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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1일 20시 40분 등록

피터 드러커(2000), 프로페셔널의 조건,  청림출판. 

 

저자소개

 

피터 드러커에 대해서는 자서전에 정리한, 출판사의  소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피터 페르디난드 드러커(Peter Perdinand. Drucker)

1909 11 19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하였다. 빈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1933년 런던에 이주하여 경영평론가가 되었다. 1937년 영국 신문사의 재미통신원으로 도미하여 학자 겸 경영고문으로 활약하였다.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사라로렌스 대학, 베닝턴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1942년에 집필한 『산업인의 미래The Future of Industrial Man(독일에서는 『산업사회의 미래』로 번역)에서 20세기 사회의 발전 과정을 연구했다. 이 저서의 출간으로 드러커는 1943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던 제너럴모터스에서 2년간 경제 분석가로 일하게 되었다. 1946년 이 기간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법인의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고, 이로써 학문적 분과로서의 경영에 대한 초석을 마련했다. 그 후 드러커는 제너럴일렉트릭, 코카콜라, 시티코프, IBM, 인텔 등의 대기업과 수많은 중소기업, 정부 부처, 국내외의 비영리 단체를 위해 컨설턴트로서 활동했다. 1950년과 1971년 사이에는 뉴욕 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경영학 교수를 역임했고, 1969년에 이 대학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총장상을 받았다. 1971년부터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 경영대학원에서 사회학과 경영학을 가르쳤고, 미국과 벨기에, 일본, 스위스, 스페인, 체코 등지의 대학에서 다양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과 1985년 사이에는 클레어몬트 대학의 포모나 칼리지에서 극동 지역 예술을 가르쳤다.

피터 드러커는 사회, 경제, 정치, 경영의 모든 주제를 다룬 뛰어난 저술가로서 30여 권 이상의 저서를 발표했다. 그의 저서는 2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번역되었고 총판매 부수는 600만 권을 넘어섰다. 2002년에는 미국 시민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고 2005년 11월 11 9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현대를 대량생산원리에 입각한 고도산업사회로 보고, 그 속에서 기업의 본질과, 이를 바탕으로 한 경영관리의 방법을 전개하였다. 기업은 영리심의 존재와 관계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이윤은 손실회피·생산액증대를 위한 2대 지도원리로써 미래의 기업이 존속하기 위한 필요한 비용에 불과하다는 그의 이론은 이윤이나 비용에 대하여 새로운 견해를 보여 주었다. 제도파적 기업관(制度派的企業觀)에서 분권관리(分權管理)나 직장자치를 전개하는 등 미국에서는 크게 체계화된 경영관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평론가들은 드러커의 수많은 저서와 기사를 4가지 범주로 분류하는데 『경제적 인간의 최후 The End of Economic Man(1939), 『새로운 사회 The New Society(1950) 등과 같은 초기 작품은 산업사회의 특성을 논술한 것이다. 2기의 작품은 『법인의 개념 The Concept of the Corporation(1946), 『경영의 실제 The Practice of Management(1954) 등으로 현대의 기업경영에 대한 일반적 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후기 작품들인 제3기 작품은 『미국의 향후 20 America's Next Twenty Years(1957), 『단절의 시대 The Age of Discontimuity(1969), 『기술·경영·사회 Technology, Management and Society(1970) 등으로서 기술변화의 발전 등으로 인한 미래의 영향에 대해 예측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적인 회사경영 문제를 다룬 『험난한 시대의 경영 Managing in Turbulent Times(1980)과 『변화하는 경영진의 세계 The Changing World of the Executive(1982, 수필 모음집) 등이 있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들어온 글 귀들

 

전환의 시대

p27  지금 세계는 내가 예전에 역사의 경계라고 불렀던 전환기를 건너가고 있다. 

이 전환의 시기에 사회는 그 스스로를 수 십 년 동안에 걸쳐서 재정비한다. 세계를 보는 관점, 기본적 가치관, 사회적 정치적 구조, 예술을 보는 관점 그리고 주요한 사회기관들을 재조직하는 것이다.

 

1.      산업 혁명 (Industrial Revolution)  1780~1880

지식이 작업도구, 제조공정 그리고 제품에 적용되어 산업 혁명을 일으켰다.

2.      생산성 혁명 (Productivity Revolution) 1880~ 2 차 세계대전

지식이 작업에 적용되어 생산성 혁명을 일으켰다.

3.      경영 혁명 (Management Revolution) 1944년 미국의 제대군인 원호법 통과이후 ~

지식이 지식 그 자체에 적용되어 경영 혁명을 일으키는 과정이다.

 

P 33 지식은 빠른 속도로 자본 및 노동과 함께 중요한 하나의 생산 수단이 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지식 사회(knowledge society) 라고 부르는 것은 아직 시기 상조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아직까지 우리는 지식경제만을 겨우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P36 대부분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단 한 가지의 원인에 의해 발생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수많은 독립적인 사건들이 발전되고 합쳐져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P37 지식의 의미와 기능에 관해서는 플라톤 이후 지금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두 가지 이론밖에 없었다.  

소크라테스(socrates)는 지식의 유일한 기능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을 지적, 도덕적,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을 지식의 유일한 기능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지식의 목적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알게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식은 논리학이자 문법이며 수사학(修辭學)이었다. 나중에 이 세가지는 소위 삼학(三學, trivium) 이라 하여 중세 학문 연구의 핵심이 되었는데,  지금 미국에서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이라고 부르는 것 또는 독일인들이 일반교양(Allgemeine Bildung)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었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식에 관한  두 가지 이론이 있었다. 유학자들에게 있어 지식이란출세와 성공의 한 방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었다. 반면에 도가(道家)와 선승(禪僧)들에게 있어 지식이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으로서, 깨달음과 지혜에 이르는 길이었다.

지식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do) 을 의미하지 않았다 즉 지식은 실용성(utility)을 내포하고 있지 않았다. 실용성은 지식에는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실용성은 기능(skill) 그리스어로는 테크네 (techne ) 이다.

