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김지혜
  • 조회 수 207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7년 3월 12일 17시 32분 등록
[[ 에릭 홉스봄에 대하여 ]]


에릭 홉스봄은 1917년, 유대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90세가 가까운 나이의 역사학자이다. 그의 부모는 당시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적국이었기에 취리히 영국공사관의 특별 재가를 얻어 어렵사리 결혼을 하고 이집트에서 둥지를 틀었다. 홉스봄의 가족사 그 자체가 20세기의 전쟁과 갈등을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이집트에서의 추억을 채 갖기도 전에 그의 가족은 오스트리아로 옮겨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보내게 된다. 변변한 직업이 없었던 홉스봄의 아버지는 홉스봄이 12살 되던 해에 돈을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길거리에서 객사한다. 중산층 가정에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란 그의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에 자책하다가 2년 후 역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후 홉스봄은 친척집을 오가며 10대를 보내게 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 나치즘의 등장 등, 역사적 격동기를 목격하면서 공산주의 노선을 걷게 된다. 영국으로 옮기고 나서는 여전히 베를린을 그리워하며, 친구도 별로 사귀지 않고, 문학과 재즈에 심취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이방인’으로서 운 좋게 캠브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 홉스봄은 공부 이외에도 정치활동과 토론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좌파 역사학자로서의 자리 매김을 확실히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사회주의국가의 몰락 등의 시대적인 굴곡과 첫번째 책의 출판 거부, 교수임용 실패, 첫번째 결혼의 실패 등 개인적인 어려움들을 겪었고 공산주의자였다가 광신적인 반공주의자로 돌아선 동지들을 수두룩이 보면서도 그는 끝까지 공산주의자로서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1982년에 버크벡 칼리지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그는 연구 및 저작활동을 쉬지 않고 있으며, 그의 저서 중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는 은퇴 후 저술한 것이다.

그의 자서전인 <<미완의 시대>>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가 시대를 관찰하고 분석하는데 있어 유달리 책임의식이 강한 역사학자였다는 것이다. 그의 자서전이 단순한 개인적 기록에 그치지 않고 각 시기의 정치상황, 시대상황과 밀접히 연결지어 묘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일생을 역사학자로서 살았기 때문이리라. 또한 그는 타고난 학자다운 면모를 보였다. 10대 때부터 ‘호기심, 탐구, 고독한 독서, 관찰’을 하며 연구에 매달린 그였기에 근현대사에 대한 방대한 연구 결과물인 ‘시대 시리즈’를 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과거에 매여 연구만 하는 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역사가가 ‘아무리 먼 과거를 다룬다 하더라도 과거를 탐구하다 보면 결국 현재와 눈 앞의 사안에 대해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라고 하며, ‘사회 불의에 더욱 맞서 싸우’기 위해, ‘의심 많은 역사가’가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 역사가의 임무는 과거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적인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그의 변하지 않는 신념 또한 인상적이었다. 10대에 이미 공산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90이 넘는 나이까지 일관된 믿음과 시각을 유지해온 그를 보며, 80년대 학생운동의 선두주자로 정치계에 입문한 후 누구보다도 보수주의자로 변해 버린 일부 386 세대 정치인들이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 대한 그의 냉소적인 비판과 미국화에 대한 경계 역시 그가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학자라는 점에서 더욱 힘이 실린다.

대학교 저학년 시절, 학생운동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 선배들 쫓아다니며 마르크스와 공산주의를 어렴풋이 접한 후 거의 10년이 지나서 홉스봄이라는 좌파역사학자의 담담한 인생기록을 듣자니, 미래를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었던 나는 머리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를 통해 나의 인문학적 감수성과 호기심이 한껏 풍부해졌다. 그의 생각대로 역사와 시대는 인간이 참여하여 만들어 나가야 할 미완의 것이다. 책 너머로 주름졌지만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하는 그를 보며, 21세기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에 잠겨본다.


