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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일 15시 12분 등록

맹자

맹자 지음, 김선희 풀어씀, 풀빛

2014. 8. 2


1. 저자에 대하여


BC 372 추정 ~ BC 289 추정.

맹자의 생몰 연대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공자 사후 약 백여년이 지난 시절에 활약한 사상가로 알려진다.  이름 역시 가(軻), 자(字)는 자여(子輿), 자거(子車), 자거(子居) 등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태어난 곳은 당시 노나라와 인접한 추라는 작은 나라였다. ‘성인이 살았던 곳과 가깝다’라는 맹자의 말대로 오늘날 중국 산동성에 있는 맹자의 묘는 공자가 묻힌 곳에서 약 30키로 떨어져 있다고 한다. 맹자의 선조는 공자의 조국 노나라 귀족이었다고 한다. 세력 다툼에 밀려 이웃 나라로 이주한 가난한 귀족의 후예로 태어난 맹자의 어린 시절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혼자 생계와 교육을 떠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맹자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시대 유향이 편찬한 <열녀전>에 전하고 있는데 바로 ‘맹모삼천지교’, ‘맹모단직지교’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이라기보다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아마도 맹모의 지극함이 그러했으므로 이야기로 전해졌을 것이다. 잠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맹모삼천지교란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한 일을 말한다. 처음 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맹자는 자연스럽게 장례 흉내를 내면서 놀게 되었다. 이에 맹모는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여 이사를 하게 된다. 이번에 옮겨간 곳은 시장이었다. 어린 맹자는 또 친구들과 어울려 “골라, 골라!” 하면서 놀았던 모양이다. 다시 이사를 하여 찾은 곳이 학교 근처였다. 이제서야 비로소 책을 읽으며 학문과 예절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치맛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던 극성스런 어머니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세번 씩이나 이사를 한 것을 보면 그렇게 슬기로운 여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맹모단직지교도 비슷한 이야기다. 멀리 공부하러 갔던 맹자가 어느 날 학업을 중간에 그만두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고 한다. 실망한 맹모가 자신이 짜고 있던 베를 그 자리에서 잘라버렸다. 놀란 맹자가 그 까닭을 묻자. “네가 중간에 공부를 그만 둔 것이나 이렇게 베를 짜다가 중간에 자른 것이 다를 것이 없다. 중간에 잘라 버린 베가 쓸모없듯이 학업을 포기한 사람도 쓸모없는 사람이다.” 맹자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듣고 다시 공부에 매진했다고 한다.


맹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학파에서 공부하였다. 자사에게 직접 배웠다는 주장도 있지만 자사의 제자에게서 공자와 자사의 사상을 배웠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맹자는 공자로부터 이어지는 유가의 정수를 배운 계승자다. 맹자 스스로도 “나의 소원은 공자를 따라 배우는 것이다_공손추 상 2” 라고 할 만큼 공자로부터 내려온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강한 사명감을 보였다. 맹자는 500년을 주기로 올바를 정치를 할 인물들이 나타났다고 믿었다. 요, 순임금 이후 탕왕까지 500년이고, 탕왕 이후 문왕까지가 또 500년, 문왕 이후 공자까지가 500년이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사회를 이끌 큰 인물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던 맹자는 공자의 다음으로 자신이 그 역할을 할 사람이라고 천명하였다. 

유儒란 본디 지식과 교양을 쌓은 선비라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던 말이다. 이 말이 학파를 형성하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공자가 등장한 이후부터다. 이런 유가의 사상은 맹자대에 이르러 체계가 다듬어지면서 하나의 고유한 사상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맹자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자와 마찬가지로 당대에서는 그의 사상이 실현되지 못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춘추시대로 나라도 작고 군주는 전통의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귀족 세력의 견제나 제어를 받는 제한된 군주였다. 이에 반해 맹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전국시대로 춘추시대에 비하여 군주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절대군주였다. 아울러 국가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 졌다. 수많은 나라가 결국 전국칠웅으로 수렴되고 이어 진나라로 천하가 통일되는 과정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전쟁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절, 부국강병이 절대절명의 과제로 인식되는 시대였다. 음모와 하극상이 다반사였으며 배신과 야합이 그치지 않는 난세의 전형이었다. 맹자는 이렇게 살벌한 시대를 관통하면서 그의 이름과 같이 수레를 타고 천하를 주유하였다. 제자백가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맹자 역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인과 의를 주장하는 유가의 사상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이기고 더 넓은 땅을 차지할 수 있는냐가 모든 군주들의 절대적인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공자의 인仁이 맹자에 의해서 의義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맹자가 말하는 의는 인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즉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맹자는 여러 사상가들 가운데서도 우뚝 할 뿐만 아니라 문장가와 문학가로서도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인 것을 보면 그의 탁월함이 지극했던 모양이다. 맹자 당시에는 유가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쇠미하여 오히려 묵자와 양자 사상이 크게 위세를 떨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필연적으로 다른 사상과 논쟁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 나간다. 하여 맹자에는 농가, 병가, 종횡가등 당시의 많은 사상들이 소개되고, 또 비판되고 있기 때문에 제자백가의 사상을 가장 폭넓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때문에 단 한권의 고전만 택해야 한다면 단연 <맹자>가 천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전해지는 <맹자>는 전체 7편 261장 3만 4,685자에 이르는 대저로 각 장 첫머리의 글자가 각편의 제목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공자 사상을 담은 논어의 구성 방식을 따른 것이다.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 <이루>, <만장>, <고자>, <진심>으로 이루어진 맹자는 후한의 학자 조기가 상편과 하편으로 나눈 뒤 현재까지 14편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양혜왕, 공손추는 당시 각 나라의 권력자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인데, 주로 왕도 정치를 논한 정치론에 해당한다. 고자에서는 당시 유명한 학자였던 고자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사람의 본성에 관한 깊이 있는 논쟁이 펼쳐지고, 진심은 앞에서 맹자가 펼쳤던 이론들을 모아 정리하면서 반성과 실천을 주장한 내용을 결론에 해당한다. 


맹자가 계승한 유가 사항은 맹자 이후 부침을 겪으면서 명맥을 이어오다 통치이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송대 이후의 일이다. 맹자 사후 천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다. 신유학 혹은 성리학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를 이끈 인물들이 바로 북송 오자로 불리는 소강절, 주렴계, 장횡거, 정명도, 정이천과 이들의 학문을 집대성한 남송의 주자다. 성리학은 이후 국가를 움직이는 사상 체계로 자리 잡아 중국 사회는 물론 조선과 일본 등 동아시아 전역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조선 사회를 이끄는 유일한 사상으로 권위를 갖게 되었다. 


맹자 사상의 중심은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론과 어진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왕도 정치론으로 압축된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본디 선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이 아닌 것보다는 인한 것을, 의롭지 못한 것보다는 의로운 것을 따르게 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사람이 가진 보편적인 성향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이 마음을 ‘차마 남에게 보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不忍人之心’ 이라고 말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맹자는 네 가지의 실마리로 설명한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인=惻隱之心(측은지심)], 부끄럽고 미워할 줄 아는 마음[의=羞惡之心(수오지심)], 양보하는 마음[예=辭讓之心(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지=是非之心(시비지심)] 이 바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의 씨앗들이란 것이다. 사람들은 이 네 가지 단서(사단)를 잘 운용하고 키워서 네가지 덕, 즉 인의예지를 길러야 한다. 이것이 사람이 궁극적으로 갖추어야 할 도덕성의 실제다.


