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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9일 10시 18분 등록
1. 프롤로그

소설의 좋은 점은 상상의 나래 속에서 그 시대로 돌아볼 수 있다는 재미이다. 지난주 읽었던 목민심서는 백성을 사랑하는 엄격한 목민관의 지엄한 목소리를 들었다면, 소설 목민심서는 인간적인 다산의 역경과 그를 학문과 저술로 나타난 인간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진흙탕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힘든 유배생활에서 당신이 만든 다산 세계가 선하게 마음에 들어왔다.

18년의 세월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다산선생께서 고향인 마현으로 돌아다보니 열한 살 배기 손자가 절을 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한 아이가 자라서 장성하는 나이가 바로 18년의 세월이었고, 다산이 과거에 뜻을 두고 관리의 길을 걸었던 시기도 이와 같았다. 39세의 앞날이 창창한 앞날을 가진 50대 후반의 초로의 늙은이로 변하게 하는 것도 바로 이 18년의 세월이었다. 시대가 18세상이요, 개인의 영달만을 위한 18놈들만 득세한 시대였다. 당신은 그 세월의 무서움을 학문을 통하여 이겨내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승리이다.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있다. 백성을 헌신짝처럼 버린 임진왜란도 그랬고, 병자호란도 그랬다. 대학의 궁극적 이상인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가 이루어진 기간이 얼마나 될까? 결국 유교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아 소수의 집권세력만 배불리 사는 것을 추구했다. 그리고 추악한 권모술수를 통하여 그들은 정권을 유지하였고, 끝내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제에 의하여 사라지게 된다.

본문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다산선생이 해배되어 고향인 마현으로 돌아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을 때, 사회는 삼정의 혼란이 극에 달했다. 여러 대신들이 다산선생의 중용을 주청 드렸으나, 끝내 다산선생과 악연의 연속인 서용보의 제지로 무산되고 만다.

만일 이때에 정약용이 내각에 들어갔더라면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달라졌을는지도 모른다. 근세 개화사상이 일본보다 더 빨리 들어왔을 수도 있다. 약용의 목민지도는 실학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제(田制)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고, 그에 따라 농민이 잘살게 되면 구매력이 높아져 산업이 발달하였을 것이다. 또한 지식인들을 동원하여 산학(産學)을 연결시키려 노력하였을 것이고, 서서히 유렵의 문물을 받아들여 과학도 발달하였을 것이다. (하권-392p)


다시 실용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다산선생이 가진 실학에 대한 깊이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단시 효율의 극대성과 이익의 극대가 실용이 아니다. “실학이란 어떠한 실체를 뒷받침해주기 위한 순수한 이론연구와 그 이론에 의하여 응용되거나 만들어진 응용학으로 나뉘어 지느니라. 우주 삼라만상을 연구하고, 그 속에 숨어있는 진리를 캐내어 우리 생활에 응용하여 편리하게 하여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학문이란 뜻이니라. 그래야 정도를 걷는 학문이랄 수 있으며 진정한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니라.”라고 준엄한 기준을 정한다.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수한 이론연구도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지난주 읽었던 『목민심서』와 연구원 책 16번째로 읽었던 『다산문선』을 옆에 놓고 『소설 목민심서』를 읽었다. 다산 선생에 대한 다양한 면과 당신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실용의 정신으로 볼때 다산이 이룬 학문적 업적을 계승 발전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할 시대적인 책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저자에 대하여

저자 황인경은 1956년 서울 출생으로 소설가이다. 1984냔 『입춘길목에서』신인상을 수상하여 등단했다. 1989년 집게벌레로 방송작가협회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1992년, 다산 정약용에 몰두하며 <소설 목민심서>를 집필했다.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 정약용의 일대기를 다룬 이 작품은 문학적 성취를 훌륭히 이루어냈을 뿐만 아니라 철저한 취재와 조사로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완벽해 재현내면서 현재까지 500만부가 넘는 판매를 올리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소설 목민심서> 이후 15년 만에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려져 있던 <영웅 고선지>를 선보였다. <영웅 고선지>는 향후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영어, 중국어, 일어 등으로 번역돼 출간될 예정이다.

