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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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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6일 03시 23분 등록
일의 발견(The Working Life) - 일의 분석을 통한 자아 발견
-조안 B. 시울라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이 책은 오랫동안 내 삶의 일부였다. 내가 사랑하는 일이자 나를 괴롭혔던 문제였다. 나는 이 책의 일부를 집필하고, 다시 수년간 내버려두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그러나 일과 일의 의미라는 주제는 한번도 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위의 글은 저자가 ‘감사의 글’에 남겨놓은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이 주제의 글을 쓰고 싶었을까’ 였다. 어찌보면 쉬울 수 있는 주제일수도 있겠지만 분석하고 해체할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저자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작업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해답은 프롤로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저자는 9년간의 노동철학 강의를 통해, 그리고 20년 가까이 사람들과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의 일에 관해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몇몇 사람들에게 일은 ‘일상의 굴욕’이었으며, 그들의 굴욕은 그들이 하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이나 상사의 멸시와 부당함으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이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심오한 투쟁을 지속하고, 열악한 조건 아래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일의 의미를 찾는 것을 보면서 저자는 감탄하였다. 또한 강의를 하는 동안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바텐더로 일하고, 요리를 하면서 직접 힘든 일을 경험하며, 일과 정체성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구원을 거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면서 ‘경영자의 관점’에서도 일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일과 일의 의미라는 주제가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한번도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고 말하며, 이 주제를 사랑함과 동시에 괴로운 것이라고 표현한다. 저자의 말을 보노라면 이 책은 작가의 숙명이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오죽하면 ‘오랫동안 내 삶의 일부’라고 표현했을까.

이 책은 저자가 말하는 대로 처세를 위한 책도, 엄격한 사회과학 연구서도 아니며, 그렇다고 순수한 철학책도 아니고 일의 역사만 조망한 역사책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며 같이 더불어 가야할 ‘일’에 대한 연구보고서라 하면 맞을 듯 싶다. 단, 주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근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다소 편향적이며 비판적이다.

이 책을 읽으며 몇가지 놀란 점이 있다.

첫째는 원시 사냥-채집 사회(hunger-gatherer society)부터 시작하여 고대 그리스 시대, 초기 기독교 시대, 중세 교회의 르네상스 시대, 종교 개혁을 거쳐 산업혁명과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방대한 역사를 거의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의 관점에서 일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수많은 문헌과 역사가, 사상가들의 주장을 하나씩 들어가며 역사를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 이 흐름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그만큼 저자가 시대별 분석을 통한 꼼꼼한 자료준비와 몇 년간 고민한 빈틈없이 탄탄한 구성에 의해 이 책이 만들어 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겠다.

둘째는 주제에 대한 저자의 예리한 질문들이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우리는 과연 일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우리는 과연 자유롭게 일하고 있는가?‘, ’우리의 일터는 왜 이토록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졌는가?‘, ’경영 이론가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직장’은 가능한가?‘, ’당신은 ‘주말을 위해’ 사는가?, ‘주말 동안만’ 살아 남는가?‘, ’직장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삶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삶을 원하는지 알고 있고,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등등.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쉬우면서도 까다로운 이 질문들에 대하여 대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이 ’일‘을 해왔기 때문이며, 아마 어쩌면 저자가 지적하는데로 고용주의 기만과 술책에 넘어갔기 때문일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진짜 문제점은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고용주의 횡포와 만행에 대응하여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만 무사하게 회사 잘 다니면 되지, 뭐.‘ 하고 대수롭게 넘어가버리는 얄팍한 개인, 보신주의가 현재 우리 사회를 지금처럼 만든 것 아닐까 생각하고 반성하게 된다.

그 외에도 참고문헌 중 역사서, 철학서, 경영학, 심리학 서적 뿐만 아니라 아동도서와 우화까지 동원하는 작가의 센스는 뛰어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이야기의 전개상 처음 일이라는 큰 주제에서 삶의 의미, 행복한 삶, 자유시간과 여가, 시간적 관점에서의 일, 일과 소비주의의 상관관계까지 넓혀가는 작가의 재능은 처음 언급한대로 수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번뇌하지 않으면 절대 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이 책은 작가가 말한대로 작가의 삶의 일부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일’을 스스로 삶의 어느 수준까지 맞춰야 할지 더더욱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2.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

프롤로그

우리 사회는 일을 지향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 바보가 된다.”(8P)

일은 우리의 지위뿐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까지도 결정한다.(8P)

마치 좋은 직업이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열쇠인 양 많은 사람들은 맹렬하게 성공을 추구한다.(9P)

이 모든 것은 결국 그들에게 삶의 방식을 선택할 자유를 부여해줄, 특정한 지위를 얻기 위함이다.(9P)

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시장이나 고용주의 손에 맡겨두는 결과를 가져온다. 괜찮은 삶을 사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 이사의 것(something more)’을 원한다.(9P)

우리는 그 일이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 주거나, 적어도 원하는 길을 가는 동안 우리를 먹여 살려줄 것으로 기대할 때, 그 어떤 최악의 일이라도 견딜 수 있다.(12P)

과거의 노동자들이 단지 과로했을 뿐이라면, 오늘날의 많은 노동자들은 과로할 뿐 아니라 과도한 통제를 받고 있다.(14P)

1990년대가 남긴 한가지 이점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변덕스러운 세계경제에서 경제적 거래를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14P)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일’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15P)


1부 일의 의미와 역사
1장 우리는 왜 일하는가?

