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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4일 04시 06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저서: 가자, 아메리카로! 비봉출판사(2001) 박정원 번역
저자: 리오 휴버만 (1903~1968)

미국 뉴저지 Newark의 노동자 지식인 중류계급 가정에서 출생, 형제가 11명이었지만 그가 태어나기 전에 6명은 사망했다고 한다. 고교까지는 고향에서 다니며 여름방학이면 풍부한 산업현장에서의 경험을 가지면서 18세때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1925년 고교동창이던 Gertrude Heller와 결혼, 신혼 여행 때 히치하이크를 하며대륙횡단을 했다고 한다. 뉴저지에서 태어나 자란 후비(Huby)는1926년 뉴욕대학을 나왔고 1933-1934년 영국에서 공부했으며 1937년 뉴욕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가자, 아메리카로! We, the People(1932)는 그가 29살 때 출판된 대중적인 미국 역사책이다. 이 책이 출판되자마자 대성공을 거두었고, 1940년 성인용으로 개정되어 영국에서 재출판 되었다. 그리고 1947년 미국에서 다시 출판되어 세계 29개어로 번역되었으며 이번 비봉출판사(2001) 책은 1947년도 판이다.

그 외의 그의 저서로 “사람의 세속적인 재화(Man’s Worldly Goods)’(1936)라는 일반 경제사 책이 있으며 ‘노동 스파이의 부정한 거래(The Labor Spy Racket)’(1937)와 ‘위대한 버스 파업(The Great Bus Strike)’(1941), “쿠바 혁명의 해부 Cuba Anatomy of Revolution”(1968)(폴 스위지와 공저)등이 있다.

휴버만은 콜롬비아대학 사범대에 설치된 실험적 학과인 뉴칼리지의 사회과학과장을 1938-1939년 지냈고 1940-1941년에는 자유주의 신문 ‘피엠(PM)’의 노동 담당 편집자였으며, 1941-1942년에는 ‘유에스 위크(U.S. Week)’의 칼럼니스트였으며, 1942-1945년에는 전국해운노조의 대외관계 및 교육국장이었다. 또1945-1946년에는 레이널 앤드 히치콕(Reynal and Hitchcock) 출판사의 실험적 팜플렛 담당 편집자를 맡았다.

1949년Paul Sweezy와 함께Monthly Review를 설립한다. 발기인이며 대중활동가이며 정치평론가였던 후버만은 파리에서 심장마비로 숨질 때까지 그의 상당한 에너지를 먼슬리 리뷰에 쏟았다.

후버만과 폴 스위지의 배경은 다음과 같이 달랐지만 두 사람이 Monthly Review에 쏟아 부었던 열정은 다르지 않았다. 앞사람은 뉴욕 좌파가 배경이고, 뒷사람은 뉴잉글랜드의 고학력이 배경이다. 앞은 중하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고 뒷사람은 상대적으로 특권층에 해당한다. 하나는 유태교인이고 다른 이는 개신교다. 그래도 둘은 대공황이 깊어갈 때 마르크스주의자가 됐다. 나치가 독일에서 권력을 잡은 직후다. 둘은 모두 런던경제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공부했다. 또 둘 다 편집인인 동시에 집필자였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기 직전, 둘이 만나 친구가 됐다. 전쟁 동안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은 다시 가까워졌으며 새로운 종류의 사회주의자 잡지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스위지 보다7살이 많은 리오 후버만(1903-1968)의 경력은 두 사람이 먼슬리 리뷰에 불어넣은 지적 경험과 정치적 경험의 깊이를 보여준다.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들]

불결한 물, 부패한 음식, 부족한 식량, 극도의 더위, 극도의 추위, 인디언들에 의한 학살, 이것이 초기 정착민들이 흔히 처해있던 환경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버텼다. 그리고 다른 정착민들이 들어왔다. 점점 더 많은 정착단지가 들어오고 더 많은 이민들이 도착하면서 그들은 황야로부터 한 나라를 조각해 내고 있었다. 41p

잎담배! 이것이 남부 식민지 중 가장 오랜 버지니아의 생활의 숨결이었다. 사람들은 잎담배로 말하고 거래했다…..그것은 마술을 지닌 말이었다…그것은 남부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45p

남부의 사회계층에서 흑인의 위치는 최하위계층이었으므로 더 높은 신분에 이르고자 하는 백인은 흑인들이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됐다. 그렇게 되어 대규모의 플랜테이션 농장은 소규모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삼켜버렸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신분은 두 개의 극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백인과 흑인-주인과 노예였다. 48p

