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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4일 18시 10분 등록

장자

오강남 풀이, 현암사

2014. 08. 24


1. 저자에 대하여

장자(BC369~289, 추측), 중국의 사상가, 도가


장자의 아내가 죽었다. 혜자가 문상을 갔을 때 장자는 두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아내와 살면서 아이들을 기르고 이제 늙은 처지일세. 아내가 죽었는데 곡을 하지 않는 것도 너무 한 일인데, 거기다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까지 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장자가 대답했다. “ 그렇지 않네. 아내가 죽었을 때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나? 그러나 그 시작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 본래 삶이란게 없었네. 본래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던 것이지, 본래 형체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본래 기가 없었던 것이지.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섞여 있다가 그것이 변하여 기가 되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되었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되었지, 이제 다시 변해 죽음이 된 것인데, 이것은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의 흐름과 맞먹는 일. 아내는 지금 ‘큰 방’에 편안히 누워 잇지. 내가 시끄럽게 따라가며 울고 불고 한다는 것은 스스로 운명을 모르는 일이라. 그래서 울기를 그만 둔 것이지.”_지락 18:4


아내가 죽었을 때 축제를 벌인 장자는 이름이 주周 전국시대 몽종(지금의 하남성과 안휘성의 경계) 사람이었던 것으로 전한다. 생몰연대는 대략 기원전 369년에서 286년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맹자(BC372~289)와 동시대 사람이며 명가의 대표적 인물인 혜자(혜시)와 막역한 벗으로 지냈다. 맹자와 동시대 사람이라고는 하나 각자의 저작에 서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서로 교류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생애동안 매우 가난하게 지냈으며 누추하게 살았다. 한번은 위나라 왕을 만나러 갔는데 덕지덕지 기운 옷을 입고 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장자는 사상적으로 노자를 이어 받았다. 그러나 노자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유가와 함께 중국 사상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도가의 맹주로서 공자, 맹자와 대별되어 노자, 장자로 함께 회자된다. 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았다고는 하나 서술방식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노자는 시적인 잠언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장자는 산문형식으로 우화를 통해 사상을 펼친다. 언어가 쾌활하면서도 해학을 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은유와 비유로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형식적이고 답답한 여타의 철학 사상과 대별되는 특징으로 고리타분한 철학적 사유에 빠져있다가 장자를 대하는 순간 답답함에서 벗어나 유쾌, 상쾌, 통쾌를 선사해 준다. 장자를 대하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자가 당시에 아무리 훌륭한 사상이었다 하더라도 오늘에 다시 해석되지 못한다면 무의미하다. 이천년을 훌러덩 건너 온 장자를 오늘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당면한 문제일 것이다. 장자는 노자와 함께 인위적이고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런 모든 행동을 초극한 상태, 분별지, 소지, 차별지 등 모든 이분법적 사고 방식을 넘어선 상태, 야심과 욕망과 우월감 등 일체의 자의식을 극복한 상태, 이런 빈 마음의 상태에서 도와 하나 되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라는 메세지를 오늘 우리에게 안긴다. 오늘 날 우리가 골몰하고 있는 패권 경쟁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반성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궁극적인 자유_이게 가능한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에 이르는 것이... ‘자유’라고 하면 또 ‘자유’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제1편 자유롭게 노닐다. 逍遙遊

: 자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변화, 초월_장자 전체의 주제.


26p.~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하였습니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이라 하였습니다. 그 등 길이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번 기운을 모아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았습니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여 물결이 흉흉해지면 남쪽 깊은 바다로 가는데, 그 바다를 예로부터 하늘 못이라 하였습니다.

>> 化而爲鳥의 화, 변화의 가능성과 그 실현. 알, 물고기, 붕새가 겉은 다르지만 본질은 하나, 거대한 물고기나 새도 조그만 알에서 시작. 우리는 모두 이런 씨알을 품고 있다.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티끌이 날고, 생물들이 서로 숨을 불어 주고, 하늘은 푸른데, 그것이 하늘의 본래 색깔입니까? 끝없이 멀기 때문에 푸르게 보이는 것은 아닙니까?

>> 깊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된다. 작게 보면 아무런 색이 없지만 멀리 끝없이 보면 하늘이 비로소 푸른 것이다.


괸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습니다. ... 바람이 충분하지 못하면 큰 날개를 띄울 힘이 없습니다.

>> 나는 합당함이 있어야 반응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31p.~ 가까운 숲으로 놀러 가는 사람은 세 끼 먹을 것만 가지고 가도 돌아올 때까지 배고픈 줄 모르지만, 백리 길을 가는 사람은 하룻밤 지낼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먹을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매미나 새끼 비둘기 같은 미물이 어찌 이를 알 수 있겠습니까? 조금 아는 것으로 많이 아는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짧은 삶으로 긴 삶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 아침에 잠깐 났다가 시드는 버섯은 저녁과 새벽을 알 수 없습니다. 여름 한철 사는 메뚜기는 봄과 가을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짧은 삶입니다. ...

