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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3일 19시 40분 등록
가자, 아메리카로!(We, the people, 1964)
: 리오 휴버만(Leo Huberman) 저 / 박정원 역 / 비봉출판사 /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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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와 나의 대화: 소고
'가자, 아메리카로!'에서 리오 휴버만(Leo Huberman)은 ‘왜’라는 질문을 품고 ‘민중’이라는 돋보기로 미국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소수에 의해 인류는 도약적인 발전을 이뤄낸 적이 많았다. 동시에 어떤 소수에 의해 인류는 크게 후퇴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는 민중에 의해 역사는 크게 나아가지도 크게 뒷걸음치지도 않았다. 민중은 어떤 때는 천천히 다른 때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역사를 전진시켰다. ‘가자 아메리카로!’는 민중의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그 걸음들의 모음이다. 리오 휴버만은 미국의 독립전쟁, 면화 생산과 플랜테이션 농장, 노예제도, 남부와 북부의 전쟁, 경제대공황 등 굵직한 사건과 소재를 방향타 삼아 민중이 걸은 행로를 살펴본다.

저자의 필체는 유려하고 유머스럽다. 읽는 맛이 좋다. 재밌게 읽은 부분이 많았는데, 저자의 필체를 모방하여 제시해 볼까.

홍승완이 재밌게 읽은 부분: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온 이유와 과정 ... 지리적 여건에 의해 좌우된 그들의 생활 방식 ... 서부 개척의 과정, 그 과정에서 형성된 전형적인 미국민의 사고와 생활 방식 .... 북부와 남부가 서로 그렇게 달랐던 이유와 둘 간의 대립과 전쟁, 그리고 그 결과 ...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최단 기간에 세계 최대의 공업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미국의 잠재력 ... 양적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미국, 미국의 급격한 무너짐 ... 무너진 미국을 다시 세운 위대한 리더, 그의 노력과 방식 ... 소수에게 집중되는 돈과 권력 그리고 그것의 가속화 ...


‘가자 아메리카로!’의 목차를 처음 봤을 때, 내 눈에는 제1부의 제목이 ‘The Dream of America’로 보였다. 다시 보니, 1부와 2부의 제목이 같았다. ‘The Drama of America'. 하지만 ‘The Dream of America’라는 제목이 1부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아메리카로 왔을까? 꿈 때문이 아니었던가. '더 크고 좋은 빵'. '자유', 특히 종교적 정치적 자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땅은 자유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적어도 아메리카로의 이주에 도전한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아메리카로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목숨을 걸어야 했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처음 얻은 것은 빵과 자유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약노예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자유는 유보됐고 빵은 떠나기 전 만큼 형편없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렇다, 어디서건 대개 시작은 그렇다. 그러나 그런 시작이 계속되고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은 불공평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면 그들은 자신의 전부를 걸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꿈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꿈을 잃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주민들의 생활방식은 외부 환경, 특히 지리적 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지리적 환경과 생활방식에 따라 이주민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도 형성됐다. 아메리카에서 빵과 자유를 상징하는 것은 땅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 수 있는 만큼, 나중에는 가지 못할 곳이 없다는 확신이 생길 정도로 땅을 쫓았다. 그들은 그야말로 개척자였다. 그들의 삶은 개척이었다. 그들의 사고는 개척 정신으로 물들었다.

모든 나라와 문명이 그렇듯이 아메리카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 지역과 저 지역, 이 나라와 저 나라, 정부와 민중, 부자와 가난한 자... 싸움은 다양한 계층 간에 그리고 다양한 곳에서 벌어졌다. 내가 보기에 싸움의 유형은 한 가지였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싸움. 리오 휴버만에 의하면 싸움의 원인도 한 가지였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두 가지였다. 생존과 자기발전. 둘을 하나로 묶으면 '이해관계'였다. 어떤 싸움이든 그랬다. 인디언과 이주민의 전쟁, 보스턴 차 사건, 미국의 독립전쟁, 노예와 주인의 싸움, 빈농과 대농의 싸움, 남부와 북부의 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가자, 아메리카로에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미국 대공황'이었다. 리오 휴버만에 의하면, 미국은 최고의 해(1929년)를 보내고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미국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경제학의 기초 이론에서는 부(富)의 3대 요소로 토지와 천연자원, 자본, 노동을 꼽고 있다. 개인과 기업은 이 세 요소를 결합하여 재화와 용역을 창출한다. 이것을 팔아 부를 늘린다. 미국에는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있었다. 땅은 넓고 비옥했다. 그 땅에는 천연자원이 많았다. 게다가 미개척지였다. 사람들이 몰려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은 농업, 목축업, 해운업이 골고루 발전해 나갔다. 그것을 발판 삼아 공업화가 진행되었고, 단기간에 세계 최대의 공업 대국이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을 사고 팔기위해 시장이 형성된다. 상품은 시장을 통해 사람들에게 팔려 나간다. 시장에서 돈이 오고 간다. 어떤 사람은 한 상품을 독점하여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그런 사람들은 소수지만, 그 사람들이 갖고 가는 돈은 점점 많아진다. 돈이 돈을 부른다. 더 많이 팔기 위해 적절한 형태의 조직이 생겨난다. 조직들 중에서도 더 잘 팔고 어떤 분야를 독점하는 조직이 생긴다. 독점 기업이 탄생하고, 그들의 힘은 점점 더 커진다. 그들은 자본과 이윤을 따라가게끔 설계되었다(모든 기업은 독점시장을 원한다). 힘은 조절되지 못하고 지저분하고 험악한 일들이 발생한다. 민중은 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국가에 그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제도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더 악화된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민중이 아니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관료이고 정치인이다. 그들은 소수이고 권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기업가들은 돈을 갖고 있다. 둘은 서로를 원하기 때문에 잘 결합된다. 제도는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을 갖고 있는 기업과 사람을 위한 것이다. 점점 돈과 권력은 분리되지 않는다. 돈을 가진 자가 권력을 갖게 되고 권력을 가진 자는 대개 돈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 더 많은 권력과 돈이 집중된다. 독점기업은 끝없이 자라는 나무처럼 자란다. 그들은 ‘황금의 해’를 맞이한다. 물론, 그 황금은 소수의 것이었다. 그러나 영원히 자라는 나무는 없다.