사략선에는 자극과 모험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많은 수확이 있었으므로 대담한 선장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사략선의 행각을 계속했다. 그런 식으로 사략선은 해적선으로 변모해갔다. 중부 식민지와 뉴잉글랜드의 많은
식민지 재벌들은 사략선, 해적선으로 둔갑한 상선들로부터 비롯되었다. 60p

부자들의 지배권에 대해 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나? 투표권을 갖고 있던 소농들이 이따금씩 도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짜 도전은 변경에서 왔다. 변경 개척자들은 정책 결정에 대한 발언권을 요구했다. 그들은 법을 만드는 데 그들 자신이 참여할 권리를 요구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미국적 사고방식은 변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67p

영국은 영국을 위해 식민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반면, 식민지는 식민지를 위해 식민지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85p

혁명이란 말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 중의 하나는 “변화”이다. 미국 혁명은 미국인들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는 구시대의 유럽 국가들에게는 이후 수 십 년 동안 오지 않았던 것이며 또한 미국으로 하여금 “자유 국가”라는 평판을 갖게 한 것이다. 120p

“뭔가 일어나기를” 고대하는 활력과 패기에 넘치는 젊은이들이 모든 것들이 그저 그대로이고 아무런 흥미거리도, 아무런 변화도 없는 고향 마을의 생활과는 대조적인, 인디언과 야생동물과 총 싸움이, 위험과 모험이 있는 변경의 생활을 알았을 때, 떠난다는 것에 대해 재고해 볼 겨를조차 없었을 것이다. 134p

한 장소에 도착하여 그곳에 정착했다고 해서 그 자리에 영구적으로 머무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천만에! 더 서쪽으로 가면 좋은 땅이 있다는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곧바로 이동할 태세를 항상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이동하다가 정착하고 나중에 온 사람에게 땅을 팔고 그리고는 다시 이동했다. 이동한다는 것은 그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천성이었다. 142p

그들은 조금씩 조금씩 황야를 변형시켜 갔다. 그러나 그 사이에 그들 자신도 변형되어갔다. 그들은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우리가 미국인의 전형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변경 생활의 결과라 할 수 있다 151p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발명가가 된다. 동시에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개척자는 다방면의 기술자가 되었다. 그가 적응해야 했던 상황은 보통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그런 상황에 적응했고 따라서 이제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다. 153p

미시시피계곡이 정착민들로 채워지게 되었을 무렵 미시시피 강과 그 지류는 밀가루, 곡물, 돼지고기, 위스키 등을 시장으로 실어 나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오하이오와 미시시피 지역에서는 온갖 배들이 물건을 싣고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화물선들은 미시시피 강어귀의 뉴얼리언즈로 강을 타고 내려가곤 했다. 158p

1817년 뉴욕주는 허드슨 강의 알바니와 에리 운하의 건설에 착수했다. 8년 만에 운하는 준공되었다. 이로써 오하이오 계곡의 상품이 버펄로에서 알바니까지 수송되어 그곳에서 허드슨 강을 타고 뉴욕시까지 갈 수 있었다. 드디어 서부와 동부를 잇는 직접적이고 값싼 길이 열리게 되었다. 171p

사냥꾼들과 덫사냥꾼들..그들은 길을 찾아내는 사람이었고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거칠고 위험했으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워 알고 있었다. 그들은 힘들고 외로운 생활을 사랑할 줄 알았다. 문명이 제공하는 생활 방식을 내던지고 인디언의 차림새와 관습과 태도를 닮으려 했다. 말과 짐 싣는 가축 두 마리, 총과 탄약, 덫과 칼, 커피포트, 프라이 팬, 담요, 알코올과 잎담배, 이것만 있으면 강인한 덫 사냥꾼들은 산에서1년간 생활할 수 있었다. 183p

대평원으로의 이동은 계속되었다. 1890년 최초로 대서양과 태평양이 각 주(州)로 채워져 연결되었다. 변경의 종말이 온 것이다. 201p

사람이란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는 큰 변화를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 기분에 맞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면 항상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 204p

“소모기(梳毛機)와 조방기(粗紡機)와 방적기(紡績機) 모두 워낙 간단히 조작할 수 있어서 공장에서 필요한 성인(成人)은 감독과 수선공뿐이었다. 9명의 어린이들로 시작한(1791년) 앨미앤드 브라운 공장은 1801년4살에서 10살까지의 어린이 100명이 상을 고용하는 공장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어린이들만 남겨둘 수는 없었으므로 기계와 아이들을 모두 한 방으로 밀어 넣고 그들을 감독하는 어른을 한 명 두었다.”

