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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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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2일 23시 15분 등록
■ ‘20세기를 이해할 마음’을 준비한 자들에게 주는 선물보따리
- 『미완의 시대』 서평 & 내가 저자라면…

읽는 동안 감정변화가 심했던 책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기대감으로 첫 장을 열었다가 20세기 역사에 대한 무지함에서 오는 어려움으로 수많은 페이지를 넘겨야 했고, 희열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지금은 약간의 두려움과 떨림으로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이 글쓰기는 서투른 도제가 장인의 반열에 오른 스승의 작품을 두고 논하는 격이니 두렵고 떨림은 당연하다. (경영학부 1학년 학생이 필립 코틀러의 『마케팅 관리론』를 읽고 서평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성격 : 자서전 아닌 자서전

독자들은 이 책의 11페이지를 두, 세 번은 읽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 책에 대한 오해와 빗나간 기대를 피할 수 있다. 홉스봄은 이 책이 저자의 삶을 변명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고, 머리말에서 못 박았다. 이 책은 20세기에 관한 책이니, 20세기를 이해할 마음이 없으면 자기변호론자의 자서전이나 잘못을 뉘우치는 죄인의 자서전을 읽기 바란다고 적었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가족에 대한 저자의 감정을 찾으려 하는 등의 노력은 불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미완의 시대』은 ‘에릭 홉스봄의 자서전’이 아니라, ‘20세기’라는 놈의 자서전이다. ‘20세기’가 에릭 홈스봄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를 통해 자신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단면의 구성물은 공산주의, 유대인, 베를린, 전쟁, 스탈린과 소련, 마르크스주의, 20세기의 지성사, 케임브리지, 냉전 시대 등이다. 20세기 역사의 주요 키워드들이 대거 포함될 만큼 에릭 홉스봄은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특징 및 강점

비범한 인물의 저작 『미완의 시대』는 다음과 같은 특징 및 강점을 갖는다.
1. 학자인 신분치고는 저자의 경험이 꽤 다양하고 그의 경력이 거쳐 온 지역도 전세계적이다. 『제국』의 저자인 닐 퍼거슨은 "역사가들의 삶은 대체로 지루하지만 홉스봄은 완벽한 예외“라고 그의 삶의 다양성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2. 저명한 역사학자이기에 당시 주요 사건에 대한 가장 유력한 중론을 제시한다.
3. 정보를 꽤 오랫동안 소장하여 글에 사실성을 더한다. (41쪽에는 어머니가 사 주신 책을 70년 동안 보관한 일화가 나온다. 이렇듯 오랜 시절동안 책과 메모를 보관한 일화는 책 중간 중간에 자주 소개된다.)
4. 거리감을 유지하여 주관적인 판단을 유보하였다.

위의 4가지를 제외하고, 나의 지력으로 느껴지는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책 전반을 통하여 저명한 인사들과 20세기의 주요 사건들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미시적 사건들까지 풍성하게 담고 있는 점이다. (특히, 지성사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유명한 지성인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하거나 알고 있는 20세기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주요 인물들을 모두 기록의 세계로 초대하였다. 내가 20세기 역사에 대한 선지식이 있었더라면, 저자가 기술한 미시적인 사건에서도 의미를 부여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20세기를 잘 알지 못한 채로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20세기를 알아갈수록 이 책에 등장하는 온갖 사건들과 다양한 인물들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고, 그 때 비로소 이 책의 재미를 제대로 누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나는 이 책을 읽는 도중 몇 번이나 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책장에서 관련서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물론, 시간적 압박 때문에 찾아두기만 하고 읽지는 못했지만, 지금 내 책상 옆 침대 위에는 그렇게 찾아놓은 책들이 4~5권 있다. (메리 풀브룩의 [분열과 통일의 독일사], 크리스 하먼의 [쉽게 읽는 마르크스주의], 마이클 하워드의 [20세기의 역사], 김윤태의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등)

나는 정말 이 한 권의 책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다. 모서리를 접어 둔 페이지를 펼쳐보니, 한 문단을 괄호로 묶어둔 채 이런 글귀가 적혀 있던 페이지가 많았다. “이 사건들(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 혹은 질문이 적혀진 페이지도 많았다. 이를 테면, “처칠은 독일의 화평안을 받아들여야 했는가?”(p.271) 등과 같은 질문이었다. 157페이지에는 “영국사에 대한 나의 무지가 드러난다”고 적혀 있었다. 콜린 파월은 훌륭한 리더는 사람을 화나게 만들 줄 안다고 말했는데, 화나게 하는 것이 새로운 방향을 찾고 개선하기 위한 훌륭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 책은 나 스스로의 무지에 대하여 화나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기쁘다. 치열한 논쟁거리를 던져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찬물을 끼얹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책들보다 훨씬 훌륭한 책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나의 자발적 복종

이 책이 훌륭하다고 주장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설득력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만한 재주는 없어서 그저 나에게 강한 영향을 준 부분을 언급해 본다.
지금까지 나는 공산주의에 대하여 전혀 인식하고 못하고 살아왔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때부터 '반공주의'에 길들여진 의식이 전부다. 나는 이 책을 253쪽까지 읽다가 문득, 나의 나도 모르게 형성된 이 '반공의식'이 지식인다움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나쁜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을 뿐, '공산주의'가 나쁜 이유는 무엇인지, 나의 신념과 그들의 신념이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 아니 내가 믿고 있는 신념이 있기나 한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누군가가 나에게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복종하기를 강요하였고, 나는 거기에 순순히 따라갔다. 하지만, 잘못은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나에게 있다. 그것은 '자발적 복종'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엔 몰라서 넘어간다 해도, 이미 성인이 된 지금으로서는 내 의식의 한 구석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공산주의는 나쁘다'라는 이 명제의 출처는 어디일까? 잘 모른다는 사실에 변명할 거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아니, 변명하고 싶지 않다.

