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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일 09시 32분 등록

, 맛있는 책이었습니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2013. 6.7

 

 

I.              저자 만나기 

한창훈은 농어촌과 소도시 하층민들의 밑바닥 삶을 진솔하게, 그리고 해학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다. 탄탄한 작품 구성력과 섬세한 문체, 전라도와 충청도의 질박한 사투리 구사도 한창훈 문학의 주요한 장점들이다.


그러나 한창훈은 제대로 문학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글짓기 대회에서 상 한번 받아본 일도 없다. 그가 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겠다고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나이 스물 여섯이 지나서의 일이었다.

한창훈은 5·18을 고교시절 광주에서 겪었다. 그때 함께 어깨를 겯고 있던 같은 또래의 학생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에 진학했으나 세 학기 만에 그만뒀다.

학교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생활 속에서 몸을 굴리며 치열하게 살아 보기로 했다. 이 때부터 오징어잡이배나 양식 채취선을 타는 뱃사람이 되어 보기도 하고, 친구들의 외상 술값 때문에 얼마 못 가기는 했지만 포장마차 사장도 해 봤다. 공사판 잡부와 시골다방 DJ, 홍합공장 노동자, 여대 앞에서 브로치 팔기 등도 이 시절 그가 거친 직업들이다.

이렇게 한동안 바람처럼 떠돌던 그는, 문득 자기가 경험한 것들을 소설로 풀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소설을 쓰려니 막막했던지라. 그간 벌어놨던 돈으로 복학을 했다. 그리고는 전공은 하나도 안 듣고 대신 다른 과의 `문학`자가 들어간 과목은 모두 다 골라 들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자는 욕심에 문학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맨날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그 이론에 맞게 습작하는 데 열중하다, 흥미를 잃고 `쓰고 싶은 대로 쓰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문학은 가장 비문학적인 데서 나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단 한가지 생각. 바다에 대한 생각만을 간직하고 글을 써나가기로 했다. 한창훈은 바다를 좋아한다. 바다에서 평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산은 높낮이가 너무 뚜렷해서 싫다. 또 산은 끝까지 올라가 모든 것을 발 아래 놓아야 직성이 풀리고 그래야만 내려온다. 그러나 바다는 파도가 치면 똑같이 치고, 잔잔해지면 똑같이 잔잔해진다. 한창훈은 바다의 이 `어마어마한 공평함`을 좋아한다.

대학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부인 최은숙도 문인이다. 지금은 중학교 국어교사로 있지만,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1996년에『집 비운 사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원고 쓰고, 이웃과 뒤섞이고, 낚시와 채집을 하며 지내고 있다.

1992
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단편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바다를 배경으로 둔 변방의 삶을 소설로 써왔다.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나는 여기가 좋다』, 장편소설 『홍합』, 『열여섯의 섬』,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꽃의 나라』, 산문집 『한창훈의 향연』 등을 썼다

그는 잘 생겼다. 사진을 보았는데, 사연 많게 생긴 백발의 중년 사내다. 부인도 자식새끼도 발 뻗고 누울 내 집도 훌훌 털고 나올 것 같은, 애당초 만들지도 않았을 것 같은, 여튼날 얽메놓을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소라고 말하는 듯한 저 얼굴. 저자 소개를 찾아 읽다 부인이 중학교 교사란 말에 살짝 배신감 느꼈다. 그러나 다행이다. 교사 아내란 소설쓰기와 채집과 낚시로 생계를 이어가는 남자에게 꼭 필요한 동반자일 것이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고 그는 말할 수 있는 내공이 있다. 그곳에서 생계형 낚시를 하기 때문이고, 맺힌 것을 풀어내는 바다를 알고 사랑하여 나의 책상 앞까지 그 바다를 끌어다 준 것이다. 열렬히 알고 좋아하여 남에게 권할 수 있을 만큼의 뭔가를 내 안에 갖게 되는 때, 그런 때 쓴 글로 한창훈의 이 책은 물오른 참돔만큼 실하고, 감칠맛 또한 뛰어나다. 그렇다.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물고기든, 낚시질이든, 소설이든 간에.