맹자는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이런 바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도, 실천하지도, 반성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은 선한 가능성의 존재일 뿐 선함이 완성된 존재는 아니다. 따라서 끝없이 자기 본성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나와 만물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인 생명 에너지를 길러야 하는데 이것을 ‘호연지기’라 한다.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은 선한 본성을 지키는 핵심이며, 자기를 닦는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의 왕도 정치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연장선에서 있는 것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에게는 일반의 백성보다 더 큰 도덕적인 자기 완성이 요구된다. 임금이 그 자신부터 도덕적인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이를 사회에서 실현할 때 백성들이 편안하고 나라가 안녕하게 되며 비로소 백성들이 임금을 어버이처럼 믿고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러한 임금이 아니라면 임금조차도 백성의 뜻에 따라 바꿔 버릴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말하자면 민에 의한 혁명의 논리인 셈이다. 임금과 사직을 두는 목적이 백성들의 평안은 위해서인데 이것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임금을 몰아내고 현인을 새 임금으로 세울 수 있다는 과격한 논리인 것이다. 이것이 맹자의 민본 사상이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왕은 단지 백성을 보살피는 자라는 인식은 지금 생각해도 파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맹자의 철학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여민동락’ 즉 함께 살아가기 위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단호하게 말하겠다. 


사마천은 사기의 맹자 순경 열전편에 이렇게 적고 있다.

‘각국들은 바야흐로 합종연횡을 통한 싸움에 힘쓰고, 전쟁만을 능사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맹자는 요순(堯舜)과 하․은․주 삼대의 성왕들의 덕치를 주장하고 다녔으므로, 그의 주장은 찾아간 나라들의 실정과 부합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물러나 만장 등 제자들과 함께 시(詩)와 서(書)를 정리하고 공자의 학문과 사상을 천술하여 [맹자] 7편을 지었다.’



2.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_ 자기경영과 조직경영의 관점에서 읽음.


[1부. 맹자의 정치론]


15p. 임금이 어질어야 천하가 바르게 된다.

...또 누가 천하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묻기에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통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를 따르겠습니까? 라고 물으시기에 다름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천하에 따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왕께서도 새싹에 대해 아시겠지요. 초여름에 날이 가물면 싹은 마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늘에 뭉게뭉게 구름이 일어나 시원스레 비가 내리면 싹은 힘차게 올라옵니다. 이렇게 되면 누가 이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

-> 맹자가 임금 깜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을 보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혜왕의 아들 양왕은 좀 떨빵했던 모양이다. 그가 맹자를 모셔놓고 세상이 어찌 될 것인지 물었다. 맹자는 생뚱 맞게 세상은 통일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누가 통일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맹자는 대뜸 사람 안죽이는 왕이 통일할 것이라고 말한다. 양왕이 바란 대답은 ‘당신이 통일 하겠소’ 정도의 대답이었을 텐데...본질을 바로 차고 들어오는 화법, 반전이 있는 화법은 맹자의 필살기다. 여기서 왕 대신 CEO 또는 최고 경영자를 넣어서 새겨도 좋다. 뜻이 다르지 않다. 맹자는 지도층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이다.


19p. ... 윤사가 어떻게 나를 알겠는가? 천리나 되는 먼 길을 와서 왕을 만나 보려고 한 것은 내가 바라던 바지만, 뜻이 맞지 않아 떠나가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어쩔 수 없어서 떠나는 것이다. 사흘을 묵고 제나라를 떠났지만 내 마음에는 오히려 빨랐다고 생각한다. 나는 왕이 생각을 바꾸어 나를 다시 부르기를 바랐다. 황이 만일 생각을 바꾸었다면 나를 다시 부르셨을 것이다. 국경을 벗어나는데도 왕이 나를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시원섭섭했지만, 그만 돌아가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어찌 그가 훌륭한 임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렸겠느냐? 제나라 왕에게는 아직도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왕이 만일 나를 등용한다면 제나라 백성만 편안하겠느냐? 온 천하의 백성이 다 편안해질 것이다. 왕이 생각을 바꾸어서 어진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를 쓰시기를 날마다 바라고 있다. _공손추하12

-> 맹자는 평생 등용되지 못했다. 맹자의 주장은 당시 왕들이 바라는 부국강병의 직접적인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종국엔 이것이 부국강병의 길이 될 것이었지만 ... 맹자는 또 자신이 등용 되면 온 천하가 평안해 질 것이라며 기염을 토한다. 그러면서 하시라도 등용 되길 바라고 있었다. 윤사의 비난에 대해서 변명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받아치는 맹자의 의기로움이 빛난다. 그렇지...올 때는 내 마음이었지만 갈 때는 내가 원해서 간 것이 아니다. 이것이 부끄러운 일일 까닭이 없다. 혹여 다시 부르지 않을까 기다린 것 역시 그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맹자는 비난을 피하지 않았다. 이 대목은 아직 쓰임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 땅의 수 많은 맹자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겠다. 평생 백수 맹자를 본 받으라. 우리는 아직 그릇에 맞는 주인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21p.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만났다.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는데,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따름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를 말씀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을 이롭게 할까 생각하며, 신비와 평민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구하려고 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_양혜왕상1

-> 사마천은 <맹자>를 읽다가 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구절에 이르러 책 읽기를 멈추고 탄식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익이란 것이 진실로 혼란의 시작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공자가 이익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그 혼란의 근본 원인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라고 했던 것이다. ‘천자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는 데서 생긴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라고 탄식한 사마천의 한숨이 여기까지 전해져 온다.

-> 이 이야기는 맹자에서 자주 회자되는 유명한 이야기다. 맹자는 야심가 혜왕의 질문에 그 질문 자체가 문제라며 인과 의를 말했다. 오히려 인과 의만이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서로 경쟁하듯 자신의 이익만을 다투며 싸운다면 평안한 세상이 올 턱이 없다. 경쟁일변도의 무한질주만이 미덕인 오늘 날 우리에게도 금과옥조 같은 말이다. 옆에서 뛰니까 나도 뛴다. 왜 뛰는지도 모르고 뛴다. 그러니 또 그 옆에서도 뛴다. 가만히 있으면 뒤쳐져 낙오할 것 같다. 이렇게 우르르 모두 앞만 보고 달린다. 한참 달리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내가 왜 달리는지 모르겠다. 돌아보니 벌써 한참이나 와 버렸다. 또 찬찬히 보니 지금껏 졸라 달려온 길이 내가 원한 길도 아니다. 가야할 길인지도 모르겠다. 아~~Cba~~그래도 더 늦기 전에 멈춰서 다행이다. 방향을 바꾸려면 일단은 멈춰야 한다. 그게 쉽다. 달리면서 방향을 바꾸려면 원심력이 크게 작용한다. 힘도 많이 든다. 


