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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4일 22시 56분 등록

장자_구달리뷰#18 (2014. 8. 24)

장자 지음

오감남 풀이

현암사

 

 

1. 저자에 대하여

 

장자

장자는 몽()지역의 사람인데, 이름은 주(). ()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를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다. 그는 몽의 칠원의 관리였는데, 양혜왕(재위기간: B.C. 370~319)과 제선왕(재위기간: B.C. 319~301)과 동시대 사람이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들이 원본 <장자>를 편찬할 때, 이것을 장주(莊周)에게 가탁(假託)하여 『장자』라 명명한 듯하다. <장자>는 공자ㆍ맹자보다 노자와 함께 장자가 존중되기에 이르렀던 한대 초기에, 전국 말 이래의 도가의 논저(論著)를 부가하여 성립한 것으로서, 통일된 체계는 없지만 도가 사상의 역사적 전개를 볼 수 있다. 관영(官營)인 칠원(漆園)에서 일한 적도 있었으나, 그 이후는 평생 벼슬길에 들지 않았으며 10여 만 자에 이르는 저술을 완성하였다. ()나라의 위왕(威王)이 그를 재상으로 맞아들이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여기서 사마천의 장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살펴보자.

 

그의 학문은 엿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포괄적이었지만, 그 학문의 요체와 근본은 노자의 말에 귀착된다. 공자의 추종자들(유가)을 비판하고 노자의 학술을 밝혔다. 그는 글을 잘 짓고 문장을 잘 엮었고, 사실을 가리켜 실정을 유추해냄으로써 유가와 묵가를 공격했다. 그래서 비록 당시의 원숙한 학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비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장자의 말은 광대하고 심원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유 분망하게 말하는 것으로 만족하였기 때문에, 왕공 대인들은 그를 등용해서 쓸 수가 없었다.

 

장자는 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도()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본다.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다. 도는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자연(自然)하다. 도는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거미 ·가라지 ·기왓장 ·똥 ·오줌 속에도 있다. 이는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이다. 도가 개별적 사물들에 전개된 것을 덕()이라고 한다. 도가 천지만물의 공통된 본성이라면 덕은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도 덕이다. 이러한 덕을 회복하려면 습성에 의하여 물들은 심성(心性)을 닦아야 한다. 이를 성수반덕(性脩反德)이라고 한다. 장자는 그 방법으로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들었다. 덕을 회복하게 되면 도와 간격 없이 만날 수 있다. 도와 일체가 되면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다. 이를 이도관지(以道觀之)라고 한다. ()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자기는 귀하고 상대방은 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만물을 평등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은 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연에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자유는 천지만물과 자아 사이의 구별이 사라진 지인(至人)이라야 누릴 수 있다. 이 지인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천지만물들과도 사이 좋게 살아갈 수 있다. 장자의 사상은 대부분 우언(寓言)으로 풀이되었으며, 그 근본은 노자(老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현세와의 타협을 배제하는 점에서는 더욱 철저하여, 바로 그와 같은 면에서 장자의 분방한 세계가 펼쳐진다.

 

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맥매스터대학교대학원 종교학과 박사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

캐나다 리지아나대학교 비교종교학 교수

서울대학교 객원교수

북미한국인종교학회 회장 역임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 역임

캐나다 리지아나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

대표저서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로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를 썼으며,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를 펴냈다. 2011년에는 대담집인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인류의 영적 스승 60명의 삶과 가르침을 살펴본 『종교, 심층을 보다』을 출간해 종교의 대중적 이해를 깊게 하고 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종교의 금기를 깨다

종교 다원주의'를 말할 때 흔히들 오해하는 것이 있다. 다원주의가 "내 종교만 옳다, 내 종교의 경전은 문자 그대로 옳다"는 독단까지도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다원주의란 그런 '독단'을 배격하자는 것이지, 이런 독단까지도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적 배경에서 출발한 비교종교학자 오강남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역설적이게도 동양철학의 비주류인 <도덕경>, <장자>의 번역서를 통해서였다. 그 또한 동양고전의 번역을 통해 '종교란 이런 것이로구나, 이 책을 통해 좁은 시야를 탈피할 수 있었다' 고 말한다. 그 뒤로 2001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예수는 없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다양한 종교 관련한 번역서와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다가 최근에 <종교, 심층을 보다>,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라는 책으로 종교 간의 화해, 깊은 곳에서 연결된 종교의 심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 '종교'는 사적인 장소에서 금기시 되는 주제였다. 최근에 와서 이 금기가 깨지고 있는데, 정치적 무관심이 우리 삶을 피폐하게 했다는 자각이 생기고 있는 것과 유사하게, 종교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대중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각성이 있는 것이다. 종교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원래 종교의 모습을 되찾고 싶은 대중의 열망이 강해졌다. 종교가 금기시 되는 것 자체가 종교의 고립적, 배타적 해석을 가져온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경계를 허무는 것이 건강한 종교의 모습을 되찾는 길이 될 것이다.

