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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7일 01시 18분 등록
역사란 무엇인가

(원제 : What is History?)

길현모 역 / 탐구당



1-1. 저자 소개

Edward Hallett Carr (1892 ~ 1982)

영국의 20세기 대표적 사가. 1892년 런던에서 출생하여 런던의 머천트 테일러즈 스쿨(Merchant Taylors' School)과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를 졸업하였다. 잠시 그의 주요 이력을 살펴보자.

1916 ~ 1936 외무성 근무
1936 ~ 1946 영국 웨일스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국제정치학 교수
1939 ~ 1940 영국 정보성 외교부장
1941 ~ 1945 타임스 논설위원
1948 ~ 국제연합(UN) '세계 인권선언' 기초위원회 위원장
1953 ~ 1955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베얼리얼 칼리지 정치학 교수
1955 ~ 1966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연구원(Fellow)
1966 ~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의 명예연구원(Honorary Fellow)

주요 저서
< 새로운 사회 (The New Society) > (1951)
<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 > (1961)
< 칼 마르크스 (Karl Marx) > (1934)
< 위기(危機)의 20년 Twenty Years’ Crisis > (1939)
< 서구세계에서의 소비에트의 충격 (The Soviet Impact on the Western World) > (1947)
< 볼셰비키 혁명 (The Bolshevik Revolution) > (1958)

저자는 역사가로 유명하지만, 외교관과 언론인의 경험 또한 장시간 가지고 있으며, 정치학 교수였기도 했다. 이런 다채로운 이력은 그의 역사적 정치적 견해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언제나 양자의 극단을 거부하고 균형을 이루려 하였던 그의 관점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저서를 들여다 보면 소비에트 소련의 연구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외교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소련에 편입되지 않았던 라트비아공화국의 리가(Riga)주재 공사관에서 근무하면서 소련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후에 학계에 들어오면서 소련사 연구의 길을 택한 것도 그의 리가생활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역사관은 해석주의, 상대주의, 진보주의로 요약된다. '역사'를 단순히 '과거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역사가가 현재에 서서 해석하고 재구성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얻는다고 보았다. ‘현재를 거울삼아 과거를 통찰하고, 과거로 현재를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는 수단"으로서 '역사'를 파악했다. 역사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계속 진보한다는 저자는 과학자 갈릴레이의 말을 이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위대한 과학자의 낡은 말귀를 가지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래도 역시-그것(역사)은 움직인다.”


2-2. 역자 소개

길현모 (吉玄謨) (1923 ~ 2007)

광복 후 1세대 서양사학자로 꼽히는 역자가 2007년1월10일에 타계하였다. 아래는 당시 기사인데 역자 소개로 적절하다 여겨 옮긴다.

“1923년 평북 희천에서 훗날 제물포고 초대교장이 되는 길영희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서울대 사학과 출신 고 민석홍, 고 양병우, 노명식 전 서울대 교수와 함께 광복 이후 국내 서양사학계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1963년 서강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전해종(동양사), 고 이기백(한국사), 이보형·차하순(서양사) 교수와 함께 역사학계에서 ‘서강학파’의 전성시대를 연 주역이었다.”

“고인은 군부독재를 비판해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한 차례씩 해직의 아픔을 겪었지만 꼿꼿함을 꺾지 않았다. 1983년 한림대 교수로 복직한 이후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66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한 것으로도 유명한 고인은 실증사학의 대명사인 랑케 사학을 비판하는 논문과 자본주의 이행논쟁 등에 대한 논문을 남겼다.”

역자를 스승으로 둔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인 구본형은 역자를 회고하며 한 편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에게 대학교수를 꿈꾸게 한 것도, 대학교수의 길을 포기하게 한 것도 길현모 교수였다. 그에게 길현모 교수는 보통의 사제관계 이상이었다. 영감을 주는 스승이었다. 그는 지금도 인생의 고비마다 친구 같은 스승인 역자는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그가 가야 할 길을 결정한다고 한다.


