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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7일 08시 11분 등록

난중일기

10기 김정은

 

난중일기,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민음사

 

1. 저자에 대하여

 

이순신 李舜臣 (1545~1598)

 

이순신 연보

1545 (1) 서울 건천동에서 이정의 사 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남. 어려서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했지만 양반집안이라 글공부가 우선이라 여김. 집안 살림이 어려워 외가인 충남 아산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절친 유성룡과 헤어짐.

 

1566 (22) 본격적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함. 당시로는 꽤 늦은 시작임. 결혼해서 이듬 해 아들 회가 태어남.

 

1572 (28) 무과 시험을 보았는데 말에서 떨어져 다리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낙방함. 다음 무과 시험이 있을 때까지 3년을 기다리기로 함.

 

1576 (32) 2월 드디어 무과에 급제함. 함경도 동구비보의 권관이 됨. 다음 해 셋째 아들 면이 태어남.

 

1579 (35) 2월 서울에서 훈련원 봉사, 10월 충청도에서 충청병사의 군관, 이듬해 전라도 발포의 수군 만호를 지냄.

 

1582 (38) 군기 서익의 거짓 보고로 파면되었다가 다시 훈련원 봉사로 복직함.

 

1583 (39) 10월 건원보 권관이 되어 오랑캐의 추장 울지내를 사로잡아 11월 훈련원 참군으로 승진함.

 

1584 (40)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충청도 아산으로 내려가 삼년상을 치름.

 

1586 (42) 함경도 조산보의 만호가 되었다가 다음해에 사슴섬 둔전관을 같이 맡게 됨. 이때 오랑캐를 물리쳤으나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파직되어 백의종군을 하게 됨.

 

1589 (45) 12월 정읍 현감이 됨.

 

1591 (47)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 좌수사에 임명됨. 무과에 급제한 지 15년 만에 처음으로 높은 벼슬을 하게 되었음. 이 때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전쟁에 대비함.

 

1592 (48) 4월 거북선이 완성될 즈음 임진왜란 발발. 5월에 처음으로 수군을 이끌고 목포로 나가 40여 척을 격파하는 승리를 거둠. 6월엔 당포에서, 7월엔 한산도에서, 9월엔 부산포에서 승리함.

 

1593 (49) 2월 웅포에서 승리를 거둠. 7월에 한산도로 수군 진영을 옮김. 8월에 삼도 수군 통제사로 승진함.

 

1594 (50) 3월 당항포 해전에서 왜선을 격파함. 10월 장항포에서 의병과 합동 작전을 벌여 왜적을 무찌름.

 

1595 (51) 일본과 명나라 사이 휴전이 성립. 휴전 2년 동안 내내 전쟁에 대비해 배와 무기를 만드는 등 바쁘게 움직임.

 

1597 (53) 1월 일본이 다시 쳐들어옴. 2월에 조정의 명령을 이기고 공격하지 않은 죄로 한양으로 잡혀가 감옥에 갇힘. 4월에 풀려나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어머니가 돌아가심. 7월에 원균이 크게 패하자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됨. 9월에 단 13척의 배를 이끌고 너거 율돌목(명량) 해협에서 일본의 공격을 물리치는 기적을 이룸.

 

1598 (54) 7월 명나라의 연합 함대를 이루어 도망치는 일본군을 공격함. 11 19일 새벽에도 노량에서 도망치는 일본 배를 맹렬히 추격하다 그만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돌아가심. 정조 임금 1793년 그 충성심을 높이 인정하여 영의정 벼슬을 받음. 친구인 유성룡과 같은 벼슬이 됨.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역자서문

 

6

충무공은 임진왜란에 미리 대비하여 그 전년(1591)부터 거북선 제조에 착수하고 군대를 정비하였다. 전쟁에 대한 신속 정확한 대비와 파악으로 작전하는 모습에서 충무공의 철저한 유비무환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빈틈없이 준비하라.

 

해제

11

이순신은 항상 미리 대비하는 정신으로 생활하였다. 임진년부터 최후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진영에서 보고 들은 여러 가지 사건과 문제들을 남긴 일기는 물론 나중을 위해 개인적으로 작성한 비망이지만, 내용은 주로 일신보다는 국가와 민중을 위한 것이었다.

