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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6일 08시 33분 등록

북리뷰 41: 죽어가는 자의 고독 . 노베르트 엘리아스. 김수정 역. 문학동네. 1996

                원제: Uber die Einsamkeit der  Sterbenen.  Norbert Elias. 1982.



***저자에 대하여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1897년 6월 22일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출생하여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의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1924년 <이념과 개인>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유태인이었던 그는 1933년 등장한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파리, 영국 등지를 전전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표적 저작 <문명화 과정에 관하여>를 출간하였으나 시대의 질곡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했다. 1969년 그의 주요 저작들이 복간되면서 독일과 네델란드, 프랑스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독특하고도 포괄적인 학문적 시각을 보여줌으로써 파슨스 이후 정체된 사회학계에 새로운 방향타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7년 아도르노 상을 수상한 그는 뒤늦은 학계의 조명에도 불구하고 이미 현대 사회학의 거장으로 확고히 자리를 굳히고 있다. 1990년 8월 1일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했다.

저서: <이념과 개인> 1924 :교수자격 청구논문
        <궁정 사회> 1933완성. 1969 출간  
        <문명화 과정>1,2권 1939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1970
         <죽어가는 자의 고독> 1982
         <인간의 조건> 1985
         <사회 참여와 거리두기> 1987
         <인간의 운명> 시집, 1987

***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차례

1. 죽어가는 자의 고독
2. 노화와 죽음 : 몇 가지 사회학적 문제들
해설/ 김수정 현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문명화 과정
노베르트 엘리아스 연보

1.죽어가는 자의 고독

하나
7. 사람은 죽기 마련이라는 사실, 사랑하는 사람마저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처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삶의 종말은 하데스나 발할라, 지옥이나 천국과 같은 내생의 관념을 통해 신화화 될 수 있다. 이것은 인생의 유한성에 대처하려는 인간들의 노력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다.

8.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죽어간다. 즉 많은 이들이 병약해지고 노쇠한다. 물론 임종하는 마지막 순간이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이별은 그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다. 종종 노쇠는 그 병약함으로 인해 삶과 다른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서서히 쇠락해간다는 사실이 그 사람들을 삶으로부터 격리 시키는 것이다.

10.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의 문제이다.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구상의 많은 필멸의 피조물 중에서 죽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 존재뿐이다. 그들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로병사의 존재이다. 그러나 모든 생명 중에서 인간만이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12. 인간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죽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인간만이 죽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죽음에 대해 알고 있기에 죽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13.죽음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변화한다. 즉 그것은 단계마다 다르다. 한 단계 내에서도 집단에 따라 차이가 나기도 한다. 죽음의 관념과 장례의례 자체는 사회화의 한 측면이다. 공통의 관념과 의례는 사람들을 통합한다.

16. 삶은 점차 길어지고 죽음은 훨씬 더 연기되었다. 죽음의 장면이나 시체는 이제 흔하게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정상적인 삶의 도정에 있다면 죽음을 망각하고 살기가 쉽다. 때로 사람들은 죽음이 “배제되었다”고들 말한다,


17. 어린 시절의 경험과 환상은 죽음에 근접하고 있을 때 그 사실에 대처하는 방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평온하게 기다린다. 다른 이들은 죽음에 대해 강하고도 지속적인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며 그 공포를 표현하지 않거나 표현할 수 없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19. 죽음의 공포와 죄의식의 결합은 아주 오랜 옛날의 신화에서도 발견된다. 낙원에서 아담과 이브는 영생의 존재였다. 유일한 남성이었던 아담이 신성한 아버지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신은 그들을 죽는 존재로 만든다. 이러한 억압된 죄의식, 환상이 완화되거나 없어질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부담이 덜어질 것이다.

20. 죽음은 인간 생활에서 가장 큰 생물적 사회적 위험이다.


23. 확실한 점은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이 현재보다는 중세시기에 보다 공공연하고 빈번하게 말해졌다는 점이다. 이 시기의 대중문학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중의 한 작품을 예로 들면, 세 명의 사람들이 지나갈 때 사자가 말을 건넨다.

