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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31일 07시 43분 등록
걷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이상옥 옮김/ 솔 출판사


1. 저자에 대하여
1) 프로스트의 시의 세계
20세기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등 서정성 깊은 시를 통해 한국에서도 낯익은 시인이다.

1912년 문학적 생애에 모든 것을 걸고 뉴햄프셔를 떠나 영국으로 간 프로스트는, 마침내 1913년 런던에서 첫 시집 『소년이 의지(A Boys's Will)』의 출판으로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당시 런던에 있던 파운드(Ezra Pound)에 의해 “매우 미국적인(Vurry Amur'k'n)" 시인으로 평가를 받은 프로스트는 그 이듬해 『보스턴 북쪽(North of Boston)』으로 일약 유명한 시인이 되어 금의환향하였고, 1962년 『개간지에서(In the Clearing)』에 이르기까지 10여권의 잇따른 시집의 출판으로 그이 명성은 점점 커졌다.
44개 대학에서 명예학위, 4회의 Puritzer상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축시 낭독 등이 상징하듯, 명실상부한 미국의 국민시인이 되었다.

프로스트는 미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소위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에 속할 뿐만 아니라, 양키의 본고장이며 미국 문학의 근원인 뉴잉글랜드의 전통을 계승한 시인으로서, 가깝게는 19세기 뉴잉글랜드 르네상스, 즉 에머슨(Ralph Waldo Emerson)과 소로우(Hery David Thoreau)로 상징되는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의 전통을 상속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프로스트는 뉴잉글랜드의 농촌의 일상적 언어를 사용하고 전통적인 서정시와 설화시를 선호하였다. 자연시인으로서 그는 미국의 에머슨과 소로우, 영국의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등 낭만적 작가들과 유사점이 많다. 더구나 프로스트는 모더니즘으로 상징되는 당대의 혁명적 시의 원리들을 거절하고, 대신 “새로운 옛 방법(The old-fashioned way to be new)”을 선택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옛 방법”이란 주로 낭만주의 작가들처럼 자연과 인간의 대화에 주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자연은 유추와 상징의 보고, 즉 시적 언어의 원천이다. 프로스트의 자연시와 19세기 낭만시 간의 표면적 유사점은 20세기의 도시적 감각에 익숙한 비평가나 독자에게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프로스트의 자연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옛 방법”의 답습에 따른 당연한 반응이지만, 프로스트가 강조하는 옛것의 “새로운” 면을 ‘새롭게’ 보지 않는 문화적 타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분명 20세기 도시 문명은 인간과 자연의 대화보다는 인간과 사회의 대화를 요구한다. 만약 프로스트의 잔연시가 인간과 사회의 대화를 외면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대화에 천착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시대착오적 낡은 시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프로스트의 관심은 20세기적 감각을 반영한다. 에머슨, 소로우, 워즈워스의 자연과 달리 프로스트의 자연은 도덕적 확신이 아닌 불확실성의 상징적 언어다. 따라서 그의 시는, 표면적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계를 천착한다. 프로스트의 숲은 어둡고, 깊으며, 비합리적이다. 프로스트의 농촌 풍경은 활량하고, 혼돈스럽다. 프로스트의 세계는 무정하며, 이 곳에 거주하는 인간은 버림받아 혼자이고, 도와주는 자 없어 당혹스럽다. 20세기의 나는 사회적 집단에 속하면서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실존의 존재다. “.... 