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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2일 02시 44분 등록

Ⅰ. ‘저자에 대하여’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는 1892년 5월 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데메스바라는 소도시의 유대인가정에서 태어나 부다페스트대학에서 문학·미술사를 전공했고 미술사가 마르크스 드보르자크,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 등으로부터 배웠다.

그는 1915~1917년 부다페스트에서 활동했던 젊은 지식인 클럽 「일요서클」에서 루카치와 만하임을 만나면서 학문의 새로운 눈을 뜬다. 즉, 그의 예술 사회학, 곧 예술사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한 연구 방법은 1910년대에 형성된 부다페스트의 ‘일요 서클’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루카치(G. Lukács, 1885~1971)가 중심이었던 이 서클은 현대 문학과 예술은 물론 문화 전반에 대해 고민하는 모임이었다. 1차 세계대전 후 중부 유럽을 휩쓸었던 혁명의 소용돌 이속에서 루카치와 함께 헝가리 정치에도 관여하였다.

20세기를 살아간 유태인 학자들이 그러하듯, 하우저도 1938년 나치가 빈을 점령하자 1951년 영국으로 망명해 6년 간 리즈 대학에서 강의했고, 그 뒤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학생들을 가르쳤다.

오랜 기간 동안 영국에서 살면서 미술사, 정신분석학, 예술 이론, 미학, 사회사, 문화사, 미술심리학 등의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든 미술사학자로 활동을 하였다. 그로인해 루카치, 만하임과 함께 20세기 헝가리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예술사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하우저가 영국에 머문 1950년대에, 유랑하며 생존문제로 고통받으면서 그는 47~57세에 선사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문학·미술·음악·건축 등 거의 모든 예술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1953)를 썼다. 그는 예술 작품이란 사회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사회적 힘의 산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사를 고차원적 이념에 억매이거나 단일한 예술 양식으로 압축해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예술 작품이 사회의 산물이고 사회의 영향을 받아 탄생하더라도, 온전히 사회와 맥을 같이한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우저는 예술의 형식적인 면에 가치를 두었으나, 사회역사적인 관점에 대해서도 예술사회학자로서 관심을 가졌다. 포괄적이고 상세한 예술에 대한 지식과 오랜 기간 동안의 영화산업에 있어서의 활동은 그가 예술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자율적으로, 다른 면으로는 사회 현상으로 보게 해 주었다. 냉전 시기의 서방(형태에 내재한 해석)과 동방(예술의 사회적 한계) 사이의 미술에 대한 논쟁 속에서 하우저는 중간에 있으려고 했다.

1978년 1월 28일 부다페스트에서 타계하였다.

 

저서

1958년 : 《예술사의 철학 (Philosophie der Kunstgeschichte)》

1964년 : 《매너리즘 : 르세상스의 위기와 근대 예술의 기원 (Der Manierismus. Die Krise der Renaissance und der Ursprung der modernen Kunst)》

1974년 : 《예술의 사회학 (Soziologie der Kunst)》 ISBN 8935600490

1978년 : "Im Gespräch mit Georg Lukács" kleiner Sammelband mit drei Interviews und dem Essay "Variationen über das tertium datur bei Georg Lukács"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제1장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1. 1830년의 세대

역사연구의 목적이 현재를 이해하는 데에 있다면 지금부터 검토하고자 하는 것들은 특히 이 목적과 밀착되어 있다. 그것은 근대 자본주의, 근대 시민사회,근대의 자연주의적 예술과 문학, 요컨대 우리 자신의 세계이기 때문(p13)

(1) 19세기의 토대

-. 19세기 혹은 ‘19세기’라는 말로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시대는 1830년대경에 시작. 19세기의 토대와 윤곽이 형성된 것은 겨우 7월왕정 기간중. 스땅달과 발자끄의 소설은 우리 자신의 생활, 즉 우리 자신의 인생문제, 과거의 세대들은 알지 못했던 도덕적 어려움과 갈등을 다룬 최초의 책들이다.(14)

-. 이 시대의 가장 특징적 산물이며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형태인 자연주의 소설은 그 창시자들의 낭만주의적 취향, 이를테면 스땅달의 루쏘주의라든가 발자끄의 멜러드라마적 과장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대의 비낭만적 정신을 표현. 계급투쟁이라는 범주에서의 정치적 사고와 더불어 경제적 합리주의는 소설가에게 사회적 현실과 사회심리학적 메커니즘의 연구를 불가피하게 했다. 이들 소설가들의 관찰대상과 시점은 부르즈와지의 야심에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서 그 결과물인 자연주의 소설은 완전한 사회의 지배를 달성하려는, 이 상승하는 계급의 열망에 대해 일종의 교과서로 쓰임. 이 시기의 작가들은 말하자면 인간을 관찰하고 세계를 다루는 도구로 소설을 창작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증오하고 경멸하는 독자층의 필요와 취미에 봉사했던 것. 한결같이 자기의 부르즈와 독자들을 만족시키려고 애썼다. 프롤레타리아 독자층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또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존재는 이 작가들을 당혹하게 할 뿐이었기 때문.(16~17)

(2) 자본의 지배

르네쌍스 이래 점차 드러나는 근대 자본주의의 근본적 경향은 이제 어떤 전통에 의해서도 완화되지 않는 그 뚜렷하고 비타협적인 명료성 속에 나타난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비인격화의 경향, 즉 경제기업의 전 메커니즘에서 개인의 환경에 대해서 고려하는 모든 직접적. 인간적 영향을 배제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업은 자체의 이해와 목적을 추구하고 자체의 논리법칙에 따라가는 하나의 자율적 유기체가 되며, 자기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을 노예로 삼는 폭군이 된다. 사업에의 완전한 몰두, 경쟁 속에서 회사를 번영시키고 확장시키기 위한 기업가의 자기희생, 그의 절대적이며 무자비한 성공에의 노력은 무시무시한 편집광적 성격을 띠게 된다. 원래는 사람이 만든 체제가 이제는 그것을 지탱하는 사람들로부터 독립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그 움직임을 막을 수 없는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변한다.(22~23)

(3) 신문소설

엄청난 수요를 채우기 위하여 인기작가들은 이제 규격화된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대단히 귀중한 도움을 주는 대리필자들을 고용한다. 말하자면 문학공장이 설립되고 소설은 거의 기계적으로 생산되는 것이다.(27)

