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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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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3일 09시 14분 등록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저자 죠셉 캠벨에 대하여 >

 

< 출생과 성장과정 >

 

죠셉캠벨은 1904년 뉴욕 출생. 카톨릭 가정에서 자라났다.

겨우 열 살 때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인디언 토템 기둥과 가면을 보고 매료되었다.

 

누가 만들었으며 무슨 뜻인가를 생각하며 이 방면의 공부를 시작했다.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에 어릴 때 학교에서 수녀님에게 들은 것과 똑같은 모티브가 있는 것을 알고

이 모티브로 비교 신화학에 입문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고집이 세서 누가 무슨 말을 하건 듣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했고,

가족은 늘 그를 도왔다.

언제 어디서든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일, 몰두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 주었다,

 

  <생전 활동 >

 

컬럼비아 대학교,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생전에 20여 종의 책을 쓰거나 편집했다.

 그 공부가 그를 20세기 최고의 신화해설자로 만들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으며, 1925년과 1927년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고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중세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했다.

 1934년 켄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고, 사라 로렌스 대학교 문학부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이었고, 전인미답의 광대한 과거의 파노라마를 아는 사람이었다.

 제임스 조이스나 토마스 만 같은 사람들의 책을 통해서 배우기도 했다.

 또 하인리히 침머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는 스스로를 전문가가 아닌 잡학가라고 말했으며 만년에 그는 과학과 정신을 새롭게 통합시키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는 책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양을 읽으면서 평생을 살았다.

 책의 숲으로 들어가 문화인류학, 생물학, 철학, 예술, 역사 종교 등에 관한 책 속에 파묻혀 살았다.

 그리하여 세계의 민담이나 언어의 이미저리에 박식한 선생님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신화를 지나치게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해석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가르치는 일, 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일에 관심을 두었다.

 번역 책으로는 우파니샤드, 스리라마크리슈나의 복음이 있다

 저서로는 신의 가면(4)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신화이미지 등이 있다

 

 < 사상과 >

  그의 중심사상은 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에서 공통되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는 신화와 현대인들의 삶을 조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있는 신화를 하나씩 꺼내가며 상징과 은유로

  독자들에게 설명했다. 각 개인이 내적인 문제로 고통 받고 있을 때도 신화 속에서 해석했다.

  그는 신의 이미지는 영원의 가면이며 무수하다고 본다.

  신화는 가시적인 세계의 배후를 설명하는 메타포로 보았다.

  그에게 영원한 진리란 죽음에서 새 삶이 생긴다, 즉 희생에서 지복의 삶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영웅이란 자신의 확장을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이라기보다는 자기 발견의 삶을 통해 사회의 구원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1987. 그 자연사 박물관에서 그의 장례식이 열렸다. 그의 장례식에는 록 그룹연주, 자작시 낭송, 제자들의 송별사, 친구들의 송별사, 뉴욕의 출판사 대표, 저널리스트, 노소 작가와 학자들도 모두 모였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프롤로그 원질신화

1. 신화와 꿈

 

15 정신분석학자들의 대담하고도 획기적인 저술은 신화학도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료다.

21 꿈을 읽는 현대 과학인 정신분석학은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이 같은 비현실적 이미지에 유념하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정신 분석학은 이러한 이미지가 스스로 기능하게 하는 방법도 발견했다.

25 그런데 파시파에가 어떻게 자기 부정의 열매로 인간의 몸에 머리와 꼬리는 수소인 괴물이 태어날 줄 알았겠는가?

-죄의 결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 심은 대로 거둔다

26 신이 크게 괘념치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인간은 항상 제 멋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생각한다. 이것이 큰 죄다.

27 왕이 된 이상 한 개인일 수 없는데도 그는 공적인 사건을 개인적인 이익으로 취했던 터

수소의 재등장은 맡은 역할의 기능에 대한 철저한 북종을 상징

전통적인 통과 제의가 개인에게 과거를 향해서는 죽고 미래를 향해서는 거듭날 것을 가르쳤듯이 그의 손길이 미치는 곳에는 절규가 있다. 담 너머로 들리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서 들리는 비참한 절규다.

29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 (자기 극복) 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 이것은 바로 오늘 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수수께끼이며 영웅의 바탕 되는 미덕과 역사적 행위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다. 오직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이미 답은 나와 있는데 다른 곳에서 헤매고 있다

30 토인비교수 - 해탈과 변용 -해탈은 물러섬 과정- 중심을 옮기는 것

영웅이 첫 단계에서 하는 일은 하찮은 세상이라는 무대로부터 진정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심성의 인과가 시작되는 곳으로

물러앉는 일이다. 영웅은 난관을 헤쳐 나가되 자기 식으로 그 난관의 뿌리를 뽑고 한달음에 쳐들어가 원형심상과의 동화 작용을

시도한다.

-이 세상이 왜 하찮은가? 아름다운 곳이다. 교만도 이런 교만이 없다.

33 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

-신화는 보편적이지 않다.

36,7 이 판도라의 상자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신들의 선물인데 이 안에는 존재의 고통과 축복의 씨앗뿐만 아니라 미덕과 희망까지도 들어있다. 이 상자의 도움으로 꿈꾸는 사람은 강을 건너 반대편 강 언덕에 이른다. 그리고 이 기적 같은 일을 통해 극히 어렵고 위험한 작업인 자아 발견과 자아 발전을 꾀하는 모든 사람들은 생명의 바다 건너편에 정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7 아 미노타우로스와 맞설 용기를 심어주는 미궁 탈출의 단서와 괴물을 만나 도륙한 다음 우리를 자유의 길로 이끌어줄 안내자 저 아름다운 처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란 이 얼마나 하찮은 물건인가? 그러나 이나마 없으면 미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 희망도 없는 모험과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38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궁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2. 비극과 희극

39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42 비극이란 형체의 파편이며 형체에 대한 우리의 애착이다. 희극은 정복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거칠고 방만하고 꺼질 줄 모르는 환희다.

