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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4일 07시 57분 등록

<논어>

2014.08.04 이동희

 

1. 저자에 대하여 :  공자 (BC551~BC479)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47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가 지었다고 하는 춘추는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0년까지의 노나라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책에 기록된 시기를 춘추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주나라 중심의 천하 질서가 무너진 이후 제후들이 할거하기 시작한 시대에서부터 대부들의 할거시대, 즉 진나라가 한 위 조 라는 대부들의 나라로 갈라지던 시기 이전까지를 그 시기로 본다면, 춘추시대는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403년까지가 된다. 그리고 전국 시대는 그 다음해인 기원전 402년부터 진나라 왕인 정이 중국을 통일하고 시황제를 칭하게 되는 기원전 221년까지가 된다.

이렇게 보면 공자가 활동한 때는 주나라가 천자국으로서의 힘을 잃고 동쪽으로 쫓겨가 동주를 세운 후 이미 춘추시대의 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시기였다.

전설적인 성왕인 황제와 요 순의 시대, 우 임금의 하나라, 탕임금의 은나라를 거쳐 중원을 차지한 무왕의 주나라에 이르면(기원전 1100년경) 왕과의 혈연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종법 질서의 봉건체제가 자리를 잡는다. 물론 주나라는 공자가 극찬하듯이 완벽한 조화와 질서의 사회는 아니었을지라도, 상대적으로 대국인 주나라를 천자국으로 하여 각 제후국들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유지되는 시대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혈연관계로 맺어졌던 각국 제후의 자손들은 서로 소원해져 갔고, 상호협력보다는 전쟁을 통한 국력 확장에 골몰했다. 급기야는 천자국인 주나라마저도 공격하여 주나라는 동쪽의 낙양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었다. 주나라가 동쪽으로 옮길 때 일부 제후들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나라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나라는 이미 천자국으로서의 권위를 잃고 말았다. 이제는 하나의 제후국이 지나치게 강대해지는 것을 서로 견제하는 상황에서 제후국들 간의 필요에 의해 주나라는 그저 천자국의 명분만을 지키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가장 강한 제후가 패자가 되는, 불안정한 천하의 질서가 간신히 지탱되고 있었다.

공자가 태어난 것은 이런 식의 불안한 질서가 이미 200여 년간 지속된 때였다. , , , , , 우러 등의 강대한 제후국들은 패자가 되기 위해 전쟁을 별였고, , , , , , , 채 등 약한 제후국들은 그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심해야 했다. 공자가 태어난 곳은 비교적 약소국에 속했던 노나라였다. 특히 노나라는 패자가 되려는 의지가 강했던 강대국 제나라의 옆에 붙어서 수시로 존립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다만, 노나라는 무왕을 도와 주나라의 천하통일과 문물제도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공이 봉해진 제후국이었기 때문에, 약소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후들이 함부로 합병을 시도할 수 없었다. 노나라는 여전히 주공의 권위가 받쳐 주고 있었고, 또한, 주나라의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노나라를 합병한다는 것은 다른 제후국제후부터 비난과 공격을 초래할 명분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이제 나라의 상하질서는 무너져갔고, 제후국 내에서도 권력을 잡은 대부들이 국가를 좌우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는 대부의 가신들이 바날ㄴ을 일으키기도 했다. 논어에 수없이 등장하는 세 대부의 집안, 즉 계손씩, 숙손씩, 맹손씨가 노나라를 좌우하다가, 나중에는 계손씨의 가신인 양호에게 실권을 빼앗기게 된 것도 이러한 상황의 한 예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는 천자국 중심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지만, 역사는 이미 대부들이 반란을 통해 국가를 형성하게 되는 전국 시대로 달려가고 있었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 노나라 추읍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지금의 산동성 곡부 지역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노나라는 주나라의 주공이 봉해진 제후국이었기 때문에 주나라의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었고, 그러한 환경은 공자가 성장하면서 주나라 예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공자 자신의 집안 내력은 확실하지 않지만, 60이 넘은 아버지 숙량흘과 젊은 어머니 안징재 사이에서 야합으로 태어났다는 사기의 기록이 어느 정도 확실하다면, 어쨌든 별달리 가문의 후광을 입을 처지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더욱이 늙은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공자가 젊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야 했기에, 공자는 제대로 된 스승 밑에서 체계적인 공부를 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창고지기나 가축관리 등의 천한 일을 하면서도 예에 관심이 많았었다는 공자 자신의 기억이 몇몇 기록에 묻어서 전해질 뿐이다. 19세에 기관씨의 딸과 결혼을 했다고 하지만 부인에 관해서도 믿을 만한 기록은 보이지 않고, 다만 자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 리와 제자 공야장에게 시집보낸 딸이 하나 있었다는 사실을 논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남들에게 배우기를 즐겨했던 공자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립했다고 한다. 서른 살 무렵이면 이미 공자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그의 행적을 보면 이미 열다섯에 뜻을 둔 학문이란 것이 단순히 옛 제도와 예법을 공부하여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뒷날 그가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뜻을 펼치려다가 양호와 환퇴 등으로 인하여 위험에 빠졌을 때, 그는 자신이 세상에 도를 전할 사명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해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다. 그가 뜻을 둔 학문이란 주나라 문화와 제도의 회복을 통하여 천하의 안정을 되찾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바로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 준 사명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노나라에서 토지 문제를 관리하는 사공, 형벌과 치안을 담당하는 사구 등 적지 않은 벼슬도 하였고, 그의 제자들도 관직에 나아가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세 대부의 집안이 나라의 기강을 뒤흔드는 현실 속에서 공자는 뜻을 펼칠 수가 없었고, 결국 55세에 노나라를 떠나 여러 나라를 떠돌게 된다. 그는 여러 나라의 제후들을 만나 인과 예에 입각한 자신의 사상을 현실 정치 속에서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생사가 걸린 세력 다툼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제후들은 공자의 공상한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렇게 자신의 이상 현실을 위해 먼 길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공자는 현실의 벽을 절감했고 몇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다.