II.             내 마음에 찾아온 글

저는 당신이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늘 바다를 동경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 아는 것은 다르다고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쓴 이유입니다. 깊숙이 친해지게 되는 것, 어린아이처럼 깔깔대게 하는 것, 이윽고 뒤엉킨 매듭을 하나나 매만지게 되는 것, 머물다보면 스스로 그러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산은 풀어진 것을 맺게 하지만 바다는 맺힌 것을 풀어내게 하거든요. (책머리에)

맞다, 맞다! 바다의 선물에서도 그렇듯이, 바다는 바리바리 싸온 짐들을 다 풀어놓기도 전에 몸과 마음이 풀어지고 쉬어지게 되는 곳이다. 고시공부 바다에서 하는 것 봤나. 깊숙한 산 속 절로 가야지.

제 기억 속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사람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 때문에 죽어간 해양생물들, 미안합니다. 하필이면 저는 먹어야 하는 입을 가지고 태어났지 뭡니까.

잠깐 창 밖을 내다보니 바다는 지금도 저렇게 출렁이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저 깊고 푸른 바다를 보냅니다. (책머리에)

구아닌이라는, 색소의 일종으로 회를 먹을 때는 칼로 긁어내야 한다. 호박잎으로 긁기도 한다. 소화가 안되기 때문. 힘줄도 걷어내야 한다. 익힐 때는 상관없다. 지혈작용도 하는 구아닌은 모조진주나 매니큐어, 립스틱에 쓰인다. 키스는 갈치비늘을 주고받는 행위의 또 다른 이름이다. (p19)

추석이 다가올 무렵이었는데 우리 둘은 며칠 째 똥깡구(한 마리도 못 잡는 것을 이르는 섬의 말) 상태였다.(p27)

어감이 귀여워 어디든 써먹어야겠다. ‘이놈의 똥깡구 같은 계절!’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았서도 똥깡구만 날렸다뭐 이렇게라도?

우연일까? 깜짝 놀란 할아버지가 부리나케 삼치 떼를 몰아주었을까? 다음 날도 마을 배들이 우리만 따라다녀 난감했지만 덕분에 제사는 해마다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제사 때만 되면 마누라한테 한 소리 들은 할아버지가 바닷속에서 낑낑대며 삼치 몰아주고 있는 장면이 떠올라 나는 죄송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p30)

바닷가를 걷다가 늙은 부부 두 눈만 내놓고 불 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겨울 한복판 속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p45)

가난과 풍요를 분별없이 공유하는 것, 그게 공동체이다.

공동체의 심성은 옆집이 마음에 걸려 차마 고기를 굽지 못했던 것에서 나온다. 먹을 것 없는데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난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 공동체는 촌스러운 것도 고리타분한 것도 아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인성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p58-59)

나에게 가난이든 풍요이든 공유할 누군가가, 한집서 밥을 먹는 식구들을 제외하고, 있긴 한가? 이웃은 커녕, 이제는 영 남처럼 전화로 안부나 주고받는 나의 부모나 형제와도 그리하진 않는다는 사실이 가슴을 친다. 그래서, 가슴에 모래처럼 쌓이지 않는 무언가만 남아 있구나. 나는 이렇게 삭막하게 세상을 살고 있구나. 그러면서 또 나만 빼고 뭔가 잘못된 세상을, 누군가를 탓하고 있구나.

문어의 독특한 버릇 중 하나는 붉은 색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것이다. 문어단지가 붉은 색인 이유다. 문어 키우는 양식장에 가서 붉은 천을 늘여놓으면 슬금슬금 다가온다. 이 정도니 공안검사가 봤다면 먹지 않고 모두 구속했을 것이다.(p68)

문어는 제 다리를 뜯어먹고 산다.   