2. 가슴으로 들어오는 구절

(1) 역사가와 사실

12p, 모든 역사가들에게 공통된 소위 기초적 사실이라는 것은 보통 역사가들이 사용하는 원료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이지, 역사 그 자체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12p, 사실이란 역사가들이 그것을 찾아 줄 때에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고, 어떠한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그리고 어떠한 순서와 전후 관련 속에서 이야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역사가인 것입니다.

16p,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거상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미리 선택되고 미리 결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우연적 계기에 의해서보다도 오히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어떤 특수한 견해의 감화 밑에서 그런 견해를 밑받침해 주는 사실이어야만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입니다.

21p, 사실이란 그것이 문서에 나타나 것이건 아니건 역사가들의 처리를 거친 다음에야 그들에게 이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역사가들의 사실 이용이란 말하자면 처리 과정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25p, 문서들은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우리들에게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고 그가 원했던 일,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자기 스스로가 생각하고 싶었던 일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28p,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항 현재의 문제의 관점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30p, 재구성의 과정은 사실의 선택 및 해석을 지배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만들어놓는다는 것입니다.

32p, 사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십시오.

33p, 역사가는 자기가 취급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34p, 역사가는 자기가 쓰고 있는 인물과의 어떠한 심적인 접촉을 가질 수 없는 한 역사는 쓰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

34p,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들은 비로소 과거를 볼 수도 있고 과거에 대한 이해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36p,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사랑한다는 것도 아니요, 과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다는 것도 아니요,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써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40p, 역사가는 자기가 연구하는 테마나 적용하려고 하는 해석에 어떠한 의미에서건 관련성이 있는 - 알려졌거나 알 수 있는 - 사실은 남김없이 그려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42p, 역사가는 사실의 천한 노예도 아니요, 억압적인 주인도 아닙니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과는 평등의 관계에 있는 것이며, 말하자면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역사가는 자기의 해석에 맞추어서 사실을 형성하고, 자가의 사실에 맞추어서 해석을 형성하고 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43p,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2) 사회와 개인

46p, 역사시대의 여하한 단계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의 사회 속에 태어나는 것이고 또한 태어난 직후부터 사회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입니다.

47p,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가 필요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48p, 미개인과 마찬가지로 문명인도 실질적으로는 사회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고, 이것은 사회가 그들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49p, 근대 세계의 발전에 수반되었던 개인화의 증대라는 것도 전진하는 문명의 통상적인 한 과정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50p, 개인 그 자체와 사회 그 자체와의 투쟁이 아니라 사회 속에 있는 개인집단 상호간의 투쟁인 것이며, 각 집단은 자기 편에 유리한 사회정책을 추진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사회정책을 저지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51p, 역사가들이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당사자들도 진공 속에서 행동하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과거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그 충동에 밀려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52p, 역사가도 하나의 개인입니다. 딴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사 하나의 사회현상이며,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사회의 대변인입니다.

52p, 역사가는 역사의 일부분입니다. 그가 처해 있는 행렬의 지점에 따라 과거에 대한 자신의 시각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54p, 위대한 역사란 분명히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비전이 현재의 제문제에 대한 통찰에 의하여 빛을 받을 때에만 쓰여지는 것입니다.

59p, 역사가가 문제에 접근하는 입장부터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는 것이고, 그 입장 자체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역사가는 역사를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역사의 산물인 것입니다.

63p, 역사가의 연구가 자기가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인가를 분명히 하자는 데에 있을 뿐입니다......출판일시나 집필일시일도 아울러 유의하셔야 합니다.

66p,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입장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란 자기가 그러한 조건 속에 얼마나 깊이 사로 잡혀 있는가를 자각할 수 있는 감수성 여하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66p, 역사가를 연구하기 앞서서 우선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십시오.

73p, 우리들은 역사라는 말을 사회 속에 놓인 인간의 과거를 연구하는 과정에 대해서만 쓸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79p, 역사상의 사실은 사회 속에 있는 개인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이며 또한 개인 행동으로 하여금 왕왕 행위자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의 아니 때로는 반대의 결과까지를 초래하게 하는 사회적인 힘에 관한 사실인 것입니다.