 

소크라테스나 프로타고라스에 있어서도 techne 가 필요한 것이긴 했지만 지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기능은 어떤 하나의 특수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지 일반적인 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컨대, 그리스에서 출발해 시실리로 가는 향해를 통해 선장이 습득한 지식은 다른 어떤 것에도 적용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더욱이 techne 를 배우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전문적 지식을 가진 어떤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는 도제 가 되거나 직접 경험해 보는 것뿐이었다.  Techne 는 말이나 글로는 설명해 줄 수 없는 것이어서 직접 하면서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1700년 경 또는 그 직후에까지 영국인들은 crafts(기능)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misteries(비법)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어떤 숙련된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그 기능을 비밀로 하겠다는 서약을 했기 때문이며, 또한 장인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해가면서 실제로 보고 배운 사람이 아니면 원칙적으로 그 기능에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700년 이후부터 시작하여 믿을 수 없을 만큼 짧은 기간인 50년동안에 기술(technology)dl qkfaudehldjTek. Dl 기술이라는 말은 장인이 가진 비밀스런 기능인 techne 와 지식을 조직하고 체계화하고 목적지향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뜻하는 logy

를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기능에서 기술로 넘어가는 거대한 변화는 디드로 (Denis Diderot, 1713~1784)와 달랑베르(Jean DAlembert, 1717~1783) 1751년에서 1772년 사이에 편집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인 [백과전서 Encyclopedie]에 기록되어 있다.

이 위대한 작업은 모든 장인의 지식을 종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시도를 가지고 행해졌으며, 도제가 아닌 사람들도 기술자(technologist)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는 것이었다.

백과전서가 기본적으로 의도한 바는 물질 세계에서 보다 효과적인 결과 도구와 제조공정과 제품 등등 를 얻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분석에 의한 생산과 지식의 목적지향적인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백과전서는 또한 어떤 기술로 특정 물건을 만드는 원리가 다른 물건을 만드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적 지식인과 장인들에게는 반아들여질 수 없는 금기였다.

초기의 기술학교와 백과전서는 1,000년이라는 오랜세월에 걸쳐 축적된 장인 기술의 비밀을 한데 묶어 정리하고 출간하였다. 이 작업은 경험을 지식으로 바꾸었고, 도제 제도 대신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은밀한 비밀처럼 전수되던 것을 공개적으로 전수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또한 지식의 응용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런 것들이 바로 지금까지 우리가 산업혁명이라고 불러왔던 것의 본질이다. 즉 기술에 의한 사회의 전환과 문명의 세계적인 확산 말이다.

 

새로운 기술은 생산의 집중화를 필요로 하였으며 이는 곧 동장의 등장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대규모의 동력을 필요로 하였는데 수력이든 증기력이든 간에 어쨌든 그 것은 분산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생산이 거의 순식간에 기능중심에서 기술중심으로 옮겨간 사실이었다.  그결과 이전까지는 늘 조연급에 머물러 있던 자본가들이 경제와 사회의 주역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P43 생산성의 혁명은 자본주의의 붕괴 즉 자본주의의 본래적 모순과 노동계층의 소외 와 착취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 그 자체를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250년 전 지식의 의미가 변화하면서 도구의 제조 공정과 제품에도 지식이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이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기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들이다. 생산성 혁명은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p44  1881년 미국의 프레드릭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1856~1915)는 최초로 지식을 작업(Work)의 연구와 분석에 적용하였으며, 또한 작업을 과학화하였다.

작업,즉 일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있었다. 사실상 모든 동물은 생존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오랫동안 서양에서는 일의 존엄성에 대해 논하는 것을 입에 발린 소리로밖에 간주하지 않았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일을 주제로 삼은 문학은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것이었다.

기록된 대부분의 역사를 통해 보건대, 어는 누구도 농부의 일에 대해 실질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없었다. 일이라는 것은 교육받은 사람이나 잘사는 사람 또는 권위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일이란 노예들에게나 해당되는것이었다. 작업자가 생산량을 좀더 늘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오랜시간 일하거나 더 열심히 일하는 것뿐이었다. 마르크스 역시 19세기의 다른 모든 경제학자들 또는 기술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테일러의 작업연구

지식의 역사에 있어서 테일러만큼 많은 영햐응 ㄹ미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한편 테일러만큼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한결같이 잘못 인용되고 잇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테일러가 악평을 들은 이유는 정확히 말하자면 지식을 작업연구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지적한 테일러의 가장 큰 죄는 세상에 숙련을 요하는 직업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테일러가 육체노동에는 다만 작업만 있을 뿐이며 모든 작업은 똑 같은 방법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의 노동조합 회원이 되려면 5년 내지 7년 동안의 도제 수업을 받아야 했지만 체계적인 훈련이나 작업연구는 없었다.

 

테일러가 주장한 대로 작업은 연구될 수 있고 분석될 수 있으며, 또한 작업은 일련의 간단하고도 반복적인 동작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 즉 작업에서의 각 동작은 하나의 옳은 방법으로 주어진 시간 내에 알맞은 도구를 사용하여 수행될 수 있다고 한 것 은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테일러는 또 공장에서의 구너한은 소유를 기준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되며, 지식의 우월성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전문경영인을 말한다.

그러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테일러의 주장, 즉 모든 육체적 작업은 그것이 숙련을 요하는 것이든 혹은 단순 작업이든 간에 지식을 적용함으로써 분석되고 재조직될 수 있다는 주장이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사실 장인들이 갖고 잇는 기능을 하나의 비법으로 간주한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었다.

1840년경에는 보시크(august Borsig, 1804~1854)라는 독일 사람 영국이 아닌 곳에서 증기 자동차를 만든 최초의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이 현대 독일에 여전히 남아는 독일식 도제 제도를 창안하였다. 이독일식 도제 제도란 학교에서 이론을 배운다음 ㄱ장의 장인 아래에서 실제적인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 이 제도는 독일의 산업 생산성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보시크의 도제 수업기간마저도 3년 내지 5년이나 되었다.