현대인의 한 흐름으로 보이는 무신론과 반종교적인 분위기도 독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라면 무조건적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근본주의적인 성경해석과 전도와 헌금을 강요하는 종교의 행태 때문에 일차적 원인이 있을 것이며, 물신숭배적 사회 분위기와 신학의 생명력 상실이 다음 이유일 것이다. 물론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소수였다. 그러나 대중들은 종교가 본래 가지고 있는 큰 가치인 '사랑, 평화, 평등, 조화, 포용, 자유' 에 목말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종교의 금기를 깨는 저자의 시도는 시대적 과제로 평가할 수 있다.

 

 

2. 내가 저자라면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를 대중에게 알렸던 책이, 노자의 <도덕경>과 바로 이 책 <장자>라고 한다. 저자는 자나 깨나 <장자>를 생각하며 몰입의 경지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자신이 돌아보아도 '신들린 듯 했다' 하니, 그 열정이 느껴진다. 책은 '내편'의 전체의 해석과 주석을 달고, '외편'에서 중요한 구절들을 뽑아 해석과 주석을 달았다. 앞부분에 <장자>라는 책의 배경과 동양철학에서의 위치를 밝히고 있어, 처음 <장자>를 접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 그 뿐 아니라 <장자>라는 책의 주제인 '도와 하나 되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절대적인 자유의 삶을 살자'는 맥을 놓치지 않고, 해석과 주석을 달고 있어 흐름을 놓치지 않게 해준다.

비교종교학자답게 다른 동양고전뿐 아니라 '성경'에서 맥이 통하는 구절들을 함께 제시하고 있어,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배경인 '모든 종교가 가리키는 것은 한 방향'이라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장자>를 읽으면서 줄곧 나는 왜 생활이 여행인 삶을 살고 싶은가? 무엇 때문에 여행기를 쓰고자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며 대답을 떠올려 보았다.

 

읽어갈수록 <장자>가 나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이 세상 사람들은커녕 아내에게 조차도 이해 받지 못하고,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 뜬 구름 잡는 것이라는 비판에 나 자신도 이 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일까 하는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인생을 흐르며 살겠다는 나의 생각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생각이 아니다.  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나, 논리를 따지고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말해도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떠돌이 집시의 삶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최소한 함께 살아가야 할 아내에게만큼은 이해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조차 꼭 그렇게 살아야 하겠느냐는 입장을 보일 때 이 책을 만났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의 핵심에 앉은 도는 그림자도 볼 수 없는데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스페인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지 자꾸 순례자란 단어가 눈에 밟힌다. 그래, 순례자로, 수도자로 여로를 흐르며 살고 싶다.  ''를 닦는 마음으로 길을 가며 글을 쓰고 싶다.

 

<장자>는 순례자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다. 흐르는 길 속에서 자신을 비우고 비워 자아가 사라지고 근원인 도가 자연스레 흘러 들기를...

 

 

3.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 귀

 

독자들에게

9.

<장자>에 손을 대고 얼마 동안은, 먹는 둥 마는 둥, 일주일 여섯 시간 강의하는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장자에서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꿈을 꾸면서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도 그야말로 '앉으나 서나' 장자 생각뿐. 정말 신들린 듯했습니다.

 

=> 몰입의 경지다. 무슨 일을 하듯 몰입을 끌어와 친구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도를 경험할 수 있다.

 

장자를 읽기 전에

17.

윤리와 실용을 강조하는 유교의 가르침을 양陽이라 한다면, 좀더 신비한 내면을 강조하는 도교의 가르침을 음陰이라 할 수 있다. 이 둘은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로 조화와 균형을 이상으로 삼는 동양인의 정신적 필요에 부응해 온 셈이다.

 

23.

도와 하나가 되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신나는' , 힘있는 삶, 풍요한 삶, 활력이 넘치는 삶, 절대적인 자유의 삶으로 이끄는 장자의 초청을 발견한다.

 

1편 자유롭게 노닐다

 

26.

1.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하였습니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이라 하였습니다. 그 등 길이가 몇천 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한번 기운을 모아 힘차게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았습니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여 물결이 흉흉해지면, 남쪽 깊은 바다로 가는데, 그 바다를 예로부터 '하늘 못'이라 하였습니다.

 

27.