이렇듯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홉스봄이 믿고 있었던 정치적 신념은 나에게 꽤나 낯설었고, 그 낯설음은 내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그 낯설음은 나에게 불안과 스트레스보다는 신비로움과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나의 의식세계 안에는 내가 직접 고민하여 만들어 놓은 것도 있지만, (반공주의 같은) 어떤 놈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집고 들어와 허락도 없이 자리잡고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도 공산당이 있었다는 사실(p.282)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것도 내 안의 반공주의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내가 이미 믿고 있는 것에 대하여 진지한 성찰을 가져다 준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이 책의 한계와 내가 저자라면...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이 책도 한계는 있다.
첫째는 독자의 지적 수준이 낮을 경우, 읽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홉스봄은 독자들이 20세기의 주요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고 있다고 전제한 후에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바이마르 공화국의 성립과 전개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접하면 금방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베를린은 빌헬름 2세가 통치하던 제정기보다 덩치는 커졌을지 몰라도 본질적으로는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p.85)
그렇다고 하여 본문 이외의 추가적인 설명도 전혀 없다. 저자가 20세기에 대하여 문외한을 대상으로 두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렵다고 느껴지는 텍스트는 독자가 적극적으로 공부해 가며 읽어야 할 것이다. 이렇기에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혀두었듯이 "20세기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이 책을 읽기 위한 필수품이다.

둘째, 책의 구성상의 한계가 많다.
저자의 생애 연표가 없다. 색인도 없다. 자서전이라는 것이 중요 개념이나 지명보다는 스토리 위주로 전개되기에 원래 색인이 불필요할 수 있다. 소장하고 있는 『레닌』『닥터 노먼 베쑨』『체 게바라 평전』『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등을 봐도 색인은 없다. (『닥터 노먼 베쑨』정도가 생애 연표가 있었다.) 하지만, 『미완의 시대』는 처음부터 일반 자서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저자도 선언한 바 있다. 충분히 색인이 있을 이유가 있는 책이다. 로버트 바스키가 쓴 촘스키 전기『촘스키, 끝없는 도전』이 그런 경우다. 17페이지에 달하는 색인이 있다. 이 책도 그런 친절과 정성이 더해져야 했다.
또한 이 책의 초판은 오/탈자가 너무 많다(p.230, 265, 280, 311, 500 등). 번역자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번역도 매끄럽지 못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번역체 투성이어서 읽기에 힘들었다.

내가 만약 이 책의 저자였다면, ‘20세기를 이해할 마음’을 준비한 독자들을 위하여, 또한 『미완의 시대』를 사랑하게 된 독자들을 위하여 그들이 앞으로 공부할 만한 참고도서를 정성껏 제시해 주었을 것이다. 이 책은 잘못을 뉘우치는 죄인의 자서전도 아니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자기변호론자의 자서전도 아니고 20세기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자서전 형식이지만 20세기의 이해를 돕는 텍스트다. 내용상으로 다른 자서전과 확연히 구분했듯이 형식상에서도 학술도서가 제공하는 다양한 참고도서와 읽을꺼리들을 제공하기 위해 수고를, 나는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색인은 편집자의 몫이지만, 저자가 독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영역도 많다. 또한 번역자에게 정성스럽게 번역해 달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 저자에 대하여

에릭 홉스봄 (1917~ ) , 영국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영국계 유대인)
인터넷이 말하는 그와 『미완의 시대』의 여기 저기에서 주워 담은 그.
아직 그를 한 문장으로 표현할 만한 아이디어는 없음

1. 인터넷이 말하는 에릭 홉스봄
- 1917년 유태계인 영국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 어린 시절 오스트리아를 거쳐 베를린에서 잠시 살았으나 히틀러가 집권 후 런던으로 이주
- 학창시절부터 이미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자임하고 공산당원으로 활동
- 케임브리지의 킹스 칼리지에서 역사학 전공
- 1982년 정년퇴임까지 런던대학 버크벡 칼리지와 뉴욕의 뉴스쿨 대학교 강의와 연구에 헌신
- 현) 영국 학술원과 미국학술원 특별회원
- 현) 뉴욕 신사회조사연구원 교수, 버크벡칼리지 명예교수로 재직

- 자유자의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마르크주의 저술가
- 정치·경제, 사회·문화·예술 등 현실 삶을 구성하는 제 양상을 총체적으로 다룸
- 시기적으로는 17세기~20세기까지, 지역적으로 제3세계를 포괄하는 방대한 영역에 관심
- 재즈를 저항과 민중의 예술로 보고 재즈 비평가로도 활동
- 주요 저서 : 역사 3부작 《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이외
《극단의 시대》《산업과 제국》《노동하는 사람들》《원초적 반란자들》《역사론》등

2. 이 책이 말하는 에릭 홉스봄
-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지냄 (p.81)
- 현실 세계와 거리를 두고 살아감 (p.80)
- 재즈를 사랑하고 재즈를 즐기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냄(p.140-재즈입문)
- 책을 굉장히 좋아했음(p.141쪽)
- 6년 여의 참전 경험이 있으나, 군인보다는 민간인에 가까운 군생활을 했음(p.258쪽)
- 어학에 상당히 능함(p.259 - 독일어에 능함, p.504 - 프랑스어에 능함)
- 1950년대는 개인적으로는 불행했으나 학문적으로는 굉장히 활발했던 시절이었음
- 전문적 종사자로서의 자신의 일생에 만족해 함 (18장 전체)
- 왜 평생을 당원으로 남았는지에 대하여 서술함 (p.355)