 

아시아국가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초고속 성장에 대한 성과는 테일러의 훈련방식에 돌려야만 한다.  작업에 대한 지식의 적용은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증대시켰다.

 

테일러의 훈련 방식을 도입한 국각들의 생산력은 거의 50배 가까이 증가하였는데 이놀라운 생산력 증대야말로 모든 선진 국각에서 생활 수준과 삶의 질을 월등히 향상시킬 수 있었던 근원이었다.

 

지난 백년간의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선진 경제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지식을 작업에 적용한 테일러의 연구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쓴ㄴ 사람이 너무나도 적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새로운 계급, 즉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지식 근로자의 생산성은 오직 자식을 작업에 적용함으로써만 향상시킬 수 있다. 기계도 자본도 그 역할을 대신하지 못한다.  만일 기계와 자본만을 작업에 적용한다면, 그것들은 생산성을 향상 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P 55  육체노동근로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이제는 몸을 이용해 일하지 않는 비육체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으며 이는 지식을 (또 다른)지식에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규교육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경제 활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정말이지 지식은 오늘날 의미 있는 유일한 자원이다. 이제 전통적인 생산요소들 토지 노동, 자본- 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것들은 얼마든지 획득할 수 있는 것들이며 더구나 지식이 있다면 아주 쉽게 얻을 수도 이쓴ㄴ 것이다. 새로운 의미의 지식은 실용성으로서의 지식이고,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지식이다.

 

지금 지식은 지식에 적용되고 있다..  이는 지식의 전환에 잇어 세번째 단계인데 이것이 어쩌면 최종 단계가 될는지도 모른다.

 

보다 많은 결과를 얻기 위해 지식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자식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사실상 우리가 말하는 경영이다. 지금은 어떤 새로운 지식이 필요한가, 그 지식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가, 그 지식을 효과거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규정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도 목적지향적으로 지식이 적용되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식이 체계적인 혁신에 적용되고 있다.

 

지식의 의미에 있어서 이러한 역동적인 세 번째 변화하는 경영혁명 (Management Revolution) 으로 표현할 수 있다. 지식이 역사에서 이전의 두 단계 즉 지식을 도구와 제조 공정 그리고 제품에 적용한 첫 번째 단계 그리고 지식을 인간의 작업에 적용한 두 번째 단계와 마찬가지로 경영혁명은 전세계 휘몰아쳤다. 산업 혁명이 전세계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중엽까지 무려 100년이나 걸렸다. 생산성 혁명은 1880년부터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70년이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경영 혁명이 전세계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1945년부터 1990년까지의 채 50년도 안 되는 시간만을 필요로 했을 뿐이다.

 

경영이란 무엇인가 ?

 

경영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의 폭도 더욱 넓어졌다.

초기(1945)에 경영자란 부하직원들의 과업에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정의되고 있다.

다른 말로 경영자란 보스(boss,군림자 )를 의미했고 경영은 지위와 권력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이 경영자나 경영에 대해 말할 때 아직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하나의 정의일 것이다.

 

그러나 1950년대 초가 되자 경영자의 정의가 다른 사람들의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지금 우리는 이 정의 또한 너무나 편협한 것임을 알고 잇따. 경영자에 대한 올바른 정의는

지식의 적용과 성과에 책임을 지는 (responsible for application and performance of knowledge)사람 이다.

 

토지와 노동과 자본 역시 중요한 생산 요소들이다. 그것들 없이 지식만으로는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으며 아무런 성과도 낼 수 없다. 그러나 지식에 지식을 적용하는 효괒거인 경영만 있으면 다른 자원들은 언제나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지식이 하나의 자원이 아니라 자원 그 자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바로 지금의 사회를 자본주의 이후 사회로 규정지을 수 있게 한다. 또한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원동력과 정치체계를 창조하고 있다.

 

일반지식에서 전문지식으로

 

지식이 사회의 중심이 되어가는 세 단계 산업혁명, 생산성 혁명, 그리고 경영 혁명 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바로 지식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이다.

우리는 일차원적인 지식에서 다차원적인 지식으로 옮아왔다.

 

전통적인 지식은 일반적인 지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지식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매우 전문화된 지식이다. 과거에 우리는 결코 지식인(man of knowledge) 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교육받은 사람(educated person) 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여기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란 두루 넓게 아는 교양인을 의미했다. 그들은 많은 것에 대해 글로 쓰고 마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고 있었고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하나의 일을 몸소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철저하게 알고 있지는 못했다.

 

오늘날의 대학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교육받은 사람은 전혀 교육받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학문 애호가 정도로 낮은 평가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지식의 목적은 자기자신을 아는 것이고 그리고 자기 개발을 꾀하는 것이었다.  지식의 목적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말로 잘 표현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소위 교양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초가 된 중세의 삼학은 문법과 논리학과 수사학이었다. 그것은 무리가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이었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도구들이 아니었다.

수천년 동안 동양의 학문과 문화를 지배했던 지식에 대한 두 개념인 도가의 개념이나 유학의 개념도 이와 비슷하다.

 전자는 자기를 깨닫는 데에, 후자는 중세에서의 삼학과 마찬가지로 중국식의 문법 논리학, 그리고 수사학에 초점을 두었다.

 

지금 우리가 지식으로 간주하고 있는 지식은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우리가 지식이라고 말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행동을 하는 데 효과가 있는 정보이고, 결과에 초점을 맞춘 정보이다.  그 결과들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바깥에 드러난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나타나며, 혹은 지식 그 자체의 진보로도 나타난다.

 

어떤 일을 성취해 내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이다.

이것이 바로 전통적인 지식-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도 교양교육으로 남아있는- 이 그 지위를 techne  또는 기능에 물려주게 된 이유이다.

과거의 기능은 배울 수도 없었고 가르칠 수 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일반적인 원리를 전혀 내포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구체적이었고 전문화되었다. 그것은 학습보다는 경험을 통해 학교 교육보다는 훈련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러한 전문화된 지식을 과거처럼 기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체계적인 전문지식을 원리라고 부른다. 이것은 지식의 역사에 기록된 그 어떤 것에도 못지 않은 커다란 변화이다. 