나는 나의집에 혼자였다/ .... 나는 나의 인생에서 혼자였다/ ... 나에게는 신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프로스트의 자연시는 자연에서 사회적 실존에 적합한 언어를 찾는다. 「가지 않은 길」의 화자가 가지 못해 아쉬워하는 것은 “노란 숲 속의 두 길”이 아니다. 숲속의 두 길은 오늘 한 길을 가보고, 다음 기회에 돌아와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길은 길로 뻗는 것이기에” 되돌아와 다시 갈 수 없는 길은 ‘혼자’ ‘한번밖에 갈 수 없는 인생길이다. 프로스트에게 자연에 있는 “숲 속의 두 길”은 사회에 있는 ‘인생의 갈림길’의 상징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 시를 단순한 서정으로 읽을 수 없는 이유다.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는 표면적으로 는 숲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미적 감각을 칭송하는 시다. 그러나 결론은 숲의 유혹을 뿌리치고 시회적 약속으로의 회귀를 강조한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자기 전 갈 길이 멀다 / 자기 전 갈 길이 멀다” 프로스트의 자연시는 자연과 사회를 오가는 특징을 보인다. 때로는 자연으로 나가서 아름다움을 즐기나 반드시 지 또는 사회로 돌아온다. 아름다운 숲의 유혹에 ‘깊이’ 빠져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삶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숲은 ‘집’이나 ‘사회’가 안고 있는 미적 가치의 부재를 환기시키는 시적 언어로 존재한다.
프로스트는 서정의 시대가 지난 하이테크의 시대에, 실존의 한 복판에서 자연시를 쓰면서 낭만시를 쓰지 않는 법을 알고 있다. 프로스트는 낭만시의 ‘옛 방법’을 상속하고 있으나 낭만시가 아닌 ‘새로운’ 자연시를 쓴다. 프로스트의 자연시는 사회와의 대화의 필요성과 자연과의 대화 욕망 간의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뿌리가 ‘옛 방법’, 즉 자연과의 대화에 있기 때문이다.
프로스트는 시의 뿌리가 본질적으로 자연과 전통에 있다고 믿는다. 산업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시를 쓰는 이유다. 엘리엇이나 파운드로 상징되는 모더니즘이 자연시의 전통을 위협하고 있을 때, ‘옛 방법’의 혁명적 파기가 아닌, 고쳐 쓰기를 통해서, 프로스트가 ‘숲 속의 두 길’에서 모더니즘의 길이 아닌 자연시의 길을 택한 것은 시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자기 보호 본능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로스트의 자연시는 일종의 일탈이다. 소로우는 『월든(Walden)』의 「결론(Conclusion)」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표현이 충분히 일탈적인 것이 못되지 않을까 한느 것이다. 내가 확신하고 있는 진리를 알맞게 표현할 수 있도록 나의 일상적인 경험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 멀리 나아가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일탈! 그것은 당신이 어떤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였다. 일탈은 일상적인 삶의 경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소로우는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진리’의 언어를 탐색하기 위하여 콩코드의 일상에서 일탈하여 월든의 자연으로 후퇴하였다. 소로우의 『월든』은 이러한 일탈의 탐험 기록이다. 프로스트의 자연시 또한 이와 같다. 프로스트가 뉴햄프셔의 데리(Derry) 농장에서 농부시인의 신화에 도전한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산업사회의 여러 울타라, ‘일상적인 경험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 그가 확신하고 있던 시적 ‘진리’의 언어를 탐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프로스트의 자연시는 공간적 일탈 뿐만 아니라, 시간적 일탈, 상상적 일탈과 언어적 일탈 등 일탈의 여러 양상을 포괄한다.