크고 넓은 사랑은 가장 개인적인 기록 일기에서도 나타난다.

 

임진년 (1592)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67

우수사(이억기)가 오지 않으므로 홀로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새벽에 떠나 곧장 노량에 이르니, 경상 우수사 원균이 미리 만나기로 약속한 곳에 와 있어서 함께 상의했다. 왜적이 정박한 곳을 물으니, “왜적들은 지금 사천 선창에 있다.”고 했다. 바로 그곳에 가 보았더니 왜인들은 이미 뭍으로 올라가서 산 봉우리 위에 진을 치고 배는 산봉우리 밑에 줄지어 매 놓았는데, 항전하는 태세가 재빠르고 견고했다. 나는 여러 장수들을 독려하여 일제히 달려들며 화살을 비 퍼붓듯이 쏘고, 각종 총통을 바람과 우레같이 어지러이 쏘아대니, 적들은 무서워서 물러났다. 화살에 맞은 자가 몇 백 명인지 알 수 없고,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에 맞았고,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아 등을 관통하였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활꾼과 격군 중에서도 탄환을 맞은 사람이 많았다. 적선 열 세척을 불태우고 물러나왔다.

1592 5 29, 어깨에 맞은 탄환이 등을 관통했으면 얼마나 아팠을까? 자신의 신체에 물리적 상처는 작게 받아들인다.

 

73

지난 9월 유지 내용에 각 고을의 떠도는 군사와 침탈이 미친 독린들에게 일체의 세금을 면제하라.”고 간곡히 글을 내리셨으니, 백성을 곤경해서 해방시키는 일은 무엇보다도 급한 일입니다. 큰 적이 각 도에 가득하여 무고한 백성들은 몇 십 만 명인지 알 수 없지만, 모두 그 독해를 입었습니다. 종사와 도성도 보전할 수 없게 되어 이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노라면 애통한 마음은 불에 타고 칼에 베이는 것 같습니다.

자신 몸에 총상을 입었을 때보다 군사와 침탈에 의해 백성들이 곤란을 겪는 상황이 이순신 장군에겐 더 큰 아픔이다. 무고한 백성들의 곤경은 그의 마음을 애통하게 만들어 불에 데이고 칼에 베이는 것 같은 아픔이라 하였다. 자신이 입은 총상의 아픔보다 타인의 곤경이 더 큰 아픔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처지를 내 것 같이 생각하는 역지사지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나도 내 아이들이 아플 때, 내가 대신 아파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순신 장군의 사랑은 백성의 아버지로서, 자신의 개인적인 아픔보다 백성들의 아픔을 더 크게 느끼는 아버지의 큰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75

대저 변방의 중진을 한번 잃으면 그 해독은 심장부에까지 미치게 되니, 이것은 실로 이미 경험한 일입니다. 신의 어리석고 망령된 계책으로는, 먼저 전례를 따라 변방의 방어를 견고하게 한 다음 차쯤 조사하고 밝히어 군사와 백성의 고통을 구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가장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한 개인도 상처를 입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만약 한 개인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면, 상처가 생긴 순간, 응급처치를 잘 한다면 금방 나을 것이다. 나라를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사년 (1593)

만 번 죽어도 한 삶을 돌아보지 않을 계책을 내고 보니 발분한 마음 그지 없네.

 

80

이렇게 큰 적을 맞아 토벌을 약속하는 때에 술을 함부로 마셔 이 지경에 이르니, 그 사람됨을 더욱 말로 나타낼 수가 없다. 통분함을 이길 길이 없다.

나는 술을 일찍 배웠다. 아들 없는 집안에서 아버지는 나를 아들 취급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와 맞술을 마시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소주 한 잔씩 마셨던 술이 대학생이 되어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게 되자 오랜만에 만나 맞술을 하게 되면, 소주를 병으로 마시다가 양에 안 차서 댓병으로 가져다가 마시게 되었다.

아버지는 내가 술 마실 때, 자세를 흩뜨리지 않을 것, 웃지 않을 것을 강조하셨다. 한번은 술 마시다 기분이 좋아져 크게 웃다가 엄청 혼 난 적이 있다. 어쨌든 아버지와 함께 한 맞술은 내게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그 훈련 덕분에 나는 주사를 부리지는 않게 되었다.