(4) ‘예술을 위한 예술‘

1830년까지 부르즈와지는 자기들 목적의 추진을 예술에 기대했고, 따라서 예술을 정치적 선전의 도구로 받아들였다. “인간은 노래하고 믿고 사랑하기 위해서만 창조되지는 않았다. ... 인생이란 유형流刑이 아니라 행동하라는 하나의 위임인 것이다.”라고 1825년의 ‘글로브’지에는 씌어 있다.(33)

(5) 스땅달의 정치적 연대기

-. 스땅달의 여러 소설은 정치적 연대기들이다. ‘적과 흑’은 왕정복고 기간중의 프랑스 사회의 역사이고, ‘빠르므 수도원’은 신성동맹 체제하의 유럽상이며, ‘뤼시엥 뢰뱅’은 7월왕정의 사회사적 분석이다. 물론 역사적. 정치적 색채를 띤 소설은 옛날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스땅달 이전에는 아무도 바로 자기 시대의 정치체제를 소설의 본격적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43)

-. 스땅달에게 새로운 사회는 무엇보다도 그 통치형태에 의해서, 권력의 교체와 계급이라는 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의 변화에 의해서 옛 사회와 구별된다. 자본주의 체제란 그에게 있어 정치적 개조의 결과인 것. 그는 시민계급이 이미 경제적으로 패권을 장악했으나 아직 사회적으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워야 하는 발전단계의 프랑스 사회를 묘사한다. 스땅달은 이 싸움을 주관적. 개인적 관점에서, 즉 당시 상승하는 지식인층이 일반적으로 취하던 관점에서 서술한다.(44)

(6) 낭만주의와의 투쟁

19세기의 대표적 인물들 가운데 스땅달처럼 낭만주의의 유혹과 그것에의 저항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예는 없다.(51)

(7) 스땅달의 낭만적 경향

사랑이야말로 스땅달에게는 이성과 대립되어 평형을 이루는 위대한 힘이며, 그의 작품에서 가장 순수한 시정신의 원천이요 가장 깊은 마력의 샘이다.(52)

(8) 고전주의 및 낭만주의의 심리학과 현대적 심리학

-. 우리 현대인에게 가장 인기있는 작가란 많은 것을 다만 암시하는 데 그치고 입을 다물어, 독자가 스스로 짐작하고 설명하고 보충하도록 남겨두는 사람이다. 설명의 여지가 많고 뭐라고 정의하기 힘든 불완전한 작품이 우리게에는 가장 매력적이고 의미심장하며 표현적이다.(56)

-. 스땅달의 심리적 수법은 개성의 논리적 통일성이 아니라 인물들의 개별적인 태도 표명에 근거를 두며, 그림의 윤곽이 아니라 그 음영과 색가(色價, valeur)를 강조.(56)

(9) 자본주의의 병리학

-. 발자끄는 18세기 후반 이래 주제가 되어온 자전적 기록이라든가 단순한 심리묘사의 한계에서 서사문학을 해방시켰다.(60)

-. 돈과 이익의 추구는 가정생활을 파괴하여 아내와 남편, 아버지와 딸, 형과 아우를 이간시키며, 결혼을 하나의 공익조합으로 바꾸고, 사랑을 하나의 사업으로 만들며, 그 희생자들을 노예의 사슬로 서로 묶어놓는다.(62)

(10) ‘리얼리즘의 승리’

-. 발자끄의 세계관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실을 냉정하고 정직하게 관찰하는 리얼리즘이다.(65)

-. 발자끄는 근대 대도시에 대해서 열렬히 말한 최초의 작가이며, 산업시설에서 기쁨을 발견한 최초의 작가이다. 아름다운 계곡 한가운데에 들어선 그런 시설을 ‘유쾌한 공장’이라고 말한 사람은 그 이전엔 아무도 없었다.(65)

-. 발자끄 예술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작가의 사고와 감정이입을 통해 독특하게 고안된 것이다.(68)

(11) 발자끄의 미래상

인생과 시대의 의미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솔직함을 결합시킨 ‘알려지지 않은 걸작’ 작품

-->여기에서 발자끄는 19세기 예술의 운명을 예견하고 탁월하게 묘사. 그는 생활과 대중으로부터 예술이 소외된 결과를 인식했으며, 예술을 위협하는 심미주의와 허무주의와 자기파괴의 위험을 가장 학식 있고 날카로운 동시대인보다도 더욱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이다.(75)

 

2. 제2제정기의 문화

(1) 꾸르베와 자연주의 미술

-. 자연주의는 프롤레타리아 예술가의 운동에서 시작한다. 그 첫 대가는 꾸르베인데 그는 서민대중 출신이며 브르즈와적 범절에 대한 존중심이 전혀 없는 예술가. ‘석공들’과 ‘오르낭에서의 매장’(1850)을 그린 꾸르베가 지도적 위치에 서게 된 것은 예술적 특징보다도 주로 인간적 특성들 때문.(83)

-. ‘오르낭에서의 매장’이 전시되었을 때 샹플뢰리는 다음과 같인 선언. “이제부터 비평가들은 리얼리즘에 찬성이냐 반대냐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리얼리즘, 이 유명한 낱말이 드디어 등장한 것(83)

(2) 플로베르와 낭만주의

플로베르의 비정함은 단순한 하나의 수법상의 원칙이 아니라 예술가의 새로운 도덕 관념, 새로운 사상을 포함하고 있는 것. “우리는 인생을 말하기 위해 태어났지 소유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라는 그의 주장이야말로 하나의 예술관 및 세계관으로서 낭만주의적 출발점을 이루었던 저 삶의 포기가 가장 극단적이고 철저한 형태를 취한 것이요, 동시에 플로베르의 분열된 감정의 논리 그대로 그것은 낭만주의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거부행위이기도 했던 것(99)

(3) 졸라

-. 플로베르는 19세기의 감정곡선에 있어서 가장 낮은 한 점을 표시. 졸라의 작품은 우울한 어조를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하나의 새로운 희망을 나타내며 낙관론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108)