어느 대담에서 프로스트는 “나는 자연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속에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시는 단 두 편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단 두 편.”(Shon & Tyre 3)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자연은 워즈워스나 롱펠오의 낭만적 자연이 아니라, 피를 갈망하는 실존의 무대이기도 하다. 프로스트는 실존의 땅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며, 시는 이런 사랑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도형이다. 프로스트에게 시는 실존의 혼란에 대항하여 만든 하나의 도형이다.

모더니즘의 주류 시인들과 프로스트는 분명 차별성이 있다. 가강 큰 차별성이란 엘리트 시인과 국민시인과의 차별성이다. “엘리엇의 독자는 누구라도 프로스트의 독자보다 더 시의 난해성을 예상(그리고 존경)하게 된다. 그리고 파운드나 예이츠의 시의 어떤 구절이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때는 작가의 잘못이 아니라 독자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프로스트는 대중들 앞에 많이 등장하고 면담에서 자기를 투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시인 상像으로 인하여 그에게서는 큰 난해성이 예상되지 않고, 그 앞에서 어떤 독자도 거의 틀림없이 무력감을 느끼지 않는다. 프로스트의 시는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프로스트의 시가 이해되지 않으면 그것은 프로스트 자신의 잘못이고, 독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인식이 하나의 신화가 된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나는 모든 종류와 부류를 위한 독자에게 낯익은 자연시를 썼기 때문에 생긴 신화일 뿐이다. 그의 신의 표면적 단순성 밑의 내면적 복잡성이 프로스트 자연시의 또 다른 차별적 특성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자연시:그 일탈의 미학』,신재실 p5-12 참고.
소로우는 『월든(Walden)』을 보고 이 책을 쓰게되었다고 신재실은 밝히고 있듯이 윌든의 인용이 많다. 프로스트를 알기 위해 월든을 알아야 하겠지만 거기까지는 하지 못했다. 신재실의 프로스트의 시에 관한 정리 중에 월든 부분은 일부 제외했다.)

2) 프로스트의 일생
1874 3월 26일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 부친이 결핵으로 사망한 열한 살까지 그곳에서 거주했다.
부친 윌리엄 프로스코트 프로스트는 뉴잉글랜드에 도착해 살아온 청교도 집안의 후예로서 하바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 남북전쟁 후에 남부의 정치적 노선에 공감한 나머지 뉴잉글랜드를 떠나고 말았다. 펜실바니아 주에서 일년 간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결혼한 그는 이내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모친 이사벨 무디는 스코틀랜드에서 이민해 온 여인으로 오하이오 주에서 교육받은 후 펜실베니아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던 중 결혼했다. 그녀는 스스로 시를 쓰기도 했으며 스코틀랜드의 민족시인을 기리기 위해 로버트 번즈를 기리기 위해서 아들을 로버트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설이 전한다.
부친이 자기의 유해를 고향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에 로버트와 여동생 지니는 모친과 함께 대륙을 건너 동부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장례 후 서부로 돌아갈 자금이 달렸던 프로스트 일가는 뉴햄프셔 주의 세일럼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고 프로스트 부인은 국민학교에서 교사직을 얻었다.

학교 공부를 싫어했던 프로스트는 열두살 이 될 때까지 돇를 별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4년 동안 그는 공부에 열중하였고 1892년의 졸업식에서는 고별사를 읽었으며 학년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어있었다. 그는 명문 다트머스 대학에 입학했지만, 이미 배울 만큼 배웠다고 자처하면서 이내 자퇴하고 말았다. 그 후 몇 년간 그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 여러 공장에서 일했고, 신문지가 노릇을 했는가 하면,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한편 틈틈이 시를 써오던 그는 1894년에 「나의 나비 My Butterfly」라는 시가 저명한 잡지에 실리자 이를 자축하기 위해서 여섯 편의 시를 『황혼Twilight』이라는 시집으로 묶어 2부 한정판으로 자비 출판하기도 하였다.

1895년에 엘리너 화이트라는 여인과 결혼한 그는 모친이 경영하던 소규모 사립학교에서 이 년에 동안 가르친 후 대학 교원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하버드 대학에서 이년 간 수학했다. 그러나 그는 학문하는 분위가가 자기의 천성에 맞지 않음을 알고 양계업을 시작했다. 1900년에 폐결핵 진단을 받자 그는 뉴햄프셔 주의 작은 농장으로 옮겨 양계업을 계속했지만 어려움을 겪는다. 이래저래 심신이 피곤해져 있던 그는 몰래 시를 쓰는 일에 탐닉하여 위안을 찾고 있었다. 이따금 그의 시가 발표되기는 했지만 시를 써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웃에 있는 학교에서 교직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1912년은 그의 생활에서 대전환점을 이루는 해였다. 이해에 그는 뉴햄프셔 농장을 판 후 아내와 네 자녀를 데리고 영국으로 건너갔는데 이는 시 쓰기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버킹엄셔 주의 어느 전셋집에 정착한 그가 이듬해 첫 서정시집 『소년의 의지』를 발간하는 데 성공하였고, 1914년 발간된 극적 대화집 『보스턴 북쪽』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에 용기를 얻은 프로스트는 1915년 솔가하여 미국으로 돌아왔고, 이 두권의 시집이 미국에서 재발행되자 『보스턴 북쪽』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프로스트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려 하지 않고 뉴햄프셔의 어느 작은 농장으로 숨어버렸지만 그의 은둔은 오래 계속될 수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강연과 시 낭독을 해달라는 초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그는 머지 않아 미국 전역을 돌며 대중 앞에 서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학구적 분위기를 싫어하던 그였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여러 대학으로부터 캠퍼스 상주 시인이 되어 달라는 초대를 받았고, 학기 혹은 학년 단위로 앰허스트, 미시간, 하버드, 다트머스같은 대학에 머물기도 했다. 이런 분주한 공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학 때면 으레 파종과 수학을 위해 농장으로 돌아가곤 했다.