문어 빨판은 1200개 정도이다. 이 녀석은 자신의 다리를 잘라먹는다고 한다. 배가 너무 고프거나 저가 먹어봐도 너무 맛있거나, 둘 중 하나는 확실하다.(p70)

모름지기 애비란 먹을 것을 물어오는 존재이다.(p84)

죽인 것은 전부 먹자가 내가 세워둔 또 하나의 원칙이다. 이를테면 노래미는 어린 거라도 바늘을 잘 삼킨다. 이러면 놔주어도 죽는다. 죽었으니 가져와서 먹는다. 죽였으니 가져와서 먹는다. 그만큼 다른 것을 덜 먹게 된다. 화류계를 오랫동안 떠돌았던 한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꺾었으면 버리지나 마라.”(p109)

앤 드루얀에게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며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이 그의 책 <코스모스>에서 아내에게 쓴 헌사.(p111)

삼춘, 병어 잡서. 오늘 들어와 물이 좋아.”

아주머니 말대로 병어 몇 마리가 반짝거리며 누워 있었다. 나와 친구는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다시 병어회. 비 내리는 포장마차, 실연당한 친구, 완벽한 조합이었다.(p145)

대양은 한없이 넓어 배는 가고 가고 또 간 다음 더 갔다. 넓은 바다는 역시나 사는 것들도 체급이 틀렸다. 돌고래 떼가 공중 2회전을 하며 멀어지자 혹등고래가 물을 뿜으며 느릿느릿 지나갔다.

우연히 선수로 나는 푸른 수면 위에서 은색 점이 마구 찍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물수제비를 뜨는 것 같은 그것은 날치가 부력을 얻기 위해 꼬리날개로 수면을 박차는 모습이었다. 배가 지나가자 놀란 녀석들이 부리나케 솟구쳐올랐던 것이다. 옆으로 휘며 곧바로 처박힌 놈들도 있었지만 어떤 녀석들은 한참 동안 날렵하고 우아한 비행을 했다. 햇살에 은색 날개가 번쩍였다.

나는 감회에 젖어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녀석들은 여전히 수면 아래의 영역에 만족 못 하고 경계 너머를 꿈꾸고 있었다. (p158-159)

그 시절, 집집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먹을 것 준비하느라 모든 시간을 보냈다. 파래무침 하나를 해도 바다에 나가 뜯고 잡물 골라 씻어내고 다듬는 데에만 종일 걸렸다. 꼼지락 낑낑 꼬무락 끙끙. 만들어놓으면 자식 손자들은 오 분만에 먹어 치웠다.

그러면서 당신들은 입을 아꼈다. 대충 때우고 다음 끼니를 시작할 뿐이었다

어느 날인가 나이든 여인네들이 둘러앉아 미역국 먹는 것을 보게 됐다. 세수를 해도 될 정도로 큰 양푼에 국을 가득 담아먹는데 어떻게 저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조용히 그러고 있어서 그것은 식사라기보다는 음식에 대한 샤먼적인 제의祭儀 같았다.(p222-223)

 

이면우 시인의 시 <봄 중의 봄>

아침으로 한번은 꼭 미역국을 먹자고

여편네와 거듭 다짐했다

미역이 일하는 사람의 피를 맑게 한다더라

고래도 새끼를 배면

깊은 바다 미역 숲부터 보아둔다더라


(…) 공장 잔업으로 더 늦게 들어오는 여편네가

스뎅양푼 가득 맑은 물에

배배 꼬인 미역 몇 오라기 담그고

새벽이면 더 멀리 가야 하는 내가

먼저 촉수 낮은 부엌등을 켰다(…)

 

한줌 마른 미역이 깊은 밤 한잠 새

맑은 꿈 속 뒤채며 몸을 풀고

이 아침 양푼 가득 파랗게 되살아나는 일

이른 봄 우리네 사는 일의

어김없는 물오름이여(…)