어떤 사람들에게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은 우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19P)

우리는 일을 “직업을 갖는 것”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19P)

‘일’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20P)

"게으른 자의 마음은 악마의 작업장“(20P)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일은 규율, 소속감, 규칙성, 자기 효능감 같은 다양한 심리적․사회적 욕구를 만족시킨다.(20P)

결국 실직자들이 여가를 갖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일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구속된’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시간 또한 없다.(21-22P)

"실직의 문제점은 당신이 단 하루의 휴가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22P)

아리스토텔레스는 안전하고 안정된 사회의 올바른 미덕을 배운 시민들이 아니고서는 여가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22P)

우리 삶에서 진정한 일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일’이다.(23P)

여가는 단순한 ‘자유시간’ 이상이다. 그것은 일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이며,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한 기회이다.(23P)

인간의 가장 흥미롭고 독특한 점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난 ‘후’에도 스스로 일하기를 선택한다는 점이다.(24P)

일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에는 분명히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25P)

일은 우리에게 유용하기 때문이다. 일은 규율과 정체성, 가치를 제공한다. 일은 우리의 시간을 조직하고 우리의 삶에 리듬을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우리에게 매일매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준다는 점이다.(25P)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부지런한 습관은 일이 가져다주는 산물이며, 우리가 일을 통해 얻는 실용적인 교육이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성과 바쁜 습관을 만들어낸다.”고 저술하고 있다.(26P)

일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필요일 뿐인 것이다.(26P)

"원시사회가 문화를 형성하거나 발전시키지 못한 이유는 엄밀히 말해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게으름 때문이다.“ -마샬 살린스- (27P)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적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중심이다.(31P)

개미가 갖고 있는 인생 계획의 장점은 그의 검소한 생활이 그를 곤궁으로부터 구하고, 늘 비상시를 대비하도록 한다는 점이다.(33P)

당신이 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을 때, 일은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33P)

“이상적인 실존은 오직 그것을 만족시켜야만 다른 모든 것들이 정당화되는 일을 하는 것”(35P)

사람들은 놀면서 일하는 대신, 일하면서 놀 것이다.(36P)

네가지 가치가 우리의 직업 선택 방식을 결정한다. 그것은 의미 있는 일 혹은 당신이나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흥미롭고 중요한 일,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여가나 자유시간, 돈, 그리고 안정이다.(38P)

삶의 각 시기마다 서로 다른 가치들이 우선순위를 다툰다.(39P)

중년의 사람들은 더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할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다.(40P)

우리가 직업을 선택할 때에는 그 선택으로 인해 다른 가치들을 어느 정도 잃게 되더라도 감수해야 한다.(40P)

우리들 대다수는 우리가 정말로 하고 싶어하는 일의 표상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일을 하기 위해 현재 직업이 주는 안정과 권력, 구매력을 감히 포기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의미 있는 일에 뛰어드는 것은 모험이다.(42P)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지 ‘일할’ 기회가 아니라, 집에 머무는 것과 일하는 것 사이에서 ‘전정한’ 선택권을 갖는 것이다.(44P)

일은 사람들에게 정체성과 자기 가치, 그리고 자기 주변의 세상을 형성하고 거기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일이 주는 가장 근본적인 만족은 생계를 꾸리는 데서 오는 만족감,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일 것이다.(44-45P)


2장 일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거나, 어떤 것의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잠재적으로 강력한 행위이다. 당신이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당신은 그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48P)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세계이다. 말은 우리가 경험한 사람과 사물, 그리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나타낸다.(50P)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일에 대한 욕구와 동기는 외적 압력에 의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할 수 있다.(52P)

때로 우리는 어렵거나 불쾌한 활동, 혹은 우리가 특정 시간에 하고 싶어하지 않는 활동을 일이라고 부른다.(52P)

우리는 암묵적으로 ‘일’을 다른 유형의 활동보다 덜 바람직한 것으로 가정한다.(52P)

일은 진지하지만 놀이는 진지하지 않다.(52P)

‘사눅(재미있는)’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근심없는 즐거움을 뜻한다. 일이건 놀이이건 상관없이 어떤 활동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속성이 바로 ‘사눅’이다.(53P)

일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소유하는’ 것이며,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55P)

노동의 인간조건은 세속성이다.(55P)

일은 필수적인 동시에 우리의 자유를 제한한다. 반면 그것은 의도적인 행위이자 창조적 행위이기도 하다.(56P)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노동’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필요한 물건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하는 하인의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57P)

'일‘은 노동의 산물을 나타내는 명사이지만, ’노동‘은 일하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명사이다. ’노동‘은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반면, ’일‘은 다양한 행위나 그러한 행위의 대상을 가리킨다.(57P)

'노동‘은 육체적 노력을 나타내는 반면, ’수고‘는 지속적이고 소모적인 노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고역‘은 하찮고 지루하고 단조로워서 우리가 싫어하는 일을 일컫는다.(58P)