>> 우리 모두는 여기 매미, 비둘기, 버섯, 메뚜기 가운데 어느 하나일 것이다. 내가  아는 이야기 가운데 하루살이, 메뚜기, 개구리 이야기가 있는데 장자가 원전이었던 모양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하루살이에게 내일이 없듯이 메뚜기는 봄과 가을을 알 수 없다. 노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 써 행하려 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이런가 저런가 망설이고, 못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몹시 비웃는다.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것은 도라고 할 수 가 없다._41장” 

>>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좋은 차 타고 사는 것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본 사람들만의 것이다. 이런 것만을 추구하는 것을 지극히 ‘현실주의’라고 하는 것도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그들만의 현실인 까닭이다. ‘도’의 세계가 저 너머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에 관한 이야기다. 현실은 하루살이이거나 메뚜기 일지라도 정진하기에 따라서 붕새로 화 할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자리가 바로 이 자리다. 현실을 이상이라고 하지 마라. 그대들이 말하는 현실은 오히려 하루살이의 현실일 뿐이다.


35p.~  (구만리 하늘을 날아 남쪽 깊은 바다로 가는 붕새를 보고~) 메추라기가 이를 보고 비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 새는 저렇게 날아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 나는 한껏 뛰어 올라도 몇 길을 못 올랐다가 내려 앉아서 기껏해야 이 숲에서 저 덤불로 날아가는데, 도대체 저 붕새는 저렇게 날아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큼과 작음의 차이가 이렇습니다.

>> 큰 삶과 작은 삶의 차이가 이런 것이다. 저 깊은 바다로 가는 붕새의 뜻을 메추라기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장자가 첫 구절에 이렇듯 설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가 큰 뜻을 말하는데 있어 가벼이 현실적인 말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은 사실보다 강하다. 장자는 글자로 읽는 것이 아니라 상징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가리키는 손가락 너머의 진실, 즉 상징하는 바를 바라볼 때 우리는 변해서 새로운 실재에 동참하게 된다. 하늘이 ‘구만 리’가 오늘 날 몇 킬로이며 이것은 과학적으로 참이 아니라느니 따위의 논쟁이나 할 겨를이 없다. 


38p.~ 자유의 네 단계

첫째, 그러므로 그 아는 것이 벼슬자리 하나 채울 만한 사람. 그 행위가 마을 하나를 돌볼 만한 사람, 그 덕이 임금 하나를 섬길 만한 사람, 그 재능이 한 나라를 맡을 만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메추라기만한 사람들

>> 너와 나의 모습이다.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기껏해야 과장, 부장, 장관, 총리 따위의 사다리 하나를 오르기 위해 인생의 목표로 삼고 일로 매진하는 사람들이다. 하루살이의 모습이며 우물안의 개구리 삶을 말한다.


둘째, 송영자는 그런 사람들을 비웃었으며, 그는 온 세상이 자신을 칭찬해도 우쭐하지 않고, 비난해도 기죽지 않았습니다. 내실과 외식을 분명히 구별하고 영광과 치욕의 경계를 확실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도 아직 이르지 못한 경지가 있었습니다.

>>칭찬이나 비난에 초연하지만, 아직 칭찬과 비난을 의식하고 분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셋째, 열자는 바람을 타고 올라가 마음대로 노닐다가 열 닷새가 지나서 돌아왔습니다. 세상의 행복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히 노닐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을 만큼 초연하지는 못했습니다. 

>> 세상사에 초연하여 이리 저리 마음 닿는 곳으로 맘 껏 두루 다니며 자유를 누리지만 아직 바람에 의지해야 한다. 기대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직 외부요인에 의지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 자유의 바람은 보름마다 오는 모양이다. 


넷째, 어떤 사람이 하늘땅의 바름正을 타고, 여섯 가지 기氣의 변화를 부려, 무한한 경지에서 노닐 수 있다고 생각 그 사람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러므로 지인至人은 자신에 집착하지 않으며, 신인神人은 공적에 무관하고, 성인聖人은 명예를 탐내지 않습니다.

