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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6일 15시 59분 등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 2009

 

1. 저자에 대하여

 

무라카미 하루키 : 소설가. 일본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와 목차

 

에세이. 20058월부터 200610월까지 9장으로 씌어졌다. 구체적으로는 200511월의 뉴욕마라톤의 연습일지를 곁들였다. 다시 달리면서 보이는 것들을 쓰고 있다. 중간에 1996년에 달렸던 울트라 마라톤의 기록이 삽입된다. 100km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을 한 후 러너스 블루가 생기고,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 버렸다. 2005년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서 처음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한 순간 등을 돌아본다.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회고한다. 달리기의 역사는 그로서는 소설가로서 살아온 삶과 병행하기 때문이다.

 

2) 장점과 보완점 평설

 

이 책을 들고 5차 시험관을 진행했다. 공교롭게도 채취, 이식에 남편은 해외출장중이었다. 위로와 지지를 구하기 위해 들고 간 한 권의 책이다. 함께 받은 15명과 같이 회복실에 누워 이 책을 번쩍 쳐들고 읽었다. 달리기는 글쓰기와 인생에 대해서도 좋은 메타포가 된다. 하루키는 달리기와 글쓰기, 인생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 그는 매일 아침 5시를 전후해 일어나 7시경에는 운동화를 신고 달리러 나간다. 일본에 살든, 하와이에 살든 가리지 않는다. 매일 10km를 달린다. 한달에 310km를 달리면 성실하게 달린 거고, 260km면 열심히 달린 거다. 1982년부터 1년에 한 번씩은 풀코스 마라톤을 달린다. 여름에는 트라이애슬론을 달린다. 우리가 예술가에 대해서 가진 불건전하다, 퇴폐적이다는 선입견과 맞지 않다. 금욕적이다시피 할 만큼 자신의 생활에 엄격하다.  

 

3) 감동적인 장절

 

1) 혼자 있는 걸 즐기거나, 적어도 괴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특징을 나도 가지고 있다. 그는 소설가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자발적인 단절을 추구했다. 그런데 그게 내적으로 내는 상처가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고 몸을 단련함으로써 해소해갔다. 전업소설가가 된 후 가장 큰 문제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살이 찌고 담배가 늘었다. 가만히 있으면 살이 찌는 체질이다. 나는 그가 열심을 다하는 방식에서 배운다.

 

40 자진해서 고립과 단절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할 수 없는 여정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은 병에서 새어나온 산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녹여버린다. 그것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내벽을 끊임없이 자잘하게 상처내기도 한다.

 

41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까지 몰아감으로써,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의도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

 

44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누가 그런 것을 자랑할 수 있을까?) 나는 그다지 머리가 좋은 인간은 아니다. 살아있는 몸을 통해서만이, 손에 닿을 수 있는 재료를 통해야만, 사물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무엇을 한다고 해도, 일단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꿔놓아야만 비로소 납득을 할 수 있다. 지성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육체적인 인간인 것이다. 물론 조금쯤의 지성은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게 전혀 없었으면, 아무리 뭐래도 소설은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머릿속에서 순수한 이론이나 도리를 조립해서 살아가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다. 경험에 의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사물은 인식하는, 이른바 사변을 연료로 해서 전진하는 타입의 인간도 아니다. 보다는 신체에 현실적인 짐을 지우고, 근육에 신음소리를(어떤 때는 비명을) 지르게 함으로써, 이해도의 눈금을 구체적으로 조금씩 높여가게 하여, 가까스로 납득하게 하는 타입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 나가면 사물의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품도 든다. 때로는 시간이 너무 걸려 가까스로 납득했을 때는 이미 때를 놓쳐버리게 된 경우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애당초의 나란 인간이기 때문에

 

60 막 전업소설가가 된 내가 맨 처음 직면한 심각한 문제는 건강의 유지였다. 본래 주의하지 않으면 살이 찌는 체질이다. 지금까지는 매일매일 격렬한 육체노동을 해왔기 때문에 저체중의 안정 상태로 머물러 있었지만 아침부터 밤중까지 책상에 앉아서 원고를 쓰는 생활을 하게 되자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체중은 불어났다. 신경을 집중하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담배도 지나치게 피우게 되었다...이제부터의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갈 작정이라 체력을 지키면서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64 그렇게 해서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 이전에 잔다고 하는, 간소하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를 통틀어 가장 활동하기 좋은 시간대라는 것은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그것은 이른 아침의 몇 시간이다. 그 시간에 에너지를 집중해서 중요한 일을 끝내버린다. 그 뒤의 시간은 운동을 하거나 잡무를 처리하거나 그다지 집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들을 처리해 나간다. 해가 지면 느긋하게 지내며 더 이상 일은 하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며 편히 쉬면서 되도록 빨리 잠자리에 든다. ..이런 생활을 하고 있으면 나이트 라이프 같은 것은 없어져 버리고, 사람들과의 교류는 틀림없이 나빠진다.

 

2)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그는 소설가에게 필요한 재능, 집중력, 지속력을 말한다. 평범한 재능을 가진 모든 사람이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려고 할 때 하루키가 달리면서 배운 것을 기억하면 유리하리라. 나는 이 부분이 매우 인상깊었다. 또한 삶은 불공평하다. 그걸 받아들여 자신의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소박하지만 진실한 인생관 역시 좋다.