고통스럽고 지루하며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라도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목적’이 있다면 그 자체로는 벌이 아니다.(59P)

'업무‘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하는 경제적인 존재의 활동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이다.(62P)


3장 일의 역사

기원전 4세기의 역사가인 크세노폰은 “사람들이 생의 좋은 것들을 누리는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일”이라고 기록했다.(65P)

재산(땅과 노예들)을 소유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이 두가지야말로 그가 생각한 ‘인간적인 삶’의 기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65P)

어떤 것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랴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여가 활동의 정의이다.(66P)

일은 정신적 수양을 위한 한 가지 방법이었다.(68P)

교회는 ‘일’을 세 가지 정도로 구분했다. 그것은 삶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일, 다른 이들을 위한 일, 개인적인 이득이나 물질적 이득을 얻기 위한 일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큰 죄-교만, 탐욕, 색욕, 분노, 질투, 탐식, 태만-는 물질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일의 잠재적인 해악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죄는 물질세계에 숨겨진 ‘악’을 가리키고 있다.(72P)

태만은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73P)

일에 대한 생각이 베네딕트 수도회의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라는 규범에서 신교도의 “일하라, 그리고 기도하라”의 개념으로 그 우선순위가 바뀌기까지는 이후 다시 약 1,00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75P)

선과 악은 개인의 성향과 경험에 기반한 선택이다.(76P)

역사가인 자크 르 고프가 지적하듯이 “그들에게 악마는 일곱 가지 큰 죄의 형태를 띠기보다는 하나의 직업이나 집단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신에 대한 수많은 모욕의 형태를 띤다.”(76P)

일은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잠재적인 미덕 및 악덕과 동일시되는 것으로 가정되었다.(77P)

중세의 교회는 사람들에게 신과 세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했다. 세속적인 삶의 모든 아름다움과 쾌락 뒤에는 영혼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이 숨어 있었다. 수양과 쾌락, 도덕적 가치와 심미적 가치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했다(80P)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일해야만 한다. 그러나 일을 통해 얻는 이득이로 지나치게 잘 사는 것은 도덕적으로 위험하다.(80P)

만약 종교가 중세의 아편이었다면 창조성과 미는 르네상스 시대의 각성제였다.(82P)

14세기 철학자이자 건축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삶이란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82P)

쾌락은 짐승 같은 충동이 아니라 이성과 통찰의 원리이며, 덕은 재능이자 인내하는 능력이었다.(83P)

인간이 자신의 일을 정의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될 수 업삳. 즉, 일이 인간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일을 정하는 것이다.(83P)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 자체를 위한 일’이라는 개념과 ‘휴식과 쾌락에 대한 혐오’는 칼뱅과 루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노동윤리”라고 불리는 것의 수많은 형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칼뱅에게 있어 일은 은총의 상징이자 구원의 수단이었다.(85P)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일과 모든 노동자들을 똑같이 존중하도록 가르쳤다는 점이다.(86P)

루터와 칼뱅의 노동윤리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람들을 구속해온 믿음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선하고, 일하지 않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이다.(86P)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는 우리가 일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구원을 찾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일은 자신을 발견하고 창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준다. 구원을 확신하지 않는 신자들에게 일은 자신의 정체성과 신의 사랑의 징표를 탐색하는 방법이었다.(87P)

모든 인간은 그들의 소명이 무엇이든 (자신의 소명에서) 완전함을 추구해야 한다. 모든 일이 신의 명령이라는 생각은, 일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불쾌하며 보수가 적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보증해 주었다.(87P)

일은 일종의 기도가 되었다. 일은 삶의 수단을 넘어 삶의 목적이 되었다. 일은 저주에서 소명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많은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88P)


4장 일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

“그는 선한 인간이다. 고로 그는 열심히 일한다.” 공정함, 개인의 탁월성, 개인의 선함이라는 이 세 가지 개념으로부터 일은 ‘고역’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것이라는, 일에 대한 낭만적 개념이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는 일을 통해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90P)

크루소에게 일은 삶의 수단을 공급하는 ‘동시에’ 삶의 의미를 제공해주는 약속인 것이다.(92P)

미국의 가장 고도로 발전하는 분야에서 이뤄지는 ‘부의 추구’는 그 종교적 의미와 윤리적 의미를 빼앗긴 채 순전히 세속적인 욕망과 관련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그것은 부의 추구에 스포츠 같은 특성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93P)

“포부를 가져라-그리고 땀 흘려라”, “빗자루를 잡고 우울함을 쓸어버려라”, “미국인(American)의 철자 속에 포함된 ‘나는 할 수 있다(I CAN)'를 장려하라”, “성공(success)의 또 다른 철자는 땀(s-w-e-a-t)이다” -버티 찰스 포브스- (99P)

“청결해라. 열심히 싸워라. 좋은 기회를 현명하게 골라잡아라. 네가 목표로 삼고 있는 그 높이에 영원히 두 눈을 고정시켜라.” -러셀 허먼 콘웰도- (99P)