체계화된 원리는 기능을 방법론 예를 들면 공학이라든가 과학적 계량적 방법 혹은 외과 의사들의   감별진단법등- 으로 전환한다. 이런 각각의 방법론들은 개별적인 경험을 시스템으로 전환한다.  방법론은 단순한 이야기거리를 정보로 바꾸어놓는다. 방법론은 기능을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일반 지식에서 전문 지식으로의 이동은 지식으로 하여금 새로운 사회를 창조할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해 주었다.

 

이 새로운 사회는 전문화된 지식에 기초하여 건설되어야 하며,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이 바로 지식근로자들에게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이것은 근본적인 물음들을 제기한다. 가치, 비전, 신념, 그리고 사회를 한데 묶어주는 것들과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은 또한 중요한 그리고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지식사회에서 지식의 모습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P327 지식은 돈처럼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다. 지식은 책이나 자료은행 또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은 오직 정보만을 담고 있다.

 

지식은 언제나 사람 속에 구현되어 있고 사람이 갖고 다니며, 사람에 의해 창조되고 증대되거나 개선된다.

 

지식은 사람에 의해 적용되고 사람에 의해서 가르쳐지고 전달되며, 사람에 따라서 잘 이용되거나 잘못 사용되어지곤 한다.

 

P328 지식사회 이전의 모든 사회에 있어서 교육받은 사람은 한 갓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식사회에서는 교육받은 사람이 사회의 표상이자 상징이며, 또한 사회의 표준이다. 교육받은 사람은 사회학자들의 용어로 표현하면 사회적 원형(archetype) 이들에 의해 사회의 실행능력이 결정된다.

이들에 의해 사회적 가치, 신념, 헌신이 구체화된다.  만약 중세 초기에 있어서 봉건제도하의 기사가 가장 분명한 사회적 중심이었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르주아 가 사회의 중심이었다면 지식이 핵심 자원이되는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있어서는 교육받은 사람이 그 중심이 될 것이다.

 

P329 교육받은 사람이 존재해야만 하는가?  교육받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 교육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후기 마르크스 주의자들과 급전적 여권 운동가들은  그리고 다른 여러 반대파들로 뒤섞인 무리들은 교육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신허무주의자의 입장, 즉 해체주의자(deconstrutionist)들이다.

이 입장에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은 교육받은 사람이란 성, 인종 민족별 그룹으로만 존재할 뿐이며, 그 그룹의 교유한 문화를 익히고 그 그룹에서 필요로 하는 독특한 교육을 받은 사람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반 전통주의자들은 주로 인도주의(humanity)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히틀러의 아리안 물리학, 스탈린의 마르크스주의 유전학 또는 모택동의 공산주의 심리학 에 대해서는 그다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반 전통주의자들의 주장은 전체주의자의 주장을 상기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는 같다. 교육받은 사람이라는 개념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은 보편성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으로 표현되든 그것은 관계가 없다. 서유럽에서는 교육받은 사람 이라고 하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문인 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이 말이다.

P330  반대 진영- 그들은 인문주의자(humanists)라고 불릴 수 있는데- 에 있는 사람들 또한 오늘날 미국의 교육제도를 비판하는데 그 논리는 정반대이다. 그들은 현재 미국의 교육 제도가 보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인문주의자들은 19세기로의 회귀 즉 교양 과목, 고전문학, 혹은 독일식의 교양인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그들은 아직까지는 50년 전에 시카고 대학에서 허친스(Robert Hutchins)와 애들러(Mortimer Adler)가 주장한 것, 즉 지식은 전적으로 수많은 위대한 책들(great books)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은 허친스와 애들러의 현대 이전으로의 복귀의 직계 후손들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반 전통주의자와 인문주의자 양쪽 모두 틀렸다.

 

지식사회는 교육받은 사람에 대한 보편적인 개념을 가져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지식 사회는 전문 지식의 사회이고 또한 범세계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지식 사회에 있어서는 통화, 경제 직업, 기술, 중심 이슈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보가 세계적이다. 자본주의 이후 사회는 통합의 힘을 필요로 한다.

 

지식사회는 해체주의자나 급진적 여권 운동가, 비서구주의자가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 즉 보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P331 지식사회는 인문주의자들이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유형의 교육받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인류의 유산인 위대한 전통, 지혜, 아름다움 그리고 지식의 말살을 요구하는 반대파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그들의 지적은 정당하다 그러나 교육받은 사람은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갖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기 위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잇는 지식을 항상 갖고 다닐 수 있어야 하다.  그런데 인문주의자들의 주장에는 그러한 능력을 갖출 채비가 없을 뿐만 아니라 관심조차 없다. 아무리 위대한 전통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현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라면 먼지 쌓인 골동품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교양 교육은 위기에 처해 있다. 왜냐하면 그 것들은 가장 우수한 자들마저도 우둔하고   저속하고 돈벌이를 추구하는 현실로 떠나버리게 하는 유리알 유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의 세대들에게 교양교육은 그들의 인생에서 언제까지나 의미 있는 것으로 남아 있었고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생들은 졸업하고 명 년이 지나지 않아 곧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배웠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흥미를 갖고 있는 그리고 내가 되고 싶어 하는 어떤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들은 명문대학을 들어가기를 원하지만 막상 그들 자신의 삶에서는 교양 교육을 거부한다 그들은 인문주의적 교육을 받은 사람을 거부한다. 인문주의적 교육은 그들로 하여금 현실을 통달하게 하는 것은 고사하고 현실을 이해시켜 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이후 사회(지식사회)는 교육 받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과거의 어떤 사회가 필요로 했던 것보다 더욱 많이 필요로 한다.