결국 그는 13년간의 긴 여행을 정리하고 노나라로 돌아왔다. 이제 이미 68세의 노인이 된 그가 전념한 것은 교육과 저술이었다. 공자가 처한 현실에서는 실현될 수 없을지라도, 먼 훗날 어느 때든 그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희망의 싹을 심고자 한 것이었다. 이제 공자는 실권은 없을지라도 노나라에서 명망 있는 원로로 대접받았고 그의 제자들은 미미한 자리나마 정치의 일선에 섰다. 공자는 이 시기에 제자들을 가르치며 시, , , , , 춘추 등의 이른바 육경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는 기원전 479 73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생전에 원했던 만큼은 아닐지라도, 말년에 희망했던 대로 그의 사후에 이천년이 넘도록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고, 지금도 그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공자의 시대에는 예를 익히고 가르치는 지식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예에 관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제후나 세도가들에게 교육, 문화, 정치 등에 관해 자문을 해 주고 그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며 그들로부터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공자도 이런 지식인들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공자가 특별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예라는 번잡한 형식을 왜 따라야만 하는가에 대해 설득력 있는 철학적 의미를 찾아서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었다는 데 있다. 그 이전까지는 대체로 예의 형식적인 면에만 치중했을 뿐, 그 정신적 토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별달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자가 제기한 예의 정신을 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이란 논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개념이고, 공자의 사상을 이야기 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개념이므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의 내용을 알고자 한다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공자는 인에 대하여 분명한 정의를 내려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인은 그가 최고의 덕목으로 여러 차례 언급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의 경지를 알고 싶어했다. 그런데 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으로는 그가 자신보다도 뛰어난 인재로 지목했던 제자 안연이나, 요임금, 순임금 등의 전설적인 성인을 꼽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자기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안연을 인한 사람이라고 한 이유도 단지 궁핍하게 살면서도 진리를 추구하는 그 뜻을 바꾸지 않아다는 설명에 그치고 마은데, 그런 지조와 용기라면 또 다른 제자인 자로도 뒤질 바가 아니었으니 인의 경지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공자가 분명하게 인을 정의한 것은 제자인 번지의 질문에 대해 “{인이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 내용을 미루어 보자면, “자기가 서고자 할 때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뜻을 이루고자 할 때 남이 먼저 이루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의 덕은 항상 겸손하게 말을 조심하며, 이기적인 욕구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야 한다는 예의 형식으로 실현된다. 인이란 글자 그대로 두 사람,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뜻한다. 공자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들 사이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통하여 사회의 안정을 추구했고, 이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인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예를 통해 인의 실현을 이루려 하되, 그러한 인의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근거를 효라는 자연적 본성에서 찾았다. 공자는 누구나 자신의 부모를 잘 모시고 싶어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데 착안하여, 자신과 부모의 관계를 인간 관계의 가장 바람직한 모델로 상정했다. 이러한 효도의 마음을 형제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나라와 천하에까지 확충하여 나가는 것이 바로 인이라는 인간 관계의 실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예라는 형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자세를 알고자 한다면 공자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인 증자가 공자사상의 핵심으로 지목한 충서를 들 수 있다. 주희의 풀이에 따르면 충이란 진심을 다하는 성실한 마음이고, 서란 자심의 마음을 미루어서 타인이 바라는 바를 먼저 해 주는 적극적인 태도이다.

공자는 이러한 자세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공자의 정명론이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신은 자식답게살아가라는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갈 때, 마치 온갖 악기들이 하나의 멋진 교향악을 만들어 내듯이 조화로운 사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삶의 최고의 경지를 음악에 비유하곤 했다.