■ 내 마음에 들어온 글 귀

<머리말〉
p.11
"한 사람의 장군이 군인으로서 얼마나 유능한지를 그의 정력이 강했느냐 약했느냐를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케인스나 슘페터의 경제학을, 판이하게 달랐지만 왕성했던 두 사람의 성생활을 가지고 설명하려는 시도는 모두 부질없다."

p.13
"다시 말해서 자기 몸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바깥에 설 줄 아는 능력이 이성을 신뢰하고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능력 다음으로 중요하다."
"철학자 아그네스 헬러가 말한 대로 역사는 "일어난 일을 밖에서 기록하는 것이고 회고록은 일어난 일을 안에서 기록하는 것이다." 이것은 학계의 인정을 받으려는 책이 아니라 감사와 사과를 담은 책이다."

〈1. 프롤로그〉

p.27
"과거를 풍문으로만 들었을 뿐 스스로 깨우치기에는 너무 어렸던 사람에게도, 또 워낙 역사와는 담을 쌓고 살아가도록 구조화된 문명 안에서 자라다 보니 과거에 대해서 ‘하찮은 퀴즈’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과거는 흔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자서전을 쓰는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옛날로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도에 담는 것이다. 지도가 없이 어떻게 그 굴곡 많은 일생의 여정을 쫓아갈 수 있고, 언제 그리고 왜 우리가 머뭇거리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는지, 또 우리가 기댔고 얽혀들었던 사람들 속에서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개개인의 삶에만 빛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전체에 빛을 던진다."

〈2. 빈과 유대인 소년〉

p.40
"유대인만의 남다른 면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다와 나라를 넘어도 이어지는 그물망이 가족이라는 믿음,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 다니며 사는 것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믿음, 유대인 가정 가운데 상당수가 업으로 삼았던 상업은 특히 1914년 8월 문명이 무너지면서 중유럽을 집어삼킨 파국의 시대에는 앞날이 불투명하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먹고 살기가 팍팍하다는 인식이었다. 유대인 누구나가 그런 생각을 했다."

p.41
"어릴 때부터 나는 구체적 현실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p.45~46
"어릴 때부터 선물도 받은 새와 동물에 관한 독일어책은 열심히 탐독했고, 초등학교를 마치고 나서는 자연과학 중에서도 특히 생물학과 진화론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세워진 코스모스 자연동호회에서 내던 간행물에 푹 빠져들었다.“

p.46
"『프랭크 앨런』,『서자의 복수』같은 제목이 달린 소설을 아이들끼리 돌려가면서 읽었다."

p.53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에 또는 등장하고 나서 처음 몇 해 동안에 사람들이 반유대주의의 위험성에 대해 말했을 때 그들이 염두에 두었던 것은 차별, 불의, 희생양, 힘없는 소수자 집단을 거만하게 윽박지르고 때로는 폭력도 불사하는 만행처럼 유대인이 익히 겪어온 탄압이 더욱 거세지리라는 예감이었지, 아우슈비치를 뜻한 것은 아니었다. ‘제노사이드’ 곧 인종학살이라는 단어는 1942년에야 만들어진다."

p.54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는 겨레의 휘장을 달지도 않고 나라의 깃발을 휘날리지도 않는다."

p.55
"우리는 흩어진 민족이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남을 것이다.“

〈3. 힘들었던 시절〉

p.77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어머니가 일급 작가라는 생각은 안 듣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없지만 어머니는 시도 썼다. 10대 그 시를 읽고 내가 그레틀 이모한테 별로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이모가 펄쩍 뛰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서도 나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고 그때부터 생각한 모양이다."

p.78
"내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끝내 잊어버리지 않게 한 것도 어머니였다. 단순한 부정도 얼마든지 정체성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의 태도는 어정쩡하다면서 못마땅하게 여겼다. 아무리 똑똑한 아이라도 머리가 여물어서 반성하는 능력을 갖게 되기 전에는 정치 참여를 미루는 것이 좋겠다고 넌지시 유도한 것도 어머니였고 나이가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도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언제가 솔직했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를 믿었다."

p.80
"내가 어려운 상황을 무사히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현실 세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몽상의 세계도 아니었다. 나는 호기심, 탐구, 고독한 독서, 관찰, 비교, 실험을 하면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4. 베를린 : 바이마르의 종식〉

p.90
"바이마르 공화국이 출범한 1918년에도 정말로 바이마르 공화국을 원한 사람은 없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받아들인 사람조차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사람조차도, 사회 혁명이나 볼셰비즘이나 무질서보다는 나은(온건 우파의 시각에서는), 프로에센 제국보다는 나은(온건 좌파의 시각에서는) 어설픈 차선책으로 여겼을 뿐이다."

p.91
"실업이 늘어나니까 과격한 혁명적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세력의 목소리가 커졌다. 오른쪽에서는 국가사회주의가 맹위를 떨쳤고 왼쪽에서는 공산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p.95
"운명은 그처럼 무심코 내린 집안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p.100
“내 인생을 바꾸어놓은 책도 여러 권 있다. “
"자네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그저 떠드는군. 도서관에 가서 공산주의가 뭔지 한 번 찾아보기나 해." 나는 그 말을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공산당 선언』을 건졌다!
수업 시간에 무엇을 배웠는지는 가물가물하다. 학교 수업은 어설프게 아는 어른들의 권위와 인내심을 관찰하고 조종하고 때로는 실험하는 맛은 있었지만 학교생활에서 제일 비중이 크지는 않았다.