-. 스타일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지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졸라의 소설들이 예술사상 일찍이 없었던 하나의 체계적인 과학적 방법의 소산이라는 점. 예술가는 계획이나 체계 없이 세상을 체험하고, 말하자면 스쳐지나가면서 경험의 재료라든가 생활의 특징들과 데이터를 수집. 그는 그것들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저절로 자라고 성숙하도록 내버려두다가, 어느 날엔가 이 창고에서 예기치 않은 미지의 보물을 꺼내게 되는 것. 학자는 이와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는 하나의 문제와 더불어, 즉 자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실이나 또는 자기가 정말 알고 싶은 바로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출발. 자료의 수집과 취사선택, 즉 취급하려는 인생부문과 가깝게 친숙해지는 일을 문제설정과 동시에 시작하는 것. 학자는 체험을 통해서 문제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서 체험에 이른다. 그것은 또한 졸라가 밞은 경로요 방법이기도 하다.(110)

 

3. 영국과 러시아의 사회소설

(1) 이상주의자와 공리주의자

산업주의의 경제적 원리를 대변한 공리주의자들은 아담 스미스의 제자들로서, 그들은 저절로 움직이도록 방임해두는 경제가 자유주의의 정신에 일치될 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의 이익에도 가장 잘 합치된다는 이론을 주창. 그러나 여기서 이상주의자들에게 가장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정말 변호되기 힘든 이 이론의 결함들이라기보다 오히려 이기적 본능을 인간행위의 궁극적 원리라고 설명하는 숙명론과, 인간의 이기주의라는 사실에서 경제와 사회생활의 여러 법칙을 수학적 필연성에 의해 도출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였다. 이처럼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로 환원하는 데 대한 이상주의자들의 항의는, 직접적 체험현실에서 추상된 사고와 합리주의에 대해 낭만주의적 ‘생의 철학’, 즉 삶이란 논리적으로 다 파헤쳐지거나 이론의 틀에 종속될 수 없다는 신앙이 언제나 제기하는 항의였다.(135)

(2) 제2의 낭만주의 운동

디즈레일리의 봉건주의는 정치적 낭만주의요, ‘옥스퍼드 운동’(1883년경부터 옥스퍼드 대학에서 창도된 영국 국교준봉운동)은 종교적 낭만주의이며, 칼라일의 당대 문화 비판은 사회적 낭만주의요, 러스킨의 예술철학은 미학적 낭만주의로서 이 모든 이론과 경향들은 자유주의와 합리주의를 거부하고 현재의 복잡한 문제성을 떠나서 더 높은 초인간적.초자연적 질서에서, 개인주의. 자유주의 사회의 혼란을 벗어난 어떤 영구불변의 상태에서 피난처를 구하는 것이다.(137~138)

(3) 문화적 문제로서의 기술

러스킨은 예술의 타락 원인을, 현대 공장의 기계적 생산방식과 분업이 노동자와 노동 사이의 어떤 내적인 관계를 막는다는 사실, 즉 노동의 정신적 요소가 제거되고 생산자가 자기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에서 찾았다. (144)

(4) 디킨즈의 대중성과 위대성

-. 디킨즈의 성공은 동시에 새로운 출판방식의 승리를 뜻하는 것으로서, 그는 작품을 사서 읽고 즐기는 과정 즉 문학적 소비의 민주화에 따른 모든 혜택과 손해를 함께 맛보게 된다.(150)

-. 디킨즈는 모든 시대를 통해서 가장 성공적인 문필가의 한 사람이며, 아마도 근대의 위대한 작가들 중 가장 인기있는 작가일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기 시대에 대한 저항이나 환경과의 긴장된 관계에서 작품이 생겨나지 않은, 독자대중의 요구와 완전한 일치를 이룬, 낭만주의 이래 유일한 참다운 작가이다. 그는 셰익스피어 이후 유례가 없는 인기를, 고대의 무언극이나 음유시인의 대중성에 관한 우리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인기를 누렸다.(151)

-. 디킨즈와 발자끄 이 두 거인은 닮은 점이 많다. 즉, 그들은 똑같은 문학적 호경기의 대표자들로서, 혁명적 동요와 환멸에 가득 찬 시대의 격변이 한물 지난 다음 소설의 가공적 세계에서 현실에의 보상물을 찾으며 혼돈된 생활 속에서의 지표와 잃어버린 환상에 대한 위안을 찾은, 똑같이 책에 굶주린 대중에게 공급자로 나타난 것이다.(152)

(5) 디킨즈의 사회의식

-. 디킨즈는 자기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내적 모순들을 극복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한다. 한편으로 그는 사회에 대해서 지극히 매섭게 비난을 퍼붓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승인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회악의 영향범위를 과소평가한다. 실제로 그는 “모든 것은 민중을 위해서-그러나 아무것도 민중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여전히 고수하는데, 이것은 그가 민중이란 통치능력이 없다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는 ‘우중愚衆’을 두려워하고, 이상적 의미에서의 ‘민중’이란 중산계층이라고 생각한다.(154)

-. 디킨즈는 생활과 자연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사실적 예술의 한 대표자요 ‘자잘한 진실들’을 나열하는 수법의 완벽한 대가일 뿐 아니라, 영국 문학에 그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적 업적을 보태준 예술가이다. 현대의 모든 영국 소설은 환경서술, 인물묘사 및 대화법의 기교를 그에게서 이어받는다.(157)

(6) 빅토리아조 중기의 소설

1851년의 세계박람회는 영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빅토리아조의 중기는 초기에 비하여 번영과 안정의 시대인 것이다.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고, 물가는 오르며, 노동계급의 생활조건이 개선되고, 사회주의는 무해한 것이 되며, 부르즈와지의 정치적 지배권은 공고해진다. 여러 사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그 예각적 위기는 제거된다.(159)