24p. 추나라와 노나라가 전쟁 중이었다. 추나라 목공이 맹자에게 물었다. 내 신하 가운데 죽은 자가 33명이나 되는데도 백성들은 한 사람도 목숨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죽이려 하면 다 죽일 수 없고, 죽이지 않자니 윗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도 곁눈질이나 하며 구하지 않았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흉년고 기근이 닥쳐 백성들 가운데 노약자들은 굶어 죽어 길거리에 뒹굴고 젊은이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데도 임금의 창고에는 곡식과 재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임금의 벼슬아치들은 아무도 임금께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윗사람이 게을러서 아랫사람을 못살게 군 것입니다. 증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네게서 나간 것은 네게로 돌아갈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당했던 것을 되갚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임금께서는 그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_ 양혜왕하12

-> 어째 이런 인사가 임금질을 하고 있으니 나라 꼴이 될 리가 있겠는가! 성질 난다고 백성들을 잡겠다는 임금이 임금인가. 그러니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 맹자도 ‘니가 뿌린대로 네게 돌아 온 것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백성이 굶어 죽고 흩어지는데도 윗 사람들은 자기 욕심 채우는데 급급했으니 정작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백성들이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맹자의 이런 주장은 어떤 임금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나라의 근본을 세우는 것 보다 우선 당장의 이익에 골몰하는 왕들에게는 마이동풍이었을 것이다.


27p. 등나라 문공이 물었다. 등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어 있으니 제를 섬겨야 합니까 초를 섬겨야 합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그런 문제는 제가 말씀드린 바가 아닙니다. 기어이 말하라 하시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연못을 깊이 파고 성을 높이 쌓아서 백성과 더불어 지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서을 지킨다면 해 볼만 합니다._양혜왕하13

-> 외교적으로 굴욕을 당하면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오로지 하나 백성들이 똘똘 뭉쳐서 지켜낼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백성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맞설 수 있다. 


34p. ... 그러나 신하된 사람이 이익을 생각해서 임금을 섬기고 자식된 사람이 이익을 생각해서 아버지를 섬기고 아우된 사람이 이익을 생각해서 형을 섬긴다면 그것은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가 모두 인의를 버리고 이익만을 생각하고 서로 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된다면 망하지 않을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고자하4

-> 관계가 이해와 필요에 따라 이뤄지는 오늘 날에 비춰 보아도 좋은 구절이다.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이익에 맞춰져 돌아가는 현대의 삶을 돌아보자. 우리는 환금되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맹자에 따르면 이런 세상은 반드시 망한다고 했다. 오직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던 전국 시대는 오늘날 재현되었다. 왕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백성들을 전쟁의 도구처럼 사용했다. 젊은 사람은 전쟁에서 죽었고 농토는 황폐해 졌다. 전쟁에서 이기면 그나마 다행이지만(약탈하면 되니까) 전쟁에서 진다면 그 피폐함을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오늘 날 조직에서도 빈번히 자행되는 일이 아닌가. 경영은 자신들이 해 놓고 그 실패의 충격은 고스란히 직원들이 감내해야 한다. 물론 직원들을 부속처럼 사용해서 잘 되면 지들이 다 쳐먹는 것이고..


38p. 천자가 인을 행하지 못하면 천하를 지키기에 부족하고 제후가 인을 행하지 못하면 사직을 지키기 어려우며, 경대부가 인을 행하지 못하면 종묘를 지키기 어렵고, 선비와 서민들이 인을 행하지 못하면 제 한 몸도 지키기 어렵다._이루상3


천하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는 시대에는 덕이 작은 나라가 덕이 큰 나라에, 덜 현명한 자가 더 현명한 자에게 부림을 받는다. 그러나 천하가 올바른 도가 행해지지 않는 시대에는 오로지 크기나 힘이 작은 자가 큰 자에게 ,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부림을 받게 된다._이루상7

-> 천하에 인이 펼쳐진 때가 없었음이 자명하다. 센자는 약한 자를 보살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번성할 수 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 먹으면 ... 그래서 결국 다 잡아 먹으면 그 다음은 어찌 되는가? 저만 잘 살면 된다 싶지만 저만 잘 살 수 있는 것인가! 길게 보면 이것은 불가하다. 


43p. 무력으로 남을 복종하게 하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복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힘이 부족해서 억지로 복종하는 것일 뿐이다. 덕으로써 남을 복종하게 하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기뻐서 복종하는 것이다.

-> 힘으로 사람을 굴복 시킬 수 없다. 마음이 따르지 않으면 진정으로 따르지 않는다. 힘 앞에서는 우선 굴복하지만 정작 어려울 때 그 굴복은 반항, 저항, 복수로 바뀐다. 그래서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패도로는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반드시 덕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인이다.


패도 정치를 행하는 나라의 백성들은 의기양양하게 기뻐하고 왕도 정치를 행하는 나라의 백성들은 너그럽고도 진심으로 기뻐한다. 왕도 정치를 행하는 나라의 백성들은 죽게 되어도 왕을 원망하지 않으며, 이롭게 되어도 왕의 공덕을 칭송 할 줄 모른다. 백성들이 나날이 선하게 되어도 누가 그렇게 하는지를 모른다. _진심상13

-> 갑질하느라 바쁜 것들은 언제나 의기양양하다. 


45p. 제가 호흘이라는 신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께서 당 위에 앉아 계실 때 소를 몰고 아래로 지나가는 자가 있었다지요. 왕께서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고 물었더니 소의 피를 내어 종 틈에 바르는 제의를 위해 끌고 가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지요.

그러자 왕께서는 내 그 소가 떨며 죄 없이 사지에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구나. 라고 하시며 놓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소를 몰고 가던 자가 그러면 종 틈에 피를 바르는 제의는 하지 않는 것입니까? 라고 물었더니 어찌 없앨 수 있겠느냐? 양으로 바꾸어라 라고 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_ 양혜왕상7

->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은 인을 행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어는 왕의 측은지심이 아니다. 불쌍하기야 소나 양이나 같은 것이 아닌가! 귀한 소는 불쌍하고 하찮은 양은 불쌍하지 않은 것인가! 소와 양 가운데 측은함의 차이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측은함이 같은 것이다. 다만 왕은 소는 보았지만 양은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맹자는 말하고 있다. 신영복은 이 대목의 핵심으로 만남을 지적하고 있다. 만난다는 것은 보고 만나고 서로 안다는 것이다. 즉 관계를 말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만남이 없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한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서로 만남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갈파한다. 


45p.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다릅니까?

태산을 끼고 북해를 건너 뛰는 일은 할 수 없다고 하면 이는 정말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른을 위해서 나뭇가지를 꺾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면 이는 하지 않는 것일 뿐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왕께서 왕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은 태산을 끼고 북해로 건너 뛰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닙니다. 왕께서 왕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가지를 꺽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_양해왕상7


49p.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북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무기들이 부딪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옷과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자는 100걸음을 달아난 후에 멈추었고 또 어떤 자는 50걸음을 달아나다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50걸음 달아난 자가 100걸음을 달아난 자를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_양혜왕상3


60p. 송나라 대부 대영지가 말했다. 10분의 1 세금을 받는 것과 국경과 시장에서 조세를 없애는 것을 올해 한꺼번에 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씩 줄여 나가면서 내년쯤 되어 없애면 어떻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날마다 그 이웃의 닭을 훔치는데, 누군가가 이것은 군자의 도가 아닙니다. 라고 하자. 그럼 조금씩 줄여서 한 달에 한 마리씩 닭을 훔치고 내년쯤 되면 그만 두겠소. 라고 말하였다 합니다. 만일 자신의 행동이 의가 아닌 줄을 알았다면 당장 그만 둘 것이지 어째서 내년을 기다리겠습니까?_등문공하8

-> 이 구절은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처음 이 대목에서 한참 웃었다. 맹자의 센스가 장닌 아니다. 말솜씨가 뛰어났다더니만 촌철살인이 아닌가! 잘못된 조세 때문에 백성들이 힘들어 하는데 즉시 고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을 하다가 당장 그만 두지 않고 서서히 도둑질을 그만 두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유가 찰지다.