“현재의 당신들의 모습이 예전의 우리의 모습이었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미래의 당신들의 모습”

다른 시구에서는 삶과 죽음이 논쟁을 벌인다. 삶은 죽음이 그녀의 자녀들을 짓밟았다고 비난한다. 죽음은 그의 성공을 자랑스러워 한다. 현재와 비교해 볼 때 그 당시의 죽음은 젊은이에게나 죽어가는 이들에게 모두 덜 은폐된 형태로 노출된 미만한 현상이었으며 훨씬 친숙했다. 그러나 이것이 죽음이 평화로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4. 14세기에 죽음에 대한 공포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도시가 성장하고 역병이 강력한 힘으로 전 유럽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 했다.

과거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끔은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태도이다. 헨리 8세의 재무 장관이었던 토마스 모어는 죽어가는 아버지- 평생을 통해 경애와 존경을 다해 마지않았던 그의 아버지- 의 침상에서 그를 안고 입에 키스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병상을 둘러싼 후손들이 죽어가는 노인을 조롱하고 비웃는 경우들도 있었다

26. 대체로 중세 사회에서의 삶은 짧았고 지금과 비교할 때 위험은 통제 불가능했고 죽음은 고통스러웠으며, 사람들은 죄의식과 사후의 처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다섯
28. 문명화 과정의 전개 속에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 죽어가는 방식 자체는 다른 모든 것들과 더불어 변화를 경험했다.

옛날에는 죽어가는 것이 오늘날보다 상당한 정도로 공개되어 있었다. 그 당시 조건으로 보았을 때 다른 방식으로 죽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혼자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출생과 사망은 훨씬 공개적이었고 따라서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훨씬 사회적이었었다.

오늘날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성인들이 아이들에게 죽음에 관한 사실들을 알려주기를 꺼려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개인적 사회적 수준에서 죽음에 대한 억압의 징후로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29. 아이들의 반응은 나이와 인성구조에 따라 다르지만 그 경험이 그들에게 심대한 심리적 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당연한 과정으로서 죽음이라는 단순한 사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삶의 유한성에 대해 익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여섯
32. 오늘날 우리 자신의 인성구조에서 그 표현을 발견할 수 있는 문명화 과정상의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어둠속을 헤매면서 과거를 해석할 수도, 과거의 역사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문명의 단계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우리가 가지고 잇는 수치와 혐오의 역치점이 단계 특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에만, 우리는 다른 시대 사람들의 행동과 작품들에 대해 공평해 질 수 있을 것이다.

34.      “ 무덤, 그아름답고 은밀한 장소
           그러나 그곳에서는 아무도 그대를 포옹하지 않으리 ”

              -Andrew Marvell, <그대 수줍어하는 정부에게>

35. 오늘날은 사정이 다르다.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도 죽음은 사회생활의 배후로 밀려났고, 위생적으로 제거 되었다. 역사상 그 어떤 선례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체는 악취없이 신속하게, 죽음의 병상에서 무덤으로 너무도 완벽하게 기술적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일곱
35. 우리 시대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각별하다고 할 당혹감은 죽음과 죽어가는 사람이 사회생활로부터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다른 이들로부터 철저히 격려한다는 사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사람들은 마땅히 할 말을 알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는 어휘는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고통의 감정이 앞서서ㅡ 언어를 억제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괴로운 경험일 것이다. 여전히 살아 숨쉬는데도 그들은 이미 버려진 것이다.

36. 어려운 삶의 상황에 대처하는 것을 보다 쉽게 해주었던 예전의 의례적 공식들은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낡고 진솔하지 못한 것으로 비친다. 현재의 감정과 행동 기준을 반영하면서 삶 속에서 반복되는 위기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의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40. 현 단계를 구성하고 있는 근본적인 삶의 방식은 강력하고 자연 발생적인 감정을 억누르는, 상대적으로 높은 정도의 감정적 유보를 요구하고 또 만들어 낸다. 강한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와 그 장벽을 넘는 경우란 매우 에외적인 상황에서뿐이다.