(7) 죠지 엘리어트

-. 영국 소설사에서 내면으로의 전환은 죠지 엘리어트의 작품과 함께 완수된다. 그녀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정신적 및 도덕적 본성에 관한 것이며, 거대한 운명적 투쟁의 무대는 인간의 영혼, 내면세계, 도덕의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의 작품들은 심리소설인 것이다. 외적 사건과 모험 대신에, 사회적 문제와 갈등 대신에 도덕적 문제와 위기가 작중상황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지적. 도덕적 체험을 육체적 사실처럼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사색인들이다. 그녀의 여러 작품은 어느정도 심리학적. 철학적 에쎄이로서. 독일 낭만주의가 구상한 소설의 이상에 상당히 부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예술은 낭만주의와의 단절을 뜻하며, 낭만주의가 창조한 정신적. 도덕적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비낭만적인 다른 가치들로 대체시키려는 최초의 성공적 기도를 뜻한다. 죠지 엘리어트와 더불어 소설은 새로운 정신적. 정서적 내용을, 고전주의 시대이래 사라져버린 정신적 내용과 정서적 가치를 획득한다. 비합리적 인물의 감상적인 체험이 아니라 죠지 엘리어트 자신이 ‘지적 정열’이랄 부른 태도가 그녀의 작품세계의 중심을 이룬다. 그녀의 소설의 진정한 주제는 인생의 분석과 해석이요, 정신적 가치에 관한 인식과 평가이다. ‘이해’라는 단어가 그녀의 작품에 거듭 나타나는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라, 책임을 져라, 자기 자신을 가차없이 다루라라는 것은 그녀가 꾸준히 되풀이 하는 요구이다. “최고의 사명과 선택받음이란 환각제 없이 일하는 것이요, 맑은 정신으로 눈을 똑똑히 뜨고 우리의 모든 고통을 끝까지 견디며 사는 것입니다”라고 그녀는 1860년의 어떤 편지에 쓰고 있다.(160~161)

-. 발자끄의 강점은 체험의 묘사이고, 죠지 엘리어트의 강점은 체험의 분석이다.(162)

(8) 부르즈와지와 지식인

-. 그러나 죠지 엘리어트의 주지주의는 사회소설의 심리화에 대한 진정하고 최종적인 근거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사회문제가 심리적 문제 뒤로 물러나게 되는 발전의 한 증상일 뿐이다. 사회소설이 기본적으로 아직 부르즈와지와 결합해 있던 교양계층의 문학형식이었듯이, 심리소설은 부르즈와지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에 있는 교양계층으로서의 지식인의 문학적 장르이다. 빅토리아조 중기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지식인은 속박되지 않고 ‘유동적’이요 ‘초계급적’이며 여러 다른 계급 사이를 ‘중개하는’ 하나의 집단으로서 영국에 등장한다.(162)

-. 혁명의 승리와 차티즘의 좌절 이후에야 비로소 부르즈와지는 자기의 확고한 힘을 느꼈고, 그리하여 이제 양심의 갈등이니 양심의 가책 따위는 갖지 않게 되었으며, 이미 어떤 비판의 필요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문화적 엘리뜨, 특히 문필가들은 사회에서 하나의 사명을 수행한다는 느낌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까지 그 대변인 노릇을 해오던 사회계급에서 탈락되었음을 목도했고, 교육받지 못한 서민계층과 부르즈와지 사이에서 완전한 고립을 느끼게 되었다. 이 느낌과 함께 시민계급에 뿌리를 둔 초기의 교양계층으로부터 우리가 ‘지식인’이라고 지칭하는 사회적 집단이 처음으로 성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문화의 대표자가 점차 권력의 대표자로부터 떨어져나오는 해방의 과정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를 이룰 따름이었다. 인문주의와 계몽주의는 이 발전의 첫 계단으로서, 그것들은 한편으로 교회의 도그마에서, 다른 한편으로 귀족적 취미의 독재에서 문화의 해방을 완수했다. 뒤이어 프랑스 대혁명은 그때까지 교회와 귀족 둘만이 주무르던 문화의 독점에 종결을 짓고, 7월왕정과 더불어 확실하게 된 부르즈와지의 문화적 독점을 위해 길을 닦았다. 19세기 중엽의 혁명기간의 종말은 지배계급으로부터의 교양계층의 해방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이자 좁은 의미의 ‘지식인’의 출현을 향한 첫 발걸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지식인은 부르즈와 계급에서 나타났고, 그 선구자는 프랑스 대혁명에의 길을 준비한 시민계급의 저 전위였다. 그들의 문화적 이상은 계몽주의적.자유주의적인 것이며, 인간적 이상은 인습과 전통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진보적 인간성의 개념체 기초를 둔 것이다.(162~163)

(9) 러시아의 지식인

-. 근대 러시아 소설은 본질적으로 러시아 지식인의 산물인데, 이들은 제정 러시아의 기성체제와 결별한 정신적 엘리뜨들로서 문학은 무엇보다도 사회비판으로, 그리고 소설은 ‘사회소설’로 이해한다.(166~167)

-. 근대 러시아 문학은 온통 반항정신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 첫 황금시대는 짜르의 전제정치에 반대하여 계몽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진보적이고 세계주의적인 귀족들의 문학활동에 힘입었다. 뿌슈낀의 시대에는 진보적이고 서구사상에 민감한 귀족들이 러시아 사회의 유일한 교양있는 계층이었다.(167)

(10) 서구파와 슬라브파

-. 서구지향적 지식인의 합리주의에 자극되어 슬라브주의라는 형태로 일어나는 지적 반작용은 유럽에서 이보다 반세기 앞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낭만주의적 역사주의와 전통주의에 대항하는 것이다.(169)

-. 러시아인들은 사회로부터의 개인의 소외, 그리고 현대인의 고독과 고립이라는 유럽의 운명적인 대문제를 ‘자유’의 문제로 정립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러시아에서처럼 강렬하고 깊고 생생하게 체험된 곳은 아무데도 없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따르는 책임을 똘스또이나 도스또예프스끼보다 더 뼈아프게 느낀 사람도 없다. ‘지식인물의 수기’의 주인공, 라스꼴니코프, 끼릴로프, 이반 까라마조프, 이들은 모두 이 문제를 안고 씨름하며, 무제한한 자유와 개인의 자의恣意와 이기주의라는 구렁텅이에 빠져버릴 위험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개인주의 배격, 합리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유럽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의 연대성과 사랑에 대한 신성화는 오로지, 그냥 내버려두면 불가피하게 플로베르의 허무주의에 이르게 될 발전과정을 막아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서구의 소설은 사회에서 소외되어 고독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파멸하는 개인을 묘사함으로써 끝나는 데 비해, 러시아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으로 하여금 세계에서 그리고 같은 인간들의 사회에서 이탈하도록 하려는 악령과의 투쟁을 묘사한다. 이러한 차이가 도스또예프스끼의 라스꼴니꼬프와 이반 까라마조프 또는 똘스또이의 삐에르 베주호프 같은 인물들의 문제성을 설명해주는 동시에 사랑과 믿음에 대한 이 두 작가의 복음뿐 아니라 전러시아 문학의 메시사주의를 설명해주는 것이다.(173)

