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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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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4일 14시 09분 등록

들어가며...

대학시절부터, ‘지식인’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홍세화, 김규항, 진중권, 강준만, 노암 촘스키 등의 책을 한두 권씩 읽었는데, 그 중에 강준만 교수의 글이 나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주었다. 9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강준만 교수는 경향신문에서 조사한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지식인으로 백낙청, 리영희, 최장집에 이어 4위로 꼽혔다. 앞선 세 분의 원로 지식인들에 비해 강준만 교수(1956년생)는 젊다. 또한 90년대부터 활약하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강 교수는 분명 혜성같이 등장했다. 후마니타스 출판사의 박상훈 주간은 그의 약진을 두고 “강교수가 남긴 사회문화적 영향은 매우 컸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다작의 교양도서 작가로서의 현재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차치하고라도 민주화 이후 기성체제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날카로운 시각과 직설적 논쟁화법으로 비판해 ‘강준만식 글쓰기’ 양식을 만들었다.


실명을 거론한 전방위적 비판이 가득한 그의 책들과 월간지 <인물과 사상> 을 통하여 나는 비판적 지성이 어떤 것인지 눈을 뜨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여 실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 몽롱한 의식의 수준이지만, 강준만은 언제나 나에게 ‘찬물 한 바가지’와 같은 존재였다. 나의 몽롱한 의식을 깨우는 찬 물 한 바가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글도 나에게 참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리영희 前 한양대 교수인데, 왜 뜬금없이 홍세화, 강준만 교수를 소개했는가? 리영희 교수가 (진실의 빛을 밝히기 위한 글을 쓰는) 지식인들의 사상적 스승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홍세화는 SBS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에서 리영희를 한 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요청에 대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시해 주신 분. 한마디로 표현하면 사상적 스승”이라고 말했다.

 

강준만 교수는 ‘리영희’라는 키워드로 한국현대사를 정리한 한 권의 책을 썼다. 강준만은 말한다. “리영희 교수는 순수 그 자체다.” 강준만이 지식인들에게 들이대는 칼날은 날카롭다. 그의 날카로움 앞에서도 아름답고 순수하게 빛나는 지성 리영희는 누구인가?

지식인 리영희(李泳禧)

사실, 대학 시절에 리영희의 이름을 듣기는 했다.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랐지만, ‘통혁당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신영복, 유럽 여행 갔다가 ‘남민전 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20년을 파리에서 이방인 생활을 한 홍세화, 그리고 나에게 최고의 데이터수집가로 보였던 강준만과, 리영희 교수는 같은 폴더에 정리해 둔 지식이었다. 폴더의 이름은 ‘지식인’이다. 나에게 지식인이라는 단어는 사회학적인 의미였다. 경영학 혹은 경제학에서는 지식인을 변화의 흐름 읽고 미래비전 제시하는 자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이란, 김수영 시인이 표현한, “지구와 나라의 문제를 마치 자신의 문제처럼 여기며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정의가 마음에 들었고, 리영희를 이런 ’지식인’ 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2007, 리영희에 대해 몇 가지를 조사하며 새롭게 깨달은 것은 리영희는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지식인들의 ‘스승’으로 분류해야 할 사람이었다.

메트르 드 팡세 VS 의식화의 원흉


경기도 산본에 살고 있는 리영희의 고층아파트 현관에는 특이하게도 ‘李泳禧’라고 쓰여진 나무 문패가 달려 있다. 집으로 찾아간 한수진 기자가 아파트에서 나무 문패를 본 것은 처음이라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리영희 교수의 답변이다.
“군대에서의 7, 형무소 3년 동안 있으면서 인간이 번호로 불리는 게 제일 싫었어. 군대에서의 비인간화, 죄수로서의 비인간화... 이게 싫었어. 아파트도 번호로 불리는 집에 살고 싶지 않은 거지.


이 짧은 답변에서 그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6
25를 최전방에서 보내며 전쟁의 참혹함을 몸으로 체험한 이후에도 리영희의 생애는 말 그대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언론사에서의 두 번의 파직, 대학교에서의 두 번의 해직, 다섯 번의 옥고를 치르며 3년여를 감옥에서 보냈던 그다. 정말이지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강준만의 말처럼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따라왔던 것이다.