>>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고無待 무엇에도 거리낌 없는無碍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단계. 즉 無己, 無功, 無名한 사람을 말한다. 지인이나 신인이란 말은 장자에서 처음 나오는 말. 이 단계야 말로 도와 함께 노니는 소요유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우물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42p.~ 요 임금이 나라를 허유에게 넘겨주겠다고 말했습니다. ... 저는 세상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

>> 임금 자리를 허유에게 물려 주겠다는 임금이나 그것을 사양하는 허유나 세상의 눈으로 보면 성인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자는 이 구절에서 요 임금은 망공, 망명 하지 못했음을, 허유는 망기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45p.~ 막고야산의 신인

견오가 연숙에게 말했습니다. “접여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터무니없이 큰소리를 치면서 일사천리로 나아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을 모릅디다. ... 연숙이 말했습니다. “그렇군, 눈먼 사람은 아름다운 장식을 볼 수 없고, 귀먹은 사람을 종이나 북소리를 들을 수 없지. 몸만 눈멀고 귀먹었겠소, 지각도 그랬겠지. 이것이 바로 그대의 일이구려. 신인은 그의 덕으로 온갖 것과 어울려 하나가 된 것이오. ...

>> 장자는 접여의 입을 통해 자신의 말을 전하고 있다. 신인은 메추라기 같은 상식인의 눈으로 보면 미친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여기서 신인은 세상사에 몰두하지 않고 자신만 등선하여 자유롭게 노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온갖 것고 하나가 된 상태로 만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물처럼 흐르듯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게 때문에 구태여 나서서 뭘 한다고 설치지 않는다. 노자에서 말하는 ‘함이 없는 함無爲之爲’를 실천하는 경지를 말한다. 이런 사람이 한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사람들이 그 행동을 알지 못할 지경이다. 


51p.~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습니다. “위나라 임금이 준 큰 박 씨를 심었더니 거기서 다섯 섬들이 박이 열렸네. 거기다 물을 채웠더니 너무 무거워 들 수가 없었지. 쪼개서 바가지를 만들었더니, 깊이가 없이 납작해서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는데 크기만 하고 달리 쓸모도 없어 깨트려 버렸네.” 

장자가 대답하기를 “... 자네는 어찌하여 다섯 섬들이 박으로 큰 술통을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워 놓고 즐길 생각을 못 하고 깊이가 너무 얕아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고만 걱정했단 말인가? 자네는 아직도 작은 일만 생각하는 쑥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구만.”

>> 혜자는 장자의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주장에 반박하고자 박 이야기와 옹이로 가득찬 가죽나무 이야기를 빗대어 장자의 주장을 반박한다. 사물은 본디 그 쓰임이 있는 것인데 그 쓰임을 다하지 못하면 쓸모 없는 것이란 ‘본질론적 견해’를 밝혀 주장한다. 그러나 장자가 보기에 쓰임을 한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다. 박을 물 바가지로 쓸 수 없으면 술 항아리로 쓰면 될 일이지 왜 꼭 물 바가지로 용도를 한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쓸모 없음의 더욱 큰 쓸모 無用之大用’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2편 사물을 고르게 하다. 齋物論

: 사물의 한쪽만 보는 우리의 상식적, 분석적,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에서 사물의 진상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예지와 직관과 통찰을 체득해야 한다. 양극의 조화가 이루어진 세계, 대립을 초월한 세계에서 사물을 보는 것.


61p.~ 언아, 참 잘 보았구나. 지금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 1편이 외형적 변화에 대한 것이라면, 2편은 내면적 변화 즉 화학적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오상아吾喪我는 장자의 핵심 개념으로 ‘내가 나를 잃어버려 진정한 내가 되었다.’는 것. 에고를 떨치고 참 나를 발견하는 것. 자기를 잃어버리고 비운 상태, 이른바 喪我, 無我, 忘我, 忘己라는 자기초월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65p.~ 온갖 것에 바람을 모두 다르게 불어 넣으니 제 특유한 소리를 내는 것이지. 모두 제 소리를 내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 소리가 나게 하는 건 누구겠느냐?

>> 이 대목이 중국문학사의 명문장이라고 하는데 한자로 읽어낼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는 모두 제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소리는 겨국 우리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내게 하는 하늘의 힘, 도의 힘이 내는 퉁소 소리인 셈이다.


69p.~ 큰 꾀는 느긋하고, 작은 꾀는 좀스럽고. 큰 말은 담박하고, 작은 말은 시끄럽고. 잠잘 때는 꿈으로 뒤숭숭하고, 깨어 있을 때는 감각 기관이 일을 시작하고. 접촉하는 일마다 말썽을 일으키고, 마음은 날마다 싸움질에나 쓰고. 더러는 우물쭈물 더러는 음흉 더러는 좀생이. 작은 두려움에는 기죽어하고, 큰 두려움에는 기절하고.