(11) 자기소외의 심리학

-. 러시아 소설의 놀라운 점은 그 연천年淺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영국 소설의 높은 경지에까지 이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로부터 주도권을 넘겨받아 당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생기있는 문학형식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도스또예프스끼와 똘스또이의 작품에 비할 때 19세기 후반의 모든 서구문학은 지치고 정체된 것처럼 보인다. ‘안나 까레니나’와 ‘까라마조프 형제’는 유럽 자연주의의 정상을 이룬다. 이들은 커다란 초개인적 질서에 대한 프랑스와 영국 소설의 감각을 조금도 잃어버림이 없이 저들의 심리학적 업적을 집대성하고 능가하는 것이다. 사회소설은 발자끄에서, 교양소설은 플로베르에서, 삐까레스끄 소설은 디킨즈에서 각기 그 완성을 보듯이 심리소설은 도스또예프스끼와 똘스또이에 이르러 그 완전한 성숙기에 들어간다. 이 두 소설가는 한편으로 루쏘, 리처드슨 및 괴테의 감상소설에서, 다른 한편으로 마리보, 꽁스땅 및 스땅달의 분석소설에서 시작한 발전과정의 최종단계를 대표하는 것이다.

근대 심리학은 영혼의 분열상을-어떤 구체적인 내적 갈등으로 선명하게 규정할 수 없는 부조화를-묘사하는 데서 출발한다. 안띠고네도 이미 의무와 감정 사이에서 흔들림을 맛보고, 꼬르네유의 주인공들은 거의 그 문제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세익스피어는 주인공의 우유부단을 희곡의 주제로까지 삼는다.(174~175)

-. 우리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시작이 아니라 끝이요, 그의 모든 독창성과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구 심리소설의 업적을 순순히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을 일관되게 발전시킨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스또예프스기는 현대 심리학의 가장 중요한 원칙, 즉 과장되고 지나치게 과시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모든 정신적 태도의 분열적인 성격과 그러한 모든 감정들의 양면성이라는 원칙을 발견한다. 사랑과 미움뿐 아니라 긍지와 겸손, 자부와 자기비하, 잔인성과 마조히즘, 숭고한 것에 대한 갈망과 ‘쓰레기에 대한 향수’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인물들 속에 얽혀 있다.(176~177)

-. 도스또예프스끼가 옹호하는 지상의 자살이라는 개념이야말로 그가 스스로 제기한 진정한 문제와 타당한 질문을 전혀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도스또예프스끼 철학의 문제점을 집약하는 것이다.(177)

(12) 도스또예프스끼의 사회철학

-. 도스또예프스끼의 주인공들은 대부분-특히 라스꼴니꼬프, 이반 까라마조프, 샤또프, 까릴로프, 스쩨빤 베르호벤스끼-부르즈와 지식인들며 도스또예프스끼는 비록 내놓고 자신을 그들과 일치시키지 않지만 대체로 그들의 관점에 준해서 사회를 분석한다. 그런데 한 작가의 세계관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누구의 편을 드느냐보다는 오히려 그가 누구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느냐 하는 데 있다.

(13) 도스또예프스끼의 자연주의와 낭만주의

-. 사회소설의 역사에서 도스또예프스끼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는 무엇보다도 현대의 대도시를 그 소시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군중, 소규모 장사치와 하급관리, 학생과 창녀, 무위도식자와 빈민 들을 망라하여 처음으로 자연주의적으로 그려낸 것이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에서 드러난다.(181)

-. 도스또예프스끼는 지적 경험을 감각적 경험 못지않게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줄 안 최초의 현대 소설가일 뿐 아니라 그 이전에는 아무도 감히 들어가보지 못한 정신적 영역에까지 파고들어간다. 그는 사고의 새로운 깊이, 새로운 강도를 발견한다. 물론 이 발견이 우리에게 새롭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낭만주의가 이성과 감성, 사상과 감정을 엄격히 구별하고 단지 감정과 열정만이 작품의 대상으로 합당하다고 보는 습관을 길러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183)

-. 주지주의와 낭만주의의 종합이야말로 도스또예프스끼 예술의 획기적 업적이며, 그것은 19세기 후반의 가장 진보적인 문학형식, 즉 낭만주의와 끊을 수 없는 유대를 지닌 채 주지주의를 향해 강렬히 움직이던 이 시대의 요구를 가장 잘 충족시키는 형식을 낳았다.(183)

-. 스릴러 수법은 우리가 짐작할 수 있듯이 극적인 진행과 종말의 효과를 거두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말하자면 처음부터 하나의 닥쳐올 위험을 예고해주며 거대한 정열이라든가 영혼과 영혼 사이의 본원적인 관계란 항상 인습적이고 사회에서 허용되는 것의 한계선에 육박하고 있다는 느낌을 낳는다. 도스또예프스끼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정신적 존재들의 유토피아적 고도孤島는 실상 하나의 좁은 새장임이 드러난다.(185)

(14) 도스또예프스끼의 극적 형식

도스또예프스끼가 연극적 수법을 쓰는 것은 단순히, 여러 갈래의 줄거리가 한데 만나고 폭발할 듯하던 갈등이 드디어 폭발하는 클라이맥스를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줄거리 전체에 극적 생기를 채워주고 서사시적 인생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도스또예프스끼에 의하면 인간존재의 의미는 그 시간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목표의 생겨나고 사라짐, 어제의 기억과 내일에 대한 환상, 끊임없이 쌓이면서 우리를 묻어버리는 그 세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발가벗겨져 몇 개의 간단명료한 공식으로 환원되는 것처럼 보이는 고조된 순간들, 인간의 본질 그대로의 진정한 자기임을 느끼고 자신의 자아 및 자신의 운명과 일치됨을 선언하는 그런 지고의 순간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간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이 도스또예프스끼의 비극적 낙관주의의 근거이며, 그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비극에서 ‘카타르씨스’라고 부른 저 운명과의 화해를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 도스또예프스끼의 철학적 근거이자 플로베르의 비관주의와 허무주의에 대한 그의 철학적 반대의 근거이기도 하다. 도스또예프스끼는 항상 최고의 행복과 가장 완벽한 조화의 느낌을 초시간성의 체험으로 묘사했다.(186)