43 비극과 희극은 삶을 계시하는 전체성을 본질로 공유하며 죄악(신의 의지에 대한 거역)과 죽음 (필멸의 형태에의 동화) 의 오염으로부터 정화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사랑해야 하는 하강과 상승인 것이다.

44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 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이러한 영웅의 행위가 완성되면 삶은 더 이상 도처에 도사린 재앙의 가혹한 단죄와 시간에 의한 마손이나 막막한 공간의 두려움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고통 받는 일이 없게 된다. 고뇌의 울부짖음은 여전히 귀에 들리나 삶은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정복되지 않는 힘의 자각으로 다시 생기를 얻는다.

 

3. 영웅과 신

 

45 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50 영웅의 모험은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 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54 영웅이 애써 찾아다니고 위기를 넘기면서 얻어낸 신적인 권능은 처음부터 영웅의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4. 세계의 배꼽

 

55 영웅의 성공적인 모험의 의미는 생명의 흐름을 풀어 다시 한 번 세계의 몸속으로 흘러들게 하는 데 있다. 이 흐름의 기적은 물리적으로 음식물의 순환, 역학적으로는 에너지의 흐름, 영적으로는 은총의 현현을 나타내는 듯하다.

58 뱀 마귀 우주적인 남성 여성 등

-진리를 모르는 자의 상상

60 요한복음의 자의적 해석

61 영웅이 태어났고 역사했고 로 돌아간 곳이면 어디든지 표지가 서 있고 성역화 되어 있다. 까닭인즉 이런 곳은 풍요를 향한 돌파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어떤 사람은 영원을 깨닫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곳은 보람 있는 명상의 촉매가 될 수도 있다.

62 신에게는 모든 것이 공정하고 선하고 정당하지만 인간은 어떤 것을 그르다고 하고 어떤 것을 옳다고 한다. -헤라클레이토스

65 삶 자체만큼이나 무자비한 웃음 우리는 이것을 신, 즉 창조자의 무자비함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자식의 잘못을 징계하는 아버지를 자식이 무자비하다고 할 수 있는가?

 

1부 영웅의 모험

 

1.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69 세상 구경이라면 할 만큼 한 태양도 이 막내딸의 얼굴을 비출 때면 오히려 제 얼굴을 붉혔을 정도였다.

70 돌멩이라도 공주님을 가엾게 여기겠습니다.

71 부지중에 저지른 실수는 뜻밖의 세계를 드러내고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력과의 관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부지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 무심결에 한 약속은 세 번째 조짐이다.

73 징그러운 동물은 무의식 심층 (하도 깊어서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 을 상징한다.

모험에의 전령관, 혹은 고지자는 어둡고 징그럽고 무섭고 세상의 버림을 받은 존재인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길을 따르면 길은 낮의 벽을 통해 보석이 빛나는 밤으로 열린다.

80 우연한 현상이 방랑자의 눈길을 사람의 내왕이 빈번한 길에서 엉뚱한 길로 돌려버림으로써 모험 당사자는 무익한 방랑만을 일삼는 수도 있다

-죠셉캡벨이 지금 무익한 방랑을 하는 것 같다.

 

2. 소명의 거부

 

80. 타성이나 힘에 겨운 일, 혹은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심장한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무슨 집을 짓건 그가 짓는 집은 죽음의 집이다. 자기의 미노타우로스를 숨기는 퀴클롭시 식 미궁일 뿐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면서 파멸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잠언 1: 24-27

82 미노스 왕은 그가 속한 사회의 신의 의지에 복종한다는 의미로 희생을 드려야 하는 신의 수소를 사유물로 취했다. 때문에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생의 역할을 감당하는 데 실패했고, 우리가 보았듯이 엄청난 불운을 겪어야 했다. 신성이 그 자신의 적이 된 것이다.

개인이 자기 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하면 신의 의지 즉 자신의 자기중심적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신 자신은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83 인간은 사탄처럼 자기 자신에게 매달린다.

-그걸 조셉 캠벨은 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84 신은 희망에 차서 달렸고 처녀는 공포에 질려서 달렸다.

86 모욕당한 구세주는 그를 돌아다보며 나는 간다만 너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 땅에서 나를 기다려야 하리라고 말했다

87 희생자의 일부는 영원한 저주에 묶이지만 일부는 구원을 받게 되어 있다. 소명의 거부에 따르는 부정적인 상태가 뜻밖의

 해방의 원리에 대한 행운의 계시일 수도 있다.

89 여자들의 고와 간에 대해서는 저도 많은 책에서 익히 읽고 많은 선인들로부터 익히 들은 바 있습니다. 한 가객은

 

여자를 일러 물으니 대답하겠노라

내 일찍이 여자의 글에서 명문을 대한 바 없고

사내의 머리가 희어지고 주머니가 빌 때면

사내에겐 나누어줄 사랑의 몫도 없다더라

 

92 얼마를 기다려야 삶을 부정하는 마법을 깨울 힘이 생겨 두 아버지의 분노를 삭일 수 있게 될까

- 결혼을 거부하며 무례를 행한 자녀와 부모의 고통

 

3. 초자연적인 조력

 

96 이 약속은 현재를 지탱케하고 과거와 미래까지 주관한다. 이러한 약속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러 단계에 이르는 삶의 문턱을 넘으면서 그리고 삶을 자각하면서 무산의 위기를 겪지만 보호세력은 항상 경혼의 지성소에 심지어는 이 세상의 낯선 사건에 내재하거나 그 배후에 존재한다. 모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와서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대자연은 항상 위대한 임무를 지원한다.

97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서 이러한 안내자는 .... 기독교 문화권에선 성령이다.

105 이렇게 해서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삶을 거부하던 카마르 알 자만의 운명은 의식적인 의지의 협력이 없이도 완성되기 시작했다.