73p.~ 참주인眞宰이 분명히 있는데, 그 흔적을 잡을 수 없구나 ~

... 일단 온전한 몸을 받았으면, 우리는 그것을 일부러 망치지 말고, 저절로 쇠잔해질 때가지 기다린다. 사물을 대하여 서로 깎고 가는 동안에 우리의 삶은 달리는 말처럼 걷잡을 수 없이 지나가고 마니, 이 또한 슬픈 일이 아니냐? 죽을 때까지 일하고 수고해도 아무것도 잘된 것 보지 못하고, 그저 일에 쫓기고 지쳐 돌아가 쉴 데도 없으니, 이 어찌 애처롭지 않으냐? ~

>> 마음도 참주인이 아니다. 몸이 쇠하는 것과 같이 마음도 쇠한다. 분별하는 마음은 특별히 딴 기관을 다스릴 자격이 없고 그럴 성질의 것도 못 된다. 마음 역시 덧없이 쇠망하는 여러 것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참주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78p.~ 도가 무엇을 가리어 참과 거짓의 분별이 생긴 것일까? ... 이들이 그르다 하는 것을 옳다 하고, 이들이 옳다 하는 것을 그르다 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들이 옳고 그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밝음이 있어야 한다.


81p.~ 사물은 모두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모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85p.~ 되는 것을 일러 됨이라 하고 되지 않는 것을 일러 되지 않음이라 한다. 길은 다녀서 생기고 사물도 그렇게 불러서 그렇게 된다. 어찌해서 그렇게 되는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물에는 본래 그럴 까닭이 있고,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렇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럴 수 없는 것도 하나도 없다. ... 오로지 높은 경제에 도달한 사람만이 모두 통하는 하나를 깨닫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차별의) 범주 대신, (양쪽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것庸’에 머무를 수 있다.

보편적인 것(庸)이란 쓸모 있음을 말한다. 쓸모 있음이란 통함이고 통함이란 즐김이다. 즐김은 도에 가까움이다.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하는 것(因是)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줄 모르는 것. 그것을 도라 한다.

>> 구태여 자기의 행동이나 처지를 객관화하여 의식하지도 않는다.


91p.~ 조삼모사

...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옳고 그름의 양극을 조화시킨다. 그리고 모든 것을 고르게 하는 ‘하늘의 고름天鈞’에 머문다. 이를 일러 ‘두 길을 걸음兩行’이라고 한다.

>> 조삼모사 이야기는 자주 인구에 회자되는 이야기다. 인간의 우비함을 원숭이에 빗대어 교훈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더 깊숙하게는 사물의 양면을 동시에 보지 못함과 궁극 실재가 하나임을 모르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천균이란 공정함을 말하며 양행이란 치우침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경지에 닿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因是’의 문제라 할 수 있다.


94p.~ ... 옳고 그름을 따지면 도가 허물어진다. 도가 허물어지면 욕망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루고 허물어지는 것이 과연 잇는 것일까? 이룸과 허물어짐이라는 것이 따로 없는 것 아닐까? ... 성인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현란한 빛을 없애려 한다. 그러기에 이것이냐 저것이냐 구별하려 하지 않고 ‘보편적인 것’에 머문다. 이것이 바로 ‘밝음’이다.

>> 無란 허무한 것이 아니라 ‘분별이 사라지는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논리나 관념따위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초월의 경지(갓난아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대부분 원숭이의 삶을 살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101p.~ ...없음에서 있음으로 나아가도 금방 셋이 되는데, 하물며 있음에서 있음으로 나아갈 때야 일러 무엇하겠나? 그러니 부산하게 좇아 다니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그러하다(因是)고 받아들이자.

>> 도는 가장 큰 것 보다 크고, 가장 작은 것 보다 작다. 즉, 그 너머의 것.


105p.~ ... 성인들은 도를 마음속에 간직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서로 보이려고 변론을 한다. 그러므로 변론은 도를 보지 못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무릇 위대한 도는 이름이 없다. 위대한 변론은 말이 없다. 위대한 인은 편애하지 않으며 위대한 겸손은 밖으로 드러내는 겸양이 아니다. ... 그러므로 알지 못함을 알고 멈출 줄 아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 左右, 倫義, 分辯, 競箏등 이렇게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은 도가 아니다.


111p.~  ...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아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113p.~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을 달게 먹고, 올빼미는 쥐를 좋다고 먹지.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이 맛을 바르게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 모장이나 여희는 남자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지만, 물고기는 보자마자 물 속 깊이 들어가 숨고, 새는 보자마자 높이 날아가 버리고, 사슴은 보자마자 급히 도망가 버린다.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이 아름다움을 바르게 안다고 하겠는가?


121p.~ ... 죽은 사람들도 전에 자기들이 삶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 여희가 시집가기 싫어 울었던 것을 후회 하듯이...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 변화하는 것을...