아이들은 당시 노동력 부족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한 방편이 되었다. 209p

1860년까지는 면화는 남부의 왕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구상의 어느 곳도 면화를 재배하는 데 남부의 기후만큼 알맞은 곳은 없었다. 면화재배에는 더운 기후가 필요한 데 남부는 여름에 낮과 밤이 모두 더운, 긴 성장기를 갖고 있었다. 추수 때인 가을이면 건조한 날씨를 띠었고 남부의 짧고 몹시 추운 겨울은 해충들을 박멸시켰다. 완전무결한 기후, 비옥한 토양, 적절한 시기의 풍부한 강우량, 그 모든 것이 이상적이었다. 220p

300만~400만의 인간들을 심각한 저항에 부딪치지 않고 노예로 부리는 것이 가능했을까? 남부의 일부 지역에서는 백인보다 흑인이 더 많았다. 어떤 곳은 흑인이 90%에 백인은 10%밖에 안 되는 곳도 있었다. 수 백 명의 흑인과 한 사람의 감독, 그리고 한 두 명의 백인 조수 외에는 몇 마일 밖까지 백인을 볼 수 없었던 플랜테이션들도 있었다. 흑인 노예들이 백인 주인들에게 반항하여 들고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 가능했을까? 아니 가능하지 않았다. 243p

노예제도들의 보존에 교회가 공헌한 바는 결코 간과될 수 없다. 그렇게 노예들이 마음 속으로 그의 주인을 신과 동일시하게 했던 것은 커다란 성과였다. 245p

북부의 노예폐지론자가 노예 제도에서 보았던 그 참담함이 남부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백인이 주인이고 흑인은 노예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태어나고 그 안에서 성장했다. 그런 관념은 습관처럼 깊숙이 뿌리내려 있었다. 그들에게는 백인과 흑인이 주종관계로 살아가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게다가 흑인들은 그들의 재산이었다. 재산 중에서도 값비싼 재산이었다. 252p

산업혁명은 1865년 이전에도 이미 인류의 생활방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변화들이 경이적인 속도로 일어나게 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로부터 현재까지의 기간 동안이다. 일찍이 1902년에 “미 합중국 공업위원회”는 “1865년 이후 이루어진 변화와 진보는 여러 면에서 그 이전의 인류역사의 전 과정에 걸쳐서 있었던 모든 것보다 크다”고 언명했다. 265p

대륙을 횡단하는 최초의 열차가 1869년 완공되면서 짐수레, 역마차, 조랑말 속달 우편의 시대는 끝났다. 271p

최초의 대륙횡단 열차가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횡단 철도들이 가설되었다. 1884년에 이르러서는 미시시피와 태평양을 연결하고 여객들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철도노선이 4개나 되었다. 273p

각 주(州) 간에는 교역을 방해하는 어떠한 장벽도 없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었다. 유럽은 언어와 관습이 다른 여러 나라들로 분리돼 있어서 상품의 자연스러운 유통이 쉽지 않았다. 301p

어느 경우에 해당되건 간에 셔먼 트러스트 방지법은 대규모 기업결합의 형성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실은 오늘날의 대 회사 중 대부분을 포함해서 많은 대기업들이 그 법이 제정된 직후인 1897년부터 1904년까지의 사이에 설립되었다. 315p

노동자계급의 조직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성장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협동과 상호교류라는 물리적 수단뿐만 아니라 계급 및 계급의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조합의 결성을 위해 분투하고 있던 노동자 계급은 부를 쌓아감과 더불어 비정(非情)을 더해가고 있던 자본가 계급과 맞서야 했다.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자본의 반격은 맹렬한 것이었다. 322p

플맨 파업은 그들이 종전에 사용하긴 했었으나 정작 날카롭게 날을 세우지는 않았던 무기의 효력을 새삼 그들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이제 그들은 그 무기에 눈부시게 휘황한 날을 세웠다. 338p

트러스트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던 법이 법정의 해석에 의해서 노동조합의 성장을 막기 위해 사용되고 있음이 점차적으로 명백해졌다. 고용주들의 단합문데가 재판에 올려졌을 때 대심원은 “이성(理性)의 법칙”을 적용했다. 그 결과 고용주들은 무죄로 풀려나갔다. 그리고 근로자의 단합문제가 재판에 올려졌을 때, 대심원은 “ 비이성의 법칙”을 적용했고 그 결과 근로자는 벌을 받았다. 340p