-> 맹자가 요즘 세상에 활동했더라면 저명한 컨설턴트가 아니었겠는가! 이 시절 유세객들이란 사람들이 요즘으로 말하면 다들 컨설턴트인 셈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때론 문제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드러내어 처방을 하고 개선하려 했던 것이니 나나 그나 다를 바 없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고치면 될 것이지 뜸을 들일 이유가 무엇인가. 알아 차렸으면 바로 고쳐라. 간 본다고 나아질 것이 없다.

-> 나는 이런 경험을 금연하면서 겪었다. 처음 차츰 줄이면서 끊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삼년이 넘도록 끊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담배 하나 끊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것도 하나 제대로 못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 날부로 피우던 담배를 던져버리고 영영 이별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장 그만두라.


왕도 정치의 진정한 목표는 백성들이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나라의 부를 넉넉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 경영의 목적은 사회를 풍성하게 하고, 구성원들이 인간 답게 살 수 있도록 하며, 이를 통하여 부를 넉넉하게 하는 것이다. 


66p. 어질다는 말보다 더 근본이 되는 것은 어질다는 소문이 백성들에게 파고드는 것이다. 정치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성들을 잘 교화 해서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정치를 잘하면 사람들이 왕을 두려워하지만 교화를 잘하면 백성들이 왕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를 잘하면 백성들의 재물을 얻지만 교화를 잘하면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다._진심상14

-> 여기서 ‘백성’이란 단어를 빼고 ‘고객’ 또는 ‘종업원’ 이란 단어를 넣으면 된다. 정치란 말 대신 경영을 넣어도 좋겠다. 


68p.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는 원칙이 있으니,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고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_ 이루상9


70p. 제나라 선왕이 말했다. 어떻게 하면 자질 없는 신하를 알아내어 없앨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 주변에서 모두 현명하다고 하는 것으로도 부족하고 모든 대부가 현명하다고 해도 부족합니다. 온 나라 백성들이 현명하다고 한 뒤에 그 현명함을 살피고 나서 등용해야 합니다. ... 양혜왕하7

-> 요원한 이야기다. 위정자가 맘대로 인사를 휘둘러서는 안된다는 것이 맹자의 말이다. 그 또한 백성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의 경영자들 역시 새겨야 할 내용이다. 조직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고 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위해 일할 사람을 뽑고 중요 하는 것이 타당한 일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73p.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왕위를 선양했다.

-> 요임금은 아들에게 왕위를 주지 않고 순임금에게 왕위를 넘겼다. 요즘 말로 하자면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준 것이다. 순임금은 이것이 부담스러워 잠시 몸을 피하기도 했지만 백성들이 가만 두지 않았다. 결국 그는 요임금의 자리에 앉았다. 순임금은 어느 날 갑자기 왕이 된 것이 아니다. 28년간 요임금을 도와 경영수업을 철저히 받으면서 검증을 받은 셈이다. 


78p. 제나라 선왕이 별장에서 맹자를 만났다. 왕이 말했다. 어진 이에게도 이런 즐거움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이런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임금을 비난하게 됩니다.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해서 윗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윗사람이 되어서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 역시 잘못입니다. ... 양혜왕하4

-> 기업을 방문하다 보면 현장보다 사무실 환경이 터무니 없이 좋은 기업, 중역이나 사장실이 찬란한 기업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주차장엔 최고급 승용차가 있고, 사장의 입에선 자신의 치적과 종업원의 복지에 대해서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런 기업일수록 현장은 도탄에 빠져 있다는 것을 나는 단박에 알 수 있다. 종업원들은 최저임금 수준이며 사내하도급 또는 외주 임가공으로 노동력과 임금이 착취되고 있다. 효율성이란 허울을 쓰고 있지만 엄연한 착취이며 폭력이다. 종업원들은 호시탐탐 떠날 궁리만 하고 잠시라도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기업이 미래가 담보 될 턱이 없다.

-> 백성들과 함께(진정으로) 즐기고 근심을 함께 하는 것이야 말로 여민동락이다. 기업 경영이라고 해서 달라야 할 이유가 없다.


83p.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신하였던 탕왕이 걸왕을 몰아내고, 또 신하였던 무왕이 주왕을 정벌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왕이 다시 물었다. 신하가 자기 임금을 죽여도 괜찮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인을 해치는 자를 적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이라 합니다. 이렇게 잔적을 일삼는 사람은 일개 지아비입니다. 일개 지아비인 주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_ 양혜왕하8

->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임금은 임금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의로운 사람이 나타나 그를 몰아내도 된다. 즉 역성혁명사상이다. 이 때문에 당시 권력자들 그리고 이후 누대를 이어오면서 맹자사상이 쉽게 받아 들여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맹자는 단호하다. 바로 민본사상이다. 백성에게 제 할 노릇을 하지 못하는 임금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 역시 보호 받을 수 없어야 한다고 갈파한다. 위정자들이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이 행동해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의식, 행동하는 시민의식만이 권력자들을 견제할 수 있다.

-> 경영자라고 해서 다를 것이 있겠는가!


[2부. 인간 본성론]


91p. 사람에게는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는 것을 본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깜짝 놀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것은 아이의 부모와 친해서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로부터 칭찬을 들으려는 것도 아니고, 아이의 비명이 싫어서도 아니다. 이로부터 볼 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잘못된 일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겸손하게 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옳고 그른 일을 분별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_ 공손추상6

-> 그렇다면 오늘 날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실마리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의 실마리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실마리이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은 지의 실마리다. 이 네가지 실마리가 내안에 있는 것은 마치 나에게 팔다리가 있는 것과 같다. 이 네 가지 실마리는 불이 처음 타오르고 샘이 처음 솟아나는 것과 같아서 그것을 넓히고 채울 수 있다면 온 천하를 지키기에 충분하고, 반대로 그것을 넓히고 채울 수 없다면 제 부모를 모시기에도 부족하다. _ 공손추상6

->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네 가지 실마리, 즉 단서가 4단이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이 네 가지가 각각 인, 의, 예, 지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전부는 모두 관계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다. 나 홀로 있을 때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나 사이에서 이런 마음들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맹자의 사회사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런 마음속의 씨앗이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밖으로 꺼내서 실천하지 않으면 무의미 한 것이다.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인이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의이며, 공경하는 마음이 예이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지다. _ 고자상6

-> 사단을 바탕으로 해서 밖으로 드러난 실천의 결과가 바로 인의예지다. 

-> 仁이란 人과 人 즉 二 + 人 두 사람의 관계...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 공자는 인에 대하여 각기 다르게 형편에 따라 대답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인은 사랑을 말하는 것.


인(仁)은 사람(人)이다 _ 다산연구소 박석무.

