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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8일 02시 46분 등록


눈부신 5월의 세 번째 책으로 내정된 '역사 속의 영웅들'을 일찌감치 구해놓고 결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새롭게 추가하신 리스트가 공개되었다. 그 중에서 발견한 '역사, 위대한 떨림'이라는 제목은 묘한 매력으로 내 가슴을 흔들었다. 더군다나 6월 연구원 모임의 주제가 '가장 경이로운 떨림'으로 다가온 역사 속의 '다섯 가지 장면'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보니, 또 다른 과제를 위한 준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기대마저 피어 올랐다. 모든 서점에서 절판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온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한 권, 남아 있던 책을 찾아냈다.

책을 찾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막상 받고 보니 뜻 밖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D. H. 로렌스'.

아찔한 소년기의 숨막힘과 비릿한 첫 몽정의 기억을 더듬거리게 만드는 책,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저자가 쓴 역사책이라니… 머리를 긁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북회귀선'의 헨리 밀러와 더불어 당시로는 충격적이었던 성묘사로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수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D. H. 로렌스'가 유럽 역사를 통째로 아우르는 역사책을 저술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이 로렌스가 그 로렌스가 아닌가?'

나만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남도 같이 모르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입을 열어 솔직함을 토해내자니 비웃음을 살 것만 같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충 아는 척 주워 삼키자니 어디선가 질문이 날아들어 내 빈 속을 뒤집어 펼쳐낼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럴 땐 대충 입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다행히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스승의 날' 파티의 흥겨운 자리에서 다른 연구원의 이야기를 통해, '이 로렌스가 그 로렌스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조금 개운한, 그러나 여전히 미심쩍은 마음으로 저자의 역사를 추적해나갔다. '외설 소설 전문 작가'라는 개인적인 편견을 손잡이 삼아 나의 지적 영역 밖에 감춰져 있던 그를 잡아 당겨 보니 묵직한 본체가 딸려 올라왔다. 잔챙이를 생각했던 내 기대는 박살이 났고, 대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월척이었다.

20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D. H. 로렌스(David Herbert Richards Lawrence, 11 September 1885 ~ 2 March 1930)는 광부인 아버지와 이지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넷째로 태어났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아버지와 교사 출신의 교양 있는 어머니 사이에는 불화가 그치지 않았다. 그런 불화 속에서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애정을 대신 자식들에게 쏟았고 이런 어머니의 사랑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는 1909년에 The English Review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하면서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의 첫 소설인 The White Peacock은 1911년 그의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한지 한 달 후에 출판되었고 로렌스의 천재성을 예고해주었다. 이를 계기로 교사의 길을 대신하여 작가로의 인생에 승부를 던지게 된 그가 두 번째로 발표한 작품이 The Trespasser이다. 그리고 이어서 Sons and Lovers를 1913년에 발표하게 되는데 이런 일련의 작품 활동으로 주목 받는 유명 작가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D. H. 로렌스의 생을 이야기하면서 그의 여성 편력에 대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삶에 있어 여성은 큰 역할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로렌스가 16세 때 어머니는 이스트우드에서 몇 마일 떨어진 Haggs 농장의 Chambers 일가로 그를 데려간다. 작품 속의 인물 미리엄(Miriam)에 대한 묘사는 바로 이 농장에서 살았던 실제 인물 제시 체임버(Jeassie Chambers)에 바탕을 두고 있다. 후에 D. H. 로렌스 : A Personal Record라는 회고록을 남긴 그녀는 이 책에서 미리엄에 대한 묘사가 잘못된 것을 보고 당황하고 분노하면서, 로렌스가 이 소설에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제시와 교제중이던 로렌스는 루이 버로우스(Louie Burrows)를 대학에서 만나 약혼하게 되는데 작중 인물 클라라(Clara)에 대한 묘사에 이 여성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1912년 버로우스와의 약혼 중에 그는 프리다 위클리(Frieda Weekely)와 만나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독일 출신의 프리다는 노팅엄 대학 교수의 부인이었다. 생동감 넘치고 육감적인 여인으로 노팅엄 사회의 보수적인 삶에 실증을 느끼고 있던 프리다는, 어느 날 남편과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생기 있고 충동적인 로렌스에 끌리게 된다. 수주일 후 그녀는 열정적이고 매력적인 젊은 소설가와 사랑을 위해 남편과 네 명의 아이들을 떠나 독일로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다. 바로 이 시기에 소설 무지개(The Rainbow)의 창작이 시작되었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독일인인 부인과 함께 영국에 머물 수 없게 된 그는 이탈리아 등을 떠돌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러나 '무지개(The Rainbow, 1915)'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판매 금지되었고, '아들과 연인(Sons and Lovers, 1913)', '사랑하는 여인들(Women in Love, 1920)',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 1928)'도 일부가 삭제된 채로 출판되었다가 1990년대에 와서야 무삭제판으로 출판되었다.