문제: 흑인을 돕기 위한 법이 어떻게 기업을 돕는 법이 될 수 있는가? 답: 대심원에 의해 그렇게 해석될 때. 343p

미국 자본가들은 그들의 수중에 잉여 생산물만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수중에는 잉여자본도 있었다…………..미국자본은 사방으로 먼 땅, 또는 가까운 땅 어디에든 침투했다. 지 1차 세계대전 전, 이 같은 자본의 수출은 상당한 정도에 이르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그것은 이제껏 볼 수 없던 규모로 크게 발전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지배적인 자본주의 국가로 부상한 시기였다. 352p

자본에는 분명히 국경이 없었다. 자본은 어디에든 갔다. 미국자본의 외국 침입은 평화적으로 행해진 때도 있었으나 간혹 심각한 분쟁을 초래하기도 했다. 때때로 미국자본의 뒤를 이어 해병대가 따라갔다.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357p

불황이 미국에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표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통계다. 합계와 평균은 가장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스런 삶을 유지하고 있었는가를 완전히 숨긴다는 점에서 그것만으로는 정확한 파악을 기대하기에 으레 부족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 해도 몇 가지 중요한 통계를 훑어보면 대략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367p

1929년의 공황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원인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생산제도였다……….미국이 앓고 있던 질병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최고도로 발전한 최첨단의 자본주의였다. 373p

지배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금융조작이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持株會社)가 마구 설립되었다. 378p

부채구호는 빈궁한 농민들에게뿐만 아니라 대부금 회수가 여의치 않아 걱정하고 있던 채권자들—주로 보험회사와 은행—에게도 역시 반가운 소식이었다……부채구호는 이와 같이 채권자 구호를 겸한 것이었다. 이자율은 높지만 실제적으로 무가치한 저당 증권을 이자율은 낮으나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으로 교환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396p

국민 산업 부흥법은 아동 노동을 폐지했다. 성인 남녀를 위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국민 산업 부흥법은 또한 최저임금과 최고 근로시간을 제정했다. 그리고 국민 산업 부흥법은 근로자가 조합을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호했다. 410p

뉴딜 관계자들은 실업을 비상사태로 파악했다. 따라서 그들은 공공지출계획을 비상계획으로 간주했다. 그것이 실수였다. 이윤제도의 붕괴는 많은 미국인들이 영구히 실업 상태에 있게 될 운명임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진실로 요구되었던 것은 거대한 규모의 영구적인 공공지출 계획에 즉각적으로 착수하는 것이었다. 국가의 인적 및 물적 자원을 완전히 이용하게 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윤제도의 폐지를 위한 영구적인 계획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뉴딜 정책이 했던 것은 실업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향으로 불완전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경제적인 혁명이 아니었다. 418p

어떠한 계획 사업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점은 세 가지이다. 우리가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 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425p

임금 시간법과 와그너 법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2차에 걸친 재임기간 동안 민중이 그를 지지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 중의 일부였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단순히 자본주의가 제대로 운행되게 하는 것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운행되기를 원했다. 452p

민중은 뉴딜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그들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492p

[내가 저자라면]

보통 역사책이라고 하면 연도에서 시대별 상황의 특징,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그 주변상황 등이 겹쳐 까다롭고 외워야 할 것이 많다는 선입관이 있는데 이 책은 정말 단언하지만 적어도 반 권 정도의 분량까지는 그냥 술술 읽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재밌다. 최소 50년 전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위화감을 못 느낄 정도이면 역자가 번역을 아주 잘 했거나 아니면 이 휴버만이라는 저자가 탁월하게 글을 잘 쓰는 이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가 제시하는 예문들이나 당시의 편지, 신문들의 인용은 그 시절 신대륙이라 불리던 영생의 땅을 찾아 온 많은 사람들의 격렬한 삶과 그에 대한 고투의 이야기들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덕택에 미국이란 나라의 진정한 심층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으며 아울러 원래 그 곳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과, 본의 아니게 미국에서의 삶을 강요당한 아프리카 흑인들의 비애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 보았던 미 서부영화의 추억들과 엉클 톰스 캐빈이나 톰 소여의 모험 같은 소설들이 떠 오르며 그 때의 느낌들과 이 책을 읽으면서 연결되는 그 점들이 흥미롭기도 했다.

