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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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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9일 22시 07분 등록
I. 저자에 대하여

그렇다. 나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종교의 시작은 아니다.
나는 어떠한 형용사도, 어떠한 경계도 모르는,
오직 영혼의 자유만을,
오직 그대 존재의 침묵만을,
오직 그대 잠재력의 성장만을,
그대 밖의 신이 아닌 오직 그대 자신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신성(神性)만을,
그대 안에 존재하는 그 신성의 경험만을 아는
나는 완전히 새로운 종교성(religioness)의 시작이다.
- 오쇼, 자신에 대한 정의

오쇼 라즈니쉬. 이 사람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자서전을 통해 본 그의 모습은 정말 신기하고, 대단하고,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았지만, 다른 세상을 산 사람이었다. 깨달음을 얻는 자의 심오한 세계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 심오한 세계에서 살다간 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으로 황홀한 경험이었다. 아니, 그는 살다 간 것이 아닌 계속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육신을 떠났을 뿐. 21세에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자신의 외적전기는 끝났다고 한 그의 말처럼, 그의 외적 인생을 돌아보는 것은 의미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쇼의 부모는 젊었다. 오쇼의 친할머니의 죽음으로 그의 부모는 가업으로 내려오던 의류판매점 일을 맡게 된다. 어린 가족들을 돌봐야 했던 그들은 오쇼를 외조부모에게 보내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오쇼 안에는 평범함이란 없었던 듯하다. 그의 외조부모들 또한 결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쇼가 정말 마음껏 행동할 수 있도록 절대적인 자유를 허락해준다. 삶의 진리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 하는 어린 손자를 아낌없이 지원해 준다. 훗날 그의 외할머니는 자신이 스스로 손자의 제자임을 선언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쇼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남는다. 세기의 영적스승으로 남은 오쇼의 정신적인 부모는 외조부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그야말로 영적(?) 신동이었다. 14세 때 이미 사토리라 불리는 영적경험을 하고, 21세에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스스로 그때 이후로 자신의 외적인 삶은 끝났다는 말을 남긴다. 대학에 가서도 대학원에 가서도 그의 능력은 빛을 발한다. 대학원 졸업 때는 철학 부문의 최고상을 받았으며, 인도 토론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한다.

그는 처음에는 라이푸르의 산스크리트 대학에서, 그 뒤에는 자발푸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철학을 가르친다. 학교 안에서도 모든 전통을 무시한 그의 독특한 교수방법은 많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학생들에게만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그가 교수였던 시절의 이야기는 자서전 속에서도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현대인에게 명상기법을 전파하기 위해 교직을 버리고, 인도 전역을 여행하며 강연을 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가 말하는 대로 그야말로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그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나의 메시지는 종교도, 철학도 아니다. 나의 메시지는 일종의 연금술이며 인간 변화를 위한 과학이다. 따라서 나의 메시지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자들, 용기있는 자들만이 들을 수 있다. 나의 메시지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나의 메시지를 듣는 순간 그대는 다시 태어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따라서 나의 메시지는 그대가 외투처럼 걸치고 자랑할 수 있는 철학도 아니고 그대를 괴롭히는 질문을 잠재우기 위한 교리도 아니다. 나의 메시지는 언어적 대화가 아니다. 나의 메시지는 훨씬 위험하다. 그것은 바로 죽음과 부활이다."

오쇼는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남긴다. 그리고 1990년 1월19일 인도의 푸나에서 자신의 몸을 떠났다. 현재 푸나의 오쇼 코뮨 인터내셔널이라는 그의 명상캠프는 영적 성장을 위한 세계적 메카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전 세계로부터 해마다 수 천 명의 방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 그가 전 세계에서 온 제자들과 구도자들에게 강의한 내용은 30개가 넘는 언어를 통해 600권이 넘는 책으로 발간되어 자신 안의 길을 찾는 모든 구도자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빛이 되고 있다.


II.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편집자 서문

9) 그는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신문기사 모음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진리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9) 사람의 마음이란 시간 속의 사건들의 의미를 이해하기를 원한다.

12)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누구냐'이다.

13) 그는 자신이 어떤 전통의 일부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가 가고난 뒤에 그의 주위에 어떤 전통도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력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두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13) 오쇼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때에만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서문

14) 역사학은 진실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진실은 물질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아직 의식의 사건들을 다루기에 충분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15) 이 이야기는 내적인 사건들의 기록이다.

1부. 평범한 인간. 전설 뒤의 숨은 역사

19) 나에게 있어서의 영성은 순수한 개인성을 필요로 한다. 영성은 어떠한 종류의 의존도 허용하지 않는다. 영성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자유를 창조해낸다. 영성은 결코 군중 속에 있지 않으며 언제나 홀로 있다.

20) 나에게 있어 영성은 단지 자신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27) 침묵은 고유의 진동을 가지고 있다. 침묵은 전염성이 있다.

38) 자이나교도들은 자신을 성취한 뒤 그의 깨달음의 아름다움에 너무나 깊이 빠지고 너무나 취해서 온 세상을 잊은 사람을 일컬어 아리한따라고 부른다. 아리한따라는 단어의 말 그대로의 의미는 '적을 죽인 자'이다. 그리고 그 적은 에고이다.

40) 스승은 그 스스로 알았고 자신이 안 것을 나누어준다. 선생은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을 고스란히 세상에 전해준다. 그러나 그 자신은 아직 알지 못한다.

40) '나는 자신을 안 모든 사람들의 발밑에 절합니다.'

41) 앎의 대상은 없다. 알아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아는 자가 있을 뿐이다.