나도 내 딸들이 얼른 성인이 되어 나와 맞술을 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

 

94

사또께서 미리 헤아려 명을 내리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어제 사또께서 해가 뜰 때 전쟁에 나아가 국가의 수욕을 참지 못하고 다시 군사를 일으켜 나라의 치욕을 전부 씻어 주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급급한 일에 무릇 혈기가 있는 자는 심력을 다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건만, 인심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대장의 명령은 오히려 신중히 하여 가볍게 내려선 안 될 것이니, 일이 비록 뒤의 것을 생략할 만큼 급속히 해야 할 것일지라도 인심과 형세를 살피고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숙고보다 행동이 먼저 인 나에게 꼭 필요한 말!

 

95

독한 왜적이 이동하여 침범하는 것은 촛불이 옮겨 붙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시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통곡할 따름이며, 노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분함과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고, 득실과 성패가 서로 이같이 멀기만 하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군사를 일으켜 국가의 치욕을 씻는 것이 지금에 급급한 일이긴 하지만, 오히려 신중히 하여 경솔하게 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형세를 살펴보니 근심에 괴로워하며 독해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96

지난번 교전할 때 격분하여 조심하지 않고 먼저 시석에 나아갔다가 거기서 탄환을 맞은 자리가 매우 컸습니다. 비록 죽을 만큼 다치지는 않았으나 어깨 앞 우묵한 곳의 큰 뼈를 깊이 다쳐 고름이 줄줄 흘러 아직도 옷을 입지 못하고 온갖 약으로 치료하지만 아직까지도 차도가 없어 또한 활시위를 당길 수 없으니 무척 걱정스럽습니다.

나라를 위해 힘쓰는 일이 이제 급급한 일이지만 몸의 병이 이렇게 되었으니, 북쪽을 바라보며 길게 탄식할 때면 다만 스스로 눈물이 드리울 뿐입니다.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끊임없이 아픈 것이로구나.

 

97

요행과 만일이란 실로 병가의 장구한 계책이 아닙니다.

 

105

오늘이 곧 어머니 생신이었으나 이 토벌하는 일 때문에 가서 축수의 잔을 올리지 못하니 평생의 한이 되겠다.

인간적인. 부모님 생신에 전화만 한 통 드렸던 것을 반성합니다.

 

108

달빛은 배에 가득 차고 홀로 앉아 이리저리 뒤척이니, 온갖 근심이 가슴에 치밀었다.

장군님께도 이런 면이…… 저와 잘 통하실 것 같으십니다. 달빛이 가득한 날은 온갖 근심 걱정을 안주 삼아 술 한잔 아니 할 수 없지요. 장군님과 한잔 하고 싶습니다!

 

125

밤 기운이 몹시 서늘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고 홀로 뜸 밑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130

비는 땅의 먼지를 적실 정도이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온종일 신음했다.

 

가을 기운 바다에 드니 나그네 회포가 산란해지고

홀로 배 뜸 밑에 앉았으니 마음이 몹시 번거롭다.

달빛이 뱃전에 들자 정신이 맑아져

잠도 이루지 못했거늘 벌써 닭이 울었구나.

 

잠 못 이룬 밤, 새벽은 밝아오고. 비 오는 밤, 달빛 밝은 밤, 바람 차가운 밤. 잠은 안 오고 한 잔 술 생각만. 한 잔 술과 함께 한 편의 시도 찾아온다.

 

133

새벽 꿈에 사내아이를 얻었다. 이는 포로로 잡혀간 사내아이를 얻을 징조이다.

근심이 많은 시기에는 꿈으로 계시를 얻곤 한다.

 

138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아 회포를 견디기 어려웠다.

달빛이 밝은 날, 감성도 충만해지는 이유는 뭘까.