시에서 감흥을 일으키고, 예를 통해 자립하고, 음악에서 완성을 이룬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의 길을 이렇게 묘사했다.

도에 뜻을 두고, 덕을 바탕으로 하여, 인에 의지하고, 예술의 세계에서 노닐었다.”

공자에게서 예에 따라 산다는 것은 경직된 규범에 자신을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도덕적 욕구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다만,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욕구와 유혹에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내면적인 공부와 병행하여 생활 속에서 예라는 형식의 반복 수행을 통한 훈련을 해야 한다. 이러한 공부와 반복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것이 바로 음악과 같은 예술의 경지이고, 그것이 공자가 꿈꾸었던 이상적 삶과 사회의 모습이다.

(논어, 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편 학이

 

P2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P28

유지가 말했다. “그 사람됨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경스러우면서 윗사람 해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 해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질서를 어지럽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는 것이니, 근본이 확립되면 따라야 할 올바른 도리가 생겨난다. 효도와 공경이라는 것은 바로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니라!”

 

P29

증자는 말했다. “나는 날마다 다음 세가지 점에 대해 나 자신을 반성한다.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못한 점은 없는가? 벗과 사귀면서 신의를 지키지 못한 일은 없는가?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없는가?

 

P3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신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으며, 배워도 견고하지 않게 된다. 충실과 신의를 중시하고,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사귀지 말며,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P32

유자가 말하였다. “예의 기능은 화합이 귀중한 것이다. 옛 왕들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다고 여겨서, 작고 큰 일들에서 모두 이러한 이치를 따랐다. 그렇게 해도 세상에서 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화합을 이루는 것이 좋은 줄 알고 화합을 이루되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세상에서 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P3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먹는 것에 대해 배부름을 추구하지 않고, 거처하는 데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또한 일하는 데 민첩하고 말하는 데는 신중하며, 도의를 아는 사람에게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이런 사람이라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만하다.”

 

P3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2편 위정

 

P3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에 있는 삼백 편의 시를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생각에 거짓됨이 없다는 것이다.”

 

P37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이 병날까 그것만 근심하신다.”

 

P38

자유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요즘의 효라는 것은 부모를 물질적으로 봉양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개나 말조차도 모두 먹여 살리기는 하는 것이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짐승과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P3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그 동기를 살펴보고, 그가 편안하게 여기는 것을 잘 관찰해 보아라.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

 

P40

자공이 군자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란 말보다 앞서 행동을 하고, 그 다음에 그에 따라 말을 한다.”

 

P4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P42

계강자가 물었다. “백성들이 윗사람을 공경하고 진심으로 따르며 열심히 일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엄 있는 태도로 대하면 백성들이 공경하게 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면 진심으로 따르게 되며, 능력 있는 사람을 등용하여 부족한 사람을 가르치도록 하면 백성들은 열심히 일하게 된다.”

 

P4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신의가 없으면 그 쓸모를 알 수가 없다. 만일 큰 수레에 소의 멍에를 맬 데가 없고 작은 수레에 말의 멍에를 걸 데가 없으면 어떻게 그것을 끌고 갈 수 있겠느냐?”

 

P4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가 모셔야 할 귀신이 아닌데도 그를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보고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3편 팔일

 

P48

자하가 여쭈었다. “고운 웃음에 보조개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또렷하니, 흰 바탕에 무늬를 더하였네! 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다음이라는 것이다.” 자하가 말하였다. “예는 나중 일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으켜 주는 자는 상이로구나! 비로소 자네와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P50

공자께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실 떼에는 조상께서 살아계신 듯이 하셨고, 다른 신께 제사 지낼 때는 그 신이 와 계신 듯이 하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자신이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과 같다.”

 

P5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활쏘기를 할 때 과녁의 가죽을 꿰뚫는 데 주력하지 않는 것은 힘씀이 다 다르기 때문이니, 이것이 옛날의 도리이다.”

 

P53

애공이 재아에게 사에 대해 물었다. 재아가 대답하였다. “하나라 왕조는 소나무를 심었고, 은나라 사람들은 측백나무를 심었습니다.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심었는데, 백성들이 전율케 하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공자께서 이를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이루어진 일은 논란하지 말고, 끝난 일은 따지지 말며, 이미 지나간 일은 허물하지 않는 것이다.”

 

P5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실천하는 데 공경스럽지 않으며, 상을 당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 사람을 인정해 주겠는가?”

 

4편 리인

 

P5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누려서는 안 된다. 가난함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부당하게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억지로 벗어나려 해서는 안 된다. 군자가 인을 버리고 어찌 군자로서 명성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 먹는 순간에도 인을 어기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급한 때라도 반드시 인에 근거해야 하고, 위태로운 순간일지라도 반드시 인에 근거해야 한다.”

 

P5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허물은 각기 그가 어울리는 무리를 따른다. (그러므로) 그 허물을 보면 곧 그가 어느 정도 인한지를 알게 된다.”