41. 병원에서의 제도화된 일상만이 죽어가는 상황에 대한 사회적인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틀은 감정이 배제되어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을 더욱더 고립무원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42. 현재 죽어가는 사람과 가까운 이들은 그들이 사랑하고 또 걱정한다는 증거를 보임으로써 죽어가는 사람에게 격려와 위안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결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죽어가는 사람의 손을 쥐어주거나 쓰다듬거나 변치않는 사랑과 보호의 느낌을 주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하지 못하는 것이다. 강력하고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감정 표현을 금하는 문명의 금기가 그들의 혀와 손을 묶어 놓았다.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반쯤은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위협적이고 전염적인 어떤 것으로 느끼면서 부지불식중에 죽어가는 사람들로부터 물러선다.

그러나 친한 사람과 헤어질 때처럼 마지막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에누리없는 애정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신체적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것과는 별도로, 남아있는 사람이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일 것이다.

여덟
42. 죽어가는 사람들로부터 살아있는 자들의 물러섬, 그리고 그 주위로 점차 번지는 침묵은 임종 이후에도 계속된다. 시신의 처리와 묘지관리에서 그 점이 잘 나타난다. 오늘날 이들은 대부분 가족, 친지, 친구들의 손을 떠나 돈을 받고 일하는 전문인의 손에 맡겨져 있다.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이 아직 눈에 선한데도 그들에게 시신과 묘지는 별 의미를 갖지 않는다.

44. 묘지가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무서운 연상들은 '도시 녹지 지역'이라는 간단한 말로 방지된다.

45. 죽은 자를 추모하는 장소가 진정 산 자를 위한 공원이 된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묘지관리인이 전달하고 싶어하는 이미지이다.

46. 장례식과 무덤을 둘러싼 경건성, 무덤 주변에는 정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묘지에서는 목소리를 낮추어야 한다는 관념, 이 모든 것은 죽은 자와 산 자를 격리시키는 형식이자 죽은 자들의 인접성,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위협을 가능한 멀리 하려는 수단이다. 죽은 자를 존경하자는 것도 산 자들의 요구이고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살아있는 이들은 죽음에 대해 그리고 죽은 자에 대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자를 존경하는 것은 종종 산자들의 권력을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죽은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산 자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47. 죽어가는 것에 대한 공포는 분명 죽어가는 자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의미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파괴되고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선 세대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자신들의 삶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에서도 의미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다음 세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결정할 일이다.

48. 오늘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전적으로 별개인, 독립적이고 고립된 존재로 간주한다. 고립된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이해 관심을 게속 추구해 가는 것은 한 개인이 해야 할 가장 분별력있는 의미있는 일 인 것처럼 보인다.

50. 옛날에는 죽음에 대한 지식에 대처하는 수단으로 집합적, 소망적 환상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그것은 오늘 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내세에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집합적, 소망적 환상에 기대어 많이 완화되었다. 사람들이 가진 공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주요한 권력원 중의 하나가 되면서 이것을 바탕으로 수많은 지배가 정당화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55. "할아버지는 천국에 계시단다." "엄마는 하늘에서 너를 굽어보고 계신단다." "네 동생은 천사가 되었단다." 이 에는 인간 존재의 되돌이킬 수 없는 유한성을 집합적 소망의 관념으로 은폐하는, 특히 어린이들이 알지 못하게 감추는 경향, 즉 철저한 사회적 검열을 통해 확실히 은페해 버리려는 경향이 우리 사회 속에 이미 안착해 잇음을 보여준다.

열하나
59. 죽음이라는 문제에 관한 한, 죽음을 특정한 영역에 가두어놓고 고립시키고 숨기려는 경향은 19세기 이래 크게 바뀌지 않았으며, 아마도 더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 죽음과 마주쳤을 때 보이는 방어적 태도와 당혹감은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이 성생활의 특정 측면과 직접 대면했을 때 느끼는 반응에 비견할 만하다.

