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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8일 14시 50분 등록
프롤로그

연구원 첫 모임을 다녀왔다. 아늑한 섬진강과 새파란 남해 바다를 보고 돌아왔다. 인생의 스승님과 평생의 벗들을 만난 꿈 같은 이틀이었다. 이제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주일은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이란 책을 화두로 붙잡고, 이 책을 이해하려 했던 한 주였다.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했고, 조금은 깨우치기도 했고, 다시 시작해야 할 자신의 위치도 되돌아보게 했던 한 주였다.

책을 처음 받은 소감은 대충 이러하다. 신종윤님의 친절한 정보로 ‘북코아’란 인터넷 헌책방에서 5번째로 겨우 구입한 책은, ‘할아버지 책방’이란 판매자 이름답게 시골에서 보내온 소포처럼 신문지와 누런 종이에 돌돌 싸여 있었다. 포장을 풀어보니 ‘30대 이후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16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고, 내용을 잠시 훑어보니, 옛날 이야기가 있고 그에 대한 해설이 딸려있다.

이야기가 있어 조금은 편해 보였지만, 중년이란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마법의 상실이란 1장의 주제가 어딘가 불편했다. 중년이 단지 나이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바보같이 그랬다. 나의 4번째 북 리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야기라는 쉬운 형식에 편하게 이끌려 들어갔지만, 총 열 여섯 편의 이야기와 함께 시작된 정신 여행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 우선 저자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저자에 대해서

1) 저자 약력 - 알랜 B. 치넨 (Allan B. Chinen)

1952년 생으로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고,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정신 의학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 정신 의학 박사로 현재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교 정신 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임상 교수로 활동하는 동시에, 개인 진료도 병행하고 있다. 이야기를 이용한 심리 치료를 주제로 한 다양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으며, www.storydoctor.net이란 홈페이지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통한 심리 치료를 실험하고 있다. 융 학파에 속하는 그는 옛날이야기와 동화를 통해 인간의 심리 현상을 해명하는 책을 저술했으며,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In the Ever After: Fairy Tales and the Second Half of Life (1989) – 어른스러움의 진실
Once Upon A Midlife (1992) –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
Beyond the Hero (1995)
Waking the World (1997) – 젊은 여성들을 위한 심리 동화

그리고 아래의 심리학 교과서를 공저하기도 했다.

Textbook of Transpersonal Psychiatry and Psychology (1996) by Bruce W. Scotton, Allan B. Chinen, John R. Battista

2)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에서 저자는 전세계의 옛 이야기를 통해, 융의 정신분석학 이론과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중년이 되면 생겨나는 갈등과 번민들을 해석해 나간다. 동화 속의 중년의 모습을 통해 현실 속 중년의 정신적 원형을 추적한 것이다.

동화 속의 중년은 일상과 부딪치며 마법을 포기하기도 하고, 고난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마법이란 젊은이의 이상과 비전을 의미하는 데 그는 마법의 포기가 한편으로는 성장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처럼 중년을 위한 쉬운 동화를 통해 그는 마법의 상실과 회복, 성 역할 바꾸기, 죽음, 부를 얻음과 잃음, 가면과 자아, 고난, 변형 등의 쉽지만은 않은 다양한 심리학적 주제들을 이야기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야기란 자신만의 무의식으로 가는 명확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이야기는 사람을 자유롭게 놔두도록 하는 일종의 주문처럼 작용하는데,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은 ‘아’ 하고 반응하는데 이는 마치 정신분석의 자유연상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무의식이 드러나게 도와주는 것과 같다.

한 인터뷰에서 저자는 처음 중년을 위한 동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한다.

조깅이나 명상을 할 때, 혹은 해변을 걷거나 하이킹을 할 때 마다 나는 생생한 이미지로 끝나는 이야기들을 만나곤 했다. 그것은 마치 이미지를 해석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적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앉아서 그런 이미지로 끝나는 이야기들을 적어나갔다. 그것들은 동화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주인공이 중년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 참 이상하군. 나는 어린이나 청년들을 위한 동화 밖에 보지 못했는데 말이야.”

그가 들려주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옛날 이야기들은 일종의 꿈과 같지만 꿈보다 범세계적이고 누구나 공감하는 매력을 지닌다. 저자는 인류의 원형적 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비교 분석하여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발견되는 이야기만을 선택한다. 이를 통해 특정한 문화적 영향을 배제하려 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이겨낸 범세계적 이야기와 해박한 심리학적 이론과 임상 경험, 개인적 이야기가 결합되어 있는 이 책은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중년의 심각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따뜻한 인간미가 묻어나는 매력을 지닌다.

3) 역자 약력 - 이나미

1961년 생으로 서울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을지병원, 용인정신병원 신경정신과 과장을 거쳐, 이나미 신경정신과 의원을 운영했다.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물의 혼’으로 등단했으며 ‘여자의 허물 벗기’,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 ‘딱 한 번만 더 보고 싶다’, ‘사랑의 독은 왜 달콤할까’, ‘에로스 타나토스’등의 저서를 펴냈으며, ‘성의 침묵’ 등을 번역했다.


2.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11) 중년이란, 언제나 거기에 숨어 있긴 했지만 위장되고 분열되고 함입된 채 잊혀진 자기 자신과 새롭게 다시 만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머리말

(13) ……중년의 이야기들에는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이란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외상들을 단순히 풀어버리기보다는 보다 크고 중요한 과제인 완전한 인간이 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켜 준다.

(13) 이 책은 <왕자가 늙어 대머리가 되고 공주가 중년의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15) 사람들에게 사실이나 이념들을 들려주어라. 그러면 그들의 마음이 밝아질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그러면 그들의 영혼과 맞닿을 것이다.

(15) 그는 생각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논리적이고도 선형적인 과학적 생각으로서 <사업>, <일>,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되는 언어들이 있다. 두 번째는 이야기 형식의 (Narrative)생각으로, <극>과 <신화>, <문학> 그리고 <옛날 이야기>들의 토양이 되는 언어인데, 주로 인간 영혼을 건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인지 심리학자인 기슬라 라보비 비프는 이를 보다 시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그녀는 두 가지의 추론 방식을 <로고스>와 <미토스>로 표현한다. 두 개 다 그리스의 원어로 <단어>를 뜻하긴 하지만 로고스는 설명, 계산, 계획들에 쓰이는 말이고, 미토스는 이야기, 극, 꿈 등에 쓰이는 단어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이야기란 인간의 영혼과 닿아 무의식 세계의 베일을 벗기는 작용을 하고 있다.