43) 아이들은 단지 순진무구할 뿐이다. 그 아이들에게 그대의 이른바 지식을 물려주지 말라. 그대 자신이 먼저 순진무구해져야 하고, 거짓 없이 진실해져야 한다.

51) 지식은 그대를 매우 교활하게 만든다. 나는 교활하지 않았다.

51) 교육은 인간이 불쌍한 어린아이들에게 저지른 가장 큰 범죄이다. 아마도 이 세상의 가장 마지막 해방은 어린이의 해방이 될 것이다.

55) 만약 누군가가 삶을 끝내기로 결정했다면 그것은 그의 권리이다. 그러나 나는 삶을 길고 긴 고문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한다.

56) 언제나 자신에게 진실한 나니는 말했다. "바꾸기에 너무 늦는 법은 없어요. 당신의 선택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바꾸세요. 사실 당신은 늙어가고 있으니까 더 빨리 바꿔야 해요. 늙었으니까 바꿀 수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젊은 사람은 바꾸지 않을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늙은 사람은 그럴 수 없어요. 그리고 당신은 이미 충분히 늙었어요."

56) 어쩌면 내가 그녀(나니)의 매개체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을 나에게 쏟아부었는지도 모른다.

62) 그녀는 말했다. "네 질문은 틀렸다. 사랑에 빠지는 데는 '왜'가 없다. 나는 그거 그를 보았고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의 눈을 보았고 내 안에서 신뢰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신뢰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68) 오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속에서만 죽음을 만날 수 있다.

69) 사랑 없이는, 죽음은 그대에게 존재로 가는 열쇠를 주지 않는다. 사랑이 있을 때, 죽음은 그대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통하는 열쇠를 건네준다.

76)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랑자가 되기를 선택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겠어요. 능력이 있으면서도 말이에요. 그렇다면 방랑자라고 해도 존경받을 만해요. 존경은 직업과는 아무 관계도 없으니까요. 존경은 그 사람의 행동이 힘과 명료함, 지성으로부터 나오고 있느냐와 관계가 있어요.

76) 저는 그런 바보같은 일들을 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아요. 하지만 아주 교양 있고, 영리하고, 교육받은 방랑자는 무척 필요해요.

84) "저를 막으려는 것을 멈추신다면, 그때는 제가 그 옷을 그만 입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계속 막으려 하시면 저는 끝까지 그 옷을 버리지 않아요."

86) 인도에서는 감옥과 학교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모두가 붉은 벽돌로 지어져 있다. 그 건물이 감옥인지 학교인지를 구별하기는 어렵다.

93) "교육 따위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어요. 하지만 저의 자유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어요. 아무도 이유 없이 저를 괴롭힐 수 없어요. 저에게 교육법전을 보여주세요. 저는 읽을 수가 없으니까 모든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데요 창 밖을 내다보는 게 법에 어긋나는지 알려주세요."

100) 그대라 흐르는 것들, 움직이는 것들과 사랑에 빠지게 될 때, 그대는 삶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다. 현대인은 아스팔트길, 시멘트와 콘크리트 건물들과 함께 사낟. 이러한 것들은 명사들이다. 기억하라. 이러한 것들은 동사들이 아니다.

111) 나는 말했다. "나는 당신네 종교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지 않아요. 나는 단지 거기에 약간의 유머감각을 더해주고 있을 뿐이에요."

115) 몇 번쯤 넘어지고, 다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은 좋다. 몇 번쯤 길을 잃는 것은 좋다. 해가 될 것은 없다. 그대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돌아오라. 삶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 한다.

117) 저는 단지 그것을 이용했을 뿐이고 그것은 저의 권리에요. 상황을 이용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권리에요.

119) "제발 선생님의 갈 길만 가주세요. 선생님의 과목이 아니면 어떠한 조언도 제에게 하지 말아주세요. 그래야 저 자신의 방법으로 저의 삶을 탐험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저는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거예요. 저는 기꺼이 실수와 잘못을 저리를 거예요. 그것만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123) 만약 어떤 신이 있어서 언젠가 내가 그를 만난다면 그는 나에게 화를 낼 수 없어. 오히려 내가 그에게 화를 낼 것이야 '왜 당신은 세상을 이렇게 창조했소?'라고, 나는 두렵지 않다.

125) "저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요. 잘 아시잖아요. 저는 단지 볼 뿐이에요. 그리고 선택의 문제는 없어요. 저는 제가 뭘 공부하게 될지 알아요. 그것은 어떤 직업이 더 유리할지 저울질해볼 문제가 아니에요. 거지가 될지라도 해도 저는 철학을 공부할 거예요."

127) 나는 말했다. "괜찮아요. 왜냐하면 저는 그 모든 조언들을 결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저는 결코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제가 하려는 일이 무엇이었든지, 저는 누가 뭐래도 그것을 했을 거예요. 그러니 죄의식을 느끼지 마세요. 저는 결코 여러분들의 조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본 적이 없어요. 그 말들을 듣고 있기는 했지만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저는 제 속에 하나의 결정을, 확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129) 만약 내가 그대의 죽음만 볼 수 있다면 나는 그대의 모든 전기를 쓸 수 있다. 왜냐하면 그 한순간 속에 그대의 전 생애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한순간 속에서 마치 섬광처럼 그대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129) 구두쇠는 주먹을 꽉 쥐고 죽을 것이다. 이직도 붙잡고 집착하면서, 아직도 죽지 않으려 애쓰면서, 아직도 이완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사랑이 많은 사람은 손을 펴고, 나누면서 죽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나누었듯이 자신의 죽음마저 나누면서 죽을 것이다.