79p, 역사가에게 맡겨진 일은 행위의 배후에 있는 것을 해명한다는 일입니다만 행위자 개인의 의식적인 사상이나 동기는 이와는 전연 상치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80p, 그들의 역사상의 역할은 그들을 따른 대중의 힘에 의한 것이며, 그것은 하나의 사회현상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중요성도 없는 것입니다.

83p,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사역인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 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점입니다.

(3) 역사와 과학과 도덕

89p, 과학자들의 발견이나 새로운 지식의 획득도 정밀한 포괄적인 제법칙을 확립함으로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구 분야를 열어줄 여러 가설을 설정함으로써 이룩된다는 것은 이미 인정된 사실입니다.

92p, 역사에 있어서의 시대의 구분이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필요한 가설 혹은 사상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역사 해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한에 있어서만 유효한 것이며 그 유효성도 해석 여하에 달린 것입니다.

94p, 오늘날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이 품고 있는 희망은 보다 온건한 것입니다. 즉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로부터 또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을 찾아서 점진적으로 전진하며, 해석을 매개로 하여 사실을 추출하고 다음으로는 추출된 사실을 가지고 해석을 테스트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97p,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99p, 일반화와 역사와는 연이 멀다는 이야기는 넌센스입니다. 역사는 일반화 위에서만 생장할 수 있습니다.

99p, 일반화라는 것이 개개의 사실을 맞추어 넣을 수 있는 역사의 대체계의 구성을 허용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100p,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입니다.

102p,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104p,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은 아닙니다.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의 빛에 비추어서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04p, 우리들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는 소위 과학적인 법칙이란 것도 사실인즉 하나의 경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말하자면 딴 조건이 동일할 경우에나, 실험실의 조건하에서만 일어나게 될 일들을 이야기함에 불과합니다.

105p, 역사가에게는 위에서 본 바와도 같이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은 아닐지라도 미래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6p, 가능성이 짙다는 정도의 것입니다.

107p, 사회과학에 있어서는 주체와 객체가 동일한 범주에 속해 있고, 또한 서로가 상호작용을 한다는 이론입니다.

107p,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인간행동의 제 형태를 추궁하고 자기의 연구대상인 인간이 왜 그렇게 행동하려고 했는가를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108p, 관찰과정 자체가 관찰대상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 역시 진리인 것입니다.

109p, 관찰자와 그 대상과의, 사회 과학자와 그 자료와의, 역사가와 그 사실과의 상호관계는 연속적인 것이고 부단히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112p, 사회과학은 그 전부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엄격한 분리를 선언하는 어떠한 지식 이론과도 양립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사회과학이 포함하는 인간이란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고 연구자인 동시에 연구대상이기 때문입니다.

120p, 과거의 개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건, 제도, 정책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고 하는, 보다 어렵기는 하지만 보다 이득 있는 문제로 눈을 돌리기로 합시다. 역사가의 중요한 판단은 이러한 것입니다. 개인에 대한 도덕적인 단죄에 열을 올려 주장하는 사람들은 때대로 무의식중에 집단이나 사회 전체를 위한 구실을 마련할 수가 있습니다.

121p, 역사적 해석은 언제나 도덕적 판단 가치 판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127p, 개념 자체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지는 내용은 시간과 장소의 차이에 따라 역사를 통해서 변해 내려왔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을 적용한다는 실제적인 문제는 역사적인 조건하에서 밖에는 이해될 수도 없고 논의될 수도 없습니다.

128p, 추상적인 초역사적인 기준을 세워놓고서 그것에 의하여 역사적 행동을 판가름할 수 는 없다는 것입니다.

128p, 역사란 운동이고, 운동이란 비교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역사가들이 도덕적 판단을 표현할 때에 ‘선’ 혹은 ‘악’ 등의 타협성없는 경정적인 용어보다는 ‘진보적’이라든가 ‘반동적’이라든가 하는 비교하는 성질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의 사회나 역사현상을 어떤 절대적인 기준과의 관련 하에서 규정짓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의 상호관계 하에서 규정하자는 기도인 것입니다.