(20) 조금 시간이 흐른 후 햇빛이 따스한 봄날이었다. 나는 어떤 연구를 하기 위해 대학의 도서관으로 향하다가 활짝 핀 벚꽃나무 밑에 잠시 앉게 되었다. 그때 불현듯 어떤 영감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위대한 어머니나 현자가 내 귀에 속삭이는 느낌이었다.

(21) 중년의 이야기는 이미 인생이라는 여행을 거쳐 생존한 사람들에 의해 그려진, 중년이라면 거쳐야 할 통과의례, 장애물이나 오아시스, 위험들, 그리고 기쁨들이 어디 있는가에 대한 지도와 같다.

(21) 문학 평론가인 노스롭 프라이나 민속 연구가이며 철학자인 로버트 펠톤으로부터 얻은 첫번째 규칙은 옛날 이야기들을 해석하려고 들기 이전에 우선 귀를 열고 그 이야기들을 잘 듣는 것이다.

(24)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이란,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외상들을 단순히 풀어버리기보다는 보다 크고 중요한 과제인 <완전한 인간이 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켜준다.

(25) 중년의 관제에 당황하여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엉뚱하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지혜의 원천을 찾을 수도 있다.

제1부 서른 이후, 젊음의 마법을 풀어놓다

(33) 마법의 정령들이 사라진 것은 성인들이 <일> 때문에 <놀이>를 포기하고 <책임>때문에 <순수>를 버리게 될 수 밖에 없는 경험을 상징하고 있다.

(35) 마법의 상실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발달 과정상의 문제인 것이다. 이는 <벌>이 아니라 단지 <성장의 결과>인 것뿐이다.

(36) 대부분의 중년들을 자신들을 당나귀의 운명과 동일시할 것이다. 순수와 자발성, 그리고 젊은이들의 자유는 포기한 채 짐만 잔뜩 지고 사는 짐승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쉽거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성장에는 분명 슬픔과 비탄의 요소가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37) 이 증후군은 여러 가지 미묘한 형태를 갖는다. 어떤 사람들을 외부적으로는 일단 결혼해서 직업을 갖긴 한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여전히 위대한 미국 소설을 쓰는 꿈을 꾼다던가, 백만장자가 된다던가, 완전한 사랑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꿈이 실현되도록 무언가를 노력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들은 마흔이 되어야 일종의 충격적인 통찰의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이제 그들의 꾼을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39) 창조성은 의식의 판단과 의도를 유보했을 때만 나온다. 특히 유치하고 장난기 많은 어린 시절의 흔적들은 창조성에는 꼭 필요한 요소다.

(39) 자크는 창조성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유형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불 속에서 나온 것처럼 뜨거운 창조적 작업이 있다…중략…그 다음에야 두 번째 유형이 전면에 나타난다. 이를 자크는 잘 다듬은 창조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술가들은 불완전한 영감으로 일단 일을 시작하지만 그 생각을 갖고 작업에 임하여 또다시 재 작업한다.

(40) 비록 대부분의 어른들이 옛날 이야기들을 황홀함과 행복한 결말로 결부시킬지 모르겠지만 중년의 이야기들은 놀라울 만큼 또렷한 특징, 즉 젊은 시절의 마법을 잃어버린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그런 내용들을 그저 환상의 일부이거나 숨은 희망의 만족 따위로 그냥 버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중요하지만 대부분은 불쾌한, 그러나 항상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통찰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46) 신성한 마법은 젊은이들의 이상과 비전을 상징한다. 그런 야망은 세계의 평화네 대한 희망, 진정한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꿈, 운동 경기에서 챔피온이 되는 것 등의 여러 가지 형태를 지니게 된다.

(46) 그러나 실생활과 부딪치면서 그런 꿈들은 결국 깨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왜 중년의 이야기에서 마법을 잃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작은 인간의 잘못들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약점들이 완벽성에 대한 신성한 꿈을 깨버린다.

(47) 젋은이들은 신들의 우성과 이상을 포기하고 결국에는 자기에게 맞는 만큼의 좋은 일을 하는 데 만족하게 된다……<젊은이들은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해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포기한다.>

(47)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잠에서 깨면서 자신의 상황을 절감하게 된다. 『이제 나이 마흔인데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다. 이 세상에 내 자취를 남겨놓은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49) 대부분의 성인들도 아마 이런 <환상 버리기>의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교사이건 사업가건 과학자건 작가건 간에 인간의 허약함과 실질적인 현실 세계는 젊은이들의 성스러운 이상을 가리게 마련이다.

(49) 남자들이 마법의 상실을 받아들이느라 애쓰는 동안 여성들은 보다 끔찍하고 어려운 문제인 자신의 정체성과 자발성, 그리고 영혼과 자아의 상실이라는 문제와 싸워야 한다.

(49) 젊은 시기에서 성인의 시기로 넘어가면서 남성과 여성은 은유적으로 선악과를 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셈이다. 그들은 보다 성스러운 완벽성, 순진성, 그리고 젊음의 이상을 잃어버리는 대신 노동과 고통에 대해 배운다. 다른 방법을 강구하려 하면 일은 더 꼬인다. 젊음의 마법을 잃지 않겠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큰 재난이 닥치기 마련이다.

(53) 이는 마법을 계속 간직할 경우 오히려 이점 때문에 그 자신이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젊음의 마법을 지워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인생의 세번째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것이다. 그는 성숙을 수용할 수도 없었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

(54) 그가 생각하는 중년의 기본적인 과제는 베풂의 미덕(Generativity)이다.