책 서문에 겁이 많았던 저자가 한 밤중에 다산의 선영을 찾아가 힘을 얻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만큼 역사소설은 일반 소설에 비하여 역사적 사실과 사료를 찾아서 복원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소설 전반에서 작가의 세밀하면서도 꼼꼼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결국 희미한 역사적 사실을 상상력으로 복원하는 것은 다산에 대한 작가의 사랑과 열정이었다.

3. 가슴을 치는 구절
3가슴을 치는 구절

<머리말>

(1) 세대 간의 갈등, 빈부격차, 이념, 사상, 지역감정... 여러 가지 갈등이 만연한 이 시대에, 극복해야할 숙제들은 너무 많다. 분배냐 성장이냐를 놓고 우린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세대간, 빈부간의 갈등은 물론 지역 간의 갈등까지도 풀어줄 대안이 나는 감히 목민심서라고 말하고 싶다.

<상권 1- 희한한 발명품>

(38) 그들은 모두 젊어 혈기왕성했고, 비록 가는 길은 다를지언정 목표가 분명했다. 우연히 맺어진 인연은 조선사회에 열병처럼 번지는 실학을 바탕으로 하여 나라의 앞일을 염려하는 마음과 함께 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상권 2- 더 높은 곳을 향하여>

(48) 이럴 즈음 또 하나의 샛별이 나타났다. 22세의 나이로 초시에 합격한 정약용이라는 인물로 역시 남인에 속했다. 그 또한 명석하여 비범한 인재로 자랄 싹이 보였다. 2월에 치른 경의초시에 이어 4월에는 회시에서 생원으로 합격해 정조를 알현할 기회를 얻었다. 일생을 통해 군신의 의를 두텁게 이었던 성군과 현신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었다. 정약용은 여러 학생들과 태학에서 학문을 닦아 과시가 있을 때마다 장원을 하여 정조를 즐겁게 하였다.

<상권 3- 새벽을 여는 사람들>

(75) 타인이 베푸는 세심한 마음 씀씀이는 오래가도록 가슴에 남는 법이다. 임금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후의를 받는 순간 약용은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충성심과 정사에 대한 올바른 보필을 다짐했다. 그러나 세상의 질시를 염려했던 정조도 자신의 각별한 사랑으로 인해 희생될 신하가 생기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상권 4- 세월 따라 풍향은 바뀌고>

(125) 약용의 학문은 아직 공부하는 입장이라 나름대로의 확고한 사상은 없었지만, 성리학의 잘못된 방향만은 날카로운 시각으로 비판할 수 있기에 충분했다. 그의 눈에 비친 당시의 흐름은 바로 그랬다. 자구 하나의 해석을 두고 설전이 오가는 것은 물론 파를 지어 당쟁까지 일삼는 데다 당쟁에 말려들기 싫어 외면하는 사람은 고립을 시켜 결국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상권 5- 공서파(功西派)>

(160) 차츰 이야기의 초점이 분명해졌다. 남인 출신이지만 남인 편에서 서서는 출세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서인, 즉 정권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노론에 붙여야 한다. 노론은 없는 곳이 없을 만큼 깔려 있다. 이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특별한 공이 있어야 한다. 기왕이면 큰 목표를 겨냥해야 한다. 그러자니 자연히 공격 목표는 왕의 신임을 받는 남인이면서도 적당한 거물이기도 하 정약용이 적격이다. 이를 몇 사람이 나서서 번갈아 공격하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논리였다. 목만중을 포섭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에 힘입어 이기경은 대담한 제안을 했다. “홍공(홍낙안), 내가 선봉장이 되리다.“

(162) 이 당시 정조에게 있어 천주교란 별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아끼는 재목인 정약용이 이제 막 입신하려는 터에 중상하는 무리가 생긴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14년간의 통치경험으로 상소 건을 그냥 덮어 둔 체 감싸면 반드시 큰 부작용이 따르리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었다. “정약용을 해미(海美)로 정배하라”

<상권 6- 진산사건>

(171) 옥신각신 하기를 사흘 째, 상여가 나가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두 패로 나뉘어 서로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윤지충의 편이 대준 사람은 같은 천주교 신자인, 그의 외종사촌 권상연 뿐이었고, 대부부의 친척들은 윤지충을 불효막심한 패륜아로 몰았다. 마지막 제를 드릴 때도 윤지충이 절을 하지 않아 모여 선 사람들은 혀를 찼다.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 윤지충은 급기야 신주를 태워버렸다. 당시의 사회 여건상 큰 분란을 일으키고도 남을 사건이었다.

