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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5일 11시 40분 등록

장자

10기 김정은

 

장자, 오강남 풀이, 현암사

 

1. 저자에 대하여

 

장자 (BC 369 ~ BC 289년경)

 

장자(莊子). 본명은 주(). 중국 전국 시대 송()나라 몽(; 현재의 안휘성 몽성 또는 하남성 상구 추정) 출신. 저명한 중국 철학자로 제자백가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노자(老子)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후세에 노자와 함께 부를 때 노장(老莊)이라 부른다.


가난한 장자


장자는 부인이 상을 당하자 슬퍼하기는커녕 춤추며 노래했다는 기이한 행적이 <장자>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으로 보아, 장자는 결혼했고 자식도 몇몇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인간 장자는 아주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는 다음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대체 이렇게 곤궁한 마을 뒷골목에 살면서 궁색하게 짚신이나 엮으며 목덜미는 그렇게 여위고 낯짝은 누렇게 떠 있다니 나라면 이렇게는 살지 못할거요.” (<장자> 열어구, 765)


장주의 집이 가난하여 감하후에 곡식을 빌리러 갔다. 감하후가 말했다. ‘좋소. 나는 이제 곧 읍에서 세금을 거두려고 하는데, 당신에게 삼백금을 빌려드리지요. 괜찮겠습니까?” (<장자>, 외물 655)


장자가 위왕을 만났을 때, 장자를 본 위왕이 선생님 어째서 이렇게 지친 것이오?” 라고 묻자, 장자가 대답한다.


가난한 것이지 지친 것이 아니오이다. 선비가 도와 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를 행하지 못했을 때 지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옷이 해지고 신발에 구멍이 난 것은 가난한 것일 뿐 지친 것이 아니오이다. 이는 곧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불편한 시대를 만나면 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는 법입니다. 지금처럼 군주가 어리석고 신하들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지치지 않으려 한다 해서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저 비간과 같은 충신이 심장을 도려내는 일을 당한 것을 보면 분명하지 않습니까!” (<장자> 신목 499)


가난했던 장자는 천하를 구제할 만한 그릇이었지만 바람을 타지 못해 그저 가난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가난했던 장자 강호의 삶으로!


가난한 지식인 장자는 천하를 다스리는 길로 가지 않고 강호를 여는 길로 접어들었다. 인간의 길이 윤리와 규범을 세우는 것이라 장자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의 길은 천하를 잊고 자신의 삶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 장자는 생각했던 것이다.


샘에 물이 마르면 물고기들은 서로 땅 위에 모여서 서로 습기를 뿜어내며 서로를 거품으로 적셔준다. 하지만 이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느니만 못하다. 사람들은 성왕 요임금은 찬양하고 폭군 걸왕은 비난한다. 그러나 둘 다 잊고서 도와 하나가 되느니만 못하다. (<장자> 대종사 187)


세상 사람들은 누구는 훌륭한 정치가이고 누구는 나쁜 정치가라고 비판한다. 삶이 각박해질수록 사회 기득권에 대한 비판 여론은 더욱 드세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기득권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비판에 무관심해 진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 듯하다. 지금의 기득권이 누군들 어떠하리.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면 그만이다. 이것이 장자가 추구하는 강호의 삶이다.


장자의 사상과 영향


《사기》에 따르면, 장자는 일찍이 몽() 칠원(漆園)의 관리가 되었으나, 생활은 매우 가난했다. 《장자》 외편 〈추수(秋水)〉편에 따르면, 초나라 위왕(威王)이 사람을 보내 정치를 보좌해 주길 청했으나, 장자는 거절하였다. 혜자(惠子)와 교우했다.


장자는 장자라는 사상가의 이름에서 유래한 책을 의미한다. 장자 사후 200년 뒤, 사마천이 쓴 <사기>에 그 당시 10여 만 자로 된 장자라는 책이 있었다고 전하고, 전한 말 유향의 기록을 인용한 한서예문지에는 모두 52편으로 구성된 장자라는 책이 있었다고 전한다. 기원후 4세기 노장사상이 전성기를 맞은 당시 북송의 곽상(기원후 312년 사망)이라는 사람이 여러 판본을 정리하여 65000여자, 33편으로 편집하고, 거기에 주를 달았다. 이렇게 곽상이 편집한 장자가 바로 우리가 지금 보는 장자라는 책이다.


"우리 두 사람이 싸워 당신이 나를 이겼다고 해서 당신이 옳은 것인가? 내가 당신을 이겼다 해서 내가 옳은 것인가? 두 사람 모두 옳을 수 있고, 두 사람 모두 틀릴 수 있다.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당신에게 찬성하는 사람이 판단하면 그는 당신을 찬성하는 것일 뿐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를 찬성하는 사람의 판단은 나를 찬성하는 것이지 어찌 공정하다 할 수 있는가.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의 판단은 우리를 반대하는 것이니 더욱더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옳고 그른 것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시비에 의존할 수 있단 말인가."


중국 사상사에서 유가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도가는 소극적 인생관을 앞세운다. 장자는 그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냉소적이고 허무한 삶을 표방했다. 하지만 장자의 사상에는 유머가 있다. 고답적이고 형식에 치우친 유가사상의 답답함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에게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인간의 마음은 일정한 시대 ·지역 ·교육에 의하여 형성되고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이 마음이 외부 사물들과 접촉하여 지식이 생긴다. 이러한 지식은 시대 ·지역, 그리고 사람들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보편타당한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 장자는 이러한 지식에 입각한 행위를 인위(人爲)라고 한다. 장자는 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도()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본다. 도는 일()이며 대전(大全)이므로 그의 대상이 없다.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며, 스스로 존재한다.


도가 개별적 사물들에 전개된 것을 덕()이라고 한다. 도가 천지만물의 공통된 본성이라면 덕은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도 덕이다. 이러한 덕을 회복하려면 습성에 의하여 물들은 심성(心性)을 닦아야 한다. 이를 성수반덕(性脩反德)이라고 한다. 장자는 그 방법으로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들었다. 덕을 회복하게 되면 도와 간격 없이 만날 수 있다.


도와 일체가 되면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다. 이를 이도관지(以道觀之)라고 한다. ()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자기는 귀하고 상대방은 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만물을 평등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은 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연에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자유는 천지만물과 자아 사이의 구별이 사라진 지인(至人)이라야 누릴 수 있다. 이 지인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천지만물들과도 사이 좋게 살아갈 수 있다. 장자의 사상은 대부분 우언(寓言)으로 풀이되었으며, 그 근본은 노자(老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현세와의 타협을 배제하는 점에서는 더욱 철저하여, 바로 그와 같은 면에서 장자의 분방한 세계가 펼쳐진다.