60. 죽음의 위험은 총체적이다. 죽음은 한 인간의 절대적 종말이다. 따라서 죽음을 탈신화화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 더 커진 것은 체감된 위험의 크기가 더 커진 데에도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성찰할 때 명심해야 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경악이 실제의 죽음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미리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라는 점이다. 지금 현재 내가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 공포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더이상 여기에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어떤 공포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공포와 두려운은 살아있는 사람의 의식 속에 있는 죽음의 이미지에 의해서만 불러 일으켜진다. 죽은 자에게는 공포의 기쁨도 존재하지 않는다.

61. 모든 개인은 공통의 사회적 패턴을 습득한다. 사람들이 죽음과 맺는 관계에서 결정적인 것이 단지 죽음이라는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라 진화과정의 특정 단계에 고유한 죽음의 관념과 그와 결부된 태도라고 한다면 죽음은 사회학적 문제로 더욱 뚜렷이 부각될 것이다.

63. 선진 사회에 만연된 죽음의 이미지는 이 같이 안도감을 주는 과학적 지식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음이 닥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종말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을 완화시킬 수 있다.

이전과는 달리 오늘날, 죽음은 의사의 치료, 식이요법, 약물치료에 의해 연기될 수 있게 되었다. 만병통치약과 젊음의 샘에 대한 꿈은 매우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야 그것은 과학적 혹은 의시과학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오늘날 죽음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앎은 의학과 보험에 의해 죽음을 연기시키려는 시도와 이것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뒤덮여있다.

열셋
67. 꽤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시고 및 살인 통계를 차치하더라도 , 집단 간 갈등이 폭력적 해결로 치닫는 경우가 우리 시대에 늘어나고 있다. 그 갈등 당사자들이 적을 죽이고 자신의 집단 구성원을 희생해야만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와 같은 생사를 건 전투는 평화시라 할지라도 대개 계획, 준비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 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타인을 죽이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고 엄중한 처벌을 받는 상황에서부터 국가나, 당, 혹은 기타 집단에 의해 타인의 살상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요구되는 쪽으로 상황이 바뀌었을 때 사람들의 심리적 상태가 변화한다는 점이다.

68. 이 문제에 대한 전형적인 대답인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라는 개인의 양심 구조가 국가의 외적 강제 기제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열넷

68. 개인의 기억 속에 있는 죽음의 이미지는 그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 인간 존재에 대한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기본적으로 독립된 개별 존재, 창문 없는 단자, 고립된 ‘주체’로 간주한다. 이 경우 다른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 전체 세계는 ‘외부 세계’로 위치지어진다. 사람들의 ‘내부 세계’는 이 ‘외부세계’로부터 단절되어 있고,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의해 타인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것과 같다.

69. 자신을 체험하는 이 특수한 양식은 문명화 과정의 최근 단계에 특징적인 폐쇄인(Homo clausus)이라는 자기 이미지로서, 이것은 마찬가지로 특수하다고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견의 방식 그리고 죽어가는 실제 상황에서의 행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러나 죽어가는 것에 대한 연구 -여러모로 사회적 억압과 연관이 있는 연구-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죽어가는 사람이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경험과필요가 그들의 삶의 방식과 자기 이미지와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가라는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71. 공통의 언어를 말하는 인간 집단은 의미 문제를 논하는 모든 토론의 출발점이자 기본 모델이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인간의 독특한 특징이며 의미의 추구만큼이나 독특한 현상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한 인간이 만들어낸 음성 패턴은 다른 인간들에게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그 음성 패턴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발신자와 수신자 모두 동일한 기억영상 혹은 동일한 의미를 특수한 음성 패턴의 체계와 결합시킬 수 있는 경우에만 기능하다. 이 가장 기본적인 ‘의미’ 의 사회적 특성을 분명히 볼 수 있다.