붕새는 이런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을 실현한 사람을, 그리고 그 거침없는 비상은 이런 '변화' '변혁'을 이룬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초월'을 상징한다. <장자> 첫머리는 이처럼 인간이 생래적으로 지닌 실존적 한계를 초월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초월한 경지, 쉽게 말해 먹고 사는 것을 초월하여 자기다움, 즉 본래의 자연스러운 자기를 찾아가는 여행이 내가 인식한 초월의 경지이다. 이것이 무엇이건 데 그토록 어려운가?

 

28.

4. 바람이 충분하지 못하면 큰 날개를 띄울 힘이 없습니다. 구만리 창공에 오른 붕새는 큰 바람을 타야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거침이 없이 남쪽으로 날아갑니다.

 

30.

종교는 우리에게 외친다. "바람을 타라. 생기를 찾아라. 그리하여 활기찬 삶을 살아라!"이것이 건조하고 무의미한 인간의 현존을 뛰어넘는 진정한 초월이라는 것이다.

 

31.

5. 조금 아는 것으로 많이 아는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짧은 삶으로 긴 삶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33.

<갈매기의 꿈>의 조나단이라는 갈매기. 보통의 갈매기가 일상의 일을 숙명처럼 생각하고 거기에 골몰하고 있을 때, 조나단은 보통 갈매기의 한계를 넘어서, 더 높이, 더 빨리, 더 아름답게 나는 것, 궁극적으로 비상의 신비스러운 경지를 찾는 데 시간과 정력을 바친다.

 

영원이니 초월이니 변화니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34.

극도로 '엄청난 진리'는 본래 '역설적'이어서 형식 논리에 사로잡혀 명석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웃음거리일 수밖에 없다.

 

35.

6. 메추라기가 붕새를 보고 비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 새는 저렇게 날아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 나는 한껏 뛰어올라도 몇 길을 못 올랐다가 내려앉아서 기껏해야 이 숲에서 저 덤불로 날아가는데, 도대체 저 붕새는 저렇게 날아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37.

신화란 이성을 초월한 세계의 엄청난 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특수 전달 수단이다.

 

46.

10. 신인은 그의 덕으로 온갖 것과 어울려 하나가 된 것이오. 세상이 모두 평화를 바라는데, 무엇 때문에 구태여 노심초사하며 애쓸 필요가 있겠소?

 

57.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생명을 하루하루 먹고 사는데 써 버리고 말 것이냐, 더 원대한 일을 이루는 데 사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암시.

 

2편 사물을 고르게 하다

 

61.

1. 지금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 본래 자기, 자아가 없는 상태로의 회기다. 그리하여 진정한 내가 되었다.

 

64.

이론에 따라 지적으로 추구하는 한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스스로를 잃어버린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하늘의 퉁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됨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65.

2. "땅덩어리가 뿜어내는 숨결을 바람이라고 하지. 그것이 불지 않으면 별일 없이 고요하지만, 한번 불면 수많은 구멍에서 온갖 소리가 나지. 너도 그 윙윙하는 소리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산의 숲이 심하게 움직이면, 큰 아름드리 나무의 구멍들, 더러는 코처럼, 더러는 입처럼, 더러는 귀처럼, 더러는 목이 긴 병처럼, 더러는 술잔처럼, 더러는 절구처럼, 더러는 깊은 웅덩이처럼, 더러는 좁은 웅덩이처럼 제각기 생긴 대로, 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 화살이 씽씽 나는 소리, 나직이 꾸짖는 소리, 숨을 가늘게 들이키는 소리, 크게 부르짖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깊은 데서 나오는 듯한 소리, 새가 재잘거리는 소리 등 온갖 소리를 내지. 앞에서 가볍게 우우 - 하는 소리를 내면, 뒤따라서 무겁게 우우 - 하는 소리를 내고. 산들바람이 불면 가볍게 화답하고, 거센 바람이 불면 크게 화답하지. 그러다가 바람이 멎으면 그 모든 구멍은 다시 고요해진다. 너도 저 나무들이 휘청휘청 구부러지거나 살랑살랑 흔들리기도 하는 것을 보았겠지."

 

=>중국 문학사에서 최고의 명문으로 알려져 있는 문장답게 바람의 작용을 온갖 각도에서 갖은 소리와 모양으로 표출해 내고 있다. 참으로 박진감과 현장감 있는 문장이다.

 

66.

3. 하늘이 부는 퉁소 소리란 무엇입니까?"

"온갖 것에 바람을 모두 다르게 불어넣으니 제 특유한 소리를 내는 것이지. 모두 제 소리를 내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 소리가 나게 하는 건 누구겠느냐?

 

68.

하늘의 소리는 다른 소리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다른 소리들 속에 있는 소리, 들리지 않는 소리라는 것이다.

 

70.