역시 이 책에서도 지도 찾아 삼 만리의 여행은 계속되었다. 처음 정착했던 곳에서 점점 서부로의 이동. 그리고 미시시피강에서 잠깐 멈칫하다간 다시 서부로 서부로……아메리카 대륙횡단 열차부분에서는 줄을 그어보기도 하다가 언젠가 횡단열차를 한 번 타 봐야지 하며 마지막으로 남겨둔 여행지 캐러비안 베이의 크루즈 여행도 살짝 꿈꿔본다. 서인도제도의 섬들,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역사에서는 그렇게들 언급되는지. 일단 가보고 나서 이야기 해야겠다.

중간에 실린 지도들은 간결했고 손으로 그린 지도도 아주 알기 쉽고 친근감 있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뿐더러 숫자나 표등의 제시는 설득력이 좋았다는 느낌이다.
이 책에서도 그렇지만 “일의 발견”에서도 그랬듯이 그 시대에는 어린 아이들이 상당히 일을 많이 한 것 같아 놀라웠다. 의무 교육을 만든 이유 중의 하나가 성인이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소모기(梳毛機)와 조방기(粗紡機)와 방적기(紡績機) 모두 워낙 간단히 조작할 수 있어서 공장에서 필요한 성인(成人)은 감독과 수선공뿐이었다. 9명의 어린이들로 시작한(1791년) 앨미앤드 브라운 공장은 1801년4살에서 10살까지의 어린이 100명이 상을 고용하는 공장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어린이들만 남겨둘 수는 없었으므로 기계와 아이들을 모두 한 방으로 밀어 넣고 그들을 감독하는 어른을 한 명 두었다.” 아이들은 당시 노동력 부족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한 방편이 되었다. 209p

뉴딜정책은 요 얼마 전에도 한국상황을 빗대어 언론에서 언급한 것 같은데 2부로 넘어가서 서술되는 설명은 마치 요즘 이야기 같아 우스울 정도였다. 자본가가 승리하는 구조, 파업, 기업 지배 집중 등 유사한 이야기들이 많다.
1부와 달리 2부에서는 논리에 대해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실들이 빼곡하게 서술되어 있다. 어떤 면에서는 좀 이건 넘어가 줬으면 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나의 개인적 취향과는 별도로 그러한 서술방식이야말로 상대방을 군소리 없이 납득시키는 방법이란 생각도 든다. 2부에서는 그런 면에서 1부에 비해 좀 숨이 가빴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서 겉모습은 거의 비슷한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의 차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그의 뉴딜정책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공부가 많이 되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나 아직 내게는 단편에 불과하니 어느 날 이런 생각의 점들이 연결될 즈음 다시 리오 휴버만을 떠올리리라 그렇게 나의 서두는 마음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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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4 16:21:45 *.99.241.60
청문회에 가서 사상검증을 받고
왕성한 학자로서의 활동과 책을 펴낸다는 사실이
자유의 나라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아무것도 아닌 내용인데 독재를 위하여 금지도서, 금지가요을
만들어놓은 우리의 역사가 좀 슬프더군요.
쨍하고 해뜰날도 금지가요였던 것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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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5.17 18:35:43 *.48.43.83
어디 슬픈게 그것뿐이겠어요? 금지곡에 금지서적에 금지영화에..ㅎㅎ
국민수준 참 많이 무시당했지요.
며칠 책하고 거리를 두니 살 것같습니다. 그런데 월화수목술술술 되는 경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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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담솔
2007.05.18 00:06:04 *.248.28.179
은남님~오랜만이죠? ^^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자주 못들어 올거 같아요. 죄송해요. 늘 맘속으로 응원할께요~ 돌아오는 그날까지 좋은 글 많이 쓰고 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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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5.18 16:43:13 *.48.34.49
그러세요, 시험이시면 열심히 하셔야지요. 저도 해담솔님의 삶 응원할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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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 가자, 아메리카로! 리오 휴버만 [5] [2] 香山 신종윤 2007.05.14 2425
840 [독서10]가자 아메리카로/Leo Huberman [3] [2] 素田최영훈 2007.05.14 2125
839 (10) '가자, 아메리카로!'를 읽고 [7] 時田 김도윤 2007.05.14 3775
838 [가자, 아메리카로!] 미국사의 경영학적 재해석 [2] 송창용 2007.05.15 2058
837 가자, 아메리카로(10) [3] 최정희 2007.05.14 2133
836 [10]가자, 아메리카로! (대기업의 전설) [4] [2] 써니 2007.05.14 2119
» 가자, 아메리카로!/리오 휴버만 [4] [2] 香仁 이은남 2007.05.14 2191
834 (10) 가자, 아메리카로! - 리오 휴버만 [2] 박승오 2007.05.14 1996
833 가자, 아메리카로! / Leo Huberman [1] 好瀞 김민선 2007.05.13 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