모진 시련이 닥치면 변절하기 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평화와 안정의 시대에서는 진정한 지식인과 변절할 지식인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정의가 권력에 굴복하고, 진실을 발설하면 보복이 가해지는 상황이 되면 앎과 실천의 괴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런 시절에도 말과 글로써 강직함을 지켜나가는 것이 어렵다. 상황이 닥치기 전에 어려움을 가늠하는 것과 실제의 상황에서 실천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언론인, 문인, 사학자,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 명성을 쌓아 올린 최남선은 1929년 가을부터 변절의 길을 걷는다. 그해 10월에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의 총탁으로 임명되고, 12월에는 조선사편수회 위원이 된 후에는 노골적인 친일 행각을 일삼았다고 한다. 1929년은 3
1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민족투쟁인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해였다.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이후 일제의 통제와 탄압이 한층 가중되었고, 그 즈음에 최남선이 변절한 것이다.

리영희는 끌까지 변절하지 않은 지식인이다. 그는 언제나 진실로부터 시작해서 진실로 마쳤다. 진실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세월 중에는 숨막힐 듯이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었다고, 회고록인 『대화』에 썼다. 그 구절을 두고 한수진 아나운서가 이렇게 물었다. “타협을 하고 살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타협이라... 나는 다른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거니까. 나에게는 ‘진실인가, 아닌가?’라는 질문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관계에서는 서로 양보하고 부둥켜안고 할 수 있지만, 진실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 둘 밖에 없어.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의 강직한 성품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만수는 『리영희:살아있는 신화』라는 성실한 리영희 평전을 썼는데, 그 책의 맺음말에 이렇게 썼다. “리영희는 실천과 공부를 통해 한평생을 변절하지 않고 초지일관하여 광신적인 냉전
반공극우독재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웠다.

김만수는 ‘실천과 공부’를 리영희가 사용한 계몽의 수단으로 보았다. 리영희의 ‘실천’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살펴 본 그의 강직하고 타협하지 않는 성품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이제는 그가 어떻게 이성을 연마해 왔는지 살펴보자. 리영희는 어떻게 공부해 왔을까?


리영희는 많은 공부를 했다. 리영희는 어릴 적부터 공부를 썩 잘 한 것으로 보인다. 리영희는 ‘대관초등학교 개교 이래의 몇 천재 중의 하나’였고, 당시엔 알아주던 명문 ‘경성공립공업학교’에 진학했다. 리영희의 진학은 면의 큰 화젯거리가 되어 축제를 벌였을 정도였다고 한다. “리영희 교수님은 개인 생활에서도 학구적인 것과 기자적인 취재욕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대화』의 대담자였던 임헌영의 말이다.

강준만은 『리영희 한국현대사의 길잡이』에서 짧게 리영희의 대학 시절의 학습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을 썼다. “언어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던 그는 대학 시절에 탄탄한 영어 실력을 쌓은 데다 많은 독서를 통해 인문사회과학도의 자질을 갖추었다.(p.29) 독서를 통한 지성 훈련은 지성인에게는 필수적인 능력이다.

 

리영희는 왜 그렇게 공부에 열심을 내었을까 그는 안철수 의장과 비슷한 말을 한다.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단다.
“내가 본래 다른 재주가 없어. 골프, 화투, 바둑, 아무 것도 할 줄을 몰라. 공부가 적고 머리가 남보다 못한데 무지하게 공부하고 시간을 아끼고 분초를 아껴서 하지 않으면 따라가지 못하니까. 불어도 영어만큼은 못하지만 또 중국어도 일어만큼은 못하지만, 자료 읽을 만큼은 했거든. 그러니까 구하는 자료의 폭은 넓어지지." 극비 문서들을 구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리영희는 미국 CIA의 첩자가 아닌가? 했다는데, 와싱턴포스트의 통신원이었던 까닭에 그런 것을 협조해 주어 (내게는) 소스가 많았어.
이 말 속에서 강준만이 말한 ’언어에 탁월한 재능‘이라는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그의 곧은 성품과 예리한 지성이 날이 갈수록 더욱 굳건하고 첨예해져서 결국 그는 많은 지식인들에게 사상의 은사가 된다. ‘사상의 은사’라는 말은 분명 리영희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키워드이다.