126p.~ 꿈에 술을 마시며 즐거워했던 사람이 아침에는 섭섭해서 운다. ~

>> 꿈이 꿈이라는 것을 알려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 삶이 한바탕 꿈이라면 역시 반드시 크게 깨어나야 이 삶이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129p.~ 나와 자네가 논쟁을 한다고 하세.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를 이기지 못했다면, 자네는 정말 옳고 나는 정말 그른 것인가? ... 옳다 그르다 의미를 따지는 일을 잊어버리게. ...


132p.~ 엷은 그림자가 본 그림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조금 전에는 걸어가더니 지금은 멈추었고, 조금 전에는 앉았더니 지금은 일어섰으니, 왜 그렇게 줏대가 없소?’ 그림자가 대답했다. ‘내가 딴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소? 내가 의존하는 그것 또한 딴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오?’

>> 사물의 상호 의존성과 상호 연관성. 형편에 따를 뿐. 외물에 의존하는 이상 외물의 움직임에 따라 그럴 수 밖에 없음. 그러나 이것을 인지하는 ‘본 그림자’같은 사람도 있고 자신이 그런조차 모르는 ‘엷은 그림자’ 같은 사람도 있다. 안다고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134들어느 날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 이런 것을 일러 ‘사물의 변화 物化’라 한다. 

>> 장자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가운데 하나. 大覺...꿈에서 깨어나 다시 깨어나. 꿈에서 깨어나야 꿈인 것을 알 수 있으니.


제3편 생명을 북돋는 데 중요한 일들 養生主

: 기대지 않는 삶, 삶의 질을 높이는 일.


141p.~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아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알려고만 한다면 더더욱 위험할 뿐입니다.

>> 삼가하고 절제하라. 끝이 없는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닿을 수 없는 것이다. 


146p.~ 포정의 소 각뜨기.

>> 전문가라고 하려면 포정과 같아야 할 것이다. 칼질하다가 도를 터득한 것과 같이 각자의 일에서 일도를 득하는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는 모양이다. 포정과 같이 말이다. 바야흐로 기술의 경지를 넘어서는 경지... 그곳에 닿으라. 그러면 비로소 자유로울 것이다. 마치 그분을 영접하는 듯이...


158p.~ 못가의 꿩 한 마리, 열 걸음에 한 입 쪼고, 백 걸음에 물 한 모금. 갇혀서 얻어먹기 그토록 싫어함은, 왕 같은 대접에도 신이 나지 않기 때문.

>> 자고로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며 궁극의 모습이다. 삶이 힘들어도 이런 환경 속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내재된 힘을 가진 자 많이 그런 삶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새장 속에서 잘 얻어먹고 사는 것 보다...


제4편 사람 사는 세상 人間世

: 처세법. 마음을 굶기는 것.


180p.~ ... 도는 오로지 빈 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이 곧 ‘마음의 재 心齋’니라.

>> 마음을 굶겨라. 마음을 비우는 것만이 도에 이를 수 있다.


183p.~ ... 받아 주거든 소리내고, 받아 주지 않거든 잠잠하라. 문도 없고 나갈 구멍도 없거든 하나로 집을 삼고, 부득이한 일에만 거하라. 그러면 그런 대로 성공할 것이다.

>> 쓰임이 있으면 나아가고 쓰임이 없으면 거하라. 그리고 연연해 할 필요가 없다. 


203p.~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좋은 광주리로 말똥을 받고, 큰 대합 껍질로 말 오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말 등에 모기가 앉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말 등을 때렸습니다. 놀란 말이 재갈을 벗고 야단하는 바람에 주인의 머리를 깨고 가슴을 받았습니다. 말을 사랑하는 뜻은 극진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이었습니다.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 상대의 입장을 찾아 배려하고 고려하여 대응해야 한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방법을 고집한다면 상대는 부응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희생이며 가치 없는 희생이 아닐 수 없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것은 상대의 상태를 살펴 형편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다.


제5편 덕이 가득함의 표시 德充符


257p.~  ... 내가 말하는 정이란 그런 것이 아닐세. 내가 정이 없다고 하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속상하는 일이 없다는 것. 어제나 모든 것을 그대로 놓아두고, 삶에다 억지로 군더더기를 덧 붙이려 하지 않는 것을 이름일세.


제6편 큰 스승 大宗師


267p.~  ...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을 뿐, 스스로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맛보는 것과 스스로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 다른 것인가? 


280p.~ 무릇 도가 실재라고 하는 믿을 만한 증거는 있지만, 그것은 하도 없고 형체도 없습니다.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가 없습니다.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를 근본으로 하고 스스로를 뿌리로 하고 있습니다. ...