마치 미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업장이며 그 입구 너머에는 강력한 비문이 걸려 있는 듯하다. “용건 없는 자 입장 불가.” -프란시스 그룬트- (101P)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창조성과 일하고자 하는 욕구를 잃었다.(102P)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유재산과 자본주의 생산체제는 일로부터 얻는 창조적이고 사회적인 보상과 자신이 만들어낸 상품을 사용하는 기쁨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켰다.(103P)

모리스에 따르면,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원하도록 하고 그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희망’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가치 있는 일은 휴식의 즐거움에 대한 희망, 일을 통해 만든 것을 사용함으로써 느끼게 될 즐거움에 대한 희망, 그리고 일상적인 창조의 기능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한 희망을 수반한다.”(105P)

인간이 실제로 하는 ‘일’에는 두 가지 이상적인 유형이 있다. ‘장인의 일’ 혹은 손을 이용해서 하는 일과, ‘전문가의 일’ 혹은 정신을 가지고 하는 일이 그것이다.(106P)


2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5장 일과 자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일하러 갈 때 자신의 헌법상의 권리를 주차장이나 버스에 두고 간다.(115P)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일한다. 그러나 노예는 ‘살아 있기’ 위해 일한다.(117-118P)

노예는 주인이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하는 기계(instrumentum vocale)"일 뿐이다.(120P)

노예제도의 목적은... 주인의 이익과 안전, 그리고 공공의 안전이다. (중략) 노예를 완벽하게 복종시키기 위해 주인의 권력은 절대적이어야 한다.(121P)

결국 고용이란 자유와 기회로 이어지게 될 일시적인 노예 상태를 의미하였다.(122P)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영국의 산업 노동자들을 미국의 노예들과 비교했다. “그들은 미국의 흑인들보다도 못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철저히 감시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처럼 살아가도록,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도록 요구되기 때문이다.”(126P)

한 개인이 자신의 일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사실이 고용주의 학대를 반드시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문제는 한 개인이 얼마나 많은 선택권을 ‘실제로’ 갖고 있는가이다.(127P)

"자선은 다른 방법으로 살아갈 방편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이 풍족하게 가진 것으로부터 한 개인을 극도의 결핍에서 벗어나게 해줄 만큼 가져올 수 있는 권리를 모두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구제를 행하지 않음으로서 다른 사람의 욕구를 이용하거나 그로 하여금 자신의 노예가 되도록 강요하는 것은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존 로크- (128P)

농부들은 원숭이가 원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생각하기에’ 원숭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원숭이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괜찮다고 한다.(131P)

착취의 논리가 사람들의 욕구를 해결해주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이용을 정당화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착취는 또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기꺼이 팔고자 ‘하는 것’을 결정하는 데 있어 누가 권력을 갖는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131P)

스미스는 일꾼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상품이 아니라 일터에서 상실한 자유의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고 말했다.(131P)

산업혁명에 의한 기계화는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실행시켰을 뿐 아니라 몇몇 업무를 단순 작업화함으로써 사람들을 기계의 일부처럼 쉽게 대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136P)


6장 일꾼 길들이기

노동자의 산출량 제한은 “이타적 형제애”와 개인의 존엄, 그리고 “마음의 수양”을 상징했다.(139P)

“오늘날과 같은 대량생산의 시대에, 산업의 가장 중요한 과업은 인간을 인간다운 원칙에 기반하여 관리하는 것”(146P)

한 비평가는 인간관계와 산업심리학을 “인간기계를 작동하기 위한 승무원 관리하기”라고 불렀다. 이러한 경영적 접근법은 현장 관리자와 근로자들 간의 관계, 근로자 집단의 역동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150P)

그들은 ‘직장에서의 자유’를 ‘시장에서의 자유’와 교환하고자 했다. 계약제 하인과 산업 노동자가 장시간의 육체노동을 그들의 알량한 아메리칸 드림과 교환했다면, “조직인(organization man)"은 영혼의 일부를 포기해야만 했다.(158P)


7장 노동의 두 얼굴

소외의 문제는 사람들에게 성인(adult)으로서의 책임과 위엄을 주었을 때만 완화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일은 주로 직업의 사회적․도덕적 성격과 관련된 것이지 특정한 일의 종류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160P)

드러커는 단지 생계를 위해서만 일하고 일 자체와 그것이 갖는 의미를 위해 일하지 않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며, 시민이 될 수도 없다.“고 말한다.(160P)

회사를 소유하는 사람(주주들)이 회사를 경영하지 않고,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경영자들)이 회사를 소유하지 않을 때, 회사가 책임 있게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161P)

경영 연구자들은 외적 보상에 개의치 않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열정적인 인간 행동과 헌신을 고취시키는 잡히지 않는 영혼, 즉 “기계 안의 유령”을 찾기 위해 인간의 정신을 점점 더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161P)

밀스는 사무직 노동자들을 “새로운 작은 사람(new little man)"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뿌리가 얕아 충성심이라고는 없으며, 항상 서두르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161P)

사회윤리에 대한 와이트의 비판은 공산주의에 대한 오늘날의 비판과 유사하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는 밖에서 보면 무척 좋아 보이지만, 안에서 보면 강압적이고 독재적일 수 있다.(165P)

와이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아마도 조직이 “인간미 없는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166P)