1980 5, 광주 시민들을 전두환 정권이 대량 학살했던 이른바 ‘광주사태’로 내가 투옥됐을 때, <르 몽드> 동경 특파원 퐁스 기자가 한국사태 긴급취재를 와서 <르 몽드>의 파리발 첫 보도에 나를 ‘메트르 드 팡세’(사상의 큰 은사)라고 썼어요. 한국 지식인과 대학생의 사상의 은사인 리영희가 잡혀갔다고요. (『대화』에서)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상의 은사’에 정반대되는 평가로 리영희를 ‘의식화의 원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상반되는 평가에 내려진 배경에 대해서는 강준만 교수가 다음과 같이 잘 정리해 두었다.

“멀쩡하던 대학생들이 리영희의 책만 읽으면 충격을 받고 이상하게 변해갔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공부에만 몰두하겠다던 ‘청운의 꿈’을 내던지고 진실과 인권과 상식의 가치에 입각해 이 사회와 나라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가족의 안전에 개의치 않고 ‘빅 브라더’가 해선 안된다고 규정한 말과 행동을 악착같이 하려고 들었다. 학생들의 그런 변화를 가리켜 ‘의식화’라고 했다. 젊은 학생들이 그런 자세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 사람들은 리영희를 ‘의식화의 은인’이라 불렀고, 병영체제 수호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리영희를 ‘의식화의 원흉’으로 보았다. (『리영희 한국현대사의 길잡이』p.6)

리영희, 한국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는 우리 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던 1929년 태어났다. 그리고 해방의 기쁨을 잠시 맛보고 1948년 해양해 학생으로 승선 실습을 하고 있던 리영희는 여순사건의 참혹한 현장을 보게 된다. 해방 후 나라의 법이 간데없고, 권력을 등에 업은 정치깡패 조직의 행패가 난무하던 시절을 고스란히 겪는다. 리영희에게 1950년대는 전쟁과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로 살아가는 시기다. 전쟁 중에서도 ‘국민방위군 사건’과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등은 리영희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준 사건이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뼈저리게 경험한 이들은 전쟁의 비참함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아는 것이다. 리영희는 이것을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 작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리영희는 평화주의자이다.)
“나는 6.25 전쟁을 최전방에서 경험했는데,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처참하고 비참한 것인지 모른다. 빌딩이 쓰러지는 것보다도 인간의 처참한 비인간화는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들만 안다. 나는 통일을 굉장히 중요하시는 것이지만, 통일조차도 전쟁에 의한 통일은 반대하는 사람이야. - <한수진의 선데이클릭>에서

그 이후의 세월에서도 그는 한국 현대사를 현장에서 몸으로 겪는다. 4
19 혁명의 최전선에서 뛰었으며, 516 쿠데타로 인해 당시 많은 사람들처럼 혼란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는 1990년대까지 한국의 현대사와 함께 자신의 삶을 살았다. 강준만은 이러한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리영희라는 창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큰 줄기를 보게 하는 책 『리영희 한국현대사의 길잡이』를 썼다. 머리말에 자신의 작업에 대한 설명을 해 두었다.

“그건 리영희만큼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큰 사건들을 그 누구보다 더 직접적으로 광범위하고 치열하게 겪은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의 글은 곧 실천이었기에 그는 누구보다 더 넓은 행동 반경에서 살아왔다. 리영희의 삶이 곧 한국 현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리영희 한국현대사의 길잡이』p.6)

리영희라는 창은 맑고 깨끗했다. 창이 깨끗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법이다. 강준만 교수는 다음과 같이 리영희라는 창의 효용성을 설명했다.

“리영희는 한국 현대사에 최상급의 증언과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왜 ‘최상급’인가? 투명하기 때문이다. ‘아사리판’에 어느 정도 타협했거나 그 판을 멀리서 구경만 했던 사람들은 결코 감지할 수 없거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리영희는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은 역사학 교수가 아니지만 나는 그의 ‘리영희=한국현대사의 길잡이’ 라는 의견에 신뢰를 보낸다. 강준만은 성실하다. 그의 자료 수집은 능력도 출중하겠지만, 성실함에 있어서도 대단하다. 또한 강준만은 강직하다.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만큼 자신의 행동에도 엄격하게 대한다. 어느 날,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실하고 강직한 강준만 교수가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총 18권의 『한국현대사 산책』을 펴내면서, 아마도 ‘리영희’라는 이름이 자주 눈에 밟혔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그렇게 하여 나온 것이 ‘리영희=한국현대사의 길잡이’ 라는 그의 주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의 삶에서 노자의 삶으로