>> 도는 실천하여 터득하는 것이지 말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말로 있는 것이 없다.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288p.~ 삶을 죽이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삶을 살리는 사람은 살지 못합니다. 사물을 대할 때, 보내지 않는 것이 없고 맞아 들이지 않는 것이 없으며, 허물어 뜨리지 않는 것이 없고, 이루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를 일러 어지러움 속의 평온이라 합니다. 더지러움 속에 평온이란 어지러움이 지난 다음에는 온전한 이룸이 있다는 뜻입니다.

>> 정반합, 삶의 역설과 모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죽을 각오로 살아라.


297p.~ ... 그러니 삶이 좋으면 죽음도 좋다고 여길 수밖에.

>> 자연스럽게 닥치는 것,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받아들이는 태도.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니 삶이 좋다면 당연히 죽음도 좋다 할 밖에 없는 것이다. 


302p.~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 세상 밖에서 노니는 사람들, 나는 이 세상 안에서 노닐 뿐. 밖과 안은 서로 만날 수 없는 법. 내가 너를 문상하게 했으니 내 생각이 좁았구나.”

>> 세상 밖에서 논다면 세상 밖의 사람이지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살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하늘의 벌은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너와 함께 세속에 머물 것이다.”


305p.~ 이상스런 사람이란 보통 사람과 비교해서 이상할 뿐, 하늘과는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의 소인이 사람에게는 군자요, 사람의 군자가 하늘에는 소인이라’ 한 것이다. 

>> 지구에 사는 많은 우주인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그들은 창조적 사회적부적응자들이다. 그들은 도에 살면 도에서 사는 사람들은 일을 저지르지 않고 가만 두면 삶이 안정될 수 있다. 이들은 도에 살면 서로 잊는다. 


307p.~ 맹손씨는 사는 까닭이 무엇인지, 죽는 까닭이 무엇인지, 또 앞서가야 할 까닭이 무엇인지, 뒤따라야 할 까닭이 무엇인지 모두 잊어버린 사람이다. 그 사람은 변화 과정에서 한 사물처럼 되어 알지 못하는 다른 변화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또 그가 변화하려 한다면 그가 아직 변화하지 않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가 이미 변화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너와 지금 꿈을 꾸고 있고 이 꿈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잇는 것 아닐까?


... 사람들이 서로 ‘나는 나일 뿐’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나’가 정말 ‘나’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311p.~ 아, 내 스승. 스승은 만물을 이루어 놓지만 스스로 의롭다 하지 않고, 만세에 혜택을 베풀지만 특별히 편애하는 일이 없고, 옛날보다 오래되었으나 늙지 않고, 하늘을 덮고 땅을 받들고, 여러가지 모양을 깍아 내지만 재주를 부리지 않네. 여기가 바로 자네가 노닐어야 할 곳일세.


313p.~ “저는 좌망坐忘을 하게 되었습니다.”

“좌망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손발이나 몸을 잊어버리고, 귀와 눈의 작용을 쉬게 합니다. 몸을 떠나고 앎을 몰아내는 것. 그리하여 大通과 하나됨.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는 좌망입니다.”

>> 도에 깊이 이르는 길은 우선 인의, 예악과 같은 이지주의나 윤리지상주의 의식 구조를 버려야 한다. 관념적이고 계산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마음을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잊으려면 애시당초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데 잊을 수 있는가? 잊기 위해서는 있어야 하는 것이 선결 조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먼저 이런 것들을 알고 그 다음 도에 이를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제7편 황제와 임금의 자격

: 최소한으로 다스리는 것이 최선의 다스림. 다스리지 않으면서 다스리는 사람.


322p.~ 태씨는 누워 잘 때는 느긋하고, 깨어 있을 때는 덤덤하여, 때로는 스스로 말이 되고 때로는 스스로 소가 되기도 한다. 그 앎은 실로 믿음직하며, 그 덕은 아주 참되다. 그는 시비의 경지에 빠져있지 않다. 

>> 순 임금 조차도 아직 시비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면서 태씨의 경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시비의 경지를 넘어서는 경지말이다.


329p.~ ... 호랑이나 표범의 무늬는 사냥꾼을 끌어들이고, 재주 부리는 원숭이나 너구리 잡는 개는 목줄에 매이게 되는 것.

>>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것은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지도자.


344p.~ 이름에 매이지 말고 꾀의 창고 되지 말고 쓸데없는 일 떠맡지 말고 앎의 주인 되지 마십시오.

>> 거울은 그대로를 비출 뿐이다.


347p.~ 혼돈에게 구멍을 뚫어주자 죽어버렸다.

>> 혼돈은 분별이나 경계가 생기기 전의 하나였는데 분별이 생기자 죽어버렸다.