한편 근의 시인으로서의 성가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1916년에 그는 미국 문학예술원의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30년에는 미국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두 대되었다. 그는 또 네 차례나 퓰리처상을 받았고, 75회 생일(1949)과 85회 생일(1959)년에는 미국 상원이 그에게 공식적인 결의를 보내기도 했다. 다트머스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사학위조차 받지 못한 그였지만 일생 동안 40여개의 미국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1957년에는 영국으로 되돌아가서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로부터 명예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러므로 163년 1월 29일에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존경받고 가장 애독되는 시인이 되어 있었다.

프로스트는 긴 일생동안 수백 편의 시를 썼고 오늘 날 그 많은 작품들은 600여 쪽에 달하는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걷지 않은 길』(옮긴이 이상옥, 솔출판사)의 ‘로버트 프로스트의 삶과 문학’ 참조 p.165-168)

3) 연보
1974 2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 열한살까지 거주
1885 부친 사암 후 프로스트 일가는 뉴잉글래드로 이주, 뉴햄프셔에 정착함. 모친은 교사 생활을 계속
1892 최우수 학생으로 고등학교 졸업, 명문 다트머스 대학에 입학했으나 이내 자퇴, 공장 노동자 또는 기자로 전전하며 시를 쓰기 시작.
1894 문학 주간지 <뉴욕 인디펜던트>에 「나의 나비」를 발표하고 첫 고료를 받음. 그동안 쓴 시들을 묶어 단 2부의 시집을 발행하여 부인 엘리노어와 각각 한권씩 가짐.
1895 12월 19일 엘러나 화이트와 결혼. 로렌스의 Daily american and Sentinel의 기자오 활동. 교사로 정착하여 모친이 경영하던 메슈 사립학교에서 가르침. 하버드에서 특별생으로 수학.
1896 9워 f25일 아들 엘리엇(Eliot) 출생.
1897 9월 하버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 엘리너, 엘리엇 그리고 장모와 함께 케임브리지의 아파트오 이사.
1899 자신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건강 문제로 3월 31일 학업을 포기.
1899 딸 레슬리(Lesley) 출생. 조부의 재정적 도움으로 양계 시작.
1900 아들 엘리엇 사망. 결핵 진단을 받고 뉴햄프셔의 웨스트 데리 근처의 농장에서 양계업에 종사. 어머니 암으로 사망.
1901 7월 10일 조부 사망. 500달러의 연금 수령권, 10년간의 데리 농장 사용권, 10년 후의 농장 소유권을 유증 받음.
1902 5월 27일 아들 캐럴(Carol) 출생.
1903 7월 27일 딸 어마(Ima) 출생.
1905 5월 28일 딸 머조리(Marjorie) 출생.
1906 폐렴으로 죽을 고비를 넘김. 시 쓰기와 양계업으로는 생계가 어렵자 데리의 핑커튼 아카데미(Pinkerton Academy)에서 전임으로 영어를 가르침.
1907 6월 18일 딸 엘리너 베티나(Elinor Bettina) 출생. 3일 후 죽음.
1911 뉴햄프셔 플리머스의 스테이트 노멀 스쿨(State Normal School)에서 교육과 심리학 코스를 가르침. 11월 대리 농장을 팔다.
1912 시 쓰기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고 솔가하여 영국으로 이주. 런던 북쪽 20마일 지점에 시골집을 임대하여 시작 전념.