"군용 비슷한 트럭에 치여 만신창이가 된 자식을 24년 동안 앵벌이 시킨 일이 절통했다"

고 고우영 화백이 자신의 만화 삼국지 무삭제판을 출판하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속내를 들여다보며, 금지와 삭제로 얼룩진 D. H. 로렌스의 작품 세계와 삶에 대해서 떠올리게 된다.

D. H. 로렌스는 20세기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한편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영국 작가다. 그는 소설, 단문, 시, 희곡, 수필, 여행기, 그림, 번역, 문학 비평 그리고 개인적인 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작품을 쏟아냈다. 그의 작품들은 현대화와 산업화에 따른 비인간화의 영향을 반영한다. 작품들 속에서 그는 감정적인 건강과 생명력, 자발성, 성(性) 그리고 본능적인 행동 등에 다룬다. 그의 이런 성향은 많은 적들을 만들었고, 그는 인생의 후반부에 갖은 고초와 공식적인 박해, 검열 그리고 그의 창조적인 작품에 대한 오역을 견뎌내야 했다. 이 시기에 그는 스스로 잔혹한 성지순례라고 불렀던 자발적인 망명의 시간을 보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그에 대해 대중은 '재능을 낭비한 음란물 작가'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E. M. 포스터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상상력을 가진 소설가라고 칭송했다.

이 책, 역사, 위대한 떨림(Movements in Europe History)의 역자인 정종화 교수는 역자 후기에서 저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영미 문단의 비평가들이 로렌스를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와 함께 20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뽑고 율리시스(Ulysses)와 로렌스의 '사랑하는 여인들(Women in Love)'을 영어로 씌어진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지목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나라에는 별로 넓게 퍼져 있지 않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신비평 이론의 독보적 비평가인 리비스 F. R. Leavis가 위대한 영국 소설의 전통으로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헨리 제임스(Jenry James),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그리고 D. H. 로렌스로 이어지는 주축을 그리고 있는 사실이, 그리고 이 전통선에는 조이스는 물론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같은 작가들이 모두 빠져 있는데도, 이러한 평가에 대해 별로 이의가 없다는 점도 우리에게는 생소한 지식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20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가 생활고에 찌들려서, 생계를 위해 옥스퍼드 대학의 의뢰로, 학생을 위해 쓴 유럽 역사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막상 책의 첫 장을 열면서도 선뜻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D. H. 로렌스 관련 참조 자료
1. David Herbert Richards Lawrence(1885 ~1930) : 대학원의 보고서 자료로 작성된 자료로 D. H. 로렌스의 시기별 작품과 특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당시 산업화와 더불어 나타나게 되는 여러 사회 현상 및 배경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첨부 참조)
2. 위키피디아 'D. H. 로렌스' 편 : 위키피디아에 수록된 자료 중에서 D. H. 로렌스 편의 분량은 대단히 방대하다. 위의 자료도 위키피디아의 자료를 상당 부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번역을 해볼까도 생각했으나 너무 양이 많아서 배보다 배꼽이 커질 것 같아 꾹! 참았다.
(작품 목록만 나열해도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생략합니다. 자세한 작품 목록은 위의 1, 2번 자료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들을 지나치게 편안하고 친숙한 환경 속에 감싸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어린이의 영혼에 지나치게 인간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p. 10)

서술적 역사가 심장의 소리라면 과학적 역사는 두뇌의 소리이다. (p. 11)

이 책은 유럽인의 마음 속에서 커다랗게 솟아오른 움직임에 대한 인상을 기록하려는 시도이다. 물결처럼 소용돌이쳐 인간을 거대한 집단적 행동으로 휩쓸어 넣기도 하고 그들을 반대 방향으로 영원히 분리시켜 놓기도 한 움직임에 대한 인상을 기록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 움직임들에는 논리적 유추가 가능한 기원이 따로 없다. 이 움직임들은 그 규모가 너무 커서 비인간적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을 뿐 거기에는 합리적이 원인이 없다. (p. 11)

로마 제국은 세계사에서 가장 경이로운 정치 체제이다. 그것은 제국의 영토가 광활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국가가 하나로 단결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도 이러한 경이로운 현상은 세계 역사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로마가 이러한 기적적인 힘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의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뭉쳐 노력했기 때문이며, (p. 21)

황제들이 정신 이상 증세를 약간씩 보이기 시작한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온 세상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었으며 세상 전체를 그들의 발 아래 두었기 때문이었다. (p. 26)

갈리아에 주둔한 군대는 콘스탄티누스가 달려와 아버지와 포옹하자 환호의 함성을 외쳤다. (p. 33)

