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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8일 23시 4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E.H. Carr(Edward Hallett Carr 1892년 영국 태생. 케임브리지대학의 트리니티 칼레지 출신. 1916년 이후로 약 20년간은 영국 외무부의 외교관으로서, 국내외에서 활약하다가 1936년부터는 웨일즈대학(University College of Wales)의 국제외교학 교수로서 학계에 투신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옥스퍼드 대학을 거쳐서 다시 1955년부터는 모교 케임브리지대학의 페로우로서 재직하였다.

E.H. Carr「역사란 무엇인가」의 내용은 1961년에 있었던 케임브리지대학의 연속강의 (The George Macaulay Treveiyan Lectures)에서 발표된 것으로서, 후에 BBC 방송이나 주간지 리스너(Listener)를 통해서도 일반에게 보급된 바 있다. 단행본으로서는 먼저 1961년에 맥밀란(Macmillan)사에서 출간되었고, 다시 1964년에는 펠리칸(Pelican)사에서 출간되었고, 다시 1964 년에는 펠리칸 (Pelican)의 포켓판으로 재출간되었다.

現代史, 그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사를 전문분야로 하는 그의 주저는 다음과 같다.
The Romantic Exiles (1933)
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 (1939)
Conditions of Peace (1942)The Soviet Impact on the Western World (1946)
The New Society (1951)
The Bolshevik Revolution, 1917~1923, 3 vols. (1950~53)
The Interreznum, 1923~1924(1954)
Socialism in One Country, 1924~1926, 3vols. (1958~64)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인간집단의 힘으로 진보” [한겨레 2004-12-05 20:42]

[한겨레] 역사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이다. 그만큼 역사 이론 문제를 본격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읽을거리로 꼽힌다.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중·고생의 권장도서목록에서도 보인다.
외교관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한 저자는 1961년에 모교인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를 주제로 여섯 차례 대중 강연을 한다. 이 강연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자 급기야 영국 비비시가 방송 강연을 요청한다. 이 책은 당시의 대중 강연과 방송 원고를 묶은 것으로 저자의 명성을 단번에 세계에 떨치게 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한 요지는 너무도 유명하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즉, 역사란 과거 사실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 사이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해석의 교환이라는 것이다. 사실의 정확성을 기본 전제로 삼되,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간의 계속적인 상호 작용의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주장이다.

그는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특출난 개인이 아니라 익명의 인간 집단이라고 본다. 역사는 상당한 정도까지 ‘수’의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무려 2500만명의 굶주림과 추위, 억압 등이 프랑스 혁명을 낳았다는 해석이다. 한편, 역사 밖에 있던 집단과 계급, 인민과 대륙이 역사 안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역사는 발전하며 진보한다고 강조한다. 당연히 미래 또한 낙관적이다. 그는 19세기의 주류였던 실증주의 사학은 물론, 이를 반박하며 등장한 주관주의 사학을 비판적으로 통합한 역사학자이자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역사관을 제시한 낙관론자로 평가된다.

그는 한때 신문사에서 부주간으로 일한 바 있다. 일간지 편집인의 시각과 역사가의 시각은 어떻게 같고 다른가? 탁월한 소비에트 전문가이기도 했던 그는 1917년 일어난 러시아 혁명이 20세기를 ‘새로운 사회’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에게 소련의 해체는 진보인가, 후퇴인가? ‘역사는 되풀이된다(History repeats itself)’고도 했다. 과연 그러한가? 아니면 그의 말처럼 인간 이성에 의해 역사란 진보하는 것인가? 허병두/서울 숭문고 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wisefree@dreamwiz.com ⓒ 한겨레(http://www.hani.co.kr)


역자 길현모
평안북도 희천 출생. 1928년 10월 8일 ~2007년 1월 10일. 전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1963부터 서강대학교 교수 재직.
1983부터 한림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저서 : 서양사학사론

『 ‘보통의 선생은 그저 말을 하고, 좋은 선생은 설명을 해주고, 훌륭한 선생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는 말이 있다. 나는 선생님에게서 학자의 모범을 보았고, 어두운 길 위에 뿌려진 달빛 같은 영감을 받았다. 내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나도 선생님처럼 누군가의 좋은 스승이 되고 싶다. 한없이 모자라는 사람이지만 선생님은 내게 이 열망을 품게 해 주셨다. 나이가 들어 연구원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나는 너무도 분명히 훌륭한 선생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고 만질 수 있는 행운을 가졌던 것이다. 』

이 책「역사란 무엇인가」의 역자 이며, 역사철학가인 길현모 선생은 변화경영연구소의 구본형 소장의 대학시절 은사이시기도 하다. 구소장님은 길현모 선생을 평생의 스승으로 마음 깊이 모시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일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인생의 길목 마다마다에서 스승과의 영감을 통해 삶에 체화시키고, 어떠한 간격에도 절연되지 않도록 스승의 가르침을 일생을 통해 얻고 지켜왔으며, 선생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스승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시며, 마치 신앙과도 같이 섬김을 다하시려 애쓰시는 모습이 우리 연구원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동아일보 2007-01-11 04:53]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고인은 1923년 평북 희천에서 훗날 제물포고 초대교장이 되는 길영희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서울대 사학과 출신 고 민석홍, 고 양병우, 노명식 전 서울대 교수와 함께 광복 이후 국내 서양사학계의 초석을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1963년 서강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전해종(동양사), 고 이기백(한국사), 이보형·차하순(서양사) 교수와 함께 역사학계에서 ‘서강학파’의 전성시대를 연 주역이었다.

고인은 군부독재를 비판해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한 차례씩 해직의 아픔을 겪었지만 꼿꼿함을 꺾지 않았다. 1983년 한림대 교수로 복직한 이후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66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한 것으로도 유명한 고인은 실증사학의 대명사인 랑케 사학을 비판하는 논문과 자본주의 이행논쟁 등에 대한 논문을 남겼다.
유족으로 인성 전 서강대 교수, 대성 삼성전자 부장 등 2남 1녀가 있다.