5.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여러 가지 마음의 변화가 나타나기에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것. 이런 것들이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고, 내가 없으면 이런 것들이 나타날 턱이 없지. 이야말로 진실에 가까운 것이나 이런 변화가 나타나게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구나.

 

78.

9. 유가와 묵가가 그르다 하는 것을 옳다 하고, 이들이 옳다 하는 것을 그르다 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들의 옳고 그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밝음이 있어야 한다.

 

81.

10.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됨이 있기에 안 됨이 있고, 안 됨이 있기에 됨이 있다. 옳음이 있기에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기에 옳음이 있다.

 

=> 상대성 원리가 이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상대가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원리, 그러므로 우리의 뿌리는 하나다.

 

83.

아버지만 아들을 낳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없이는 아버지도 있을 수 없으므로 아들도 아버지를 낳는 셈이다. 아버지도 원인인 동시에 결과이고, 아들도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방생'이라고 했다.

 

=>참으로 깊은 통찰이다. 아빠와 아들이란 서로가 서로를 있게 하는 것.

 

85.

11. 길은 다녀서 생기고 사물도 그렇게 불러서 그렇게 된다. 어지해서 그렇게 되는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찌해서 그렇지 않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하니까 그렇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물에는 본래 그럴 까닭이 있고, 그럴 가능성이 있지. 그렇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럴 수 없는 것도 하나도 없다.

 

88.

장자는 철두철미 '비본질론적' 견해를 내세웠다. 만물에는 고정한 실체나 본질이라는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각각의 사물은 독립한 개체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90.

논리적으로 유추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물의 가장 깊은 차원을 체험적으로 꿰뚫어 보는 형안이 열려야 진정으로 볼 수 있는 무엇이라고 한다.

 

91.

13. 조삼모사, 사물이 본래 하나임을 알지 못하고 죽도록 한쪽에만 집착하는 것

 

98.

17. '시작'이 있으면 아직 '시작하기 이전'이 있게 마련이다. '아직 시작하기 이전의 이전'이 있게 마련이다. '있음'이 있으면 '없음'이 있게 마련이다.

 

108.

도에 대해서 뭔가 말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자체가 도를 전혀 모른다는 증거이다.

 

110.

해는 우리의 이성을 상징하고, '은근한 빛'은 이성을 초월한 경지를 의미한다.

 

114.

인의니 시비니 하는 것도 모두 특수한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환경과 상황에서 형성된 임의적, 주관적 규범이지, 하늘에서 뚝 덜어진 절대적인 무엇이 아니라는 것.

 

118.

25. 달걀을 보고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을 들으려 하고, 화살을 보고 비둘기 구이를 생각하는 일과 같으이.

 

121.

26. 죽은 사람들도 전에 자기들이 삶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125.

우리도 우리 속에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에 안주하지 말고,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거기서 벗어나 새로운 ''로 탈바꿈을 해야 한다.

 

127.

장자는 삶이 꿈이지만 그 속에 그 나름의 실재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꿈이 꿈인 줄 알려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132.

31. 나는 뱀의 비늘이나 매미의 날개에 의존하는 것 아니겠소? 왜 그런지를 내 어찌 알 수 있겠소? 왜 안 그런지 내 어찌 알 수 있겠소?

=>만물의 상호 연관성은 창조의 원리가 아닐까?

 

134.

32. 나비의 꿈,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사물의 변화'라 한다.

=>물화는 신화에 나오는 변신을 연상케 한다. 꿈과 현실, 무슨 경계가 있는가?

 

3편 생명을 북돋는 데 중요한 일들

141.

1.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아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알려고만 한다면

더더욱 위험할 뿐입니다.

 

144.

근본적인 것은 착한 일을 한다, 나쁜 일을 피한다, 하는 등 의식적 가치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표피적 행동이 아니라 의연하고 묵직하게 '중도를 따르는 것'이다.

 

146.

4. 포정의 소 각뜨기,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통째인 소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신으로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158.

8. 못가의 꿩.

못가의 꿩 한 마리,

열 걸음에 한 입 쪼고,

백 걸음에 물 한 모금.

갇혀서 얻어먹기 그토록 싫어함은,

왕 같은 대접에도 신이 나지 않기 때문.

 

=> “왕 같은 대접에도 신이 나지 않기 때문이란 구절이 가슴을 친다. 신이 오른 삶 이 게 진짜다! 아니 그런가?

 

163. "손가락으로 불을, 지피면, 손가락은 그것으로 할 일을 끝낸 것. 불이 계속 타든지 꺼지든지 우리는 알 필요가 없다", "기름은 땔감으로 타 없어지지만 불 자체는 계속 이어져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

 

4편 사람 사는 세상

 

167. 구체적인 삶의 정황에서, 특히 복잡하고 비정한 사회. 정치적 정황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개인적으로 훌륭하게, 자유스럽게 사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진정 기여하면서 보람 있게 사는 길인지를 보여 준다.(처세법)

 

170.