 

과거의 위대한 유산에 접근하는 것은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과거의 유산은 서구 문명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받은 사람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세계의 문화와 전통에 대해서도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교육받은 사람은 또한 인문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것 만큼이나 책을 좋아해야 한다. 교육받은 사람은 분석하는 능력 못지 않게 훈련된 지각 능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P334  미래의 교육받은 사람은 글로벌화된 세상, 즉 서구화된 세계에서 살아갈 준비를 해야만 한다. 또한 교육받은 사람은 더욱더 민족주의화된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비전과 시야 그리고 정보에 있어서 그들은 세계의 시민이 되어야만 한다. 또한 교육받은 사람은 자신이 뿌리 내리고 있는 지역에서 영양분을 흡수하여 지역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

 

지식사회와 조직의 사회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지식 사회임과 동시에 조직의 사회이다.

둘은 서로 의존하기도 하지만 개념 및 견해 혹은 가치 등에 있어서는 차이를 드러낸다.

교육받은 사람은 두 개의 문화 속에서 동시에 일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언어와 사상에 초점을 두는 지식인(intellectual)의 문화 그리고 사람과 일에 초점을 두는 경영자(manager)의 문화 말이다.

 

지식인들은 조직을 하나의 도구로 인식한다. 조직은 지식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전문화된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경영자들은 지식을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양쪽 모두 옳다. 그것들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모순관계가 아닌 사회보완관계에 있다.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과학자가 연구관리자를 필요로 한 만큼 연구관리자는 과학자를 필요로 한다.

 

조직 내에서 경영자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지식인들은 비록 자기 자신의 일을 하기는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해 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지식인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경영자들은 무능하고 관료주의적인 조직인(Organization Man)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경영자와 지식인이 서로 균형을 이루게 되면 그 조직에서는 창조와 질서 그리고 성취와 사명의 달성이 가능해진다.

 

테크네와 교육받은 사람들

 

19세기의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있어 techne 들은 지식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이미 대학에서 가르쳤고 또 그것들은 원리가 되었다.  원리의 실천자들은 상인 또는 기능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전문가들 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교양 과목의 일부분이 아니었으므로 지식으로 취급되지는 않았다.

 

교육받은 것으로 간주된 대부분의 사람들-변호사, 의사, 기술자, 지질학자, 기업가 등- 은 하나의 techne 를 실천하면서 살아갔다.  그러나 그들의 일과 직업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지 인생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Techne 의 실천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이에 관해서 혹은 자신이 알고 있는 원리들에 관해서 밖에서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장바닥에서나 하는 애깃거리였다. 독일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의 전문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자기 전문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빈정거렸다. 프랑스에서는 그런 사람은 훨씬 더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촌뜨기 혹은 따분한 사람으로 간주되어 즉시 사교모임의 초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techne 들은 많은 분야에서 지식이 되었다. 따라서 techne 들은 지식 에 통합되어야만 하고 교육받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의 일부분이 되어야만 한다.

대학시절에는 교양과목을 즐겁게 배웠던 사람들이 졸업한 뒤 몇 년이 지나면 교양과목에 희의를 느낀다. 그들은 현실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교양과목에 실망하고 심지어는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느끼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잇다. 지식들을 지식의 세계(universe of knowledge)로 통합시키지 못하는 교양 교육은 교양이 아니다. 그것들은 첫 번째 과업에서 실패했다 즉 문명이 존재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인 대화의 세계 즉 상호이해를 이끌어내는 일에 실패했다. 교양 교육은 지식을 통합하는 대신 분열의 원인을 제공했다.

 

우리는 많은 지식에 능통한 만능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더욱 더 전문화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지식 사회에서 교육받은 사람을 정의하는 것 은 다양한 지식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지식은 무엇에 관한 지식인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지식인가? 그 지식의 주된 관심과 이론들은 무엇인가?  그 지식이 제공하는 중요한 새로운 통찰력은 무엇인가? 그 지식에서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분야는 무엇이며,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지식에서의 도전은 무엇인가?

 

전문지식에서 일반지식으로

 

p338 모든 전문화된 지식들이 제공하는 중요한 새로운 통찰력은 더욱 전문적으로 분리된 다른 전문 지식으로부터 나올 뿐만 아니라 그 전문 지식마저도 또 다른 지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자신과 자신의 전문 분야 두 가지 모두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잡지나 영화 또는 텔레비전과 같은 언론 매체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직접 그 일을 할 수는 없다. 다른 어떤 종류의 대중화 수단도 그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전문분야의 지식은 잇는 그대로 이해되어야 한다.(실천적 지식, 절차지식) 즉 진지하고 엄격하고 요구되는 그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여러 지식 분야의 지도자들, 톡히 종신 교수직에 있는 학식 있는 교수들이 자기 분야의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킬 책임을 져야 하고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어려운 과업을 기꺼이 감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p339 지식 사회에는 지식들의 여왕이란 것이 없다. 모든 지식들은 똑같이 가치가 있으며, 그리고 중세의 성인이자 철학자였던 성 보나벤투라(St, Bonaventura, 1221~1274) 의 말처럼 똑같이 진리로 안내한다. 그러나 전문 지식들을 진리 즉 일반 지식을 향한 기로 만드는 것은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책임이다. 그들 모두는 지식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겨우 시작하고 있는 전환의 시대에 지식사회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p340 그러나 우리는 지금으로서도 한 가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다. 바로 새로운 시회에서의 가장 커다란 변화는 지식의 형식, 내용, 의미, 책임의 변화 그리고 교육받은 사람의 의미의 변화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p341 전문가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수성(cxcellence)을 발휘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우수한 능력을 갖추는 것은 스스로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전문가적 기량은 업무의 수준을 월등히 높이는 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업무를 수행하는 개인의 성장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craftsman ship)을 갖추지 모사하면, 업무를 잘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으로서 자기 성장도 이룩하지 못한다.