<상권 7- 효심이 낳은 기중기>

(192) 약용은 그길로 연지동에 있는 이기경의 집을 찾아갔다. 오늘이 바로 그의 모친 소상날이었다. 이기경이 귀양살이하는 중이라 살림이 쪼들릴 것을 염려하여 며칠 전 천만호에게 미리 돈을 부탁해놓았었다. 열 냥이면 아직 하급관리인 그에게는 큰돈이었다.

(199) 약용은 나중에 그의 기중도설에다 상세히 기중기를 언급했다.
“내가 힘을 내는 기계를 만들었다. 이 기계는 겉으로는 보잘것없이 보일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성문에 쌓는 돌은 한 개에 수만 근이나 되어 처 사람이 힘을 모아도 들기 어렵다. 그러나 이 기계는 마치 솜을 들어올리듯 쉽게 들 수가 있다. 일꾼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국가의 재정도 허비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로움이 크지 않겠는가?

<상권 8장 - 암행어사>

(228) 약용은 암행에 나선 것을 피가 맺히게 후회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 않았다면 그토록 괴롭히지는 않을 터였다. 임금의 그늘 밑에서 특별한 공로가 있다는 이유로 신임을 받아 나온 관리들이 백성들을 핍박하고 임금을 욕되게 한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조정은 그런 내막을 알고도 상께 보고하기를 꺼리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왕의 특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자들의 비리를 들춰냈다가 혹시 신상에 이롭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233) 18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들어왔을 때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실학의 거두로 지목받던 정약용을 추천하여 쓰기로 했다. 그의 목민심서가 완성되어 평판이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승인 서용보가 극력 저지하는 바람에 허사가 되었다. 이때 만일 정약용이 등용되었다면 나라에 큰 이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벽파 거두 서용보는 세상의 자리에 버티고 앉아 사사건건 약용을 밀어내고 복수를 획책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나라의 대사를 그르친 가장 큰 본보기였다.

<상권 9장 화산에 피는 꽃>

(239) 당파 싸움에는 이론이나 논리라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감정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되었다. 사람됨이나 재능 따위가 끼어들 여지도 없었다. 갈아치우면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상권 10장 침묵의 칼>

(252) 미사가 시작되자,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신도들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신부를 모셔오기까지 그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살아 생전에 과연 신부님을 뫼시고 미사를 볼 수 있을까 하고 누구나 의심하였던 지난날이었다. 솟구치는 벅찬 감격을 가눌 수 없어 그들은 소리를 죽여 가며 하염없이 흐느꼈다.

<상권 11장 암중모색>

(285) 아직까지 조선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나라 불란서는 대혁명의 열병을 치르고 있었다. 동양의 천재 정약용이 옥에 갇혀 홀로 봉건군주제의 모순을 파악해내고 있을 때, 불란서의 대다수 민중들은 이미 전제군주를 권좌에서 몰아내고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이ㅜ한 구체적인 행동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285) 좁은 감옥은 오히려 그의 천재적인 사고 능력을 자극하여 기존 정치제도에 안주하는 관리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진보적이고도 이상적인 정치 개혁안을 끌어내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약용 개인의 사념 속에 묻어야할 운명이었다.

(291) 천연두를 앓고 나면 곰보가 되는 것이 보통인데, 약용은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단지 눈썹사이에 흉터가 하나 생겨 얼른 보면 눈썹이 세 개처럼 보이는 정도였다. 약용은 이것을 표현하여 세 개의 눈썹이란 뜻으로 삼미자라는 호를 짓게 된다.

