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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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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7일 03시 34분 등록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
E. H. Carr저, 길현모 역, 탐구당


1. 저자에 대하여

개인적 약력
E.H. Carr는 1892년에 영국의 런던에서 태어난 정치학자이자 역사가로서, Cambridge대학을 졸업했다. 1916년 영국 외무성에 들어가 1919년에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파리에서 열린 국제강화회의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 후 피는 영국 외무성에서 러시아 혁명 (1917)이 일어난 뒤의 소련문제를 다루는 전문위원이 되었는데 이 경력이 소련을 연구하는 사학자가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대표저작들은 대부분 소련에 관한 것이다. 외무성 근무중 Riga (소련 라트비아 공화국의 수도)주재 영국공관, 국제연맹 등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36년 외무성에서 사임하고 Wales대학의 국제정치학 교수가 되어 1946년까지 재직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 정보성 외교부장(1939-40), 런던 타임즈 논설위원(1941-45)을 역임했고 1953-1955년 사이에는 Oxford대학에서 정치학 강의를, 1955년 이후에는Cambridge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주요 저서
역사가로서의 그는 그의 기념비적인 저작 「소련사」로 가장 유명한데, 그의 다른 저작들 중에는「낭만의 망명객」「20년간의 위기」「평화의 조건」그리고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등이 있고 1982년에 사망했다. 특히《역사란 무엇인가?》는 카의 명성을 전 세계적으로 떨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카의 역사관은󰡐역사는 역사가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시대를 반영하고, 역사 해석은 불변의 객관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그 사실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 ’소련사(History of Soviet Russia)’; 1945~75년 정도까지 거의 30여 년간 작업, 이 책은 ’러시아 혁명ː레닌에서 스탈린까지(The Russian RevolutionːLenin to Stalin)’를 포함하여 14권으로 되어 있음
-’볼셰비키 혁명, 1971¬~1923(The Bolshevik Revolution, 1917¬1923)’;
-’공백기, 1923¬~1924(Interregnum, 1923~¬1924)’;
- ’일국 사회주의, 1924~¬1926(Socialism in One Country, 1924~¬1926)’,
- ‘계획경제의 기초, 1926~¬1929(Foundations of a Planned Economy, 1926¬~1929)’(그중 한 권은 R.W. Davies와의 공저) 등임.
-낭만의 망명객(The Romantic Exiles)’(1933),
-‘20년간의 위기, 1919¬1939(The Tewnty Years' Crisis, 1919¬1939)’(1939),
-‘평화의 조건(Conditions of Peace)’(1942),
-‘소련의 충격과 서구세계(The Soviet Impact on the Western World)’(1946),
-‘새로운 사회(The New Society)’(1951)
-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From Napoleon to Stalin and Other Essays)’(1980

카의 역사관
1) 상대주의 역사관
카는 ‘역사를 역사가에 의하여 해석된 과거’라고 봄으로써 콜링우드 등의 상대주의 역사관에 동조하면서도, 스스로는 자기의 역사관이 상대주의에 속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콜링우드의 역사관은 역사 서술에 있어서 역사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객관적’역사를 배제시켜 ‘완전한 회의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카는 역사란 역사가의 해석을 전제로 하지만 ‘역사가가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면서 ‘객관적’역사인식의 가능성을 논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객관성의 의미를 달리한다는 전제하에서이고, 실제로는 카의 역사관은 상대주의로 귀속되고 있다. 즉, 카는 역사적 사실은 해석을 전제로 한 것인데, 해석은 언제나 가치 판단을 내포하며,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으며 가치는 항상 사회적으로 제약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카는 이처럼 어떤 역사가도 초역사적, 절대적 가치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역사를 초월한 객관적인 역사 인식이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란 역사가의 가치관이 개입된 해석에 의한 것이고, 사회적 존재인 역사가에게 절대적 가치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역사에는 어디까지나 상대성이 뒤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2) 진보로서의 역사
카는 문명의 자연적인 순환론이나 신의적 역사해석 모두를 거부하고 있다. 스스로를 안락하고 희망찬 19세기적 시대 분위기 속에서 교육받은 ‘변함없는 낙관주의자’로 인정하는 카는 “아직도 역사에서 진보가 끝났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카는 프랑스혁명 이후의 변화는 우려되고 있는 것처럼 쇠퇴의 시기가 아니라 여전히 진보의 시기였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여,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작용해 온 오랜 투쟁과정이다.” 카는 이 과정을 무엇보다도 ‘이성의 세계의 확대’로 파악하고 있다. 선두주자 몇 사람이 탈락하였다고 경주 자체가 종결되지 않듯이 서유럽의 위대한 문명의 시대가 지속되지 않는다 해도 역사 전체의 진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카는 서유럽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가 서유럽 문명 자체에 내재한 쇠퇴의 필연적 과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카는 발전의 가능성, 미래에 대한 적극적 신념을 가지라는 것이다. 카의 ‘미래에 대한 합리적 난관주의’는 역사를 ‘부단한 진보과정’으로 봄으로써 근본적으로 19세기의 진보의 신앙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카의 ‘진보’개념은 19세기의 그것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첫째, 카는 인간사에 있어서의 진보와 자연계의 진화를 엄격히 구분한다. 인간의 진보는 여러 세대의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자기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뜻한다. 결국 진보란 과학 지식의 축적을 통한 자연환경에 대한 지배력의 증대와 사회 질서를 형성하고 사회를 조직하는 인간의 힘의 증대를 의미한다.
둘째, 진보에는 일정한 시작이나 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카는 문명의 시작을 진보의 시점으로 파악하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명이란 결코 발명된 것이 아니고 무한히 느린 발전 과정을 통하여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므로, 문명의 발생은 진보의 가설에 있어서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진보라는 역사과정 자체의 시작이 될 수는 없다.
셋째, 카는 직선적인 진보관을 거부하고 있다. 카는 역사가 일정한 과정을 거친 다음에 더 나은 단계를 향하여 한 방향으로 계속된다고 믿고 있지 않다. 역사에서의 진보란 역전․ 일탈․ 중단이 없는 일직선상의 전진이 아니다. “진보는 정체되고....일련의 역행과 참화에 의하여 중단”되어질 수도 있다. 진보의 시기가 있듯이 퇴조의 시기도 있으며 후퇴 뒤의 전진도 같은 지점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진보라는 것이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인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역자: 길현모