1913 4월 1일 첫 시집 『소년의 의지A Boy's Will』출간. 파운드(Pounf)의 호평을 받고, 파운드를 통해 Hilda Doolittle, Ford Maddos Ford, May sinclair, Emest Rhys, 그리고 Willian Butler Yeats를 만남. T. E. Hulme과 Yeats의 집에서 매주 모임에 참가. 수필가 Edward Thomas와 친밀한 교분을 맺음.
1914 2월『보스턴의 북쪽 North of Boston』, 4월 『소년의 의지』출판. 출간하자 인기가 급상승
1915 6월 미국의 뉴햄프셔 프랜코니아로 금의환향함. 다트머스 대학의 상주 시인으로 초빙됨. 그 후 여러 대학에서 상주 시인으로 재직.
1916 『산골짜기 Mountain Interval』출간. 미국 문학예술원 회원으로 피선.
1919 버먼트 주의 농장 구입. 토지와 작물 재배에 대한 열정이 여생 동안 그를 떠나지 않음.대학 재직중에 방학을 이용하여 틈틈히 농장에 가서 파종,수확에 몰두했다.
1923 3월 15일 『시선집Selected Poems』, 11월 15일『뉴햄프셔 New Hampshire』출간. 퓰리처상 수상. 이후 이 상을 세차례나 더 받음.
1928 런던에서 처음으로 엘리엇(T.S. Eliot)를 만남. 『서녘으로 흐르는 개울 West-Running Brook』출간.
1930 미국 아카데미 회원으로 피선
1931 시집 『모은 시들』출판
1934 딸 머조리 사망.
1936 『저 너머 산맥 A Further Range』출판. 하버드 대학의 찰스 노튼 엘리엇 기념 시학 교수로 초빙받음. 시집 『뒤따른 방랑』출판.
1938 부인 엘리너 화이트 사망.
1940 10월 9일 아들 캐럴 자살.
1942 『표지 나무 A Witness Tree』출판.
1945 『이성의 가면 A Masque of Reason』출판
1947 『조팝나무 숲Steeple Bush』『자비의 가면A Masque of Mercy』출판
1949 『로버스 프로스트의 시전집』간행. 미국 상원에서 75회 탄신 축하 결의안 통과.
1955 다트머스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 수여.
1957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음. 엘리엇, 맥리시, 헤밍웨이와 함께 반역죄로 기소된 파운드(Ezra Pound) 구명 운동에 적극 참여.
1959 믹구 상원에서 85회 찬신 축하 결의안 통과.
1961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전에 비공식 계관 시인으로 참석
1962 3월 26일 『개간지에서 In the Clearing』출판. 8월 말 케네디 대통령 문화 특사로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담장고치기 Mending Wall」을 읽고,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와의 회담에서 양국간의 선의의 경쟁을 역설.
1963 1월 29일 88세의 나이에 폐색전으로 별세.

2. 공감과 인용

얼음을 녹이는 바람에게 To the Thawing Wind

Come with rain, O loud sohthwester!
Bring the singer, bring the nester;
Give the buried flower a dream;
Make the settled snowbank steam;
Find the brown beneath the white;
But whate'er you do tonight,
Bathe my winth, make it flow,
Melt it a the ice will go;
Melt the glass and leave the sticks
Like a hermit's crucifix;
Burst into my narrow stall;
Swing the picture on the wall;
Run the rattling pages o'er;
Scatter poems on the floor;
Turn the poet out of door.
(p.23)

오, 오늘은 이 꽃이나 즐기게 해주소서.
아직도 너무 멀러 불확실한 수확일랑
잊어저리고 오늘은 이곳에서 한해가 소생하는 광경에 빠지게 해주소서.
오, 하얗게 꽃핀 과수원에서 즐겁게 해주소서.
낮은 더없이 아름답고, 밤은 유령 같은 곳,
나무랄 데 없는 과수 주위를 붕붕 나는 무리들,
그 행복한 벌들 속에서 행복하게 해주소서.
(p.24 「봄기도」중에서)