128p, 제대로 된 역사가라는 것은 모든 가치의 역사적인 피제약성을 가려볼 줄 아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역사를 초월한 객관성을 요구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4)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139p, 진정한 역사가라면 자기가 작성한 여러 원인의 목록을 앞에 놓고서는, 그것을 질서지어야 하겠다, 제원인의 상호관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거기에 상하관계를 설정해야 하겠다, 혹은 ‘결국에 가서는’, ‘궁극적으로는’ 어떤 원인과 어떤 종류의 원인을 최종 원인, 즉 모든 원인 중의 원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지어야 하겠다는 직업적인 강박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제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어떠한 원인을 내세우는가에 따라서 어떠한 역사가인가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48p, 인간 행동의 어떤 것은 자유롭고, 어떤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모든 인간 행동이 그것을 보는 견지에 따라서 자유롭기도 하고 결정되어 있기도 한 것입니다.

150p, 역사에 있어서는 어떤 일이건 그것이 틀린 결과를 초래하려면 선행되는 원인 자체부터가 달랐어야 하는 선측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면 불가피한 일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152p, 결정론자로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으려면 원인도 달랐어야만 했다는 것 뿐입니다.

154p,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가들의 중심 구명대상이 되고 있는 인과연쇄를 중단하면서-말하자면 그것과 충돌하면서-또 하나의 인과연쇄가 나타날 때에 그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158p, 역사적 사건이 융성과정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라 퇴락과정을 거듭하고 있는 집단이나 국민에게 있어서는 역사의 기회나 우연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이 우세한 법입니다.

161p, 역사가의 원인에 대한 관계는 역사가의 사실에 대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상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원인은 역사과정에 대한 그의 해석을 결정하는 동시에 그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정리를 결정합니다. 제원인의 상하관계, 하나 혹은 한 묶음의 원인이 그 밖의 원인에 대해서 지니는 상대적 의의, 이러한 것이 역사가의 해석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라는 문제를 푸는 단서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163p, 역사가의 세계란 과학자의 세계와 같은 현실세계를 사진 찍어 놓은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많고 적고 간에 현실세계를 이해하고 정복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작업상의 모델 같은 것입니다. 역사가는 과거의 경험, 즉 자기가 입수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골라내가지고 그로부터 행동지침으로서 유용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입니다.

165p, 역사는 현실에 대한 인식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인과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가가 무한한 대해로부터 자기목적에 대해서 의의를 가지는 사실들을 골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다수의 인과연쇄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의의있는 것들을, 아니 그것들만 빼내는 것입니다.

168p, 여기서도 우리는 합리적인 원인과 우연적인 원인과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타자와 타시대, 타조건에 항상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익한 일반화를 도출하고 또한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우연적 원인은 일반화될 수 없습니다.......역사에 있어서인과의 문제를 다루어 나가는데 열쇠의 역할을 다해주는 것은 틀림없이 목적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 목적이라는 개념은 불가피하게 가치판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170p, 훌륭한 역사가들 역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건 말건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입니다. 역사가는 ‘왜냐’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라고 묻는 법입니다.

(5) 진보로서의 역사

179p, 획득형질의 전승이라는 것을 생물학자들은 부정합니다만,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진보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에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181p, 역사는 그 두 어의-하나는 사건의 코스로서, 또 하나는 이러한 사건의 기록으로서-의 어느 것에 있어서나 진보적인 것이라고 말한 액튼의 주장의 진의일 것입니다.

182p, 문명을 전진시키는데 필요한 노력이 한 지역에서 사멸되고 나면 후에 딴 지역에서 다시 나타나고, 결국 우리가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진보란 모두가 시간에 있어서나 장소에 있어서나 결코 연속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는 주목할 만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183p, 진보란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184p, 그들의 행위에 진보의 가설을 적용해서 그 행위를 진보라고 해석하는 것은 역사가인 것입니다.

184p, 인간은 조상들의 경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란 자연계에 있어서의 진화와는 달리 습득된 자산을 토대로 한다는 것, 이것은 역사의 한 전제입니다.