[[ 인상 깊은 구절 ]]


0. 머리말

열 여섯 살 때 역사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후로 나는 세상을 관찰하고 세상이 내는 소리를 귀담아들으려고 애썼고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p.12)

역사와 사회과학이라는 경기에서 뛰는 선수에게는, 특히 나처럼 직관과 우연에 힘입어 주제를 선택한 다음 나중에 가서 조리정연하게 내용을 엮는 역사가의 경우에는 더더욱,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 다시 말해서 자기 몸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바깥에 설 줄 아는 능력이 이성을 신뢰하고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능력 다음으로 중요하다 (p.13)

1. 프롤로그

자서전을 쓰는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옛날로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도에 담는 것이다. 지도가 없이 어떻게 그 굴곡 많은 일생의 여정을 쫓아갈 수 있고, 언제 그리고 왜 우리가 머뭇거리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는지, 또 우리가 기댔고 얽혀 들었던 사람들 속에서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개개인의 사람에만 빛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에 빛을 던진다. (p. 27)

2. 빈과 유대인 소년

나는 조상들이 믿었던 종교의 관습을 지켜야 한다는 심정적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 한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연대를 요구하는 작지만 호전적이고 문화적으로 낙후했으며 정치적으로 공격 일변도로 나아가는 민족 국가에는 더더욱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20세기 말부터 유행이 되었지만, 나치의 대학살에 기대어 유대인은 사상 유례가 없는 박해를 받은 집단이라는 세계 양심에 호소하는 “희생자” 의식에 나까지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옮고 그름, 정의와 불의는 겨레의 휘장을 달지도 않고 나라의 깃발을 휘날리지도 않는다. (중략) 우리는 “흩어진 민족”이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남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사고 실험을 통해서 헤러츨의 염원이 이루어져서 모든 유대인이 유대인 어머니한테서 태어난 자식에게만 완전한 시민권을 주는 독립된 영토를 가진 작은 나라에 모여 산다면 그것은 인류 전체에게도, 유대인 스스로에게도 안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p.55)

3. 힘들었던 시절

나도 그 우울한 시절에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어딘가에 틀림없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시절이 아주 고통스러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워낙에 나라는 사람이 불쾌하거나 받아들이기 싫은 데이터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되살릴지언정 일단은 ‘쓰레기통’에다 던져놓고 보는 컴퓨터 같은 성향이라서 그런 착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내가 어려운 상황을 무사히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현실 세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몽상의 세계도 아니었다. 나는 호기심, 탐구, 고독한 독서, 관찰, 비교, 실험을 하면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p. 80)

4. 베를린: 바이마르의 종식

베를린 생활을 하면서 나는 일평생 공산주의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아니면 적어도 누가 보아도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또 이제는 왜 실패할 수 없었는지를 나도 알지만 학생 때부터 헌신했던 정치적 활동 없이는 인생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p. 103)

히틀러가 무섭게 떠오르던 시기에 독일공산당이 코민테른의 노선에 따라 추구했던 정책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살 행위였다는 것이 오늘날의 중론이다. (p. 119)

5. 베를린: 갈색과 빨간색

2년 뒤 영국에서 따로 떨어져 지내면서 나는 내 공산주의의 바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 “집단 황홀경”은 피억압자에 대한 연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완벽하고 총체적인 지적 체계가 주는 미학적 매력, 새로운 예루살렘을 염원하던 시인 블레이크와 비슷한 약간의 소망, 속물 근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적 혐오감과 함께 내가 공산주의에 빨려든 다섯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p.128)

6. 섬나라에서

내 경우에는 재즈가 첫사랑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외모가 워낙 자신이 없다 보니 나는 보나 마나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육체적 관능과 성욕을 억눌렀다. 지적 유희와 말에 온통 점령당한 나의 삶에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절대적 감성을 심어준 것은 바로 재즈였다 (p. 140)

자유로워지는 데 빠져서는 안될 조건이 기동성이라고 한다면, 자전거야말로 구텐베르크 이후로 마르크스가 말한 인간의 가능성을 온전히 구현한 최대의 발명품, 그것도 단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발명품인지도 모른다. (p. 153)