 

P6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침에 도를 들어 알게 된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P6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지만 소인은 편히 머물 곳을 생각하고, 군자는 법을 생각하지만 소인은 혜택받기를 생각한다.”

 

P6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를 걱정해야 하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남이 알아줄 만하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P6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를 섬길 때는 잘못하시는 점이 있더라도 조심스럽게 말씀드려야 하고, 그 말을 뜻을 보이더라도 더욱 공경하여 부모의 뜻을 어겨서는 안 되며, 아무리 힘들더라도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P6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사람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는데, 이는 행동이 따르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P6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말에 대해서는 모자라는 듯이 하려 하고, 행동에 대해서는 민첩하려고 한다.”

 

5편 공야장

 

P68

재여가 낮잠을 자고 있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장에는 흙손질을 할 수가 없다. 재여에 대해 무엇을 꾸짖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에 나는 사람에 대하여 그의 말을 듣고는 그의 행실을 믿었는데, 이제는 사람에 대해여 그의 말을 듣고는 그의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 재여로 인해서 이를 바꾼 것이다.”

 

P69

자공이 말하였다. “저는 남이 저에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일을, 저 또한 남에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그것은 네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P7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행해질 때는 지혜롭게 행동했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어리석은 듯이 행동했다. 그 지혜는 누구나 따를 수 있으마 그 어리석음은 아무나 따를 수가 없다.”

 

P7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듣기 좋게 말을 꾸며 대고 보기 좋게 얼굴빛을 꾸미며 지나치게 공손한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다고 하는데, 나도 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긴다. 원한을 감추고 그 사람과 벗하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겼다고 하는데, 나 또한 이를 부끄럽게 여긴다.”

 

6편 옹야

 

P78

공자께서 중궁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얼룩소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번듯하다면, 비록 제물로 쓰지 않으려 한들 산천의 신이 그것을 내버려 두겠는가?”

 

P7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도다, 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가지고 누추한 거리에 살고 있으니,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런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겠지만, 회는 그 즐거움이 변치 않는구나. 어질도다, 회여!”

 

P8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은 자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전투에 패하여 달아날 때는 군대의 후미에 적을 막았고, 성문에 들어올 즈음에는 그의 말에 채찍질하면서 말하기를, ‘김히 뒤에 처지려 한 것이 아니라, 말이 나아가지를 않았소라고 하였다.”

 

P8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면 촌스럽고,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형식적이 된다. 겉모습과 바탕이 잘 어울린 후에야 군자다운 것이다.”

 

P8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P8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간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것을 말할 수 있으마, 중간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것을 이야기 할 수 없다.”

 

P8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인한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인한 사람은 장수한다.”

 

7편 술이

 

P8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묵묵히 마음속에 새겨 두고, 배움에 싫증내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 이 셋 중 어느 하나인들 내가 제대로 하는 것이 있겠는가?”

 

P8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격을 수양하지 못하는 것, 배운 것을 익히지 못하는 것, 옳은 일을 듣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걱정거리이다.”

 

P8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려는 열의가 없으면 이끌어 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일깨워 주지 않으며, 한 모퉁이를 들어 보였을 때 나머지 세 모퉁이를 미루어 알지 못하면 반복해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P9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 삼고 누워도 즐거움은 또한 그 가운데 있다. 의롭지 않으면서 부귀를 누리는 것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은 것이다.”

 

P9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서 좋은 점은 가리고 본받고, 그들의 좋지 않은 점으로는 나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다.”

 

P9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많이 듣고 그 중 좋은 것을 택하여 따르며, 많이 보고 그 중 좋은 것을 마음에 새겨 둔다면, 이것이 진실로 아는 것에 버금가는 말이다.”

 

P9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치스럽게 하다 보면 공손함을 잃게 되고, 검소하게 하다 보면 고루하게 되지만, 공손함을 잃기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낫다.”

 

8편 태백

 

P99

증자가 말하였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 없는 사람에게 묻고, 많이 알면서도 적게 아는 사람에게 물었으며, 있으면서도 없는 듯하고, 꽉차 있으면서도 텅 빈 듯하고, 남이 자기에게 잘못을 범해도 잘잘못을 따지며 다투지 않았다. 예전에 나의 친구가 이를 실천하며 살았다.”

 

P9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를 통해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예를 통해 도리에 맞게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음악을 통해 인격을 완성한다.”

 

P10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은 도리를 따르게 할 수는 있지만, 도리를 이해하게 할 수는 없다.”

 

P10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직위에 있지 않다면, 그 직위에서 담당해야 할 일을 꾀하지 말아야 한다.”

 

P10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뜻은 크면서 정직하지도 않고, 무지하면서 성실하지도 않으며, 무능하면서 신의도 없다면, 그런 사람은 내가 알 바 아니다.”