2. 내 마음 속에 들어오는 글귀들

1장 歷史家와 사실

케임브리지 근대사의 제1차와 제2차의 간행에 관련된 두 대목의 글을 빌려서 이야기의 주제로 삼아볼까 합니다. 액튼(John Action,1834~1902. 영국 史家)은『케임브리지 대학』출판부의 평의회에 보낸 1896년 10월의 보고서 가운데서 자기가 담당한 근대사의 편집사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몰론 우리 세대에 완전한 역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재래의 인습적인 역사를 청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전도상에서 우리들이 도달한 지점을 알려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현재에는 여하한 지식 자료의 입수도 가능하며 여하한 무제의 해명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p5

그런데 그로부터 곡 60년쯤 후에 사ㆍ죠지ㆍ클라크(Sir George Clark, 1890~, 영국 史家) 교수는『케임브리지 근대사』의 제2차 간행에 붙인 서론에서 완전한 역사를 언젠가는 쓸 수 있으리라는 액튼과 그의 협조자들의 믿음을 평하고 나서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음 세대에 속한 역사가들은 그와 같은 장래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업적이 계속해서 극복되어 나가리라고 내다본다. 그들은 과거에 관한 지식은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의 정신을 겪어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것은 절대로 변질 될 수 없는 원소적이고 비인간적인 원자와 같은 것으로 형성되었다고는 보지 않는 것이다. ....... 탐구의 길은 무한한 과정이라고 생각되며, 따라서 끈기 없는 일부 학자들은 회의주의에서 도피처를 발견하든가 혹은 기껏해야 모든 역사적 판단에는 인간이란 요소와 관점이란 요소가 포함되게 마련이니까 이것이나 저것이나 매한가지이고, 객관적 역사진리란 있을 수 없다는 학설 속으로 도피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p6

액튼과 죠지ㆍ클라크卿과의 충돌은 이들 두 발언의 중간시기에 걸쳐 나타난 사회관의 전체적인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액튼은 빅토리아시대 후기의 긍정적인 신념과 명철한 자신을 표명하고 있는데 반하여, 죠지ㆍ클라크卿은 비트ㆍ제너레이션의 당혹과 어지러운 회의주의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p7

역사란 무엇인가
1)우리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2)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라는 보다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답의 일부를 이루게도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과분하게 방대하고 중대한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 과분하게 여겨지지나 않을까 염려될 뿐입니다.

19세기는 사실을 존중한 대단한 시대였습니다.『어려운 세상』(Hard Times)의 그래드그라인드(Mr. Gradgrind)는「내가 바라는 것은 사실이다. ....... 인생에 필요한 것은 사실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19세기의 역사가들도 대체로 그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30년대에 랑케는 역사의 도덕화를 규탄하는 정당한 항의를 제기하여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wie es eigentlich gewesen)를 보여 주느데 있을 따름이다」라고 말했습니다만, 별로 심오하달 것도 없는 이 격언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약 3세대 동안이나 역사가득은 독일, 영국, 프랑스 할 것 없이 모두가「wie es eigentlich gewesen」이라는 마술적인 문구를 주문 외듯이 외면서 달려 나왔습니다.

경험주의적 지식론은 주체와 객체와의 완전한 분리를 전제합니다. 사실은 감각적인 인상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관찰자에게 부딪쳐 오는 것으로써 관찰자의 의식으로부터 독립된 것입니다. p8

먼저 사실을 틀림없이 입수하라, 그리고 나서 해석이라는 유동하는 모래 속으로 위험을 걸고 뛰어들어라- 이것이 역사에 대한 경험적인 상식학파의 궁극적인 지혜입니다. p10

역사상의 사실을 과거에 관한 그 밖의 사실과 구별하는 규준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역사가들에게 공통된 소위 기초적 사실이라는 것은 보통 역사가들이 사용하는 원료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이지, 역사 그 자체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로 고찰해야 할 점은, 역사가들의 아프리오리한 결정에 좌우된다는 점입니다.

사실이란 역사가들이 그것을 찾아줄 때에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고, 어떠한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그리고 어떠한 순서와 전후 관련 속에서 이야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역사가인 것입니다. 사실은 자루와 같은 것이다, 그 속에 무엇인가를 집어 넣어 주기 전에는 절대로 설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피란델로(Pirandello)의 작품 중의 인물이었다고 기억됩니다. p12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역사가들이 자기들의 이유에 따라 결정한 것이다. p13

고대사나 종세사가들은 다년간에 걸친 대규모의 도태과정의 결과로 역사 사실의 알맞은 집성을 손쉽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감사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p17

근대사가는 이와 같은 개정된 무지라는 유리점을 하나도 享受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p18

결국 그것은 역사가들의 연구와 해독을 기다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입니다. p21

영국의 역사가들이 역사철학의 문제에 몰입하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그들이 역사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의미란 논의의 여지가 없는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p27

저마다 자기 일에만 힘써 나가십시오. 세계 전체의 조화에 대해서는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 그 자체는 은혜로운, 그리고 틀림없이 高遠한 세계를 향하여 무한한 진보를 계속해 나가는 지상의 사실의 구현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無후의 시대였습니다.

오늘날 아직도 역사철학 없어도 무방하다는 태도를 취하는 역사가들은 허세와 자기 과장 속에서 교외 전원지대에 에덴동산을 재건하겠다는 나체주의 村의 회원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거추장스러운 이 문제로부터 이미 벗어날 수는 없게 된 것입니다.

모든 역사는「현재의 역사이다」라고 크로체는 언명했습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p28

「역사상의 사실이란 어떤 역사가에 있어서나 자신이 이를 창조하기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p29

「모든 역사는 사상의 역사」라는 것이며 또한「역사는 역사가가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상을 자신의 마음속에 재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역사가의 경험이다. 그것은 역사가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고 역사를 쓴다는 것만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p30

역사상의 사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곡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 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 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인 것입니다. p31

여러분이 역사책을 읽을 때에는 항상 역사가의 머릿속에서 오고가는 사색의 음을 잡아내야 합니다. p33

일반적으로 역사가란 자기가 원하는 종류의 사실을 손에 넣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란 해석을 의미합니다.