190p, 역사에 있어서의 절대자는 우리가 출발해 온 과거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니요, 현재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모든 사고는 상대적인 것일 수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생성도상에 있는 어떤 것이며, 우리가 전진해 나가는 미래 속에 있는 어떤 것, 우리가 그것을 향해서 전진해 나감에 따라서 비로소 모양을 취하기 시작하는 것, 또한 전진도상에 있는 우리들이 조명하에서만 과거에 대한 해석을 점차로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어떤 것입니다.

193p, 미래만이 과거를 해석할 열쇠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만 우리들은 역사에 있어서의 궁극적 객관성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가 미래를 조명하고 미래가 과거를 조명한다는 것은 역사의 합리화인 동시에 역사의 설명입니다.

193p,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할 때에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그것은 그 역사가가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로는 그 역사가는 자신의 비전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그 안목이 전적으로 목전의 자기 위치에만 국한되어 있는 역사가들보다는 과거에 대한 더욱 깊고 더욱 영속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4p, 오히려 역사는 과거의 제사건과 점차적으로 우리들 앞에 출현하게 될 미래의 제목적과의 대화라고 말씀드렸어야 했을 것입니다.

195p, 역사서술을 진보하는 과학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발전해 나가는 제사건의 진전에 대해서 부단히 넓혀지고 깊어지는 통찰을 마련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197p, 다 같이 확고하고 명확하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은 낙관론이었습니다.

199p, 대체로 역사가란 승자건 패자건 무엇인가를 성취한 사람들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200p, 한 시대에 적합했던 것도 다음 시대에는 변태적인 것이 되고, 그로 말미암아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201p, 역사에 있어서의 판단의 기준은 ‘보편적 타당성을 요구하는 원리’가 아니라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206p, 우리 환경의 제 사실을 우리들이 어떠한 모양으로 파악하고 있는가는 우리들의 가치, 즉 우리가 그것을 매개로 하여 사실에 접근하는 여러 카테고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가치는 사실 속에 들어와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206p,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207p, 역사적 진리의 영역은 가치를 떠난 사실이라는 북극과, 사실이 되고자 애쓰는 가치 판단이라는 남극의 중간지대의 어디엔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역사가란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의 양자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208p,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6) 넓혀지는 지평선

210p,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자연적 과정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의식적으로 관여하고 또한 인간이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수한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할 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219p, 마르크스와 프로이드의 저작이 나온 이후로는 역사가는 자기가 사회와 역사를 떠나서 초연히 서 있는 개인이라고 생각할 구실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기 의식의 시대입니다.

221p, 자유방임으로부터 계획으로의, 무의식으로부터 자기 의식에로의, 객관적 경제법칙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의하여 자기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신념에로의 전환이 이룩된 것입니다.

223p, 인간이 이성의 의식적인 활용을 통해서 환경을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을 변조한다는 일을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234p, 나의 보다 큰 관심이 쏠리고 있는 문제는 역사의 지평선은 우리나라와 서구를 넘어서서 확대되고 있는데, 우리 역사가들은 이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239p,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두 가지 요소, 그것은 변화를 역사에 있어서의 발전적 요인으로 본다는 감각과, 이성은 변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라는 믿음입니다.

243p,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실은, 부단히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주도한 감각이 감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전반적인 전진의 뒤에 쳐져서 힘없이 체념한 채로 일정의 향수적인 침체상태 속에 빠져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근심인 것입니다.

243p,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위대한 과학자의 낡은 말귀를 가지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래도 역시-그것은 움직인다.’



3. 내가 저자라면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을 읽고 떠오르는 것은 저자의 주요 인식이라는 것은 양자의 균형 내지는 변증법적 통합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관점과 견해에 따라 몇 가지를 대조시켜 본다.

- 사실과 해석

사료(史料)와 해설,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이라 할 수 있는 두 개의 과정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이 양자를 떼어놓으려 하거나 이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려고 한다면 극단에 빠질 것이다. 즉 의미없는 가위와 풀의 역사를 쓰거나, 과거 사실을 그저 ‘이용’하는 데 그친 선전소설이나 역사소설을 쓰고 말 것이다.