1929년 그들의 황금은 돌덩어리로 변했다. 그것은 경험하지 못한 크기와 무게였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 돌덩어리를 지게 된 것은 그들이 아니라 죄 없는 민중이었다. 1929년, 이미 미국의 양적 성장은 일단락되는 시점이었다. 대량생산은 잉여상품을 만들었고, 확장 일로의 경제는 잉여 자본을 창출했다. 대량생산이 유지되려면 대량소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수요가 생산을 쫓아가지 못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당시 미국의 근로자들의 생산능력은 여전히 왕성했고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미국 내의 생산시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고 사용할 수 있는 천연 자원은 더 많아 보였다. 풍요한 생활을 보장해주는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는 더 컸으면 컸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런데 생산설비와 기계는 휴업 상태였고 원료는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물자의 부족으로 사람들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대량생산은 대량소비가 받쳐 줄 때만 긍정적인 것이다. 소비 없는 생산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아무런 가치도 제공하지 않는다. 대량소비가 가능하려면, 보통 사람들의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한다. 당시 미국 사람들은 소비할 돈이 없었다. 그럼에도 기업가와 자본가들이 소유한 많은 돈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채 잠자고 있었다. 기업의 투자가 없는 상태에서 천 4백만의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원했지만 일자리는 그 수보다 훨씬 적었다. 많은 사람들의 주머니는 텅 비었고 미래는 암울했다.

리오 휴버만에 의하면, 미국 대공황의 원인은 '생산제도'였다. 그것은 '최고도로 발전한 최첨단의 자본주의'의 결과였다. 미국은 돈이 최선인 세상이 되었고, 돈은 소수의 기업이 독점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위험성을 예견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자본주의의 맹렬한 기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무너지는 미국을 살리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New Deal) 정책이라는 칼을 뽑아 들었다. 그는 뉴딜 정책의 핵심을 구호(Relief), 회복(Recovery), 개혁(Reform)에 두었고 그것은 적절한 것이었다. 세 가지는 단계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병행되고 복합되었다. 루즈벨트와 미정부는 빈곤에 빠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여러 정책을 동시다발로 집행했다. 특히,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공사업에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 이 방법은 주효했다.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일을 하고 돈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입했다. 소비는 회복됐다. 이것은 무너지는 미국을 살려 낸 뉴딜(New Deal) 정책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리오 휴버만은 뉴딜 정책에 대해 거의 6개의 장(章)을 할애하고 있다.

리오 휴버만은 제2차 세계대전의 끝에서 펜을 멈추었다. 책의 끝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민중은 뉴딜을 잊어서는 안된다. ... 그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그들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 그들의 경제적 · 정치적 활동은 배가되어야 한다. 그들은 일자리와 평화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투쟁을 통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일자리와 평화는 이윤(利潤)만을 위한 생산제도가 아닌, 사용(使用)을 위한 생산제도 하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오늘날 미국은 더 나아졌는가? 천만에! 내가 보기엔 거의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됐다. 2001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 중 4%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은 세계 부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의 부호 리스트의 상위는 미국의 독차지다. 그리고 그들은 거의 대부분 기업인이다. 제일 큰 부자 3명이 소유한 재산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60개 국가 전 인구가 소유한 재산보다 더 많다. 미국 내의 빈부 격차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민중인가? 천만에! 과거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사람들이다. 대통령과 고위 각료, 대기업이 그들이다. 그들은 상황과 때에 따라 기업에서 정부로, 정부에서 기업으로 옮겨 다닌다. 2000년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부지(George Walker Bush)의 제1기 고위 각료진만 봐도 알 수 있다. 장관급 각료 중 90% 이상이 대기업의 고위 임원 출신(그리고 백인)이었다. 언론, 비영리 단체, 학자 출신(그리고 흑인)은 극히 소수였다. 어떻게 이렇게 한쪽으로만 쏠릴 수 있나? 미국에서 유능한 사람은 모두 기업에만 있는 것일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그리고 꽤 정확하게 추론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미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권 더 읽어볼 계획이다. 그리고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대통령의 리더십과 개혁 방식도 좀 더 알아볼 생각이다.


