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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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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9일 04시 11분 등록


'나는 이 책을 미워하며 읽었다. '미워한' 이유는 관심 없을 뿐 아니라 다소 경멸하는 분야의 책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읽은 이유는 책 속에 철학이 있고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출판되었던 재테크 서적의 뒤에 위와 같은 글이 붙어 있었다. 분명 추천사일텐데, 어딘지 말투가 칼칼하다. 출판사는 그냥 넘어갔다고 해도 저자는 자신이 피를 토해 쓴 책에 어쩌자고 저런 가시 돋친 글귀를 버젓이 추천사란 이름으로 달아 주었을까? 혹시 내가 읽은 것과는 다른 의미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읽고 또 읽기를 수 차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별 볼일 없는 대학 출신이라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생각도 있고 똑똑한 사람이다'라고 추천장을 써주는 것은 생각할수록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도 있고 똑똑한 사람이다.' 부분에 힘을 실어 읽으면 '나름대로' 그럴 듯 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별 볼일 없는 대학 출신'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저자뿐만 아니라 독자까지 한 번에 쥐고 흔들어 버리는 그 몇 마디에 가슴이 뜨끔하다.

이 의미심장한 추천사의 주인공은 바로 구본형 선생님이다.

대부분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서 추천사가 씌여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경멸하는 분야'의 책에 이를 쓰겠다고 수락하는 일은 단칼에 거절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수락했다면 그것은 곧 각종 미사여구를 덧붙인 찬사를 약속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틀에 박힌, 아주 상투적인 말 대신, 이재에 밝았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언어가 정복하는 세상에,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최고의 덕담으로 인식되는 세태에 똥침을 날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다.

선비정신은 스스로 '수치를 아는 것'이다. 수치를 아는 사람은 부패할 수 없고 타락을 묵인할 수 없다. (p. 70)

그는 선비다. 요즘 세상에 참으로 흔치 않은, 멋을 아는 선비다. 선비는 멋스런 농을 던질지언정 흰소리를 남발하지는 않는다.

그는 저 글이 책에 담기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공감하면서 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독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만큼, 그가 가지는 개인 브랜드의 위력은 강력하다. 이 부분은 1인 기업가를 지향하는 많은 이들에게 나아갈 바를 알리는 표식이 되고 성취의 증거가 된다.

이런 힘있는 개인 브랜드의 원천은 무엇일까? 구본형 선생님의 인문학적 깊이는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들조차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그의 따뜻한 눈길이 머무르는 곳에는 그만의 향기가 피어난다.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작은 부분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내는 고유의 시선은 뜨거운 글쓰기와 만나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무엇보다 그의 글은 속내를 통째로 드러낸 듯 솔직하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천지개벽의 위기 속에서 <익숙한것과의 결별(1998)>이 그러했고, 자신의 힘으로 바로 선 그 자리에서 <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2004)>가 또 그러했다. 솔직함은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는 힘이 되고 그의 다른 이야기들에도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가 말하는 '코리아니티(Coreanity)'는 무분별하게 밀려들어온 서양의 성공학과 경영학의 현란함 속에서 자꾸만 쓰러지고 비틀거리는 우리에게 무엇을 딛고 어떻게 일어서야 할 지 이야기한다. 우리 안의 너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쉽사리 느낄 수 없었던 '한국성', 코리아니티(coreanity)에 대한 그의 이야기들은 새롭지만 한편 익숙하다. 억지로 끼워 맞춘 이야기가 아니라 날카로운 통찰로 꿰뚫어 찾아낸 사실이기에 놀랍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나는 앞으로 10년간 100명의 연구원들과 함께 '한국과 세계'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 어울림의 방식을 다루어 보려 한다. 이것은 10년간 신나게 놀아볼 만한 재미있는 놀이이며 의미 있는 과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첫해의 수확이다. (p. 393)

끝을 이야기하는 대신 이제 시작을 말하고, 혼자 차지하기 보단 어울려 이루겠다는 제안에 궁둥이가 굼실거린다. 헌신하고 몰두하고 불태울 것을 이야기하기보단 신나고 재미있게 놀아보자는 그의 제안은 밖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안에 뛰어들어 함께 즐기고 싶다는 '흥'을 깨운다.