2. "자기 하나 확실히 갖추지 못하고서 어떻게 포악한 자의 행위에 간여할 수 있겠느냐?"

 

172.

5. 네가 너를 믿어 주지도 않는 사람에게 솔직한 말만 하다가는 반드시 그 포악한 사람의 손에 죽을 것이다.

 

173.

6. 명예와 실리의 추구는 성인도 물리칠 수 없는데 네가 어찌 물리치겠느냐.

 

174.

속으로 조금이라도 꿀리는 것이 있으면, 이런 일이 본인에게나 남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179.

12. 마음 굶김 : '마음의 재'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기는 텅 비어서 무엇이든 받아들이려 기다린다. 도는 오로지 빈 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이 곧 '마음의 재'니라."

 

183.

13. "받아 주거든 소리 내고, 받아 주지 않거든 잠잠하라.", 14. 걷지 않고 자취를 안 남기기는 쉽지만, 걸으면서 자취를 안 남기기는 어려운 일

 

183.

15. " 귀와 눈을 안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이나 앎을 밖으로 하라. 그러면 비상한 힘도 들어와 머물 것이니, 사람들이 모여든 다는 것이야 말할 나위도 없지. 이것이 만물의 변화라는 것이니, 우 임금, 순 임금도 여기에 의거했고, 복희, 궤거도 이를 평생 실천궁행 했다. 하물며 그만 못한 우리 보통 사람들이랴."

 

187.

'마음을 굶겨', 내면에서 솟는 초월적인 힘을 체험한 뒤에 삶의 현장으로 나가 사람들을 도우라고 한 것이다.

=> 마음을 굶긴다는 의미가 성경의 마음이 가난한 자 천국을 볼 것이요란 구절과 일맥상통함을 보았다.

 

189.

16. 성공하든 실패하든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을 사람은 덕을 가진 사람뿐이라.

 

192.

18. "자기 마음을 섬길 때 슬픔과 기쁨이 눈앞에 엇갈리어 나타나게 하지 말고, 불가능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고 운명으로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덕의 극치입니다."

 

194.

22. 너무 지나치게 다그치면, 상대방은 반드시 좋지 못한 마음으로 이에 반응하게 됩니다.

 

195.

22.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도록 하십시오. 부득이한 일은 그대로 맡겨 두고, 중심을 기르는 데 전념하십시오. 이것이 최고입니다.

=>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닌다가장 공감하는 구절이다. 마치 자전거를 타고 가듯.

 

200.

우선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는 것, 곧 중심을 지키라는 것이다.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자신의 기본적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

 

202.

26. 공적인 일을 할 때의 태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알라.

호랑이가 살기를 드러내는 것은 그 성질을 거슬리기 때문, '함이 없이 하라'

'때를 따름'이 중요하다.

 

209.

쓸모 없음 자체가 궁극 목표가 아니라 일단 쓸모 없음으로 자기를 보전하여 더 큰 쓸모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210.

33. "이것은 과연 재목감이 못 될 나무로구나. 그러니 이렇게 크게 자랐지. , 신인도 이처럼 재목감이 못 되는 것을."

 

211.

쓸모 없음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쓸모가 결국 '신인'의 경지임을 함의하는 것., 신인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일반적 유용성의 기준으로 따져보면 가장 쓸모 없는 존재이다.

 

220.

정신적인 영웅은 일단 '인습'을 등진 사람이다. 인습대로 사는 사람에게 정신적 영웅은 어쩔 수 없이 바보처럼, 미친 사람처럼, 우스운 사람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221.

세상에서 떠받드는 자질구레한 유용성이나 실용성에 정신을 팔지 말고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굶기는' 심재를 실천하라.

 

5편 덕이 가득함의 표시

 

226.

3. "다름의 입장에서 보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멀지만, 같음의 입장에서 보면 만물이 모두 하나이다."

 

233.

9. 내가 선생님을 19년 동안이나 따르며 배웠지만 선생님께서는 아직도 내가 '외발'임을 아신다고 내비치신 적이 없으시다네.

 

241.

12. 추남 애타타: 그 어미를 사랑한 것은 그 몸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몸을 움직이는 무엇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247.

15. "죽음과 삶, 생존과 파멸, 성공과 실패, 가난과 부유함, 현명함과 어리석음, 비방과 칭찬,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이것이 모두 사물의 변화요 명의 운행"

 

248.

16. 덕을 이룬 사람은 조화를 이룬 사람으로,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서 떠나지 못합니다.

 

252.