사부의 사부(師父)

광복 이후 1세대 서양사학자.
1923년 평북 희천에서 훗날 제물포고 초대교장이 되는 길영희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 사학과 출신 고 민석홍, 고 양병우, 노명식 전 서울대 교수와 함께 광복 이후 국내 서양사학계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1963년 서강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전해종(동양사), 고 이기백(한국사), 이보형•차하순(서양사) 교수와 함께 역사학계에서 ‘서강학파’의 전성시대를 연 주역이었다.

그는 군부독재를 비판해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한 차례씩 해직의 아픔을 겪었지만 꼿꼿함을 꺾지 않았다. (사부도 이 사건을 계기로 학교를 떠났다.) 1983년 한림대 교수로 복직한 이후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66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한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실증사학의 대명사인 랑케 사학을 비판하는 논문과 자본주의 이행논쟁 등에 대한 논문을 남겼다.

사부는 그를 “친구 같았기에 두려웠던 스승”이라고 말했다.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사부에게 대학교수를 꿈꾸게 한 것도, 대학교수의 길을 포기하게 한 것도 길현모 교수님이다. 사부는 지금도 인생의 고비마다 길현모 선생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며 가야 할 길을 결정한다. 길현모 선생님은 사부에게 정확한 길을 제시한 적이 없었다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잊지 말라’는 충고였으리라. 처음 꿈벗에 참여하고, 첫 뒷풀이 모임에서 사부가 내게 말해준 길현모 선생님에 관한 한 장면은 이렇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73년 초, 대학 입학 면접장에서였다. 당시 나는 재수의 피곤함에서 벗어나 얼른 대학에 들어와 젊음을 발산하고 싶은 풋내기였다.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뭘 하고 싶나?”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싶습니다.”
“교수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잠시 망설였다.
“선생이며 학자입니다. 그러나 선생이기 이전에 학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럴 듯한 대답이라고 만족스럽게 생각했지만 선생님은 내 대답이 별로 만족스러운 것 같지 않았다. 나처럼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이 30년도 더 된 대화의 한 끝을 기억하고 있음은 신기한 일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선생님과 나눈 대화의 어떤 부분은 매우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만큼 선생님은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마다 커다란 지혜를 주셨다.

‘보통의 선생은 그저 말을 하고, 좋은 선생은 설명을 해주고, 훌륭한 선생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는 말이 있다. 나는 선생님에게서 학자의 모범을 보았고, 어두운 길 위에 뿌려진 달빛 같은 영감을 받았다. 내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인터넷에서 ‘길현모’라는 존함으로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글귀가 있다. 출처도 나와있지 않고, ‘길현모’라는 이름 아래에 덜렁 몇 마디의 문장이 놓여있어 길현모 선생님이 쓰신 글인지, 사부님이 쓰신 글인지, 혹은 제3자가 쓴 글인지 모르겠다. 가슴 깊이 파고드는 것을 보니 선생님과, 사부님.. 두분 중 한분이 분명할 것 같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스스로 모색하라.
헌신하고 모든 것을 걸어라.
그러나 그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
앞에 다른 길이 나오면 슬퍼하지 말고 새 길로 가라.
어느 길로 가든 훌륭함으로 가는 길은 있다.”