그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을 돕는' 스승이자, '현실이란 결국 주어진 상황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불과하다며 개인의 변화에 불을 지르는 혁명가다.

최근 1기 연구원 2명의 첫 책들에 그가 풀어낸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만큼 부럽다.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 아빠가 직접 쓴 책을 들고 나와 자랑하는 딸아이의 그것처럼 그의 기쁨은 천진난만하다. 피를 태워 책을 쓰는 산고의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탓도 있을 테고, 실제로 그 책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쩐지 책보다는 사람에 대한 따뜻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뛸 듯이 기뻐하고 터질 듯이 박수치는 그의 모습은 진정한 스승의 든든함이자 친구의 편안함이다.

어디에서 스승을 구할 것인가? 답은 너무 분명해 보인다.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이 코리아니티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해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온 지 일 년이 지나서 다시 내가 정의한 코리아니티가 적절했는지 돌아볼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아직 자신이 없다. (p. 8)

나는 우리가 스스로를 폄하하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골수를 비게 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게 하고, 결국 행동을 제약하고, 성과를 무디게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문화적 DNA이며, 공감대인 코리아니티를 적절하게 규정하고 활용함으로써 문화적 차별성을 바탕으로 하는 범세계적 경쟁력을 얻어내는 것이다. 한국의 선진적 활로는 더 이상 우리 것을 버리고 선진의 것을 따라가는 추종이어서는 안 된다. 추종과 모방은 선도국으로 진입하는 탈이류의 문턱에서 버려야 할 첫 번째 품목이다. (p. 9)

개인보다 집단에 우선순위를 두는 관계 중심의 공동체의식이 강하게 지배하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p. 37)

멋이란 파격으로 새로운 어울림과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p. 40)

[질문] 하나님은 천지를 만들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답] 그렇게 심오한 수수께끼를 파고드는 자를 위해 지옥을 만들고 있었다. <시간의 박물관, A Story of Time> (p. 41)

(최고다. 파고드는 자를 위한 지옥이라니...)

미국인들은 수천 가지의 원인이 미래에 무엇을 만들어낼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의 가치를 늘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여 계산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투자에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이윤을 포기하는 경우가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가치(net present value)'이다. 그 한 예로 미국에서는 일본과 달리 교육자들이 낮은 보수를 받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p. 45)

(현가란 결국의 미래의 가치를 반영하는 개념이 아니었던가? 현가를 따지는 버릇이 미래의 가치를 외면하는 일이라는 주장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근거가 제시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면 미국과 일본 교육자의 보수에 대한 통계 자료 등은 주장에 무게를 실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은 일상에서 우연히 찾아오는 작은 아이디어가 낳은 좋은 결과를 놓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들은 '마흔세 살의 경리직원이 검은 재킷을 입고 거리를 질주함으로써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을 표방하는 할리 데이비슨 같은 대형 모터사이클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혼다의 50cc 저용량 스쿠터는 '온순하고 깔끔한 사람들'에게 판매되었다. 처음에는 아주 적은 수요를 예상했지만 예상치 않은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일본인들은 작은 변화를 무수히 시도해 보다가, 그 중 고객의 호응을 얻는 것에 대해서는 핵심적인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개선을 강화한다. (p. 51)

미국은 점진적 개선의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연결되지 않는 것을 연결함으로써 얻어지는 창조력'에 의한 이노베이션의 나라다. (p. 53)

미국의 위대한 성공은 보편화로부터 시작했지만, 미국의 실패는 그 보편주의가 한계에 도달할 때 일어날 것이다. 보편주의자들은 전 세계가 단일화, 일반화, 법률화 되기를 바란다. 반면에 그 대칭점에 서 있는 동양의 특수주의자들은 세상이 유일하고 예외적이며 서로 정신적으로 연계되기를 바란다. (p. 60)

경쟁과 파괴 사이에는 섬세한 구분이 있다. 중국인은 다른 사람의 밥그릇을 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일본인은 훌륭한 경쟁자가 파멸해서는 안 된다고 인식한다. (p. 61)

일본인들이 객관적 진실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이론적 인식 수준은 야만적이라고 불릴 만큼 빈곤하다. (p. 67)

(아~ 사실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통쾌하다. 구본형 선생님이 벚꽃을 좋아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니, 그리고 그나마 벚꽃의 근원을 우리 안에서 찾고야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니 이 부분에서 좀 더 마음껏 신을 내도 될 듯 하다.)