18. 덕이 뛰어나면 외형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잊어야 할 것은 안 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습니다. 이런 것을 '정말로 잊어버림'이라 합니다.

 

256.

20. 성인은 사람의 모양을 지녔지만 사람의 정이 없습니다.

"내가 정이 없다고 하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속상한 일이 없다는 것. 언제나 모든 것을 그대로 놓아두고, 삶에다 억지로 군더더기를 덧붙이려 하지 않는 것을 이름일세."

 

258.

장자는 그것을 감정을 넘어선 경지,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경지로 보아 이런 경지에 도달해야 정말로 싱싱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259.

일상적인 분별심,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의식'에 매달려 안달복달, 시비곡직, 좋고 나쁨을 캐고 앉아 있으면 결국 혜자처럼 나무에 기대어 신음하고 책상에 엎드려 졸기나 하는 창백한 지성, 활기 잃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6편 큰 스승

 

267.

7. 참된 자기를 잃고 참됨이 없는 사람은 딴 사람을 부리지 못합니다.

 

269.

8.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 우뚝하나 무너지는 일이 없고,

뭔가 모자라는 듯하나 받는 일이 없고,

한가로이 홀로 서 있으나 고집스럽지 않고,

넓게 비어 있으나 겉치레가 없었습니다.

 

274.

12. 샘이 말라 물고기가 모두 땅 위에 드러났습니다. 서로 물기를 뿜어 주고, 서로 거품을 내어 적셔 주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요 임금을 칭송하고 걸 왕을 비난하지만, 둘을 다 잊고 도에서 변화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276.

13. 대지는 나에게 몸을 주어 싣게 하고, 삶을 주어 힘쓰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삶을 좋다고 여기면 내 죽음도 좋다고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276.

14. 천하를 천하에 감추면 새어 나갈 자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변함 없는 사물의 참된 모습입니다.

 

280.

16. 도란?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는 없습니다.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가 없습니다.

 

284.

19. 아무튼, 성인의 도란 성인의 재질이 있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이 역시 더 쉬운 일입니다.

 

285.

삶을 잊게 되자 그는 '아침 햇살 같은 밝음'을 얻었습니다.

 

289.

모두 자의식으로 가득한 현재의 ''가 죽어 없어질 때 '우주적 의식'을 지닌 진정한 '', '우주적 나'가 새로 탄생한다는 '죽음과 부활'의 종교적 진리를 말하는 것.

 

290.

도의 전수 과정 , 1. 글 씀, 2. 구송함, 3. 잘 살펴봄, 4. 잘 알아들음, 5. 일을 잘 실천함, 6. 노래를 잘함, 7. 그윽함, 8. , 9. 시원...

 

글을 읽되 거기에 매이지 말고 읽어라. 그것을 오래오래 구송하고, 맑은 눈으로 그 뜻을 잘 살핀 다음, 그 속에서 속삭이는 미세한 소리마저도 알아들을 수 있게 바로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그대로 실천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즐거움과 감격을 노래하라. 그리하면 그윽한 경지, 조용하고 텅 빈 경지를 체험한 다음 시원의 도와 하나되는 경지에 이르리라는 기막힌 이야기이다.

= 도가구계(道家九階)

=> , 글 을 쓰는 것이 도로 진입하는 문이구나!

 

294.

24. 내 왼팔이 점점 변하여 닭이 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새벽을 깨우겠네. 내 오른팔이 차츰 변해 활이 되면, 나는 그것으로 새를 잡아 구워 먹겠네. .. 이렇게 스스로 놓여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 세상의 모든 사물은 하늘의 오램을 이기지 못하는 법. 내 어찌 이를 싫어하겠는가?

 

296.

"위대하구나. 저 조화. 자네를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자네를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 것일까? 자네를 쥐의 간으로 만들려나? 벌레의 팔뚝으로 만들려나?"

 

297.

27. 이제 하늘과 땅이 큰 용광로이고 조화가 큰 대장장이라면, 무엇이 되든 좋은 것 아니겠는가? 조용히 잠들었다가 홀연히 깨어나는 것."

 

300.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사물을 이런 전체의 맥락 속에서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일 하나하나로 그때그때마다 희희낙락하거나 전전긍긍하거나 애절 복통한다.

 

302.

30. "그 사람들은 이 세상 밖에서 노니는 사람들. 나는 세상 안에서 노닐 뿐. 밖과 안은 서로 만날 수 없는 법. 내가 너를 보내 문상하게 했으니, 내 생각이 좁았구나."

 

305.

32. "이상스러운 사람이란 보통 사람과 비교해서 이상할 뿐, 하늘과는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의 소인이 사람에게는 군자요, 사람의 군자가 하늘에는 소인이라' 한 것이다."