직장에서는 여전히 “팀”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증가하고 있고, 집단의 가치가 강조된다. 누구도 창조성의 상실이나,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의 정체성에 종속되는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듯하다.(166P)

"주사위는 조직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169P)

그것은 당신 자신의 사생활과 내적자아, 그리고 당신이 일을 하는데 필요한, 보다 공적인 측면들 사이에 경계를 긋는 것이다. 일부 직장에서는 둘 사이에 아무런 경계가 없는 것을 선호한다. 얼마만큼 보여주고 얼마만큼 숨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169-170P)

친절하고 우호적인 경영자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조직 내의 권력과 힘의 경계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것을 그저 감추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171P)

≪풍요한 사회≫에서 존 케네스 캘브레이스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아니라, 교육 수준이 높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의 사람들이 갖는 포부라고 주장했다.(171P)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가치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기반한 선택을 한다.(172P)

일은 “일상의 빵뿐만 아니라 일상의 의미를, 현금뿐 아니라 인정을, 무기력뿐 아니라 놀라움을” 추구 하는 것이다.(176P)

고용인들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주는 데 있어 예상치 못한 한 가지 문제는 경영진이 어리석은 전략적 결정을 내렸을 때 근로자들 역시 사업에 대한 나름의 이해에 기반하여 좌절하고 분노할 수 있다는 점이다.(180P)

일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 낸다.(181P)

자신의 직업과 지나치게 동일시된 근로자는 정서적으로 소진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반면 직업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근로자는 스스로를 위선자로 여기며 모욕을 느낄 것이다. 자신의 직업을 연출된 일로 여기는 사람은 그것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일에 대한 일종의 냉소주의를 갖게 될 것이다.(184P)


8장 유망한 직장

우리는 또한 조직 내의 힘, 권력, 갈등에 관한 질문들이 왜 경영학 교과서나 대중 문학에서 논의되는 일은 드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이러한 책과 이론들은 경영자들에 ‘대한’ 것인 동시에, 경영자들을 ’위한‘ 것이다.(190P)

피터스와 워터만은 가치, 상징, 이데올로기, 언어, 신념, 의식 그리고 조직의 신화를 의미하는 말로 ‘기업문화’를 사용했다.(193P)

"동일한 기관이라도 문화가 지배하면 가장 높은 수준의 진정한 자율성이 발생한다. 문화는 중요한 소수의 변수들을 강력히 통제한다. 그리고 그것은 의미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저항하고 혁신하도록 장려된다.“ -피터스와 워터만- (193P)

"강한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는 일을 더 기분 좋게 느끼도록 만든다. 따라서 그들은 더 열심히 일하는 경향이 있다.” 성공한 기업에는 강한 문화와 그 문화를 이해하는 경영자들이 있다.(193P)

강한 기업문화의 커다란 이점은 그것이 포괄적이고 자동 조절되는 사회 체제라는 점이다. 불리한 점은 그것이 억압적인 동시에 변화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부정적인 면은 (중략) 점점 더 일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신이 실직하게 되면 당신은 일과 소득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195P)

권한위임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들거나, 실제로는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권력을 더 많이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198P)

스콧 애덤스가 처음으로 쓴 책의 표지에는, “나는 퍼시픽 벨 본사의 4S700R호실에 배속되어 넥타이를 맨 채 회사의 제물로 9년을 보냈다”고 적혀 있다.(199-200P)

몇몇 욕구불만의 경영자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경영 의욕을 과시하기 위해 “엎드려, 또 시작이다(Bend Over Here It Comes Again)"의 머리글자를 따서 ‘BOHICA'라는 약어까지 만들어냈다.(201P)

일이 같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재정의되고 재명명된다면 그 일은 결국 무의미해지고 말 것이다.(200P)

이상적인 조직 관리자의 이미지는 점차 변화했다. 즉, 기존의 무뚝뚝한 상사에서 친절하고 지지적이며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며 영웅적인, 환상을 쫓는 강력한 리더로 변화한 것이다.(203P)

직장은 전보다 더 활기차고, 희망으로 가득 채워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직장이 이전보다 더 ‘진실’해졌는가?(203P)

‘팀’이라는 단어는 재미와 도전, 그리고 스포츠 영웅주의라는 개념을 일터로 끌어들인다. 우리는 모두 이 팀에 함께 있고, 경쟁자를 물리쳐야 한다는 개념은 흥분을 불러 일으키며, 그것은 또한 사람들의 소속 욕구에 부응한다.(203-204P)

회사 내의 팀들은 대부분 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분 좋게 느끼기 위해 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개인들의 집단’에 불과하다.(204-205P)

데이비드 리스먼조차도 조직 내에서 팀워크를 예찬하는 것이 실제로는 “적대적 협력”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팀워크는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생존을 위한 진짜 투쟁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205P)

진정한 스포츠 코치는 격려하고, 도움을 주고, 용기를 북돋워준다. 그러나 그들도 때로는 이기는 팀을 만들어낼 때에만 인정받는 불쾌한 파시스트처럼 행동할 수 있다.(205P)