(55) <나는 젊음을 지배하길 원하지만, 그런 동시에 성숙되기도 해야 한다>

(55) 작가는 자신들의 직관을 소설로 형상화하여야만 하고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직접 검증해야만 한다. 즉 오랜 노동과 헌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58-59) 내 마음의 한 부분 역시 젊은 시절의 원대한 꿈에 집착하고 있었고 폴과 다름없이 현실 세계에 닻을 내리길 거부하기도 했다.

(59) 세계를 포용하는 동시에 마법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오로지 중년의 시점에서 과거를 편하게 돌아볼 때만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60) 다섯은 중년에만 있는 특별한 숫자이다.

(61) 마법의 상실은 슬픈 게 아니라 발달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일 뿐이고 이를 거절할 때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상실이란 단순히 마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서 가족으로 또 다음 세대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회로 변하는 것뿐이다.

제2부 서른 이후,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

(73) 융은 중년 남자들이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기호나 필요들과 싸우기 시작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중년의 남자들은 젊은 시기에 그들을 움직이게 했던 힘과 지위에 대한 남성적인 경쟁 심리를 옆으로 치워버린다. 그 대신 그들은 관계와 감성에 대해 관심을 두는데 이들 특성들은 젊었을 때는 너무나 여성적인 것이라서 거부했던 성격들이다.

(74) 여성들은 어린 시절 사회가 소녀들에게 요구했던 복종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역할을 벗어버리고자 시도한다. 융이 지적한 대로 <인생의 아침에 활짝 피었던 모든 이상과 가치관들이 인생의 정오쯤에는 바뀌게 되는 것이다>.

(75) 따라서 만약 백 년을 산다면 남자는 백 개의 천사를 갖게 되는 것이고 여자는 백 개의 악마를 갖게 되는 것이다!

(78) 내가 쓴 글에는 중년에 관한 나 자신의 사적인 경험들, 감정들 그리고 생각들이 빠졌던 것이다. 이것들은 사실, 점잖을 빼는 지적인 코멘트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속내용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 책을 마음으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을 가지고 쓸 필요가 있었다.

(78) 나는 단지 이들 이야기를 잘 듣고 진실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했었다.

(82) 이렇게 적극적으로 문제를 개선하려는 태도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성숙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융통성이 중년에 요구되는 큰 덕성이라면 젊은 시절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젊은 영웅들이나 여자 주인공들은 성공하기 위해 계속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융통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83) 그같이 한 가지 목적에만 집중하는 감각은 젊은이들에게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러나 마치 젊은이들인 양 쉽게 결정해 버리고, 꼼짝도 않는 것은 중년에게는 완고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84) 젊은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풀기 위해 초자연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중년의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지혜만 있으면 충분하다.

(84) 중년의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을 동물로 바꾸어 버리거나 오두막집을 궁궐로 바꾸는 찬란한 마법의 반지는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는 보다 신비한 마법, 즉 인간의 마음을 변형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100) 반면, 중년의 이야기에서는 여성의 현명함은 칭찬 받을 만한 무언가로 그려진다. 사실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교활해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다.

(102) 극단적으로 말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는 여성들이 학대받는 관계에 있을 때 여성들을 덫에 걸리게 만드는 성격이 된다.

(105) 자기란 무의식적이건 의식적이건 한 개인적 존재의 중심이 된다.

(105) <자기>란 개인의 가장 진실한 본성을 표상한다. 융은 <자기>란 전형적으로 꿈속에서 <행복의 새>같이 성스럽고 마술적인 상징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주목했다. 성스러운 새는 부인의 진정한 자기, 즉 자신의 깊은 존재를 상징한다.

(113) 이 같은 과도함은 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힘, 자발성, 그리고 개성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게 했다. 역설적으로 과도함이 오히려 자아 통합과 개성으로 이끌어준 것이다. 숫자 5는 중년의 중요한 과제인 불균형과 실수를 조화와 자아 정체성으로 변환시킴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

(120) 많은 연구에서 중년기가 되면 심리적인 양성성이 늘어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양성성이란 나이 들면서도 깊이 행복할 수 있는 성공적인 심리 특성과 비례한다는 것이다.

(124-125) 제럴드 오콜린스도 이런 고통스러운 중년의 경험을 <두번째 여행>으로 묘사한다. 첫번째 여행은 젊은 시절에 거치는 것인데, 이때 남자들은 모험과 행동을 통해 유명해지고 행운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한다. 두번째 여행에서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자발적이지 않은 여행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영광과 재산보다는 지혜를 얻게 된다.

(126) 이런 과제는 중년기에는 남자들에게 기본적인 것이다. 즉 영웅적인 힘을 포기하고 대개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투사하고 있는 유약함이라는 용어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126) 또 그런 관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상처 받고 외로웠고 예민했는가를 알 수가 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이교도 왕은 상처를 주는 아버지란 존재의 어두운 부분과의 조우를 상징한다. 남자들은 이런 고통스런 어린 시절의 경험들과 다시 싸워가면서 자신들의 상처 받은 남성성을 이해하고 치료할 수가 있다.

(127) 오늘날 남자들은 꿈이나 공상 속에서 그 같은 여자들을 만난다. 융은 이런 마술적인 여성을 아니마 상이라고 했다. (아니마란 용어는 라틴 말로 영혼(Soul)의 여성 형태에서 나왔다.) 아니마는 남자들이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던 여성적인 면들을 의인화하고 아니무스와 비교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130) 중년들이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더라도 사회적인 압력과 의무들이 그런 소망을 방해한다. 그러나 여전히 성숙한 사람이라면 성 역할에서도 융통성을 좋아할 것이고 중년의 이야기는 이런 이상과 희망을 반영한다.

(131) 여성의 새로운 경력은 남편이 그의 능력 이상의 것을 더 이상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시작하게 된다.

제3부 서른 이후, 운명을 받아들이다

(139) 사별은 점점 흔해지고 심상치 않은 일이 된다. 죽음으로 끝나는 행렬에서 부모와 늙은 친구들이 가듯이 중년의 남녀는 결국 가게 된다.

(139) 그는 자기 중심적 관점에서 시작해서 그가 죽어서 상실하게 될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더 커다란 그림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역사를 통한 세대의 계승과 그 안에서 자신의 초라한 위치였다. 그는 그의 선조들이 그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도 다음 세대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우리가 논의했던 왕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해결하는 생성의 정신이다.