 

4. 첫 관문의 통과

 

105 이 수호자 뒤로는 어둠이며 미지의 세계이며 위험이다. 집단의 보편적 믿음이 미지의 땅으로 첫 발을 내딛으려 하는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07 미지의 땅 (황야 밀림 심해 타향 등) 은 무의식의 내용물이 자유롭게 투사되는 무대다

러시아 농민들이 다 아는 숲속의 야성녀 이야기- 숲 속의 나무뿌리에서 추출한 고약으로 이들은 몸을 가꾸기도 하고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기도 한다. 이들은 춤을 좋아한다. 혼자서 숲속을 방황하는 사람을 간질여 죽이는 것도 좋아한다.

우연히 이들의 보이지 않는 춤판에 끼어든 사람도 죽는다.

108 그러나 초자연적인 신부가 다 그렇듯이 남편이 혹 부부간에 마땅히 지켜야 하는 예절을 무시하고 변덕을 부리면 종적을

감추어버린다. 그에겐 불행한 여자를 꾀는 아주 특별한 재능이 있다.

109 인간이 판에 대해 갖는 감정은 당황, 공포, 그리고 엄청난 경악 같은 것이다.

112 이 기지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의 수호자는 극히 위험한 존재다. 그들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안아야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과 용기를 갖춘 사람 앞에서는 위험은 그 꼬리를 감추고 만다.

114 어리석은 대상 우두머리는 도깨비의 말을 좇아 항아리는 모조리 부숴버리고 수레의 짐을 덜어준 다음 앞으로 내몰았다.

-남의 말을 듣는 것의 위험. 결국 자신이 확고한 신앙체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

120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5. 고래의 배

 

122 관문의 통과가 자기 적멸의 형태를 취한다는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쉼폴레가데스 (충돌하는 바위섬)

125 너무 징그러운 희생제 이야기

 

2. 입문

1. 시련의 길

 

128 영웅은 거듭나는 데 필요한 충고와 호부 (액막이), 그리고 이 영역에 이르기 전에 만났던 초자연적인 조력자의 밀사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어쩌면 모험 당사자가 자신의 초인간적 여행 도정의 도처에 자비로운 권능이 있어서 자기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인지도 모른다.

132 인간의 무리는 집단의 이상에 따라 활동하는 법인데 이 집단의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유아기 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133 감각이 정화되고 스스로를 낮추어 모든 에너지와 관심이 초월적인 것에 집중될 때인 것이다. 굳이 현대적인 의미의 어휘를 쓰자면 우리 개인이 가진 과거의 유아적 심상이 분리, 초월, 변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138 까지 꿈 얘기

139 이것이 모든 신들과 악마들의 존재를 이성의 이름으로 부정한 (개화된) 현대인인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감청하기 위해서는 자기 정화를 감수하고 항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앞서간 자들이 당한 시련도 겪지 않고 너희는 지복의 낙원에 들어가려 하느냐 .

143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는다.

-자아가 스스로를 죽음에 내어맡길 수 있느냐는 질문

 

2. 여신과의 만남

 

145 잠자는 여성은 모든 욕망에 대한 응답, 모은 영웅의 지상적 비지상적 모험의 은혜로운 최종목표다. 세상에 유혹하는 것, 기쁨을

약속해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잠자는 여성이 지향하는 존재의 예조에 해당한다.

이러한 유혹과 약속은 이 세상의 도시나 숲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때 찾아온다.

148 조직화된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오랜 방황을 끝낸 영혼의 안식이며 한때 인류가 못 보았다가 언젠가 다시 맛볼 은혜이기 때문이며 위안과 자양 그리고 우리가 아득한 옛날에 그 사랑을 받던 좋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세월은 우리와 그녀의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그녀는 영원한 잠에 빠져든 미녀처럼 아직 우리의 속 영원의 바다 밑바닥에 거하고 있는 것이다.

149 청년은 그녀의 몸을 보았고 그 눈길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152 이러한 수행을 통해 숭배자의 정신은 유치하고 어울리지 않는 감상과 증오로부터 스스로를 정화하고 유치한 인간이 자신의 행,

불행에 연결 지어 멋대로 가른 선과 악 따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본서의 법과 상으로 존재하는 불가해한 실재를 향해 그 마음을 열게

된다.

153 여성은 감각적인 모험의 정점으로 영웅을 인도하는 안내자다. 여신은 자기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 의해 해방된다. 지나치게 친절

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그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화신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

155 아 아름다움이 은하를 이루지 않았는가?

156 나는 왕도라고 합니다. 그대 역시 처음에 이 몸을 추악한 노파로 보았다가 이윽고 아름다움을 보셨습니다. 왕도 또한 싸움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지 않고는 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영웅에게 저 중세의 음유 시인이나 궁정가인이 말하던 이른바 온유한 마음을

요구한다.

여신은 악타이온의 동물적 욕망으로도 퍼거스의 결벽에 가까운 도사림으로도 파악되지 않았다. 오직 니알의 부드러움에 의해서만

그 정체가 드러났다. -일본에서는 아와레(연민)

 

새들이 초록빛 숲 그늘에 깃들이듯

사랑은 온유한 마음속에 깃들인다.

이치로 보면

사랑이전에 온유한 마음이 없었고

온유한 마음 이전에 사랑도 없었다.

태양이 솟을 때 빛도 발할지니

태양에 앞서 빛은 있을 수 없다.

불길 속이 가장 뜨겁듯

사랑은 부드러움 속에서만 뜨겁게 타오른다.

157 여신과의 만남은 사랑의 은혜 (자비 즉 운명에의 사랑) 를 얻기 위해 영웅이 맞는 마지막 재능의 시험단계다.

 

3. 유혹자로서의 여성

 

159 삶의 상황을 수습하는 데 대한 실패는 결국 의식의 제약으로 나타나는 수밖에 없다. 싸움이 난 짜증은 무식한 자들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후회는 때늦은 각성일 뿐이다.

160 도깨비들이란 자기 인간성의 미해결 수수께끼가 투영된 것, 이상이란 개개인이 자기 삶을 파악하는 징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을 이루는 것, 자기 방어적이고 악취가 나고 탐욕적이고 음탕한 즉 우리 조직 세포의 본질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이를 윤색하고 회칠하고 재해석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름에 빠진 파리, 우리가 먹을 국에 빠진 머리카락을 누군가 다른 불유쾌한 사람의 허물로 돌리려 한다.