이러한 장자사상은 위진현학(魏晉玄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남북조 시대에 성행한 반야학(般若學)과 당나라 때 융성한 선종(禪宗)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현종(玄宗)은 그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호를 추증하였으므로,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읽혔다. () ·() 이학(理學)은 유학을 위주로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장자철학을 수용하였다. 장자의 이러한 초탈사상은 자연주의 경향이 있는 문학 예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전기에 이단(異端)으로 배척받기도 하였으나 산림(山林)의 선비들과 문인들이 그 문장을 애독하였다.


 

2. 마음을 무찔러 오는 글귀

 

<장자>를 읽기 전에

 

17

윤리와 실용을 강조하는 유교의 가르침을 양이라 한다면, 좀더 신비한 내면을 강조하는 도교의 가르침을 음이라 할 수 있다. 이 둘은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완화하는 관계로 조화와 균형을 이상으로 삼는 동양인의 정신적 필요에 부응해 온 셈이다.

도가 사상의 근간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다. 그래서 후대에 와서 그것을 흔히노장 사상이라고도 한다.

윤리와 실용을 강조하는 유가 사상은 중국의 주류사상이 되었음에도 중국인의 정신을 사로잡진 못했던 것 같다. 전국시대에는 유묵이라 하여 묵가사상이 양대산맥을 이루었다면 이후 도가의 노장사상은 유가사상을 완화하는 관계로 조화와 균형을 이상으로 삼는 동양인의 정신적 필요에 의해 전승되었다.

 

21

노자가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닙니다.”하는 엄숙한 선언으로 『도덕경』 첫머리를 시작한 데 반해, 장자는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 하였습니다.” 하는 이야기로 운을 떼었다.

아무튼 노자가 자상하면서 근엄한 철인의 풍모를 지녔다면, 장자는 투철한 눈매로, 때로는 크게 껄껄 웃고, 가끔은 험구도 불사하는 재기 발랄한 야인의 모습을 지녔다고 하겠다.

장자의 캐릭터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투철한 눈매로 때로는 크게 껄껄 웃고, 때로는 함구도 불사하는 사람, 그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22

장자의 일차적 관심은 무엇보다 개인이 내적으로 성장하고 깨닫기 위해 힘쓸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자가 도가적정치실현을 이상으로 삼았다면, 장자는 도가적삶의 완성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 변화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근원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그냥 그 변화에 모을 맡겨 함께 흐르거나 그대로 변하기를 더욱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도덕경』은 주로 도의하는 측면을 말하였는데, 『장자』는 도의하는 기능을 부각한다.

그러면 장자는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무엇을 가르쳐 주려 하는가? 엄격히 말하면 가르쳐 주려는 것이 없다. 무엇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우리가 떠받드는 상식적인 고정 관념, 이분법적 사고 방식, 거기에 기초를 둔 맹목적인 가치관, 윤리관, 종교관 등을 우리에게 스스로 깊이 살펴보게 해서 이런 것들의 내재적 모순과 불합리함을 발견해 없애도록 도와 줄 뿐이다.

우리가 떠받드는 상식적인 고정 관념, 이분법적 사고 방식, 거기에 기초를 둔 맹목적인 가치관, 윤리관, 종교관 등을 우리에게 스스로 깊이 살펴보게 해서 이런 것들의 내재적 모순과 불합리함을 발견해 없애도록 돕는 장자의 가르침은 올 하계연수 스페인의 시체스에서 내가 느낀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모든 금지된 것들을 허용하는 도시, 스페인의 시체스. 다른 지역에서 금지된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아가는 시체스 시민들을 보면서 나는 내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고정관념, 이분법적 사고방식, 맹목적인 가치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23

모든 이분법적 사고 방식을 넘어선 상태, 야심과 욕망과 우월감 등 일체의 자의식을 극복한 상태, 이런 빈 마음의 상태에서 도와 하나가 되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신나는, 힘있는 삶, 풍요한 삶, 활력이 넘치는 삶, 절대적인 자유의 삶으로 이끄는 장자의 초청을 발견한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넘어선 상태, 일체의 자의식을 극복한 상태가 되면 진정한 자유를 맛 볼 수 있을 것 같다.  

 

25

절대자유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변화초월’, 이것이 『장자』 전체의 주제이며 가르침의 궁극 목표라 할 수 있다.

정대 자유를 위한 변화와 초월! 멋진 말이다.

 

1편 자유롭게 노닐다

 

30

종교사에서 거의 모든 종교는 우주의 바람, 이 바람이 사람에게 작용해서, 그것이 사람을 신바람이 넘치는 사람, 생기에 찬 사람, 진정으로 살아 있는 자유인이 되게 한다는 기본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도 확실한 사실이다.

바람을 타라. 생기를 찾아라. 그리하여 활기찬 삶을 살아라.” 이것이 건조하고 무의미한 인간의 현존을 뛰어넘는 진정한 초월이라는 것이다.

바람을 타라.” 내가 절실하게 느끼는 바이다. 뱃사공이 노를 아무리 열심히 젖는다고 한들, 바람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배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노를 젖는 것은 인간의 무의미한 현존을 상징한다. 진정한 초월을 위해 바람을 타자.”

 

31

조금 아는 것으로 많이 아는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짧은 삶으로 긴 삶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33

조나단은 보통 갈매기의 한계를 넘어서, 더 높이, 더 빨리 더 아름답게 나는 것, 궁극적으로 비상의 신비스러운 경지를 찾는 데 시간과 정력을 바친다. 드디어 그런 경지를 터득하고, 자기의 그런 체험을 다른 갈매기들과 나누려고 하지만, 다른 갈매기들은 이렇게 허황한 짓은 갈매기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파괴하는 못된 짓이라 하여 이 갈매기를 추방하고 만다. 매일매일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런 구름 잡는 소리같이 당치도 않는 소리를 해서 자신들을 현혹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세상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써 행하려 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이런가 저런가 망설이고, 못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몹시 비웃습니다.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것은 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타인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스스로를 격려하자.

 

34

지금의 부자유한 삶의 모습을 직시하고, 붕새처럼 이를 초월해서 살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이 참으로 신나는 삶이 된다는 것을 꿰뚫어 봐야 하겠다.

