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종종
  • 조회 수 197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9월 8일 08시 26분 등록

Book Review 13

칼과 황홀

성석제의 음식이야기

2013. 6.10

 

세상과 사람 속에서 저마다 내면 깊숙한 곳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생기게 마련이고 거죽이 얇아져 구멍이 나게 되면서 허기가 깊어진다.

이를 메워주는 인간의 밥상, 마음의 노독을 풀어주는 술상을 찾아 나는 떠난다."

 

- 성석제, <칼과 황홀> 중에서


wGchaJQKDD43gAAAABJRU5ErkJggg==

 

 

  1. 저자 만나기 

1961 6 12일 경상북도 상주 출생.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문학사상』에 시 유리 닦는 사람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과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삶의 근원과 존재의 근본에 대한 탐구인 『낯선 길에 묻다』(1991),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제시한 『검은 암소의 천국』(1997)이 있다. 첫번째 시집에서 서사성이 두드러졌다면, 두번째 시집에서는 서정성이 강화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일상에서 발견된 사소한 이야기들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엽편소설 『그 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1994), ()의 형식을 차용한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1997), 술판과 노름판 등에서 벌어지는 인간사와 인간의 속성을 그린 『홀림』(1999) 등의 소설집을 간행한 바 있다. 성석제는 해학과 풍자 혹은 과장과 익살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국면을 그려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소설집으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1994), 『새가 되었네』(1996), 『왕을 찾아서』(1996), 『재미나는 인생』(1997),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1997), 『궁전의 새』(1998), 『홀림』(1999), 『호랑이를 봤다』(1999), 『순정』(2000),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2002), 『내 인생의 마지막 4. 5초』(2003),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2003), 『조동관 약전』(2003), 『인간의 힘』(2003),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2005), 『지금 행복해』(2008) 등 다수가 있다.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도망자 이치도> 등을 냈다. 산문집으로 <위대한 거짓말>, <즐겁게 춤을 추다가>, <소풍>, <유쾌한 발견>, <농담하는 카메라>등이 있다.

  1. 내 마음에 들어온 글

그건 그들이 몇 십 년간 세월을 보내온 방식일듯 싶었다. 들끓는 젊음은 해장국집에서 언제나 평온을 찾았다. 흐릿하던 시간의 렌즈는 해장국집에서 맑게 닦였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곳에 드나든다. 독한 연탄가스에 바닥에 구멍이 난 양은솥이 몇 번은 바뀌었고 식당 주인의 며느리이던 아주머니는 노년에 접어들었다. 시래기와 된장, 제철에 나는 채소들을 넣어 전날 밤부터 오래도록 끓여내는 해장국의 맛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영혼이 들어가 편히 누울 수 있는 맛이다.(p207-208)

 

내가 아는 절세의 술꾼 이확재 어른을 찾아간다. 급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길이 얼어붙은 탓에 발톱 곪은 고양이처럼 살살 차를 몰면서 나는 조선의 한 시인이 부른 절창을 떠올렸다.

 

한 잔 먹새그려 또 한 잔 먹새그려.

곶 것거 산 노코 무진무진 먹새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의 만인이 우러예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쟈할고.

하믈며 무덤 우히 잔나비 휘파람 불 제, 뉘우친달 엇더리.

 

이 시를 읽은 한 소설가는 절세미인이 화장도 하지 않고, 깊은 밤 촛불을 앞에 두고 앉아 노래를 부르다 끝까지 부르지도 못하고 그만두는 듯 하다고 평했다. 이 절절한 술 권하는 노래’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쓴 송강 정철(1536~1593)이며, 평을 한 소설가는 교산 허균(1569~1618)이다. 정작 술을 마시면서 비창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노래를 되새기노라면 머리터럭이 곤두서고 땀구멍마다 찬바람이 끼친다.