9. 공산주의자가 되다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하고많은 열망 중에서도 공산주의가 그리는 이상 낙원은 세 가지 점에서 달랐다. 첫째, 마르크스주의는 우리가 기필코 승리한다는 사실을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했다. 그것은 1940년대까지 세계의 6분의 1에 해당되는 지역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승리를 거두었고 혁명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로 검증되고 입증된 예언이었다.….(중략)…둘째, 국제주의가 살아있었다. 우리의 운동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었지 특수한 집단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의 이상은 개인의 이기심이나 집단의 이기심을 뛰어넘었다. 처음에는 시온주의에 뛰어들었다가 나중에 공산주의로 돌아선 젊은 유대인이 적지 않았던 것은 유대인이 겪는 고통이 아무리 컸어도 그것은 온 세상에 만연한 억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p. 231)

10. 전쟁

공병으로 지내는 동안 나는 압도적으로 잉글랜드인이 많았던 노동자들 속에 섞여 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거칠어질 때도 있었지만 그들의 올곧음과 허튼소리에 대한 경멸감과 계급 의식에 동지애와 협동정신을 평생토록 존경하게 되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모름지기 공산주의자라면 프롤레타리아의 미덕을 철석같이 믿어야 했지만 그것을 이론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확인하고 보니 참으로 마음이 놓였다. (p. 265)

하지만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들을 기다리는 운명은 집에 파묻혀서 두문불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중략)…..희망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이런 병원에 와서 보아야 비로소 실감이 간다. (p. 285)

11. 냉전

나 같은 사람들이 공산당에 남았던 것은 소련에 대해 너무 많은 환상을 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환상도 없지 않아 있었다. 가령 우리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벌어진 만행을 1956년 후르시초프가 규탄하기 전까지는 확실히 과소평가했다….(중략)…..게다가 1957년 이후로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당을 떠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남았을까? (p. 319)

공산주의자들은 여전히 소련을 혁명의 필수 불가결한 후원자로 보았다….(중략)….세계 대부분 지역에서는 소련을 그 이상 형편없을 수가 없는 체제로 본 것이 아니라 과거가 되었건 현재가 되었건 서양 제국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동반자로 보았고 비유럽 지역이 경제사회 발전의 전범으로 삼아야 할 나라로 여겼다. 공산주의자는 물론이거니와 식민지에서 벗어났거나 벗어나려고 애쓰던 지역의 정부와 운동도 모두 미래가 소련의 존립에 달려 있었다. 공산주의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소련을 지원하고 수호하는 것이 여전히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p. 321)

12. 스탈린과 그 후

공산당에 실제로 가입한 것은 1936년이었으니까 정치적으로 나는 반파시즘 연대와 인민 전선의 시대에 속한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정치 문제에 대한 나의 전략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1932년 베를린에서 10대 소년으로 공산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에 제아무리 소련을 비판하고 회의한다 하더라도 세계 혁명과 그 거점인 10월 혁명에 대한 희망과 마치 탯줄처럼 단단히 이어져 있던 세대에 들어갔다. 성장한 곳의 풍토와 혁명 운동에 투신한 시기가 남들하고 달랐기 때문에 나는 홀가분하게 공산당을 박차고 나올 수가 없었다. (p. 357)

15. 1960년대

1960년대에 영미권의 좌파를 감동시키고 행동으로 나서게 만들고 평소에는 반목이 끊이지 않았던 이런저런 좌익 정파를 세대 차이를 넘어 대동 단결하게 만든 것은 베트남 사람들이 벌이던 투쟁의 비극성과 위엄성과 영웅성이었다. (p. 420)

16. 정치 관람자

내가 보기에 우리는 지금 노동자들이 나머지야 어떻게 되건 자기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분파와 집단으로 갈수록 쪼개자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었다. 국영 기업체의 비율이 적잖은 몫을 차지하는 혼합 경제에서 노동자 집단은 파업이 고용주에게 끼칠 잠재적 손실을 겨누기보다는 파업으로 국민이 겪을 불편을 노렸다. (p. 436)

우리가 블레어의 새로운 노동당을 비판한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엄연한 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널리 퍼진 자유시장 경제 신학의 이념적 전제를 너무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를 효율적으로 꾸려가는 것은 기업인처럼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사고 방식이 문제였다. (p. 453)