72. 각 개인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개별적으로 그 의미를 변용할 수 있지만 너무 멀리 나간다면 현재 혹은 미래에 의사소통 능력을 상실하고 의미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73.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삶을 일컬어 ‘의미있다’ 혹은 ‘의미없다’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와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지는 중요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인간 존재는 ‘외부의’ 식물과 동물에 의존해서 살아가며, ‘외부의’ 공기를 마시고 ‘외부의’ 빛과 색깔을 본다.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는 성원들은 종종 자신의 ‘내적 자아’를 전적으로 이 ‘외부세계’와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경험한다. 사실 강력한 철학적 전통이 이러한 환상적 이분법을 정당화한다. 이것은 의미에 대한 논의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의미’는 대개 닫힌 개인의 ‘내면 세계’로 부터 온 메신저로 간주되었다.

74. 이로부터 전적으로 자율적인 존재라는 개인의 왜곡된 자기 이미지가 나오게 되고, 이것은 외로움과 고독함과 같은 매우 실제적인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현대 사회에 만연된 고도의 개인주의에 특징적인 것이다. 모든 영역에 걸친 자기 통제가 이 사회에서 자라난 사람들에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것은 타인과 사물을 향한 정감과 자연스러운 충돌을 봉쇄하고 그 결과 그들로부터 개인을 격리시키는 장벽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지금까지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라는 문제는 주로 산 자의 태도와 관련해서 고찰되었다.

75. 우리 사회에서는 죽어가는 사란들이 산 자에 대해 느끼는 당혹감과 침묵을 지적하지 않으면서 단지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산 자의 태도만을 문제 삼아 문명화 과정이 빚어낸 특수한 혐오감과 침묵을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열다섯
76.       “나는 가진 것이라고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포도주 한 병을 가지고 있네
              그거라면 친구들과 즐길 수 있겠지
              죽을 때는 외로이 혼자라고 할지라도”

이 ‘외로이’ 라는 표현, 즉 다른 이들과 어울려 즐겁게 지낼 수 있지만 죽을 때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관념은 오늘날 너무 자명한 것이어서 이 시 속에서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공통적인 인간 체험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관념은 결코 인간 발전의 모든 단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왜 죽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에 비한다면 그것은 훨씬 덜 보편적인 것이다.

77. 이 ‘외로이’ 라는 단어는 상호 연관된 복잡한 의미들을 담고 있다. 그것은 죽어가는 과정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 죽음으로 인해 나 자신의 소우주, 그것과 결부된 독특한 기억, 나만이 알고 있는 감정과 체험, 나 자신의 지식과 소망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 죽어가는 과정에서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어 혼자 남겨질 때의 느낌을 의미하기도 한다.

외로이 죽어간다는 모티프는 이전 시기에도 강조되어 나타난 적이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 그 어느 때 보다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80. 한 인간이 죽는 방식은 그가 인생에서 세운 목표에 얼마나 가까이 도달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설정한 과제를 얼마나 실행할 수 있었는지에 적지 않게 의존한다. 한 인간의 죽음 의 방식은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충만하고 의미 있었던 것 (또는 부질없고 의미 없는 것)으로 느끼느냐에 달려있다.

83. 만약 죽어가는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데도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진정 외로운 것이다.

외로움(Einsamkeit)이라는 개념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타인을 향한 사랑이 일찍이 상처입고 파괴되어 나중에는 그러한 감정을 가지려해도 이전에 받았던 충격이 떠오르고 그 사랑의 욕망이 그에게 주었던 고통을 잊을 수 없어 타인에 대한 사랑이 불가능한 사람은 외롭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의 상처가 컸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이것이 외로움의 한 형태다.

외로움의 또 다른 형태는 좁은 의미에서 사회적인 것이다.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장소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외롭다. 혼자 남겨진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그 다른 이들은 그에 대해 어떤 정서적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84.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더라도 그 자신이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을 때 그는 외롭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 한 인간과 놓은 마지막 감정의 다리를 끊어버렸던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길거리의 부랑자들, 길에서 싸구려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독재자의 감옥이나 고문실에 갇힌 사람들도 이와같이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열여섯
85. 죽음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기나긴 꿈속으로 떠나가고 세상은 사라진다. 두려운 것은 죽어가는 고통이며, 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산 자의 상실감이다.