콘스탄티누스는 도시의 경계선을 긋는 날을 정했다. 도시 양쪽으로는 바다가 길게 팔을 뻗어서 넓고 뭉툭한 육지의 끝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자줏빛 황제의 옷을 입고 한 손에 창을 들고는 번쩍이는 제복을 입은 병사들 앞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된 넓은 땅의 세 번째 각을 찾아 진군을 시작했다. 그는 창으로 선을 그으면서 서서히 행진했다. 그러면 수행원과 측량사들이 정확한 표시를 했다. 그 날을 경축일로 공포했기 때문에 황제의 행렬 뒤에는 조신들과 병사들과 일반 시민들이 따르고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들판과, 과수원과, 올리브 숲과, 월계수와 소나무 숲을 지나고, 작은 시내와 언덕을 넘어서 계속 행진을 했다. 사람들은 황제의 뒤를 따라오면서 수도의 면적이 엄청난 데 놀랐다. 그들은 놀라운 마음을 금치 못하며 자기들끼리 중얼거리다가 그 중의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황제에게 그 동안 지나온 땅만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를 세우기에 필요한 면적보다도 더 넓게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안내자가 멈추는 게 좋다고 생각할 때까지 계속 걸어갈 것이다"라고 콘스탄티누스는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다섯 개의 산을 넘어 다시 바다에 닿을 때까지 걸어갔다. (p. 39)

바진티움이라고 불렸던 이 콘스탄티노플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서거 이후에도 천 년이나 더 계속되었다. 제국의 백성들은 기원 1453년 투르크족에 의해서 멸망할 때까지 비열할 정도로 겸허하거나 비인간적일 만큼 흉폭한 면을 갖고 있었다. (p. 42)

신전에는 설교나 기도가 없었으며 죄와 구원에 관한 논의도 없었다. 예배 같은 의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의무가 강요 없이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신전에 갔다. 특별한 날에는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는 광경을 보러 가기도 했다. 제물을 바친 다음 사제 - 그 행사를 위해서 임시로 지정된 사람-는 물이나 제물의 피를 관중에게 뿌려서 정화 의식을 대신했다. 그런 다음에는 항상 춤과 축제가 뒤따랐다. 때로는 함께 우는 애도 의식이 있기도 했다. (p. 45)

유대인들만이 자유롭고 마음 편안한 다신교의 예배에 대해 증오와 공포를 품고 있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예의를 갖추어 예루살렘의 신전에 있는 여호와Jehovah 신에게 선물을 보내고 그 신이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잊지 않도록 제의를 지내라고 명령했다. 로마의 황제가 자기들의 신을 알아준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로마 시의 카피톨 언덕에 유피테르 신을 모시는 신전을 짓고 그를 경배하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경멸했다. 그들은 아우구스투스를 우상 숭배자로 증오하고 여호화 신 앞에서 살아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p. 48)

플리니우스는 새로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어째서 기독교도이면서 동시에 로마인이기를 거부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p. 58)

네로가 기독교도들을 학살한 이유는 기독교도들이 유대인들의 종파 중에서 가장 비열하고 사악한 인간들이라고 누군가 그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쌍한 기독교도들은 무서원 운명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귿르에 대한 학대는 그것이 갑작스럽고 사나웠던 것만큼이나 금새 끝나고 말았다. 네로는 바해가 끝난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기독교도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게 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 (p. 61)

기독교도들을 미워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들 비밀 집단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기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p. 62)

게르만족은 로마가 무너지면서 검은 눈을 가진 종족들과 융합하게 되었다. 근대 유럽의 태동은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적대적 정신이 혼합하면서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피와 적대적인 흐름이 섞이면서, 근대 유럽이 형성된 것이었다. 두 개의 다른 극의 융합은 근대의 위대함을 가능케 했다. 또 이 두 반대되는 힘의 적대적 성격은 과거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재에 재난을 가져오기도 한다. (p. 88)

기원 400년 알라리크는 시칠리아 섬으로의 원정을 준비하던 도중에 사망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서른네 살에 불과했다. 고트 군은 부센토 강의 물줄기를 옆으로 돌리고 알라리크의 시체와 무기와 보물을 강 아래에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고는 강물의 물줄기를 다시 원위치로 바꾸어놓아 지금도 강물의 물결이 위대한 서고트인의 위로 흐르고 있다. 이 작업에 투입되었던 모든 노동자와 노예는 공사가 끝난 다음에 목이 잘려 비밀이 지켜지게 되었다. (p. 102)

훈족의 파괴력은 검은 망치와 같아서 이미 허물어진 로마 제국을 산산이 부수는 결과를 초래했다. 훈족의 침공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작업과는 전혀 무관했다. 게르만계 종족들이 들어와서 새로운 유럽을 세우는 기초가 된 반면에, 훈족의 침입은 땅에 번개를 요란하게 치고 지나가는 먹구름과 같았다. (p. 108)

훈족의 모습은 보기 흉했다. 그들은 말 위에서 살았다. 말 위에서 먹고, 마시고, 심지어는 자기도 했다. (중간 생략) 그들은 날카롭고 높은 소리를 질렀으며 몸짓은 괴상하고 야만스러웠다. 그리고 살육을 끝내고 나면 원하는 것을 모조리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것은 태울 수 있는 데까지 전부 태워버렸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탐욕스러운 종족이었다. (p. 111~112)

훈족 전사들은 사제와 주교들이 서둘러 아이들에게 세례를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은 죽음이 세례 받지 못한 아이들을 앞질러 와 그 가엾은 아이들의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모습은 키 작은 야만인 훈족 전사들에게 경멸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사제와 주교들은 순식간에 두 동강나고 아이들은 창에 찔려 공중으로 날아갔다. 기독교 의식을 행하는 광경이 훈족 전사들의 기분을 극도로 불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p. 117)