 

술은 가성 죽음이다. 술은 꿈의 유사품이다.(p271~272)

 

사람의 혀는 제일 먼저 맛본 지상 최고의 맛으로 기억하는 법이다. 그 맛의 입자가 오래된 장독대 항아리 속에 들어차 있다가 내 뇌 중에서도 원시적인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뉴런을 봄비가 라일락 깨우듯깨우며 내 존재 전체를 꿀맛 같은 황홀에 젖게 했다. 나는 밥 한 끼를 얻어먹고는 곧바로 이 집에서 당분간 신세를 지겠노라고 엉겨 붙었다. (p274)

 

나는 할머니가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할머니의 동작에서 이미 술 이름을 알아챘다. 막 거르고 계셨으니까. , , .(p283)

 

기나긴 술자리가 끝날 때가 되면 본업에 최선을 다하느라 지친 술꾼을 집으로 데려가는 임무를 띤 이들이 4 1조로 등장했는데 이들을 운구조라 부르기도 했다. 예전에는 맥주가 아닌 소주로 여관에서 장좌불와長坐不臥 29 30일을 지난 적이 있다고 했으나 증거가 남아 있지 않고 따라서 술꾼의 역사에 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주장하는 당사자 말고는 이승에 다른 증인이 없기 때문이다.(p301)

 

중국어는 존대어가 거의 없는데다 그런 게 있다 해도 알지 못했으므로 대화는 반말로 진행되었다.

 

숙박비가 하루 얼마인가?”

삼백 위안이다.”

비싸다. 깎아달라.”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할인! 나는 할인을 욕망한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관두자. 그냥 방 하나 달라.”

잘 먹고 잘 살아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알았다. 돈 여기 있다.”

 

푸핫, 이 생생한 구라빨! 성석제가 왜 해학의 작가인지 알 수 있게 된 건 책이 거의 막판으로 접어드는 제 3부부터다. 아 진작부터 이렇게 본색을 드러낼 것이지, 1부 내내 등장하는 독일 체류 기간 동안의 에피소드들이며 등장하는 음식들 모다 시들한 게 입맛이 영 당기지 않았다. 술판으로 풍덩 빠지는 2부에서야 조금씩 그럴싸해져서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는 거창한 제목 하에 별 것 아닌 해프닝들로 너스레를 떠는 3부에 들어와서야 읽는 맛이 절로 나게 익어간다. , 멋진 글빨이다.

 

다 자란 옥수수에 들어있었던 물, 그 천연의 수분에 바깥의 물이 더해져서 옥수수의 제 맛이 어디로 가지 않고 내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고맙게도. 아직까지 그날 먹은 옥수수에 비할만한 맛의 옥수수를 먹은 적이 없는데 그럼에도 자꾸 삶은 옥수수만 보면 덮어놓고 먹으려고 드는 것은 그날의 옥수수를 옥수수 맛의 이데아로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지 싶다. 막 딴 옥수수를 말리지 않고, 냉동이나 냉장, 수출입, 노벨평화상 수상 같은 가공을 거치지 않은 그대로 솥에 넣고 아무런 조미료도 넣지 않고 삶아 먹을 때의 그 맛을 올해는 기어이 되찾고 말 것인데 강원도 평창하고도 봉평에 사는 어느 시인이 언약해주었다. (p333-334)

 

, 옥수수가 먹고 싶다. 나도, 나도 봉평에 가고 싶다. 여름 땡볕에 한 방울 한 방울 기를 쓰며 끌어 올린 지하수를 낱알 가득 탱탱하게 채워둔 옥수수, 그 옥수수를 눈치 안 보고 실컷 따먹을 수 있는 거친 밭 한 뙤기를 가진 농사꾼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말입죠, 성선생님. 아 진짜, 옥수수에게 냉장, 냉동, 수출입을 훌쩍 뛰어넘어 노벨평화상 수상 같은 가공을 병치시키는 이 아스트랄한 표현력! 경탄, 경탄이올습니다요!

 

문득 나는 어떤 인연으로 내 몸을 거쳐가는 물을 화장실에다 무의미하게 버리느니 귤나무에 거름을 주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어떤 귤나무 아래에 가서 섰고 거름을 주었다. 그때 내 이마 바로 위에 보름달처럼 매달려 있던 노란 귤이 내게는 보답이니 따가시라는 계시처럼 여겨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귤을 쥐었다. 이슬에 젖은 귤은 차갑고 미끄러웠다. 손바닥 가득 들어온 귤을 한 바퀴 정도 돌리자 귤은 기다렸다는 듯 쉽게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다.