 

9편 자한

 

P105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절대로 하지 않으셨다. 사사로운 뜻을 갖는 일이 없으셨고, 기필코 해야 한다는 일이 없으셨으며, 무리하게 고집부리는 일도 없으셨고, 자신만을 내세우려는 일도 없으셨다.

 

P107

공자께서는 상복을 입은 사람이나 예복을 갖추어 입은 사람, 그리고 장님을 만나시면, 그들을 보아서 그들이 비록 젊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일어서셨으며, 그들의 앞을 지나가실 때에는 반드시 종종걸음을 하셨다.

 

P10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가서는 벼슬 높은 이를 섬기고, 들어와서는 어른들을 섬기며, 상을 당했을 때는 감히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고, 술 마시고 실수하지 않는 일과 같은 것은,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P11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후배들이란 두려운 것이니, 그들이 지금의 우리만 못하리란 것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사십, 오십이 되어서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그 또한 두려워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

 

P11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올바른 말로 일러주는 것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잘못을 고치는 것이다. 은근하게 타이르는 말에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참뜻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다. 기뻐하기만 하고 참뜻을 궁구하지 않거나, 따르기만 하고 실제로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나도 그런 사람은 끝내 어찌 할 수가 없다.”

 

P11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P11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함께 도로 나아갈 수는 없고, 함께 도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입장을 같이 할 수는 없으며, 입장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른 판단을 함께 할 수는 없다.

 

10편 향당

 

P114

궁궐의 큰 문에 들어가실 적에도 몸을 굽히시어, 마치 문이 작아 들어가기에 넉넉하지 못한 듯이 하셨다. 문 한가운데에는 서 있지 않으셨고, 다니실 때에는 문지방을 밟지 않으셨다.

 

P117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으셨다.

 

P119

잠자리에서는 시체처럼 몸을 함부로 하여 눕지 않으셨고, 집에 계실 대에는 엄숙하지는 않으면서도 몸가짐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상복 입은 사람을 보시면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낯빛을 바로잡으셨고, 예복을 입은 사람과 장님을 만나시면 비록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낯빛을 달리하셨다. 상복을 입은 사람에게는 수레 위에서도 예의를 표하셨고, 나라의 지도나 문서를 지고 가는 사람에게도 수레위에서 예를 갖추셨다. 손님으로서 훌륭한 음식을 대접받으시면 반드시 낯빛을 바로잡고 일어서서 예를 표하셨다. 천둥이 심하게 치고 바람이 거세게 불면, 반드시 낯빛을 달리하셨다.

 

11편 선진

 

P12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사람들은 예와 음악에 있어서 야인처럼 질박했으나, 후대의 사람들은 예와 음악에 있어서 군자처럼 형식미를 갖추게 있다. 만일 내가 마음대로 택하여 쓸 수 있다면 나는 옛 사람들을 따르겠다.”

 

P124

계로가 귀신 섬기는 일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냐?” “감히 죽음에 대하여 여쭙겠습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삶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냐?”

 

P12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회는 거의 도를 터득했지만, 자주 쌀통이 빌 정도로 가난했다. 사는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재산을 늘렸는데, 그의 예측은 여러 차례 적중했다.”

 

P12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한 것이고, 유는 남을 이기려 하기 때문에 물러서도록 한 것이다.”

 

P129

자로가 자고를 비 땅의 읍재로 삼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의 자식을 망치는구나!” 자로가 말씀드렸다. “다스릴 백성이 있고 받들 사직이 있는데, 하필 글을 읽은 다음에야 공부를 한다고 하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래서 말 잘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다.”

 

12편 안연

 

P132

안연이 인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를 이겨내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만이라도 자기를 이겨내고 의로 돌아가면, 천하의 인에 귀의할 것이다. 인을 실천하는 거이야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달린 것이겠느냐?” 안연이 여쭈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여쭙고자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라.” 안연이 말하였다. “제가 비록 총명하지는 못하오나, 이 말씀을 명심하고 실천하겠습니다.”

 

P134

자장이 총명함에 대해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서히 젖어들게 하는 교묘한 참소와 피부에 와 닿는 듯한 절실한 하소연이 통하지 않는다면,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서서히 젖어들게 하는 교묘한 참소와 피부에 와 닿는 듯한 절실한 하소연이 통하지 않는다면,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을 만큼 밝은 안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P136

자장이 덕을 숭상하고 미혹됨을 분별하는 것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성과 신의를 위주로 하고 도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덕을 숭상하는 것이다. 좋아하면 그가 살기를 바라고 미워하면 그가 죽기를 바라는데, 이는 이미 그가 살기를 바라고서 또 그가 죽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것이 미혹된 것이다. ‘진실로 삶을 풍요롭게 하지도 못하고, 또한 다만 기이하게만 될 뿐이다. 라는 말도 있네.”