 

146

유기는 문에 땔나무를 쌓아 두고는 파수꾼에게 경계하기를, “빠져나가다가 불리해지거든 즉시 내 집을 불사르고 적의 손에 들어가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갑오년 (1594)

작은 이익을 보고 들이친다면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155

새벽 꿈에 한쪽 눈이 먼 말을 보았다.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156

새벽 꿈에 좋은 말을 타고 곧장 바위가 첩첩인 큰 산마루로 올라가니 산봉우리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구불구불 동사로 뻗어 있었다. 봉우리 위에 평평한 곳이 있어 자리를 잡으려고 하다가 깨었다. 그것이 무슨 징후인지 모르겠다. 또 어떤 미인이 앉아서 손짓을 하는데, 나는 소매를 뿌리치고 응하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꿈을 많이 꾼다. 진짜 꿈이 무슨 징조를 알려주는 건가? 융 자서전에 이어,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꿈의 해석>을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160

“작은 이익을 보고 들이친다면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아직 가만히 두었다가 다시 적선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회를 엿보아서 무찌르기를 서로 작정하자.”는 것이었다.

 

171

술이 세 순배 돌자 원수사가 거짓으로 술 취한 체하고 광기를 마구 부려 무리한 말을 해 대니, 순무어사가 그 괴이함을 이루 다 말하지 못했다. 원 수사가 의도하는 것이 매우 흉악했다.

원균과 같은 존재를 잘 다루는 방법이 없을까. 관직이 높아질수록 원균과 같은 자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174

4 25일 밤새도록 앉은 채 앓았다.

4 26일 통증이 극히 심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쇠 팔, 무쇠 다리, 로케트 주먹을 연상시키는 이순신 장군도 앓는다. 그는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한심해진다. 

 

176

비가 계속 내렸다. 하루 종일 홀로 빈 정자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에 치밀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랴. 정신이 멍하기가 취중이고 꿈 속인 듯, 멍청한 것도 같고 미친 것 같기도 했다.

 

180

저녁에 겸사복이 유지를 가지고 왔다. 내용은수군의 여러 장수들과 경주의 여러 장수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예전의 폐습을 모두 바꾸라.”는 것이었다. 통탄하는 마음 어찌 다하랴. 이는 원균이 술에 취하여 망령된 짓을 했기 때문이다.

 

188

유 상(유성룡)이 죽었다는 부음이 순변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는 유 정승을 질투하는 자들이 말을 지어내 훼방하려는 것이리라. 통분함을 이길 수 없다.

장군의 절친 유성룡이 죽었다고 거짓 소문을 내는 이유는 이순신 장군이 슬퍼 앓아 눕기라도 바라는 심보인가. 도대체 이런 비열한 짓을 하는 자들의 속을 알 수가 없다. 이런 비열함이 인간의 본성 중 한 가지라면 이것들을 어떻게 가려낸단 말인가.

 

189

비가 계속 내렸다. 홀로 앉아 아들 면의 병세가 어떠한지 염려되어 글자를 짚어 점을 쳐 보니, “군왕을 만나 보는 것과 같다.”는 패가 나왔다. 아주 좋았다. 다시 짚어보니, “밤에 등불을 얻은 것과 같다.”는 패가 나왔다. 두 패가 모두 길하여 마음이 조금 놓였다. 또 유 상의 점을 쳐 보니, “바다에서 배를 얻은 것과 같다는 패가 나왔다. 또 다시 점치니,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패가 나왔다. 매우 길한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있었을 때, 가족이 그리울 때 혼자 점을 치곤 했었다. 예를 들어, ‘잘 지낼까?’하면서 동전을 던지는 방법이다. 동전의 뒷면이 나오면 잘 지낸다,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무슨 일이 있다 이다. 내가 미국에서 걱정할까 봐 가족들이 좋은 소식만 전해주었기에 스스로 점을 쳤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굉장히 잘 맞추기도 했다. 나를 유독 귀여워하셨던 외삼촌이 돌아가신 것도 그렇게 가족이 알려 주기 전에 미리 알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융의 자서전을 보면서 동시성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195

초하루 자시에 꿈을 꾸니 부안의 첩이 아들을 낳았다. 달수를 따져보니 낳을 달이 아니었으므로 꿈이지만 내쫓아 버렸다.

꿈이 참 재밌다.

 

 

200

아내의 병세가 매우 위중하다고 했다. 이미 생사가 결정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랏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른 일에 생각이 미칠 수는 없으나 아들 셋, 딸 하나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 원수사의 일은 매우 해괴하다. 내가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했다니, 이는 천 년을 두고 한탄할 일이다.