2.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들

1. 역사가와 사실
(7) 19세기는 사실을 존중한 대단한 시대였습니다.

(9) 아마도 이런 것을 상식적인 역사관이라고 불러 마땅하겠지요. 역사는 확증된 사실의 집성으로 이룩된다는 것입니다. 생선 가게의 판자에 노인 생선 모양으로 역사가들은 문서나 비문 등에서 사실을 입수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수집한 사실을 집에 들고 가서 요리한 다음에 마음에 드는 스타일에 따라 그슷에 담아 내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11) 나는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라는 하우스만의 말을 상기하게 됩니다. 역사가를 정확하다고 해서 칭찬한다는 것은, 잘 말린 목재를 썼다거나 잘 혼합된 콘크리이트를 썼다고 해서 건축가를 칭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그의 일의 필요조건이지 본질적인 기능은 아닌 것입니다.

(13) 역사가란 불가피하게 선택적이게 마련입니다. 역사가의 해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립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굳은 핵을 믿는다는 것은 전후가 전도된 오류입니다.

(15) 역사적 사실로서는 그 지위는 결국 해석의 문제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이라는 요소는 역사의 모든 사실 속에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25) 물론 사실과 문서는 역사가에게는 없을 수 없는 필수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떠받쳐 모시지는 마십시오. 사실과 문서 자체만으로서 역사가 이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자체 속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귀찮은 문제에 대한 기성답변이 미리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28)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이다’라고 크로체는 언명했습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 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사가가 가치의 재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기록될 만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입니다.

(30)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 책을 읽으려 할 때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 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인 것입니다.

(38) 제 2의 이론도 제 1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지지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보는 각도가 틀릴 때마다 산의 모양이 틀리게 나타난다고 해서 산에는 객관적인 모양이라는 것이 본래부터 없다든가, 무한한 모양이 있다든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역사상의 사실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해석이라는 것이 불가결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해서, 또한 현존하는 햇허이 어느 것이고 완전히 객과넉이 못된다고 해서 이 해석이나 저 해석이나가 모두 매한가지라든가, 역사상의 사실이란 본래부터 객관적 해석에 의하여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든가 하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40) 비전문가들은 가끔 나에게 역사가들이 역사를 서술할 때에 어떻게 진행시켜 나가는가를 물어봅니다… 내 경우에는 우선 기본 사료라고 생각되는 것을 조금만 읽기 시작하면 근질증을 참을 수 없어서 그대로 쓰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부분이 처음 부분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어디거나 상관없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동시에 병행되어 나갑니다. 한편으로는 읽어가며 한편으로는 써 붙이고, 깎아내고 다시 쓰고, 지워버리고 하는 것입니다. 읽는 것은 씀으로 해서 인도되고 방향이 제시되고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즉, 쓰면 쓸수록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알게 되고, 내가 찾아낸 것의 의미와 관련성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41) 내가 확신하는 바로서는 적어도 역사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경제학자들이 인풋트와 아우트풋트라고 부르는 이 두 개의 과정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단일 과정의 두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42) 역사가는 사실의 천한 노예도 아니요, 억압적인 주인도 아닙니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과는 평등의 관계에 있는 것이며, 말하자면 기브 앤드 테이크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란 자기의 해석에 맞추어서 사실을 형성하고, 자기의 사실에 맞추어서 해석을 형성하고 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자 중의 어느 한 쪽만을 우위에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43) 사실을 못 가진 역사가는 뿌리를 박지 못한 무능한 존재입니다 역사가 없는 사실이란 생명없는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2. 사회와 개인
(45) 사회와 개인은 서로 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필요한 보충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47) 개별화의 증대라는 것은 발달된 근대사회의 불가피한 산물이며 이와 같은 경향은 사회활동 전체를 위에서 밑바닥까지 물들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개별화의 과정과 사회의 힘 및 결합력의 증대와의 사이에 대립관계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일 것입니다.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가 필요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51) 역사를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여러 개인이 려러 게인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견해에는 우리가 좀 더 깊이 검토해야 할 지나치게 단순하고 불충분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가의 지식이란 그 사람 혼자만의 개인적인 소유물은 아닙니다. 아마도 허다한 세대에 걸친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그러한 지식의 축적에 참가했을 것입니다.

(59)역사가는 역사를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역사의 산물인 것입니다.

