혁명은 미국인들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는 구시대의 유럽 국가들에게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오지 않았던 것이며, 또한 미국으로 하여금 ‘자유국가’라는 평판을 갖게 한 것이다.

<121>
그러한 제도는 외부의 강력한 정부로 말미암아 극심한 불행을 겪었던 경험이 있는 나라, 그런 정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전쟁을 치른 적이 있는 민족으로부터 기대될 수 있는 것이다.

<125>
대금업자·제조업자·상인·채권 소지자·투기업자·노예소유자 - 그들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원했다. 그들은 돈을 가진 부자들이었고, 그들의 재산을 보호해 줄, 그리고 안전하게 쉽게 돈을 벌게 해 줄 수 있는, 따라서 재산을 늘게 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원했다.

<제 6장 총하나, 도끼 하나>

<151>
그들의 모든 행동들은 그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황야가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했다. 그러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들은 조금씩 조금씩 황야를 변형시켜 갔다. 그러나 그 사이에 그들 자신도 변형되어 갔다. 그들은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우리가 미국인의 전형적인 특성ㅇ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변경생활의 결과라 할 수 있다.

[152]
누구든 자기 일에 성공한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과도 평등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발명가가 된다. 동시에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개척자는 다방면의 기술자가 되었다. 그가 적응해야 했던 상황은 보통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 적응했고, 따라서 이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제7장 이상하고 다채로운 변경 - 그 마지막>

<198>
1868년 철조망의 발명과 1874년에 시작된 목축지대 전역에 걸친 철조망의 판매는 들판을 쪼개어 개인 소유의 목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199>
평원까지 그리고 그 너머 태양까지 닿아 있던 철로는 이 새로운 변경지대로 가는 데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옛날이야기로 만들어 놓았다. 이제 새로운 정착민들은 그들이 소유하게 될 땅까지 곧바로 기차로 갈 수 있었다.

<201>
대평원으로의 이동은 계속되었다. 1890년 최초로 대서양과 태평양이 각 주(州)로 채워져 연결되었다. 변경의 종말이 온 것이다.

<제8장 공업의 북부>

<204>
그러나 사람이란 발등이 불이 떨어지긴 전에는 큰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 기분에 맞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면 항상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

<205>
대(大)상업 국가들이 세계의 무역수송을 놓고 싸우고 있을 때, 그들이 차지하려고 다투고 있던 뼈다귀를 물고 달아난 것은 미국이었다.

<208>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주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좋은 땅이 미국에 많이 있는 한, 대규모의 공업은 결코 미국에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벤자민 플랭클린의 견해가 그러했다. 그는 1760년에 이렇게 쓰고 있었다.
“ 공업은 빈곤위에 건설되는 것이다. 그것은 땅이 없는 빈민들의 군집이다. 그들은 굶주리지 않으려면 저임금으로 타인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업가로 하여금 공업의 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제9장 농업의 남부>

<212>
더 많은 공장들이 건설됨에 따라 프랭클린이 예언했던 대로 노동력의 부족현상이 나타났다. 여공들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제조업자들은 농촌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 공업도시에서 일할 소녀들을 모집해 오도록 했다.

<222>
북부의 제조업자가 부녀자들, 어린이들, 농한기의 남자들, 노동을 절약하는 기계들, 이주민의 도움으로 노동력 문제를 해결했던 반면, 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는 흑인 노예들로 눈을 돌렸다. 흑인 노예들이 배에 실려 최초로 이 나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619년이었다.


<227>
어떤 감독들은 노예들을 일요일 뿐 아니라 토요일 오후까지도 쉬게 함으로써 결과로 나머지 날들에 그들로부터 더 많은, 더 나은 작업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어떤 감독들은 토요일 오후의 휴식이 결코 더 많은 면화의 생산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감독들은 친절한 대우와 근면에 대한 포상, 또는 때때로 지급되는 음식 외에 여분의 음식을 제공하는 일, 이따금씩 잎담배를 분배해 주는 일 따위가 면화 생산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발견했고, 어떤 감독들은 노예를 엄하게 다루고 감시를 철저히 하고 지급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금지’ 사항들을 강요하는 것이 면화 생산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예들에 대한 대우는 감독에 따라, 그리고 어떤 방법이 면화 생산에 가장 유익한지 그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달랐다.