아버지로서의 이순신. 난중일기를 보면서 두 가지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나는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또 하나는 한 나라의 아버지로서. 가정과 나라, 두 가지를 두고 볼 때, 나라를 선택한 이순신 장군은 위대하다 할 수 있겠다. 현대 사회에서, 가정과 나라, 아버지로서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야 할 때, 나라를 선택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202

새벽에 비밀 유지가 들어왔는데, “수군과 육군의 여러 장수들이 팔짱만 끼고 서로 바라보면서 한 가지라도 계책을 세워 적을 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삼 년 동안 해상에서 있으면서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 여러 장수들과 맹세하여 목숨 걸고 원수를 갚을 뜻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만, 다만 험한 소굴에 웅거하고 있는 왜적 때문에 가볍게 나아가지 않을 뿐이다. 더욱이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초저녁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스스로 생각하니 나랏일이 위태롭건만 안으로 구제할 계책이 없으니, 이를 어찌하리오.

계책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을 먼저 하는 내가 배워야 할 점! 빈틈없이 준비하여 행동하는 이순신 장군을 본받자.

 

205

홀로 앉아 간밤의 꿈을 기억해 보니, 바다 가운데 외딴섬이 눈앞으로 달려와서 멈췄는데, 그 소리가 우레 같아 사방에서는 모두들 놀라 달아나고 나만 홀로 서서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이건 내가 꾸었던 꿈!

 

207

새벽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왜적을 칠 일이 길한지 점을 쳤다. “활이 화살을 얻은 것과 같다.”는 것이었고, 다시 점을 치니 산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219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고 안으로는 계책을 세울 기둥 같은 인재가 없으니 더욱 더 배를 만들고 무기를 다스리어 적들을 불리하게 하고 나는 그 편안함을 취하리라.

위인은 그릇이 크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나라도 자신처럼 생각한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움에 백 번 이기고,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한 번 이기고 한번 질 것이다. 나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할 것이다. 이는 만고의 변함없는 이론이다.

 

222

씁쓸히 바라보며

 

비바람 몰아치는 밤

맘이 초조하여 잠 못 이룰 적에

긴 한숨 거듭 짓노라니

눈물만 자꾸 흐르네

배를 부린 몇 해의 계책은

다만 성군을 속인 것이 되었네

신하는 오히려 부끄러운 빛 띠고

물고기 날새들도 슬피 우누나

나라의 다급한 형세에

누구에게 능히 평정을 맡기리오

배를 몰던 몇 해의 계책은

이제 성군을 속인 것이 되었네

중원 회복한 제갈량이 그립고

적 몰아낸 곽자의 사모하네

 

비바람 몰아치는 밤

마음이 초조하여 잠 못 이룰 적에

슬픈 마음은 쓸개가 찢기고

쓰라린 가슴은 살을 에는 듯

긴 한숨 거듭 짓노라니

눈물만 자꾸 흐르네

쓰라린 가슴은 쓸개가 잘리고

슬픈 마음은 살을 에는 듯

산하가 참혹한 빛을 띠고

물고기 날새들도 슬피 우누나

태평세월 이백 년에

화려한 문물은 삼천 가지

나라의 다급한 형세에

평정을 맡길 인재 없도다

여러 해 바다 막을 계책 세우노라니

중원 회복한 제갈량이 그립고

적을 몰아낸 곽자의 사모하네

 

장군이 쉰(50)에 쓴 시

이순신은 제갈량과 곽지의가 롤모델이었나 보다.

 

- 이순신 VS 제갈량 -

1. 시호는 충무忠武.

이순신은 충무공忠武公. 제갈량은 충무후忠武侯.

2. 쉰 넷에 사망.

제갈량은 181년 출생에 234년 사망. 이순신은 1545년 음력 3 8일 생이며 1598 11 19일에 사망.

3. 유명한 저서.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조선왕조실록>,<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 연구의 필독서다.

제갈랑의 <출사표出師票>는 그의 애국심과 충섬심이 절절이 묻어나오는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힌다.

4. 뛰어난 발명가.

이순신의 거북선, 제갈량의 목우, 유마, 제갈노 등

5. 경영의 귀재.

이순신은 정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병참을 해결함.

제갈량은 북벌 때 촉의 국력의 3~4배인 위와 맞서 싸워 우위를 점함.

6. 약한 몸.

<난중일기>에서 몸이 아프다는 기록이 많음. 총상과 고문 후유증.