유교를 창시하여 동양 철학의 대표적 사상의 하나로 발전시켰던 성현은 공자와 맹자였습니다. 공자는 인(仁)을 중심사상으로 여겼고 맹자는 인에 의(義)까지 합해서 중심사상으로 유교를 후세에 전했습니다. 조선 5백 년의 유교 국가는 고려 말엽 중국에서 유교가 전래된 이후로 오랫동안 주자학, 즉 성리학만이 유교를 대표하는 학문으로 여겨 주자의 철학과 사상을 온 세상에 널리 보급하여 그의 철학대로 살아가는 세상이 되는 일에 모든 국력을 기울였습니다. 그것만이 공맹의 철학을 구현하여 요순의 시대로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의 『논어』나 맹자의 『맹자』에는 “인(仁)이란 인(人)이다” 라는 간단한 풀이만 남아 있습니다. 묻는 제자들의 요구에 따라 인이 무엇이라는 것을 부연하여 설명했지만 가장 대표적인 답변은 ‘인은 사람이다’라는 답입니다.


사람이 사람 다스리니 두 사람이니             人以治人是二人
두 사람의 어울림이 곧 인이로다                二人之際卽爲仁
동방 목덕(木德)의 생성해내는 이치           東方木德生生理
군신(君臣)관계 부자유친에 무슨 관계랴    何與君臣父子親


일생동안 경학(經學)연구를 통해 주자의 이론과는 다르게 공맹의 본뜻을 찾아내 실행하고 실천하는 세상을 만들자던 다산은 인에 대한 시를 위와 같이 「인자시(仁字詩)」에서 읊었습니다.
주자는 인이란 “마음의 덕(心之德), 사랑의 이치(愛之理)”라고 『논어집주』에서 명확히 밝혔습니다. ‘생생지리(生生之理)’와 같이 인이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치’(在心之理)”라는 해석이었습니다. 그런 주자와는 달리 다산은 인이란 글자는 본디 사람(人)이 둘(二)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이니 두 사람 사이의 일을 정당하고 바르게 행하는 일이 바로 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사제(師弟)’, ‘형제(兄弟)’ 등 인간의 관계는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들 두 사람 사이에서 상대방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옳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의 일이 바로 인이라는 글자의 본뜻이기에 공자와 맹자는 ‘인이란 사람이다’라는 위대한 철학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주자는 인만이 아니라 인·의·예·지 모두를 마음속의 ‘이치’라고 했지만, 다산은 마음속의 이치가 무슨 결과를 낳는 행동이 되느냐면서 인은 두 사람 사이에서 해야 할 일을 실천하여 나타난 결과를 인이라고 해석해서 행동하는 것만이 좋은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제대로 행동을 해야 좋은 세상이 된다는 행동철학을 세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 아버지는 아들을 한없이 사랑하고 아껴주며 아들은 아버지에게 한없는 효도를 바치면 인이 되는 것이지, 마음으로 ‘아들을 예뻐해야지’,‘아버지에게 효도해야지’라고 생각만 하는 마음속의 이치는 아무런 결과를 낳을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거였습니다.
이래서 과거야 주자였지만 오늘은 다산입니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세상, 이렇게 막돼가는 세상, 행동으로 보여주는 일 아니고서야 무슨 변화가 있겠습니까. 옛날의 군신은 오늘에는 국가와 국민입니다. 국가와 국민 사이에 인(仁)이 되려면 국민의 올바른 행동 아니고 뭐가 있을까요. 

97p. 인은 하늘이 주는 존귀한 벼슬이요, 사람에게는 편안한 집이다. 아무도 막지 않는데 인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어질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며, 예가 없고 의가 없으면 남에게 부림을 받게 된다. 남에게 부림을 받으며 이를 부끄러워하고 화살 만드는 사람이 화살 만들기를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다. 만일 이것이 부끄럽다면 인을 행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인이라는 것은 활쏘기와 같다. 활 쏘는 사람은 자기 몸을 바르게 한 뒤에 활을 쏘기 때문에 쏜 것이 맞지 않더라도 자기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서 자신을 반성할 뿐이다.

-> 실패를 외부에 돌리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 반성하고 고쳐 나간다.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면 자립 기반이 위태로울 수 밖에 없다. 언제나 외물에 흔들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를 보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회사 다니는 사람이 회사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 하고 자신이 맡은 일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불인한 것이다. 그래서 남에게 부림을 받는 것이다. 부림을 받는 다는 것은 물리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지적하는 것일 텐데 이것이 불인 한 것이라고 한다. 인은 사랑이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불인한 것이 된다. 

-> 인이나 의는 그 자체로는 실체가 없고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만 실현된다. 그래서 그 가치를 드러내는 행위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예를 들면 효도나 형제애 같은 것이다.


99p. 인의 실상은 부모를 섬기는 것이요. 의의 실상은 형을 따르는 것이다. 지의 실상은 이 두 가지를 알아서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요. 예의 실상은 이 두 가지를 조절하고 가꾸는 것이며, 악樂의 실상은 이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_ 이루상27

-> 인의예지의 실천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101p. 인의예지는 밖에서 나에게로 녹아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인데도,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을 구하면 얻고 버리면 읽는다. _ 고자상6 

-> 사람들이 인의예지에 대해서 모르거나 혹은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은 훈련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안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아서다.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고 구하려고 노력하면 현실에서 실현될 것이고 내버려 두면 당연히 발현되지 않는다. 이것은 외부의 도움없이 스스로 실현할 수 있다. 다만 스스로의 능동적인 노력만이 필요할 뿐이다. 인의예지는 사람의 바탕일 뿐이다. 실마리이자 단서이다. 따라서 이미 실현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평소 내 안에 착한 놈, 사악한 놈, 나쁜 놈, 음란한 놈, 의로운 놈...등등 수 많은 내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놈을 성장시킬지 어떤 놈을 끄집어 내어 쓸지는 오로지 내가 선택하는 것이므로 지금의 결과는 온전히 내 탓이 아니라 내 뜻이었고 그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놈을 끄집어 내어 쓸 것인지 또 그것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이런 실마리나 단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 사람이 훌륭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가 초인 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서도 계산에 밝은 예리한 사고력을 가지고 있어서도 남을 이끄는 지도력이 있어서도 아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도덕적인 실마리가 있고 그것을 닦을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사단이 바로 실마리며 열쇠며 통하는 문이다.

-> 그리고 이것은 왕후장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특징이다. 이것으로 맹자의 평등사상도 설명이 된다.

-> 또한 모두가 이런 실마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공명한다. 공감능력이야 말로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에게 반드시 필요한 절대적 가치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람은 존귀한 가치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기쁨을 나누고 고통을 함께할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람의 길이 아니다.


108p. 귀와 눈과 같은 감각 기관은 반성하여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외부의 것들에 가려지게 된다. 내 육체의 물질적인 요소가 외부의 사물과 얽히게 되면 외부의 것들에 끌려가게 될 뿐이다. _고자상15

-> 맹자 시대에도 악인들은 넘치고 찼다. 인성의 근본이 착하다고 했던 맹자는 왜 이런 나쁜 놈들이 설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했을 것이다. 맹자의 말인 즉 외물에 흔들려 반성하여 판단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눈이나 귀나 같은 감각 기관들의 신호에 굴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올바른 이성의 작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감각 기관으로 세상을 받아들일 경우 그 욕망은 자신을 삼켜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선한 본성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악이 발생하는 원인이다. 고로 군자는 항상 궁구할 뿐이다.