 

p342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있어 자기계발(self development)은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의 사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자신의 일을 완성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신념 및 헌신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자신의 성장에 책임을 져라

 

개인의 성장에 잇어서 가장 큰 책임을 지는 사람은 개인 자신이다. 상사가 아니다. 조직 내의 모든 개인은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조직과 나 자신 모두에게 남다른 성과가 되게 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

 

p343 본래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마도 그것은 어떤 절차상의 문제일 것이다. 내가 보다 나은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 일하는 방식을 바꿀 수는 없을까?

 

사람은 오직 자신만이 스스로를 효과적인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 - 그 어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 줄 수 없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해 져야 할 첫 번째 책임은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라믕ㄴ 오직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함으로써만 일을 할 수 있다.

 

높은 성과를 올리는 것만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협력을 이끌어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바보 같은 상관, 어리석은 경영진, 그리고 귀찮은 부하직원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없다. 자신이 의존하는 사람 혹은 자신에게 의존하는 사람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자신의 임무이자 자신의 책임이다.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무엇이 방해가 되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꿀 필요가 있는지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신중하고도 조직적인 방법으로 노력을 집주함으로써 자기 개발을 위한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단지 자신의 비전을 조직의 그것과 일치시키는 단계를 뛰어넘어 개인의 비전을 성취하는 단계로 말이다.  

 

p344 중요한 것은 직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컴퓨터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10년 동안이나 노력했는데, 이제는 컴퓨터 대신 인간관계학에 대해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가장 우선 순위에 놓음으로써 우리는 우리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배워야만 하는가 그리고 남다른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좋은 성과를 올린 사람에게는 월급을 올려 줍니다. 그러나 승진의 문제는 다릅니다.우리는 처음 자기가 맡은 직무보다 더 큰 직무를 뒷 사람에게 넘겨 줄 수 있는 사람만이 승진시킵니다.

 

나 자신에게 있어 자기 성장이란  스스로 역량을 향상 시켜 나가는 것과 한 개인으로서 더 크고 비중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부과하는  책임의식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시람은 자기 자신을 보다 크고 중요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허영도 자만심도 아니다 그것은 자아 존중이고  또한 자신감이다. 그것은 한번 몸에 베이면 그 사람으로부터 빼앗아 갈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내적인 것인 동시에 외적인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 변신을 꾀하라

 

p345 개인으로서 그리고 전문가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종류의 조직에서 올바른 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나는 한 인간으로서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다.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큰 기업에서 가장 일을 잘할지, 아니면 작은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더 나을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다른 사라모가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혹은 혼자서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자신이 모험을 필요로 하는 환경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을 지 혹은 그 반대인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자신이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려면 마감에 대한 압박감이 필요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자신이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뜸들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등에 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첫 직장은 복권과 같다. 처음부터 자기 자신에게 잘 들어맞는 올바른 직장을 만날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 자신이 어디에 속해야 할지 그리고 어디에서 경력을 쌓아야 할지를 파악하려면 대체로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사람의 기질과 개성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기질과 개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그것들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훈련을 통해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347 변화는 큰 변화든 작은 변화든 간에 는 스스로를 재충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들이 과거보다 상당히 더 오래 살고 또 그만큼 더 일하게 됨에 따라,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p348-239 편안하고 일상적인 업무에 빠져 있을 때가 바로 뭔가 다른 것을 하도록 스스로 압력을 가해야 할 시기이다. 피곤하다는 말은 대체로 싫증을 느끼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일하러 갈 맘이 전혀 없는데도 아침마다 억지로 일어나 직장에 가는 것보다 사람을 더 피곤하게 하는 것은 없다.

 

우리가 수행하는 대부분의 일은 반복적이다. 따라서 일하는 재미는 일 자체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일의 결과에서 찾아야 한다. 비록 현재의 일에 얽매여 잇을 때라도 시각은 항상 높은 곳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만일 싫증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과를 산출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오로지 의미 없는 현실에만 매달려 있는 셈이다.

업무 속에 학습 자체를 구축하고 그리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대를 설정하는 조직적 피드백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 가운데 핵심적인 활동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생에서도 그리고 그런 활동을 수행할 때 결과적으로 성취하기를 기대하는것을 기록해 둔다. 그런 다음 9개월 혹은 1년이 지난 후, 자신이 기대했던 바와 실제로 성취한 것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피드백 과정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잘했는지,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과 지식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의 (가장 중요한 발견이 될지도 모를)  나쁜 습관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혹은 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결과를 산출할 수 있었는데 너무 일찍 포기해 버린 것들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장 흔한 나쁜 습관이다.

 

학습은 오직 자신의 활동 범위 내에만 한정시켜서는 결코 안 된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몸담고 있는 다른 사람들, 자신의 주변에 잇는 사람들 그리고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봐야 한다.

그들이 진정 잘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다시 말해 , 그들이 어떻게 성공했는가를 배워야 한다. 우리 모두가 어려워하는 일을 다른 누군가가 잘해내고 있다면 우리는 그로부터 그 비결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업무와 경력을 관리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자신이 어디에 가장 잘 어울리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그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조직의 과업에 공헌함으로써 자신의 수준을 높이는 것도 역시 그 자신에게 달려 있다. 또한 스스로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 역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p350 성과를 올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타고난 재능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목표 달성 능력은 행동 습관의 문제이고, 몇몇 기본적인 규칙의 준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이 아직 이런 것에 서툴다. 그것은 조직 자체가 워낙 최근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일하는 조직에서의 목표 달성을 위한 규칙은 주로 혼자서 일을 했던 과거의 수공업 공장에서의 그것과는 다르다.  혼자 하는 일은 작업 그 자체가 작업 수행자를 조직하는 반면, 조직에서는 작업 수행자가 작업을 조직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무엇이 수행해야 할 올바른 일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주어진 일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능률(efficiency) 은 수행하고 있는 일이 올바른 일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어떤 일에 집중할지를, 다시 말해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둘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각자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야 한다. 자신이 존경하는 성공한 상사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은 목표를 달성하는 지름길이 아니다 목표 달성에 관한 책들에 나오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해서도 안 된다. 오직 자신의 강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때에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마치 지문처럼, 다른 누구와도 뚜렷이 구별되는 자기 자신만의 강점 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p351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성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하기 싫어하는 것과 잘 못하는 것 사이에는 더욱 뚜렷한 상관 관계가 잇다. 요컨대 우리는 하기 싫은 일은 가능한 한 빨리 손을 떼려고 하거나, 조금 노력하는 척하다가 아예 미루고, 그러다가 영원히 미루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는 연주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하루에 4시간씩 연습했고 또 그것을 즐겼다. 그러나 바이올린 연주는 그의 강점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수학 문제 푸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오직 수학에서만 천재였다.