(15) 도스또예프스끼의 표현주의

-.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이 그의 문학적 위치를 그야말로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는 “나를 심리학자라고들 말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나는 더욱 높은 차원의 리얼리스트일 뿐이다. 즉 나는 인간 영혼의 심층을 속속들이 그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187)

(16) 도스또예프스끼와 똘스또이

-. 여러 가지 극단적인 대조에도 불구하고 도스또예프스끼와 똘스또이는 개인주의와 자유의문제에 관한 그들의 태도에서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다 사회로부터의 개인의 해방과 그의 고독 내지 고립을 최대의 악이라고 본다. 두 사람 다 그들이 지닌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사회로부터 소외된 개인에게 들이닥치려고 하는 혼돈을 막아보려고 한다. 특히 도스또예프스끼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자유’의 문제를 중심으로 돌고 있으며 그의 위대한 소설들은 근본적으로 이 개념의 분석과 해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자유는 인습에 대한 개인의 승리를 의미. 그들에게는 당대의 도덕적. 심미적 편견들을 무시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용기를 가진 개성만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것으로 통했다. 스땅달은 이 문제를 성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 개성과 위대한 힘을 무자비하게 강행해야 하는 천재의 문제, 특히 나뽈레옹의 문제로 정립했다. 천재의 자의와 그것이 요구하는 희생은 세상이 그 정신적 영웅들의 행적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그는 생각했다.(188)

-. 똘스또이의 작품에서는 자유의 문제가 도스또예프스끼의 경우에 비해 훨씬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189)

(17) 똘스또이의 합리주의

개인의 공과보다도 타율적인 선택을 우위에 두고 신의 섭리를 출생 및 행운과 동일시하는 이러한 은총의 개념은 똘스또이의 기독교와 관계되어 있다기보다 그의 귀족적 배경과 더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195)

(18) 똘스또이의 서사시적 양식

-.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이 연극적 구조를 가졌다고 한다면, 똘스또이의 소설은 서사시적-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같은-성격을 지니고 있다.(197)

-. 이 새로운 세대가 ‘전쟁과 평화’의 작가를 숭배한 것은 단순히 위대한 소설가, 세계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의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사회개혁가이며 종교의 창시자로서 숭배한 것이었다. 똘스또이는 볼떼르의 명예와 루쏘의 인기와 괴테의 권위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차라리 그 명성이 옛 선지자의 예언자들을 방불케 하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198)

 

4. 인상주의

(1) 인상주의의 방법

스타일 면에서 인상주의는 대단히 복합적인 현상이다. 어떤 맥락에서 보면 그것은 단지 자연주의의 일관된 발전형태에 불과. 말하자면 일반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으로, 전형적인 것에서 개별적인 것으로, 추상적인 관념에서 시간적.공간적으로 규정된 구체적 체험으로 나아감을 자연주의라고 한다면 인상주의적 현실묘사는 순간적.일회적인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의 중요한 성과에 포함될 수 있다. 인상주의의 묘사는 좁은 의미의 자연주의보다 감각적 경험에 더욱 밀착하며, 이론적 지식의 대상을 과거의 어느 예술보다 더 완벽하게 직접적인 시각적 체험의 대상으로 대체하는 것이다.(203)

(2) 회화의 우위

회화는 당대의 가장 진보적인 예술로서 다른 모든 장르를 압도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성과에서도 동시대의 문학이나 음악을 질적으로 능가(207)

(3) 자연주의의 위기

무엇보다 ‘인간적 다큐먼트’에 관심을 둔 자연주의적 관찰의 결과가 없었다면 부르제와 바레스와 위스망 및 심지어 프루스트의 ‘심리소설’이 어찌 가능했겠는가?(217)

(4) 데까당스

1880년대에는 사람들이 당대의 심미적 쾌락주의를 ‘데까당스’라고 즐겨 불렀다.(224)

(5) 예술가와 부르즈와 인생관

랭보는 보들레르의 유일한 참다운 후계자요, 스승인 보들레르의 상상적 여행을 실현시키고 그럼으로써 랭보 이전에는 보헤미안 세계로의 단순한 탈주에 불과하던 것을 하나의 생활형태로 만든 유일한 인물(229)

(6) 보헤미안의 변모

사람이란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여기기 위해서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깊이 내려가 보았어야 하지요.(보들레르. 232)

(7) 상징주의

-. 상징주의에서 시란, 그 자체로서 독립된 언어가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과 개념적인 것, 그리고 감각의 여러 다른 영역들 사이에서 창조해내는 관계들과 일치된 표현 바로 그것이다. (234)

-.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으로 되기 위하여 존재한다” (플로베르.237)

(8) 댄디즘

보헤미안이 프롤레타리아트로 떨어진 예술가라고 한다면, 댄디는 상층계급 쪽으로 탈락해나간 부르즈와 지식인인셈이다.(243)

(9) 국제적 인상주의

시인들의 관심사는 객관적 현실이 아니고 자신의 민감성이나 체험능력에 대한 시인의 감정적 반응이다. 이러한 실체 없는 기분과 분위기의 예술이 문학의 모든 형식을 지배한다.(247)

(10) 체호프

-. 유럽에서 인상주의 역사상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러시아가 인상주의를 받아들여, 인상주의 운동의 가장 순수한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체호프 같은 작가를 낳았다는 사실(249)

-. 인생에 있어 무능과 실패의 변호자로서 체호프에 앞서 도스또예프스끼나 뚜르게네프 같은 선구자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실패와 고독을 가장 휼륭한 인물들의 숙명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체호프의 세계관에 이르러 비로소 인상주의 특유의 체험, 즉 인간 상호간의 근본적 단절의 체험, 인간들을 갈라놓은 최종적 심연을 메울 수 없다는 체험, 또는 어쩌다가 메우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인간과 인간의 격의 없는 유대를 보존할 수는 없다는 체험이 중심적 문제로 등장하는 것(250)

(11) 자연주의 연극의 문제

최초의 자연주의 연극인 앙리 베끄의 ‘까마귀 떼’는 1882년에 씌어졌고, 최초의 자연주의 극장인 앙뜨완느의 ‘자유극장’은 1887년에 창설(252)

(12) 입센

-. 근대 연극사상 중심 인물은 입센이다. 단순히 그가 19세기 최대의 연극인이었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당대의 세계관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가장 강렬하게 희곡으로 표현한 사람이 바로 입센이었다는 이유에서도 그렇다.(256)