 

65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65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특정한 누군가와의 사이라기보다 불특정 다수인독자와의사이에 구축되어야 할 것이었다. 내가 생활의 기반을 안정시키고 집필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조금이라도 질 높은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것을, 많은 독자들은 분명 환영해 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소설가로서의 나의 책무이며 최우선 사항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독자의 얼굴은 직접 볼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관념적인 인간관계다. 그러나 나는 일관되게 그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관계를 나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 정해서 인생을 보내왔다.

 

70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살이 찌는 체질이다. 인생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을 어떤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도 손쉽게 얻는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런 살찌기 쉬운 체질로 태어났다는 것은 도리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즉 내 경우 체중이 불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 열심히 운동하고 식사에 유의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골치 아픈 인생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면 신진대사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결과적으로 몸은 건강해진다. 노화도 어느 정도는 경감시킬 것이다.

 

71 그런 관점은 소설가라는 직업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말일지도 모른다. 타고날 때부터의 재능이 풍부한 소설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혹은 무엇을 해도) 자유자재로 소설을 쓸 수 있다.

 

72 그러나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타입은 아니다.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주위를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에게 샘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괭이를 손에 쥐고 부지런히 암반을 깨고 구멍을 깊이 뚫지 않으면 창작의 수원에 도달할 수 없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몸을 혹사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작품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일일이 새롭게 깊은 구멍을 파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활을 오랜 세월에 걸쳐 해가는 동안, 새로운 수맥을 찾아내고 단단한 암반에 구멍을 뚫어 나가는 일을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효율성 있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의 수원이 메말라간다고 느껴지면 과감히 바로 다음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자연의 수원에만 의지하고 있던 사람은 갑자기 그렇게 하려고 마음 먹어도 그리 쉽게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120 소설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이것은 필요한 자질이라기 보담은 오히려 전제조건이다. 재능의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그 양이나 질을 그 소유자가 컨트롤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120 슈베르트나 모차르트같이, 또는 어느 시인이나 록 싱어처럼 풍부한 재능을 단기간에 기세 좋게 소진하고, 드라마틱하게 요절해서 아름다운 전설이 되는 삶도 확실히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별로 참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121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 받는다면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곳에 쏟아 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 것도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나는 평소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아침나절에 집중적으로 일을 한다. 책상에 안장서 내가 쓰고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한다. 다른 일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121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할 수 있다고 해도, 일주일 동안 계속하니 피로에 지쳐버렸다고 해서는 긴 작품을 쓸 수 없다. 반 년이나 1, 2년간 매일의 집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소설가에게는, 적어도 장편 소설가에게는 요구된다.

 

122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이것은 앞서 쓴 근육이 훈련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면서,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123 장편소설을 쓴다고 하는 작업은 근본적으로 육체노동이라고 나는 인식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두뇌 노동이다. 그러나 한 권의 정리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오히려 육체노동에 가깝다.

 

124 자유로움과 활달함도 많은 경우 젊음을 잃어감에 따라 차츰 그 자연스러운 기운과 선명성을 잃어간다. 이전에는 가볍게 할 수 있었던 일이 어떤 연령대를 지나면 그만큼 간단하게 할 수 없게 된다.

중년 이후에 작가가 된 이들의 위대함.

 

125 한편 재능이 별로 풍부하지 않다고 할까, 평범한 작가들은 젊었을 때부터 자기 스스로 어떻게든 근력을 쌓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은 훈련에 의해서 집중력을 기르고, 지속력을 증진시켜 나간다. 그래서 그와 같은 자질을 어느 정도까지 재능의 대용품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견뎌나가는 사이에 자신 속에 감춰져 있던 진짜 재능과 만나기도 한다.

 

125 그와 같은 행운이 가능하게 된 것도 그 근원을 따지자면 깊은 구멍을 파 나갈 수 있을 만큼 확실한 근력을 훈련에 의해서 몸에 익혀왔기 때문이다. 만년에 재능을 꽃피운 작가들은 많든 적든 그러한 과정을 거쳐온 것이 아닐까?

 

126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

 

127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은 전에 내가 쓴 작품과는 적지 않게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127 아무튼 여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나 스스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다음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 어떤 것이 될지 기다리는 그것이 낙이기 때문이다.

 

 

3) 예술가는 퇴폐적이고 불건강한 게 아니냐는 선입견에 대해 그는 예술가가 다루는 분야가 불건강함을 필연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신체를 단련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149 내 생각이지만, 오랫동안 직업적으로 소설을 써나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위험한(어느 경우에는 목숨을 내놓은 경우가 되기도 한다.) 체내의 독소에 대항할 수 있는 자기 면역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강한 독소를 바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좀 더 힘 있는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자기 면역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오랜 기간에 걸쳐 유지해 나가려면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어딘가에서 그 에너지를 구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기초 체력 위에 그 에너지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존재할까?

 

150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해달라고 한다면, ‘기초 체력의 강화는 좀 더 큰 규모의 창조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일의 하나라도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은 해볼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 (적어도 하지 않는 쪽보다는 하는 쪽이 훨씬 좋다.)라고 믿고 있다.

