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정재엽
  • 조회 수 5891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7년 5월 12일 15시 34분 등록
<심연 깊은 속에서 끓어 올린 예술의 정수>

- 봉인된 시간 –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지음, 김창우 옮김, 분도출판사 1991.


글을 쓰기 앞서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부터 늘어놓아야겠다.

텍스트 비평을 하기엔 그 대상에 대한 배경지식이 턱없이 부족함을 토로하던 중, 우연히 정성일이라는 영화평론가가 추천한 책 10권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성일, 이라는 영화평론가는 우리나라의 영화 평론계의 대부라고 불리우기도 하지만, 정작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 때 ‘키노’라는 잡지에서 주관한 대학생 영화평론상이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그 평론상에 당선이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출품작이 아주 미미해서 그 중 그나마 ‘평론’이라 불릴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는 것이 바로 내가 쓴 글이었다는 것이다.

어쨌건, 대학생의 신분으로 본 영화 잡지의 세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무언가 인문학적인 텍스트 분석을 기대했던 나에게, 그 잡지사는 기사의 내용과 질 보다는 오히려 ‘영업’을 통해 하루하루를 일구어 내려는 모습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영화잡지사 라는 곳이 영화라는 텍스트의 성격보다는 잡지사의 유지 쪽에 어렸던 나에게 더 어필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 잡지사의 편집장이 바로 정성일 선생이었고, 나는 그 후에 그 쪽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 후 한동안 영화라는 것은 철저히 즐기는 것, 이라는 인식이 나를 지배했고, 무언가를 분석을 한다거나 곱씹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나에게 인문학을 강조하는 수업과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환경이 주어졌고, 나는 우연히 내가 잊혀지냈던 영화를 읽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물어물어 글쓰기 수업에도 찾아가게 되었고, 사설 강좌를 통해 영화에 관한 수업에도 나를 노출시켰다. 그러던 중, 정성일 선생이 추천한 영화에 관한 책 10권의 리스트를 수중에 넣게 되었던 것이다.

비참하게도 그 10권의 책 중 내가 읽었던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을 서술해 놓은 기술서적도 상당했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 열권의 책중 6권이 더 이상 발간이 되지 않아 서점을 통해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10권 정도는 읽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단순한 생각에 그 책들을 한 권씩 모으기로 했다. 먼저 인터넷 헌책 방을 통해서 구해 보려고 했다. 그러니 이메일을 통해서 연락이 왔고, 몇 권은 출판사 쪽에 직접 전화를 해서 반품으로 들어 온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민음사에서 나온 <영화와 빛>, 이라는 책과 <영화와 모더니티>, 라는 책은 내가 직접 민음사에 출동하여 영업담당자와 창고를 뒤져 구해냈다. 그런데 웃긴 것은 그렇게 어렵사리 책을 구해서 막상 읽으려고 하니 그 내용들이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의 많은 평론가들이 즐겨서 인용하는 ‘슬라보예 지젝’의 책들부터 러시아의 명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쓴 책에 이르기까지, 정말 이렇게 어렵게 구한 10권의 책들을 다 읽어낼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먼저 비교적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책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기술서들은 나중으로 미루어 놓고, 먼저 수필이나, 철학책을 위주로 시작해야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10권의 리스트 중 처음으로 들은 책이 바로 이 책 ‘봉인된 시간’ 이다.

이 책은 앞서도 잠시 소개했듯이 러시아의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그의 예술관과 영화관을 기술해 놓은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중반, 그의 영화가 개봉을 했는데, 이례적으로 매진사태를 이루어 영화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의 영화 ‘희생’은 말 그대로 관객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대화나 음악이 없이 한 노인이 꼬마와 함께 나무에 물을 주는 장면만 10분 정도 롱테이크로 이끌어가는 아주 ‘엽기적인’ 영화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그만큼 그의 독특한 세계관과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먼저 이 책의 뒷편에 소개되어있는 그에 관한 짧은 글을 읽어보자.

먼 훗날 이 시대에도 영화다운 영화가 있었다고 평가된다면 바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까지 이야기 되는 사람. 영화감독은 철학자가 되었을 때만 비로소 예술가이고 영화는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보았던 영화인.
감독이 되고자 하는 것은 자기의 전 생애를 모험에 거는 일이라고 말했던 영화작가.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흥미 위주의 상업주의 영화에 저항하면서 끝까지 ‘예술로서의 영화’를 지켜내려다 죽어간 ‘순교자.’

탁류와도 같은 오늘의 물질주의 세계에서 맑고 드높은 인간의 영성을 추구한 사람. 영화도 학문도 절대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라 보면서 인간 구원의 문제에 매달렸던 구도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그는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나?