■ 나의 목소리: 저자되기

리오 휴버만의 '가자 아메리카로!'는 미국의 역사를 아는 데 매우 유용한 책이다. 게다가 쉽고 재밌다.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은 책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제2부의 내용이 뉴딜 정책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용이 너무 길다. 뉴딜 정책에 관한 해설서로 따로 출간해도 될 정도다. 그에 반해 신대륙에 이미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인디언과 이주민들의 갈등, 제1차 대전이 미국에 미친 영향, 제2차 대전에 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그리고 민중의 역사를 다루려면 노예제도에 대한 비중을 좀 더 늘렸어야 한다고 본다.


■ 저자의 목소리: 인용
- ‘[]’ 안의 숫자는 page를 지칭한다.
- ‘인용’에서 별다른 표기가 없을 경우, 저자의 말이다.
- ‘*’ 표시는 간단한 설명과 나의 느낌이다.

역자 서문
[5] 이 책은 그들 민중의 이야기다.
- 박정원, 역자

[5] ... 그의 역사시간은 무엇이 일어났는가 보다는 왜 그것이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로 대부분의 시간이 채워졌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의 주제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했다.
- 박정원, 역자

제1장 가자, 아메리카로!
[23~24]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오랜 시간 동안 심사숙고하는 법이다.

제2장 새출발
[49] 비옥한 토질, 더운 기후 ...... 전원(田園), 플랜테이션 ...... 초기에는 계약 노예노동자, 후에는 흑인 노예 ...... 공업 제품을 수입하고 쌀과 잎담배 등의 유일작물을 수출 ...... 무사안일의 부드러운 매너에 느린 말투와 귀족적인 태도의 느린 움직임, 토지 안에서 안정을 누리고 여유를 즐기는 농장주들 ...... 이것이 1760년의 남부였다. 남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지리적 여건이었다.

[57~58] 1760년까지의 뉴잉글랜드의 생활 양식: 많은 작업을 요하는 돌 많은 토양 ...... 다양한 작물을 산출해내고 주인과 그의 아들들이 일하는 작은 농장 ...... 여러 개의 작은 마을들과 몇 개의 연안도시들 ...... 손짓해 부르는 바다 ...... 생선 비린내 ...... 조선소의 망치 소리 ...... 기능 근로자-제화공 · 목수 · 로프 제조공 · 대장장이 · 벽돌공 · 직공(織工) ...... 가내공업 ...... 럼주 양조장 ...... 상업적인 베틀집과 대장간, 일부 계약 노예노동자와 몇 안 되는 흑인 노예, 그러나 주로 자유로운 백인 인력 ...... 별로 풍요하지 않으며 정착민들로 하여금 힘들여 일하도록 강요하는 자연 ...... 능숙한 선원들이 운항하는, 국내에서 만든 견고한 선박 ...... “재주꾼”들 ...... 세계 시장을 낚는 사냥꾼들 ...... 빈틈없고 진취적인 장사꾼들.

[60] 1760년까지의 중부 식민지: 모피 교역의 번창 ...... 비옥한 토양 ...... 각종 직물, 특히 밀을 생산하는 잘 손질된 작은 농장들 ...... 작은 도시들과 연안의 큰 항구 도시들 ...... 소수의 흑인 노예와 많은 계약 노예노동자 ...... 가내공업, 상품 제조업의 시작, 그러나 아직도 제조업품을 수입하는 단계 ...... 배와 교역 ...... 사략선 ...... 네덜란드인, 스웨덴인,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독일인, 영국인.

[61] 신세계를 향해 어려운 여행을 감행했던 많은 사람들이 신세계를 보기도 전에 죽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와서 보았다. 그리고 죽었다.
*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몰려든 이유는, 빵과 자유 때문이었다. 더 좋고 더 많은 빵, 종교와 정치적 자유. 사람이 모이면 시장이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시장에는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생기고 조직된다. 아메리카로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목숨을 걸어야 했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빵과 자유 때문에 온 그들이 얻은 것은 빵과 자유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약노예노동자로 시작해야 했다. 자유는 유보됐고 빵은 떠나기 전 만큼 형편없었다. 그것이 시작이었고 어디서건 대개 시작은 그런 법이다.

제3장 모든 인간은 평등한가?

[67]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미국적 사고방식은 변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대개 새로운 것 그리고 혁신은 ‘있는 곳’이나 ‘있는 집단’에게서 시작되지 않는다.

[67~68] 문명의 끝과 미개의 시작이 만나는 곳, 이곳이 변경이었다. 문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이곳의 개간지에서는 땅이 거저이거나 값이 아주 쌌다. 바로 문턱까지 황야가 닿아 있던 이곳에서는 인생을 처음부터 재출발할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변경으로 왔다. 살고 있던 곳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계약노예노동자들, 모험을 사랑하는 사람들, 구 정착지에서는 발전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야심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제4장 당밀과 차(茶)

[82] 식민지 주민들은 무엇이 대영 제국의 발전을 돕는 것이며, 무엇이 서인도 제도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을 부자로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사는 그들 자신이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제국의 법을 지켜서 잘 살 수 있다면, 그런 법은 지켰다. 그러나 잘 살기 위해서 법을 어겨야 한다면 그런 법은 지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돈지갑에 구멍이 뚫리느니보다는 영국의 법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 나았다.