 

150 참으로 불건전한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되도록 건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나의 행동 목표다. 다시 말하면 불건전한 영혼은 또 건전한 육체를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152 상상력과 그것을 지탱하는 육체 능력의 밸런스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185 앞에서도 썼지만,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듯이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성해 간다. 다시 고쳐 씀으로써 사색을 깊게 해나간다.

 

4) 역시나 이 책의 최대 묘미는 책을 읽으면 달리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70 매일 운동을 하고 있으면 자기의 적정 체중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45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3.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9 달리기에 관한 책을 한 권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럭저럭 10년 이상이나 지난 일이지만 지금까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고민만 하면서, 손도 대지 못한 채 헛되어 세월을 보냈다. ‘달리기라고 한마디로 말해서는 테마가 너무나 막연해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생각이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느끼고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그대로 꺼내 솔직하게 나 나름의 문장으로 써보자. 아무튼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겠다라고 결심하고, 2005년 여름부터 새로 단행본을 쓰는 형태로 조금씩 조금씩 쓰기 시작해서, 2006년 가을에 종지부를 찍었다. 일부의 글에는 과거에 쓴 글이 인용되어 있지만 거의 나의 지금의 기분을 그대로 기록했다. 달리기에 대해 정직하게 쓴다는 것은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직하게 쓰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으로 읽어주어도 무방하다.

 

18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1 내가 착실하게 달린다고 하는 말은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서 말한다면, 일주일에 6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6, 하루에 10킬로를 달린다는 것이다. 사실은 일주일에 7, 매일 10킬로를 달리면 좋겠지만, 비가 오는 날도 있고, 일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는 날도 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달리고 싶지 않은 날도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미리 일주일에 하루쯤은 쉬는 날을 정해놓는 것이다.

 

23 나는 1982년 가을,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23년 가까이 계속 달렸다. 거의 매일같이 조깅을 하고, 매년 적어도 한 번은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지금까지 스물 세 번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 밖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여려 장단거리 레이스에 참가했다.

 

24 장거리를 달리는 것은 원래의 성격에 잘 맞았으며, 달리고 있으면 그저 즐거웠다. 달리는 것은, 내가 이제까지의 인생을 사는 가운데 후천적으로 익혔던 몇 가지 습관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익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생각된다.

 

24 나는 팀경기에 적합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좋든 싫든 그것은 타고난 나의 성격인 것이다.

 

24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경기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한결같이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다.

 

25 그보다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 가에 더 관심이 쏠린다.

 

26 끝까지 달리고 나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혹은 프라이드와 비슷한 것)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장거리 러너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27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27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33 한 달에 260 킬로가 열심히 달린것이라고 한다면, 310 킬로는 성실하게 달린것이 될 터이다.

 

34 2개월 반 만에 7파운드가 주고, 배 둘레에 조금씩 붙기 시작한 군살도 빠졌다. 7파운드라고 3킬로그램 정도 된다. 정육점에 가서 3킬로그램의 고기를 사서 손에 들고 집까지 걸어 돌아오는 걸 상상해 보기 바란다.

 

34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혼자 있는 것을 별로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는 성격이다. 매일 1시간이나 2시간,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혼자 달리고 있어도 4시간이나 5시간을 혼자 책상에 앉아 묵묵히 글을 쓰고 있어도 별로 고통스럽다거나 지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35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항상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36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36 인간의 마음 속에는 진정한 공백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은 진공을 포용할 만큼 강하지 않고, 또 한결같지도 않다.

 

37 달리고 있을 때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37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하늘이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40 하나의 풍경 속에서 타인과 다른 모습을 파악하고, 타인과 다른 것을 느끼며, 타인과 다른 말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님으로써 나만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40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될 당연한 댓가인 것이다.

 

40 자진해서 고립과 단절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할 수 없는 여정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은 병에서 새어나온 산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녹여버린다. 그것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내벽을 끊임없이 자잘하게 상처내기도 한다.

41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까지 몰아감으로써,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의도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

 

41 누군가로부터 까닭없이(라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다.

 

41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 만큼,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분풀이를 하면 된다.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42 소설가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소설을 계속 써오면서, 동시에 누군가로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대상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고는 여간해서 생각하기 어렵다...나는 그런 일을 당하면 안도하게 된다, 라고까지 말할 생각은 없다. 나라고 해서 타인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44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누가 그런 것을 자랑할 수 있을까?) 나는 그다지 머리가 좋은 인간은 아니다. 살아있는 몸을 통해서만이, 손에 닿을 수 있는 재료를 통해야만, 사물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무엇을 한다고 해도, 일단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꿔놓아야만 비로소 납득을 할 수 있다. 지성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육체적인 인간인 것이다. 물론 조금쯤의 지성은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게 전혀 없었으면, 아무리 뭐래도 소설은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머릿속에서 순수한 이론이나 도리를 조립해서 살아가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다. 경험에 의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사물은 인식하는, 이른바 사변을 연료로 해서 전진하는 타입의 인간도 아니다. 그보다는 신체에 현실적인 짐을 지우고, 근육에 신음소리를(어떤 때는 비명을) 지르게 함으로써, 이해도의 눈금을 구체적으로 조금씩 높여가게 하여, 가까스로 납득하게 하는 타입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 나가면 사물의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품도 든다. 때로는 시간이 너무 걸려 가까스로 납득했을 때는 이미 때를 놓쳐버리게 된 경우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애당초의 나란 인간이기 때문에