장애를 인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가우디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가우디는 어린 시절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 노는 대신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 그만의 놀이가 되었다. 그가 그의 장애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여 친구들과 같은 모습이 되고자 했다면 스페인의 성가족 성당’, ‘구엘공원등과 같은 자연을 고스란히 담은 아름다운 예술작품 등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로르카는 동성애자였다. 보수적인 스페인 귀족 사회에서 그가 보통 사람으로 사랑 없이 여성과 결혼하여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 살며 보통 사람들의 그저 그런 삶을 살았다면 로르카의 문학 작품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 현재의 부자유한 삶을 직시하고 세안의 인식을 초월하며 살았기에 스페인을 대표하는 두 예술가들은 탄생할 수 있었다.

 

37

『장자』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문자적 진리를 안겨다 주려는 책이 아니라상징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깨닫게하려는 것이다. 상징은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그 자체를 넘어서는 어떤 것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 손가락의 생물학적 성격이나 물리적 구조에만 관심을 쏟으면 달을 볼 수 없다.

 

40

자유자재로 노닐다가 15일이면 돌아왔는데 그것은 15일마다 불어오는 새 바람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또 이렇게 훨훨 떠다니기 위해서 어절 수 없이 바람이라는 외부 요인에 의지했다. 말하자면 열자는 아직 기대는 상태에 머문 것이다.

사람이 열자처럼 살기도 어렵지만 『장자』의 궁극적 이상은 우주의 원리에 따라 자연과 하나가 돼 무한한 경지에 노니는절대 자유의 단계이다. 아무것에도기대지 않는완전한 자유를 만끽하고 구가하는 무애의 삶이다.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는 장자가 말하는 이상을 실현한 사람이 아닐까. 그의 건축물을 보면 우주의 원리에 따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 무한한 경지에 노니는 절대 자유를 느낄 수 있다.

 

48

완전한 무위의 상태에서 유유자적하게 살면서 세상을 이롭게 한다. 『도덕경』의 말처럼함이 없는 함을 실천한다.

함이 없는 함! 존재 자체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

 

50

결국 요 임금이 이런 경지에 이른 것은 이 신인들의함이 없는 함때문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쓸모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이 신인들이야말로쓸모 없음의 더욱 큰 쓸모라는 진리를 실증해 준다.

 

 

2편 사물을 고르게 하다

 

55

세상에 버려야 할 것,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런 비본질론적 견해를 다른 말로 해서시각주의적 접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시각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60

제목을 어떻게 풀든 논의의 초점은에 있다. ‘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로 한다는 것이다. 하나로 한다고 하여 각각 다른 사물을 일률적으로 획일화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때의하나는 다양함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조화와 일치를 의미한다.

 

63

옛 자아가 죽고 진정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옛 나를 장사 지내고 새로운 내가 무덤에서 나오는, 깊은 의미의죽음과 부활이다. 불란서 철학자 데카르트가 라틴말로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다지만, 여기서는나는 잊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일상의 이분법적 고정관념을 버릴 때 진정한 나, 온전하게 된 내가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다.

첫 수업에서 장례식을 하는 이유

 

64

이것이 바로 제물론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 곧 일체의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는 차원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을 얻는 것이다.

나와 얄팍한 친분이 있는 지인들은 가끔 말한다. 내가 너무 긍정적인 것아니냐고. 나도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내가 너무 긍정적인 것은 아닌지. 하지만 장자를 읽으면서 그 문제에 대해 결론 냈다. 나는 일체의 대립을 초월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대립들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는 차원을 맛보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얄팍한 친분의 단계에서 받는 오해나 비웃음 또한 초월하자.

 

66

1편의 바람이 우리가 타고신바람 나게날아가게 하는 바람이라면, 여기 나오는 바람은 퉁소 속으로 통과하면서 소리를 내듯 속으로 불어 우리를 움직이는 내면적 바람인 셈이다.

 

67

이처럼 우주의 온갖 사물은 각각의 모양과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인간은 이 바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내보내느냐에 따라 나름대로 다양한 소리, 생각, 의견, 심리 작용, 감정, 정서 상태와 다양한 정도의 생동성과 생명력 등을 얻는다.

하늘 소리는 그 자체로 독립된 소리가 아니라 인간과 대지가 이처럼 다양한 소리를 내도록 해 주는 바로 그것, 그 자체로는 들리지 않지만 모든 소리들이 근원이 되는 바로 그것. 바람 혹은 기 그 자체, 바람이나 기의 근본인 도와 도가 발휘하는 힘을 의미한다.

 

68

하늘의 소리란 모든 소리를 나게 하지만 그 자체로는소리가 아닌 소리이다.

 

72

장자는 이런 일상적인 마음, 우리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스스로 주관한다고 착각하고 그 이상의 존재를 모르는 마음이 바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보고, 이런 마음의 불완전함 깨달아 이를 잃고 초극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77

뒤집어 말하면 이런 분별심, 성심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시비를 따지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런 정신적 병폐 때문에 나의참주인’, 나의참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고형의 한계, 사고형인 내가 사고형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

 

92

하늘의 고름이란, 의인의 밭에도 악인의 밭에도 고르게 비를 내리는 하늘의 공정함이고, ‘두 길을 걸음이란 시비 등 이분의 세계에서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는 경지이다. 이런 것은 역시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인시의 문제라는 것이다.

 

97

성인은가르지 않는다고 하고, 멈출 줄 안다고도 하였다. 멈출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이분을 넘어선 하나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분을 넘어서 하나의 세계로! 내가 추구하는 바

 

102

털끝이 태산보다 클 수 있고, 태산이 털끝보다 작을 수 있다. 무한히 작은 도에서 본 털끝은 무한히 크고, 무한히 큰 도에서 본 태산은 무한히 작기 때문이다. 시간도 마찬가지. 도는 아무리 긴 시간보다도 더 길고 아무리 짧은 순간보다도 더 짧다.

사물을 양쪽 관점에서 동시에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자』 「천하」 편을 보면 혜자의 열 가지 역설 중에 셋째 것에 해당된다. 거기에하늘도 땅과 같이 낮고, 산도 늪지와 같이 평평하다고 했다.

 

103

이렇게 사물을 볼 때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따라서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살아가고, 모든 것이 나와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혜자의 열 가지 역설 중의 마지막 것인데, 혜자는만물을 두루 사랑하면 하늘과 땅이 나와 하나라고 했다.

 

104

이렇게 구분하고 따지고 변론하고 시비를 가리면서부산하게 쫓아다니지 말고”, ‘순수이성의 한계를 깨닫고 그것을 넘어서는 직관으로있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하라 타이른다.

부산하게 시비를 따지지 말자.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긍정하자.