17. 역사가들 속에서

실력 있는 역사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역사가는 아무리 먼 과거를 다룬다 하더라도 과거를 탐구하다 보면 결국 현재와 눈 앞의 사안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p. 461)

19. 마르세예즈

우리 세대한테 프랑스는 지금도 남다르다. 이재에 밝았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언어가 세계를 정복하면서 교양 있는 볼테르의 언어가 패배한 데서 프랑스인이 느끼는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나는 공감한다. 그것은 단순히 언어가 바뀐데 그치지 않고 문화가 바뀐 것을 뜻한다. (p. 545)

22. 루스벨트에서 부시까지

미국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력하고 그 안에 모든 것이 뭉뚱그려지다 보니까 우리가 “미국의 세기”라고 부르는 20세기 내내 그것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1930년대에 특히 우리처럼 좌파 진영에 있었던 사람들이 미국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 미국이 준 이미지는 사뭇 달랐다. (p. 626)

문제는 우리가 미국화되어 간다는 것이 아니다…..(중략)…..우리의 문제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 혹은 자신의 한계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기 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인다. “미국의 세기”가 정점에 이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고충이다. (p. 660)

23. 에필로그

워싱턴은 9·11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선언했고 그렇게 선언함으로써 실제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미국은 세계 질서의 하나밖에 없는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누가 세계를 위협하는지도 자기 혼자서 정의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은 누구든지 잠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적으로 여겨졌다. (p. 662)

나는 2002년의 세계에는 어느 때보다도 역사가가, 특히 의심 많은 역사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늙은 역사가의 평생에 걸친 편력을 읽으면 젊은 역사가가 21세기의 어두운 전망에 그에 합당한 비관주의만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더 투명한 눈, 과거를 기억하는 역사감각, 현재의 열풍과 장사판에서 거리를 두는 능력을 가지고 맞서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p. 663)

20세기를 넘어 80년이 넘게 살다 보면 정치 권력과 제국, 제도가 얼마나 가변적인가를 저절로 배운다. 나는 식민지를 거느린 유럽의 제국들이,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고 내가 어렸을 때 영토가 가장 넓었던 영국, 쿠르디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공중 폭격으로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 막강한 대영제국이 졸지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세계의 강대국들이 마이너 리그로 강등당하는 것을, 천년은 갈 것처럼 보였던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혁명정권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다. (p. 665)

나는 여러 나라에 마음이 끌렸고 거기서 편하게 살았으며 그 밖에도 많은 나라를 조금씩 보았다. 그렇지만 내가 그 나라 시민으로 태어난 나라도 포함해서 어떤 나라에서도 나는 꼭 국외자라고까진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내가 살던 곳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는 느낌은 못 가졌던 사람이다…(중략)…심지어 나는 내가 접해본 나라들 안에서 정치적으로도 소수파에 머물러 있던 공산주의자들 안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별종 취급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이것 때문에 살아가기가 고달팠지만 역사가에게 그것은 각별한 자산이었다. (p. 668)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p. 672)


[[내가 저자라면]]

나보다 60년 넘게 긴 인생을 산 대역사학자가 쓴 책을 두고 감히 나라면 이랬을 텐데..라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그닥 내 성미에는 맞지 않지만, 그의 의도를 내가 충분히 파악 못했다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진가를 떨어뜨리는 몇가지 아쉬운 점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미완의 시대>>는 20세기의 80퍼센트를 생생히 목격한 역사학자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보기 드문 책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4~5줄씩 이어지는 긴 문장들, 주어를 찾기 힘든 문장구조, 불필요하게 긴 세부묘사, 중심 메세지와 별 연관성 없이 남발한 괄호 안의 글들로 인해 전달력이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왠만한 난이도의 책은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 나도 일단은 그 두께에 기겁을 하고, 두 번째로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문장전개에 인내심을 잃고 책을 덮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서 수수께끼 같은 문장을 해독할 의지와 끈기가 있는 사람만 읽어라라는 듯한 오만함까지 느껴졌다. (물론 그의 겸손함이 책 전반에 걸쳐 표현되긴 하였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뛰어난 기억력과 상세한 묘사에 감탄하면서, 내가 자서전을 쓴다면 그의 1/3밖에 안 되는 길이이지만, 저렇게까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설명해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지나치게 상세한 설명은 오히려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따라서 전달력을 약화시킨다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인생 이야기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들과 엮어서 쓰려는 욕심을 낸 김에, 주요 사건들은 표로 만들어서 연대순으로 나열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까? 더 나아가서 시대의 역사와 자신의 역사를 비교해서 보기 좋게 표로 보여주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책은 사상 (시온주의, 볼셰비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 등)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따라가기 어려우므로, 각각의 사상들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와 그의 해석을 덧붙였으면 어떨까 한다.