, 사는 행위, 삶의 구조, 특히 삶의 괄목할 만한 상징인 여성은 더없이 순수한 영혼을 차마 상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164 그러나 베르나르는 어느 날 악마의 꼬임에 빠져 젊은 여자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심히 얼굴을 붉히고 얼음이 뜨는 연못 속으로 들어가 뼈마디가 얼 때까지 참회했다.

165 은자의 삶이 뼈에 붙어있고, 그 맥박이 고동치는 한 삶의 이미지가 그의 마음에 폭풍을 일으키는 일을 막기 어렵다. 성 안토니우스는 그 당당한 풍모에 반한 여귀가 일으킨 관능적인 환각에 큰 시련을 당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은자들을 애먹이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4. 아버지와의 화해

 

177 포이보스의 마차를 타고 가던 파에톤 여기 잠들다

비록 실패했으되 그 용기는 아주 가상하지 않은가

자식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이 부모의 이야기는 입문이 잘못되었을 때 입문자의 삶에는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확인시켜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서 미래 세계의 상징이요 딸에게 있어서는 미래 남편의 상징이다.

192 창조의 역설, 영원으로부터의 시간이라는 양식의 도래는 아버지가 지니는 근원적인 비밀이다. 이것은 설명될 수 없다. 영웅이란 정확하게 그곳을 뚫고 들어가 그의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엄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를 통해 삶을 초월하고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194 욥은 끔찍한 불가마 안에서 견디는 용기와 전지전능한 신의 성격에 대한 일반적 개념 앞에서 결코 파괴나 굴복당하지 않음으로써

친구들을 만족시키는 것 이상의 위대한 계시에도 맞설 수 있음을 증명한 영웅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알 나이가 되면 시련의 고뇌가 이미 그의 내부에 태동해 있다. 세상은 더 이상 눈물의 골짜기가 아닌 행복이 기다리는 현존의 완전한 변환이다.

 

5. 신격화

 

196 인간적인 영웅이 마지막 무지의 공포를 초월하고 획득하는 신적인 상태의 한 본보기

의식의 외피가 벗겨져 나가 모든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고 변화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 상태

197 고통과 쾌락은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그가 고통과 쾌락을 깊은 휴면 상태로 구속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라고 하는 존재 혹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희망이다.

199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도 지어내시었다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에서 만드심

거룩하신 이께서 첫 사람을 지어내실 때 그를 양성으로 만드셨다.

-엉터리 주석, 성경 말씀도 안 믿으면서 사람을 양성으로 만들었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나

200 이제 인간은 이 낙원의 울타리에 의해 하느님께 대한 환상과 하느님 형상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단절되었다

205 세계는 서로 싸우는 무리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두가 토템 국기 그리고 집단의 숭배자들이다. 심지어는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도 구원자를 따르기는커녕 지엄하신 그들의 주가 가르친 에고, 에고의 세계, 그리고 에고의 종족, 신의 정복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식민지주의적 야만성과 너 죽고 나 죽자 식 전쟁의 선수로 역사에는 더 잘 알려져 있다.

207 우리가 일단 세계의 원형들에 대한 편협스런 교회적, 종족적, 국가적인 해석의 선입견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지게 되면 우리가 전수 받아야 할 최상의 도리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서슴없이 이웃을 공격하는 누구에게만 자애스런 아버지의 도리가 아님을 이해하는 게

가능해진다. 구세주가 전해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듣고 기뻐하고 힘써 전파했지만 실천만을 끝내 꺼렸던 복음은 하느님은 사랑이며,

하느님은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하며, 모든 인류는 예외없이 그의 아이들임을 가르치고 있다. 자질구레한 신조 예배의 방법 교회행정조직의 설립 같은 비교적 사소한 문제들, 서양신학자들은 여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이를 무슨 중요한 종교문제인 양 덤빈다.

208 전문 성직자들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구세주의 십자가는 한 국가의 깃발이라기보다는 민주적인 상징이다.

209 만상이 본래 비었음을 알면 그대 마음에 대자대비가 일어나리라

그대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알면 남을 섬길 수 있으리라

남을 능히 섬겨 내면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210 우주의 세계 건너 세계, 별의별 존재의 세계 (은하수를 경계로 한 지금의 이 우주뿐만 아니라 공간 끝까지 뻗어있는)에서 무한한 의 바다를 헤치고 생명을 얻었다가 거품처럼 사라지는 무량겁으로 묶이고 족쇄에 채인 의식의 중심, 시간과 시간, 수많은 생명, 죽이고 미워하고, 승리 이상의 평화를 바라면 더 자신의 팽팽한 고리 속에 갇힌 채 고통 받는 군상 무상의 허상, 긴 꿈의 세계, 그러나 이 분의 이름은 내면에서 보이는 주 이기도 하다.

211 우리 내부의 고통은 바로 저 신적인 존재다. 우리와 저 보호자인 아버지는 한 몸이다. 이것은 구원의 통찰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우리 보호자인 아버지다. 그러니 이 무지하고 유한하고 자위적이고 고통 받는 육신이 다른 육신()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에도 그 적 또한 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도깨비는 우리 기를 꺾지만 유능한 후보자인 영웅은 사나이답게 입문한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인간 안에서 영웅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213 열반이란 말은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이라는 세 겹의 불 (삼독)을 끈다는 뜻이다.

219 다도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축소된 우주를 명상하고 그 축소된 우주와 불사의 선인의보이지 않는 관계를 깨닫는 것이다.

 

6. 홍익

 

232 그러나 세상을 온통 경건하게 만들어버리는 유치한 행복에 젖어 있는 무리와 진정으로 자유로운 무리 사이에는 엄청난 심연이

존재한다. 여기에서 상징은 무너지고 초월 당한다.

-진리를 알 때 진정 자유로와지는 것이다. 진정 자유로운 언행은 경건하다.