-. 키에르케고르의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무엇보다도 입센의 도덕적 엄격주의의 발전에 결정적 계기를 이룬다. 입센의 윤리적 정열, 선택하고 결단해야만 한다는 의식, 작품을 쓰는일이 곧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일’이라는 생각, 이 모든 것이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256)

-. 입센이 전유럽에 걸쳐 명성을 떨친 것은 주로 그의 연극이 지닌 사회적 교훈 때문이었다. 이 사회적 교훈은 결국 개인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라든가 자기실현의 임무, 편협하고 우둔하며 생명력을 상실한 부르즈와 사회의 인습에 대항하여 자기 자신의 본질을 관철하는 과제라든가 하는 단하나의 이념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것은 그의 개인주의의 복음이요 지고의 개성에 대한 찬미와 창조적 생명의 신격화였다. 다시 말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또 하나의 낭만주의적 이상으로서 니체의 초인 사상이나 베르그쏭의 생의 철학과 일맥상통할 뿐 아니라 쇼의 ‘생명력’의 신화에서도 그 여운이 들리는 것이다. 입센은 근본적으로는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로서 개성적 자유를 인생의 최고 가치로 삼았고, 일체의 외부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된 개인은 그 자신을 위해 매우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데 반해 사회는 그를 위해 별로 해줄 게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258)

(13) 버나드 쇼

-. 버나드 쇼는 입센의 유일한 진짜 제자이자 후계자. 낭만주의에 대한 투쟁을 효과적으로 계속하고 이 세기의 유럽이 당면한 중대한 문제에 관한 토론을 심화시킨 유일한 작가인 것이다.(260)

-. 전설을 파괴하고 허구를 쳐부수는 그의 모든 사고가 18세기의 계몽철학에 그 연원을 두고 있음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나, 역사적 유물론에 근거한 그의 사관으로 말미암아 그는 또한 자기 세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문필가이기도 하다.(260)

(14) 폭로의 심리학

세기전환기에 있어 세계관의 기본 방향을 규정해주는 심리학은 ‘폭로의 심리학’이다. 니체와 프로이트는 둘 다 인간의 정신생활의 표면,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동의 동기에 관해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흔히 그의 감정 및 행위의 진정한 동기를 은폐 혹은 왜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262)

(15) 베르그쏭과 프루스트

-. 인상주의적 사고는 베르그쏭의 철학에서, 특히 인상주의의 본질에 밀착된 모체인 ‘시간’에 대한 베르그쏭의 해석에서 그 가장 순수한 표현을 얻는다.

-. 관조, 회상, 예술의 길이 우리가 인생을 소유하고 체험하는 한가지 가능한 형식일 뿐 아니라 오직 단 하나의 가능한 형식이라고 본 최초의 인물이 프루스트.(269)

 

■ 제2장 영화의 시대

(1) 자본주의의 위기

-. 우리가 ‘19세기’라 일컫는 시대가 실은 1830년경에야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20세기’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그러니까 1920년대에 비로소 시작. 그러나 1차대전이 이러한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다는 말은 전부터 있던 가능성들 가운데서 전쟁이 선택의 계기를 주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20세기 예술의 주류를 이루는 경향들은 모두 전 세기의 선구자들에게서 그 기원을 갖는다. 입체파는 쎄잔느와 신고전주의자들에게서, 표현주의는 고흐와 스트린드베리엑서, 초현실주의는 랭보와 로트레아몽에게서 각각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예술사상의 연속성은 당시의 경제사 및 사회사가 어느정도 일관된 발전을 하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285)

-. 1930년대의 역사는 사회바판의 시대, 사실주의와 행동주의 시대의 역사다.(286)

(2) 테러리스트와 수사가

-. 인습적 표현양식에 대한 체계적 투쟁과 이에 따른 19세기 예술전통의 해체는 1916년의 다다이즘과 더불어 시작. 다다(Dada)는 하나의 전시戰時현상으로서 전쟁으로 달음질친 문화에 대한 항의였다. 즉 일종의 패배주의였던 것이다. 다다운동 전체의 의의는 기존의 모든 형식과 상투구의 유혹에 저항했다는 데 있다.(291,293)

(3) 현대예술의 양분상태

조이스의 ‘율리씨즈’와 T,S 엘리어트의 ‘황무지’는 1922년에 동시에 발표되어 새로운 문학의 대조적인 두 가지 기본 음정을 들려주었다. 조이스의 소설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방향으로, T.S 엘리어트의 시는 상징주의와 형식주의의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두 작가에게서 다 주지주의적 태도를 볼 수 있지만, T.S 엘리어트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교양경험’인데 비해 조이스의 경우는 ‘원초체험’이다.(295)

(4) 심리소설의 위기

카프카의 소설에서는 일종의 신화가 심리학을 대체한다.(300)

(5) 영화에서의 시간과 공간

-. 영화와 다른 예술 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유동적이라는 점(302)

-. 두 가지 사건의 동시성을 묘사하는 것이 영화형식의 기본 요소의 하나라는 점은 영화의 역사에서 비교적 일찍 발견되었다.(305)

(6) 동시성의 체험

nn영화와 현대소설에 나타는 베르그쏭의 시간 개념을 우리는-영화와 소설에서처럼 뚜렷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현대예술의 모든 장르와 경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른바 ‘심적 상태의 동시성’은 현대미술의 여러 경향을 연결시켜주는 기본 체험으로서, 이딸리아의 미래파에서 샤갈의 표현주의, 삐까쏘의 입체주의에서 지오르지오 데 끼리꼬와 쌀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움직임에 일관되어 있다.(309)

(7) 집단적 예술제작의 문제

-. 만성병으로 진행되어가고 있는 듯한 오늘날 영화의 정신적 위기는 무엇보다도 영화가 작가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 아니, 작가들이 영화로 길을 찾아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욱 타당한 말일 것.(3100

-. 작가들에게는 공동작업의 정신, 아니 공동작업을 통한 예술작업의 개념부터가 충분한 권위를 갖지 못하는 것(310)

(8) 영화의 관중

-. 관중을 이루는 집단은 항상적인 상호 소통 가능성에 기반하여 성립된다. 반드시 의견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의견대립이 같은 평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중요.(313)