-> 모든 사람이 선하다는 것은 선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모든 씨앗이 낙낙장송이 되는 것은 아닌 것 처럼 모든 사람이 훌륭한 인성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같다. 환경이 척박한데도 그것을 견디고 살아 남은 나무는 건강한 생명력을 가진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자라는 나무라 하더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 죽고 마는 것도 있다. 악한 사람 역시 사회조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 조건이 절대적인 것은 또 아니다.


110p. 맹자가 말했다. 예전에 우산의 나무숲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러나 큰 나라의 읍 밖에 있어서 사람들이 도끼로 나무를 마구 잘라내니, 어떻게 전처럼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나무들은 밤낮없이 자라나고 비와 이슬이 내려서 새싹은 늘 돋아나지만 사람들이 소와 양을 끌어다가 풀을 먹여 저렇듯 민둥산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 민둥산을 보고 일찍이 좋은 나무가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사람이 갖고 있는 본성엔들 어찌 인의의 마음이 없겠는가. 자신의 양심을 잃어버리는 것은 도끼로 찍어 나무를 베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매일 도끼로 찍어내는데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가 있겠는가? _고자상8

-> 이렇듯 인의예지의 씨앗은 나무를 가꾸듯 해야 한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이 이치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랜동안 농사를 지은 사람치고 깨닫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사람의 선한 본성 역시 이렇듯 가꾸고 보살피고 길러야 하는 것이다.

-> 맹자는 이처럼 인간의 선한 본성을 해치지 않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라고 생각했다.


112p. 고자가 말했다. 인간의 본성은 버드나무 같은 것이고,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인 의로움은 그 나무로 만든 그릇과 같습니다. 인간의 본성으로 인의를 실천하게 하는 것은 버드나무를 가지고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당신은 버드나무의 본성을 그대로 따라서 잔이나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까? 아니면 버드나무를 해쳐서 잔과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까? 만약 버드나무를 해쳐서 잔과 그릇을 만드는 것이라면 장차 사람을 해쳐서 인의를 실천하게 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천하의 사람들을 이끌어서 인의를 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일 것입니다. _고자상1

-> 맹자는 달변가다. 이 대목에서 맹자는 고자를 사정없이 깐다. 니 놈이 바로 장황한 요설로 인을 해칠놈이라구나. 라고 일갈하는 것이다. 달변가치고 머리 나쁜 사람이 없다. 공자는 또 고자를 상당한 정도로 비판했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자와의 대화를 두고 볼 때 고자는 지금의 서양적 사고와 비슷한 듯 하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며 외물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란 관점을 보이는 듯 하다.

-> 고자의 주장인즉, 인간의 본성은 본디 자연 상태 그대로 선하거나 악하거나 한 것이 아닌데 이를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자연 상태인 것은 맞으나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일관한다. 훈련이나 교육을 통해 선한 행위가 발현되는 것이라면 나무를 잘라야 그릇이 되듯 인간의 본성을 헤쳐야 선한 행위가 가능한 것이냐고 되받는다. 다소 억지스럽지만 그의 일관된 사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18p. 고자가 말했다. 타고난 것이 본성입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타고난 것이 본성이라면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흰 깃털이 희다는 것은 흰 눈이 희다는 것과 같고 흰 눈이 희다는 것은 흰 옥이 희다는 것과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개의 본성과 소의 본성이 같고 소의 본성과 사람의 본성이 같다는 말입니까?

-> 맹자의 달변이 또 한번 빛난다. 고자는 도덕적 성품이 본성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맹자는 흰 것의 예로 이러한 주장을 반박한다. 깃털도 옥도 눈도 모두 희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듯이 사람도 개나 소나 짐승의 본성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차이가 바로 사람만이 가지는 본성, 즉 인의예지와 같은 도덕적인 성품인 것이다. 사람은 이것 때문에 먹고 마시는 본성만 가진 짐승과 구분된다는 주장이다.

-> 맹자가 보기에도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그러나 이 조그만 차이 때문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것을 잘 보존하고 가꾸고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고자의 말처럼 도덕이 사회질서가 교육과 훈련에 의해서 발현되는 것이라면 우리가 사회생활을 위해 지켜야 하는 규범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다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들의 이목이 없는 곳에서나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규범들이 쉽게 무시된다. 남의 눈치나 보며 억지로 규범을 지킨다면 사람들은 손해 보는 행동을 피하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행동을 하지도 않을 것은 자명하다. 고자 때문에 세상이 어지러워 질 것이라는 맹자의 염려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의 타자화 된다. 자율성은 엿 바꿔 먹을려고 해도 찾을 수 없다. 규칙이나 규범에 예속된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올바른 행위의 기준이 마음 밖의...나 밖의 외물에 의해 좌우된다. 인간은 규범이나 규칙의 노예가 될 뿐이다. 

-> 맹자는 사람을 자율성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점이 맹자 사상의 근본 특징이다. 사람이 외부의 간섭 없이도 본성에 따라 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사람이 본성 차원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은 이미 도덕적인 실마리와 그 실마리를 바탕으로 능동적인 실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독립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다. 맹자 사상의 근본에는 인간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관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123p. 같은 종류인 것들은 서로 비슷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인도 나와 같은 부류다. ...입에 맞는 맛도 마찬가지니...귀도 마찬가지다. ... 사람의 마음에 모두 같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이이고 의다. 성인은 우리 마음이 같다는 것을 먼저 깨달은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와 의가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마치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우리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 _고자상7

-> 우리를 성인의 반열에서 이야기 하는 맹자. 맹자 사상 가운데 중요한 또 한가지는 바로 이 평등 사상이다. 사람을 다르다는 측면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다르지만 같다는 측면에서 보면 대부분 비슷하다. 생김새 따위가 모두 다른 것이라면 인간의 존엄성이라든지 따위가 모두 같은 것의 측면에 해당할 것이다. 맹자는 인간의 신체 각 부위나 감각기관들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비슷하다고 했다. 이 비슷한 마음이 바로 도덕적인 성품이다.

-> 성인은 다만 먼저 깨달은 사람일 뿐이라는 맹자의 식견이 오늘에 더욱 빛난다.


125p. 귀함을 원하는 마음은 사람마다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은 자기 몸에 귀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벼슬과 같은 것은 진정 귀한 것이 아니다. 힘 있는 재상이 내려준 높은 자리는 그가 다시 빼앗아 갈 수 있다. 

-> 어떤 이가 정치를 할 자격이 있다면 이는 그의 신분이 높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남보다 더 도덕적이고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구나 성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128p. 맹자가 말했다. 둥근 자와 네모난 자는 둥글고 모난 것의 표준이요. 성인은 윤리 도덕의 표준이다. _이루상2


132p. 공자의 제자인 자로는 남이 자기의 허물을 일러 주면 기뻐 했고, 하나라 성군 우왕은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했다. 순임금의 위대한 점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선을 행하면서 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랐다는 것이다. 순임금은 남에게 본받을 것이 있다면 본받아 선을 즐겨 행하였으니, 농사 짓고 질그릇 굽고 물고기를 잡던 때부터 황제가 되기까지 남에게서 본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_ 공손추상8

-> 남에게 영향을 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남에게 영향을 받아 스스로 실행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끝임없이 자기를 반성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길이 최선이다.