(300) 게다가 이해에는 또 하나의 경사가 겹쳤다. 약용이 백년가약을 맺었던 것이다. 홍화보의 딸 풍산 홍씨가 약용의 아내 될 사람이었다.

(321) 정조는 먼젓번의 무고사건도 있어 약용에 대한 처벌을 쉬 결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묘안을 강구하려 해도 유배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생각다 못해 정조가 단안을 내렸다. “정약용은 금정찰방으로 내보내고, 이가환을 충주목사로 내보내라”

(346) 지방의 수령으로 처음인 약용은 임지에 온 지 두 달이 채 못 되어 관아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돼 버렸다. 기본적인 질서를 잡아놓으니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약용은 늘 그 자신, 늘 몸가짐을 바르게 하려고 애쓰는 것과 똑같이 사회 질서를 바로잡으려 노력을 기울이곤 했다. 그러한 그의 삶의 자세는 백 마디 말보다 설득력이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민심을 얻었으며, 부조리와 악습을 척결해 내는 힘을 발휘했다.

<상권 13장 천문학 강의>

(399) 비록 힘써 배웠으되 사고하지 않으면 맹목적으로 추종할 뿐이며, 거꾸로 사고는 하되 배우지 않으면 허튼 생각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중권 15장 죽란시사(竹欄詩社)

(12) 죽란시사의 회원들도 한때 그랬다. 과거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공부할 때는 청운의 꿈을 품고 누구보다도 성실할 수 있었다. 누구든 정상에 오를 때까지는 목표를 향해 인내하고 땀 흘려 애쓰는 겸손을 배운다. 그러나 그 목표를 통과하고 보니 정상이란 별것이 아니었다. 시기와 암투와 모함이 판을 쳤다. 수고와 땀의 대가는 어디에 있는가. 성실과 인내로 올라온 정상에서 그들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도로 굴러 떨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인간이 만든 정상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산은 그렇지 않았다. 코를 대면 푸른 호흡을 할 것 것만 같이 가까이서 느껴지던 하늘과, 낱낱이 드러난 산자락의 정경은 정상을 오른 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이 있었다. 그러고 또 산은 정직과 순결을 되찾게 해주었다. 땀 흘리며 오르는 동안, 산이 보여준 진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가면과 허위를 벗기고 씻겨서 정상에 오르면 아름다운 절경이라는 선물로 주는 것이다.

(19) 잠자코 듣던 약용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네, 치자(治者)란 성실과 정직이 제일이네, 정성을 들이지 않고서는 백성이 따르질 않는 법이네. 어찌 변신을 꾀하면서 믿고 따르는 민심을 농락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선정은 권모술수처럼 보일 수 있네. 방금 민심을 농락한다 하였는가. 하나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고 최선을 선택할 수 없을 때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민심을 농락한다는 정치라고는 볼 수 없지 않겠는가. 통치자의 변신은 바로 이런 것을 위해 사용될 때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권 16- 곡산부사>

(35) 정조의 사랑이 깊으면 길을수록 약용에게는 항상 그 이상의 불편함이 따라다녔다. 절대 권력자인 왕은 자기의 의사를 관철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받는 쪽에서의 입장은 경우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속담에 돌이 모나면 정에 맞는다고 했던가. 아무튼 특정 개인의 사랑을 독점하면 질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중권 17- 이계심의 난>

(75) 약용은 먼저 이계심을 방면하여 관아 밖으로 내보내고서 전 이속들을 집합시켰다. “모두들 듣거라. 백성이 있어야만 나라가 있는 것이고, 관청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 관리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관리 때문에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니라. 이제부터 너희들은 백성을 위하는 관리가 되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중권 19- 명 사또)

(105) 사또로서 약용은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섬세하고 자상하였다. 시간이 나는 대로 고루 민정을 시찰했기 때문에 관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석구석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전임 사또들과는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전연 달랐다. 휘하 관속들의 노략질을 엄히 금하고 매사를 전적으로 백성들의 입장에 서서 병폐가 없도록 처리해 나갔다.