p.102
"학교 공부에만 몰두하기에는 아무튼 인생이 너무 흥미로웠다."
"베를린에서 내가 강의보다는 독학으로 배웠다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튼 배우기는 배웠다."
"베를린 생활을 하면서 나는 일평생 공산주의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5. 베를린 : 갈색과 빨간색〉

p.111
"나는 그 선배와 함께 20세기의 사회주의 지식인이 전형적으로 거쳤던 통과의례를 거쳤다. 그때는 얼마 못 가서 그만두고 말았지만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처음부터 읽고 이해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p.116~117
"한편 오토 브라운은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가서(마오쩌둥에게는 별로 호감을 못 품었던 모양이지만) 중국 공단당의 대장정에 참여한 유일한 유럽인이 되었다."
"그 조직(사회주의학생동맹)이 세계 혁명에서 가장 극적으로 평가받는 몇 개의 투쟁과도 역사적으로 연결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p.119
"히틀러가 무섭게 떠오르던 시기에 독일공산당이 코민테른의 노선에 따라 추구했던 정책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살 행위였다는 것이 오늘날의 중론이다."
"특히 1930년 이후로는 그렇기 때문에 히틀러의 부상보다 위험한 것이 사민주의라는 생각, 사민주의는 ‘사회 파시즘’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은 정치적으로 지극히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p.120
"내가 베를린에 왔을 무렵에는 독일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문제는 히틀러가 권력을 잡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였다."

〈6. 섬나라에서〉

p.140
"첫사랑을 느낄만한 열여섯 아니면 열일곱 살 무렵에 나는 이렇게 음악의 계시를 받았다. 내 경우에는 재즈가 첫사랑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외모가 워낙 자신이 없다 보니 나는 보나 마나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육체적 관능과 성욕을 억눌렀다. 지적 유희와 말에 온통 점령당한 나의 삶에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절대적 감성을 심어준 것은 바로 재즈였다."
"내 인생의 3분의 2를 나는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끈끈한 교감을 나누며 살았다."

p.140
"어른들의 금족령은 좀 느슨해졌지만 두 해 반 동안 나는 정치 활동을 유보한 채로 살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지적 활동에만 몰두했고, 지금 생각해도 경탄스러울 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

p.143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규칙이 없는 사회를 염원하면서 반란과 혁명에 뛰어들었던 여느 운동가들과는 달리 보수당 성향의 공산주의자 기질이 이때부터 싹텄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레틀 이모를 굉장히 좋아했다. 이모의 분별력을 마음 속 깊이 존경했다."
"내가 읽은 책 이야기도 했다. 나는 이모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특히 성이나 사랑은 내가 워낙 문외한이라서 이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렇지만 역시 진짜 엄마와는 달랐다."

p.144
"이모는 낙관주의자도 아니었고 비관주의자도 아니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모는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이모의 짐작은 들어맞았다."

p.146
"삼촌에게도 야심은 있었지만 삼촌을 달아오르게 만든 것은 돈이 아니었다."

p.149
"영국은 이제 강대한 제국도 세계열강도 아니었다. 수에즈 사태 이후로는 영국이 한때 제국이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믿지 않았다. 대중문화는 영국인의 애국심과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독일에 끝내 승리한 사실을 찬양하면서 그 허전함을 채웠다."

p.153
"자유로워지는 데 빠져서는 안 될 조건이 기동성“

p.162
"나처럼 들으려는 마음 자세가 되어 있는 학생에게는 복음서와도 같았던 I. A. 리처즈의 『실천 비평』 F. R. 리비스의 문학비평서는 듬뿍 안겨주었다. 그 선생님한테 빌린 『영시의 새로운 동향』과 한정판으로 찍혀 나온 그 분이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집을 나는 게걸스럽게 삼켰다."

p.163
"3년 동안 메릴레본은 나에게는 배움의 전당이었다. 학교 말고도 학교 바로 옆에 있던 그 당시의 런던 시청 안에 훌륭한 공립도서관이 있었다. 나는 쉬는 시간에는 주로 거기서 죽치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빌렸다.
확실히 나는 학교에서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마지막 학년(1935~1936)에는 학교는 그저 나 혼자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서재나 다를 바 없었다."

p.164
"그 3년 동안 젊은이는 지적으로 실제로 어떻게 성장했을까? 첫째, 나는 그 전에도 그렇고 그 다음에도 그렇고 그때처럼 특히 문학 방면의 책을 다방면으로 골고루 읽은 적이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책을 열심히 읽은 것일까?“

p.165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책을 열심히 읽은 것일까? 간단하게 답하자면, 마르크스의 시각으로,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역사적 시각으로 세상을 풀이하고 싶었다."

p.166
"다시 말해서 루카치, 프랑크푸르트 학파, 코르슈의 마르크스주의는 1950년대 이전까지는 영국해협을 건너지 못했다. 우리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헤겔을 제대로 뒤집어엎었다고 믿으면서 뿌듯해했지만 그들이 발 딛고 선 땅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가 마약처럼 뿌리치기 어려웠던 까닭은 사상이 워낙 총체적이었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삼라만상의 이론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삼라만상을 보는 틀은 제공했다. 무기체와 유기체의 본성을 인간세계와 연결하고 집단과 개인을 연결하고 끝없이 유동하는 세계에서 모든 상호 작용의 기본이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다."
"유물론적 역사관은 물론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개념이었다.

p.167
"내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사회 안에서 예술가와 예술(사실은 문학)이 차지하는 역할과 성격, 마르크스주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부 구조는 어떻게 토대와 연관되는가?”하는 주제였다. 1934년 가을 즈음부터 나는 이것을 ‘문제거리’로 여기고, 너무나 큰 뼈다귀를 물고 주체하지 못하는 강아지처럼 산만하게 읽어 들인 심리학과 인류학 지식과 코스모스 자연동호회에서 어렸을 때 주워들은 생물학, 생태학, 진화론의 도움을 얻어 나름대로 고민했다. 꿈은 야무졌다."