이 책 곳곳에서 그는 영화 감독은 철학자이며, 또한 시인이며, 예술가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상업영화의 경우에 관객들을 향해 무엇을 보여줄지 이야기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관객에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할 것을 이야기한다. 비록 그것이 현재에 주목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자기의 생각과 사상을 이해해줄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를 위해 영화를 만드는 작업 자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인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영화 감독의 면모는, 감독이 자신의 구성 속에 혹은 완성된 영화 속에 감독 자신의 확고부동한 영상 구조를 갖추고 현실 세계에 대한 감독 자신의 사고 체계가 확립되어 있을 때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감독의 이 사고 체계는 감독이 자신의 가장 은밀한 꿈들을 알려주는 관객들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오직 감독이 사물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드러냈을 경우에만, 즉 일종의 철학자가 되었을 경우에만 감독은 비로소 예술가인 것이며, 영화는 영화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P.75)

그는 영화의 본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삶의 물질성은 물질성이 완전히 용해되어 없어져 버리는 그 경계선상에 존재한다. 영화의 힘은, 영화의 시간을, 우리들이 매일매일, 매시간 부딪치는 현실의 문젯거리들과 현실적이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을 맺도록 하는데 있다. 예술로서의 영화를 주장하는 근본 이념은 바로 “실제적 형식과 현상 속에서 사로잡은 시간” 이다. (p.79)

그는 또한 영화관에 가는 이유에 대해서 좀 더 근본적으로 다가간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영화관에 가는가? …. 바람직한 것은 세계관을 획득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영화의 원칙적 본질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인간은 보통 읽어버린 시간, 놓쳐버린 시간, 또는 아직 성취하지 못한 시간 때문에 영화관에 간다. 인간은 살아 가는 삶의 경험을 얻으려고 영화관에 간다. 왜냐하면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영화야 말로 인간의 실제적인 경험을 풍부하게 하여주고 경험을 통해 인간을 노련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 영화의 힘을 바로 여기에 있지 영화사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 내는 스타라든가, 진부하고 낡은 주제라든가 또는 현실을 망각하도록 유도하는 오락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p.80)

이런 이유를 통해 영화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영화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시간을 빚어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조각가가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자신이 만들어낼 조각품의 윤곽을 보고 이에 걸맞게 대리석 덩어리의 모든 필요없는 부분을 쪼아내 버리는 것과 흡사하게, 영화 예술가 역시 삶의 사실들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정리 되지 않은 혼합물들 속에서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자신이 만들어 낼 영화의 요소가 되고 예술적인 전체 형상의 없어서는 안될 모든 순간만을 남겨 두는 것이다. (p.80)

그는 다른 인접 예술과 영화를 비교해 영화가 ‘예술’일 수 밖에 없는 우월성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영화는 종합 예술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희곡, 산문, 연기, 미술, 음악 등등의 인접한 예술 분야들의 상호 교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인접 예술들의 상호교류가 영화 예술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침으로써 영화 예술은 난데 없는 절충적 혼돈의 세계에 빠져 버리고 만다. … 문학적 사고와 회화적 조형성의 결합만으로는 결코 영화 예술적 형상을 빚어 낼 수 없다. 이런 결합은 오직 과장되고 엄청난 절충주의를 빚어 낼 뿐이다. 심지어 시간의 움직임과 시간의 조직에 관한 영화의 법칙도 연극 속의 무대 위의 시간이 갖는 법칙을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p.80)

그는 예술가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일침을 놓는다.

예술가는 경박해서는 안 될 의무가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촬영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신의의 내적 관심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자신의 원초적인 흥미를 분명하게 드러낼 어떤 권리도 갖고 있지 않다. 어떤 이레 대한 내적 관심은 반드시 신과 같이 평정한 형식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안된다. 오직 이런 방법으로만 예술가는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p.98)

그는 예술가라는 것은 현실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답을 어쩌면 영원히 찾지 못하는 순례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예술가는 미학 자체를 위해서 표현 양식을 탐색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는 그보다는 현실을 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 줄 수 있는 표현 수단을 고통스런 작업 과정을 통하여 발견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 오랜 생각 끝에 확신을 갖고 태어난 표현이 아니고 단순한 일회적 기지의 소산인 표현들이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은 오직 인간 문제일 뿐 반드시 가차없이 드러나게 된다. 왜냐하면 창조적 작업이란 단지 얼마간의 직업적 기능만 있으면 얻을 수 있는 객관적 정보를 형상화 하는 작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작가 자신의 존재 양식인 것이며 그 작가의 유일하게 가능한 표현 양식인 것이다. (p.126)