나는 원칙이라는 단어를 '완고함'이라는 함의를 제거하고 사용하기를 원한다. 원칙이란 유연한 것이고 모든 필요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의 변화는 그 상황에 의해 파생된 규칙을 바꿀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상황의 법칙((the law of situation)이라고 부른다. <앙리 페욜, Herni Fayol> (p. 67)

법이 지켜지지 않아서 불투명한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가 깨어지기 때문에 오탁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p. 70)

선비정신은 스스로 '수치를 아는 것'이다. 수치를 아는 사람은 부패할 수 없고 타락을 묵인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가장 훌륭한 정신적 유산이다. 자부심 강한 호학의 선비들은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훌륭한 역할모델이 될 수 있다. (p. 70)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작동했다는 점은 권위주의 청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p. 76)

(박정희, 전두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사람들에게 참여정부의 개방적이고 탈권위적인 성향(부동산 정책을 포함한 각종 정책의 실효에 대한 부분은 논외로 한다.)은 오히려 가벼움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미래는 과거를 통해 축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방과 추격의 시대가 아니라 도전과 창조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p. 77)

'한국적 특수성의 세계적 보편화' (p. 87)

미국인들이 항상 남의 눈에 띄고 싶어하는 데 비해 한국인들은 남들에 뒤지지 않는 정도를 바란다. (p. 88)

(코리아니티를 정의할 때 어느 세대를 기준으로 해야 할까? 신세대를 좀 더 많이 포함시킬 경우에도 '남의 눈에 띄고 싶어하는 성향'은 코리아니티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길을 가다가 좀 부딪쳐도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례한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만난 그 수많은 사람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에 지켜야 할 예의도 없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조금씩 부딪히고 섞이며 걷는 장소가 길인 것이다. (p. 91)

나는 화병을 주제로 한국인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그리고 45명의 한국인들과 이야기했다. 이들은 대부분 화병을 일종의 분노라고 말했는데. 젊은이들보다는 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대체로 화병을 부정했다. "우리는 분노를 안에 쌓아두지 않아요. 밖으로 표출해버리죠. 화병은 우리 어머니들의 병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정신과 의사는 짤막하게 말했다. "20년만 더 살아 봐요. 그러면 그 젊은이들도 알게 될 테니." (p. 92)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그러나 '한'을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라고 하기엔 젊은 세대는 너무 다른 환경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이 세대들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한'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은 미숙한 인간으로 취급 받는다. (p. 95)

("맞고 틀리기를 따지기 전에 그냥 내 편을 들어줄 수는 없어?" 집사람이 며칠 전에 여자 연예인의 가슴 성형수술 여부를 두고 나누던 대화 중에 던진 한마디가 귓가를 맴돈다.)

'우리라고 부르면서 실제로는 나를 앞세우는 위선적인 한국인'이라는 한 외국인의 소감은 한국에 대한 표피적인 이해에 불과하다. 그는 한국인들이 집단 속의 자아와 개인적 자아를 모두 끌어안고 조화를 이루려 애쓴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의 집단적 자아가 점점 흐려져 젊은이들 사이에 치열한 개인주의가 팽배 하다는 지적도 일부 현상에 편중되어 있어 객관적 사실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p. 100)

한국인에게 공동체는 자궁이다. 자신을 품어준 집단의 탯줄을 통해 배우고, 경험하고 실험하면서 그 집단을 빛낼 또 하나의 전문가로 성장해간다. 그리하여 스스로 훌륭한 추종자를 보유하는 또 하나의 유파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p. 105)

어느 하나를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그 것이 연관되어 있는 다른 것들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p. 111)

셋째, 공부하는데 마음의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중간 생략)

다섯째, 일을 계획하되 쉽게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풀리면 뜻이 경솔해지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많은 세월을 두고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p. 113)

"덕 베푼 것을 헌 신처럼 버리라.", "적은 이익으로 부자가 되라."(p. 114)

"내용이 형식보다 튀면 거칠어 보이고, 형식이 내용보다 튀면 사치스럽다.", "…문(文)이 곧 질(質)이고, 질이 곧 문이다. 무늬가 없다면 표범의 털 뽑은 가죽이 개나 양의 털 뽑은 가죽과 무엇이 다르랴." (p. 121)