리영희는 2000 11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산본 자택에서 투병 생활에 들어갔다. 그는 오른손이 떨리어 더 이상 글을 편하게 쓸 수가 없다. 그의 최근작 『대화』는 임헌영과의 대담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 책을 마지막으로 하여 더 이상 그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은 더 안 쓰실 거냐는 질문에 “쓸 만큼 썼고, 싫은 소리도 많이 했고, 한 사회에 영향도 많이 줬으니 더 이상 하려고 한다면 그건 욕심이지.”라고 답하는 말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노인의 남모를 감회가 묻어난다. 그 속에는 자신의 지식인적 소임을 다하였다는 자아의식과 또 다른 소임을 향한 어떤 다짐인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 소임은 아마 가정에서의 못 다한 역할에 대한 소박한 꿈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리영희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뒷산을 산책한다고 한다. 그토록 아끼던 책도 도서관에 기증하고 TV나 신문도 애써 멀리하고 있다. 뇌출혈로 쓰러진 후에 그는 “앞으로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는 애써 알지도,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삶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지팡이를 짚고 다시 역사의 현장에 섰던 적이 있다. 강준만 교수는 리영희 교수의 글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텍스트임을 주장한다.
“리영희는 자신의 책들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나는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리영희가 원한 세상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의 책들은 계속 읽혀져야 한다. 그런 세상이 누구의 피와 땀 덕분에 오게 됐는지 그것도 알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점점 언론을 통해 세상에 할 말을 하기보다는 내면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할 말을 하며 살아갈 것으로 여겨진다. 경향신문 2004 1 26일자 인터뷰에서 요즘의 삶이 어떤지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공자의 삶에서 노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정치적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든가, 그와 관련한 상황 조성이라든가, 그런 걸 군자의 미덕으로 삼았던 논어적 삶을 떠나려 하는 것이죠. 난 이제 환자니까, 내면을 바라보면서 우주의 원리를 찾고, 그 원리 속에 일체화하는 노력을 하면서 살려고 해요. 지난 50년을 외향적으로 살았다면, 이제 내향적으로 살 수 밖에 없어요. 뇌기능도 많이 상실했어요. 나이도 너무 많고요.

그의 글은 우리의 지성을 흔들어 깨워 준 귀한 선물이었지만, 리영희의 피를 들끓게 할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 그는 더 이상 새로운 선물을 줄 것 같지는 않다. 리영희 선생의 글은 오랫동안 남겠지만, 리영희 교수는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왠지 그날이 나에게도 슬픈 날이 될 것 같다



■ 내가 저자라면..
- 21세기『전환 시대의 논리』를 찾아서


영남대 박홍규 교수는 그의 저서 『자유인 루쉰』에서 루쉰의 글을 이렇게 평가한다.
“나는 지난 30여 년간 그의 글을 보며 울고 웃었다. 글은 바로 이래야 한다. 글 속에는 강렬한 주제와 강직한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는 그에게서 글을 배워야 한다.”

루쉰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것이 강렬한 주제와 강직한 태도라면, 굳이 80년 전에 사망(1936년)한 우리 땅도 아닌 중국 대륙의 어느 지식인을 찾아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금 우리 땅에 살아 있는 신화, 리영희에게서 그 강렬함과 강직함을 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으며 그의 이성적 사유의 탁월함만을 맛보았다. 1970년대에 이 책을 읽었던 지식인들은 리영희의 지성뿐 만 아니라, 그의 용기에도 감탄했을 것이다. 강준만의 말처럼, “언로(言)가 폐쇄되고 사실과 진실의 발설엔 보복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글은 곧 실천, 그것도 무서운 실천“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한국사회가 얼마나 암울한지 알지 못하는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이들은 『전환 시대의 논리』를 읽고 김동춘이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고까지 표현한 감정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나 역시 70년대의 끝자락을 잡고 태어났기에 이 책의 지성사적 의미를 상상해가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김세균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책『전환시대의 논리』을 밤새워 읽었고, 그 후에도 읽고 또 읽었다. (중략) 그 책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지닌 상식물에 어떤 것을 보태어 ‘주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책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다.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상식을 버려라. 네가 진실로서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은 허위의식, 미신들이다. 그 허위의식, 그 미신들을 버려라. 그리고 그러한 허위의식, 그러한 미신들을 네 머릿속에 주입한 이 우상들의 세계의 본질을 꿰뚫는 새로운 눈으로써 이 세계를 다시 바라보라.’ 따라서 그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기쁨에 앞서 괴로움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와... 대단한 지성이다. 리영희 교수님이 얘기한 언론의 두 가지 유형은 내가 계속 생각해 오던 화두를 일갈에 해소하는 명쾌한 지적이었다. 냉전용어의 반지성성을 주장하는 그의 논리 또한 얼마나 탁월한가!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국제적 감각을 가졌으면서도, 거기서 오는 우월감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갖춘 보기 드문 지식인 것 같다. 하지만 김동춘, 혹은 김세균이 느꼈던 천지개벽의 감동까지는 아니다.“