마침내 마른 강 어귀에 있는 샬롱 평야에서 양쪽 군대가 대치하게 되었다. 아틸라 쪽에는 훈족, 고트족, 부르고뉴족, 색슨족, 프랑크족, 슬라브족의 군대가 버티고 있었으며, 아이티우스 장군과 테오도리쿠스 장군 편에는 로마 군, 고트 군, 부르고뉴 군, 프랑크 군, 심지어는 훈족으로 구성된 군대 등 수없이 많은 종족의 군대가 섞여 있었다. 마치 야만 세계의 절반이 다른 야만 세계의 절반과 결투를 벌이는 것 같았다. (p. 118)

아틸라는 아퀼레이아 시를 함락시키고 매우 불편한 자신의 심기를 이 도시에 다 쏟아 부었다. 부로 가득한 이 대도시를 그가 어찌나 야만스럽고 철저하게 초토화시켰는지, 30년 뒤에 이 도시를 찾아온 사람은 과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항구 주변의 땅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사막이었다. 아퀼레이아 시와 인근 마을에서 겨우 도망 나온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얕은 바다 주변의 늪지대와 섬으로 숨어 들어가서 초라한 오두막을 짓고는 생선과 조개 따위를 먹고 살았다. 이것이 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다 위의 도시, 베네치아가 형성되는 최초의 시작이 되었다. (p. 120)

교회의 땅과 왕의 농지에 예속된 농노의 운명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 대한 대접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었으며, 이중 일부는 재산을 소유하게 되어 전사로 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p. 164)

사를마뉴는 수많은 이들 농노와 예농(隸農, villein)집단이 처한 생활 조건을 향상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들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너무나 냉담했고, 프랑크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갈리아인들을 너무나 무시해서,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갈리아인들은 자유에 대한 관심을 잃은 채, 비참한 삶을 그냥 이끌어나갔는데, 때로 그들은 이상하고 무서운 미신을 열심히 믿었으며, 신전으로 순례를 떠나는 것을 좋아하고, 해야 될 일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들은 또 자신의 몸에 이상한 속죄의 벌을 가했고, 부적을 쓰고 마술을 행하면서 나무나 숲, 또는 우물에 가서 신비스러운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그들은 이상한 범죄를 저지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p. 165)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 3세는 훌륭한 도덕 정치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힐데브란트처럼 그도 이 계획에서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어디에서나 칼 없이 인간을 통치한 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p. 184)

프리드리히는 야심이 많고 전쟁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나폴레옹과 유사하다. 나폴레옹도 이탈리아의 섬에서 태어나 나중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나폴레옹처럼 고집이 세고 고정된 목적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성이 훨씬 더 훌륭한 편이었다. (p. 187)

중세 초기에 유럽은 이후에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 하나로 통합된 거대한 왕국이었다. 엄격하게 afkgo서 그것은 유럽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였다. 사방에 작은 국가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별로 중요한 것이 못 되었다. 사람은 먼저 기독교도였으며, 그 다음으로 노르만족이거나 색슨족이었고, 마지막으로 프랑스인이거나 영국인이었다. (p. 194)

교회는 좀더 힘을 가져야 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들을 문명화시키는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그들에게 평화와 생산의 기술을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싸움과 모험에 대한 절대적인 필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두 개의 상충되는 충동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교회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있는 투쟁의 본능을 만족시켜 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그들을 진정시키고 그들에게 질서를 부여할 길이 없는 것이었다. (p. 196~197)

거대한 흥분의 물결이 유럽 전체를 휩쓸었다. 구세주의 성소를 해방하고, 하나님의 뜻을 돕고, 황금의 도시 예루살렘의 석탑들을 둘러보고, 요르단의 경이를 보며, 예수가 눈물을 뿌린 올리브나무를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또 예수의 백합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미쳐 있었다. 칼리프들의 경이로운 궁궐과, 마술적인 아라비아인들의 황금과, 벽옥과 에메랄드와, 감미로운 계피나무 숲과, 검은 눈동자의 아리따운 동양 여인들에 대해서는 전 유럽이 들은 바 있었다. 모험을 갈구하는 영혼에 불을 지펴놓은 것이었다. 이 훌륭한 궁전을 장악하고, 보석과 황금을 손에 쥐고, 향료를 맛보고, 부드러운 눈매를 가진 여인들과 만나기를 그들은 갈망했다. (이하 생략) (p. 201)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원정(십자군 원정)이 악의에 찬 바보짓임을 알고 있었다. (p. 202)

알렉시우스는 경악하고 분개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프랑스의 왕이란 야만인에 불과하며 오늘날의 아프리카의 추장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p. 207)