(139) 개인은 죽어야만 되나 아이들이나 사회적 이상은 계속 살아나간다.

(141) 왕은 그의 왕위가 과거에 그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과 그를 계승할 사람에게 그것을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 한 개인이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그는(그녀는) 대신 지속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고 상징적 불멸의 형태를 얻는다.

(141)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기 본위의 요소는 덜 중요한 동기이며 생성 능력이 주요한 동기이다. 즉, 다음 세대를 풍요롭게 하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남겨놓고자 하는 소망이다.

(143) 중년에게 죽음이란 엄연한 현실이며 단호하고 불가피한 것이며 영광의 문제가 아니라 한계의 문제인 것이다.

(150-151) 첫번째는 베풂이다. 신은 그 백만장자에게 자녀를 위해 준비할 것을 말하고 자신의 영생을 찾는 대신 이웃을 도울 것을 당부한다. … 두번째 주제는 단순한 실용주의이다. 신은 고결한 철학적 통찰이나 정신적 계시를 제공하지 않는다. 신은 인간에게 단지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잘 부양하고 이웃을 공경하라고 말한다. … 죽음과의 조우는 개인으로 하여금 평범한 일상의 삶을 긍정적으로 만든다. 숭고한 정신적 수양이나 세상을 버리는 것 대신 죽는다는 것은 중년의 남녀에게 세속적인 질서를 긍정하도록 촉구한다.

(154) 죽음은 여성들에게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준다. 죽음은 남성에게도 같은 통찰을 가져다 주는데, 남성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들의 역할이 더 작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좀 다르다.

(156) 프로이트는 꿈이 금지된 소망을 숨기고 수용되지 못하는 충동이 의식 세계로 나오는 것을 가려 주거나 제외시킨다고 주장한다. 융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꿈은 억압에 대항하고 개인이 회피하는 문제를 끄집어냄으로써 무의식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 그래서 융과 프로이트의 꿈이론은 인생의 다른 단계에 적용되는 한 모순되지 않는다. 꿈은 중년에 억압에서 계시로 옮아가게 된다.

(157) 중년의 여행은 근본적으로 내적 탐험이며 무의식으로의 순례여행이다. 그 여행은 내면을 향한 심리적인 것이고 세상의 모험을 통해 물질적 보상을 찾으려고 헌신하는 청춘의 영웅적 탐구와는 완전히 다르다.

(158) 중년의 이야기와 현실적 삶에서 죽음이 비록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남녀가 받아들여야 하는 필연적인 결과만은 아니다. 똑같이 강력하게 받아들이기에 아마도 더 어려운 힘이 있다. <그것은 운명이다!>

(165) 중년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는 종종 단순한 불운인 반면, 성공은 일을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적기적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운명과 행운은 개인의 통제를 능가하는 단순한 힘이다. 죽음은 이러한 힘의 으뜸가는 예이다.

(168) 성숙함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며 이것은 종종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직관을 향한 변화와 관련된다.

(169) 남녀는 중년이 되면 운명에 순응하는 것을 배우게 되고, 운명을 무시하고 바꾸려는 젊은 날의 노력들을 포기한다.

(169) 운명이나 행운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대 그리스풍으로 말하자면 비극적(tragic) 예견에 굴복하는 것이다. 비극은 불행한 결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형성하는 통제할 수 없는 힘을 통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비극적 관점은 모든 것이 가능한 듯 보이고 충분한 개인적 노력과 기지와 작업이 주어진 젊은 시절의 영웅 정신과 날카롭게 대조된다. 젊은 시절의 정신과 비교해 볼 때 중년의 비극적 관점은 우울하고 침울한 것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년에 운명과 행운을 수용한다는 것은 자유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171) 그녀는 자신을 조종하려는 영웅적 노력을 단념했지만 그런 이유로 무기력해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팻은 자기 의지력의 한계를 느껴 체념했고 운명과 화해했다. 아마도 그것은 때이른 죽음의 협박과 같은 가장 어두운 형태였을 것이다.

(171) 그녀는 강렬하고 신비로운 평화와 즐거움의 순간을 경험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때에 일어났다. 그녀가 해변을 걷고 있을 때, 또는 숲 속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아침에 고양이와 같이 식사할 때 이러한 새로운 경험의 아이러니에 주목했다, … 운명의 수용은 자유로운 것이었고 그녀의 인생에 즐겁고 명상적인 단계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183) 그것은 부모와 지도자 즉 다음 세대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든 위협 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심리를 다룬다. 심리학자와 심리 분석가들은 젊음을 부러워하는 것이-질투와 증오-중년의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183-184) 중년의 오이디푸스적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베풂의 미덕을 발전시키는 데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괴로움과 분노로 소모되고 만다.

(185) 운명은 그것 자체로는 중년의 질투를 해결하지 못한다. 운명이 부여하는 것은 다소 비극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이다. 인간의 통제력을 능가하는 힘의 수용이다. 중년의 비극적 통찰의 발전은 남녀가 인생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186-187) 자책감과 비난은 필연적으로 젊은이의 영웅주의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젊은 남녀는 대개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들이 삶을 관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이 잘못되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든지 아니면 적어도 다른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187) 그들은 또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특히 그들의 부모를 용서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부모들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며, 그들의 부모가 실은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남녀는 부모의 과실이 무능력과 한계의 결과라기보다는 고의적이라고 느끼는데, 왜나면 젊은이들은 비난과 죄의식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87) 젊은 남녀는 그들이 부모가 되었을 때 그들 자신의 한계를 발견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부모가 사랑이나 보호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더 이상 사랑과 보호를 줄 수가 없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실패와 죄의 문제가 아니라 한계와 비극의 문제이다. 젊은이의 분노는 그래서 탄식과 슬픔과 분노로 바뀐다. 겸손과 동정은 비극적 통찰에서 나온다.

(187-188) 에릭 에릭슨은 이러한 자기 수용을 자아 통합(ego-integrity)이라 부른다. 그것은 꼭 이루어져야만 하고, 어떤 대안도 허락하지 않는 무엇으로서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것이다. 개인은 옳던 그르던 몇 년 동안 자신이 내린 결정을 인정하고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부터 문화적 영향과 우연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 힘을 인정한다.「자아 통합」은 현대의 심리적 방법으로 표현하자면 「한 사람의 운명에 대한 긍정」이다.