 

45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배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55 가게를 경영하고 (장부를 적고, 주문할 물건을 점검하고, 종업원의 일정을 조정하고), 나 자신도 매일 카운터에 자리를 자복 칵테일이나 요리를 만들고, 한밤중에야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와 부엌 테이블에 앉아서 졸음이 밀려올 때까지 원고를 쓰는 생활을 3년 가까이 계속했다. 보통 사람의 두 배쯤 되는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56 일하는 짬짬이 30분이나 1시간, 잘게 저민 시간을 얻을 때마다 원고지와 마주하고, 피로한 몸으로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듯한 모양새로 펜을 들었기 때문에, 정신 상태도 여간해서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소설을 쓰다 보면, 어느 정도 재미있는 것, 혹은 새로운 경향의 소설을 쓸 수 있다고 해도 깊은 내용을 담은 무게 있는 소설은 쓸 수 없다. ..나 스스로도 이 정도라면하고 만족할 수 있는 소설을 한 권이라도 좋으니까 완성시키고 싶다 그러 욕심이 우러나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57 나는 가령 무슨 일이든 뭔가를 시작하면 그 일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정을 못 찾는 성격이다. 전력을 다해서 매달리고, 그래도 잘 되지 않으면 단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어중간하게 하다가 실패한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이다.

 

58 어쨌든 2년간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줘. 그래서 안된다면 또 다른 데서 작은 가게를 열면 되지 않겠어? 아직 젊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도 있잖아. 아내에게 말했다. 좋아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58 여하튼 나중은 없으니까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어 글을 썼다. 있지도 않은 힘까지 총동원했던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59 이 소설(양을 쫓는 모험)을 썼을 때 나 나름의 소설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보람을 느꼈다. 또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쓰고 싶은 만큼 책상에 앉아 매일 집중해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그리고 힘든 일인가)를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60 막 전업소설가가 된 내가 맨 처음 직면한 심각한 문제는 건강의 유지였다. 본래 주의하지 않으면 살이 찌는 체질이다. 지금까지는 매일매일 격렬한 육체노동을 해왔기 때문에 저체중의 안정 상태로 머물러 있었지만 아침부터 밤중까지 책상에 앉아서 원고를 쓰는 생활을 하게 되자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체중은 불어났다. 신경을 집중하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담배도 지나치게 피우게 되었다...이제부터의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갈 작정이라 체력을 지키면서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

 

61 더 달리고 싶다는 자연스런 욕구는 금연을 계속하기 위한 중요한 동기가 되었고, 금단현상을 극복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담배를 끊은 것은 이전 생활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상징 같은 것이었다.

 

63 전업 소설가가 되고 나서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64 이제 손님을 상대로 하는 장사는 그만두었으니까 이제부터는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되도록 만나지 말자, 그런 조촐한 사치가 적어도 당분간은 허용되어도 좋을 것이라고 나와 아내는 느끼고 있었다.

 

64 (가게를 운영하던) 그 시기는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종합적인 교육 기간 같은 것이었고, 나에게 있어 진정한 학교였다. 그러나 그런 생활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는 없었다. 학교라는 데는 들어가서 무언가를 배운 후에는 나와야 하는 곳이다.

 

64 그렇게 해서 아침 5시 전에 일어나 밤 10시 이전에 잔다고 하는, 간소하면서도 규칙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를 통틀어 가장 활동하기 좋은 시간대라는 것은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그것은 이른 아침의 몇 시간이다. 그 시간에 에너지를 집중해서 중요한 일을 끝내버린다. 그 뒤의 시간은 운동을 하거나 잡무를 처리하거나 그다지 집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들을 처리해 나간다. 해가 지면 느긋하게 지내며 더 이상 일은 하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며 편히 쉬면서 되도록 빨리 잠자리에 든다. ..이런 생활을 하고 있으면 나이트 라이프 같은 것은 없어져 버리고, 사람들과의 교류는 틀림없이 나빠진다.

 

65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65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특정한 누군가와의 사이라기보다 불특정 다수인독자와의사이에 구축되어야 할 것이었다. 내가 생활의 기반을 안정시키고 집필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조금이라도 질 높은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것을, 많은 독자들은 분명 환영해 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소설가로서의 나의 책무이며 최우선 사항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독자의 얼굴은 직접 볼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관념적인 인간관계다. 그러나 나는 일관되게 그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인 관계를 나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 정해서 인생을 보내왔다.

 

66 열 명 중 한 명이 단골이 되어준다면 경영은 이루어진다. 거꾸로 말하면 열 명 중 아홉 명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해도 그자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그 한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마음에 들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경영자는 명화관 자세와 철학 같은 것을 기치로 내걸고, 그것을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비바람을 견디며 유지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가게를 경영하면서 내가 몸소 체득한 것이다.

 

67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내 작품에 열성적인 독자가 많다는 점이었다. 열 명 중 한 명의 단골이 착실하게 늘어갔던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은 젊은 독자였다.) 나의 차기작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책이 나오면 손에 들고 읽어주었다. 그런 체제가 점점 형성되어 갔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적에도 매우 마음 편한 좋은 상황이었다. 선두 주자가 될 필요는 없다.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고 그것으로 보통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나로서는 부족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67 달리기 시작하고 한 동안은 그다지 긴 거리를 달릴 수는 없었다. 20분이나 기껏해야 30분 정도 였다고 생각한다.