[91] 서민층은 그들의 주된 분쟁의 상대가 유산(有産)계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유산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도록 선동되었다. 참으로 오랜 전통적 수법이었다.
* 미합중국의 탄생 과정, 즉 아메리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독립의 원동력은 대의명분보다는 이익 추구였다. 영국이 대부분의 식민지들이 단결할 수 있는 단초를 여러 번에 걸쳐 제공했기 때문에 독립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고 미합중국이 탄생할 수 있었다.

제5장 더 완전한 연방을 이루기 위하여

[112] 혁명은 확고한 신념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주저하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사물을 그들의 방식대로 보게끔 설득했다.

[116] 전쟁은 1783년 끝났지만 혁명은 계속되었다. 전쟁은 미합중국 국민들의 정부의 변화를 의미한 것이었지만, 혁명은 국민들간의 공존(共存)하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했다.

[117] 혁명은 미국을 영국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켰지만,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을 상류계급의 지배라는 구세계적 사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 독립전쟁이 아니었더라도, 미국은 영국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미국은 이미 영국을 넘어서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120] 혁명이란 말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 중의 하나는 ‘변화’이다.

제6장 총 하나, 도끼 하나

[143~144] 들소와 사슴들이 동물의 놀라운 본능에 의해 물을 찾아 산 사이를 누벼 가장 가까운 길을 밟고 간다. 그 뒤를 인디언들이 따른다. 다음에는 백인 상인들이 인디언들의 발길을 따른다. 그 길을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찾아 밟고 간다. 사냥꾼 뒤를 개척농민이 간다. 그는 그의 땅을 개간하고 통나무집을 짓고 들판에는 가축을 놓아기른다. 오래지 않아 또 하나의 이주민의 물결이 도착한다. 개척농민은 땅과 집을 새로 온 이주민에게 팔아버리고 더 서쪽으로 이동해서 다른 곳을 개척하러 떠난다. 새로운 이주민은 그가 산 통나무집을 개량하고, 벽돌로 굴뚝을 쌓고, 창문에 유리를 달고, 좀 더 많은 땅을 개간한다. 이곳으로 또 다른 이주민들이 도착한다. 이미 손이 많이 간 땅은 값이 올라 있고, 땅의 임자는 모든 것을 팔고 몇 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다시 똑같은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변경지대였던 곳이 이제는 넓은 공장과 잘 지어진 집과, 훌륭한 도로와 학교 · 공장들이 늘어선 도시-문명지대-가 된다. 그 동안 서부에는 새로운 변경선이 창조된다.

[144~145] 개척자에게는 도구가 필요했다. 그에게는 총 하나, 도끼 하나, 그리고 옥수수 한 자루가 있었다.

[151] 개척민들은 그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옛 생활방식을 바꾸는 어려운 작업을 해야 했다. 변경선은 미개와 문명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개척농민은 그의 문명생활을 포기하고 한동안은 실제로 미개인이 되어야 했다. ... 그들의 모든 행동들은 그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황야가 그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다. 그러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들은 조금씩 조금씩 황야를 변형시켜 갔다. 그러나 그 사이에 그들 자신도 변형되어 갔다. 그들은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우리가 미국인의 전형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변경생활의 결과라 할 수 있다.
* 서부 개척민들은 새로운 인간이 되어야만 했다. 왜? 생존을 위해서. 선택의 여지는 적었다.

[151~152] 황야와의 그러한 투쟁이 개척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투쟁은 그들에게 자립을 가르쳐 주었다. 자신의 두 손으로, 오로지 자신의 힘에만 의존해서 낯선 상황과 맞섰고 그리고 정복했다. ...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었다.
황야와의 투쟁은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 끝까지 살아남아 성공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었다. ... 그는 자신을 믿었고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과 열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믿었다. ... 개척자는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가 누구인가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배웠다. ... 서부에서 그들은 평등했다. ... 누구든 자기 일에 성공한 사람은 다른 어떤 사람과도 평등할 수 있었다.

[152]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발명가가 된다. 동시에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153] 개척자의 생활은 소박하고 단순했다. 그는 화려한 것을 혐오했다. 그는 꾸밈을 싫어했으며, 그의 태도는 직선적이었다. 그는 평등과 자유를 믿고 있었다. 그는 자주적이고, 강한 자존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고, 두려움을 몰랐으며, 지칠 줄 모르는 부지런함과 성공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갖고 있었다. 황야에서의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 ‘그’는 ‘미국인’이 되었다.
[169~170] 증기선들 간의 속력 경쟁에 나오는 노부인 사례.
* 저자의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웃다 넘어가는 줄 알았음!

[174] 1770년에 시작된 개척민 가족들의 행렬은 선구자들의 길잡이 표지를 따라 산을 넘고 그 너머 땅으로 갔다. 그들이 처음 그곳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그곳은 황야였다. 땅에 굶주린 사람들의 무리가 그들의 뒤를 이었다. 총 하나, 도끼 하나, 그리고 옥수수 한 자루로 그들은 냉혹하고 어려운 싸움에 도전했다.
* 총으로 자신을 지키고 먹을 것을 잡았다. 도끼로 잠잘 곳을 마련했다. 옥수수로 내일의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총, 도끼, 옥수수는 개척민들의 손이었고 발이었고 집이었고 음식이었다. 그것들은 든든한 친구였다.