제2의 문제점은 보다 상식적인 것으로서 역사가는 자기가 취급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p33

역사가는 자기가 쓰고 있는 인물과의 어떠한 심적인 접촉을 가질 수 없는 한 역사는 쓰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제3의 문제점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들은 비로소 과거를 볼 수도 있고 과거에 대한 이해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가도 자기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고, 인간생존의 제 조건에 의해서 시대에 붙잡혀 있는 존재입니다. 그가 쓰는 말 자체 -예를 들면 민주주의, 제국, 전쟁, 혁명 등과 같은 말들부터가 - 떼놓을 수 없는 시대적인 함축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p35

하여간 역사가에게는 선택의 의무가 있습니다. 언어의 사용 자체가 그의 중립을 허용 안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언어에만 한정된 문제도 아닙니다. p35

역사가는 과거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속해 있습니다. p36

똑같이 판에 박힌 말을 써야 한다면 나는 오히려 자신을「과거의 영대소유권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말을 택하고 싶습니다.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사랑한다는 것도 아니요, 과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다는 것도 아니요,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써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p36

내 경우에는 우선 기본사료라고 생각되는 것을 조금만 읽기 시작하면 근질증을 참을 수 없어서 그대로 쓰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부분이 처음 부분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어디거나 상관없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동시에 병행되어 나갑니다. 한편으로는 읽어가며 한편으로는 써붙이고, 깎아내고 다시 쓰고, 지워버리고 하는 것입니다. 읽는 것은 씀으로 해서 인도되고 방향이 제시되고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즉, 쓰면 쓸수록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고, 내가 찾아낸 것의 의미와 관련성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p41

내가 확신하는 바로서는 적어도 역사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경제학자들이「인풋트」(in put)와「아우트푸트」(out put)라고 부르는 이 두 개의 과정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단일 과정의 두 부분이 라는 것입니다. p41

역사가가 처해 있는 苦境은 인간본성의 하나의 반영인 것입니다. p42

인간의 환경에 대한 관계는 역사가의 테마에 대한 관계입니다. p42

역사가란 자기의 해석에 맞추어서 사실을 형성하고, 자기의 사실에 맞추어서 해석을 형성하고 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p42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가 아울러 내포되는 것입니다. p43

사실을 못 가진 역사가는 뿌리를 발지 못한 무능한 존재입니다. 역사가 없는 사실이란 생명 없는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p43

즉,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p43

2장 사회와 개인

사회와 개인은 서로 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필요한 보충관계에 있는 것입니다.「인간은 아무도 자체만으로서 전체를 이루는 섬일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요 본토의 일부분이다.」p45

도스토예프스키의『악령』에 나오는 키릴로프는 자신의 완전한 자유를 입증하기 위하여 자살하였습니다. p46

미개인은 문명인보다도 개인적인 경향이 덜하고 보다 철저하게 사회에 의하여 형성된다고 인류학자들은 보통 말합니다.
단순한 사회는 복잡하고 발달한 사회보다도 획일적입니다.
사회혁명은 새로운 사회집단을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개인들을 통해서 그리고 개인의 발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룩되어 나갔습니다. p49

우리는 가끔 역사과정을「행진하는 행렬」과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p52

역사가는 역사의 일부분입니다. 그가 처해 있는 행렬의 지점에 따라 과거에 대한 자신의 시각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p52

위대한 역사란 분명히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비전이 현재의 諸문제에 대한 통찰에 의하여 빛을 받을 때에만 씌어지는 것입니다. p54

「따라서 사람은 정치적인 사상이나 교리를 가지고 자기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사고에는 더욱 유익한 것이다.」 p58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ㆍ역사적 입장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란 자기가 그러한 조건 속에 얼마나 깊이 사로 잡혀 있는가를 자각할 수 있는 감수성 여하에 달렸다고 봅니다. p66

「인물 개개인에게서 촉발된 관심처럼 역사를 보는 눈에 오류와 불공평을 초래하는 것은 없다.」p71

「비상한 인물에게는 시대가 적합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오늘날 같으면 크롬웰ㅇ나 레스(Jean Retc, 1613~79 프랑스의 정치가, 성직자) 같은 인물들도 존재조차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p81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빌린다면, 역사란「한 시대가 타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인 것입니다.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의 지배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인 것입니다. p84

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p97

역사가란 언제나 자신의 증거를 시험하기 위해서는 일반화를 이용하는 법입니다. p97

역사는 일반화 위에서만 생장할 수 있습니다. 엘튼(Godfrey Elton, 1892~. 영국사학)씨가 신판『케이브리지 근대사』중의 한 책에서 맵시 있게 말하고 있듯이
「역사가를 역사 사실의 수집가와 구별해 주는 것은 일반화입니다.」p99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양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북돋아 주는데 있습니다. p104

제3의 논점은 역사에 있어서의 예언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으로부터 예견이 나오고 예견으로부터 행동이 나온다.-꽁뜨
역사에 있어서의 예언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서는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사이의 차이점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p105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인간행동의 제 형태를 추궁하고 자기의 연구대상인 인간이 왜 그렇게 행동하려고 했는가를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이리하여 역사학과 사회과학에 있어서만 특유한 관찰자와 피관찰자 사이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역사가의 모든 관찰 속에는 불가피하게 역사가의 관점이라는 것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역사에는 어디까지나 상대성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칼ㆍ만하임의 말에 의하면,「경험을 가다듬고 수집하고 정리하고 하는 類別조차도 관찰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관찰과정 자체가 관찰대상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 역시 진리인 것입니다.
자기행동의 분석과 예언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당사자들은 결과에 대한 불길한 예언에 의해서 사전 경고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따른 행동의 수정이 가해지게 되고, 설사 그 예언이 아무리 정확한 분석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에 가서는 적중되지 않는다는 일도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p108

역사적 관찰에 의거하여 전제정치는 단명하다는 확신을 조성하는 정치학자들은 독재자의 타도에 도움을 주게 될 수도 있습니다. 109

관찰자와 그 대상과의 사회 과학자와 그 자료와의, 역사가와 그 사실과의 상호관계는 연속적이고 부단히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역사와 사회과학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p109

사회로부터 遊離되고 역사로부터 유리된 추상적 기준이나 가치란 추상적인 개인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제대로 된 역사가라는 것은 모든 가치의 역사적인 被制約性을 가려볼 줄 아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역사를 초월한 객관성을 요구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p129

역사는 외부적인 어떤 사물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또한 이런 점에 그 밖의 과학과의 차이점이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p130