 

스스로 거듭나기

 

p351-352 자신이 수행하고 잇는 일로부터 자극을 제공받을 수 잇는 경우는 스스로를 혁신하기 위해 노력할 때이다. 지금까지 하던 일에 직무 충실을 기하기 위해 계속해서 재미있는 일을 만들고, 도전을 하고 그리고 변혁을 시도할 때이다.  가끔씩 자기 자신과 자신의 업무 두 가지 모두를 새로운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런 역량을 증대시킨다.

 

p352 지금까지 하던 일을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까지 하던 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거듭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찾아보고 그 성공 방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성공의 실마리는 눈여겨 보지 않는다.

 

p352-353 스스로 거듭나기 프로세스를 계속 유지해 줄 수 있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강력한 도구는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가르치는 것, 조직 밖으로 나가보는 것, 낙은 직급에서 봉사해 보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뛰어나게 잘한 일에 대해 동료 직원들 앞에서 어떻게 그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기회를 갖게 되면 듣는 사람들도 배우지만 그 자시도 배울 수 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이 아닌 다른 조직에 가서 시간을 내어 도와주는 것 역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최고 경영자들로 하여금 조직의 사명 달성이라는 현실을 잊지 않도록 하는 가장 오래된 기법들 가운데 하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고객 서비스를 수행하는 조직의 최 일선 부문에서 일해보는 것이다.

 

p353-354  자기 자신을 스스로 혁신하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보건대, 그들은 자신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들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다. 어떤 점에서 보면, 그들은 자기중심적이고 그리고 우주 삼라만상을 마치 자신의 성장을 위한 영양분으로 간주한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p354 너희들은 죽은 뒤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느냐? 

나는 너희들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50세가 될 때까지도 여전히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봐야 할거야

 

이 질문은 우리 각자를 스스로 거듭나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준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즉 자신이 앞으로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보도록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p363 상업 역명은 또한 가족 관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가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의 생산 단위로 존재해 왔었다. 농장이나 혹은 수공업을 하는 장인의 공방에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일했다. 공장은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노동력과 노동을 가정 밖으로 끌어내 작업장으로 이동시켰고 다른 가족 구성원은 집에 남게 됐다.

 

성인근로자의 배우자가 주로 집에 남았고, 특히 산업 혁명의 초창기에는 미성년 근로자를 고용하는 공장이 등장하면서 부모가 집에 남았다.

 

p364 산업혁명은 소비자와 소비재 둘 다를 창출했다. 그러나 제품 그 자체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들이었다. 다만 공자에서 생산된 제품들은 전통적 제품들과는 달리 모양이 똑같고, 결함이 훨씬 적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p365 철도는 산업혁명을 일으킨 진정한 혁명 요소였다. 왜냐하면 철도가 새로운 경제의 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심리적 지리(mental geography)를 급속히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p367 정보 혁명은 수많은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행하던 프로세스를 정형화(routinization) 하였다.

 

프로세스 그 자체는 조금도 달라진 게 없지만 프로세스가 차츰 정형화되면서 시간과 비용은 엄청나게 절감되고 있다.

 

컴퓨터는 (네 살 짜리 어린아이) 그들의 장난감인 동시에 학습도구이다.

 

p368 20세기 학교의 가르치는 방법과 20세기 말 학생들의 배우는 방법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인쇄기와 활판 인쇄술의 발명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뒤 16세기의 대학 교육에도 이와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전자 상거래는 새롭고도 보기 드문 호황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또한 경제와 사회 그리고 정치를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p369 철도가 창조한 새로운 심리적 지리로 인해 인류는 거리상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었다. 전자 상거래가 창조한 심리적 지리는 아예 멀다 라는 개념 자체를 사라지게 했다. 이제 세상에는 단 하나의 경제 그리고 단 하나의 시장만 존재하게 된 것이다.

 

전자 상거래가 초래한 하나의 결과는 모든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든 것이다. 비록 그 기업이 오직 국내 시장 또는 어느 특정 지역에서만 제품을 제작하거나 판매하는 기업이라 해도 말이다. 이제 경쟁은 더 이상 국내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이지, 경쟁은 국경을 모른다. 모든 회사는 경영방식에 있어서는 초국적으로 되어야만 한다.

 

전자상거래에서는 지역회사도 특정 지역도 없다. 어디에서 제작할지, 어디에서 판매할지 그리고 어떻게 판매할지는 사업상 중요한 결정 사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p372 전자 상거래는 고객의 구매 방법뿐만 아니라 구매 상품 자체를 바꾸고 있다. 전자상거래는 소비자 행동, 저축 성향 그리고 산업구조까지 바꾸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경제 전체를 바꾸고 있다.

 

p377 새로운 산업들은 산업 혁명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산업 혁명의 정신적 자손들이었다.

 

(영국이 강대국의 지위를 잃고 뒤쳐지게 된)  주된 이유가 경제적인 것도 기술적인 것도 아니라는 주장은 다들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주된 이유는 사회거인 것이었다.