이 때 기적이 일어났다. 프로방스 출신의 영리한 사제 피에르 바르톨로뮈Pierre Brtholomew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이 안티오크 시의 성 베드로 성당에 묻혀 있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자신의 꿈에 성자 안드레아Saint Andrea가 세 번이나 나타나 그 성스러운 창을 찾아내라고 말했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흥분한 가운데 성창(聖槍) 파내기가 시작되었고 마침내 창을 찾는 데 성공했다. (중간 생략) 환희와 희망의 열기가 혼합된 커다란 함성이 전 도시에 울려 퍼졌다. 기도와 미사가 집전되었다. (중간 생략) 다음 날 동이 트자 병사들이 집합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성문이 활짝 열리고 전쟁의 대열이 gdowlsgo서 도시 밖의 평원에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성직자들은 대열을 이루어 성가를 불렀다. "주여 일어나소서, 원수는 흩어지게 하소서." 종교적 흥분에 열광한 기독교 십자군은 놀란 투르크 군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다. (p. 213~214)

이로써 제1차 십자군 원정이 끝난 셈이었다. 기독교 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한 최초의 사건이며 유럽을 잠에서 깨우는 최초의 대운동으로는 대단히 성공한 셈이었다. (p. 217)

십자군 이후 유럽은 다시 뭉쳐서 행동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인간에게서 먼저 기독교도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제 중요한 개념은 민족이 되었다. (p. 223)

1380sus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가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고 성서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성직자들의 사악함을 비난하고 교황의 권위를 공격했다. (p. 254)

두 사람 다 그들의 죽음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맞았다. 그들은 마치 축제에 초대받은 양 불 속으로 급히 걸어 들어갔으며 자신들의 고통을 나타내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화형이 진행되자 사람들은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불꽃이나 불이 내는 '톡톡' 소리도 그들의 노래를 막지 못했다. (p. 257)

흥분과 단식과 근심과 광기 때문에 극도로 수척해진 사보나롤라는 교황의 명령에 의해 과오를 고백하도록 고문을 받았다. 따라서 자신이 참된 예언자가 아니라고 외친 것은 고통 때문이기 쉽다. 비밀 고문실에서 그가 무엇을 고백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사보나롤라와 두 추종자는 이단이자 분리주의자, 국가의 반역자로 몰려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p. 265)

Dl anfuq 학자들은 모두 예외 없이 수도원에 소속되어 있었다. 대학에서도 교수들의 핵심은 수도사들이었다. 평화와 은둔의 요새가 되어준 수도원 속에서 수도사들은 수백 년 동안 보관된 서적을 읽는 데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도원의 도서실에는, 양피지에 손으로 쓴 유럽의 모든 저서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수도사들은 묵묵히 나무 의자에 앉아 라틴어로 씌어진 고서들을 천천히 아름답게 베꼈고, 때로는 색을 넣어 아름다운 그림까지 그리면서 새롭고 깨끗한 책을 만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고전을 베끼면서 동시에 그 저서를 연구했다. 가장 학문이 깊은 사람은 수도원 내에 설립된 학교에서 매일 가르치거나, 외부에 설립된 대학으로 가서 강의를 하거나, 또는 부유한 가정에 가서 가정 교사를 하기도 했다. (p. 269)

만약 단테가 그녀와 결혼을 했더라면 그녀는 그에게 그런 환영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 단테가 필요로 했던 사람은 현실의 여인이 아니라 아름다운 이상이었다. 때문에 그가 베아트리체를 잃어버림으로써 그에게 다가온 슬픔은 사실상 그의 애틋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p. 273)

이 시기(르네상스)는 위대한 비전이 열리던 때였다. 먼저 방대한 과거가 인간에게 비전과 아름다운 모험과 놀라운 생각들을 제공했다. 마치 영혼과 정신이 과거에는 상자 속에 갇혀 독단적 신앙의 낡고 좁은 곳에 유폐되어 있다가, 이 시기에 와서 하늘로 해방되어 날아가 자유롭고 순수한 생각과 깊은 이해의 찬란한 무한 공간으로 들어간 것과 같았다. 그래서 기쁨에 흥분한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위대한 선원들이 대양을 건너 미국과 남아프리카를 발견했다. 이제 미래의 세계가 앞에서 열리고 과거의 세계가 뒤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p. 282)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는 창백하고 지친 모습의 청년이었으며, 신에 대한 두려움과 죄에 대한 고뇌로 가득 차 있어 인생에 대한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드디어 평화가 왔다. 어느 날 '로마서'를 읽다가 '의로운 자는 신앙으로 살리니'라는 구절의 의미가 그의 가슴을 친 것이다. 순간 그는 자신의 고해와 참회가 어째서 소용없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자신과 신과의 관계에서 완벽한 신앙을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가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는 신과 자신이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자 환희로 가득 찼다. (p. 298)