135) 그들은 와야 했기 때문에 왔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 단지 사회적인 관습을 충족시키기 위해, 단지 그들이 왔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오는 것조차도, 그들이 죽었을 때 청소차가 그들을 실어가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140) 만약 그대가 죽음을 받아들였다면 두려움은 없다. 만약 그대가 삶에 집착한다면 그때는 모든 두려움이 거기 있다.

141) 내가 파리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기로 결정한 순간, 짜증은 사라졌다. 파리들은 여전히 몸 위에 있었지만 나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파리들이 마치 다른 누군가의 몸 위를 움직이고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즉시 하나의 거리가 생겼다.

146) "온 집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구나. 시장에 가서 야채를 좀 사올 사람이 필요한데." 나는 어머니 바로 앞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다. "혹시 누군가를 보게 되면 이야기할게요."

147) 나는 그들이 나를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준 것이 한없이 행복했다.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자유를 주었다. 아무도 나에게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대에게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을 때, 그대는 침묵에 빠진다. 세상이 그대를 그대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제 그대 쪽에서도 아무런 기대가 없다.

155) 스승은 문이다. 예수는 끊임없이 말하낟. "나는 문이요, 길이요, 진리이니 나를 따르라. 나를 통해 지나가라. 그대라 나를 통하지 않고는 도달하지 못하리라."

159) 그대는 내게 묻는다. 당신이 깨달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159) 마음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돈을 원하고, 권력을 원하고, 명성을 원한다. 그리고 마침내 외적인 일들에 질리게 되면 마음은 깨달음을, 해탈을, 니르바나를, 신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똑같은 욕망이 돌아온 것뿐이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다.

160) 우리는 이미 신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모습 그대로 완전하다.

164) 노력은 필요하다.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노력만 가지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68) 그대는 그대와 그대의 희망 사이의 거리를 줄일 수 없다. 희망은 지평선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과 지평선 사이에, 희망 사이에, 투영된 욕망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한다.

202) 나는 평범한 마음에 일어날 수 있는 관점들은 모두 버리고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관점만을 선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8) 저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만을 질문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질문입니까?

220) 나는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 돈은 언제나 나에게 도착했습니다." 그대가 누군가를 신뢰하면, 그들이 그대를 속이는 것은 무척 어려워진다.

234) 존경은 선생의 자질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제자나 학생들에게 요구되지 않았다. 존경심은 그저일어났다.

238) 나의 통찰 속에서 과학, 종교, 예술, 그것은 하나의 삼각형이다.

240) 나는 모든 독서를 통해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독서는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이었고 그 목적은 나의 메시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하는 것, 지역적인 한계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었다.

241) 나는 어떠한 형용사도 없는 단지 나 자신이 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통합과 개인성, 진정함, 그리고 충족감에서 오는 엄청난 지복을 주었다.

263) 그 모든 말들은 공허했다. 경험을 통한 뒷받침이 전혀 없었다.

266) 나는 모든 것을 무릅썼소. 나는 부자였고. 나는 자이나 승려가 되기 위해 그것을 포기했고 이제 나는 자이나교를 포기했고 승려직을 포기했소. 아무도 아닌 자가 되어서 완전한 자유를 실험하기 위해서 말이요.

273) 깨달음 전에 그들은 위대한 선생이었고 이제 깨달음 때문에 그들은 스승이 된다. 이제 그들은 선생에서 스승으로 바뀐다. 그리고 분명 그것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274) 나의 강의는 정말로 명상의 위해 내가 고안한 장치의 하나이다. 말하기가 이런 식으로 이용된 적은 결코 예전엔 없었다. 나는 그대에게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 마음의 기능을 정지시키기 위해 이야기한다.

275)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나 자신도 다음 단어가 무엇이 될지 알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어떤 실수도 범하지 않는다. 사람은 준비를 할 때 실수를 범한다. 나는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떤 것을 기억할 때에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 어떤 강연자도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280) 왜 내가 고타마 붓다나 보디다르마, 예수 그리스도에 의존해야 하는가?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이해와 통찰에 따라 그들의 삶을 살았다. 나는 나의 이해와 나의 통찰에 따라 나의 삶을 산다.

281) 깨달음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이며 유일한 경험이다.

281) 이것은 단지 그대에게, 그대의 가슴에 그대가 침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대가 확신을 가질수록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283) 나 자신의 경험으로는, 만약 그대가 침묵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대가 마음을 초월할 수 있고 그대의 의식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때 그대가 무슨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대의 행동들은 전혀 중요시되지 않는다. 오직 그대의 의식만이 중요할 뿐이다.

285) 명상은 빛을 가져오려는, 기쁨을 가져오려는, 침묵을 가져오려는, 지복을 가져오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이 아름두운 명상의 세계에서 그대는 어떤 잘못된 일도 할 수 없다.

2부. 빈 거울에 비친 그림자들.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여러 얼굴

300)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대의 아내이기 때문에 한 여자를 사랑해야 하게 되는 그 순간, 그것은 매춘이다.

303) 나는 종교성을 하나의 특질로 본다. 그것은 조직의 회원권이 아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내적인 경험이다.

315) 신은 없다. 그러나 모든 꽃 속에, 모든 나무 속에, 모든 돌 속에 신성이라고 밖에는 부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그대는 오직 그대 자신 안에서 그것을 보았을 때에만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그 언어를 모른다.

329) 부유한 자가 종교적이지 않다면 그는 어리석은 것이다. 가난한 자가 종교적이라면 그는 엄청나게 총명한 것이다.

343) 그대가 정말로 웃을 때, 그 한순간 동안 그대는 깊은 명상적 상태 속에 있다. 생각이 멈춘다. 웃으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둘은 정반대이다.