역사는 과학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 내가 주로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이른바「두 문화」사이의 결렬을 정당화하고 영구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131

과학자,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모두가 동일한 연구의 틀린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과 그 환경에 관한 연구, 다시 말해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작용과 인간에 대한 환경의 작용을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구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즉 자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과 지배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4장 역사에 있어서의 因果關係

앙리 푸앙카레는 지난 강연에서 인용한 저작 속에서, 과학은「다양성을 향하여」그리고「통합성과 단일성을 향하여」동시적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고 이 이중적인 그리고 명백히 모순되는 과정이야말로 지식에 대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p140

카프카(Kafka)의 소설의 환각적인 성격은 모든 일에 명백한 원인, 확장될 수 있는 원인이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격의 전적인 붕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격이란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는 전제, 그리고 이러한 원인의 많은 것은 확실하게 가려질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는 행동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연관이 닿는 원형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147

현대사의 두통거리는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모두 남아 있었던 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여지가 기정사실에 의하여 모두 끝나버렸다고 보는 역사가들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곤란하다고 여긴다는 점에 있습니다. p153

공격의 또 하나의 근원이 되고 있는 것은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는 유명한 난문입니다. 이것은 역사라는 것의 대부분이 우연의 집합체이고 우연의 일치에 의하여 좌우될 뿐만 아니라, 전연 돌연적인 원인의 소치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라는 이론입니다. p153

역사에 있어서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가들의 중심 구명대상이 되고 있는 인과연쇄를 중단하면서- 말하자면 그것과 충돌하면서- 또 하나의 인과연쇄가 나타날 때에 그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p154

역사에 있어서 인과의 문제를 다루어 나가는데 열쇠의 역할을 다해주는 것은 틀림없이 목적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 목적 개념은 불가피하게 가치판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p168
이중적 목적에 대해서 아무런 효용도 없는 사물들이란, 역사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죽어버린, 쓸모없는 것입니다. p169

역사는 전통의 계승과 더불어 시작되며, 전통이란 과거의 관습과 교훈을 미래에 전달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한 것도 미래 세대의 복지를 위해서였습니다. 네델란드의 사가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는「역사적 사고란 언제나 목적론적인 것이다」라고 적은 바 있습니다. p170

훌륭한 역사가들 역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건 말건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역사가는「왜냐」라고 묻는 동시에「어디로」라고 묻는 법입니다. p170

5장 진보로서의 역사

진보의 개념에는 무엇이 내포되어 있는가, 그 배후에는 어떠한 전제가 놓여 있는가, 또한 그러한 전제는 어느 정도까지 수궁할 수 없는 것인가를 좀 더 엄밀히 검토해 보기로 합시다.
첫째로, 진보와 진화에 관한 여러 혼란점들부터 깨끗이 정리해 놓고 싶습니다. p178
둘째로, 우리들은 진보에 일정한 시작이 있다거나 마지막이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p179

역사가 진보의 가설을 지켜야만 할 것이라면, 그는 진보를 하나의 과정, 즉 연속되는 각 시대의 요구와 조건이 제각기 독특한 내용을 부여하는 그러한 과정으로서 다루어나갈 용의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역사는 단순한 진보의 기록이 아니라 「진보하는 과학」이며, 아니 이 보다도 좀 더 다른 말이 좋겠다면 역사는 그 두 語義-하나는 사건의 코스로서, 또 하나는 이러한 사건의 기록으로서-의 어느 것에 있어서나 진보적인 것이다 라고 말한 액튼의 주장의 진의인 것입니다.

역사에 있어서의 자유의 진전에 대한 액튼의 서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변화만 빨랐고 진보는 늦었던 고거 4백년간에 걸쳐서, 자유가 보존되고 지켜지고 넓혀지고 마침내는 이해되기에 이르렀던 것은 폭력과 끊임없는 惡의 지배에 항거하기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취해졌던 약자들의 집단적 노력에 의한 것이다. Acton, Lectures on Modern History (1906), p.51
액튼은 사건의 코스로서의 역사를 자유에로의 진보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사건의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자유의 이해를 향한 진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p181

역사가에 있어서는 진보의 종국은 이미 진화된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한없이 먼 곳에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지표는 우리들의 前進途上에서 비로소 시야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나침반은 귀중한 그야말로 불가결한 길잡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로가 그려진 지도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역사의 내용도 우리들의 경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제 3의 논점은, 적어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역전이나 이탈, 중단 없이 일직선으로만 전진해 나온 진보라는 것을 믿은 일은 없었다는 것, 따라서 가장 급각도의 역전이라 해도 반드시 진보에 대한 믿음에 치명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p182

문명사회라는 것은 모두가 미래 세대를 위한 희생을 현존 세대에게 강조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희생을 미래의 보다 나은 세계라는 명목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이를 신의라는 명목하에 합리화하는 태도와 대조되는 세속적인 합리화라고 하겠습니다. 뷰리의 말에「후세를 위한 의무라는 원리는 진보의 관념의 직접적인 소산이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러한 의무에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습니까? p187
19세기가 후세에 전하려고 하는 지식을 최다수의 사람들이 가장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록해 두기 위해서는 지금 이때야말로 다시없는 호기입니다. p5

헤겔은 절대자에게 세계정신이라는 신비적인 外衣를 입혔고, 역사 코오스를 미래 속에 투사하지 않고 현재 속에서 끝내게 한다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과거에 대해서는 연속적인 진화과정을 인정하면서도 미래에 대해서는 부당하게도 이를 거부했습니다.
헤겔 이후에 역사의 본질에 대해서 가장 깊이 성찰한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과거와 미래의 종합이라는 면을 찾아냈습니다. 토크빌(De Tocqueville 1805~1859. 프랑스의 역사가, 정치가)은 당시의 신학적인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고 절대자에게 지나치게 좁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역시 이 문제의 핵심을 찌르고 있습니다. 그는 평등의 발전이라는 것을 보편적인 영원한 현상이라고 말하고 나서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 시대 사람들이 평등의 점차적인 그리고 진보적인 발전이라는 것이 동시에 역사의 과거요 미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면, 이 한 가지 발견만으로 그 발전에는 주님의 뜻이라고 하는 신성한 성격이 부여될 수 있을 것이다. p192
써니 의문: 신은 인간을 언제까지나 믿지 못하는 옹졸함 자체일까. 당신이 쳐놓은 금을 밟지 못하게 함으로써 영원한 굴림을 희망하셨을까. 구본형 변.경.연만 해도 결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최소한 인간적이지도 않다면 신은 그림의 떡으로서의 신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혼돈과 무질서와 악랄한 교란의 모든 책임은 신이 져야한다. 그는 우리를 골탕먹인 죄를 어떻게 달게 받아야 할까. 과연 우리를 쓸어버리고 행복할까.