한 단계 한 단계 거대한 힘은 부서지고, 한 단계 한 단계 모든 개인이 자유의 길로 나아갔다. 그들의 영혼이 가리키는 대로 믿는 자유, 그들의 마음이 보는 대로 생각하는 자유, 그들의 가슴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는 자유, 남자와 여자에게 주어진 아름답고 유동적인 자유로 전진한 것이다. (p. 313)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사방에서 사슬에 매여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책은 계속 이런 취지로 씌어 있다. '정부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며 또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왕에게는 신이 준 권리가 있지 않으며 군주와의 계약은 의무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뜻에 맞지 않는 정부를 전복할 권한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택으로 세운 정부는 강력해야 한다.' 루소의 저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암기하게 된 구절들을 인용하고는 했다. (p. 343)

갑자기 도시 안에 함성이 터졌다. '바스티유로!' 바스티유는 유명한 성채이자 감옥으로, 왕실에 속하는 난공불락의 무서운 곳이었다. 그러나 혁명 직전에는 그 중요성이 많이 소실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바스티유에서 과거의 행적을 연상해서, 그 명칭 자체를 증오했다. 거대한 시민의 무리가 몰려나왔다. (p. 348)

…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한 누구라도 궁극적으로 공화국을 통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이후에는 한 인간이 다른 사람 위에서 군림하는 우월함은 없어지게 되었다. 대신 그것은 돈을 버는 사람의 우월함이 되었다. 재산만이 인생의 열쇠가 된 것이었다. (p. 363)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했을 때 느낀 기쁨도, 한 사람이 실제 조국을 되찾는 일에 종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낀 기쁨보다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가리발디 (p. 382)

오스트리아는와 교황을 미워한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사람들 자신들이 교황의 신하, 오스트리아의 백성, 혹은 나폴리 사람이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임을 자각하도록 고무했다. 평등, 자유, 자유로운 생각 같은 새로운 사상이 확산되었다. 옛날의 단조로움이 지나가고 구식 복종이 중단되었다. 의사와 법률가와 중산층 시민들에게 정부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군주의 권한이 흔들이고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 10개의 국가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탈리아가 통일된 것이었다. (p. 385)

7월 2일 가리발디는 밤에 로마를 빠져 나와 프랑스 군대의 코앞을 지나 산악 지대로 들어갔다. 그는 다시 피에몬테로 갔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그는 양초 공장의 기술자로 일을 했으며, 나중에는 선장이 되었다가 다시 농부가 되었다. (p. 402)

현대 이탈리아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초조함과 안달과 인생에서 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 이것이 다른 통일된 자유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통일된 자유 이탈리아에서 가리발디와 마치니 지지자들의 종교적 열성이 이루어놓은 결과로 발전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가 매우 아름다운 열매처럼 보이지만 입 속에 들어가면 재로 변한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인간은 항상 자유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p. 417)

'이러한 원칙에 대한 결정은 의회의 통의나 다수결 투표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전장에서 승리를 결정하는 신이 종국에는 쇠로 만든 주사위를 던질 것'입니다. -비스마르크 (p. 427)

마침내 마르마옹이 도시를 장악했다.공산주의자들이 패하여 17,000명이 처형되었으며, 사회주의자들도 완전히 뿌리를 뽑혔다. (p. 436)

영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절대 왕정에서 곧바로 프롤레타리아 집단의 극단적 통치 체제로 옮겼으며, 이러한 움직임에는 참된 목표가 들어 있지 않았다. 노동자 집단이 스스로를 통치하면서도 왜 통치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모든 권위를 다 부수기를 원하는 것이며 모두가 동등한 번영을 맛보기를 원한다는 것뿐이다. (p. 437)

우리는 인간이 두 개의 동기, 즉 평화와 번영을 위한 동기와 경쟁과 군사적 승리를 위한 동기를 위해서 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군사적 모험과 투쟁 속의 승리에 대한 욕구가 만족되면 평화와 확장의 욕구가 나타나며, 이것은 다시 거꾸로 반복된다. 이것이 생의 법칙이다. 생산적 노동자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래서 물질적으로 평등한 위대한 통일 유럽은, 한 위대한 선민, 대전쟁을 이끌면서 넓은 평화를 다룰 수 있는 영웅의 주변에서 뭉치지 않는 한 오래 계속될 수 없다. 이것은 국민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 국민의 의지는 한 명의 인물에 집중되어야 하며, 그 인물은 국민의 의지 위에서 군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선택된 사람이어야 하며 동시에 하느님 앞에서만 책임질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평탄치 않은 유럽의 미래가 점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p. 438)