 

68 스피드나 거리는 개의치 않고 되도록 쉬지 않고 매일 달리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달린다는 행위가 하루 세끼 식사나 수면이나 집안일이나 쓰는 일과 같이 생활 사이클 속에 흡수되어 갔다. 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스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69 이 무렵의 내 사진을 보면 러너의 몸매로서는 걸맞게 보이지 않는다. 러닝이 모자라서 필요한 근육이 붙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오랫동안 달리기를 계속하면 신체 근육의 배치가 완전히 달라져버린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달리면서 자신의 신체 구조가 나날이 변화를 겪고 있다는 감촉이 있었고, 그것은 참으로 흐뭇한 일이기도 했다.

 

70 매일 운동을 하고 있으면 자기의 적정 체중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몸을 가장 움직이기 쉬운 지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먹는 것도 조금씩 변해간다. 식사는 야채가 중심이 되고, 단백질은 주로 생선에서 취하게 되었다. 원래 육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경향이 더욱 뚜렷해져 갔다. 쌀밥을 적게 먹고 주량을 줄이고 천연조미료를 쓴다. 단 것은 원래 좋아하지 않는다.

 

70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살이 찌는 체질이다. ‘인생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을 어떤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도 손쉽게 얻는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런 살찌기 쉬운 체질로 태어났다는 것은 도리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즉 내 경우 체중이 불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 열심히 운동하고 식사에 유의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안된다. 골치 아픈 인생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면 신진대사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결과적으로 몸은 건강해진다. 노화도 어느 정도는 경감시킬 것이다.

 

71 그런 관점은 소설가라는 직업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말일지도 모른다. 타고날 때부터의 재능이 풍부한 소설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혹은 무엇을 해도) 자유자재로 소설을 쓸 수 있다.

 

72 그러나 나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타입은 아니다.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주위를 아무리 돌아보아도 나에게 샘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괭이를 손에 쥐고 부지런히 암반을 깨고 구멍을 깊이 뚫지 않으면 창작의 수원에 도달할 수 없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몸을 혹사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작품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일일이 새롭게 깊은 구멍을 파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활을 오랜 세월에 걸쳐 해가는 동안, 새로운 수맥을 찾아내고 단단한 암반에 구멍을 뚫어 나가는 일을 기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효율성 있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의 수원이 메말라간다고 느껴지면 과감히 바로 다음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자연의 수원에만 의지하고 있던 사람은 갑자기 그렇게 하려고 마음 먹어도 그리 쉽게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73 매일 계속해서 달린다고 하면 감탄하는 사람이 있다. “무척 의지가 강하시군요.” 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칭찬을 받으면 물론 기쁘다. 욕을 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계속해서 달린다는 것과 의지의 강약과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내가 이렇게 해서 20년 이상 계속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결국은 달리는 일이 성격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75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거야라는 어조로 당연하지 않습니까? 늘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따. 그때도 그것이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나느 세코씨 입에서 직접 그런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76 만원 전철과 회의의 광경을 떠올리면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의 의지를 북돋아 러닝슈즈의 끈을 고쳐 매고 다시 비교적 매끈하게 달려 나갈 수 있다. ‘그렇고 말고.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거야하고 생각하게 된다.

 

82 이러한 것도 모두 여름나기 대책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몸이 자연히 그렇게 해주세요.‘ 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몸을 움직이고 있으면 그런 소리를 듣기 쉽게 된다. 또 하나의 건강법은 낮잠을 자는 것이다. 30분쯤 지나면 눈이 떠진다. 눈이 떠졌을 때는 몸의 나른함이 사라지고 머리는 매우 맑아져 있다. 남유럽에서 말하는 시에스타다.

 

84 여기서 중요한 목적은 정도 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몸에 선고하는 일이다. ‘선고한다는 것은 물론 비유적 표현이고, 아무리 말로 선언했다고 해도 몸은 그렇게 쉽게 말을 듣지 않는다. 몸라는 것은 지극히 실무적인 시스템인 것이다. 시간을 들여 단속적, 구체적으로 고통을 주면 몸은 비로소 그 메시지를 인식하고 이해한다. 그 결과 주어진 운동량을 자진해서(라고는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수용하게 된다. 그 뒤에 우리는 운동량의 상한선을 조금씩 높여간다. 조금씩 조금씩 몸에 무리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87 실패의 원인은 명확했다. 달리기 양의 부족, 달리기 양의 부족, 달리기 양의 부족, 그것이 전부였다. 연습량의 절대적 부족에다 체중도 줄이지 못했다.

 

89 결과적으로는 달린다는 행위를 축으로한 개인사같은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95 “그래요? 그렇지만요. 이런 기획이란 건, 실제로 전부 끝까지 정해진 대로 완주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적당히 사진만 찍고 중간은 생략해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 정말 달리시 작정인가 보군요.”

 

107 수많은 42킬로를 달리고 나서 내가 느끼는 것은 처음 그리스에서 마라톤까지 달려갔던 그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마라톤을 할 때마다 대체로 여기에 쓴 것과 같은 심적 프로세스를 되풀이 하고 있다.