책의 마지막에 소개된 한스 요아킴 슐레겔에 의하면 타르코프스키가 20세기 전위 예술가들을 부정하는 이유는 그들이 ‘예술이 점차 영적 정신성을 상실’한 그 순간에 대두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이 책의 전반을 통해 그가 자주 읽었던 톨스토이와 도스도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자주 논하면서 엄격한 도덕주의와 함께 ‘예술가의 책임감’ 에 대해서 심각하게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이 책의 말미에서 물질만능주의의 소비이기주의에 빠져있는 현대 문명을 강도높게 비난한다. 그는 작품들 속에서 궁극적으로 이성적 분석이 불가능한 창조의 세계를 발견하고, 무언가 종교적이고, 절대 진리가 추구하는 최후의 목적을 발견하는 것이 예술이 가지는 최종의 목표임을 관객들에게 입증한다. 즉, 예술창조라는 것은 인간 영혼의 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신의 기계라는 것이다. 그는 그의 영화를 볼 때 분석ㅈ거이며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며, 자연 경치를 볼 때처럼, 음악을 들을 때처럼 명상적으로 빠져 줄 것을 요구한다. 즉, 여화 감상이란 영화적으로 ‘포착된’ ‘봉인된 시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이야기하며, 이 봉인된 시간의 현실에는 항상 꿈과 추억의 내적시간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의 타협할 줄 모르는 예술관은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그는 예술과 상업적 상품 사이에 놓여진 영화의 보편적 양면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업영화의 탄생은 하나의 죄악’ 이라고 규정하는 비타협적인 그의 주장에, 미지의 낯선 지역에서 영혼을 찾아 헤매며 잃어버린 희망과 믿음 사이에 가슴 아파하던 그의 작품 <노스탈지어:향수>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보통 영화의 성격상 상업영화에 너무나도 많이 노출이 되어있는 우리의 영화 풍토상, 영화란 저급하고 하급한 대중문화로 보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같은 작가는 그러한 대중문화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숨을 다 바쳐 영화란 예술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준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그가 쓴 이러한 글처럼 어느 한 분야에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비록 상업적으로 실패한다 할 지라도 그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의 예술관을 펼쳤을 것이다. 진정으로 그가 영화란 예술, 이라는 공식을 믿었기에 그는 비록 제작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다해서 조급해 하지 않았으며, 그가 제작을 하고 있는 그 순간순간에도 그에게 부여된 재능을 활용할 수 있었기에 행복했노라고 술회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삶의 태도, 영화에 대한 사랑과 확고한 세계관은 비록 영화 쪽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건, 아니면 관심이 있는 사람이건 아니던 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에서 누가 어떻다 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우루루루 몰려가 마녀사냥을 하고, 지난번 마녀사냥 된 사람들의 후일담에 히죽거리는 우리의 현실이야말로 저급한 것은 아닐지. 이런 혼돈과 혼란의 홍수 속에서 이런 보물과도 같은 책을 만날 수 있었기에 나는 정성일 선생이 추천한 10권의 책을 다 읽지 않을 수 없다.

안드레 타르코프스키
1932 러시아 자브로지 출생
1954 러시아 영화학교 VGIK 입학
1960 졸업작품, <증기 롤러와 바이올린>
1962 <이반의 어린시절>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수상
1966 <안드레이 루브료프> 칸영화제 국제 비평가상 수상
1972 <솔라리스>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1975 <거울>
1979 <안내인>
1982 <노스탈지어> 칸영화제 창조적 영화대상, 국제 비평가상,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성
1986 <희생> 칸영화제 대상,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IP *.165.140.138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05.13 13:47:00 *.70.72.121
어렵기도 하지만 좋으네요. 해설 평을 듣듯 즐겁고요. 10권이 기대 되는군요. 열심히 하는 당신 사랑해요. ^-^
프로필 이미지
정재엽
2007.05.13 21:01:31 *.165.140.138
영화에 관심있으신 분들, 혹 구도자적 예술가의 길을 간 사람에 대한 흔적을 알고 싶으신 분들께 정말 권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32 We, the People-Leo Huberman [3] [2] 海瀞 오윤 2007.05.13 2284
» &lt;봉인된 시간&gt;을 읽고- [2] [14] 정재엽 2007.05.12 5891
830 처음처럼-신영복의 아름다운 세상이야기 [6] 도명수 2007.05.11 3114
829 역사란 무엇인가 (E.H. Carr/길현모) [5] [2] 써니 2007.05.08 5677
828 역사란 무엇인가 (Edward Hallett Carr)009 [8] [2] 최정희 2007.05.08 2291
827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5] 현운 이희석 2007.05.08 2352
826 (009) 역사란 무엇인가 [2] 교정 한정화 2007.05.11 2108
825 [독서009]역사란 무엇인가 [5] 素田최영훈 2007.05.08 2390
824 역사란 무엇인가, E. H. Carr file [7] [2] 香山 신종윤 2007.05.08 4485
823 (009)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8] [2] 時田 김도윤 2007.05.09 2752
822 역사란 무엇인가 / E. H. 카 [3] [12] 박소라 2007.05.08 2860
821 歷史란 무엇인가/E.H.Carr [5] 香仁 이은남 2007.05.08 2377
820 (09) 역사란 무엇인가 - E. H. 카 [9] [2] 박승오 2007.05.07 12145
819 역사란 무엇인가 / E.H.Carr [5] 好瀞 김민선 2007.05.07 3127
818 What is history?-E.H. Carr [6] 海瀞 오윤 2007.05.07 2326
817 역사란 무엇인가-E.H.Carr [5] 도명수 2007.05.06 4269
816 [역사란 무엇인가]역사는 변한다 [5] 余海 송창용 2007.05.06 2609
815 -->[re](그림) 사육제와 사순제의 싸움 file [3] 時田 김도윤 2007.05.03 5972
814 (08) 인간적인 길 - 자크 아탈리 [5] [2] 옹박 2007.05.01 2229
813 지식인 자크 아탈리 [3] [1] 최정희 2007.05.02 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