346) 모든 물질적 욕구들이 충족되었을 때, 이제 그대는 무엇을 할 것인가? 명상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만이 아직도 열려 있는 채로 남아 있는 유일한 문이다. 다른 모든 문들은 그대가 이미 두드려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오직 하나의 문만이 그대를 초대하며 아직 열려 있다.

358) 그들은 그대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진리를 불러낼 수 있다. 그들은 그대를 흔들 수 있고 깨울 수 있다.

361) 스승의 역할은 그대를 부르는 것이다. "나자로야, 동굴에서 나오너라! 너의 무덤에서 나오너라! 너의 죽음에서 나오너라!"

365)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배추벌레와 나비의 관계이다. 배추벌레와 나비의 우정이다. 나비는, 배추벌레가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논리적인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나비는 배추벌레 안에 하나의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366) 종교와 철학이 실패한 점은 그것이 모두가 진정한 경험에 대한 대응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을 경계하라!

368) "지금의 내가 무엇이든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선택이다. 그것은 이 순간의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것을 바꾸고 싶다면 그것을 바꾸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자유이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어떤 사회적 강요도, 어떤 국가도, 어떤 역사도, 어떤 경제도, 어떤 무의식도 나를 막을 수 없다. 만약 내가 그것을 바꾸기로 결심했다면 나는 그것을 바꿀 수 있다."

370) 단지 그대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 그대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하라. 만약 그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면 즉시 징벌이 따를 것이다. 만약 그것이 옳다면 즉시, 그 자리에서 보상이 따라 올 것이다.

3부. 유산

384) 진정한 종교는 이름이 없다. 결코 어떤 이름도 가질 수 없다.

384) 나는 신성에 대해 수용적이 되는 방법을 그대에게 준다.

386) 과학은 객관적 세계 안에서의 진리에 대한 탐구이며 종교는 주관적인 세계 안에서의 진리에 대한 탐구이다.

386) 물질의 차원 안에서의 앎을 그대는 객관적인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리고 그대의 내면성의, 그대의 내면의 존재의, 그대의 의식의 차원 안에서의 앎, 그것을 그대는 주관적인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종교라는 말은 필요치 않다.

387) 믿지 말라. 물어라. 그대가 믿는 그 순간 질문은 멈춘다. 그대의 마음을 열어두라. 믿지도 말고 믿지 말지도 말라. 단지 깨어 있는 채로 모든 것을 탐구하고 의심하라, 그대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그것이 진리이다.

391) 명상은 붓다의 기여이다. 중요한 것은 몸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더 고요해지고, 더 이완되며, 더 평화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의식의 중심에 도달하기 위한 내면으로의 여행이며 자기 자신의 의식의 중심은 전 존재의 중심이다.

407)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은 단순하게 생각들을 넘어 움직일 수 있다. 믿는 사람은 생각에 집착한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이 바로 생각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마음의 부분이다.

412) 매일 하루 60분 동안만 세상에 대해 잊어라. 세상이 그대에게서 사라지게 하라. 그리고 그대도 세상으로부터 사라져라. 방향을 180도 돌려 단지 안을 보아라. 처음에는 구름들만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그 구름들은 그대의 억압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대는 분노와 미움, 탐욕, 온갖 종류의 블랙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거들을 억압했다. 때문에 그것들이 거기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소위 종교들은 그런 것들을 억압하라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그것들은 상처처럼 거기 있는 것이다. 그대는 그것들을 숨겨왔다.

413) 그대는 알고 있다. 그대가 눈을 감고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대는 무엇을 만나는가? 그대는 붓다가 이야기하는 극락정토를 만나지 않는다. 그대는 그곳에서 억압된 채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지옥들과 고뇌들을 만난다.

416) 모든 사람들의 100도가 각각 다르다. 사람 또한 100도에서만 수증기로 변하지만 모든 사람의 100도는 서로 다른 것이다.

425) 명상은 무엇에 '대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중심 밖에서의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다. 한점의 흔들림도 없을 만큼 전적으로 그대 자신이 될 뿐이다. 내면의 불꽃은 움직임이 없다. 타인은 사라졌다. 오직 그대만이 있다. 단 하나의 생각도 거기 없다. 온 세상이 사라졌다. 마음은 더 이상 거기 없다. 그대의 절대적인 순수 속에 오직 그대만이 있다.

428) 심리학은 사람들이 불행을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심리학은 이것이 삶이 그대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며 따라서 더 이상을 요구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사람들의 내적인 성장에 있어 위험하다. 왜냐하면 내적인 성장은 오직 신성에 대한 불만족이 있을 때에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429)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 마음의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마음 그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음은 그대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

429) 붓다의 심리학은 마음 안에서 작업하지 않는다. 붓다의 심리학은 분석이나 종합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단순히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그래서 바깥으로부터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바로 그 바라봄이 곧 변형이다.

432) 만약 제가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면 저는 다시 그 강을 더럽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마음 속으로 뛰어든다면 더 많은 소음이 일어나고 더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물가에 앉아 있는 동안 저는 그 기술을 배웠습니다.

432) 그대가 그대 마음의 강둑에 앉는 순간 그대는 더 이상 마음에 에너지를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짜 명상이다. 명상은 초월의 기술이다.

433) 그대의 마음을 더 자각하라. 그러면 마음을 자각하는 가운데 그대는 그대가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혁명의 시작이다. 그대는 높이 더 높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대는 더 이상 마음에 붙잡혀 있지 않다. 마음은 바윗덩이와 같은 작용을 하여 그대를 아래로 끌어 내린다. 마음은 그대를 중력의 장(場) 안에 붙잡아 둔다. 그대가 어 이상 마음에 붂여 있지 않게 되는 순간 그대는 붓다장(buddhafield)으로 들어간다.