<233>
노예들이 주인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다면 주민들이 노예로부터 달아나야 할 것이다.

<234>
사람들의 유언장에서 변화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종전에는 자녀들에게 물려주기에 가장 안전하고 적당한 재산이 토지와 가축이었는데 반해, 1850년대에 와서 자녀들에게 물려주기에 가장 안전하고 가장 가치 있는 재산은 노예들이었다.

<235>
1850년, 남부에는 600만에서 700만 사이의 백인들이 있었으나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라들은 그 중 50만도 되자 않는 숫자였다. 300만에서 350만에 이르는 흑인 노예들은 전체의 6%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있다.

<237>
대규모 면화 경작지는 모두 근면한 개척민의 피땀으로 마련되었다. 땅을 개간하고 안정을 찾기가 무섭게 동부로부터 대농장주의 검은 무리를 나타나 그의 이웃에 자리를 잡고 모든 것을 삼키고 지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의 많은 지역에서 나날이 진행되어 가고 있는 일이다. 다수의 백인인구, 족 소농인구들은 급속히 사려져 갔다.

<243>
용감한 사람들이 야만적인 노예제도를 끝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필요하다면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로, 이 맹렬한 항거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런 반란은 성공하지 못하였고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진압되었다.

<제10장 땅주인과 돈 주인의 싸움>

<247>
북부에서는 소규모의 농업, 해운업, 발전하는 공업이 있었고, 그 모두를 백인 자유노동에 의존하고 있었다. 남부에서는 흑인 노예운동에 의한 유일작물의 농업이 있었다. 두 지역은 생활의 모든 면이 달랐으므로 서로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


<252>
흑인들은 그들의 재산이었다. 재산 중에서도 값비싼 재산이었다. 노예해방에 대해서 떠벌린다는 것은 곧 그들의 재산의 파괴를 뜻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남부인들은 노예폐지론자들을 불타는 증오심으로 맹렬히 증오했다.

<제11장 자원·인력·기계·돈>

<247>
분쟁은 불가피했다. 북부와 남부는 일과 사고방식, 생활이 서로 달랐다. 북부에서는 소규모의 농업, 해운업, 발전하는 공업이 있었고, 그 모두를 백인 자유노동에 의존하고 있었다. 남부에서는 흑인 노예노동에 의한 유일 작물의 농업이 있었다. 두 지역은 생활의 모든 면이 달랐으므로 서로 분리될 수 없었다. 그 분쟁은 60년 이상 계속 되었고, 종국에는 ‘남북전쟁(the Civil War)’으로 끝을 내렸다. 양 지역 간의 분쟁은 공업의 북부와 농업의 남부 간의 상반된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공업의 북부에 유리한 것은 농업의 남부에 불리했고, 마찬가지로 농업의 남부에 유리한 것은 공업의 북부에 불리하였다.

<265>
1902년 미 합중국 공업위원회는 ‘1865년 이후 이루어진 변화와 진보는 여러 면에서 그 이전의 인류 역사의 전 과정에 걸쳐서 있었던 모든 것보다 크다’고 언명했다. 링컨이 암살당하던 1865년 그의 시대에는 노동자가 주체였고 도구는 그의 부속물이었다. 오늘날에는 기계가 주체이고 노동자가 부속물이 되었다. 이 놀라운 변화는 자원·인력·기계·돈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71>
여러 회사들이 소유하고 있던 많은 선들을 모두 사모아서 직통으로 연결된 하나의 선으로 만든 것은 철도 역사상 커다란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제12장 더 많은 자원·인력·기계·돈>

<297>
현대 공업은 그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도구가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사람의 역할은 그것을 보조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숙련된 근로자 플러스 비숙련 도구가 아니라, 숙련된 도구 플러스 비숙련 근로자로 되어 버린 것이다.