(59) 격동기의 역사가들 중에는 그 저작 속에 하나의 사회와 하나의 사회질서가 반영되지 않고 여러 질서의 계기가 반영되고 있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63) 나의 목적은 역사가의 연구가 자기가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인가를 분명히 하자는 데에 있을 뿐입니다. 흐름 속에 잇는 것은 사건만이 아닙니다. 역사가 자신도 역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책을 집어들 때에는 표지에 적혀 있는 저자명을 찾아본다는 것 만으로서는 충분치 못합니다. 출판시일이나 집필시일도 아울러 유의하셔야 합니다. 만일 똑 같은 강물 속에 사람은 두 번 다시는 들어설 수 없다는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두 책을 쓸 수 없다는 말도 똑같은 이치에서 진실일 것입니다.

(66) 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달라짐에 따라서 사회와 관점이 자기들과 어떻게 달라지는가 라는 차이점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보다 유능하다는 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입장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란 자기가 그러한 조건 속에 얼마나 깊이 사로 잡혀 있는가를 자각할 수 있는 감수성 여하에 달렸다고 봅니다.

(66)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서 우선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십시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러한 이중의 시점 하에서 역사를 보는 눈을 길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71) 인간을 개인으로 보는 견해가 인간을 집단의 일원으로 보는 견해보다 덜 잘못되었다거나 많이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고 있는 것은 이미 양자를 명확히 구분하려는 태도에 있는 것입니다.

(76) 여러 저술가들도 인간의 개인 행동은 왕왕 행동자 자신은 물론 딴 어떤 개인도 의도하지도 않았고 욕구하지도 않았던 결과를 초래하는 수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를 표명해 왔습니다.

(78) 역사상의 사실은 확실히 여러 개인에 관한 사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이 고립해서 행한 행동에 관한 사실도 아니요, 또한 진실한 것이건 상상적인 것이건 개인들이 자기 행동의 동기였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동기에 관한 사실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 있는 개인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이며 또한 개인행동으로 하여금 왕왕 행위자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의 아니 때로는 반대의 결과까지를 초래하게 하는 사회적인 힘에 관한 사실인 것입니다.

(82) 헤겔,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시대의 의지를 전해주고,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83) 위대한 인물은 항상 현존하는 세력의 대표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존권위에 도전하는 방법을 통하여 그가 그 창조를 돕는 세력의 대표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와 같이 기존 세력에 업혀서 위대하게 된 인물들보다는 크롬웰이나 레닌과 같이 자기를 위대하게 만들어준 세력 그 자체의 형성을 조력한 위인들의 창조력이 보다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자기 시대보다도 너무 앞섰기 때문에 그 위대성이 후대에 가서야 겨우 인정받게 된 위인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사역인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 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83) 역사가와 그의 사실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상호과정은 나는 그것을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만 추상적인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금일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와의 대화인 것입니다.

(84)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의 지배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인 것입니다.


3. 역사와 과학과 도덕
(89) 과학자드의 발견이나 새로운 지식의 획득도 정밀한 포괄적인 법칙을 확립함으로써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구분야를 열어줄 여러 가설을 설정함으로써 이룩된다는 것은 이미 인정된 사실입니다.

(91) 역사가들이 연구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의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94) 오늘날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이 품고 있는 희망은 보다 온건한 것입니다. 즉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로부터 또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을 찾아서 점진적으로 전진하며, 해석을 매개로 하여 사실을 추출하고 다음으로는 추출된 사실을 가지고 해석을 테스트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100)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가인 이상 사실과 해석과를 분리시킬 수 없듯이 이 양자도 서로 때놓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양자 중의 하나만을 우위에 올려놓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102)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한 경우의 사건에서 얻어낸 교훈을 딴 대목의 사건에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104)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은 아닙니다.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의 빛에 비추어서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양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북돋아 주는데 있습니다.

(105) 역사가에게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은 아닐지라도 미래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가는 특정된 사건에 대한 예언은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특정된 것이란 단일한 것이고, 거기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115) 나는 역사가란 자기 문제를 신의 조화력 같은 것에 의지하지 않고 풀어나가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역사란 말하자면 죠카 없이 노는 트럼프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119) 크로체, ‘ 역사를 쓴다는 구실 하에 마치 재판관이나 된 것처럼 여기서는 유죄판결을 내리고 저기서는 무죄판결을 내린다는 식으로 법석을 떨면서,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직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133) 역사가와 자연과학자는 설명을 구하는 근본 목적에 있어서나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답하는 근본 절차에 있어서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역사가도 그 밖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왜냐’ 라는 의문을 부단히 추궁하는 동물입니다.