아이들의 기질과 재능을 일찍이 발견하여 그에 적합한 길을 걷도록 교육한다는 것은 그 아이의 개인적 행복일 뿐 아니라, 한 사회의 동량을 길러내는 가장 중요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과 전문성만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다. 열린 의식 구조로써 상생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가진 바른 전문가들이 아니라면, 능력이 있다 하여 크게 쓸 수는 없는 일이다. (p. 125)

(아이의 재능과 학습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민에서 자칫 간과될 수도 있었던 가치관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윤리 원칙을 지키는 경영, 지구가 견딜 수 있을 만큼 절제된 자원의 배분,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긴 경영철학, 공동체와 상생하는 개인, 현장에서 계속되는 평생학습, 기회주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묵묵함,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기업정신, 세계와 자연에 마음을 여는 열린 자세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식은 건강한 기업경영에 절대적 도움을 준다. 바로 이것이 경영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현대의 선비정신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여기서 너무 멀어져 있었다. 본래 가지고 있는 훌륭한 유산을 돌아보지 않고 그보다 못한 남의 것을 베껴와 찬양하곤 했다. (p. 135)

한국인들은 일본인들과 함께 미국인에 비해 훨씬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하고 투자한다. 따라서 보상의 방식도 다르다. (p. 137)

나는 여기에 제시한 5가지 코리아니티가 의미 있는 분류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초보적인 작업의 결과일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분류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문화적 강점인 코리아니티를 잘 발견해내고 끊임없이 계발하고 활용하여 효과적이고 강력한 한국적 경영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모방에서 비롯하는 이류성을 지양하는 길이며, 문화적 부작용과 거부반응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이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불필요한 상처와 시행착오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p. 139)

이제는 소비자만이 고객화의 대상이 아니다. 직원도 고객화의 대상이 된 것이다. (p. 146)

21세기는 한국인들이 가장 잘 읽어낼 수 있는 시대이며, 일상 속에서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시대로 보인다. 이것이 이번 작업을 통해서 내가 발견한 큰 기쁨이다. (p. 148)

20세기 대량생산체제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인간의 참여와 기여"를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p. 152)

프랑스 사치산업의 성공은 프랑스적인 가치 창조에 있다. 가장 프랑스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국제적 취향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고유한 것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잘 성공할 수 있는 길이다. (p. 170)

미국 문화에서는 사회 안전망이 튼튼해서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이 이직할 곳이 많다는 배경 때문에 GE의 과감한 인력감축이 가능했을 것이다. 더욱이 미국 문화 속에서 잭 웰치식 인력감축은 유능한 인력을 더 유능하게 육성하여 다른 기업으로 분산한 사관학교의 기능도 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p. 176)

공부를 안 하는 사회에서는 학연이나 혈연 및 지연이 중요해지고, 그 안에서는 상하관계가 주를 이루게 됩니다. (이하 생략) (p. 180)

특정인의 교육훈련 요청을 받은 인력개발부는 그 사람이 속한 작업조 전체를 소집함으로써 개인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p. 181)

유한킴벌리의 윤리경영 시스템은 통제를 위한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를 윤리적 기준에 맞춰 개선함으로써 비윤리적 행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p. 188)

나는 이론이 가진 아름다움이며 조화에 감탄하곤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이론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길바닥에선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도대체 경제학 이론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p. 190)

01. 우리는 가능한 한 아이들을 적게 낳는다. 우리는 이 지출을 줄인다. 그리고 건강을 돌본다. (p. 201)

(둘째도 딸 낳기에 실패하면 셋째에 도전하겠다는 우리 부부의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겠다.)