 

107

『도덕경』 제1장 첫 줄에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절대적인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것, 말이 없어져 버린 상태이다.

 

108

철학자 파스칼도 하느님이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느님이지철학자와 학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고 했다. 도는 마음에 간직하거나 체험으로 알아야지 사변이나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 따지면 영원히 절대타자일 수밖에 없다.

도를 말하려면 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도에 대해서 뭔가 말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자체가 도를 전혀 모른다는 증거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도덕경』은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109

성인은 일방적 방법에 의지하지 않고, (전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있는 그대로를 그렇다 함이다하는 문장 뒤에 들어갈 것이 여기 잘못 들어왔다고 했다.

 

127

문제는 우리가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꿈이 꿈인 줄 알려면 꿈에서 깨어나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범속한 인간들에게는 이런 큰 깨어남, 큰 깨달음, 큰 깨침이 없기 때문에 이 인생의 꿈속에서 그것이 꿈인 줄도 모르고 서로 아웅다웅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131

모든 의견은 결국 각자의 견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른바 보편 타당한 객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여러 번 지적한 대로시각주의입장 없는 입장을 말한다.

 

135

지금 그 꿈에서 깨어난 상태를 다시 꿈꾸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이른바 그 깸에서 다시 한 번 깨어났다는 뜻이다. 이렇게 깸에서 깨어나는 것이 큰 깨어남, 대각이라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장자는 대각한 사람이다.

 

135

장자가 보는 세계는 모든 사물이 이것과 저것으로 갈려 독립한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도 여러 번 지적했다. 장자가 보는 세계는 모든 사물이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 서로 어울려 있는 관계, 꿈에서 보는 세계와 같이 서로가 서로가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들어가기도 하고 서로에게서 나오기도 하는꿈 같은 세계이다.

내 부모님의 관계도 떠오르고, 우리 부부 관계도 떠오른다. 서로가 서로가 되는 관계. 나는 이상적인 부모님 아래서 자랐고, 지금은 이상적인 나름 부부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136

이런 세계는 만물이 상호 합일하고, 상호 침투하는 세계, 만물이 상호 연관하고 상호 의존하는 세계, 만물이 상호 변화하고 상호 연기, 상호 존재하는 세계를 말한 것이다.

 

139

이렇게 신나고, 활기차고, 풍성한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거기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지식욕, 자존심, 자기중심주의 같은 일체의 인위적, 외형적인 것을 넘어서서 자연의 운행과 그 리듬에 따라 우리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할 때, 우리 속에 있는 생명력이 활성화하고 극대화해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 이른바기대지 않는 삶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생명을 북돋는 일’,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3편 생명을 북돋는 데 중요한 일들

 

141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아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알려고만 한다면 더더욱 위험할 뿐입니다.

 

142

아무튼 순전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일방적 지식 추구는 위험한 일이므로, 오직 중도를 기준으로 삼으면 몸도 보전하고 삶도 온전하게 되고, 모두 화목하게 지내게 되고,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네 가지가 곧보신’, 전생’, ‘양친’, ‘진년이다.

 

142

노자도마음은 비우고 배를 든든하게 하며, 뜻은 약하게 하고 뼈는 튼튼하게하고, “지식도 없애고 욕망도 없애고….. 함부로 하겠다는 짓도 못 하게하라고 했다. 소위무지’, ‘무욕’, ‘무위를 가르치고, 이렇게 하면 세상에서 안 되는 것이 없으리라고 했다.

윤구병 선생님의 아버님 말씀이 생각난다. 철학자이자, 교수, 변산공동체의 설립자이자, 도서출판 보리의 이사이기도 한 윤구병 선생님은 위로 형이 여덟 있었다. 이름하여 윤일병, 윤이병, 윤삼병…… 윤팔병, 윤구병. 아홉 형제의 막내이기도 했던 윤구병 선생님은 어린 시절 여섯 명의 형을 잃게 된다. 이유는 바로 6.25 전쟁 이후 남한에서 이념 운동을 했기 때문에. 여섯 명의 아들을 동시에 잃은 윤구병 선생님의 아버님은 나머지 세 아들을 가르치는데 있어 무지를 가장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서 윤구병 선생님은 초등 교육도 받지 못하게 된다. 아들을 가르치게 되면 이념이 생길 것이고, 이념이 생기면 휴전 중인 대한민국 남한에서 목숨 부지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그저 아들이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을 가르치지 않은 것이었다. 어린 시절, 오랜 문맹의 시기를 보낸 윤구병 선생님은 뒤늦게 공부를 하게 되지만, 대한민국 철학자로서, 공립 대학 철학과 교수로서 자신을 지탱하는 정신은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한 오랜 시간 속에서 이미 확립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던 강연 내용이 생각난다.

 

143

도와 하나가 되려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편견이나 단견 같은 이분법적이고 일방적인 의식으로 얻은 지식을 하나하나 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런 것을 더 얻지 못해 안달하며 쏘다니면 이야말로 위험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렇게앎을 버림’, 혹은배운 것을 버림에 이를 때, 비로소하나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여기서도 결국 지식이 아닌 직관으로 실재의 세계를 꿰뚫어 볼 수 있음을 말한 셈이다.

 

144

그렇다면 사회 정의를 위하여 싸우다가 감옥에 갇히는 일 같은 것은 좋지 않다는 뜻인가? 이런 질문에 장자는 잔잔히 미소를 지으며, 훌륭한 일일 수 있다. 정의를 위해 힘껏 싸워 보아라. 결국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그러고 나서 스스로 더욱 근본적인 일이 있음을 발견하라고 타이르지 않을까? 장자에게서 더욱 근본적인 것은 착한 일을 한다, 나쁜 일을 피한다, 하는 등 의식적 가치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표피적 행동이 아니라 의연하고 묵직하게중도를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이 편에서 강조한 양생의 요체인 셈이다.

뜨끔!!

 

145

우리의 잔꾀에서 나오는 고의나 계략 같은 것이 전혀 없이 자발적이고 자연적인 행동, 우리 깊은 속에서 솟아나는 어떤 활기나 기백에 따라 올바르게 나타나는 행동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잇지 않을까? 한마디로,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거기에 몸을 맡기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53

자식이라도 열심히 가르쳐 어떻게 하든 사회에서 버젓이 성공하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상식을 뒤집고 오히려 백정이 임금에게 참되게 사는 방식을 가르쳐, 임금이 감탄했다.