<301>
대량 생산이 수지가 맞도록 만들어 준 것은 이와 같은 제품의 막대한 ‘대량소비’였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제13장 가진자와 못 가진자>

<318>
자본가들은 돈을 버는데 관심이 있었다. 많이 벌수록 좋았다. 수완좋은 사업가는 그가 사는 것에 대해서는 가능한 적게 지불하고 그가 파는 것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높은 이윤을 얻는 첫걸음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326>
발전의 원동력은 지도자들의 이상주의적이고 센티멘틸한 사회향상 계획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합원 대중이 호전적이었다는 사실에서 발전의 원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다.

<333p>
미국의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투쟁들-막대한 재산을 파괴하고 많은 생명을 앗아간-중의 일부는, 최종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고용계급이 노동조합을 부인하고 조합과의 단체교섭을 거절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341>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길고 격렬한 투쟁에서 미국 법원은 가진 자의 편이었다”

<제 14장 무일푼에서 백만장자로>

<351>
우리가 그들 모두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래서 필리핀인들을 교육시키고 향상시키고 개회시키고 기독교로 개종시킬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357>
몇 년 전 스메들리 D. 버틀러(Smedley D. Butler) 해병 소장은 미국 대기업의 이익 수호자로서의 자신의 직무를 생생한 어투로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나는 33년 4개월 동안을 우리나라의 최정예 군대, 해병대의 현역군으로서 보냈다. 중위에서 소장까지 이르는 모든 장교 계급을 거치면서 복무하는 동안의 나의 직무란 대기업, 윌 스트리트 및 은행가들을 위한 고급 폭력단원으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자본주의의 깡패였던 셈이다. 그런 식으로 나는 미국 석유업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1914년 멕시코, 특히 그 중에서 탐피코의 확보에 주력했다. 나는 하이티와 쿠바를 내셔널 시티뱅크 사람들이 세금을 징수해 들이기에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조력했다.

<제15장 백만장자에서 무일푼으로>

<366>
1930~32년의 무서운 불황의 시기에, 세계 최대의 부국은 ‘병든 나라’였다. 미국의 어디에서나 빈곤을 읽을 수 있었다. 은행은 연이어 문을 닫았다. 장래를 위해서 절약하고 저축해 왔던 수백만 인구의 희망과 꿈도 닫혔다. 1932년 불황이 극도에 달했을 때 은행은 하루에 40군데 꼴로 쓰러지고 있었다.

<373>
1929년의 공황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원인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생산제도였다. (중략) 그것은 최고도로 발전한 최첨단의 자본주의였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부국이었다. 미국의 은행과 기업은 세계에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대기업이 그만큼 견고하게 뿌리박은 곳은 없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만큼 거대한 재산이 축적된 곳은 없었다. 그리고 부자의 문전에는 거지 나사로가 함께 살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부국은 구세계의 최악의 빈민굴과 견줄만한 빈민굴들을 가지고 있었다.

<380>
너무 많이 생산된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이 아니라, 이윤을 남기고 팔 수 있는 이상으로 많은 것이다. 이윤을 얻는 방법은 생산비를 줄이는 것이다. 생산비를 줄이는 방법은 가능한 한 적은수의 근로자를 고용하여 가능한 임금을 적게 지급하는 것이다.

<제16장 아무도 굶주리게 할 수 없다.>

<385>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 정책”은 하나의 혁명이라 불렸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혁명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혁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념적으로 혁명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혁명이 아니었다. 뉴딜 정책은 이윤의 획득을 주 목적으로 하는 생산수단의 사유제도를 바꾸지 않았다. 미국은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이다. 뉴딜정책은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전복을 가져오지도 않았다.- 고용주는 여전히 옛날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근로자 들의 옛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387>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뿐이라는 본인의 신념은 확고한 것입니다. 그것은 후퇴를 전진으로 돌리는 데 필요한 힘을 마비시키는, 이름도 이유도 없는 부당한 공포감일 뿐입니다. (중략) 우리가 처해 있는 역경은 물자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중략) 풍요가 바로 우리 문전에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공급을 눈앞에 두고 그것의 원활한 사용이 부진할 따름입니다. 공급의 원활한 사용이 부진한 주요 원인은, 인류의 재화의 교환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의 완고함과 무능력으로 인해 실패했으며, 그 실패를 자인하고 주저앉았다는 것입니다.