"한 명은 외롭고, 둘이면 마음을 모아 도망가기 쉽고, 3명이면 한 사람이 소외되고, 4명이면 편이 갈려서 5명이 가장 알맞다." (p. 205)

(셋을 낳아야 가족이 5명이 될텐데 걱정이다.)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라민은행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에서 언젠가는 '예전에 가난했던 사람들의 은행'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있다. (p. 211)

아이디어는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의 것이다. 그 점에서 아이디어는 범세계적이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실천에는 국경이 있다. 이 점에서 아이디어는 또한 국가와 문화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p. 220)

현실에서 통하는 전략이란 단순 명료한 것이다.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필사적으로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 이론은 흥미롭고 차트나 그래프는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전략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전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데이터와 세세한 사항들을 파고들다 보면 점점 더 알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전략이 아니다. 고통일 뿐이다. 이는 비생산적인 일이다. 승리하고 싶다면 전략에 대하여 더 적게 생각하고 더 많이 행동해야 한다. <잭웰치> (p. 222)

미국의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그것들의 작동을 가능하게 했던 아메리카니티를 우리가 모방할 수는 없다. 재패니티 역시 일본의 것이다. 우리가 그들이 만든 제도와 시스템, 프로세스와 조직을 빌려와서 사용해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 222)

중위권 70퍼센트의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암흑의 상태에서 일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업의 심장이자 영혼, 즉 핵심부다. 인력의 다수를 차지하는 그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코리아니티는 특히 이 중위권 70퍼센트에 속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공유의식이며, 정서적 공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p. 223)

이 기회와 몰락의 변곡점에는 '사람'이 있다. (p. 227)

"새로운 인재를 채용하고 직위에 적합한 인물을 선별하고, 젊은 인재를 훈련하고, 글로벌 관리자를 육성하고, 성과 미달자들의 문제를 처리하며, 전체 인력창고를 검토하는 등 사람에게 시간의 절반 정도를 쓴다" <스티븐 스필버그, 잭 웰치, 웨인 캘러웨이 등> (p. 230)

직원의 재능을 발견하고 적절한 곳에 배치해서 그 재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도록 하는 기업이 훌륭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p. 231)

사람들은 자신이 무능력해질 때까지 승진하게 되어 있다 <피터의 법칙> (p. 235)

사람마다 유능함이 발휘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일에 그 사람이 '적합한' 사람인가를 묻는 것이다. (p. 236)

노동시장에서 인재를 사오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가 가장 매력적인 회사임을 마케팅해서 최고의 인재를 선호하는 기업으로 전략적 전환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채용은 구매가 아니라 마케팅임을 명심할 일이다. <제프 테일러, 몬스터닷컴 설립자> (p. 239)

피터 드러커는 "100년간 미국의 경영대학은 단지 쓸 만한 행정사무직원을 양산했을 뿐이다"라고 개탄한다. 리 아이아코카 역시 "정규교육에서도 많이 배울 수 있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대부분 혼자 터득해야 한다"며 스스로 배우는 자세를 강조했다. (p. 246)

그동안 많이 학습해 온 서구적 접근법들과 제도적이고 기술적인 보완장치들을 검토하고 활용하여 한국인들의 문화적 DNA와 잘 결합한다면, 우리는 세계적 경영 리더십을 이끌 만한 매우 유효한 인재경영 모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미래가 되는 새로운 경영의 변곡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이 코리아니티 경영의 가장 커다란 잠재력이라고 생각한다. (p. 247)

규정집을 던져버려라. (p. 255)

(규정집은 '기대되는 최소한의 수준'을 정의한 것에 불과하다. 기대를 넘어서지 못하면 감동은 없다.)

사우스웨스트는 규정집을 없앰으로써 직원들이 규정에 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이 회사의 인사부는 다른 기업의 인사부에 비해 권한과 역할이 막강하다. (p. 257)

(내가 잘못 이해한 걸까? 인사부의 권한과 역할이 막강하다는 것은 오히려 조직의 자율성을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업은 결국 '고객을 돕는 사업(customer helping business)'이다. (p. 257)

직무기술서는 최소한의 것을 세부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책임을 정해주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은 직원이 능력의 일부만을 사용하게 만들고 늘 그만큼만 하면 충족되는 것이다. (p. 259)

지금은 인재와 전문인들의 시대다. 천재는 '운명으로부터, 신으로부터, 최고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인재는 만들어지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 274)

'1인 기업가들을 위한 스폰서'나 '기업 속의 작은 기업가'는 이제 관리자를 부르는 새로운 이름이 되어야 한다. (p. 281)

ROT(인재자본슈익률) (p. 282)

피터드러커는 "어떤 조직도 완전한 조직은 아니며, 그 조직은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점을 전제하라"고 강조한다. 훌륭한 경영자는 솔선해서 기존 조직을 끊임없이 해체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가장 그럴듯한 구호는 도요타의 '타도! 도요타'이다. 어제의 도요타를 타도함으로써 늘 새로운 도요타가 되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혁신 기업의 공통된 모습이다. (p. 291)