제갈량은 잘 먹지도 않는데다 일은 혼자 다하는 스타일로 병사함.

7. 혹독하고 엄정한 군법.

 

차이점

이순신은 하삼도의 모든 수군 군권을 통솔하는 지위에 있었지만 제갈량은 촉의 승상으로 군권과 행정을 모두 책임지는 지위에 있었고, 이순신은 선조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했으나, 제갈량은 선주와 후주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음.

 

- 곽자의

곽자의(郭子儀, 697~781), 중국 당() 왕조를 섬긴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현종(玄宗)부터 숙종(肅宗), 대종(代宗), 덕종(德宗)에 이르는 4대를 섬겼으며, 안사의 난에서 큰 공을 세우고 이후로도 잇따른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냈다. 성당(盛唐)중당(中唐) 시기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그의 손녀는 훗날 헌종(憲宗)의 황후가 되기도 했다. (출처:위키백과)

 

을미년 (1595)

장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공로는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못했고,

입으로 교서를 외우고 있으나 군사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251

6 5일 나는 몸이 몹시 불편하여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았고 종일 고통스러워했다.

6 6일 몸이 몹시 불편하였다.

6 7일 몸이 몹시 불편하여 신음하며 앉았다 누웠다 했다.

아프다. 아프다니 나도 아프다.

 

258

이경에 바다의 달빛이 수루에 가득 차니, 가을 생각이 매우 어지러워 수루 위를 배회하였다.

 

264

이날 밤 희미한 달빛이 수루를 비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시를 읊었다.

 

270

선 수사(선거이)와 이별할 때 짧은 시 한 수를 지어 주었다.

 

북방에 갔을 때에 같이 힘써 일했더니

남방에 와서도 생사를 함께 하네

한잔 술 오늘 밤 달빛 아래 나누고 나면

내일은 이별의 슬픈 정만 남으리

 

이 시를 비단에 적었다.

 

병신년 (1596)

만일 서쪽의 적이 급한데 남쪽의 적까지 동원된다면

임금은 어디로 가시겠는가.

 

288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를 점쳤더니,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다시 점을 쳤더니, ‘군왕을 만나 본 것과 같다.’는 패가 나와 모두 길한 괘라고 기뻐하였다.

 

289

척자점을 쳐 보니바람이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또 오늘 길흉의 조짐을 들을지 점쳤더니,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 괘는 매우 좋다.

장군의 점괘는 좋은 징조만 나온다. 장군이 위인이 되어 길이 남을 운명이어서인가? 장군은 점괘를 잘 나오게 하여 마인드컨트롤을 한 것인가? 그저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인가?

 

302

조정에서 계책이 이럴 수가 있는가. 체찰사가 계책을 내놓은 것이 이렇게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단 말인가. 나라의 일이 이러하니 어찌할 것인가.

 

307

이날 밤에 식은땀이 등을 적셔서 옷 두 겹이 다 젖고 이부자리까지 젖었다. 몸이 불편했다.

 

317

밤이 깊도록 이들을 즐겁게 뛰놀게 한 것은 굳이 즐겁게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랫동안 고생하는 장병들에게 노고를 풀어 주고자 한 계획이었다.

재충전의 시간

 

328

새벽 꿈에 어떤 사람이 멀리 화살을 쏘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갓을 발로 차서 부수는 것이었다. ‘화살을 멀리 쏜 것은 적들이 멀리 도망하는 것이요. 삿갓을 발로 차서 부순 것은 삿갓이 머리에 써야 할 것이나 발로 걷어 채인 것이니, 이는 적의 괴수에 대한 것으로서 왜적을 모조리 무찌를 징조라 하겠다.

멋진 꿈에 멋진 꿈 해석

진짜 꿈으로 계시를 받은 것일까? 장군은 꿈으로 계시를 잘 받는 것 같다. 융이 떠오른다.

 

334

몸은 언 거북이처럼 움츠러들기에 바로 옷을 두껍게 입고 땀을 냈다. 밤의 통증이 낮보다 배로 심하여 신음하며 밤을 보냈다.