<제 17장 다시 일자리를 주기 위하여>

<403>
사용을 위한 생산의 제도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계획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들은, 굶주리고 있는 판국에 식량과 의류를 파괴하는 지독한 아이러니를 지적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제도의 신봉자들에게는 그것을 비난할 권리가 없었다. 수익성은 자본주의 경제의 시금석이며, 농업조정국의 입안자들의 목표는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408>
그렇듯이, 극심한 불황 속에서 ‘공정한 경쟁’은 ‘부정한 경쟁’이 되어 있었다.. 물가는 하락했으며 일부 공업분 야에서는 생산비에조차 미달되는 가격으로 제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부정한 경쟁은 ‘살인적인 경쟁’이 되었다.

<415>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그런 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정부의 지출은 그들에게는 일자리와 돈과 식량과 음식과 의복을 그리고 희망을 주었다.

<418>
뉴딜 관계자들은 실업을 비상사태로 파악했다. 따라서 그들은 공공지출 계획을 비상계획으로 간주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이윤제도의 붕괴는 많인 미국인들이 영구히 실업상태에 있게 될 운명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제18장 판매자도 주의하라>

<452>
임금· 시간법과 와그너 법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2차에 걸친 재임기간 동안 민중이 그를 지지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 중의 일부였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단순히 자본주의가 제대로 운행되게 하는 것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대다수의 국민에게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운행되기를 원했다. 부자들은 첫 번째 목표에서는 그를 지지했으나 두 번째 목표에서는 그와 싸웠다. 빈민들은 두 가지 모두에서 그를 지지했다. 대기업들은 재산의 가치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 뉴딜법(예를 들어, 산업부흥법)은 지지했으나,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 뉴딜법(예를 들어, 사회보장법)은 공격했다.

<제 19장 세계적인 무법상태의 전염병이 번지고 있다.>

<461>
미국 자신은 확실히 침략자가 아니었다. 미국의 지배적인 관심사는 평화의 유지와 수출무역의 확장이었다.

<462> 육체적인 질병의 전염병이 번지기 시작할 때에, 사회는 질병이 번지는 것을 막아 사회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환자의 격리를 승인하고 이에 참여합니다.

<474> 통상협정 계획은 수축하는 해외시장을 미국의 무역에 개방시키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상협정 계획의 상호간의 핵심은 관세특혜였다.

<제 20장 일자리와 평화>

<489>
미국민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었다. 반대로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였다.

<492>
일자리와 평화의 문제는 이와 같이 우리의 독점구조와 이윤제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가 ‘자유기업’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경제가 독점자본의 사적인 목적을 위해 독점자본에 지배될 것인가, 아니면 국민 자신의 복지를 위해 국민에 의해 지배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492>
그들의 경제적·정치적 활동은 배가되어야 한다. 그들은 일자리와 평화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투쟁을 통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일자리와 평화는 이윤만을 이한 생산제도가 아닌, 사용을 위한 생산데조 하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4. 내가 저자라면

가. 이야기 전개에 대하여

우선 최근에 본 책 중에서 가독성 부분에서는 가장 좋았다. 역사적인 배경지식도 세계사나 상식으로 많이 들었던 터라 큰 사건 위주의 역사적 사실들이 자세한 배경과 이유를 알고 나니 전체적으로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휴버만이 18세부터 고등학교 선생이었다는 것과 노동조합원들의 교육가라는 점에서 뭔가를 전달한다는 것에 대해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번역본이여서 원문에 대한 자세한 문체는 잘 모르지만, 명쾌한 논리와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은 좋았다. 중간 중간 나오는 인용문도 매우 인상적이었고, 미국의 역사를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문에 나온 그래도 위인들의 역사가 아닌 갖가지 어려움에 역사의 현장에 있던 민초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방대한 미국의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나. 책의 구성에 대하여