한국인들이 조화와 균형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서양인들은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p. 293)

성공한 리더들을 보면 한결같이 자신의 직업에 헌신적이다. 헌신 없는 성공이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일에 헌신하는 경영자나 관리자가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성공을 위해 개인 삶이 커다란 희생을 치르고 있다면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반대로 업무에서 불행한 경영자가 가정에서 행복할 가능성은 아주 적다. (p. 298)

능력 부적응자(competence misfit), 만족 부적응자(enjoyment misfit), 도덕 부적응자(moral misfit) (p. 301)

현실적인 어려움은 일과 자신의 적성이 조화를 이루는지 스스로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젊은 직장인은 자신이 어떤 일에 적성이 맞는지를 알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일과 스스로를 조율해 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p. 302)

(조직내의 순환근무제는 일견 이런 요구를 해소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하지만 정작 순환근무를 희망한다 해도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정보가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하나님은 내게 3가지 은혜를 주셨다. 첫째, 나는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보모, 공장의 직공 등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둘째, 몸이 약했기에 늘 운동에 힘써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을 다 스승으로 여기고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가질 수 있었다. <마쓰시타, 경영의 신> (p. 307)

전문가라는 표현이 '편협한 깊이'라는 뉘앙스를 감추지 못하는 반면, 달인이라는 말은 경계를 넘나드는 모호함이 매우 돋보이는 표현이다. 재미있는 것은 '영역이 모호한 깊이'가 바로 지금의 인재상을 가장 적절하게 함축한 단어일 수 있다는 점이다. (p. 309)

계급의식은 지식인들이 지어낸 못된 물건이다. <에드워드 파머 톰슨, Edward. P.. Thomson> (p. 322)

경영컨설팅업체인 타워스 페린(Towers Perrin)은 윤리경영으로 명성을 날리는 기업을 매년 25개씩 뽑아 심층 조사를 했다고 한다. (이하 생략) (p. 341)

개혁적 정부는 개혁적 기업에게 나쁜 것이 아니다. 깨끗한 정부는 윤리적 기업으로 가는 변곡점에 반드시 있어야 할 파트너다. (p. 346)

'우리'와 '나' 사이의 건설적인 동의와 유대를 만들어내기에 한국인보다 훌륭한 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는 민족은 없다. (p. 348)

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 윤리적이라는 말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 세금을 낸다고 하여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p. 349)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라 하여 갑옷을 만드는 사람보다 불인(不仁)하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만든 화살이)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갑옷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갑옷이 화살에 뚫려) 사람이 상하게 될까 봐 걱정한다. 무당과 장인도 역시 그러하다(당시 무당은 의사와 같았기 때문에 사람의 병이 낫지 않을까 봐 걱정하고, 장인은 관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팔리지 않을까 봐 걱정한다.) 그러므로 직업의 선택은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맹자는 다시 스승 공자를 인용하여 이렇게 덧붙인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에 거하는 것이 아름답다. 스스로 택해 인에 거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을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맹자> (p. 351)

(이 글, 참 멋지다. 다음 주에 '일의 발견'과 관련해서 글 쓸 때 꼭 써먹어야겠다.)

선비정신은 청빈과 기개라는 한국적 윤리성의 정신적 뿌리이다. (p. 352)

역사학자 새뮤얼 앨리엇 모리슨(Samuel Eliot Morison)의 말대로 "자유와 비효율성 그리고 번영은 종종 함께 간다"는 말을 이해하고 믿을 수 있을 것인가는 이제 경영자의 중요한 자격요건이 되었다. (p. 356)

히딩크는 호칭을 바꾸었기 때문이 아니라 훌륭한 선수들을 발굴하고 키워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p. 356)

창의력, 상상력, 실험과 모색, 현장의 목소리, 융통성, 열의와 몰입은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p. 357)

"친구가 도리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이탁오, 중국의 학자> (p. 358)

나는 실제로 현장에서 잘 적용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직위승진과 자격승진을 분리해서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 361)

우리는 찬사에 민감하다. 옳은 말이다. 우리는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인정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인정에 대해 끊임없는 허기를 느끼고 있다. (p. 374)