몸이 마른 오징어 굽 듯 움츠러들며, 한기가 들고 온몸이 욱신욱신 쑤실 때가 있었다. 과로와 긴장이 그 원인이다. 미국에서 긴장과 과로 탓에 정기적으로 구운 오징어가 되곤 했었는데, 남편에게 오징어 굽고 있어라고 암호처럼 말하면 그는 그게 어떤 통증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341

어머니 곁에서 모시고 아침밥을 올리니 기뻐하시는 빛이 가득했다.

효도가 별 것인가. 따뜻한 밥 같이 먹는 것! 그것이 최고다.

 

정유년 (1597)

어머니의 부고를 전했다.

달려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356

얼마 후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했다. 달려나가 가슴을 치고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밝은 해조차 캄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부모님을 잃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위암 통보는 내게 지나가는 바람 한 점에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뜨리게 했다.

 

358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 사이에 어찌 나와 같은 사정이 있겠는가.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362

오늘은 단오절인데 천리 되는 천애의 땅에 멀리 와서 종군하여 어머님 장례도 못 모시고 곡하고 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니, 무슨 죄로 이런 앙갚음을 받는 것인가. 나와 같은 사정은 고금에도 같은 것이 없을 터이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다만 때를 못 만난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삼년상을 못 치른 슬픔

 

390

“대장 원균이 적을 보고 먼저 뭍으로 달아나고 여러 장수들도 모두 그를 따라 뭍으로 올라가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대장의 잘못을 말한 것을 입으로는 다 말할 수 없고 그 살점이라도 뜯어먹고 싶다고들 하였다.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해 눈병을 얻었다.

 

392.

이른 아침에 선전관 양호가 뜻밖에 들어와 교서와 유서를 주며 당부하는데, 그 내용은 곧 삼도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이었다.

 

정유년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없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416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멋진 말이다.

 

424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조급하고 어지러웠다. 겉면에통곡두 글자가 씌어 있어서 면이 전사했음을 알게 되어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듯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이치가 어디 있겠는가.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특한 기질이 남달라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 슬프다!

 

431

이날 밤 삼경 꿈에 면이 죽었던 모습이 보여 울부짖으며 곡을 했다.

 

무술년 (1598)

나의 임무는 철수하라고 호명함인데, 앞에 있는 배들의 함성이

하늘에 마저 울리고 대포소리는 우레와 같아서 호령을 듣지 못하였다.

 

443

아침에 좌수영 앞바다로 옮겨 정박하니,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참담했다.

 

449

어제 복병장 발포 만호 소계남과 당진포 만호 조효열 등이 왜의 중간 배 한 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추격하였다. 왜적은 한반도 기슭을 타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고, 포획한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손으로 와서 보고했다.

 

3. 내가 저자라면

 

키워드로 본 <난중일기>의 구성

 

#

장군은 몸에 병을 달고 살았다. 일기 곳곳에 고통으로 앓은 날들의 기록이 빼곡하다. 때로는 여러 날에 걸쳐 앓아 눕기도 한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온종일 신음했다는 표현이 임진왜란 직전인 임진년(1592) 봄부터 자주 발견된다. 아픈 몸을 이끌고도 연전연승을 거듭하던 장군은 정유년(1597) 1월 커다란 시련을 겪는다. 왜군을 공격하라는 임금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파직, 한양으로 압송된 것이다. 장군은 옥에서 혹독한 고초를 치른 뒤 같은 해 41일 백의종군 명령을 받는다. 억울함과 옥고로 지병은 더욱 깊어졌으리라. 전황이 악화되자 그 해 8월초 장군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하지만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고통 속에서 밤을 지새우게 된다.

 

#

전쟁 중, 하루라도 편히 눈 붙일 수 있었을까. 장군을 꿈을 자주 꾸었다. 일기에도 꿈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꿈으로 계시를 받은 것일까. 꿈 이야기 곳곳에서 예지몽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

장군은 무관이었지만, 시와 거문고, 피리 등을 즐기는 풍류도 겸비했다. 문관이라 해도 믿을 만큼 장군의 일기에는 전쟁 중 기록임에도 시적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목차 및 구성

 

역자 서문

해제

일러두기

완역 난중일기

임진년(1592)

계사년(1593)

갑오년(1594)

을미년(1595)

병신년(1596)

정유년(1597)Ⅰ

정유년(1597)Ⅱ

무술년(1598)

교감본 난중일기

교감본 [임진일기]