 

153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유명한 소설 『희랍인 조르바』가 생각난다. 거기서도 소위 성공한 지성인 사업가로 등장하는 상전이 불학무식한 하인 조르바의 신나는 삶, 거침이 없는 삶에 감복하여 결국춤추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대목으로 끝이 난다. 인생의 참된 성공은 어떤 것일까? 전통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내 삶을 비유하자면, 카잔차키스 같았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했던 이전의 삶보다, 지금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 나는 만족도가 훨씬 더 높다. 주변 지인들은 말한다. 나에게 든든한 남편이 있어서라고.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자유롭게 살아가면서도 인의적이지 않은 바람에 의해 내 일거리가 이어지는 것이 놀랍다. , 자유롭게 살아도 큰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굶어 죽기 싶지 않다.

 

156

어느 화가가 남녀의 사랑을 묘사하는 그림을 그릴 때, 두 남녀가 침실에 같이 있는 장면을 소상하게 그릴 수도 있고, 단순히 댓돌 위에 고무신 두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양을 그릴 수도 있다. 전자를서술적묘사라 한다면, 후자는암시적’, ‘환기적기법이라 할 수 있다.

 

165

이렇게 상식 세계를 벗어나 사물을 한 차원 높은 데서 전체적으로 보라고 강조한 점에서 제2편 「제물론」의 주제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느 의미에서 요즘 많이 논의하는해체주의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이데거가 『장자』를 좋아한 것도 이런 뜻에서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일체의 고정 관념이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라는 것…… 사실 누구인들 좋아하지 않으랴.

 

 

4편 사람 사는 세상

 

170

덕은 이름을 내려는 데서 녹아 없어지고, 못된 앎은 서로 겨룸에서 생긴다. 이름을 내려는 것은 서로 비걱거리는 것이고, 못된 암은 겨루기 위한 무기이다. 둘 다 흉한 무기라 완전한 삶을 위해서는 써서 안 될 것들이다.

 

179

안회가 말했습니다. “부디마음의 재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기는 텅 비어서 무엇이든 받아들이려 기다린다. 도는 오로지 빈 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이 곧마음의 재니라.”

 

185

이렇게 몸은 앉아 있으니 마음이 쏘다니는 상태를좌치라고 하는데, 가만히 앉아 자기를 완전히 잊어버린다는좌망과 맞서는 개념이다. 좌망이 마음의 구심 운동이라면 좌치는 마음의 원심 운동인 셈이다.

 

186

앎을 버림 곧 무지를 통해서만 참된 앎에 이른다는 것이다. 여기서무지란 물론 이분 세계에서 우리가 얻은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암을 비우는 것이고, 이렇게 비운 상태에 이르렀을 때 참된 앎이 생긴다는 이야기이다.

윤구병 선생님의 아버님께서 아들 여섯을 잃으며 깨달은 바가 이것이지 않을까.

무지를 통해서만 참된 앎에 이른다.”

 

187

장자는 이 문제에 대해마음을 굶겨’, 내면에서 솟는 초월적인 힘을 체험한 뒤에 삶의 현장으로 나가 사람들을 도우라고 한 것이다.

 

195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도록 하십시오. 부득이한 일은 그대로 맡겨 두고, 중심을 기르는데 전념하십시오. 이것이 최고입니다. 무엇을 더 꾸며서 보고할 것 있겠습니까? 그저 그대로 명을 받드는 것뿐.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200

물은 동그란 그릇에 들어가면 동그랗게 되고 길쭉한 그릇에 들어가면 길쭉해지고, 뜨거우면 김이 되어 날아가고, 차가워지면 얼음으로 굳고. 이렇게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물이물임물됨을 잃는 일이 없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적응하는 것 그 자체가 물의 정체성이다.

 

213

천박하게 이해한 실용주의나 실리주의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은 어느 의미에서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길 일이라는 것이다. 긴 안목으로 볼 때, 이런 일을 통해서 이제까지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진정한 자기실현을 이루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19

모두땅에 금을 긋고 그 안에서 종종걸음옥신각신하는 세상에서 어느 한편을 위해쓸모 있으려애쓴다는 것은 그야말로 쓸데없고 위태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입시교육과 취업을 두고 하는 말 같다.

 

220

장자든 누구든 정신적인 영웅은 조셉 캠벨의 말처럼 일단인습을 등진 사람이다. 그래서 인습대로 사는 사람에게 정신적 영웅은 어쩔 수 없이 바보처럼, 미친 사람처럼, 우스운 사람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생각난다.

 

221

궁극적으로 지인의 경지에 이르기 이전의 모든 유용성은 진정한 유용성이 아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크게 유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정으로 내면적 준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세상에서 떠받드는 자질구레한 유용성이나 실용성에 정신을 팔지 말고 무엇보다도 먼저마음을 굶기는심재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5편 덕이 가득함의 표시

 

227

사람이 흐르는 물에 제 모습을 비춰 볼 수 없고, 고요한 물에서만 비춰 볼 수 있다 고요함만이 고요함을 찾는 뭇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다.

 

229

남의 눈치나 칭찬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오로지자기 실현만을 위해’, 차분하고 조용히 정진했을 뿐인데도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이런 거울같이 맑은 마음에 자기들의 참모습을 비추어 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232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편안하게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덕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지.

나에게 한 말 같은…….,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편안하게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을 바꾸려 들지 말자.

 

239

이렇게 율법주의의 껍데기에 갇히면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자기 스스로 의롭다는 의식에 도취해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다.

 

240

왕필은공자는 무()와 하나가 되었기에 그것이 가르침이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 어쩔 수 없이 유()만을 말했지만, 노자와 장자는 유의경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에게 모자라는 바를 계속 이야기 했기때문이라는 것이다.

 

244

한마디로화이불창이다. 이것은라는 자의식에서 완전히 풀려난 상태를 의미한다. 물 같은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둥근 그릇에 들어가면 둥글어지고 길쭉한 그릇에 들어가면 길쭉해지고, 추우면 얼고, 더우면 증발하고…… 이것은 완전히빈 배가 된 상태,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가는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248

그러면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평평한 것은 물이 완전히 고요해진 상태입니다. 이것이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은 안에 고요를 간직하고 밖으로는 출렁거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덕을 이룬 사람은 조화를 이룬 사람으로,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서 떠나지 못합니다.”

 

254

외모에 마음 쓸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외모 때문에 성형외과의 문전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마음을 쓰고, 신경을 써야 할 내면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이니 어찌 된 일이냐는 것이다. 이처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으니 이것이야말로 정말 한심한진짜 잊어버림이라는 이야기이다.