We raised a simple prayer
Before we left the spot,
That in the general moving
That place might be forgot;
Or if not all so favored,
Obtain such grace of hours,
The none should mow the grass there
While so confused with flowers.
(p.29 「Rose Pogonias」중에서)

숲가에서 들여오는 유일한 소리,
내 긴 낫이 땅을 향해 속삭이고 있었네.
(p33. 「풀 베기」 중에서)

아, 사물의 추이推移에 순응하거나,
점잖게 이성 앞에 굴복하거나,
사랑이나 계절의 종말을
몸 굽혀 받아들이는 일이
인간의 마음에게
반역이 아니었던 적 있었던가.
(p44. 「주저하기」중에서)

구름 그림자

산들바람이 펼쳐진 시집을 찾아내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어요.
봄을 노래한 시를 찾는다는 거예요.
나는 바람에게 “그런 시는 없다!”고 일러주려 했지요.

누가 봄의 시 따위를 썼을까 보냐고 했지요.
대답을 하지 않는 산들바람,
하지만 얼굴에는 구름 그림자가 스쳤어요
나 때문에 그 시를 놓칠까 두려웠던 거지요.
(p.52)

집에 대한 두려움

그들 내외는 이런 버릇을 익혔다네.
언제나 밤이 되어 먼 곳에서
켜지지 않는 등, 식어버린 난로를 찾아
고적한 집으로 돌아올 때면
자물쇠와 열쇠 소리 요란히 냈지.
혹시 집 안에 있을지 모르는 것들에게
겁을 먹고 도망칠 짬을 주려 했지.
집 밖의 어둠보다 집 안의 어둠이 더 무서워
그들을 등잔불을 켜기 전에
문부터 활짝 열어두는 버릇을 익혔다네.
(p.60)

해안을 절벽이 받치고 있는 것이요
그 절벽을 대륙이 받치고 있는 것이었다.
어두운 의도를 품은 밤이 다가오는 듯 했다.
그저 하룻밤이 아니라 한 시대의 밤이었다.
(p.74 「어느 날 태평양 해안에서」중에서)

쓰려져 있기

비가 바람에게 말했다.
“너는 밀어 붙여라. 나는 때릴 테니.”
둘이서 무정하게 꽃밭을 후려치니
꽃들은 무릎을 굻고,
죽지는 않았지만 쓰려져 있다.
꽃들의 심경을 알 듯도 하다.

Lodged

The rain the wind said,
'You push and I'll pelt.'
They so smote the garden bed
That the flowers actually knelt,
and lay lodged - though not dead.
I know how the flowers felt.
(p.76)
* 이 시의 일부가 영화 <거룩한 계보>의 첫장면에 자막으로 나온다.
'너는 밀어 붙여라, 나는 때릴테니.'
영화 속의 싯구는 시만을 별개로 읽을 때와는 맛이 다르다. 영화 속에서는 '사나이의 우정'이고, 시는 '무정함'이 느껴진다.

홀로 남기

어디서 이전에 들은 적 있었던가?
바람이 이토록 깊은 포효로 바뀌는 것을.
닫히지 않으려는 문 열린 채 부여잡고
저 언덕 너머 해안의 물거품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바람은 도대체 무어라 여길 것인가?
여름이 지나고 오늘 하루도 지나 이제
어두운 구름이 서녘에 뭉치고 있었다.
저기 쳐진 현관 마루
회오리치며 요란하게 올라온 가랑잎들이
마구 내 무릎을 치려다가 빗나갔다.
그 소리 속의 불길한 무엇이
내게 비밀을 밝히라고 일러준다.
내가 집에 혼자 있다는 소문이
밖에서 나돌고 있었나 보다.
내 일생 동안 외로웠다는 소문이.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신神밖에 없다는 소문이.
(p.80)
* 저자는 외로웠을까 대체 왜 이런 내용의 시를 썼을까,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을까 저자 조사가 필요하다.

이슬 속에 풀 베던 일꾼, 그 꽃이 하도 귀여워
베지 않고 남겨두었지만 우릴 위한 건 아니었네.

우리의 자기 쪽으로 끌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개울가에 핀 아침 꽃을 반겼을 뿐이리라.