434) 우리는 심리치료요법으로는 치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심리치료요법은
그대가 그대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울지는 모른다. 그러나 치유할 수는 없다. 치유는 그대가 더 이상 마음에 붙잡혀 있지 않을 때 찾아온다.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분리될 때, 비동일시될 때, 완전히 벗어날 때, 속박이 끝날 때, 그때 치유가 일어난다.

443) 서양 사람들은 사회로 달아난다. 동양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달아난다. 그것이 바로 동양에 개인적인 방편들이 존재해왔던 이유이다. 그룹 방편들은 서양에 존재한다.

443) 머지않아 동양도 서양도 없어질 것이다. 하나의 세계만이 있을 것이다.

448) 그대의 인생의 3분의 1은 잠을 자는데 들어가고 또 3분의 1은 교육에, 배우는데 들어간다. 뭐가 남는가?
그중 많은 부분은 밥벌이에 들어간다. 만약 그대가 모든 것을 계산해본다면 그대는 놀랄 것이다. 70년 가운데 그대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7년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급할 수밖에 없다. 미친 듯이 달려갈 수밖에 없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미쳐서 달려갈 수밖에 없다. 그대가 염두해 두는 것은 그대가 빨리 가고 있느냐는 것뿐이다. 수단이 목적이 된다.

459) 나의 노력은 동양과 서양 사이의 간격을 없애려는 것이다. 이 지구는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463) 외적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더 이상 인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유는 있다. 그러나 주인은 사라졌다. 커다란 불균형이 일어났다. 부는 있지만 사람들은 전혀 부유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가난함을, 커다란 빈곤함을 느끼고 있다.
이 모순을 생각해보라. 그대가 외적으로 부유할 때, 그때에만 그대는 그 대비를 통해 그대의 내적 가난을 깨닫게 된다. 그대가 외적으로 가난할 때, 대비될 것이 없기 때문에 그대는 결코 그대의 내적 가난함을 깨닫지 못한다.

465) 그것은 진정한 만족감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내적인 가난함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인도인들은 생각한다. '서양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저 불안과 고뇌, 긴장을 보라.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내적인 만족감이 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만족한 것이 아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봐왔다. 그들은 만족해 있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틀림없는 사실은, 그들은 불만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466) 외부에 빛이 있다. 따라서 그 빛이 그대 내면의 어둠을 보여준다. 흰 셔츠 위에 묻은 작은 진흙, 그것은 눈에 띈다.

472) 동양은 명상을 할 수 없다. 동양은 거의 일종의 무의식 상태에서 살고 있다. 동양은 명상을 하기에는 너무나 배가 고프고, 기도를 하기에는 너무나 가난하다. 동양의 유일한 관심은 의식주뿐이다.

474) 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인류, 그리고 궁극적으로 양쪽 모두를 다루는 하나의 과학을, 종교와 과학의 만남을 지지한다. 내면과 외면 모두를 다루는 하나의 과학을 지지한다.

486) 나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그러나 그것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불가능하면 불가능할수록 그것은 더 해볼만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때는 적절하다. 왜냐하면 종교가 실패했고 과학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때는 적절하다. 왜냐하면 동양이 실패했고 서양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뭔가 더 높은 통합체가 필요하다. 동양과 서양이 만날 수 있고, 종교와 과학이 만날 수 있는 통합체가 필요하다.

487) 서양은 지나친 과학으로 고통 받고 있다. 동양은 지나친 종교로 고통 받아왔다. 이제 우리는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인간 안의 두 가지 측면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새로운 인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다리는 예술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신인간은 신비가이며, 시인이며, 과학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4부. 오쇼의 일생과 그 주요 사건들

490) 나는 태풍의 중심이다. 따라서 나의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490) 외부상황은 변할지 몰라도 그대의 의식은 한 치의 변화도 없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나의 가르침의 전부이다.
외부상황은 변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어느 날은 성공하고, 어느 날은 실패한다. 어느 날은 정상에 있고, 또 어느 날은 밑바닥에 있다. 그러나 그대 안의 무엇인가는 언제나 그대로이다. 그리고 바로 그 무엇인가가 그대의 실체이다. 나는 나의 실체 안에 살 뿐이다. 나는 실체를 둘러싼 모든 꿈과 악몽들 속에 살지 않는다.

493) 세상엔 오직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495)
첫 번째 금언은 현재에 살라는 것이다. (중략)
두 번째 금언은 자연스럽게 살라는 것이다. (중략)
세 번째 금언은 홀로 살라는 것이다.

502) 남성의 길은 각성의 길이다. 그리고 각성은 그대가 자신의 존재의 주인이 되는 지점으로 그대를 데려간다. 그것이 '스와미'의 의미이다. 여성의 길은 사랑의 길이다. 그리고 사랑은 그대가 전 존재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궁극적인 지점으로 그대를 데려간다. 그리고 그것이 '마'의 의미이다.

505) 그대 안에 하나의 혁명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마음을 넘어 의식의 세계 속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어떤 것도 종교적이지 않다.

508) 부디 내가 그대에게 말해왔던 것들에 집착하지 말라. 오히려 내가 그대에게 행하도록 설득했던 것들에 집착하라. 그것을 하라. 그러면 언젠가 그대는 내가 말했던 것들이 모두가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내가 말했던 것들에만 계속 집착한다면, 그것은 그대에게 지식을 줄지는 모르지만, 그대를 더 박식하게 만들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그대는 앎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말했던 모든 것은 심지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509) "당신에게는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그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뭔가가 일어났고 당신은 더 이상 우리와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숨기고 있습니다."