-.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들과 예술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로서 예술전통의 보존에 줄곧 기여해온 동질적이고 고정적인 관중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술감상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사라졌다.(313)

-. 영화는 유럽의 근대문명이 그 개인주의적 도정에 오른 이래 불특정의 집단적 군중으로서의 관중을 위해 예술을 생산하려 한 최초의 기도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9세기 초엽에 노변극장 및 연재소설의 탄생과 관련하여 연극청중과 독서대중의 구조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 예술의 민주화의 참된 시초가 되었다.(314)

(9) 품질과 인기

대중과의 관계에서 성공 여부는 미적 질의 문제를 넘어선 기준에 따라 정해진다. 그들은 예술적으로 좋고 나쁜 점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그들에게 확신을 주거나 불안을 주는 여러 인상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315)

(10) 러시아 영화의 몽따주 수법

러시아 영화기법의 새로운 요소는 설명적인 긴 장면들을 완전히 빼버린 채 모든 화면을 클로즈업에 한정시킨 것과 몽따주 사진 하나하나를 지각한계까지 짧게 단축시켰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러시아 영화작가들은 어떤 흥분된 기분이나 불안정한 리듬 또는 질풍 같은 속도를 표현하는 일종의 표현주의적 영화양식을 발견하였고, 이 양식은 다른 어느 예술도 내지 못하는 효과를 가능케 해주었다.(318)

(11) 선전도구로서의 영화

영화는 탄력있고 새로운 가능성에 찬 형식으로서 새로운 사상을 표현하는 데 대한 어떤 내재적 저항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소박하고 대중적이며 무지한 민중들에게도 직접 호소할 수 있는 의사전달 수준으로서, 레닌은 그 선전도구로서의 가치를 즉각 인정했던 것(321)

(12) 예술 민주화의 길

-. 우리의 과제는 다수 대중의 현재 시야에 맞게 예술을 제약할 것이 아니라 대중의 시야를 될 쉬 있는 한 넓히는 일이다. 참된 예술이해의 길은 교육을 통한 길이다.(324)

-. 문화적 독점을 해소하는 전제조건은 무엇보다도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제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싸우는 수밖에 없다.(325)

 

 

Ⅲ. ‘내가 저자라면’

 

1. 우리가 예술을 감상하고 학습하는 이유

1830년대경부터 시작되는 19세기를 바탕으로하여 스땅달과 발자끄의 문학으로부터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4’는 시작이 된다.

모든 문학과 예술은 동시대의 삶과 사회, 희노애락의 인간 군상들을 주제로 다룬다. 프롤레타리아, 자본주의, 쾌락, 금전, 사랑, 인생 등등. 그들을 주제로 하여 작가들 또는 예술가들은 본인 자신의 모습의 투영과 함께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 메시지의 내용들은 다르다. 받아들이는 화자가 어떻게 어떤 소양으로 어떤 마인드로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책을 읽고 예술을 감상하고 학습을 해야한다는 당위성이 존재한다.

 

2. 예술가의 경로

예술가의 경로는 콩나물을 키우는 방법과 흡사하다. 일차적으로 시루에 콩을 넣고 물을 붓는다. 하지만 물은 붓는 족족 밑에 구멍이 뚫린 공간으로 빠져나간다. 콩은 물이 빠져나가는 상태에서 자신에 대해서 시공간에 대해서 자성을 하고 학습을 하고 고민을 하면서 체험을 해나간다. 그런 가운데 저자의 말대로 스쳐지나가면서 경험의 재로라든가 생활의 특징들과 데이터를 수집해 나간다. 그는 그것들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저절로 자라고 성숙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러던 어느날 외부로부터의 자극인 물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현실은 물이 빠져나가고 있는 가운데 어느 날엔가 이 창고에서 예기치 않은 미지의 보물을 꺼내게 된다. 자기자신도 모르게 어느날엔가 자그마한 콩의 모습에서 어느덧 콩나물로 변해있는 당신의 모습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것처럼.

 

3, 작가 또는 예술가의 자세

작품에 있어 어떤 대상을 어떻게 어떤 시각으로 어떤 방법으로 요리하느냐는 전적으로 행위자의 주관적 판단과 각기의 실행방법에 있다. 그럼에도 여기서 죠지 엘리어트와 보들레르가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고의 사명과 선택받음이란 환각제 없이 일하는 것이요, 맑은 정신으로 눈을 똑똑히 뜨고 우리의 모든 고통을 끝까지 견디며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여기기 위해서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깊이 내려가 보았어야 하지요”

삶의 고통을 회피가 아닌 끝까지 끌어안는 삶. 나아가 그것을 승화로써 연결시키는 메신저의 역할. 그것이 진정한 작가와 예술가의 자세일 것이다.

 

4. 작가의 세계관

나는 아직도 나의 가치관, 나의 사상, 나의 이념, 나의 목소리를 찾기위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 여정속에서 아파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절망을 느끼기도 하고 헤메이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데 나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도스또예프스끼는 한 작가의 세계관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누구의 편을 드느냐보다는 오히려 그가 누구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느냐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어머니, 누님, 형님, 와이프 ... 내가 바라보는 창의 밑그림을 통해 나는 무엇을 언제쯤 이야기하고 싶은가?

 

5. 예술가의 소명

이것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의 저자인 아르놀트 하우저가 책을낸 또다른 목적이기도 하다. 그가 부르짖는 내용은 이러하다.

‘우리의 과제는 다수 대중의 현재 시야에 맞게 예술을 제약할 것이 아니라 대중의 시야를 될 수 있는 한 넓히는 일이다. 참된 예술이해의 길은 교육을 통한 길이다.’

대중이 미처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서 창조적 소수의 시각으로 보게된 내용들을 전해주는 일. 그것이 우리들의 소명일 것이다.

그에따라 나도 플로베르가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으로 되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얘기했듯 나의 행보를 계속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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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2009.12.22 02:52:47 *.117.112.112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성탄절이 다가 옵니다. 종교를 떠나서 누구나 크리스마스에는 왠지 좋은 일들이 일어날것만 같은
기분이 든적이 있을 겁니다.
착한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올해도 싼타 할아버지의 등장을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날마다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습니다.

p.s
:새벽 3시가 되어가는 시각. 잠을 쫓기위해 허벅지를 쥐어 뜯었더니 에구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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