쾌조의 봄이여

(p225)

 

참돔은 바다의 미녀, 여왕, 왕자, 이렇게 별칭도 엄지손가락 급이다. 붉은 바탕에 은빛 점이 있어 예쁘고 힘도 세다. …

그래도 여러 가지 매력을 다 가지고 있다. 품격이 있어야 참이 붙는다. (p231)

 

며칠 전 감성돔 낚시를 갔다. 첫 추위가 기승을 부리다가 잠시 누그러질 때였다. 겨울바다의 푸른 색은 처연하기가 이를 데 없어, 이별의 아픔을 오래 겪고 난 화가의 수채화 같다. 두보의 시처럼 물이 푸르니 갈매기는 더욱 희다. 하지만 오래 감상하고 있을 것이 못 된다. 풍경과 저녁밥은 별개의 문제이다. (아 글쎄 이래서 나는 생계형이라는 말이다).

 

사랑해서 맺어졌다면 이제는 싸울 차례다. 부부관계란 처음에는 사내가, 나중에는 아낙이 큰소리치는 과정을 말한다. 그래서 섬 사내들, 싸움이 커지겠다 싶으면 배 몰고 바다로 나가버린다. 아내도 배 몰고 나가는 것은 용납한다. 어부에게 있어서 바다란 무언가를 벌어들이는 대상이다. 싸움은 사그라지고 생선이 생긴다. (p.337)

 

모양은 사람을 닮았다. 역어는 바닷속 인어로서 눈썹 귀 입 코 손 손톱 머리를 다 갖추고 있으며 살갗이 옥처럼 희고 비늘이 없고 꼬리가 가늘다. <술이기>에 이르기를 교인은 물고기와 같으나 물속에서 옷을 버리지 않고 곧잘 우는데 눈물이 구슬이 된다고 했다(자산어보 중, p349)

 

이곳(거문도)에서 인어를 가리키는 말이 신지께, 신지끼, 흔지끼이다.(p351)

 

다 좋다. 고마운 일 아닌가. 그렇다면 한 번쯤 나타나 식사대접도 좀 받고,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저런 연유로 사람도 아니고 물고기도 아닌 상태로 살고 있으며, 제발 바다에 기름 좀 흘리지 말라고 야단도 치고 하면 좋으련만 아직 그런 존재는 없었다. 맞대면은 고사하고 흑백 스냅 사진 하나 없다.

 

정말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나는 있다는 쪽에 한 표 건다. 오래된 나의 추억에는 신지끼로 추측될만한, 아름다운 소녀가 한 명 있었던 것이다. (p355)

 

 

III. 저자의 입장에서 다시

 

차례

책머리에

바다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갈치 군대어            내가 왜 육지로 시집왔을까 탄식하는 맛

                          그렇게 큰 녀석들은 누가 다 먹었을까?

삼치 망어                  아홉 가지 중에 가장 먼저 손 가는 맛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모자반 해조               해장국을 위하여 술 마시는 맛

                          좁은 땅에서 이렇게 산다섬마을 풍경

숭어 치어                   고관대작 부럽지 않은 서민의 맛

                          생계형 낚시

문어 장어                   불쑥 찾아오는 알토란 같은 맛

                          문어는 제 다리를 뜯어먹고 산다

                          쉽게 따라 하는 낙지 잡기 교실

고등어 벽문어            뻔히 아는 것에 되치기당하는 맛

군소 굴명충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먹는 맛

                                 , 만지지 마!