'원초적 본능'으로 헐리웃 최고의 섹스 심볼로 등극한 여배우 샤론 스톤을 기억하는가? 최근 작품의 연이은 실패로 그 카리스마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나이로 올해 50이 된 그녀는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답다. 1992년에 발표되었던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에서 그녀는 하얀색 초미니 원피스를 입고, 담배를 입에 문채 다리를 바꿔 꼬는 뇌쇄적인 모습 하나로 전세계 남성 팬들의 가슴에 그야말로 불을 지폈다. 이 아름답고 지적인 여배우는 이후 섹시한 이미지를 털고 연기파 배우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녀에게 '원초적 본능'은 분명 대단한 출세와 명예를 가져다 준 히트작이었음은 틀림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다양한 변신을 꽁꽁 동여매어버린 족쇄와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16세기 프랑스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여왕 마고(1994)'의 리메이크판이 헐리웃에서 만들어지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원작에서는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여왕 마고의 역할을 멋지게 해냈는데, 이번에 발표된 리메이크판 발표 계획에서는 샤론 스톤이 그 역할을 맡는다고 치자. 어떤가, 그림이 그려지는가? 난 왠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된다. 잘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 반응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녀가 역사극에 어울리는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대신 그녀가 그동안 어떤 이미지를 쌓아 올렸는가에 더 가까운 문제라고 하겠다. '여왕 마고' 속의 샤론 스톤은 어쩐지 젖소부인 시리즈로 유명한 여배우 '진도희'가 명성 황후 역할을 맡게 된 것 만큼이나 낯설고 어색하다. 이것은 그녀가 가진 한계이고, 또한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처음에 '채털리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한 D. H. 로렌스의 유럽사는 샤론 스톤이 분한 '여왕 마고'나 진도희 주연의 뮤지컬 '명성 황후' 만큼이나 낯설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외에도 다수의 작품이 출판 당시에는 금지되거나 일부가 잘려나간 후에야 빛을 볼 수 있었을 만큼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소설가가 쓴 역사책이, 제목은 또 '역사, 위대한 떨림'이라고 하니, '조선 시대 야사' 같은 역사의 숨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무지한 생각마저 떠올랐다. 그나마 구본형 선생님의 '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에서 인용되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이야기 덕분에 한없이 샛길로 빠지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이 작은 책은 청소년들을 위해서 씌어졌다. 이야기와 일화를 많이 읽고 개성을 충분히 갖추었으면서도 아직 추상성에서 지적 자만심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p. 11)

책의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역사, 위대한 떨림'은 역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책이라기보다는 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은 연대기나 사건의 순서에 얽매이는 대신 좀더 자유롭고 극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풀어낸다.

책의 초반부에서 다루어지는 로마의 생성과 발전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 방대한 '로마 제국 쇠망사(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를 읽으면서 느꼈을 감동과 흥분을 자신만의 색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박진감 넘치게 풀어낸다.

흔히 다른 역사책에서라면 연도와 사건만으로 다루어졌을 로마사의 몇 장면들은 그만의 독특한 감각으로 다시 살아나 눈 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재연된다. 다양한 분야에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긴 했지만, 역시 D. H. 로렌스의 주특기는 소설이 아니었던가. 사춘기 소년의 호흡을 가쁘게 만들었던 그의 강렬하고 세련된 묘사는 역사를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화려하게 드러나 아름답게 역사의 파편들을 어루만진다. 리오 휴버만이 '가자, 아메리카로'에서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역사에 현실감을 더하는 것과는 달리 로렌스는 그런 자료들을 자신만의 목소리여 녹여 생명력 가득한 역사의 장면장면들을 재창조 해낸다.

하지만 로렌스가 유럽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민족들의 흥망을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구와 이들이 어우러진 집단의 커다란 움직임을 중심으로 빠르고 치밀하게 짚어가는 가운데, 솔직히 고백하지만, 난 숨이 가빴고, 마음은 바빴다. 중간에 제공되는 그림이나 지도와 같은 보조 자료들을 통해 최대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쏟아지는 지명과 인명 그리고 유럽 역사에 대한 나 자신의 무지함은 '역사의 떨림'을 느끼는 대신 계속해서 전 페이지로 돌아가 이미 지나온 장면들을 들춰보도록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황제나 왕의 호칭에 있어서는 종종 몇 세라는 말이 생략되어서 누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 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평소에 세부적인 디테일에 앞서 전체적인 흐름을 살피려고 노력하던 접근 방법 대신 역사의 흐름보단 장면장면을 좀더 즐기는 반대의 방법을 택해야 했다. 덕분에 유럽사의 전체적인 흐름은 좀더 시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살펴보아야겠지만 몇몇 눈부신 유럽사의 명 장면들은 흠뻑 즐길 수 있었다.

진정한 역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른 물결을 외경심과 존경심으로 지켜보며 이 엄청난 조수의 만조와 간조를 바라보는 것뿐이다. 연역적인 인과 관계는 나중에 추측된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p. 13)

그러나 그의 이런 주장은 유럽사 전체를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그 안을 관통하는 기독교의 역사를 다루는 동안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가 로마의 다신교와 충돌하게 되는 기독교의 특성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교황의 탐욕 그리고 교회의 부패를 통해 기독교의 흥망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모습은 단순한 관찰자의 시선 이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와 기타 종교를 한번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 이렇게 다른 시선으로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닐까?

한편, 로렌스는 그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 작품성으로 평가 받지 못하고 단순히 외설로 규정되어 판매 금지되거나 난도질 당하는 당시의 문화적 풍토에 질식되었을 지도 모른다. 따라서 연이은 출판 금지로 인해 생계의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집필하게 된 그의 역사책에서 때로 비판적이고 과격한 역사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학술적인 지식을 나열하는 대신 생생한 필치로 역사에 생기를 불어넣은, 소설가가 쓴 역사책은 같은 소재도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한 무지로 인해 가지고 있던 D. H. 로렌스에 대한 편견도 한번에 날려보냈다. 여전히 진도희가 명성 황후 역할을 맡는 것은 흔쾌히 찬성할 수 없지만, 샤론 스톤이 출연하는 '여왕 마고' 리메이크판이라면 한번쯤 기쁘게 봐줄 마음이 생겼다.