프로이트는 칭찬이 자유를 말살한다고 말했다. (p. 376)

(아~ 모든 것을 성(性)하고 연관시키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글빨에 팬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칭찬할 때 성과를 칭찬해서는 안 된다. 성과를 칭찬받는다면 그 사람은 인형으로 쉽게 전락하고 만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피와 열정과 영혼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 것은 성과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인정해 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존재를 인정받을 때, 우리는 열정을 가진 창조자가 된다. 또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존심과 명예를 보존할 수 있다. 작은 일에도 수없이 감탄하고 고마워하면서도, 그를 조종하기 위한 모이와 떡밥이 아닌 그 존재의 든든함에 감사하는 칭찬이 중요하다. (p. 377)

두렵지만 무릎을 꿇지 않는 자들이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도전하고 실험하고 모색하고 혁신한다. 그리고 성공한다. (p. 391)




요즘 기업들은 혁신의 몸살을 앓고 있다. 회사마다 '혁신'이라는 기치를 앞세운 이런저런 태스크 포스(TF: Task Force)들이 구성되고, 그들은 KPI나 BSC 같은 각종 성과지표를 앞세워 '혁신'의 가치에 대해 열변을 토해낸다. 각 단위 조직들은 똑같은 자료를 매번 다른 이름과 형식으로 포장해서 제출하고 이를 토대로 조직의 성과를 측정 받는 웃지 못할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또 사업부서의 직원들은 때마다 이런 성과지표 관련 자료들을 작성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안으로 심하게 곪아 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혁신'의 좋은(?) 취지에 반기를 드는 것만 같아 쉽게 논의되지 못하고 입 속에서만 맴돈다. 모처럼 용기를 내서 다른 목소리를 내보고자 해도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그저 공허한 불만으로 들릴 뿐이다. 한번은 조직 평가와 관련된 자료를 감사하는 혁신팀 간부를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혁신이 이제 제법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각종 성과 목표나 지표들에 관한 자료를 보니 직원들이 혁신의 절실함을 공감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회사 내에 '혁신'이 뿌리 내리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 간부는 해마다 그가 요청한 자료를 작성하는 직원들의 '요령'이 고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없는 '혁신'은 그 태생부터 불순했고 그럴싸한 모습으로 포장되어 들이 밀어진 '혁신'의 툴들도 애초에 우리에겐 잘 맞지 않는 빌려 입은 옷과 같은 것이었다.

본래 가지고 있는 훌륭한 유산을 돌아보지 않고 그보다 못한 남의 것을 베껴와 찬양하곤 했다. (p. 135)

<코리아니티>에 해답이 있었다. 짙은 구름 사이로 하늘이 열리고 천공 사이로 빛이 쏟아졌다. 흐릿하던 경계는 날카롭게 날이 서고 모호함은 자취를 감추는 것 같았다. 계속 헛발질을 하던 이유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그저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라는 이유로 얻어 입고 있었으니 매무새는 엉망이고 움직일 때 마다 여기저기 걸리적 거리기만 했다.

나는 이전의 책들을 통해 저자의 폭넓은 인문학적 깊이와 가슴으로 말하는 다정함에 매료되었다. 20년 동안 이 시대의 평범한 서민으로 직장생활에 몸바쳤던 과거와, 이제는 당당히 자신의 두 발로 우뚝 선 현재는 지친 나에게 희망의 증거로 다가왔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이 예전과는 달리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잠시 주눅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예전의 책에서 느꼈던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찾고 있었다. 책은 '나'를 넘어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예전의 기억에서 깨어나는데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저자는 수치와 통계에 약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20년의 직장생활 동안 몸담았던 분야는 그가 인문학보다는 경영학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중에게 크게 주목 받은 것은 그의 인문학적 감성이라는 데서 모순이 발생하고 이는 인문학과 경영학의 결합이라는 도전으로 이어진다.

하랄드 빌렌브록의 <행복경제학>이 수치와 통계를 바탕으로 한 근간의 자료들을 가지고 개인의 행복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지고 있는데 반해 알랭 드 보통의 최근 작품 <불안>은 고대 철학에서 현대 예술까지를 종횡무진 휘저으며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공감으로 이끌어낸다. 두 책은 비슷하게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판이하게 다르다.