보통 자서전은 글쓴이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기 위해 읽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보통 철학이나 이론서적보다 쉬우리라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책의 가치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읽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면, 그래서 읽는 사람이 적다면 의미가 없지 않는가? 조금 더 독자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IP *.187.238.124

프로필 이미지
김지혜
2007.03.12 17:34:30 *.187.238.124
힘들게 힘들게 다 읽어놓고..어처구니 없게도 마감시간을
12일 오전이 아니라 12일로 보는 바람에
부끄럽게도 늦게 과제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마감시간을 놓쳤기에 분명 실점이 있겠지만,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아 용기를 내어 올려 봅니다.
첫번째 과제를 마친 지금 제가 쓴 글이 그닥 맘에 들진 않지만
이미 엄청난 지적탐험을 하고 있습니다.
과정 자체를 즐기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
프로필 이미지
이기찬
2007.03.13 00:30:44 *.140.145.63
김지혜님 리뷰까지 읽고 보니 저자가 알게 모르게 읽는 이에게
솔직함을 전염시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거의 모든 분들이
아마도 원래의 자신보다 더 솔직한 자신을 발견했을 것 같군요..

그런 면에서 저자의 의도하지 않은 가르침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다른 책 리뷰에서는 또 어떤 공통적인 교훈이 담겨져
있을지 기대됩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12 『코리아니티』를 읽고... [1] 이희석 2007.03.19 1629
711 코리아니티, 구본형 [2] [2] 신종윤 2007.04.09 2113
710 [002]코리아니티 경영-한국인은 블루오션 그 자체이다 [1] 양재우 2007.03.18 2035
709 (02) 코리아니티 경영 - 구본형 [4] 옹박 2007.03.18 2295
708 코리아니티 - 한국성에 대한 새로운 모색 [1] 김민선 2007.03.18 1972
707 세계적 보편성의 한국화&amp;코리아니티 [2] 한정화 2007.03.18 2172
706 [Coreanity]-구본형 [2] 오윤 2007.03.18 1916
705 코리아니티 경영/구본형 [3] 香仁 이은남 2007.03.18 2043
704 코리아니티 - 대한민국 희망행진곡 [3] 임효신 2007.03.17 2088
703 코리아니티 경영- 조직과 개인의 필독도서 [4] 이은미 2007.03.17 2110
702 (002)코리아니티(우리들에 대한 탐색과 희망) [3] 강종출 2007.03.19 1881
701 인터뷰 기법 [8] 김귀자 2007.03.16 3578
700 (002)코리아니티 경영 [2] 최영훈 2007.03.16 1919
699 [코리아니티] 달인이 찾은 Corea [1] 송창용 2007.03.16 2292
698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 [2] 신재동 2007.03.15 1877
697 사람에게서 구하라 / 구본형 하루 2007.03.14 2121
696 미완으로 마칠뻔한 '미완의 시대를 읽고' [1] 정양수 2007.03.12 2030
695 『미완의 시대』를 읽고 [1] 이희석 2007.03.12 2185
694 &lt;호모 코레아니쿠스&gt; 를 읽고 [1] 정재엽 2007.03.12 2173
» 에릭 홉스봄 &lt;&lt;미완의 시대&gt;&gt; [2] 김지혜 2007.03.12 2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