 

255

성인은 자신을 하늘에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 하늘이 알아서 먹여주고 길러 주는데, 일부러 설치면서 허우적거릴 일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예수는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면서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다.

 

258

무정이란 감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보통 감정을 넘어선 감정이란 뜻이다. 그야말로정일랑 두지 말라. 미련일랑 두지 말 자.” 하듯이 애증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활달하고 트인 마음, 빈 마음에서 작용하는 티 없는 감정의 흐름일 뿐이다.

 

259

어느 선사가 노래한 것처럼, 호수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가 제 그림자를 호수 위에 드리우되 일부러 하지 않고, 호수도 기러기의 그림자를 비추되 일부러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둘 다무심히드리우고 무심히 비출 뿐이다.

 

 

6편 큰 스승

 

271

진인은 무엇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하는 대립, 상극, 이원론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이것도 저것도하는하나 됨의 경지, 막히고 걸리는 것 없는 통전적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한마디로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275

인의가 필요 없는 세상, 그런 것을 잊어버리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바로 도가 편만한 세상,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듯 시원하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276

대지는 나에게 몸을 주어 싣게 하고, 삶을 주어 힘쓰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삶을 좋다고 여기면 내 죽음도 좋다고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277

도와 하나 되면 살아도 거기, 죽어도 거기. 밤중에 죽음이 찾아와 우리의 생명을 도둑질해 간다 해도 결국 숨을 데가 없으니 거기가 거기. 죽음이니 삶이니 하는 구분이 있을 수도 없고, 잃으니 찾느니 하는 대립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죽음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가능하게 된다.

 

279

궁극적으로는 이런 사람이 본받는 도,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도야 말로 가장 큰 스승이라는 것이다.

 

281

도는 체험의 영역이지 말의 대상일 수 없음을 말한다. ‘터득할것이지떠들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여기서떠들고있는가? 여기서는도는 이것이다.”하고 떠드는 것이 아니라, 도에 대해서는 떠들 수 없다고 떠들고 있을 뿐이다.

 

290

글을 읽되 거기에 매이지 말고 읽어라. 그것을 오래오래 구송하고, 맑은 눈으로 그 뜻을 잘 살핀 다음, 그 속에서 속삭이는 미세한 소리마저도 알아들을 수 있게 바로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그대로 실천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즐거움과 감격을 노래하라.

 

293

여기 『장자』에서 말하는 참된 벗이란 선과 덕을 바탕으로 한 우정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맺는 벗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인생관이나 세계관의 차원에서 의기투합할 수 있는 벗, 한번 같이 웃기만 해도 속마음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벗이 진정한 벗이라는 뜻이다. 참된 의미의길벗이라야 참된 벗이라는 것이다.

 

295

무릇 우리가 삶을 얻은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요, 우리가 삶을 잃는 것도 순리일세. 편안한 마음으로 때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리에 따르면 슬픔이니 기쁨이니 하는 것이 끼여들 틈이 없지. 이것이 옛날부터 말하는매달림에서 풀려나는 것이라 하는 말 걸세. 그런데도 이렇게 스스로 놓여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 세상의 모든 사물은 하늘의 오램을 이기지 못하는 법. 내 어찌 이를 싫어하겠는가?”

 

296

인생을 살면 몇 백 년을 살겠는가? 하늘에 비하면 우리의 삶은 찰나에 불과한 것을. 길게 살았다 짧게 살았다 따지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299

『장자』에서는 인간이 행한 행위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는 인과응보라든가 업보를 같은 사상이 없다. 모두 자연이 그 순리에 따라 적절한 길로 만물을 변화시킬 따름이라는 것이다.

 

305

물고기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 잊고, 사람은 도에서 서로 잊는다.

 

309

사물과 편안히 어울려 변화를 잊은 채 텅 빈 하늘로 들어간 사람이다. 그야말로 도가 큰 사람이다.

 

319

이른바기대 중독에서 헤어나라 하는 식이다. 말하자면, 주어진 한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극복하는 길을 채택한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기서 말한 것은 앞에서도 여러 번 지적한 것처럼 운명론이 아니라 안명론이다.

 

 

7편 황제와 임금의 자격

 

322

참된 지도자는 그런 인위를 넘어서 실재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얻은 그 감화력으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알듯 모를 듯 이끌어 가는, 노자식 무위의 정치, 가만 놓아둠의 정치, 무심의 정치를 실현하는 사람이다. “최소한으로 다스리는 것이 최선의 다스림이라는 원칙에서 궁극적으로다스리지 않으면서 다스리는 사람이다.

내 아이들을 기르는 원칙! 최소한의 다스림! 내 어머니가 내게 고수하셨던 육아원칙이기도 하다. 아마 나는 최소한의 다스림을 원칙으로 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랐다면 가출을 했거나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했을 것 같다. 최소한으로 간섭해 주신 것에 항상 감사 드리며 나도 그런 부모가 되려고 노력한다.

 

325

『도덕경』에서도 참된 지도자는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는다고 했다.

 

327

지도자는 먼저 자신을 올바르게 하고 그 감화 아래서 모두가 저절로 되어 가도록 하고, 그렇게 잘 도어 가는 것만 확인하는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가에서 말하는무위의 정치’, ‘놓아둠의 다스림이다.

 

327

새도 화살을 피하려 하늘 높이 날 줄 알고, 들쥐도 잡힐까 봐 사당 밑에다 살 자리를 마련하는데, 사람들도 도의다, 법령이다, 규정이다 하고 못살게 굴면 어디로 피하게 마련이니 제발 사람을 그런 식으로 다스릴 생각은 아예 말라는 것이다.

나에게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면 당신을 피할지도 몰라요.

 

331

참된 지도자는 이슬처럼 공기처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백성들 뒤에서 그들의 필요에 따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다스린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이름을 들먹이지 않고’, 만사 이렇게 잘 되는 것이 마치 자기들 스스로 잘해서 그런 줄 알고 기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내가 추구하는 리더십

 

342

아직 배움을 시작하지도 못했음을 스스로 깨달았다는 사실 자체가 배움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345

앎의 주인이 되지 말라. 잔꾀나 지모의 주인이 돼야 일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런 부정적인 방법을 버리고 무궁한 도, 사물이 근본을 체득하고, 없음의 경지, 비움의 경지에서 자발적이고 자연적인 행동을 하라. 이것이 바로 마음을 거울처럼 한다는 뜻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345

거울은 앞에 나타나는 것을 그대로 비출 뿐, 밉다고 쫓아 보내고 예쁘다고 받아들이는 짓을 하지 않는다. 앞에 나타나 것이 슬프다고 함께 슬퍼하는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을 비췄다고 제가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출렁거리는 것을 보여 준다고 같이 출렁이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잔잔히 떠오르는 대로 비추는 거울, 이것이 자유인의 고요하고 잔잔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349

옛날의는 진정한로 다시 태어나는변혁의 긴 여정을 완성하는 것이다.