237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영웅이 얻으려는 것도 그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영광, 말하자면 그들의 불로 불사적 존재를 가능케 하는

권능이다.

그러나 신들은 지나치게 잔혹하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이럴 경우 영웅은 그 불로불사의 영약을 손에 넣기 위해 속임수를

써야 한다. 프로메테우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순종하지 않고 속임수를 썼다가 망한 얘기

이 신을 속이거나 죽이거나 이 신과 화해하는 영웅은 구세주로 칭송을 받는 것이다.

241 불로불사의 영약을 구하러 다니는 대신 인간 세상의 기쁨에 만족하라고 충고했다.

248 육체와 그 종자인 개성

영원을 아는 것은 깨달음이요 영원을 깨닫지 못하면 혼란과 가 인다.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 아니다.

천상적인 것이 . 도는 영원이다. 여기에 이르면 육체가 썩는 것도 두려워할 바 아니다.

일본에는 인간이 재물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면 신들이 웃는다는 속담이 있다.

은총이란 특수한 경우의발원에 내려지는 삶의 에너지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249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250 생명의 원천은 개인의 핵이며 인간은 자기 내부에서그것을 찾아낸다.

 

3. 귀환

1. 귀환의 거부

 

253 영웅은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256 저는 어디에서 멈추어야 할지, 어디에서 쉬어야할지도 모르는 채 그저 뛰고 괴로워했다.

근심을 기쁨으로 잘못 알았고, 신기루를 시원한 샘물로 알았고, 기쁨을 잡으면 손 안에 남는 것은 고통뿐이었다. 왕의 권능, 지상의 소유 부와 권력 벗과 자식들, 아내와 추종자들 이 모든 존재는 제 오감을 홀렸다. 저는 이 모든 것을 원했다. 이런 것들이 저에게 복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 것이 되는 순간부터 이 모든 것들은 그 본성을 벗고 불길이 되었다.

신들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모두 당신의 손으로 꾸미신 계략에 지나지 않았다.

그 피조물들이 태어나고 고통을 받고 나이를 먹고 죽는 헛된 순환을 되풀이 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살아 있을 동안 그들은 죽음의

주재자와 맞서다 갖가지 정도의 고통을 겪는다. 이 모두가 당신에게서 온 것이다. 저 역시 당신의 희롱에 말리어 이 세상의 제물이 되고 허물의 미로를 방황하고 자아의식의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렸습니다.

-자기가 한 행동은 생각하지 않고 늘 책임을 신에게 돌린다.

 

2. 불가사의한 탈출

 

257 승리한 영웅이 여신이나 신의 축복을 획득하고 그가 속한 사회를 구원할 불사약을 가지고 원상 복귀할 대목이 되면 영웅 모험의 이 최종 단계에서 초자연적인 후원자에 의한 지원이 따르는 법이다.


3. 외부로부터의 구조

 

269 영웅은 외부의 지원을 빌려 초자연적 모험에서 귀환하는 수가 있다. 말하자면 이 세계가 합세하여 그를 도울 수도 있는 것이다.

270 그가 속해 있던 모듬살이는 그 모듬살이를 떠나 있는 자를 질투하여 영웅이 안주하고 있는 집 문을 두드리기 마련이다. 만일 영웅이 거부하면 문을 두드린 무리는 영웅의 거부를 배신으로 여기고 반격하는 것도 사양하지 않는다.

280 초자연적인 힘은 주인공의 시련에 끝까지 동참하다 마지막 단계에 나타난다. 영웅은 의식을 잃고 무의식의 상태에서 원래 그가 살던 세계로 되살아난다. 영웅은 자아를 지키는 대신 자아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조력자의 은혜로 영웅은 자아를 되찾는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재생의 영약을 가지고 돌아가 원래 속해 잇던 사회와 맞서면서 그들의 까다로운 신문과 서릿발 같은 증오와 맞서야 한다. 뭐가 뭔지 영문을 모르는 선한 사람들까지 설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 예수님은 이들의 증오에 먼저 손을 내밀고 사랑으로 다가가셔서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화해하셨다


4. 귀환 관문의 통과

 

281 영웅의 귀환은 그 저승에서의 귀환을 말한다.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

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심층에서 솟아난 지혜와 속세에서 유용한 분별 사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한다.

282 빛이 있는 세상의 언어로 언어가 무용한 저 암흑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한 쌍의 대립물에 대한 정의의 시도가 무의미한데 어떻게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는 말로 이를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오로지 감각의 배타적 증거에만 급급하는 일반인에게 어떻게 저

만유의 근원인 을 설명한단 말인가?

- 세상이 이라며 왜 굳이 영웅이 되려 하는가?

282 귀환하는 영웅이 당면하는 첫 번째 문제는 성취의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체험을 겪은 이후에 덧없는 기쁨과 슬픔, 삶의 범용과 소란한 외설스러움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문제다.

사회는 악마에게 맡겨버리고, 저 자신은 천상의 바위굴에서 문을 닫고 은거하는 편이 쉽다.

그러나 어느 정신적 산과의가 시메니와를 쳐놓고 퇴로를 차단한다 해도 시간 속에서 영원을 표상하고 시간 속에서 그 영원을 지각하는 작업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288 올림포스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의 역사는 순환 주기의 조화로운 형상을 드러내 보이면서 영겁토록 흘러갈 뿐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불변하는 형상 곧 끝없는 세계 일 뿐이다.

289 영웅과 땅의 직접적인 접촉을 단절시키면서도 그 세상 사람들 사이로 돌아다닐 때 탈 수 있는 절연 수단으로서의 백마는 초자연적인 권능을 가진 자가 설정하는 금기의 생생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90 신성한 인물의 절연은 그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가 속한 사회를 위한 예방책으로 권장되고 있음을 확인 즉 신성한 미덕에는 일촉에 즉발하는 고폭성이 있어서 터지거나 방전하거나 누출되지 않도록 예방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예방책에 심리적인

변명이 가세하고 있음은 의심할 나위도 없다.