<코리아니티>는 <불안>에 좀 더 가까운 방식으로 '한국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가끔은 <행복경제학>식의 접근이 아쉽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미국인들은 수천 가지의 원인이 미래에 무엇을 만들어낼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의 가치를 늘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여 계산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투자에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이윤을 포기하는 경우가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가치(net present value)'이다. 그 한 예로 미국에서는 일본과 달리 교육자들이 낮은 보수를 받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p. 45)

미국의 교육이 일본의 교육에 비해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교육 면에서 일본보다는 미국에 가까운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이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 경우 구체적인 통계 자료나 수치는 설득력을 높이고 기존의 생각을 한방에 뒤집는 극적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때론 현실에 대한 구체적 수치와 통계가 사람들을 불타는 갑판에 올리고 똥줄에 불을 붙이는 데 더 효과적이다.

한편 '우리'의 코리아니티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비중이 작아진 '개인적 코리아니티의 세계화'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몹시 아쉽다. 지극히 한국적인 그래서 세계적인 개인들의 이야기는 고유의 컨텐츠로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길을 비추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후에 조금 더 깊이 다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화두를 던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바른 화두를 바른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방향'은 속도와 시간의 문제에 앞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잘 던져진 하나의 화두는 때로 놀라운 결과를 일으키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다른 아쉬운 점들을 감싸고도 남는다. 이 책은 완성형이 아니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가 누차 강조하듯이 앞으로 10년을 두고 많은 이들이 함께 고민할 대규모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나는 아직 자신이 없다. 더 오랫동안 더 많은 탁월한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어야 할 일이다. (p. 8)

그럴까? 연구의 중추로서, 많은 탁월한 사람들의 스폰서로서 그를 대체할 대안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IP *.254.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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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1 00:37:43 *.140.145.63
첫번째 리뷰에서 관점의 일관성을 지키면서도 몇가지 의미있는 단장이 인상적이군요. 저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가독성을 높여주는 좋은 여백과 강조의 미덕을 중시하는 편인데 매우 만족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구요..^^

이번 리뷰에서도 저자에 대한 평을 시작하는 도입부가 역시 신선하고 강렬하군요. 선생님이 추천사를 쓴 책을 우연히 발견해서 읽는 재미가 사실 꽤 쏠쏠하거든요..^^ (나중에 언급하신 책제목 좀 알려주셈)

코리아니티를 정의할 때 어느 세대를 기준으로 해야 할까? 신세대를 좀 더 많이 포함시킬 경우에도 '남의 눈에 띄고 싶어하는 성향'은 코리아니티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님의 의문에 대해 제 생각을 한번 말씀 드려 보면..

현재의 신세대는 직.간접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식 문화 DNA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기성세대 문화에 대한 이유있거나 이유없는 반발심리가 합쳐져서 이와는 대칭되는 그들만의 미덕이나 문화가 나름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선생님을 대표적인 선비로 보신 것에 매우 공감하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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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윤
2007.03.21 09:34:34 *.227.22.4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날씨가 무척 좋았던 토요일이었고, 국어 시간이었습니다. 토요일만이 갖는 묘하게 달뜬 느낌이 아마도 선생님은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오늘 왜 이리 어수선하지?"

교실 뒤, 어디선가 뜻 밖의, 그러나 자연스러운 대답이 터져 나왔습니다.

"토요일이잖아요~"

잠시 가만히 계시던 선생님의 표정이 변하는가 싶더니 한마디 툭! 던지십니다.

"그래? 그럼 가라앉히는 의미에서 좀 맞자!"

맨 앞 줄부터 맨 뒷줄의 친구들까지 몽땅 앞으로 나가서 교탁 위로 올라가 발바닥을 열 대씩 맞았습니다. 한 명씩 발바닥을 맞고 자리로 돌아오는 친구들을 보면서 차례를 기다리는 그 때의 긴장감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어제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이기찬님의 댓글이 하나씩 달려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제 차례를 기다리다보니 문득 옛생각이 났습니다. 하하~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보다도 더 힘든 일을 하고 계신 노력에 감탄 또 감탄합니다. 이 번 과제들을 진행하다보니 구본형 선생님말고도 뵙고 싶은 분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오프에서 뵙고 웃는 얼굴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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