(189) 즉, 성역할과 운명의 반전이다. 우리가 논의한 이야기들은 대립되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남성과 여성, 삶과 죽음, 힘과 운명이 그것이다.

제 4부 서른 이후, 삶을 깨닫다

(193) ……젊은이들과 중년은 세상을 대하는 데 대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젊은 사람들의 세련되고 미적인 감각과, 중년의 거칠지만 효과적인 실용주의가 그것이다. 이것은 젊은 시절에 대개 익히는 책 속의 이상과 인생의 성숙함에서 오는 실용성의 차이로 비유할 수 있다.

(196) 존엄과 명예와 충성의 중심이 되는 그 군인은 영웅 이후의(post-heroic) 인물이다. 당연하게도 영웅이 되려 애쓰면서 젊은 시절을 보낸 후에 그는 이제 중년이 되어 궁지에 버려진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은 그들의 삶을 반성해 볼 때 대부분의 중년들에게는 친근한 느낌이다.

(197) 실질적인 삶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중년의 성인들은 젊은이보다 더욱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중년의 개인은 어떻게 추상적 이성을 사용하는지 알며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는 데, 그것은 왜냐하면 순수한 이성은 실제의 삶의 문제에 있어서는 실용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 세련되고 미적인 감각과, 거칠지만 효과적인 실용주의가 그것이다. 이것은 젊은 시절에 대개 익히는 책 속의 이상과 성숙함에서 오는 실용성의 차이로 비유할 수 있다. 순수한 아름다움과 절대적 진리는 젊은이와 여성을 고무시키지만 중년에는 그 결과가 비록 미덥지 않더라도 일 그 자체가 요구하는 해결 방식을 택하게 된다.

(201) 아직까지도 인간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복잡하고 추상적인 이성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과 공감하기 위해서 개인은 다른 사람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이것은 타인의 복잡한 인격의 유형을 해석할 것을 요구해야만 한다. 이것은 타인의 복잡한 인격의 유형을 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공감은 과학과 관련된 똑 같은 추상적 사고를 사용하며 단지 사물과 사고보다는 사람과 감정을 다룬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202) 비트겐슈타인이 결론 내리기를, 철학은 그가 초기에 믿었듯이 영원한 진리를 제공해 주지 못했다. 철학은 단지 실용적 도구이고 그것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과 의사 소통하는 데 있어서 문제를 해결하고 복잡한 사고를 명확히 해주는 것이다. 즉 <철학은 실용적이다>라는 것이다.

(203) 로고스는 추상적이고 우주적이고 이성적이고 지적이다. 그것은 자연과학, 수학, 철학의 본질이며 사심 없는 관찰자의 견해를 나타낸다. 반대로 에로스는 감정, 직관, 내적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신화, 꿈, 인간 관계의 언어로서 멀리 떨어져서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관련된 사람의 견해를 반영한다.

(203) 남녀 모두에게 있어 성숙이란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의 이성적 유형의 조화를 요구한다.

(210) 인생의 이런 그늘진 면과 맞서야 하는 것은 중년의 중요한 일이다. 시체를 본 상인의 행동은 도망치는 것이었고 그의 행동은 동화 속의 젊은 주인공의 행동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젊은 영웅들은 전형적으로 악과 싸우기 위해 머무르며 결국에는 이기고 만다. 그러므로 상인의 도피는 비겁한 것 같다.

(210) 첫번째로 젊은 영웅들은 결코 그들 자신이 악과 싸우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싸운다면 그것은 단지 그들이 악당의 마법에 걸려 그들의 본질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젊은 남녀는 악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할 뿐 결코 그들 자신 안에 악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어려운 악, 즉 자기 자신 안에 내재한 악을 산뜻하게 회피한다.
(210) 동화의 영웅들은 항상 악과 싸워 승리한다. 그들에게 있어 인생의 어두운 면이란 정복될 수 있고 조정될 수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악의 힘을 부정한다.

(210-211) 젊은이들은 악을 억압하고 부정한다.

(212-213) 옛길을 고수하라는 솔로몬의 충고는 유일하게 중년과 관련이 있다. 상인은 즐거운 여행자들의 무리와 함께 새로운 모험의 길을 떠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이와 같은 일탈은 중년에 항상 존재하는 유혹이다. 솔로몬의 충고는 너무 자주 새로운 로맨스나 일자리를 찾고자 하여 자신의 길에서 지나치게 멀어져 방황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된다.

(213) 상인은 남편과 조용히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상징적으로 상인은 악마와 마주 대하여 물러서지도 않고 도망가지도 않으며 싸우지도 않는다.

(214) 악에 대한 관용은 중년의 미덕이다. 몇 년 간의 삶을 경험한 후에 남자와 여자는 고통스럽게 괴로움과 악을 깨닫고 또한 종종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는다. 중년의 지혜는 바로 이러한 비극적 통찰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214-215) 중년이 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들의 도덕적 판단이 틀릴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다른 윤리적 원칙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215) 전형적인 유형과는 반대로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관용적이고 덜 도덕적으로 된다. 젊을수록 그들의 비타협적 이상주의 때문에 종종 도덕적으로 경직된다.

(216) 권위의 극점에 있는 남녀에게 세상에는 그들이 이해하고 관장할 수 없는 많은 상황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220) 「나는 백만 달러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당신에게 왔습니다. 그러나 겨우 5센트 값어치의 충고만을 얻어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필요로 하는 전부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227) 젊은이들의 이야기와 노인들의 이야기는 중년의 이야기와 비교가 되는데, 대개는 감동적이고 가슴이 따뜻하고 도덕적인 어조가 담겨있지만 유머스럽지는 않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영웅적인 투쟁에 영광을 보내고 따라서 악당들이나 다양한 역할들에게 서 재미를 찾아낼 만한 여유가 없다. 노인들의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보다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계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유머란 그저 눈 깜박이는 정도로 짧게 다룰 뿐이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그런 부담이나 억제가 없다. 그들은 왕에서부터 농부까지 우스개로 만들어버린다.