내가, 보다 정확하게 70년대 후반에 출생한 이들이 감동을 느끼지 못하리라는 것을 리영희 교수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리영희는 김동춘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70~80년 대에 몇 십만 부가 나간 『전환시대의 논리』만 하더라도 지금의 30대 초반은 거의 모르다시피 하고, 또 잊혀지는 게 좋죠. 나는 나의 글과 책으로 ‘의식화’한 후학들과 후배들이 이제는 이 나라의 학문과 사상계에서 막강한 역량으로 자란 것으로 나와 내 책의 시대적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초반의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에게 『전환시대의 논리』와 같은 지성의 빛이 되어줄 책이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비화식으로 얘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발설하기에는 전혀 안전한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용기있게 진실을 밝혀주는 책 말이다.

90년대 후반, 나는 강준만의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를 충격을 받으며 읽었다. 그래서, 강준만의 책을 몇 권 더 샀다. <인물과 사상>도 여러 번 구입했다. 그가 원로학자들과 함께 한국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학자로 꼽혔던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를 공부해 보는 것도 무척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아! 5월의 주제는 ‘역사’인데, 엉뚱하게도 나는 ‘지식인’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이렇게 헤매고 있다. 윌 듀란트의 『역사 속의 영웅들』에서는 길을 잃지 않고 지나간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또 다시 ‘철학’을 잡고 헤매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 내 마음에 들어온 글 귀

1.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

[6] 언제나 그는 진실로부터 시작해서 진실에서 마쳤다.

[18] 역사는 한 단계의 투쟁이 끝나면 으레 ‘임금은 알몸이다’라고 폭로한 소년의 용기에 열중한 나머지, 힘없는 소년에게 그런 엄청난 임무를 떠맡기게 된 그 사회의 실태에 대해서는 눈이 미치질 않는다. 문제시해야 할 중요한 것은 그 영광(또는 해결)까지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인간적 타락과 사회적 암흑과 지적 후퇴가 강요되었느냐 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겠다.

[21] 위기에서 되살아날 수 있는 하나의 사회 내면적 자질에 관해서 프랑스 정치학자 또끄빌은 “문제는 법적 구조보다도 정치의 내면정신에 있다”고 말한다.

[24] 『뉴욕 타임스』의 용기는 반사적으로 우리 언론의 두 가지 유형을 연상시킨다. 하나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유형이고, 또 하나는 ‘이제는 비밀을 말할 수 있다’는 유형이다.
전자는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로 발표도 하지 못하고 있던 언론이나 지식인이 문제를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객관적 상황의 변동이 생기자, 말하지 않고 있던 비굴은 제쳐놓고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내세우는 유형이다. 지식인과 언론의 소임에 이처럼 모독적인 유형은 없다.

[25] 우리의 언론과 지식은 한마디로 반공 외의 딴 가치나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러한 지식과 사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가치가 없다. 어떤 개인의 지식이나 사상은 그 개인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사회 계발을 위해 반환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고집하지 않아도 좋다. 소크라테스처럼 자기의 지식과 사상을 부인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자세를 누구에게나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운명을 같이할 수 밖에 없는 한 사회의 대중이 오도된 사고방식이나 정세 판단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은 언론과 지식인의최고의 책임이자 의무다.

[26] 언론과 지식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갖고 있는 사상을 발표해야 하는 때는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다.

[27] 오늘의 사실을 오늘에 규명하지 않고 먼 훗날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비화나 읽을거리의 자료로 생각하는 한, 통치계급의 횡포는 계속되고 대중은 암흑을 더듬는 상태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30] 지성인의 최고 덕성은 인식과 실천을 결부시킨다는 것이다.