 

308.

35.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웃는 것이 낫고, 웃음을 즐기는 것보다는 사물과 어울리는 것이 더 나으니, 사물과 편안히 어울려 변화를 잊은 채 텅 빈 하늘로 들어가도록 하라."

 

310.

36. 눈먼 자는 얼굴의 아름다움이나 수놓은 옷의 색깔과 상관이 없다.

"스승은 만물을 이루어 놓지만 스스로 의롭다 하지 않고, 만세에 혜택을 베풀지만 특별히 편애하는 일이 없고, 옛날보다 오래되었으나 늙지 않고, 하늘을 덮고 땅을 받들고, 여러 가지 모양을 깎아 내지만 재주를 부리지 않네. 여기가 바로 자네가 노닐어야 할 곳일세."

 

314.

38. 좌망

"손발이나 몸을 잊어버리고, 귀와 눈의 작용을 쉬게 합니다. 몸을 떠나고 앎을 몰아내는 것. 그리하여 '큰 트임'과 하나됨.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는 좌망입니다."

 

314.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이런 것을 잊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7편 황제와 임금의 자격

 

321.

속으로 성인 같은 완전한 자질을 갖추어 그것이 밖으로 표출할 때 이른바 '성제명왕'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이상적 정치 지도자가 된다는 이야기.

 

325.

두 쪽을 다 같이 볼 수 있는 사람, 사물을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보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제왕이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

 

326.

2. 성인이 다스리는 것이 어디 밖을 다스리는 일인가? 먼저 자신을 올바르게 하고 나서 행동하고 일이 제대로 되는가를 확인하는 것뿐이다.

 

328.

3. "마음을 담담한 경지에서 노닐게 하고, 기를 막막함에 합하여 하시오. 모든 일의 자연스러움에 따를 뿐, ''라는 것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하오. 그러면 세상이 잘 다스려질 것이오."

 

328.

4. "명철한 왕의 다스림이란, 그 공적이 천하를 덮어도 그것을 자기가 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변화시키는 힘이 만물에 미쳐도 백성들이 그에게 굳이 기대려 하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들이 그 이름을 들먹이지 않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한 것으로 알고 기뻐하기 때문이라. 이런 사람은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서 있고, 없음의 세계에 노니는 것이다."

 

339.

9. "아까 나는 그 사람에게 내가 근원에서 아직 나오기 이전의 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근원 속에서 나를 비워 사물의 변화에 그대로 따라,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고, 물결치는 대로 흘렀지. 그래서 그가 달아나 버린 것이다."

=> 근원의 모습이 본래자기, 즉 도와 함께한 모습.

 

341.

10. 열자는 집으로 돌아가 삼 년간 두문불출하고, 아내를 위해 밥도 짓고, 돼지도 사람 대접하듯 먹이고, 세상일에 좋고 싫고를 구별하지도 않았습니다.

 

344.

11. 이름에 매이지 말고

꾀의 창고 되지 말고,

쓸데없는 일 떠맡지 말고,

앎의 주인 되지 마십시오.

 

344.

11. 지인의 마음 씀은 거울과 같아 일부러 보내지도 않고 일부러 맞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대로 응할 뿐 갈무리해 두려 하지도 않습니다.

 

347.

12. "사람에겐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만 이런 구멍이 없으니 구멍을 뚫어 줍시다." 했습니다. 하루 한 구멍씩 뚫어 주었는데, 이레가 되자 혼돈은 죽고 말았습니다.

 

부록 : 외편, 잡편에서 중요한 구절들

 

355.

엄격한 의미에서 여기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고 한 외편 제8편의 이 말은 <장자> 내편의 기본 사상과 거리가 멀다.

=>윤리 자체를 완전히 무시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 유교를 비판하고 능멸하는 것은 낮은 도.

 

359.

우물 안의 개구리 : <추수> 17:2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 이야기를 할 수 없지요. 한 곳에 갇혀 살기 때문이오....지금 당신은 좁은 강에서 나와 큰 바다를 보고 비로소 당신이 미미함을 알게 되었소. 이제 당신에게 큰 이 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려."

 

360. <추수> 17:14

"그 개구리가 동해에서 온 자라에게 말했네. '나는 여기가 좋으이. 밖으로 나가면 난간 위에서 뛰놀고, 안으로 들어오면 벽돌 빠져나간 구멍 끝에서 쉬네. 물에 들어가면 겨드랑이까지 차게 하고, 턱을 받치지. 진흙을 찰 때는 발등까지 흙에 묻히고, 장구벌레, , 올챙이 모두 나만 못하이. 이 웅덩이 물을 독차지해서 마음대로 노는 즐거움이 더할 나위 없네. 자네도 가끔 들어와 보면 어떻겠나?"