291 자기 모험을 완성하기 위해서 귀환한 영웅은 세계의 충격을 견디어야 한다.

294 덧없는 만남과 헤어짐,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사랑의 고통이 아닌가

그의 긴 이야기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운명이 일상의 삶으로 구체화되는 완만하면서도 놀라운 역사다. 그러나 이 운명이 모든 이에게 다 구체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안으로 뛰어들어 이를 체험하고 반지를 얻어 다시 현실로 귀환한 영웅에게나 가능하다.

 

5. 두 세계의 스승

 

298 예수는 안내자이며 길이며 초월적인 세계 귀환의 동반자다. 그들 앞에서 육은 변하여 말씀이 되었다. 이 환상은 한 사람이 아닌 세 증인 앞에서 펼쳐졌다. 따라서 심리학적인 용어로는 설명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의심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관심 갖는 것은 상징체계이지 역사성은 아닌 것이다

-신자란 그의 역사성을 믿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서 역사성을 강조하면 혼란이 생길 뿐이다. 즉 암시적 메시지를 어지럽게 할 뿐 인 것이다

- 진리는 명확하고 선명하다

300 하늘에서 일천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작열한다면 빛이 그 전능한 존재의 발광에 미칠 것 같았다.

305 성 토마스 아퀴나스 - 하느님이 인간의 생각이 미칠 수 없는 높은 곳에 계신다는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하느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 셈이다. 예수의 변모는 개인적인 의지를 소각시켜 버린 추종자들 즉 스승에 대한 철저한 자기 부정에 의해 인생 개인적인

 팔자 숙명이 제거된 지 오래인 사람들에 의해 목격되었다는 사실이다.

306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됨, 즉 자기 화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즉 익명이 인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법은 그 안에서

거침새가 없다.

 

6. 삶의 자유

 

307 자기 합리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인간과 우주에 대한 본질에 이르기까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313 온 우주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라. 오직 변화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생될 뿐인 것이다. 영원이라는 왕자가

 세계라는 공주에게 입 맞출 때 잠자던 공주의 저항은 끝난다.

 

4. 열쇠

 

317 원래 이 승리는 자기 의식의 확장이며 존재와의 합일이다. (깨달음, 변모, 자유) 마지막 단계는 귀환이다. 영웅이 그 권능의 축복을 받은 경우 전리품은 영웅을 보호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마모와 손상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신화나 옛 이야기의 윤곽은 원래 애매한 법이다.

319 현대의 선진 기독교국가에서 그리스도 (로고스의 화신이자 구세주) 는 대접을 받고자 하거든 남을 대접하라는 자비의 교리를 가르치고도 범죄자로 처형당한 역사적인 인물이며 준동양적 과거의 현인이 되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고결함과 견인불발의 산 교훈으로 읽히고 있다.

322 그것이 지닌 모든 함축적인 의미들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2부 우주 발생적 순환

 

1. 유출

1.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325 이들의 학설은 각자 서로 다른 것이기는 하나

326 이 견해에 따르면 기담을 통해 인간 행동의 의식 패턴으로 이루는 무의식적 욕망, 공포, 그리고 긴장은 상징적 표현을 획득하고

 있는 듯하다.

330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현상계 저쪽 세계로 들어가 적멸에 들어가는 것이다.

331 우리가 우주 능력의 근원은 보지 못하고 그 능력에서 투사된 현상계의 형태만 볼 수 있는 것은 의식이 응축되었기 때문인데

이 의식의 응축 현상은 초의식을 무의식으로 바꾸어 놓는다. 기인의 탄생 삶 죽음은 무의식으로의 하강 및 회귀로 볼 수 있다.

영웅은 살아 있을 동안에 창조 과정 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 자다.

332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나타낸다. 가장 웅변적인 상징은 고난을 당하는 신,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에게 제물로 바친 신일 것이다.

 

2. 우주의 순환

 

333. 사대 (, , 공기,) 가 곧 각 세계의 주기를 끝맺는다. 홍수, 지진, 바람, 현재의 주기는 불로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338 신화를 창조하고 이를 보배로이 가꿔 전승시킨 옛 현인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340 신화는 우스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보여도 신화 체계는 마음을 가시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비현현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이리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허공에서 --공간

 

342 모드 피조물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나 필경은 극점에 이러러 파멸하고 그리고 회귀한다. 진정한 존재는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꿈으로 존재한다 - -???

348 목공과 금모는 빛과 어둠을 만들고 이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

 

4. 공간의 내부에서 -생명

5. 하나에서 여럿으로

6. 창조의 민화

 

372 이러한 광대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서는 승리하나 그들 자체나 그들의 업적은 무대가 초월적인 차원으로 옮겨지면 간단히 사라지고 만다. 그들은 그림자를 본질로 오해한다.

 

2.처녀잉태

1. 어머니 우주

 

 

379 무방비상태에서 그는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인 힘을 행사하는 자연의 입문의식을 치러야 하는 것이었다.

 

2. 운명적 모태

 

388 영원과 찰나의 대화, 존재하느냐 마느냐 여기서부터 조물주는 자기 사회 속에서 형이상학적 구닥다리 존재로 타락했다.


3. 구세주를 낳는 자궁

 

389 열왕의 실제적인 심판과 천상적 계시의 주사위인 사제들의 가르침에 주눅이 든 나머지 의식의 장은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인간의 이야기라는 대서사시는 목적이 서로 모순되는 분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인간의 시야도 이제는 좁아져 오직 가시적이고 손에 잡히는 존재의 표피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심연을 투시할 전망은 이제 사라졌다. 인간 고뇌의 의미심장한 형상은 이제 보이지도 않는다. 사회는 오류와 재난 속으로 빠져든다. 소자아는 대자아의 재판석을 강탈했다.

 

4. 미혼모의 민화


393 즉 이 이야기는 처녀 잉태, 아버지를 찾기 위한 여행의 출발, 시련, 아버지와의 화해, 미혼모의 정실 확정 및 입적, 사칭자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영웅이 친자로 확인되는 등의 전형적 영웅의 모티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3. 영웅의 변모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396 이제 우주 발생적 순환은 보이지 않게 된 신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갖춘 영웅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세계의 숙명은 바로 이 영웅들을 통해 실현된다.