하지만, 나비와 나는
그 새벽이 전해오는 메시지와 마주쳤지.

그로 인해 나는 주위에서 잠을 깨는 새소리를 들었고
일꾼의 긴 낫이 대지를 향해 속삭이는 소리 또한 들었지.

그리고 내 정신과 친근한 정신이 또 있음을 느끼며
그때부턴 혼자서 일을 한 게 아이었네.
(p.102 「한 떨기의 꽃」중에서)


“무슨 말이 들렸는지 말해보세요.”

“꽃 한 송이 찾아서 꿀벌은 쫒아내고
머리를 기댔지요.
꽃줄기 손에 잡고
귀기울이니 그 말이 들리는 거예요.
뭐라고 하셨나요? 내 이름을 부르셨나요?
아니면 혹시 하신 말씀이 -
‘누군가’의 ‘오세요’라는 말, 머리 숙이고 들었다구요.
“그런 생각을 했을 테지만, 말을 하지 않았어요”

“하여간, 그 말 듣고 찾아왔어요.”
(p.118-120 「전화」 중에서)
*전화에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마음이 보인다.

불과 얼음

세상이 불로 망하리라는 사람들 있고
얼음으로 망하리라는 사람들 있네.
내가 맛본 욕망으로 미루어보건데
불로 망하리라는 쪽을 편들고 싶네.
하지만 세상이 다시 한 번 망한다 치면
미움 또한 만만치 않아
세상을 망치기 위해서는
얼음 또한 큰 힘이 될 듯하고
얼음이면 충분할 듯도 하이.
(p.132)

3. 감상과 '내가 저자라면'
‘자연自然은 무심無心하다.’
‘자연自然은 불인不仁하다.’
‘자연自然은 무정無情하다.’

가을을 타면서 드는 생각, ‘자연은 무정하다’.
자연은 무심하게도 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떨어내고 있다.
자연은 무심하게도 식물을 태우고 있다.
가을은 죽이는 기운氣運이 강하다는 데, 내게도 그 가을의 힘이 뻗치나 보다.

내 나이 서른 하고도 다섯. 지구가 또 한번 태양을 한바퀴 돌았다.
아직 알고 알지 못하였으면 하는 것을 벌써 알아버린 듯 하다.
자연을 불인하기에 모든 것을 품을 수 있고(有), 모든 것을 내고(生), 그것을 자라게(毓) 하고 또 모든 것이 죽는 것(滅)을 두고 본다. 자연은 '살린다' '키운다'라는 것만을 허용하는 인간과는 다르게, 불인하여 그 모든 것을 품고, 모든 것을 내고, 모든 것을 피워내고, 모든 것을 키우고, 또 모든 것을 멸한다라는 들었다.
자연의 무심함이 싫지만은 않으니, 내 나이 서른 하고도 다섯. 너무 이르지 않은가. 그것이 자연의 무심함인가.

나뭇잎이 빨갛게 타들어가고
하늘은 파랗게 높아만가서 닿지 않을 듯 한데,
하늘 속으로 손을 내민 은행나무 꼭대기로
무심하게 바람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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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연을 빌어서 자연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하고, 사회를 이야기한다.

역자는 이 시집을 3부로 나누어서 엮었다. 몇 백개나 되는 시 중에서 '자연, 환희 그리고 기도', '바람, 숲 그리고 어둠' , '환희에서 지혜로'라는 이름으로 분류했다. 역자가 시의 배열을 시집을 발간한 것과 어느 정도 맞췄을 성 싶다.
작년에 연구원 2기의 리뷰에서 본 (도서관에서 빌려 본 오래된 프로스트의 시집에 나온) '가정'이라든가 '눈오는 밤에' 같은 서정성이 짙고 마음을 진하게 파고드는 시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시집에 묶인 시는 밋밋하게 '무심한' 맛이 난다.

환희라고 이름붙여 분류해 묶어 놓은 시들에서는 '환희'보다는 '자연'이 느껴진다. 그리서 편안하고 좋다. 언덕에 올라 잠시 시원한 바람을 즐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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