(142) 약용의 곡산 생활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이 축적된 시기였다. 제일선에 서서 백성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했고, 실학자로서의 판단력을 기르는 데 큰 몫을 하였다. 백성이란 약하면서도 강하고, 또 강하면서도 약했다.

<중권 21장 끝없는 질투>

(163) 백성들은 잘 살려면 조상 때부터 전해오는 구태의연한 방법을 되풀이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방도를 끊임없이 연구하여 실제 생활에 적용해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벼농사에서 직파법 보다는 노동력이 적게 들고 이모작이 가능한 이앙법이 훨씬 생산성이 높다는 것과 담배, 면화, 채소, 약재 등의 농작물은 심음으로써 농가의 수입은 물론 나라의 경제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농사경영법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중권 22장- 시련의 연속>

(211) 약용은 서실 입구에 여유당(與猶堂)이란 당호를 지어 붙였다. 그러고는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용기는 있지만 지모는 없다. 다시 말하면 권모술수가 없는 것이다. 선을 좋아하되 가릴줄을 모른다. 좋은 일은 마음 내키는 대로 즉시 행하기만 할 뿐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끝맺음이 없다. 그만둘 수는 있는 일이지만, 자신이 만족하면 그만두지 못하였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께름칙하면 계속한다. 노자는 ‘여(與)는 겨울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유(猶)는 사방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고 말했다. 여유당,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원하지만 남이 싫어하는 일이면 하지 말라는 뜻이다.

(212) 항상 마음을 비우기로 하였다. 정말로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손대지 않기로 하였다. 여유당에 들어앉아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욕심이 없어지니 세상천지를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었다. 평온이 찾아왔다. 새싹이 온 세상에 돋아나고 있을 때, 약용의 머릿속에서도 고요한 깨달음이 일고 있었다.

<중권-23- 떨어지는 별>

(229) 꺼져가는 음성으로 간신히 마지막 말을 남긴 정조는 숨을 깊이 몇 번 몰아쉬었다. 그러고는 이내 숨을 거두었다. 영춘헌은 일시에 통곡으로 가득 찼다. 49세의 아직 한창나이였다. 재위 기간 24년, 학문을 숭상하고 바른 왕도를 걸으려 노력했던 임금이었다. 극적이고 무리한 일을 하지 않으려 했던 군왕이었다. 이해와 타협으로 정사를 이끌려 했던 성군이었다.

<중권 25- 의인의 길>

(262) 약종에게 개인적으로 온 편지들과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발전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 즉 주문모 신부가 연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조선의 상황을 보고하는 서신과 연경에서 주신부에게 보낸 서신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 신부가 조선에 처음 들어올 때, 가지고 온 성물 등 천주교의 조선전교에 따른 역사적인 물건들이 빠짐없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천주교의 입장에서는 신성불가침의 귀중한 물건들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298) 약용은 심문을 당하여도 명백하고 정확한 증거를 댔다. 조금도 우물쭈물하지 않았다. 자신이 대답한 내용이 죄가 된다면 벌을 달게 받겠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지도 않았다. 약용은 모난 데가 없었다. 그는 옳은 일을 하는데 있어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옳은 일을 하는데 있어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약용을 진실로 아는 사람들은 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순수한 약용, 그 자체를 금방 느낄수 있었기 때문이다.

(302) 여러 대신이 그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하였다. 서용보는 약용이 경기암행어사 였을 때, 경기관찰사로 있던 그의 부정을 캐내어 발고하자 그때의 앙갚음으로 일생동안 약용을 괴롭혔다. 결국 서용보의 반대로 약용은 경상도 장기현으로, 형 약전은 전라도 강진군 신지도로 유배되었다.

<중권 30- 남녘땅 강진>

(354) 전라도의 풍경은 윗녘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동네마다 푸른 대나무 숲에 가려져 상록의 낙원처럼 보였다. 초겨울인데도 파릇파릇 잣이 자라고 있었다. ‘잘만 다스리면 훌륭한 낙원을 만들 수 있겠는데...’ 약용은 자신도 모르게 목민관으로서의 포부와 희망을 가지는 자신을 깨닫고 갑자기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다. 유배를 오게 된 자신의 처지와는 아랑곳없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꿈들이 부질없는 것이라 느껴지자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다.