 

P13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남의 좋은 점을 이룩하도록 해주고 남의 나쁜 점을 이루어 주지 않지만,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

 

P139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만일 무도한 자를 죽여서 올바른 도리로 나아가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선생께서는 정치를 하는 데 어찌 죽이는 방법을 쓰시겠습니까? 선생께서 선해지고자 하면 백성들도 선해지는 것입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입니다. 풀 위에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입니다.

 

P13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명성이 있는 것이지 통달한 것이 아니다. 통달한다는 것은 본바탕이 곧고 의로움을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헤아리고 모습을 잘 살피며, 자신을 남보다 낮추어 생각하여, 나라 안에서도 반드시 통달하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통달하는 것이다. 명성이 있다는 것은 겉모습은 인을 위하면서도 행실은 안에 어긋나고, 그렇게 살면서도 의심조차 없어서, 나라 안에서도 명성이 있고 집안에서도 명성이 있는 것이다.

 

P140

번지가 인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앎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다.” 번지가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바른 사람을 등용하여 그릇된 사람의 위에 두면, 그릇된 사람을 바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번지가 물러나와서 자하를 보고 말하였다. “조금 전에 제가 선생님을 뵙고 앎에 대해 여쭈었더니. 선생님께서는 바른 사람을 등용하여 그릇된 사람의 위에 두면, 그릇된 사람을 바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일까요?” 자하가 말하였다. “넉넉하도다. 말씀이시여!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리실 때 여러 사람들 중에서 골라서 고요를 등용하시니 인하지 않은 사람이 멀리 사라졌소. 탕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는 여러 사람들 중에서 골라서 이윤을 등용하시니 인하지 않은 사람들이 멀리 사라졌지요.”

 

P141

자공이 벗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된 마음으로 조언을 해주고 잘 인도하되, 그래도 할 수 없다면 그만둘 일이지, 스스로 욕을 보지는 말아라.”

 

13편 자로

 

P142

자로가 정치에 대해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몸소 열심히 일하거라. “ 좀더 설명해 주기를 청하자 말씀하셨다. “게을리 함이 없어야 한다.”

 

P14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숙하구나, 유야!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사리에 맞지 않고, 말이 사리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와 음악이 흥성하지 못하고, 예와 음악이 흥성하지 못하면 형벌이 적절하지 않고, 형벌이 적절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살아갈 방도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명분을 세우면 반드시 그에 대해 말을 할 수 있고, 말을 하면 반드시 실천을 할 수 있다. 군자는 그 말에 대해서 구차히 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P14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 자신이 올바르면 백성들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행하고, 자기 자신이 올바르지 않으면 백성들은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

 

P14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일 년만 에라도 어느 정도 기강은 잡을 것이고, 삼 년이면 뭔가를 이루어 낼 것이다.”

 

P14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그 자신을 바르게 한다면 정치를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 자신을 바르게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남을 바르게 하겠는가?”

 

P148

섭공이 정치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기뻐하고, 먼 데 있는 사람들은 찾아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P149

자공이 여쭈었다. “어떤 사람을 선비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도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면, 선비라고 할 수 있다.” 감히 그 다음 수준을 여쭙겠습니다.” “일가 친척들이 효성스럽다고 칭찬하고, 마을 사람들이 공손하다고 칭찬하는 사람이다.” “감히 그 다음 수준을 여쭙겠습니다.” “말에는 반드시 신의가 있고 행동에는 반드시 성과가 있다면, 융통성없는 소인이긴 할지라도, 그래도 그 다음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아, 그릇이 작은 사람들이야, 따져 볼 가치가 있겠느냐?”

 

P14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도를 실천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면, 반드시 꿈이 큰 사람이나 고집스런 사람과 함께 하리라! 꿈이 큰 사람은 진취적이고, 고집스런 사람은 하지 않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P15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쪽 나라 사람들의 말에 사람이 일정함이 없으면, 무당이나 의사처럼 천한 노릇도 할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좋은 말이로다! 그 덕이 일정하지 않으면 수치스런 일을 당할 것이다.’라는 말도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점을 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P15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렵다. 그를 기쁘게 하려 할 때 올바른 도리로써 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나 군자가 사람을 부릴 때는 그 사람의 역량에 따라 일을 맡긴다.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쉽다. 그를 기쁘게 하려 할 때는 올바른 도리로써 하지 않더라도 기뻐한다. 그러나 소인이 사람을 부릴 경우에는 능력을 다 갖추고 있기를 요구한다.

 

P15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서 전쟁을 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을 버리는 것이다.”

 

14편 헌문

 

P153

원헌이 수치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을 때도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서 녹봉이나 받아 먹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도 관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녹봉을 받아 먹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P15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를 사랑하면서,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를 진심으로 대하면서, 깨우쳐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P160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말에 부끄러움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실천하기 어렵다.”

 

P16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했는데,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한다.”