"좋은 계획이네요, 우리가 스스로를 ‘팀’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그 다음엔 우리가 무기력하고 세밀하게 조종되는 노예라는 사실을 결코 깨닫지 못할 테니까요.”(206P)

바로 “애초에 똑바로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품질관리가 전 과정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지, 과정의 마지막에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208P)

데밍이 원래 제시했던 품질경영의 열네 가지 본질적 요소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이 회사를 위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두려움을 몰아내라”는 것이었다.(213P)


9장 배신하는 직장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을 신뢰한다면, 악수만으로도 사업을 함께할 수 있다.(224P)

“신뢰가 없다면 배신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보다 일반적으로, 신뢰가 없이는 협력도, 공동체도, 거래도, 대화도 있을 수 없다.” -로버트 C.솔로몬- (224P)

헌신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으로, 충성이 보수의 대가로, 신뢰가 법적 계약으로 한정되면, 이들 용어에 담긴 도덕적 의미는 사라지고, 직장은 도덕적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된다.(225P)

산업화와 더불어 근로자는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취급받았다. 오늘날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쓸모없게 되었거나 폐기할 수 있는 부품인 것처럼 느낀다.(225P)

직장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덕적 문제는 ‘공평성’이다.(226P)

훌륭한 근로자가 없는 훌륭한 기업은 없다.(230P)

어떤 직업도 안전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안전한 직업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233P)

생산성과 품질을 놀랍도록 향상시키고,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회사의 능력은 훌륭한 경영 이론 덕분이라기 보다는 두려움이라는 노동윤리 때문일 수 있다.(235P)

어떤 이들은 마치 결승선이 없는 경주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경주에 남아 있는 것이다.(235P)


3부 일과 삶
10장 우리는 시간과 투쟁한다

현대의 디지털 시계는 시간을 전후(before or after)의 일련 사건 자체로만 묘사한다. 그것은 앞으로만 나아갈 뿐, 당신이 ‘어디까지’ 왔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시간은 그저 축적되는 질서 정연한 사건들의 연속이다.(249P)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은 조직 시간이 자주 자기 시간이나 상호작용 시간보다 우선시되는 세계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다.(253P)

일이 개인의 시간을 몽땅 차지하거나, 그 사람이 가진 에너지 전부를 소진할 때 집은 더 이상 직장으로부터의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또 다른 직장이 된다.(267P)

일이 우리 삶에서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할수록 모든 활동은 점점 더 일처럼 느껴진다.(269P)

신기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었지만, 그것은 잠재적으로 우리를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고용인으로 만든다.(271P)

일찍이 알베르 카뮈가 말했듯이, 일이 없으면 삶 전체가 타락한다.“ 그러나 자유시간이 없어도 삶은 타락할 수 있다.(275P)


11장 여가와 소비주의

여가는 인간의 가장 훌륭하고 독특한 능력, 즉 생각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창조하고 배우는 능력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지혜를 발전시키기 위해 여가를 필요로 한다.(276P)

여가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하게 지적(知的)인 상태이다. 그것은 단순히 조직화된 활동이나 오락, 휴양 및 자유 시간을 넘어서는 것이다.(277P)

일이 우리의 힘과 자원을 몽땅 소진시켜서 TV 시청 외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도록 만들거나, TV 시청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으로 만든다면 잘못된 것이다.(283P)

소비는 개혁가들이나 고용주들, 혹은 정부의 어떤 계획보다도 더, 일과 자유시간의 관계를 단단한 매듭으로 연결한다. (중략) 윌리엄 H. 와이트가 계산하지 못했던 것은 소비주의와 신용거래가 사람들을 더더욱 일에 묶어놓는다는 점이었다. 소비는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약할 때조차 일을 해야 할 ‘필요’를 창출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일을 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들 수 있다.(287P)

그들은 증가하는 소비 욕구와 구매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에 몰두한다. 일과 여가, 그리고 소비주의는 우리를 악순환에 가둔다.(291P)

소비주의는 노동윤리가 떠난 자리-혹은 한번도 차지하지 못한 자리-를 대신한다.(293P)

우리가 실제로 일터에서의 자유를 시장에서의 자유와 교환했다면 통제권을 되찾는 한 가지 방법은 시장에서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우리의 수입 이하로 생활하는 것은 수입을 초과하여 생활하는 것만큼 즐겁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일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 더 많은 융통성을 허락한다.(293P)

모든 사람에게 여가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쓸 수 없다면 삶은 황폐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294P)


12장 의미 있는 일, 그리고 행복한 삶

벨 코프먼은 호레이스 월폴을 인용했다. “인생은 희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고, 비극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다.”(298P)

창조의 행위는 그 사람의 흔적을 이 세상에 남긴다.-“나는 창조한다, 고로 존재한다.”