제7장 이상하고 다채로운 변경- 그 마지막

[198] 1868년 철조망의 발명과 1874년에 시작된 목축지대 전역에 걸친 철조망의 판매는 들판을 쪼개어 개인 소유의 목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199] 철조망의 발명은 160에이커의 자작농장을 가능하게 했다.
* 인터넷, 전화, 컴퓨터, 증기선 등 개인의 일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의 발명의 영향력.

제8장 공업의 북부

[206] 남아돌아가는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문제는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항상 절박한 문제가 된다.

[218] 1860년까지 동북부 지방은 미국의 공업 중심지로서의 토대를 굳혔다. 해운업과 농업은 옛날과 변함없이 영위되고 있었지만, 공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 지방은 공업에 이상적인 곳이었다. 이곳에는 수력(水力) · 목재 · 석탄 · 철 및 기타 필요한 금속들이 있었다. 이곳에는 투자될 자본이 있었다. 이곳에는 이민의 물결로 끊임없이 확장되어가는 시장이 있었다. 이곳에는 수송업에 숙련된 상선(商船)의 대부대가 있었다. 이곳에는 유럽에 흔히 있었던 ‘금지 명령’도 없었다. 불친절한 정부의 제약도 없었다. 누구든지 어떠한 견습 기간이나 허가나 인가를 거치지 않고서도 언제나 어디서나 어떠한 사업에든 뛰어들 수 있었다. 이곳에는 대규모의 사업을 할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있었다.

제9장 농업의 남부

[221] ... 왜 남부는 북부와 같이 공업으로 향하지 않았을까?
남부인들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작물을 경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원인의 일부였다. 일반적으로 농부에게는 가장 큰 걱정거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경작물을 경작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경작한 농작물을 파는 일이다. 남부에게 면화를 경작하는 농부에게는 그런 걱정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남부인들은 실제로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미국에서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사업에 투자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의복을 만들어내는 기계들에 공급할 면화를 재배하는 일이었다. 1860년까지 면화는 남부의 왕이었다. ... 지구상의 어느 곳도 면화를 재배하는 데 남부의 기후만큼 알맞은 곳은 없었다. ... 완전무결한 기후, 비옥한 토양, 적절한 시기의 풍부한 강우량, 그 모든 것이 이상적이었다.
* 남부인들은 공업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하지 않았다.

[222] 북부의 제조업자가 부녀자들, 어린이들, 농한기의 남자들, 노동을 절약하는 기계들, 이주민들의 도움으로 노동력 문제를 해결했던 반면, 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는 흑인 노예들로 눈을 돌렸다.

[224] 남부인들은 유일작물 재배와 흑인노예 노동력의 결합이라는 그들의 특수한 조건에 플랜테이션 제도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그것을 채용했다.


[227] 어떤 감독들은 노예들을 일요일 뿐 아니라 토요일 오후까지도 쉬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나머지 날들에 그들로부터 더 많은, 더 나은 작업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어떤 감독들은 토요일 오후의 휴식이 결코 더 많은 면화의 생산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감독들은 친절한 대우와 근면에 대한 포상, 또는 때때로 지급되는 음식 외에 여분의 음식을 제공하는 일, 이따금씩 잎담배를 분배해 주는 일 따위가 면화 생산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발견했고, 어떤 감독들은 노예를 엄하게 다루고 감시를 철저히 하고 지급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금지’ 사항들을 강요하는 것이 면화 생산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예들에 대한 대우는 감독에 따라, 그리고 어떤 방법이 면화 생산에 가장 유익한지 그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달랐다.
* 접근법은 ‘당근’ 아니면 ‘채찍’ 아니면 둘을 혼합한 것이었다. 어떤 접근법을 활용하든 목적은 같았다. 더 많은 생산이었다.

[241] 1853년 5월 13일자 ‘리치몬드 데일리 뉴스’지에는 고급 여름 휴양지에 위치한 호텔에서 일할 흑인 노예들을 구하는 광고가 실렸다.
온천장 종업원 50명 구함.
식당 담당, 침실 담당 및 기타.
위와 같이 임대하실 분 즉시 연락 바람.
- 톨러 · 쿠크 호텔 -
* 노예는 재료 중 하나였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인력중개업체들을 통해 비정규직(계약직) 근로자들을 임대하고 있다.

[241] 아래의 광고문을 보면 백인들의 눈에 비친 흑인들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알 수 있다.
보안관 세일.
페어필드 재판소에서 판매합니다.
흑인 2명, 말 2필, 조랑말 1필, 수레바퀴 1벌, 침대 1점, 말 안장 1점.
- 보안관 사무실. 1852년, 월요일 19일.
* 노예는 재료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귀족들에게 노예는 중요한 재산이었다. 노예는 재료로써, 재산으로써 값이 매겨졌다.

제10장 땅 주인과 돈 주인의 싸움

[247] 분쟁은 불가피했다. ... 북부와 남부는 일과 사고방식, 생활이 서로 달랐다. 북부에서는 소규모의 농업, 해운업, 발전하는 공업이 있었고, 그 모두를 백인 자유노동에 의존하고 있었다. 남부에서는 흑인 노예노동에 의한 유일작물의 농업이 있었다. 두 지역은 생활의 모든 면이 달랐으므로 서로 분리될 수 없었다. ... 그 분쟁은 60년 이상 게속되었고, 종국에는 ‘남북전쟁(the Civil War)’으로 끝을 내렸다.
양 지역 간의 분쟁은 공업의 북부와 농업의 남부 간의 상반된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공업의 북부에 유리한 것은 농업의 남부에 불리했고, 마찬가지로 농업의 남부에 유리한 것은 공업의 북부에 불리하였다.
*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싸움. 기득권자들 간의 싸움. 내 것을 더 늘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위한 싸움.