좋았던 점
세밀한 묘사로 살아나는 장면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의 경계를 그리는 장면이나, 훈족의 외모를 자세히 묘사한 장면 등 책 속의 수많은 장면에서 작가의 세심한 문체가 빛을 발한다.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런 묘사는 역사를 그저 먼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생생하게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처럼 느끼게 만든다. 덕분에 책의 제목처럼 '떨림'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런 생명력 넘치는 묘사가 없었더라면 쏟아지는 지명과 인명 그리고 사건 속에서 책은 무미건조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좋은 번역의 힘
책의 번역자인 정종화 교수는 영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단순히 그의 학벌이 좋은 번역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가진 영문학과 유럽 역사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과 이미 D. H. 로렌스에 대한 안토니 비일의 책을 번역한 경험이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원서를 확인하지 못한 관계로 몇몇 눈에 띄는 오류들을 확인해 볼 수는 없었지만 좋은 번역이 전체적으로 책의 완성도를 높여 주었다.

낭만적이고 진취적인 제목
재테크나 자기계발 관련 서적이 매번 도서 판매의 수위를 몽땅 점령하고, '성공', '부자' 그리고 '돈'이라는 다분히 세속적이고 직설적인 제목들이 제일 먼저 독자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시대에도 여전히 다른 가능성들은 존재한다. 2기 연구원이신 한명석 선생님께서 작년 이 맘 때쯤 게시판에 올리셨던 글에 '클릭하게 만드는 제목'이란 것이 있다. 거기서 언급하신 '낭만적이면서도 진취적인 제목'이 바로 이 책의 제목 같은 것은 아닐까? '역사, 위대한 떨림'은 대단히 매력적인 제목이다. 이미 구입해두었던 윌 듀런트의 '역사 속의 영웅들'을 제치고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 정도로 책의 제목은 세속적이지 않지만 자극적이었다. '독자나 시장은 엄청나게 다양한 취향을 숨긴 거대한 덩어리'라는 한명석 선생님의 표현(이 표현은 글이 아니라 누군가의 글에 댓글로 쓰신 내용임)을 곱씹어 보게 된다. 정곡을 찌르는 제목을 정하는 것에 대해 더욱 고민해봐야겠다.

아쉬운 점
쏟아지는 사건들, 부족한 설명
학생과 일반인을 상대로 씌어졌다고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학생과 일반인은 유럽인이거나 유럽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유럽 대륙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스러져간 많은 민족들과 사건들 그리고 전쟁들을 유럽 역사에 생소한 사람이 쫓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각 장의 앞 뒤에서 기본 지식을 제공하고 요약을 제공하는 현대의 친절한 책들에 익숙한 탓일 지도 모르겠다. 좀더 많은 보조 자료와 기본 지식들이 추가로 제공되었더라면 유럽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도 역사 속의 장면들에 더욱 흠뻑 빠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뽀나스 :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첨부합니다. 옛 추억을 떠올리고 싶은 올드 팬과 아직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뉴 팬에게 모두 권해드립니다. 그러나 읽고 나면 왜 그토록 문제가 되었었는지 의아해질지도 모릅니다. 80년의 시간차를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삭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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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28 23:49:50 *.72.153.12
인용부분을 읽는 데,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자는 '떨림'이라고 표현했는데... 저자는 그런 면의 재능은 탁월한 것 같습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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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31 09:42:58 *.249.167.156
다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오윤의 글과 같이 읽어보았는데,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그 떨림을 느낀 부분이 조금 다른 것이 흥미있네요. 종윤이 형은 세부적이고 생생한 묘사의 장면에, 오윤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한 마디에 좀 더 안테나를 세우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로렌스의 말처럼 우린 같은 뿌리와 줄기에서 나왔지만, 서로 다른 꽃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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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6.01 11:15:58 *.227.22.57
정화님~ 매번 읽어보고 댓글 남겨줘서 너무 고맙네요. (난 잘 못그러고 있는데...) 중간중간 '꿈틀'거리는 좋은 글들이 많은 책이더라구요. 나중에 맘 편히 주~욱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도윤~ 그러게. 느낀 것도 다르고 초점도 다르고... 달라서 좋아. 같으면 재미가 없잖아. 쓰고 보니 중요한 것들이 많이 빠졌네. 로렌스는 영국 사람이면서도 정작 영국편은 삭제된 이야기나 에필로그가 빠지게 된 것에 대한 생각들을 좀 했었는데, 급하게 마무리 지어 버렸네. 그걸 제대로 논할 자신이 없기도 했고... 낼 보세~ 짝꿍한데 잘 얘기하고 나오라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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