 

방안으로 들어오니 밖으로 나가기 전과 마찬가지로 사내들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호언장담은 여전했다. 나는 전과 마찬가지로 반은 눕고 반은 앉은 자세로 사내들끼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야기도 좋았지만 내게 더 재미있었던 건 이야기의 세계에 몰입한 사내들의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직업에 관계된, 나만의 비밀스러운 재산에 푹푹 쌓이는 흐뭇한 느낌으로 자리에 끼어 있었다. 스스로 대화의 주축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면서 무심코 귤을 손 안에서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손톱이 두툼하고 부드러운 귤껍질에 박히면서 향긋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손가락이 본능에 따르듯 껍질을 파고들어가더니 껍질을 벗겨냈다. 귤을 갈라 큼직한 한 쪽을 입에 집어넣었다.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고 어떤 아이스크림도 가지지 못한 천연의 우아한 향기와 풍부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발표할 게 있는 사람처럼 자리를 차고 일어나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귤이 있을 줄 몰랐다고 소리쳤다.

 

나무에 매달린 열매를 따서 먹으면 당연히 맛이 있을 수 밖에 없지. 거기가 바로 열매의 고형이니까.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면 맛이 추락하기 시작하는 것이고 과일이 저 있던 곳에서 멀어질수록 본래의 맛에서도 멀어져가지.”

 

그때 집주인이 한 말이었는지 플라톤이 한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p334-336)

 

무려 두 페이지에 걸쳐 갓 따낸 귤의 맛, 그 절정의 황홀을 묘사하기 위해 공들인 묘사력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장난끼 가득한 서술과 섬세한 관찰력이 만나 달밤의 귤밭 방뇨 사건과 귤 서리 해프닝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명장면으로 연출되었다.  

 

어떻든 공고판을 본 뒤 만나게 된 것마다 광고판의 문장에 대입하는 현상이 생겼다. 가령 실내 스키장이 있는 대형 쇼핑물과 주차장에 꽉 찬 차를 보고는 너는 네가 소비하는 것의 총화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1층의 향기로운 화장품 가게에서는 나는 내가 바르고 뿌려대는 것의 결과물이다, 보석가게 앞에서는 당신은 당신이 갖기를 바라는 것의 집합체입니다가 생각나는 식이었다. 이어서 네가 욕망하는 것이 너를 만든다’ ‘네가 생각하면 그 생각이 운명을 바꿀 것이다라는 처세술 책에 쓰일 법한 문장도 만들어졌다. ‘네가 지금처럼 말장난으로 헛되이 시간을 보낸다면 네 인생은 바로 그 헛된 시간의 말장난이 될 것이다도 나왔다.

 

두바이 시가지는 시장과 사람 냄새가 나는 길거리가 있는 구시가지와 높이 수십미터의 마천루가 하늘을 이르는 신 시가지로 구분되었다. 바닷가에 이르자 기온이 48도를 기록했고 온몸에 비 오듯 줄줄 땀이 흘렀다. 세계 최고(最高)의 호텔이라는(최고급은 따로 있었다) 돛배 모양의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에 모래를 가져다 쌓고 그 위에 세웠다는. 그러자 이런 말이 생각났다.

 

나는 내가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이 될 수 있다. 네가 세상을 놀라게 할 탐욕을 가지면 탐욕은 너를 완벽하게 먹어 치우고 네 얼굴을 해 보임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p342-343,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중에서)

 

작가의 말

 

유기체인 생명은 다른 유기체를 먹어야 존재할 수 있다. 칼은 다른 생명을 취하고 조리하는 도구이다. 때로는 잔혹해 보이기도 하고 예에 다다르기도 하나 이 또한 생명의 엄숙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일 뿐이다.  농부의 낫, 사냥꾼의 화살, 숙수의 칼이 무정한 것인가. 아니다. 어느 성현도 먹어야 산다는 법 앞에서 예외가 될 수 없으며 농부와 사냥꾼과 숙수를 비난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은혜를 기려야 마땅하다.

 

매일 먹고 힘을 얻으며, 마셔서 기갈을 풀고 도취경에 든다. 생명이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니 응당 황홀하다. 칼과 황홀 사이에 음식과 인간, 삶이 있다. 크게는 시대가 들어갈 수 있다. 음식은 그 무엇보다 우리의 존재에 맞닿아 있으며 구체적이다. 음식으로 소설이 잘 안되고 시가 못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음식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방식은 이야기다.