 

 

부록 | 외편 · 잡편에서 중요한 구절들

 

362

이제 이 개구리가 할 일은 정신을 가다듬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우물 밖으로 일생 일대신앙의 도약을 감행하는 것이다.

 

367

정치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사에서도 상대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데 쓸데없이 경쟁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자기를 해치거나 불리하게 하는 행동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369

물고기와 하나가 되면 물고기의 즐거움이 곧 나의 즐거움이 아닌가.

 

372

여기서도 죽음을 자연스런 변화의 일부로 본다. 죽음을 계절의 변화와 같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 오히려 죽음을 극복한다는 이야기이다. 순명이요, 안명이요, 아모르 파티이다.

 

374

남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본성 그대로 살고. 본성을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르카, 가우디처럼

 

380

덕이 온전한 상태, 완전한 허심, 무심에서 생기는 내면의 힘이 겉으로 허세를 부리는 공격 자세를 압도한다는 얘기이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원리이다.

 

383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맞기 때문이고, 허리를 잊는 것은 허리띠가 꼭 맞기 때문이고, 마음이 시비를 잊는 것은 마음이 꼭 맞기 때문입니다.

 

387

쓸모 있고 없고를 떠나 허심, 무심의 경지, 집착이 없이 자유로운 경지, 자유자재한 경지가 궁극의 자리라는 것이다.

 

391

아무튼 실컷 잘해 주고 욕먹는다는 말이 있다. 남에게 좋은 일을 해주면서 거들먹거리며 허세를 부리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남을 생각하는 마음, 겸허한 태도가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결국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훌륭하면서 그리고 훌륭한 행동을 하면서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요, 이렇게 훌륭할 때 어디 가서라도 환영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395

집착을 버리는 일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것은사람들이 나를 귀하게 여기거나 천하게 여기는 일 같은 네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를 요즘 말로 하면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법구경』에는육중한 바위가 바람에 움직이듯 않듯,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395

장자는 아무데도 얽매이지 않는 허허로운 마음을 중요하게 본 데 반해, 공자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심을 핵심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410

도움이 당장 필요한 사람에게는 내일이 있을 수 없다. 적기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자는 사람 무서울 것 없다고 했지만, 도와 달라고 할 때 나중에 보자는 사람, 정말 믿을 것 없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와 구성

 

독자들에게

『장자』를 읽기 전에

1편 자유롭게 노닐다(逍遙遊)

2편 사물을 고르게 하다 (齊物論)

3편 생명을 북돋는 데 중요한 일들(養生主)

4편 사람 사는 세상(人間世)

5편 덕이 가득함의 표시(德充符)

6편 큰 스승(大宗師)

7편 황제와 임금의 자격(應帝王)

부록| 외면·잡편에서 중요한 구절들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로마자 찾아보기

『장자』를 읽기 전에에서 <장자>우리가 떠받드는 상식적인 고정 관념, 이분법적 사고 방식, 거기에 기초를 둔 맹목적인 가치관, 윤리관, 종교관 등을 우리에게 스스로 깊이 살펴보게 해서 이런 것들의 내재적 모순과 불합리함을 발견해 없애도록 도와 줄 뿐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1편 자유롭게 노닐다에서는 “바람을 타라. 생기를 찾아라. 그리하여 활기찬 삶을 살아라.” 이것이 건조하고 무의미한 인간의 현존을 뛰어넘는 진정한 초월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고, 2편 사물을 고르게 하다 하늘의 고름이란, 의인의 밭에도 악인의 밭에도 고르게 비를 내리는 하늘의 공정함이고, ‘두 길을 걸음이란 시비 등 이분의 세계에서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는 경지이다. 이런 것은 역시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인시의 문제라고 말한다. 3편 생명을 북돋는 데 중요한 일들에서는 도와 하나가 되려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편견이나 단견 같은 이분법적이고 일방적인 의식으로 얻은 지식을 하나하나 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이런 것을 더 얻지 못해 안달하며 쏘다니면 이야말로 위험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렇게앎을 버림’, 혹은배운 것을 버림에 이를 때, 비로소하나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여기서도 결국 지식이 아닌 직관으로 실재의 세계를 꿰뚫어 볼 수 있음을 말한 셈이다. 4편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장자는 이 문제에 대해마음을 굶겨’, 내면에서 솟는 초월적인 힘을 체험한 뒤에 삶의 현장으로 나가 사람들을 도우라고 한다. 5편 덕이 가득함의 표시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편안하게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덕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전하고 있다. 6편 큰 스승에서 진인은 무엇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하는 대립, 상극, 이원론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이것도 저것도하는하나 됨의 경지, 막히고 걸리는 것 없는 통전적 경지에 이른 사람, 한마디로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인의가 필요 없는 세상, 그런 것을 잊어버리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바로 도가 편만한 세상,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듯 시원하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 7편 황제와 임금의 자격에서 참된 지도자는 그런 인위를 넘어서 실재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얻은 그 감화력으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알듯 모를 듯 이끌어 가는, 노자식 무위의 정치, 가만 놓아둠의 정치, 무심의 정치를 실현하는 사람이다. “최소한으로 다스리는 것이 최선의 다스림이라는 원칙에서 궁극적으로다스리지 않으면서 다스리는 사람이다. 참된 지도자는 이슬처럼 공기처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백성들 뒤에서 그들의 필요에 따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다스린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이름을 들먹이지 않고’, 만사 이렇게 잘 되는 것이 마치 자기들 스스로 잘해서 그런 줄 알고 기뻐하도록 한다고 전한다.


감동적인 장절

 

22

장자는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무엇을 가르쳐 주려 하는가? 엄격히 말하면 가르쳐 주려는 것이 없다. 무엇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우리가 떠받드는 상식적인 고정 관념, 이분법적 사고 방식, 거기에 기초를 둔 맹목적인 가치관, 윤리관, 종교관 등을 우리에게 스스로 깊이 살펴보게 해서 이런 것들의 내재적 모순과 불합리함을 발견해 없애도록 도와 줄 뿐이다.