86. 아마도 우리는 보다 공개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죽음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설사 그것이 더 이상 죽음을 신비스러운 것으로 제시하지 않게 되더라도 말이다. 죽음은 숨겨야 할 어떤 비밀도 가지지 않을뿐더러 그를 향한 문도 열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열어야 할 문이 없다. 그것은 한 인간의 종말이다. 남는 것은 그 혹은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것, 즉 산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다.

사람들이 죽음을 더 이상 배제하지 않고 인간 삶의 총체적 구성인자로서 인간의 표상 속에 끌어들일 때 스스로를 외로운 존재로 느끼는 폐쇄인(homo clausus)이라는 에토스는 급속히 약화될 것이다.

인류가 사라진다면 인간이 이루었던 모든 것, 세속적 혹은 초자연적 믿음체계를 비롯해 사람들이 아웅다웅하고 생명을 바치기까지 했던 모든 것들은 다 부질없는 것이다.

2. 노화와 죽음 : 몇 가지 사회학적 문제들

88. 정상적인 연령 집단의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노화현상에 공감하기 어렵기 마련이고 또 이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근육조직이 점점 굳어지고 지방이 늘어날 때의 느낌, 연결조직이 느슨해지고 세포재생이 둔화될 때의 느낌이 어떠할 지 알 수 있는 어떤 체험적 기반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89. 내 몸, 지금은 활기차고 가끔은 기분 좋은 느낌으로 가득 찬 이 육체가 느릿해지고 쉬 피로하며 어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다시 말해, 노인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과의 동일시는 다른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은 자신이 늙고 죽을 것이라는 관념을 극구 부정하려 하며 그에 저항한다.

94. 오늘날 산업화된 사회에서 국가는 모든 시민들을 명시적인 물리적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며 나이든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고 허약해짐에 따라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나아가 자신들의 가족과 친지로부터 더욱 격리되었다. 서로 모르는 노인들이 모여서 그들끼리 함께 사는 기관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95. 그래서 많은 양로원들이 외로운 사막과 같은 것이다.

99. 생물학적 지식의 진보로 인하여 개인의 기대 수명이 상당한 정도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학이 진보하고 삶을 연장하고 노화와 죽음의 과정이 주는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증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입증해 주고 있다.

102.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다. 학습기간은 길고 , 중대한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그 학습과정에는 자기 파괴의 위험, 스스로의 삶의 조건을 없애버릴 수도 있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107. 평균 기대수명이 37세 혹은 40세인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은 평균 수명이 거의 70세인 사회에서 보다 훨씬 가까운 것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젊은이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해설
현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문명화 과정

116.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은 두 권으로 이루어졌는데, 제 1권의 부제는 ‘서구 세속 상류층의 행동의 변화’이며 제 2권의 부제는 ‘사회변동-문명이론 개요’이다.

119. 현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죽어가는 자는 외로움으로,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낯섦과 당혹스러움으로 대별된다. 또 현대인들의 죽음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관여하는 정도도 현격히 줄었다. 즉 현대인들의 죽음은 ‘외로운 ’죽음이며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죽음은 고립되게 된 것이다.

122. 문명은 죽음을 배제한다. 그것도 위생적이고 신속한 방식으로. 죽음이 배제되지 않은 적은 없었을 것이다.

134. 먼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죽음을 둘러싼 위험한 환상들에 대해서 어른들이 인간 존재의 유한성이라는 생물학적 사실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위생적인 환경보다는 정서적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



*** 내가 만일 저자라면

이 책은 매우 인상깊게 내게 다가온 책이다. 우선 학교 도서관에서 죽음에 관한 자료를 찾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작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매우 단순한, 일견 평이한 제목이 시선을 끌어당겼고, 하드 카버의 142쪽의 책의 두께가 시집처럼 보여서 잠언서 같기도 했다. 게다가 손에 들고 읽기 편하게 책의 키가 약간 컸는데 내게는 그 표지의 베이지 색깔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겉모습이 우선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반납하고 다시 빌리고 하는 사이에 그만 책에게 정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갖고 싶었는데, 절판이다. 그래서 찬찬히 읽어 내렸는데, 읽다보니 필립 아리에스와 죽음을 보는 시각이 조금 달랐고 다른 책에는 사람들이 감동해 마지않는 아리에스의 중세의 죽음에 대한 찬탄을 비판한 유명한 사람으로 이 엘리아스의 이름이 불리어지고 있었다.