제11장 자원 · 인력 · 기계 · 돈

[279]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대공업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대농업국으로도 성장했다. 사실상 미국이 세계적인 공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을 가히 세계의 곡창으로 만들었던 미국 농업의 대대적인 확장이 그 주된 원인이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은 해외로 수출되어 미국이 필요로 하는 수입품-물품과 돈 모두-을 수입하는 데 지불될 수 있었다.
* 미국은 토지부터 천연 자원, 노동력, 기계, 돈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을 갖고 있었다. 초창기에는 토지가 미국인들을 먹여 살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계와 돈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제12장 더 많은 자원 · 인력 · 기계 · 돈

[296] 공업 부문에서 1860년 세계 4위에 머물렀던 미국은 1894년에는 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 1859년에서 1899년까지 40년의 기간 동안 공장의 수는 3배, 임금 노동자의 수는 4배, 공업생산품 가액은 7배, 투자액은 9배 증가했다.
* [296]의 표 ‘미국 제조업의 성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303~304] 세계 면적의 5.7%, 인구의 6.1%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도표에 열거된 중요 생산물의 생산에서 다른 모든 나라를 앞지르고 있었다. 자원 · 인력 · 기계 · 돈의 결합이 놀라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 [304]의 그래프 ‘세계 전체에 대비한 미국의 경제적 위치(1929)’는 흥미로운 자료다. 2005년 기준으로 이것들을 다시 만들어보면 결과는 어떨까? 다른 건 몰라도, 핵무기의 수에서 미국은 세계의 50% 이상을 갖고 있을 것이다.

[307] 주식회사의 유리한 또 다른 점은 회사가 가지는 영구적인 생명이었다. ... 법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즉 법인(法人)은 회사를 구성하는 구성인들과는 분리된 존재이다. 그러므로 구성인들이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 있게 된다.
* [305~307]에 주식회사의 등장 배경이 잘 정리되어 있다.

제13장 가진 자와 못가진 자

[317~318] 노동자 계급은 그들의 노동조합을 통해서 자본가와 싸웠다. ... 양쪽 모두에 살상이 행해졌다. 그것은 무서운 투쟁이었다.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은 이러한 투쟁의 원인 하나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여러분은 이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천하고 기계는 귀하다고. 많은 감독자들이 예민한 기계에 무리한 작업을 시켰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있습니다만, 과로한 노동자에게 무리한 작업을 시켰다는 이유로 해고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쓰던 사람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쓸 수는 있습니다. 언제든지 그 자리에 들어설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큰 돈을 들이지 않고는 쓰던 기계를 버리고 새 기계를 들여 놓을 수 없습니다. ...... 재산과 인간을 비교할 때, 이제 재산은 결코 1위가 아닌 2위로 물러나야할 때입니다.”
재산이 1위였고 인간의 생명은 2위였다. 그것이 마찰의 원인이었다.
* 이제 기업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재산이 1위이고 인간의 생명은 2위다. 순위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그 간격은 매우 좁아 보인다.

[318] 산업혁명은 노동자의 운명을 자본가의 손에 맡기도록 만들었다.
* 지식혁명은 기업의 생명을 인재의 손에 맡기도록 만들고 있다. 적어도 전보다는 그렇다.

제14장 무일푼에서 백만장자로

[347] 주식회사의 상대적 중요성(1930년 1월 1일 전후)
주식회사 재산에 대한 200대 기업의 지배 비율(은행 제외): 49.2%
사업재산에 대한 200대 기업의 지배 비율(은행 제외): 38.0%
국가의 전체 재산에 대한 200대 기업의 지배 비율: 22.0%
* 자본의 집중화. 대기업은 처음에 돈을 가졌고 돈이 많아질수록 힘을 가졌다. 전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전세계의 미국화(美國化)를 도왔다.

[357~358] 몇 년 전 스메들리 D. 버틀러(Smedley D. Butler) 해병 소장은 미국 대기업의 이익 수호자로서의 자신의 직무를 생생한 어투로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나는 33년 4개월 동안을 우리나라의 최정예 군대, 해병대의 현역군으로서 보냈다. 중위에서 소장까지 이르는 모든 장교 계급을 거치면서 복무하는 동안의 나의 직무란 대기업, 윌 스트리트 및 은행가들을 위한 고급 폭력단원으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자본주의의 깡패였던 셈이다. ...
그런 식으로 나는 미국 석유업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1914년 멕시코, 특히 그 중에서 탐피코의 확보에 주력했다. 나는 하이티와 쿠바를 내셔널 시티 뱅크 사람들이 세금을 징수해 들이기에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조력했다. ... 나는 1909년에서 1912년까지 브라운 브라더즈의 국제은행을 위해서 니카라과를 소탕하는 데 조력했다. 나는 미국 제당업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1916년 도미니카 공화국에의 선도역(先導役)을 맡았다. 나는 1903년 미국의 과일 회사들을 위해 혼두라스를 “바로 잡는 데” 조력했다. 1927년에는 중국에서 스탠다드 석유 회사가 방해를 받지 않고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협조했다.
나의 복무 기간 동안, 나는 내게 뒷줄을 대고 있는 녀석들의 말처럼, 멋진 해병대원이었다. 내게는 포상과 훈장, 그리고 진급이 돌아왔다. 지난 날을 다시 돌이켜 볼 때, 나는 내가 알 카포네에게 몇 가지 면에서 선생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의 폭력 무대는 기껏해야 도시의 세 구역 정도였지만, 우리 해병대의 무대는 세 대륙이었다.”
* 스메들리 D. 버틀러(Smedley D. Butler) 해병 소장이 1935년에 한 발언이다. 그의 말은 지금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니, 더 심해졌나? 그럴 것이다. 한 나라에 잉여상품과 잉여자본의 조용하고 극히 효과적인 침투시켜 미국의 영향권 내로 만든다. 말을 안 들으면? 때려줘야지, 죽지 않을 정도로 실컷!