 

23

모든 이분법적 사고 방식을 넘어선 상태, 야심과 욕망과 우월감 등 일체의 자의식을 극복한 상태, 이런 빈 마음의 상태에서 도와 하나가 되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신나는, 힘있는 삶, 풍요한 삶, 활력이 넘치는 삶, 절대적인 자유의 삶으로 이끄는 장자의 초청을 발견한다.

 

25

절대자유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변화초월’, 이것이 『장자』 전체의 주제이며 가르침의 궁극 목표라 할 수 있다.

 

30

 바람을 타라. 생기를 찾아라. 그리하여 활기찬 삶을 살아라.” 이것이 건조하고 무의미한 인간의 현존을 뛰어넘는 진정한 초월이라는 것이다.

 

33

노자도 『도덕경』에서, 세상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써 행하려 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도를 들으면 이런가 저런가 망설이고, 못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몹시 비웃습니다.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것은 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37

『장자』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문자적 진리를 안겨다 주려는 책이 아니라상징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깨닫게하려는 것이다. 상징은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그 자체를 넘어서는 어떤 것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해준다. 손가락의 생물학적 성격이나 물리적 구조에만 관심을 쏟으면 달을 볼 수 없다.

 

40

『장자』의 궁극적 이상은 우주의 원리에 따라 자연과 하나가 돼 무한한 경지에 노니는절대 자유의 단계이다. 아무것에도기대지 않는완전한 자유를 만끽하고 구가하는 무애의 삶이다.

 

48

완전한 무위의 상태에서 유유자적하게 살면서 세상을 이롭게 한다. 『도덕경』의 말처럼함이 없는 함을 실천한다.

 

64

이것이 바로 제물론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 곧 일체의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는 차원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을 얻는 것이다.

 

67

이처럼 우주의 온갖 사물은 각각의 모양과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인간은 이 바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내보내느냐에 따라 나름대로 다양한 소리, 생각, 의견, 심리 작용, 감정, 정서 상태와 다양한 정도의 생동성과 생명력 등을 얻는다.

하늘 소리는 그 자체로 독립된 소리가 아니라 인간과 대지가 이처럼 다양한 소리를 내도록 해 주는 바로 그것, 그 자체로는 들리지 않지만 모든 소리들이 근원이 되는 바로 그것. 바람 혹은 기 그 자체, 바람이나 기의 근본인 도와 도가 발휘하는 힘을 의미한다.

 

72

장자는 이런 일상적인 마음, 우리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스스로 주관한다고 착각하고 그 이상의 존재를 모르는 마음이 바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보고, 이런 마음의 불완전함 깨달아 이를 잃고 초극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104

이렇게 구분하고 따지고 변론하고 시비를 가리면서부산하게 쫓아다니지 말고”, ‘순수이성의 한계를 깨닫고 그것을 넘어서는 직관으로있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긍정하라 타이른다.

 

131

모든 의견은 결국 각자의 견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른바 보편 타당한 객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여러 번 지적한 대로시각주의입장 없는 입장을 말한다.

 

135

장자가 보는 세계는 모든 사물이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 서로 어울려 있는 관계, 꿈에서 보는 세계와 같이 서로가 서로가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들어가기도 하고 서로에게서 나오기도 하는꿈 같은 세계이다.

 

136

이런 세계는 만물이 상호 합일하고, 상호 침투하는 세계, 만물이 상호 연관하고 상호 의존하는 세계, 만물이 상호 변화하고 상호 연기, 상호 존재하는 세계를 말한 것이다.

 

139

이렇게 신나고, 활기차고, 풍성한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거기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지식욕, 자존심, 자기중심주의 같은 일체의 인위적, 외형적인 것을 넘어서서 자연의 운행과 그 리듬에 따라 우리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할 때, 우리 속에 있는 생명력이 활성화하고 극대화해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 이른바기대지 않는 삶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생명을 북돋는 일’,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141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아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알려고만 한다면 더더욱 위험할 뿐입니다.

 

142

아무튼 순전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일방적 지식 추구는 위험한 일이므로, 오직 중도를 기준으로 삼으면 몸도 보전하고 삶도 온전하게 되고, 모두 화목하게 지내게 되고,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네 가지가 곧보신’, 전생’, ‘양친’, ‘진년이다.

 

187

장자는 이 문제에 대해마음을 굶겨’, 내면에서 솟는 초월적인 힘을 체험한 뒤에 삶의 현장으로 나가 사람들을 도우라고 한 것이다.

 

219

모두땅에 금을 긋고 그 안에서 종종걸음옥신각신하는 세상에서 어느 한편을 위해쓸모 있으려애쓴다는 것은 그야말로 쓸데없고 위태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232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편안하게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덕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지.

 

271

진인은 무엇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하는 대립, 상극, 이원론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이것도 저것도하는하나 됨의 경지, 막히고 걸리는 것 없는 통전적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한마디로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275

인의가 필요 없는 세상, 그런 것을 잊어버리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바로 도가 편만한 세상, 물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듯 시원하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293

여기 『장자』에서 말하는 참된 벗이란 선과 덕을 바탕으로 한 우정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맺는 벗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인생관이나 세계관의 차원에서 의기투합할 수 있는 벗, 한번 같이 웃기만 해도 속마음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벗이 진정한 벗이라는 뜻이다. 참된 의미의길벗이라야 참된 벗이라는 것이다.

 

319

이른바기대 중독에서 헤어나라 하는 식이다. 말하자면, 주어진 한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극복하는 길을 채택한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기서 말한 것은 앞에서도 여러 번 지적한 것처럼 운명론이 아니라 안명론이다.

 

331

참된 지도자는 이슬처럼 공기처럼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백성들 뒤에서 그들의 필요에 따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다스린다.

 

372

여기서도 죽음을 자연스런 변화의 일부로 본다. 죽음을 계절의 변화와 같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 오히려 죽음을 극복한다는 이야기이다. 순명이요, 안명이요, 아모르 파티이다.

 

374

남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본성 그대로 살고. 본성을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완점


<장자>를 읽으면서 나는 내 고정 관념, 이분법적 사고 방식, 맹목적인 가치관, 윤리관, 종교관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이제는 남처럼 되거나, 내가 남처럼 살아가기 위해 세상을 바꾸거나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는 덜해질 것 같다. 나도 남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본성, 나만의 본성 그대로 살고, 그 본성을 계발하는 것이 더 긍정적이며, 진정한 아모르파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공자의 유가는 따뜻하고 열정적이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나, 장자는 타인의 삶이나 세상과는 냉정하며, 냉소적이고 무관심한 사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따뜻하고 열정적인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장자>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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