 

113 설사 절대적인 연습량은 줄이더라도, 휴식은 이틀 이상 계속하지 않는 것이 트레이닝 기간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규칙이다.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 동물과 비슷하다. 주의 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여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113 우리 근육은 무척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115 그와 함께 이와 같이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도 짬을 내서, 특별히 누군가로부터 청탁바은 건 아니지만, 부지런히 써나가고 있다. 말없고 근면한 마을의 대장장이처럼.

 

115 무슨 일이 있어도 달리는 것을 그만 둘 수는 없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이므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 둘 수는 없다.

 

116 진구가이엔은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도쿄 도심으로는 드물게 녹지가 풍부한 지역이다.

 

120 소설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이것은 필요한 자질이라기 보담은 오히려 전제조건이다. 재능의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그 양이나 질을 그 소유자가 컨트롤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120 슈베르트나 모차르트같이, 또는 어느 시인이나 록 싱어처럼 풍부한 재능을 단기간에 기세 좋게 소진하고, 드라마틱하게 요절해서 아름다운 전설이 되는 삶도 확실히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별로 참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121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 받는다면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곳에 쏟아 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 것도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나는 평소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아침나절에 집중적으로 일을 한다. 책상에 안장서 내가 쓰고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한다. 다른 일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121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할 수 있다고 해도, 일주일 동안 계속하니 피로에 지쳐버렸다고 해서는 긴 작품을 쓸 수 없다. 반 년이나 1, 2년간 매일의 집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소설가에게는, 적어도 장편 소설가에게는 요구된다.

 

122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이것은 앞서 쓴 근육이 훈련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면서,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한계치를 끌어올려 간다.

 

123 장편소설을 쓴다고 하는 작업은 근본적으로 육체노동이라고 나는 인식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두뇌 노동이다. 그러나 한 권의 정리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오히려 육체노동에 가깝다.

 

124 자유로움과 활달함도 많은 경우 젊음을 잃어감에 따라 차츰 그 자연스러운 기운과 선명성을 잃어간다. 이전에는 가볍게 할 수 있었던 일이 어떤 연령대를 지나면 그만큼 간단하게 할 수 없게 된다.

중년 이후에 작가가 된 이들의 위대함.

 

125 한편 재능이 별로 풍부하지 않다고 할까, 평범한 작가들은 젊었을 때부터 자기 스스로 어떻게든 근력을 쌓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은 훈련에 의해서 집중력을 기르고, 지속력을 증진시켜 나간다. 그래서 그와 같은 자질을 어느 정도까지 재능의 대용품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견뎌나가는 사이에 자신 속에 감춰져 있던 진짜 재능과 만나기도 한다.

 

125 그와 같은 행운이 가능하게 된 것도 그 근원을 따지자면 깊은 구멍을 파 나갈 수 있을 만큼 확실한 근력을 훈련에 의해서 몸에 익혀왔기 때문이다. 만년에 재능을 꽃피운 작가들은 많든 적든 그러한 과정을 거쳐온 것이 아닐까?

 

126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

 

127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은 전에 내가 쓴 작품과는 적지 앟게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127 아무튼 여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나 스스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다음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 어떤 것이 될지 기다리는 그것이 낙이기 때문이다.

 

128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신을 연소시켜 나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132 내가 상당히 완고하다는 것과 같을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 근육은 완고하다. 근육은 기억하고 인내한다. 어느 정도 향상도 된다. 그러나 타협은 하지 않는다. 융통성을 부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누구 뭐래도 이것이 나의 육체이다. 한계와 경향을 지닌 나의 육체인 것이다. 얼굴이나 재능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는 데가 있어도 달리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138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깊고 울창한 초록빛이 조금씩 그윽한 황금빛에 자리를 양보해가는 것이다.

 

138 할로윈이 끝나면 마치 유능한 세금 징수원처럼 민첩하고 말없이 그리고 확실하게 겨울이 찾아온다.

 

148 “무라카미씨처럼 매일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 그러다가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요?”

 

148 긴 세월에 걸쳐 그와 같은 예술가=불건전(퇴폐적) 이라는 도식이 형성되어 온 것 같다.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자주 이러한 스테레오 타입의-좋게 말하면 신화적인- 작가가 등장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이 불건전한 작업이라는 주장에 나는 기본적으로 찬성하고 싶다. 우리가 소설을 쓰려고 할 때, 다시 말해 문장을 사용해 이야기를 꾸며 나가려고 할 때는 인간 존재의 근본에 있는 독소와 가은 것이 좋든 싫든 추출되어 표면으로 나온다.

 

149 요컨대, 예술 행위라고 하는 것은 애당초 성립부터 불건전한 반사회적 요소를 내포한 것이다.

 

149 내 생각이지만, 오랫동안 직업적으로 소설을 써나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위험한(어느 경우에는 목숨을 내놓은 경우가 되기도 한다.) 체내의 독소에 대항할 수 있는 자기 면역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강한 독소를 바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좀 더 힘 있는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자기 면역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오랜 기간에 걸쳐 유지해 나가려면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어딘가에서 그 에너지를 구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기초 체력 위에 그 에너지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존재할까?

 

150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해달라고 한다면, ‘기초 체력의 강화는 좀 더 큰 규모의 창조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일의 하나라도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은 해볼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 (적어도 하지 않는 쪽보다는 하는 쪽이 훨씬 좋다.)라고 믿고 있다.