부록, 외편/잡편에 중요한 구절들


354p.~ 그러므로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길게 늘여 주어도 괴로움이 따르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 주어도 아픔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자를 것이 아니며, 본래 짧은 것은 늘일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인의가 사람들의 본래적 특성일 수 있겠습니까? 저 인을 갖춘 사람들, 괴로움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 인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인의 역시 본성에 어긋나는 일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과 슬픔을 가져온다는 주장으로 장자는 공자를 실랄하게 까고 있다. 공자를 이렇게 대놓고 까는 이가 있으니 바로 장자다. 


364p.~  ... 돌아가십시오. 나도 진흙에 꼬리를 끌고 다니겠소.


366p.~  ... 남쪽에 있는 원추라는 새를 아는가? 원추는 남해에서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감로천이 아니면 마시지를 않지. 그런데 마침 썩은 쥐를 얻은 올빼미 한 마리가 원추가 지나가자 자기 것을 빼앗길까봐 소리를 질렀다네.

>> 나는 관심이 없는데 쓸데없이 경계를 하는 것을 나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나는 원추가 분별을 하는 치우침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장자는 원추를 자신에게 빗대어 말하고 있다. 


377p.~ 기왓장을 놓고 내기 활을 쏘면 잘 맞고, 허리띠 고리를 놓고 쏘면 주저하게 되고, 황금을 놓고 쏘면 마음이 혼란해진다. 기술은 마찬가지인데, 뭔가 더 귀중히 여기는 것이 있어서 그 외면적인 것을 중시하는 것이다. 무릇 외면적인 것을 중시하면 내면적인 것에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379p.~  ... 이제 되었습니다. 상대가 울음소리를 내어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닭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해진 것입니다. ...


383p.~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고, 마음이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꼭 맞기 때문입니다.

>> 모든게 잘 되어 가면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의식하게 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386p.~  ... 이 나무는 재목감이 아니어서 천수를 누리는구나. ... 어제 산 속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천수를 다할 수 있었고, 지금 이 주인 집 거위는 쓸모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

>>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쓸모 있고 없고를 초월하여 자유로운 경지에 이를 뿐이다.


388p.~  배로 강을 건너는데  빈 배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그 배에 부딪쳤습니다. 그 사람 성질이 급한 사람이지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능히 그를 해하겠습니까?

>> 어찌 비울 수 있겠는가! 나도 빈 배이고 싶다.


390p.~  ... 저 미인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하여 아름다운 줄을 모르겠는데, 저 추녀는 스스로 못났다고 하여 그 못남을 모르겠습니다. ... 너희들은 명심하라. 어진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 어진 행동을 한다고 하지 않으면 어디 간들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실컷 잘 해주고 욕먹는 일을 하지 말라. 생색을 내기 때문이다. 


394p.~ ...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오는 것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떠나는 것을 붙잡지 않을 뿐입니다. 얻고 잃음은 나와 관계없는 것. 그러기에 걱정하는 기색이 없을 뿐입니다.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더구나 그 영예가 지위 때문인지 나 자신 때문이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위 때문이라면 나하고는 상관이 없고, 나 때문이라면 그 지위와는 상관이 없는 것. 나는 그저 의연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려 하는데. 어느 겨를에 사람들이 나를 귀하게 여기거나 천하게 여기는 일 같은 데 마음을 쓰겠습니까?


401p.~ 장터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실수를 정중히 사과하지만, 형의 발을 밟으면 따뜻한 손길을 주기만 하고, 어버이의 발을 밟으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예의 극치는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것. 의의 극치는 나와 사물을 구별하지 않는 것. 앎의 극치는 꾸미지 않는 것. 사람됨의 극치는 편애하지 않는 것. 믿음의 극치는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 아~~감동적인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


403p.~ ...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말을 기르는 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저 말을 해치는 것을 없애는 것. 그것뿐입니다.


415p.~ ...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고, 땅 속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되거늘 어찌 한쪽 것을 빼앗아 딴 쪽에다 주어 한쪽 편만 들려 하는가?

>> 장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한 말이다. 본질적으로 죽어서 땅에 엄숙하게 묻히는 것이나 들에 버려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장사 지내는 것 쯤이야 대수로울 것이 없다는 장자의 마지막 말의 여운이 길다.



3. 내가 저자라면


이전 과제에서 <맹자>를 선택해서 읽은 이유는 이번주 과제가 <장자>였기 때문이다. <논어> <맹자>에 대별되는 것이 <노자> <장자>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


<장자>는 장자라는 사상가를 의미하기 그의 저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장자가 죽은지 200년 뒤에 쓰여진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장자는 10여 만 자로 이루어졌다고 하고 전한 말 유향의 기록을 인용한 <한서예문지>에서는 모두 5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만나는 <장자>는 기원후 4세기 노장 사상이 전성기를 맞은 당시 북송의 곽상이라는 사람이 65,000여자, 33편으로 정리한 것이다. 곽상이 편집한 장자는 전체 33편으로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으로 나뉘어졌다. 