역사가는 자기 해석에 맞추어서 해석을 형성하고 자기 사실에 맞추어서 해석을 형성하는 끊임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양자 중 어느 한쪽만을 우위에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가는 임시로 선택한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선택을 끌어준 임시적 해석, 이 양자를 가지고 일한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 사실과 해석의 선택과 정리는 쌍방의 상호 작용을 통하여 반무의식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오늘날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이 품고 있는 희망은 보다 온건한 것이다. 즉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로부터 또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을 찾아서 점진적으로 전진하며, 해석을 매개로 하여 사실을 추출하고 다음으로는 추출된 사실을 가지고 해석을 테스트한다는 식이다.

- 사실과 가치

‘가치는 사실에서 나올 수 없다?’ 가치는 환경이라는 사실에 의해 형성되는 바가 크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 인종차별 등을 보통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생각해보자. 가치는 사실에서 나올 수 있다는 말은 그릇된 말이다.

‘사실은 가치에서 나올 수 없다?’ 우리의 문제 제기나 받아들이는 해답은 모두 우리의 가치 체계의 도움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 환경 속의 사실들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는 우리의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가치는 사실 속에 들어가 본질적인 부분을 이룬다.

역사적 진리의 영역은 가치를 떠난 사실이라는 북극과, 사실이 되고자 애쓰는 가치 판단이라는 남극의 중간지대의 어디엔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 인간과 사회

모든 인간은 하나의 사회 속에 태어나는 것이고 또한 태어난 직후부터 사회에 의하여 형성된다. 인간은 실질적으로는 사회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고, 이것은 사회가 그들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역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당사자들도 진공 속에서 행동하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과거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그 충동에 밀려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의 사실은 사회 속에 있는 개인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이며 또한 개인 행동으로 하여금 때로는 행위자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의 아니 때로는 반대의 결과까지를 초래하게 하는 사회적인 힘에 관한 사실인 것이다.

- 일반화와 특수화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이다. 즉,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한다는 말이다. 일반화를 끌어낸 역사적 사실은 특수성을 지닌다.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교훈, 여기에는 어쩔 수 없이 가치 판단이 개입된 것이고, 좀 더 편히 이야기하자면 가능성이 짙다는 정도의 경향성으로 말할 수도 있겠다.

역사가에게는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은 아닐지라도 미래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다.

- 주체와 객체

사회과학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동일한 범주에 속해 있고, 또한 서로가 상호작용을 한다.

사회과학은 그 전부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엄격한 분리를 선언하는 어떠한 지식 이론과도 양립될 수 없다. 사회과학이 포함하는 인간이란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고 연구자인 동시에 연구대상이기 때문이다.

관찰과정 자체가 관찰대상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다.

관찰자와 그 대상과의, 사회 과학자와 그 자료와의, 역사가와 그 사실과의 상호관계는 연속적인 것이고 부단히 변화한다.

- 원인과 해석

역사가의 원인에 대한 관계는 역사가의 사실에 대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상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원인은 역사과정에 대한 그의 해석을 결정하는 동시에 그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정리를 결정한다. 원인의 상하관계, 하나 혹은 한 묶음의 원인이 그 밖의 원인에 대해서 지니는 상대적 의의, 이러한 것이 역사가의 해석의 핵심을 이룬다. 이것이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라는 문제를 푸는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역사가의 세계란 과학자의 세계와 같은 현실세계를 사진 찍어 놓은 것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이해하고 정복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작업상의 모델 같은 것이다. 역사가는 과거의 경험, 즉 자기가 입수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골라내어 그로부터 행동지침으로서 유용한 결론을 도출해 낸다.

역사는 현실에 대한 인식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인과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이다. 역사가가 무한한 대해로부터 자기목적에 대해서 의의를 가지는 사실들을 골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다수의 인과연쇄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의의있는 것들을, 아니 그것들만 빼내는 것이다.