136p. 천천히 걸어서 어른 뒤를 따른다면 공손하다 할 것이고, 빨리 걸어 어른을 앞지르면 공손하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천천히 가는 것이 어찌 할 수 없는 일이겠습니까? 다만 하지 않을 뿐이지요. 요순의 도도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만 효제를 행한 것일 따름입니다. 그대가 요임금의 옷을 입고 요임금의 말을 외며 요임금이 행하던 것을 행한다면 요임금처럼 될 것이고, 걸임금의 옷을 입고 걸임금의 말을 외며 걸임금이 행한 것을 행한다면 당신은 걸과 같이 될 뿐입니다. _ 고자하2

->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스스로 하지 않을 뿐이다. 목표와 관점을 어디에 두고 부단히 실천하는냐의 문제일 뿐이다.


137p. 제자인 공도자가 물었다. 사람은 모두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사람은 대인이 되고 어떤 사람은 소인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자신의 큰 줄기를 따르면 대인이 되고 작은 줄기를 따르면 소인이 된다.

사람은 모두 같다고 하셨는데 어떤 이는 큰 줄기를 기르고 어떤 이는 작은 줄기를 기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목구비와 같은 감각 기관은 생각할 줄 몰라 외부 사물에 가려지기 쉽다. 외부 사물을 접하면 그리로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외부 사물을 접하면 그리로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기관은 생각할 수 있으니, 생각하면 결국 본심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이것이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다. 먼저 큰 것을 세우면 작은 것이 빼앗지 못할 것이니, 바로 이렇게 하는 사람이 대인일 뿐이다. _ 고자상15


139p. 대인이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_ 이루하12

-> 순수한 마음. 본성을 간직한 마음


140p. 인은 우리가 살아야 할 집과도 같습니다. 의는 우리가 가야 할 길과도 같습니다. 인에 살고 의를 행한다면 대인의 할 일은 다 갖추어진 것입니다. _ 진심상33


143p. 다른 사람을 아끼는데도 그 사람과 친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인을 되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데도 잘 다스려지지 않을 때는 자신의 지혜를 되돌아보고, 남을 예로 대하는데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행해서 얻어지지 않는 것이 있으면 모두 자신을 돌이켜 살펴야 하니, 자신이 바르면 천하가 다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_이루상4

-> 외물을 탓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안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 부터 시작하라.


[3부 천인합일과 수양론]


-> 무엇이 옳은가? 를 중심으로 생각한 서양 학문과 달리 동양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천의 문제를 중요시 했다. 


152p. 사람이 가는 것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있으며 그만 두는 것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가거나 그만두거나 모두 사람의 능력 밖에 있는 것이다. 내가 임금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장창이라는 자가 어찌 나로 하여금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느냐? _ 양혜왕하16

-> 천인합일을 잘 못 이해하면 모든게 하늘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탓으로 돌리기 쉽다. 제 뜻대로 안되는 모든 일을 하늘의 뜻으로 돌리는 멍청한 짖을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진인사대천명이다. 온 정성으로 노력하는 것이 먼저란 말이다.


154p. 공자께서는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지며 들어오고 나가는 때가 없어 그 향하는 바를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_ 고자상8


155p. 이목구비와 같은 감각 기관은 생각할 줄 몰라 외부 사물에 가려지기 쉽다. 외부 사물을 접하면 그리로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기관은 생각할 수 있으니, 생각하면 결국 본심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이것이 하늘이 나에게 준 것이다. _고자상15


159p.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 돌이켜 나를 반성하여 성실했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을 것이다. 인을 찾아가는 데 남의 마음을 헤아려서 행동하는 것보다 가까운 방법은 없을 것이다. 

-> 인을 찾으려면 남의 마음을 헤아려라. 나에게 인의예지가 갖추어져 있다. 이것을 키워 쓰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보편성이다. 나만 그런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듯이 사람과도 촘촘히 인드라망으로 엮어져 있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때문에 나 이외의 다른 사람, 즉 그들과 교감하지 않으면 안된다. 


160p. 성실한 것은 하늘의 도지만, 성실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다. 지극히 성실한데도 남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사람은 없고 성실하지 않은데도 남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은 없다. _이루상12

->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다.

161p. 본래 순수한 마음처럼 되고자 하는 것을 선함이라하고, 선을 자기 몸에 간직하는 것을 믿음이라 한다. 선이 몸에 가득하면, 이를 일러 아름다움이라 한다. 선이 몸과 마음에 가득하면 빛이 나게 되니, 이것을 위대함이라 한다. 위대해서 다른 사람들을 교화하는 것은 성스러움이라 한다. 지극히 성스러워서 사람이 가늠할 수 없는 것을 신묘함이라 한다. _ 신심하25

-> 인의예지를 닦은 정도를 구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레벨. 위대한 뒤에라야 교화할 수 있다고 한다. 우선 위대해 지자. 선을 가득 채우면 위대해 질 수 있다.

-> 맹자는 고자와의 대화에서 본성이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먹고 마시는 ‘자연적인 본성’이고 다른 하나는 인의예지와 같은 ‘도덕적인 선한 본성’이다.


167p. 군자가 올바른 도리에 따라 깊이 탐구하는 것은 스스로 터득하기 위해서다. 스스로 터득하면 여러 일에 대처할 때 안정이 되고, 대처하는 일에서 안정되면 그 일로부터 얻는 것들에 깊이가 있게 된다. 일로부터 얻는 것들에 깊이가 있게 되면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다 그 근원과 맞아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올바른 도리를 스스로 터득하고자 한다. _ 이루하14

-> 궁극적으로 ‘터득’ 즉 ‘깨우침’이라고 하는 것이 혼자 하는 것이지 누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해 봐야 한다. 스스로 실천하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간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때문에 천명이나 도덕적인 의무들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맹자는 실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170p. 요임금과 순임금은 본성에 따라 그대로 행했고 탕왕과 무왕은 반성하여 행한 것이다. _진심하33

-> 우리도 요나 순임금처럼 본성에 따라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 있고 탕왕이나 무왕처럼 열나게 노력하고 반성해야 되는 사람이 있다. 자심의 깜냥대로 할 일이다. 이제까지 모든 성인이 날 때부터 성인인 사람도 없었으며, 저절로 성인이 된 사람도 없다.


172p. 자신을 해치는 사람과는 더불어 말해서는 안 되고 자기를 버리는 사람과도 더불어 행동해서는 안 된다. 예의를 비난하는 것은 자기를 해치는 것이고 내 몸이 인에 머물지 못하고 의에 따르지 못하는 것은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_이루상10

-> 그러나 현실은 항상 선하게 살려는 사람에게 가혹하다. 그렇다고 해도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174p. 오곡은 종자 가운데서도 훌륭한 것들이다. 그러나 잘 익지 않으면 잡초만도 못하다. 인도 마찬가지다. 잘 익혀야만 하는 것이다. _ 고자상19


175p.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가지 않으며,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찾지 않으니 슬프구나. 사람들은 기르던 개나 닭을 잃어버리면 찾으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면 찾으려 들지 않는다.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_ 고자상11

-> 잃어버린 마음이란 본성 즉, 인의예지를 잃어버린 마음이다. 그것이 바로 ‘나’인 것이다. 수 많은 외물의 욕망에 사로잡혀 허우적 거리느라 잃어버린 나...그것은 나의 본성...즉 ‘선한 나’인 것이다. 공부란 오직 잃어버린 나를 찾는 여정일 뿐이다.