 

P16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속이지 않을까를 미리 경계하여 대비하지도 않고, 남이 나를 믿지 않을까를 미리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도리어 그것을 미리 아는 사람이 바로 현명한 사람이다.”

 

P165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현명한 사람은 도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은 어지러운 지역을 피하고, 그 다음은 무례한 사람을 피하고, 그 다음은 그릇된 말을 하는 사람을 피한다.”

 

P168

궐당의 동자가 어른들의 심부름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여쭈었다. “공부를 쌓아 나가는 아이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보니, 저 아이는 어른 자리에 앉고, 손윗사람과 나란히 걸어다닙니다. 공부를 쌓아 나가려는 아이가 아니라 빠른 성취를 바라는 아이인 모양입니다.

 

15편 위령공

 

P171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더불어 말을 해야 할 때 더불어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때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도 않고 말을 잃지도 않는다.”

 

P171

자공이 인을 행하는 방법에 대해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기술자는 그의 일을 잘하려고 할 때 반드시 먼저 자신의 연장을 잘 손질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나라에 살든지, 그 나라의 대부들 중 현명한 사람을 섬기고, 그 나라의 선비들을 중 인한 사람과 벗해야 한다.”

 

P17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여럿이 모여 하루종일 지내면서도, 의로운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작은 꾀나 짜내기를 좋아한다면, 곤란한 문제로다!”

 

P17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긍심을 지니지만 다투지는 않고, 여럿이 어울리지만 편당을 가르지는 않는다.”

 

P175

자공이 여쭈었다. “한 마디 말로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P17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미워한다 해도 반드시 잘 살펴보아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해도 반드시 잘 살펴보아야 한다.”

 

P17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가 거기(맡은 직책)에 미치더라도 인으로 그것을 지킬 수 없으면, 비록 얻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잃는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고 인으로 그것을 지킬 수 있더라도, 엄숙한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고, 인으로 그것을 지킬 수 있고, 엄숙한 자세로 임하더라도, 백성들을 동원할 때 예로써 하지 않으면, 잘 되지 않을 것이다.

 

P17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바른 길을 따를 뿐이지, 무조건 신념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16편 계씨

 

P18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아하면 유익한 것이 세 가지가 있고 좋아하면 해로운 것이 세 가지 있다. 예악의 절도를 따르기를 좋아하고, 남의 좋은 점을 말하기를 좋아하고, 현명한 벗을 많이 사귀기를 좋아하면 유익하다. 교만하게 즐기기를 좋아하고, 방탕하게 노는 데 빠지기를 좋앙하고, 주색에 싸여 음란하게 놀기를 좋아하면 해롭다.”

 

P183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를 모실 때 저지르기 쉬운 세 가지 잘못이 있다.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 말하는 것을 조급하다고 한다. 말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을 속마음을 숨긴다고 한다. 얼굴빛을 살펴보지도 않고 말하는 것을 눈뜬 장님이라고 한다.”

 

P184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에게는 항상 생각하는 것이 아홉 가지가 있다. 볼 때에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고, 들을 때에는 똑똑하게 들을 것을 생각하며,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몸가짐을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 말을 할 때는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일을 할 때에는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의심이 날 때에는 물어 볼 것을 생각하고, 성이 날 때에는 뒤에 겪을 어려움을 생각하며, 이득될 것을 보았을 때에는 그것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17편 양화

 

P18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에 따라 서로 멀어지게 된다.”

 

P190

자장이 공자에게 인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다섯 가지를 실천할 수 있으면 그것이 인이다.” “그 내용을 여쭙고 싶습니다.” “공손함 너그러움 미더움 민첩함 은혜로움이다. 공손하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며, 미더우면 사람들이 신임하게 되고, 민첩하면 공이 있게 되고, 은혜로우면 사람들을 부릴 수 있게 된다.”

 

P192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얘들아, 왜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 시를 배우면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사물을 잘 볼 수 있으며,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고, 사리에 어긋나지 않게 원망할 수 있다.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된다.”

 

P196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부르게 먹고 하루종일 마음 쓰는 데가 없다면 곤란하도다! 장기나 바둑 이라도 있지 않은가? 그런 것이라도 하는 것이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P197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영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을 한다.”

 

18편 미자

 

P203

주공이 노공에게 말하였다. “군자는 친족을 소홀히 하지 않고, 대신들로 하여금 써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게 하지 않으며, 오래도록 함께 일해 온 사람은 큰 잘못이 않는 한 버리지 않으며, 한 사람에게 모든 능력이 갖추어져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19편 자장

 

P204

자장이 말하였다. “선비가 위태로운 일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이득될 일을 보면 의로운 일인가를 생각하며, 제사를 지낼 때는 공경함을 생각하고, 상을 당해서는 슬픔을 생각한다면, 그는 선비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을 갖춘 것이다.”