 

150 참으로 불건전한 것을 다루기 위해선느 사람들은 되도록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행동 목표다. 다시 말하면 불건전한 영혼은 또 건전한 육체를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151 젊었을 때 뛰어나게 아름답고 힘이 있는 작품을 썼던 작가가 어느 연령대에 접어들자 급격하게 피폐해져 가는 일이 있따. 문학적 조루 하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처럼 독특한 피로 현상을 보인다.

 

151 그 창작 에너지가 감퇴하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확실하다. 그것은 그 또는 그녀의 체력이 자기가 다루고 있는 독소와 싸워 이길 수 없었던 결과가 아닐까 하고 나는 추측한다.

 

152 상상력과 그것을 지탱하는 육체 능력의 밸런스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152 나는 되도록 그와 같은 위축 현상을 피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이라는 것은 훨씬 자발적이고 구심적인 것이다. 거기에는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활력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 소설을 쓰는 것은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고, 길고 격렬한 결투 끝에 정상에 오르는 작업이다. 자신에게 이기든지, 아니면 지든지 둘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다. 그같은 내적인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나는 언제나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165 42킬로 지점에 여기까지가 마라톤 풀코스 거리입니다.” 라는 표시가 있다. 콘크리트 위에 하얀 라인 한 줄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그 라인을 넘어섰을 때에는,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42킬로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리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하는 체험이었다. 즉 그곳이 나에게 있어서 지브롤터 해협(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해협. 15세기 콜롬버스가 이 해협을 지나 대서양 항해에 나서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다.) 인 것이다. 거기서부터 미지의 망망대해로 들어선다.

 

166 발이 부어오르기 시작해서 신발 사이즈를 한 치수 큰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166 이 곳에서 약 10분 정도 휴식을 취했지만, 그 사이 한 번도 앉지 않았다. 일단 앉아버리면 다시 일어서서 달리는 일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신경을 쓰고 주저앉지 않았다.

 

168 ‘자 달리자라고 마음은 재촉하는데, 다리는 다리대로 나와는 얼마간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169 55킬로 휴식 지점에서 75킬로 지점까지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다. 느슨하게 돌아가는 육류 다지는 기계 속을 빠져 넘어가는 쇠고기와 같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식은 있지만, 아무튼 몸 전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169 몸 전체의 각 부분이 번갈아가며 들고 일어나서 자신들의 통증을 소리 높여 호소했다. 비명을 올리고, 불평을 늘어놓고, 사정을 호소하고, 경고를 해댔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100킬로를 달린다는 것은 미지의 체험이었고 모두 각기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잘 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은 안내하며 묵묵히 달려 나갈 수 밖에 없다. 강한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려고 하는 급진적인 혁명의회를 당토이나 로베스피에르 같은 이들이 변론을 구사해서 설득하는 것처럼, 나는 신체의 각 부위를 열심히 설복한다. 격려하고 매달리고 치켜세우기도 하고 질책도 하며 고무도 한다....어째 됐든 이 고통에 찬 20킬로를 이를 악물고 견뎠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힘든 고비를 넘겼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타일렀다. 거의 그것만 생각하며 참았다.

 

171 내가 당면한 세계는 기껏해야 3미터 앞에서 끝나고 있다. 여기서부터 3미터 앞의 지점까지 다리를 들어올린다. 그것만이 나라고 하는 인간의, 아니 아니지, 나라고 하는 기계의 작은 존재 의의인 것이다.

 

172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걷지 않았다. 스트레칭을 하기 위한 휴식은 착실하게 취했다. 그러나 걷지는 않았다. 나는 걷기 위해서 이 레이스에 참가한 건 아니다. 달리기 위해 참가한 것이다. 그 때문에, 그 목적 하나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일부러 일본의 북녘 끝까지 날아온 것이다. 아무리 달리는 스피드가 떨어졌다 해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172 75킬로 지점에서 뭔가가 슥 빠져나갔다. ...그 뒤로는 아무것도 특별히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도록 하자라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타난 흐름을 자동적으로 어렵사리 계곡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거기에 몸을 맡겨놓고 있으면 어떤 힘이 나를 자연스럽게 앞으로 이끌어주었다.

 

173 한때는 들끓고 있던 근육의 혁명의회도, 지금의 상태에 대해서 일일이 시비를 거는 것을 포기한 듯 했다. 더 이상 누구도 테이블을 두드리지 않고, 아무도 컵을 던지지 않았다. 그들은 피로에 지친 모습을 역사적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혁명적 성과로 그저 묵묵히 수용하고 있었다.

 

175 이상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는 육체적인 고통 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지, 그런 것조차 머릿속에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나는 그 이상함을 이상함으로 느낄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는 달린다는 행위가 거의 형이상학적인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행위가 먼저 거기에 있고, 그 행위에 딸린 것 같은 존재로서 내가 있다. 나는 달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180 자랑스럽다고 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 나름의 성취감 같은 것이 이제야 생각난 듯이 가슴 속에 북받쳐 오른다. 그것은 위험스러운 일을 자진해서 맡아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 나갈 만한 힘이 내 안에도 아직 있었구나하는 개인적인 기쁨이며 안도감이었다.