“누군가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묻는 순간, 그는 이미 병에 걸린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 즉 리비도(libido)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301P)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자아성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301P)

신앙은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는 동시에, 그 질문을 제거해 버린다.(304P)

의미 있는 삶이란 현재를 위한 삶과 미래를 위한 삶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307P)

우리는 삶의 가치나 의미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한다. 최상의 답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 삶을 온전히 살 수 잇게 해주는 것이다.(307-308P)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오직 고귀하고 도덕적인 즐거움만이 참다운 행복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행복은 오직 행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중략) 인간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310P)

행복과 의미는 모두 도덕성과 관련되어 있다. 행복하고 싶다면 당신은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며, 도덕적으로 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원해야 한다.(310P)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행복에 대한 보편적인 요구와 우리 문화에 널리 퍼져 잇는 불행은 일을 지향하는 문화의 산물이다.(310-311P)

자본주의는 삶의 수단을 제공할 뿐 삶의 목적을 제공하지는 않는다.(315P)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성은 우리 안에 있는 존재를 나타낸다. 그것은 감정과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힘, 그리고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자아와, 우리 안에 있는 신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관련된다“(316P)

결국 ‘직장에서의 영성’은 대중 심리학과, 일시적으로 유행했던 경영학 이론이 항상 해왔던 일을 반복하고 잇을 뿐인 것이다. 즉, 그것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듦으로서, 애초에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만들었던 권력과 갈등, 자율성에 관한 심각한 문제들을 ‘처리’하는 대신 그것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다.(318P)

고용주들이 유일한 비난의 대상은 아니다. 많은 고용인들이 실제로 게을러졌고, 그들은 고용주들이 자기 삶의 많은 부분들을 책임지도록 기꺼이 내버려두었다.(319P)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뿐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조직은 의미 있는 일을 ‘창조’해주지 않는다. 그곳은 다만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하는 장소일 뿐이다.(320P)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실한 상황 혹은 실재를 파악해야만 한다. 의미 있는 일의 객관적 요소는 일 자체의 도덕적 조건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고용인들은 존엄과 존중을 가지고 처우받아야 한다. 이러한 원칙과 함께 정직, 공평함, 정의와 같은 다른 원칙들이 뒤따른다.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이라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321P)

우리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대신해서 결정하고 의미를 이야기해 달라고 하는, 특정한 게으름 혹은 주의의 결핍 때문이다.(321P)

의미 있는 일은 의미 있는 삶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조직’에서 행해지는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일은 그 안에 무언가 좋은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322P)

의미 있는 일은 우리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322P)

실업은 희망을 파괴할 뿐 아니라 우리가 조직과 사회, 경제제도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던 믿음까지도 파괴한다.(323P)


에필로그

정의는 훌륭한 삶의 본질이며, 삶이 좋을 때 일도 보다 나아진다.(324P)

부모가 직장을 잃게 되면 자녀들의 삶 또한 붕괴된다. 이렇듯 직업 안정성이 점차 무너지고 있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이상, 우리는 이제 우리의 복지와 사회적 삶의 중요한 요소들을 고용주에게 맡겨서는 안된다.(328P)

우리 삶의 다른 측면들이 직장에 예속될 때, 우리는 일과 삶 ‘모두’에 대한 통찰력을 잃는다.(328P)

'정직한 직장‘이란 고통스러운 진실을 이야기해줌으로써 그들이 그것에 대비할 수 잇게 해주는 조직을 의미한다. 결국 그것이 “근로자들을 성인으로 대우하는” 것이다.(329P)

상호존중은 단기적인 헌신관계를 만들어내는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서로에게 존중을 표하고 존중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330P)

우리가 흥미로워할 일이나 훌륭한 일을 소비, 여가, 안정 가운데 하나와 기꺼이 교환하려 한다면 우리는 통제권을 되찾고 아마도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332P)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그 이상의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추구하기로 결정하면, 일과 삶이 갖고 있는 가능성은 놀라울 정도로 무궁무진해진다.(332P)

"우리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삶을 원하는지 알고 있고,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그것을 위해 현재 포기하고 있는 것만큼의 가치를 갖는가?“이다.(333P)

이 책은 다만 일에 대한 비판적인 묘사일 뿐이며, 새로운 직업 현실을 고려했을 때 우리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효과적인 삶의 토대는 궁극적으로 일이란 무엇이고, 지구상에서의 제한된 시간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으로부터 시작된다.(333P)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에 치이고 쫓기며 일 자체에 주도권을 빼앗긴(혹은 고용주에 영혼을 빼앗긴) 사람들이 꼭 한번은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일’을 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일’에 시간을 빼앗겨(물론 시간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받기는 하지만) 정작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 조차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업무속에서 피로에 짓눌려 가정에 돌아가 행복하여할 시간에는 TV 채널 돌릴 힘 밖엔 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을 하여야 하는가. 만약 일을 계속 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이에 대하여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모가 직장을 잃게 되면 자녀들의 삶 또한 붕괴된다. 이렇듯 직업 안정성이 점차 무너지고 있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이상, 우리는 이제 우리의 복지와 사회적 삶의 중요한 요소들을 고용주에게 맡겨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이란 허리케인은 이제 우리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고 고용주들은 세계경제의 어려움을 들어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설사 운좋게 살아남은 사람들 또한 불안에 떨며 모든 주도권을 고용주에게 맡기고 그들의 일방적 지시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마치 결승선이 없는 경주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경주에 남아 있는 것이다.”