(372) 사의재(四宜齋)란 사모언동(思慕言動)이라 하여 생각을 맑게 하되 맑지 않으면 더욱 맑게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하되 단정치 않으면 더욱 정숙하게 하고, 말은 요점만 말하되 요점이 전달되지 않으면 더욱 말을 줄이고, 행동은 무겁게 하되 무겁지 못하면 더욱 중후하게 하라는 뜻으로 약용 스스로 몸가짐이나 행동을 조심하겠다는 다짐을 나타낸 글이었다.

<중권 32- 시련의 나날>

(399)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하여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컫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하였을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하여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컫음인가. 오직 효제(孝悌)가 그것이다. 먼저 반드시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하여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면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이 배어들고 넉넉해진다. 학문이 이미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지면 특별히 순서에 따른 독서의 단계를 강구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권 36- 다산초당>

(110) 이 마을의 뒷산을 다산(茶山)이라고 한다. 마을을 벗어나서 산길로 접어들면 수백년은 됨직한 은행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대나무 숲이 울창하고 짙푸른 동백 거목들이 솟아 있어 대낮에도 어둠침침하다. 이 길을 따라 가파른 오솔길을 오르면 다산초당이 나타난다. 예부터 차나무가 자생으로 자라 붙여진 이름이다.

(129) 학문의 순수성이 회복되면 다음 단계는 학문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이니라. 실용, 실증, 실천, 실심, 실사, 실리를 하여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죽은 학문, 허수아비 학문이 되어버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논어 역시 실천윤리학적으로 다루어야만 그 학문의 본질에 접하게 되는 이니라.

<하권 39- 자산어보>

(213)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 가지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큰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입는 경우이다. 너는 나더러 강준흠과 이기경에게 꼬리치며 동정을 받도록 애걸해 보라 하였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세 번째 등급을 택하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이 명약관화한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러한 짓을 하겠느냐?

<하권 40- 다선일체>

(228) “실학이란 어떠한 실체를 뒷받침해주기 위한 순수한 이론연구와 그 이론에 의하여 응용되거나 만들어진 응용학으로 나뉘어 지느니라. 우주 삼라만상을 연구하고, 그 속에 숨어있는 진리를 캐내어 우리 생활에 응용하여 편리하게 하여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한 학문이란 뜻이니라. 그래야 정도를 걷는 학문이랄 수 있으며 진정한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니라.”

<하권 41- 회자정리>

(250) 청렴이란 목자의 본무요, 갖가지 선행의 원칙이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니 청렴하지 않고서 목자가 될 수는 절대로 없다. 청렴이야말로 다시없는 큰 장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큰 욕심쟁이 일수록 반드시 청렴한 것이니,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까닭은 그의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지혜가 깊은 선비로서 청렴을 교훈삼아 탐욕을 경계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목자로서 청백하지 못하면 백성들은 그를 도둑으로 지목하고, 그가 지나가는 거리에서는 더럽다 꾸짖는 소리로 들끓을 것이니 부끄러운 노릇이다.

(268) 귤동 어귀에서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추사는 북쪽으로, 초의는 남쪽으로, 그리고 약용은 초당으로.. 세 사람은 못내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하였다. 추사로서는 처음이지 마지막 이별이었다. 추사는 약용을 바라보면 눈물을 닦았다. 약용 또한 몇 번이나 돌아서서 초의와 추사의 그림자를 좇았다. 언제 부터인가 그의 주름진 얼굴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권 43-이별의 장>

(315) 내가 요사이 목민심서라는 책을 쓰고 있다네. 이 책에서 나는 박부추수(剝膚椎髓)니 두회기렴(頭會箕斂)이니 하는 말을 즐겨 쓰고 있네. 박부추수란 살갗을 벗기고 속골을 망치질한다는 뜻이고, 두기회렴이란 머릿수를 세어 곡식을 내게 하고 키로 거두어들인다는 마이네. 나야 귀양살이를 하다가 끝나면 그만이지만, 자네는 백성의 고통스러움을 이해하고 정치하는 데 꼭 반영을 하게.