(228) 유머는 깊은 공감력, 자기 확신, 그리고 창조적 재능과 비례한다.

(229) 한 사람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보다 많은 유머를 사용한다. 한 사람의 심리적인 행복감이 클수록 유머 감각도 늘어난다.

(230) 남성과 여성들이 어떤 권위를 지닌 자리에 일단 오르게 되면 그들은 지식도 풍부하고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주위의 기대를 받게 된다. 이는 그들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벌어진다. 가장으로서, 사장으로서, 기관장으로서 중년에 이른 사람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통찰을 마치 갖고 있는 것처럼 꾸며야 할 때가 많다. 「밀고자」이야기는 바로 이런 상황을 잘 요약해준다. 나무꾼은 숨겨진 진실을 마치 아는 것처럼 꾸며대었지만 진실은 바로 꾸며댐 그 자체일 뿐이었다!

(234) 그는 심리적으로 극과의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는데 그런 거리를 유지할 수만 있었다면 유머가 죽음과 비극의 독성을 중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234) 오직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과는 상관없는 상황을 볼 때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너무 완전히 상관하지 않을 때는 무관심과 냉정한 객관성만을 지닐 수 있을 뿐이지 유머가 나오지는 않는다. 몰입과 적당히 유지되는 거리는 유머의 핵심적인 조건이 된다.

(234) 다른 말로 하면 아이러니란 두 관점을 동시에 견지할 수 잇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변증법적이거나 파라독스가 잇는 사고이다. 농담이나 유머는 전형적으로 서로 같지 않은 관점이나 사건들이 연결될 때 우러나온다. 아이러니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중년에 주로 생기기 때문에 성숙의 징표이기도 한다.

(235) 사람들은 각자의 신앙심을 결정해 살면서도 자신들의 믿음이 완전한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다른 이들의 신앙심도 인정을 해주는 것이다.

(243) 젊은이들에게 치료란 세상에서 무언가를 해내는 또다른 한 가지 방법이다. 치료란 영웅주의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너무 멀리 지나치게 되어 치료의 힘을 놓치고 결국 생명도 잃게 된다.

(243) 치료란 힘이나 영광의 수단이 아니라 역경과 비극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치유란 영웅주의를 극복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43) 노인에게 질병이 훨씬 더 일반적인 상황임에도 노인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치유보다는 초월에 더 관심이 많다. 노인들은 몸을 고치는 대신 신체적인 관심을 넘어서는 승화와 정신적인 통찰을 얻게 된다.

(243) 중년들은 물질적인 관심에 빠져있고 천천히 쇠약해지는 육체에 갇혀서 자연히 치유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

(245) 성숙한 동정은 젊은이들의 동정과는 다르다.

(245) 젊은이들은 치료되지 않는 상처도 있고 낫지 않는 고통도 있다는 인생의 어두운 한 부분을 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반면에 중년들은 인간 조건들의 비극적인 차원을 경험하고 나서야 보다 깊은 동정심을 배우게 된다. 이는 중년들이 치료를 할 수 있게 하는 덕목이 된다.

(245) 질병이란 각 개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반성하고 그들의 어두운 부분인 잘못과 단점, 악덕들을 반성하게 한다.

(248) 젊었을 때 만들어놓은 그녀 삶의 구조는 끓어 없어지고 있었다. 융의 용어로 그녀의 페르소나는 파괴되었고 사업가와 부모로서의 친숙한 자아 정체성을 깨지고 있었다. …… 에밀리는 예술과 자연에서 재생과 치유를 발견했다. 이는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잊혀진 부분을 새롭게 깨운 것이다. 죽음과 재생, 우울과 회복에 관한 그녀의 경험들은 내적인 자신과 완벽하게 연결하게 도와주었다.

(251) 즉 지하 세계로 내려가야만 치유의 능력을 발견해 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251) 치료란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힘을 모두 요구하기 때문이다. 동정과 공감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덕목이기 때문에 환자를 돌보고 건강하게 돌려놓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대담한 행동과 강한 투쟁은 전통적으로 남성적인 특징들인데 이 또한 꼭 필요하다.

(251) 치유가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모두 요구하기 때문에 좋은 치료자가 되기 위해 남자들은 돌보는 측면을 지녀야 하고 여성들은 적극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

(259) 남자들은 내부에 숨어 있는 <여성성>에 접근하면서 치유자가 된다.

(259) 악마들은 파괴적인 동시에 치료적이란 파라독스를 갖는다.

(262) 비록 처음에는 무서워하지만 마치 화산이 폭발되는 것처럼 이런 원시적인 리비도들이 나오면 치료에 필요한 심리적 에너지들을 제공해 준다. 폭력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화산이란 새로운 땅을 창조하고 지구의 핵으로부터 생명의 물질을 운반해 준다.

(264) 용암이란 그이 창조적 통찰들과 연애 스캔들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원시적 생명력을 상징한다. … 그러나 그런 만남은 동시에 매우 위험하다. 관습적인 선악에 대한 관념을 버린다는 행위는 니체의 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팽창시키는 동시에 독약을 먹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265) 중년이 되어 확고한 에고를 확립한 이후가 되어야 사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원시적 생명과 안전하게 접촉할 수 있다. 욥이 안정되고 강하게 된 중년에 이르러서야 신과 대면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와 비슷하게 마티스나 융 역시 그들이 무의식의 원시적 힘과 만나기 전에는 매우 성공적인 사람들이었다.

(279) 남자들은 중년에 힘과 명예의 자리를 버리게 되고 굴욕과 연약함을 배우게 된다.

(281) 노인의 구두는 원형적인 주제와 씨름하는 한편 일상적이고 매일 되풀이되는 경험을 하면서 땅에 굳건히 뿌리를 박아야 함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해 준다.

(282) 황금나무처럼 오래된 구조들은 다 없어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가운데 변형이 이루어지는 끝이 없는 인간의 노고들을 상징한다.