510) 나는, 이제 나의 깨달음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사람들을 모았다고 판단될 때에 그것을 선언했다. 이제 나만의 작은 세상을 창조할 수 있고 더 이상 군중과 대중과 어리석은 폭도들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에야 그것을 선언했다.

511) 록, 재즈, 그 밖에 혼돈스런 음악들은 그대 안의 무언가가 밖으로 나오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바로 억압된 성욕이다.

511) 그대 자신을 풀어 놓아라. 사회가 그대에게 강요해온 것들, 상황이 그대에게 강요해온 것들을 모두 끄집어내라. 그것들을 끄집어내라. 그대 자신을 그러한 것들로부터 풀어놓아라.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라.

512) 만약 내가 그대에게 한 시간을 준다면 그대는 쓰레기 같은 소리들을 지껄인다. 만약 내가 그대에게 일 분을 준다면 그대는 정확히 필요한 그것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이다.

514) 나의 모든 가르침은 단순히 이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대가 무엇이든지, 그대의 상태 그대로 전체적으로 받아들여 달성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흰 구름이 될 것이다.

517) 나의 의자는 비어 있을 서 있다. 그대는 나의 부재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기억하라. 오직 그대가 나의 부재를 느낄 수 있을 때에만 그대는 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다. 만약 그대가 나의 육체라는 탈것이 거기 없을 때에는 나를 볼 수 없다면 그대는 나를 전혀 보지 못한 것이다.

518) 그대는 그대 자신을 길을 찾아야 한다. 각자가 그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대 앞에 모든 길들을 펼쳐놓아 그대가 보고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올바른 길이 나타날 때면 그대는 즉시 그대 안에 커다란 기쁨이 일어나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이 신호이다. 그것이 그대의 때가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그대가 기다려온 때라는 것을, 이것이 그대의 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518) 이 20세기는 모든 종류의 미신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완전히 벌거벗은 나체의 종교를 필요로 한다.

520) 나는 그대를 들여다보고, 그대를 느끼고, 그대가 볼 수 없는 그대 자신의 가슴을 보고, 그리고 그 가슴이 결정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기껏해야 그대의 가슴을 그대 자신에게 해석해 주는 것뿐이다. 나는 산파이다.

521) 그대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난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좋은 기회이며, 도전이며,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 순간을 창조적으로 이용하라. 수단과 방법을 찾아내라. 조용히 그대 자신의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의 확신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좋다.

523) 나누라. 그러나 강요하지 말라. 나눔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나눔은 타인을 매우 존중하는 것이다. 나눔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강요는 폭력적이다.

531) 그룹은 그대가 표현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그때 그대는 정말로 성장하고 있지 않다. 결국 그대는 다시 정상적인 사회로 돌아갈 것이고 다시 억압할 것이다.

536)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도 하지 못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541) 판사가 그를 석방한 이유는, 만약 그것이 나를 살해하려는 시도였다면 내가 강의를 계속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살해하려 하는 가운데 강의를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나를 모른다. 나는 죽어서도 강의를 계속했을 것이다. 10시 전에는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543) 기러기는 물에 자신의 그림자를 비추려는 욕망이 없다. 그리고 물은 기러기의 상을 받아들이려는 욕망이나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일어난다. 기러기가 날아갈 때면 물은 기러기를 비춘다. 그 반영은 거기 있다. 그 상은 거기 있다. 그러나 물은 비추려는 마음이 없고 기러기도 바춰지려는 갈망이 없다.

543) 탐욕스러워지지 말라. 왜냐하면 탐욕은 그대를 미래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소유욕에 사로잡히지 말라. 왜냐하면 소유욕은 그대를 과거에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 속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탐욕과 소유욕, 야망, 욕망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544) 세상은 그대가 빗나갈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빗나가지 않는다면 그때 각각의 성공들은 엄청난 기쁨이 된다. 그대는 중심에 남는다.

562) 이제 나의 방식으로 살아라. 스스로 책임을 져라. 그래서 다른 누가 그대에게 명령할 필요가 없게 하라.

564) 그 약속은 '나는 이 나라를 다시 단결시키고 다시 강하게 만들어 전 세계를 지배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565) 자유는 방종이 아니다. 자유는 책임이다. 그리고 만약 그대가 스스로 그대의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그때는 다른 누군가가 그대 대신 그 책임을 떠맡게 된다. 그리고 그때 그대는 노예가 된다.

571) 내가 미국식 민주주의를 지켜본 바로는.....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한 넌센스이다. 그들의 헌법은 단지 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일 뿐이다. 그 나라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범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572) "나는 결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를 계획하지 않소. 나는 약속을 할 수 없소. 그리고 내가 뭔가 잘못된 것을 본다면, 그때는 그것이 힌두교인지, 기독교인지, 이슬람교인지는 문제가 아니요. 나는 그것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할 것이오."

572) 나는 세계여행을 시작한다. 왜냐하면 어떤 정치적 경계도 믿지 않으며 전 지구나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84) 내가 우루과이를 떠나자 대통령은 즉시 미국으로 초청되었고, 로널드 레이건은 '우정의 표시'로서 그에게 3천6백만 달러를 주었다. 그것은 내가 서른여섯 시간 안에 추방된데 대한 보상이었다. 정확히 3천 6백만 달러, 한 시간 당 백만 달러였다. 사실 나는 이 정부들에 나의 수당을 요구해야 한다. 그들은 나 때문에 수십억 달러를 얻고 있다. 나는 적어도 2퍼센트는 받아야 한다.