[361] 17세기 초의 미국은 황금의 해 1929년의 미국과는 매우 달랐다. 야만인과 야수들만이 살고 있던 황야가 세계 역사상 전대미문의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제15장 백만장자에서 무일푼으로

[366] 1930~32년의 무서운 불황의 시기에, 세계 최대의 부국은 ‘병든 나라’였다.
미국의 어디에서나 빈곤을 읽을 수 있었다. ...
은행은 연이어 문을 닫았다. 장래를 위해서 절약하고 저축해 왔던 수백만 인구의 희망과 꿈도 닫혔다. 1932년 불황이 극도에 달했을 때 은행은 하루에 40군데 꼴로 쓰러지고 있었다.
* [368]의 통계수치는 당시의 미국 사정을 압축하여 보여준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는’ 사람들이었고, 가장 피해가 적은 집단은 ‘있는’ 사람들이었다.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371] 1929년경 절정에 달했던 경제활동의 수준은, 1929년에서 1932년까지 전례없는 속도로, 전례없는 한계까지 추락했다.
* 1929년은 미국에게 있어 황금의 해였다. 그러나 그 황금은 소수의 것이었다. 1년 후 미국은 경험하지 못한 속도와 규모로 무너졌다.

[371~372] 미국의 근로자들에게 어떤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생산능력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왕성했으며, 계속 증대하고 있었다. 국내의 생산시설과 천연자원은 옛날과 변함없이 이용될 수 있었다. 생활의 안락을 제공해 주는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 역시 더 컸으면 컸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런데 기계는 유휴상태였고 원료는 사용되지 않고 썩고 있는 동안, 한편에서는 물자의 부족으로 사람들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돈은 아무리 굴려도 이윤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몇 사람의 손 안에서 하릴없이 놀고 있었다. 그리고 천 4백만의 근로자들은 있지도 않은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372] 1929년의 공황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원인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생산제도였다. ... 미국이 앓고 있던 질병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최고도로 발전한 최첨단의 자본주의였다.

[373~374] 1929년 미국에는 금융회사 외에 30만의 주식회사가 있었다. ... 30만 중에는 200의 자이안트가 있었는데, 이 자이언트들은 어찌나 컸던지 나머지 299,800의 회사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컸다.
1929년, 금융회사 외의 총 30만 개의 회사들 중 200개 회사가,
이자의 56.8%를 지불했다.
현금배당의 55.4%를 지불했다.
순이익의 56.8%를 벌었다.
저축의 69.3%를 저축했다.
* 기업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기업의 돈은 다시 소수의 차지였다. [382]의 수치가 말해준다.

[383] 확장은 그 자체로 축소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확장이 커질수록 그에 따르는 축소도 커진다. 1932년의 폭락을 설명하는 것은 1929년의 공황이었고, 1929년의 공황을 설명하는 것은 그 이전의 붐이었다.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축적,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축적 ......의 연쇄사슬은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분명 끊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사슬은 끊어졌다. 가장 약한 고리의 역할을 한 것은 주식시장의 투기 소송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근본적인 요인은, 자본주의 체제가 그 존속을 무한한 확장, 생산력의 무한한 해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미 무한한 확장에의 벽을 자동적으로 쌓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장이 불가능할 때는 수축한다.

제16장 아무도 굶주리게 할 수는 없다

[385]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 정책”은 하나의 혁명이라 불렸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혁명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혁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념적으로 혁명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혁명이 아니었다.
* 뉴딜 정책은 ‘관념적으로 혁명’이 아니라 ‘관념의 혁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뉴딜 정책이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 제도를 뒤엎지는 못했지만, 뒤엎었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위험부담이 너무 크지 않았을까.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른다. 혁명은 변화이지만, 그것은 불확실하고 급격한 변화다. 그래서 어렵다. 시도 자체가 어렵고 성공하기는 몇 배 더 어렵다. 거대한 국가, 많은 사람들, 소수의 강력한 저항세력들 속에서 사고의 혁명인 동시에 경제 제도의 혁명, 그 둘에서 동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한 가지 더! 이 책에서는 많이 다루고 있지 않지만, 루즈벨트의 리더십과 개혁 방식도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더 알아 볼 것.