마르크스는 미래에 눈을 감은 헤겔의 경향을 어느 정도 물려받았기 때문에 자기 학설의 뿌리를 과거 역사 속에 다져박는 데에만 주력했습니다만, 역시 그 주제의 성질상 계급 없는 사회라는 절대자를 미래 속에 投射했습니다. 뷰리도 진보의 관념은「과거와 미래의 예언과의 종합을 내포하는 이론이다」라는 좀 어색하기는 합니다만 분명히 같은 의도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네이미어(Namier)는 고의로 역설적인 표현을 써서 -그의 설명은 풍부한 예증을 구사하면서 보통 이런 투로 시작됩니다만- 역사가는「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미래만이 과거를 해석할 열쇠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과거가 미래를 조명하고 미래가 과거를 조명한다는 것은 역사의 합리화인 동시에 역사의 설명입니다. p193
써니: 마르크스에 대해 약간 실망. 미래에 계급 없는(평등) 사회를 절대가치로 두었다는 것은 고작 현실탈피 정도밖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인간이 할 일을 신에게 미루듯 혹은 신의 안위에만 파묻히려는 것은 아닌가. 신은 인간이 자기와 같이 새로운 인간적인 유토피아을 발견 내지 건설해 내기를 바라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의 여건에 매어 쩔쩔매며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넓은 세계 곳곳을 떠도는 방황을 거치더라도 마침내 신조차도 몰랐던 미지를 발견하고 그 땅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어울리고 싶지는 않을까.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는 것을 보면...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칭찬하기도 하고 혹은 한 역사가를 딴 역사가보다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대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분명 그것은 단지 사실을 올바르게 입수한다는 뜻이 아니라 올바른 사실을 선택한다, 혹은 다시 말해서 올바른 의미 기준을 적용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할 때에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p193

우선 그것은 그 역사가가 자신의 사회적ㆍ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 일부는 자기가 어느 정도까지 그러한 위치에 말려들어가 있는가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 즉 말하자면 완전한 객관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에 달린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 역사가는 자신의 비전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그 안목이 전적으로 목전의 자기 위치에만 국한되어 있는 역사가들보다는 과거에 대한 더욱 깊고 더욱 영속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194
써니: 4월 한 달 동안 연구원들은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의 방향을 꿰뚫는 저자들과 만나 책을 읽었다. 나는 나와 가장 만만한 저자로부터 대화를 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었다. 미래생활사전을 펴낸 페이스 팝콘은 학자가 아니었다. 그녀 역시 나와 같은 속물인데다가 미래 생활에서 어떻게 먹고사는 것이 좋을까를 정신없이 휘젓고 다니는 나와 같은 부류에 밀접했다고 하면 실례가 될까. 그러나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에서는 역사가란 역사가 자신의 사회적ㆍ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능력이 있어야 함을 기본으로 한다. 자기 안에 갇혀 제 멋대로 역사를 휘두르고 편협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전을 미래에 투사할 능력이 있고, 과거에 대한 깊고 영속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주장한다.

과거 200년간에 걸쳐서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역사가 일정한 방향을 따라서 진행된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방향이 전체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는 것, 즉 인류는 나쁜 상태로부터 좋은 상태로, 저급한 상태로부터 고등한 상태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즉 역사가들은 방향을 인식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이에 대한 찬의를 아울러 표했던 것입니다. 결국 역사가가 과거를 취급할 때에 적용한 중요성의 기준이라는 것은 역사 진행에 대한 방향감각뿐만이 아니라 역사 과정에 있어서의 자신의 善意觀念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存在」와「當爲」,「事實」과「價値」사이에 설정되었던 대립은 해소되었습니다. 휘그당원도 자유당원도, 헤겔파도 마르크스파도, 신학자도 합리주의자도 다 같이 확고하고 명확하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은 낙관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낙관론 그 자체는 미래에 대한 엄청난 자신 속에서 산 한 시대의 소산이었던 것입니다. p197

카알 라일은 프랑스 혁명사 속에서 루이 15세를 변태 세계의 화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분명히 이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후에 좀 더 긴 문장 속에서 이를 다시 부연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어지러운 이 새로운 격동은 도대체 무엇일까. 기왕에는 협조적인 기능을 발휘해 오던 제도, 사회조직, 개인정신이 지금은 미친 듯이 충돌하면서 돌고, 깨어지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불가피한 일, 변태 세계의 붕괴, 변태 세계의 최후가 온 것이다.

이 기준 역시 역사적인 것입니다. 한 시대에 적합했던 것도 다음 시대에는 변태적인 것이 되고, 그로 말미암아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p200

역사에 있어서의 판단의 기준은「보편적 타당성을 요구하는 원리」가 아니라「가장 효과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p201

정치가의 할 일이란, 도덕적인 면이나 이론적인 면에 있어서 어떠한 이이 바람직한가를 생각한다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目前의 세계에는 어떠한 세력이 존재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주도하고 조종하여 당면 목적의 일부나마를 달성할 수 있겠는가를 아울러 고려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p202

일견 바람직해 보이는 추상적 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거울삼아 과거를 규탄한다는 것보다도 더 심한 근본적인 오류는 없습니다. p202

역사상에는 뜻 깊은 실패라는 것도 없지 않습니다. 역사는 소위「지연된 성공」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오늘의 명백한 실패도 내일에는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예언자란 자기 시대에 앞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사실 이 기준이 不動普遍의 원리라는 것보다 나은 장점의 하나는, 그것이 우리들의 판단을 연기시켜 주며, 즉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태에 비추어서 그것을 수정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추상적인 도덕 원리라는 견지에서 거침없이 말해 나간 프루동(proudhon)은 나폴레옹 3세의 구테타가 성공한 후에 이를 긍정했습니다. 그러나 추상적인 도덕원리라는 기준을 부정한 마르크스는 쿠데타를 긍정한 프루동을 비난했습니다. 긴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회고해 볼 때에는 누구나 프루동이 잘못이었고 마르크스가 옳았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할 것입니다. p203