그는 이 책을 85세에 썼고 93세까지 살다 갔으니, 어쩌면 이 책은 그가 노학자의 시선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으면서 보았던 ‘죽음’을 담담하게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아마 그래서 차분한 어조와 넓고 깊게 조망하고 있는 것이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그는 이 책 속에서 그를 초대했던 젊은 교수 부부가 그가 그 나이에도 앉은뱅이 의자에서 가뿐히 일어나는 것을 보며 휘청거렸던 다른 노교수의 예를 들며 깔깔 대었던 것을 써 놓았다. 그리고 그를 인터뷰하러 왔던 스무 살의 한 기자가 그리 유쾌하지 않은 표정으로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희한한 주제에 대해 쓰시게 되었나요?” 라고 물었다고 써 놓았다. 물론 그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로써. 그런데 나는 이 장면들을 섬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가 또한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재미가 있었다.

이 책은 사실 두 개의 작은 책을 합쳐서 번역 출간한 책이었다.

2부의 ‘노화와 죽음’은 1부를 발행한 후 1983년 10월 바트 살주플랜에서 열린 의학 대회에서 행했던 강연문을 책으로 발간한 것이다.

그러니 책의 제목이 명료할 수밖에 없고 일관된 이론을 전개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개인사적으로 결코 행복하다거나 원만하다고 할 수 없는 역정을 걸었던 학자였다. 20세기 양대 대전을 독일의 유태인으로서 경험해야 했고, 독일을 떠나 망명한 영국에서는 국외자의 삶을 살아야 했으며 육순이 될 때까지도 아카데미에서 아웃사이더로 있어야 했다. 그러한 파란 만장한 인생을 겪었던 한 인간이 20세기의 끝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초연하리만치 침착하게 서구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연관된 문명의 공과를 차분히 따져보고 있다는 것이 이미 놀랄만한 것이고 묘한 설득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웬지 책을 읽고 나서 이 사람의 발자취를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나는 책이었다.

책을 쓰려고 하는 입장에서 이 정도의 분량에 여운을 강하게 남기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메시지는 “정서적으로 죽어가는 자의 고독을 함께 나누라”는 것인데, 퀴블러 로스는 똑 같은 말을 “죽어가는 사람들의 옆에 있는 것은 많은 깨달음을 가져다줍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체험 끝에 전해주는 말이다. 그래서 정말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독한 침상을 지켜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인류애일 것 같은데, 좀 더 구체적인 어떤 방법들을 더 찾아봐야할 것 같다. 이 책의 작가의 시선의 초연함 때문이었을까...나는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아름답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한 어떤 느낌이 올라왔는데...윤곽이 잡히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일까? 단식 이틀째의 '헛것 '이 벌써 보인 것일까? 아니면 너무  근원적인 성찰을 하려고 해서인가? 이 모든 것의 원인이 혹시 "밥"일까?  좀 두고보아야 하겠다.       F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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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1.26 08:40:56 *.142.204.124
단식 제1일 입니다

집 밖에서 각기 다른 컴퓨터로 작업중이어서
변신, 합체 과정이 필요합니다.

아직 읽지 마시구요...조금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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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0.01.27 06:23:25 *.160.33.217

범해좌샘 범범범
좌샘은 너무 무거운 책만 읽나봐.   죽음은 아마 포도주 처럼 멋진 것일텐데.  꼴깍.  끝 
그래도 댓글처럼 가벼우니 이제 도샘이 되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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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8 22:54:55 *.67.223.154
부지깽샘 포도주샘

포도주 마실때마다 꼴깍. 끝
맛있는 포도주는 마실때마다 끝없이 꼴깍 꼴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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