4.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135)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입니다. 역사가는 내가 첫 번 강연의 마지막 대목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왜냐’라는 물음을 부단히 추궁하는 것이며, 해명의 희망이 있는 한 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역사가 - 아니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위대한 사상가 - 란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혹은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왜냐’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138) 여러가지의 원인을 종류에 따라서 – 기계적인 원인, 생물적 원인, 심리적 원인 등으로 – 구분해 놓고 역사적 원인도 특수한 카테고리의 원인으로 취급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구분 방법에도 어느 정도의 유요성이 없는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러나 당면한 목적을 위해서 그들간의 차이성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모든 종류의 원인에 공통된 점을 강조하는 편이 보다 유익할 것입니다.

(141) 역사가가 원인을 다양화하는 동시에 원인을 단순화해 나가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과학가 마찬가지로 역사도 이러한 이중적인, 분명히 상반되는 과정을 통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142) 방향을 바꾸어서 우리들의 길목에 가로놓여져 있는 두 개의 매력적인 함정에 대해서 논해야만 하겠습니다. 그 하나는 ‘역사에 있어서의 필연’이라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헤겔의 간계’라는 표딱지가 붙어있고, 다른 하나는 ‘역사에 있어서는 우연’이라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는 표딱지가 붙어 있습니다.

(145) 결정론이란 모든 일에는 하나 혹은 몇 개의 원인이 있고, 원인들 중 하나 혹은 몇 개에 변화가 없는 한 그 일에도 변화가 있을 수 없는 신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149)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가 자유의지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의에 의한 행동에는 원인이 없다고 하는 당치도 않은 가설을 거부한다는 것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가피성이라는 문제도 역사가에게는 큰 골치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158) 역사적 사건이 융성과정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라 퇴락과정을 거듭하고 있는 집단이나 국민에게 있어서는 역사의 기회나 우연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이 우세한 법입니다. 시험의 결과란 결국 제비 뽑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 라는 생각은 열등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60) 솔직히 말해서 (마르크스 등의 이론은) 나에게는 이상과 같은 이론은 불만족스럽고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오늘날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의 역할이라는 것은 그것을 중요시하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엄청나게 과장되고 있습니다. 확실히 우연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 진행에 지속을 초래할 뿐, 그것을 변형시킬 수는 없다는 것은 말재주를 부리는 데에 불과합니다… 어떤 일을 운이 나빴다고 기술해버리는 것은 그 원인을 캐낸다는 귀찮은 의무를 면하려고 할 때 즐겨 쓰는 방법입니다.

(161) 제대로 된 역사가라면, 지금까지 우연사로서 취급되어 오던 사건도 그것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는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도 있고 적절한 의의를 부여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는 경우를 흔히 체험하는 것입니다.

(161)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의 구분은 엄격한 것도 아니요, 불변한 것도 아닙니다. 즉, 어떤 사실이건 일단 그 적합성과 중요성이 인정되기만 하면 역사적 사실의 지위로 승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역사가들이 원인을 취급하는 마당에 있어서도 다분히 유사한 절차가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가의 원인에 대한 관계는 역사가의 사실에 대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상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165) 결국 역사란 역사적 의의라는 견지 하에서 선택과정인 것입니다. 역사는 현실에 대한 인식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인과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적 의의에 대한 규준이 되는 것은 자신의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의 원형 속에 인과 연쇄를 맞추어 넣는 역사가의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168) 역사에 있어서 인과의 문제를 다루어 나가는데 열쇠의 역할을 다해주는 것은 틀림없이 목적이라는 개념입니다.

(170) 역사가는 ‘왜냐’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라고 묻는 법입니다.


5. 진보로서의 역사
(173) 역사 과정이 향해 나가는 고올을 설정함으로써 전연 새로운 요소 - 목적론적 사관 -를 도입한 것은 유태인들이었으며, 다음에는 그리스도 교도들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역사는 의미와 목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만 그 대신 현세적인 성격을 상실했습니다.

(175) 자연적 자원에 대한 인간의 힘과 인류의 복지를 위한 그 지적 이용방법은 장래에 있어 무한히 발달할 것으로 본다.

(183) 사실 내가 만일 역사의 법칙이란 것을 만들어 내겠다고 애써 본다면, 어떤 시기에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집단 - 계급, 국가, 대륙, 문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만 - 은 다음 시기에는 같은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취지의 것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집단에는 전시기의 전통과 이해와 이데올로기가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다음 시기의 요구 조건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당연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집단에게는 몰락의 시대로 보이는 것이 딴 집단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전진의 시작이라고 보인다는 일이 극히 흔하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보란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187) 진보라는 것은 추상적인 말입니다.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 목적은 역사진행의 과정 속에서 그때그때마다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의 외부에 어떤 출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0) 역사에 있어서의 절대자는 우리가 출발해 온 과거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니요, 현재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모든 사고는 상대적인 것일 수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생성도상에 있는 어떤 것이며, 우리가 전진해 나가는 미래 속에 있는 어떤 것, 우리가 그것을 향해서 전진해 나감에 따라서 비로소 모양을 취하기 시작하는 것, 또한 전진도상에 있는 우리들이 조명하에서만 과거에 대한 해석을 점차로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어떤 것입니다.