397 영웅은 점차 우화적인 성격을 일탈하다가 다양한 지방적 전승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마침내 전설은 기록되는 시대라는 빛의 세례를 받게 된다.

398 이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월우의 화신이나 운명의 팔괘라는 초월적 지혜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희망에 따라 행동하는 완전한 인간 정신이었다.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400 인간적인 영웅은 후세 인간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위해 하강해야 한다. 그러나 전설을 만든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위대한 영웅들을 단순한 인간에 국한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들을 제한하는 지평을 넘어갔다가 보통 사람에게서도 볼 수 있는 신념과

 용기로 선약을 얻어 돌아오는 인간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엄격한 고행과 명성으로 지혜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하면 인간의 모습을 취한 하강한 신이라고 믿어질 수도

 있다. 전자의 견해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와 같은 초월적 구원을 경험하기 위해 그의 행적을 글자 그대로 흉내 내는 수가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견해를 따를 경우, 예수라는 영웅은 글자 그대로 본이 되는 전형이라기보다는 묵상해야 할 하나의 상징이다.

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방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내재적인 신성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

즉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서 선함을 얻는 것이 아니고 이를 앎으로써 신이 되는 것이다.


3. 전사로서의 영웅

 

422 신화적인 영웅은 이루어진 사상의 옹호자가 아니라 이루어지는 사상의 옹호자다. 그의 손에 살해되는 용은 현상이라는 괴물 바로 그것이니 괴물은 쇠사슬 같은 과거의 옹호자이다.

적은 자기 지위의 권위를 자신을 위해 행사하기 때문에 적이며 용이며 폭군이다.

폭군은 자만한다. 그리고 자만은 바로 폭군이 파멸하는 씨앗이다. 폭군은 자기 힘을 자기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만한다.

따라서 그는 그림자를 본질로 오인하는 광대 역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탈을 쓴 폭군들은 이웃의 선의를 짓밟고 일어서 학정을 일삼는다. 이 폭군들 역시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영웅의 기본적인 임무는 그러한 괴물과 폭군을 퇴치하고 그 인간의 삶의 무대를 정화하는 것이다.


4. 애인으로서의 영웅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432 첫 번째 영웅의 상징이 명검이라면 두 번 째 영웅의 특징적 모험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이 아버지는 곧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다.

 

6. 구세주로서의 영웅

 

440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부터가 틀린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생과 사의 끝없는 순환일 뿐입니다.

심령에 의한 조형(유출)로의 소멸, 젊음과 늙음, 탄생과 죽음, 형상을 창조하는 생명력과 타성적인 죽음의 중압은 영원히

갈마드는 것이다.

441 생명이 태동하고 이어 형상이 빚어지면, 쇠퇴가 따르고 이윽고 운명에 농락당한 잔해만 남는 것이다. 현명한 황제가 통치하는

 황금기는 삶의 순간순간의 충동에 따라 폭군이 지배하는 황무지 시대가 되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창조주였던 신도 종국에는 파괴자가 된다.

영웅이 변화를 가져오듯이 무섭고 잔인한 폭군은 한 가지 편견에 고착된 인간을 표상한다.

442 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를 십자가에 달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된다.

 

7. 성자로서의 영웅

 

443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고, 엄격하게 자아를 통제하고, 소리와 빛과 맛 같은 색에 집착하지 않고 ,애증을 버리고, 고독안에서 살고, 소식하고, 말과 몸과 마음을 삼가고, 명상과 정신 집중에 전심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데 힘쓰고, 이기심과 권세,

자만심과 색욕, 분노와 편견을 떨치고, 마음 안에서 정일을 얻고,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 이런 사람은 능히

불멸의 존재에 값하는 사람이라 일러 무방하다.

나폴리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토마스 아퀴나스- 내가 쓰는 시대는 끝났다. 나는 나에게 계시된 것을 써왔고

가르쳐왔지만 내가 보기엔 참으로 하잘 것 없다. 이제 바라건대 내가 가르치는 시대가 끝났듯이 내 삶 또한 그러하기를

-김승옥씨가 생각난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오랜 시간 절필했다.

444 정신이 신비 속으로 빠져드는 순간 남는 것은 오직 침묵뿐이다.

445 이 십자가의 관문 너머에 신 안에서의 천복이 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길이어서 그렇다.

 

8. 영웅의 죽음

 

445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4. 소멸

1. 소우주의 끝

 

458 놀랄 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459 개인은 생전에 자기 가슴에 반영되어 있던 세계를 창조하는 신에 대한 근원적인 깨달음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허약해지면 사람은 망고나 무화과나 딸기가 가지에서 놓여나듯, 그렇게 사지에서 해방된다.

460 신화는 무수한 장애물을 돌파해야 하는 영혼의 여로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삶이란 햇볕에 몸을 덥히는 것

 같은 것이지요.

462 단테의 신곡- 연옥편은 육신의 욕망과 행위에 얽매인 영혼의 참담함을, 정화편은 육신의 경험이 영혼의 경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천국편은 정신적 자각의 단계를 그리고 있다.

 

2. 대우주의 끝

 

마태복음 24:3~30 까지 인용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1. 변신 자재자

 

478 신화체계의 정의 나열-뒤르켐-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의 보고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과거에 어떻게 인간에 봉사해 왔으며 오늘 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검토해보면 신화는 삶 자체가

개인 종족 시대의 강박 관념과 요구에 의해 부응하듯이 신화 자체도 그에 부응할 것으로 비친다.

 

2. 신화 제의 명상의 기능

 

479 개인은 이 모두일 수 없다. 따라서 개인의 정체성은 개별적인 구성 인자로써가 아닌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그의 육체를 이루는 유전자도 그 사회의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개인이 실제든 상상이나 느낌을 통해서든 그 사회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의 절연을 의미할 뿐이다.