이상, 그의 역사관은 해석에 중심을 둔 상대론적인 그것이라 정리하면 좋을까, 한편, 그의 역사관을 논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것은, 역사는 나은 곳으로 진보한다는 진보론적인 그의 견해이다. 저자는 ‘왜’라는 역사가의 질문에는 ‘어디로’라는 질문 역시 내재해 있다고 보았다. ‘어디로’라는 의문은 곧 방향성에 대한 의문이다. 목적 없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가 있을 수 없다면 그 목적은 ‘진보’이다. 그는 이 책 후반부에서 역사의 정의를 다시 수정한다. 그것은 ‘오히려 역사는 과거의 제사건과 점차적으로 우리들 앞에 출현하게 될 미래의 제목적과의 대화’라는 것이다.

그럼 그 진보라는 것은 무엇을 향한 것인가. 저자는 ‘문명’의 개념을 제시한다. 그 문명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구체적으로 잡아낼 수 없었다. 어떤 이는 문명이란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의 확대’라 보았다. 그리고 환경과 생태계의 파괴의 문제에 맞닥뜨린 현세를 놓고 볼 때 문명이 과연 진보인지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가 말한 문명이 정말로 인간의 환경에 대한 힘을 뜻하는 것이었다면, 나 역시 찬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한 ‘절대자’의 개념에서 진보의 방향성을 읽고자 하였다.

“역사에 있어서의 절대자는 우리가 출발해 온 과거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니요, 현재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모든 사고는 상대적인 것일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생성도상에 있는 어떤 것이며, 우리가 전진해 나가는 미래 속에 있는 어떤 것, 우리가 그것을 향해서 전진해 나감에 따라서 비로소 모양을 취하기 시작하는 것, 또한 전진도상에 있는 우리들이 조명하에서만 과거에 대한 해석을 점차로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어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 즉 역사에 내재한 가능성을 믿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그의 낙관론적 사관을 보여주는 한 면이다.


이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1장 역사가와 사실, 2장 사회와 개인, 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 4장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5장 진보로서의 역사, 6장 지평선의 확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내용마다 저자의 역사관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한 장의 내용은 몇 가지로 나뉘기도 하고, 그 각각의 귀결에 이르기 위해서 수많은 다양한 예시와 이론들이 등장해야만 했다. 한 장 안에서도 내용을 끊어주어 좀 더 세분화하였으면 이해하기가 더 쉽지 않았을까 한다. 핑계일지 모르겠으나, 66년 판본의 낯설음과 맞물려 나는 종종 길을 잃곤 했었다.

‘교과서를 또 한 권 읽었구나’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중 하나이다. 역사학 입문의 교과서 같다. 앞서 읽었던 자크 아탈리의 <인간적인 길>처럼 이 책도 몰입해서 음미가 필요한 책이었다. 한 번 읽고 덮어둘 책은 아니라고 본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이 책, 그의 역사관이 무엇인가를 논하기 전에, 독자에게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생각해 보게 하기에는 충분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이 역사학도들의 필독서 중 하나일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IP *.142.24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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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7.05.07 03:14:47 *.18.196.39
호정님 역사의 해석위에 책의 해석까지 탁월하십니다.

특히 이 책의 세가지 키워드를 발견하신 점에 감탄...
해석주의, 상대주의, 진보주의 여기에
하나 첨언하면 그의 낙관주의가 맘에 들어요.

좋은 결실있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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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7.05.07 09:54:20 *.99.120.184
두가지 시선으로 책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쓴 내용이 마음에 듭니다. 저자가 상대성을 매우 강조한 역사가인 점을 한 눈에 알 수있어 좋네요.
매번 리뷰가 진보함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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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5.09 08:12:16 *.244.218.10
다행이네요...
처음엔 막막하다가도 하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풀리긴 합니다만,
더 생각하고 음미하고 돌아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항상 남아요.
나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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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07.05.09 13:36:24 *.47.187.34
잘 가고 있다. 계속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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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0 11:33:01 *.75.15.205
민선이는 스승이 참 많네. 것도 제대로 된 스승. 그 스승 너무 쬐려보지 마라. ㅎㅎ 사랑해. 노력 많이 하는 구나. 역시 완은 좋은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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