586) 나는 그대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대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대에게 충족을 줄 수 있는 것은 거기 바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기 안에 있다. 그것은 어떤 다른 시간 속에도 있지 않으며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정지할 때의 느낌, 완전한 정지의 느낌은 다름 아닌 '지금 여기'의 경험과 같다.

590) 어떤 종류의 의존도 노예상태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영적인 의존은 노예상태 중에서도 가장 나쁜 노예상태이다.

593)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종교만이 있으며 그것은 사랑이라는 종교이다.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신만이 있으며 그것은 축하라는, 삶이라는, 기쁨이라는 신이다. 이 모든 지구는 하나이며 모든 인류는 하나이다. 우리가 모두가 서로의 일부분이다.

605) 이완하라. 그대가 단지 주시자일 뿐이라는 것만을 기억하라. 육체는 그대가 아니다. 마음은 그대가 아니다. 그대는 단지 하나의 거울이다. 그리고 그대가 거울과 같은 주시 속으로 침잠함에 따라 전 존재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모습을 띄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신성해진다.

613) 이번에는 정말로 인공의 사원이나, 인공의 종교가 아닌 그대 본래의 집으로 들어가라. 그대 자신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라. 왜 자꾸만 복사품이 되려 하는가?
이 시대는 매우 귀중한 시대이다. 그대는 행운의 시기에 태어났다. 옛것은 그 가치와 효력을 상실한 채 단지 그대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대가 감옥을 나올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은 열려 있다. 사실 거기에는 어떤 문도 있었던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대가 살고 있는 집은 완전한 상상이기 때문이다.

614) 붓다의 마지막 말은 사마사티(sammasati)였다.
그대가 붓다라는 것을 기억하라, 사마사티.


III. 내가 저자라면

책의 뼈대

자서전이면서도 단순히 시간적 순서나 작가의 기억의 흐름만을 따르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체계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형식과 구성을 취하던 오쇼, 그가 전하는 그 하나의 메시지는 책의 곳곳에 아니 전체에 녹아들어 있다.

1부. 평범한 인간: 전설 뒤에 숨은 역사
결코 평범하지 않는 자신에게 평범한 인간이란 타이틀을 붙였다. 그리고 또 평범하지 않은 인간이 남긴 전설 뒤에 숨은 역사라는 부제를 붙였다. 평범한 우리들의 입장에서 본 다면 그 스스로 평범하다고 한 그의 삶은 결코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듯이 이 세상 사람 누구나 그와 같이 될 수 있기에, 그는 자신을 평범하다 했나보다. 아무튼 평범함과 비범함을 넘나드는 인생을 살았던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2부. 빈 거울에 비친 그림자들: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여러 얼굴
사람들은 항상 변화를 강조한다. 끊임없이 변화하여, 과거의 자신과 또는 남들과 달라지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하지만, 또 자신과 많이 다른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속한 그룹 속에서 조용히 묻혀 살기를 바란다. 이런 세상에 한 괴짜가 나타났다. 깨달음을 얻은 자가 나타났다. 그가 하는 말들은 왠지 그럴듯 하면서도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많은 별명을 붙여주었다. 섹스 구루, 컬트 교주, 사기꾼, 자칭 바그완, 부자들의 스승, 농담꾼, 롤스로이스 구루 등.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오쇼다. 이 장(章)의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빈 거울에 비친 그림자들 이란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오쇼가 아닌 빈 거울에 비친 그림자를 오쇼라 불렀다. 그리고 결코 존재하지도 않았던 한 인간의 여러 얼굴을 만들어 그것이 오쇼의 얼굴이라 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과 그러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자신에 대한 오쇼의 날카로운 한마디가 담겨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누구든지이다."

3부. 유산
그는 우리에게 많은 유산을 남겼다. 그의 가르침, 아니 그가 전하는 메시지들이 그것이다. 종교와 명상, 그리고 심리학 등 그가 떠난 이 세상을 살아갈 우리들에게 그는 많은 메시지들을 남겼다. 이것을 읽고 나면, 왠지 본격적으로 명상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4부. 오쇼의 일생과 그 주요 사건들
그의 일생동안 어찌 사건들이 없었겠는가? 그가 들려주는 그의 일생과 사건들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마치 재미난 영화를 보는 듯하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는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하룻밤 잠을 청하기 위해 전용 제트기를 타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날아다니는 삶을 살고 있었다.

오쇼의 자서전 '길은 내 안에 있다'는 이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상당히 짜임새 있다는 느낌이다. 4개의 장(章)중에 어떤 부분을 먼저 읽어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을 듯하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오히려 더 재미있게 읽은 듯하다. 자서전 하면, 그저 태어남부터 시작해서 죽기 전 혹은 죽을 때까지의 역사가 전개되는 방식으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색다른 형식의 자서전을 접하고 나니, 상당히 신선하고 흥미를 배가시킨다는 느낌이 든다.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이 600여 권이 될 만큼 그는 세상에 많은 메시지를 전했다. 이 책에서만 봐도 그가 겪은 사건들 또한 상당히 다채롭고 그 건수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선 적절한 내용의 이야기를 적절한 방식으로 구성하여 적절하게 들려주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책 중간중간에 실린 그의 사진은 텍스트가 전달하는 내용을 넘어서 인간으로서 그의 느낌을 전달해주는 좋은 자료였다. 정말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기억속에 깊이 남았다.