480 남자든 여자든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동사를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

진정으로 종교적인 제의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피할 길 없는 운명에 순종한다는 것이었다.

481 의무의 길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에서 추방된 자는 아무 것도 아닌 쓰레기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추방은 탐색 모험의 첫 단계일 수 있다. 따라서 이 길은 자기 내부에서 탐색되고 또 발견되어야 한다.

482 우리의 핵은 무엇일까? 우리라고 하는 존재의 기본적인 성격이란 어떤 것일까?

목표는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즉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483 사회적 참여가 결국에는 개인의 내부에 있는 전체를 깨닫게 하듯이 추방으로 인한 유랑이 영웅을 전체에 내재하는 자아에 이르게

한 것이다.

 

3. 오늘 날의 영웅

 

483 신화라고 하는 꿈의 집은 이제 무너지고 없다. 마음은 깨어있는 의식 쪽으로만 열려 있다

현대인은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 현대인은 고대의 무지로부터 빠져나왔다.

그리고 진보한 사회 안에서도 제의 도덕률 예술이라는 고대 인류 유산의 흔적은 조락의 길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은 어떤 동인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의 심성의,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의 교류통로는 단절되고 우리는 둘로 찢기고 말았다. 지금은 광명의 시대다.

그러나 빛이 있었던 곳이 지금은 어둠에 싸여 있다.

현대 영웅의 위업은 영혼이 균형일 이루고 있던 잃어버린 아틀란티스대륙의 불을 다시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487 우리는 지금 쉼플레가데스의 두 바위 산이 서로 부딪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우리의 영혼은 이 쉼풀레가데스를 지나가야 한다.

 우리는 갖가지 상징을 통해 동일한 구원이 계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고 또 알아야 한다.

하나의 노래가 인간이라는 합창대의 갖가지 음색으로 들리는 것이다. 인간이 되려면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인간의 얼굴로 바뀌어 있는 신의 얼굴을 알아보아야 한다.

487 오직 인간만이 결정적인 수수께끼다. 인간은 아득한 존재와 더불어 끝나야 하고, 이 아득한 존재를 통해 자아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해야 하며 이 사회의 이미지 전체가 개선되어야 한다.

488 인간은 그러나 내가 아닌 너로 이해되어야 한다.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지킬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 (구세주의 십자가를 지는 일)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

-하아 이 말을 하려고 관계도 없는 끔찍한 신화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얘기 했나

 

역자 후기

 

489 명저의 해독- 사상이 덜 여문 독자와의 만남에서 예사롭지 않은 방전 현상을 일으키고 이 방전현상의 체험이 독자로 하여금

그 감독의 여신으로만 사물을 파악하게 하는 편집증적 색안경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492 우리 육즙이 층층이 묻어 있던 문화는 이제 이 땅에 남아 있되, 오직 하나의 질투하는 신학에 가려져 있다. 신화나 종교를 보는 눈이 병적인 교조주의와 경직된 흑백의 논리에 길들어 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걸핏하면 조상이 우상으로 단죄되고, 하나의 신학을 옹호하기 위해서라면 오랜 역사 살림을 꾸려온 민족까지 우상의 자식들로

치부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 시대, 기댈 곳 없던 민중의 문화가 미신으로 업어치기를 당하고 충정에서 우러난 비판 정신과 각자의

자유를 겨눈 정신적 편력의 간증이 사탄의 소리 수작으로 간주 되는 이 시대에 모든 민중의 문화와 종교를 고루 짚어보며

그 바른 뜻을 더듬는 이 책을 우리 글로 옮긴 뜻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의 믿음, 다른 이들의 종교라면 듣도 보도 않고

흰 눈을 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주체로운 종교 정신을 곧추세우는 데 밑바탕 삼을 수 있다면 남의 집(종교)도 좀 기웃거려 보는데 인색해서야 되겠느냐는 뜻이다.

-바른 뜻을 더듬을 필요가 있을까? 진리는 선명하고 명확하다. 그 길을 가는 것이 어렵다고 다른 길을 가다가 신의 손을 놓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바른 길이 있는데 다른 길을 기웃거릴 시간이 없다.

 

< 내가 저자라면 >

 

이 책의 차례를 큰 틀에서 보면 출발입문귀환열쇠영웅의 모험영웅의 변모소멸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 디모데전서 4:7 )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 디모데전서1:3,4 )

 

밤하늘의 매춘부, 지옥의 마귀할멈, 본처, 2부인, 자궁, 딸들과 자보도록 해요, , 신성한 주사위, 목 졸라 죽여, 밟아 죽여, 머리채를 거머쥐고, 한주먹에 때려 죽여,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소리, 요망한 계집, 어림없는 해석 등 단 몇 페이지에서 수집한 그의 이야기 속에

나와 있는 단어들이다. 그의 책을 읽고 있다 보면 굳이 안 봐도 될 썩어가는 과정을 세세히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욕지기나는 것들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는 과정을 전 세계의 각종 신화에서 구했다는 죠셉캠벨의 정신세계가 놀랍다.


단 그가 인간 아니 네가 곧 영웅이라는 말을 하려고 전 세계에서 수집했다는 각종 기괴한 이야기는 인간이 가진 죄의 속성이

무궁무진하고 깊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미 잊혀지고 때로는 버려진 신화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 창조라고 우겨도 할 말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쓸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대로 의미를 붙이고 나름 기쁨을 누려도 뭐라 할 수 없다. 그것도 선택의 자유이며

그 결과는 자기 책임이기 때문이다.

다만 책을 쓰기 위해 그가 기울인 자료수집의 노력과 분석, 의미부여에 대해서는 감탄한다.

역자 이윤기는 후기에서 모든 민중의 문화와 종교를 고루 짚어보며 그 바른 뜻을 더듬는 이 책이라고 썼다. 역자의 후기가 이 책의 내용을 짚어주었다.

물론 역자가 은근히 말한 바른 뜻을 더듬는 이 책이란 말은 인정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인간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은 어떤 동인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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