(285) 이는 비록 샘물이 끊임없이 움직이긴 하지만 나무는 영원한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점을 암시한다. 황금나무는 아름답게 서로 다른 두 쌍과 양극의 화해를 상징하고, 이는 중년의 지혜를 의미한다.

(287) 간단히 말해 남성성과 여성성의 다른 개념들은 잎과 가지와도 같다. 그들은 단단하고 영원한 황금과 같은 존재이지만 특히 중년에는 규칙적으로 파괴되고 새롭게 만들어진다. … 남성성과 여성성의 원형은 플라톤의 영원한 이상들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삶의 구조물들처럼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목표를 재수정한다.

(290) 연금술의 첫 단걔는 니그레도 nigredo 즉 검은 색의 시기이다. 이때 모든 것은 다 부서져서 원형의 물질로 변한다. … 그 다음에 알베도 albedo, 즉 백색의 시기가 온다. 이는 젊은 시절에는 억압횄지만 중년의 위기시 다시 제기되는 갈등들과 과제들을 재작업하는 것의 비유이기도 하다. 세번째 연금술의 단계가 루베도 rubedo, 즉 정열을 포함하는 적색의 시기이다. 이는 무의식 속에 있는 보다 원시적인 치유의 생명력과의 조우를 상징한다.

(292) 어떤 면에서 우리는 생명의 나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시럽들이나 찔끔찔끔 먹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 정도만으로도 대개는 충분하기도 하다.

(293) … 중년이란, 짐을 잔뜩 싣고 가는 당나귀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 조금 더 어렵고 깊이 있는 전복이 일어난다. 짐만 싣고 살아야 하는 당나귀와는 달리, 인간은 두번째 여행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294) 비록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 기존의 사회에 반대하는 데에 그들의 에너지를 쓰고는 있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그 사회 속에서 자기들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295) 중년에는 젊은 시절에 노력과 투쟁으로 성취한 것들이 파괴되고 새로 만들어진다. 첫번째 전복은 젊은 시절의 마법을 포기하는 것이다. … 그들은 생활을 꾸려나가고 가족들을 부양하면서 자신들의 이상과 타협해야 한다. 젊은 시절의 순수함은 일로 바뀌고 이상주의는 현실주의로 바뀐다.

(296)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유약함에 대해 인정하며 관계의 중요성을 알기 시작한다. 그 경험은 종종 고통스럽고 때로는 상처로 다가오거나 모욕을 당하는 것과도 같다.

(297) 대부분 남녀 모드를 가장 진지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 자신이 희생자일 뿐 아니라 악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고 악함이 남들뿐 아니라 그 자신의 마음에도 존재한다는 점을 배우는 일이다. 자신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 젊은 시절의 끝없는 희망을 대신하다. 운명이 믿음을 가리게 하는 것이다.

(298) 이상적으로 보자면 사람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해 나가지만 동시에 그런 과제들을 꿰뚫어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웃음을 던질 여유도 생긴다. 유머는 통찰과 책임 사이의 충돌을 화해시켜 준다.

(299) 그들의 모든 자기 방어를 하나하나 벗겨내면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존재의 핵심과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299) 진정한 내적 자신으로 이해하건 아니면 신이나 생명력으로 생각하건 간에 이런 시원적인 원천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다시 재정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황금나무」이야기는 극적으로 젊은 시절의 희망과 꿈이 녹아 새로운 형성으로 만들어지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299) 지혜란 숭고하거나 철학적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삶 속에 필요한 실제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

(300) 사람들은 이때에 이르러 완전한 인간으로서 전통적인 사회 역할에서 벗어나 밝음과 어두움, 남성성과 여성성이 통합된 생을 껴안도록 요구된다. 그리고 이것은 대개 각 개인들이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다루는 힘과 지혜를 갖추어 그 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때 가능하다.

(301) 중년의 이야기들은 변화를 요구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바대로 사람들을 진작시킨다. 그들의 메시지는 이런 과정 그 자체이다.

(302) 중년의 오랜 허덕임은 자신들의 영혼 속에 깊이 숨어 있는 시원적 원천과 대면할 때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 중년의 방랑 여행은 지혜의 나무로부터 생명의 나무로 가는 여행이자, 의식에 국한된 정신과 죄의식에 갇혀 있는 단계에서 베풂과 창조의 단계로 이행되는 과정이다.

(303-304) 남자와 여자가 더 이상 젊게 느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것도 아닌 때, 또한 남성성과 여성성, 선과 악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할 때, 그러나 나를 혼란시키는 와중에 떨어지는 느낌이 들 때, 세계의 4분의 3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 시점에서 또다른 제5의 방향을 발견하게 되어 이 모든 것을 함께 쥐려고 할 대,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의 중심에 깊이 존재하는 시원적인 인생의 원천과 마주하게 되고 이런 신성한 내적 자원이 또다른 중심으로 새롭게 변해 보다 긴 여행의 첫 디딤돌로 작용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쉬지 않는 모색은 중년과 중년의 이야기의 주제이다. 그리고 바로 이 중간 지점의 정신이 통합과 변환 그리고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1) 이 책의 강점

우선 이 책의 몇 가지 강점을 살펴보자.

첫 번째, 확실한 독자의 선정이다. 책 표지에서 저자는 이 책의 독자가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임을 분명히 밝힌다. 원제부터 ‘Once Upon a Midlife이다.

두 번째,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심오한 주제를 옛날 이야기라는 쉬운 형식으로 풀어냈다. 이것은 사람들이 이 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쉽게 끌어들여 깊은 도를 논한다.

셋째,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심리학 박사이며 의사이다. 강연을 하고 있고 직접 치료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쓸 때, 저자 또한 40대였다. 이 책은 이런 저자의 강점과 경험을 한데 묶어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들려준다.

넷째, 고정관념의 파괴이다. 옛날 이야기가 단지 어린이의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어른을 위한 옛날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분야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어른을 위한 동화’와 같은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다. ‘어른스러움의 비밀’은 1989년, 그리고 이 책은 1992년에 출판되었으니, 아마 이 책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 벤치마킹

a. 나의 독자는 누구인가?