(193) 미래만이 과거를 해석할 열쇠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만 우리들은 역사에 있어서의 궁극적 객관성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가 미래를 조명하고 미래가 과거를 조명한다는 것은 역사의 합리화인 동시에 역사의 설명입니다.

(193) 우리가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할 때에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그것은 그 역사가가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로는 그 역사가는 자신의 비전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그 안목이 전적으로 목전의 자기 위치에만 국한되어 있는 역사가들보다는 과거에 대한 더욱 깊고 더욱 영속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4) 오히려 역사는 과거의 제사건과 점차적으로 우리들 앞에 출현하게 될 미래의 제목적과의 대화라고 말씀드렸어야 했을 것입니다

(204)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1920년대의 역사가가 1880년대의 역사가보다도 객관적 판단에 가깝다는 것, 오늘날의 역사가가 1920년대의 역사가보다도 더 가깝다는 것, 아마도 기원 2000년의 역사가는 더욱더 객관적 판단에 접근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역사에 있어서의 객관성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목전에 놓인 어떠한 고정 불변의 판단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놓여있는, 그리고 역사 코스의 진전과 더불어 발전하는 그러한 기준에만 의존하고 생존할 수 있다는 나의 주장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것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에만 의미와 객관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206)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과정을 가장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객관적인 역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과 가치에 관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단서는 보통 우리들이 ‘진리’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의 양쪽에 걸쳐 있는 말로서 양쪽의 요소에 의하여 성립되고 있습니다.

(208) 역사는 본질상 변화요, 운동이요 - 만일 여러분이 낡아빠진 말이라고 탓하시지 않는다면 - 진보입니다. 이리하여 나의 결론은 진보를 가리켜서 ‘역사 서술의 토대가 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 가설’이라고 말한 액튼의 말에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08)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


6장. 넓혀지는 지평선
(219) 자기 자신과 역사에 있어서의 자신의 위치를-아마도 이것은 숨은 동기에 속하겠습니다만-문제나 시기의 선택을 이끌어준 동기를, 사실의 선택과 해석을 이끌어준 동기를, 그리고 자신의 시각을 결정해준 국가적/사회적 배경을, 과거 관을 형성해 주는 미래관을 음미하라는 것입니다

(222)인간세계에 대한 이성의 적용의 전진을, 그리고 자신과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할 인간능력의 증대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만일 필요하다면 낡은 표현을 빌려서 이것을 진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고 봅니다.

(222) 오늘날에 와서는 과학조차도 객관적인 자연법칙을 탐구하고 확립한다는 것보다도 자연을 자기 목적에 이용하고 자기 환경의 변형을 가능케 할 유용한 가설을 짜내는 데에 더욱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이성의 의식적인 활용을 통해서 환경을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을 변조한다는 일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26) 교육은 개인의 능력과 기회를 넓히고 따라서 개별화의 증대를 촉진함에 있어서 불가결한 강력한 수단입니다만 그 반면에 이익집단의 수중에 있어서는 사회의 획일성을 촉진시키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239)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두 가지 요소, 그것은 변화를 역사에 있어서의 발전적 요인으로 본다는 감각과, 이성은 변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라는 믿음입니다.

(244)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위대한 과학자의 낡은 말귀를 가지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래도 역시 그것은 움직인다.


3. 내가 저자라면

인터넷에서 이 책은 고급 수준의 역사 전문가 뿐만 아니라 역사학에 대해 접근하고자 하는 일반인에게도 필독도서로 분류될 정도로 공신력 있는 역사서라는 문구를 보았다. 역사에 대한 관심과 배경지식이 부족해서일까? 나에게는 이 책이 ‘입문서’라 생각하기엔 어렵게 느껴졌다. 머리를 한줌씩 뜯어가며, 헐떡거리며(?) 겨우 읽어내려간 듯 하다. 읽고나니 그의 생각이 의외로 단순하다는 것과, 책이 상당히 논리적으로 쓰여졌음을 알게 되었다.