176p.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는 욕심이 적어야 한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본래의 마음을 보존하지 못할 때에도 잃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본래의 마음을 보존하더라도 얻는 것이 적을 것이다. _ 진심하35

-> 여기서 욕심이란 것은 외물에 관한 것을 말한다.


177p. 제나라 용사 맹시사는 용기를 기르면서 이렇게 말했네. 이기지 못할 것도 이길 것으로 생각하라. 적을 헤아린 후 진격하고 이길 자신이 있을 때만 싸운다면 이는 상대편 군사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길 수 있겠는가? 나에게는 두려움이 없을 뿐이다. ... 스스로 반성해서 옳지 못하면 비론 천한 사람이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고, 스스로 반성해서 옳다고 생각하면 천만 사람이 있는 곳이라도 나는 당당하게 나갈 수 있네. ... 내가 보기에 맹시사가 용기를 기르는 방법은 기의 차원이니 증자보다 못하네. _공손추상2

-> 부동심, 즉 바깥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마음을 얻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결국 용기와 수련을 통해서 인을 얻어 갈고 닦는 것이다. 진정한 용기는 스스로 반성해 보아 부끄럽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다.


동양에서는 정신과 물질, 몸과 마음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정신과 육체의 분리는 서구적 사고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육체의 성장이라고 하지 않고 ‘생명의 성장’이라고 한다. 인간은 ‘정신의 성장’과 함께 ‘생명의 성장’도 이루어야 한다.


181p. 지는 기를 통솔하는 것이고, 기는 몸에 가득 찬 것이다. _ 공손추상2

-> 마음이 향하는 바가 지다. 생명 에너지인 기는 지의 명령을 받아 활동한다. 생명 에너지는 목적이나 방향이 없다. 그래서 반드시 마음을 따라야 한다. 무심코 달려나가 넘어지는 것은 기가 한 일이다. 이것은 마음의 뜻이 아니다. 이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 


184p. 감히 여줍건대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잘하십니까?

나는 말을 알며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합니까?

말로 하기 어렵다. 기라는 것은 지극히 크고 강하니, 기를 곧게 키우고 상하지 않게 하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기는 의와 도에 짝하는 것이니, 기가 없으면 사람은 시들게 된다. 기는 안에 있는 의가 모여서 생가는 것이지, 밖에서 의가 갑자기 들어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동하면서 마음에 만족하지 못하는 바가 있으면 줄어들게 된다. 반드시 기를 기르는 일은 해야 하니, 이때는 어떤 결과를 미리 기대해서도 안 되고 잊은 채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되며, 자라나도록 억지를 써서도 안 된다. 송나라 사람처럼 해서는 안 된다. 송나라 사람 가운데 곡식의 싹이 자라지 않자 싹을 뽑아 올린 자가 있었다. 피곤해져서 집에 돌아간 그는 병이 날 정도로 힘들었어. 나는 오늘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왔거든. 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 아들이 달려가서 보니 싹은 벌써 말라 버렸다고 한다. 세상에는 이 사람처럼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이득이 되지 않는다 하여 버려두는 자는 김매지 않는 자이고, 싹이 자라는 것을 돕는 자는 싹을 뽑아 올리는 자다. 이런 일들은 단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도리어 해치게 된다. _공손추상2



3. 내가 저자라면


구본형 선생께서 진행하던 EBS 고전읽기에서 맹자를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듣기로 맹자를 다시 읽었다. 홍익학당의 윤홍식 대표의 목소리가 낭낭하게 울렸고 생전에 구본형 선생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의 구성]


현재 전해지는 <맹자>는 전체 7편 261장 3만 4,685자에 이르는 대저로 각 장 첫머리의 글자가 각편의 제목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공자 사상을 담은 논어의 구성 방식을 따른 것이다. <양혜왕>, <공손추>, <등문공>, <이루>, <만장>, <고자>, <진심>으로 이루어진 맹자는 후한의 학자 조기가 상편과 하편으로 나눈 뒤 현재까지 14편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번에 읽은 맹자는 주자의 맹자집주를 기본 텍스트로 하고 여기서 핵심 주제를 정한 다음, 주제별고 그에 맞는 원문을 뽑아 해설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어려운 원문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책으로 한자에 어려움이 있는 많은 현대인들이 맹자를 만나기에 접근성이 좋은 구성과 쉬운 내용으로 편집되어 있다.


이 책은 <맹자>에서 중요한 것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1부. 어진 정치가 천하를 구한다. _ 맹자의 정치론

2부. 사람의 선한 본성이 사회를 구한다. _ 맹자의 인간 본성론

3부. 우주가 내 안에 있다. _ 천인합일과 수양론 

으로 구성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구성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맹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주제별로 묶어 일관되게 살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맹자의 왕도정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인과 의로 대표되는 맹자의 사상을 민본사상, 평등사상 등으로 나타내면서 이와 관련된 대목들을 풀어 쓰고 해석을 달았다. 특히 역성혁명, 즉 임금이 임금 구실을 하지 못하면 임금도 백성들이 갈아치울 수 있다는 당시로서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망설이지 않는데 때문에 맹자의 사상은 긴 세월동안 위정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으면 어떤 시기에는 금서의 운명까지 감내해야 했다. 임금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맹자의 주장은 오늘 날에 그대로 가져와 적용해도 모자람이 없으나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2부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며, 그 것의 단서로 사단, 즉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각각 인, 의, 예, 지에 해당하는 것인데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런 심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발현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가만히 두면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보살피고 가꾸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인간은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맹자의 사단이다.


3부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실천하여 갈고 닦을 수 있는지 ‘호연지기’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사단을 가꾸어 스스로 자율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 이 때 비로소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속적인 삶이 아니 주체적인 삶, 노예로서의 삶이 아닌 주인 된 삶을 2500년 전 맹자가 하신 이야기라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감동적이었던 장과 절]


175p.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가지 않으며,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찾지 않으니 슬프구나. 사람들은 기르던 개나 닭을 잃어버리면 찾으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면 찾으려 들지 않는다.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_ 고자상11

-> 잃어버린 마음이란 본성 즉, 인의예지를 잃어버린 마음이다. 그것이 바로 ‘나’인 것이다. 수 많은 외물의 욕망에 사로잡혀 허우적 거리느라 잃어버린 나...그것은 나의 본성...즉 ‘선한 나’인 것이다. 공부란 오직 잃어버린 나를 찾는 여정일 뿐이다.


[보완점 그 외]


내용상 다소 아쉬운 점은 해석이 너무 축약되어 있고 원문의 인용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맹자의 입문서로서 역할과 쉬운 접근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의도 된 것일 것이다. 좀 더 깊은 내용으로 접근하려면 결국 원문이 포함된 맹자 전편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현대적 관점으로 해석하여 현대적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인용하면서 2500년전 맹자가 그랬던 것 처럼 조금은 더 과격하고 직접적으로 접근해도 좋았을 것이다. 

한번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적 관점에서의 재 해석이거나 아니면 기업이나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해석으로 다시 구성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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