과연 비스마르크는 참으로 유용한 일을 했을까요? 나로서는 그것이 무한한 재난을 남겨 놓았다고도 생각됩니다. 하나의 역사가로서 나에게는 많은 의문점이 있는 것입니다. 종국적인 파탄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은 독일 제국의 구조 내부에 어떤 보이지 않는 결함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제국 형성의 내적 조건 속에 어떤 요인이 있어 가지고 그것 때문에 그 나라가 자기주장에만 사로잡힌 공격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을까요? ... 혹은 팽창성을 띤 또 하나의 강대국이 출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규모의 충돌이 야기되고 조직 전체가 붕괴되기에 족했던 것일까요?

우리들은 최후의 連累者만을 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그러나 비스마르크의 업적,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려면 이상과 같은 여러 문제에 대한 역사가의 해명을 기다려야만 하겠습니다.

역사에 있어서의 객관성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목전에 놓인 어떠한 고정 불변의 판단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놓여 있는, 그리고 역사 코스의 진전과 더불어 발전하는 그러한 기준에만 의존하고 생존할 수 있다는 나의 주장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것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에만 의미와 객관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p204

가치는 사실로부터 나올 수 없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더라도 일방적인 그릇된 이야기입니다.
p205
우리가 사실을 알려고 할 경우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나 따라서 우리가 입수하는 해답 같은 것은 모두가 우리들의 가치체계의 후견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소산인 것입니다.

가치는 사실 속에 들어가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p206

사실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의 양쪽에 걸쳐 있는 말로서, 양쪽의 요소에 의하여 성립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어에만 국한된 특이성은 아닙니다. 진리에 해당되는 라틴어도, 독일어의 발하이트라는 말도, 러시아의 프라우다(Pravda)라는 말도 모두가 이러한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여하한 언어에서나 사실의 표명만도 아니고, 이 두 요소를 모두 포괄하는 진리라는 말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역사가란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의 야자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p207
정적인 세계에서는 역사란 무의미한 것입니다. 역사는 본질상 변화요, 운동이요- 만일 여러분이 낡아빠진 말이라고 탓하시지 않는다면 -진보입니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역사관은 우리들의 사회관의 반영입니다. p208

6장 넓혀지는 지평선

지금까지 강연에서 나는 역사를 부단한 진보 과정이라고 했고 또한 역사가도 그러한 과정을 걸어가고 있다는 견해를 말씀 드렸습니다만,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역사 및 엯가의 현 위치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도 어떠한 결론적인 소감을 말씀드려야 할 입장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세계의 파멸을 예언하는 소리에 차 있는 그리고 그것이 모든 사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p209

역사라는 것이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자연적 과정- 계절의 순환이라든가 사람의 일생이라든가 하는- 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의식적으로 관여하고 또한 인간이 의시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수한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할 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p210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하여 자기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적응해온 긴 투쟁의 과정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말하자면 이성의 새로운 차원과 역사의 새로운 차원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현대인은 전례없을이 만큼 강하게 자기를 의식하고 있고, 따라서 역사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걸오온 과거의 희미한 어둠 속을 열심히 뒤돌아다보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혹시나 거기서 흘러나오는 微光이 향해 나가는 앞날의 어두움을 밝혀 주는 빛이 되어 주지나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입니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앞날을 내다보는 願望과 不安은 걸어 나온 과거에 대한 통찰을 북돋아주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무한한 역사의 쇠사슬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근대 세계의 변화라는 것은 인간의 자기의식의 발달에 의해서 이룩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만, 그 첫 시작은 데카르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사고의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고를 다시 사고할 수 있는 존재로서, 즉 관찰활동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고, 따라서 인간은 동시에 사고와 관찰의 主體와 客體가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지위를 처음 확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18세개 후엽의 루소가 나타날 때까지는 이러한 발달은 아직도 충분히 명확한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루소는 인간이 자기 이해와 자기 의식의 새로운 심화된 세계를 열어 주었고, 자연계와 전통 문명에 대한 새로운 견지를 제시하였습니다. 토크빌은 프랑스혁명을 당시의 사회질서를 지배하고 있었던 전통적 관습 전부를 폐지하고, 그 대신 인간 이성의 활용과 자연법칙에서 도출된 단순한 기본 법칙이 이에 대치되어야 한다는 신념ㅇ 의해서 고취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액튼은 그의 원소 속에서 그 때까지는 사람들은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자기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액튼에 있어서는, 헤겔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자유와 이성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은 또한 미국혁명에 연결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7년 전에 우리 조상들은 자유 속에서 구현된, 그리고 만인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조 앞에 바쳐진 새 나라를 이 대륙 위에 건립하였다. 링컨의 이 말이 뜻하는 바와도 같이 그것은 하나의 특이한 사건이었습니다. P212

18세기에서 현대 세계까지에 이르는 전환은 길고 점진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자는 헤겔과 마르크흐였는데, 이 양자는 모두가 모순되는 대립요소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헤겔은 섭리의 법칙을 이성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은 사상을 토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헤겔의 세계정신은 한 손으로는 섭리를, 또 다른 손으로는 이성을 꽉 붙잡고 있습니다. 그는 애덤 스미스를 본따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은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는 과정 속에서 동시에 그 이상의 일을 달성한다. 이러한 일은 그들의 의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행위 속에 잠재한다. p213

애담 스미스와 헤겔의 제자인 마르크스는 세계가 합리적인 자연법칙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사고 방식하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의 입장은 헤겔과 같은 것이기는 합니다만, 보다 실천적이고 보다 구체적인 형태를 취했습니다. p214