정반합(正反合)으로 귀결되는 논리 전개
“제 2의 이론도 제 1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지지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보는 각도가 틀릴 때마다 산의 모양이 틀리게 나타난다고 해서 산에는 객관적인 모양이라는 것이 본래부터 없다든가, 무한한 모양이 있다든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 p.38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배운점은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책의 각 장은 전개가 매우 논리적이다.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를동원하여 제시하는데, 이 때 헤겔이 정형화한 정반합의 구조를 쓰는 느낌을 받았다. 정반합이란 어떤 것 즉 정(thesis)이 있으면 그기에 반하고 역하는 반(antithesis)이 있고, 그 둘의 투쟁과 교류속에서 융합.변성된 합(synthesis)이 생겨난다는 철학이다. 저자는 두개의 대립되는 의견을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대립시키고, 그 속에서 새롭게 확장되고 통합된 ‘모순을 끌어안는’ 합(合)을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1장 ‘역사가와 사실’에서 그는 정(thesis)의 주장으로 사실을 중시하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반(antithesis)으로서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없다’를 제시하며 종국에 작가의 견해인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를 내어놓고 있는 형식이다. 4장의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에서 그러한 전개가 빛을 발하는데, 역사의 결정론과 인간의 자유의지로 대변되는 두 개의 의견에 대해 그는 ‘목적’개념을 주장하며 기존의 두 이론을 확장시킨 새로운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기존 주장의 설명과 종합, 그리고 논리적 반박
카는 자신의 주장을 위하여 주로 다른 학자들의 주장을 종합 정리하여 이에 대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반박을 이용하고 있다. 조목조목.. 인상적. 처음에는 그들의 주장을 개념을 알기 쉽도록 충분히 설명하는데, 이 때에는 완전히 몰입하여 설명하고 분류해둔다. 그리고 도출된 각 항목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따져서 의견을 반박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3장의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에서는 역사가가 연구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가 과학자가 사용하는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보고 이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다섯 가지의 근거(특수성, 교순, 예언, 주관적, 종교 및 도덕)들을 들며 제시한 후, 이러한 반론들에 대해 카는 놀라울만큼의 논리적 근거를 들며 각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의 주장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로 논리적으로 또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그 어떤 과학서적 못지 않은 논리정연함을 보여주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이해를 돕기 위한 쉽고 재미있는 비유들
“역사란 말하자면 죠카 없이 노는 트럼프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나는 역사가란 자기 문제를 신의 조화력 같은 것에 의지하지 않고 풀어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 p. 115
“보는 각도가 틀릴 때마다 산의 모양이 틀리게 나타난다고 해서 산에는 객관적인 모양이라는 것이 본래부터 없다든가, 무한한 모양이 있다든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 p. 38

본래 잘 빗댄 비유 하나가 여러 페이지의 설명보다 나은 법이다. 그러나 비유를 선택할때에는 신중해야 한다. 단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사용된 잘못된 비유로 우리는 얼마나 길을 헤멨던가. 카의 비유 - ‘클레오파트라의 코’, ‘자동차사고와 담배’ – 는 상당히 재미있고 상황과 잘 들어맞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BBC방송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한 연속 강연의 내용을 책으로 낸 것이라 청자와 독자들이 알기쉽게 설명하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글로 표현하기 전에 먼저 말로 설명해 볼 것. 그럼으로써 새로운 비유와 쉬운 설명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큰 흐름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
책의 주제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이것이 1장에 제시된 책의 큰 흐름이며 줄거리다. 나머지장은 이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하고 있다. 2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사회’라는 용어를 하나 더 추가한다. 3장에서는 원인, 4장에서는 과학과 도덕, 5장에서는 진보를 추가하는 식이다. 주장이 되는 문장을 미리 제시하고, 그 개념을 나머지 장을 할애하여 다차원적으로 풀어 놓는 것. 그가 3장에서 말한 역사가의 역할 중 ‘여러가지 원인의 규명과 우선순위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책에서 아쉬운 점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많은 인용, 중간자적 입장 때문에 핵심이 흐려져..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를 동원하여 문제를 지적한 것은 좋다. 그러나 그 인용이 너무 많거나, 너무 다양하여 오히려 독자의 혼란을 부추기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또한 두 개의 대립되는 주장의 통합이라기 보다는 가끔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이를 설명하고 있어 명쾌하지 않은 구석도 있다. 나아가 1장에서 제시한 명쾌한 해답이 시간이 지날수록 살을 덧붙이거나 수정을 가하고, 마지막에 ‘그래도 역시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끝을 맺고 있어, 처음의 주장이 조금 덜 명쾌해지는 느낌이 든다. 각 장이 흘러가면서 수정 혹은 반복되거나, 앞서 언급한 내용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그 내용을 끌어다쓰는 식의 요소들이 핵심을 흐리고 있다.