 

181 울트라 마라톤의 체험이 나로 하여금 터득하게 한 여러 가지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었다. 내가 갖게 된 것은 어떤 종류의 정신적 허탈감이었다. 문득 떠오른 것은 러너스 블루라고나 할 만한 것이(감촉으로 말하면 그것은 블루는 아니고 희고 탁한 색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엷은 필름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울트라 마라톤을 달리고 난 뒤에 나는 달린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이전처럼 자연스런 열의를 가질 수 없게 되어버린 듯 했다.

 

185 앞에서도 썼지만,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듯이 나는 쓰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지어 나가면서 사물을 생각한다. 쓴다고 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고를 형성해 간다. 다시 고쳐 씀으로써 사색을 깊게 해나간다.

 

187 요절을 면한 사람에게는 그 특전으로서 확실하게 늙어간다고 하는 고마운 권리가 주어진다. 육체의 감퇴라고 하는 영예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187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187 한계를 알면서도 어떻게든 조금이도 오래 자신의 능력과 활력을 유지해가려 하는, 한 사람의 직업적인 소설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191 태도를 언제까지나 정하지 못한 사람처럼 비는 구질구질하게 계속 내리고, 마지막에는 마침내 작심한 듯 호우가 되었다.

 

200 골인하는 것, 걷지 않는 것, 그리고 레이스를 즐기는 것. 이 세 가지가 순서대로 내 목표다.

 

202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경험과 본능 뿐이다. 경험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뭔가를 더 생각해본들 소용없다. 이제는 당일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본능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은 딱 한 마디, ‘상상하라고 하는 것이다.

 

209 매일 1시간에서 2시간씩 싸이클

 

210 내가 사이클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도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도구의 손질이라는 것이 선천적으로 서툴다. ..거기에 덧붙여 공포심이 있다.

 

216 마라톤 풀코스에 대비해서 실시하는 장시간에 걸친 주행도 고독하지만, 혼자서 묵묵히 핸들을 붙잡고, 오로지 페달을 계속 밟는 것도 고독한 작업이다. 똑같은 일의 끝없는 되풀이다.

 

221 결과는 어땠는가? 솔직히 말해서 결과는 별로 좋은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마음 속으로 남몰래 기대하고 있었던 만큼의 좋은 것은 아니었다.

 

222 연습 스케줄은 순조롭게 소화했다. 그만큼 순조롭게 연습을 쌓고 레이스에 임한 것은 지금까지 아마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없는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또는 적당한 확신)가 있었다. 이제는 그저 쌓인 칩을 현금으로 바꾸면 될 뿐이라고.

 

224 약 반년 후인 20064월에 보스톤 마라톤을 달렸다. 나는 원칙적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것은 1년에 한 번으로 정해놓고 있지만 뉴욕에서의 결과가 아무래도 납득이 잘 가지 않는 까닭에 다시 한 번 달려보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연습의 양을 부쩍 떨어뜨렸다. 뉴욕에서 그만큼 공들여서 연습을 했는데도 예상했던 것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연습을 지나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225 자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기록은 뉴욕 때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227 다만 이것만은 꽤 자신있게 단언할 수 있다. ‘좋아, 이번에는 잘 달렸다라는 느낌이 회복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앞으로도 기죽지 않고 열심히 마라톤 풀코스를 계속 달릴 것이다. 라는 점이다. 신체가 나에게 허락하는 한 가령 꼬부랑 영감이 되어도, 가령 주위 사람들이 무라카미씨 이제 슬슬 달리는 것은 그만 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제 나이도 먹었고.” 라고 충고해도 아마도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달릴 것이다. 설령 기록이 더 떨어진다 해도 나는 아무튼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다는 목표를 향해서 예전과 같이 때로는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노력을 계속해갈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의 나의 성격인 것이다. 전갈이 쏘는 것처럼, 매미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연어가 태어난 강의로 돌아오는 것처럼, 원앙이 서로를 갈구하는 것처럼.

 

241 정해진 일을 정해진 수순으로 정해진 말을 써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는 있어도, 상대를 보고 상대의 능력이나 경향에 맞춰서 자신의 언어로 어떤 사물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다라고 할까?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242 그 코치는 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일단 보고 나서 수영의 목적을 물었다.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나가고 싶습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그렇다면 바다에서 자유형으로 장거리 수영을 하면 되는 거죠?“ 라고 그녀는 물었다. ”그렇습니다. 단거리 스피드는 필요 없습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쪽이 가르치기 쉽습니다.“

 

254 환희의 순간이다.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고, 예상 밖의 일이 발생했어도, 일단 골인해버리면 모든 것은 깨끗이 자취를 감추고 만다.

 

255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오늘 레이스를 내가 진심으로 즐겼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만한 기록은 아니다. 자잘한 실패도 많이 겪었다. 그렇지만 나 나름으로 전력을 다했고, 그 노력의 보상같은 것이 아직도 몸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257 장거리 레이스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많든 적든, 좋든 나쁘든 키워주고 만들어왔던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한 나는 앞으로도 장거리 레이스적인 것과 더불어 생활을 하고, 함께 나이를 먹어가게 될 것이다.

 

257 나는 올 겨울 세계의 어딘가에서 또 한 번 마라톤 풀코스 레이스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여름에는 또 어딘가에서 트라이애슬론 레이스에 도전하고 있을 것이다.

 

258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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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8 17:40:39 *.214.15.69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묘비명,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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