 

P205

자하가 말하였다. “비록 작은 재주라 할지라도 반드시 볼 만한 것은 있지만, (도를 추구하는) 먼 길을 가는 데 장애가 될까 염려되기 때문에 군자는 그런 것들을 하지 않는 것이다.”

 

P206

자하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변화가 있다. 그를 멀리서 바라보면 위엄이 있고, 가까이서 대해 보면 온화하며, 그의 말을 들어보면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

 

P209

자공이 말하였다. “군자의 잘못은 일식과 월식과 같다. 잘못을 하면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고, 잘못을 고치면 사람들이 모두 그를 우러러본다.”

 

20편 요왈

 

P214

자장이 말하였다. “어떤 것을 가리켜 은혜를 베풀되 낭비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는 것에 따라서 백성들을 이롭게 한다면, 이것이 곧 은혜를 베풀되 낭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애써 할 만한 일을 가려서 수고롭게 일하게 한다면, 또한 누가 원망을 하겠느냐? 인을 실현고자 하여 인을 이룬다며, 또 어찌 탐욕스럽다 하겠느냐? 군자가 많든 적든, 작은 크든간에 감히 소홀하게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넉넉하되 교만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느냐? 군자가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위엄있게 하여, 엄숙한 모습으로 사람들이 바라보고는 그를 어려워한다면 이것이 곧 위엄은 있으되 사납지 않은 것이 아니겠느냐?

 

3. 내가 저자라면

 

논어란 공자와 그 제자들이 세상 사는 이치나 교육, 문화, 정치 등에 관해 논의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그 안에는 공자의 혼잣말을 기록해 놓은 것도 있고, 제자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것, 그리고 제자들끼리 하던 이야기도 있다. 또한 제자 이외에 당대의 정치가들이나 은자들 또는 마을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책 제목이 논어가 되었다고 한다. 공자와 그 제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토론한 이야기라는 의미이다. 또 한편으로는 공자에 관해 남은 기록들을 제자들이 논의하여 정리한 이야기라는 의미로 보기도 한다. 제목의 의미는 어찌되었건, 이 책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자료 중 공자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데 가장 정확하고 귀중한 자료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 책은 공자의 체계적인 단독저작도 아니고, 제자들이 한 번에 정리하여 만든 것도 아니다. 논어라는 책 이름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 한나라 때에 완성된 예기인 것을 보면, 논어가 적어도 그 이전에는 완성된 듯하다. 물론 그 때의 논어가 지금 전해지는 것과 같은 모양을 갖추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완성된 형태는 아닐지라도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토론한 기록이 전해져 오며, 몇 사람의 손을 거쳐 그때쯤에는 지금의 형태와 가깝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토론과 손길을 거쳐 만들어졌지만, 적어도 전체 20편 중 앞의 10편이 먼저 만들어지고 뒤의 10면이 나중에 덧붙여졌을 것이라는 데는 크게 이의가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뒤의 10편이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것 역시 기존에 전해지던 자료를 정리해서 만들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것 역시 기존에 전해지던 자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앞의 10편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공자의 모습 그대로보다는 좀더 미화되고 과장된 면이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책의 성립과정이 이러하다 보니, 책의 구성은 산만하고, 일정한 흐름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처음의 편자 이래로 정현에 이르기까지, 논어를 편찬한 사람들의 의도는 분명히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공자의 사상을 체계화하기보다는 공자의 언행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다. 공자의 경지는 섣부른 편집이나 첨삭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위인전을 통해 전달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자가 가르친 것은 바로 인격적으로 완성된 삶의 경지였고, 그 경지는 공자의 인생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공자의 언행을 그대로 전하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하염없이 존경했던 스승을 조금이나마 미화하고자 했던 흔적은 지울 수 없지만, 지금도 논어에는 공자의 풍모와 성격이 곳곳에 배어 있을 뿐 아니라, 당시에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이야기하던 분위기와 말투까지도 그대로 살아 있다.

 

논어를 읽고 나면 자세를 고쳐 바로하게 될 것 같다. 모든 말에 수신을 전제로 하고 나아가라고 하고 모든 것을 자신으로서 그 출발로 삼는 것 같다. 중년에 논어를 보면서 나를 바로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익을 탐하는 것은 물론 공자가 이른 소인의 본보기가 되어 가고 있는 매일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논어는 전체적으로 분량은 많지 않으나 큰 말들이 있으므로 그 말들을 사례와 견주어 밝히는 일이 큰일로 보인다. 논어를 보면서 사람을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글이지만 그 글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오는 사람들의 배경과 상황과 갖고 있는 지식과 그가 해온 행동과 말들을 알고 이를 토대로 한 마디 말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를 읽는 것은 결국 사람을 읽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람을 읽는 것이 아닌지? 서로 읽고 읽히면서 공부하고 다듬어 나가는 것은 아닌지? 논어는 그 본을 다듬은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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