마르크스의 결론적인 견해를 종합해 보면 역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삼자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하에서 일관된 합리적인 전체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즉 그 하나는 객관적인, 주로 경제3적인 법칙을 따라서 전개되는 사건의 진전이며, 그 둘은 이에 대응하며, 그 셋은 이에 따른 계급투쟁의 형태하의 실천이라는 것이며, 이것이 혁명의 이론과 실천에 조합과 통합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제창하는 바는 객관적 법칙과 이를 실천으로 전환시켜주는 의식적 행위와의 종합이며, 즉 때에 따라서는 (오해도기 쉬운 말이지만) 결정론이라고도 불리고, 自然主義라고도 불리는 양자의 종합인 것입니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사회 속에 말려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소위 허위 의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번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그의 著作에서는 의식적인 혁명적 실천을 강조한 두드러진 예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이 해온 일은 세계를 다르게 해석한다는 일뿐이었지만, 참말로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킨다는 일이다. >p215

현대사에의 전환이 완전히 끝난 것은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이때에 와서는 이미 이성의 1차적인 기능은 사회에 있어서의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객관적 법칙을 이해한다는 일이 아니라, 의식적인 행위에 의하여 사회를 개조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을 개조한다는 일이 되었습니다. p216

이성의 세계에 새로운 영역을 넓혀 준 우리 시대의 또 하나의 大思想家는 프로이드입니다.

19세기의 자유주의적인 개인주의자로서, 개인과 사회와의 근본적인 대립이라는 일반적인, 그러나 빗나가기 쉬운 전제를 무조건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서보다는 생물학적인 존재로서 보았기 때문에 사회환경도 인간 자신에 의하여 부단히 창조되고 변경되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려는 경향에서있었습니다. p217

프로이드가 한 일은 인간행위의 무의식적 근원을 의식과 합리적인 탐구 앞에 폭록함으로써 우리들의 지식과 이해의 범위를 넓혀 주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것의 이성의 영역의 확대이며, 자신과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해 나갈 인간능력의 증대이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혁명적인 그리고 진보적인 업적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p218

내가 말한 20세기 혁명에 있어서의 理性의 擴大라는 요인은 역사가에게는 특별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p233

역사가들이 문제 삼아야 할 일은, 첫째로는 액튼의 입장을 확인한다는 일이고, 둘째로는 그의 입장과 현대의 사상가들의 입장과를 비료한다는 일이고, 셋째로는 그의 입장의 어떠한 요소가 오늘날 아직도 유용한가를 검토해 본다는 일입니다. p239

그러나 그의 tpeomss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즉, 그것은 변화를 역사에 있어서의 발전적 요인으로 본다는 감각과, 이성은 변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라는 믿음입니다. p239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실은, 영어사용세계의 인텔리나 정치사상가들이 이성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보다도, 부단히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주도한 감각이 감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p243

누가 뭐라건 나 자신은 변함없이 낙관주의자입니다. 루이스 네이미어 경이 나에게 정강이나 이념을 피하라고 훈계할 때에, 오크쇼트 교수가 나에게, 우리들은 어떠한 특정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중요한 일은 아무도 보오트를 뒤흔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뿐이다. 라고 말할 때에, 포퍼 교수가 하잘 것 없는 단편적 대책의 덕분으로 애용하는 T형 고물차를 언제까지나 몰고 다니기를 원할 때에, 트레바 로퍼 교수가 떠들어대는 急進主義者들의 콧등을 내려칠 때에, 모리슨 교수가 공정한 보수정신으로 집필된 역사를 옹호할 때에,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위대한 과학자의 낡은 말귀를 가지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래도 역시- 그것은 움직인다.」p244

역자후기
책의 제목부터가 말해 주듯이, 역사이론을 풀어 나가는 著者의 태도는 지극히 대중적이다.
아무리 깊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어나갈 때에도, 이론을 위한 이론이라든가, 추상을 위한 추상이라든가 하는 一切의 高踏的인 요소를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체험 속에서 우러나오고 있다는 점, 말하자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著者의 귀중한 체취가 배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가장 타당한 실용적인 방도가 무엇인가를 찾아낸다는 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우리들의 가치와 관점이 항상 시대와 더불어 유통해 나간다고 말한다. 미증유의 변동기로 인한 상대적 한계성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역사사고의 객관성과 유효성은 무엇인가 p247


3. 내가 저자라면

세계적인 역사철학가라 할 수 있는 E.H Carr의「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이 책은 세계사가 격동의 세월을 거쳐 오면서, 현재와 후대의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역사의 메시지는 무엇이며, 역사를 둘러싼 여러 가지 현상과 요소들에 대해 고찰해봄과 동시에, 과연 누구에 의해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를 모색해 봄으로써 역사에 대한 보다 새로운 인식을 돕고자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내고 있다.

제1장 역사가와 사실에서는 19세기가 후세에 전하려고 하는 지식을 최다수의 사람들이 가장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록해 두기 위해서 역사가의 한사람으로서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저자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다음 세대에 속한 역사가들은 이와 같은 장래를 기대하지 않고, 자신들의 업적이 계속해서 극복되어 나가리라고 보겠지만,「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게 될 때 우리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될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또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 가를 설명해 주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19세기란 서구의 인텔리들에게는 자신과 낙관의 분위기에 찬 安快한 시기였다는 사실을 밝히며 세계를 향해 무한진보를 계속해 나가는 지상의 사실 구현에 가치를 두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 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이냐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역사란 역사가의 주관적 견해를 담게 되는 한계가 있고, 역사가가 연구하는 사람들의 사상을 역사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재현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제2장 사회와 개인에서는「인간은 아무도 자체만으로 전체를 이루는 섬일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요 본토요 일부분이다」라며 영국의 시인 J. Donne의 유명한 말을 빌려서 설명하고 있다.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 필요조건이 되는 한편, 사실 우리가 복잡하고 발달한 사회라고 할 때에 그것은 각 개인의 상호의존관계가 진보되고 복잡한 형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를 이르는 것이라는 것.

제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에서 저자는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인간행동의 諸 형태를 추궁하고 자기기의 연구대상인 인간이 왜 그렇게 행동하려고 했는가를 밝힐 필요가 있는데, 역사학과 사회과학에 있어서만 특유한 관찰과 피관찰자 사이의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으로, 역사가의 모든 관찰 속에는 불가피하게 역사가의 관점이라는 것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역사에는 어디까지나 상대성이 뒤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을 말한다.
역사란 운동이고, 운동이란 비교를 내포하는 것으로 역사가들이 도덕적 판단을 표현할 때에 「선」혹은「악」등의 타협성 없는 결정적인 용어보다는「진보적」이라든가「반동적」이라든가 하는 비교하는 성질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의 사회나 역사현상을 어떤 절대적인 기준과의 관련하에서 규정 짖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의 상호관계하에서 규정하자는 기도라는 것이다.