〈7. 케임브리지〉

p.171
"나는 고대하던 공산당에 들어가서 정치에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케임브리지로 왔다. 알고 보니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대학을 다닌 학생들은 케임브리지 역사상 가장 빨갛고 급진적이었는데 나는 그 한복판에 있었다. 뉴턴, 다윈, 제임스 클럭 맥스웰 같은 쟁쟁한 역대 졸업생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갔을 무렵의 케임브리지는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업적을 올리고 있었다. 몇 십 년 동안 영국 과학의 업적은 모두 케임브리지가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p.187
"자연과학은 사정이 달랐지만 케임브리지 교육의 핵심은 매주 써내면 지도교수가 꼼꼼히 평가해 주던 에세이였고, 1학년 말과 3학년 말에 보는 두 번의 졸업 자격시험이었다. 강의는 덜 중요했다."
"실력이 있는 학생은 한 시간 동안 따분한 강의를 듣는 것보다 근사한 칼리지 도서관, 학과 도서관, 중앙 도서관에서 한 시간 동안 책을 읽을 때 더 얻을 것이 많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우리는 다른 실력 있는 학생들과 토론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p.190
"내가 가장 정성을 쏟아 부은 곳은 물론 당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투철한 공산주의자라 하더라도 선동과 선전, 조직 활동에만 전념하기에는 케임브리지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런 활동은 어차피 나의 주특기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내가 정말로 되고 싶었던 ‘직업 혁명가’의 길은 나한테는 맞지 않는다는 씁쓸한 깨달음을 얻고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면서 먹고 살 방도를 찾기도 한 발 물러섰다.) “

〈8. 파시즘과 반전 투쟁〉

p.195
"그렇지만 케임브리지의 정치화는 밑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p.200
"유럽이 아직도 파국으로 치닫던 시절에 내가 케임브리지에서 보냈던 학창시절을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되돌아보아도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줄기차고 꿋꿋하게 희망과 확신을 잃지 않고 뛰었다."

p.203
"사랑일랑 집어치우자
그리고 말하자
우리의 애정을 오직
노동자에게 바치겠다고
사랑일랑 집어치우자
혁명이 올 때까지
그 때까지는 사랑은
반혁명이다“

p.209
"내가 그를 좀 더 자주 보았을 때 그의 유일한 낙은 책을 수집하는 것이었다. 워낙 속세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니까 조금이라도 그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은 더욱 그를 흠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결코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도 부인 못할 한 가지 사실은 그의 논리가 아주 명쾌했다는 것이고 그가 던지는 말에는 권위가 깃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9. 공산주의자가 되다〉

p.215
공산주의가 우리 세대의 가장 똑똑한 남녀를 왜 그렇게 많이 빨아들였는가 하는 물음과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한테 어떤 뜻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은 20세기 역사에서 핵심주제가 되어야 한다. 내 친구 안토니오 폴리토는 “20세기에 가장 위력을 떨친 악마의 하나는 정치적 열정”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처럼 20세기를 잘 나타내는 말은 없다. 그리고 그런 열정의 핵심을 꿰찬 것이 공산주의였다.

p.215~216
공산주의는 이제 죽었다. 소련은 물론이거니와 소련을 전범으로 하여 만들어진 대부분의 체제와 사회는 1917년 10월 혁명의 유산이었고 우리한테 꿈을 심어주었지만 이제는 물질적으로도 삭막한 폐허만 남기고 깡그리 허물어져서 공산주의라는 구상자체에 처음부터 허물이 있었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내기 어렵다. 그렇지만 공산주의라는 신념에서 자극을 받았던 사람들이 이룩한 업적과 “공산주의자가 정복하지 못할 요새는 없다.” 는 믿음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p.217
공산당은 레닌이 말하는 “직업혁명가” 중심이었다.

p.218
그런 조직에 들어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결단이었으므로 공산당으로 지인을 끌어들인 사람에게도 공산당으로 들어간 사람에게도 인생을 바꾸는 결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이중의 결단이었다. (적어도 공산당이 집권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공산당에 남아 있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쉽게 떠날 수 있는 공산당을 떠나지 않겠다는 선택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기 때문이다.

p.224
"공산당의 매력은 다른 조직들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는데 있었다. 당 생활은 말로 꾸미는 것을 질색이었다.“

p.226
죽어가는 당원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이 당과 스탈린과 동지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당에 인생을 걸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당에 바쳤다. 그 대가로 우리는 당으로부터 승리한다는 확신과 형제애를 경험할 수 있었다.

p.229
반세기 전 우리가 당원으로서 무엇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되돌아보면서 말하기는 쉬워도 왜 그런 일을 했고 왜 그런 느낌을 가졌는지를 설명하기는 참 어렵다.