제17장 다시 일자리를 주기 위해
[415] 정부의 지출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정부의 지출은 사람들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었다. 정부의 지출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소비의 회복”을 가져 왔다. 정부의 지출이 감소되었을 때는 회복세도 감소되었다.
* 1929년, 이미 미국의 양적 성장은 일단락되는 시점이었다. 대량생산은 잉여상품을 만들었고, 확장 일로의 경제는 잉여 자본을 창출했다. 대량생산이 유지되려면 대량소비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수요가 생산을 쫓아가지 못하는 시점에 도달했다(물론 이것이 대공황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대량소비가 가능하려면, 보통 사람들의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했다. 사람들의 주머니에 어떻게 돈을 채워줄 것인가? 답은 정부의 공공사업에 있었다. 공공사업에 정부가 많은 돈을 쏟아 부었고 일자리가 창출됐다.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일을 하고 돈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입했다. 소비는 회복됐다.


제18장 판매자도 주의하라

[452] 임금 · 시간법과 와그너 법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2차에 걸친 재임기간 동안 민중이 그를 지지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 중의 일부였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단순히 자본주의가 제대로 운행되게 하는 것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대다수의 국민에게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운행되기를 원했다. 부자들은 첫 번째 목표에서는 그를 지지했으나 두 번째 목표에서는 그와 싸웠다. 빈민들은 두 가지 모두에서 그를 지지했다. 대기업들은 재산의 가치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 뉴딜법(예를 들어, 산업부흥법)은 지지했으나,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 뉴딜법(예를 들어, 사회보장법)은 공격했다.
* [453]에 나오는,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의 우화를 통한 설명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리더에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중요하다. 그는 리더였다.

제19장 세계적인 무법상태의 전염병이 번지고 있다.

* 19장에는 미국이 제2차 대전에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던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미국이 제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된 이유도 잘 담겨져 있다. 한 마디로, 이해관계에 의해 중립과 참전이 결정됐다.

제20장 일자리와 평화

[489] “문제는 기업가들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악하거나’ ‘탐욕스럽거나’ 또는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을 옭아매고 있는,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다이나믹한 제도가 집단적 · 민주주의적 목적에 맞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 진정 요구되는 것은, 민주적으로 규정된 대중의 이해관계에 의해 지배되는 광범위하고 일관된 정책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아직까지 달성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 로버트 린드(Robert S. Lynd)
* 로버트 린드는 미국의 유명한 사회학자다.

[489~490] 1938년 4월 29일,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의회에 보내는 교서에서 미국민에게, 그들의 자유와 정체(政體)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에 주목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민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었다. 반대로,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였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적(私的)인 힘의 집중이 증가되고 있습니다. ...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은, 우리가 자유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주장이 현실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만일 그러한 위험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민주적인 정부를 지배하고자 그토록 안간힘을 쓰고 있는 집중된 사적인 경제력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
집중된 금융 및 관리(管理) 지배의 무거운 손길은 미국 산업의 광대한 전략지점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소기업가의 독립적인 위치는 미국 생활에서 점점 더 작은 것으로 위축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기업은 자유기업으로서의 본질을 점점 잃어가고 있으며 사적인 집단주의 단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형 자유기업제도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은 유럽형의 위장된 카르텔 조직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
어떤 국민도, 특히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전통을 가진 우리 국민은 더구나, 불과 몇몇 사람의 지배 하에서 압박해 오는 무력감을, 일반 대중의 기회 균등을 서서히 잠식해 가는 현상을-그러한 현상은 지금 우리의 전 경제에 만연되어 있습니다-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490~491] 1888년 12월 3일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집중된 자본의 위업을 살펴 볼 때 우리는 트러스트, 기업 결합 및 독점의 존재를 발견합니다. 한편, 시민은 멀리 뒷전에서 고전하고 있거나 철(鐵)의 발굽 아래에서 짓밟혀 죽어 가고 있습니다. 법에 의해서 면밀하게 억제된 존재이어야 할, 그리고 국민의 종복이어야 할 기업은, 급속히 국민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491] 사기업은 이미 오래 전에 자유기업으로서의 본질을 잃어 버렸다.
소수의 수중으로의 지배력의 집중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후계자인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은 1947년 1월 의회에 이렇게 보고했다.
“‘임시국민경제’ 위원회의 조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반 세기의 반트러스트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복지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 중의 하나는, 소수의 거대한 조직의 수중으로 힘의 집중 현상이 증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 중, 경제적 집중을 향한 이같은 장기적인 경향은 한층 가속되었습니다. 그 결과 전 산업은, 더 큰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생산을 제한하고 고용과 구매력 감축시킬 수 있는 하나의 또는 소수의 대조직에 의해서 예전 어느 때보다도 더 큰 규모로 지배되고 있습니다.”
일자리와 평화의 문제는 이와 같이 우리의 독점구조와 이윤제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가 ‘자유기업’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경제제도가 독점자본의 사적인 목적을 위해 독점자본에 의해 지배될 것인가, 아니면 국민 자신의 복지를 위해 국민에 의해 지배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민중은 뉴딜을 잊어서는 안된다. ... 그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그들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 그들의 경제적 · 정치적 활동은 배가되어야 한다. 그들은 일자리와 평화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투쟁을 통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일자리와 평화는 이윤(利潤)만을 위한 생산제도가 아닌, 사용(使用)을 위한 생산제도 하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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