카(Carr)가 삼천포에 빠진 날
대학 강연에서 비롯되어 쓰여진 탓일까? 가끔 삼천포로 빠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5장의 진보와 진화의 차이를 설명할 때이다. 두 단어간의 혼란성을 해소를 시도하고 있지만 오히려 일반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굳이 둘 간의 차이를 짚을 필요가 있었을까? 이런 ‘삼천포’는 군데군데 나오는데, 거기에 너무 많은 인용들이 더해져 책의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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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5.07 04:02:46 *.109.109.246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옹박의 '내가 저자라면'은 우리 연구원 북리뷰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헐떡'거리며 읽어내고도 이렇게 시원스레 풀어쓴 걸 보면서 '옹박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네.

길현모 선생님에 대한 부분에서 인용한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구본형 선생님께서 이 사이트와 신동아 등에 올리신 '길현모 선생님, 중요한 길목마다 그 분이 거기 서계셨다'를 천천히 읽어보니까 길현모 선생님께서 짧게 하신 말씀을 구본형 선생님만의 스타일로 다듬으신 것 같네.

암튼 이번에도 수고했네~ 하루 연기됐다더니만 벌써 해치워 버리다니... 부러운걸. 난 어쩌나? 잠시 눈이라도 붙이러 가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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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5.07 04:16:38 *.112.72.193
아.. 그렇군요. 역시 사부님이 정리하신 것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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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7.05.07 10:03:11 *.99.120.184
이 책을 읽으며 나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지. 공학과 인문학, 추상과 사실 등 상대적 개념들을 비교해보았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어. 옹박은 힘들게 읽었다고 하지만 정리는 깔끔하게 잘 했는데...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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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5.07 18:00:33 *.231.64.5
옹박!
경제학이나, 정치학의 서적을 읽으면 특히 번역서는 도시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무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학문으로서는 높은 경지에 올라도 문학적인 성향이 없기 때문에 높은 학문이 빛을 발하지 못함이다. 소월시를 영작하면 코큰 사람이 이해 못하듯이, 자넨 그걸 극복해 낼 것 같다. 재미있게 쓰고, 알기쉽게, 진리는 쉬워야 만인이 그 말에 동조하고 따른다.

어려운 책을 읽고 뽑내는 것은 자네가 생각해도 머석하잖아, 폼이지 진리는 아니다. 대학교수님들의 작태가 이렇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가. 원서를 읽는 것이 더욱 쉬울 것이다.

옹박!
중학교 정도의 독자를 대상으로 써도 고졸이 읽기 어려운 것이 글이라는 점 꼭 명심해라.

길현모 선생님의 추적은 넘 멋있다. 잘 읽고 나가네 건강하시게, 글구 연애에 속 석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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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5.08 13:35:25 *.55.56.68
창용이형/ 예, 이번에 저도 무진 고생했네요. ㅎㅎ 어린이날 잘 보내셨어요?

초아선생님/ 아~ 알기 쉽게 쓰는게 정말 참 어려운것 같아요. 완벽히 이해하지 않으면 쓰기 어려우니까요. 비전문가만이 전문 용어의 뒤로 숨는 법이라는데, 저 역시 자꾸 그렇게 되네요. ㅎㅎ 점점 나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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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7.05.09 21:52:00 *.109.237.110
책이 어려웠다더니.. 정리는 깔끔하네~
특히 길현모 선생님 부분과 책 전개 부분이 좋다.
오빠, 잘 읽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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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0 11:11:55 *.75.15.205
너를 처음 보았을 때 생각한 것, 너는 반드시 커다란 광장에서 강연을 할 것이고 훌륭한 책을 낼거야. 그런데 아직은 더 많이 죽기 바래.
왜냐면 젊으니까. 사부님은 완벽하실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날마다 돌아가시는 것 같아. 그래서 즐거우신게 아닐까? 너가 10기에서는 막내였는데 조교님이 되었네. 기대가 크다는 것, 네가 그만큼 더 많이 죽어야 한다는 것도 알지? 거시기까지 떼가면서... 사랑해. 난 네가 폭 안아줄 때 참 좋더라.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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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5.11 08:47:09 *.55.55.206
누나 ㅋㅋㅋ
'거시기를 뗐다-사랑해-폭 안아줄때 좋더라' 요 세개만 보면 웃기잖아요. 오해하겄네. ㅎㅎ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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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1 10:05:07 *.75.15.205
역시, 너무 논리적이다앙.. 네 거시기도 귀자한테 붙였던거 아니냐.
박.완.빈은 다 거시기 없잖아. 물론 사부님도... 근데 요즘 산인지 하는 양반도 뗄까말까 하는 거 같어.ㅋㅋ

내가 택시비 보탠다고 야심한 밤에 기사양반 보는 앞에서 멀뚱~섰다가 괜시리 안아주고 갔잖어. 네 가슴이 큰 것 그때 알았네.. (기사양반 뭐라 안하대? 강변북로로 마구 빙빙돌아 요금 엄청나왔지.. ) 뭐, 또 택시비내라고? 그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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