1장부터 14장까지는 그야말로 이야기가 지치지 않고 죽 나아갔다. 책을 놓기가 싫고 계속 궁금증과 역사에 대한 다른 관점으로 보는 미국사가 눈앞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사실들 속에서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황야의 7인들, 장고 등 서부영화와 Far and away 등 단편적으로 보았던 서부영화의 애절한 사연들이 떠올랐다. 갑자기 상승곡선을 그리던 것이 2부에 들어서서 콱 막힌 부분이 들었다. 제14장 백만장자에서 무일푼으로부터 시작을 하여 뉴딜정책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대공황 이후의 사실이 너무 방대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구성적인 면에서 본다면 뉴딜정책을 독립적인 부로 구분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저자가 뉴딜정책에 대하여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뉴딜정책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적어두고 이 정책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를 해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 책의 구성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3차 개정판이다. 1932년 처음 출간되고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47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의 1부까지 14장이 1932년에 출간된 내용이고, 2부 6개의 장이 개정판에 추가되었다. 2차대전이 끝이 난후 1960년대의 미국의 발전에 따라 민중사도 쓸 얘기가 많았을 것 같다. 오히려 소련의 몰락으로 이어진 공산주의의 패배, 냉전시대의 종식으로 자본주의가 더욱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아서 일까. 아니면 1949년부터 시작한 Monthly Review의 바쁜 활동 때문이었을까?

다. 책이 주는 교훈

우선 번역본의 제목이 미국 민중의 역사라는 부분을 너무 무시한 것 같았다. 가자 아메리카로는 휴버만의 노고를 너무 가볍게 본 것 같았다. 오히려 1983년에 비봉출판사에서 “역사와 민중”(We, the People Drama of America, 1983)의 제목이 나은 것 같다. 지금 역사와 민중이라는 말이 우리사회에서 반감을 주는 단어로 바뀌어서 그런가는 몰라도 아쉬움이 있었다. 이 책이 금서였다는 것은 우리나라도 많은 민중의 역사가 숨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올 연말에 대통령 선거와 내년 5월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는 것을 보고 아래 구절이 들어왔다.


서부의 한 집회에서 어떤 정부 관리들이 연단에 오르기 위해 군중 사이를 비집고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외쳤다. “길을 비켜주십시오. 우리는 국민의 대표들입니다.” 당신들이 비켜가시오 군중은 재빨리 응수했다. 우리는 국민이요(We are the people)그런 대답을 할 수 있는 배짱을 가졌던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믿고 있었고 어느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려 들지 않았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런 말을 들을 수가 있다. 바로 선거 유세 때 30여일뿐이다. 나머지 3년하고도 11개월은 이러한 말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과연 우리나라의 국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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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5.14 19:06:02 *.114.56.245
같은 대상을 사이에 두고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본다는것. 이것을 시각의 차이라고 하지요. 보통 우리가 영어공부를 할 때 사물 주어라는것.
(It makes me happy) 저는 이러한 표현을 사물에도 생명력을 부여하는 그들의 사고에 높은 점수를 주었는데 어떤 책, 어떤 관찰자는 그들은 '인간' 에다 촛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재화에 촛점을 두는 -- 이다 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었더랬어요. 다양한 시각, 다양한 사고, 아무튼 삶 자체가 흥미 그 자체입니다. 대중의 흐름에 힘싸이지 않고 각자의 색깔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것 저의 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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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14 23:29:43 *.72.153.12
<가자 아메리카로!> 이책 정말 술술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이전에 책들에 비해서 ^^*
책읽기는 여러가지 생각을 동반합니다. 미국의 역사를 읽는데..곳곳에서 현재의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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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6 11:24:05 *.75.15.205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p25 그것 역시도 성과를 따지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그렇게 버리고 무엇을 얻었는데? 네가 이룩해 낸 것이 무어란 말이지? 보여줘?... 그래서 역시 역사란 강자의 몫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죽어서라도 무언가를 증명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를 죽여서라도 내가 승리를 해야 했을지 모르겠어요. 평화 속에 살던 인디언 주먹쥐고 일어서나, 바람을 박차고 등의 죽어간 인디언의 생명은 어차피 쓸모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희망인 것은 우리들의 억지이거나 핑게 혹은 자기합리화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정말 좋은 것을 위해 살았고 살아 가는 것일까요? 늘 궁금합니다. 그래도 원한 보다는 사랑을 남기고 싶은 것은 신의 조화일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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