p.229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섣불리 떠들지 않는 지혜를 보여주었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그들이 말한 몇 안 되는 예언도 공산주의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았던 바로 그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한계를 모르는 엄청난 생산력의 결과인 것처럼 보인다.

p.230
혁명가는 성자를 빼놓고는 어느 누구보다도 높은 윤리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밀며 그런 순간이 닥쳤을 때는 정말로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 … 그때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회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안에서 형제가 되고 자신의 개별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공동의 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점에서 이상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이럴 수가 있는데 왜 나머지 경우에는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p.240
지금까지는 권력을 잡지 못한 공산주의자에 관해서 썼다. 탄압이 아니라 특권을 누렸던 공산주의 체제라는 아주 다른 상황에 살았던 공산당원의 경우는 어떨까? 그들은 국외자가 아니라 내부자였다. 대개는 국민한테서 반감을 사면서 한 나라에서 저항세력이 아니라 지배세력으로 살았다. 경찰은 그들의 적이 아니라 하수인이었다. 혁명 이 후의 찬란한 미래는 그들에게는 꿈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었다.

p.250
괴물처럼 모든 것을 삼키는 관료주의는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기보다는 끊임없이 닦달하면서 당근과 채찍을 주었다. 그들이 만들어가던 사회는 나쁜 사회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고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교육도 시켜주고 의료 혜택, 사회보험, 연금이 보장되고 선량한 사람들이 정직하게 일하는 아주 체계가 잡힌 공동체에서 휴가를 보내고 수준 높은 문화를 서민도 즐길 수 있고 야외에서 운동도 하고 여가 활동도 할 수 있는 사회였다. 신분 차별이 없는 사회였다. 다시 찰스 마이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아주 좋게 보자면 “사회주의와 편안함” 사이의 어디쯤 아니면 “느긋한 집단주의”로 귀착된다.

p.253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동유럽에서도 공산주의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얼마 못 가서 소련도 허물어졌다.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국제 공산주의 운동이 남긴 유산은 썰물이 진 바닷가의 고래처럼 덩그마니 남았다."

p.254
우리는 성배를 영영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배가 아니라 성배를 찾아 나서는 것이라는 아서 왕의 말은 옳지 않은가? “성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어디 포기하는 것이 우리뿐이겠는가?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자유와 정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들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20세기에 실제로 그렇게 살다간 사람들을 기억조차 해주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10. 전쟁〉

p.266
공병으로 지내는 동안 나는 압도적으로 잉글랜드 인이 많았던 노동자들 속에서 섞여 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거칠어질 때도 있었지만 그들의 올곧음과 허튼소리에 대한 경멸감과 계급의식과 동지애와 협동정신을 평생도록 존경하게 되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모름지기 공산주의자라면 프롤레타리아의 미덕을 철석같이 믿어야 했지만 그것은 이론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확인하고 보니 참으로 마음이 놓였다.

p.258
2차 세계대전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맛본 경험은 전쟁이 내 인생에서 6년 반을 앗아가 버렸다는 말로 가장 잘 요약된다. 나는 영국 군대에서 6년을 보냈다. 나한테는 “좋은 전쟁”도 “나쁜 전쟁”도 아니었고 그저 허망한 전쟁이었다.

p.275
정훈국은 책을 즐겨 읽는 소수를 독자로 상정했고 또 그들에게 인기를 얻었지 대다수는 정훈국에 관심이 없었다.

p.277
독일 공군이 런던을 맹폭하던 1940년과 1941년에는 어느 정도 감각이 마비된 운명론(“어차피 죽어야 할 목숨이면 죽겠지.”)에 젖어 들지 않으면 폭탄이 쏟아지는 도시에서 도저히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밤중에 거리를 걸으면서 깨달았다.


<11.냉전>

p.303
냉전시대에 자유주의자가 떠들어댄 논리 중에서 정말로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은 공산주의자는 누구나 적국 소련의 첩자이며 따라서 공산주의자는 지식 공동체의 일원으로 남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p.304
“이 일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말해 줄 수 있는가 모르겠네.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는 건 잘 알지만, 자네 아직도 공산당원인가?”

309. 사도는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작은 공동체다. 주로 아주 똑똑한 학부생이나 대학원 초년생이 중심이 되어서 다른 회원을 끌어들이면서 조직을 꾸려나간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회원들이 쓴 논문을 같이 읽고 토론을 한다. 사도의 주역은 학부생이었다. 사도는 사회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p.312
“사도들은 무엇보다도 두 가지에 몰입한다. 너무나 순수한 몰입이라서 쌀쌀맞은 사람은 어이없어하고 포근한 사람은 탄복을 금치 못한다. 하나는 우정이요 하나는 지적 정직함이다.”

<12. 스탈린과 그 후>

p.327
지식인한테는 “뒤적거릴 것”이 무엇보다도 요긴한데 그럴 것을 구할 도리가 없었다. 전화번호부도 없었고 지도도 없었고 대중교통 시간표도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본적 참고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

p.333
공산주의자의 임무는 세계를 해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꾸는 것이었으니까.

p.336. 1956년이 시작될 무렵 비집권 공산당 지도부 중에서 스탈린 격하가 결국은 공산당의 역할, 목표,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는 결과로 이어지리라고는 진지하게 내다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p.357
성장한 곳의 풍토와 혁명 운동에 투신한 시기가 남들하고 달랐기 때문에 나는 홀가분하게 공산당을 박차고 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공산당에 남은 것은 그래서가 아닌가 싶다. 아무도 내 등을 떠밀지 않았을 뿐더러 나가야 할 피치 못할 이유도 없었다.
공산당원이라는 멍에를 벗어 던진다면 적어도 미국에서는 더 잘나갈 것이다. 은근슬쩍 빠져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냉전의 한복판에서 그런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공산주의자로 성공함으로써 자신에게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자부심이 잘났다는 것은 아니지만 못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았다.