교감본 [계사일기]

교감본 [갑오일기]

교감본 [을미일기]

교감본 [병신일기]

교감본 [정유일기]Ⅰ

교감본 [정유일기]Ⅱ

교감본 [무술일기]

난중일기 교감기

교감본 [임진일기]

교감본 [계사일기]

교감본 [갑오일기]

교감본 [을미일기]

교감본 [병신일기]

교감본 [정유일기]Ⅰ

교감본 [정유일기]Ⅱ

교감본 [무술일기]

참고 문헌

이순신 연보

찾아보기

 

감동적인 장절

 

222

씁쓸히 바라보며

 

비바람 몰아치는 밤

맘이 초조하여 잠 못 이룰 적에

긴 한숨 거듭 짓노라니

눈물만 자꾸 흐르네

배를 부린 몇 해의 계책은

다만 성군을 속인 것이 되었네

신하는 오히려 부끄러운 빛 띠고

물고기 날새들도 슬피 우누나

나라의 다급한 형세에

누구에게 능히 평정을 맡기리오

배를 몰던 몇 해의 계책은

이제 성군을 속인 것이 되었네

중원 회복한 제갈량이 그립고

적 몰아낸 곽자의 사모하네

 

비바람 몰아치는 밤

마음이 초조하여 잠 못 이룰 적에

슬픈 마음은 쓸개가 찢기고

쓰라린 가슴은 살을 에는 듯

긴 한숨 거듭 짓노라니

눈물만 자꾸 흐르네

쓰라린 가슴은 쓸개가 잘리고

슬픈 마음은 살을 에는 듯

산하가 참혹한 빛을 띠고

물고기 날새들도 슬피 우누나

태평세월 이백 년에

화려한 문물은 삼천 가지

나라의 다급한 형세에

평정을 맡길 인재 없도다

여러 해 바다 막을 계책 세우노라니

중원 회복한 제갈량이 그립고

적을 몰아낸 곽자의 사모하네

 

소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광화문 나들이를 가장 좋아한다. 광화문 앞에 우뚝 솟아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아이들이 환호할 만큼 위엄과 기품이 넘친다. 이 동상은 서울의 상징물 중 하나가 되었다. 1968년 건립된 이 동상은 대한민국의 심장인 청와대, 조선 법궁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탁 트인 세종로를 따라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걸 막아달라는 의미에서 후손들은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을 선택했다고 한다. 동상의 뒤에는 비밀의 문이 있다. 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면, 이순신 장군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간충무공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은 서울에서 가장 가고 싶은 장소가 ‘충무공이야기’란다. 아이들 요청에 의해 나는 이 곳을 백 번은 방문했다. ‘충무공이야기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이 마련한 상설전시다. 이곳에서 충무공의 생애, 조선의 함선, 임진왜란 당시 해전기록, <난중일기> 등을 볼 수 있다. 실제 거북선을 약 55% 크기로 축소 제작한 거북선(내부 관람 가능)도 눈에 띈다. 조선시대 무기 다루기, 돛 올리기, 노 젓기, 거북선 조립 등을 할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순신 장군의 변화무쌍한 전술을 애니메이션과 영상으로 제작한 4D 복합영상관도 볼만하다.

 

충무공이야기를 백 번이나 방문했던 이력으로 나는 <난중일기>와 꽤 친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정작 <난중일기> 완역본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충무공이야기전시관의 영상물이 보여주듯, <난중일기>는 뛰어난 작전을 구사하는 위대한 장군에 의한 전쟁의 승리의 기록일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이번에 <난중일기>를 보면서, 병으로 인해 고통 받으며 잠 못 이룬 밤들의 기록이 태반이며, 진중 긴장과 책임감으로 인한 꿈 이야기와 점괘도 곳곳에 등장하며, 밝은 달빛 아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아내와 자녀들을 그리워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면모, 시적인 감상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 개인으로서의 내밀한 기록은, 장군으로서의 위엄과 기품, 승리의 기록이 주는 감동보다 더 애잔하게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가득 메웠다. 한 인간의 위대한 승리 이면의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의 기록은 나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었다.

 

내가 저자가 되어 글을 쓴다면, 나도 누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외면의 이야기를 보다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도 좋겠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내면 깊은 곳의 기록들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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