[31~32] ‘가장 진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이 가장 국가를 위할 줄 안다’는 기본원리는 공통으로 통한다. 진실은 비판을 낳는다. 어떤 사회도 어떤 정부도 비판의 여지없이 최선이거나 만능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수도록 민주제도는 진실-비판-개선의 끊임없는 과정을 걸어갈 수 있다.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체제나 정부는 분명 비판에 견딜 수 없는 체제와 정부다. 그러기에 비판을 봉쇄한다.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는 개선과 향상이 없고 그 결과는 더한층의 타락이며, 타락한 제도를 유지하려는 지배세력은 탄압에 호소하는 악순환 속에 침체할 수 밖에 없다.

[37] 『뉴욕 타임스』나 『뉴 리퍼블릭』 같은 지성인의 대변지들이 기정사실=현실=타당=필연성이라는 공식화를 꾸준히 거부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국민은 정부의 기만적 선전과 사관의 미숙 때문에, 정부가 꾸며나가는 기정사실화를 그대로 역사로 시인하는 편이었다.

[38] 집권세력과 어떤 권력집단, 예컨대 군부 같은 것이 국민을 구렁텅이로 끌고 가는 수법이 이 현실주의다. 오늘의 현실을 수정하지 않으면 내일의 현실이 우리를 구속할 것이라는 지성인들의 사관만이 이런 불행을 예방할 수 있다. 미국의 지성인들은 역사의 ‘현실’을 수락할 뿐 역사에 ‘작용’하려 하지 않았다.

[45] 인식은 관념을, 관념은 개념을, 그리고 그 개념을 담은 용어가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로 상대방에게 관념표상의 작용을 일으켜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상을 표현․전달하려는 용어가 그 사상의 내용이나 성격의 정확한 반영이 아닐 때에는 전달된 뜻이 더욱 왜곡․변형되거나 혼란이 생기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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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4 17:19:20 *.99.241.60
언젠가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서평을 보게 되어 기분이 좋다.

지식인은 나름대로 자기만의 사회를 보는 눈과
그것을 표출해내는 글이 생명인것 같다.

우리 연구원들도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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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14 22:50:46 *.72.153.12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네요.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는 과제를 하기 전까지 들어보지 못한 이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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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5 10:22:06 *.75.15.205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희석아! 나는 너를 네 애인에게 조차 빼앗기고 싶지 않아. 아마 우리 모두 그리고 사부님까지도 그러실 거라고 생각해. 네 사랑도 중요하지만 네 너의 조각도 중요해. 지금처럼 너의 조각 새기기를 꾸준히 해 주길 바래. 깎고 파고 문지르고 빛내고 뻗쳐줘. 네 노력의 결실들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그녀도 진정 너의 성장을 바랄거라도 확신해. 그것보다 큰 사랑이 또 있을까.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제멋대로 널부러진 우리를 긁어 모으셨던게 아닐까. 희석아! 네가 있어 참 든든하다. 너를 다 펼쳐나가길 빌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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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7.05.15 19:06:48 *.134.133.173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 이번 칼럼과 과제는 지금까지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작성하여 저도 기분좋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치열하게 읽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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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17 10:23:40 *.249.167.156
그렇다. 내가 본 희석의 북리뷰 중 제일 좋다. 글을 읽다 말고, 인터넷 서점에서 한참동안 책들을 살펴보게 했다. 저자를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다^^

잠시 헤매다 보니, 리영희 선생님 댁에 걸려있다는 김구 선생님께서 친필로 쓰신 서산대사의 시가 눈에 들어오네..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

리영희 선생님은 그렇게 일생을 살아오셨나보다.

인용문만 제대로 마무리하면 더욱 좋아질 것 같다. 마구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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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5.19 23:06:10 *.152.82.31
대단하군요.
이 곳에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서평을 쓸 사람이 있다는 상상을 해보지 못했었어요.
30년도 더 전에 쓴 글이 지금에 읽어도 논리정연하고 현실에 천착한 지식은 아직도 생명력이 탄탄하지요.
실천하는 지식인이 되는 것 또한 우리 연구원의 해야 할 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어진 일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에서 받아쳐 부딪혀 나가는 모습을 기대하고 싶다는 거지요.
그런 연구원 한 명 정도는 있어도 좋잖아요.
3기분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군요.
뒤로 갈수록 좋은 내용이 많은데 맘에 안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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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6 18:10:51 *.93.45.60
인용 뒷부분이 짤린 게 아쉽다.
난 글의 요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편이라서 저자가 말하는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 분야는 생소한 분야라서 이번에 특히 그럴 것 같아.  그래서 다른 사람의 리뷰를 먼저 읽어보고 책을 읽어야 할 때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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