 

본디 황홀은 어지럽다는 뜻이다. <칼과 황홀>의 원고를 교정하는 동안 나라는 인간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어지간히 황홀하게 돌아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들은 종적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겪고 만나고 맛보고 느끼는 것이 결국 내가 태어난 곳, 자라난 곳,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귀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삶의 근간이 되는 그런 것들이 없다면 나는 세상을 지각할 기본적인 도구가 없는 셈으로 정말 줏대도 정신도 없이 황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생의 축복이다. 음식이 나의 피와 뼈, 영혼을 만들어주었으니 그 은혜를 기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용할 음식을 위해 땀 흘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분들의 큰 공덕 또한. (p. ‘작가의 말중에서)

 

 

 

  1. 저자의 입장에서 다시

     

    차례

    1부 하루 세 번의 여행

    약소의 약초

    용궁 대 펭귄

    애국자 어머니

    돌과 웃음, 그리고 국수

    청어의 봄

    할머니의 소시지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미안해요, 아가씨들

    바다의 꿀

    탁월한 선택

    고향이라는 박물관

    연탄, 냉면, 달걀, 그리고 운동화

    역전의 명수

    멸치의 천국

    돌구이에서 홍어찜까지

    스테이크와 파스타, 맛을 기억할 수 없는 이유

    아리땁던 심청은 어디로 갔을까

    보이지 않는 전장

    도토리의 무덤

    올림픽 기록

    관우의 삼겹살

    추풍령

    수프와 코냑의 힘

    김과 나

    세상에 단 하나뿐

    국수의 추억

    중독자

    소년의 사과 한 알

    영혼의 해장국

     

    2부 마음의 노독을 풀어준다

     

    라이벌의 칵테일

    어느 날 메리가 내게로 왔다

    신비한 카페

    슈바르츠에서 브레히트를 기억하며

    베를린의 동네 명가수

    뉘른베르크의 폭탄

    그게 인생이다

    골짜기에 숨어있는 보물

    품격 있는 술꾼

    술의 노래, 생의 찬가

    막걸리의 도, 막걸이의 생

    프로페셔널 배추전

    어떤 저녁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술꾼

    조기의 추억

     

    3부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뜨거운 물

    향의 근원, 그 첫맛을 찾아서

    평범한 두부 과자에 얽혀있는 진실

    맛있는 물

    불만 없으실 게요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그리움에 바치는 노래, 포도

     

    맛 지도

    작가의 말

     

    칼과 황홀을 읽으면서 생각하였다. 등단한 작가, 이름난 작가가 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일단 이곳 저곳 엄한 곳까지 가볼 수 있는 핑계와 기회가 많아지나 보다. 그는 다녀온 데가 많았다. 출장 같은 걸로는 가볼 수 없는 엄한 곳, 멋진 곳을 그는 많이 알고 가는 곳 마다 즐거이 먹고 지냈다. 아니, 많이 다녀서 좋은 작가가 되었나? 여튼 그의 글을 만나서 꽤 즐거웠다는 것을 고백한다. 차례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구성이었으나 자유로운 이야기집인지라 별다른 장치나 유달리 체계적인 구조는 보이지 않았다. 1부는 말 그대로 하루 세 번의 여행, 세 끼니를 채워주었던 식사의 기억들이다. 2부는 마음의 노독을 풀어준 술상에 대해, 3부는 술도 아닌 것이 온전한 요리도 아닌 것이 먹을 것의 본질 그대로 그에게 다가섰던 인연들, 갓 따낸 귤 한 알, 맛의 이데아에 도달한 옥수수 한 자루, 한번에 먹어 치운 포도 한 상자, 뜨거운 물 한 잔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사소한 소재를 가지고도 이야기는 구비구비 풀어내는 재주, 여기 저기서 보고들은 것, 내가 뒹굴며 보듬은 것을 한 겹 한 겹 펼쳐내어 보이는 그의 재주에 덩달아 나도 춤을 추었다. 인생을 한 오십 년 쯤 살면 저절로 오르는 경지는아무래도 아닌 것 같고. 그는 서른 즈음에 첫 시집을 내었고 그 뒤부터는 소설과 시와 산문을 계속 발표하며 한눈 팔지 않았던 듯 하다. 그 안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고여 쌓이게 된 때문일까? 아니면 찾아 다닌 것일까? 전업 작가, 특히 시인과 소설가의 프로필을 살피다 보면 진지하게 쓰는 것, 써서 자신을 이루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그런 길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고 싶은가? 성실하지 못하여 줄기차게 도망만 다니는 나를 돌아본다. 내가 진짜 잡아야 할 화두를, 나는 지금 바라보고 있는 건가? 다른 것을 볼 여유가 있기는 한 건가?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수 없는 것을, 부인하고 싶은 현실을 눈감고 덮어두려는 내가 점점 더 불편해진다.     

     

     

     

     

     

     

     

     

 

 

IP *.104.212.197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