(322) 귀하다는 사람은 신의가 있는 법, 만약 떼 지어 모여 즐기다가도 흩어진 뒤에 서로 잊어버린다면 이는 금수의 짓이다. 우리들은 무진년(1808년) 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형제처럼 모여 살면서 글을 읽었다. 이제 사부님께서 북녘으로 돌아가시고 우리들이 흩어져서 서로를 잊고 생각지 않는다면 되겠는가.

<하권 45 - 목민심서>

(392) 만일 이때에 정약용이 내각에 들어갔더라면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달라졌을는지도 모른다. 근세 개화사상이 일본보다 더 빨리 들어왔을 수도 있다. 약용의 목민지도는 실학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제(田制)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고, 그에 따라 농민이 잘살게 되면 구매력이 높아져 산업이 발달하였을 것이다. 또한 지식인들을 동원하여 산학(産學)을 연결시키려 노력하였을 것이고, 서서히 유렵의 문물을 받아들여 과학도 발달하였을 것이다.

(400) 부언하자면 수신이후 제가 제가이후 치국평천하 지통의야 욕치기읍자 선제기가(修身以後 齊家 齊家以後 治國平天下 之通義也 欲治其邑者 先劑其家)라 하였으니, 자신을 가다듬은 후라야 집안을 단속할 수 있고, 집안을 단속한 이후라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통하는 진리이거늘 한 지방을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자기 집안을 단속해야 하는 법이라는 뜻이네.

4. 내가 저자라면

소설 목민심서는 초판에는 5권으로 출판되었으나, 개정판은 상,중,하 3권으로 되어 있다. 각권 당 400여페이지로 전체 1,200페이지의 장편 역사소설이다. 다산 선생의 나이 22세부터 71세까지의 인생을 흐르는 강물처럼 표현하였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꼼꼼한 사료와 자료를 복원하여 그 시대이 생활상을 잘 그렸다. 소설의 기본적인 조건이지만, 조선 후기 사회의 생활상을 농사에서부터 상인, 정치제도, 사회제도 전반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하권에 나오는 아암대사, 초의대사와 다산선생의 다도(茶道)에 대한 이야기 였다. 차에 대한 역사와 마시는 예절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역사속으로 사라진 다산선생을 다시 모셔와 그분의 목소리를 저자의 목소리로 들을수 있는 점이 감동적이었다. 다산선생의 해배가 풀릴듯 말듯 할때 아들이 이기경에게 부탁을 해보자고 한다. 이를 받아보고 다산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 가지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큰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입는 경우이다. 너는 나더러 강준흠과 이기경에게 꼬리치며 동정을 받도록 애걸해 보라 하였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세 번째 등급을 택하는 일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고 말 이 명약관화한데, 무엇 때문에 내가 그러한 짓을 하겠느냐?


현재에도 이러한 옳고 그름, 이익과 해로움은 여전히 어려운 선택이다. 책을 읽는 내내 어려운 환경에서 옳고 이익이 되는 것을 좆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다산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지난번 얼핏 다녀온 다산초당의 모습이 다시 들어왔다. 선생의 생가와 다산초당을 다시 한번 다녀오고 싶다.
IP *.99.2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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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2.29 14:16:54 *.70.72.121
누가 욕할 때 열여덟년이라고 하누? 18년이라고 하지. 욕은 욕대로 해야 맞이 나는 거 아녀? ㅋ

나도 다시 가보고 싶다. 다산초당에... ㅎㅎ

본문은 나중에 읽어야지. 너무 기특하다. 우리 책 읽기도 바빴는데 번 외 16권째라니. 대단해. 반드시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튼실한 밑천이 될 거야. 어쭈? 그러고 보니 책을 읽으며서 가장 이익을 누렸군. 대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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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2008.02.29 16:40:49 *.216.228.231
구본형 선생님의 신간이 출간되나요.
오늘 메일을 보니 책이 새로 나오는 것 같은데,
언제쯤 나오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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