 

362.

더구나 그 바다 이야기는 자기가 여태까지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세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신비'이지만 그것을 듣고 기절초풍할 정도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364. <추수> 17:16

장자왈 "돌아가십시오. 나도 진흙에 꼬리를 끌고 다니겠소."

 

368. <추수> 17:18

", 처음으로 돌아가 보세. 자네는 나더러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냐고 했지. 이 말은 자네가 이미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는 것을 알고 물은 것이네. 나는 호숫가에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네."

 

371. <지락> 18:4

"아내는 지금 '큰 방'에 편안히 누워 있지. 내가 시끄럽게 따라가며 울고 불고한다는 것은 스스로 운명을 모르는 일이라. 그래서 울기를 그만 둔 것이지."

 

374.

남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본성 그대로 살고, 본성을 계발하는 것이 중요.

 

375. <달생> 19:3

"대개 술 취한 사람은 빨리 달리는 수레에서 떨어져도 죽지는 않는다. 그 사람이 술에서 온전함을 얻어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하늘에서 온전함을 받을 경우야 어떠하겠는가?"

 

379. <달생> 19:9

나무로 깎아 놓은 닭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381. <달생> 19:11

저는 거를 만들 때 기를 함부로 소모하지 않고, 반드시 재계를 하고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완성된 거를 보게 된 후야 비로소 손을 대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둡니다.

 

382.

신기가 나오는 것은 일체의 외부적인 일을 잊어버리고 마음이 완전히 한 점에 집중한 상태에서 '초의식적'이고 자연적으로 움직이기 때문.

 

387.

궁극적으로는 쓸모가 있거나 없거나 어느 한쪽에도 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쓸모 있고 없고를 떠나 허심, 무심의 경지, 집착이 없이 자유로운 경지, 자유 자재한 경지가 궁극의 자리라는 것이다.

 

389. <산목> 20:3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능히

그를 해하겠습니까?

 

390. <산목> 20:10

"저 미인은 스스로 아름답다고 하여 아름다운 줄을 모르겠는데, 저 추녀는 스스로 못났다고 하여 그 못남을 모르겠습니다." "어진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 어진 행동을 한다고 하지 않으면 어디 간들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394. <전자방> 21:13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오는 것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떠나는 것을 붙잡지 않을 뿐입니다. 얻고 잃음은 나와 관계없는 것. 그러기에 걱정하는 기색이 없을 뿐입니다.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396. <지북유> 22:5

너는 네 모습을 바르게 하고,

눈길을 하나로 모으라.

하늘의 화기가 이를 것이다.

네 앎을 없애고

네 의식을 하나로 모으라.

신이 찾아와 머물게 되고,

덕이 너를 아름답게 하고,

도가 네 안에 살리라.

너는 새로 난 송아지처럼 사물을 보고

그 이유를 묻지 않게 될 것이다.

 

401.

장터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실수를 정중히 사과하지만, 형의 발을 밟으면 따뜻한 손길을 주기만 하고, 어버이의 발을 밟으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됩니다.

 

403. <서무귀> 24:5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말을 기르는 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저 말을 해치는 것을 없애는 것. 그것뿐입니다."

 

408.

체념이란 본래 '' 곧 진리를 깨달아서 생기는 안달하지 않는 마음, 너그러운 마음을 뜻한다.

 

410.

나중에 보자는 사람 무서울 것 없다고 했지만, 도와 달라고 할 때 나중에 보자는 사람, 정말 믿을 것 없다.

 

411. <외물> 26:9

혜자 "자네의 말은 쓸모가 없네", 장자 "쓸모 없음을 알아야 쓸모 있음을 말할 수 있지. 땅은 한없이 넓지만 사람에게 쓸모 있는 땅은 발이 닿는 만큼뿐일세.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남겨 놓고 그 둘레를 모두 황천에 이르기까지 다 파 없애면 그 쓸모 있다는 땅이 그래도 정말 쓸모 있는 것일 수 있겠는가?"

 

413. <열어구> 32:5

장자 " 치질을 핥아서 고쳐 주는 의원에게는 수레 다섯 대를 준다는 데, 치료할 곳이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수레를 더 많이 준다고 하더군. 자네는 치질을 얼마나 고쳐 주었기에 그렇게 많은 수레를 얻었는가? 자네, 물러가게."

 

415. 장자의 죽음

내게는 하늘과 땅이 안팎 널이요, 해와 달이 한 쌍 옥이요, 별과 별자리가 둥근 구슬, 이지러진 구슬이요, 온갖 것들이 다 장례 선물이다. 내 장례를 위해 이처럼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모자라는 것이 없거늘 이네 무엇들 더 더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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