기대하지 말란 말이야

"나는 그들이 나를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준 것이 한없이 행복했다.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자유를 주었다. 아무도 나에게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대에게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을 때, 그대는 침묵에 빠진다. 세상이 그대를 그대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제 그대 쪽에서도 아무런 기대가 없다. " (147p)

진정한 자유란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상태. 어찌 생각해보면 무섭기도 하고, 어찌 생각해보면 정말 너무나도 자유로울 것 같기도 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역할이 주어지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맺어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갖게 된다. 특히 자식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큰 편인 우리나라 부모들에 의해서 자식은 어쩔 수 없이 크나큰 기대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게 된다. 태어남과 동시에 생기는 필연적인 역할로부터 시작해 나이가 먹을수록 인간관계가 늘어날수록 우리의 역할은 늘어만 간다. 평생에 걸쳐 이 역할이 줄어드는 일은 별로 없는 듯하다. 이러한 역할 속에서 생기는 수많은 나에 대한 기대. 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나의 노력. 그 기대들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얻게 되는 괴로움과 고통. 심지어 누군가 나에게 "자네에 대한 기대가 아주 크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칭찬으로 느껴지지 않던가? 어찌보면 진정한 자유에 대한 오쇼의 통찰은 명쾌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서로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인지도...

이 시대의 자기계발

"서양은 지나친 과학으로 고통 받고 있다. 동양은 지나친 종교로 고통 받아왔다. 이제 우리는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인간 안의 두 가지 측면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새로운 인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다리는 예술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신인간은 신비가이며, 시인이며, 과학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 (487p)

그 동안 서양은 과학, 동양은 정신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어 왔다. 물론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다른 단어들은 많다. 오쇼의 말처럼 과학과 종교가 될 수도 있고, 이성과 감성, 지식과 지혜, 몸과 마음 등 서양과 동양을 대조적인 관점으로 설명하는 단어는 수도 없이 많다. 여기서는 오쇼가 사용한 단어를 사용하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그야말로 자기계발이 붐이다. 서점가에는 언제나 자기계발 서적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무엇이 됐건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 오쇼은 인간은 먹고살기 힘든, 즉 의식주가 곤란한 수준을 넘어서면 영적 성장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훨씬 풍요로운 사회가 되어서일까? 꼭 영적성장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저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다. 더 건강하고 멋진 몸을 가져야 하고, 더 많이 알아야 되고, 더 많은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듯하다.

우리는 무엇이 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는 것일까? 오쇼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인류는 종교와 과학을 인간 안의 두 가지 측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 한다. 그가 말하는 종교는 동양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고, 과학은 서양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동서양을 바라보는 수많은 대조적인 관점을 두루 받아들이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간이 필요하다는 뜻을 것이다. 매일매일 성장을 꿈꾸는 현대인들이 가슴깊이 새겨두어야 할 점이라 생각된다. 인간의 진정한 성장이란 어느 한 부분만의 성장을 통해 이루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7가지 습과"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 또한 그의 책에서 인간의 성장을 신체적, 사회적, 정신적, 영적인 4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에 대한 균형있는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엔 종교와 과학은 그저 대립의 대상이었다.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쫓는 허황됨으로 여겨졌고, 과학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단순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이 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듯하다. 종교와 과학은 이제 더 이상 싸움을 그만두고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쇼의 말처럼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간은 종교와 과학, 그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는 이 둘을 하나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 힘쓰고 있는 우리들을 위한 진정한 자기계발은 무엇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서운 책

이런 책을 읽는 것은 무서울 때가 있다. 실제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섬뜩한 느낌이랄까? 내가 알고 있는 이 세상,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가치, 진리라고 생각했던 모든 지식과 믿음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산산히 깨부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쇼 자신도 자신의 메시지를 듣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쇼를 비롯한 여러 영적 구루가 경험한 그 깨달음의 상태는 무엇일까? 이 세상, 이 우주는 정말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정말 누구인가? 이런 수많은 질문들을 가슴속에 남긴 채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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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72 #60.영혼의자서전(하)-카잔차키스 미나 2012.06.26 3898
771 눈물나게 좋은 책 [4] 한명석 2006.10.01 3899
770 -->[re][역사속의 영웅들] [2] 이선이 2005.04.05 3901
769 24.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 file [2] 미나 2011.10.09 3901
768 데카메론 -Giovanni Boccaccio- file [2] [1] 장재용 2012.06.04 3901
767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어니언 2014.04.28 3901
766 북리뷰 41 : 죽어가는 자의 고독 - 노베르트 엘리아스 [3] 범해 좌경숙 2010.01.26 3902
765 [30] 자연 속에서 [걷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 [4] 校瀞 한정화 2007.10.31 3903
764 7. 낭만적인 고고학산책_발췌 맑은 김인건 2010.04.19 3906
763 [리뷰] <서양의 지혜>_버트란드 러셀_두번째 file 양경수 2011.07.31 3906
» [13] 오쇼라즈니쉬 자서전 : 길은 내안에 있다 최지환 2008.06.29 3906
761 #9 데카메론 -조반니 보카치오 북리뷰 file [1] 샐리올리브 2012.06.04 3908
760 [11] 쉽게 읽는 백범일지 file 2008.06.16 3909
759 #15. 문명이야기(르네상스5-1)_윌듀런트_Review file [13] 샐리올리브 2012.07.17 3909
758 데카메론_보카치오 file 콩두 2012.06.04 3911
757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종종 2014.09.21 3913
756 지중해기행-니코스 카잔스키지음 id: 깔리여신 2013.03.25 3917
755 [38]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놀드 하우저 교정 한정화 2007.12.29 3918
754 강의 백일몽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정재엽 2006.10.13 3920
753 북리뷰 18 - <부의 미래> 앨빈 토플러 [1] 범해 좌경숙 2009.08.24 3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