<13. 40대에 맞는 전환기>

p.359
"눈에 확 들어오는 사건도 없었고 극적인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별 볼일 없는 고개를 넘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역사에서건 삶에서건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을 체험했구나 하는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들 때가 있다."

p.361
적법한 여권, 수틀리면 언제라도 원하는 나라로 태워다줄 비행기 표를 살 수 있는 풍부한 비상금, 언제라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단출한 생활, 그리고 꼭 챙겨 가야 할 물품의 목록 같은 것은 우리에게 필수적이었다.

p.363
누가 보아도 나는 존경받는 학자로서 중산층 생활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 시기가 되면 여행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자서전에 걸맞는 일은 저자의 머리나 다른 사람들의 머리에 들어있는 내용 말고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지식인의 일생을 추적한 전기 작가들이 오래전부터 피땀을 흘린 끝에 깨달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전기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p.364
"개인의 삶은 역사라는 더 넓은 세상에 얹혀 있다."

<15. 1960년대>

p.410
역사가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혁명은 혁명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히 많은 말을 통해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은 입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문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글을 아는 남녀가 써내는 수많은 글로 나타난다.

p.411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스무 해가 넘게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이 나라들에서 사회 혁명은 정치적 의제에 올라와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쉰이 넘으면 아무리 인상적이고 가슴 뭉클하더라도 대규모 시위에서 무조건 혁명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p.412
1776년의 미국 혁명, 1789년의 프랑스 혁명,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익히 알았고 1933년 이후의 파란만장한 사태 변화를 몸으로 겪은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의욕이 넘치더라도 혁명은 정치적 목표가 있어야 했다. 혁명가들은 국내가 되었든 해외가 되었던 낡은 정치 체제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정치 체제로 바꾸어서 새롭고 더 나은 사회를 세우거나 그 밑바탕을 깔아놓고 싶어 했다. 하지만 거리고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을 움직인 것은 대부분 그런 목표가 아니었다.

p.431
서양을 정말로 바꾼 것은 1960년대의 문화혁명이었다. 20세기 역사의 분수령이 된 것은 1968년이 아니라 비록 정치적으로는 이렇다 할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프랑스 의류산업에서 처음으로 여성용 바지가 치마보다 더 많이 생산되고 가톨릭 사제 지원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 1965년인지도 모른다.


<16. 정치 관람자>

p.454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거의 사반세기 동안 노벨 경제학상이라는 엄청난 후광으로 화려하게 꾸몄지만 실은 세계 자본주의와 날이 갈수록 죽이 잘 맞는 경제학이라는 “과학”의 권위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20세기 말에 아마티야 센이 마침내 상을 받은 데 이어 “워싱턴 합의”를 소리 높여 성토한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상을 타기 전까지는 주류에서 벗어난 경제학자에게는 단 한 번도 노벨상이 돌아가지 않았다.

p.456
내가 마오쩌둥주의에 끌리지 않았던 이유도 중소 분쟁 당시에는 국제주의를 고수하는 듯한 구호를 내걸었지만 중국 공산주의와 마오쩌둥의 이념은 민족주의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국가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내 눈에는 보였기 때문이다.

<17. 역사가들 속에서>

p.461~462
대부분의 역사가는 아무리 먼 과거를 다룬다 하더라도 과거를 탐구하다 보면 결국 현재와 눈앞의 사안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또 현재와 눈앞의 사안을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문가에게만 아니라 시민에게도 중요하다.

p.462
모름지기 역사가라면 자기와 똑같은 역사가들만 읽는 글을 써서는 안 된다.

p.477
이런 지역색이야말로 내가 평생을 몸담은 역사라는 분야의 주된 취약점이 아닌가 싶다.

p.482
역사가는 할 일도 많다. 인간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이제는 인간 사회에 거의 발을 담그지 않고 문제만 해결하는 기술관리자의 잣대를 통해 처리되지만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역사는 예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p.482~483
우리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진정한 지구사의 틀을 갖게 되었다. 올바르게 중심의 자리를 되찾은 지구사는 인문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연과학과 수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런 지구사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에서 모두 필수적 역할을 하며 그 안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따로 놀지 않는다. 내가 다시 젊어져서 그런 지구사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18. 지구촌에서>
p.488
"가르치기와 글쓰기의 핵은 모두 소통이다. 두 가지를 모두 즐기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전달했는지 확인하려면 천상 토론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도 나는 특수한 주제를 다루는 수업보다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는 수업이 더 마음에 들었다."

p.493
“잘 지내는 평론가한테서 호평을 받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중립적인 평론가와 적대적인 평론가한테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야만 정말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p.497
역사책을 쓴다는 것은 한 나라의 정치와 세계의 정치에 깊이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인데 정치와 역사를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p.500
어떤 저자는 한 때의 정치적 이념적 유행을 상징하는 명찰 같은 역할에 머물렀다.

p.503
역사학도는 언어학도나 비교문학도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보다도 외국어를 잘 해야 한다. 주제가 아주 협소한 향토사라면 모를까 웬만한 나라에서는 하나의 언어만 알아가지고는 역사를 제대로 연구할 수가 없다.

p.508
나는 어릴 때부터 꿈꾸던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이런 식으로 삶이 풀려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부질없고 어리석기조차 하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 내가 그 글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19. 마르세예즈>

p.545
우리 세대한테 프랑스는 지금도 남다르다. 이재에 밝았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언어가 세계를 정복하면서 교양 있는 볼테르의 언어가 패배한 데서 프랑스인이 느끼는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나는 공감한다. 그것은 단순히 언어가 바뀐 데 그치지 않고 문화가 바뀐 것을 뜻한다. 그것은 국경을 넘어선 의사소통은 엘리트한테만 필요했지 의사소통에 쓰이는 언어가 실제로 많은 나라 사람들의 입에서 말해지는지도 중요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고전어처럼 전혀 말해지지 않은 죽은 언어라도 상관없었던 소수 중심의 문화가 막을 내렸다는 뜻이다.