볼락 박순어               밤바다에서 꽃송이를 낚아내는 짜릿한 맛

                          숟가락으로 생선먹기

                          확률에 대해서 생각하다

홍합 담채                   어떤 사내라도 한마디씩 하고 먹는 맛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곳

노래미 이어               헤어진 사랑보다 더 생각나는 맛

                          눈알 모으는 아빠

병어 편어                   맨 처음으로 돌아오는 맛

                          항구에서 기력을 얻다

날치 비어                   순간 비상하는 것이 지상에 남겨놓은 맛

                          산갈치

김 해태                     눈으로 먼저 먹는 맛

                          김밥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농어 노어                  나 먹었다, 자랑하는 맛

                          뒷 이야기

붕장어 해대리            인생 안 풀릴 때 멀리 보고 먹는 맛

                          자주 접하는 장어 구분법

고둥 라                     철수와 영희의 소꿉놀이 같은 맛

                          골뱅이와 피뿔고둥

거북손 오봉호            모든 양념을 물리치는 맛

미역 해대                   어김없는 물오름의 맛

고향이 있어도 가지 못했다섬의 여자들 1

                          무슨 벌을 받아 이 먼 섬에 태어났는가섬의 여자들 2

참돔 강항어               아아, 낚시 오길 정말 잘했어, 스스로 대견스러운 맛

소라 검성라               여러 가지를 처음으로 본 맛

                          섬의 에로티시즘

돌돔 골도어               단 하나를 위해 종일 앉아있는 맛

학꽁치 침어               바다가 맘먹고 퍼주는 맛

                          서민들의 밥상을 사수하라꽁치

감성동 흑어               보약 한재로 치는 맛

                          펭귄이 굶고 있어요        

성게 율구합               날카로움과 부드러움 그 극단의 맛

우럭 검어                세 식구 맞대고 꼬리뼈까지 쭉쭉 빨아먹는 맛

검복 검돈                  기사회생을 노리며 먹는 맛

                                 노팬티된 사연

                          복국집 아주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톳 토의채                  때를 기다리는 가난한 백성의 맛

가자미 소접              계절을 씹는 맛

                          섬마을 사랑

해삼 해삼                  약통을 통째로 씹는 맛

인어 인어                  사람도 아닌 것이, 몰고기도 아닌 것이

첫사랑

단편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part II  - 뭐라 말 못 할 사랑 > 중에서

 

‘~한 맛으로 설명되는 주제어(). 그리고 못 다한 뒷이야기가 하나 둘 쯤 붙는 구조. 자연스럽고 리드미컬하고 맛깔나다. 이렇게 써야 하고, 이렇게 갖다 붙여야 한다. 통째로 베낄 수는 없겠고 맘에는 꼭 들고. 부럽기도 하고 아, 모르겠다. 이런 책이 있는데 나까지 쓴다고 깝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가, 국수 이야기는 누가 이렇게 안 해줬잖아. 내가 해보지 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경탄과 좌절은 한 끝발 차로 따라붙기가 쉬워서, 주저앉을 핑계에 밝은 소심한 영혼은 늘 가슴에 방패를 둘러야 한다.

그는 이 책을 신문연재 칼럼을 쓰다 책으로 엮게 되었다 한다. 그런데도 뭐랄까. 그냥 한 주 한 주 마감을 때우느라 따로 쓴 칼럼들을 이어 붙인 책 같지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질을 유지하면서, 숭늉 마시듯 미역국 마시듯 훌쩍 훌쩍 시원하게 넘기는 글맛이 살아있고 글쓴이의 생활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글.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에필로그다. 에필로그가 없다. 책 머리의 글이 충분히 작가의 생각을 잘 담아내긴 했지만, 나는 바다를 이만큼 잘 알고 밥상머리 하나 가득 차려낼 줄 아는 사람에게 뭔가 더 듣고 싶었다. 산전수전 다 겪고 바다로 돌아온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혜안을 함부로 자랑질하지 않기 위함이었을까? 여하간 나는 한창훈이 더 궁금해졌다. 바다가 더 맛나졌다. 병어 한 마리의 온전한 살신성인만큼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의 위로를 통해 풍부해지는 삶을 엮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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