이 가운데 내편 7편은 장자의 저작이고 나머지는 후학들이 보충한 것이 현대의 보편적인 인식으로 보인다. 


1편. 훨훨 날아 자유롭게 노닐다 라는 제목이 보여 주듯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절대 자유의 경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장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유, 변화, 초월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2편. 이 편의 주제는 우리가 우리의 실존적 한계성을 초월하여 궁극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립의 세계에서 대립을 초월한 하나의 세계, 실재의 세계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것. 사물의 한쪽만 보는 상식적, 분석적,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더 높은 차원에서 사물의 진상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예지와 직관과 통찰을 체득해야 한다는 이야기.


3편. 1편과 2편에서 다룬 것들을 이룬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 생활을 신나고 활기차고 풍성하게 살아가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거기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 지식욕, 자존심, 자기중심주의 같은 일체의 인위적, 외형적인 것을 넘어서 자연의 운행과 그 리듬에 따라 우리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할 대 이른바 ‘기대지 않는 삶’을 향유할 수 있다.


4편. 이 편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에서, 특히 복잡하고 비정한 사회, 정치적 정황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개인적으로 훌륭하게, 자유스럽게 사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진정 기여하면서 보람 있게 사는 길인지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처세법에 관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5편. 이 편의 제목처럼 ‘덕이 가득해서 저절로 밖으로 드러나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육체가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등장시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겉으로 표시나지는 않지만 어딘가 병들고 아픈 대중들을 빗대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아프고 병들었다. 아니면 원숭이거나.


6편. 이 편에서는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될 진정으로 위대하고 으뜸 되는 스승이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진인眞人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참된 스승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는 결국 도를 터득한 사람이다. 


7편. 이 편은 이상적인 황제와 임금의 자격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따라서 내성외왕이라는 도가 특유의 정치철학을 제시했다. 속으로 성인 같은 완전한 자질을 갖추어 그것이 밖으로 표출할 때 이른바 성제명왕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이상적 지도자가 된다는 이야기다.


외편, 잡편 : 장자의 후학들이 확대 부연하거나 나름대로 자신들의 생각을 덧붙인 것이라고 본다.



[감동적이었던 장과 절]


31p.~ 가까운 숲으로 놀러 가는 사람은 세 끼 먹을 것만 가지고 가도 돌아올 때까지 배고픈 줄 모르지만, 백리 길을 가는 사람은 하룻밤 지낼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먹을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매미나 새끼 비둘기 같은 미물이 어찌 이를 알 수 있겠습니까? 조금 아는 것으로 많이 아는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짧은 삶으로 긴 삶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 아침에 잠깐 났다가 시드는 버섯은 저녁과 새벽을 알 수 없습니다. 여름 한철 사는 메뚜기는 봄과 가을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짧은 삶입니다. ...


85p.~ 되는 것을 일러 됨이라 하고 되지 않는 것을 일러 되지 않음이라 한다. 길은 다녀서 생기고 사물도 그렇게 불러서 그렇게 된다. 어찌해서 그렇게 되는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물에는 본래 그럴 까닭이 있고,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렇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럴 수 없는 것도 하나도 없다. ... 오로지 높은 경제에 도달한 사람만이 모두 통하는 하나를 깨닫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차별의) 범주 대신, (양쪽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것庸’에 머무를 수 있다.

보편적인 것(庸)이란 쓸모 있음을 말한다. 쓸모 있음이란 통함이고 통함이란 즐김이다. 즐김은 도에 가까움이다. 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하는 것(因是)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줄 모르는 것. 그것을 도라 한다.

>> 구태여 자기의 행동이나 처지를 객관화하여 의식하지도 않는다.


305p.~ 이상스런 사람이란 보통 사람과 비교해서 이상할 뿐, 하늘과는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의 소인이 사람에게는 군자요, 사람의 군자가 하늘에는 소인이라’ 한 것이다. 

>> 지구에 사는 많은 우주인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그들은 창조적 사회적부적응자들이다. 그들은 도에 살면 도에서 사는 사람들은 일을 저지르지 않고 가만 두면 삶이 안정될 수 있다. 이들은 도에 살면 서로 잊는다.


344p.~ 이름에 매이지 말고 꾀의 창고 되지 말고 쓸데없는 일 떠맡지 말고 앎의 주인 되지 마십시오.

>> 거울은 그대로를 비출 뿐이다.


[보완점 그 외]


나는 득도하여 희위씨처럼 하늘과 땅을 들고 다닐 생각도 복희씨처럼 기의 근원으로 들어갈 생각도 없다. 다만 헤매는 것을 조금 덜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하여 삶이 좀 더 깊고 즐거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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