제4장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에서는 역사가의 원인에 대한 관계는 역사가의 사실에 대란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상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원인은 역사 과정에 대한 그의 해석을 결정하는 동시에 그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정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훌륭한 역사가들 역시,「역사적 사고란 언제나 목적론적인 것이다.」에 대해서 생각을 하건 말건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요 역사가는「왜냐」라고 묻는 동시에「어디로」라고 묻는 법이라고 한다.
제5장 진보로서의 역사에서는 역사가의 객관적 시선에 대해 언급하는 데, 역사가의 객관적 안목이란 단지 사실을 바르게 입수한다는 뜻이 아니라, 올바른 사실을 선택한다는 뜻이며, 다시 말해 올바른 의미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음을 시사한다. 우선 그 역사가 자신의 사회적ㆍ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 역사가는 자신의 비안목이 전적으로 목전의 자기 위치에만 국한되어 있는 역사가들보다 과거에 대하여 더욱 깊고 영속적인 통찰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역사의 기준 역시 역사적인 것으로, 한 시대에 적합했던 것도 다음 시대에는 변태적인 것이되고, 그로 말미암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이며, 역사에 있어서의 판단의 기준도 「보편적 타당성을 요구하는 원리」가 아니라「가장 효과적 인 것」이어야 함을 아우르고 있다.
하여 역사에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 이룩되고, 역사가란 바로 이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의 양자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6장 넓혀지는 지평선에서 저자는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시간을 자연적 과정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의식적으로 관여하고, 또한 인간이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수한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할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이른다.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하여 자기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작용해온 긴 투쟁 과정이며 이로 말미암아 이성의 새로운 차원과 역사의 새로운 차원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에 와서는 자유주의의 잔존요소는 어디에 있어서나 사회의 보수적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액튼에게 되돌아가자고 역설한들 오늘날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한다. 역사가들이 문제 삼아야 할 일은, 첫째로는 액튼의 입장을 확인하는 일이고, 둘째는 그의 입장과 현대의 사상가들의 입장을 비교하는 일이며, 세째는 그의 입장의 어떤 요소가 오늘날 아직도 유용한가를 검토해 보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액튼의 세대는 지나친 자신과 낙관주의에 압도되고 있지만 그러나 그의 세대는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변화를 역사에 있어서의 발전적 요인으로 보는 감각과, 이성은 변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라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인간세계의 진보라는 것은, 과학이나 역사ㆍ사회ㆍ인간의 자기 현존방식의 단편적 개량에 국한시키는 태도에서 벗어나 주로 목전의 제도와 토대를 이루고 있는 음양의 전제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한다는 대담한 각오를 통해서만 이룩된다고 피력한다. 저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실은, 영어사용계의 인텔리나 정치 사상가들이 이성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보다도, 부단히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주도한 감각이 감퇴되고 있는 점이라고 걱정을 하면서도 그 자신은 누가 뭐라 건 자신은 변함없는 낙관주의자라며 세상에 대한 긍정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그와 같은 세계적 역사가가 인류를 향해 고뇌한 보람일 것이다. 그래도 역시 - 그것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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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09 06:07:47 *.72.153.12
읽으면서 줄 칠때가 너무 많다고 하더니 인용으로 많이 담았네.
왜 그렇게 많이 줄을 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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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5.09 19:06:26 *.115.33.218
써니야!
이전 글과도 다르다. 문맥이 질서가 잡힌다. 읽으면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너무나 큰 발전이다. 그런데 두번이나 이렇게 긴 북 리뷰를 쓰는 정열이 무서울 정도다.

이제부터는 나의 글을 준비하거라,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던저야 센세이션을 이르킬 것인지 조금식 생각하고 명상의 나래를 펴라. 그리고 건강도 조심하고, 유명해지면 구설수도 자주 일어난다.

절대로 중도에서 포기하는 써니가 되지 말아라...
좋은 글 잘 읽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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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0 00:40:32 *.70.72.121
초아선생님! 아니에요. 사실 하다가 삼천포로 빠져서 엉터리로 한거에요. 어떻하면 좋아... 요즘 제가 좀 산만해요. 헤이해 졌어요. 마음이.

그리고요, 저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도와달라고 연락왔어요. 제가 공부해서 안 된다고 하니까 오전 근무만이라도 해달라고 하는데, 돈보다도 인간관계 나쁘게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감사해서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데 사실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어요. 사정이 별로 좋지는 않은 곳이라 저 역시도 도와준다는 의미로 며칠 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이들 처럼 저도 일하며 공부하고 싶기도 하고요. 반나절만 하니까요. 아주 없는 것보다 용돈도 될 테고. 기대할 정도는 못되지만 말이죠. ^^

선생님도 이번에 저희와 함께 연수 가실거죠? 사랑해요. 샘~

정화야, 나는 그냥 막 써. 그냥 쓰고 싶어서 디립다 베끼는 거야. 웃기지? 나도 그래. ㅋㅋ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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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5.10 04:32:23 *.145.81.5
써니야!
조금씩 일해가면서 공부를해라. 그리고 미리 앞날에 대해서 걱정일랑 조금도 하지 말거라. 신은 결코 열심히 노력하는 써니를 버리지 않는다. 끝없는 도전, 그리고 맘속의 불길을 책으로 만들어 던지자. 직장에서 오란다고 미친듯이 일에는 빠지지 말거라.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보고, 그래도 너가 가진 특이한 눈이 널 인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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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0 09:33:32 *.75.15.205
네. 공부가 우선이라고 말해 두었어요. 연수도 꼭 가야한다고...
어차피 올해는 마음 먹은 거니까 연구원이 가장 중요해요. 사람되야 하니까요. 선생님! 꼭 같이 가셔요. 가시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사부님이랑 함께 빤쯔만 입으시고 광야를 힘껏 달려보시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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