<20. 프랑코에서 베를루스코니까지>
p.547
역사가가 되려는 사람한테 과거의 어떤 부분을 파고들어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주는 길잡이가 없다.

<22. 루스벨트에서 부시까지>

p.623
내 또래의 지식인에게 두 개의 조국, 그러니까 하나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 또 하나는 프랑스가 있었다면, 20세기에 서양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 아니 궁극적으로는 세계 어디든 도시에서 살아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와 미국이라는 두 개의 조국이 있었다.

p.652~653
다른 나라와는 달리 미국의 국가 이념에서 미국은 그저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줄기차게 이루어내는 나라라야 한다. 다른 모든 나라를 합친 것보다 우월하고 전 세계가 인정하는 모범으로 자리 잡은 최고의 나라, 가장 위대한 나라로만 미국은 스스로를 인식한다. 한 축구감독의 말대로 “승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부다.” 외국인한테 미국이 참 희한한 나라로 보이는 것은 그런 점 때문이다.

p.654
미국은 어느 모로 보나 2세기의 나라 중에서 성공한 경우다. 경제는 세계 제일의 규모로 세계 경제의 발전 속도와 방향을 좌지우지하고 기술 발전 수준은 독보적이며 자연과학ㅇ과 사회과학에서 모두 앞서가서 심지어는 철학자들도 세계를 주도하는가 하면 세계 소비 시장에서 차지하는 패권은 어느 누구고 넘볼 수가 없다. 미국은 유일무이한 패권을 휘두르는 세계 제국으로 20세기를 마함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미국은 20세기가 낳은 최선의 가치를 상징한다.” 여론 조사가 아니라 이주의 방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면 십중팔구 미국은 영어를 조금은 할 줄 알고 이런저런 사람으로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뜰 수밖에 없거나 뜨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가장 가서 살고 싶어 하는 나라로 떠오를 것이다.

p.658
미국이라는 거대한 양탄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부는 달라졌고 언제나 달라지고 있지만 기본 무늬는 놀라운 안정성을 보여준다.

p.660
우리의 문제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 혹은 자신의 한계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기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인다. “미국의 세기”가 정점에 이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고충이다. 올해로 여든 다섯인 나는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 것 같다.

<23. 에필로그>

p664
나이가 많다는 것이 여기서는 유리하다.
남들은 책으로만 아는 역사가 이 얼마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일부가 되고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

p.670
한사람의 역사가로서 제대로 살았는지를 알아보는 시험은 그 자신과 이 세상에 각별한 문제가 있었던 문제들에 대해 마치 기자가 아득히 먼 과거사를 대해 보도하듯이, 그러면서도 국외자가 아니라 깊이 결부된 사람으로서, 특히 “만약에”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는지 또 거기에 답변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진짜 역사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은 진자 역사에 대한 질문은 아니고,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면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은 일에 대한 물음이다. 그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 대한 물음이다.

p.672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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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3 00:43:11 *.140.145.63
이희석님의 리뷰는 자기만의 시선이 뚜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영학부 1학년생의 예시에도 불구하고 과감함이 느껴질 정도네요..

‘20세기’라는 놈의 자서전이며, '20세기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전제로
한다는 지적은 명쾌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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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 코리아니티 - 한국성에 대한 새로운 모색 [1] 김민선 2007.03.18 1974
707 세계적 보편성의 한국화&amp;코리아니티 [2] 한정화 2007.03.18 2173
706 [Coreanity]-구본형 [2] 오윤 2007.03.18 1918
705 코리아니티 경영/구본형 [3] 香仁 이은남 2007.03.18 2043
704 코리아니티 - 대한민국 희망행진곡 [3] 임효신 2007.03.17 2090
703 코리아니티 경영- 조직과 개인의 필독도서 [4] 이은미 2007.03.17 2110
702 (002)코리아니티(우리들에 대한 탐색과 희망) [3] 강종출 2007.03.19 1882
701 인터뷰 기법 [8] 김귀자 2007.03.16 3579
700 (002)코리아니티 경영 [2] 최영훈 2007.03.16 1919
699 [코리아니티] 달인이 찾은 Corea [1] 송창용 2007.03.16 2293
698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 [2] 신재동 2007.03.15 1877
697 사람에게서 구하라 / 구본형 하루 2007.03.14 2121
696 미완으로 마칠뻔한 '미완의 시대를 읽고' [1] 정양수 2007.03.12 2031
» 『미완의 시대』를 읽고 [1] 이희석 2007.03.12 2185
694 &lt;호모 코레아니쿠스&gt; 를 읽고 [1] 정재엽 2007.03.12 2173
693 에릭 홉스봄 &lt;&lt;미완의 시대&gt;&gt; [2] 김지혜 2007.03.12 20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