 

지식근로자를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

 

p379 21세기의 영국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사회적 의식구조 (social mind set)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신한다. 마치 철도가 등장한 뒤 산업 경제의 주도권이 장사꾼에서 기술자 혹은 엔지니어;로 근본적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p379-380 지금 우리가 정보 혁명아라고 부르고 잇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지식 혁명(knowledge Revolution)이다. 일상 업무의 프로세스를 정형화한 것은 기계가 아니다. 컴퓨터라는 기계는 단지 방아쇠 노릇을 했을 뿐이다. 전통적인 작업을 재조직한 것은 소프트웨어인데 이 소프트웨어는 지난 수세기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을 적용함으로써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 전통적인 작업들을 재조직하였다. 그리고 정보 혁명의 핵심에 있는 것을 전자공학이 아니다. 그것은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다. 이는 이제 막 등장하려고 하는 경제 및 기술에 있어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과제는 분명 지식 전문가들의 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평가되는지, 그리고 그들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수용되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p380 오늘날 우리는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본의 주요 원천이며 자금 공급자가 우두머리가 되는 전통적 의식 구조를 유지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 근로자가 기꺼이 피고용자 신분으로 남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 보너스와 스톡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p381 새로운 산업들이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지식 근로자들을 돈으로만 보상하려고 하면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이런 기업에 근무하는 핵심적인 지식 근로자들은 자신의 노력이 맺은 결실을 금전적으로 보상받는 것을 분명 계속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금전적 보상이 효과를 가져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비록 그것이 지식 근로자들에게 만족을 준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고 아마도 앞으로 10  전후에는 단기적 목표인 주주 중심 가치를 일차적 유일한 것은 아니라도 목적으로 그리고 존립의 근거로 하여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비생산적인 방식이 될 것이다.

 

지식에 기초한 이런 산업들의 성과는 지식근로자로 하여금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경영하는 조직들에 달려있다. 이는 지금 많은 기업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지식 근로자들의 물질적 야망을 만족시킴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식 근로자들의 가치관을 만족시켜 주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또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달성되어야만 한다. 또한 지식근로자들은 부하가 아닌 동료 경영자로, 그리고 피고용자가 아닌 동업자로 인정해 줌으로써 달성되어야만 한다.

 

p384 지식 르네상스인 드러커의 관심은 사회, 경제, 정치, 경영, 그리고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드러커의 주된 관심은 언제나 개인이었다. 자유로운 사회에 사는 개인의 위상과 존엄성 그리고 기능과 책임 말이다. 그런 점에서 드러커는 조직을 개인으로 하여금 성과를 달성하고, 공헌하고 그리고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사회적 기관이자 도구로 간주하고 있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놓고 감히 그를 비판할만한 능력이 없다.  현장에서 경영 그것도 인력관리와 관련해서 숙련된 지식노동자들과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지식이  나의 구체적인 업무와 의사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정하며 감사한다.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이미 몇 년이 지났고,  그의 그 지식들의 일부는, 나의 일과 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에 있어서 숙련자 과정을 걷고 있거나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숙련자들에 대한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항상 나의 숙제였다.  성과, 실행능력,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함에 있어서 그의 지식은 하나의 전형적인 참조준거였다. 

 

드러커의 열렬한 매니아였던 이재규 교수는 조직은 개인으로 하여금 성과를 달성하고 공헌하고 그리고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사회적 기관이자 도구 라고 드러커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p384)

 

하나의 기업의 생존과 번영의 핵심은 사람 즉 드러커가 말하는 개인과 그 개인들을 움직이고 있는 조직의 핵심인력에 달려있다.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산업사회를 이끌었던 영국이 쇠퇴한 이유와 비슷한 것이다. 드러커는 영국이 뒤쳐진 주된 이유를 경제적인 것도 기술적인 것도 아닌 사회적인 것(p378)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일하는 곳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몇 몇의 본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OECD 국가들 중에 주당 노동시간이 가장 길면서도 일의 생산성은 아주 뒤쳐지는 이유도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에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한 몫 잡아서라는 대박을 터트리겠다는 사행성과 도박성 짙은 사고,   

내 것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누가 무슨 상관이야라는  개인주의가 아닌 잘못된 이기주의와 까라면 까지 왠 말이 많나 라는 권위주의적이고 부당한 태도로부터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그렇게 잘못된 관행은 계속 해서 악순환되고 기회주의와 극도로 분열된 개인주의로 열병을 앓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고도의 실업난에 허덕이지만 현장에서는 인력난으로 허덕인다. 기업이 필요로하는 역할에 따른 적정한 임금수준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는 외국에서 인력을 사오면서도 우리의 현실은 고등실업자는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기득권을 가진 계층의 과도한 폐쇄주의와 상상을 초월하는 사교육비와 불필요한 자격증들은 경쟁력 없이 임금수준만 높여 놓았다.

사회의 지배계층은 점점 정의 없는 결탁과 맹목적 연고주의로 물들어 있고, 문명과 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도덕성 결여된 계획되고 조작된 허구적 문화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다.

지식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바로 인간의 도덕성과 사회적 환경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했다는 것이며 악용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사회가 각박해져 가면 갈수록 더욱 갈망하는 인간적인 배려와 순수함은 이제 곧 숨이 넘어갈 지경에 있다.

나는 드러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오늘 현실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인간성이다.  나는 그것은 구본형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일하는 나의 모토는 사람에게서 구하라 였다. -   

모든 것이 조직화되고 프로그램화 될 수 있었지만 유일하게 인간성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단과 도구가 아닌 그것들을 활용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의 태도로 현실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옳은 수단, 옳은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옳은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조상들이 물려준 귀중한 교훈을 믿는다.

옳고 그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합의하고 지켜려고 하는 가운데서 균형을 만들어가고 성숙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로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은 도덕성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행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나는 드러커로부터 배운 많은 지식이 내 삶과 내가 속한 사회와 집단 속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지만 끝없는 욕망의 충족이 아닌 절제와 배려를 가진 양질의 질서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프로폐셔널의 조건에는 지식의 생산성과 함께 정신과 신체의 건강을 위한 얼마간의 자발적 빈곤을 포함한다.

IP *.131.12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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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09.10.11 23:38:26 *.168.92.8
형님!
고요한 내공의 은빛 날리는 머리카락.
세상을 흡수하는 함박웃음.
절대고수의 칼한자루. 그리고 세상을 울리게하는 사자후.

형님은 프로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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