문제를 인식하면 해결책을 고민할 수 있다. 답을 찾으면 행동에 옮기는 것이 가능해지고 실천과 노력을 통해 우리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작가가 원하는 것은 일에서의 자아발견이다. 잃어버린 개인의 주체성을 찾고 ‘인간답게’ 대우 받으며 일을 하라는 것이다. 모르면서 당하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될 경우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우리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의 한 도구처럼 일만 해야만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몇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첫째는 전반적 내용이 이원법적 전개로 선악의 대결과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근로자 또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쓴 책이기 때문에 고용주에 대한 잘못된 점이나 그들의 기만적 내면세계를 폭로하는 것, 그리고 100년 동안 변해온 경영기법에 당한 근로자의 현실을 제대로 밝히고 싶은 의도 등은 이해가 가지만 일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고용주와 고용인의 조화와 균형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 전체 내용에 진실한 고용주의 인터뷰나 상생의 결과를 도출한 기업의 사례를 좀 더 넣어 노사의 균형을 맞추고 결론적으로는 미래를 협력의 구도로 맞이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작가가 미국인의 관점에서 쓰여졌음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내용상으로는 미국 자본주의 시장과 미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경영기법들에 대해서만 언급하여 동양과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한 예로 동양에 대한 이야기는 정신적 수양을 언급하며 나오는 부처의 사례밖에 없다. 더군다나 동양의 유구한 역사에서 이어지는 일의 의미는 서양의 역사와는 많은 부분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그 언급이 없다는 것은 책을 읽는 동양인, 특히 한국인 독자로서는 더욱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아니면 동양에서라도, 능력이 있는 누군가가 이와 같은 주제로 연구를 통해 책을 집필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중간관리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고용주와 고용인 간 관계의 이원법적 분석에 집중하다 보니 보다 세부적인 ‘중간관리자’에 대한 부분을 간과한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정리하고 시대별 또는 용어별로 정리하다보면 의도하는 바와는 다르게(혹은 의도한 바대로) 빠지는 부분이 있겠지만 현대 기업사회에서 ‘중간관리자’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여진다. 어떤 면에서 판단해 보았을 때 중간관리자는 고용주와 고용인의 중간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2가지의 이미지 및 역할을 다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판단된다. 위로는 고용주를 받들어 그의 의견대로 모든 업무를 이행해 나가야 하며, 아래로는 본인도 고용인임에도 불구하고 부하직원들을 잘 통솔하여 팀을 이끌어 나가야만 한다. 그들의 역할은 기업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중간관리자’의 일의 의미는 ‘승진’일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중간관리자’도 작가의 의도대로 빼앗긴 주체성과 주도권을 찾기 위해 투쟁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냥 ‘승진’을 ‘중간관리자’의 일의 발견으로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직장내에서 ‘그 이상의 것’을 찾는 노력을 더 해야만 하는 것일까? 개인의 입장에서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인 듯 싶다.


“중년의 사람들은 더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할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다.”

작가의 이 말은 지금의 내 상황을 대변해 주는 말로 들려 더욱 가슴에 남는다. 중년으로 들어선 지금 어렵지만 선택을 해야할 시기라 판단된다. 또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을 해야만 할 것이며, 지금이 바로 그 새로운 기회라 확신한다.
IP *.254.6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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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7 04:22:02 *.140.145.63
님의 글을 읽다 보니 제가 만들어가고 있는 일에서도 이 책을 통해
던진 일을 둘러싼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대답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차근차근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이 담긴
리뷰가 그때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그런 면에서 감사 드리구요..^^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에 놓인 '중간관리자'를 끌어낸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이네요. 굳이 구분을 하자면 이 그룹 역시 고용인이지만 한편
으로는 고용주의 대리인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어쩌면 정체성의 혼란을 심하게 겪을 수 밖에 없는 힘든 위치에 있는
안쓰러운 그룹인 동시에 또 다른 관점의 '일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수
도 있는 그룹이 아닐까 싶습니다. 같이 한번 고민해 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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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7.03.27 11:15:44 *.252.33.160
맹자가 말하길,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는 것이다.

님의 글을 보면서 그 말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책에 대한 느낌, 아쉬운 점, 비판점 등등을 써내려가시면서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고 거기서 한걸음 나아가시는 다짐들이
참 좋습니다.
언제나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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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 女自의 발견 [5] 김귀자 2007.03.30 2163
742 (004) (수정됨)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계속되는 내적 변화 [4] 한정화 2007.04.02 2097
741 IT 타짜가 전하는 '사람' & '소통' file [5] 이기찬 2007.03.29 2166
740 일의 발견(Working Life)을 읽고 [2] 엄승재 2007.03.26 2414
739 『일의 발견』을 읽고 [2] 이희석 2007.03.26 2228
738 일의 발견 - 조안 시울라 [1] 최정희 2007.03.26 2076
737 (03) 일의 발견 - 조안 시울라 [12] 옹박 2007.03.26 2249
» 003 일의 발견 - 일의 분석을 통한 자아발견 [2] 양재우 2007.03.26 2210
735 일의 발견, 조안 시울라 [6] 신종윤 2007.04.13 2658
734 일의 발견, 삶의 발견 file [5] 한정화 2007.03.26 1724
733 삶의 방식으로서의 일의 발견 [1] 素賢소라 2007.03.28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