전통적인 마케팅에서 누차 강조하듯, 누구에게 팔 것인지 확실한 타겟을 선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저자는 소비자의 선정 기준을 나이와 연령으로 삼은 듯하다. ‘어른스러움의 진실’은 노년층을,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은 중년층을, 젊은 여성들을 위한 심리 동화는 제목 그대로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삼았다.

b.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자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라. 자신만의 것을 찾아라. 그리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들려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라.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라.

c. 서로 다른 것을 결합해 새로운 분야를 창출해라!

저자는 심리학과 이야기를 결합시키고, 이론과 경험을 연결시킨다. 옛날 이야기란 쉬운 형식과 중년의 위기라는 어려운 주제를 하나로 묶어서 ‘어른들을 위한 옛날 이야기’라는 매력적이고 독특한 분야를 창출했다.

3) 아쉬움

이 책의 단점은 이 책의 강점 때문에 생긴다. 특정 세대인 중년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다른 세대에게는 큰 공감을 얻기 힘들 수도 있다. 가령 한창 마법을 꿈꾸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이 이야기는 단지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릴 지 모르고, 이미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또 하나의 회고담일 뿐일지 모른다. 분명 그럼에도 ‘길을 미리 보여주거나, 되돌아 보게 해주는’ 이 책 만의 미덕이 사라지지 않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중년이 나이의 문제가 아닌 마음을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더욱 큰 깨달음을 줄지도 모른다.

또 한가지 작은 아쉬움은 내가 저자라면 독자들의 흥미를 더하고, 이 책에 포함된 상징적인 언어들과 용어를 풀어내기 위해 이미지를 추가했을 것 같다. 물론 드러내는 것은 상상하는 것보다 못할 지도 모르지만, 글과 잘 연결된 이미지는 이 책의 맛을 더해줄 것이 분명하다. ‘물의 신’과 ‘황금나무’는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에필로그

이 책에서 저자는 중년을 두 번째 여행을 비유하며, 중년의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크게 4단계로 나누어 소개한다. 우선 마법의 상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두 번째는 자신 안에 있는 다른 성을 찾아야 하고, 세 번째는 죽음과 운명을 인정하고, 끝으로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삶을 깨달아야 한다.

이 책의 부제가 이야기하듯이 서른 이후가 과연 중년인가? 하고 생각해보면 사실 잘 모르겠다. 그 부분이 아마 책을 읽으면서 계속 불편했던 이유일 것이다. 과연 나는 젊음의 마법을 내려놓고,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정말 그것인가?

성장한다는 것은, 깊어진다는 것은 존재에서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고, 양성을 다 아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운명과 죽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도무지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삐걱거렸다. 아직 이루지도 못했는데, 나를 놓아버려라 하는 것 같아 뭔가 억울했다.

그런데 여행을 준비하고, 각자의 장례식을 치르고, 초아 선생님께 ‘時田’이란 호를 받고, 사부님의 ‘남해 바다 이야기’도 듣고 나니, 굳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까지 받아들이려 할 필요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 앞 길에 놓여 있는 큰 그림을 보았으니,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모든 것에는 단계가 있으니 그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지 않으면, 넘어지거나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뜻인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모두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초아 선생님께서 쓰신 주역의 첫 장을 읽었다. 순간 모든 것이 또렷해졌다. ‘乾 元亨利貞’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모든 것에는 자신의 자리가 있다. 때와 장소가 있다. 지금은 바로 언제가 깨기 위한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 죽을 힘을 쏟아 최선을 다해야 할 때이다. ‘時田’이란 호처럼 때 맞춰 열심히, 즐겁게 밭을 갈아야 할 때이다.

이 책을 읽기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로저 굴더 박사가 서문에서 말하듯이 ‘이 책을 읽는 것은 마치 치료를 받는 과정과 비슷할 것이다.’ 달디 단 사탕 속에 너무 쓴 약이 들어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푹 앓고 나면 세상이 조금은 새롭게 보일 것이다. “몸에 쓴 약이 마음에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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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田
2007.04.03 02:05:49 *.60.237.51
초아 서대원선생님께

초아 선생님 감사합니다. 직접 뵙기전에 퍽이나 무서운 분이실줄 알았는데, 직접 뵙고 나니 따뜻하기 그지 없는 분이시더군요. 주신 이름 소중하게 간직하고, 뜻을 깊이 새겨 부끄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남쪽 바다에서 뵐 때까지 몸 건강하세요!

김도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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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4.03 05:33:27 *.115.35.26
다음부터는 책을 읽는 감상문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발견과 내가 다시 책을 쓰는 눈을 가졌으면 하는 욕심이다. 푸로의 눈은 마음을 비우고 동안(童眼)으로 책을 보는 것일 겁니다. 차츰 새로운 착상으로 옮겨갈 것을...
열심인 모습을 생각하며 써본 편지입니다.

"自內比之 吉"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무었보다 중하다. 그래야 자신의 실력이 자신의 내부에서 표출된다.>

* 넓은 안목은 조급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첫째의 방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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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윤
2007.04.03 09:39:53 *.227.22.4
리뷰를 보면서 저랑 비슷하게 느낀 부분이 많아서 기분 좋았네요. ㅎㅎ ^^ (아~ 난 아직 중년은 아닌갑다.)

이 책의 강점은 나중에 책을 쓸 때 잘 살려보면 좋을 듯 합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아~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좀 더 편하게 대할까 혼자서만 계획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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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4.03 09:42:42 *.99.241.60
도윤님.
책에서의 두번째 여행과
남해에서의 장례식에 이은 두번째 여행이
서로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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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田
2007.04.03 09:50:03 *.249.167.156
초아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깊이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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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4.05 12:43:23 *.55.54.44
우와.. 이제서야 자세히 읽어봤네요.
형 형 글은 사부님 표현대로 '울림이 좋은' 글인 것 같아요.
특히 에필로그 부분은 자기 안에다 대고 이야기하여 그 울림이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
벤치마킹 - 이런 좋은 아이디어가!
지금까지 저는 '내가 저자라면'이 창조적 비판일줄만 알았어요.
근데 얼마전에 승완형이랑 이야기하다가, 그것이 '수용'을 위한 것임을 뒤늦게야 알았어요.. '벤치마킹' 제가 담번에 벤치마킹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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